일곱 가지 은혜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1일 주새 

 

본문 : 에베소서 1장 5절∼10절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이 본문을 가지고 유치반 중간반을 가르치게 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반사 선생님들이 알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것이니까 반사 선생님들이  이 내용을 잘 알고 믿음으로 소화를 해서 자기가 깨달은 바 자기 맡은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지는 것 그런 거 몇 가지를 가르쳐야 되지  전부를 다 가르칠라고 하면 시간이 짧기 때문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많이 기도하고 새김질하고 이래서. 또 자기가 뜻을 모르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뜻을 알고 가르칠 때에 자기에게 알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는 그 역사가 역사 합니다. 자기가 깨달아 알고  가르치면 알게 하신 그 성령님이 내가 가르칠 때에 가르침을 받는 그 사람에게도  깨달아 알게 하는 그 역사를 하시고 또 내가 알고 그대로 실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르칠 때에 아는 능력과 실행케 하는 그 능력의 영감 역사가 또  배우는 자들에게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다릅니다. 세상은 자기가 아무리 그 속에 마음이나 또 진정은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껍데기 얼마든지 가지고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  가르침을 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그렇지를 못합니다. 비유컨대는 속으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부리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이렇게 얼마든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그런 증거를 할 수도 있고, 그런  증거를 할 때에 증거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증거 받을 때 하나님이  계신다는 그런 증거를 받지를 못합니다. 받지 못하고. 제가 속으로 믿지 안하고  속으로는 부정하면서 입술만 가지고 아무리 하나님이 계신다고 강하게 증거를  해도 거기는 성령이 역사하지 안하기 때문에 악령이 방해를 받아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믿고 믿고 증거할 때에  증거하는 증거는 그 사람에게 바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일은 자기가 아니면서도 그거라고 이렇게 하면 그것이 먹혀  들어갑니다. 그것이 알려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꼭  자기가. 자기가 지식으로 아는 것을 전할 때에 지식이 전해지고 자기가 믿는  것을, 믿는 것을 전할 때에 믿는 것이 전해지고 행하는 것을 전할 때에 행하는  것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하는 것은 지식과 믿는 인정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세 가지가 한목 전해 져야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늘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아니하고  성신의 감화와 그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고 말을 했고 너희들이 이 말씀을 듣되  지식만 들어 가지지 말고 그 영감과 능력을 받아 가지고 너희들의 믿음이 능력에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말을 늘 했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알기는 충분히 알아야 되겠고 또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은 가져야 하겠고, 또 그 다음에는 그저 실수할 기회만 있으면 실수할 그  사람. 또 기회를 만났을 때에는 실행을 한 사람 이런 사람으로 가르칠 때 세  가지가 다 바로 전달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몇 가지 은혜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아들들이 됐는가 하면 일곱 가지 은혜가 모여져서 하나님의 아들이  됐습니다. 일곱 가지의 은혜. 그라면 간단하게 알터이니까, 일곱 가지 은혜  하나님의 선택 은혜, 또 하나님의 예정 은혜, 또 하나님의 창조 은혜 또  하나님의 섭리 은혜, 그러면 이 두 가지로서 우리가 첫째 아담에게 배었습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두 가지 은혜로 첫째 아담에게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예택,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예택, 하나님의 예정, 또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나게 됐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가 태어난 사람, 물론 어머니 때부터  모태로부터 믿는 사람 있지만 나고 난 다음에 얼마 지나다가 예수 믿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두 가지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된 우리들이 또 그 다음에 세 가지로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세 가지는 뭐인고 하니, 주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을  입혀 주신 대속의 피공로, 또 하나는 피공로를 인한 그 성신의 감화 감동. 또  하나는 진리 이 세 가지의 은혜로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요 둘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요 둘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그러면, 예수님과는 언제 우리가 관계가 있었느냐 하면 대속하신, 대속한 후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는 그때부터 예수님과 우리와가 관계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시고 택함을 입어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의 아들 된 은혜의 요소가 제일  처음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 곧 선택인데. 선택이 그저 하나님이 이래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했는데 그리스도는 누구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그는 순전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선택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감당할 만한 그런 사람으로  만드시는 책임을 지신 그 하나님이 누군고 하니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입니다.

내나 한 하나님인데, 비유가 잘 안 되지만 예를 들어 비유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한 사람은 한 사람인데 남편의 의무와 책임을 가졌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인데  남편 노릇을 합니다. 또 남편 노릇만 할 뿐 아니라 또 좀 있다가는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합니다. 또 아버지 노릇만 할 뿐 아니라 호주 노릇도 합니다. 이래서, 이  집에 호주가 누구냐 하면 그분이 나가야 되겠고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또 그 사람이 나가야 되겠고 이 여인의 남편이 누구냐 하면 또 그 사람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세 가지 직책 의무, 세 가지의 의무를 책임을 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하나님이 성부로 성자로 성령으로  이렇게 되는 것은 그 맡은 직책을 이런 직책 할 때는 한 하나님이지만 성부라고  말하고, 이런 직책을 할 때에는 한 하나님이지만 성자라고 말하고 이런 직책을  할 때에는 한 하나님이지만 성령이라고 이렇게 말을 해서 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말씀이라는 그 하나님, 말씀이라는 하나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요한복음 1장에는 말씀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제이위  성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했다 하셨으니까 그 말씀이란 이름을  가진 하나님은 곧 제이위 성자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도 성자를 말합니다. 또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는 분은 내나 성령을 말합니다. 또 성령을 말할 때에도  성령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도 내나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이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직책을 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성령이라 그말입니다. 또 그리스도는 영원 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그  영원 전 우리가 예택을 받을 때에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예택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는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이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다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예수님이라고도  말할 때도 있고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성이 아닙니다.

인성이 없는 신성뿐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되신 후가  예수님이시고 사람 되기 전에는 이름을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으니 무엇인고  하니 그리스도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그런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택을 받을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섭리 구원을 우리가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거기 대해서 자꾸 낱낱이 그리스도 안에서 됐다는 그런  말을 자주하지 안하고 여기 저게 뜨문뜨문 그래 놨기 때문에 그 성경을  종합적으로 전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네 가지 은혜를 받아 가지고 첫째 아담의  자손까지 됐습니다. 그 다음에 또 그리스도 안에서 세 가지 은혜를 받아 가지고  곧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되기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 가지 은혜 받아 가지고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됐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이 범죄해서 타락했습니다. 타락했을 때에 범죄함으로  더러워지는데, 범죄함으로 더러워졌는데 범죄함으로 더러워짐이 그라면 어떤게  더러워졌는가? 하나님의 예택도 더러워졌는가? 하나님의 예택은 더러워지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은 어째 됐는가? 하나님의 예정  자체는 더럽지 안하지만 그 순서가 더러움의 순서를 입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는 그것이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은 것도  있고 더러움을 입지 안한 것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에서는 더러움을  입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정죄함을 받지 안하면, 우리는 다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정죄함을 받았는데 정죄함을 받지 안했다고 말한  그것이, 정죄함을 받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정죄라는 그것이 정죄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정죄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예택의 은혜를  입은 것은 정죄를 못 합니다. 그것은 완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도  껍데기만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써 고난을 받으셨지 예수님의 속에 있는  속 사람은 그렇게 사망의 형을 받을 수 없고 형을 줘 봤자 형이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대속으로서 고난받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면서, 죽지만 고난만 받으시지 예수님의 신성도 죽지 안했고 예수님의  인성인 영이나, 영은 죽지 안했고 또 예수님의 그 사상이나 지식이나 그런 것은,  죽지를 안했습니다. 고난만 받았지, 그런 형을 받으면서 죽지 안했습니다. 만일  죽었다면 우리를 대속할 수 없었을 텐데. 우리가 죽는 죽음의 형벌을 받았지  죽지는 안했습니다. 왜 죽지 안했느냐 하면 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끊겨지지  안했기 때문에 끊겨진 것이었지 끊겨지지 안했기 때문에 죽지를 안했습니다.

안하고, 죽지 안하고 다만 죽음의 형만 받았습니다. 형을 죽는 형을 받았으나  형을 받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대신해서 대속하시기를 소원하는  그런 기도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들이  그저 알기만 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칠라 하면 그런 것이 다 안 되니까 가르치지  말고,  그저 일곱 가지 은혜로 됐다. 일곱 가지 은혜로 됐다 하는데 두 가지는, 두  가지 은혜로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되었고 또 다음 세 가지 은혜로써 이제 둘째  아담의 자손이, 둘째 아담은 예수님이 둘째 아담 아닙니까? 자손이 됐다, 이런  것도 여러분들이-그 학생들에게 가르칠라고 하면 좀 힘들기 때문에. 중간반 일  이부에서는 그것을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만일 중간반 일 이부쯤 되면 그것을  가르치지 안하면 그 학생들에게는 의문이 나옵니다. 왜 무엇이든지 논리가  정연해야 믿음이 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그거 아무래도 그거 안 그렇겠는데,  그거 이상한데' 하면 반드시 거기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는 무조건 믿지만 나중에 장성하게 되면 거기서 논리가  있는 믿음이라야 믿지 논리 없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장성해질  때에는 머리가 영감 받아 깨끗한 사람은 논리가 없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것이 세상의 뭐 과학이라는 이 이십세기의 문화가 떠들어  쌓지만 문화의 지식이 암만 와서 말을 해도, 말을 해도 거기 미혹을 받지 안 할  수 있는, 이십세기의 문화의 논리가 말하는 그 논리 위에 썩 올라가 가지고 그  논리를 다 정죄 할 수 있는 그 논리에 올라가지 안한 사람이라면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지성의 사람들일수록 예수 믿는 이치를  깊이 가르쳐야 되고 넓게 가르쳐야 되겠고 또 성경을, 성경을 가지고 증거해서  가르쳐야 되지 그건 가르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그저 믿기만 하라' 그 말도 좋은 말인데. 믿기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나?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믿어지는 게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지만 성경이 말해 준 것은 말해 줘야 됩니다.

성경이, 그러면, 믿기만 하면 되는데, 믿기만 하면 되니까 신구약 성경에는  복잡한 것이 있을 필요가 없고 복잡한 것이 있을 수 없는데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가 알아야 되기 때문에 기록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육십 육 권만 하면 되는데. 그만하면 되는데 아니 그 이상 알아야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로도 가르치고  영감으로 가르쳐서 자꾸 지식이 늘어가는 데 따라서. 20세기가 돼 가니까,  칼빈으로 말하면 16세기의 사람인데 20세기가 되니까, 그때 사람으로서는,  그만하면 능히 그 시대의 사람들을 다 이해를 시키고 납득을 시켜서 충분한 그  당시의 세상 지식을 다 능가할 수 있지만 벌써 그 후 삼사백 년이 지나갔으니까  오늘에는 참 그때 꿈도 못 꾸었던 뭐, 원자니 이런 모든 물질도 심히 발달돼  가지고 있는데 지금 말하기를 옛날 칼빈의 깨달은 그것만 가지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콧똥 뀝니다 '에이, 뭐 그렇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그러나 요새  깨닫는 것은, 요새 하나님이 또 깨닫게 하시는 그 깨달음은 신구약 성경 말씀  안에 있는데 그 말씀을 타고 들어가 가지고 그 속에 성신의 감동으로 가르쳐  주시는 그 도리를 깨달아 가지고 이 세대를 가르칠 때에 이 세대는 이 도리 앞에  복종을 하고 이해가 되고 납득이 돼 가지고 믿는 사람이 된다 그거요.

 이런데 미국 교회에서는 뭐 다 잘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기서는 청년들이  믿는 사람들이 적고 자꾸 과학의 손해를 많이 봅니다. 과학의 침노의 손해를  많이 보는 것은. 그거는 20세기에 깨달을 수 있는 영감의 깨달음을 그들이  고려하지 안하고 그만 세상 문화에만 다 기울어져 가지고 거기만 기울어지고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안 하기 때문에 거기가 지금 지체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치반 학생들 가르치는 것과 중간반 학생들 가르치는 것과 중간반  이부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다르겠습니다. 또 장년반 가르치는 것은 더  다르겠습니다. 이러니까, 장년반에는 모두 다 통반을 하고 있고 너무 지식이 다  균등이 되지 안하고 다 동등이 되지 안하고 이렇게 너무 차이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르치는 것이 좀 복잡한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높은 아주 지식이 높은  사람도 들을 수 있는 걸 가르쳐야 되겠고, 낮은 사람이 어린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것도 가르쳐야 되겠고, 이러니까, 가르치는 방법이 뜻은 높은 뜻을  가르치고, 아주 속에 있는 뜻 진리는 높은 진리를 가르치고 사용하는 그 말은  아주 무식한 일반적인 그런 아주 낮은, 아주 단위 저단위의 낮은 단위의 그런  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에, 설교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은 그 면을 깨닫지  못하고 해서 저서를 할 때도 글을 지을 때도 자꾸 될 수 있는 대로 무슨 고상한  말을 쓰고 문자를 쓰고 아주 어려운 고급 그런 말을 가지고 이렇게 가르칠라고  이렇게 하는데 그런 말은 일반이 알아 듣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는 것이  재미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서적을 펴놓고 벌써 거기서 얄궂은 문자를 써  놨으면 그 책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깨달은 정도가 그만한 정도이기  때문에 그거 봐 봤자 별게 없습니다. 덮어둬야 됩니다. 그러나 아주 쉬운 말로  이와 같이 하는데, 쉬운 말, 될 수 있는 대로 쉬운 말로 할라고 애를 쓰고 쉬운  말로 하면서 그 속에 있는 뜻은 높은 뜻을 이렇게 가르칠라고 애를 써 보니까  가르치는 내용의 뜻은 높고 그 단어는 아주 쉬운 단어를 말할 때에 이 속에는  무엇인가 알맹이가 들어 있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데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언제든지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가르칠 것은 뭐이냐 하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몇가지 은혜로  되어있는가 하는 그런 것을 중간반쯤 되면 좀 가르쳐야 되겠고 중간반 이부가  되면 그것을 확고하게 가르쳐 줘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나 유치반에는 그런 것을  말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 그만 아이들이 몰라서 안 되니까 거기는 일곱 가지를  말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을 시키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몇 가지 은혜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됐느냐? 마치,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의 그 부모의 자녀가 된 것은 그것은 부모의 뭘 받아  가지고 돼졌느냐? 아버지에게는 부정이라는 종자만 받았지 딴걸 받지  안했습니다. 부정이라는 종자만 받고, 어머니에게는 또 종자는 받지 안했습니다.

아버지의 부정이라는 종자를 받아 가지고 어머니라는 어머니의 요소.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의 피를 받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러면, 종자는 아버지의  종자요 자라기는 어머니에게 자랐다, 부정모혈로 됐다 이렇게 말을 분석해서 해  주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정모혈 두 가지로 자라는게 아니고 우리가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택. 그 그리스도 안이란 말을 그들에게 늘 말해 주는 게 좋겠습니다. 잘못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때부터 우리와 인연이 가져졌는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때부터 우리와의 인연을  가졌는가 생각하겠는데 그때부터 인연 가진 게 아니고 우리가 예택 받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인성을 입기 전에는 그리스도요 인성을 입고 난 다음에는, 신인양성 일위가 된  후에는 예수님이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신성 인성 양성이 됐을 때  예수님이지, 신성만 됐을 때에는 그리스도라 또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의 은혜를 입었고, 예정의 은혜를 입었고 창조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섭리의 은혜를 입었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입었고, 또 대속으로 말미암은 영감의 은혜를 입었고,  또 마지막에 뭐입니까? 예? 네, 진리의 은혜를 입었고 이 일곱 가지 은혜를 입어  가지고 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곱 가지로 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라는 것은 무엇을 먹고 자라야 되느냐? 이 일곱  가지로 된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이 일곱 가지의 은혜를 계속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이 일곱 가지의 은혜를 계속 받아 가지고. 이 일곱 가지의  은혜를 계속 받아야 이 일곱 가지가 계속 자라갑니다. 일곱 가지 은혜 중에 여섯  가지를 받으면 여섯 가지만 자라가지 한 가지는 자라가지 않습니다. 일곱 가지  은혜를 다 받아야 일곱 가지 은혜로 우리가 자라간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으로서 그렇게 장성했을 때에, 성자가  됐다든지 사도가 됐다든지 성녀가 됐다든지 이렇게 하나님의 선지자나 어떤 종이  위대한 종이 됐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예택의 실력을 가졌고,  예정의 실력을 가졌고, 창조의 실력을 가졌고, 섭리의 실력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실력을 가졌고, 영감의 실력을 가겼고, 진리의 실력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뭐 하나님의 예택에서부터 권위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가 뭐이라 말이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을 정하신 게  있는데 너와 목적이 무슨 상관이 있어? 하나님이 당신이 계시면서 그 다음으로  당신이 계신 거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다음으로 있게 된 것은  목적이오. 하나님이 혼자 계시고 그 다음에는 목적이 있었는데 너는 목적과 무슨  상관이 있어? 아, 목적. 목적 그것이 곧 내다. 목적 안에 내가 지음을 받았다,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이 있는데 너는 뭐냐? 아. 예정 속에 내가 들었다. 그  예정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할라고 예정 아 우리 때문에 예정이 됐다. 모든  만물의 창조가 많은데 창조와 너는 무슨 상관이 있어? 아, 창조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하나님의 예정 이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하나님의 창조가 우리 밑바탕이 됐고,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또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성령이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진리가 우리의 밑바탕이 됐고, 이 위에, 이 밑바탕 위에  커 나가는 것이 이 일곱 가지로 커나갑니다. 이 일곱 가지로 자꾸 자라가는데,  일곱 가지를 겸한 그 일곱 가지의 권세를 가진 일곱 가지의 혜택을 다 받고 있는  것으로 자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모든 예정은,  모든 예정은 나를 위해 있기 때문에 모든 예정의 혜택을 우리가 입습니다.

잘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 예정과 상관 없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도 예정도 창조도 섭리도 뭐 피도 성령도 진리도  다 제 가 먹고 자라고 그 은혜로 자란다고 하니까 그 은혜가 뭐 예정으로 말하면  영원 전에 예정했는데 네게 무슨 상관이 있다 말이야? 내 현실에는, 내 현실에는  일곱 가지의 종류의 은혜가 내 현실에 다 대두하고 있습니다. 내 현실에는 내가  몰라 그렇지 내 현실에는 그 일곱 가지 은혜가 폭 싸고 있습니다. 그 일곱  가지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 말이오. 그 일곱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곱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러면, 그것을 네가 어떻게  먹고 자라? 아, 나는 이 일곱 가지의 은혜를 먹고 자란다. 그러면 일곱 가지의  은혜를 네가 어떻게 먹는다 말이냐? 순 말로만 가지고 그런 공연히 되도 안할  그런 말 한다. 아, 이 고깃덩어리는 고깃덩어리는 입으로 먹습니다.

고깃덩어리는 입으로 먹소. 고깃덩어리는 입으로 먹고 또 어쨌든지 피부로  먹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양식이라 하는 것은 입으로만 먹지 안해. 마음의  양식이라 하는 것은 피부로도 먹고 입으로도 먹고 눈으로도 먹고 귀로도 먹고  코로도 먹고 또 거기서 모든 감각으로 먹고 생각으로 먹고 뜻으로 먹고 감정으로  먹고 또 기억으로 먹고 여러가지 마음의 요소가 그것을 먹는 것이라 그말이오.

 마음의 양식은, 그 사람이 암만 고량진미 속에 들어 앉았고 아무리 공기 좋고  햇빛 좋은 그 속에 들어 앉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여러가지 해결 안 되는  일이 있다든지 근심되는 일이 있다든지 큰 고통되는 일이 있다든지 뭐인가  번민되는 그런 일이 있으면 그 속에 폭 파고 앉았어도 공기도 파야 소용 없어.

아무리 공기도. 산소 호흡을 암만해도 나중에 죽고 맙니다. 공기도 소용 없고  햇빛도 소용 없고, 식물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소용이 없어.

 이제 그런데, 식물도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그런 것도 없는데 자기가  난제되었던 것이 해결이 됐습니다, 해결이 되면 그만 모든 심령이 강건함을  얻습니다. 고건 좀 좁은 예이지만 그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아 지금 몇 시간이면 다 최종적인 판결이 나는데 그 사람은 사형이라  이렇게 이제 사형 받을 사람이니까, 마음에 고민이지 사형이야 사형을 받아야  사형이지 그 사람이 사형 받기 전까지야 고깃덩어리가 압니까? 모르지만 마음이  알고 있다 말이오. 마음이 알고 있으니까 그만 사형을 받지 안했지만 몸이  새파랗게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몸에다가서 고량진미를 먹이고 산소 호흡을  시키고 암만 해 봤자 그게 양식되지 않습니다. 이런데, 사형을 받을 것인데 그만  판결이 돼서 무죄 판결이라. 이는 죄 없다는 무죄 판결이 떡 되고 나니까. '이  사람이 억울한 꼴 당했다' 무죄 판결로 떡 되고 나니까 내나 그 사람이 음식  하나도 먹지 안했는데 그만 그 시간에 얼굴이 완전히 환하이 피어 나는 것이  그만 그 얼굴에 윤기가 나고 화색이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  마음의 양식을 먹어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양식으로만 살지 못하고 마음의 양식을 먹고  마음의 양식보다도 그 위에는 인격의 양식입니다. 마음의 양식보다 도 인격의  양식, 또 마음의 양식이. 마음으로 자기가 아주 쾌감한 그런 것이 있어 가지고  기쁘고 즐거울지라도 아주 그 사람에게 모든 일이 다 잘되 그 이라니까 형통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기쁘고 즐겁지만, 즐겁지만 자기가 현재는 모든 사람들이 막  이렇게 올리고 아무것이 아무 것이 막 이렇게 높여서 그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라  왕이라 이래 가지고 온 천하가 그 사람을 이렇게 높이는데, 높이는데 그 사람  속에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의 인격이 있습니다. 신앙의 인격이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이렇게 치켜 올리고 좋아하지만 그 사람은 기분이 나지 안하고, 저렇츰  존귀한 자리에서 기쁘고 즐겁고, 지금 뭐 즉위한다고, 대통령, 왕에 즉위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존대하고 하니까 기쁘고 즐거울 거 같은데 그 사람이  그렇지 안하고 보니까 희색이 하나도 없고, 마음에 큰 근심된 거 모양으로  하나도 희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왜 그렇겠습니까? 그 한 그 모든  것이 다 전부 만들 때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렸고 성령을 거슬렸고 주님의 보배  피 공로를 거슬려서 그 모든 지위나 권세를 만들었습니다. 만들었으니까, 모든  사람들은 몰라서 좋다고 이래 하지만 자기는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거 해 봤자 이거 가지고 걸 것도 아닌데 이제 이거 하기 위해서  범죄한 이 모든 그 리스도 의 심판의 보웅을 어찌하느냐?' 하니까 그 사람이  하나도 희희낙낙하는 것이 없고 근심이 가득히 찼다가 만일 그 사람에게 믿음이  강하게 역사했다 그 하면 그 사람이 뭐 그냥은 못 하니까 아프다든지 어짜든지  이래 가지 그 그것을 다 사면하고 말 것이라 말이오. 사면하고 말든지 그렇지  않으 면 내가 이미 이와 같이 됐으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이걸 가지고 죄를 짓 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번 살아봐야 되겠다든지 그렇게 된다 말이오.

결이 떡 되니까, 무죄 판결이라. 그러니까 육의 양식 가지고 마음이 배부를 수  없고 마음의 양식 가지고서 영이 배부를 수 없고, 영이 배부르면 마음도 배부를  수 있고 고깃덩어리도 배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이것을 연구해서 잘 알아야 되는데 이것은 모르기 때문에. 너무  모르니까 가끔 가다가 한 마디씩 내어서 이렇게 가르쳐 주는 거뿐인데 이것을  자꾸 명상하고 이렇게 실행해서 알아야 됩니다.

 오늘 가르칠 것은 그만 그거 다 못 가르치니까 일곱 가지 은혜로 된 우리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곱 가지 양식을 먹고 자라야 된다. 일곱 가지 양식을 먹는  데에는 이 일곱 가지 양식은 인격의 양식이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양식이기  때문에 이 양식을 먹는다 하니까 입으로 먹는다고만 생각하는 그런 조부라운  생각을 가지지 말아라,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사람이 떡 먹고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고 살 것이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을 먹는 것은 어떻게 먹습니까?  말씀을 먹는 것은 자기가 지식하고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면 다 먹어서  소화까지 해 버렸다 그거요.

 일곱 가지를 먹고 자라야 된다, 일곱 가지를 언제 먹어야 되느냐? 일곱 가지는  이 현실에서 먹게 된다. 우리의 현실에는 이 일곱 가지 양식이 딱 대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우리 현실에 그거 예정이 안 되었습니까? 예?  자꾸 대답해요. 예정이 들었소 안 들었소? 자꾸 대답을 해야 빨리 가지요, 뭐  소리 왜 못해 못 하기를? 예정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들었소 안 들었소? 예수님의 피가  들었소 안 들었소? 영감이 들었소 안 들었소? 진리가 들었소 안 들었소?  하나님의 선택이 들었소 안 들었소? 선택이 제일 터입니다. 선택으로 인해서 그  모든 것이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거기 제일, 일곱 가지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일곱 가지 가운데에 제일 밑잘비가 되어 있는 제일 기초가 뭐입니까? 예? 기초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예정 있었고 목적 때문에 창조  있었고 목적 때문에 섭리가 있지 않습니까? 제일 기초, 주춧돌이 하나님  목적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일곱 가지가 다 들었어. 일곱 가지가 다 들었는데 이것을 우리가 먹어야  됩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가 다 들었는데 일곱 가지를 어떻게 먹습니까? 일곱  가지를 먹는 것은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알고 지식하고 지식하고 그 다음에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의심 없이 인정하고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지식하고 인정하고  자기가 그대로 믿고 삽니다. 그대로 살아. 자기는 인정이, 나 위해서 예정된  것을 알고 이게는 하나님의 예정이 들었다 그러니까, 독침을 가지고 와서  찌릅니다. 독침을 가지고 와서 찌를라 하는데, 자, 독침 가지고 찌르는 거기는  뭣 뭣 들었습니까? 독침 가지고 나를 찌를라고 하니까 뭣 뭣 들었소, 거기는? 쳐  봐요. 예? 하나님의 예택이 들었지. 예택 때문에 예정했기 때문에 예택이 들었다  그말이오. 예택, 예정. 창조 안 하면 독침이 나올 게 뭐 있어야지? 쇠도 없고  약도 없는데. 창조, 또 하나님의 섭리, 거기 들었다 말이오.

 섭리가, 이거 두 가지가 들었는데 나는 거기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때 가서 사죄를 입은 자로. 나는 사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다, 나는 영감으로 중생됐기에 영감을 내가 버릴 수가 없다, 사죄  받은 사죄 입은 자로, 영감 받은 자로, 진리 받은 자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주님의 대속대로 그 현실에서 살면, 현실에 살면 요거 위해서 목적 예정 창조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이것이 나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영감 진리  이 세 가지로 중생된 나 위해서 있는 것을 알고 내가 고게서 예수님의 대속 받은  자로 또 영감 받은 자로 전리 받은 자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예수님으로 현실을  살면, 현실을 살면 그러면 두 가지가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 세  가지로 살면 두 가지 이것을 이용했소 이것을 버렸소? 예? 이용한 거 아닙니까?  또 그때 자기가 영감과 진리와 주의 대속를 버렸으면 이 세 가지를 자기가 두  가지 존재 목적대로 두 가지를 자기가 구원을 위해서 사용했소 버렸소? 예?  버렸다 말이오. 그러면, 버리는 것은 먹지 안하는 것이고 이용된 것은 먹은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서 이 세 가지 사람으로 살면 그것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그러면, 지식하고 인정하면 먹고 입에 넣어 삼켰어. 지식하고 인정하고,  고래 있다 하는 것 인정하면 입에다 꿀꺽 넘겨 삼킨거와 같아요. 음식을 넘겨  삼킨 거와 같아. 그러고 소화되는 것은. 소화돼서 내 하나님의 아들의 피와 살이  돼서 장성해지는 데에 소화돼서 내 영양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영양이  됩니까? 저 ○○○집사, 행하면 소화가 된다 말이오. 행하면 내 피와 살이 돼.

행하면 뼈와 살이 된다는 거 인정이 돼요? 행하면, 그때 그대로 행하면 내  인격이 그만치 자라졌고 믿음이 자라졌고 그만 진리는 내 진리가 됐고 영감은 내  영감 됐고, 영감 버리지 안하고 내가 영감대로 살았으니까 그 영감은, 그때  영감은 내 영감 돼 버렸다 말이오. 그때 진리는 내 진리 됐다 말이오. 그때에  해당된 예수님의 피는 내 대속이 되었다 말이오. 그때에 당한 그 예정은 나를  위한 게 되고 말았다 말이오. 창조도 위한 게 되고 말았다 말이오. 섭리도 위한  게 되고 말았다 말이오. 창조도 위한 게 되고 말았다 말이오. 섭리도 위한 게  되고 말았어. 목적도 위한 게 되고 말았어.

 이래서, 일곱 가지로 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현실에서 일곱 가지 양식을 먹고  자라라, 학생들은 그것 알면 돼요. 이치를 들어야 깨닫지 못해. 그때는 지금  자꾸 주입식으로 속에 들어가면 돼요. 이래 가지고서 일곱 가지로 된 아들들이  일곱 가지 양식을 먹고 자라라,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상속받아 가지고 통치할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면 그  일곱 가지를 언제 먹느냐? 현실에 먹는다. 현실에는 네가 눈을 뜨고 보면 이  일곱 가지가 현실에는 다 대두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네가,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이 일곱 가지가 너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너 위해서  있으니, 그런 자로 네가 영감과 진리와 피를 배반치 안하고 살면 그것이 다 네게  솔박 먹어지게 된다 고말입니다. 이것을 증거해서, 알도록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속에다 딱 거머쥐고 오늘은 내가 맡은 이 학생들을 요것을 가르쳐 가지고 이게  속에, 뱀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지식을 다 박차고, 여러분들 물을, 처음에 물을  한말 넣어 놨는데 제일 처음에 물을 넣어 놨는데 그 다음에 모래를 한말 넣으면  뭐이 있어요? 그 뒤에 모래를 넣으면 모래가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예? 물이  하나 있는데 어찌 들어가는고? 물보다 모래가 권세가 크고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물을 밀고 들어간다 말이오. 그러면, 모래가 하나 있는데, 모래 하나 있는데  금을 넣으면 거기 금이 들어가요 안 들 어가요? 예? 금을 한 말 넣으면 거기  모래가 있소 없소? 모래 하나도 없습니다. 다 떠나가 버리고 모래 하나도 없어.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지식이 암만 들어와 있어도 이 생명의 지식을 그 속에  여러분들이 오늘 이 일곱 가지로 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일곱 가지 양식을  현실에서 먹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통일될 때에 거기서 통치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된다 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가르치면 이는 지극히 큰 능력이 이 속에  다 들었기 때문에 뱀의 지식을 쏵 다 밀고 나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위천 교회 있을 때에, 제가, 교장이 국기 배례 때문에 막 와 가지고  나중에 분해서, 학교에서는 일주일 동안에 엿새 동안 가르치고 교회서는 일주일  동안 한 시간밖에 안 가르치는데 이놈들이 그 한 시간 가르치는 거기 사람이 돼  버리고 학교 가르친 거는 다 헛일했다고 분해서 사무실에서 얼마를 두드렸던지  피가 막 낭혈 하고 막 이래 돼 버렸어. 이래도 그 학생들이 항복을 안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학생들이 어디 가서 어찌 됐는지 모릅니다. 제가 여기 부임되고 난  다음에 마귀란 놈은 그 뒤에 내가 전한 복음을 완전히 반대로 뒤비트릴 수 있는  그 교역자를 거기다가 서고 당회장이 딱 갖다 넣어 놨다 말이오. 그 사람  하나님이 참고 있지만 심판에 그게 어찌 될란지 이제까지 내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들어간 사람이 누구 사람이냐? ○○○이라 하는 조사를 보냈는데  정반대로 뒤비트린 사람이오. 그 사람을 딱, '여기는 아무래도 백 조사가 이게  있었기 때문에 백 조사 교훈을 헤딱 뒤비트리는 사람이 가야 되겠다' 정반대하는  그 사람을 딱 갖다 넣어 가지고 그 교회를 절단을 내서 이제 위산 교회가 새로  생겼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 그짓 하고 돌아다닌 그 사람 그 사람이 병이 들어  가지고 우리 서부 교회에 그때가 몇 달 동안 있어서 그저 호별 방문이나 해라  하면서 내가 얼마씩 월급을 줘서 그 때 가서 여기 호별 방문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떠들며 지금은 '내가 목회하겠다. 이제 깨달았으니까 요거 가지고  지금 가면 되겠다' 요래 가지고 갔는데 그거만 가지고 됩니까? 사람이 고쳐져야  되지. 그래 새로 목회하겠다고 나가 가지고 하다가 나중에 비참하게 돼 가지고  그 다음에 그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사람을 보낸 그 당회장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는데 목회는 헛일이야. 돌아다니니까 입은  잘하는데 교회가 돼야지? 여러분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오늘이란 시간에 그걸 가르치지 못하면 뒤에 가르칠 시간이 없어요. 내가 맡은  이 학생들에게 오늘 이것을 속에 넣어 줘서 모든 뱀의 지식 세상 지식이 암만  들어도 쾅 밀고 말이오, 금이 모래고 불이고 다 밀고 금으로 가득 차는 것처럼  이 지식으로 그 속에 가득 차도록 여러분들이 만들어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학생들이 와야 되지. 그러니까 막 뛰어요. 가면서 뛰어 가지고 이걸 가르쳐서  이 사람 만들겠다 하고 달음질 해 가지고, '오늘 안 오면 너거 이제 죽는다.

오늘 이런 보배로운 말씀 있는데 너희가 배워야 된다.' 자기 속에 보배가 있는  줄 알아야 그들에게 줄 수가 있고 그라면 그들이 올 수가 있다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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