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 한 죄

 

1983. 4. 13. 수야

 

본문 : 눅15:3-10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선지자선교회  광고합니다.

 예배 마친 후 삼십 분 구관과 신관에서 남녀가 나뉘어 기도하고 또 설교 재독도  있습니다.

 둘째 광고. 건축부에서 광고합니다. 못 빼기와 나무 정리등 봉사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봉사하실 분은 내일 오전부터 나오셔서 봉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장이 있는 분들은 가지고 왔으면 편리하겠다고 합니다.

 주일날 광고를 했던가 그랬는데 봉사하러 온 분이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왔다가 다른 이가 안 오니까 또 도로 갔답니다. 우리가 너무 모든 면이  어립니다. 봉사하러 나올 때는 몇백 명씩 나오고 또 안 나올 때는 안 나오고.

이제 조금만 하면 다 끝이 마쳐지니까 끝까지 잘 견뎌서 봉사를 해서 기쁨으로  이 공사가 다 준공되도록 그렇게 합시다. 권찰님들도 식구들에게 좀 권면을 하고  또 타이르고 해서 많이 나와서 끝까지 봉사하는 것이 자기네들의 믿음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계속 이 말씀만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 말씀만 전합니다. 주일날도  새벽기도회도 이렇게 전하는데 아마 거기 대한 진리 해석은 다 알고 있는 줄  압니다. 해석은 더 필요가 없고 우리가 이 말씀을 자기 구원 이루는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게 양을 잃은 목자로 비유한 이 목자는 누구든지 해석하기를 예수님이라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을 상징해서 비유한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그 여인은 교회를 상징해서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하신 예수님이시요 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켜서 목자라 그렇게 여게 비유했고, 또  잃은 양을 찾아 가지고 가서 온 집안 식구와 벗들을 불러 가지고 잔치하면서  즐거워했다 하는 것은 교회에 기둥 되는 선지 사도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도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둬 두고 잃어버린 한 양을 찾기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여게 비유했습니다. 또 찾기까지는 심히 근심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을 또 여게 비유로 가르켰습니다. 찾으니까 몰고 끌고 가지  아니하고 목자가 어깨에 메고 자기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가 무슨 비유인고? 그 다음에 해석해 놓기를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함보다 더 기쁨이 된다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드라크마 비유에도 그 여인이 전심 전력과 근심 걱정 또 소원  그것이 전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에 다 집중됐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기쁨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  보면 여인은 단수로 한 사람으로 나타났지마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했으니까  여게는 복수로 나타났습니다. 그런고로 해석을 다 할 줄 몰라도 이 성경에 대한  진리 해석을 자기가 깨닫고 이대로만 이 복음을 자기가 힘입으면 됩니다. 이  복음의 은택을 입기만 입으면 됩니다.

 여게 가르친 데에서 우리가 깨달을 중요한 것 하나는 목자나 여인이 아흔아홉  마리 양에게 심신과 근심과 기쁨을 기울이지 않았고 잃어버린 한 양에게 다  기울였습니다. 또 여인도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에 전부를 기울였습니다. 목자가  마음도 잃어버린 그 한 양에게 마음이 다 기울어졌고 '이 양을 어떻게 하나?'  근심도 그 한 양에게, 또 목자의 소원도 그 한 양에게, 생각 마음의 활동도 그  한 양에게, 또 자기가 몸소 지금 수고하고 노력하는 그 노력도 한 양을 위해서,  그러면 그 목자가 소원하는 것은 어데 있습니까? 소원도 그 한 양에게 있습니다.

또 근심은 어데 있는가? 근심 걱정도 그 한 양에게 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인도 아홉 드라크마가 있지마는 그것은 둬 두고 이  여인이 근심하는 것도 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소원하는 것도 '찾았으면  좋겠다.' 전 소원도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또 그 마음을 써서 연구하고  생각하고 '어쩌면 될까?'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는 것도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또 이렇게 활동을 하면서 부지런히 활동하는 그 활동도 잃어버린 그 한  드라크마, 그러면 여인과 목자가 그 심신 전부는 다 잃어버린 하나 거기에 다  기울여 있다 요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근심도 걱정도 요 한 잃어버린 요 하나에게 있고 목자나 여인이 기뻐하는  것도 다른 것 때문에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요 하나로 인해서 하나를 찾았을  때에 기뻐했습니다. 모든 것보다도 요 하나로 인해서 다 기뻐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는 어떤 것인가? 이 하나는 해석을 하기를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는 그 말씀으로 해석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시며, 주재시며,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영원히 모든 주권을 가지신 만 왕의 왕이 되신, 이 태평양 바다가  넓지마는 그것을 이분이 엿새 동안에 지었고 우주에 뭐 수많은 별들이 있어서  천문학자 과학자들이 조그만한 요 별에서 저 별에 간 것을 가지고 떠들어  쌓지마는 그 별과 별의 거리를 말하면 지금 날아간 그 별의 거리의 억억만 배도  더되는 그런 별들이 가득 찼습니다. 이것 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분이 창조하셨고 이분이 지금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분은 이렇게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시고 또 제일 권세를 가진 제일 큰  분이십니다. 이분을 모르면 이분이 노력하는 그 노력이나 소원하는 소원이나  거게 대해서 우리는 그 가치를 모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착수해 가지고 그 일을 할 때에 그 하는 사람이  그저 보통 사람으로 알면 하는 일이 보통으로 보여질 것이고 그 하는 일이 보통  사람이 아니고 그 나라에 임금이나 대통령이 그 일을 전심 전력 기울여 한다고  하면 그 일을 그 대통령이나 왕인 줄 아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고 크게 볼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에 목자와 여인이 잃어버린  한 양 한 드라크마에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있고 회로애락이 전부 거게다  집중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분이 이렇게 크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경영하시는 그것이 이렇게 큰 일입니다.

 그러면 이분이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 어디다가 기울이고  있는가? 또 여인이라고 비유한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요  이제까지에 수많은 선지 사도, 성자 성녀, 모든 성도들, 세상을 떠나고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 세상에 있는 사람들, 그 교회라는 그 전부를 가리켜서  여인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여게 여인이라고 비유한 것은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있는 교회를 말하고 또 양의 목자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과  하늘에서 같이하는 모든 복음 역사에 이바지하는 천군 천사 그런 모든 전체를  합해서 목자로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큰 분들이, 그 이상 큰 분이 없는 지극히 큰 분들이 이렇게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역사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잃어버린 한 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그러면 그게 무엇인가? 그것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그 한 죄인, 많은  죄인 말고 그 한 죄인, 그 한 죄인, 한 양, 한 죄인, 요게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한 죄인.

 그러면 한 죄인이라면 예수 믿는 한 사람을 말한 건가?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기로 된 그 사람을 말하는 건가? 회개는 기본회개 건설회개 평생회개가  있습니다. 기본회개는 중생인데 그것은 본인들이 모르게 중생돼서 기본회개는  본인들 모르게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 회개라는 것은 기본회개가  아니고 평생회개를 여게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면 한 죄인이라면 누구를 말한 것인가?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사람이 죄가 열 가지가 있으면 열 가지 죄가 있는 열 가지  죄인이겠는데 여게는 한 가지 죄인을 말합니다. 열 가지, 죄 인에게 하나님의  힘을 기울이지 않고 한 가지 죄인에게 전부를 기울이고 한 가지 죄인에게 대해서  소원을 하고 근심 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죄인이면 어떤 사람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여게 한  죄인이라 하는 것은 많은 사람 냅두고 그저 많은 죄인 가운데에 그 한 죄에  하나님이 기울이고 있는데 그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 죄인 중에 한 죄인이라, 백 죄인 중에 한 죄인이라 그런 걸 말하지 안하고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위해서 노력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에  기뻐했다 그렇게 여게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게 한 죄인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어떤 사람을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지마는 그 사람 속에 들지  많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 서부교인이 몇천  명 되는데 몇천 명 속에 한 사람 그 사람에게 대해서만 하나님이 그 죄에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남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 우리에게 소망이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그게 아닙니다.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우리 기독자들이 얼마가 되든지 거게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한다 하는 그 말은 안 믿는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기본구원이기 때문에 기본회개는 본인이 모르게 회개하고 하나님이 회개를  시켜서 중생된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 믿기 시작하는  때입니까? 시작하는 때면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회개할 죄악이 없습니까? 평생  죽는 날까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요 하나에다가 고정시켜서  요렇게 말씀하신 요 한 죄인은 예수 믿는 사람이 천 명 이든지 만 명이든지 그  예수 믿는 사람 전부 개인 개인에게 있어서 그 사람에게 죄가 아무리 많이  있었다 할지라도 다 내버려두고 하나님이 지금 그 사람에게 죄를 회개시키려고  하신 노력하시는 죄는 하나뿐이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한 죄에 주력하신다, 한 죄에 근심 걱정 다 하시고 또 역사  하신다, 한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서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 각자들이 개인 개인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할 것이 뭐인가? 여게 보니 의인 아 흔아홉보다,  잃어버리지 않은 아홉 드라크마보다, 모든 것보다 목자와 하늘에서 그 전부가  제일 기뻐하고 하는, 잔치하고 제일 기뻐하고 하는 즐거워하는 그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여게 똑똑히 밝혔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그것을 기뻐한다고 여게 말씀하셨고,  또 많은 죄에다가 하나님이 이렇게 심신을 기울이지 않고 한 죄에 기울인다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거하든지 떠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사는 생활로서는 제일 가치 있고 지혜 있는 생 활입니다. 우리가 많은  재물을 들여 가지고 복음 사업을 하는 것, 또 자기가 몸을 바쳐서 희생해서  수고를 하는 것, 또 자기 생명을 바쳐서 제물이 돼지는 것, 그런 것 다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 비유에는 보니까 그 모든 것보다 한 죄인이 회개하는  그것이 하늘에서는 제일 기쁨인 것을 여게 발표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보다  더 이상 가치 있는 일이 없고 우리가 원하는 일이 없는데 이렇게 우리를  대속하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을 우리가  기쁘시게 하는 그 일이 수없이 있지마는 그 모든 것보다 기뻐하시는 것 하나  있는 것을 여게 말했습니다. "의인 아흔아홉을 인한 기쁨보다 크다" 이랬습니다.

 의인들이 뭣합니까? 의인들이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설교도 하고, 구제도  하고, 복음 운동도 하고 하는 것 다 의인들 하는 일 아닙니까? 의인들, 의인들의  하는 일, 의인들 모든 의인들보다 한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 모든  의인을 인한 기쁨보다도 더 기뻐한다 여게 그 기쁨의 비교의 그 비중을 말해  놨습니다. 비교를 했고 비중을 말했습니다.

 이 비유에는 보면 우리가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많지마는 제일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한 죄인이라, 말하자면 개인 개인이 갑이면 갑이라는 사람의  그 사람의 죄인 된 것, 그 사람이 죄가 많지요. 죄가 많은데 모든 죄를 말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한 죄, 그 사람에게 한 죄, 만 명이면 만 명 각각 다 개인  개인 그 한 사람에게 한 죄, 그것을 하나님께서, 근심도 거게 하나에 집중돼  있고, 또 모든 신경도 정신도 노력도 소원도 집중되어 있고 그것이 되면 기쁨도  거게 다 집중되어 기쁨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개인 개인이,우리 개인 개인이,-오늘도 여기 작정을  해요.-개인 개인이 천하에 별별 일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당신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당신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내게도 있고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실 것이 우리에게 있어. 이 기뻐하실 것  이것은 돈 없어도 할 수 있고 지식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권력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건강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주님이 제일  소원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주님이 제일 근심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주님이 제일 마음 전부를 기울여서 전 마음을 우리에게 기울여서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하나  있습니다.

 여게 주님의 근심도, 걱정도, 소원도, 갈급도, 갈망도, 마음의 노력도, 육체의  노력도 전부가 다 하나에 집결되어 있는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지 않고 그것은 뒤로 두고 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암만 해도, 물론 그럴 것이오. 우리가 부모된 사람이나 스승된 사람이나  자기에게 속한 자녀나 후배에게 대해서 부모가 원하는 것, 참 뼈아피 원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노력하고, 그저 애타 견디지 못하는 그것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버려두고 어만 다른 일을 죄 아닌 욺은 일을 하면 '아버지 내가  이것 합니다.' 또 '이걸 가져왔습니다.' 하면 그 아버지가 죄가 아니기 때문에,  죄가 아니기 때문에 '그까짓 거 뭐할라고, 가져 왔노?' 야단은 치지 않지마는  '그래' 대답은 해도 속에 위로와 만족은 없습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위로와  만족은 없습니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음에 근심하고 있으니까 '뭣 때문에, 이건 가?' 싶어서  엉뚱한 걸 또 가져와 가지고 '내가 돈벌이 안 해 그런가?' 돈벌이 해 가지고  '오늘 돈 얼마 벌어 가지고 왔습니다.' 해도 '그래' 그 아버지 어머니의 상이  펴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정권자라면 정권자가 자기 밑에 부하에게 대해서 정권자가 지금 근심  걱정하고 있는 큰 탄식하고 근심 걱정하고 심신을 막 기울여 가지고 지금  애타하는 그게 그 사람에게 있는데 그 잘못이 그 사람에게 있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왕이 대통령이 이렇게 지금 마음에 근심을 가지고 뭐인가 이렇게 지금  수심을 가지고 식음을 전폐하고 이래 계시니 뭐인가?' 해서 어만 것을 가지고  '각하여, 이것 지금 제가 이것 했습니다.' 나쁜 일이 아니면 그걸 나무랄 수는  없지마는 '그래' 코대답하고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오.

 또 그러면서 지금 그 본인이 몰라서 그렇게 하면 마음에 애가 타서 그걸 직접  말하려 하면 입에 벌써 말이 나오면 제가 스스로 회개하고 자백하는 것은  그렇지마는 위에 권세를 가진 자가 '이렇다' 딱 말만 발표하면 정죄가 돼  버리니까 목이 달아날 모양이니까 그 말도 못 하고 애가 터져서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든지 알려 가지고 그 지금 난제 그 난제 그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고  기다릴 것이고,  또 그 신하가 알면서, 번연히 왕이나 대통령이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 줄  알면서 제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어만 것을 가지고 자꾸 캄프랏치 하려고 자꾸  이와 같이 돌아다니면 대단히 분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만 나중에는 하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오. 노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리이리 하다가서 그걸 깨닫고 '각하여, 내가 요 일을 요것을  잘못했습니다. 요것 자복합니다. 요걸 지금 내가 잘못한 줄 알고 요렇게 요렇게  요걸 고치겠습니다.' 하면 그 마음에 '그래? 그러면 그것을 고칠 수 있어?' '예,  고치겠습니다. 두고 보이소.' '그래, 두고 보지.' 그 마음에 근심 걱정됐던 것이  본인이 고치겠다고 하니까 마음에 소망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오.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그것을 홱 돌아서서 그 사상이라든지 그 행위를 완전히  고쳐서 돌아서게 되면 자기의 상관이나 그 왕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 점은  따로 있는데 그 점을 내버려두고 엉뚱한 점 가지고 아무리 해 봤자 기쁨도  위로도 또 마음에 환영도 받지를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일이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  주재신데 이 하나님께서 그저 '손가락으로 우주를 지었다' 이랬는데 이 당신이  지어 놓은 그런 것을 가지고 사용해서 이리 저리 비용으로 들인 것 같으면  하지마는 여게는 몸소 친히 있는 마음을 다 기울여서 아흔아홉 양의 중량보다 한  양에 대한 모든 기울이는 전심 전력의 중량이 더 많이 기울어지게 되는 이런  중대한 일인데 이런 중대한 일인 것만치 우리가 그것을 명중하지 못하면 목자  되신 주님과 이 여인된 교회에게 큰 근심 걱정이 되겠고 그걸 명중을 바로 하면  참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밤에, 여러분들에게 해석하는 것이 진리만 해석하면  좋은데 모르니까 그 가지 가지 자꾸 대가리 갔다 꼬리 갔다 자꾸 이래 하니까 이  해석이 참 복잡합니다. 너무 못 알아들으니까.

 오늘밤에 이 말씀을 다시 증거 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크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기울인다 해도 하나님을 이웃집 아이만치도 안 여기고 그렇게 홀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하나님 하면 제일 시뻐 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을 어떤 분인 줄 알아야 또 이것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전심 전력 기울이니 야 그 일이 참 중대한 일인가보다' 이렇게 느낄  것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크다는 하나님 소개했다가 또 교회 소개했다가 선지  사도 소개했다가 이러니까 이 많이 복잡해 지요.

 그러나 요는 뭐이냐? 다 전체를 결말 지우면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선지사도  모든 이 진리 성령 역사와 교회 역사 이 전부가 내게 대해서 어데 이 전부를  기울이고 있느냐? 내게 대해서 전부를 기울이고 있다. 내게뿐 아니라 여러분  각자들에게 다 하나님께서 그 전부를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게 전부를 기울였으면 다른 이에게 갈 게 뭐 있는가? 한 햇덩어리가 여게도  그 햇살이 전부 다 거게를 비추어서 햇볕이 쏘일 수 있고 여게도 햇볕이 쏘일 수  있고 그때 해당된 것은 수많은 그 식물이나 모든 존재들에게 햇볕은 다 전부가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또 좀 알려면 힘드나 마귀란 놈은, 다  기울인다 하니까 '목사님께 다 기울였으면 우리에게는 없을 건데, 저 사람에게  다 기울이면 여게는 기울일 게 없을 건데. 다 기울인다 하면 한 군데 다  기울이지 다 기울였는데 딴데 또 어데 있겠느냐?' 이렇게 마귀들이 미혹시켜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이 지극히 보배로운 복음을 받아 가지고 복음의 능력으로  살지를 못하게 만든다 그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각자 개인 개인에게 전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내게  있다. 주님과 이 교회, 이 선지 사도 진리 복음 이 전체의 이 단체 이 전부가  내게 대해서 전부를 기울이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기울이고 있는 그 무엇이 하나  있다. 또 전부를 기울여서 내게 대해서 근심 걱정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또  전부가 기울어져 소원하시고 계시는 게 내게 하나 있다.

 내게 주님과 교회의 근심뭉텅이도 내게 있고, 기쁨뭉텅이도 내게 있고, 전심  전력을 기울일 전 소원의 것도 내게 있고 요런 것이 내게 하나 있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찾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잘되면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기쁨보다도  그것으로써 만족하시고 제일 기뻐하시고 그게 안 되면 아무것이 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근심은 떠나지를 아니합니다. 그런고로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회개해야 할 죄다. 회개해야 할 죄다.

 그러면 그 죄가 그 사람에게 여러 가지가 있으면 여러 가지 죄를 다 말하는가?  여러 가지 죄를 다 말하는 것 아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열 개가 있어도  하나님과 진리와 모든 천군 천사 성도들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죄가 백 가지가  있었다 해도 백 가지 다 상관없고 그 지금 한 가지 죄에 대해서 기울이고 있고  근심도 저게, 걱정도 거게, 소원도 거게, 노력도 거게, 전부가 거게 기울어져  있다. 그것을 회개하면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된다.

 그러면 그것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큰 힘을 들여 가지고 지금  역사하고 있고 이 전부가 소원하고 있는 것인데 그걸 회개하면 이렇게  하늘에서는 모든 걸 기뻐하는 것보다도 기뻐하게 된다.

 그러면 요것을 찾아서 회개하면 하나님에게 유일한 기쁨이 되겠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 위해서 전심 전력 기울였기 때문에 그 회개를 하면 전심 전력  기울인 것을 그것이 성공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쁨이 되고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심 전력 기울여서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만치 하나님이 귀중히 여겨서 거기  대해서 책임을 지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이러니까 그것을 하나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하나 발견해서 고치면  주님에게 대해서는 그 이상 기쁘게 하는 것이 없고, 또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은 그 이상 없고, 또 주님이 그렇게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내게  대해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그 이상 없다 하는 것을 이  비유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각각 다르니까 각자에게 그것이 하나씩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하나님의 근심도 다 없앨 수 있고 기쁨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이 그렇게  주력하시는 그 애쓰시는 애쓰심에 대해서, 그러면 하나님도 기쁘고 이제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고 이래 되나 그것을 회개치  아니하고 그 다음에 다른 죄를 가지고 아무리 엉뚱하게 해 봤자 그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명중되지 않고 헛일입니다.

 암만 총을 놔도 딱 들어맞아야 그 짐승이 잡혀지지 그리 안하면 안되는 것처럼  회개라는 것은, 회개라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역사가 역사해 줘야 되고, 진리가  역사해 줘야 되고, 성령이 역사해 줘야 되고, 이렇게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다  이와 같이 움직여 가지고 합해 가지고 되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은 지금 요것을 착수해 가지고 공사하려고 전부를 다 기울이는데 이것  냅두고 이다음에 이것을 제가 가지고 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은 저 혼자 하지 이  절대자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 하는 것 아니기 때문에 해 놔 봐야 이것은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가짜고 조짜고 헛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것을  내가 해 줌을 받을 때에 일이 성사가 됩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피동적이지  능동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각자들은 자기가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그  사람이 소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할 만한 깨끗한 마음이 없고 반드시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을 가리워서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정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이랬는데 요걸 찾지 못하면 하나님은 못 찾습니다. 요것 찾는 것이  하나님 찾는 것이요, 요것 찾아서 해결 짓는 것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요것 찾아서 하는 것이 하나님이 그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나를 도우시려고  은혜를 베푸시는 데에 그 은혜를 내가 받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런데 그것은  하지 않고 엉뚱한 걸 가지고 자꾸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각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물론 죄야 우리에게 그 하나뿐 아니라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지마는 많이 있는 게 소용없어. '주여 내가 이 죄도  지었습니다. 이 죄도 회개합니다. 저 죄도 회개합니다.'  암만 해 봐야 하나님이 듣기 싫다 말이오. '요것, 요것, 요것. 너! 요 죄.

이것, 이것.'  '내가 무슨 죄 지었습니다.' '얘! 이것, 이것! 이것 고쳐.' 요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것 안 찾으면 소용없습니다.

 그것을 찾는 것은 자기가 양심을 써 보면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는 제일  근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다. 소원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이다. 제일 애타하시고 힘쓰시고 계시는 것이 무엇이다.' 하는 그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헛 부르는 것이요 그걸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는 것은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 만나지지. 못 만난다  말이오. 목자가 양을 찾아 가지고 아듬고 와 가지고서 회개한 회개함으로 주님의  어깨에 메였고 같이 가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고 말씀한 대로  자기에게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그게 있는데 그것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걸로  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오.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심령이 어둡고 교만하고 이 세상 다른 것에게 꽉 싸여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그것을 찾아야 될  것이오. 자기는 몰라도 다른 사람이 보면 또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면 잘 알 수가 있어. 다른 사람이 보지마는 그걸 말을 못해 줍니다. 제가  깨달아 가지고 회개하지 다른 사람이 말해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은 천하에  없습니다.

 "진주를 도야지에게 던지면 진주를 발로 밟고 와서 물려고 달려든다" 고 성경에  말한 대로 다른 사람이 말하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안 하고 도로 반발하고  복수하고 반동하지 회개 안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꼭 본인이 알아야  됩니다. 본인이 알아야 되지 본인이 알기 전에는 안돼.

 세상 사업, 세상살이도 그렇습니다. '아무 교인은 그 사람에게 장 점으로 하면  요런 요런 점이 좋은데 그 사람에게는 꼭 요것 하나 때문에 저는 일생 실패라.'  또 뭘 엔간히 돼 간다고 합니다. 해도 아는 사람은 말합니다. '되지마는 그  사람은 그걸 고치기 전에는 성공을 못할 것이다.' 그것 있습니다.

 또 이 사회에 출세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게 모든 면이 좋아도 좋은  것 가지고만 되는 것만 아니오. 그 사람에게 뭐인가 하나 출세에 대해서 암과  같이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그것 하나만 전력을 기울여서 하나님이 고쳐  주려고 애를 쓰고 전심 전력 기울이고 있으니까, 성도들의 기도도 거게다 집결돼  있고, 천군 천사도 거게 집결돼 있고, 하나님도 거게 집결돼 있고 전부가 모여  가지고 집결돼 고쳐 주려고 애를 쓰니까 저도 고쳐 줌을 받으면 된다 말이오.

고쳐 줌을 받으면 돼요. 받는 것이 힘이 들어서 받는 힘이지 우리가 고차는 힘  아닙니다. 받는 힘이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십계명을 써서 줬고 모세에게  말씀해 줬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 모세가 말한 것 아니오.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계명을 받으려고 할 때에 사십 밤 사십 낮, 사십 주 사십  야, 그 팔십 주야를 밥을 먹지 않고 거게서 시내 산에서 굶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주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 받아 가지고 이제 이스라엘이 그 십계명  가지고 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든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전심 전력 다 기울여 가지고 우리에게 그  나쁜 점을 하나 고쳐 주려고 이렇게 힘쓰시고 계시는데 그 고침을 공짜 배기로  받는 데도 우리는 모세가 사십 주야 단식하면서 그 은혜를 받은 것처럼 우리가  그만치 주시는 은혜를 받는 그것이 힘이 든다는, 우리 힘은 암만 들어봤자  공으로 주시는 것을 받는, 받는 그 힘이지 우리가 그것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각자에게 그 사람에게는 그것을 고쳐야 그 다음 순서를  또 고칠 게 돼지지 그것 고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육이나 영에 성공이라 하는  것은 거게 딱 동결 딱 해가지고 딱 마쳐 가지고 거게서 넘어가지를 못하고  앞으로 성장하지를 못하고 거게 딱 걸려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고쳐 주려고 이렇게 하나님이 또 교회 복음 역사가 전부를 기울여  가지고 요렇게 애쓰고 있는 그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이와 같이- 참  애터집니다.-이 전부가 들어서 요것 안 고치면 영원히 망하기 때문에, 십자가  못박혀서 대속해 준 주님이 요것 안 고치면 망하기 때문에 전부를 다 기울여서  고쳐 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고쳐 줄 때 저만, 저도 그만치 애를 써서 고쳐  줌을 받으면 되는데, 받으면 영육이 성공되는데 그것을 받지 아니하고 아무리  말해야 알지도 못하고 있고, 그게 뭐인지 알지도 못하고 '주여,나는 죄인입니다.

내 모든 죄를 사해 주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무슨 죄인이라 말이냐?'  이렇게 가증스러운 외식하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뭣  때문에 내게 이 주력을 하는가? 안 고치면 자기 당신의 피 흘린 게 헛일이고  영원히 멸망 받고 말기 때문에, 천국은 가지마는 불가운데 구원 얻는 것과 같은  그런 자 되기 때문에 요것을 고치려고 애가 터져서 지금 하고 있는데 애가  터져서 하고 계시는 그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겠고,  그러니까 나도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고쳐 줌을 받아야 되겠다. '이 수술하려  하면 지금 몇천만 원이 드는데 나는 돈 한푼도 없는 것이 몇천만 원 들여서  수술하는 이 수술인데, 이 수술만 하면 성한 사람 될 터인데 이렇제 큰 힘을  들여 가지고 수술하니 내가 좀 따끔따끔하고 여간 좀 아프다 할지라도 아픈  일이야 견뎌야 되겠지.' 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 은혜를 받는 데 그만한 힘만  쓰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하면 참 구원이 너무  거리 멉니다.

 제가 그전에 시골에 있을 때에, 지금은 뭐 자동차가 있지마는 그전에 모두 말  소 그것 가지고 이래 구루마에 대고 끌고 무엇을 다 운반을 했었습니다. 말이  가다가, 힘대로 가다가 말이-소든지-끌고 가다가 힘이 없으면 그만 지쳐집니다.

이럴 때에 그 주인이 그것을 밀어 주면서 손을 옆에서 밀어 주며 그저 조금만  이래 밀어도 그놈이 용기를 내 가지고 합니다.

 여게 이래 푹 내려갔다 올라가는데, 제 힘 가지고 갈 수 없는 그런 데인데,  말하기를 '자, 내가 밀 터이니까 너도 힘을 써라.' 이러면서 이래 가지고, 이래  떡 세워 가지고 옆에서 밀고 손을 대고 이래 가지고 하면서 나서 가지고 간다고  '욱' 하며 막 주인이 힘을 써 가지고 옆에서 밀면 그놈도 죽자살자 엎어지고  죽자살자 하고 있는 힘을 다 들여 가지고 고개를 쳐 넘긴다 그말이오.

 짐승도 자기 가는 길에 옆에 주인이 도와주면 힘이 나고 또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자기가 짐을 지려 할 때에 일어나지 못하고 빠닥빠닥하이 이럴 때에  옆에서 손만 대 줘도 수월합니다. 우리가, 저도 구루마 끌어봤는데 구루마, 끌고  갈 때에 다른 사람이 옆에서 그래 밀지 않아도 그저 손만 이래 대 줘도 힘이  난다 그말이오.

 또 그 말이 있어요. 여름에 보리 타작할 때에 혼자 보리 타작을 하는데 자기  부인이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 부지깽이를 가지고 이래 뚜드릴 때 같이 장단을  맞춰서 이래 툭탁툭탁 뚜드려도 힘이 나서 고함 소리를 지르며 척 척 이래  가지고 쳐 넘겨서 타작을 한다 말이오.

 이것 모양으로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령이, 주님의 피가, 진 리가, 모든  천군 천사가, 성도들의 기도가 전부 집중해 가지고 내게 대해서 안 고치면  안되는 그 하나 거기에 다 집중돼 있는 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면 우리가 힘써  그 회개시켜 주심을 받는 것이 힘이 들어도 우리가 받을 수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요 진리를 깨닫는 게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것을  회개를 하면 요한일서 3장에 자기 양심에 깨달아진, 요것 고쳐야 되겠다는 하는  깨달아진 것 그것 고치면 하나님이 기도 들으시고,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구하는 바를 얻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것을 하나 발견해 가지고 갑시다. 오늘 새벽에도 그것을  내나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 자기에게 하나님이 지금 무엇인가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있는 그 죄 하나가 있어. 그 죄 하나가 있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죄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죄 하나를 회개해야 그 다음 죄도 또 회개가 되든지  뭐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회개케 하려고 애를 쓰는 그 죄를 회개 안하면 그  외에 것은 회개해 봤자 주관적으로 저 혼자 회개하는 것이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 혼자 회개하는 것이지 객관의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물질에 대한 것이나, 혹은 자기 무슨 욕심에 대한 것이나, 무슨 성질에 대한  것이나, 습성에 대한 것이나 그런 게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버릇 그것 하나  나쁜데, 그 버릇하나 나쁜데' 다른 사람이 보고 '그 사람은 뭐 자기가 목회를  뭣을 하나 그 버릇 하나 그것 안 고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망한다' 하는 그게  있다 그말이오.

 그 버릇 그것 고치려고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와 천군 천사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집합해서 집중하고 있는데 그걸 그 할 때에 이렇게 집중돼 있는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고치려고 자기가, '이 큰 힘들이 이렇게 나를 협조하고 있으니까  나도 고침을 받아야 되겠다' 하고 공으로 받는 노력만 하면 고쳐진다 말이오.

그것 고쳐지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됩니다.

 되고, 그러면 그만 그것 하나 그 꺼내 놓으면 그 다음에는 문제가 없어. 그게  뭐 큰 죄라 그런 게 아니라 작은 죄라 그런 게 아니라 어짜든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각각 있습니다. 그것 하나 해결되면 그 다음에 해결되는데 그것 해결  안 되면 그 다음에 것은 제가 암만 밤낮 회개를 부르짖고 있고 뭐 '내가 이런 죄  저런 죄' 암만 해 봤자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습니다. 그것 되는 게 아니라. 거기  생명 역사가 없어.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는데 그게 딱 해결될 때에  거게서 폭발이 나는 것이라 말이오. 그 폭발돼.

 내가 양성원에 입학한 양성원 학생들이든지 또 여게 교역자로 지금 등용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든지 각자 볼 때에 그걸 내가 말을 못 해  줘요. 말을 해 주면 물고 달려들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깨닫지 못하면 또 말해  줘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라. 뭐이던가 하나 있다 그말이오.

 '저것은 제가 암만 해 봤자 항상 고생이다.' 돈벌이하는 데도 뭐 그게  있습니다. 고것 고치면, 그것 때문에 그게 암병이 돼 가지고, 사람마다 죄의  암병이 있어. 병 가지고는 안 망하지마는 죄 가지고는 망합니다.

 이러니까 그런 것이 각자들이 있으니 그것을 우리가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전심 전력을 내가 홀빡 차지하는 것도 그것 발견해 가지고 그것 지금  고쳐 주실 때에 고침을 받는 것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것이오.

하나님을 기쁨을 받는 것도 그것이오. 그러면 그것 해결 짓고 나면 그 다음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뭘 고치면 세월이 가는 줄 압니까? 세월 걸리는 것 아니라  자기가 깨닫고 '주님이여, 주님이 내게 대해서 제일 요구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소원하고 계시는 것이 요것인 줄 압니다.' 그걸 바로 찾는 것이 벌써 성공이라.

 '요것인 줄 압니다. 이제는 내가 요것을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고치려고 애를 쓰니까 내가 고쳐 주심을  받겠습니다. 나도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고쳐 주심을 받겠습니다.' 하고  '내가 이제 그 잘못된 것 알고 이것을 고쳐서 고쳐 주심을 받겠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고쳤습니다.' 앞으로 고치겠습니다.가 아니라 '지금부터 고쳤습니다.'  고쳤습니다. 하면 됐어. '고쳤습니다.'  고쳤습니다. 하면 그 다음에 반드시 고쳤느냐 안 고쳤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에  그 현실이 닥쳐올 때 그때 그만 고친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라. 그러면 그때  주력한 능력이 나와 같이하고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또 그 다음에 무엇을  '네가 요것을' 순서 순서 해서,  그러면 그거 뭐 하룻밤에 열 가지라도 고칠 수 있습니다. '주여, 요것인 줄  알았습니다. 요 죄를 내가 요것 이제 요것을 주님이 근심하는 줄 압니다. 요것  내가 고쳤습니다. 지금 주님이 근심하고 있는 것 내가 고쳤습니다. 요것  고쳤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요것 고쳤습니다. 고쳤습니다.' 내가 뭘 하나를  고쳤다, 또 뭣 고쳤다, 고쳤다, 고쳤다, 열 가지를 고쳤다. 열 가지도 고칠 수  있어. 열 가지도 고칠 수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만 틔워졌다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다시 개가 토했던 것을 먹는 것처럼, 도야지가 씹었다가  구렁텅이에 도로 들어가는 것처럼 하지 않고 '고쳤습니다.' 하고, 그러면  고쳤는가 안 고쳤는가 그 다음에 그걸 시험하는 것 오는데 올 때에 고친  그대로만 계속하면 돼 버려.

 하나님 차지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차지하기 쉽고 진리 차지하기 쉽고 우주를  자기 것 삼기 쉬워. 이 세상에서는 조그만한 몇십 평짜리 집 하나도 구하려 하면  힘이 들고 애가 되지마는 우주도 차지하기 쉽다 그거요.

 그러니까 요 첩경이 되는 이 길을 걷지 않고는 우리 기독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고 그 권능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면 저는 골만 빠지지  암만 해 봤자 성과는 없습니다.

 자, 지금 오늘밤에는 각자들이 찾읍시다.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지금 전력을  기울여서 '요것 고치라'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러면 자기가 벌써 이 말 나기  전에라도 고친 것 있으면 고친 것이 있으면 고친 그것을 지금 다시 개가 토했던  걸 먹는 것과 갈이 그래 하지 말고 그것을 계속하고 계속하면 그 다음에 또 고칠  것이 뭐인지 있다 그거요.  여러분들은 몰라도 나는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요 구하고 계시는 것이 있어. 고칠 게 있는데 그것을 고쳤다가  또. 이것 졌다가 이겼다가 지금 씨름이라. 졌다가 이겼다가, 그러니까 내가 오늘  아침에도 이 설교를 하고 고쳐야 될 것, 고쳐야 될 것 세 가지인데 세 가지를  내가 고쳐야 될 것을 생각했는데, 고치고 거석하면 조금 있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또 넘어가 버렸고 이래서 지금 씨름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있을 거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너 도적질하는  것 그것 고쳐라. 너 남 속인 것을 고쳐라. 거짓말 한 것 고쳐라.' 이렇지마는  올라갈수록, 올라갈수록 그런 것이 아니고 더 고칠 것이 더 높이 깊이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고칠 것 중에 하나는 교만입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도 '나는 교만한  자입니다.' 내가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고 교만해서 내게 대해서  가시도 오고 내게 어려움이 많이 와, 이래서 내가 교만하다 그것 하나,  내가 말에는, 말에는 거짓말이나 그런 것은 하지 않아요. 안하는데 말에는 내가  자긍하는 말, 자긍하는 말, 제 자랑하는 말, 오늘 아침에도 설교를 하다가  여러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했지마는 그 끄트머리는에 나중에 가 심사해 보니까  자긍하는 말이라 말이오. 자긍은 제자랑이요, 제 자랑. 자긍이 제 자랑인데 제  자랑하는, 교만 자긍 그것이 내게 회개할 것 두 가지라, 두 가지. 하나는 항상  하나님 두고 나 혼자 날뛰어, 금방 하나님하고 같이 가다가 어떤 사람만 만나면  그만 하나님 다 버려버리고 그 사람하고 둘이 만나 가지고 야단지겨. 하나님하고  같이 가다가 무슨 사건만 나면 그만 그 사건만 거머쥐고 사건하고 나하고 둘이  거석하고 하나님 잊어버려.

 이렇게, 그래서 시편 73편에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가 망하리로다"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렇게, 같이 가다가, 그러면 어떤 사람 만나니까, 자기 부인하고  남편하고 같이 가는데 같이 가는데 이 같이 가며 뭐 종알종알하며 재미있게  가다가 어떤 남자 하나 만나니까 인사도 안 하고 갔다 온다 인사도 안하고 그만  잊어버리고 그 사람하고 둘이 짝짜꿍이 돼 가지고 그만 한참 기뻐하고 저거끼리  이래 버리고 잊어 버렸다 말이오. 그러면 얼마나 그 본남편이 섭섭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나는 지금 하나님께 대해서 그 죄를 지금 짓고 있다 그말이오.

 말해도 요것 하루도 못 넘어가고 그만 가다 보면, 만날 때에 '주여, 이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주님하고 같이 얘기하고 주님에게 물어서 주님이 말하게  하는 대로 하고 주님이 생각하게 하는 대로 주님 생각대로 내가 생각하고'  이런다고 이렇게 해 놓고는 얘기하다 보면 깜빡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그  사람하고 둘이 그만 짝짜꿍이 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래서 내게 대해서는 그것이 지금 주님이 요구하시고 있는 죄악인데 그 세  가지 죄악, 교만, 자긍,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 주님은 떠나가서 주님은  잊어버리고 딴데로, 배반하고 딴데로 떠나는 것. 이것이 내게 대해서는 지금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각자가 있을 것이라 말이오. 어떤 사람은 나쁜 성질, 급한  성질, '저 사람은 제가 암만 뭘 한다고 해도 그 성질 그것 뽑기 전에는  헛일이다.' 참 '십년 학해 범어주'라고 십 년 공을 들여 가지고 배 모아 놓은  것이 그만 하루 아침에 파선된 것 모양으로, 자기에게 뭐 고칠 것 그것 고치지  않으면 그만 그와 같이 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있어.

그걸 찾아요. 그것 찾기 전에 헛일입니다.

 뭐 이것 찾는다고 밥을 못 먹을 것 아니오. 밥을 못 먹을 것 아니고, 세상 벼슬  못 사는 것 아니고, 사업 못하는 것 아닙니다. 요걸 찾지 않으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걸 찾아요. 그걸 모르면 소경이라. 주님을 만나볼 만한 마음의 눈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일 주님이 주력하는 것 뭐 있어요.

 오늘밤에는 그것을 각자가 찾고 자유로 돌아갑시다. 저 뒤에 불끄고, 고요히  찾아요. 고함 지르고 그래 하지 말고. 그저 뭐 소리 안 내도 좋으니까, '주님이  내게 대해서는 무엇인가?' 그것을 찾는 것이 주님 찾는 것이요 그것 가지고서  주님과 나와에는 완전히 해결이 되든지 원수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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