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구원

 

1989. 2. 22. 수새벽

 

본문: 마태복음 5장 17절∼18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반사 선생님들, 공과를 외우는 것과 또 실행 실천해 가지고 경험과 체험을  얻어서 이 지식을 합해 가지고 자기 맡은 제자들을 가르칠 것과, 또 부장  선생님들이나 반사 선생님들이나 주일학교 교장이나 권찰님들이나  보조반사들이나 다 자기가 맡은 그 믿음의 자녀는 마음 속에 늘 간직하고  생각으로 기도로 길러야 합니다. 마음에 품어 있어야 되지 마음을 떠나면 자라지  않습니다.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꼭 계속해야 앞으로 어려움, 당할 때에 다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 이 말씀을 읽고 그만 다른 것을 말하느라고 여러분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언제 기회가 있으면, 요새 이단 종파들이 많이  생깁니다. 이 O 정권이 생기고 난 다음에 국회 청문회가 나오고 나서 뭐 어떤  것이라도 자유한다는 그런 오해에서 굉장하게 많은 것이 지금 남발되고 있습니다.

 어제 OOO목사님한테서 전화를 받았는데 OOO선교단이라 이래 가지고, 그  본부는 원주에 있고 또 그 지금 학원은 지리산에 있다던가 뭐, 내가 전화로  들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벌써 거게서 졸업이 이십오 회가 나왔다고. 그래 가지고  오 개월만 가서 하면은 거게서 무슨 뭐 선교 무슨 뭐 인허라 하던가 그 무엇을  인허를 줘서 그래 가지고 하게 하는데 모두 사람들이 그리 가 가지고 공부한다고  이라면서 벌써 거의 전국에 퍼져 가지고 있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 자꾸 이래 나돌아다니고 이래 벌로 날뛰면 큰일납니다.

기도하러 간다고 저 금정산 같은데 그런 데 가면 거기는 잡탱이들이 많이 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물들어서 그만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러 가는 데는 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꽃 마을과  양산동을 저게 구별해 놨기 때문에 거기는 다른 잡것이 오지를 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유혹이 없지마는 딴 데는 뭐 미혹이 심합니다.

 요번에 OOO씨 있던 교회에 어제 장례하고 보고가 들어왔는데 예배당도 없고  집 하나를 OOO씨가 돈을 내 가지고 얻어 가지고 하나는 그 조사라는 사람은 삼  형제인데 하나는 깡패고 하나는 조사고 또 하나는 뭐라고 그렇게 말을 합디다.

 이런데 하나는 OOO씨가 방 하나 거처하고 하나는 그 조사가 거처하고 또 그  복도에 거기서 뭐 예배본다 하는데 저거 말로 교인들이 한 육십 명 된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래도 아마 육십 명 된다 하는 것 보니까 제적이 그러니까 뭐 실은 몇  명이 안 모이는 모양입니다. 그렇츰 그래 쌓아도 미혹에 빠지지 안하는 모양이라,  다 사람들이. 그 뭐 참 수백 명 그래 모일 것 같아도 그렇게 모이지 안해요.

 그래서 어제 장례를 지냈는데 유서도 써놓고 뭐 재산은 전부 그거 다 흡수를  하고 이랬는데 그거 다 재산도 다 자기 시갓집 가족들이 가 가지고 말을 해서  아마 다 찾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라면서 거기서 말하기를 '이 재산은 살아 있을 때에 총공회 바치라고 이래  가지고 해서 총공회 바치는 것을 백목사님이 그걸 안 받았다. 안 받고 이거 그런  재산은 그 본인이 살아 있으니까 그분이 뭐 먹고 살고 뒤에 나머지기 있으면  제가 자유로 바치지 우리 공회서는 그런 거 안 받는다' 해 가지고 일단 바쳤던  것을 물리쳤던 그런 재산이다 그런 말까지 거기 다 나왔더래요.

 나와 가지고 그랬는데, 여러분들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이제 본문을  간단하게만 말하겠소. 이것도 아주 좀 해석이 바른 뜻을 깨닫기가 어려운  난해절이 돼 가지고 있는데 실은 사람들이 몰라서 벌로 해석을 합니다.

 여게 '폐하러 온 줄로 알지 마라'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그러면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이니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또 그 외에도  하나님의 법도를 말합니다. 또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 도리를 사람들을 통해서  전한 걸 말합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예언으로 전한 것이든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든지 이것은 하나라도, 폐해질 줄로 그렇게 생각지  말라. 하나도 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입법해 놓은 그 입법은 그것이  변경도 못하고 가감도 못 합니다 언제든지 그 율법대로 하나님은 꼭 처리를  하시지 법을 떠나서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왔다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요 말씀이 좀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그말은  율법의 완성을 하러 왔다, 율법 완성을 하러 왔다 율법 완성을 하러 왔다 말은  로마서 8장 3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을 인하여 연약하여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할라고 오셨다' 그렇게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약하다 말은 율법을 가지고 피조물을 구원할라고 했는데, 율법  가지고 피조물을 구원할라고 했는데 사람이 영뿐이라면 율법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달성할 수가 있겠는데 사람에게는 육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다 이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말입니다. 이것도 아주 깊은  뜻에서 보면,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가 범죄한 것이 그것이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라 육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심신 때문에, 율법 가지고 하나님은 구원도 하시고 나라도 세우고  모든 걸 당신이 입법해 놓은 그대로 모든 것을 다 피조물들을 통치하셔서 이것을  다 건설해 나가고 구원해 나가는데 이 사람이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대로  이루지를 못했다.

 '율법이 연약하여' 율법이 연약한 거 왜 연약하냐? 율법이 약한 게 아니고 인간의  육신이 연약해서 율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율법 목적이 실패됐다 그말입니다.

실패된 것을 이제 내가 온 것은 완전케 하러 왔다.

 그러면 요 완전케 한다는 것은 율법 완성을 하러 왔다 그말입니다. 율법  완성이라니? 율법 완성은 율법의 성공은, 율법의 성공은 둘이 성공인데 하나는  율법을 범한 자에게는 하나도 빠짐 없이 범한 대로 낱낱이 형을 베푸는 것이  율법의 성공이오. 율법을 범한 자에게는 형을 처벌하는 것이 율법의 권위요  성공이요. 또 율법을 지킨 자에게는 그는 자유와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 자기가 소유 관리할 수 있는 그것이 율법의 성공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어긴 자는 벌을 해서 사망을 하고 율법을 지킨 자에게는 생명과  영광과 존귀의 상급을 주고 하는 요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완성인데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하는 이 말은 예수님께서 범죄한 자의 그 형을 우리가 받으면  우리가 받아서 율법의 그 범죄만 완성합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안했으면 율법의  일면만 완성이 됩니다 일면만 완성이 되다니? 율법을 범한 자에게는 정당하게 그  벌을 베풀어야 되니까 예수님이 안 오셨으면 우리 피조물은 영원히 벌을 받아서  멸망받는 것으로써 율법을 범한 자에게 대해서는 이 율법이 완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생명을 얻는 데에는 완성을 못합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율법을 범한 값을 다 당신이 받아서  율법의 완성을 했습니다. 그러면 대형으로 사죄 공로를 베푸신 것은 율법을 어긴  자에게 대해서 율법이 권위를 가지고 율법대로 완전히 처리한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형으로 죽으신 것이 율법의 완성이요 처리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행해 가지고 하나님 율법에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성취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 율법을 완전히 이행함으로 완전한  생명과 완전한 평강과 완전한 그 영광의 자유를 얻도록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안하고 다 이루리라'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왜 천지가 없어지는 것을 두고  말했는가? 이 율법 가운데에는 영원한 율법도 있지마는 이 세상에서 적용될 그  율법도 그 중에는 있기 때문에 '없어지기 전에는' 그 말은 이 율법, 영원 무궁에  적용될 율법도 다 이루어질 뿐 아니라 세상에서 이루어질 율법도 세상이 끝나기  전에는 이 율법이 다 완성하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 율법의  완성이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안하고 완성된 것은 이것은 예수님으로 이 율법이  완성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율법을 가지고 모든 것을 처리하시고 통치하시고 또  건설하시는데 이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폐지할 수 없다. 율법대로 하나님은  이행하셔서 율법의 완성을 하신다. 완성은 뭐인가? 죄 지은 것은 형벌을 함으로써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이고, 율법을 지킨자에게는 생명과 평강을 주심으로써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와서  대속해 가지고 이 일을 하러 오셔 가지고 완성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다 요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그 말은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이 없어질 세상에서 적용되는 율법도 있고,  영원 무궁토록 적용될 율법도 있는데 이 세상에서 적용될 율법도 하나도 빠짐이  없이 전부 율법 적용이 다 돼 가지고 완성된다 하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은  당신으로서 완성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하나라도 버리고' 버린다 말은 이것은 자기가, 이 버린다는 것과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좀 다릅니다.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러면 이 버린 자는, 버리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제일 작은  자가 되고, 또 그대로 지키며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큰 자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버리고 가르치는 이 사람은 아무리 행함이 많다 해도 버리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주 천국에서, 버린 사람도 천국 가기는 가지마는  제일 천국에서 영광이 적고 제일 적은 자가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그 율법은 다 완성이 된다 하는 고거 기억하고, 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다 이루어진다 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 요것을  기억하고, 또 하나는 버리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천국 가기는 갑니다. 가기는  가지마는 제일 작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계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율법인데 이  말씀에 버리는 것과 자기가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이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를 들어저 이 하나님의 율법이 만일 백 조문이 된다고 하면은 자기는 한  조문밖에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한 조문밖에 지키지 못했고 구십구 조문은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지키지 못했으니까 이 사람은 '나는 백 조문을 다 지켜야  되겠는데 한 조문 밖에는 지키지 못했다. 이러니까, 아직까지 내가 구십구 조문을  지키지 못했으니 이것을 내가 앞으로 힘써 지켜야 되겠다 하는 요 사람이 있겠고,  또 한 사람은 백 조문 가운데에서 구십구 조문을 지켰습니다. 구십구 조문을  지켰는데 한 조문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가 구십구 조문을 지켰기 때문에 한  조문쯤은 내가 안 지켜도 된다. 이거는, 안 지켜도 된다' 하고 하는 사람은. 그 한  조문을 버린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구십구 조문을 지키고 하나를 버린  사람은 천국에서 제일 작다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또 한 사람은 그 사람은  구십구 조문은 지키지를 못했고 한 조문만 지키고 그 사람은 지금 남은 구십구  조문도 지켜야 되겠는태 못 지켜서 지금 지릴라고 애를 쓰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보기에는 한 조문 지키고 못 지킨 것이 구십구 조문인데 이 남은  구십구 조를 지킬라고 애를 쓰고 못 지켰으니까 자기는 이거 지키지 못했다 하는  그것을 마음에 자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레 생각하고 지킬라고 애쓰는  사람 있고, 한 사람은 구십구 조문을 지키고 뭐 한 조문을 지키지 안했는데 '한  조문 이거 안 지킨 것은 이것은 이만큼은 안 지켜도 된다.' 버렸다 말이오. '이거는  뭐, 이거는 안 지켜도 된다.' 버렸다 말이오  버렸으면은 우리가 볼 때에는 구십구 조문을 지킨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고, 한 조문밖에는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작다  일컬음을 받을 터인데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이러니까 지극히 작다 했으니까 이 사람보다 작은 사람이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했으니까 지극히 작은 것은 제일 작은 것을  말하는 것이지 지극히 작은 그 사람보다 더 작은 사람이 있습니까? 어때요?  지극히 작은 것보다 더 작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말해 봐요. 저 OOO장로님?  지극히 작은 것이면 그게 제일 작은 것이지 그 이상 작은 거는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고  또 '행하며' '이를 행하며'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행하며' 하면, 여기 '행하며' 하는 데는 '다 행하며' 하는 말이  없습니다. 요걸 잘 구별해.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크다는 여기 지극히란 말이 없어도 내나 지극히 작다 지극히  크다 하는 그 말이 여게 문법적으로 다 거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걸 우리들이 잘 알아야 합니다. 요게 파묻혀 가지고 있는 진리인데, 그러면  하나라도, 하나라도 버리고 이와 같이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또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행하니까 거게서 백분지 일을  행해도 행하는 사람이요, 행하는 가운데 있는 사람도 행하는 사람이요, 그것을 다  행한 사람도 행한 사람. 이러니까 '행하며' 하니까 이것은 지금 행하는 과정에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다 행한 끝난 것을 가리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행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말하고, 그러면 자기가 행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크다고 일컬을 것이고, 우리가 다 행해야 될 터인데 행하지  못했으니, 그러면 다 행해야 될 사람은 행하지 못 했으면 못 행한 것은 자기가  죄를 범한 것으로 알아서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을 받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십구 조를 행했더란대도 한 조문이라도 '이거는 뭐 안 지켜도 된다'하고 버린  사람은 그 사람은 한 조문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뭐 사과할 것이나  사죄를 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요게서 우리가 이 법이라는 법을 단단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나는 내가 가까이 돼 있어서 나한테 좀 친근해서 '아, 지금 무슨 학교를  가야 되겠습니까' 나한테 묻는 사람에게는 내가 남자는 다 '사학이나 법학을 해라'  했지 딴거 하라 소리를 안 했습니다. 나한테 물으면. 그래서 서부교회서는 대학  간 사람들이 법대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아주 나와 가까운 여성도 우리 딸이든지 뭐 내말을 잘 들을 사람이면 나는  여자도 법대를 보냅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웃습니다. '여자를 뭐,' 대개  여자들 보내는 것은 정치과를 보냅니다. 정치과 정외과를 보냅니다  왜? 그것은 사람들이 제일 양심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제도를 세워 놓은 것이  인간의 그 율법입니다. 율법에 모순이 되는 것은 율법을 인간들이 자기 중심으로  세우기 때문에 그때 권세자가 권력가가 자기 중심으로 율법을 세웠기 때문에 그  율법은 가치가 없습니다. 이래서 개인주의로 세우지 안하는 그 법이 로마법이  돼서 로마법을 지금까지도 법 중에는 제일 위대한 법으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래서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좀 말귀를 알아듣는데 법을 공부하지 안하고 무슨  자연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 인간, 다른 물질 이치는 알아도 인간 이치를 몰라서  좀 답답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사회에 보면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뭐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법관될라고 법을 공부하는 사람 아니오.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법에 법관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법을 공부한 사람은 대개 사회서  일합니다.

 그러면 사회의 은행이나 뭐 회사나 어데든지 일하는 데에 거게서 모든 걸  통치해 가지고 좀 머리된 사람들은 대개 법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모두 행정들은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이 법이라는 거 이것을 좀 이치를  알아야 되는데, 여게서 하나님이 법을 입법을 해 놓았으니 이 입법 가지고  입법대로 처리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의 공심판입니다. 그런데 이 법이라 하는 건  어떤 것이 법의 권위인가? 법을 어긴 자에게는 형을 주는 것이 법의 권위요 또  법을 지킨 자에게는 자유와 권리를 주는 것이 그것이 법의 권위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법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고 또 구원하신다.

파괴도 법으로 파괴하고 건설도 법으로 건설하지 법 없이 하지 안해. 그러니까  법을 하나님이 벌써 입법을 해 놓았다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면 왜 이걸  자꾸 말하느냐? 우리 건설구원에 대해서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법을 상관없이  은혜라 은혜라 해 가지고 이것 법을 무사해서 마귀란 놈이 수입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법을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은 법으로 주고 법으로 살아났고 법으로  우리를 대형했고, 법으로 우리를 대형해서 사죄 줬고, 우리에게 사죄 준 것도  법으로 사죄 줬고, 우리를 칭의 준 것도 법으로 칭의 줬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합된 것도 법으로 화합시켰고, 영생 준 것도 법으로 영생을 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법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서  '내가 법을 폐하러 온 줄로 알지 말라.'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알지  말라. 내가 완전케 하러 왔다.' 당신은 법에서 죽고 법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누구든지 이 법을 버리고 버리는 사람은 이 법은 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이기 때문에 이 법을 우리가 지키는, 율법주의자라 이래 가지고, 저를  율법주의자라고 다른 데서는 핍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러나 '은혜이기 때문에 그 율법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게 잘못이오. 은혜는 뭘  은혜라 합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은혜라는데 은혜라 말은 무슨 말이요? 하나님의  구원은 너무 커서 인간의 행위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께서 완성해 놓고 완성해 놓은 그 구원을 우리에게  공짜배기로 주는 것입니다.

 공짜배기로 주는데 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는 그 실력은, 받는  실력은 이 세상에서 선천 후천의 그 사람의 자신의 실력이 은혜를 받는  실력입니까 못났든지 잘났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 이것이 받는  실력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자 자기에게 선천후천의, 뭐 지식이나 경제나 또  활동성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그 선천 후천의 모든 자격의 그것이 남보다도  뛰어난 사람, 제일 세계에서 제일 으뜸 가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실력 있는 사람입니까, 암만 못나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받는 데 실력 있는 것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자기에 있는 모든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 하는 것이 실력 있고,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도 다 바치면 좋지마는 이만치 있으니까 나는 조그매만 바쳐도 된다 하는  그 사람의, 실력 있는 사람의 조그매 바친 것과 아주 못나고 못난 사람 그  사람에게 있는 것 다 바친 사람과 어느 게 은혜받는 데 실력입니까?  다 바친 것입니까 자기에게 그 실력 요소의 많은 것 중에 좀, 실력 중에 많은  실력을 가지고 은혜받는 것이 이 은혜 받는 데에 실력입니까, 자기의 실력 많은  것 가지고, 많은 것 가지고 받는 것이 이 은혜를 받는 실력입니까 있는 대로 다  바친 것이 실력입니까? 자기에게 있는 실력을 실력을 가지고, 실력을 가지고 받는  그 실력 가지고 받는 것이 그것이 실력인지 다 바친 것이 실력인지?  실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은혜를 받는 데에 유일한 방편으로 하나님이 평가해  주십니까 다 바친 것을 평가해 주십니까, 바친 실력을 가지고 평가합니까 다 바친  걸 가지고 평가합니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에는 뭣을 평가합니까? 실력  가지고 평가합니까 다 바친 것 가지고 평가합니까? 이거 말을 뭐, 이거 말도 내가  나도 못하지 여러분들도 말귀도 못 알아듣지 하니까 참 곤란하기는 곤란해요.

이런데 성령이 가르쳐 줘야 돼. 그래서 방언의 은혜라,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안  돼요.

 그러면 하나님의 공짜배기로 주시는 이 은혜를 받는 데에는 받는 데에 인간의  실력이 그 받는 실력입니까 다 바치는 것이 실력입니까? 다 바치는 것이  실력이라.

 만일 그 사람이 천하에 제일된 그 실력가가 백의 구십구는 바치고 하나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과, 이 사람은 천하에 제일 무능한 자입니다. 무능한 자인데 이  사람은 있는 대로 다 바친 것과 그라면 은혜받는 실력이 누가 큽니까? 누가  큽니까? 천하에 제일 되는 그 사람이 큽니까 제일 무능한 사람이 큽니까? 요거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 요거 우리가, 요게 깊이 파묻혀 있어서 이것을 다 잘난  사람들과 학자들이 다 속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전부 다 다 다 다 자꾸 다라 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다.

 이러니까 고것을 기억하고 요게서 '버리고' '버리고 가르치는 자' '하나라도  버리고' 여기 말했어.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요  똑똑히,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이거  버린 것이 이것이 제일 큰 화덩어리입니다. 알겠습니까? 버린 것이 제일  화덩어리라. 요걸 요렇게 캐내기가 어려워. 요렇게 캐내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버린 이게 큰 거석이라,  또 '지키며 가르치는 자'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 행하며 가르치는 자라 많은  이거 행함이라 하는 것은 만일 백분지 일을 행하고 가르쳐, 백분지 일을 행하면서  가르칩니다. 또 일을 행하면서 백분지 이를 행할라고, 삼을 행할라고, 사를  행할라고, 자꾸 이 율법을 자기가 행할라고 노력을 하면서 행하는 중에, 행하면서  '행하며' '이를 행하며' '행하며 가르치는 자' 이거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다 행한  자요 반 행한 자요?  저 O장로? 다 행한 자요 반 행한 자요? 몇분지 일을 행한 자요? 다 행한 자라?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 다 행한 자인가? 이 '행하며'  하는 것은 현재 행하는 중에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해요. 다 행한 자가 아니라. 다  행한 자가 아니라. 자기가 모든 율법은 다 행해야 될 줄 알고 지금 행할라고 애를  쓰면서 가르치는 자라. 요것을 잘 모르면 안 돼요.

 이 말과 이 말과,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들여서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요 다른  말이요? 어째요? 자기가 아주 무능한 사람이지마는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한 사람,  또 아무리 실력이 있는 사람이지마는 자기가 버리고 행하는 사람, 요걸 자꾸  연관시켜서 보면 다 알 수가 있어요.

 이걸 '행하며' 하니까 다 행한 자라 하고 이거 이래 깨닫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그말이오. 그 쉽거든. 이러나 자기가 있는 대로 다하라 하는데 두 냥중 가진 자는  두 냥중 하고 닷 냥중 가진 자는 닷 냥중 가지고 장사했고 한 냥중 가진 자는 한  냥중 가지고 장사하고 장사하면 될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에게 있는 대로 다한다는 그것은 자기에게 있는 대로 다해서 이  은혜 받을라고 힘을 다 쓴다고 해도 무능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이 자기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는 것과 아주 의지가 강하고 유력한 사람이 조그매만  기울여 가지고 하는 사람과 그 해 놓은 일의 양은 어느 사람이 많겠어요? 어느  사람이 많겠어? 아주 무능한 사람 그 사람이 다 기울여 가지고 일한 그 양과  아주 유력한 사람이 조그매만 기울여 가지고 일한 양과 일한 양은 어느 게  많아요? 어느 게 많아요? 우리 OOO장로님. 능력 있는 자가 해 놓은 양이 많다  말이지요? 많지요. 녜, 능력 있는 자가 해 놓은 게 양이 많지요. 양이 많은데 그  능력 있는 자가 조그매만 기울여도 해 놓은 양이 많지.

 많은데 우리가 지금 배운 대로는 무능한 자는 다 기울여봤자 까짓거 해 놓은  일의 양은 얼마 안 된다 그말이오.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뭘 봅니까? 다 기울인  걸 봅니까, 그러면 일의 양을 봅니까, 그가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을 봅니까, 뭘  보요? 예?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을 대우하는 걸 봅니까 그 사람의  실력을 봅니까? 대우하는 것을 그거 실력을 보는 게 아니라 대우하는 양을 그걸  봅니다. 그걸 요게 어려워요, 요게. 요게 파묻혀 있어서 사람들이 아주 어려워.

그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힘을 다한다고 힘을  못난 사람이 힘 다하는 그 양과 아주 또 잘난 사람이 힘의 백분지 일을 기울인  그 힘과 힘의 양은 어느 게 많습니까? 잘난 사람 것이 믾지.

 그런데 그라면 이 법으로 가지고 딱 심판할 때에 작은데 다 기울인 사람 있고  많은데 한 반만 기울인 사람 있으면은 어느 사람이 그 법에 통과가 되겠습니까?  작아도 다 기울인 그 사람이 법에 통과된다 말이오. 요걸 요 진리를 알아야 돼요,  그래. 그게 세상법과 다르다 말이오.

 그러면 그거 뭐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꼭 동등인데 하나님이 많이 줬기 때문에  제가 많지 제것이 아니라. 제것 같으면 그렇지마는 많이 준 자는 많이 다  기울이고 그러니까 닷 냥중 받은 자는 닷 냥중 가지고 장사해 가지고 닷 냥중을  남겼어야 되지 닷 냥중 받은 사람이 만일 그 사람은 뭐 장사 안 해도 닷  냥중인데, 두 냥중 준 자보다 한 냥중이 많지 안해요?  그거 그 사람이 만일 장사해 가지고 넉 냥중을 남겨서 아홉 냥중을  가져왔습니다. 아홉 냥중을 가져왔고 두 냥중 가진 사람이 장사해 넉냥중  가져왔으면은 거게 아홉 냥중 가져온 사람을 환영하겠소 넉 냥중 가져온 사람  환영하겠소? 아홉 냥중 가져온 사람은 어찌 되지? 저 O장로. 아홉 냥중을 가져온  사람은 주인이 올 때 뭐라 하겠어? 칭찬하겠어 책망하겠어? 어? 아까 O장로  대답한 대답이 틀린 것 같은데, 아예 틀리지 안했나? 요거 바로 깨닫기 안하면 안  돼요. 어려워요.

 은 맡긴 비유에 만일 그 사람이 장사해 가지고 넉 냥중은 장사해서 넉 냥중을  불궜고 한 냥중은 장사하지 안해서 한 냥중은 그대로 둬 뒀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홉 냥중을 가져왔습니다. 가져왔으면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할까 이제  게을하다고 책망을 할까 어떻게 하겠소? 한번 대답해 봐요.

 그거야 내나 그 말씀이나 '하나를 버리고' 하는 말씀이나 꼭 같은 말씀이라.

이해가 돼요, '하나를 버리고' 하는 말씀과 요 이치를 못 따지면, 하나님의 도는  논리의 도입니다. 논리가 없으면, 하나님 법은, 왜? 전부 법으로 가지고 하기  때문에 법에 딱딱 들어맞아야 되지 법에 안 들어맞으면 안 돼요. 이거 알기가  어려워.

 그러니까 잘난 사람들이 내야 뭐 이렇츰 잘난 사람이 일 년에 하루 새벽기도만  나가도, 내가 대통령인데 하루 새벽만 나가도 나는 대통령이니까 그 지저분한  사람들의 일생 동안 나간 것보다 내가 더 위대하다 하는 그자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께 교만하다고 물리침을 받아야지 소용 없어. 요거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집에 가서 가만히 자꾸 읽으며 생각해요. '폐하러 온 줄로 여기지 말아라. 완전케  하러 왔노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다 이루리라.

버리고 가르치는 자, 또 행하며 가르치는 자' '행하며' 하는 저O장로님 완전  행위라고 말했지? '행하며' 하는 것은 행하는 과정에 있다 말ㅇ이오. 도중에 있어.

행하는 중에 있다는 그거야.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 조금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라 하는 것이 뭐 조금 잘못 해석하면 그만 탈선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신학은 다가 잘못해 신신학 아니라. 하나만 잘못되면 나중에 가서 결말에  가서는 신신학이 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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