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위치의 책임

 

1985. 3.  8. 금새

 

본문 : 민 12:13-16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칠  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 밖에 칠 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이에 미리암이 진 밖에 칠 일 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치니라

 

 어제 아침에 하나님의 역사 하시는 그 구원 역사를 방해케 하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히 여기셔서 복수하신 것을 몇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을 했습니다.

 아말렉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복수했는데 오백 오십 년으로부터 약 육백  년되는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수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선민 구원 운동을 대적하는 그 일을 하고도 오륙백 년이나 아무 일없이 지내니까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 별로 염려하지를 안하고 관심 있게 안했는데 하나님이  즉시 복수하는 일이 있고, 또 시일을 늦추어서 복수하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노가 클수록 보복하시는 일이 더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웁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것도 즉시 복수하지 아니하시고 그 후에 축복 같은 축복을  줬으나 그 죄악의 벌이 심히 커서 그때 가인만 죽어 버렸으면 좋을 건데 그 뒤에  가인의 그 신앙 사상적 후손이 얼마나 많이 나 가지고 얼마나 그 구원의 멸망을 본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에 대해서 그 자손들이 오백 년 동안이나 자꾸 번식했으니까 그 번식이  그래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역사는 보면 세월이 갈수록 자꾸 사람의 숫자는  늘어서 번식되는 것이 다 일반적입니다. 그러면, 소수로 하나님의 그 복수하실 그  대상을 더 늘여서 대수를 만들어 가지고 하시는 하나님의 그 복음 역사의 방해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분개하시는 그것을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에 아각을 보면 그 아각을 사무엘이 데려 오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각을 데려 오라이라니까 아각이 그때 오면서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고 내 생명이 이제는 완전히 보존됐다. 이렇게 일국 사사 사무엘이 또  나를 초청하는 것 보니까 내 생명이 든든하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기뻐서  사무엘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 가는 걸음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서 그 아각을 두 쪼가리로 쪼개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풀었습니다. 그러면,  그 마지막에 결론을 보면 그 아각 한 사람 남았었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이제는 모든 사람은 다 죽이고 사울이 나만 남겨 뒀는데 이래도 나도  언젠가 죽이지 생각했는데 사무엘이 아각을 초대하니까 이제는 내 생명이 참  든든하게 됐다, 그렇게 안심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심한 것이 바로 그 걸음이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 쪼개서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그 걸음인데 그렇게 모르고 안심하고 기뻐했지만 하나님의 그 선민  구원 운동을 방해한 그 일에 대한 복수는 없애지 안했습니다. 오백 년으로 오백 한  오십 년이나 한 육백 년 거의 됐는데 내가 자세한 것을 따져 보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수는 헤아리면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성경을 보고 대수를 이어서,  그렇게 가만히 있었지만 그 복수가 자지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방해하는 것은 복수를 하되 대깍 대깍 그렇게 하지 안하고 세월을 거치고 또  유유하게 그렇게 하나 아주 그 복수성이 강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지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 복수를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양을  늘어트리는 그런 면이 하나 있고, 그것을 대개 복음 운동에 방해되는 것은 직접  관련된 일인데 그 일을 즉각 처리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관계점이 있어서  그것을 지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여기는 다 양성원 학생들이 와 있는데 앞으로  교역자 될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방해되는 방해하는 그  복수를 하나님이 엄하게 하는 동시에, 또 미리암 같은 그런 경우를 본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미리암이 모세를 훼방한 것이 그것이 훼방할 만한 그런 일이 있습니다.

구스 여인을 이방 여인, 벌써 선조 때부터 자기네들과 피가 관계 있는 그 피의  계통을 통해서 외손 친손은 다를지라도 이렇게 나왔는데 아주 이방인에게 그와 같이  결혼한 것이 훼방할 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광대한 섭리는  그것을 다 허락하신 건데 그렇게 훼방을 했습니다. 훼방한 일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문둥병을 들게 했습니다. 그것이 모세에게 하나님 앞에서는 허물 된 것이  없지만 모세로 인해서 그런 일이 된 원인이 붙어 있기 때문에 모세는 아무래도 이  일에 대해서는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는 그 원인이 있고 관련이 있다는 그것을  생각하고 기어코라도 그것을 바로 잡아야 되지 바로 잡지 안하면 안된다는 그 면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이 미리암을 고쳐 달라고 이렇게 호소를 할 때에  그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그랬으면 미리암을 내버려뒀으면 그만 살이 썩고 이래  가지고 참 비참하게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일 됐다고 하면  모세에게는 또 영광될 것이 없고 모세에게는 아무런 좋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가지고 하나님이 '그러면 진 밖에다가 칠 일  동안을 가둬 두고 그 뒤에 이제 들어오게 하라. 사람이 그 부모에게 침 뱉음을  받아도 그것이 수치스럽고 한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그것이 얼마나  하기에 그냥 둘 수는 없다. 네가 부르짖으니까 문둥병으로 일 주일 동안 그렇게  고생하다가 일 주일 후에는 그러면 들어오게 해라.' 그래 가지고 그것을 회복을  했습니다. 또, 창세기 20장 끝에 보면 아비멜렉이 그 족속 집에 아브라함이 또  그렇게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 남방으로 내려가서 그 아비멜렉의 그 나라에 가  가지고 거기에서 애굽으로 갔을 때와 같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그 용모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나라 왕이 취해서 아내를 삼으려고 이렇게 했을 때에, 또  아브라함이 거기에서 내나 그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결혼하기 전을 찾으면 그런  촌수가 있는 촌수입니다. 사촌의 누이 동생이지만 결혼했으니까 제 아내라 해야 될  터인데 아내라고 속이고 이래 가지고 아비멜렉을 범죄케 했습니다. 또 그는 사라를  취해 가지고 자기 아내를 삼았는데 그 수치를 다 벗겨졌다 하는 것을 보면 그  아브라함이 혹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실수를 했는지 그것도 좀 의문이나  보통으로 생각하면 실수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이삭을 줄려고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하셨지만 이삭을 주지  안하고 보류하고 있었는데 이삭이 잉태돼야 될 그 때가 됐는데 아브라함이 잘못  남방으로 내려감을 인해 가지고 그 아비멜렉 집에서 범죄 하도록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죄악이 아브라함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할 수가 없어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비멜렉의 집에 너희 아내 사라로 인해서 잉태하는 그 모든  태문을 닫아서 그 자손들이 나지 못하게 하니까 그 나라의 후손이 못 나게 하니까  그게 그만 그 나라에 전멸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인을 범죄케 하는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구원에 방해하는 일이 그게  얼마나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너희에게 한 일을 인해서 내가  그 족속을 아주 땅 위에서 완전히 제해 버릴라고 태문이 닫히니까 제해 버리는 거  아닙니까? 생산이 없으니까 그만 그 족속은 완전히 그만 전멸입니다. 그랬으니 네가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하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 이래서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서 참 하나님에게 얼마를 기도했는지 하나님의 노가 풀릴만침 기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잘못을 인해 가지고 그들이 범죄한 그 범죄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내려서 참 태문을 닫아 가지고 전멸이 되는 그런 벌을 내렸지만 그 아브라함  때문에 됐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아브라함에게도 축복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기도하라고 해 가지고 기도를  해서 그들의 죄가 사해지고 태문이 열렸습니다. 태문이 열려서 다시 자손들이  잉태되어 나도록 그렇게 하시고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을 줘서 바로 20장에, 20장 끝에 그 사실이 있고, 21장에 사라에게 잉태의  축복을 줘 가지고 잉태를 했습니다.

 모세가 미리암에게 대한 호소한 그 기도로서 거리껴 가지고 있는 그 일을 해결  지운 것이라든지 또 아브라함이 거리낀 그것을 해결 지운 것이라든지 그런 것을  우리가 여기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 은사 위치에 있는, 딴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시은의 기관으로 되어 있는 사람에 대해서 훼방한 그 훼방의  복수도 하나님이 심히 크시지만, 그 은혜의 기관에게 잘못됨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을 은사의 기관에 있는 은혜의 그 시은의 기관에 있는 사람이  그 문제가 다 해결되기까지 하나님에게 자기의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하나님께  대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또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하나님에게 구해서  하나님의 노가 다 풀어지고 만족으로 거리낌이 없게 돼야 되지 그게 되지 안하면  그게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 그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가지고 그렇게 돼도  이유가 그렇게 훼방할 만한 이유가 있어 가지고 훼방을 했어도 복음 운동에 손해가  되고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복수를 하십니다.

 그리되면 훼방한 자에게만 하나님이 복수하시느냐? 복수하시는 그 일이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막아서 자기가 해결을 지우면 좋고. 만일 깨닫지 못했으면 그 일이  복수가 이루어졌을 때에라도 그것을 빨리 그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노를 풀어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해결하지 안하면 자기에게는 은사  그 기관으로 시은의 기관으로 된 그 기관의 사명을 하지 못하고 권위 있게 하지  못할 것이고, 그 다음에 권위가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복수가 그리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그런 일이 없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무슨 과실이 없다 할지라도 자기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는 아무 과실이 없어서 상대방이 그렇게 잘못해  그렇지 자기의 과실이 없다 할지라도 그 일이 있는 것이 없는 것만 같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실족해서 다른 사람이 보고 그런 범죄를 하지 않도록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은 특별히 조심을 해서 그 상대방이 그런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런  범죄를 하지 안하도록 하는 그 일에 조심을 해서 그런 일이 없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하고, 또 그런 일이 있어서 그리됐으면 그 문제가 해결이 다 되도록 그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가지 안하고 어쨌든지 그 진노가 풀려져서 하나님의 축복이 되도록  그렇게 바꾸어지기까지 책임을 지고 노력을 하지 안하면 거리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위해서 기도하고 이렇게 오히려 하나님의 노를 풀고 불쌍히  여겨 주심을 구함으로 인해서 복음 운동을 방해한 그 일의 직접 결과는 하나님이  복수를 하셨는데 그 일이 또 잘된 것은 오히려 그로 인해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꾸어지는 그런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못됨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미끄러지지 안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제일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약한 형제에게 거리낌이 되면 나는 평생에 고기를 먹지 않겠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도록 그렇게 조심을  하는 그것이 자기 맡은 그 성직의 권위 있게 일하게 되는 그런 방편이고, 또  자기에게 거리낌이 없으면 내게 거리낌이 없으니까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급이 크다' 이런 단순한 그런 성구만 보고 사람들이 실수하기  쉽습니다. 자기에게 거리낌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서 은사 위치에 있는 그  은혜 역사에 지장이 있으면 그가 그래서 그렇지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상관없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기 쉬운데 '그라면 참고 있으면 복이 되지' '거짓 걸로  핍박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급이 크다' 이렇게만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해결이 되지 안하면 자기에게 잘못은 없기는 없지만 그 일이 그만침  활발스럽게 직책과 사명의 결과가 나타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로 자기가 잘못이 없어도 잘못이 없어도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그런 범죄를 했으면 그 영향이 자기에게 미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첫째는 평신도도 그렇지만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일이 생겨지지 안하도록 조심하는 것이 이것이 첫째로  우리가 힘써 할 일이고, 만일 자기의 잘못으로서 인해서 거기 소속한 사람들이 잘못  행해서 하나님 앞에 득죄해서 복수의 대상이 되어 있는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서 노를 풀어 가지고 하나님의 그  진노의 복수가 오히려 변해서 축복으로 바꾸어지는 이런 결과가 맺어지도록 그렇게  해결을 짓지 안하면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그 복수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아무 흠점이 없어도 그 흠점이 없어도 상대방이 오해를 해  가지고라도 자기로 인해서 그가 범죄 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저야 범죄 했거나  말거나 내게 실수 없으니 상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된다고 해도 자기가 그 사람에게 범죄 하는 그 유혹의 원인이 없어도 범죄케 한  것이 되기는 됐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 일이 없는데 네가 이렇게 했느냐?' 이렇게 심판도 있지만 어쨌든지  그 사람에게 일이 없으니까 일이 잘못이 없는데 그렇게 됐으니까 상되겠다 그렇게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래 돼도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홈없이 잘했는데 아주  잘하는 일을 했는데 잘하는 일을 잘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잘하는 일하기는 했는데  그 잘하는 일하는 그 사람의 잘하는 일을 인해서 다른 사람들은 오해를 해 가지고  그 복을 받지 못하고 다 저주를 받은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면 자기에게 무엇이  되느냐? 영광은 되지 않습니다. 영광은 되지 안하고 다 원망 거리가 되게 됩니다.

자기가 옳은 일을 한 그것이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그를 보고 빛이 되고 덕이 돼  가지고 복의 원인이 되어 졌다고 이런 그 결과를 맺어야 자기에게는 영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법적인 그 문제와 법적 문제에서만 우리가 살 게 아니고 우리  기독자들이 그 법적 문제를 가지고 사는 것은 최저급입니다. 내가 저주를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축복을 받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주 그거는 불신자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그 법에 걸렸으면 된다, 그 법에 안 걸렸으면 된다, 법에 걸렸으면 그거만  우리가 풀어놔서 벗어나면 된다. 법 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주 복음주의에는 합당치  안합니다. 이거는 율법 시대는 합당하지만 복음주의에는 합당치 아니합니다.

그러면, 그 법을 초월해서 어떤 데 있느냐? 법을 초월해 가지고 영광이 되나 안  되나 거기에 나가야 되고, 그러면 영광이 된다 안된다 하는 거기서만 있는 것도  그것도 복음 운동에서는 그것이 머리를 들지를 못합니다. 복음 운동에서는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어쨌든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도움이  돼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 결과가 맺어져야 비로소 자기에게는 모든 거리끼는 그  일을 면했다고 우리가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다른 사람의 구원만 됐으면  되느냐? 그것으로서도 우리는 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이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고 해야만 우리의 생활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을 까다롭게 선포해 놓고 정해 놓으신 것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한 자들을 영원히 털끝만치도 홈과 점과 주름 잡힘이 없는  깨끗한 자를 만드시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잘못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거리끼지 안하도록 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의 구원에 유익이 되지 안하면 자기 고기  먹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도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버리고 희생한 도인데 자기가 무슨 그들과  살 무엇이 없고 자기의 마땅히 행할 일을 했다 할지라도 자기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방해가 돼졌다고 하면 그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의 법칙에 붙여 놓으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한 일이 어떤 일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이 되고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안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이 복음 운동에는 벌써 정죄와 같은  그런 정죄가 되어지고, 또 다른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있는 그것으로 만족이냐?  구원이 됐으면 만족이 아니라 그 위에 또 한 칸이 더 있으니까 그거는 무엇이냐?  나를 보내신 이의 아버지의 영광과 만족,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한 그  구원만 됐으면 그것으로 다가 아니고 나를 보내신 주님께 그 영광과 기쁨이 되고  그분에게 만족이 되어져야만 우리는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주 얼마나 이거 참 조심을  해야 되는지 이래 가지고 한 번 그 무슨 실수나 잘못되면 그 일이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많은 피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호소할  수 있는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그렇게 남방으로 내려가 가지고  그런 실수를 함을 인해서 그들에게 이게 그 민족이 전멸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하나님의 진노인데 그 진노를 풀기까지 하는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순서를 우리가  일방적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쉽고 또 간단하게 보고 그렇게 쉽게 생각하기도  쉽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비가 와서 산으로 기도하러 가지 못하면 여기서라도 어쩌든지 우리가 그 기도 제목  여덟 제목을 놓지 말고 계속 기도합시다. 우리의 신앙이 내려가면 공산주의가  올라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올라가면 그들의  세력이 내려갑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울질하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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