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관계의 깨끗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1일 새벽(수) 

 

본문 : 마태복음 5장 21절∼26절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요한 1서 3장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 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하는 그 말씀을 우리가 계속 봤습니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데에 사람에게 대해서 깨끗게 할 그 부분 중에 여기  일부분을 말씀해 놓은 말씀입니다.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나는'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을  가리켜서 '나는'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노하는 것은 물론 노할 만한 일이  있어서 노하는 일이 있겠습니다. 노할 만한 일이 있어서 노하고, 노할 일이  없어도 노하는 수 있지마는 대체로는 노할 만한 그런 일이 있어서 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할 만한 그런 일이 있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 이렇게만 하고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 것이 주의 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에게 대해서 옳다 그렇지 안하면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쳐야 되지 그 이상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노하는 것은 그  형제를 멸시하는 것이라 하는 그런 것을 여기에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심판을 받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대해서 무시하는 거 낮춰  보는 거, 깔보는 거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심판에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좀 멸시하는 그런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련성이  있다. 반드시 그게 심판에 관계가 되어 있다. 사람을 멸시하고 사람을 또 귀중히  여기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련성이 있다. 귀중히 여기면 귀중히  여기는 그 대우를 하나님이 하실 것이요 멸시하면 멸시하는 거기에 대한 보응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사람만으로 생각지 말고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 하나님의 심판에 관련돼 가지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사람에게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에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만 하고 그 이상 나아가지 말아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라가라 말은  이 말은 욕이라는 말입니다. 형제에게 대해서 욕하는 사람은 공회에 잡힌다 그  말은 공회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공회입니다. 이 말씀은 사회를 말합니다.

형제를 욕하는 그것은 반드시 이 사회성에. 사회와 관계가 되어 있다 그러면 욕을  하면 사회에서 그것을 사람들이 무슨 몇 사람이 모아 가지고 하는 그게 없어도,  사람들이 무슨 단합이나 이런 회나 그런 것을 열지 안해도 벌써 그 사람이  사람을 욕하는 거, 사람을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을 아주 해치는 그런 말을 하면  그것은 무슨 뭐 관서에서나 이런 데서 말하지 안해도 사회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그런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욕하는 거, 사람을 욕하는 거. 의인을 욕을 했든지 죄인을 욕을 했든지  어쨌든지 욕하는 그 일은 사회와의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 거기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주게된다. 그러기 때문에, 욕할 만한 그런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하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거는 틀렸다 이거는 바르다 그 이상 나아가는 것은 사회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 하나로 보지말고 그 사람이  사회의 사람이며 또 하나님의 심판에 걸려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취급할 때에  그렇게 단독이 보고 취급하지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는 것은 이것도 다  사람을 희망 없이 본다 하는 말입니다. 사람을 희망 없이 본다. 그러면 그것은  지옥과 관련이 있다.

 이래서 이 말씀을 통틀어 말하면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그것은 그 사람 단독에  대해서 상관한다고 그렇게 생각지 마라.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그 일은 하나님의 심판과 이 세상 사회와 또 영원한 보응의 그 지옥과  관련성이 있는 줄 알고 사람에게 관계를 가지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만물에게 대해서 관계 가진 것도 그것이 그 시간이 지나 간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그것이 남아 있습니다. 어데까지 남아 있는가? 남아 있는 건  하나님의 심판에까지 가서 남아 있고, 하나님의 심판에까지 가서 남아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끝이 납니다. 또 그것은 이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필연적으로  거기에 대한 상당한 보응이 그에게 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 사회성인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의, 그 사람과 관계된 그것이 반드시 영원한 형벌과 관계가 돼  있습니다. 영원한 형벌과 관계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우리가  첫째는 멸시하고 무시하고 또 아주 천대하고 그렇게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평가해서 취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크게  해독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저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랑하고 친절히 하고, 힘있는 데까지는 사랑하고 친절히 하고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만 하고 그 이상 지나가는 일을 하지 안하도록 우리가 주의해야  심판도 면하고 또 이 사회의 보응성도 면하고 또 영원한 지옥의 보응성도 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25절에. '그러므로'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나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된 하나님의 것이라. 못난 사람이나 병신이나 잘난  사람이나 뭐 아주 어떤 천한 인물이라도 인간은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다. 또 사회의 것이 되어 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사회의 것이 되어 있다 그 사람의 주인이  첫째는 하나님이요, 다음에는 사회가 위임 주인이 되어 있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의 관계된 것은 영원한, 영원한 나라에서 거기에 대한 정당한 보응이  그에게 오게 된다. 이렇게 사람과의 관계된 것이 영원한 보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이 사회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가 알든지 모르든지 사회라는 그  위임 주인의 소속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잘 잘못을 전부 사회의  보응성으로 필연적으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만일 아 사회를 거슬려서  어떻게 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거기에서 상당한 보응성으로 거기에 대해서  평가가 될 것이고 또 비판이 될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대우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대우하는 하나님의 상이든지 벌이든지 하나님의 상벌이 있다 또  사회의 상벌이 있다, 또 영원한 나라의 상벌이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25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예물 드리는 것은 무슨 참 연보하는 것도 예물이 되겠고, 또 물질 드리는 것도  예물이 되겠고 자기 몸을 드리는 그런 것은 더군다나 더 예물보다 더 귀중한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물을 드린다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어떤 종류로 하나님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다가 거기에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네가 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거든, 잘못한 것이 생각나거든 하나님 섬기는 일을 그 대로 두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일 뭐 기도하는 일이든지 또 예배를 드리는  일이라든지, 전도 심방을 하는 일이라든지, 또 무슨 연보하는 것이라든지.

봉사하는 것이라든지 뭐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섬기는 일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길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다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잘못해  가지고 그 사람이 나를 원망하는 그런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서 잘못된 것을 그  사람과 해결을 짓고 하나님을 섬겨라.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 사람 상대방이 잘못 알고 원망하는 일도 있겠고 직접은 관련이 없지마는  내가 어떻게 한 일이 그것이 원인이 돼 가지고 한 다리 넘어가고 또 두 다리  넘어가고 세 다리 넘어 가고 네 다리 넘어가서라도 내가 무슨 상내방에 대해서  잘못된 그런 원인이 있오면 그 원인을 네가 찾아서 본인으로 더불어 해결지울  것이면 해결지우고, 본인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그것을 먼저 해결을 짓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중에는 제일 일호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애끼고.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애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제일호가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섬기는 데에는 물질 드리는 것도 있고 오만 것  다 있지마는 하나님 섬기는 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구원하고 하는 그것이 제일호가 된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20장에 보면은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비멜렉 족속이  아브라함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해서 아내를 삼을려고 할 때에 그때  아브라함이 만일 그들에게 아내라고 하면은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까 해서  누이동생이라 해 가지고서 그들이 그런 줄 알고 취할라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  노여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 가지고 '그 아브라함은 내가 택한  의인인데 네가 만일 아브라함에게 그런 나쁜 행위를 하면 네 가족을 완전히  전멸하겠다. 씨종을 멸해서, 씨가 나지 안함으로써 전멸이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창세기 20장에 보면은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때부터 아비멜렉 집에 완전히 그만 잉태된 것도  나오지 안하고 잉태도 되지 안 하고 이라니까 그만 완전히 씨족이 전멸되는  것입니다. 잉태된 게 안 나오는 것도 그것도 사람 둘 다 죽지. 둘이 죽지, 또 잉태  안 되니까 다시 종자가 퍼지지 안하지 이렇게 됐을 때에 그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하면서. 그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브라함은 잘못한 것이 없었지마는 아브라함 때문에 그들에게 그런  일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그 원인에 아브라함이 그래도 참 가가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에 안 갔더라면 괜찮고 없었더라면 괜찮은 건데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의 연고로 인해 가지고서 그와 같은 일이 됐기 때문에 그거는 뭐  아브라함에게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공연히 남의 아내보고 탐내  가지고 그렇게 그짓을 했지 아브라함에게는 뭐 죄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을 인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대번 즉사는 안 해도 저주를  내려서 잉태하는 그런 모든 것을 다 막았습니다. 태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영감해 가지고 '너 때문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됐으니까, 너는 잘못이 없지마는 너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잘못 되어 망하게  된 원인이 돼 있으니까 네가 그 사람들을 불러 가지고 그걸 회개를 시키고  잘못했다는, 잘못했다는 자복을 하도록 하고, 잘못된 것을 자복을 하고 회개를  하고 그렇게 해야 네게도 거리낌이 없지 그렇지 않으면 네게 거리낌이 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이 그 사람들을 불러 가지고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네가  잘못됐으니 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멸망을 받을 터이니까 회개를  해라 이렇게 이제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그때에 아브라함  앞과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하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저들이 알지 못하고 그와 같이 범죄한 것이오니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할 때에 아비멜렉 가정에 그 태문이 열려서 다시 자손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21장에 보면, 20장 끝 절 18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21장  1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사라가 잉태했습니다.

그러면 그 일이 해결이 되지 안 하면 사라는 잉태를 못 합니다. 잉태 못 하는  것은, 그 사라가 잉태되는 것은 믿음의 조상 이삭이 잉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깨끗하고 깨끗하고 조그마치라도 털끝만치라도 더러운 거 없이 깨끗해져야  믿음의 조상이 잉태될 수 있지 깨끗지 안하면 믿음의 조상이 잉태될 수 없어서.

아브라함은 잘못한 게 없지마는 자기와의 관련됐기 때문에 관련된 그 모든 것이  다 풀려서 그 사람들이 다 복을 받도록 이렇게 해 놓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거리낌이 없을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사라에게 이삭이  잉태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과의 거리낌이 없도록 크게 힘써야 합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되는 그런 일은 그렇게 별로이 없는 줄 압니다. 잘못되는  일은 별로이 없지마는. 또 잘못된 일도 많이 있을 수 있고 잘못된 일이 없다  할지라도 자기 때문에 상대방이 오해를 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무슨 하나님 앞에  축복 못 받는 그런 일이 있어도 오해를 할 수 있으면 다 이해해서 풀도록 그렇게  해서 어짜든지 하나님의 축복 받는 데에는 사람에게 대해서 거리낌이 하나도  없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할 때에 물론 그 사람이 나쁘지마는 그  사람을 노하는 일, 사람에게 노하는 일 그런 일을 안 해야 되겠습니다.

 저는 노하는 일을 잘합니다. 노하는 일 잘하는 것은 물론 잘하는데 노하는 일은  내가 별로이 한 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잘못됐을 때에, 잘못 됐을 때에  노합니다. 잘못됐을 때에, 참다 참다 잘못됐을 때에 노하는데 노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내게 손해가 옵니다.

 그래서, 노하는 그것은 적극성 있는 참 사람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뭐 그냥  틀렸다 이 소리하고 말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을 꼭 자기의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의 무슨 믿음이라도, 믿음의 자녀로서 아주 가까운 사람, 육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잘못 된 게 있을 때에는 그때 노하지 먼 사람에게 잘못된 게 있을 때는  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먼 사람에게 잘못된 거 보고 노한 일은 제가 예수  믿고 얼마 지난 후부터는 없습니다. 별로이 없다고 내가 기억납니다. 먼  사람에게는 잘못돼도 다 이해하고 고만 그거는 틀렸다는 말도 오히려 안 할 때가  많습니다. 틀렸다 해 봤자 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터이니까, '그 사람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이니까 앞으로 이해할 때가 있겠지' 그래 두지마는 조금 그 사람이  조금 나와 가까우며 그 사람을 요렇고 요렇고 하기 때문에 잘못 됐다 하는 그런  말을 해 주고 또 좀 더 가까우면 네가 내가 과거에 이리 이리 했는네 왜 이런  잘못을 저지르느냐' 그렇게 책망을 하게 되고, 잘못된 거 책망하는 그런 것은 뭐  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은 냉정스럽게 생각하면, 신앙  생활은 참 냉정스러워야 되지. 또 자기의 사랑하는 자 아주 믿음으로 가까운 자,  믿음의 참 직계 후배가 돼서 소망을 가지는 그런 사람들이든지 육의 자녀든지  그런데 대해서 잘못되면 노합니다.

 그러나 제가 육의 자녀에 대해서는 잘못된 것을 노하는 것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잘못된 것을 노했지마는 노할 만한 가치가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하지  않습니다. 노하지 않고, 그저 이래 말을 하다가서 그만 안 하면 말고 그만 그대로  내버려 둬 버리지마는 내 믿음의 제자라고 생각해서 내 뒤의 후배가 될라고서  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면 잘못됐으면 나는 아주 노해서 책망하는데 그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여기서 교역자들 가운데는 ○○○목사에게 내가 노를  잘합니다. ○○○목사가 뭐이든지 잘못된 거 있으면 그만 당장 성을 내 가지고  야단을 칩니다. 야단을 치지마는 또 지금은 조금 멀어졌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뭐  할 필요가 없다. 성까지 내가면서 그 사람에게 나쁜 것을 고쳐줄라고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또 그것이 내가 월권하는 것이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만 하라 이에서 지나가면 악으로 쫓아나온다.' 그것이 네 중심에서 나온  것이지.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라고 하지마는 네라는 것이 속에 섞여 있어  가지고서 되어지는 것이지 깨끗한게 아니다. 이러니까 결과도 좋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할 수 있으면 지금 안 할라고 제가 잘못 인 줄 알고 고칠려고  애를 씁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나빠서 성을 내면 그 사람이 고쳐질 수 있는 그런  일이라도 내가 성내는 그런 희생 해 가면서 고치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입니다.

 왜? 그 성내는 그게 내가 희생을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한 것같이 그런  희생을 해 가지고 희생에 가치있는 희생을 해서 그 사람을 고친다면 좋지마는  성내서 그런 거는 아무 그것이 가치 없고 나중에 심판받을 것이고 그럴 터이니까  심판 받는 그런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심판받는 희생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급 받는, 상급 받는 희생은 할지라도 심판받는 희생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심판받는 희생을  해 가면서 그 사람을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거기에 대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리도 없는 것이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에게 대해서 아주 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섬길라고 하다가 조그마치라도 네가 형제에게 잘 못한  일이 있어서 원망들을 만한 일이 일어나거들랑 그것을 먼저 하나님 섬기는 일 둬  두고 사화부터 하고, 화평부터 하고 그 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사화하는 순서는 자기가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을 자기가 먼저  느껴서 하나님 앞에 고해서 잘못을 고하면 이것이 첫째로 심판이 면해지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서 잘못을 그것을 직접 말해 가지고서  해결을 지우면 그것이 이 사회성과 활동성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 화평을 할라고 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이 내가 잘한 내가 잘못이  없고 나는 잘했고 상대방이 잘못해 가지고 불목돼 가지고 있는 그런 게 많습니다.

그런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화평을 취하는 방법 중에 좋은 방법을  선택해 가지고서 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가서 말 한 마디 하면 해결  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건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편이기  때문에 말하는 게 좋고 또 말해 가지고서 도리어 역효과 날 사람도 있습니다.

말을 하면은 그 상대방이 성을 내가지고서 이러니까 '이제 내가 엉크리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 '엉크리면 더 악을 행하기까지 나한테 굴하고 나한테 복종해서 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기까지라도 할 터이니까' 하는 그렇게 선을 악용하는  그런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가서 직접 말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 가도해서 하나님과의 그 문제가 해결이 되면, 나와 하나님과 해결이  완전히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착수해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서 해결을  지으면은 서로 대면해서 해결 안 지워도 그 문제가 다 해결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만리 밖에 있는 사람이야. 또 어데 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잘못한 일이 있는 것도 대면하지 못 해도 하나님  앞에서 고해서 완전히 해결이 되연 성령이 가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해결지워서  해결이 됩니다. 만나지 안해도 해결이 됩니다. 또 내가 잘했는데, 나는 잘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했지마는 어찌든지 나 때문에 그 사함이 잘못한 그것이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해결해서 내가 그 사람으로  더불어 참 해결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는 소원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한다고 하며 성령이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정리를 해 줍니다.

이러니까 정리하는 데에는 제일 좋은 방편을 택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래서, 어떻게 하든지 그런 것이 없도록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받는 데에 제일 유리합니다.

 그래서,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5절에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길에 있을 때에' 길에 있다 말은. 나를 원망하거나 나를 송사할  자라면, 내가 잘못 없는데 상대방이 그런 거는 송사는 없습니다. 송사 문제는  없습니다. 내가 잘못이 없는데 상대방이 잘못 오해하고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내게 해를 지우는 그런 것은 송사 받을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그저 내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람과 화목을 취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지 무슨 내게 대해서 송사나 뭣이나 그런 거는 없습니다. 언제든지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기준해 가지고이냐,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서  제일 기준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이 송사한다 말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말이 있든지 잘못한 행동이 있든지 또 내가 공연히 상대방에게  말은 안 해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내가 오판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송사를 받습니다. 여기 송사하는 자라  말은 송사하는 자는 누가 송사하는 자이냐 하면은 상대방이 송사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억울한 생각을 가졌으면은 지금은 모르지마는  내가 억울한 생각이 이다음에 나타나니까 억울한 생각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나한테 송사하게 됩니다. '나는 모르고 지났는데 네가 나한테 이렇게 나를  억울하게 원망을 했느냐? 억울하게 날 정죄를 했느냐? 억울하게 날 그렇게  비판을 했느냐? 네가 이렇게 나에게 대해서 오해를 했느냐?' 그거 전부 우리가  송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이 생각나면 어서 길에 있을 때에,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말은,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말은, 길은 천국을 가는 지금  노정에 있습니다. 천국을 가는 노정에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어서 사화하라  그말입니다. 죽기 전에 어서 사화하라.

 그러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말을 해서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있고,  일로 해친 것도 있고 물질로 해친 것도 있고, 또 내가 무슨 행동으로 해친 것도  있고 이래 해친 것이 있는 이것은 나타났지마는 그것이 아닌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해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해친 것은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한 거 마음으로 공연히 그 사람을 시기해서 원망한 거, 다른 사람을  삣고 깎고 헌 거, 다른 사람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제가 심판자 같이 '그 사람  아마 그런가 보다' 이렇게 속으로 잘못 판단한 거. 잘못 판단한 거 그런 거  우리가 있으면 그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 떠나기 전에 빨리 그것을  해결지워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해결지울 것을 해결짓고, 해결지워도 하나님과는 해결지워야  됩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소를 몰아왔는데. 소를 몰아왔으면  남의 소를 도적질 해 왔으면 그 사람에게는 사과를 하고 소는 물어주면 됩니다.

소를 물어줘서 한 마리 도적질해 온 것을 그 소를 도로 돌려주면 그 사람에게는  사화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소 만 물려주고 '내가 줬는데' 하면 안  됩니다. 소를 물려줬지마는 그 사람이 소를 잃어 버린 것으로, 잃어 버림을  인해서 며칠이든지 근심하고 잠을 못 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한, 그 값을  내가 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내가 잘못됐다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그사람 마음이 풀어지면 그것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해결지웠다 할지라도 끝나는 건 아닙니다. 법에서 그거 알면은 징역을 보냅니다.

'내가 소 도적질 했다가 도로 갚았습니다.' 갚았지마는 나라의 법을 범했기 때문에  소는 갚아도 징역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면, 사람이 범죄할 때에 그 당사자에게 범죄하는 죄가  있고 또 그 사람이 보관되어 있는 그 나라에 범죄한 죄가 있고, 또 나라의  범죄까지 다 해결지웠다 할지라도 형무소에 징역 살면 다 해결됐습니다. 됐다  할지라도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고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에게 범죄한 것은  그것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해결해야 됩니다.

 그러면 한 죄를 지었을 때에 당사자간에 해결해야 되고, 또 그게 이 사회나  국가나 무슨 저촉되어 있다고 하면 그것도 해결해야 되고, 또 그거 다 해결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또 해결을 지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크고 작은 것을 다 해결짓는 것이 그게 좋습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이 세상에서 천성길을 걷고 있는 이  도중에 죽기 전에 해셜해라 그말입니다. 길에서 해결하라 그 말은 죽기 전에  해결을 하라,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급히 사화하라, 이런 문제를 두고 있지 맙시다. 이런 문제를 두지  말고 이런 문제 일찍 해결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과 마주 대해서  해결이 안 되면은 혼자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서 해결하고 그 사람이 회개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서 그 사람이 내 눈 앞에서 회개를 하면 그것이 완전히  승리가 되겠습니다.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만일 그때 딱 시기를  지나가 버리면, 딱 죽어 버리면 이제는 할 수 없어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송사를  하게 됩니다. 재판관에게 내어준다 그 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제 가게 됐다, 그  안에 사화했으면 될 터인데 안했으니까 그만 하나님의 심판에 가게 됐다, 심판에  가기 전에 그 전에 어짜든지 해결 지워라. 요새도 보면 무슨 차사고가 난다든지  뭐 어떤 상해죄에 걸렸다든지 하면은 서로 사화해라, 서로 타협을 해라, 이것 또  타협이라, 요새는 돈 주기 때문에 타협이라 말합니다. 타협을 해라, 사화를 해라.

좀 있으면 이제 걸리게 된다 사화를 해라 자꾸 이렇게 된다 말이오.

 이런데, '급히 사화하라 안 하면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주고'  하나님의 심판에 내준다 그 말이오. '재판관에게 내주고 재판관이 관수에게  내어주어' 관수에게 내어준다는 말은 천사들에게 내준다는 말입니다. 보응 시킬  천사들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감옥에 가둘까, 말이오. 거기 대해서 상당한 보응으로 그  사람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서 그 형이 그만침 차차  중하게 되고, 그 형이 점점 과중이 돼서 조그매씩 보태 가지고 형이 중하게 되고,  택자들은 지옥은 안 갑니다. 지옥은 안 가는데 택자들이 갇히는 그 감옥은 어떤  것이 택자들이 갇히는 감옥인고 하니 그 사람의 자유의 범위가 축소됩니다.

자유의 범위가 축소되고 활동의 범위가 축소가 됩니다. 이래서, 다시 말하면 그  사람에게는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서 다 있지마는 고 사람  하나에게 내가 잘못해서 걸린 게 있으면 그 사람이 그걸 놔 주지 안하니까. 놔  주지 안하고 언제든지 놔 주지 안하고 가지고 있으니끼 고만치 벌써 자기는 활동  범위가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가면 제일 영광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데든지 자유하고 자유 못 할 데가 없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에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세상에서 뭐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이렇게 오해 곡해로써 원수된 게 많이 있지마는 가서 보니까 전부, '아, 와서 보니  내가 잘못이지 당신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래서, 아무  사람에게도 거리낌이 없어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는 사람. 내가  그 사람, 마음 속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사람. 이래서, 하늘나라에 가서는  사람이 사람 속에 얼마든지 다닙니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곳이 어데냐 하면  하나님 속에 출입하는 것이 제일 좋고 그 다음에는 사람 속에 출입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관광을 갔는데 아주 자연의 아주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아주 평강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 일행 가운데에, 일행 가운데에 자기를  원망하고 불목한 그 사람이 일행 가운데에 하나 있으면은 그 사람 하나로 인해서  그 사람은 아무리 좋은 자연 속에서라도 그만큼 거리껴서 벌써 기쁨의 원만은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이 돼서 이 사람과도 마음이 통하고 저  사람도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자유로 취급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나아갔을 때에 그 사람은 평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과 거리낌이 있으면 그것은 그 사람이 무슨 나를  말하지 안할지라도 그 사람은 모르나 내가 그 사람에게 거리낀 게 있으면 내가  거리낀 그것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자유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유하지를 못해서  그만큼 자기의 벌써 자유는 제한 돼 있고 그만큼 자기의 활동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그것이 벌써 감옥에 갇히는 것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러기 때문에, 이 해결을  짓지 안했으면 해결 안 지운 거는 그거는 영원히 있습니다. 영원히, 해결 안 지운  것이 천국 가서는 해결짓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해결지워야  됩니다. 해결짓지 안하고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그 나라에서  해결짓지 안하고. 그게 그만 하늘나라에 가서 그 사람의 영광이요 존귀요 자유요  그의 무대요 그의 활동의 범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무생물에게 거리낌보다 곤충 한 마리라도 생물에게  거리끼지 않는 것이 좋고 그보다 더 큰 것은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자기를 깨끗게 해서 참 하늘나라 갈 때에 저 사람  마음 속에 내가 못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이 못들어 오게, 상대방이 못 들어오게  해 가지고 못 들어가는 것 아닙니다. 남의 마음 속에 자유로 출입하는 그것은 그  사람이 나는 못 들어오게 해서 내가 못 들어 가는게 아니오. 내 양심의 가책으로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 만나서 제야 날 원수로 품고 있어도. 원수로  품고 있어도 나는 그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이. 그 사람에게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유롭고 그 사람이 나를 욕을 한다 해도 나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유롭게 그 사람마음 속에 활동하고 출입할 수 있지마는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됐으면 그 사람은 나를 암만 모르니까 환영을 해도, 환영을 해서 영접함을  받았어도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내 마음은 절대로 그 사람 마음에 자유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거리껴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든지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 또 모든 생물들에게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 모든 곤충들에게 자유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언제 두꺼비를 누가 잡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두꺼비를 오층에 길렀습니다.

기르면서 다른 사람이 욕할 만치 지렁이를 많이 지렁이를 잡아 가지고 이래 줘서  이래 길렀는데, 기르다가 '아무래도 이거 내가 마음이, 시간이 뺏겨 안 되겠다.

이걸 보내야 되겠다' 할 때에 그것을 어디로 보낼꼬 해서 제일 살기 좋은 곳으로  보내야 되겠다 해서. 인가 가까운데 보내면 잡혀 죽을 것이고 또 버러지 없는 데  가면 굶어서 죽을지 모르겠고 그래서 저 양사방 보내면서 좋은데로 보냈는데.

어제 저게 양산동에 가서 산에 가서 가도하면서 기도하는 골짜기에다가 내가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한 마리 보내 거기에 아마 먹을 게 많을 거고 살기 좋을 거다  싶어 보냈는데, 내가 어제 기도가 안 나오니까 그게 생각이 나서 거기에 대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두꺼비에 대해서 '아, 이거 두꺼비에 대해서 내가 무슨 거리껴서  제 자유로 사는 걸' 내가 잡아온 것은 내가 잡아온 것대로 또 잡아온데도 거기  있으면 그만 잡혀 죽을 데입니다. 인가 가까이서 잡아 가지고 왔어요. 이랬지마는  '이거 내가 기르다가 그만 절 내 보내 버렸는데 여기에 와서 잘 사는가 모르겠다.

그게 혹 원망하지 안할까' 이래서 내가 기도를 약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두꺼비에게 내 혼자 말하기를 '두껍아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있거들랑  무서를 하라. 그라고 내가 너를 잘 한다고, 여기 살기 좋다고 보냈는데 혹이 네가  잘 살고 있는지 혹 잘못 살고 있는지 모르기는 하겠다마는 혹 거리낀 게  있었으면 그걸 이해해라' 그래 내가 잠깐 간단하게 기도를 지나가고  그랬었습니다.

 물론 말이지요, 우리가 고기를. 고기를 먹는 거는 좋습니다. 고기를 잡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있지마는 먹는 건 좋지마는 그 고기를  괴롭히면 안 됩니다. 괴롭히면 내가 괴롭혀도 잘 살려야 되지 그 고기를 만일  관상용으로 이래 넣어 놔 가지고 이래 해서, 그러면 그걸 잘 살려서 하면  되지마는 그걸 잔인하게 했으면 잔인성에 대해서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 마음을 어짜든지 인자하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이래서, 오층에 내가 고기 몇 마리를 기를 때에 모두 오면 '아따, 오층 고기는 참  복도 많다.' 목사님은 저 고기만치 우리를 대우해 주지 않는다고서, 고기만치 대우  안 해 준다고. 우리 자녀들도 와 가지고 아버지는 고기만치 우리를 저렇게 대우  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도 내 마음은 그런 자유 세계에서, 자연  세계에서 사는 걸 이렇게 감옥에 가둬 놨으니까 마음에 그에게 대해서 죄스럽지  않습니까? 이라다가 그래 나중에 보낼 때에는 그걸 저게. 어디로 보낼까 양사방  사람 보내서, 낙동강에 보내면 이놈이 훈련이 안 돼 가지고 당장 잡아 먹힐 거고  이래서 저 대연동 고기 기르는 집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때 그거는 아마 몇만  원 갈 수 있어요. 입 주둥이가 이만한 비단 잉어 아주 좋은 건데. 그래서 그 뒤에  한 번 가서 방문해서 이게 잘 살고 있나 한번 가 볼라 하는 게 가보지 못  했습니다.

 어쨌든지 우리는 만물이나 모든 생물들이나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뭐 나무를 이거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베어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베어서 사용할 수 있지마는 그 나무에게 대해서도 잔인성을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나무에 악독성을 가지지 안해야 됩니다. 그걸  내가 얼마든지 베어 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뭐 수천 수 만 주라도 베어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베어 쓰도록 했기 때문에. 베어 쓰는 것은 그거는 상관  없지마는 그 나무 한 개라도 아주 괴롭히기 위해서 이기 얄궂게 잡아 매었다고  하면은 그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만당에 똥장군을 지고 올라가다가 나무 가지가 딱  옆에 있다가서 눈을 쿡 찔러 버리니까 부애가 나 가지고서 나무가지를 이래  거머쥐고 꺾을라고 하다가 아차 하면서 중단해 가지고 '아이구. 이거 내가 조심  안 해서 이래 놓고 제 자유대로 사는 걸 꺾어서 이래 할 필요가 뭐 있느냐? 내가  그랄라면 차라리 이 길이 안 됐으니까 길을 치기 위해서 막 꺾어서 이래 나무를  쳐 가지고 길을 내는 건 좋다. 그러나 내게 눈 찔렀다고 괘씸해서 거머쥐고 확  꺾을라고 하면은 고 속에 내 속에 악이 자라게 되고 고게 잔인성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뒤로 물리치고 다시 그 나무에게 사과를 하고 지나갔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짜든지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도록 자기를 깨끗게 만듭시다.

깨끗게 만든다고 못 사는 거 아닙니다. 깨끗게 만들수록이 자유롭고 기쁘고  평안하고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이러니까, 어떤 다른 사람이나 한테 잘못됐다  할지라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래만 하고서 그 이상 나아가는  그런 위험스러운 일을 우리가 하지 않도록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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