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인관계의 투자


선지자선교회 1982년 6월 30일 수새

 

본문 :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무궁세계를 소망하고 가는 우리들입니다. 무궁세계를 소망하고 가는  우리들입니다. 무궁세계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 받으신 주님이 왕으로  계시고 또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 위에는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위에는 없습니다. 성부가 계시고 또  우리 구주이신 성자가 계시고 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면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는 다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이 세  분이신가?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요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이신데 위가 셋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위가 셋입니다. 그러면 위가 셋이요 그 본체는 하나이십니다.

본체가 하나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 위로 나타나셨습니다.

 위는 그 지위 권위 모든, 이를 여러가지로 발표할 수 있는데, 위는 그 위마다  직책이 각각 다릅니다. 모든 직책은 위에 따라서, 동장 위가 있겠고, 또 동회  안에서도 이런 사무를 맡은 이런 사무의 위 저런 사무의 위가 있겠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부의 위가 있고 성자의 위가 있고 성령의 위가 있습니다. 그  직책에 따라서 한 하나님이 이런 위의 하나님으로 저런 위의 하나님으로 그렇게  이름을 당신이 선포하셨고 그렇게 또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이 삼위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 텐데, 이 삼위의 하나님을 모시되 그  관계가 먼 사람도 있고 가까운 사람도 있고, 대립되고 충돌되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그런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다 제거돼 버립니다.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다 제거돼 버리고 그런 것은 그 나라에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실상으로 나타나느냐? 하나님과 멀고 가까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먼 것이 그 나라에 있는-그 나라는 영계만이  아니라 영계와 물질계가 통일된 나라가 그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도 같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가 피조물과  제일 가깝고, 하나님과 제일 먼 자가 피조물과 제일 거리가 먼 이런 관계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과 지금 우리가 관계를 맺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이분과 관계를 맺는 이것이 영원 무궁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정권이든지 그 정권 아래에서 그 정권자와 관계의 원근에 따라서 그게  권세도 되고 능력도 되고 활동도 되고 영광도 되고 존귀도 되고 가치가 되는  것처럼 무궁세계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나라의 관계를 맺는 것인데 그 관계를 맺는 그 방편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더불어 관계를 맺는 그것이 곧 성령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요,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요.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그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대한 일이요. 또  자기에게 대한 일이요, 상대방의 그 화복을 내가 조성하는 일이요, 그것이  막바로 자기의 세상 화복을 마련하는 것이요. 무궁세계의 화복을 마련하는  것이요, 만물들과의 관계를 마련하는 것이라.

 사람 하나에게 대해서 하는 그것을 단순히 사람 하나에게 대해서 한다고만  그렇게 생각지 말고, 사람 하나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 금생과 내세, 하나님과  모든 사람, 만물, 자기에 대한 일이라, 그것이 바로 이것이라 하는 것을 어제  일곱 가지로 어제 아침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함이요 너희를 배척하는 자는 나를  배척함이라. 나를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를 영접함이요 나를 배척하는 자는  아버지를 배척함이라'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성도, 그밖에 안 믿는 사람들,  이렇게 순위로 되어있는데, 그것이, 마지막에 안 믿는 사람에게 행하는 그것이  바로 성도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요, 성도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 성령 성자  성부에게 대해서 하는 일이 되는, 이렇게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삼가라.

사람 취급을 조심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취급할 때에 참 그 취급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 취급하는  그것이 너무도 밑천이 많이 듭니다. 사람을 취급하려고 할 때에 속 썩는 일도  많이 있고, 또 손해가는 일도 많이 있고, 너무도 희생되는 일도 많이 있고,  사람을, 사람에게 행하는 그것이 너무 밑천이 많이 든다 말이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사람에게 행하는 그것이 너무 자본이 많이 들어. 밑천이 많이 드니까  사람들이 행하다가 그만 낙심해 버리고 중단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 비유가 될런지 몰라도, 요새는 지금 그런 것이 좀 적은데, 금을 캐는  금광을 하는 사람이 금광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시작에 많이 들어가요.

또 얼마동안, 한 여남은 길 파 들어가는 데는 돈이 꽤 많이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것은 비용 들어간 것의 백분지 일도 안 됩니다. 백분지 일도 안  되니까 그만 사람들이 현재에 수지 계산을 보태 보면 너무도 그 하는 것이  백분의 일도 안 되니까 백분지 구십 구는 손해가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낙심하고  안 하게 된다 그거요.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이 와 가지고, '이거 손해가니까 집어던지면 싶다' 할  때에 '그것을 내가 살 터이니까 그러면 그것을 팔아라.' '얼마나 줄 거냐?'  '얼마든지 달라하는 대로 말해 봐라.' 달라 하는 대로 달라 해. 그래 얼마를  달라 하니까, 몇천만 원 달라 하니까 '그러면 내 주지.' 얼른 주고 사 버립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사는 것은, 이 사람은 그저 다만 그 비용 든것만 줘도 벌써  줄 터인데, 이 사람에게 돈을 달라하는 대로 다 주고 사는 그 이유가 뭐 인가?  이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유식하다 그 말이오. '아, 이 금줄이 지금은 이렇게  허무하지마는 얼마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이고, 얼마 들어가면 어떻게 되고' 그  지질에 대한 지식을 가져서 그걸 환하게 다 알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것을  돈을 주고 삽니다. 돈을 주고, 그만침 요구대로 돈을 주고 샀습니다.

 샀는데 이제 지질에 대해서 아주 유능한 그런 재벌가들을 소리해 가지고 다시  감찰을 해 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현재에 몇백 억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몇천 만 원 주고 사 가지고 몇백 억의  가치가 있는데 몇 십억을 내라 하니까 그 사람들이 덜렁 주고 삽니다. 이래 사  가지고 얼마 들어가니까 고대로 지질이 변해서 나오고 금이 나오고 좀 더  들어가니까 더 나오고 이래 가지고 아주 그것이 나중에 그뭐 한정없는 그런  가치있는 그런 금광이 되는 그런 일들이 과거에 더러 많이 있었습니다.

 속에 있는 그 가치를 모르면 그 사람이 돈 조그매 들어간 것도 그만 손해갔다  해서 낙심하고 얼마 돈 주려 하니까 팔아 버렸습니다. 돈을 몇천만 원 주고 산  사람이, 그 사람이 또 누가 와 가지고 몇억을 주려 하니까 덜렁 팔았어요.

 그러면, 조금 자본 들여 가지고 헛일 했다고 비용이라도 주면 팔려는 사람과 또  몇천만 원, 그런 못 쓸 것을 몇천만 원 주고 사는 사람과 몇천만 원 주고 산  사람이 또 몇억만 원에 팔라 하니까, 몇 억만 원을 주고 사는 사람과, 그게  뭐이냐?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제가 고제 있을 때에 고제에 삼봉산이라는 금광이 있었는데, 그 게 가치가  어떻게 많은지 당장에 도로도 나고 전기 전선 전부가 다 설비가 되고 굉장한  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갑자기 그 첩첩산중에.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을 취급하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이것이 너무 밑천이 많이 든다 그말이오.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너무 희생도 많고 인내도 많아야 되고 또 억울함도 많고  별별 일들이 많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까짓 걸 뭐 이렇게 할 게 뭐이냐? 나도 한번 인간 대 인간으로  한번 해 봐야 되겠다' 하는, '뭐 한다고 이까짓 걸 거머쥐고 이렇게 사람이 온갖  희생을 당하고 온갖 속을 썩힐 필요가 뭐 있겠느냐?' 그렇게 시람이 생각하는  것이 다 일반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을 지금 조성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결과를 지금 맺고  있는, 어떤 영원을 이루고 있다는, 이 보잘것 없는 그것이 영원히 지극히 큰  굉장한 무한의 가치 있는 것을 조성하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알  때에는 그것을 위해서 참을 수도 있고 손해볼 수도 있고 또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도 있고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대국 문화국에서 아주 약소국 미개국, 그 뭐 사람으로 취급할 수도 없는 그런  아주 야만 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전하다가 그들이 이해하지를  못하니까 할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그랬으면 이제 원수나 갚아야 될 터인데 할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나니까  아들이 가 가지고 또 거기에 가 가지고 그 일을 계속 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아들 죽이고 이대나 죽임 당했으면 됐지,  이제 이대니까, 부수모수니까 원수를 갚아야 될 터인데 삼대 만에 그 손자가 또  가 가지고 그렇게 감사치 못하는 자들에게, 이해하지 않는 자들에게, 옳은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아주 그 야만인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취급해서  3대가,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려고, 구원을 하려고 하다가 삼대가 그들 손에 다  죽임을 받은 이런 일을 해도 사대 만에 또 가 가지고 그 사랑 그 은혜 그 일을  계속하다가 비로소 그 야만국에 참 복음이 들어가 가지고 야만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이것이 세계의 기독교의 개척들입니다.

 기독교의 개척으로서 미개국에 이 복음이 들어가는 데에는 다 이런 순서로  들어갔기 때문에 '교회는 피값이라' 교회사가 말하기를 '교회는 전부 피값이라'  피를 주고 사야 되지, 그 말은 '생명을 주고 사야 되지 딴 거 가지고는 사지  못한다.'  그러면, 그까짓 거 그래 봐야 죽임만 당했지, 한 사람 두 사람 믿다가 그런 꼴  당하니까 다 낙심해 버리고, 3대가 가서 죽어도 예수 믿는 사람 불과 숨어서  믿는 것, 믿는가 마는가 하는 한 3, 4인, 2, 3 인밖에는 안 되는 그까짓 거 보고  그렇게 문화국의 위대한 문명의 사람, 문명인들이, 위대한 학자들이, 유력한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 희생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 희생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희생할 필요가 없는데 그 사람들이 왜 하느냐? 그것이 곧 만주의 주이신  주님으로 더불어 관계를 맺어 주님을 위해서 대접하는 것, 주님을 대접할 때  주님이 대접인 줄로 인정을 하지 못하고 대접한다는 것에 대해서 칭찬 하나도  없고 이렇지마는, 주님이 대접한 데 대해서 그래도 주고 받아야 재미가 있는  것인데, 대접하면 '고맙다 수고했다' 이래라도 해야 되는데 아무 그런, 대접하는  그것에 대해서 상대방의 응보가 하나도 없다 말이오.

 응보가 하나도 없는 그 일을, 그 일을, 주님을 위한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그것이 성령을 위함이며 아버지를 위함이며 삼위일체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일인데 조금 대접을 하니까 그만 '야, 너 수고했다. 네가  수고했으니까 이만한 상을 받아라.' 이렇게 하는 것과 3대나 4대나 가서 해도  나타나 보이는 것도 없고 아무런 하나님의 대접도 없고 이래도 계속해서  했으니까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갈 때에 어떤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감사와  하나님의 칭찬과 하나님의 보상이 클 것이냐 그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런 비밀이 속에 들어 있는고로 인인 관계를 이렇게 큰 자본을  들여서 조심있게 이렇게 상대를 하는 것이지, 이런 보이지 않는 지극히 큰 이  사실이 없으면 사람들은 인인 관계에 다 낙심하고 맙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너무도 눈에 보이기에 가치없는 일을 인해서 그 희생은 지극히 큰  희생을 해야 되기 때문에 누가 그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말이오. 해  봐야, 몇 백만 원 들여 봐야 찍해야 몇 천 원짜리도 안 나오는 그 짓을 누가  하겠소?  그러나 그래 파 들어가면 저 안에 아주 노다지가 있어 가지고 굉장한 그 가치가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무가치하다 하는데 사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너희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함이 나  보내신 아버지를 영원함이라' 이 세상에서 인인 관계의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이것이 이렇게 뿌리가 깊어서 그것이 막바로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요,  주님에게 감사치 못하는 자에게 자꾸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이 감사 안 해도  주님에게 그대로 충성하는 것이니까 그 사람의 가치가 점점 주님 앞에서는  커지게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인인 관계를 맺을 때에 눈에 보이는 그것이 다가 아니고, 그  인인 관계는 하나님 아버지에게까지 관계가 되어지는 이 사실인, 뿌리가 깊고  높고 지극히 큰, 무궁세계에서, 이 세상에서도 조그만한, 그저 몇 해 동안  조그만한 나라에서 정권 잡은 그 사람도 정권 잡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사귀려고 하면 사귀어집니까? 사귀기 어렵다 그거요. 또 아주 강대국의 제일  권세자는 사귀기가 더 어렵다 그거요.

 이런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이는 기한도 없고 알파와 오메가로 영원  무궁한 그 나라의 지극히 크신 분 그분으로 더불어 내가 관계 맺어지는 이 아주  깊고 영원하고 무한한 그 가치성을 가지고 있는 그 가치성이 아주 무가치한 이  오늘의 이 일에 이것이 좌우되고 여기에서 결정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에 자본 넣기를 아껴 하지 않습니다.

 미개국에 가 가지고 3, 4대나 그 사람들에게 욕 받아 먹고 발길로 차이고 매도  맞고 뺨도 맞고 욕도 얻어먹고 조롱도 받고, 안되면 저거 마음대로 뭐 사람 취급  안 하니까 죽이기도 하고 이렇게 3, 4대나 이렇게 큰 희생을 당하는 이런 일을,  찍해야 사람 믿도록 만든다 해도 불과 몇 사람밖에 믿게 못하는 그 일을 위해서  이렇게 위대한 자본을 투자한다는 것이 이것이 참 천치 바보의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참  그거는 도무지 백해 무익이지 유익이 없는 그런 일을 하는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그것이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지극히 큰 일이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 관계를 맺을 때에 그것이 막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영원 무궁을 결정짓는 지극히 큰 결과를 지금 두고 있는 이 결과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앞에 나타나는 그 사람의 모든 크고 작은 모든 것은 영원 무궁한  세계의 하나님이 그 끝에 맺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지금 가장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으로서 움싹이 나와 가지고 있는 것인 줄 알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것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 이런 소망이 있고  이런 좋은 결과가 있기 때문에, 그 맺는 가치성을 가르쳐 준 것이 성경이요 또  맺는 그 방편을 가르쳐 준 것이 성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방편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 방편대로 해야 되는데 성경 방편은 우리가 잘못 알면 이것은 '희생만 하면  된다. 어찌 됐든간에 그저 대항만 안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절대 대항주의입니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을 돌려 향하라' '뭐 뺨을 때리든지 말든지 그저  대항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라' 이래서 이걸 보고 '기독교는 무저항의 도라  저항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라' 이렇게 사람들은 말하지마는 그거는 잘못 깨달아  그런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절대 대항해서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우는 싸움인데, 왼뺨을  때릴 때에 오른 뺨을 돌려 향하는 그것이 뺨 떼리고 맞고하는 그 싸움 껍데기  속에 '죄의 종이 되나 안 되나' 하는 그 속 싸움이 있기 때문에, 속 싸움을 지지  않기 위해서, 겉 싸움은 져도 속 싸움만 이기면 되기 때문에, 속싸움,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 그 사람이 오는 데에 그 사람에게, 그것도 환경이요 현실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피동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 현실을 다스리는 사람되고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되기 위해서, 다스림 받지 않는 사람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현실에 피동되지 않기 위해서, 환경에 피동되지 않기 위해서,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 노릇을 그 자리에서 끝까지 계속하기  위해서, 사람이 모르는 그 속에 숨은 싸움이 굉장한 싸움들이 있다 말이오.

 굉장한 싸움들이 있어서 이 싸움을 싸우느라고 지금, 이 싸움에 안 지기 위해서  지금, 그 싸움을 이기는 방편으로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지 기독자들이  무저항의 주의는 아닙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어서 오래 되면 참 이제 이거는 뼈 없는 사람, 뼈가 없이  좋기만 좋은 무골호인의 사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아무 정의도 공의도  진리도 없는 그런 사람, 또 예수 믿고 오래 지나면 이중 삼중 거짓부리 많이  하는 사람, 왜? 이중 삼중을 지금 배우고 듣고 이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또 아주 복수심이 강한 그런, 아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독하고 아주  모질맞은 사람, 잔인한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유강이 겸해서 성경대로 유하고  성경대로 강하고, 이래서 성경이 아주 세밀하고 까다롭고 철두철미한 것처럼  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져 가는 사람도 있고,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 취급을 눈에 보이는 그것을 다라고 생각지 말고 그것이  막바로 영원 무궁세계의 최고자의 그분과의 관계를 맺는 지극히 큰 것이 거기에  매여 있는 줄을 알고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앞으로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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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인원이 필요합니다. 점심 식사를,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실 수 있는 분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종일 있다 그말입니다. 봉사할  일이 있다 그말이오. 또 여기에서 간식을 열시와 네시에 간식 주는데 뭐  그만하면 또 배 부를 수도 있습니다. 봉사원들도 오늘은 국수를 해 가지고  그렇게 대접을 할 겁니다.

 이러니까 수고하는 분들은, 그분들 가지고 안 되니까 오시는 분 중에 간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은 얼마든지 채용을 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내나 봉사라. 이러니까, ○○○집사님이 오늘 좀 이 봉사를 도우십시오. 너무 또  필요 없는 인원을 많이 하면 저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사가  방해하는 일이 돼. 꼭 적당한 인원을 얼마든지 등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하러, 유급으로 일하려고 하던 분들 여기에 등록한 분들은 몇이든지  다 오늘은 나올 수 있답니다. 품으로 일할 사람, 그런 분들은 이제까지 일을 못  했지만 오늘은 뭐 몇이든지 와서 일할 수가 있다니까 다 나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 나와도 되지요?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어제도 시비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래 가지고 직원  중에 몇 사람은 파출소에 가 가지고 한 열 시간가량 거기서 붙들려  앉았었습니다. 그것은 일은 이쪽이 잘했고 저쪽이 아주 나쁘게 했고, 또  경관들은 공평 없이 그렇게 했고, 뭣을 바라고 그랬는지 그렇게 했고, 그것이 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되겠고, 또 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그 일을 처음에 조금 참석했는데, 내가 그 일을 맡아 가지고 그 일을  하려고 하다가 '내가 안 해도 뭐 저거끼리 잘하겠지' 하고 했는데 그 일을, 그게  잘못됐어. 손해가게 했다 말이오. 잘못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인인 관계라는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일곱 가지 기도하는 일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해야 됩니다. 뭐 일은 아주 잘  진행이 됩니다. 제가 보는 대로는. 이번에 하는 일은 아무 뭐 힘들지 아니하고,  그저 아무 힘이 들지 아니하고 술술 잘 돼 나갑니다.

 이것은, 먼저 지난 번에 모두 한 사람들은 개척자들이라, 다. 개척자들이기  때문에 개척에 수고를 많이 해 놓으니까 그 다음에는 지금 모두 다 개척이 돼서  기술들도 늘어 있고 경험도 있고 이러니까 잘 돼 나가는 줄 압니다. 또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하니까 그런데 어쩌든지 기도를 많이 해서 순조롭게  되면 뭐 상상 외에 빨리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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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인생의 두 길/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811005월새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