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치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14일 목새

 

본문 : 고전 15:42-44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행위의 가치는 진리로 말미암습니다.

 그 사람이 인간이 보기에 세상적으로 어떻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결이 없으면  그는 죽은 송장입니다. 죽은 송장 또 그 사람의 행동이 세계를 움직일 만치  그렇게 폭넓고 인간들에게 크게 인정을 받는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뜻,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여지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면 그는 다 멸망한 일 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왔다 간 모든 사람이나 지금 머물고 있는 사람이나 그 모든  사람에게 첫째의 가치는 살았느냐 죽었느냐 하는 이것입니다. 산 자는 영원히  살고 죽은 자는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중생한 사람이냐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냐 그것을 두고 우리는 평가해야 되겠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의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그 일은 다 죽은 일입니다.

 브레즈네프라는 뭐 소련의 수상이나 또 등소평이나 김일성이나 이런 사람들도  참 위대한 사람으로 일하지마는 그 자체들이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불택자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살아날 자들인지는 모르지마는 현재 그  행동을 봐서는 죽은 자들입니다.

 등소평 같은 사람은 어째 보던 제가 살아났다 할지라도 자유하지 뜻해서 그렇게  무신론과 유물주의를 주장하는 것같이 보여지지마는 그러나 그는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나지 못한 사람이라 그렇게 우리가 봐야 합니다, 행동도 그러하고.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에게 대해서 첫째로 평가하는 것이 '저 사람은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났나 살아나지 못한 사람이냐?' 이것을 두고 평가하는 이것이  자기의 지혜입니다. 만일 중생 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하면 그 일은  어떤 일이든지 다 이미 썩어진 일이라 이랬습니다.

 "성령을 위해서 사는 자는 영생을 거두고 육체를 위해서 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 "썩어진 것을 거둔다" 그러면 성신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 썩어진 일들입니다.

 썩어진 일이 있고 또 영생하는 일이 있고, 일은 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썩어진 일 있고 영생하는 일 있고, 또 사람으로서는 죽어 있는 사람 있고 살아난  사람 있고,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났다" 그 말은 다시 살아났다 그 말입니다.

거듭났다 그 말은 재생됐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저 일이 썩어진 일이냐 산 일이냐? 그러면 산 일은 영생합니다.

'저것이 영생을 가진 일이냐 썩어진 일이냐, 죽어 가지고 썩어진 일이냐 영생을  가진 일이냐? 저 사람이 생기를 얻었느냐 생기를 못 얻고 지금 죽어 있는 자냐?'  이것을 똑똑히 따로 보고 평가하지 못하면 우리도 그 마귀의 유혹시키는 혼란  속에 빠져서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둘째는 '저 사람의 심신이, 저 사람의 육이 온전한 치료를 받았느냐  치료받지 못하고 그것이 썩었느냐?' 남아 있는 것은 치료받을 수 있는 썩지 않은  성한 송장이지마는 그것이 차차 썩어 들어갑니다. 썩어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썩어 들어가느냐? 현재를 통해서 썩어집니다. 현재를 통해서 썩어지든지 그 썩을  것이 치료되어서 살게 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에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난다" 그 말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치료받는다 그 말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욕된 것이  병원에 들어가 가지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치료받아 나온다. 또 약한 것이 그것이  들어가 가지고 강한 것으로 치료되어 나온다.

 여기에 "심고" 하는 그 말은 치료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썩을 그것이  심어져 가지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 나온다, 약한 것이 심어 강한 것으로  살아 나온다, 욕된 것이 심어 영광스러운 것으로 삼아 나온다. 육의 모든 것이  심어 신령한 것으로 살아 나온다.

 신령한 것으로 살아 나온다니? 신령이라 말은 이는 시간과 공간에 모든 제한을  다 초월한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그것은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뭐 억만  년 가나 천 년 가나 그는 시간에 다함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했고, 또  여기에나 저기에나 여기에 있고 싶으면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고 싶으면 저기에  있고 아무리 무리덩어리 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우주에 가득 파고  있으면 가득 차는 그것이 공간에 제한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그런데 죽은 것이 살아나는 그것은 벌써 등록되어 있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그것은 지난밤에 말한  대로 등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벌써 영원 전 이 사람은 구원되기로 작정되어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우리의 구원이 영원한 때 전부터 됐다" 이랬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 이것은 기본구원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  이랬습니다. 실은 따져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자는 죄로 멸망을 시키지  못하도록 벌써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난 것이 이 타락이라는 그 1차대전에  죽는 이 순서를 하나 통과하는 것뿐이지 그것이, 그것을 멸망시키지는 못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죽은 자들인데,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움을 받았다" 말했습니다. 그러면 죽은 우리가 살아나는 것은  제가 살아나고 싶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애를 써서 살아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이 뭐 살아나겠습니까? 우리는 영감적으로는 완전히 죽었고 진리적으로는  완전히 죽어서, 죽은 것이 산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영감에서 떨어져  죽었고 진리에서 떨어져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영감이나 진리의 움직임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죽은 썩는 행동만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나고 난 다음에 하루 살면 하루 산 것만치 썩었다 그 말입니다. 만일  50년 살았으면 50년 산 그것은 벌써 그만치 50년 동안 썩은 것입니다. 하루 살면  하루 사는 게 썩는 것이오. 한 시간 살면 한 시간 사는 그게 썩는 것이오. 썩는  것인데 그 썩는 것이 치료받으면 썩지 않을 영생이 돼 버립니다.

 그런고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것은 벌써 영원한 때 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출생된 자 이것만이 살아나지 그 외의 것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있는 인구의 수효가 얼마가 되든지 그 많은 수에 등록되어 있지 않는  자라고 하면 그 수는 아무리 많아도 등록되어 있는 자 하나의 가치를 못 당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천년왕국 세계를 만날 건데 그때 우리 구원 얻은 사람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해 가지고 천년왕국 세계에 우리가 가서 무궁세계에 왕노릇 할 그  왕노릇을 한번 연습해 가지고 무궁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는  부활, 다 같은 사람이 같이 살지마는 우리는 부활한 사람이오. 그때에 번식  인종은 부활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모르지마는 우리는 그들을  압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과해 가지고 부활한 첫째 부활에 참여한 부활된 사람이 예수님  재림 후에 천년 왕국 세계에 가 가지고 그때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치합니다. "천년 동안 왕노릇  한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왕노릇은 영원무궁합니다. 그러나 "천년 동안" 그거는  천년으로 한정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그때에 번식 인종들은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셀 수 없을 만치, 지금보다  많을는지 지금만치 될는지 어쨌든지 많은 숫자가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그것은  다 죽은 송장들은 송장들인데 생기를 얻지 못합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마는 중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중생이 없으니까 천년왕국 세계에 그 수많은 사람들과 중생 된 한 사람과 비교를  못 합니다. 중생 된 한 사람은 우주와 영계를 다 통치하는 데에 동참할 수  있지마는 거기에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몰려 들어가서 다 멸망받고 구원 얻을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천년왕국 시기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여호와의 증인이니 이런 사람들은 어떤 구원을 말하고 있느냐? 천년왕국  시기의 그 번식 인종들을 말을 하고 하늘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하늘 구원은 벌써 14만 4천 인으로 결정돼 있다. 하늘 구원은 걸만  4천 인으로 벌써 결정돼서 그것은 다 벌써 구원이 돼 가지고 있고 그 나머지기는  14만 4천 인 속에 들어가는 이 하늘 구원은 얻지 못하고 땅의 구원을 얻으니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는 이런 구원 얻는다.' 그들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천년 동안 사는 그 구원이라. 그들은 말하기를,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는 이것을 착각해 가지고 천년 동안 그때 생식하면서 산다.

독사의 구멍에 아이가 손을 넣고 사자가 짚을 먹고 하는 그런 세계, 그때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무저갱에다가 가둬버립니다. 마귀를 무저갱에다 가두니까  피조물들이 피조 된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그대로 있고 마귀의 이 침노와 유혹을  받지 않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다 선량합니다.

 선량하지마는 천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부득이 이것을 멸하기 위해서 마귀를  내 놓습니다. 마귀를 내놓으니 갇혔던, 그 천년 동안 갇혀 있던 사탄이  놓입니다. 놓이니까 잠시 동안에 사탄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천년 동안에 번식  인종들은 다 마귀화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없기 때문에 거기에 생명 역사가 갈 수가  없고 그때에 성령과 진리와 피가 보증을 해야 되는 데 그 보증이 없습니다.

 피의 보증도 없고, 진리의 보증도 없고, 성령이 그 일을 책임 맡는 이 보증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모조리 사탄의 것으로 마귀의 것이 되어 가지고 성도의  진을, 부활한 성도를 해하려고 달려들지마는 부활한 성도들이야 그와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들이 암만 와 봤자 근방에 오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 암만  쥐고 저거 마음대로 죽이려고 불에 태워봤자 타지지 않는 것이니까 소용이 없어.

벌써 그런 것들을 다 초월한 것인데. 성도의 진을 둘러싸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가지고 그것으로 마지막 전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도 그 1차대전의 인간의 원죄와 본죄로 다 죽은 자들이 천년 왕국 시대에  번식 인종으로 삽니다. 천년 동안 사니까 아마 세 살 터울로 아이를 낳는다 하면  한 3백 명 낳지 않느냐? 요새 모양으로 연년생으로 낳으면 천 명 낳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번식을 하지마는 그들은 다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자들이요  주님의 피가 보증하지, 보증이라 말은 책임졌다 그 말입니다. 주님의 피가  보증하지를 아니하고, 진리가 보증하지 않고, 성령이 보증하지 않습니다.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 한다" 그 말은 보증한다 그 말인데 그게 없기 때문에  그때는 멸망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마는 거기에는 중생 하는 생명이 하나도 없는고로  그것의 전부의 가치라도 하나의 중생 된 자의 가치를 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고로 우리가 중생 된 이것은 우리 애쓰지도 않았지마는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한 데서부터 시작이 돼 가지고 중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중생의 가치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이것을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이 중생 된 자는 누가 그 책임을 졌는고 하니  성령과, '물' 하는 것은 진리를 말합니다. "성령과 물과 피" 피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말합니다.

 보증이 되고, 그러면 보증된 이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창조되어 있는 모든 존재의 목적은 그 목적이 뭐이냐? 모든  존재의 목적은 성령과 물과 피의 이 구속 역사 이것을 하기 위해서 쓰려고  거기에 하는 데에 쓰려고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경건과 불경건 이것이 판정되고 난 다음에는  이것을 다 불로 사뤄 버린다. 그때까지 간수해 둔 것이고 그때까지 보존해 둔  것이다."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고로 이 중생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데, 뭐 이런 일이 있고  저런 일이 있고 자꾸 세상에 별 일이 있습니다.

 '소련이 어찌 됐다, 중공이 어찌 됐다, 이렇게 또 김일성이가 지금 더 깊은  땅굴을 판다, 폴란드가 지금 공산주의에 넘어간다' 이런 모든 순서들이 이게  뭐이냐? 이 구속받은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 전 구원하는  순서를 정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예정이라, 예정이라,  하나님 예정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구속을 위해서 예정한 그 순서대로 이루어 나가기 때문에 큰  순서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거기서 깨달을 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저렇게 른  일들도 경영해 왔구나.' 어떤 것이 우뚝 솟아서 20세기의 과학이 떠들면 과학  그것의 떠드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예정한 그 예정 순서대로 그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거는 이용된 것입니다. (졸면 안 돼. 속에 딴것 있으면  졸아져요. 졸면 죽어) 하나님께서 내 구원을 위해서 20세기에 만능이라는, 과학  만능이라고 하는 이 과학도 실은 내 구속을 위해서 이런 것들이 예정되어 가지고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정되어 가지고 움직여지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과학보고 크게  여기느냐? 과학을 창조하신 분이 주님이시니 거기에서 주님의 그 능력을 우리가  측량해야 되고, 또 과학에 거기에서 그것은 구속을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있는  그런 것들도 그렇게 위대하거든 우리의 구속, 직접 성령의 감동으로 되는 것이나  하나님이 나타낸 하나님의 뜻인 문서대로 된 것이나 이것의 가치가 얼마나  크겠느냐? 이래서 모든 존재를 보고, 움직이는 모든 움직이는 걸 보고 '이 넓고  큰 광대한 이 속에 내 구원이 들어서 지금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이  광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내가 들어서 내가 자라가고 있고 내가 성화  되고 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자기가 어떻게 큰지? 자기 단독이 큰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커진 것을 인해서 참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쁘고,  공산주의 그 독침 앞에서도 얼마나 평안하고, 왜? 그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예정이요, 그 독침 그것도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재창조  돼 가지고, 당신이 재창조 해 가지고 내놓은 것이라 말이오. 인간이 한게 하나나  있습니까? 이러니까 평안하고, 기쁘고, 이로 인해서 구속될 것을 생각하니까  어떻게 가치가 큰지 욕심이 잔뜩 생긴다 말이오. 강한 욕망, 평강, 이 광대하신  구원의 역사 속에서 자기는 단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쳐 사는 그걸  가리켜서 순생이라 순교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애쓸 것이 중생도 우리 애쓸 것은 아니고 심는 이것을 우리가  애써야 됩니다, 심는 것. 썩을 것을 심으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치료돼  나옵니다. 약한 것을 심기만 하면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 나옵니다. 욕된 모든  욕된 것,  이건 세상 것은, 세상 것은 따져보면 그게 참 약한 것들이요, 다 그것이 썩어져  있는 것들이요, 썩을 것들이요, 또 그것이 다 수치스러운 것들입니다.

 왜 수치스러운 것들이라? 조물주와 조물주의 뜻을 떠나 있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 아닙니까? '이거는 공자, 공자라는 유교의 교주 공자는 참 그는 모든 사람이  위대하다. 톨스토이가 위대하다 뭐 소크라테스가 위대하다.' 하는데, 위대하다  하지마는, 위대하다고 하지마는 그 위대가 아니라 수치입니다. 그것이 욕된  것이오. 그게 욕된 것 왜? 모든 사람이 영광이라 영광이라, 도덕가라 영광이라  하는데 왜 그것이 욕돼? 욕된 것은 그들이 도덕을 주장한 것은 전부 하나님은  창조주는 냅두고 저희들이 주장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 없이 저희들이  주장돼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떠나서 저거 죄와 허 물로 죽은 인간들의  대가리에서 나온 그 썩은 것들이 공작해 가지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주인공은 마귀라 그 말이오. 마귀가 주인공이 돼 가지고 작용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조물주 와 정반대이니까, 조물주에게 지음 받은 것이 조물주를 배반하고,  조물주로 말미암아 먹고 입고 숨쉬는 그 공자 맹자가 이제 하나님의 뜻을  반대해서 마귀의 뜻에 순종했으니까 그것이 그보다 더 욕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수치스러운 게 어디 있습니까?   "저희의 영광은 다 수치에 있다" 말했습니다. 부끄러울 것 그것 영광이라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는 중생은 힘쓸 필요가 없지마는 심는 이것이 우리의 이제 할  일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햇빛과 같을 것이고 적게 심은 자는 모래알과 같을  것이고 이게 지금 문제라 말이오. 이게 문제라. 심는게 문제라. 썩을 것으로  심으면 썩지 않을 것으로 치료 돼 나오고, 약한 것으로 심으면 강한 것으로  치료돼 나오고, 욕된 것으로 심으면 영광스러운 것으로 치료돼 나오고, 모든  혈육의 것으로 심으면 신령한 것으로 치료돼 나온다 말이오. 이 심는 것이  이것이 문제입니다. 심는 것. 심는 것이 문제요.

 그러면 심는 것은 무엇입니까? 심는 것은 그 속에 생명은 생기는 있지마는 땅  속에 들어가면 이게 움이 나 가지고 크게 되어지는 것, 그러면 이것이 없어지고,  없어졌지 마는 일단 없어지는 것이 이것이 영원히 있어지는 것으로 바꿔지는  것이니 이것을 내놓는 걸 말합니다. 자기가 내놓는 것. 씨를 심으려면 내놔야 안  됩니까? 뿌려야 안 됩니까?  이제 심는 것은 내놔야 되는데 어떻게 내놔야 되느냐? 씨앗을 불에 던져서  태워서 없애는 것도 있고, 또 먹어 없애는 것도 있고, 썩혀 없애는 것도 있고,  이런데 하나님의 법칙대로 씨라 하는 것은 땅 위에다가 뿌려야 땅 속에서 움이  나고 그것이 자라 가지고 열매가 연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치료하는 이  법칙대로 수속을 받아서 치료를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심는다는 것은 이것은 살아난다, 더 좋아진다 하는 말인데, 심는 것은  어떤 것이 심는 것이냐? 자기 현실에서 현실에 닥친 자기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 이것을 일단 치료받기 위해서 내놓습니다. 이것을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것인 줄 알고 이것을 제가 주관하고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  이것을 사용하면 그것으로써 완전히 썩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제 마음의 기능이나 제 몸의 기능이나 이 모든 것을 제것으로 제  마음대로 하지 않고 이것을 내놓는데 어떻게 내놓느냐? 내 놓는 것은 영감에게  내놓고 진리에 내 놓습니다. 진리에 내놓고 나면 그것이 그 다음 순서는 영감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 썩은 것을 진리에게 내놓으면 진리가 이 썩은 것을  차지하도록, 내가 이 현실에서, 현실에서 내 마음을 내가 주관하지 않고 내  마음을 진리가 주관하도록 진리에게 턱 내어 맡깁니다. 내어 맡기면 진리가 내  마음을 주관해서 진리대로의 내 마음을 주관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진리대로  주관한 내 마음이 성신의 감화의 주관을 받아서 성신의 감화대로의 내 마음이  됩니다.

 내 마음이 진리대로 된 그것은 온전히 살아나지는 못한 것이고 내 마음이, 내가  현실 닥쳤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이 일을 해야 되겠고 그 일을 하는 날이면  내게 손해가 가겠고 내게 유익이 없겠고, 내게 유익되구로 하려면 또 이렇게  해야 되겠고 진리로 하려면, 진리대로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되겠고 또 내  마음대로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되겠고, 이렇게 하면 나는 좋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좋아하시고, 그러면 네가 현실에 있어서 네 마음이나 네 몸뚱이를  어떻게 움직였느냐? 하나님 좋게 하는 진리대로 움직이느냐 너 좋게 하는 네  욕심대로, 네 뜻대로, 너희 가정 욕심대로, 너희 어떤 인간대로, 네 사업대로,  네 사업대로 움직이느냐 하나님 좋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느냐? 이것이  심느냐, 심느냐 이것을 썩히느냐? 이 두 가지로써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심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진리대로 내 마음이나 몸을  내놔서 하나님과 진리가 차지하도록, 진리가 차지하도록 일단 내놓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성경 말씀대로 진리대로 되는 움직임으로 내가  내놓으면 진리가 차지합니다.

 진리가 차지하고 나면 그 다음에 조금 있으면 육신의 욕심 소욕 이런 것이 다  손이 끊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성신이 차지합니다.

그러면 이제 진리로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성령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나고 이러는데 진리로 살아나려고 하는  것이 성령으로 살아나지 못한 것은 도로 죽는데 하나님의 진리대로 제 마음과  몸뚱이를 움직이기는 움직였지마는 움직이는 그 목적이 뭐이냐? 주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 저를 위해서 제 구원을 위해서 뭘 위해서 제 욕심 저를 위해서  움직였다고 하면 이것은 거룩한 행실은 되기는 됐지마는 경건이 안 됐다 그  말이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말은 거룩한 행실이 이제 경건이 되어야  됩니다. 거룩한 행실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거룩한  행실인데 거룩한 행실은 됐지마는 거룩한 행실을 저를 위해서 하느냐, 가정 복  받기 위해서 하느냐, 뭐 위해서 하느냐, 뭐 땅에 있는 어떤 것을 위해서, 목적이  다르다 그 말이오. 그러면 경건은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됐을 때 그것이 경건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완전히 심었습니다. 그러면, 심으면 이것이 치료받는 것이요  이것이 살아나는 것이니 심은 것은 어떤 것이 심는 것이냐? 진리와 영감대로 그  현실을 움직인 그것이 심은 것이라. 그것이 치료받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살리는 것은 영과 진리 외에는 살리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심는 것은 치료받는 것인데 치료받아 살리는 것은 누가 살릴 수  있느냐? 진리와 성령 외에는 살리는 의사가 없습니다. 살리는 그 능력은 진리와  영감 외에는 살리는 힘이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인간들의 과학도 육이요, 모든 인간들의  도덕도 이것도 뭐 짜다라 꾸며놓은 그런 모든 것이 다 육이라. 그것은 살리지  못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라 그 말은, 그 영은 사람의  영을 말한 것이 아니고 성령을 말한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라 육은 무익하니라" 그러기 때문에 천하 인간들이 다 말한  책들이 태산같이 쌓여 있어도 그것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성령이 살리기 때문에 성령이 말해 놓은 말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니 이 말씀과 성령 외에는 살리는 것이 없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심는다는 말은 살린다는 말인데 살리기는 뭘로  살리느냐? 진리로만 살리고 성령으로만 살릴 수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언행심사가 진리로 됐으면 벌써 살아날 그런 실력이 있는 것인데 언행심사가  진리로 되기는 됐어도 저를 위해서 했는지, 뭘 위해서 했는지 그 동기와 목적이  문제다. 경건이 돼야 된다. 영감이 돼야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 당시에 안식일날, 안식일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안식일날 죽은 자를 살리다니? 38년 된 앉은뱅이를 살리다니? 안식일날 이래  38년 된 병자를 살리는, 고치는 것이니까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이냐? 이런 큰  일을, 조그만한 일도 안 하는데 안식일날 이런 큰 일을 하다니? 이것은 분명히  마귀의 대장이요 이건 아주 귀신 들린 자다.' 예수님을 그렇게 정죄했다 말이오.

그들이 안식일날 이런 일을 안 한다고 안식일 지킨 것이 그것이 불의입니까?  거룩입니다. 안식일을 지킨 것은 그것은 진리대로 행한 일이오. 안식일을 지킨  것은 진리대로 한 일이지마는 그 일에는 성신이 찬성 안 했어. '오늘 안식일을  지켜서, 안식일을 지키는데 안식일날 이 병고친 자는 이것 마귀라' 이렇게  정죄했을 때에 성령이 '너희가 진리를 지켜서 잘 됐다.' 찬성하지 않고 '그것은  안식일의 주인이 그와 같이 한 것인데 너희들이 그 주인을 모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제 4계명을 지켜서 너희들이 하기는 한 일이지마는' 영감이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은 사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리는 것은 진리와 성령입니다. 성령이 살렸으면 다 돼 버려. 성령이  살릴 때는 진리를 통해서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우리를 살릴 때에는 진리가 우리에게 먼저 온다 그말이오. 와  가지고, 성령이 우리를 살리려 할 때는 진리를 가지고 '네 현실에 하나님의 뜻은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해라 할 때에 '에이쿠,  하나님의 뜻은 나는 싫고 지금 이래 하겠습니다.' 하면 죽어버렸어. 그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하려고 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진리를 가지고 나를  살리려 했기 때문에 진리의 구원을 제가 영접을 하게 되면 그 뒤에는 성령이  와서 폭 싸 가지고 자기를 보호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바로 심어 진 것입니다. 바로 심어진 것.

 그런고로 우리의 지금 주력할 것은 어디 주력할 것이냐? 우리가 중생 되는 것은  주력할 필요 없어 주력하는 것은 자기 구원을 위해 서는 중생 하는 것은 주력할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의 중생을 위해서 주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해. '예수 믿어라,' 이래 전하는 것은 자기가 가 가지고  예수 믿으라는 전도를 해 가지고 그 전도의 효력이 있으면, 전도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예수 믿겠습니다.' 하면 '됐다.' 하는 것 좋지마는 어리석은 생각이오.

'됐다.' 해도 뒤에 예수 안 믿는 멸망하는 자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뭐이냐? 안 믿는 사람 전도하는 것은 그 사람이 반대를 하든지 환영을 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서 이제 생명을 접선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중생 된 걸 아무도 모르요.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모릅니다.

 바람이 부는 것을 동에서 오는지 서에서 오는지 모르지마는 그 부딪힘을 보고  아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자, 아무 것도 없는데 바람이 불어  보십시오. 여러분들 눈에 보입니까? 이 바람이 부는지 저 바람이 부는지  모르지마는 이래 대 보면 여기에 부딪히면 '아, 바람이 이쪽에 분다' 이제  부딪혀지는 그걸 보고 우리가 알지 바람이 눈에 보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은 보이지 않는 다 이랬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 중생을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또 중생 된  자의 썩을 그 시체를 치료하기 위해서 전하는 것이고, 여기에다가 지금 전하는  것은 뭐 하느냐? 죽은 시체를 썩지 않고, 썩는 그 기회에 썩지 않고 재생돼  나오도록 치료받기 위해서 치료하는 역사요. 또 한 역사는 '이러니까 많은  사람을 중생 시키는 역사를 가서 부지런히 해라.' 하기 위해서 여기에 이 밖에  있는 사람을 중생 시키는 운동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고, 여기에 있는  사람은 죽은 시체 썩지 않은 시체 그것을 썩기 전에 이것을 다시 치료해서  재생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설교도 하고 설교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력할 것은 어디다가 주력을 해야 되느냐? 이 살리는 것,  썩을 것으로 심는 것, 심는데 주력해야 돼. 심는 것은 현실에서만 심지 다른  데서 심지 못합니다.

 심는 건 어떤 게 심는 것이냐? 심는 것은 이 치료할 자에게 맡기는 것이 심는  것이니 치료할 자는 누구냐? 치료할 자는 진리와 성령 외에는 치료하는 자가  없습니다. 치료할 권리를 가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진리와 성령 외에는  치료할 자가 아무도 없어. 여기다 맡기는 것이 심는 것이오.

 내 현실에 내가 진리와 성령에게 내 행동을 맡겨서 진리와 성령대로 내 행동이  되도록 거기다 맡기는 것이 치료받는 것이고, 이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 내  욕심대로 내 주장대로 어떤 인간 주장으로 무슨 사건대로 여기에 맞춰서 하는  것은 다 썩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아무리 훌륭해도 저것은 죽은 시체라. 예수 믿는 사람이 그 몸뚱이도 죽은  시체라 백 목사의 이 육도 죽은 시체입니다. 죽은 시체인데 벌써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조그매만 남아 있는데, 조그매만 남아 있는데 이것을 이제 썩는 데  이르지 않도록 이것을 치료를 잘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이요,  벌써 다른 것은 다 없어졌는데 없어진 것은 썩어 없어졌는지 진리와 성령으로  치료받아 가지고 영원한 것으로 지금 재생이 되어 있는지? 재생이 되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젊은 사람 억억억만 명하고도 바꾸지를 않을 것이고, 이것 재생되지  못하고 썩어졌다면 그건 참 헛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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