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두 길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12일 화새

 

본문 : 계 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 위치에서 타락한  천사입니다. 그 마귀는 어떻게 하다가 그 본 지위에서 타락해서 마귀가 되어  자신도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게 되고 또 저는 그 일을 제 일로 삼아서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그 일을 하는 자가 되어졌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천사 중에도 높은 루스벨 천사라고 하는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장이 마귀가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모든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그것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마귀 된 원인입니다.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받은 지혜와 능력, 지위 또 많은 천사와 만물들이 저희에게  복종할 수 있는 권위 이것 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이렇게  좋은 것을 다른 천사보다 뛰어나게 받았습니다. 받은 그것은 축복이요 잘된  것인데 받은 이것 가지고 자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마귀 된  원인입니다.

 우리는 전 인류가 하나님을 따라 되느냐 마귀를 따라서 되느냐 이 두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마귀를 따라서 되는 길은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이 마귀를 따르는 유일한 방편이요 또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완전자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이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이 두 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각양 좋은 지혜를 받고, 능력을 받고, 또  권위를 받고, 모든 인정의 존대를 받고, 넓은 무대를 차지하게 되는 것 다  축복입니다. 다 좋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위험한 것이 하나 있는 것은 뭐이냐?  마귀를 따라 되느냐 하나님을 따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것 가지고 자기 위해서 했습니다. 간단합니다. 마귀는 이것 가지고  자기 위해서 했습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사자 천사들, 천군들, 땅 위에 지나간 선지 사도들, 모든 믿음의  조상들 이분들은 하나님에게 받은 것 가지고 어떻게 했던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은 당신의 본체와 속성인 완전, 영원 불변, 이 완전, 영원 불변, 단일성의  당신의 완전을 위하는 일과 완전이 원하는 이 피조물을 지으시고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본질과 본성을 따라 천군 천사들도 위로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우주와  영계에 하나님을 위하게 하는 운동과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들을 처리하는  운동 이 역사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천사장 미가엘은 그대로 그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가엘이 성경에 나타나서 한 일이 몇 번 기록됐는데 그  기록은 다 하나님을 따라 완전을, 하나님이 기쁘시게 한 것처럼 완전을 위주로  한 것처럼 완전자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는 이 일을 오늘까지 변함없이 하는 것이 타락하지 않은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이요 또 역사에 지나간 선지 사도 믿음의 조상들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신문을 보니까 폴란드라는 거기에도 벌써 내용은  공산주의자들과 단합이 돼 버렸고 어득거리는 민주주의 이 자유주의는 미국은  거의 다 쫓겨나 버리고 벌써 정권은 저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우리가 껍데기로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실까 하는 이해 못 할 일이 있는 것 같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가 능력이 모자라서 점점 탈환을  당하는 것같이 이렇게 보이기 쉽습니다.

 우리의 거울이 되는 육체의 이스라엘이 인류 중에 제일 모질 맞은 고통을  했습니다. 참 참혹한 그런 살이를 한 것이 유태인입니다.

 유태인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대해서 성경이 그 역사를 기록해  놓은 성경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신 것이  증거가 되고 하나님이 능력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이 증거가 됩니다.

 그 원인은 내나 마귀와 같은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않고 자기 위해서 한 그 죄값입니다. '그럴 때는 내가  이렇게 해 주마'고 하나님이 약속했기 때문에 약속한 대로 그것이 고통이 돼야  되고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기이한 것은 유대인들은 전인류 중에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이 유대인들인데 그런  고통의 10분지 1만 받아도 그 민족은 전멸이 되는 것이 사실인데 이렇게 측량  못할 고통을 받았지마는 유태인들이 멸해지지를 않은 것이 이상합니다. 멸해지지  않아. 멸망은 받지 않고 고생만 진뜩 했습니다. 참 입에 항복이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는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전체가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서 회개를 시킨 것이 유대인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이 복음 운동이 아주 힘있게 되는 것 같은데, 이 복음  운동이 참 자기를 위해서 하지를 아니하고 각각 은혜 받은 대로 진정코 자기부터  희생해서 주를 위하고 형제를 구원을 위해서 이 두 가지를 위한 이 본질의,  본성의 한국 복음 운동이 된다고 하면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든든합니다.

하나님께서 조만간에 이북도 손에 붙일 것이고 중공도 소련도 한국 교회 손에  붙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복음 운동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것이 참  문제입니다. 무슨 운동 무슨 운동하는데 보기에는 전부 자기 간판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사업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렇게 해야 내가 높일까 저렇게  해야 높일까?' 이런 너무 가짜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진실 된  운동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가짜 운동 이런 것은 참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협회니 무슨 선교회니 아주 큰 이름을 내걸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는고 하고 보면, 돈 겨우 조그만한 자본 거둬 가지고 광고할 자본만  있으면 그 자본 거둬 가지고 광고해서 누가 선교 협회장이니 무엇이니 이래  말하는데 가서 실상을 가서 심사해 보면 두서너 사람이 모여 앉아 가지고 광고  낼 만한 돈만 있으면 그래 가지고 자기네들이 '이 분은 무슨 협회장입니다. 무슨  장입니다. 무슨 장입니다.' 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을 이용하고  하나님께 받은 바의 이 인간 구원에 모든 각양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것을, 땅의  것만 자기 위해서 써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몰아 넣는다고 했는데 이것까지  자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것은 고급 멸망이기 때문에 이것이 곧 마귀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는 문서라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장이 너무 많고, 선교회가 너무 많고,  복음 운동이 너무 많고, 그런데 그렇게 하는 그 뿌럭지를 찾아가서 그 교회를  보면 불과 교인 한 4, 50명, 한 백 명, 몇백 명 이래 거느리고 있으면서  거기에서 나온 돈 가지고 이제 이 큰 세계적인 큰 사업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는  그것을 가지고 광고 선전비에 이렇게 들이고, 자기 자신을 주님을 위한 이 복음  운동에 희생으로 바치는 그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으로 자기를 우쭐하게  키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한국에는 신학교가 참 놀랄 만침 그 수가 많습니다. 몇백 이 되니까  몇백이 되지, 선교하는, 외국에 선교한다는 그 선교협회라는 그 협회도 수가  심히 많습니다. 이러니까 예수교지만 예수교에 교파도 얼마나 수가 많은지 세기  어려울 만치 그렇게 수가 많습니다.

 이런데 요는 이것입니다. 마귀는 순전히 그것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특수한 지혜를 받았습니다. 특수한 능력을 받았습니다. 특수한 그  위치를 지위를 받았습니다. 지혜 받고, 능력 받고, 지위 받고, 또 특수한 그  무대들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부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지혜 받아, 능력 받아, 지위 받아, 활동할 무대를 받아, 많은  부하를 받아, 이래 가지고 이것 자기 위해서 한 이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들어오면 이런 성질로 사람들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것을 제가 위대하고 잘나서 가진 것처럼 제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다음에는 그것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지혜도 자기  위해 사용하고, 능력도 자기 위해 사용하고, 지위도 자기 위해 사용하고, 무대도  자기 위해 사용하고, 부하도 자기 위해 사용하고, 이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  발표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이것이 마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간단하게,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제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자기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성신의 감화는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깊이 인식을 시킵니다. '내가 나된 것은 내가 나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 되게 하셨다. 내게는 약한 것 외의 것은 자랑할 것이  없다. 내게는 약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무지하고 무능하고 약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삐뚤어지게 하는 데에 괴수다. 죄인의 괴수다. 내게는 타락한  이 본질 본성, 이 더러운 것 이것밖에는 없다. 이런데 내게 있는 능력은 다  주님께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나를 어떤 자냐  발표할 때는 약한 자, 죄인 중에 괴수 죄인, 만삭되지 못해서 난 자, 전적  부패해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그분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런데 내가 나 된 것 내게 있는 능력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인데  나를 나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신데 나를 나 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나를  나 되게 하신 것은, 나를 나 되게 하신 것은 모든 교회를 위해서 하셨다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마귀의 유혹을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서, 하나님에게  받은 그것을 제것인 줄로 인식하도록 합니다. 제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합니다. 또 이것 인식되면 되는 것만치 일을 해도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합니다.

 하나님의 것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는데 하나님의 것을 열이면 열 가지고 다  위하지 못하고 많이 떼먹었기 때문에 '나는 도적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한 일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저 지난번에 주일날 설교한 것처럼 죽은 것 썩은 것 있는데, 썩은 것을 할 수  없고 죽어 있는 것은 살려낼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갓난아이는 썩은 것은 하나도 없는 죽은 시체입니다. 예수 믿기 시작한  주일학생은 죽은 시체가 아니고 산 시체인데 썩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고 썩은  부분은 예를 들면 일곱 살밖에 없다, 7년이라는 그 부분밖에는 썩지 않았다.

그것은 일곱 살 먹는 아이입니다. 스무 살 먹는 아이는 스무 해 부분은  썩었습니다. 또 70세 먹는 중생 된 사람은 70세라는 그 세월을 지나간 것은  썩었습니다.

 그런데 썩어야 될 이것을 썩지 아니할 신령한 것으로 치료를 받은 것은 이것은  치료받은, 70년이라면 한 70개로 치든지 700개로 친다면, 700개로 친다면 700개  치료받은 그 한 개는 썩지 아니하고 있는 생생한 시체 그것 100명 천 명보다 더  낫습니다. 왜? 그것은 다시 치료를 받을는지 받지 못할는지 의문 중에 있는  것이요 받은 것은 그는 하나님처럼 온전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어제 여기에 와서 있는데 어떤 하나님의 종으로 더불어 제가 장시간 얘기를  했습니다. 저 지난밤에는 열두시까지 내가 거기 대해서 타이른다고 얘기를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이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서 생각을 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만 잠이 안 와서 좀 치료도 하면서 네시까지 꼬박 새됐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나오면 내가 또 드러누우면 또 여러분들에게 주어야 할 그 내 직분의  은혜를 주지 못할 터이니까 주님에게 근심될까 해서 어제 새벽에는 나오지를  않았었습니다.

 어제도 얘기할 때 그랬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데,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일인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곧 하나이니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심같이 형제를  구원하려고 하는 이것 한 가지뿐입니다. 그 외 딴것이 없습니다. 실은 성경을  파고 들어가서 보면, 수백 수천 면으로 말했지마는 종합을 해서 파고 들어가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구원하는 여기에 매진하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이웃을 구원하는 이것인데 이웃을 구원하는 그  구원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구원하는 구원입니까? 이웃을 구원하는 구원은  첫째가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자기가 되도록 주님 위하는 일 곧 이웃을 위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희생을 해야 되는데,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희생을  해야 되는데, 어제 그 하나님의 종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제일 중한 것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물으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위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할 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희생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희생이면 뭘 위해서 희생을 해야  됩니까? 이럴 때에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을 해야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좀 순서가 조금 바꿔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우리의 할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이 일이 우리의 할  일인데, 이것만 우리 할 일인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웃을 구원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입니다.' 순서가 그것이  둘째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구원하려고 하면 그 셋째의 우리 할 일은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희생. '예, 그러면 맞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위하는 일, 하나님을 위하려면 이웃을 구원하는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이 없어요.

하나님을 위할래야, 그러니까 그분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는 일,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 그분이 부탁한 일 그것 하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지  그 외에는 당신을 위하는 길이 하나도 없어요.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뭐  생명을 바쳐봤자 당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내나 당신의 것이요, 그것  위함이 되느냐? 위함이 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것이 어떻게 완전한 것을 위할  수가 있습니까? 위하는 것인데 위하는 그 일은 이웃을 구원하는 이 일만이  위하는 일이다, 둘째, 셋째는 이웃을 위하려고 하면 희생하는 것이다. 그 순서만  바꿔 졌지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희생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희생이라니? 희생을 하면 어떻게 희생해야 됩니까 하는 그 순서는  그 다음을 물을 때에 좀 복잡해지니까 좀 벙벙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 대답을  하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물어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희생의 순서를 말했습니다.

 희생은 첫째 어떤 희생을 해야 되느냐?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을 해야 됩니다.

자기를 희생시켜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옛사람 자기를 죽이는 것이 자기 부인하는 것입니다. 옛사람 자기를  죽이는 것이 부인하는 것이오. 만일 어떤 분발이 나왔습니다. 분발이 나왔는데,  분함이 나왔습니다. 나왔을 때에 '이것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판정이 될  때에 지체하지 말고 분발하는 그 자기라는 옛사람 자기를 꺾어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마음에 섭섭합니다. 섭섭해서 참 눈물이 줄줄 나오고 밥맛이 없고 밥을 못 먹을  만치 섭섭합니다. 이 섭섭할 때에 '섭섭한 이놈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이것은 옛사람 내다. 이놈을 희생을 첫째 해야 되겠다.' 섭섭한 그놈을 죽여서  이거는 옛사람이니 그놈을 죽여 새사람은 섭섭할 때에 그것이 정말 감사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서의 감사의 자기로 바꾸고 섭섭한 자기를 죽여 희생시키는  이것이 첫째 희생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기를 꺾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중심 했던 것이 자기를  완전히 주님에게 바치는, 산 제물로 바치는, 이 자기 꺾는 희생, 부인하는 희생,  꺾는 희생이 되면 부인하는 희생이 됩니다. 꺾고 부인하는 희생을 하고 나면  이제 자기중심이라는 자기 위주라는 그것이 희생이 돼야 됩니다. 그것을 희생을  하면 산 제물이 됩니다. 그러면 이것 가지고 이웃을 구원할 때에 이제는 이것을  조금 희생하면 이웃 구원이 퍽퍽 이루어지고, 이것을 좀 길게 희생하면 이웃  구원이 참 아주 유명하게 높게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이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썩지 아니한  성한 송장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썩느냐 그것이 완전의 것으로 치료를 받느냐?  그것은 현실이라는 그 단계입니다.

 성한 송장을 단번에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 성한 송장이 썩으려고 하는 그 썩는  단계에 와 가지고 썩느냐,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죽느냐 썩느냐 그것이 영원  완전한 것으로서 치료를 받아 재생이 되느냐?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원한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다시 치료함을 받아 가지고 살아나느냐 하는 이것입니다.

 이러기에 이렇게, 이것이 자기 구원이요 다 남의 구원인데 이렇게 자기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이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거운 짐 진 것과 같이 탄식하는 것은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죽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또 갈라디아서 6장에는  보면 "육체로 심는 자는 썩은 것을 거두고" 썩은 수입을 하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으로 거두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죽어 있는 시체는 죽어 있는 시체요. 에베소 2장 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고  그렇게 말했소. 그러기에 우리의 지금 살아 있는 이 심신은 죽은 송장입니다.

죽은 송장이오. 왜? 성경이 그렇게 말했소. 죽은 송장이오. 우리에게는 생기가  돌아와서 산 부분은 뒤입니까? 진리와 성령이 와 가지고 우리의 영을 살려서  영은 살았습니다. 영은 살았지만, 생기는 들어와 살았지마는 "이 몸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 로마서 8장 8절로 10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주일에 오후에 설교한 것이 그것이 성경이 인생을 가르쳐  놓은 그 인생을 성경이 말한 그대로 내가 엮어서 말해 놓은 것입니다. 내가  지어놓은 말 아니오. 성경이 말한 대로입니다.

 그 큰 전쟁, 다시 그보다 더 큰 전쟁 없습니다. 뭐 세계 1차대전 2차대전  3차대전 그까짓 거야 아주 먼지 같은 전쟁이오. 이 전쟁은 큰 전쟁했습니다. 이  전쟁은 인류와 사탄과 싸워 가지고 패전한 그것이 1차 패전의 대전입니다.

 2차의 큰 전쟁으로, 인류를 다 죽인 이 대장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이것을  완전히 정복하고 항복을 시킨 그 전쟁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싸운  전쟁입니다. 그 대장은 예수님이시오.

 거기에 등록 안 된 것은 암만 아름다워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재주도 있고,  인물도 좋고, 또 지위도 있고, 권세도 있고, 아무리 훌륭한 그런 젊은 사람,  그런 중측 사람, 그런 위대한 사람, 그런 왕, 그런 대통령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시체는 시체인데 그 시체의 가치는 어디 있느냐? 등록이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데 가치 있습니다.

 등록 안 됐으면 유황불 구렁텅이오. 등록 안 됐으면 시간 따라서 점점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등록이 됐으면 그것은 치료하는 병원으로 이송이 됩니다.

옮겨갈 수 있소. 옮겨가면 그것이 치료를 받아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되어지느냐, 썩을 것이 치료받지 못하면 영원히 썩어버립니다. 그것이 둘째  사망의 해입니다.

 이렇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준다" 그 말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이 승리하게 해 준다 그 말은 이제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그  말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말은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 죽은 시체가 살아나나,  "생명의 면류관 준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도록 충성을 하면 생명의 면류관 준다. 생명이 승리하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게 된다. 멸망할 것이 멸망하지 않게 된다. 멸망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가? 썩지 아니할 것으로, 강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신령은, 우리 몸이 신령하게 변화되는 것은, 신령하게 변화됐을 때에는 그것은  이 세상에서 기능을 얼마나 마련했는가 그게 문제지 신령한 몸은 무쇠덩어리  속에도 마음대로 들어갑니다. 또 그 몸뚱이가 이 우주에 충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고,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몸뚱이는 떡을 먹을 수도, 이 물질로 만든, 쌀로 만든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안 먹고 억억만 년도 또 살 수 있습니다. 아무 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래 내 놨어.

 예수님의 부활한 몸이 그런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한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한다 했습니다. 빌립보 3장 끝절에 보면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그 몸과 같이 우리도 부활시켜 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인데,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여기에서는 그걸 모르는데  이 성경을 기록할 때 그 지방에서는 면류관은 어떤 것이 면류관이냐? 경쟁을  하든지, 시비를 하든지, 권투를 하든지, 뭣이든지 시합을 하든지, 뭐이든지 이래  서로 투쟁할 때에는, 경쟁을 할 때에는 경쟁해서 이길 때에는 상급은 뒤에 주고  면류관부터 먼저 줍니다.

 면류관을 떡 갖다 놓고 '누가 이겼느냐?' 이기면 이긴 사람에게 면류관을  씌웁니다. 거기에는 이 물질로 풀로 그런 것 만든 그 면류관인데 면류관을 씌워.

면류관은 이긴 자라는 그 표시로 면류관을 줍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면류관 준다 그 말은 생명이 승리하는 그 승리를 준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뭐 하면? 충성하면. 충성이라? 얼마나 하면? 죽도록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해라 말은 자기의 있는 것 다하면 죽지 않습니까? 있는 것 다하면  죽지 않소? 있는 것 다해서 충성하라 그 말입니다.

 충성이라 말은 여러분들, 암만 부부간이 좋아서 아내가 남편에게 잘했다  할지라도 그는 열녀라고 하지 충성이라 말 안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리  잘해도 효도라고 하지 충성이라 말 안 합니다.

 충성이라 말은 쓰는 데가 따로 있소. 전쟁해 가지고 친구끼리 아주 생사를 같이  하는 그런 친구라도 그 친구가 친구에게 충성한다는 그말, 충성이라는 말 안  씁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어디 쓰느냐? 신하가 임금에게, 자기를 신하로 삼은 그  임금에게 잘하는 그걸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또 종이 주인에게 잘하는 것을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부하로 삼은, 부하가 상관에게 잘하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충성이란 말은 주님의 종노릇 잘했다 말이요, 부하노릇 잘했다 말이요,  신하노릇 잘했다 말입니다. 이 말은 주님이 나를 뭐 하려고 세웠는지 당신이  나를 세우신 그 세움에서 가지고 주님이 원 하시는 일, 주님이 명령하신 일 그  일 잘하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시키는 일이 뒤입니까? 그 사람이 연보도 많이 하고,  도덕면에 완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도 그 사람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중심이 '이것으로 빛을 나타내 가지고 나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게 하리라' 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 했으면 그것도 귀합니다. 그것 충성입니다.

부분 충성입니다. 그는 그러나 그것이 직접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그와는 다르고 간간접으로 되는 것입니다. 간접이오.

간접이요 간간접이오. 그러나 자기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충성을 할 때에  자기가 입술로만 하는 게 아리고 구원을 하면서 구원받는 그 사람이 '이는 과연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래 믿어야 된다. 이분은 신임을 하겠다.

이분은 인정을 하겠다. 내가 믿음이 모자라서 교회 나가지 못할지라도 내가 가면  이분의 지도를 받겠다.' 그분에게 신앙에 본이 되고 감화를 주는 자기가 되어  가지고 충성했으면 그것이 충성에 제일입니다. 제일이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반사는 그 낙심한  학생을 다른 사람이 찾아가서 권면을 하면 '나는 믿습니다, 지금. 교회는 못  나가고 이래도 믿습니다.' '그러면 그만 나갑시다.' '내가 나가도 교회 나가면  아무 반에 갈 것입니다. 아무 반에, 다른 반에 안 갑니다. 아무 반에 갈  것입니다.' 어떻게 그 신임을 받아 놨는지?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모든 면으로 충성이  있겠지마는 인간을 내가 구원하기 위한 이 직접적인, 바로 일선에 나서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기에 제일 용이하고 빠르고 하는 이 면에 서서, 이 위치에 서서  인간을 구원하는 이것이 인간의 직업 중에는 제일 복 있는 직업이고, 자기의 선  위치 중에는 제일 복 있는 위치고, 또 가장 많은 그 효력을 얻는 것도 제일 좋은  위치인 것입니다.

 지난 주는 주일학교가 9천이 넘은 그걸 보고 참 제 마음에 어떻게 저도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이, 9천이 나온 학생도 기쁘지마는 그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위를 주셔 일하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돌아보신다는 이 면에 대해서 어떻게 기뻤는지!  또 중간반도 내가 그 보고를 보니까 차차 차차 내려가지 않고 자꾸 올라갑니다.

저 지난 주도 80이 올랐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권고 하셔서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그것을 보고 어떻게 마음에 좋고 기뻤는지! 참 힘이 없어 그렇지 '어떻게  해야 내가 여기 좀 나도 여기에 대해서 봉사를 할까? 이렇게 충성하는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부장 선생님들,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부장 선생님들, 또  장년반도 조금씩 붇습니다. 이 장년반에 남녀 권찰님들, 집사님들, 이것  장로님들, 또 목사님들 이분들을 위해서 내가 뭘 어떻게 봉사를 해야  조그만치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그것을 또 내대로는 내가 생각해 가지고 '뭘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그것을 '나도 내 힘있는 대로는 하련' 하는  그런 각오를 가졌었습니다.

 그런고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이 승리하는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이 길에 나서 가지고 이것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섰다고  하면 넘어집니다. 이제는 됐다 하면 반드시 넘어 지요.

 그러기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보내면 그 강사가 처음에는 한 시간 은혜를 끼치고  '아, 은혜를 끼쳤다.'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 시간에는 반드시 죽을  쑵니다. 죽을 쑤면 그만 놓고 도망은 쳐도 도망도 치지도 못하지 밥맛이 뚝  떨어지지 죽을 지경입니다. 파고 들어갈 구멍이 없어. 어디든지 구멍에  땅구멍이라도 있으면 파고 들어가서 그만 숨어버리면 싶지만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잔뜩 회개를 합니다.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그 시간에 증거 할  말씀도 없었는데 아무 것도 아닌 죄인만 돼 가지고 하나님 은혜를 가로막은 자만  돼 가지고 교만한 자라는 것을 똑똑히 알기만 알아 가지고 시간이 됐으니까  서기는 서지마는 증거 할 말씀이 없습니다. 섰는데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마구  생수를 강수와 같이 내리 하나님이 부어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봐라,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것 아니가? 네가 거치지만  않고 방해만 안 하고 이러면 내가 하지 않느냐?' 하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해  놓으니까 그만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지식이 돼 가지고 그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인제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시간 은혜 끼치고 한 시간 죽 쑤고 한  시간 은혜 끼치고 나면, 한 시간 은혜 끼치고 한 시간 죽 썼으면 그 다음에 한  시간을 은혜를 끼쳤다 할지라도 교만이 안 나올건 데 은혜 끼치고 나면 당장 또  교만이 나옵니다.

 교만이 나오면, 이러니까 찍해야 그 강사를 청해봤자 열세 시간을 집회 인도를  하면 여섯 시간은 죽 쑤고 일곱 시간 은혜 받고 이러다가 나중에는 이것이  경험이 있어 놓으니까 그놈이 올라오려 하면 그놈을 죽이고 자꾸 '내가 이번에  설교를 이래 했으면 되는 건데 이 잘못했다.' 자꾸 잘못한 것만, 은혜를  가로막은 것만 찾다 보니까 한번 집회 가 가지고 한 시간 죽 쑤고 두 시간 죽  쑤고, 마지막에는 한 시간도 죽을 쑤지 않고 그대로 멋멋하게 계속해서 꾸준히  이렇게 인도를 하고 이런 사람으로 자꾸 화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여러분들, 반사 선생님들 많이 나왔을 터인데 반사 선생님들도  '이제는 됐다.' 하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스스로 섰다 하면" 그 말이 무슨  말이오? '하나님이 내게 같이 도와 주셔서 하나님은 이렇게 열을 도와 주셨는데  내가 방해하고 방해해 가지고 여덟 밖에는 못 섰다. 일곱밖에는 못 세웠다.'  이렇게 할 때에는, '하나님이 세워 줬는데 나는 방해밖에 못 했다.' 할 때에는  스스로 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는 그 다음에 자꾸 서집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이리 됐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방해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북 잘했다.' 이렇게 될 때에는 그 다음부터는 힘 떨어져서  넘어지게 됩니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주일학교 모 반사든지 반사든지 또 중간반 반사든지 이것을 기억하고,  주일학교는 9천에서 후퇴가 되지 않도록 자꾸 여기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또  중간반도 여기에서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또 권찰, 집사, 장로,  목사님들도 여기에서 후퇴하지 않고 나아가도록 죽는 날까지, "죽도록 충성"  언제까지? 그럴수록 피곤치 않습니다. 이 길은 가면 피곤하지 않소. 이 길은  가면 피곤 안 해. 참 이 길을 잘 갈수록 피곤치 않고 수월합니다.

 예배드릴 때도 은혜를 받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수월한데 예배드릴 때에  은혜 받지 못하고 졸음이 오면 그 사람 참 피곤하고 곤란합니다. 신앙 생할이 다  그런 것이오. 자기가 형제를 구원하는 이 일에 있는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결단코 피곤치 않고, 시간이 됐으니까 할 수 없어 집에 와야 되겠고, 또 밤이  되니까 갈 수 없고 자야 되겠고, 자고 나면 '얼른 날이 새면 또 누구에게  누구에게 가 봐야 되겠다.' 이러니까 항상 갈 곳은 있고, 가야 되겠고, 가고  싶고 피곤치 않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둔다"  했습니다. 피곤치 않은 그것이 정상적으로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10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10분 동안이면 시간이 없습니다. 아주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십시오,  간절함으로. 아주 있는 힘을 다해서 간절함으로 기도를 해서 이 말씀에 대해서  소원을 가지고, 그 다음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가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여기서 완전히 소유하고야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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