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농사

 

1980.1.27.주일오후

 

본문: 갈라디아서 6:6-11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 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 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선지자선교회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농사짓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토지에 심어서 농사를 지을 때에 크게 말하면 그 토지에는 곡식 종자잡초의 종자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곡식 종자는 잘 가꾸어야 하고, 잡초의 종자는 가꾸지 아니해도 무성합니다.

농부와 농부의 가치의 차이는 농사를 심고 가꾸고 하는 그것보다 추수를 어느 농부가 많이 추수했느냐 하는 데에서 가치는 정하여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심고 가꾸어도 추수가 없으면 헛 농사를 지은 사람이요. 그 사람이 수고한 그 결과에 추수가 많게 되면 그 농부는 성공한 농부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농부가 되는 데에는 물론 거기에 여러 가지 추수한 조건 들이 많이 있습니다.

 

관리도 하여야 하고, 또 좋은 퇴비, 거름을 하여야 하고 를 맞춰서 심어야 되고 하는 이런 것이 다 중요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자 선택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과 지금과 비교하면 종자 선택이나 또 농사짓는 모든 이치에 있어서 훨씬 문화된 그런 문화 혜택을 입어서 이전에 비해서 많은 추수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이것을 비유로 해서 만물 가운데 인생으로 태어난 우리들로서 인생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 인생의 살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 성패가 어디 있다 하는 것을 농부가 농사짓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인생으로 태어난 자로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든지 세상에서 한 토막 살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우리는 인생살이라는 것은 먹고, 입고, 일하고, 쉬고 이렇게 해서, 먹고 입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하다가 피곤하니 쉬어야 하고, 일하고, 쉬고, 먹고, 자고 또 일하고, 쉬고, 먹고, 자고 이것이 인생살이로만 알았고, 또 여게서 평가하기를 다른 사람은 좀 고생을 많이 하는데 자기는 고생을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은 모든 면에 가난하게 사는데, 권세라든지, 물질이라든지, 모든 쾌락이라든지 이런 면이 아주 빈약하게 살고 자기는 이런 면에 풍부하게 살면 참 행복된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평가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우리가 몰랐던 참된 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인생살이의 추수는 세상에서 일한 대로 값을 받는, 노력한 대로 세상을 점령하는 그것이 인생살이의 추수가 아니다. 인생살이의 추수는 죽음 너머 하나님의 심판을 거친 그 너머에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빈부하게, 귀천하게 살았든지 그것이 인생의 결과라는 그 추수가 아니고, 인생의 추수는 죽음과 부활과 심판 너머, 한 번 반드시 죽고, 또 심판 앞에서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가지고 심판을 받아 영원 무궁의 세계가 있으니 거게는 시간도 끝이 없고, 공간도 끝이 없고, 고생도 끝이 없고, 영광도 끝이 없고, 번개같이 지내가고 우뢰같이 닥치는 이 세상과 같지 아니하고, 한 번 만나면 영원 무궁하고, 한 번 잃었으면 영원 무궁히 잡을 수 없는 영원 무궁한 세계가 있어 이 세계를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 인생 추수라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처지의 생활을 하든지 다만 그것은 농부가 심고 가꾸고 하는 그 토막이요. 인생의 추수는 영원한 너머에 있으니, 그 사람의 세상살이가 영원 무궁의 성공이 마련됐다면 그 사람은 좋은 추수를 마련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존영스러운 인생살이를 했다 할찌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너머 영원 무궁의 세계에서 비참을 마련했다고 하면 인생농사를 실패한 사람이라, 인생 살이를 실패한 사람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런 형편 생활을 하든지, 저런 형편 생활을 하든지 이것은 인생의 결과가 아니라, 인생의 추수가 아니라, 다만 이것은 농부가 농장에서 심고 가꾸는 것처럼 아무리 심고 가꾸고 무성했다 할찌라도 결실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 심고 가꾼 것이 보기에 뻣뻣하게 그렇게 무성치 못해도 추수가 많으면 성공입니다.

 

(제가 어른들의 말을 들었는데)기미년에 어떻게 농사가 잘 됐는지 팔월 추석을 만내니까 모두 사람들이 음식을 해 놓고 서로 청하는데, 자기 집에 안 오면 원수같이 생각하고 그렇게 서로 청해 가지고 자기 집에서 모두 다 한 판씩 잔치할려고 했는데, 그 날 밤에 대풍이 불어서 곡식이 피었다가 전부 다 마디가 빠져서 아주 참 역사에 보기 드문 대 흉년이 하룻밤 동안에 대풍으로 지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울음 뿐이지 하나도 자기 집에 초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그런 애기를 어른들에게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에 인생이 무엇이라 하는 인생관에 대해서 아주 어두웠던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서 저런 사람은 행복되다 저런 사람은 불행하다, 이 세상 살이의 이런 형편 저런 형편 그것을 가지고 인생 살이의 행 불행을 규정 지었고, 또 사람이 어려서 노력을 해서 젊을 때를 맞이하고, 젊을 때 노력해서 늙음을 맞이하여 닥쳐지는 그것이 저 사람은 성공했다, 저 사람은 과연 노고에 결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이 세상이라는 이 세상 토막 안에서 심고 가꾸고 추수하는 것으로 이렇게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토막 안에서 심고 가꾸고 추수하는 것으로 이렇게 알았는데, 성경은 인생은 죽는 날까지 사는 이 세상 살이는 추수가 아니라 계속 심고 가꾸는 것이며, 인생의 추수는 죽음 너머 심판 너머 영원 무궁에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과거에 우리가 이것을 몰랐을 때에는 우리의 모든 힘은 세상이라는 이 토막 안의 추수를 향하여 매진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이는 세상에서 결과가 없으면 실패다 있으면 성공이라 이랬는데, 참 의문이 생겨지는 것은, 어떤 사람은 인생 살이를 알뜰히 했는데 그 세상 떠날 때까지도, 그의 말년에 가도 형편이 안 풀리고, 어떤 사람은 누가 봐도 그는 참 인간으로서 인정할수 없는 아주 안 된 생활을 했는데도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이 형통하고 풍부한 것을 우리가 볼때에 너무 이 심음과 추수의 그 관계는 모순되다 해서 인정 안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철인들 가운데서는 이 문제가 궁금해서, 이 문제가 궁금해서 미래를 추론하고, 추측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그가 인생관에 대해서 심히 궁금하다가인생은 윤회라. 수례바귀 윤자 돌회라 수레 바퀴 같이 도는 윤회라. 인과 보응이라. 다시 재생이라이렇게들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인생의 살이는 그 추수가 죽음 심판 너머에 있고, 이 세상은 다만 인간 성공이라는 그 성공을 향하여 노력하는, 심으고 가꾸는 것과 같은 시기이다.

그러기에 세상이 부러워하는 좋은 그 생애에서도 말할수 없는 비참한, 허무한 추수를 한 사람이 있고, 세상에서 아무도 그 형편은 되어지기를 싫어하는 그런 비참한 형편에서도 인간의 영원한 성공의 추수를 본 사람이 있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홍포 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로 우리에게 그 실상을 하나 들어다가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눈에 보이는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소원을 다 이룬 사람이니까 심히 행복된 사람이지마는 그의 생애가 죽음 너머, 심판 너머에 물 한 방울의 추수도, 물 한 방울의 결실도 마련해 놓지 못한 그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세상에서 인간 중에 의식주에, 자기 신체상에, 모든 면으로 비참한 나사로였지마는 그는 죽음너머, 심판 너머 가서 볼 때에 과연 그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인생의 결실을 맺어가지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하나 이끌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이것은 무궁세계로 옮겨가지 못할, 잠깐 인간 살이에 이용되고 있는 가지고 가지 못할 것들과, 인간 살이에서 영원 무궁한 세계에 가져 가지 안할래야 안 가져 갈 수 없고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절대성을 가지고 그에게 소속해서 그와 함께 무궁 세계로 옮겨져 가는 이 사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성경에 너희들이 세상에 올 때에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갈 때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다. 사람의 세상 형편인 이 울긋 불긋하고 웅장하고 찬란한 이 외모, 이 외모를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 외모는 무궁 세계에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한다. 다만 자기가 어떻게 행동했든지 이 행동 그대로 대우 받는 이것이 인생에게 있으니,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그 이를 너희들이 하나님이라, 조물주라, 영존하신 왕이라, 아버지라 부른즉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 외모를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 외모 속에서 네가 인간 살이를 어떻게 했든지 인간 살이의 그 행위라는, 그 행동이라는 이것을 떼놓지 못하고 가지고 간다.

그러기에 가져 가지 못할 것을 인해서 영원히 너희에게 거리끼고 너희에게 큰 화가 되는 그것을 네가 마련치 말고, 영원한 인간의 성공 그것을 보면서 나그네 세상에서 조심있게 살아라. 예수님께서 그 앞에 있는 아버지의 우편인 그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들이 땅 위의 생활에 약해지지 안하고 피곤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인간 살이에 앞잡이 되어서 걸어간 것을 보아라 하는 것을 히브리서 12장에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생의 추수는 죽음 너머 영원에 있고, 이 세상 전 살이는 영원을 위한 준비의 농사짓는 것과 같은 세상이라. 그런데, 농사짓는 데에 물론 가꾸고 또 여러가지로 비료 주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종자 선택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생살이의 종자는 두 가지로 말씀을 했습니다. 인생아 네가 인생 살이의 하루 하루 지내가는 그것이 너희의 영주처도 아니요 너희의 세계도 아니다. 너희의 행복도 아니요 너희의 곤고도 아니다.

한 토막 세상 살이의 빈부 귀천, 고락, 생사 이것을 너희의 전부인 줄 알고 울지도 웃지도 말아라. 이것을 상대한 웃음은 울음으로 바꿔라. 근심은 기쁨으로 바꿔라.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정확한 인생관을 가지고 올바른 인생 궤도에 올라선 자이다. 이러기 때문에 높은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 이 세상 모든 것을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이,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져 아름다움이 없어지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의 외모라는 것도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영원을 발견하고, 준비 기간인 세상을 정확하게 알았을 때에 그는 높은 자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낮아지고, 자기는 천물이라, 절망의 자기인 줄 알았던 자가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게 된다.

인생아, 인생 살이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종자 선택이다. 종자는 둘 뿐이라. 인생의 성패의 종자는 둘 뿐이다. 하나는 성령이신 하나님이요. 하나는 물체인 육체. 너희의 인생살이의 한 토막 한토막, 한 종류 한종류가, 너희 언행심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발원됐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지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많은 것이나 적은 것이나, 인류를 위하고 민족국가, 가정, 자기, 문화, 넓은 우주를 위하든지, 인생 살이는 둘 뿐이다.

조물주시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이신 이 주님으로 인해서 피동이 됐느냐 너희 세상 살이의 원동이 하나님이었느냐 피조물이었느냐 네 살이의 한 토막, 한 토막 살이의 그 중심이, 위주가 구속의 하나님이었느냐, 어떤 피조물이었느냐 이것이 인생의 성패의 종자다. 인생 살이의 종자다. 인생 살이의 종자는 둘 뿐이요.

인생농사의 전토는 세상이니, 세상이란 한 토막에서 네가 무엇을 심어서 추수하겠느냐? 성령을 심어 무궁세계의 영생과 평강을 네가 추수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그 무엇의 조물주를 뒤로 두고 피조물 그것을 네가 심어서, 피조물 그것이 너를 움직이는 거게 피동되어 그것이 너희의 능동이 되어, 그것에게 피동되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것으로 인하여 너희의 농장인 이 땅 생활에 언행심사를 하겠느냐? 무엇으로 하겠느냐? 인생아 인생 성패의 종자는 둘 뿐이다.

 

하나님이냐 피조물이냐 둘 뿐이다.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 인해서 영생을 거두고 피조물인 물질인 육체로 심으면 썩어진 것을 거둔다. 사망을 거둔다. 그러기에, 성과있는 하나님으로 심은 영감의 인생 살이, 진리의 살이, 양심에 가책 없는 신앙 살이 이 살이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마찰 뿐이요. 아무런 그 날 그 날에 땅의 것으로 얻어지는 유익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낙망하기 쉽다.

 

그러나 이 비밀을 네가 확실히 깨닫고 굳게 잡았으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인생 살이에, 하나님으로 종자를 삼은 이 살이가 세상에서 받는 어려움과 무궁 세계에서 얻는 그 존영을 네가 확실히 한 눈에 같이 봤다면, 이 진리의 살이로 네가 죽는 것도 기쁘고, 가난해지는 것도 기쁘고, 하루종일 죽일 양과 같이, 도살장에 가는 짐승과 같이 헤아림을 받아도 오히려 기쁘고 즐거워, 하늘의 것이냐 땅의 것이냐 이제 것이냐 장래의 것이냐 삶이냐 죽음이냐 그 무엇이 그리스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겠느냐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향하여 가고 있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요. 우리는 원대한 미래를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큰 관문을 가졌고, 하나님이냐 피조물이냐 어느 것으로 원인을 삼느냐? 어느 것에게 소속하여 어느 것으로 움직이느냐 너의 근원은 무엇이냐 너의 근원이 하나님이냐 너희 근원을, 뿌리를 피조물에게 두었느냐? 이것으로 인간 일생의 살이의 그 결실인 영원한 추수는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우리는 심는 때요 가꾸는 때요 종자 선택에 우리는 심히 조심해야 하겠고, 성령으로 사는 이 살이를 마치 농부가 썩은 것을 거름으로 넣으면 썩힌 그것이 다시 생명화 되어서 추수하는 것처럼, 성령의 생애를 하면서 과거에 우리가 잘못된, 모든 과거에 잘못된 죄를 성령으로 사는 이 현실 생활에 깊이 깊이 느껴, 과거에 잘못된 이 죄악을 마음아피 느껴 현재의 성령으로 사는 이 생활이 강건해지도록, 이 생활이 뜨거워지도록, 이 생활이 견고해지도록, 과거에 잘못한 것을 원통히 성령으로 인하여 죽는 것도 좋고 사는 것도 좋고, 굶어도 좋고 먹어도 좋고, 살든지 죽든지 이제는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영감만이 내 생애에서 무성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나의 일생 살이에 성패의 결실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구별합시다. 우리의 성패는 죽음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우리의 살이는 두 종자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 모든 생애의 근원이 하나님이냐 내 생애의 근원이 피조물 중에 어떤 것이냐? 더욱 더 허무한 돈이냐? 지위냐? 권세냐? 호의 호식 이냐? 이런 것으로 자기생애의 근원을 삼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두움 속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모를 때에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두움에 있지 안하고 빛을 받았습니다. 빛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술 취하고 정신 없이 날뛸 밤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낮의 사람입니다. 어두움이 결단코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 살이의 이 인생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는 피곤치 않을 만큼 깨달아야 되고, 낙심되지 않을 만침 깨달아야 되겠고, 기회 기회마다 놓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인 이 선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모든 사람에게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심고 가꾸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성공은 죽음 너머에 있습니다. 죽음 너머에 성공을 지금 우리는 마련하고 있습니다. 종자를 잘 선 택합시다. 과거에 잘못된 것을 낱낱이 찾아서 깨끗히 회개하여 현재의 생활을 힘있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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