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8일 화후집회 

 

본문 : 계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1절에 나타나신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주님이 이런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았다' 하는 이 말씀은 주님이 에베소 교회의 사자를  승리의 사자로 잡고 일하셨다 하는 말입니다. 승리의 사자로 붙잡고 일하셨다. 또  '일곱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라 하는 것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것을 주님이  다 관리하시고 또 그것을 책임지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가 믿음 생활, 여덟 가지 한 이 생활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가 좋은 점이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이렇게 에베소 교회에  좋은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뭐인가? 처음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고 또 그 사랑에 붙들려서 그 사랑에  피동되는 그런 행사를 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니까 주님이 좋아하셔서 계속  그런 행사를 자꾸 하도록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처음부터 에베소 교회에서 이런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는 것은 처음 행위는  주님이 인정하신 행위요 그거는 칭찬하신 행위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셨는데 지금 행위는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행위입니다.

 여게 그런 질문이 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여덟 가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여덟  가지 자체를 칭찬하셨는데 후에 처음 사랑을 버려서 노하신 것입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했는데 좋은 질문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모르면 모르는 게 낫습니다. 아는 것 없고 모르는 것 없다는 말로 다  아는 것 같은데 실상 하나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그런 사람은 잘못된 그런  죄를 많이 저지릅니다. 하나심께서 역사하시는 순서가 제일 처음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된 이 복음을 전해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 구원은 제일 먼저가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복음은 무엇이 복음이냐?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복음이요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도록 적용시키는 보증이 합해져서  복음입니다.

 이 사활의 대속의 지극히 큰 공로를 우리에게, 우리의 공로인데 우리가 우리의  공로인 줄을 모르고, 우리 것인 줄을 모르고 우리 것인 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곧 예수님이 사활하신 것은 우리 대신해서 사활  하셨지 우리가 아니면 사활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활 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사활하셨기 때문에 사활의 대속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사활의 대속을 하셨는데, 이 대속을 우리들에게 우리의 공로가  되어지도록 알고 또 인정해서 확신을 가지도록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가 곧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에베소 1장에 '성령을 우리의 기업의 보증으로 주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보증자이신데 보증자이신 이 성령이 또 진리와  함께 우리의 보증자가 돼 가지고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가지고 복음을 전해 주시고 전하는 복음을  받아 가지고 이 복음을 영접할 때에 하나님이 뒤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 복음인 사활의 대속을 잘 알게 하고, 또 깨닫게 하고, 또 느끼게 하고  자꾸 이렇게 해서 성령은 와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더 확실히 알게  하고, 더 느끼게 하고, 또 간절케 하고 또 이 사활의 대속이 이제는 자기 속에서  역사해서 견디지 못하고 사활의 대속의 복음대로의 역사의 움직임을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활의 대속의 이 복음을 믿는  것도, 믿는 것도 하나님이 이렇게 믿도록 역사하시고, 성신이 역사하시고, 또  사활의 대속하신 이 복음 자에가 역사를 하고 이래 가지고 이 복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을 믿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먼저 중생시키는, 중생시키는 역사로  이 사활의 대속을 믿도록 합니다. 사활의 대속을 믿는 것은 중생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믿게 됩니다. 그러면 중생이라 하는 것은 본인이 알게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모르게 중생하고 중생한 후에 중생한 증표가 곧 신앙 행위 하는  그것이 증표로 나타납니다. 이래서 이 사활의 대속의 복음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자꾸 믿구로 해 주는 이가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슨 일 하고 계시는가? 성령은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이 있고,  기록 영감이 있고, 또 우리에게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인정하도록 하는, 인정하도록 하는 영감이 있고 또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게  하려는 그런 또 영감의 역사가 있어서 비로소 예수 믿는 우리가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고, 진리가 우리 위해서 역사를  하고,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는 그 역사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그런 역사를 하게 되는가? 우리에게 아무 자격이 있어서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역사 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슨,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대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도록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자격이 있어 원인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그  일을 했다 그싶세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에베소 1장에 보면 이게 어떤  권면으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당신이, 당신의 소원이 우리를 하나님 같은 그런  온전한 자로 만들어 교회를 일으킬라고 하시는,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지고 그렇게 성령도 이 일을 보증하시고, 진리도 이 일을  보증하시고, 또 모든 피조물들도 다 협조하고 이렇게 하도록 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믿도록 합니다.

 또, 그렇게 믿도록 하시고, 또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공로를  우리로 하여금 믿어지게 하시고 또 기념하게 합니다. 믿어지게 하고 기념하게 해.

 기념하게 하는 생활이 곧 이제 에베소 교회의 여덟 가지 이 행동이 곧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기념하게 하셔서 한  기념 행동입니다. 이 기념하게 하는 그 일을 작용하는 것은 누가 하는고 하니  성령이 그 일을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이 믿고 사랑으로 말미암은 행사를  할 때에, 사랑으로 말미암은 행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행사에다가 덧붙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이 일을 하도록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기념하게 하는  생활을 하게 하셔 가지고 잘 기념하면 하나님은 자꾸 기념하게 하는 역사를 자꾸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는 것은 뭐이 원하시는 것이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가 받는 것을 제일 원하십니다. 받는 걸 제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걸 원하신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때에 우리 주관이  이해할 것도 있고 이해 못 할 것도 있습니다. 이해 할 것만 이해해서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이 사활의 대속을 기념하고 모르는 그런 거는 기념하지 안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이 적은 자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뭐이 대접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이 나를 잘되게 하시는 그 잘되게 하심을 내가 받아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음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도와 드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돕는 것은 뭣을 가지고 하나님을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때에 그 도움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유일로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된 그 복을 베푸실 때에 그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모를 때에 복음을 줬고 복음을 받을 때에 복음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하나님 은혜를 자꾸 볘풀어 가지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디까지나 이르는 그런 성자 생활을, 성자가 되도록까지 성화를 시킵니다.

 이러면 이 성화 과정이 시작했다가 만 사람 있고 중간에 조금 또 하다 만 사람  있고 이거 천층 만층도 더 됩니다. 더 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적게 준 사람은 적게  되고 많이 준 사람은 많이 되고 이렇게 주심에 따라서 우리에게 맺어지는 결과가  층하 있는 그 결과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 교회의 이 사실이 있은 것은 처음에는 이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됐습니다. 기쁨이 됐은 것은 처음 행위로 할 때는 기쁨이 됐는데 이제 그것이,  처음 행위로 할 때는 기쁨이 됐는데 이제는 기쁨이 되지 안하고 미움이 돼  버렸어. 미움이 돼서 '없애겠다,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말은 에베소 교회의 터를 옮기겠다는 그런 것보다도 이제 이 여덟 가지 이것이  하나의 빛의 생활인데 이 빛의 생활을 없애 버린다 그 말이오. 신앙의 옳은  행위를 없애 버린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여덟 가지 행위 자체가, 자체가 나쁘다는 것보다도 여덟 가지 행위  자체를 할 때에 주님의 사랑의, 그 사랑과 은혜의 깨달음으로써 감동돼서 했으면  이것이 한없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세상에 빛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인격의 양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에베소의 교회 이  행위의 여덟 가지를 처음에는 당신이 기뻐했습니다. 기뻐한 것은 뭐이냐 하면  처음 행위를 가지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는 것은 그러면 처음 행위는 이렇게 잘 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요 질문한 데에 이 사건 자체가 나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잊어버려서 하나님과 끊겨져 가지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안하고 다  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는 보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이 있고, 금하시는 일이 있고, 또  하나님이 묵인하시는 일이 있고, 또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금하신 일을 했을 때에는 정죄받아서 형이 뒤따르고, 또 묵인하는 그  일은 할 때에 그것이 묵인만 되어지는 것이지 아무런 그렇게 하나님께 의나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했을 때에 또 그것은 행하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에덴 동산에, 일반 과실은 네가 임의로 먹되 하는 것은 자유를 줘서  먹을라면 먹고 먹기 싫거든 먹지 말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그저 용납해  둔다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 묵인해 둔다. 네게 자유를 줘서 네 자유대로 하라.

 그러나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하는 그것은 금하신 것이라. 그 다음에  생명과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거는 네가 꼭 먹어야 된다 하는 그것은  아직까지 거게 계약이 없고 허락이 없고 다만 '생명을 아는 생명나무의 과실이  있었다' 그렇게만 말하고 타락 후에 그 과실을 먹고 영생할까 해서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의 의는 뭐이 의인가? 우리의 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하나님의 의도 그것이 우리 의인데 이것은 완전  의니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의를 바탕삼아 가지고  우리들이 의로운 행위를 하는 그런 것은 우리 사람들의 의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있고 또 우리 사람들의 의가 있어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힘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또 '있는 자에게 더 주어서  부요하게 한다' 하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본의 이 의를 힘입어  가지고 자꾸 의의 생활을 하면 점점 그 의의 생활이 우리의 주관적인 인적인  그런 의가 자꾸 성장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데 이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그랬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은 미워해서 다 제거해 버리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받은 우리기 때문에 사활의 대속을 이것을  점점 깨달아 가고,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느껴서 감사하고, 이 사활의 대속을  느껴서 기념하는 것, 기념한다 그라면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을 하실 때에  그당시의 실상, 그 당시의 실상을 우리가 믿어보고, 믿어보고 느껴보고 이렇게  자꾸 신앙하는 것, 추상하는 것 그것이 곧 기념하는 생활이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고 또 살을 기념하라, 기념하라 하는 그 말씀은  예수님이 이 사활의 대속을 배푸신 실상은 원형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실상을  실상과 꼭 같은 그런 모형. 그와 같은 모형의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곧 기념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기념하는 이 일만 하면 성령은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성령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이, 이 영감에 대해서 뭐 우리가 그것도 좀 바로 알아서 확정을 지워  놓고 있어야 되는데, 요새는 세계에 있는 기독교를 불파라 하는 이 파가 거의 다  점령을 하고 있습니다. 요새 교회들에게 불파의 기미가 없으면 그 교회가 힘을  얻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도 제일 열심 있는 그런 교회는 물어 보면 다 불파의  그런 요소들이 있어 가지고 그 힘으로 열심을 내서 뭐 세계에 그 열심이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파의 그 뜨거운 열심이, 어디 가서 그 불파의 뜨거운 열심이 힘을  내지 못하고 쇠약해지는가? 쇠약해지는 것은 영감에 대한 것을, 영감에 대한 것을  성경대로의 영감을 알아서 성경대로의 교리와 신조를 바로 알아서 영감을 이렇게  성경에 가르치신 성경대로의 영감을 이렇게 정확히 깨닫고 요대로 실행을 해서  나갈라고 할 때에 잘못된 영감들은 다 거기서 차차 제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 실례를 들면 OO교회는 제가 알기에 조금 아마 앞으로 어려운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오지 않느냐 하는 그런 것을 제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왜?  거게는 불파의 그런 흔적이 약간 지나갔습니다. 지나가서, 그것이 불파이면서  올바른 교리와 신조와 이렇게 서로 화합을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이거는 불파도  아니요, 이것은 무슨 신비파도 아니요, 이제 불건전한 신비파라 하는 것으로써  이렇게 둔갑돼 가지고 나갑니다.

 이래서, 불파만은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은 부정을  하니까 거기서 그렇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힘을 쓰지 못하고 그것이 차차 차차  쇠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불파의 사상을 가지고 이 교리 신조를 이것을 불파의  불보다 교리 신조가 좋다는 그것을 평가하는 그 사람들이 불파에서 나온 그런 그  신기파, 말하자면 기이한 신비스러운 그런 것을 원하는 그런 사상들을 가지고  교리를 가졌기 때문에 올바른 교리는 그렇게 쉽게 신비스러운 그런 사상과  접선이 안 되고 서로 화합이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은 불파도 아니고 이거는 교리  신조파도 아니고 하나의 불건전한 신비주의파로 돼 가지고 나가는 그런 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때 OO교회서, O조사님이 세상을 떴는데, '그 O조사님이 죽은 게  아니라 지금 살아 가지고 무덤위에 나와 가지고 앉아 있는데, 가서 데려오면 될  터인데 가서 아무도 데려올라 하지 안하니까 자기 발로 올 수가 없어서 무덤  위에 나와서 앉아 있다. 그러니까 지금 가면 된다.' 그러니까 거게 장로님들은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아니까 그것은 아니라고 부정을 합니다. 부정을 하나마  자꾸 가자 하니까 그러면 가 가지고 만일 그렇지 안하고 그게 거짓부리라면 네가  그때는 굴복을 해야 될 것 아니냐?' 하는 그런 약속을 맺고 갔다고 합니다. (안  들려요? 졸다가 나와 가지고 지금 안 들린다 하는 거 아니야? 뭐라 해? 안  들린다고? 그래. 자다가 들으면 들리는가? 말을 잘 들어서 말의 순서를 잘  알아들으면 그뭐 요보다 더 작은 소리 해도 다 들려요. 다 들리는데 엉뚱하게  갑자기 자다가 나오면 못 들어요. 그러기 때문에 백 목사 설교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설교는 실컷 자다 들어도 들으면 되는데 백 목사 설교는 한 마디만 빠줘  놓으면 그 다음에는 잡지를 못한다' 말합니다. 설교록을 읽어도 그렇습니다.) 그배  가지고 내가 보증하겠다고. 내가 그라면 만일 살아 있지 안하면 내가 앞으로 내가  그런 주장을 안 하겠다고. 그래 어느 장로님이 하도 그래 쌓아서 헛일은 헛일인데  그래 하는 거 다시, 그 사람 고치기 위해서 가자 이래 가지고 갔더랍니다. 가니까  없으니까 '곧 나온다 나온다' 이래서 '그래 나오든지 말든지 이래 나와 앉았다  했는데 앉아 있지 않지 않느냐? 우리는 간다.' 하고 그 먼 데 실어다 놓고 그만  왔더랍니다.

 그게 그것인데, 그 O조사님의 사모님이 서부교회에 와 있었습니다. 와 있을 때  그분이 그건 불파도 아니고 교리 신조파도 아니고 둘이 합해 가지고 된 이상한  호기심의 불건전한 신비성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아무리 말해도 안 들었습니다.

 꼭 테이프도 그런 테이프만 듣고 있습니다.

 제가 저 아래 양산동 산에 제가 기도막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 위에서 어떤  사람이 무슨 녹음 테이프를 트는데 무슨 말인지 똑똑히 들려지기는 들려지지  안하나 좀 이상한 감이 생겨졌고 그분이 찬송을 또 한참 하더니만 기도를 이렇게  하더니만 그만 가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뒤에 제가 알아 볼라고  하다가 알아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OO교회에 OO목사가 거게 계실 때에 용문산에서 온 사람 한 두  사람인가 몇 사람인가 와 가지고 거기서, 그 사람들은 아마 지시파도 되고 불파도  되고 잡것이 와 가지고 있었는데, OO목사님은 그것을 용납을 안 하고 직책도  주지 안하고 그렇게 아주 금했었습니다.

 금했으나 그 교회에 나오는 거는 둬 둬서 나와 가지고 있다가 그 영향이 있어  가지고 그게 모두 다 그래 물들어서 O조사님도 뒤에 알아 보니까, 그분이 암만  내가 신앙을 넣어 줄라고 말해도 신앙이 서지지 않습니다. 뭐 신앙이 서 가지고  신앙에 굳게 섰다고 이렇게 자기도 말하고 이제는 안 그렇다고 하고 난 다음에도  그만 몇 달 지나고 오면 딴 사람이 돼 가지고 그저 저 어디 기도원에 가 가지고  그런 잡탱이 듣기를 원하고 자꾸 그랬는데, 그 부인의 신앙으로서 O조사님이  순전히 그때 신앙을 팔고 불건전한 그런 신비파에 팔려 가지고 있지 안했느냐  그것을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라다가 그 부인을 암만 말해도 안 듣고 이랬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 교회는 못  있다. 가야 되지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 가거라. 너거 그런 사람들은 너거 좋은  대로 가거라.' 이라니까 그 두 사람이 갔었습니다. 두 사람이 갔었는데 거기 가  가지고 뭐 간접적으로 말을 들으니까 그런 교역자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재산도  뭐 그리 다 주고 뭐 이래 가지고 아주 자기를 선지자같이 일켜 세우고 이래  가지고 이라니까 거기 있다가 그만 거기서 병이 들어 가지고 세상을 떠나서, 저는  그 세상 떠났다고 왔기 때문에 답도 안 하고 가 보지도 안하고 또 아무 연락도  없었고 이랬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미혹을 좀 많이 제해야 되겠습니다. 제할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깨닫고 감사해서 이 대속을 기념하는 거 요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친히 죽으시고 또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성을 입고 영원히 벗지 안하고 영원히 입고 있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괴조물의 인성을 입고 있는 동안에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산 소망이 있지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내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있지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의  이런 형상을 입을 이유가 뭐 있느냐?'하고 당신이 만일 피조물의 형상을 입은 그  형상을, 인성을 벗는다고 하면 우리의 소망은 다 끝나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사죄  칭의 화친의 그 대속의 공로는 그대로 있지만 산 소망이라는 이것은 끝나고  맙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가 깨달아서 기념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날이 못 돼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되리라' 하는 그 말씀은 곧 무슨 말인고 하니 권능  얻어 가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기념하는 그 기념을 네가  하리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기념은, 예수님께서 몇 가지 대속하셨는가?  네 가지 대속 했습니다. 네 가지 대속한 여게 우리가 깨달아 감사하고 감격해서  이것을 기념하는 생활로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형벌을 받으셔 가지고 이  죄에서 사죄해 주셨으니 여게 감사해서 '나는 내가 이제는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내가 죄 있는 자로 살지 않겠다, 죄를 다시는 입지 않겠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예수님이 이렇게 대형으로 사죄를 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죄를 지을 수  없다, 나는 죄를 지을 수 없고 이제는 죄를 다시는 범할 수가 없다.' 하는  요것으로 신앙 생활 하는 것과, '예수님이 나에게 대형으로써 사죄의 흰옷을 입혀  주셨으니까, 사죄의 흰옷을 입혀 주셨으니 이 흰옷을 나는 벗지 않겠다.' 하는  것으로써 죄와 상관 없이 사는 것과 또 자기는 죄와 상관 없이 살기 위해서 죄와  상관 안 하고 죄를 대적해서 싸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성경은, 기념하는 것을 당신이 제일 원하시고, 또 흰옷을, 옷을 더럽히지  안하고 옷을 벗지 안한다 그말은 예수님의 이 대속의 완전을 자기가 입고 이  완전을 더럽히지 안하고 완전을 벗지 안할라고 하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사는  것과 자기가 죄를 대적해서 이기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사는 거와는 다릅니다.

 자기가 죄를 대적해서 이기기 위해서 사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의 이 첫 사랑과  연결이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좀 잘 알아.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옷을 벗지 말아라, 옷을 더럽히지 말아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살아라. 벗지 않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이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라 하는 것을 늘 말하는 것이 벌로 들으면 잘 모르지만 그 말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제는 예수님이 대형으로 사죄를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의로운 자로 살겠다, 죄 없는 자로 살겠다' 하는 것  좋으나, 좋으나, 그것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입은 거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대속을 입혀 주셨기 때문에 나도 죄를 대항하고 의를 나도 행해서 죄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살겠다' 하는 그것도 좋지만 그것이 심히 깊이  분석을 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과 자기와는 조금 그 관계에 간격  사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옷을 지켜 더럽히지 안한 자라 말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몇 시간 전에도 말했던가 어디서 말했던가 말한 것이 내가  무슨 성구를 말하면서 그렇게 말했던고? 내가 무슨 성구를 말하며 그래 그걸  해석했는데. 우리가 어떠한 의로운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어떤 의로운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그 의로운 행위가 알고 보니 전부 이것이 참 아주 의로운  행위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의에 비추어 볼 때에 이것은 아주 하나의 일종 더러운  죄에 지내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오, '거룩함과 경건함을 가지라' 이 거룩에 대해서 제가 그것을  언제 해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 거룩이라는 것은, 거룩이라는 것은 깨끗한 걸  거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걸 거룩이라 하지 안하고 이 거룩이라 하는  것은 양면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말 합니다. 일면 한 없이 더럽고 일면 깨끗하고,  더러운데, 더러운데 더럽지 안하고 깨끗하다는 그럴 때에, 이 양면을 가졌을 때에  거룩이란 말을 쓰지 깨끗 그것만이 일면으로 됐을 때는 거룩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고 계실 때에 그때에 그분이 거룩하셨는가?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고 계실 때에 거룩하셨는가? 그분이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때에 피조물이 존재한 이후로부터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  나타나셨고 또 타락 후에 더우기 거룩이라는 말씀을 만이 하셨습니다.

 이래서 아무리 인생이 자기가 깨끗하다 할지라도, 바울이 왜 자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와 같다' 또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 이라' 하는 그 말이  초기 신앙 생활 할 때보다 노년 때에 죄를 더 많이 지어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또 노년 때에 죄를 이기는 힘이 점점 노쇠해서 약화돼 가지고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겉사람은 노쇠하지만 속사람은 노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서 자기가 어디까지 인간으로서는 참 장성한 행위를 했고 의로운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만삭되지 못한 아이의 행위기 때문에 대행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자기가 입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예수님의 대속의 행위를  입을 수 있는 동기가 되고 더 갈급이 되어지고, 자기가 어떤 의로운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가 살펴 보니까 그것이 내나 외부에서는 볼 때는 의지만  내용에 볼 때는 그것이 아주 거짓된 것이라.

 이래서 그거 행한 자체가 이래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그렇게 느낀 그것이  실지 자기 행동이 나빠 그렇다는 것보다도 자기 사람이 변화됐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강하고, 죄를 발견하는 지혜가 강하고, 의를 인정하는 도수가  높아서 과거에는 그거 뿌스러기만 해도 세상에서 막 떠들고 야단일 건데 이거  아주 고귀한 의지만 그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의로운 행위나 의로운  그런 일을 하고도 죄에 대한 종류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사죄에 마지막으로 '주여,  주님의 사죄를 나에게 입혀서 예수님의 사죄를 내가 의지합니다.' 하는, 사죄에  마지 막에 종착을 해서 맡기고 예수님의 칭의에 맡기고 이것이 되어지는 것이  거룩입니다.

 이래서 거룩이라는 이것을 좀 알기가, 좀 알아듣기가 힘이 들란지는 모르나  그래서 거룩은 죄와 의 양면을 가진 것이 거룩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그 행함은, 그 행함은 어떤 효력을 우리에게 주느냐? 행하는 그것은 우리에게  효력 주는 것이 우리를 성화시키는 효력을 주고,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는 효력을  주고 그라니까 우리는 죄에 대해서 눈이 밝으니까 과거에는 죄가 아니라고  보이던 것이 다 죄로 보이고 과거에는 죄가 거게 하나밖에 없었는데 자세히 눈을  떠 가지고 보니까 죄가 열도 스물도 많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그 주인공 되는  자체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 거짓부리로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진실되이 말한 것이 그런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대속하신 복음을, 대속하신 이 복음을 듣고 이  대속을,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가 대속의 효력을, 자기가 효력을 입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고, 대속을 기념할라 할 때에 대속의 효력을 입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고 이렇게 애를 쓸 때에 하나님께서 대속의 효력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그  효력이 와 가지고 이 에베소 교회에 여덟 가지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거 자꾸 이래도 좀 내가, 이거 또 시작합시다. 예수님의 대속을 담은  것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합니다. 복음으로 구원해서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전해서 이 대속을  믿음으로써 대속의 혜택을 자기 것을 삼도록 하는 역사를 누가 하는고 하니  성령이 이 작용을 하십니다.

 이래 가지고 사활의 대속을 기념하는 행위를 하니까 기념하는 그 행위에게서  뭐이 나와 가지고, 행위에게서 뭐이 나오는데 행위에서 뭐이 나오는 것이 뭐이냐  하면 성전 주초 밑에서 물이 쫄쫄 흘러 나온다. 어린 양의 보좌에서 물이 쫄쫄  흘러 나온다. 그래 가지고 그 물이 일천 척을 내려가니까 발 목이 잠기고, 일천  척을 내려가니까 무릎에 오고, 일천 척을 내려가니까 또 허리에 넘어서  내려갈수록 물이 쇠해지지 안하고 점점 많아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가 믿을 때에, 믿고 기념할라고 할 때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통해서, 내가 기념할라고 하는 내 이 주관 행위를 통해서 객관의 역사가  나타나 가지고 이것이 이제 수많은 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의를 이루어서, 그러면 수많은 의를 이루니까 이제 에베소 교회가 많은  의를 이루었지만 그만 대목이 딱 끊어져 버렸어. 원천이 바짝 말라 버렸어.

 원천이 바짝 마르니까 그 남은 것은 옮기나 안 옮기나 말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알라' 또 '그 촛대를 내가 옮기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생활을 하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하는데, 두 사람이 나서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이 공로에  대해서 참 감사와 기쁨과 소망에 넘쳐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기념하는, 입고 벗지  안할라고 하는, 입혀 준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할라고 하는 이 행위로 지금 해서  그 사람이 의의 행위가 된 사람 있고, '이제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으니까 나는  이제 죄를 다시는 지을 수가 없다 나는 의롭게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내가  화친하고 하나님 모시고 살아야 되겠다.'는 이것을 강하게 힘쓰고 이라면 지금  어느 정도까지 나갈 때는 둘이 다 같이 나가지만 조금 있으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나중에는 뿌리 없는 나무가 저절로 마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열심은 다 말라 버리고 맙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여덟 가지  행동이 있었지만 벌써 그때는 여덟 가지 행동이 다 차차 쇠퇴했을 것이고 점점  쇠퇴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주일학교 반사들에게도 말할 때에 '여러분들이 심방을 갈  때에' 즉 말해서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해야 되겠다.' 그거 좋은 마음입니다. '이  아이들을 주일을 지키도록 해야 되겠다'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얼마  안 가서 식어져서 이제 힘을 잃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사활의 대속을  하셨으니 이 사활의 대속에 감격해 가지고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기념하는,  자기도 사활의 대속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이 사활의 대속을 벗지  아니하기 위해서 하는 생활로, 입고 사는 생활로 할 때에 거게는 쇠해지지를  안하고 낡아지지를 안하고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음으로 다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  신앙 생활 시작하는 것이 한번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힘입어 가지고 거게  감격해서 내가 신앙 생활한 이 신앙 생활로 나가면, 뿌리 끊긴 나무는 푸르다고  해도 얼마 안 가서 다 말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라. 그러나 이 뿌리에 연결돼  가지고 있는 거는 아무리 태양빛을 쬐워도 마르지 안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이 처음 사랑을 네가 잊었다' 처음 사랑을  가지라는 말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아지고 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음료기 때문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이런 자에게는 다시 쇠해지는 법이 없고 낡아지지 안하고 그 속에 영생이  들어서 일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 뭐이 먹는 것이냐? 그것은 우리의 육체가  먹는 건 입으로 먹지만 우리의 중생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인격이지 이  고기덩어리가 아닙니다. 고기덩어리 양식만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중생된 하나님의 형상인 인격인 우리 사람은 뭘로 먹느냐? 입으로,  먹느냐 뭐로 먹습니까? 생각으로 먹습니다. 이래서 좀 요번에도 와 가지고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자꾸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말은  주님의 피와 살을 생각한다 말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내 이 죄를 인해서  주님이 대신 형벌 받으셔 가지고 나에게 죄에서 해방시쳐 주셨다, 죽기까지  순종하셔 가지고 죽기까지 화친을 취해 가지고, 영원히 또 창조주가 피조물의 이  인성을 입고 있음으로써 피조물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생겨졌다.'  하는 이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하는 거기서 우리에게 힘이 나오는 그 힘은 나 그거는 영원한 힘이요 전능의  힘이요 영생하는 힘이 됩니다.

 이래서 반사들에게 '내가 뭐 하러 가느냐?' '학생들 구원하러 간다' '학생들  구원하러 간다고 생각지 마라' '나는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간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간다. 주님이 나를 대속 하셨으니 나도 주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으로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흉내라도 내봐야 되겠다, 그와 같은  형용이라도 해 봐야 되겠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안하면 모든 것이 다 쇠해지고 마지막에는 깨지고 맙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주로 인해서, 시발은 다 주님으로  인해서 시발하는데 시발해 가지고 나가다 보면 주님 잊어버리고 그 일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이다 보면 마지막에는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촛대가 옮겨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부흥사라도, 그 부흥사가 몇 해 동안 아주 세계를 울리는  부홍사라 할지라도 자기가 부흥시킨 사람들 상대하고 부홍시킨 복음을 자기가 또  외치는 걸 상대하고 그런 것을 설교 노우트를, 설교 안을 딱 적어 가지고 이와  같이 얼마 동안 '이제 내가 여기서 가는 데에는 내가 요런 설교를 하고' 우리로  말하면 열한 시간이니까 '열한 시간 첫 시간에는 요래 메꾸고, 둘째 시간에는  요래 메꾸고 요라면 열한 시간은 다 된다.' 요 교안을 딱 만들어 가지고 그것  가지고 설교하면 몇 번 안 가서 그 사람이 이제 그만 도태되고 맙니다.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흥사가 끝까지 부흥사 된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주 사경회를 인도하는 사람들도 벌써 얼마 동안 긴 사경회를 인도하는  그런 사경회 강사가 별로 없고 부흥회 강사가 별로 없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이라고 누가 압니까? 이성봉 목사님? 아는 사람 있어, 여게? 그래요? 참  젊은 사람들이로구나. 이성봉 목사님은 그 분은 죽을 때까지 부흥사로  지냈습니다. 쇠해지지를 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뭐 아주 난다 긴다 하는 그런  부흥사라도 그 부흥사가 처음에 한 사오 년, 그저 어떤 사람들은 한 이삼 년  울리다가 그 다음에 차차 차차 쇠해져 가지고 나중에 그만 한 오륙 년 지내가면  뭐 유명하지 안해서 그만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목회하는 사람도 목회를 할 때에 젊은 혈기에 박력을 가지고  고함도 지르고, 또 정력이 있으니까 많은 서적 열람도 하고, 또 시간을 들여서  모두 다 설교를 조직해서 꾸미기도 하고 이래 필기로 해 가지고 저 산골짝에 가  가지고, 한번 또 해 보고, 고함도 질러보고 낮추기도 하고 고저청탁도 하고, 또  움직이는 것도 손을 내 밀었다 들였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사람이 많은 정력이  들기 때문에 그 정력이 노쇠함에 따라서 그 모든 설교의 권위도 노쇠해집니다.

 노쇠해지기 때문에 늙은 부흥사가 별로 없습니다.

 또 목회자들도 이렇게 목회하는 사람들은 차차 차차 보면 처음에 한 달 할 때는  더 은혜 있고 또 그만 일 년 지내면 은혜가 없고 이래서 모두 통계가 말하기를  '교역자가 자기 교회에 사경회 인도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딴데 가서는 하기  쉽지만 자기 본 교회서 집회 인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말하기를  '사람이 늘 아는 강사인데, 자기 본교회 교역자가 강사인데 그 집회에 본교회  교인들이 많이 따라간다는 것은 그런 참 위대한 일이고 놀랄 일이다.' 그말 하는  것은 뭐이냐? 교역자나 부흥사가 다 노쇠해지고 다 도태해진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쇠하고 도태해지는 것이 뭣 때문에입니까? 그것은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왜 처음에는 밍을 빤짝빤짝하게 이렇게 에베소 교회가 여덟 가지를  나타냈는데 왜 이 여덟 가지 빤짝빤짝한 빛이 나오지 안하고 이제, 촛대는 빛  아닙니까? 촛대를 옮겼으니까 빛이 없어집니다. 빛이 없어지는 건 왜 빛이  없어졌습니까? 이 빛이 왜 없어졌지요? 이 빛이 왜 없지요? OOO목사님? 부흥  강사 OOO목사? 허 허, 인제 똑똑히 알아서 볼끈 쥐어. 그래 처음 사랑을 버려  그래.

 그러기에 목회자든지, 부흥사든지 노우트도 필기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고 다만  처음 사랑입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이 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나와 화친을, 어떻게 해서 영생하는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소망에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가 전부가 되고 부자가 되어지는 이 일을 할 수가  있느냐?' 하는 이 원천이, 이 원천이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여기서  이 연결 가지고, 이 연결되면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음으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이 떨어진 것은 이 네 가지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 네 가지는 전지  전능자요 완전자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역사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전부요 하나님의 전부입니다. 여게 연결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뭐 거지기  부자하고 결혼했으면 어찌 돼요? 거지가 부자하고 결혼하면 누가 손해라요?  거지가 손해요 부자가 손해요? 부자가 손해가? 부자는 뭐 또 많이 있으니까  상관도 없고 거지가 부자하고 결혼했으니까 부자됐지 뭐.

 어떤 사람 그런 말 해요. '그게 우리 앞에 내나 뭐 종같이 여기던 아무것도 아닌  그게 떡 와 가지고 사장이라고 뭐 이래 가지고 버투고, 왜 이라시오? 이거  이라시오 저라시오 아니꼬와서.' 아니꼬와도 어짤 거라? 요새 같으면 노사분규나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도 못하고 하니까 꼬박꼬박 복종해야지.

 그와 마찬가지라. 우리가 만유의 대주재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거물장입니다. 거물장이오. 어디서 떨어진 걸 기억하라. 자존하신 완전하신  대주재자 주권자 또 만왕의 왕 생명의 주 이분하고 딱 들어 붙어서 하나가  되도록 연결하는 그 연결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대속밖에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자기가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아이와 같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가 겸손케 할라고 '나는  이렇게 의인이지만 나는 죄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권능 있는 사람이지만  무능한 사람이라 말한다.' 만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했다면 사도 바울은 외식자  중에 외식자요 아무짝도 못쓸 사람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볼 때에  아무래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아니면 든든한 것이 없고 안심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믿고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거게 가서 마지막에 들어붙는  그것으로써 이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러 가는 사람이, 설교 준비하러 가는 사람이 그 사람이  도서실로 설교 준비하러 갈 수도 있기는 있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한적한  산중으로 가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습니다. 있어 가지고 가 가지고는 설교록을  자꾸 읽습니다. 처음에 어릴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많이 읽고 성경을  많이 읽고 난 다음에도 정말로 내일 주일 설교를 해야 될 터인데 어째야 되느냐  할 때는, 내가 다음 시간에 설교를 내가 해야 될 터인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할  때에는 이제 설교록을 보고 가려야 돼요 모든 도서실에서 서적을 보고 연구를  해야 돼요 어째야 됩니까? 어째야 돼요? O목사님 설교 준비 어째 해요? 처음  사랑을 생각해.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해. 생각하면 거기서 나와. 생각하면 거기서  나는 이래 살아야 되겠다는 그게 나오고 이래 살아야 되겠다는 것만 나올 뿐  아니라 '이제 모든 교인들도 이래 살아야 되겠다.' 그것만 나오면 모든 교인들이  다 만족하고 좋아하고 자라갑니다.

 그래서, 여게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촛대 사이에  다니신다 말은 하나님의 교회를 통치하는 것을, 관리 통치하는 것을 다닌다고  말하고, 장중에, 오른손에 잡았다 말은 그에게 모든 능력 있는 역사는 순전히  주님이 그를 붙들고 능력 있는 역사를 했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러니까 순전히 여덟 가지 이것이 주님이 그것을 당신의 힘으로 그를 통해서  일을 일으켰고 그 일을 또 하나님께서 잘 보수해서 원수가 가져가지 못하게 잘  보수한 것도 당신이 관리 통치해 가지고 보수를 했는데, 이제 이것만 이제, 이리  마음이 기울어져 가지고 여게 기울어져서 이 여덟 가지만 지금 힘을 쓰면, 내가  이라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구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네가 어디 떨어진 걸 알아라. 네가 이 네 가지 사활의 대속을  잊어버렸으면 완전자와는 완전히 연결이 끊어졌다 그 말이오. 어디서 떨어진 것  완전자와 연결이 끊어졌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아니면 연결시킬 아무것도  없습니다. 끊어졌다. 그거 또 그라고, 그라면 내가 그 촛대를 옮기겠다 말은  빤짝빤짝하는 빛을 옮기겠다. 이게 빛이지만 옮기겠다고 하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잊어버리니까 이 에베소 교회의 하는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고  미워합니다. 기뻐하지 안하고 미워하요.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그것만 가지고 날뛸 때에는 미워합니다.

 그와 같애요. 자기 아내가, 자기 아내가 반지를 하나 갖다 주니까 반지를 좋아서  아주 사랑하고 아주 반지를 좋아합니다. 반지를 좋아하는데, 남편이 준 반지라  하고 좋아할 때에는 그거 좋아할수록 슬그머니 '그 뭐이 그래 좋아서 그래?'  '아이구 참 좋아요, 이게.' 좋다 하니까 좋다 할수록 남편 입이 벙긋하게  벌어집니다. 안 그렇겠어?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 남반들 그래요 안 그래요?  벌어져요. 벌어지지. 하나 사다 줬는데 좋아서 이라는데, 그만 이걸 사 줬더니만  여게 마음이 기울어져 버리고 그만 남편 잊어버렸습니다. 남편 생각 없어. 또  이걸 자꾸 자랑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반지에 반해 가지고 다른 남자하고 친해 놔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본남편이, 반지 사다 준 남편이 그 반지를 어짜면  싶으겠어? 뺏아 버리고 싶어. 나 같으면 벗어 가지고 좀 망치로 이래 놓고 통통  깨서 뿌숴 버리겠어. 안 그렇겠어? 그와 마찬가지라.

 이제 요것을 주님이 이렇게 에베소 교회를 첫째로 두신 것은 제일 중요한  문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보다도 당신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가 느끼는 것을 당신이 제일 원하시고, 깨달은 것을 제일 원하시고, 거게  대해서 기념하는 걸 제일 원합니다. 왜 원합니까? 우리의 생명과 행복과 평강에  우리가 잘되는 것을 원해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거 외에는 우리에  잘되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땅위에 이런 거 저건 거 헛된 거 뭐, 뭐  이런 거 한다는 그것이 다 마귀에게 붙들려서 환장을 해서 그런 것입니다. 완전히  미쳐서 그런 것이라. 정상은 아닌 것입니다.

 '네 촛대를 옮기리라' 그라고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거 니골라,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이런 가운데서도 기뻐하신 것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을 기삐했습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는 그 아래에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 있고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뭐인가? 니골라는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행위요. 니골라 행위가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행위인데 이 행위를 미워하니까, 미워하니까 그거는 처음  사랑을 버린 데 속했소 처음 사랑을 가진 데 속했소? 가진 데 속했기 때문에  요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 네게 옳은 것이 있다  했습니다. 요렇게 그만 하나님은, 세밀히 알라면 하나님은 인색하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시기 많으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세밀하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굉장한 복수를 가지고 보수를 가지고 정확한 공의를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아가서에는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나의 누이는 사슴과도 같고 노루와도  같다' 이랬습니다. 노루는 뭐, 노루와 사슴은 그것은, 다른 짐승은 뭐, 여우 새끼는  뭐 이래 제게 놀랠 일 있어도 돌아가며 빼꼼빼꼼 돌아봅니다. 노루 이거는 그렇지  안해요. 뭐 어디 밭에, 시골에 가서 밭에 뜯어 먹는데 혹 돌맹이를 조그만한 거  하나 획 던지면 뭐이 하나 톡 떨어지면, 그거 봤어요, 노루? 어짜는고 봤어요?  그라면 뚝 떨어지면 뭐 이거는 뭐 어떻게 놀라는지? 뚝 떨어지면 깜짝 놀래  가지고 막 달아납니다. 달아나면 저 산만당이 높으든지 어떻든지, 힘도 좋아요.

 높으든지 어짜든지 저 산만당까지 뛰어가, 저 산만당에 올라가 가지고 그래 뒤에  한번 돌아봅니다. 이러니까, 노루도 그렇고 사슴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그 노루와 사슴에 비한 것은 주님은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 거,  당신의 사상에 맞지 않는 거,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 거. 당신의 성미에 맞지 않는  거, 당신의 경영에 맞지 않는 거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보면 천리 만리 달아나  버립니다. 뒤에 청해 만날라 하면 힘듭니다.

 이래서, 오래 전에, 지금으로부터 한 사오십년, 오십 년 전에 그때 무슨 목사고?  아, 이용도 목사님. 이용도 목사님 내가 책을 봤는데 그분을 모두 다 이단이라고  정죄했다 하는데 그분의 책을 내가 한번 읽어 봤는데 그분은 그때 시대가 감당  못할 탁월한 신앙을 가지지 안했느냐, 나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가 뭘 보고 그거  했느냐? 그분이 말하기를 '주님은 내가 잊어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다. 잊어  버리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다. 그러나 그분을 잊어버려 놓고 다시 찾을라고  죽자껏 애를 쓰다 보니까 그분이 딴데 있지 안하고 내곁에 계시더라.' 이렇게  말씀했어. 그분이 신앙에 주님으로 더불어 교제한 그 교제를 전기에 나타낸 것을  약간 봤어. 또 그분이 말하기를 '땅에 있는 모든 이 세상 사람들이 많은 수많은  물질을 보고 기뻐하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 진리 하나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거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 만족히 여기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 발견하고 그렇게 기뻐하고 세상  사람은 돈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런 귀절이 있습디다. 그때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그걸 말하지 안했어요. 또 하나님께서는 참 이기주의자요. 이 사람들이  바꿔, 사람들과 꼭 같애요. 사람들도 주인공을 바꿨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던 것을 자기를 주인으로 삼았어. 자기를 주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털끝만치도 위하는 것은 '하하'  좋아하십니다. 당신을 털끝만치라도 위하는 것은 아, 좋아하시고 어디까지든지  보증하시고 내가 서둘러서 내가 그거 책임지겠다고 이랍니다. 당신에게  털끝만치도 삐뚤어진 거는 못 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오.

 요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주인을 바꿨기 때문에 자기 옛사람이 주인공되어  있는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면 털끝만치 위해도 좋아서 이것은  어디까치라도 책임지고 보호하지만 자기에게 조그마치라도 헐어 뜯어서 해가  되는 것이면 막 눈에 불을 쏴댑니다.

 이러니까 이제 타락된 인간들이 악으로써 자기 중심 삼은 거와 같이 하나님은  의로써 당신 중심을 삼았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을 연구하면 하나님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김가면 김가 그 사람 중심으로, 그 사람 중심으로 아내가  하니까 좋아하고, 자녀들이 하니까 좋아하고, 이웃 사람들이 하니까 좋아하고,  사원들이 하니까 좋아하고, 이라다가 거게 반대되는 걸 하면 이거는 자기가  깨져도 기어코 힘이 있는 데까지는 대항해서 한번 싸워 봅니다. 그게 모든 사람들  아니요?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요. 하나님은  절대 이기주의자요. 또 하나님은 독재주의자시요. 얼마나? 당신 좋아하면 선 당신  싫어하면 전부 죄요. 당신에게로 가까이 나아오면 칭찬하고 좋아하시고 선하다  하시고, 당신을 멀리 하면 전부 미워하시고 대항하시고 절단을 내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안 맞아요? 모르고 하나님을 잘못  알고 이렇게 해서는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그거 잘 똑똑히는 모르지만 '인심은  즉 천심이라' 사람 마음이나 하나님 마음은 같다. 주격만 다르지, 같지. 사람은  저를 주격으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주격으로 삼으니까 그것만 다르지.

 그러니까 제가 저를 주격으로 삼았을 때에 모든 걸 상대할 때 '어떻게 하니까  제게 좋은가, 어떻게 하니까 제게 싫은가?' 그걸 봐서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아하겠다 어떻게 하면 싫어하겠다' 하는 걸 환하게 알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 속에 이 법칙은 다 들어 있다  그말입니다.

 이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주님의 사랑 잊어 버리면, 어디서  끊어진 것, 주님의 사랑 잊어버리면 어디서 끊어집니까? 생명에서 끊어지지,  의에서 끊어지지, 무죄에서 끊어지지, 평강에서 끊어지지, 소망에서 끊어지지,  하나님의 인정에서 끊어지지 그게 절단 안 나고 제까짓 게 어짤 것입니까? 절단  안 나고 어떻게 할 것이요? 그러고 '이기는 자에게는' 이기는 자, 이기는 자라  말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기는 자라 말은 이거 승리자인데 이긴다는 것은 뭣을 가리켜서  이긴다고 말합니까? 여기 저 OOO목사님? 이래 놓으니까 목사님들이 여기 안  앉아. 전부 다 어디로 도피 다 했어. 그래 놓고 말하기를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저 있어서 연로한 목사님들은 '저게 교인들 조는 걸 그런 걸 좀 감독하고  좀 깨우기 위해서' 주제넘은 소리 하지 말아요. 졸기는 목사들이 먼저 조는데 뭐  다른 사람 못 졸구로 한다고 그런 소리 하고 있어? 질문 당하면 지금 큰 코빵  맞을 것이기 때문에.

 아까 내가 말 들으니까 '이제 우리 양성원 교수 지금 코가 납작해진다' 이라니까  막 교수들 지금 교수들 가족들도 '아이구, 우리가 코가 납작해질란갑다  어짤란고?' 이렇게 걱정을 하더래요. 그래 놓으니까 아예 그만 안 나타날라 하는  거라. 암만 말할라 해야 저 구석에 가 있으니까 보여야지? 저 O목사님 여기 와  앉았으면 이번에 아마 한 서너 번 불렸을 거로구만. 불리면 좋아 안 불리면  좋아요? 말해 봐요. 불리면 좋아 안 불리면 좋아? 안 불리는 게 좋거든 손 들어  봐. 불리는 게 좋으면 손 들어 봐요. 봐, 이성 판단으로는 그렇지.

 불리는 게 좋다 하면서 자기 가 살며시 그래 가지고. 거기 가서 바람이  들어오니까 솔솔 시원하기는 시원해도 그까짓 가지고는 소용 없어. 어찌 됐든간에  예수님 한 분이면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만족하고 시원한 그걸 받아야 되지.

 이제 보니까 요쪽에 또 교역자들 줄 요래 뭐 조그매 쳐놓고 이랬는데,  교역자들은 여기 와 가지고 우사를 좀 해야 돼요. 전부 물으면 모르는 건데.

 대답을 정답을 해야지? 물으면 모두 다 모르는데. 참 아주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한번 가르쳐 놓으면 딱딱 알아버리면 뒤에 가서 가르칠 것도 없고 참  가르칠 문서가 없으니까 문제가 되겠는데 삼십팔 년 근 사십 년 동안을 가르쳐도  항상 물으면 모르니까 그거 뭐 이거 준비할 것도 없고 얼마나 편소? 그러나 이제  목적이 달성 안 되니까 그게 문제라 그거요.

 모두 앞에 알아서 그래 달라붙어요. 그래 가지고 알아야 됩니다. 지금 이거 다  꺼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들으니까, 여러분들 하는 생활과 대조에 보니까  맞아요 안 맞아요? 여러분들 한 생활과 맞추니까 잘됐어요 잘못 됐어요?  이제까지 한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느껴본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이라면 이거  마귀 절단나겠는데. 쉬워 쉬워. 아주 쉽게 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어짜든지  쉽게 베풉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언어도 제일 미개한 사람들이 쓰는, 일반  노동자들이 쓰는 그런 단어를 썼습니다. 아주 서민들이 쓰는 말을 해 가지고, 아주  쉬운 말로 쉬운 비유로 해 가지고, 그 뜻은 한없이 높고 영생이지만 발표하는  방언은 아주 서민의 방언으로 한 것이 우리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 그거 뭐인지 알지도 못하겠어. 그거 '아이구야, 이거  어렵다.' 이거는 여기 뭐이 있는가 싶어 한번 씹어 본다 말이오. 뭐 사전을  찾아가면서 한 페이지 떡 읽어 보면 속에 알맹이는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는데  전부 단어만 뭐 어려운 단어를 막 이래 가지고 이런 거는 그거는 속에 도는  모르는 사람이고 말에 가치를 있는 사람으로 알기 때문에, 말에도 어려운 말이  가치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어려운 문자를 써서 그래 놨어.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처음 사랑을 가지고 이 네 가지에 딱 들어붙어 있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 처음 사랑을 가지고 이 네 가지에 딱  불어붙어 있는 사람이라. 그 사람이 이긴 사람이라 그 사람은 그라면 어디  삽니까? 그 사람은 어디 사요? 낙원에 살지. 낙원밖에는 살 데 없는데 어짤 거라.

 죄 없는 자지, 하나님의 의와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지, 하나님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지, 하나님만이 소망하는 그 소망에 딱 들어붙어 가지고 있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디 뭐 갈 곳이 있어야지? 지옥에 가면 지옥이 다 타 버릴  건데. 낙원에밖에는 있을 수가 없어. 낙원은, 낙원은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곳을  가리켜 말합니다. 오늘 내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것은 무궁세계의,  신천신지의 무궁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대기하고 있는 곳을 가리켜서 낙원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낙원이라 말은 예수님의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고 또 무궁세계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게는 누가 있느냐? 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

 낙원은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대기소요. 무궁세계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소라. 이러니까, 낙원에 있다 이라니까 이 사람의 전생활은 대기 생활이라.

 대기 생활.

 세상에는 기다리는 게 애터지지 안해요? 애터지는데 이제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대기 생활. 무궁세계릍 대기하는 대기 생활이 좋아요 세상으로 막 부자되고  만족한 생활이 좋아요?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항상 이사간 사람으로서 무궁세계를  생각하먼서 조그만한 것도 무궁세계에 이거 필요하나 안 필요하나? 무궁세계에는  이거 손해가 유익이가? 이라면 무궁세계에 좋으나 안 좋으나? 이렇게 그 사람은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세계에서 산다 말이오.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세계에서  살아요. 이거 이해가 돼요?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 요  O조사님 이해가 돼? 저 OO교회? 이해가 돼? 무궁세계를 대기하는 세계에서  살면 그 사람은 뭐하는데? 그 사람은 뭣 할꼬? 그 사람은 무궁세계. 네 가지 생활  하는 사람들은 다 무궁세계 가서 필요한 것 준비하지 뭐. 거기 가서 잘살  준비하지. 그렇지 안해요? 그렇지 않겠어? 무궁 세계를 대기하는 세계서 살기  때문에 무궁세계를 언제 가노? 오늘 가나, 내일 가나? 하다 보니까 그 전생활은  무궁세계 가서 살 그것을 대기하는 생활을 한다 그 말이오. '낙원에 살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생명나무가 뭐입니까? 생명 이 뭐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나무에서 맺는 열매, 하나님과 연결된 나무에서 맺는 열매,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맺어지는 그 하나 하나의 결실  그것이 자기 양식이라. 하나님하고 동행해 가지고. 하나님하고 동행해 가지고 한  사건을 성취하고 한 승리를 성취하고 한 목적을 달성하는 그 하나 하나를 하면서  그것으로 먹고 양식 삼는다 말이오.

 그러면 여기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과실을 먹는다, 연결된  과실을 뭐라 할꼬? 먹는다 말은 무슨 말이요? 뭐? 뭐라 하노? 여기 잘 안 들려.

 통역해. 뭐라 하는가, 좀. 생명나무의 과실이라 말은 주님과 연결된 그 나무라  말은 연결된 모든 행동. 연결된 사람, 연결된 사건, 모든 연결된 연결을 가리켜서  거게 비유로 나무로 말했어 연결된 하나님과 연결된 거기서 맺어지는 과실,  하나님과 둘이 합작 공사해 가지고 성취한 그것, 그것이 생명나무의 과실입니다.

 또 먹게 하는 것은 뭐이 먹게 하는 것이라? 예? 먹게 한다 말은 이제 주님하고  둘이 합작된 그 성과 그것을 행하는 그것으로써 자기 양식 삼는다, 그걸 행한다  그 말이오. 먹는다 그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온전히 이루는 것인데  하나님과 합작된 그 합작으로 만들어진, 결실하는 그것으로써 자기는 양식을  삼는다, 그것을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전생활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좋아요  나빠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은 대통령한테 받아야 돼요,  무슨 이 세상 권력가에게 받아야 돼요, 사장에게 받아야 돼요, 우리 행복은 우리  대문 밖에서 들어와요 어디서 들어와요? 우리의 행복은, 지극히 좋은 행복은 대문  밖에서 들어와요 어디서 들어와요? 어디서 들어옵니까? 예? 대문 밖에서 안  들어와요. 대문 밖에서 들어오면 애터지지만 우리 안에서 나와요. 우리의 가진  최고의 행복은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데 우리 안에 어디서  나옵니까? OOO목사님? 네, 하나님께서 나온다 하지, 그만. 하나님께서 나와요.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나와요. 하나님께서 나오는데 하나님과 나와  연결됐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오니 하나님의 무한이 자기 것이 돼져. 이보다 더  좋은 거 있습니까? 그러면 이게 공연한 말이요? 아니오. 다 이러하요. 재미 있어.

 또 다른 사람 걱정할까 싶어 내가 하나 하지. 우리 막낭딸, 서영준 목사님의  아내가 지금 중간반 여부장을 하는데 아주 은혜를 많이 끼치고 그렇게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작년에 온 수가 얼마 됐어? 여기는 안 왔나? 아마 작년에 온  수의 한 사 배나 안 오는지 모르겠어. 그만치 많이 와요. 은혜를 받아서 지금 그  덕에 우리 서부교회가 지금 숨을 쉬고 좀 일어나고 있어요. 이랬는데 지난, 저  지난 수요일, 열이틀째인데 그만 어디 가다가, 공부하러 간다고 가다가 그만 그,  신호가 다, 신호가 나타난 걸 보고 갔는데 그 사람은 또 '암만 신호가 바뀌었지만  한번이야 못 가겠나?' 하고 또 그 사람은 막 급하게 달렸다 말이오. 또 이 아이는  신호가 바꿔졌으니까 '요이 땡 내가 먼저 가자' 하고 또 달음질했다 말이오.

 그라다가 차 안에 그만 들어가 가지고 누구 말 들으니까 뮈 십 메타라 하는데  한 뭐 얼마 되는가. 아마 얼마 끌려간 모양이라. 그 안에서. 그래 그 차 안에서  둘둘 그만 말려 가지고 자꾸 끌려갔었는데 옆에 청소하는 사람의 말을 내가  간접적으로 들었어. 그 사람들에게 내가 인사도 못했어요. 그래 다른 사람이  끌어내는데 인제 사람은 죽었다 하고 끌어내니까 아이가 숨이 없고 '이제 아이는  죽었다'하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옮겼는데, 그 병원의 의사가 그래 뭐 좀 어깨  주사를 놓고 어짜고 하니까 숨을 쉬면서 울더라고. 그래 말하기를 우리  병원에서는 안 되니까 지금 저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그래 큰 병원으로 옮겨  가지고, 종합 병원으로 옮겨서 뇌 사진을 찍으니까 뇌가 부었으니까 '이 부은  것은 이거는 수술도 못하고, 치료도 못하고 제대로 빠져야 되지 빠지지 안하면  정신 이상자가 되고, 빠지면 다행히 괜찮은데 이거는 달리는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라고 몸에는 내가 그거 좀 헤아려 보라 하는데 몇 군대인가? 한 아마 몇  군데나 상했는지? O전도사 한번 세어 봤나요? 세어 보지를 안했지? 아마 한  스무남은 데 상한 모양이라, 스무남은 군대. 그래 의사가 이거 이렇게 이렇지만  이거 참 생명이 붙어 있는 게 참 그거 신기하다고.

 그래 내가 그날 밤에 열시 돼서 내가 다 모두 일을 보고 나 가지고 그래 저녁  먹고 천천히 갔어. 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는데 마귀 이놈은 또 이거  방해한다고' 이래 가지고 지금 이라는데 이럴수록 방해 안 받고 하면 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뭣인가 좀 좋은 일이 있기는 있겠다. 죄를 지으면  거석하지만 있기는 있겠다. 그라고 내가 딱 생각한 것이 '요 한 가지 요것을  회개를 해야 되겠다'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내가 딱 갔다 말이오.

 가니까 그래 그 아이가 뭐 머리가 아파서 자꾸 이래 야단을 지기고 이라는데  그래 나더러 자꾸 기도하자 해. 그래 기도해 달라고 자꾸 그렇게 말하더래요.

 그래 기도해 달라 해서 그래, 내 외손자니까 할아버지 기도해 달라 했는지  목사님 기도해 달라 했는지 기도해 달라 자꾸 그래 한다 해요. '그라면 가서  기도해 주자' 그래 가니까, '그래 내가 기도하면 나을 줄 아느냐?' '예, 나을  줄안다' 고 기도해 달라고. 그래 인제 옆에, 나는 침대 옆에 붙어서서 그래  기도했는데 기도하고 나니까 그때 '아멘' 하더니만 '인제 괜찮느냐?'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아픕니다.' 하나도 안 아프다 해. 그래 믿음이 있어. '하나도 안 아프나,  정말 안 아프나?' '예, 안 아픕니다.' 보니까 뭐 웃음이 나오고 그래, 보니까. 그만  괜찮애. 그래서 내가 집에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게 거기 있으면 치료가 언제  될지도 모르겠고 또 집회도 못 오겠고 또 그라면 곤란할 거고 이거 가만히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낫아 주실 것으로 믿어져. 그래 그 이튿날 아침에 내가 얼른  퇴원하라 하니까 의사들이 이런 사람을 어디로 퇴원하느냐고. 그라면 뭐 어디로  큰 병원으로 갈라면 그거는 뭐 가는 것이 되지만 이거는 안 되니까, 어떻게  퇴원할라고, 우리가 책임질 터이니까 퇴원시키라고. 그만 돈을 현금을 주면서  퇴원할라 하니까 할 수 없어 퇴원을 시켰다고. 퇴원을 그 이튿날 퇴원했어요,  퇴원했는데 요번 집회 와 가지고 내가 한번 가 보니까 그래 그거 뭐 침대에 누워  가지고 어떻게 할 줄 알았더니만 뛰어 돌아다니고 오늘 오전에 설교하는데  노우트 필기를 뭐 열 몇장인가 했더랍니다. 그런데 저거 엄만 말이지, 저거 엄만  그래 놓고 저 중간반에 가서 뭐 하루도 안 보고 이래서 우리 O전도사님이 대신  지금 애가 터지니까 가서 돌봐주고 있어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뭐 할라 하면 마귀의 역사가 있는 동시에 믿음으로  나가면 그 모든 것이 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참  재미 있어요. 내 보기는, 그래 말하기를 '요번 집회?' '집회 가기를. 괜찮다.' 그만,  그만 나아 버렸어.

 우리 저 O장로 마누라 된 우리 둘째딸은 말이요, 내가 토요일날인데 토요일날  그날 심방을 가면서, 심방 갈라 안 간다 해 가지고 심방에 대해서 무슨 좀 서로  이러니 저러니 뭐 그때, 심히 다투지는 안했고. '심방을 가야 되지 심방 안 하면  되겠느냐?' 이래 하고 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뭘 벌건 걸 누가 하나 이래 아듬고  와. 아듬고 오는데 벌건 거 붉은 자루를 아듬고 와. 내가 '그거 뭐꼬?' 이라니까  이게 아무것이라 해. 그만 요게도 뿔라지고 요게도 뿔라지고 요게도, 팔다리가 한  군데 두 군데씩 뿔라졌어, 다리도 뿔라지고. 그런데 내가 이래 생각이 퍼뜩 나올  때에 내가 그때 유급의 전도사 노릇을 안 나갈라고, 자꾸 그래 주남선 목사님은  유급의 전도사를 나가라 하고 나는 안 나갈라 하고, 그뭐 나가는 것이 하루만  벌어도, 그때 월급이 이만 원이오. 전도사 월급이 이만원인데 하루만 벌어도 이만  원 버는데 한 달 내 그뭐 그렇게 그 월급에 팔려 가지고 그래 안 한다고. 그래  내가 그 마음이 어디서 들었느냐 하면 농산교회 변소 가 앉아서 내가 이래 딱  앉았으니까 그 옆에 O집사라 하는 부인이 있다가 황보 유안 사모님을 보고  '사모님 사모님' 부르니까 그래 오는데, 오라해 가지고 '이거 한번 삶아 잡숴  보이소' 하면서 그래 고구마를 몇 개 주면서 저거 집에 담 넘어서 호출하니까  오셔 가지고 '아이구, 감사합니다.' 이라며 받아 가지고 가. 그분도 참 아주 코가  높은 분인데, 이제 목회 나와 놓으니까 아니꼽지만 그래도 '예, 감사합니다.

집에나 해 자시지 뭐 이래 줍니까?' 이래 가지고 간다 말이요.

 그걸 보니까 속에 확 해서 그만 그 변소에서 뛰어 나오면 싶어. 나오고 그만  야단을 치면 싶어. '어디 하나님의 종을 그따위로 대접하는 수가 어디 있노?'  이라는 걸 참고 참았어요. 참고 '다시는 내가 앞으로 내가 유급의 전도사 노릇은  안 한다' 이래 가지고 이랬는데 그게 내게 걸려. 내가 첫말에 딱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게 이거 유급의 전도사로 헌신,' 내가 그때 교회 서이를 봤어요.

 무보수로 서이를 봅니다. 이랬는데 유급의 전도사로 나가지 안할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거리낌이 됐으면, 내가 그것 때문에 징계한 것이라면 당신의 뜻을 내가  순종 해야 되겠으니까 만일 그것 때문에 그렇다면 이 아이 이거 당장 낫아  주십시오. 낫아 주시고 조그매치라도 흉터가 있든지 절든지 하면 그거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인데 그리 된 거는 저절로 나은 것이고 하나님이 하신 거는 아니기  때문에 그라면 내가 그거는 순종 안 하겠습니다. 나아도 내가 순종 안  하겠습니다.' 또 요래 놓고 속으로 강퍅한 마음이 '조금 저는 거야 어떠노? 조금  살큼살큼 절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에 이랬어요.

 이랬는데 그라고 나니까 웃으면서 아프다 소리를 안 하고 '아프냐?' 하니까 안  아프다 하고 그래 밥 달라 해. 이 뭐 뼈가지만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털털  털어서 이래 이거 이 너이를 이래 뻗치기는 뻗쳐 놨지. 이래 뻗쳐 놓고, 안 아프다  해. '그라면, 안 아프면 밥 줄까?' 네, 밥 달라 해. 그래 보니까 생생해.

 그래서, 이라면 하나님이 고칠라 하면 문제 없지. 그래 놓고 나는 그만 집회 하는  데 가 버렸어. 집회 하는 데 가 가지고 열이레 만에 왔어. 열이레 만에 오니까  마당에 돌아다녀. 다리 여기 다 뿔라지고 다리가 두 군데씩 다 뿔라지고 팔도 두  군데씩 뿔라지고 이래 뿔라 졌어요.

 이랬는데 그래 뭐 기부스를 했소? 아무것도 안 했어. 기부스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래 뒀는데 열이레 만에 오니까 마당에 작지는 짚고 다녀요. 그래  가지고 완전히 나아. 그래 할 수 없어서 그만 '내가 이제 유급의 전도사 노릇  한다'고 나가면서 있는 것 톨를 다 털어서 다 없애 버리고, 하나도 없이 다 없애  버리고 그래 빈손 쥐고 목회로 나왔었습니다.

 나왔는데, 그때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제 부자 전도사 왔다고 이라니까, 그  위천면이라 하는 신씨네들 정씨네들 아주 양반이라고 참 교만해요. 교만하니까  조사가 가 가지고 항상 사모님은 바느질품 들고 양식 꾸러 돌아다니고 그라는  분이라. 왜? 거기서 연보도 어떻게 땡구고 이래 하는지? 그런데 이제 '부자  조사가 왔으니까' 다 털었는데 뭐 한푼도 없는데 무슨 부자 조사? 이거 와  놓으니까, 그래 와 가지고 이래 보니까 틀렸어 주남선 목사님이 연중 행사하러  왔는데 '위천교회 집사들은 다 떼 버려야 됩니다. 전부 가짜들입니다. 다 떼  버려야 됩니다.' 이라니까 눈이 둥그래 가지고 이거 떼놓으면 어짤라고 하느냐고,  '아이구 다 떼이소. 안 떼면 나는 목회 안 할랍니다.' 다 떼 버렸어. 그래 주남선  목사님이 나한테 권면하는 거 안된다 해서 꼭 다 떼라 했다 말이오. 다 떼  버렸어. 다 떼고 나니까 이것들이 말하기를 '보자, 이제 부자 조사니까 뭐 먹고  살기를 잘 살겠지. 우리가 안 주면, 우리 비위 서끌리면 되는가 보자.' 그거 연보  하나도 안 내고 다 안 나와요. 다 나오지도 안 하고 교인들만 나오는데, 그해,  내가 삼월달인가 갔는데 맥추 감사 연보를 했는데 그 교회생긴 이후로 제일 많이  나왔어. 이래 놓으니까 헌 창고에 다 잴 수가 있어야지? 창고에 재고 여기  마루까지 쟀어. 그러니까 한 이 년 넘어 먹을, 이 년 양식은 될 거라.

 이 년 양식은 되겠어. 어떻게 많이 나왔는지.

 그라고 오늘까지, 모두 우리 집에 자부들 다 만나면, 이 자부 이거는 꼬마가 돼  놔서 이거는 그런 꼴 안 당했어. 나한테 돈 달라 하다가 울어 보지 안했지? 울어  봤나? 나한테 돈 얻으러 왔다가는 다 울어요. 얼마나 내가 안 주고 내가 깍쨍이  노릇 하는지? 뭐 하도 거석하니까 울어. 둘째 자부는 내가 돈을 안 줄라고 자꾸  이라다가 보니까 바깥으로 나가 아마 이게 어디 가 울지. 내가 그라는 것은 저거  사람 되라고 그라지 물질에 내가 인색해 그런 것은 아니야. 그라는데 내가 가만히  가 보니까 저게 어디 구석에 가 가지고 가만히 보니까 뭐이 훌쩍훌쩍 울고 있어.

 그래 내가 데리고 와서, 그래. 모두 소문이 났어요. 아예 돈타러 안 갈라고. 서로  돈타러 안 올라 해. 그래도 돈이 없어서 안 써 보지는 안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쓸라 하면 하나님께서 뭐 얼마든지 얼마든지 주시리라 하는 그걸 내가 확실히  내가 믿고 있어. 당신을 바라보는 자는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이래서, 이번에 여게 이 일곱 교회에 대한 것을 이제 쭉 공부하고 난 다음에  요대로 살면 참 하나님도 만족할 것이고 이 말세에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잘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 총공회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을  하십니다. 또 우리를 간섭을 하십니다. 그런 거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누가 말하기를 오늘 새벽에 강가에 가니까 누가 물뿌리게로 물을 뿌렸는지  길에다가 물을 쪽 뿌려 놓아서 영 먼지 하나도 안 나고 타박타박하게 했더라고  그라니까 누가, OOO목사가 말했던가? 아, 그거 우리 하나님이 그랬다고 이라면서  말하더래요. 하나님이 우리의 집회에 이 일기와 한서 또 풍우 이것을 당신이  조절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팔십오년도 집회부터 병나은 숫자가  이천삼백 칠십삼 명이 병 나았 다고 자기네들이 신고를 해서 지금 신고 받은  것이 이천삼백칠십삼 명입니다. 또 병 종류는 삼백다섯 가지 병입니다. 삼백다섯  가지 병. 그래서 병 나은 건수는 이천구백구십육 건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병을 낫운 모양이지요. 이래서, 다른 교회서 오는 사람들은 전부 병이라.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은 육체의 병 경제병 사업병 전부 병들었는데 우리 서부교회는  그래도 병든 사람 별로 없어요.

 어짜든지 이번에 앉은뱅이도. 누운뱅이도, 귀머거리도, 벙어리도, 뭐 또 문둥이도,  또 뭐 오만 피부 외부병. 내용병 전부 다 낫습니다. 생활병도 다 낫고 이 병이  낫는 것은 사람병만 나으면 필연적으로 나아요. 안 낫는 병 하나도 없어.

 사람병만 나으면 다 나아. 사람병이 낫기 전에 이런 것이 나으면 나은 것이  자기에게 화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낫아 주지 안 하십니다. 사람병 낫는 것은  하나님의 도리를 배워 가지고 자기의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리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 배운 이 도리대로의 자식을 자기가 가지고 요것으로 자기  지식을 삼고 요 도리대로의 행동을 하기로 작정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이  도리대로의 사람만 되면 이거는 완전한 사람으로 병이 고쳐진 것이라, 이라면 만  가지가 다 돼요.

 이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 나은 것이 누가 안수해서 그 병 나은 거  아니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요대로 살겠다 하는 사람들은 다 나았어.

 이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에 충만이 되어지는 이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무슨 염려를 하고  있어? 어짜든지 요번에 여기 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꼭 들어서 요 말씀대로  자기가 확실히 회개를 하고 요 말씀으로 자기의 지식을 삼아 가지고 요 지식으로  살고 요 말씀대로의 행동하고 요 말씀대로 사람만 되면 모든 구원과 영육이 해결  다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잠깐 기도합시다.

 내일 아침에는 우리가 사람병, 고기 덩어리 병, 자기의 모든 생활병, 사업병 이런  것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준비해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우리가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많이 준비하셔 가지고 사람병,  고기덩어리병, 모든 생활병, 이 사업병 말이오. 그런 병을 다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네, 지금 폐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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