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결국과 성공방법(믿음)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10일 금새

 

본문 :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고 갔습니다. 그 살고 간 개인 개인의 생애는 우리가 다 모를지라도  통털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다 보았고 들었습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옛날 있던 것이 다시 있고 그것이 또 되풀이 된다"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그러하지마는 자기에게는 그것이 해당되지  아니하리라' 말은 그렇게 하지 안하지마는 자기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뭐 자기도 별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늙고 쪼그라지고, 나중에 가서 다른  사람이 천해지면 저도 천해지고, 다른 사람이 멸시받았으면 저도 멸시받고 그만  세상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세상 떠날 때에 후회했 으면 저도 후회할 사람  중에 하나지 자기라고 별 사람 아닙니다.

 "허다한 간증자들이 있다" 구름같은 간증자라, 여기는 또 "중인이라" 증인이라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이래 가지고 간다. 나는 젊을 때  호호양양한 희망을 가슴에 벅차게 안았고,' 또 그 일을 위해서 달성해 보겠다고  분투노력 했고 또 매일매일 하루하루의 생 활이 다행이다, 성공이다, 행복이다  하면서 그렇게 성공에서 성공으로, 다행에서 다행으로, 목적 달성에서 달성으로,  형통에서 형통으로 그 렇게 살았으나,  마지막에는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다만 그 지나가는 것들이 나를  이별하고 지나가니까 마음에 원통이나 고통이나 섭섭이나 마음에, 있던 것  없어지니까 마음에 불안, 불쾌, 불만, 분개 그것만 자기에게는 남아 있지 일생  동안 자기가 목적한 것을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룰 때에 이루어서 매일 성공만  한 그 사람도 마지막에 종말은 더 비참하고 가련하고 섭섭하고 또 울며 불며  되다가 안 되다가 이래 많은 굴곡과 애로를 겪어서 간 사람도 다 마지막에는  그겁니다. 다만 신앙으로 산 사람들은 그 산 것이 후회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가 이 말씀에서는 증거를 받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갔다. 이런 생활은 이것 됐다, 저런 생활은 저것 됐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어떻게 무엇을 조성했는데 그 결과가  이것이다.' 하는 그것을 증거받는 것이 그것이 여게서는 제일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마는 나는 안 그렇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는 안  속고 자기는 실패 없고, 자기는 무지하게 살지 않는다고 자인했지마는 다  마지막에는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시대의  사회대로, 자기 시대의 민족대로, 자기 시대의 국가대로, 자기 시대의 문화대로,  이렇게 따라 움직여 살고 간 사람의 마지막에 그의 인생 생애의 결산이  어떠했는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정말로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노?" 그 결론에 마지막 죽을 때에  과연 인정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다만 이것을 인정하면서 자기는 여게 관계  없는 그런 사람은 다 믿음의 사람들뿐인 것입니다.

 여게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그말은 네 생각에는 요것은 참 배반하기  싫은 하나님, 버리기 싫은 하나님의 명령 그것이 지마는 요 건 요 현실에  요것만은 아무래도 하나님과 진리를 버려도 취해야 되겠다 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취했고, 또 안 믿는 사람들은 뭐 말할 것 없고.

 이렇게 취했지마는 그것이 다 자기에게 마치 짐승을 덫을 놓아서 잡는 것과  같은 자기에게 덫 같은 결과가 됐고 또 자기를 밧줄로 얽어매서 결박해서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자기 결박한 줄과 같은 그런 결과를 맺지 않는 것이  있는가 봐라.

 자기의 과거의 주의 말씀 주의 교훈 떠나서 제 생각대로, 제 욕망대로, 어떤  사람의 본받은 대로 이렇게 해서 그때그때는 다 하나님의 인도를 어기는 것이 참  안 어기면 안 될 만한 그렇게 중요하고 요긴하고 필 요하다고 했지마는 그  결과가 자기에게 무거운 짐과 얽매이는 것 되 어서 신앙 양심대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자유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결과를 맺지 아니한 것이 어데 있느냐?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소.

 이러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고 하는 것보다 그만 순종이 낫습니다. 그 경험을  하면 '세상 경험 하고' 하지마는 경험하면 경험한 그것을 내가 그 경험만 하고  나는 내대로 있으면 하지마는 경험한 그대로의 사람이 내가 돼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번 경험하면 두 번에는 더 쉽게 할수 있고 세 번에는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습하는 것은 그것이 천성같이 된다, 본성같이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갔는데 '뭐 우리 형제간은 안 그렇다, 우리  부부간은 안 그렇다, 우리 친구간은 안 그렇다, 우리 청년은 안 그렇다, 우리  학도들은 안 그렇다, 우리 학생들은 안 그렇다, 우리 세상 모든 이런' 지위나  권세나 이런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경제를,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안 그렇다' 다 저는 안 그렇다 합니다. 안 그렇고 안 속는다 했지마는 저를  모르거든, 과거에 저와 같은 사업을 꼭 같은 사업 한 사람들이 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저와 같은 사상, 저와 같은 실력, 또 저와 같은 열정, 저와 같은 모든 활동성  그런 사람이 수없이 지나갔는데 그 사람의 결말이 뭣이냐?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안팎에 눈이 있어야 됩니다. 믿는 사람이 세 상을 모르면  안 됩니다. 모르거든 그저 주의 인도와 주의 말씀만이 참되다 인정하고 죽든지  살든지 꼬박꼬박 그대로 그만 복종하는 것 그 하나로 걸어가든지 그 보려면  씨상을 좀 똑똑히 봐야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요긴하다 요긴하다 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요긴하다 요긴하다 해서 요긴한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할 수  없어,너무 요긴하기 때문에 안 떠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한  크 요긴한 것 요긴한 것 필요한 것 필요한 것 '요것만큼은 하나님 말씀보다도  요거는 참 내게 필요하고 가치 있다.' 인정을 하고 말씀을 떠나 모아놓은 그것이  자기의 결박과 자기의 감옥과 자기에게 큰 텅이 되지 안한 사람이 있느냐? 그  건이 하나도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무 거운 짐과 결박하는 그 결박이 되지 안한  사람이 있느냐? 좀 살펴봐야 됩니다.

 그러고 다음으로, 2절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라 말은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뭘로 구원하시느냐? 믿음으로만 구원합니다. 믿음 아니고  우리를 구원 못 합니다.

 또 당신은 무엇으로써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는가? 믿음으로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숭리를 하시고 성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여게는 인성 피조물을  말합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 밑에 창조주 다음으로 시은의 기관으로, 창조주 다음으로  존귀한 자로서 창조주의 그 전부가 그의 것으로 모든 피조 물들에게 중보노릇  하는 주님은 당신이 무슨 방편 가지고 이렇게 피 조물로서 완전 승리를 했느냐?  자기에게 소속한 것을 완전 구출하는 이런 승리를 했느냐?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했고 또 이렇게 공로를 베푸시고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하시는데 그 구원하시는 방편은 무엇으로 하시느냐? 또 믿음으로  하십니다. 당신도 믿음으로 성공을 했고 또 믿음을 가지고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인간 성공 영원을 성공하는 그 성공을 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했다 믿음으로 했다 말은 자기 주관,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관,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장, 발표, 그 전부가 반대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참되다 인정하고 요대로라, 하나님 말씀하는 것을 천하  인간들이 '그거는 틀렸다. 천부당 만부당이다. 역사 통계에 맞지 않는다. 보라.'  무엇을 가지고 증거를 하든지 변중을 하든지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포하신 요것만이 참되고 요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다 여세 삐뚤어진 것은 그게  틀렸지 하나님 말씀이 틀리지 않다.'  하나님 말씀에 배치되는 것은 천하 인간이 말해도, 주장을 해도, 간중을 해도,  뭐라고 해도 '그게 틀렸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것은 틀리지 않다.' 요것이  믿음에 중요한 마음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자기가 삽니다.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믿음이요, 예수님도 이것으로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선포한 것을 무시한 사람, 알지도 못한 사람, 천하 인간들이 똘똘  뭉쳐서 이십세기에 이렇게 문화 건설, 그저 뭐 한 사천 년, 지금 이십세기는  주님의 탄생을 근거해 가지고 이래 하는 것이지 마는 노아 흥수 때 이후로  말하면 사천 년, 사천 년 동안 쌓이고 쌓인 모든 이 문화 건설은 별별 것이  많아서 지금은 인제 사람이 별에도 날아가고 하고서 큰 장기로 말하지마는 말할  것 없이 그만 도매금으로 '그 마지막은 완전 멸망이다.거기 구원되는 것이  뽀스라기 하나도 없다. 다 완전 멸망이다.' 그것뿐이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우편에 계셨다" 피조물로서는 창조주 다음 위치를  가지고 창조주가 피조물들에게 하시는 그 모든 역사를 예수님의 인성이 다  합니다. 신성은 근본부터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의 인성 다 같은 피조물로서  이렇게 존귀하게 된 것은 이것은 믿음으로 됐습니다.

 믿음으로 성공했고 믿음으로 우리를 성공시키는 그 방편만 가지는데 믿음을  가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 알아야 됩니다. 뭘 알아야 되는가?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산 말씀이요 살리는 말씀이요, 세상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 이 세상 지식이 일치가 되는  것도 가끔 있습니다. 일치되는 그것은 마귀란 놈이 일치돼야 접이 붙어 가지고서  끌려올 것이기 때문에 그래 하는 것이요 똑똑히 가 보면 일치되는 것은 내적으로  또 결과적으로는 하나도 일치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믿음을 가지는 데에는 자기와 세상을 부인해야 되지 이것 부인 안  하고는 믿지 못합니다. 믿는 것이 그렇게 어리석고 쉬운 것 같지마는 그 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다 부인하고 하나님만 인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세상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인정했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하나된 사람이니  하나님과 하나되는 데에 배치가 되는 그런 거는 영원히 통치할 수 있고 정복할  수가 있고 자유 자재할 수가 있는 그 실력이 벌써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것을 부인해야 되고, 또 하나는 이것은 믿는 것은 세상을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독해지고 또 세상을 거슬려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 찰되는 것이니 모든  핍박과 환난이 있는 역행의 길입니다.

 세상 전인류와 문화는 지옥을 향해서 지금 아주 속도로 지금 살수로  흘러내려가고 있는데 여게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나라를 향해서 생 명으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이들에게 힘에도 반대, 사상에도 반대, 반대되는  이 역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게는 애로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애로를 하나님의 약속을 참되다 인정하는 그 믿음으로 소망하는 그  소망을 인해서, 소망을 인해서 오늘에 역류의 이 모든 마찰의 애로를 이것을  각오하고 필연한 일인 줄 알고 이 애로를 각 오하고 이 역류의 애로를 자기가  겪어야 되는 것이지 역류의 애로를 겪지 않고는 가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 걸음을 못 걷느냐? 못 걷는 그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왜 못 믿느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믿으니까 정반대이니 이걸 믿을래 이걸 믿을래 하 니까 이걸 참되다 인정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은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기 때문에 못 가는 것이고 또 인정을 한다  해도 그 인정이 한계 있는 인정으로서 인정하다가 이 역류로 인해서 자기에게  역항의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겪지 안하려고 이것을 피해서 안일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믿음으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다가 하나님의 인도와 세상 인도 둘이 반드시 꼭 같이  가는데, 죄와 의는 함께 가지, 둘이 붙어 있지 안 붙어 있을 때는 없습니다.

 이런데 자기에게 세상을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으로 가고자 하는  이것이 힘이 빠져서 용기가 나지 안하고 믿음으로 가는 것이 힘이 들 때에는  그거는 고장이 어데 생겼느냐? 하나님 믿는 것보다 세상 믿는 이것이 힘이 낫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게서 고쳐야 됩니다. 여게서 고치고 아무래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말씀이 참되지 인간 말이 참되냐? 인간 말에는 암만 또 자기가 무슨 지식을 널리  보지 안해도 그 모든 결론 결론을 다 봐도, 뭐 그렇게 시간 안 걸립니다. 봐도  무슨 이것은 무슨 과학이라 무슨 이거는 자 연과학이라 사회과학이라  인문과학이라 또 이거 무슨 물리라 뭐라 뭐라 해도, 역사라 뭐 통계라 뭐라  사상이라 해도 그것은 다 간단하게 '어데서 발원했으며 그 결말이 뭐냐?' 하는  그것은 그 안에 있는 그 통 전체를 다 딱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들어 있는 그  통을, 통 안에서 뭐 이런 게 암만 이래 해 봤자 흘랑흘랑 흔들면 그 통 안에 다  들어서 '요 통이 지금 어데 있느냐?' 요 통이 지금 멸망 속에, 멸망 아래 있고  요것이 지금 저주 아래 있는 것은 그것을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전체를  모르거든 거게 분자 한 사람이라도 보면 멸망이 그 사람을 주관하느냐 생명이  주관하느냐 볼 수 있습니다. 한 단체 한 개인 한 행동도 심사하면 다 알 수 있을  만치 이렇게 그 멸망이라는 게 전체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려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것이 없으면 벌써 자기는 실패자입니다.

요새 늘 인간 지식을 말하는데 음행의 포도주라 그랬 습니다. 요새 늘 말을  듣습니다. 기어코라도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을 그것 뭐 공부하는 데 거게  마귀 지식, 배암의 지식 그것 많이 받는 데 인간의 행복과 성공이 있는 것  아닙니다. 행복과 성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많이 행하는 거게 있지  다른 데는 있는 것 아니라. 그거는 참고로 보조의 것입니다. 그것도 잘 이용하면  이용 가치가 있소.

 이러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의 소유물 중에 하나인데 그것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왜? 그게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 면에 대해서는 충족하도록, 처음에  인간을 만들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이렇게 알 수  있는 자연계시를 하나님아 주셨습니다. 그걸 안 해도 모든 만물을 보고 듣고  접촉하는 데서 깨달아져도 그게 문서화되지 안했지 그것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게 있어야 된다고. 이거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인도하는 그 믿음이  아니면 그것 다 죄가 되는 것인데 현저히 하나님의 뜻에 지나치는 그 우상, 또  이 모든 욕심인 줄 알고도 자꾸 나아갑니다.

 그래 가지고 뭐 딸을 야간 공부를 시켜야 된다 어짠다 해 가지고, 그 딸이 참  예뻤더랍니다. 이랬는데 야간 공부 갔다가 그랬는지 오다 그랬는지 욕심내는  놈이 끌고 가 가지고서 욕을 보일 대로 보이고 그것이 발표될 터이니까  죽여버렸어. 그 소문은 내가 어제 들었다 그 거요. 요전 것을 어떻게 감쪽같이  감춰버리는지. 그래도 그런 것을 금하면 반대합니다.

 또 아들네들의 딸들네 신앙을 어데서 뺏겼느냐 하면 전부 이 마귀 지식 배암  지식 가지고서 다 뺏겼어. 배암 지식하고 하나님 지식하고 다 바꿨어. 하나님의  지식은 있어봤자 가치 없다 생각하고서 배암 지 식은 그 세상에서 그날 그날에  이 죄악 생활을 하는 데에 멸망 생활 하는 데에 그거는 필요합니다. 멸망 생활  하는 데에 지옥 생활 하는 데에 필요하요. 인간 멸망 생활 하는 데에 필요하지  구원 생활 하는 데는 그것이 그렇게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이 없어도 구원  생활을 하는데에는 그렇게, 조금 답답하기는 하지마는 이 자연 만물이 다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경험하고 말해도 안 한 사람은 안 듣습니다. 요것 단정을  하십시오. 자식을 공부를 시킬 때에 그것이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공부하는 그것은 우리가 이용할 종이오.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가 모시고  있어야 되고 거게 속해야 되고 그에게 속하고 순종해야 될 지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은 주려이 되고 세상 지식은 거게 종이 돼야  되는데 종의 세력이 강하면 주인은 죽습니다. 죽여버립니다. 어 짜든지  멸망당하고 그거는 주인 세력이 약하고 종의 세력이 강하고 거게 다른 소유가  많아지면 그 주인은 그 주인의 자리를 떠나기 전에는 저는 고통입니다.

지옥이오. 나중에는 절단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부를 시키다가 주인이 강하나 종이 강하나 요걸 살펴봐서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인정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비중이 같게 되면 벌써  탈났소. 비중이 같게 됐으면 벌써 저는 계속 죽은 생활만 합니다. 비중이 같이  됐으면 빨리 세상 지식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지식만 자꾸 육성애서 이제 주인과  종의 차이가 아주 많은 차이가 있으면 그 종은 주인에게 참 필요한 보배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이 차이가 있으면 계속을 하고 차이가 적어지 거든 얼른  이거 종의 세력을 꺾고 주인의 세력을 좀 강하게 만들고 이렇게 해야 이 두 가지  지식 속에 있는 우리가 멸망을 안 하지 멸망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국민학교 다닐 때와 중하고 다닐 때 좀 다르거든 하나 중단하고 이것을  육성을 시켜야 될 그때는 참 긴급치료입니다. 긴급치료요.

 그래야 되고, 그러기 전에는 이 층하가 많이 없거든 하나님 지식 믿음 공부도  하고 세상 지식 공부도 둘 할 때에 어디다가 주력을 시키느냐? 믿음 공부에 더  주력을 시켜서 이 세상 공부를 중단은 안 해도 거기다가 주력을 해 가지고서 이  주격이 더 강해지도록, 그러기에 그 마음을 가지고 기르면 되고 아예 그거 안 할  상바르면 그까짓 거 딱 치워버리는 게 낫습니다.

 그러니까 국민학교 때는 새벽기도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고, 중 학교  들어가면 새벽기도를 나오고 제가 중학을 해야 되지 새벽기도 안 나오고 중학  하는 그거는 벌써 다 빼앗겼소. 그 속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회로애락과  생사화복이 결정된다 하는 그런 것은 그 대가리 없습니다. 그 대가리는 벌써  마귀가 점령했소.

 예수를 믿는다 하지마는 "불신자들 속에 주관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신이라"  했는데 예수를 믿지마는 중생은 됐다 할지라도 벌써 그놈이 활동적으로서는  주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고등학교를 떡 들어가면 이제는 참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 믿음 공부  하는 데에 여게 깨달아지니까 세상 지식 그것보다 쟈기에게 필요성을 느껴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갈급, 새벽기도 나오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갈급,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원통 이것이 점점 강해져 가면 그 사람은  뭐 고등학교 공부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횔씬 낫습니다. 낫소.

 만일 그것이 대학이 되면 대하에 가서는 대학 공부하면서 대학 공 부할 때는  그것이 자기 대가리를 다 싹싹 자기 대가리에 하나 못박듯이 콕콕 박아서  박혀지는데 교회 나와 가지고는 그저 형식으로 시간만 보내지 여기 앉아서도  '지금 뭣이 숙제가 있고 뭣이 있는데' 가슴이 탑니다. 등에 콩이 튀요. '어서  시간이 마쳐야 될 터인데' 이 말은 하나도 안 들으니까 이 말이 제 종말이요  죽고 망하는 것이 여기 결정인데, 여게 주권돼 있는데 안 들리고 '어서 마쳤으면  좋겠다' 이제 거기 가고 싶어서. 벌써 죽은 지가 오래 됐어.

 그러기에 대학을 가면 하나님의 지식이 주권을 가진다고 하면 어떤 것이 주권을  가지는 것이냐? 벌써 무신론자가 강의를 합니다. 유물 주의자가 강의를 합니다.

세상에 어떤 과학자가 강의를 합니다. 강의를 하면 그 강의 속에 파묻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강의를 들으면서그 강의에 논평이 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오묘한 것은 주님이 지으셨으니 참 능하시다.' 그 무신론자  강의에서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무신론자들의 그 증거에서 자기는 자꾸  인정이 됩니다.

 또 무신론자의 하는 것이 이 자존자 조물주에 관계가 없이 배치될 때에 '너는  참 뿌리없는 화초를 가지고서 자랑하고 있다. 네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네가  모든 존재가 조물주 없이 창조주 없이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이래 하니까 너는  거게 대해 제일 주격자를 모르기 때문에 너는 전무식이라.'  이 하나 하나 배우고 공부하는 데에서 점점 하나님과 자기와 가까 와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확실해지고, 세상 지식, 하나님 모르는 세상 지식에 대해서  불쌍하고 가련하고, 듣기는 듣지마는 죽은 자가 죽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  그렇게 비참하게 가련하게 들리는 그런 비판이 안 되면 위험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어데든지 무신론자의 강의에 가 가지고도, 유물주의의  강의에 가 가지고도 어데서든지 거게서 하나님과 더 가까 와지고, 하나님이 더  발견되어지고, 또 하나님 모르니 가련하고 불쌍한 그 동정이나 마음에 그런  애연스러운 마음이 들어가지 거게 쏠려 들 어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세상 지식 가지지 말라는 게 아니고 세상 지식을 가지나 하나님의  지식이 주격이 되고 그것은 소유격이 되도록 그 주격의 세력과 이 소유격의 세력  그것이 그 비중을 알고 해야 되지 주인의 실 력보다 소유가 많으면 그 주인은  암살당합니다. 그 주인은 그 재물 때문에 비참하게 돼요.

 그런게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이것 뭐 책에 써놓은  그까짓 거야 얼마 안 됩니다. 이 눈으로 보면 그런 것 꽉 찼으니까 그 하나를  책으로 쓸라 하면 수십 권 될 수 있는 그런 것을 한 사람을 보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 사람에게 그런 것이 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 전부 간판을 다  들고 다니지마는 사람들이 보지 못해 그렇지.

 이러니까 공부를 하려면 공부를 하되 하나님의 지식 공부가 앞서고 세상 지식  공부가 뒤따라가야 되지 그것이 앞서고 하나님의 지식 공 부가 뒤떨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 공부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것이 더 깨달아지고 더 열심이  나오고 더 확신이 생겨지고 자꾸 이리 되면 그것이 보조학이 되어지지마는  그렇지 안하면 음행의 포도주가 되어서 하나님과 자기와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봐, 뭐 잘 다니던 것들도 벌써 대학 되면 그세 뭐인 줄 알고, 그게 멸망의  지식이라. 단언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배암에게 나온 지식은 인간을  멸망케 하는 것인데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배암의  지식을 이용을 할 수 있다 그말이오. 배암의 머리를 상해서 이용할 수 있어.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너희들의 밥이라" 이랬어. 밥으로 먹을 수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벌써 부모네들이 공부에 '이렇게 밤새도록 하니까 잠이 들었는데 새벽기도에  깨워 가지고 나오기에 안 됐다' 왜 배암의 지식은 밤새도록 잠 못 자고 하는데  왜 하나님의 지식은 그렇게 무시를 하는가? 그 무시한 심판이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15 인생의 두 길/ 베드로후서 1장 4절-11절/ 811006화새 선지자 2015.12.16
» 인생의 결국과 성공방법(믿음)/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30610금새 선지자 2015.12.16
813 인생의 가치/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90808화후집회 선지자 2015.12.16
812 인생의 가치/ 고린도후서 5장 3절-10절/ 831023주후 선지자 2015.12.16
811 인생의 가치/ 창세기 9장 21절-27절/ 810619금새 선지자 2015.12.16
810 인생문제/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50722월새 선지자 2015.12.16
809 인생농사-종자선택/ 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800125금새 선지자 2015.12.16
808 인생농사/ 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800125금야 선지자 2015.12.16
807 인생농사/ 갈라디아서 6장 5절-11절 / 800127주후 선지자 2015.12.16
806 인생계산/ 누가복음 16장 1절-5절/ 820615화새 선지자 2015.12.16
805 인생 행로의 두 길/ 히브리서 12장 1절-2절 / 820512수새 선지자 2015.12.16
804 인본주의를 대항 할 것/ 시편 1장 1절/ 8810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803 인본주의 신본주의/ 창세기 13장 6절-15절/ 870417금새 선지자 2015.12.16
802 인류의 타락/ 창세기 2장 15절-17절/ 800104금야 선지자 2015.12.16
801 인류의 두 길/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20112화새 선지자 2015.12.16
800 인류의 가치/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820113수야 선지자 2015.12.16
799 인류의 가치/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820110주후 선지자 2015.12.16
798 인류의 가치/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 820114목새 선지자 2015.12.16
797 인류시조의 범죄 순서/ 창세기 2장 15절-17절/ 810208주후 선지자 2015.12.16
796 인론/ 골로새서 3장 1절-4절/ 890430주전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