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하는 법

 

1987. 11. 9. 새벽 (월)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우리가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성화구원 곧 하늘나라에 부활해 가지고서 실력이 되고, 영광이 되고, 또 부요가 되는 이 건설구원 이것이 중요한데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여러 면으로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 가야 합니다. 마치 우리 몸에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여러가지 지체들이 있어서 그 모든 지체가 다 구비하고 온전해야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또 하는 행동도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눈이 하나 나빠도 병신이요, 귀가 하나 나빠도 병신이요, 또 손이 하나 나빠도 병신인 것처럼 우리가 이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도 온전하고 구비해야 됩니다.

이 면도 우리가 힘쓰고 저 면도 힘써서 모든 면이 다 구비해야 되지 어느 한 면이 모자라면 그 면이 마치 육체로 말하면 한 지체가 병든 것처럼, 다 좋은데 그 사람은 폐가 나쁘다, 그 사람은 간이 나쁘다, 그 사람은 다 좋은데 눈이 한쪽이 나빠서 소경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행위도 모든 것이 체계적이어야 합니다. 체계적이라 말은 사람의 몸과 같이 모든 것이 구비하고 다 이래야 되지 하나라도 병신되면 안 되고 또 하나만 너무 커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이 키는 한 너덧 자 되는 사람이 팔은 한 댓 자 되면 그것도 하나 기형으로 못쓰는 것입니다. 한 쪽이 더 자라면 그것 기형이고 또 한 쪽이 뭐이든지 하나 모자라면 불구자고, 어쨌든지 그것 병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데에는 그저 간단하게 이렇게 어떻게 신앙 생활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간단하고 구비하게 될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열 가지 계명을 지키면 거개가 다 거게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인제 그보다도 더 축소해서 우리가 간단하게 알기 쉬운 것은 이 말씀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이러니까 그 율법사가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아주 간단 명료하게 여게 기록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이웃을 내몸같이, 제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이 곧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고 형제는 또 따로 사랑하느냐? 하나님 사랑하면 그것이 형제 사랑하는 것이 되고, 형제를 정말로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데도 가깝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할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할까 그 순서를 어떻게 할까? 이 순서를 잘못 잡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깝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요한일서 4장에 보면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이래 놨으니까 ‘보는 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데까지 자라가고 나아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꺼꾸로 돼서 나중에 사람 사랑으로 그만 그리 짙어지고 자꾸 치우쳐져 가지고서 하나님 사랑하는 일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순서를 하나님 사랑하는 일을 먼저 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일을 함으로 그 사랑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까지 번져나가도록 이렇게 방편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느냐?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해야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 뭐 별스럽게 이런 것 저런 걸 말할 것이 뭐이냐? 까다롭게 할 것이 뭐이냐?’ 이렇게 사람들은 말하지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바로 사랑해야 되지 바로 사랑치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 가지고 있는 대로 열여섯 가지 이 구속을 자기가 기뻐하고 환영하고 이것을 잘 간직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만 사랑하면 어떻게 사람을 사랑함이 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은 그 전부가 그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상대할 때에 죄를 짓지 안하고,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고, 또 예수님의 대속대로 이렇게 살아서 내가 마귀의 종이 되지 안하고,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 사망의 종이 되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을 향한 생활을 하면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왜? 내가 그렇게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 보고 ‘사람은 저래 살아야 되는가보다’ 하고서 내 본을 떠 가지고 따라와 가지고 사랑하니까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또 하나 더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의 직분이 세 가지입니다.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인데 제사장직은 하나님과 사람과 모든 피조물, 하나님과 사람과 모든 피조물과 서로 화합시키는 것이 그것이 제사장직이라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사장직을 해서 어짜든지 사람과 하나님이 화합되도록, 사람과 사람이 화합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제사장직입니다. 제사장직은 원수되어 있는 것을 서로 화합해서 화친케 만드는 것이, 그것이 제사장직입니다.

이러면 제사장직을 잘 하려고 이러다 보니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 화합하게도 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화친시키기도 하고 이래 시키려고 하니까, 또 선지직을 해야 되는데 선지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살고 보니까 하나님과도 화친되어지고, 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받아서 형통해지고, 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선지직에서 하나님의 도리를 그 사람에게 가르치니까 그 사람이 사람에게 아주 나쁜 일 하고서 자기 중심 악으로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도리를 들어 배우고 보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다. 이것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함을 가져야 되겠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지지 안하면 하나님을 아무도 보지 못한다 했는데 이것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져야 되겠다.’ 또 이러니까 하나님의 도리를 그 사람에게 가르쳐 줌으로 그 사람이 점점 사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과 사람과 화친해집니다.

또 우리가 세 가지 직책 중에 하나는 왕직인데, 왕직은 그 사람의 모든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 통일 통치에 다 거게 정죄받지 안하고 그 통치법에 합당하도록 거게 부합이 되도록 이렇게 사람을 살도록 내가 관리하고 또 가르치고 이러니까 그것이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열여섯 가지 구속을 자기가 실행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완전히 되어지고 또 열여섯 가지 구속을 이렇게 실행하다 보면 사람을 진정 사랑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는 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열여섯 가지 구속을 우리가 실행하는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열여섯 가지 구속을 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과 또 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구원하려고 내 몸을 애껴서 배고프면 밥먹이고, 추으면 옷입히고, 되면 피곤하면 또 좀 쉬고, 서로 위험한 곳이 있으면 거게 가지 못하도록 주의시키고, 자기 몸을 자기가 이렇게 위험에도 주의시키고, 또 배고픈 것도, 또 추운 것도, 피곤한 것도, 또 병든 것도, 병들면 자기 몸을 자기가 그걸 치료하려고 애를 쓰고 하는 것처럼 또 형제가 병들면 그거 치료하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모든 면에서 자기가 자기 몸을 하는 것같이 그만 그대로 하면 된다 했습니다. 이 이것은 뭐 배울 것이 없어.

그저 ‘이웃 사랑하기를 성경대로 해라’ 그런 말이 없고, `이웃 사랑하기를 예수님같이 해라’ 그렇게 말도 하지 안했고, 뭐라 했습니까?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했어. 제 몸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에 그대로, 이웃이나 자기 몸이나 이렇게 같이 생각하고 이렇게 사랑하고 위하는 방법을 가지면 그만 그것은 형제 사랑하는 건 됩니다. 이러니까 이웃 사랑하는 방법은 별스럽게 배울 것이 없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이랬으니까 다 알고 있다 말이오.

그러면 제 몸같이 하듯이 그러면 되고 하나님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 이건 참 알기 어려운데, 이건 열여섯 가지 우리가 구속을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대로 열여섯 가지를 하게 되면 사람 사랑은 됩니까 안 됩니까? 사람 사랑은 진정 됩니다. 그게 진짜로 사람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 주일학교 반사들이 자기 맡은 학생을 참 사랑하기를 자연히 자기 곤란한 것보다도 자기 맡은 학생에 곤란스러운 것이 근심이 더 됩니다. 또 권찰님들도 자기에게 대한 것보다도 자기 맡아 있는 그 식구에게 대한 것이 더 생각이 나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피곤해서 넘어져도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요 되어지더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가서 보면 사람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그 사람이 마지막에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게서 만일 죽음을 피해서, 살기 위해 죽음을 피해서 죄를 지으면 이 형제들이 다 넘어질 터이니까 이제 내가 이 형제들 앞에서 죽어도 이 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손해가지 안해야 이들이 깨닫고 바로 신앙 생활하겠다’ 해서 그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구원도 있지마는 형제 구원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다 순교자입니다.

순교하는 사람은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순교하지, 자기 사랑함으로 순교하는 사람 없습니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 순생 생활도 되는 것이고 순교 생활도 되는 것이오.

이 권사님들도 내가 말 들어보면 일어날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이거 내가 그 집에 가 가지고 좀 이 타일러 줘야 되겠고 말을 해 주고 주의시켜 줘야 되지 냅두면 이 망하겠다’ 싶어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그 심방을 해서, 가서 심방해 가지고 말하다 보면 몇 마디 말하면 그 사람이 살아난다 말이오.

살아나니까 마음에 재미가 붙어서 ‘이것 내가 이런데 내가 또 집에 가 드러누웠으면 안 될 것이고 아무것이도 또 가 봐야 되겠으니까’ 가 보니까 그게 살아나고 이러니까 그 살아나는 재미에, 살아난다 말은 고기덩어리도 살아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이 살아나지, 믿음이 살아나지, 그 사람이 용기가 살아나지, 소망이 살아나지, 기쁨이 살아나지 모든 참사람이 살아나는 것 보니까 재미 있으니까 이것 내가 또 있을 수 없다. 또 간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한 집 가고 두 집 가고 이라니까 그 재미에 그만, 장사꾼이 돈벌이 하는 재미에 대목장에는 아침도 점심도 굶어도 배고픈 줄 모르는 것처럼 그 사람 사랑해서 구원하는 그 재미에 그만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다니면서 오히려 기운이 나서 집에 돌아올 때는 기운이 나서 다리가 거뿟거뿟하게 돌아왔지마는 누으면 탁 가라져서 그만 죽은 사람같이 그만 그리 된다 말이오.

내가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권사님인데, 자기는 이래 가지고 누워 가지고 있는데 옆에 사람이 와서 자꾸 깨우니까 눈을 이래 떠도 뭐인지 모르고 눈을 떠도 말도 못하지 뭐 감각도 없지 이러니까 ‘아마 이거 죽었는가보다’ 보니까 눈은 떴는데 뭐 숨은 쉬고 눈은 떴는데 아무것도 몰라. 그만 그렇게 녹아져 버려.

그게 뭐이냐? 뭐 때문에 돈벌이 하다 그랬는가 또 그리 안 하면 누구하고 시비하다 씨름하다 그랬는가? 그게 아니라. 인간을 사랑함으로 구원하다가 그렇게 됐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여섯 가지 구속을 이렇게 실행하다 보면 그것이 참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웃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게 이웃 사랑하는 것이냐? 네가 이웃과 너와의 관계를,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대로 관계 가지는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이웃 보는 데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뜻대로 그대로 실행해서 사는 그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법이다, 사랑하는 법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광고합니다.

교회 주변을 청소하도록 하고 또 지금 곧 권찰회 모입니다.

오늘은 보니까 장로님들 가운데서는 ○○○, ○○○, ○○○, ○○○, ○○○, ○○○, ○○○ 이 일곱 분만 기도하러 왔는데 그 후 시간에도 오실 수도 있고 또 다른 시간에도 오실 수도 있고 이러니까 이것은 그저 참고만 삼는 것이지 여기 기록 안 됐다고 기도하러 안 온 사람이라, 기도 안 한 사람이라 그렇게는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 나오라고 아레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씀이 진정 사랑으로 자기 마음에 달게 들었으면 나오다가 안 되면 한 주일 나오다, 한번 나오다 또 뒤에 쓰러질지라도 나올 터인데 아예 그말 들을 때에 딱 마음을 탁 돌려서 빗장을 안으로 잠그듯이 딱 그래 놓고서 반발심으로 딱 그러면 그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하고는 절대 대면하지 못합니다.

고것 내가 미워 말하는 말이 아니고 그 진정 안타까와서 그래 말하면 공격받을 줄 알고 그래 말하면 다 싫어할 줄 알면서도 ‘아무래도 이것은 안 할 수 없다’ 해 가지고 한 것이니까 사랑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한 그 말을 달게 받지 안하고 그렇게 감정스럽게 받으면 그 어찌 됩니까? 그러면 다 안다 말이요, 가족들도 다 보고 ‘보자, 우리 장로님은 어떤고 보자.’ 보니까 `아이쿠 이것 오늘 내가 참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했는데 새벽기도 안 나가니 이것 얼마나 사랑하는 말씀이니까 내가 가다가 엎어져도 내가 내일 아침에는 꼭 가야 되겠다. 아, 좀 깨워.’ 이러면 그 부인이 있다가 ‘이 장로님이 목사님 설교는 되게 참 아주 신실히 듣네. 아주 뭐 절대로 듣네.’ 삐쭉삐쭉해도 자꾸 그러면 ‘나도 그래야 되겠다’ 이러지마는, 떡 물어 보니까 ‘헤, 그런다고 내가 가?’ `우리 장로님도 목사 설교 그까짓 거로 안다. 나도  그렇다.’ 그러면 뭣 되지? 하나님, 목사가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옳게 가르치는데 그래 되면 뭣 되지? 그래 가지고 가정 망쳐. 그래 가지고 망하는 가정은 다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이종희 목사님 부인이 언제 권찰회 있을 때인데 권찰회 때 와 가지고 울면서 ‘우리 자식이 저러니 어째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해서 그것 내가 그래 말했어. ‘그것은 너거가 만들었는데 그거 너거가 어떻게 할 수가 있느냐? 너거가 설교 듣고 나면 집에 가서 자꾸 설교하는 목사 평하고 악평하고 자꾸 그러니까 그것들이 그만 목사를 따라서 미워하고 이러니까 설교가 한 마디도 그 속에 안 들어가 놨으니 설교할 때에 예배볼 때에 설교가 안 들어가니까 마귀만 들어가니까 그래 되는 것이지 그것 어떻게 할 수가 있나? 고치는 도리가 하나밖에 없다.’ ‘뭐입니까?' `하면 네가 가르쳐 주면 할래?' ‘예 가르쳐 주십시오.’ 이제 할 수 없다. 백 목사를 우상을 만들어라. ‘백 목사. 아이구 백 목사, 백 목사님 말씀 틀림없다. 털끝만치도 틀림없다. 말한 대로 그대로 된다. 그대로 된다.’ 자꾸 이래 자꾸 두려워 떨며 이래 봐라. 그러면 그것들이 ‘헤, 언제는 그래 하더니만 언제 또 저래 한다. 또 변했네.’ 이래 쌓아도 자꾸 그래 오랫 동안 그러면 ‘야, 그 말씀 정말 말씀대로 그런가?’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 보니까 말씀대로 실행해 보니까 되고 말씀을 어겨 보니까 안 되고 이런 걸 자꾸 경험하거든. ‘아이구 이래야 되겠다.’ 그것밖에는 고치는 법이 없다. 내가 그렇게 말해 줬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좀 많이 나오기는 나왔는데 요것도 실행을 못 하면 말이지, 이제 안 나온 사람들은 밥을 안 굶으면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이오. 밥을 굶으면, 못 나왔으니까 밥을 굶으면 그것으로써 대충이 돼져요, 어제 약속을 그래 했으니까. 오늘 아침에는, 오늘 아침에 그래도 아직까지 천 명이 안 돼요. 저 줄이 꽉 차면 천 명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살아요. 이래 봐요. 안 되면 지금 뭐, 지금 몇시 됐습니까? 지금 다섯시 일분이네.

다섯시 일분이니까 그만 뒤에 바쁘거든 지금 가면 되고, 또 좀 기도하고 가고.

얼마든지 새벽기도 할 수 있는데. 오늘 아침에 반 시간 당기니까 어떻게 좋은지? 주님이 기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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