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구원에 대한 사명성

 

1986. 2. 19. 수새벽

 

본문:요한복음 15장 9절∼13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어제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러면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신 거와같이 그 사랑 가지고 주님이 지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면 「사랑하신 것같이」 그러면, 사랑하시는 것은 어떤 것이 사랑하시는 것인가? 사랑하시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므로 그에게 자기의 것을 주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사랑하여 자기의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는 데는, 영리적으로 적은 것 주고 큰 것 얻기 위해서 하는 그런 영리 사랑도 있겠고 또 주고는 반드시 뒤에 받아야 하는 여수의 그런 사랑도 있겠고, 아버지의 사랑은 주고 받지 않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쌍방 사랑이 아니고 일방적 사랑, 짝사랑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신 것 아니고 순전히 당신의 것을 주기 위해서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여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으면 그 사랑하신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그 사랑의 자체의 그 본질과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 아버지의 그 무한하심의 크신, 자체의 무한하시고 크신 그 크심과, 그러면 거기 전지 전능 완전 다 들었습니다. 하나님 자체의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그 크심과 또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신 주권과 또 당신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무한의 창조의 그 섭리,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자체의 그 모든 완전하고 구비하시고 무한하심과 또 그분이 가지고 계시는 천상 천하의 당신의 전 소유와 또 당신이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모든 주권의 섭리의 그 권세와 이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예수님은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떤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시는가? 아버지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과 같은 꼭 그 사랑의 자격을 가지고, 자격과 그 실력, 자격 실력 그 부요 그 주권의 권세를 가지시고 아버지가 가지신 그 모든 것을 가지시고 주님을 사랑하신 것같이 이제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와 꼭 같이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가지신 것과 아들이 가지신 것이 다른가? 아버지의 가지신 것을 아들이 다 가지셨습니다. 이 가지신 것을 마지막, 마태복음 28장에 말씀하시기를, 18절 이하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게, 아버지가 가지신 것을 예수님에게 다 주시기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 주셨다 하는 과거가 아니고 지금 계속 주시는 그 주심을 가리켜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계신다 그렇게 했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하고 난 다음에는 완전히 예수님이 상속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러기에 사람을 심판하는 권세도 예수님이 가졌고 아버지가 가지지를 아니하시고 예수님에게 다 이양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지시고 하신 그 모든 것을 아들에게 전부 이양했습니다. 이래서 ‘사람됨을 인해서, 신인 양성 일위됨을 인해서 심판하는 권세와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그렇게 말씀했고, 또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이렇게 과거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의 모든 실력과 부강과 또 그 방편을 예수님이 꼭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예수님과 그 관계나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나 그 관계가 꼭 같습니다. 같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자체가 무한하시고 무궁하시고 지극히 크심이 꼭 같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할 때의 아버지 자체의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영원하신, 그 크시고 부강하심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꼭 같은, 아버지와 같은 것을 지금 완전히 가졌습니다. 상속받아 가졌습니다. 또,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모든 가진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주실려고 하신 방편과 꼭 같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주실려고 지금 그 방편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자체의 그 무한하심, 완전하시고 무한하심, 그 가진 소유의 충만하심, 또 아버지가 아들에게, 있는 것을 다 아낌 없이 하나도 남김 없이 싹 다 주시기로, 유업으로 주시기로 하신 주심의 방편 이 세 가지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한 것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한 것이 꼭 같다 하는 요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하는 요 사랑이라는 그것을 거기서 뭐 분류를 할려면 한이 없지마는서도 간추려서 강령적으로 셋을 말하면 됩니다. 첫째는, 자체의 무한하시고 크심, 또 그의 소유의 그 충만, 소유는 무한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무한이지 그 소유는 무한이라고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충만이라고 하는 것이오. 충만과 또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당신의 것을 다 아낌 없이 하나도 남김 없이 싹 다 주시기를 지금, 사랑하심으로 주시기를 원하고 주실려고 하시는 그 방편과 꼭 같은 방편을 주님이 우리에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아버지에게 받은 방편과 같은 그 방편을 우리가 쓰면 우리도 주님에게 받는 것이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주님이 그 방편을 쓰셔 가지고서 아버지의 것을 다 받으신 거와같이 우리들도 그 방편을 쓰면 주님의 것을 다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꼭 같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또 말씀을 하시기를,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신 거와같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사망과 생명과 전부를 다 네게 주겠다 네것 된다’ 이렇게 거게는 더 해석을 좀 세밀하게 해 가지고서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는 말씀을 해 놓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거와같이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말은 이 세 가지 안에 거하라 그말입니다. 이 세 가지 안에 거하라. 그러면, 예수님의 그 자체의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지극히 크심 속에, 크심을 네것을 만들 수 있는 그 속에, 또 주님이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당신이 다 소유하고 계시는 이 소유 속에, 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실려고 해서 이걸 다 주신 거와같이 나도 너희를 지금 주기로 했으니까 이 주고 받는, 주고 받는, 유업을 받는 이 유업 속에 살아라.

네가 지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이 유업을 네가 받는, 유업을 지금 상속받는 자로 있으라. 또 내 모든 소유를 너에게 지금 줄라고 이 모든 소유를 가지고 너에게 지금 줄라고 하고 있으니 모든 내 전 소유를 가지고 너에게 줄라고 하는 지금 이 속에 있으라. 내가 무한하고 무궁하고 영원하고 지극히 큰, 나의 이 큼의 속에 있으라. 이 큰 속에 네가 거하라.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말에는 자체의 지극히 크심과 천상 천하의 모든 것으로 소유의 그 충만한 부강과 있는 모든 것을 다 아낌 없이 줄려고 하시는 이 세 가지 이 사랑 역사 속에 네가 있으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 말이 알아 들려집니까?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 말은 몇 가지 속에 있으라 그말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이 세 가지 속에 있으라 그말입니다. 이 세 가지 속에 있는데,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의 이 세 가지 속에 있어 가지고서 이 세 가지를 완전히 이제 유업으로 상속받았는데 우리는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 가지 가지고서 우리 각자들에게 지금 주시는데 이 각자들이 이 받는, 정해 놓은 유일한 방편, 제 마음대로 방편 정할 게 아니라 다 정해 놓으신 그 방편대로 고대로 이행을 하면은, 요 세 가지 속에 있으며 이행하면은 이 세 가지를 완전히 달성해서 받게 되는 것이 예수님과 우리와 다르냐? 다르지 않는 것을 말했습니다. ‘내가 이기고’ 하는 것은 이걸 말합니다. `이기고' 하는 것은 그 방편을 다 완성해서 방편을 다 빠짐없이 그대로 방편을 이행해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아버지의 우편이라 하는 그 우편을 그것을 지금 시간 없어 해석 못 하겠는데 먼저 양성원에서 조직 신학을 배우면서 아버지 우편이라는 해석을 해서 그 해석이 잘못된 것을 내가 다시 전화를 해 가지고서, 그때 내가 마침 들어서, 전화를 해 가지고 그것을 수정을 해서 고것을 바로 정의를 세웠습니다. 고것을 정의를 밝혔는데 지금 말할라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우리가 하나씩이라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심같이 우리는 주님 우편에 이제 앉아 있을 이것이 우리의 보좌입니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같이 너희들이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그러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고 예수님 보좌에 우리가 함께 앉아 때문에, 논리적 차이가 있는 것이지 내나 같은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해서 그러냐?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 말은 「사랑 안에 거하라」 이 말은 이제 완성한 사랑 안에, 완성한 사랑 안에 거하라 말입니까, 지금 공사 중인, 역사 중인 사랑 안에 거하라 말입니까? 완성한 사랑 안에 거하라 말입니까, 역사 중인 사랑 안에 거하라 말입니까? 어느 겁니까? 역사 중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서 깨달은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완성해 놓은 사랑 안에 거하라고, 완성해 놓은 사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틀렸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완성을 했지마는, 완성을 했습니다. 완성을 했지마는서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지금 완성할라고 공사 중입니다. 역사 중에 있는 사랑 속에 거하라 그말이오.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 「거한 것같이」 이것은 과거사입니다. 이거는 지나간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 속에, 사랑을 성공해 가지고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사랑을 완전히 받는 성공을 다 해 가지고 지금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러니까 이것은 미결적인 사랑입니다.

주님이 사랑 안에 거하는 거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사랑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은 성공한 사랑이고 또, 내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는 것은 지금 계명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지 안하면 사랑 안에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지금 건설 중에 있는 이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기쁨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도 그 기쁨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 기쁨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쁨의 뭉텅이가 우리 속에 들어오는가? 예수님의 기쁨이 종자가 돼 가지고서 그 기쁨의 종자가 우리 속에서 자라 가지고서 예수님의 기쁨의 완성과 같은 그런 완성이 우리에게도 와서 이루어진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기쁨이라는 이 내 기쁨은 무슨 기쁨인가? 요 ‘내 기쁨’ 예수님의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 예수님의 기쁨은 첫째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기쁨입니다. 또,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기쁨. 자체가 책임과 의무와 본분과 목적과 계획을 완전히 달성한 자체의 기쁨입니다. 자체의 기쁨, 자체의 기쁨인데 이 기쁨은 모든 존재에 대한 주권을 가진 기쁨입니다. 또 하나 더 있는 것은 이 기쁨은 무슨 기쁨이냐, 영원한, 불변의 영원한 기쁨입니다. 그러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들어가 가지고서 종자가 돼 가지고서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너희 기쁨으로 완성을 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이 기쁨은 몇 가지 기쁨입니까? 이제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 기쁨이라 했습니까? 다섯 가지 기쁨. 다섯 가지 기쁨. 요것을 단단히 기억을 해요.

여러분들이 이런 걸 자꾸 기억을 해야 되지, 나도 말해 놓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또 생각하면 나오지마는서도 그걸 죽 엮어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 그걸 내가 양사방 좀 물어 봅니다. 물어 보니까 제일 잘 강직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물론 다른 사람도 있지마는 내가 알아 본 중에는 제일 잘 강직해 있다 그말이오. 내가 알아 본 중에는 제일 강직하고 있어. 내가 알아 보지 안한 사람 중에도 뭐 잘 강직한 사람이 많이 있겠고 그 이상도 있겠지마는 ○○○조사님의 부인 ○○○지금은 집사인데 앞으로는 집사가 될란지 모르지마는, ○○○집사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 내가 그걸 한번 말했어. 아는 대로 고런 거 중요한 거 고런 걸 기록해서 나한테 좀 보내 달라 이래 전화를 했더니마는서도 기록해 보내 줬어. 또 내가 그 뒤에 요새 지금 말하기를 요새 또 내가 말한 가운데에 하나 둘 이렇게 기억해야 될 그런 것을 또 기록해서 보내 달라 이라니까 ‘다 기록해 놨습니다’ 이래서 내가 보내라 소리는 안 했습니다.

그래 또 그걸 인제 그래 그러면 그걸 또 내가 박아 가지고서 돌릴 겁니다.

돌리면서, ‘여게 빠진 게 있거들랑 또 더 보충을 해라’ 또 이래 해서 인제 이거 내가 뭐 시간 없고 이라니까 자꾸 이래 남을 잘 써 가지고 이렇게 뭘 할라고 합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혹 받으면은 기억하고 있다가서 ‘요것 빠졌다’ 예를 들면은 주님의 기쁨이라면은 그 기쁨이 이제 손가락으로 가리킨 대로 다섯 가지라. 요런 것을 기억하라 그말이오.

다섯 가지인데 첫째는 누가 기뻐요? 보내신 자가 기뻐요. 첫째는 보내신 자가 기뻐요. 보내신 자 아버지가 기뻐요.

또 둘째로는, 둘째로는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들이 다 기뻐 환영해요. 다 기뻐 환영해요.

또 셋째로는 자체가 기뻐요. 왜?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 완수하니까 기쁘다 그말이오. 기뻐. 이것도 사람이 안 돼 본 사람은 몰라요. 자기의 의무와 책임과 본분에 대해서 양심으로 생각해 봐도 양심껏 생각해도 가책이 없이 했을 때에 기쁩니다. 양심보다 더 깨끗한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대로의 해서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에 대해서 이제 잘못된 거는 고치고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받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 이제는 완전히 됐다. 완료됐다.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에 대해서 주님의 심판 앞에 갈 때에도 이제, 물론 우리가 ‘됐다’ 는 할 수 없지마는서도 그래도 심판 앞에 가도 자기로 심사해서 갖출 대로 갖추고 정비할 대로는 정비가 됐을 때에는 우리에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 신앙 생활에 체험에 있어서 돈이나 권세나 이런 거 얻어 가지고 기쁜 거 보다도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정리한 회개의 기쁨이라 하는 것은 그런 걸로 비교할 수 없는 깊숙이, 뿌리가 깊은 그런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체의 본분의 기쁨, 그라고 난 다음에는, 무슨 기쁨이오, 네째는 무슨 기쁨이라 했습니까? 무슨 기쁨이라 했습니까? 녜, 모든 존재에 대해서 주권을 가졌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만이 주권을 가졌는데 이제 신인 양성 일위이신, 피조물을 가진 예수님께서 모든 주권을 다 가졌어. 물론 신성이야 영원 전 자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권을 가졌지마는서도 인성을 입었기 때문에 이 주권을 못 가지게 되는데 인성을 입어 가지고서 이제 모든 신성인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이 이제 됐다 하고서 신인 양성 일위에게 다 줬다 말이오. 여게 15장 9절 이하에 나를 사랑하셨다 하는 것이나 또 마태복음 28장에 18절 이하에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하는 그런 것이나 그것은 새로 받은 것이라 그말이오. 신인 양성 일위로 받은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이 모든 주권을 가지신 그 주권. 그러면 천상 천하 모든 데 대해서 다 주권을 가졌습니다. 주권 가진 그 기쁨.

또, 하나는 무슨 기쁨이라 했습니까? 하나는 뭐입니까? 영원성. 이것이 뭐 억만 년 가도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한 영원성의 이 기쁨. 그러면 가지 기쁨입니까? 다섯 가지 기쁨. 이 다섯 가지 기쁨.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가 이것을 지금,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 말을 너거에게 말하는 것은 괴롭힐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다섯 가지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에게 이 다섯 가지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다섯 가지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다섯 가지 기쁨이 어떤 기쁨입니까? 주님이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기쁨.

우리는 주님이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기쁨. 또 둘째로는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환영하는, 환영을 받는 기쁨. 또 내 자체가 이 세상에 왔다가서 내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한 그 기쁨. 이제 이 계명 지키면 이게 다 된다 그말이오. 기쁨. 또 그다음에는 예수님과 같이 천상 천하의 모든 데 대해서 우리가 주권을 가졌어. 우리가 말하면 다 돼요. 그러니까, 이 산을 명하여서 바다에 심기우라 해도 될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그라면, 주권을 가졌으면 우리 주권이, 예수님은 주권대로 가졌고 주권하고 주권하고 둘이 싸울 수 있는 그 주권인가? 아니야. 예수님이 주권 가지셨는데 그분의 주권에게 내가 피동되기 때문에 그분의 주권과 나의 주권이 단일이 돼 가지고, 동일이 아니라 단일이 됐기 때문에, 하나가 됐기 때문에 그의 주권을 나도 주권을 가졌다 그말이오.

또 마지막으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 우리 기쁨은 또 하나 마지막으로 우리 기쁨 하나는 뭐입니까? 예? 영원성 불변성, 영원 불변의 이 기쁨을 우리가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이보다 더 큰 소망이 어데 있습니까? 세계에 제일 강대국의 그 대통령과 우리의 기쁠 수 있는 이 기쁨과 가치를 비교하면 중량이 비슷비슷합니까 아주 천지의 차이가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천지 차이도 더 됩니다. 이런 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낌 없이 다 푹푹 바치고, 바치고도 오히려 부족해서 날뛰고 있는 것이고 땅에 있는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베드로가 고기 잡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알고 있는 자연의 것을 주님의 은혜로 받아 가지고, 받고 난 다음에 깨닫고 난 다음에 이보다 더, 주님의 계명 지키니까 이것 되는 거 보니까 이제 이것 되는 거 보니 주님의 계명 지키면 이보다 더 큰 거 될 것이기 때문에 소망을 옮긴 것이 베드로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옮겨져야 됩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계명을 지키면 이게 되는데, 계명을 지키면 되는데 이 계명이 뭐인가? 12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했는데 이거 참 사랑 안에 거하는 이게 굉장하고 또 이 기쁨도 굉장한데, 굉장한데 이걸 하는, 이루는 방편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인데 그 계명이 뭐인가 지금 12절의 말씀입니다.

「내 계명은」 「내 계명은」 이루는 방편은 말이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러면 그 계명은 뭐이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고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주님이 그러면 우리를 사랑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한 것은, 죄는 내가 지었는데 당신은 죄 없으신 분이 내 죄를 대신해서 당신이 형벌받으신 것이 그분이 하신 일이요, 우리를 사랑하신 일이요, 내가 할 의무와 책임인데 내가 할 것인데 내가 못한 것을 당신이 책임지고 대신하신 것이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요, 내가 모두 다 잘못 돼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인간으로 더불어 원수된 그 원수된 댓가를 당신이 내시고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된 것이 이것이 당신이 하신 일이라 말이오.

그러면, 세 가지 대속하신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라. 이것이 계명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이 계명 지키는 법칙이요 주님의 이 다섯 가지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법칙이라. 다른 거 없어. ‘주님이 우리 사랑하신 거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죄에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사람을 죄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또 사람을 의로운 자를 만들기 위해서, 또 사람으로 더불어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불목한 것을 화친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이 일이 이렇게 크기 때문에 이 일을 하라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 크기 때문에 이거 위해서 죽으라 그말이오. 이거 위해 소유를 다 버리라 그말이오. 이거 위해서 모든 내 몸과 소유와 생명을 다 버리라 그말이오.

이런데, 이걸 몰라. ○○○집사 손 들어 봐요. 안 왔어. ○○○집사 손 들어 봐요.

안 왔어. 안 와도 좋아. 갈라면 가 버려. ○○○손들어 봐. 저 뒤에 드는 거 같다.

들었어. ○○○씨는 왜 안 왔어요? 썩었어. 저주받고 망할 자를 복되게 할라 하면 막 감사해서 죽자 살자 하고 ‘하, 감사하다’ 이래야 될 건데 이걸 모르고 오히려 삐쭉삐쭉하고 뭐이야? 그까짓 게 예수를 믿어. 집사될 자격 없어. 삐꿔 돌아갈라면 돌아가고 이제 가르칠 만치 가르쳤으니까 뭐 그 이상은 가거나 말거나 상관 없어. 가르칠 만치 가르쳤으면 인제 실행을 해야지.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이 서부교회 와 가지고서 사찰 시킨 사람, 사찰 시킬 때에 내가 부추켜 세우며 사찰시킨 사람 목사 안 만든 사람이 없어. 다 목사 만들었습니다. 사찰시켜 가지고서 길러서 마지막에는 목사를 만들었소. 이 ○○○집사님은 처음에 들어 올 때부터 귀도 어둡지 나이가 많지 이라니까 이분은 내가 목사를 만들라 해도 목사가 안 되겠다 말하고서 그랬어.

다른 사람은 ‘너는 지금 사찰로 들어오지마는 앞으로 목사가 돼라.’ 내 밑에 와 가지고 식모살이하던 사람 전부 구역장 안 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내 밑에 일하던 사람, 여자로서.

내 아내에게 제가 서부교회 바로 이동되고 난 다음에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자기는 사모라 소리를 듣지 말아라. 사모라 하면 이래 받치지마는서도, 떠 받치지마는 사모라 하는 데는 다른 사람들이 다 주목을 해 가지고서 바람이 세다 바람이 세고 하니까 사모라는 말 아예 이름도 모르도록, 저 사모가 어데 있는고 모르도록 하고 집사, 권찰을 해라’ 이것 시켰습니다. 이해를 못 해. 날 사모 대우 못 받구로 한다고 이해를 못 해. 지금은 이해를 해. 지금까지 그거 안 하고 사모로 했으면 참 불쌍하고 가련하지. 그런데 지금 이라니까 뭐 권찰의 월급받는 것이 얼마더라? 육만 원인가 돼. 십 사등인가 얼마인가 돼.

이래 놓으니까 이제 뭐 권찰 일에 막 죽자 살자 이래 하니까 내게 대해서는 뭐 요런 거, 가끔 가다 한번씩 뭐 이래 뭘 반찬, 저 먼저는, 저 아래는 보니까 신근 김치 담았는데 이게 하도 맛있어 가지고 왔다 하면서 가져 왔지 생전 남편이라고 요맨치도 돌볼 여가 없어. 전화, 전화하면 없고, 전화하면 없고, 다리를 줄줄 끌며 곧 지금 보니까 구부러질 모양인데 가지 말라고 좀 가지 말고 집에서 전화로 심방하든지 하고 가지 말라고 이랬는데 ‘어데 갔지? 하면, 하도 자꾸 인제 가지 말라 하는데 가 놓으니까미안한가, 뭐 여기 조금 갔다 왔다고서 ‘또 심방 갔지?’ 심방도 다니지도 못한다고서. 가지 말라 하는데 자꾸 심방 가는 거라. 내 마음에는 또 속으로 좋다 그거요. 죽자 살자 하고, 병이 들어도 그렇습니다.

그래 내가 ○○○권사 ○○○권사 ○○○권사 뭐 저 ○○○권사 내가 큰소리 합니다. 호통을 칩니다. 내가 너거한테 잘못한 거 없어. 너희들 내가 그래 안 했으면 지금 손자나 업고 아이 본다고 이래 가지고서 안 되면 노인당이나 돌아다니며 그래 천물될 것이, 곧 늙어서 송장이나 한가지인데, 송장이나 한가지인데 꽃 같은 청년들이, 남자 청년들이 꽃 같은 여자 청년들이, 남녀 꽃 같은 청년들이 그 꾸릉내가 나는 송장 옆에 가 가지고 자꾸 ‘권사님 권사님 권사님’ 아이고, 자꾸 지금 막 뭐 물고 빨라 해. 이래 가지고 우리 집에 한번 와 주이소. 이거 좀 한번 와 주십시오. 뭐 간청 뿐이고, 그렇게 세월 있는 사람이 됐어.

한국에 제일 유명한 전도 부인이 누구냐 하면은 ○○○선생입니다. 동정녀요.

그분은 깨끗한 참말로 동정녀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제일 설교도 권위 있게 잘합니다. 이래도 이 제도로 하지 안하고 전도 부인으로 하니까 이 교회 가서 전도 부인노릇하고 하니까 목사가 갈리고 하니까 전도 부인이 교인들의 세력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목사하고 대립이 된다 말이오. 목사가 이거 와 가지고서 교인들 세력을 다 잡아야 될 터인데 전도 부인이 잡고 있으니까 시기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그 전도 부인하고 대립해 가지고서 이래 대립하지 그라니까 밀려서 이래 겨가야 되지 저리 쫓겨가야 되지 이래 가지고서 지금 미국까지 가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까지 쫓겨가 가지고 있어.

이렇지마는서도 네가 믿음으로 낳은 자녀는 네가 길러 가지고 끝까지 길러라 이라니까 이거 길러서 다 관리 못 하니까 분구시키고 분구시키고 분구시켰는데 지금 ○○○권사님은 분구시킨 구역이 몇 구역이라? 서른 네 구역. 서른 네 구역.

이러니까 내가 큰 소리 할 수 있지 않소. 그런 천물을 이렇게 귀중하게 만들었으니까 뭐 어떻게 해도 나는 권리가 있다. 그래 내가 그때 언제 자기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서이 앉혀 놓고 말했어. ‘너거 재산은 반은 날 줘야 돼. 네가 상속받는다고서 상속받게 되면 반은 날 줘야 돼. 왜? 내가 지도하지 안했으면 그때 한목 이거 뭐 다노모시한다 할 때에 그때 했으면 톡 다 떨어갔을 건데 못 하게 내가 해 가지고 중단했어. 그뿐 아니라 모두 지도해 가지고 그랬기 때문에 옳게 지도해 가지고 했으니까 그 재산 반은 내거 아니가, 내야 되나 안 내야 되나?’ 내가 ○○○목사 보고 그러니까 ‘예, 옳습니다.’ 이랬어.

이러니까, 바른 지도를 해서 했기 때문에 그렇지, 나를 섬기는 사람 중에는 막 이렇게 제일 잘 섬겼어. 제일 잘 섬겼는데, 나 섬기는 그거나 바랐으면, 자꾸 나를 뭐, 섬기기를 제일 잘 섬겼습니다. 그래 인제 나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목사들의 지정 여관이라, 그집이 지정 여관이라. 내가 어제 아침인가 언제 말했지요? 이런 걸, ‘그래 말고 사람 구원해라’ 내가 말하기를 ‘왜 ○집사는 인기는 이런데 사람 구원을 못 하느냐, 못 하는 그것은’ 바리새 교인과 세리 어제 아침엔가 말했지?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과 세리에 대해서 설교 들은 사람 손 들어 봐요? 녜, 들었지요. ‘이것이 바꿔지지 안했기 때문에, 세리로 바꿔지지 안했기 때문에 안 된다. 죽어라. 자기 단점과 저 상대방의 장점만을 보면서 해라’ 그래 지금은 얼마나 익숙히 됐든지 무슨 얘기 하면 ‘예, 사람마다 다 장단점이 없습니까?’ 그만 자기 표어가 돼 버렸어.

이래 놓으니까, 가 가지고서 뭘 요런 데다, 한 몇 해 했습니다. 여기 ○○사모님이 그랬어. 뭘 맛있는 걸 해 가지고서 아침마다 뭘 해 가지고 왔소. 해 가지고 오고 이랬는데 나중에 하지 말라 했다 말이오. 하지 말라 하니까 ‘왜 나는 못 하게 하는가’ 하지 말라 하고 다른 사람 하라 하니까 아, 목사님이’ 그때 내가 조사요. ‘조사님이 나한테 이렇게 하라 하는 거, 못 하구로 하고 다른 사람 하라 하니까 사랑을 바꾸는가 보다 뭘 바꾸는가 보다’ 말은 안 했지마는 그때 뭐 있을란지 모를 거라 그말이오. 섭섭할 거라 말이오. 그렇지마는서도 또 바꿔 가지고 이 사람 하다 또 이 사람 하다 그래 가지고 바꿔서 하는 것마다 ‘네가 나중에 얼마 하고 난 다음에는 인간 구원을 착수해라 딴거 하지 말고 인간 구원을 착수해라.’ 이래 가지고서 인간 구원을 착수해 놓으니까 자기 죽는 날까지 기쁘고 즐겁고 할 일도 있고 가치도 있어졌지, 나만 자꾸 뭣을, 우유를 갖다 드린다 뭐 한다, 음료수를 아침마다 아이를 시켜 보냈소. 아침마다. 해장 음료를 보낸다 말이오. 그거나 만날 하고 있으면 지금까지 있었으면 나중에 가 뭐일 거라? 나중에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내가 목사님만 이제까지 섬기고 이랬지마는서도 뭐 있나, 인간만 섬겼지 뭐 있나?’ 나중에 보면 식구 하나도 없으면 원망 불평 있을 거 아니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내가 오층에 있는 일하는 사람을 내게 일하는 사람을 조금만 뭣하면 ‘너는 이제 그만치 됐으니까 고만 가 가지고서 인간 구원하는 거게 착수해라.’ 이래 보낸다 말이오. 내가 바로 지도를 해야 되지 바로 지도하지 안하고 이래 가지고 나 우선, 내야 좋지, 나 좋도록만 이렇게 해 가지고 하면은 나중에 마지막에 가 가지고서 나이 많으면 일 년 지나가면은 그 다음에는 ‘하, 내가 이거만 하고’ 십 년 지나가면, 마지막에 죽을 때 되면 ‘일생 동안 목사 뒤만 닦고 섬기기만 하고 이라다가서 나는 그만, 권찰이 됐으면, 이래 어떻게 됐을 건데 권찰도 못 했다’ 후회가 되고 하늘나라 가면 더 후회돼. 내가 고걸 말했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하니, 이제는, 밥을 먹을 수 없으면 할 수 없이 이라지마는 밥 먹을 만 하거들랑은 사람 구원에다가 전력을 기울이라.’ 이렇게 말하니까 그때 들을 때는 좋아서 ‘예,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 이렇게 해 놓고도 나가 놓으면 요 마귀란 놈이 쏙삭쏙삭 쏙삭쏙삭 이래 가지고 ‘너는 미워서 지금 네가, 끊어 버린 거 아니가, 네가 지금 배척당한 거 아니가, 네가 이제 면직당한 거 아니가?’ 요 하니까 고 말이 들어가 가지고서 쏙삭쏙삭 들어 가지고서, 죽어. 죽어. 뒈질라면 뒈져. 살릴 만치 살려놓고 난 다음에는 뒈져도 상관이 없다 말이오. 뒈져야 코가 깨지든지 대가리가 깨지든지 하면 뒤에 돌아온다 말이오. 돌아와. 바른 걸 바로 길렀는데 천국 갈 자가 바로 가르쳤는데 안 돌아오고 어짤 거라.

○○○집사 어머니도 말이오. 아들이 지금 벌어 먹일 수 있거든. 이래서 이랬더니마는서도 나는, 평생 나는 목사님 뒤에 수종을 들라고 이래 작정을 했었는데 이렇다고서 섭섭해서 울고 이래 뭐 섭섭하고 이래 가지고 또 저 바깥에 가서 뭐라 하니까 삐꿔 돌아왔다 말이오. 비꿔서 돌아왔어. 이 마귀들은 사람 살릴라 하면 마구 자꾸 그라는 거라. 그래 또 인제 왔기 때문에 내가 살살 이 진리를 떡 말하며 자기가 이렇게 살면 뒤에 가서 이렇게 비참이 되고 이렇게 살면 이렇게 행복된다 이거를 타일러 주니까 솔곳하이 또 기쁘고 즐겁고 또 감사가 충만이라 그말이오. 생명길로 인도해서 살리는 데 충만하고 사람을 죽이는 데 충만하기 때문에 죽이는 그런 자가 뭐이냐 하면은 마귀라 그말이오. 고거 마귀를 알아야지. 마귀를 알아야지. 내가 안다 말이오. 모르는 게 아니고. ‘조 마귀가 가 가지고서 조말 조말 해 가지고 저걸 죽였다’ 고걸 알아. 여기 있는 거 안다 말이요, 내가. 그러니까, 그 마귀가 그것을 회개하고 그 사람도 어서 이걸 해야 돼요.

이러니까,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하려 함이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에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이 기쁨은 뭐인가? 이 기쁨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이지. 모든 피조물들이 다 환영할 기쁨이지. 자체의 땅 위에 인간돼 왔다가서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 한 기쁨이지. 모든 것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는 이 기쁨이지. 십자가 상에서도 어떤 데서라도 변동 없는 영원한 불변의 기쁨이지.

이 기쁨을 가지라고서 이렇게 하는 것인데 이걸 모르고 섭섭해서. 사찰하던 것도 이렇게 뭐 변동해서 이래 할라 하면은 삐쭉삐쭉 삐꿉니다. 이렇게 쓰다가 그만 안 쓴다고서. 그래 가지고서 이 시키는 걸 모르니까. 이래도, 이래도 주님이 죄는 갑이 짓는데 공연히 주님이 벌받은 것이, 갑이 해야 될 걸 하지 안한 걸 주님이 대신 행해서, 갑이 잘못해 가지고 원수된 걸 그 책임을 진 것은 주님이 져서 이 세 가지, 주님이 행하신 건 이 세 가지 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행하신 이 계명을 생각하면 입이 못 벌어져. 아무리 말해도, 이 사람에게 대해도 고만 말할 게 없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도 왜 네가 내게 이렇게 했느냐 하고서 책임을 추궁할 수가 없고 그것도 내가 짊어져야 되고 저것도 내가 짊어져야 되고 저것도 내가 짊어져야 되고,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참 요령을 걸었습니다.

요령을 걸었어. 변동 없는 걸음을 걸었어. 아무도 불만 불평을 할 수 없는 요 걸음을 딱 걸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로는 인간 구원에 전력 기울여야 됩니다. 내가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서도 여게 지금 ○○○집사님이 와서 있는지 모르겠는데, 복음 병원에서 전도 부인으로 역사했고 지금도 뭐 ○○교회니 ○교회니 큰 교회서 전도 부인으로 오라고 해도 가지도 안하고 여기서 인제 이 진리 때문에 있다고 하는데 전도해야, 아직까지 복음을 전도해도 하나도 얻지 못했어. 하나도 못 얻었어. 다른 데 유명한 사람인데 못 얻었다 말이오. 유명한데 못 얻은 그거는 내가 차마 그걸 내가 개적으로 말 못했는데 인제 여기서 오늘 아침에 말하는 거라. 세리가 돼야 돼. 세리가 돼야 되지, 되기 전에는 안 된다 그거요. 완전히 바꿔져야 돼. 자기가 죽고 장 남의 장점만 보고 자기의 단점만 보고 이래, 자기 단점 가지고 상대방 낙심한 그 사람의 장점 가지고 둘이 대야 이 조화가 맞지 그 외에는 조화 맞는 길이 없어.

이래서, 이번에는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 이 낙심한 것을 전부 주일학교는 한 달, 중간반은 두 달, 장년반은 육 개월 안 나온 사람들 이래 기록 다 해 내라 했습니다. 기록해 내는데 고게 그 사람을 인도해 내는 데에 참고로 적을라면 열 가지도 더 적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주소도 적어야 되지 그 사람의 성명도 적어야 되지 성별도 적어야 되지 연령도 적어야 되지 직장도 적어야 되지 그 사람의 신앙 사상도 적어야 되지 또 주일학교 반사도 적어야 되지 중간반 반사도 적어야 되지 그 사람이 전도 어데 받았는지 그것도 알아야 되지 이 모두 다, 환경과 주위도 어떻다 하는 그것도 적어야 되지, 어짜든지 그 사람을 가서 전도해 가지고서 낙심한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거게 필요한 요건은 전부 세밀하게 다 기록해서 내면, 내가 이제까지 맡아 가지고 내가 감당하지 못했으나 마지막으로 이걸 다 내라 하니까 세밀하게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내면은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거 아닙니까?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라니까 ‘요거 기록해 내면 고만 거게서 전도하면 내가 내 구역이, 내 학생이 안 될라?’ 이렇게 생각해서 ‘요건 될 만 하기 때문에 기록하지 말고 안 될 만한 것만 기록해 내야 되겠다’ 될 만한 거 기록해 놓은 제가 먼저 가서 전도해 가지고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요번에 기록하지 안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큰 심판으로 자기가 한번 더 이는 다시 변동할 수 없고 변호할 수 없는 이런 큰 문제가 이르는 이것을 도무지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모른다 그거요.

이래 적어 가지고서, 적으면 이걸 가지고서 지금 인제 내가 줄려고 합니다.

○○○집사님에게도 ‘봐라. 지금 서부교회 가까운 데 부근에 지금 믿다가 낙심한 사람들이 남녀 노소에 이렇츰 많다. 이렇츰 많으니까 고걸 네가 적어 가지고, 빼 가지고 와서 자꾸 가 봐라.’ 전도를 해 보면 한 번도 교회 안 나온 사람과 참으로 교회에 한 번이라도 나와 가지고 믿을라고 마음을 먹고 나왔다가서 낙심한 사람과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 한번 가면 그러면 전도를 해 보면 알아. 그러면 그 사람은 말하면 그래도 말이 되고 ‘저도 과거에 교회 나갔다 왔습니다’ 보면 대번에 태도가 다르고 또 그런데 고 이름을 딱 말하면서 ‘누구가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누구 구역으로 어떻게 어떻게 했지요?’ ‘어찌 아십니까?' 고만 딱 접혀. 눌려. 눌리는 게 인격에 눌리고 돈에 눌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나를 구원할라고 하는데’ 그만 그 사랑에 눌려서 그만 ‘예, 그렇습니다. 어째 절 압니까?’ `그런데 좀 나오시지요’ ‘예, 나가겠습니다.' 그만 감화에 눌린다 말이오. 이래서, 이것을 구원해서 구출할라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어. 말하기를 ‘이렇게 뽑으니까 요 기회에 이걸 추려 가지고서 자꾸 다녀라. 심방을 자꾸 다녀라. 자꾸 다니면 나중에 가서 내 밑에서 밥해 주고 일하는 거보다도 자꾸 다니면 나중에, 나중에 기쁨이 되고 나중에 가서는 내가 혹 소리 한다 해도 마음에는 가서 얼른 도와 주고 싶지마는 소리한다 해도 ‘예, 가겠습니다. 조금 오 볼일 보고 가겠습니다.

볼일 보고 갈라 해 가지고 가 가지고 심방하다 보니까 그만 하루 종일 걸렸다 말이오. 올 여가가 없을 거라.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그말이오.

이런데, 인간 구원이라는 이 가치를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목사가 되어서도 설교만 할라고 생각하고 있지 인간 구원에 생각 안 되고 장로가 되어도 전도해 가지고서 하나라도 구원 할라 하는 그런 생각은 가지지 못하고 또 이런 모두 집사가 돼 가지고도 도무지 인간 구원 할라고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인간 구원하는 이 반사들도 무슨 명예로, 다른 사람이 알아 주는 것으로, 뭐 알아 주면 뭐 알아줄 것이며 이름이 나면 무슨 이름이 날 것이며 유명하면 뭐 유명하겠으며 칭찬 받으면 뭐 하겠습니까? 칭찬 인간에게 암만 받아 봐야 소용없소. 이제 주님만 바라보고 요래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그보다 저 좋은 거 어데 있겠습니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데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걸 알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후퇴가 없습니다. 후퇴가 없어. 이걸 알고 복음 전하는 사람은 아무리 정년 퇴직이라도 칠십이 돼서도 정년 퇴직 못 해요. 정년 퇴직한 사람들 이래 만나 보면은 벌써 정년 퇴직을 안 해도 정년 퇴직할 사람이 돼 가지고 있소. 벌써 인간 구원에 대한 그 가치성과 중요성과 자기의 사명성, 이 사명성에 대해서 벌써 끝이 나 버렸어. 그러니까 그 사람은 암만 힘이 있어도 정년 퇴직을 해야 돼요. 나머지기, 아무 그것 없으면서 일하면은 그게 방해만 하고서 그게 마귀 놀음만 하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거요.

이것을 깨달으면 나이가 많아 갈수록이, 이 계명 지키는 것, 이 계명 지키는 게 뭐인데? ‘내 계명은 곧’ 주님이 내 계명 지키면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 주님의 계명 지켜면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 하셨는데 주님의 계명이 뭐입니까? 주님의 계명이 뭐이요? 한번 공통으로 한번 말해 봐요. 주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 그거 아닙니까? 왜 그말 못 해요? 그거 좋은 말이니까 자꾸 막 외워서 고함을 질러야 될 터인데. 그러면, 이게 뭐입니까? 이게 내나 세 가지로 인간을 구원 하는 거 아닙니까? 인간 구원 아니겠소? 이러니까, 이 일에 대해서 이 가치를 깨닫은 사람은, 바울은 말하기를, 늙어 죽을 때가 되니까 좀 덜합니까?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책임감은 더 들고 그 간절은 더 하고, 하고 싶은 마음은 더 했다 했습니다.

요새 이 권찰들 보면은 된 권찰은 곧 지금 병들어서 죽는데 지금 오늘 이 걸음 걸으면 지금 내가 인제 병이 난다. 병이 날 줄 알면서도 안 가고는 못 견디는 거라. 이런 사람이 저절로 되어져요. 말하기를,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먹고 노는 것도 주를 위해 놀고 자는 것도 주를 위해서 잔다 하면은 ‘에이고, 말쟁이 쓸데 없는 소리’ 거짓말 하나도 섞이지 안했습니다. 참으로 주를 위해서, 자도 주를 위해서 자야 되겠고 먹기 싫은 거 먹어야 되겠고 또 쉬어야 되겠고 전부가 주님을 위한 생활이 뭐 일분 일초도 빠짐없이 전부가 주님 위한 생활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그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바울이 순교하면서도, 순교하면서도, 마지막에 순교할 때에 디모데후서 4장에 말한 것도 전부 이 사명을 위해서 말을 해서 뒤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그 말을 끝까지 하고, 유언도 그 말을 하고서 갔다 그거요.

우리가 깨닫고 이 사명에서,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 이것 지키기 위해서 산 사람은 갈수록이 후회가 없지마는서도 이거 위하지 안하고 제 가족을 위해서 뭐 자녀를 위해서, 자녀도 예수 믿기 위해서 하면 하지마는서도 그것 아니고 혈육 정실로 하는 그까짓 거는 마지막에 울고 슬플 것뿐입니다. 아무 소용없소. 혈육의 자식이 됐으면은 믿음의 자식이 돼야 되지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깨닫고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여생을 바치도록 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쨌든지 기도하고 심방하고 인간 구원을 해요. 인간 구원을 정말로 하면은 힘이 자꾸 나옵니다. 거짓부리로 하면은 힘 안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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