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병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7일 새벽(화) 

 

본문 : 사도행전 3장 1절∼10절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하나님께서 만의 하나가 아니고 몇억억만의 일이 될 만한 그 많은 가운데에서  선택하시고. 또 선정하셔서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지나간 한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렇게 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실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뭣 때문에 온 세상에 두어도 둘 곳이 모지랄 만한 그런 많은  가운데에서 이 말씀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는가 하는 기록해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밤에도 이 말씀을 시작할 때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고 하니 세상 인간살이를 인간의 모든 두뇌를,  사상을, 주의를. 무책임한 모든 말들. 철학들 무책임한 모든 이종교들의 많은 말과  많은 지식을 받은 자들이 제일 불쌍하기도 하고 또 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복 있는 것은 땅위에 수많은 인간 지식이 있지마는 인간 지식의 그 근원은 다  배암에게서 나온 지식이니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난 후 인간들을 주장하는 악령이  인간의 이면에서 역사하고 거기에 피동돼 가지고 그저 제 생각나는 대로  이러리라 저러리라 추측 추론을. 또 제 모든 욕망을 서슴치 않고 마구 그려  내놓은 것이 세상의 문화요 지식이요 모든 것들인데 이것은 다 배암에게서 난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한 번만 받은 영원을 좌우하는 귀한  시기를 이런 것 저런 것 때문에 인생의 준비기 간에 모든 시간을 다 소모하고  정력을 소모하고 헛된 노름을 더 능숙하게 하게 하는 것들이니 이것은 하나도  책임 있는 생명 있는 지식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지식은 마치 산 자가 이런 도구  저런 연장들을 사용하고. 또 이 길을 가고 저 길을 가고,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하나의 구원 이루어 가는 데에 사용할 것들이지 거기에서  생명을 좌우하는 줄 알고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라고, 그것으로 인간의 성공을  하려고 그것에게 교훈이나 지도를 받을려고 하지는 아니하고 다만 그것은 하나의  저희들끼리지 걸거리는 것이나 그것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을  모르면 세상을 어떻게 상대할 수 없는 고로 세상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만들기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다 예정으로  만드셨지마는 외부적으로는 그런 것인 줄 알고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계시해 주신 신구약 성경이 계시 말씀과 또 피공포로 인한  성령의 감화 감동의 이 역사와 주님의 대속의 권능의 모든 은혜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요, 또 복되게 하는 것이요. 영원히 평안하게 하는 것이요.

성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사람이 되겠고  그것으로 인하여 거기에서 어떤 이종교의, 어떤 철학의. 어떤 담대한 복술자가  큰 말을 해 놓으면 이거는 위인이라 이래서 제가 책을 어느 것 하나 샀는데  이만한 책인데 세계 명언의 말들이라 해서 기록해 놓은 책인데 거기에 모아 놓은  그것도 다 위대한 말이요. 성경 말씀도 위대한 말이라고 성경 말씀과 가치를  동등으로 해서 그렇게 해 놨습디다. 그 책이 한국의 국보 중에 하나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책인데 그 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겠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가 많은 세상들의 지식, 이 사람의 지식, 근원이 배암에게서  나온 배암의 지식 거기에서 나온 그 지식과 하나님의 이 지식을 동일시하는 같이  보는 그런 사람 오히려 신구약 성경은 한글로 기록해서 누구든지. (저기 왜 서서  있어? 저게 그러면 그 뒤의 사람은 가리워져서 못 보지 않아? 나갈라면 나가고  나갈라거든 길을 틔워 줘요, 길을.) 이렇게 지식과 지식을 구별을 하지 못하고 그  지식으로 인해서 그 마음이 다져지고 강퍅해지고 완패해지고 방종해지고  교만해지고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나 이런 자기네들 말로 위인의  말이나 다 가치의, 권위의 동등을 가지고 있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한글로 서서  모두 보지마는 보는 그런 말보다 사람들이 평생 만나 보지 못 하고 들어 보지  못한 유식한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그런 말을 한 마디씩 내세워서 자기의  유식하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고 자기의 또 광문 다학 널리 듣고 많이 읽은  광문다학이나 자랑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말과 같은 그 동류의  하나의 말이라. 오히려 그것보다 인간들의 말을 크게 높이는 그 학자는 불쌍한  중에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중에 제일 가련한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틀렸습니까? 틀렸으면 틀렸다고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이 저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참 불쌍하고 가련한 데서 헤어날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아멘이 되고 과연. 이렇게 구별을 해서  자기가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줄 알고 이 말씀에게만 인간이 복종할 그 인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 여기에 복종할 때에 책임지고 인간의 구원을 생명과  영원과 평강을 가질 수 있는 영생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사실을 확고히 잡지  못한다면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서 씨 뿌리는 비유에 길바닥에  뿌린 씨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해 주셨는가? 이 말씀은  인간들만으로 기록한 온 세계에 있는 책 그 전부를 다 나비도 그 속에는 한  마디도 없는 말씀이요, 엿새 동안에 없는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권능의 말씀과 꼭 같은 말씀인데.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은 변동될  모든 우주와 영계를 창조한 능력을 가진 말씀이지마는 우리에게 계시된 이  말씀은 그런 창조의 능력을 가진 내나 우주를 창조, 한 그 능력의 말씀인데,  이번에 나타난 것은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것을 창조하시고 엿새 동안에  창조한 것이 변질돼서 멸망 속에 빠져 있는 것을 구출해서 영원히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이 권위의 말씀 절대의 말씀, 전능의 말씀, 전지의  말씀, 우리를 살리시는 이 말씀인 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도요 믿음으로 다 구원 얻는 것입니다. 16절에도,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로 인하여 난 믿음이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다 저렇다 계시해 주시는 계시를 자기가  인정하고 인정하는 데는 어느 정도 확실성이 있다고 신실성이 있다고, 반드시  성취되는 그 성취성이 있다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억만 사람의 인정을 똘똘  뭉쳐도 그 사람 한 사람의 인정을 당할 수 없을 만치 이 인정이 그렇게 차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의 말씀을 같이 듣고 같이 읽고 하지마는 이 말씀에 대한  인정의 그 중량의 차이라면 인정의 그 깊이 높이 넓이 길이의 그 차이라면 그는  측량 못 할 만치 그 차이가 많습니다. 곧 이 차이가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차이요  영원무궁 세계를 우리가 아직까지 가지 못하고 있으나 무궁 세계에 갔을 때의 그  사람의 권위 필요성,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해서 모든 존재들이 다 환영하고  기대하고 영접하고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그 모든 실력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이치가 있는 논리의 도요, 또 진실의  도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의 과학이 세밀하고 조직적인 그 이치를 근거하여  있다고 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런 것으로 비유할 수  없는 억억만 배도 더 세밀하고 절대적인 조직적이요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  생명의 도입니다.

 나는 그 책은 보지 못했으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  두뇌를 만들었는데 이 두뇌에는 컴퓨터가 천 억이 들어 있다 그런 말을 발표를  했다 하는데 그럴 것으로 저도 인정이 됩니다. 그 컴퓨터에는 하나를 딱 기억하게  하면 고것만 기억하고 있고 또 요거 기억하면 기억하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데 뭐  사람의 두뇌에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면 천 억도 더 기억한 숫자도 많을  것입니다. 또 그것들을 비판하는 것도 말하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두뇌에 컴퓨터가 천 억도 넘도록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인간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인간 대 만물로 인간 대 창조주로, 인간 대 영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하여야 할 하나님 대리 노릇을 할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과학만 못할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서 형언할 수 없을 만치  심히 세밀하고 복잡하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성령의 사람들이 증거하기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윤곽과  울타리에 지나지 못한다. 윤곽과 울타리에 지나지 못하니 이 윤곽속에 이 울타리  속에 들어가면 세밀하고 복잡한 것은 성경 안에 있는 그 영감이 알려 줘가지고  모든 것을 알게 한다. 알게 하는 그거는 인간이 유한한 자가 무한의 그 모든  세밀하고 복잡한 그 고상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기 때문에 전능하신  성령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감동시키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신의  감화라 감동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물론 하나님의 그 주권에 순전히 은혜로 되는 것이나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 과정에 있어서는 우리가 깨달은 것같이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는 것같이 이런 과정을 통과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을  은혜로 받는 적합한 방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생을 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제가 애써서 구원을 이루었다고 할 만치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 구원에는 근방에도 가지도 못 합니다. 그런 노력을 했다  할지라도 만일 그 사람이 이렇게 인간으로 상상 못 할 이런 그 은혜가 와서  이렇게 역사했으니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

 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해서 왔을까? 첫째는 그분이  영원전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에 근거가 있고. 목적 안에서 우리를 있도록 예정을  하신 데 근거가 있고. 우리를 목적 안에서 창조하신 데에 권위가 있고 우리를  예수님의 대속을 믿도록 하는 이 믿게 하는 여기에 권위가 있어 가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중생시켜 가지고 순전히 그 은혜의 능력으로 인하여  우리가 깨닫기도 하고 또 인정도 하고 이대로 순종도 해서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지극히 큰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이 사실인 것을 제가 믿지 못하고 스스로  제힘으로 됐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데까지 갔을지라도 반드시 넘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셨느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록해 주신 이 말씀이 먼저 우리에게 세상의 천만의 수많은  지식을 꿰뚫고 그 지식을 밟고 그 지식 위에 올라선 이렇게 목적이 지극히 크며  지능이 지극히 크며 그 속에 운영하는 사랑이 지극히 크심에 이 계시의 크심을  자신이 인정하는 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의 역사에 지나가는 이야기를 기록한 거와 같이 그렇게 여기 고  제가 토끼 꼬리만치 알고 있는, 토끼 꼬리만치 알고 있다 말은 세상에 제일 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 고 지식을 가리켜서 그래도 고 지식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에는  비교도 안 되는 아는 것도 몇 가지 알아 가지고서 그것조차도 꺼꾸로 삐뚤어진  지식을 알아 가지고 그 지식을 버릴 줄 모르고 그 지식을 위치를 바로 정해서 그  지식에게 복종하는 자마다 안 죽는 자 하나도 없고. 그 지식에게 쓰여지는 자마다  안 죽는 자 하나도 없고 그 지식을 표준해서 걸어간 자마다 죽은 생활하지 안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이 말씀만이 나를 다스릴 권위가 있고 지도할  권위가 있고 가르칠 권위가 있고, 또 나로 하여금 성공하게 할 수 있는 권위도  있고 이치도 가졌다는 이 사실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여야 사는 이 말씀이요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말은 한 마디도 거기에  나는 복종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내가 농장에서 어떤 직장에서 있을 때에 이런  도구 저런 도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런 것들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그 복종을 감당할 때에 그런 것들은 이용물로 삼아서 하는 것이니 요것을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면 광문 다학한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이 사실을 알아서  그것을 올바른 이치에 두고서 자기는. 그것은 사람을 그것만으로서는 죽일  것이요, 생명의 말씀이 와서 그것을 이용을 하면은 생명의 말씀의 이 역사를  그것으로서 이용을 해서 순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있다는 요 정도에서 살면 복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그 학벌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학벌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잘 믿는 사람 능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능한 사람이 아주 거기에는 적다.

있기는 있지마는 심히 적다 그렇게 말했고 외나 능한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것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능한 사람들이 많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는 다른 부담을 줄 것이 없고 지금  아는 대로 행한 대로 그대로 계속만 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먼저 미국에서 온 유명한 목사 척 스미스라 하던가. 그 사람 말하는 가운데에  그런 말이 하나 나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자기 밑에 배워 가지고 나가서 몇  해 만에 다 몇 천 명씩은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수많이 섰는데 그 사람들은  다 학벌은 중학교, 고등학교, 고등학교 이상을 공부한 사람은 없고 전부 그  이하의 사람들인데, 그렇게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회자들이 되고 제일 큰  교회들을 다스려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다 하는 그 말을 그분이 실질로 그 사실을  증거한다고 증거하는 것인지 세상 인간 지식에다가 관심을 두고서 증거하는  것인지를 모르지마는 그 말을 들을 적에는 아,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시니 그는  많이 버리지 안했고 길바닥과 같이 많이 세상 지식에게 시달려서 속화되고  더러워지고 강퍅해지고 방종해지고 교만해지고 어리석어진 그 어리석음이 적은  자들을 택해서 하나님이 권위 있게 쓰셨으니 이것이 곧 고린도전서 1장에  말씀하신 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사실을 이제 미국에서도  역사하는 것을 들었다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이 말씀을 하는고 하니 나면서 앉은뱅이 고친 이 사실이  기록되어 온 것은 하나님이 무슨 목적으로 기록해 우리에게 주셨는가? 또 이  말씀은 여러 수억만 속에서 빼고 빼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이렇게  중요하고 희귀하고 아주 그렇게 흔치 안한 많은 속에서 간추리고 간추려서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말씀으로 기록해 주신 이 계시의 가치를 믿는 것이  중요하고 이렇게 선택해서 이 계시를 주셨으니 이 계시를 주신 분의 그분의  계시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사람병을 고쳐서 성경에는 하나를 말하면 여러 가지를  말하는데 함축해서 그 중에 하나를 실례를 들어서 말을 해서 그것으로서 다 알  수 있도록 이치를 가르치는 말씀이기 때문에 병든 자의 비참한 것의 이치를  말씀했고 병든 자가 낫는 이치를 말씀했기 때문에 인간 병이야 천이든지  만이든지 그 인간병이 예수님의 은혜로서 낫게 되는 이 이치를 가르치는 이  광대한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믿음의 도인데 '믿음을 주장하사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했는데 믿음의 도인데 인간병을 고치는 데에는 모든 말씀을  믿는 중에도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우리의 병든 그 치료하는  데에 요런 종류 저런 종류. 요런 방편 저런 방편이 있는데 이 방편으로 치료하는  데에는 이 사실의 이 계시 말씀을 믿는 것이 첫째 일호로 중요합니다. 이 계시  말씀을 믿은 다음부터 이것 저것이 있지 이 계시 말씀을 믿지 안하고 그 다음에  엉뚱스럽게 중간에서 믿는 그런 초절적인 초월해야 되지 초절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것은 다 주관이 되고 말지 하나님은 인간의 거짓부리에 와 가지고서  피동되는 하나님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말씀해서 계시하는 거기에  피동되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피동 되시지 인간이 제 주장대로 하는 어떤 자라도  어떤 그 다수의 사람들이 말할지라도 말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고  하나님은 털끝만치도 피동되지 않습니다. 절대자이십니다. 그분이 계시해 놓은 이  계약에 피동된 그 피동에는 당신이 피동되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피동되지  안하면 막바로 그것이 죄요 그것이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죄짓는 일이 요 죽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짓지 안하시고 죽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에  피동될 때에 그 피동된 그 자에게 하나님은 피동되도록 계시해 놨고 계약해 놨기  때문에 피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이 계시가 인간병을 고치기를 목적으로 하시고  택한자들의 그 인간병을 고쳐 주시기를 목적으로 하여서 기록해 주신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인간병은 어떤 것이 인간병인고 하니 인간병은 세 가지가 인간병인데. 하나는  영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이 돼서 중생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무슨 물질의 힘으로 살아난 것 아닙니다. 육체의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의 대속의 그 광대하시고 구비하신 그 무한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피의 능력으로, 피공로의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고 피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온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났고. 피공로로 인하여 온 진리로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는 뭐하러 오셨는가? 성령과 진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위해서 왔고,  위해서 일하는 것이 성령과 진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힘은 무슨 힘이냐? 우리 힘은 진리가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 힘은 진리의 힘입니다. 우리 힘은 영감의 힘입니다. 성령의  힘입니다. 우리 힘은 주님의 대속의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 힘입니다. 이 힘은  영생합니다. 이 세 가지 힘으로 영은 살아났습니다. 살려줌을 받았습니다. 영은  아무런 주관적 노력 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 능력의 역사로 영은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으나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과는 연결이 단단히 돼  가지고, 있는 영이지마는 영이 아직까지도 고쳐야 할 것은 죽을 때도 영은 이  심신의 범죄를 주격 책임에서 죽었습니다. 지금도 심신의 연약은 주격인 영의  연약이요 심신의 병신은 영의 병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심신을 완전히 점령하고 완전히  포용해서 그 심신의 털끝 만한 기능이나 동작도 예수님의 그 인성의 영의 피동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인성의 그 영에게 심신은  순전히 피동돼서 세포 하나도 거기에도 반역은 없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그 신성과 일위가 돼 가지고서 함께 동하고 정하고  하여 신인 양성이나 한 격위를 이루어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첫 열매시요 우리의 표본이신 그에게까지 자라가야 하나니 곧  그는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은 중생된 영이 예수님의 피의 대속과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의 힘으로만  움직여 영생을 가진 이 영이 가진 그것으로서 마음과 기능에 전달되고 몸의  기능에 전달되어 이 마음이 순전히 영에게 피동되어 영은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서 예수님이 점령하신 것처럼 점령을 해서 예수님의 그 인성의 마음이  인성의 영에게 절대 복종한 것처럼 이렇게 복종하게 하는 이 일이 이루시기  위해서 했는데, 우리의 영들은 벌써 우리의 마음을 많이 죽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죽인 것이 천분의 구백 구십 구를 죽였는지 만분의 구천 구백 구십 구를  죽이고 하나만 살려 있는지 이것이 영원한 무궁한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시기가 지나가기 전에 자기의 영원한  소유요 하나님의 사명이요 자기의 소유의 보배 중에는 보배로운 그 영을  점령해서 영을 다스릴 수 있는, 영을 다스릴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질려고 애를  써서 다스릴라 하고 악령은 빼앗아서 제가 다스릴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우리의  대내전의 전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생된 영이 우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점령했는가? 만일 이 자리에 와  가지고서 근번 목적은 자기의 남은 아 마음과 몸의 심신의 이 모든 기능은  완전히 중생된 영이 점령하여 중생된 영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여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 영에게 피동되는 이 심신이 되어지게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요 금번에 이 계시를 우리에게 주시는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의 병은 심신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것을 통치하지 못 하는  모든 미완성이요 모든 연약성이요 무능성이라, 이것이 영의 병이라.

 또,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의 병이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모형대로 된  마음인데 우리의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병들은 것은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그 속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우리 마음은 하나님같이 이 지식성을. 지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지식성이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있는 지식이 병들었습니다. 병든 것은 순전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만 알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지식을 우리가 가져 하나님의  지식과 원형 모형만 차이 있지 모양은 같고 권위는 다르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은  능동적이요 우리의, 지식은 모형이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되어 있는 이것만 차이가  있는 것이 우리의 지식인데 우리의 지식은 완전히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이 아니고 배암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병들었기 때문에 이 지식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도 감각이 없이 그저 이렇게 나가면은 우리는 고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이 이 사실을 뭣 때문에 하나님이 이 계시해 주신 것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그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돼야 되겠고,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돼서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노력하시는 그  노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모형적인 노력을 해야 우리는 모형적인 이  치료로서 치료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안하면 우리는 믿음을 떠난 자이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병든 자라는 것을 먼저 알아서 치료받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병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영은 자기의 영원한 소유인 몸을  통치하지 못하니까 권위 없는 영입니다. 권위 없는 영이요 거지 영입니다.

하늘나라 가도 아무런 이용할 만한 그 신령한 마음의 기능이 없어 이용할 마음의  기능 다 죽여 버리고 마음의 기능을 마귀에게 다 뺏겨버리고 이 세상에게 다  뺏겨 버리고. 온 천하를 얻고도 한 현실에서 고 기능을 살리는 것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실상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건마는 서도 온 천하도 되지 못하고 돈  몇 푼에, 어떤 회사 하나에게 어떤 무슨 지위 하나에게, 권위 하나에게 이것에게  자기의 현실의 이 마음의 기능을 척척 뺏기면서도 죽은 송장이 넥타이 매고 죽은  송장이 나는 이런 높은 지위를 가졌다. 이런 재벌을 가졌다, 이런 걸 가졌다, 죽은  송장이 송장 내음새 나는 것을 알고 그를 살릴 마음은 없고 구걸 많이 해 놓으면  좋을 줄로 이렇게만 생각하는 이것을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마음의 기능,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모형 지식을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의  지식을 모형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꼭 같은 지식인데 그분으로 인하요, 그  지식으로 인하여서 오는 지식,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는 그 지식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지식을 붙들고 우리의 지식을 살려  우리의 지식을 통하여서 당신의 지식이 역사하는 이 역사가 우리의 지식  역사이니 이것이 우리가 치료되는 것이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당신의 지식으로 전지전능의 역사를 했는데 이제는, 살린 자의  그 사람의 지식을 통해서 당신의 지식이 그 지식을 도구로 삼아서,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드리면은 의의 병기가 된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식사 기도를 하기를 이것이 소화가 잘 되어서, 건강이 되어서 이  건강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의의 병기로 살아 의의 결과를 이루게 해 달라고  때마다 기도하고 시간마다 그렇게 기도하는 그것이 성도들의 다 기도인 것입니다.

 이래서, 지식이 병들었지, 이러니까 아는 게 전부 병들었어. 모두 다 배암들이  말해 놓은 이 세상 지식대로 그 사람이 경영하고 그 사람이 소원하고 이러니까  지식이 병들어 놓으니까 욕심도 병들었어. 외나 욕심 낼 것은 안 내고 성령의  소욕은 안하고 전부 육체의 소욕만 가지지, 욕심도 병들었지, 뜻도 병들었지,  소원도 병들었지, 경영도 병들었지 모든 방법도 병들었지, 비판도 평가도 다  병들었지 이러니까 다 병들었으니까 가치를 평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치  평가하니까 평가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와 꼭 같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평가니 이 평가는 다 죽은 평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마귀의  지식이 평가하는 평가와 같은 평가를 가진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은 껍데기로  줄줄 하나의 이용이나 해 먹고 하나님의 지식이 자지의 지식의 근본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움직임이나 소망함이나 경영함이나 모든 것이 다  세상과 같이 되어지는 것은 그것이 열매이니까 그 열매로 볼 수 없는 뿌럭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지식이니 지식이 잘못되면 그이의 전 생애는  다 잘못될 수밖에 없고 그의 생애가 잘못되면 그이의 모든 구원이라 하는 것은  구원의 결과가 사람인데 그 사람의 사람이나 해 놓은 모든 이력이나 모든 것은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는 병신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이 병을 고치기를 언제까지 고칠 것이냐? 어데 까지  고쳤든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고칠 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데까지 고쳤든지 계속해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어데까지  나아갔든지 이대로 행하라고 성령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병든 줄 알아야 고치지, '나는 신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잘 가르치니 됐다' 아니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지식을 모형하는 그것이 모형된  그것이 우리의 지식인데 이 지식을 우리가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윤곽적으로,  대략적으로, 개략적으로. 외부적으로 신구약 성경 계시를 우리에게 해 주셨고, 그  안에 내부에 세밀한 것은 영감의 그 지식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되어서 이  계시를 통하여 영감 계시 지식을 통하여 영감 지식에 건너가는 영접하는  돌다리처럼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우리가 이 지식이 병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지식의 병을 아무래도 여기에서 고쳐 가지고 가야 되겠다.

 이 지식의 병을 누가 고치겠습니까? 주님 오셔서 고쳤어.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어. 예수님에게서 난 그 믿음이 고쳐 줬어. 이러니까 예수의 이름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이 대속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예수라는, 그 두 자의 글자만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이력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대인이라는 것은 이름 성명 석자가  대인이란 말 아니요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성명 삼 자가 없어졌다는 말  아니요, 아, 그 사람이 요새는 유명하더라 하는 것은 성명 삼자가 유명하다는 것  아니요, 그 사람의 이력에 그 사람의 모든 행위가 위대한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그 사람의 활동이 죽은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의  지식병을 고쳐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세 가지 대속이 있고 대속을  우리에게 전달시키는 심부름군 둘이 있으니 곧 성령과 진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전달시켜 주는 심부름군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이 세  가지의 능력이라야 우리가 치료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이 세상 모든 지상 현실주의에 파묻혀 가지고 마귀에게 파묻혀서 완전히  볼 수도 없고 소경이 되었고 아무런 보이지 못하는. 무저갱 밖에는 보지 못하는  이런 우리의 심령이 들어도 모르고 들어도 잊어버리고 들어도 모르는 우리들이  이 도를 들어서 자기의 도를 삼는 데는 얼마나 눈감고 명상해야 되고 얼마나  생각해서 먹으면서도 일하면서도 연습을 해서 사고팔면서도 기억하기 어려운  데서 기억을 해보고 빼앗기기 어려운데서 빼앗기지 안 해보고 혼탁되기 쉬운  데에서 혼탁되지 안해 보고 요렇게 요렇게 자꾸 우리가 애쓰고 애써서 할라  하니까 실은 마음도 거기에 있어야 되고 목숨도 거기에 달려야 되고. 힘도 뜻도  성품도 모든 것도 다 거기에 다 매달려서 끄트머리 손은 움직이고 말은 누구하고  말하고 길은 걸어가나 속에 그 마음은 순전히 거기에 있고 몸의 기능도 이거  하면서도 몸의 기능의 동경이나 모든 욕망은 다 여기에 있는 이렇게 힘쓰지  안하면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우리가 영접해서 그 혜택을 입을 수가 없고  예수님에게서 나온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지식이 병들었다는 것은 마음병입니다. 지식병이  마음병이오. 지식이 병든 것. 지식이 병든 것. 무얼 병들었는가? 배암의 지식으로  병이 들었소. 어떻게 네가 배암의, 지식이 있으므로 네가 교만해 지느냐? 어떻게  네가 배암의 지식 가지고 네가 자랑을 하느냐? 어떻게 배암의 지식 가지고 네가  사람을 죽일라고 달라드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인간의  심신을 제 것을 삼아 가지고 배암이 역사한 그 모든 것은 다 무익한 것이니라.

살리는 것을 영이라. 살리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니 성령이 일차적으로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살리는 역사를 역사 하시고 다음으로는 문서 계시를 복종하는  자에게는 이제 직접 영감이 그에게 연결하여서 살릴 수 있는 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지식병이 들어 가지고서 지식병이 들어서, 세상의 광문 다학의 지식을  가진 것이 병이 아니라 고 지식의 위치를 고 지식의 본질과 본성을 골랐기  때문에 속는다 그 말이오. 고거는 죽은 지식이라 죽이는 지식이라, 배암의  지식이라. 그것은 배암들이 만들어 놓은 배암들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이  세계이기 때문에 배암들이 만들어 놓은 활동의 세계를 내가 모르면 그 세계에  있는 사람을 건져 낼 수가 없고 그것을 모르면 내가 거기에 빠지기 때문에  알아야 빠지지 안하니 내가 그것은 복종하기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도구와 같이 이용하기 위해서 내가 잡아 부리기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내가 모시고 그것이 그 지식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그 지식에 내가  복종할라고 그 지식의 능력을 내가 힘 입을라고 가지는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구별을 해 내야 되지 구별하지 안하면 죽습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지식이 없는 것은 안따깝게 여기고 지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뭐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이야 아무리 안다고 해도 그것쯤이야 다  아는 것, 한글로 기록해 놓은 것 뭐, 옛날에는 언문이라고 했어 언문으로 기록해  놓은 것 그거야 다 아는 것 모르는 뭐 헬라어나 히브리어나 뭐 또 불어나 뭐  독일어나 뭘로 가지고 그 말에 떡 원서를 놓고 독어로서는 이렇고 뭐 영어로서는  이렇고 그말 척 한번 내보여야 그것이 그 속에 지식을 자랑하는 마귀에게 속해서  자기 완전히 자살하는 행위인 것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죽인 행위는 모르고  그것이 자랑인 줄 알고 거기에 뭐 멋쟁이인 줄 알고 이거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지 모릅니다. 여기에서도 그런 사상가들 많이 있어요. 모두 다  회개를 해야 돼요. 지식이 병들었어. 설교하는 자가 인간의 천만 마디를 해서  천사같이 말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피동된 지식이 아니라면 영감이  함께하는 지식이 아니라면 소리나는 괭과리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식이 병든 이것을 우리가 고쳐서 우리는 어떤 지식을 고쳐서  우리는 어떤 지식을 가질 것인가? 우리가 가질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그 지식을 우리가 받아 가져서 하나님의 지식에 그 모형적 지식, 하나님의 그  지식을 받아 가지고서 그 지식으로 모든 것을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그  지식이 내 지식이 되어서 그 지식이 소원하는 소원이 내 소원이 되어야 되겠고,  그 지식이 욕심하는 그 욕심이 내 욕심이 돼야 되겠고, 그 지식의 비판하는  비판이 내 지식의 비판이 돼야 되겠고 그 지식의 평가가 내 지식의 평가가 돼야  되겠고, 그 지식의 방편이 내 지식의 방편이 되어야 하니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일생 동안 노력을 해야 되는 데 병든 줄도 모르고 병을 오히려 자기에게  보배라고 병인 줄 모르고 영광인 줄 알고 그 병이 보배인 줄 알고 그 병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하고 자랑할 만한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저희의 자랑은 다 수치거리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병든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병이  들었어. 우리의 지식이 치료 받을라면 하나님의 문서 지식 문서 계시 지식, 영감  계시 지식, 당신에게서 나에게 알려주는 고 지식만이 내 지식이 되어서 당신이  알려 주시면 고대로 내가 알고, 또 당신이 요 현실에서 알려 주시면 고대로 알고,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지식을 받는 방편으로 삼아 이 지식대로 살면 하나님의  영감 지식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알려 주는 고대로 우리가 알아서 언제든지  신구약 성경도 문서 계시오, 또 성신의 감화 감동도 영감 계시오, 하나님의  계시하는 고것이 내 지식이 돼야 되고 고것이 내 지혜가 돼야 돼, 내 지혜가. 내  지혜도. 지혜라 하는 것은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인데 내 미래에 대해서,  (와가지고서 자기만,)  이 말씀을 듣는 귀가 없으면 여러분들의 영이 지금 파묻혀 있습니다. 분명히  중생은 했다 할지라도 그 영이 지금 깊이 파묻혀 있어서 전체는 세상뿐이지  세상뿐이고 육뿐이지 그 영이 지금 눈을 뜨지 못하고 그 영이 호흡을 못합니다.

그 영이 세상 속에 파묻혀서, 다시 말하면 육체의 욕심 속에 파묻혀서 자기의  심신의 주관 속에 파묻혀서 부인하라는 그 부인하라는 것을 부인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놈이 세력을 잡고서 이와 같이 파묻어 싸 고 매장 시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도리가 들리지 안하면은 치료받기는 힘듭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지식과 지혜 지식은. 과거 현재를 아는 것이 지식이요 지혜는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인데. 이 지식과 지혜는 다 하나님에게서 계시해 주시는  그분의 계시 지식에 내가 피동돼서 그의 계시 지식을 받아 내 지식 되는 그것이  산 지식입니다. 그것이 산지식이오.

 신구약 성경은 이 하나님의 계시해 놓은 지식인데 이 지식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감 지식을 받는 준비의 공작이요 방편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그 사람이 암만  달통했다 할지라도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이  현실에서는 요렇게 행해라 요렇게 말하라, 요렇게 비판하라 요렇게 대적해라,  요렇게 끊어라, 요렇게 잡아라, 요렇게 참아라 요렇게 네 모든 희로 애락을  요대로 해라. 네 지정의를 요렇게 움직여라 네 언행 심사를 요렇게 해라 하는 요  현실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요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말하는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신구약 성경은 사람에게 배우나 너희들이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 못 가르친다.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고  참 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너는 있어라, 그대로 처세하라, 그대로 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성령이 나에게 알려 주는 요 기름 부음이, 기름은  성령을 말하는 것이니 성령께서 내 현실에서 나에게 알려 주는 요 알려 주는 요  음성을 듣는 귀, 요걸 아는, 요 알려 주심을 자기가 받아들이는 요 맑은 양심  요것이 없어서 현실에서 주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요 사실을 들을 그 효력을  신구약 성경 지식에서 받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무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읽고 듣고 증거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는  울리는 괭과리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생명을 뽑아 버린 생명을  뽑아 버린. 생명을 뽑아버린 지식으로만 가져 있기 때문에 고 지식은 자기에게  분명히 교만의 결과를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지식이  다른 사람이나 잘 비판하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잘보고 저의  장점이나 봐서 교만하고 높아지기만 했지 자기에게 실지로 자기의 병을 고치는  역사는 아무것도 있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는 계시의 지식과 지혜가 되어야 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모형의 그 지식,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 지식, 그분의 지식이  우리에게 와야 됩니다. 그분의 지식이 우리에게 와야되고 그 분의 지혜가  우리에게 와야 됩니다. 그분의 지식과 지혜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를  살려서 그 지식과 그 지혜가 우리를 붙들고 내가 말하는데 그 지식과 지혜가  말하고. 내가 행동하고 비판하는데 그 지식과 지혜가 나한테 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비판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말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그 역사가 내 입에 말로 나온  것이니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셔 역사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신 요대로의 된 것이 주님이시요 요대로의 예수님의 모형으로 예수님을  닮은 모형을 가진 것이 사도 바울의 그이의 그 지식과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런고로 요것으로 고치는 것이 우리가 사람 중에 마음병을 고치는 것이라  마음병을 고치는 것. 우리가 영의 병도 다 고쳐서 다 중생된 영은 꼭 같습니다.

중생된 영은 꼭 같지마는 그 영이 자기의 심신을 어느 정도 다스리고 있느냐  시신에게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 그 심신을 어느 정도 주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은 '주여 믿습니다. 주님의 전능의 보호를 믿습니다. 능력의 보호를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보호를 믿습니다.' 하지마는 칼이 오니 그 마음이 믿지  안하고 그 마음은 제 마음대로 도망을 쳐버리고 공산주의가 와서 총부리를  놓고서 털컥하니까 그 마음은 믿는 마음은 고만 믿음 버려 버리고 도망을  쳐버리고, 공산주의의 독침이 오니 믿는 믿음은 버려 버리고 그 마음이 도망을  쳐버리고 갈 때에 '믿으라. 믿으라.' 그 마음을 믿는 마음 되게 할라고 믿으라고  애를 쓰고 '전능자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느냐, 전능자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느냐? 믿으라. 믿으라. 믿사옵나이다. 믿습니다.' 해도 마음이 믿지 안하니  마음이 평강을 가지지 안 하고 마음이 평강을 가지지 안하니 마음에게 피동되는  그 몸뚱이는 새파라이 질려서 평강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요것이  마음병을 고치지 못해 놓은 요 결과이니까 요 마음병을 평소에 고쳐서 나는 내  마음을 어느 정도 다스리고 있으며 이 내 마음은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나를  딿고 있으며 안심하고 있는지, 이 마음은 영 나로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고 어느  정도 맡기고 있고 어느 정도 딿고 있고 어느 정도 복종하고 있는지 어데까지  복종을 하는지, 백 원 손해 볼 때까지는 복종하는지. 천 원 손해 볼 때까지  복종하는지 억만 원 손해 갈 때까지라도 복종을 하는지 물질 전부가 다 없어도  복종을 하는지 내 몸에 대해서 몸이 감옥에 가도 복종하는지. 내 몸이 고문과  고행 가운데서도 이 마음이 복종을 할 것인지 시험을 해서.

 '컨트사'라는 성자는 자기의 가죽을 벗겨도 그 마음에 믿는 마음이 변하지  안했고 기쁜 마음이 변하지 안했고. 그를 쇠를 달궈 가지고서 온 몸을 지져도 그  마음은 영이 기뻐하라 하는 그 명령에 복종해서 그 마음은 기뻐하고, 그 마음이  기뻐하니까 그 마음에게 다스림 받는 그 몸뚱이도 기뻐서 입이 삐쭉삐쭉  웃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니까 오만 고문과 고행을 다할 때에 그는 말하기를  '네가 들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에서 나를 끊을 수가 있느냐? 네가 고문과 고행으로 내 기쁨을 없앨 수가  있으며 내 기쁨을 내 감사를 없앨 수가 있으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날  사랑하는 이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느냐?' 하니까 얼마든지 고문과 고행으로  이렇게 할라고 애를 쓰다가 마지막에는 안 되니까 목을 끊어서 끝을 마쳤다고  하는 것을 제가 어떤 책자에서 봤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마음의 병을 고쳐서 마음을 길들여서 마음이 영에게 복종하도록  해야 되겠는데, 첫째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데는 지식병을 고치는 이것으로서  순서적으로 고쳐 나가야 되지 순서적으로 고쳐 나가지 안하고 마음의 이 세상  마귀의 지식으로 가득 병이 들어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순교 못 합니다. 대학자  쳐 놓고 순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예. 칼빈 같은 위대한  사람도 그분이 순교의 그 고문과 고행의 입장에서 그가 순교는 했을란지 못  했을란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식이 병들은 이것을 생각해서  온전히 나는 가진 내 지식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지식만이 내 지식으로 가지고  땅위에 있는 모든 인간의 지식은 내 지식으로 가지는 게 아니고 이것은 내가  이용할 내 한 소유물과 같이 창고에 재여 놓은 보관물이고 내가 이런 것이지  이거는 생명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것을 내 지식으로 삼지는 않겠다 하는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지식의 병부터 고쳐야 이 일이 되지 지식의 병을 고치지  안하며 모든 것의 근원이 다 깨지고 안 되기 때문에 헛일인 것입니다.

 지식의 병을 고치고 지혜의 병을 고쳐서 나는 날마다 연습하고 길들인 것이  이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은 나에게 하나의 이 상식이요 이 하나님의 산지식을  직접 연결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모든 공작이요 준비에 필요한 모든 방편들이요  지혜들이니까 이제 여기에서 현실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알라고  하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지식을 주시는가 무슨 지혜를 주시는가?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총독과 감사와 공회에 잡힐 때에 너희들이 잡혀 끌려가는  것은 전도하기 어려운 그 자리에 전도하라고 보내는 것인 것을 네가 알아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이오. 그러면 거기에 가서 뭐라고 말하랍니까? 말은 네가 할  것이 아니라 말 할 이가 따로 있으니 말하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에게 말하게 하는 고대로 말하라 했습니다. 그대로 말하라. 평소에  그분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는 것을 평소에 연습해서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은  더우기 과도기에 어떻게 그분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그분이 지식하라는 대로  지식하고 그분이 동하라는 대로 동하고 정하라는 대로 어떻게 정할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능숙한 것도 과도기를 만나면 떨리고 실수하기 쉬운데  평소에 안 되는 것이 그때에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그 말씀하신 그 말씀이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해당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병이 든 것을 우리가 알고 이 병을 어짜든지 고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첫째로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낫고자 하는가 하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느냐? 지식과 지혜의 병이 마음병이요 우리에게 중심병이 마음의 병입니다.

내가 무엇을 중심해 사는지, 내가 명예를 중심해 사는지, 내 영광을 중심해서  사는지. 유명하기를 중심해서 사는지. 돈을 중심해서 사는지 내 가정이 등 따시고  배부르기를 중심해서 사는지 내가 훌륭한 교회 큰 교회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  것을 중심해서 사는지, 세상에 누구보다도 호의호식하고 사는 것을 중심해서  사는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내 육체에 충만히 와 가지고서 모든 사람보다도  앞선 일등이 되기 위해서 사는지 무슨 중심인지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려는 고것이 중심이었습니다. 떠나든지 거하든지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 고것이 중심이었습니다. 시작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이시요  중간도 주님이시요 마침도 주님이시요 영감을 원하는 것도 요 중심 때문이 요  신구약 성경 지식을 원하는 것도 요 중심 때문이요 어서 세상에서 떠나서 주님  앞에 가고 싶은 것도 요 중심 때문이요 세상에 더 있기를 원하는 것도 주님 중심  때문에 요 중심을 다문 얼마라도 성취할까 해서 요 중심 때문에 전부 요 중심  외에는 기독자의 중심이 아닌 마귀란 놈이 사이비한 중심을 줬으니 요것은  옛사람의 중심이지 새사람의 중심은 아닌데 우리는 중심이 뭐인지, 우리는 선이  뭐인지, 우리는 중심을 무슨 중심으로 우리는 가졌는지 중심 병을 우리가  고쳐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병들었습니다. 사랑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한 분만 가지신 사랑, 곧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신 그 동기와 목적의 그 사랑.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이의 도성  인신하여 신인양성일위되신 그분의 동기와 목적과 그분의 방편 계속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가 계속해서 당신의 사랑을 털끝만치라도 받은 사람은 털끝만한  사랑이 털끝만한 사랑이 재물이 되어 지고, 주먹덩이 만치 받았으면 주먹덩이  만치 받은 사랑이, 그 주먹덩이 만치 받은 사랑이 희생하여 받은 대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버지의 소원. 주님의 소원 곧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목적, 죄 없이 하려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려는, 하나님과만 하나 되어 있는  요것을 이루는 요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어 있는지, 이 사랑이 되지 못하고  만일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간 아닌  배암의 사랑을 받아 들여 가지고 그때부터 배암을 사랑했고, 배암의 사랑을  받았고 배암의 사랑으로 아담을 사랑했고, 사랑의 감염 받아서 이제는 배암의  사랑으로 해와를 사랑하고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가득 퍼져서 세상에  가득 찼으니 사람들은 이 사랑의 매력을 느껴서 다 사랑을 동경하고 거기에  끌려서 있는데 그 사랑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사랑에 병들지  안했는지. 배암의 사랑으로 내가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고 독생자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시고 또 부활까지 하신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이 사랑을 우리가 산 사랑인 줄 알고, 이 산 사랑을  내가 가지지 못한 사랑의 병든 것인 줄 알고, 이 산 사랑을 내가 가질려고 하고  있는지, 배암으로 말미암아 모든 정욕의 사랑 모든 성욕의 사랑. 동류의 사랑.

이런 모든 배암의 사랑이 사랑에 지금 부딪쳐서 이 사랑에 못 끊고 이 사랑에  끌리고, 이 사랑의 매력에게 감염되어서 이 사랑에 갈급해서 울고 불고 웃고 된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늙는 줄도 모르고 죽는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이 사랑에 병든 것이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이 병들었고 지혜가 병들었고 지혜는 미래를 아는 것인데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말씀한 대로 미래 너희들이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임하기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주님의 재림이 닥치는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 만날 때에 내가 어찌되나, 주님 만난 그  날에 내가 어찌 될 건가? 요 소망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해서 고 날에 어찌 될  고것을 소망한 고 소망을 네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서 이루어야 할 터인데 네  현실은 그날과는 천 리 만 리 거리 멀어서 너는 이 현실만 보고서 사는 네  미래관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지혜를 가지고서 미래를 보고서 미래를  욕망하고 미래를 평가하고 미래를 비판하는 그 날의 비판, 그 날의 평가 그 날의  욕망 그것을 오늘의 현실에 네가 이루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네가 되야 될  터인데 이렇지 아니하고 배암에게 꼬임 받아서 없어질 것 암만 좋아 봤자 없어질  것, 암만 높아져 봤자 없어 질 것 아무리 귀해 봤자 없어질 것, 내가 이렇게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 네까짓 게 암만 높은 자리에 앉았어도 그거는 없어져. 그거는 네  구원을 망치는 배암이 준 지위요 권세라. 네가 어떤 높은 지위를 가졌을지라도 그  지위로 인해서 네 신앙생활이 더 강해지고 가치 있어 지고 빛나지고 네  신앙생활에 더 되지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네가 주일 지키는 것도 다 같이 주일  지키면 아이구 저 사람이 주일 지키는 것은 저런 존귀한 자리에서도 저렇게  복잡한 자리에서도 저런 어려운 자리에서도 주일 지킨다, 네 주일 지키는 것이  과거에 그 지위에, 그 재벌에. 그 권위에, 그 위치에 있기 전보다도 주일을 지켜도  네 주일 지킨 가치가 더 크고 광채가 더 많이 나고 그 주일 지킨 데에 효력의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되는 것이면은 네 지위요 네 존귀요 네  부강이지마는 만일 그것이 하늘의 것을 마련하는 데에 손해가 되어지고 썩지  아니할 것을 썩을 것으로 바꿔서 썩을 것으로 분주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썩을 것으로 자랑하고 썩지 안할 것을 하나도 마련치 못한다면 너는 죽은 자라  너는 죽은 자라 너는 병든 자라 너는 불쌍하고 가련한 자라, 너는 마귀의  홀맹이에 홀긴 자라 너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이 병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고치지 못합니다.

이를 인해서 울고 부르짖고 탄식하고 한숨 쉬고 아무런 이게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이 없으면 땅위에는 살아무런 욕망도 없고 아무 취미도었고 취미  붙일 게 없어. 좋아도 조금만 들여다 보면은 속에 썩었소. 번들번들해도  들여다보면 썩었어. 좋다고 영광이라고 해도 좀 보니까 빠짝 말랐어 먼 눈을  가지고 광대한 눈을 가져서 이렇게 보니까 전부 세상은 보고서 예레미야와 같이  울 것뿐이고 탄식할 것 뿐이지 하나도 부러워 할 것이 하나도 없어. 우리의  지혜가 병들었기 때문에 웃고 웃고 사니 그것은 배암이 주는 웃음과 기쁨에 감염  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지 지혜가 병들지 안했으면 절대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을 보고서 어떤 사람은 부러워 못 견디고 막 이렇게  올리는데 한 사람은 보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죽었다고서 비참하게 가련하게  여겨서 그를 위해서 애통하는 그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어떻게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을 보고 하나는 부러워 못 견디고 하나는 울면서 하나님에게 간구를 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의 지식의 병든 것을 먼저 고치고, 지혜의 병든 것을 다음으로  고치고, 우리의 중심이 병든 것을 다음으로 고쳐서 이 병든 줄 알고 병든 걸  고칠라고 해야 고쳐집니다. 병든 것을 고칠라고 애쓰지 안한 사람 병든 줄을  모르는 사람 병이 자기 망칠 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병든 것을 고치는  방법이 소용없습니다. 귀찮다고 다 물리쳐 버릴 것이오. 아, 병든 줄 알고 병이  지금 들었다는 것, 병은 자기에게 어떻게 해독을 끼친다는 것 그것 모르는 사람이  뭐한다고 병 고치는 말을 듣기 좋아 할 것입니까? 건강한 사람이 뛰노는 말만  좋지 병든 것을 고친다는 만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고 병든 것을 고치는 모든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보기 싫다고 발길로 차서 내 던지고 이 귀찮스럽게 뭐  지저분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병든 줄을 아는 그게  중요하고, 병이 자기에게는 어떻게 해독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암병 든 사람 뭐 하지마는 암병 들어 봤자 찍해야 그까짓  병이 이미 죽을 자 죽게 만들지 뭐 별 큰 일 할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세상  떠날 자 떠나게 만드는 것뿐이지. 또 그 까짓게 아무리 그 사람에게 해친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그것에게 미혹받지 안하고 그로 인해서 더 주님에게 감사하고  그로 인해서 더 부르짖고 간구하면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동기나  운동 말만 돼졌지 무슨 그게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이 사람이 병든. 사람 병든 것은 세 가지 병든 거라. 영이  병들었고, 마음이 병들었고, 몸이 병든 것이 이것이 사람 병든 거라. 이래서 영이  병든 걸 깨닫고 이 병을 치료하기를 원하고 여기에서 치료받는 것만치 마음이  병든 것을 깨닫고 기막힌 이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병을 고치기를 원하여 고침을  받은 자 받은 것 만침 고기덩어리의 병은 다 낫아. 낫은 것 만침 다 낫아.

앉은뱅이도 다 낫아, 누운뱅이도 낫아. 문둥이도 낫아, 암병도 다 낫아. 일호 이호  삼호의 병에 걸리면 일호 병 낫고 이호 병 나으면 나은 것같이 삼호는 당신의  손해기 때문에 그대로 둬 두지 안해. 그것은 당장 고쳐 줘.

 요번에는 우리가 사람병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이  자리를 지나면 잘못하면 병든 것을 병들었다는 소문도 듣지 못할란지 모릅니다.

병에 대한 진찰을 받지 못할란지 모릅니다. 병을 고쳐 주는 그 분은 언제든지  자기 곁에 있지마는 곁에 있는 그분을 보는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계시 말씀이 수많이 온 세상에 두고도 둘 곳을 없는 감당치  못할 이런 많은 가운데서 우리에게 뽑아서 주신 이 계시 말씀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고?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는고? 그 목적은  사람병 고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니 요 계시 말씀이 인간병을 고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는 요 사실을 먼저 믿어야 됩니다. 요 귀중한 계시라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이래도 빈정거리고 저래도 삐쭉거리 내고 이래도 저래도 성경  말씀을 이리도 저리도 아무리 제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는 것으로 요렇게 여기는 고것이 빠져나가기 전에는 그 사람은 절대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요게하는 말씀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달리  해석하면 안 됩니다. 틀립니다. 너무도 거짓말 반 거짓말쟁이들이 많은 마귀는 반  거짓말쟁이인데 반 거짓말쟁이는 어떤 자가 반 거짓말쟁이입니까? 성경을  삐뚤어지게 해석한 게 반 거짓말쟁이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달라 들어서 반 거짓말로 한번 미혹시켜 볼라고 달라 들었습니다. 오늘에는 그  마귀가 세계를 정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다한 말은 아닐 만치 점령해 가지고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앞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먼저 믿어야 됩니다. 이 계시 말씀에 가치성과  필요성과 중요성, 또 이 계시 말씀은 요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를 목적하신  하나님의 목적인 것을 알고 요 말씀에 우리를 고쳐 온전한 자를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요 사실을 믿어. 요 믿음으로서 우리는 치료함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누가 뭐라든지 이 자리를 떠나지 말고 어짜든지 이 자리에서  확고한 믿음을 잡고 이 자리에서 마음병을 고치고, 이 자리에서 영이 내 마음을  어데까지 주관을 할 것인지, 내 마음을 어데까지 주관할 것인지 고문과 고행에서  내 피를 내 가죽을 삣고 깎아도 뼈를 부러트려도 내 몸이 고문과 고행에  복종하지 안하고 마음에게 복종되고 마음은 영에게 복종될 것인지 영에게 복종을  할 것인지, 어데까지 내 마음과 내 영을 내가 점령하고 있는지, 다스리고 있는지  참 우리는 기막히는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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