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병 고치는 순서

 

1989. 6. 9. 금새벽.

 

본문: 요한복음 5장 6절∼10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  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가 생명이요 평안이요 성공입니다. 이는 뭐 누구에게나  생명이요 평안이요 성공입니다. 언제나 그러합니다. 밤에도 그러하고, 낮에도  그러하고, 바다 가운데 빠졌을 때도 그러하고 또 전쟁 속에서도 그러하고,  평소에도 그러하고 언제든지 변치 않는 생명이요 평강이요 성공입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하나님의 말씀은 취하지 아니하고 마귀 그놈이 주는 하나도  섞인 것 없는 멸망 뭉텅이 되는 그것만 자꾸 영접해서 자기 마음 속에 들이고  하기 때문에 이 기독자들이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행복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이거 가지면 저거 못 가지고 저거 가지면 이거 못 가지고 가지는 것이 도리어  화가 되어지고 이래 하니 참 이거 하나님께서는 답답하십니다. 천 년이 하루같이  세월은 자꾸 퍼뜩퍼뜩, 지내가는데 일은 진행이 안 되니 하나님이 심경에서  기차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 아침 계속했는데 뭐 거기 대해서 무슨 새로운 뭐 이치를 배우는  거 아니고 다 이미 우리가 들어서 압니다. 아는데 안 믿는 게 문제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첫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자기의 병을 아는 사람 되는  것이 이것이 일호입니다. 자기 병을 아는 것. '나는 완전하다' 자기 병은 모르고  항상 남에게 병이 있다고 남의 병만 생각하는 그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그래 봤자 결국은 패망이지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병을 아는 사람, 아, 사도 바울 같은 이가 무슨 인간적으로 흠점이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했고 또 만삭되지 못하고 낳은  어린 아이와 같이 그렇게 자기가 무능한 걸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병을 아는  데에 바울이 특수했고 또 자기의 무능을 아는 것이 특수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이 자본이지 잘난 척 하면 헛일이고 자기에게 흠이 없고 자기  장점만 가지고 날뛰면 그게 귀신 들린 소리고 그게 미친 소리입니다. '나는  이렇고 이렇고 장점, 나는 이렇고 이렇고 옳다.' 그 옳은 거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갚으실 터이니까 말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자기의 병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둘째로 죽요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낫고자만 하면  됩니다. 자기 병 알고, 거기에서 고침을 받을라고, 우리가 스스로 이래 고치는  것 같지마는 스스로 못 고칩니다. 털끝만한 것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총공회 교리입니다.

 '자기가 무슨 힘을 쓰고 애를 씀으로 된다, 또 자기도 힘쓰고 하나님도 돕고  둘이 합력해야 된다, 하나님이 돕는 걸 거부하지만 안 하면 된다.' 이런 말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지를 않습니다. 조그만한 고침이라도 주님이 고쳐  주셔야 되지 우리는 고칠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치기를 원하는 그것도  실은 주님이 그 마음을 주셔서 그 사람에게 그게 있지 그 마음 없는 자 그자도  주님이 주시지 안하니까 그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단점을 보고 고치는 사람이 '나는 이렇게 내 단점을 찾는데  아무것이 그 사람은 단점을 못 찾는다' 하면 그 사람이 스스로 섰다 하는  사람입니다. 네가 스스로 네 단점을 발견하는 그런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제가 저 된 것이 제가 제 힘으로 저 된 줄 아는 그것이 틀린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주님이 그 사람 되게 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각할라면 '나는 나의 단점을 찾아서 고칠 마음을 가지는데 저 아무것이  상대방은 자기의 단점을 알지도 못하고 날뛰고 고치려고 생각지 아니하니  답답하다' 했으면 거기에서부터 하나님과는 끊어져 버렸습니다. 끊어졌습니다.

벌써 그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게 와 가지고 현저히 일을 해서 결과가 나타났는데 일하신 분은 부인하고 제가  혼자 하는 것으로 하기 때문에 불한당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의 병든 것을 발견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상관 없습니다. 내게 해치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까 너는 그런 거는  생각지 말라 했는데 우리가 그거 생각할 필요 뭐 있습니까? 내게 어떻게 누가  잘못했든지 그거는 상관 없소. 그거는 주님이 다 처리하실 것이오.

 또 내가 잘한 것은 어떻습니까? 내가 잘한 것도 당신이 뭐 먼지만한 것도  빠지지 안하고 다 거기에 대해서 공변된 보상을 해 주십니다. 그것도 생각할  필요 없소. 지금은 우리가 뭐할 때인가? 자기의 잘못된 것을 찾는 것과 그거  고치는 것이 우리 할 일이고 성공이지 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그거요.

자기 잘못을 발견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두번째는 암만 잘못된  것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고치고자 하는 마음 없으면 안 돼.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 고치고자 하는 것. 잘못된 것 '이거 내가 암만 이거 어짜든지  고쳐야 되겠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고쳐 주실라고 와서 옆에  기다리고 계시니까 그러면 나는 잘못된 것 알고 그거 고치기를 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벌써 준비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환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뭐 '네가  이러나 저러나?' 모든 것 묻지 안하고 당장 하는 말이 그 말이오. '낫고자  하느냐?' 이랬어.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두 가지가 중요하고, 셋째는 그  환자가 이런 것 저런 것 말했지마는 그런 것은 다 쓸데 없는 말이라고 여기에  대해서 거부를 했습니다. 그 말에 대해서 한 마디도 주님이 대답하시지를  안했습니다. 여기 성경에는 대답하지 아니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마는 아마 그  당시에는 주고 받고 주님이 많이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한 것은 사람 그거 모르는 것 설득시키는 그것이 피곤하고 그보다도  더 피곤한 것은 설득시켜서 그것을 움은 데로 돌아오게 모든 오해를 바로  깨닫도록 또 스스로 자기 해치는 그것을 그런 해에서 벗어나도록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북되게 하는, 이렇게 돌아서게 하는 데에는 사람이 진액이 빠집니다.

그래서 이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저거가 교역자 이동하는 것 '아, 그거  권위 있다. 이리 가거라 저리 가거라.' 척척 교역자 이동하니까 권세 있는  줄로만 그렇게 알고 영광 있는 줄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 사실로 인해서 사람이  녹아지는 것은 그것은 저희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제가 지금은 나이가 젊을 때보다 내가 지금은 퍽 수월합니다. 한 것은  왜? 교역자들 이동에 대해서 아예 내가 혼자 책임지고 했기 때문에 교역자 하나  이동하면 녹습니다. 맞지 안하니 그 교회에 이해시켜야 되고 교역자 이해시켜야  되고 하는데 이제는 그만 공회 이름으로 이래 해 버리기 때문에 '나는 그거  모른다'그래도 자꾸 나한테 와서 묻고 하니까 관계가 안 되기는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 요량하면 수월합니다.

 이번에 반사 서이 교역자로 내보내는데 이 우리 교회서는 그런 문제가 없지마는  시집 보낼라 하면은 이거 잔뜩 힘이 쥐여서 살림 살았던 거 전부 톨톨 터는 것  모양으로 이거 교역자로 내보는 게 시집 보내는 거 한가지라. 이러니까 말 안  해도 그 동안에 내가 고통을 많이 했습니다. 여기에 저게 말해 가지고 이렇게 갈  때 거기에 또 이런 거 저런 거 다 저절로 되는 것 같아도, 이제 거반 다 끝나서  어제 한 분은 갔고 또 오늘 한 분 또 이제 가고, 오늘 가지? 오늘 가고, 이  복음을 들고 가면 평안할 것이고 이 복음을 들고 가지 못하고 인간 생각으로  가면 불만 불평 귀신 됩니다. 하나는 또 곧 갈 겁니다. 그러고 O조사는 언제  가지? 안 왔네. 왜 이사갈 것 생각하니까 너무 피곤해서 그러나?  그래 이 자기 병을 아는 사람과 낫고자 하는 거, 병은 뭐 고기덩어리 병도  병이지마는 그보다 큰 병 많습니다. 사람병이라 하는 것은 인격 병인데 그것은  생각병, 비판병, 오판도 병이요, 오평도 병이요, 또 허욕도 병이요, 그 모든  허영도 병이요, 오해도 병이요, 감정도 병이요, 이 모든 자기중심을 해 가지고  하는 것은 전체가 병입니다.

 자기중심으로 하는 생각이나 말이나 비판이나, 이 병든 걸 다 가서 살펴 진찰을  해 보면 전부 자기중심 그것을 뽑아 버리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어나는 병들이지 하나님 중심이라면 그것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이지 아무 근심 걱정될 일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병든 걸 알고 낫고자 하는 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요거는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다, 요거는 주님에게 거리낀다. 요거는 나에게 영감 받는 데 거리낀다 내가  충만한 데 거리낀다.' 이래서 설교할 때에 그때 설교할라 하니까 사람들이 좀  준비할라 하니 달라집니다.

 그전에 여기에 권찰님들 하도 일꾼이 없지 보내놓은 교역자들은 엉뚱한 소리  하고 있지 이래서 여기에 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반밖에 없기 때문에 여  권찰님늘을 순회를 시켰습니다. 죽 한번 순회를 시키면 순회 갔다가 오면은 그  교회들이 살아나고 좀 또 완전히 시정이 되어지고 이래서 순회 가라고 그래  '아무것이 순회라' 하면은 힘이 쥐이는가 그 준비하는 한 달 동안은 산에 가서  많이 있고 집에서도 조심하고 이래서 그만 한 달 동안 준비하는 가운데에서 당장  변화는 성녀가 돼 버려. 이라니까 다른 사람 다 좋아하고 저도 좋고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가고 이라는데 또 갔다 오면 또 그만 딴 사람 돼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이래서, 왜 장로가 이거 낭파되느냐 하면은 장로들이 정치는 하고 설교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다 그만 정치는 권세 부리기 때문에 실수하기 쉽고 설교는  실수하면은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안하니까 안 되니 하나님 만날라고 애를 쓰고  하니까 고쳐집니다. 이래서 '장로를 설교 안 시키고 장로만 시키는 것은 장로를  망치는 길이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장로들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가르치는 일은 뭐,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 놓고 보다도 자기가  책임지고 가르치는 그 학생이든지 중간반이든지 장년반이든지 꼭 자기 된 대로  됩니다. 뭐 여러분들이 몰라도 우리 교회는 반사들이 수백 명이지마는 그 반사  이꼴(equa1) 그 학생이오. 꼭 같습니다. 반사와 학생은 반사 모양이 세모잡이면  학생도 세모잡이, 반사가 삐뚤어지면 학생도 삐뚤어지고 그 반사가 원만하면  학생도 원만하고 그래서 그 기른 학생들 봐서 그 반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반사보다 학생이 앞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가르치는 거라. 그런 걸 그 가르친 거기에서 내가 가르칠 때  말만 중얼중얼 대 봐야 소용 없고 내가 말하는 데에 성신의 감동이 있어야 그  구원이 되는 것이지 말로 가지고는 되는 것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낫고자 하는 것, 이랬는데 이 환자가 있다가 '나는 누구보다 중환 자이기  때문에 이 못물이 동할 때에 내가 갈 사이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중환자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먼저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아무 도와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갈라 하면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가 가지고 다  나아 버리고 나는 헛일입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거기 대해서는 여기 기록은  대답을 안 한 것만 기록돼 있지마는 그때는 그 말씀했을거라 '야, 네가 그런  거는 생각지 말아라.' 거기 대해 그런 것 생각지 말란 말을 많이 했을 것이라.

그게 아무 상관이 없어 예수님을 만나 가지고 낫는 데에 옆에 사람이 방해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소? 방해한다고 예수님이 거기 제재를 받겠소? 또 사람이  돕고 해도 뭐 사람 도운 게 뭐 있소? 아무 도운 거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방해한다고 방해가 무슨 방해를 받겠소? 안 도운다고 상관 있겠소,  방해한다고 무슨 그게 상관이 있겠소? 자기가 병이 여기에서, 이번에 앉은뱅이  나았다 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반신불수인데, 반신불수인데 앉은뱅이  나았다고 비쭉거리고, 반신불수 나은 것을 앉은뱅이 나았다고 저거 과장돼  한다고 비쭉거리는데 어쨌든지 하나님이 와서 반신불수를 낫게 했으니까  하나님이 하셨으니 그분이 와서 반신불수는 낫게 하셨는데 앉은뱅이는 낫게 못  하겠소? 또 죽은 자는 살리지는 못하겠소? 전능자가 오셔서 착수했다는 그게  문제요. 앉은뱅이 일으킨 것이나, 죽은 자 살려낸 것이나, 자기에게 와 가지고  무좀병이 하나 나은 것이나 꼭 같애 신고함에 써넣었는 데 보니까 그 사람은  손가락이 서이 붙어 가지고 암만 뗄라 해야 떼지 못하고 요래 가지고 항상 있는  사람인데 이번에 이래 보니까 손가락이 뚝 떨어지고 아프지도 안하고 그만 이래  가지고 바로 됐다고 그거나 죽은 자 살리는 것이나 전능자가 와서 자기에게 와서  착수했다, 전능자가 와서 역사했다 그거 아닙니까? 세번째로 생각할 것은  방해하는 사람 암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행복되게 사는데 내 행복을  마련하는 데에, 내 구원을 마련하는 데에, 내가 목회하는 데에, 또 내가 무슨  가정을 행복되게 건설해 나가는 데에, 또 내 위신이나 명예나 뭐이나 지위나  권세나 이런 걸 건설해 나가는 데에 방해하는 사람 암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요걸 요거 믿어야 된다 말이오. 방해하는 사람이 암만 있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이 도우는 사람이 없으니까 안 됐다.

 우리가 요번에 대구에 가서 공부할 때에 의뢰하는 것을 멸한다는 것을 그것을  여러 시간 공부했습니다. '아무것이는 그런데 나는 외톨 밤같이 나는 고독한  사람이다' 고독한 사람이 더 좋습니다. 고독한 사람보다도 남이 죽일라 하는  도마 위에 올려놓은 그 사람이 더 좋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일라 하는데 이제  하나님 의지하는 그 사람이 더 좋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것은 복음이지  아무 다른 것이 뭐 자기가 어떤 중환자라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이 돕는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이 없고, 어리석게 사람은 '저  사람 하나 있으니까 울이 된다, 뭣이 울이 된다, 내 친구가 하나 있으니까 울이  된다, 동지가 하나 있으니까 울이 된다, 자녀가 하나 있으니까 울이 된다, 뭣이  울이 된다, 나는 뭐라고 생각해도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돈이 있으니까  울이 된다.'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멸하십니다.

 벌써 다른, 주님 외에 딴거 의뢰 의지가 있으면 그만치 주님과는 대립이 되고  멀어지고 주님에게 대한 대우는 섬소해지는 것이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은  그것은 허약해지고 빈약해지고 감퇴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은 감퇴하고  그림자 같은 헛된 거 그거 가지면 뭐할 것입니까?  그라고 넷째로 생각할 것은 고친 것은 딴건 아무것도 없어. 자기 앞에 대면해  서서 자기를 보고 서서 대면해 서서 주님이 직접 '일어서라' 하는데 그만  일어서니까 됐어. 요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대면한 주님이 중요해.

 그래서,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는 것은, 말이야 바리새인들이  서기관들이 얼마나 잘했어?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는 설교 못한 사람이 없어.

구약적 설교는 다 했습니다. 다 하지마는 뭐 그러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이거, 너거와 같은 말하는 거- 예수님이 말할 때-너거와 같은 말하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라 꽉 찼다. 내가 네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라. 네 말이  과연 하나님 말씀이요 우리에게 대한 선지자라는 것을 표적을 보이라.

세례요한이도 표적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랐고 모든 구약의 선지도 표적 보고  따랐기 때문에 표적을 보이라.' 이라니까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줄 표적은 십자가  못박혀 죽을 그것밖에는 없다' 그거 마지막으로 결론적으로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말해도 그 말만 가지고는 소용 없고 말은 하면서, 말은 하면서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주님을 대면하지 안하고 주님이 말해 놓은 어떤 창고  안에 하나 쳐넣어 놨던 책 들여다 보는 거와같이 이렇게 말씀을 자기가 이거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 이래도 그 말씀을 전능하신 말씀이라, 불변의 말씀이라,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이루어진다는 그 말씀으로 믿지  안하니까 아무 소용 없다 말이오. 소용이 없어. 그 말씀만 생각하지 현재에  주님이 자기 앞에 대면해 가지고 서 가지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다는 요 사실을  인정치 안하기 때문에 안 된 것입니다. 뭐 그 환자 벌써 삼십팔 년이나 됐으니까  아마 묻기도 많이 물었을 것이라. '이라면 낫는다 저래 하면 낫는다' 낫아  주겠다는 장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거라.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애요.

'이라면 안 된다 이라면 당장 낫는다.' 하는 말이 많고 낫운다는 말이 많고  낫는다는 말이 많았지마는 나았어야지? 그거는 뭐이냐? 그 말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됐어.

이랬는데 이 사람도 예수님을 그렇게 상대하지 안하고 그저 말만 들었으면 소용  없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했기 때문에 권능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은 '말에 있지 않다' 하는 이 말씀 모양으로. 그러니까 우리가 꼭  해결은 뭐이냐 하면은 주님이 직접, 이 성경을 볼 때나 성경을 읽을 때나 들을  때나 언제나 성경 말씀을 생각할 때에 주님이 직접 나에게 대면해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요거 믿는 것이 요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를 안해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내가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는데 도무지 주님을 믿지 안하고 하나의 이 사람 말과 같이 '묘한  말이라 이거는 하나님 말씀이라' 이렇게 언필칭 그렇게 말하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인정치 안하고 또 내가 나를 볼 때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게 문제라 말이오. 이게 문제라. 이게  문제라서 그래 내가 나는 설교할 때도 '오늘은 오늘 아침에는 요한복음 5장  6절을 주님이 가지고 와서 말씀하십니다.' 설교할 때마다 제가 거창서 여기 올  때까지는 꼭 그랬고 여기 와서도 내가 그 말로 계속해서 하기를 한 십오 년 한  것 같애. OOO권사님 내가 얼마나 한 것 같애? 한 십오 년 내가 그래 했어요,  내가.

 왜? 주님이 직접 직접 내게 지금 오셔 가지고 말씀해 주신 이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나도 더 믿어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니  내가 주님에게 거리껴서, 주님은 치우라 하고 내가 나서서 주님은 밀어내고 내가  말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하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다만 주님의 당신의 지체로  삼아 가지고, 당신의 지체로 삼아 당신의 입을 삼아 가지고 말씀하도록 요렇게  하기를 원해서, 내가 그걸 하도 말해서 거창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그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의 종을 기계로 삼아서 어짜든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스피카를 삼아 가지고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래서 나는 그랄 때에 그 기도할  때는 내가 '아멘' 소리를 안 했어 왜? 내가 스피카 되면은 쓰고 난 다음에  집어던져 버리니까 '주님의 지체가 된다 했는데 왜 스피카 된다 하노?' 지체가  돼 가지고 '주님의 지체이오니,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지체이오니  주님의 지체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래 기도하면 내가 '아멘'  하고 기계로 써서 이라면은 아멘 안 해요. 그거 내가 고치는 기도를 해요. '주여  나는 기계되기 싫습니다. 주님의 지체로 삼아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했어. 그래도 그게 좀 가까이 되어지니까, 가까이 돼지니까 말하는 데 권위가  있고 하는 데에 기적이 따라.

 이번에도 백 수십 명이 지금 신고 나온 게 나왔는데 한 집회에 백수십 명이  병낫는 그런 기적이 있으니까 이것이 뭐 이걸 아무나따나 말하는 것인 줄로 이래  알고 있지 거기에 대해서 놀래지 아니하는 것이, 과거에 성경에 보십시오. 그거  거기에서도 하나 있으면 그거 가지고 모두 다 사람들이 많이 떠들고 이렇게  했는데 그런 일이 있어 봤자 여기에서는 뭐 별 그 관심을 가지지 안하니까 우리  마음이 강퍅해 그런지 하나님이 원 그래 하신다 하는 것으로 그만 믿는 것이  보편이 돼서 그뭐 표적이니 기적이니 하는 그런 것을 보편으로 삼아서 그런지  아마 보편으로 삼아 그런 일이 많을 것이오.

 그래 나는 그거 반신불수 일어났다고 자꾸 나와 보라고 사람이 몇 번이나 왔어.

그래서 '그래' 그래 나는 그거 나가 볼 마음이 없어. 으례히 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 해도 내게는 놀래지지를 안해요. 으례히 그거  하나님은 뭐 그래 하실라면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셨는가보다'  하지. 우리가 앞으로 지금 우주가 불이 타서 바다가 불덩이가 되고 뭐 이래  된다고 해 가지고 우리가 놀래지지를 안할 거라 말이오. 으례히 미리 다 그럴 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 되니까 '이제 때가 와서 그렇게 되는가보다' 이렇게  인식하지 '아이구, 참 불탄다.' 참 불탄다 하는 그런 말이 우리에게는 없을  것이고 놀라나지를 안할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볼 때나 들을 때에 주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우리가 가지자 그 말이오. 믿음을  가지고 이제 그때에 주님을 배척하지 안하고 주님을 상대해서 살자고.

 이래서 사람에게 대해서 언행심사를 할 때에 '사람만 직접 만나는 것으로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주님 모시고 주님 앞에서 그 사람을 상대하는 것으로서  상대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서 그 사람을 상대하는 것으로 이제  고치자.' 하는 그것을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한 말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주님이 직접, 신구약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주님이 직접, 전지 전능의 완전자이신 대주재이신 하나님 지극히 크신 분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요 사실을 믿는 요것을 우리가 가져야 자기가  겸손해지기도 하고 변화도 돼지고 또 능력도 나타나고 이렇지 주님은 다 부인해  버리고 말만 그라니까 귀신 믿음이라. 알기는 알지마는 주님을 부인하니까 그거  귀신 믿음 아닙니까? 주님을 알기는 알지만 당장에 그때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인정치 안하니까 헛일이라 그거요.

 오늘 아침에는 성경을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 주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해요.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또 실천해서, 일 년 동안 몇 공과 안 되는데  요걸 외우고 실천만 하면 자기가 그만치 변화가 됩니다. 굉장히 변화가 될  것이오. 이 반사들이 자꾸 힘이 없는 것은 이 외우고 실천하는 그 경험 체험의  생명의 능력이 없어 그렇지 뭐 다른 사람이 충동 준다 사람에게 피동되고,  돈에게 피동되고, 무슨 자기 일이 형통해지니까 형통에 피동되고, 그런 것들에  피동되는 건 다 피조물에 피동되기 때문에 생명의 능력은 아닙니다. 그거 다  가짜지. 속이는 것이지. 이제 이 주님의 말씀을 자기가 실행하는 가운데에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인해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열심이나 힘 그것이 불변의 힘이요 완전의 힘이요 전능의  힘이요 그게 사람을 살리고 학생을 살릴 수 있는 것이지 그 힘 아니고 다른  것에게 피동되는 그런 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방을 가든지 뮐  가든지 갈 때에는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꼭 마음에 품어 놓고 길러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어야 돼요. 믿어요. 믿어야 되지 믿는 데서 내가 변화가 되고, 고 믿는 것은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는 것 아닙니까? 믿어야 변화가 되지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하나님이 암만 내게 암만 상대해도 뭐 내가 그것은 하나의 미진같이  생각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신인양성일위가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십니다. 믿으면 능력 가고 안 믿으면 능력 안 가지 우리와 같이 안 하지  안해요. 안 믿어도 우리와 같이 계셔요. 능력만 못 나가는 것뿐이지. 마귀의  미혹을 받지 말아요, 마귀의 미혹. 마귀의 미혹은 자기중심 인간은 마귀의  미혹을 떠나지 못합니다. 항상 계속돼요. 그라면 하는 전부가 마귀 놀음이나.

하지 생명 운동은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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