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라 핍박할 때의 전투 방법

 

1988. 9. 24. 토새

 

본문: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는 비유인데 소금은 짠맛 그것이 소금의 맛입니다. 소금은 짠맛이 소금의  맛인데 소금은 짠 것, 그 짜운 간 그거 하나로 가지고 가치를 삼습니다. 만일  소금이 짠 그 간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뭐 모래로도 못 쓰고 거름에도 못 쓰고  아무짝도 못 쓰니까 밖에 버려서 사람에게 그저 밟힐 것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것뿐이라.

 기독자가 맛은 뭐이 맛인가? 세상이 가지지 않은 이 짠맛은 곧 세상이 가지지  못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요 또 세 가지 대속의 능력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은 자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사죄라 말은, 뭐 어제도 말 들으니까 요새 지금 또 인제 제천 지방에서 제천에  있는 교회를 이단이라고 또 자연히 총공회는 따라가니까 총공회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총공회를 이단이라고 이러니까 제천에 있는 사람들은, 또 이제 그전에  포항서 그런 말이 있을 때에는 또 포항에 있는 사람들이, 또 대구 지방에서 그런  일 있을 때에는 대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총공회를 이단이라고 이렇게  핍박을 하고 욕을 하고 이러니까 총공회에다 와서 약을 올립니다. '이 총공회를  이렇게 이단이라 한다' 이래 가지고 약을 올리면 또 총공회서는 '우리를 이단이라  해?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그러면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과거에는 한두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대구서 그럴 때에 그것을 총공회서 나서서 말을 해 가지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했고 또 포항에서 그런 것을 증명해서 그들이 뒤에 다 사과를  하도록 그렇게 했고 또 지금은 제천에 이러는데 제천뿐 아니라 자꾸 이와같이  인제 돌아갈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말하면 총공회서는, 총공회서는 말을 안 할  것입니다. 총공회서는 말하지 않을 터이니까 그 지방에서 그것을 자기네들이  책임을 지고 감당해서 손해를 안 보는 것도 저거 힘으로 안 보지 총공회서 무슨  말 해 주려 하면 나는 말을 못 해 주게 할겁니다. 과거는 그랬지마는.

 안 하면 제천 지방에서는 이단으로 몰리면 제천에 있는 교회들과 그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절단이 납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다 그거 모르니까 이단으로  몰려면 뭣 때문에 예수 믿으면서 이단 교회 가 가지고 믿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단인 줄 알면 주일학교 학생들도 그리 안 올 거고  보내지 않을 것이고 장년반도 뭐하려고 이단인 그 교회에 가 가지고 예수를 믿을  것입니까? 이단에 가서 믿으면 망하는데. 옳고 바른 데 가서 믿지. 이러니까  타격을 누가 받을 것이냐 하면 그 지방 제천에 있는 교회들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와같이 지금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런 것을 그저 원 인본주의는  신본주의를 핍박한다 그거는 원리입니다. 아벨은 신본주의로 신앙생활했고 가인은  인본주의로 신앙생활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핍박하고  신본주의는 인본주의에게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니까 인본주의에게 신본주의가 손해를 봅니다. 손해를 보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세상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손해를 보는데 실상 손해 보는 사람은  누구며 유익 보는 사람은 누군가? 그것은, 아벨이 손해 봤습니까 가인이 손해를  봤습니까? 가인이 손해 봤다? 이래 놓으니까 모두 다 뭐 초절적으로 이러고  도무지 순위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헛일이라. 뭐 가인이 손해 봤어요?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지금 아벨을 때려 죽여 버렸는데 뭐 손해 봐요 손해보기를?  신말로 가인이 손해 본 일 있어요? 봤습니까? 어째요? 손해 본 일 없어요.

 가인이 마음대로 하고 주먹으로 설쳐서 아벨을 욕만 하고 좀 뚜드려만 준 게  아니고 죽여 버렸어요. 이러니까 아벨이 손해지 가인이 손해 본 게 뭐 있어요?  손해 안 봤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서 아벨이 손해 봤소 가인이 손해 봤소?  아벨이 손해 봤지 가인이 손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다, 가인도 죽고  아벨도 죽고 다 지나가고 죽어버렸는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성경은 가인이  손해 봤습니까 아벨이 손해 봤습니까?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이 뿌린 피는 예수님의 피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한다. 아벨의 피보다 더 권위  있는 증거를 하고 많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제일 증거를,  증거는 이 생명을 증거한 것인데, 다시 말하면 세상에게 생명을 준 것인데  예수님의 피가 생명을 제일 많이 줬고 예수님의 피 다음에는 누구의 피가 생명을  많이 줬습니까? 아벨의 피라 했어요.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피 다음가는 이런  권위 있는 승리한 피입니다.

 이러니까, 그 가인이 영원 무궁세계로 말하면 가인이 그 아벨을 손해 보였습니까  아벨은 아벨되도록 이용을 당했습니까? 이용당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해해서 신본주의가 인본주의에게 손해를 봤고, 영원  무궁세계에서는 신본주의가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크게 유익을 봤습니다.

 이것이 아무나따나 핍박만 받으면 되는 게 아니고 아벨이 핍박을 받았는데  핍박받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만 핍박받았지 딴것 때문에 핍박받지  않았고 핍박을 받음으로 인해서 그 아벨이 진리와 더 자기가 하나가 되고 단합이  되어지니까 가인이 아벨은 핍박함으로 말미암아 아벨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벨은 더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섬기는 그 신본주의의 신앙  생활을 그가 쉬었습니까 신본주의 신앙 생활을 더 열심히 했습니까? 더 열심히  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벨이 신본주의 신앙 생활함으로써 누구를 잃어버렸소? 누구를  잃었습니까, 누구를 잃었소? 그거 알지 못해요? 누구를 잃었어요? 형을 잃었지,  형제를 잃었지, 형제를 잃었어요. 형제를 잃은 것이 손해요 유익이오? 사람  잃어버린 것이, 사람을 내가 뺏기고 잃은 것이 손해요 유익이오? 손해지.

손해인데 사람을 안 잃으려고 하면 나도 인본주의로 따라가야 될 터인데  인본주의로 따라가지 않고 신본주의 그 신앙 행위를 그대로 계속함으로 사람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잃음으로써 누구를 또 얻었습니까? 누구를 얻었소? 사람을  잃어버림으로 누구를 얻었소? 하나님을 얻었소.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았소.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사람을 잊어버렸으나 하나님이 아벨의 하나님이 됐습니다.

 이것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고 신본주의 하나님에게 피동된 이  믿음 생활 순종 생활 이것을 양보하지 않고 더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더 견고히  하였음으로써 사람과는 멀어지고 하나님과는 점점 가까와지게 됐습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박해당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벨이 박해당해 죽음으로써 사람은 완전히 경계선이 나타나서 가인과  아벨은 완전히 딴 사람이라 하는 것이 드러났고, 또 가인은 하나님과 완전히  대립이 됐고 아벨은 하나님과 한덩어리가 된 이것이 완전히 결정됐습니다. 만일  그것이 없으면 아벨은 실패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이단이라는 핍박이 있는 그런 것을 대해서 우리가 잘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깨달을 것은 뭣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그러면 거게서  그들이 이단이라고 핍박을 하니까, 그전에 전투 방법이 틀렸어요. 내가 그전에  OO교파에서는 나를 이단이라고 지금은 뭐 OO교파가 힘이 없지마는 그때는 뭐  전국에 OO교파가 제일 힘이 세었었습니다. 뭐 다 OO교파라면 다 잘 믿는  것으로 인정했고 전체가 다 OO교파를 못 따라가도 OO교파를 다 존경하고  추앙하고 이렇게 앙모하고 이랬었습니다. 이랬는데 OO교파가 그때 힘이 제일  강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또 하나님도 제일 OO교파를 인정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OO교파와 대립이 됐습니다. OO교과와 대립된 것이 그것이 인간적  대립이 아니고 그때에 대립된 걸로 말하면 내가 가는 길은 신본주의 아벨의 길을  걸었고 그둘이 걷는 길은 가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나는 전투하는  그 법이 그들을 대항해서 그들이 틀렸다 하는 그런 말을 내가, 그저 틀린 거는  '요거 진리가 요것이 아니다. 요거라 해야 진리다' 하는 진리 아니고 진리인 것을  증거하는 것뿐이지, 그들을 대항한 일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욕한다고  욕하거나 그저 그들이 무슨 육적으로 이와같이 몰아서 시비하는 그런 것을 나는  대항한 일이 없었고 그때 나는 그저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해서  진리만 증거했습니다.

 진리만 증거하고 하니까, 뭐 그들은 뭐라 하든지 나는 전도하고 성경 연구하고  성경 열심히 또 바로 증거하고 옳은 증거하고 자꾸 이러니까 자꾸 핍박이 몰아쳐  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무슨 말이 난 것이 아니라 '그래도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서부교회요, 새벽기도 제일 많이 나오는 교회는 서부교회요, 또  학생이나 군인이나 교인들이나 그 신앙 행위에 성경대로 신앙 행위를 바로 옳게  살아보려고 하는 교인들은 다 서부교인이라. 그런데 뭣 때문에 핍박하노?' 자기들  OO교파 가운데 있는 그 좀 나이 많은 목사님들이 '뭣 때문에 핍박하노?'  '그래도 거게는 가면 어느 시간에 가도 예배 볼 때 가면 은혜가 있고, 은혜를  받고 온다. 또 교인들은 열심을 내서 새벽기도가 제일 많이 나온다. 또 전도를  열심히 한다. 신앙 행위를 바로 하려고 애를 쓴다. 군에 간 사람들도 거게 있는  교인들은 신앙 생활하고 학교 간 학생들도 학교에서 제일 신앙으로 뾰족히 사는  학생들은 서부교회 학생이다.'  이렇게 핍박했는데, 이러니까 나는 자꾸, 소금이니까 자꾸 간만 짜도록, 간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간만 짜도록 자꾸 이러니까 간이 한국 교회서는 제 간이  제일 짰습니다. 제일 짜고 또 자꾸 빛만 나타내요. 자꾸 밝기만 하지, 이게 그저  더 어두움이 와서 대적을 하니까 빛을 더 나타내 가지고 이게 더 빛을 키우니까  어두움이 절단나지고 빛은 이겨지지. 이렇지 그 어두움하고 대항해서 싸우는 그런  일을 하지를 아니했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래도 같이 하셔서, 자기네들이 뭐 광고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짜다라 이래 하지마는 틀림없이 정확한 숫자로는 한국에서  순복음중앙교회 다음에는 양은 제일 많습니다. 양은 서부교회 양이 제일  많습니다. 그들은 얼마얼마 말하지마는 그것은 몇 차례 예배를 보면서 하는 것,  그런 것, 오부도 보고 칠부도 보고 자꾸 이래 보니까 그런데 아마 그것을  계산하려 하면 여게서도 일부 이부 우리는 보는데 삼부 보면 삼부도 거의 일부나  같이 모일 것이오. 그것은 다 그게 뭐 비좁아 그런 게 아니라 자꾸 숫자를  중복적으로 늘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래도 숫자로서는 한국 교회서는  전국에서 둘째 숫자는 됩니다. 이게 정확합니다. 이렇지. 질적으로는 모르겠소.

질적으로는 어떨지. 질적으로도 아마 그래도 질적으로도 제일 낫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여게서는 암만 핍박해도 핍박을 함으로써 아벨에게 손해 간 게  아니라. 암만 이단이라고 해도 그 사람들을 보니까 그 교회 교인들이 성경도  열심히 봐, 기도도 열심히 해. 주일도 잘 지켜, 전도도 부지런히 해, 연보도 또 잘  해, 교회는 부흥이 돼, 모든 신앙 행위도 다 옳게 바로 하려고 애를 써 이렇게  자꾸 빛을 나타내면 그런 것이 도리어 유익이 됩니다. 가인이 핍박한 것이 아벨을  크게 유익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신앙에 조그만치라도 흐린 일이 있었으면  그는 거게서 그만 가인에게 치여서 참 죽은 것이오.

 가인이 죽임으로써 아벨의 신앙은 생생하게 살아서 예수님 다음가는 복음  운동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누가 수제자인가? 아브라함이  수제자가 아니오. 예수님의 수제자는, 수제자는 아벨이 예수님의 수제자요.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에 제일 첫 순교자, 제일 첫번에 빛을 나타낸 이가  아벨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증거한다  그말은 예수님의 피는 인간을 구원 하셨는데 인간을 구원한 예수님의 피  다음으로 구원한 능력을 제일 역사를 많이 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구원의 근원이요 아벨은 이 근원된 예수님의 구원을  인간들에게 전달한 것이 그것이 아벨인데, 순교자가 많지마는 그 순교자가 다  아벨의 새끼요. 아벨은 예수님의 새끼요. 예수님의 새끼 아벨이요, 모든 이 선지  사도들이 많이 있지마는 아벨의 새끼입니다.

 그가 소금이 맛을 잃지 아니하고 이러니까, 쓸모 없는 것 반대가 뭐입니까?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모 없는데 맛을 가지면 쓸모 없는 것 반대가 뭐입니까?  쓸모 있는 것이 도되지. 또 밖에 버리우는 거 그 반대가 뭐입니까? 중앙으로  영접해 들이지. 사람에게 밟히는 것 반대가 뭐입니까? 밟히는 것 반대가  뭐입니까? 뭐? 저 O 조사, 존대받아요? 밟히는 것 반대가 뭐이야? 뭘로 밟는데?  뭘로 밟는데? 손으로 밟아요? 뭘로 밟아요? 발로 밟지, 그래. 발로 밟는 반대가  뭐이야? 머리에 이고 다니지. 머리에 이고 다녀요. 이사야 49장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왜 이단이라고 하느냐? 이단이라고 할 그때는, 이단이라서 잘못돼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나자빠지고 맙니다. 참 옳고 바른 것을 인해서  신본주의로 인해서 인본주의에게 핍박을 당하는 것이면 그때는 자기가  신본주의의 행위를 더 바로 하라고 하나님이 재촉하는 것이오. 이 신본주의  행위를 해서 제천에 있는 교회들이 참으로 여게 있는, 이 복음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복음입니다. 교만하고 뭐라 해도 제일 가는 복음이요. 하나님께서 뭐 백  목사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제일 바로 깨닫도록 하나님이 하셔 가지고 이  기관을 통해 가지고 이렇게 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제일 바른 복음이야. 노선은  제일 바로 하는 노선이라,  이런데 이 핍박받는 데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하는 거와 공중에 악한 그 영들로  더불어 싸우는 것인데, 이게 뭐이냐 하면, 이 싸움은 뭘로 싸워요? 다른 걸로 못  싸워요. 사죄로 싸우고 칭의로 싸우고 화친으로밖에는 못 싸워요. 사죄에 강하고  죄없음에 강하고, 의에 강하고 하나님과 한덩어리된 역사에 강하면 이런 것들은  다 녹아지고 다 깨지는 것이라. 이렇게 되면 그 모든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핍박하는 것이 그거 전체가 이 신앙 생활 바로 하는 자를 위하되 금생만 위하는  게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위함이 되고 그것을 자기가 이 전법을 바로 가지고 더  빛을 나타내서 세상의 빛이니까 더 빛을 강하게 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는 그  방법이요, 빛을 어두움이 핍박하니까 이 빛이 어두움이 돼 가지고 어두움하고  어두움하고 싸우려고 하면 싸워지지 못해요. 내가 어두움하고 싸우려 하면, 점점  어두움만 커지고 강해지지 저는 약해져요. 우리는 빛이기 때문에 빛으로  강해짐으로써 어두움을 대항해서 소멸해야 되지 달리는 안 돼요.

 그러기에, 포도나무 비유에도 포도나무에 그러면 그 해충이 들어서 자꾸  갉아먹고 그러는데 포도나무가 그 해충을 대항할 수 있어요? 대항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항합니까 안 합니까? 대항을 해요. 어떻게 대항을 해요? 밑에서  잎사귀를 자꾸 갉아먹고 자꾸 이래 나오니까, 갉아먹으니까 밑에서는 대항하려고  갉아 먹으니까 자꾸 양분을 올립니다. 양분을 올리요. 줄기를 끊어 먹으니까  밑에서는 '이놈 끊어 먹어 봐라' 하고 자꾸 힘을 써서 양분이 올라와서 나중에는  그 포도나무 가지에서 그 양분이 물 모양으로 줄줄 흐릅니다. 막 온 포도나무가  전력을 기울여서 그리 기울여 가지고 대항합니다.

 그러면 그 해충을 대항하는 게 돼요 해충을 좋게 배불리는 게 돼요? 저  O목사님. 대항하는 게 돼요? 대항하는 게 돼요? OOO목사님. 자꾸 물이  올라오니까 꿀떡꿀떡 넘겨 삼킵니다. 하 맛있다 맛있다 그 해충을 잘 먹여 주는  것이지 제까짓 놈은 해충을 대항할 길이 없습니다.

 밑에서 자꾸 양분을 뽑아먹고 그 잎사귀를 끊어먹으니까 막 밑에서 지금  포도나무는 대항을 하려고 자꾸 들이 양분을 밀어 올립니다. 그러면 그 벌레가  죽어요 도망을 쳐요? 어째요? 저 O조사. 살만 찌지. 자꾸 살만 쪄. 알겠어요?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를 해하는 그 해를 저는 절대로 대항하지 못합니다.

대항하지 못하고, 대항한다고 자꾸 양분만 올라오면 그놈은 더 좋다고 꿀떡꿀떡  삼키고 살만 찌요.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닥친 그 버러지를 잡아 죽이는 방법이 뭐이야? 뭐?  농부한테 구하면? 포도나무 그까짓 놈이 입이 있어야 구하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열매를 맺어야 돼요. 열매만 맺으면 열매를 더 과일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  농부가 그를 위해서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러니까 열매 많이 맺는데에 포도나무에  해충이 들면 농약을 쳐서 싹 죽여 버려요.

 이러니까 제천 지방에 그렇게 이단이라고 핍박하면 거게서 거게 대한 대항하는  방법이 뭐이요? 그 해충이 들어와 가지고 지금 먹는데 그래 가지고 '왜 우리를  이단하고 해?' 그라면 제천 지방에 있는 교회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 가 가지고  한번 가 멱잡이일랑 한번 놓지. 한번 싸워요.

 그래 되면 이단이라고 정죄한 그 지방 교회들이 절단이 나겠습니까 어찌  됩니까? 좋아하겠습니까? 좋아해요. '저것 봐라, 저거. 과연 우리가 정죄는 바로  했다.' 이리 돼요.

 그거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 줄 알고 자꾸  '이 소금이 맛을 잃어 이렇다' OOO목사님 어데 있소? 손 들어 봐요. 그래.

소금이 맛을 잃어 그렇다 그걸 알아야 돼요. 거게 말 들어 보니까 그뭐 똑똑이  O장로 없나? O장로도 서울로 갔대요. 또 O장로도 서울로 갔대요. 자꾸 서울로 간  것은 그거 제가 가고 싶어서 갔지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거 뭣 때문에  거기 찾아가요? 돈벌이 때문에 찾아갔어요? 아니라. 그들이 빛을 찾아간 거라.

복받을 자리를 찾아간 거라. 자꾸 이와같이 해서 딴 데 가는 것보다 제 복이 되면  거게 있지 딴 데로 가지를 않아요.

 이러니까, 그저 자꾸 열매를 맺도록 주력을 해야 됩니다. 열매를 맺도록 주력하면  그 이단이라 한 것이 나중에 유익이 되어지고 이용이 되어지고 만일 열매 맺는  데에 주력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이 소금이 맛을 잃으면 사람에게 밟히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가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고 실상은 진리의 행위가 없어서, 진리의 행위가 없어 나만 행위 없는 게  아니라 교인들이 진리의 행위를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축복이 없이, 표시판이  없어요. 축복이 없어요. 자꾸 부도만 나고 자꾸 망하기면 하고 이러니까 이와같이  되어지는 것이니 이거는 그저 교리와 신조는 이단이 아닐지라도 이 행동에는  이단이다 이러니까 소금이 맛을 잃어서 이렇게 지금 밟힘이 되는 것이니까 자꾸  맛을 되찾아야 되겠다 그런 방편으로 나아가면,  그 온 교인들이 다 보는데 보니까 뭐라고 쌓아도 이 제천 지방에 있는 모든  교회보다 그 교회가 가르치는 것도 제일 바로 가르치고 행동도 바로 하고 또  사람들도 점점 바로 돼지고 이러는데 핍박하면 교인들은 눈 없습니까? 다 알아요.

도리어 그것이 북돋아 주는 일이 되고 저거 손해보는 일이 되어지지마는,  기독자의 싸움의 방편을 알고 자꾸 소금 되는데 소금에 간이 더 자꾸 짜우면  세월이 나요. 그러면 가치가 올라가요. 또 빛은 전부 빛을 더 발하게 되면 더  가치가 올라가요.

 이래서, 바로 믿는 사람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마다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이랬으니까 깨끗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핍박을 받아요. 핍박을 받을  그럴 때에 이제 핍박받는 그것을 대항하는 방법은 그 핍박을 받은 진리와 영감과  피의 행위를 점점 더 강하게 해요.

 우리가 중생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중생된 것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지. 이러니까 우리 힘은 뭐이요? 우리가 살아나기를 피로 살아났고  영감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으니까 우리 힘은 뭐입니까? 우리 힘은 뭐이요?  우리 힘이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우리 힘은 세 가지라, 세 가지.

 피의 힘이라. 사죄, 칭의, 화친의 힘이라. 이러니까 사죄, 칭의가 더 강해져야 돼.

사죄, 칭의가 더 커져야 돼. 더 뚜렷해야 돼. 사죄, 칭의의 역사가 더 강해야 돼.

영감의 역사가 더 강해야 돼. 진리의 역사가 더 강해야 돼. 그라면 힘이 약해지는  것이요 강건해지는 것이오? 어때요? 약해져요 강건해져요? 강건해져요.

강건해져요. 강건하면 주먹으로 뚜드려 맞아요 약하면 뚜드려 맞아요? 약하면  뚜드려 맞아요. 소금이 맛 잃으면 밟혀요. 소금 맛은 이 맛이 이 소금이 제일이라  하면 소금이 세월이 나요.

 이래서 우리 전투 방법도 잘 알고 이렇게 핍박받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소금이  맛을 잃어서 밟히는 것이라 요렇게만 깨닫고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내가 설교를  은혜 있는 설교를 안 해서,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을 바로 하지 안해서, 내가 빛의  생활을 안 해서.' 이렇게 해저 교인들도 설설 딴 데로 기어 나가고, 뭣 때문에,  은혜 있으면 갈 턱이 뭐 있는가? 또 자꾸 신앙 생활을 바로 시켜서 그것들이  바로 돼 가지고 부자가 돼지면 딴 데로 가라 해도 안 가지 갈 리가 있는가?  이러니까 교인이 망해도 그 교역자가 교훈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한 것이 망하고  한 것은 잘 되고 요래만 되면 그 교회는 부흥됩니다. 아무도 반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를 방해하는 자도 하나님 외에는 방해할 자가 없고 교회를  유익되게 할 이도 하나님 외에는 유익되게 할 이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은 공평이 없는 일이 없고 매수 당하는 일도 속는 일도 없고  잘못된 일이 없는 분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보시기에 축복할 수 있으면  그분이 축복하시면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또 이거 공연히 안 될 때에는 단속하기  위해서 매를 뚜드려 맞게 합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단이니 이러니 저러니 핍박하고 환난이 일어나는 것은,  주님이, 일으킨 것인 걸 깨닫고 거게서 자꾸 자기만 단속해서 이렇게 바로만 해  나가게 되면 그런 것이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맛 잃으면 밟혀요. 또 빛을 나타내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  영광돌린다 했는데 그뭐 모든 조롱이나 욕이 올 리가 있습니까? 그것도 암만  그래 해도 마지막에는 있기는 있어요. 있기는 있어도 그러면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점점 하나되고 그들과는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편 되시니 결국은  승리를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난밤에 말씀도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집에  가서 많이 새김질 해 가지고, 이제 여게서 들으면 설교록이나 가지고 한번 외워  가지고 설설 떠듬떠듬 하면서 한번 읽어 주기나 하고 이러니까 아무 힘을 쓰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밉상이니까 뭐 이단도 정죄도 해야지. 단속을 하고 자기가  힘을 쓰면 안 그래요.

 그러니까 제천에 그런 데 대해서는 누구든지 옹호해 주려 하면 내가 못 해  주도록 할 것입니다. 아무도 옹호 못 하게 해 줘요. 그거 말하지 못하게 해요.

제천에 있는 지방 교회가, 그것을 면하는 방법은 딴것 없어요. 가 가지고 그들이  욕하니까 우리도 욕해야 되겠다 그들이 거석하니까 또 우리도 단합해야 되겠다.

제천에 있는 교회가 단합해 봤자 몇 사람 안 되고 그 사람들보다 숫자가 작아요.

안 돼요, 그런 방편은 헛일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행위 이단도 이단이라. 진리는 가지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  그것도 이단이라. 행위 이단도 이단이라. 교리 신조 이단도 이단이지마는 행위  이단도 이단이라 그말이오. 교리와 신조는 가지고 이렇게 충성되게 안 하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그것을 어쩌든지 가거든 소금이 맛을 잃어서 그리 됐다는 걸 깨닫고  맛을 가지도록, 챙겨 가지도록 노력하고, 빛이 지금 자꾸 약해지니까 어두움이  몰려들어오는 걸 알고 빛을 더 발해서, 한 십촉 키워 가지고 켰을 때에 어두움이  몰려오는 것을 백촉만 끼워 버리면 어두움이 싹 물러가 버려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무한하신 하나님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힘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기 때문에 이 능력만 자꾸 강하게 발하면 어두움 그까짓 거야 자꾸  녹아지는 것이니까 그런 방편으로 전투하고 이 세상 전투와같이 우리의 싸움은  혈육으로 싸우는 그런 게 아니라 하는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단속하면 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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