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범죄


선지자선교회 1983년 7월 17일 주전

 

본문 : 민25:6-1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 지역으로  향하여 갑니다. 그럴 때에 이스라엘은 별로 훈련을 받은 일도 없고 또 모든 것이  별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하나의 피난민과 같은 그런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가는 곳마다 형통했고 또 그들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은 다 패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싯딤이라는 그 지역에 머물러 있을 때에 그 미디안 지역에 모압이라는  그런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왕은 발락입니다. 발락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발락이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저 백성들은 가는 곳마다 형통하고 그를 대적할  자들이 없으니 저들이 들어오면 우리 지역을 다 먹어서 소떼가 풀을 먹듯이  각단지 먹어서 다 삼킬 모양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되나?' 하는 그런 심히  근심하고 정하고 있다가 미디안에 있는 장로들을 다 청했습니다.

 청해서 '우리 지역에 저 이스라엘이라는 그 백성이 와서 있는 것을 아느냐?  그들은 수가 많다는 것보다도 도무지 그들을 당해낼 재주가 없어서 이르는  곳곳마다 점령을 당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는 것을 의논을  했습니다.

 의논한 결과에 '아무래도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 가지고 그와 같이  되는 백성들이니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해야 되지 하나님이 그들을 처치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당할 힘이 없다.' 하는 그런 것이 의논의 결론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게서 의논하는 결과에 '우리 지역에 하나님의 선지가 있지 않느냐? 그  선지를 청해서 그 선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저주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그렇게 하는 길밖에는 없다.

그러면 발람 선지를 청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그렇게 하자.' 하는  것이 의논이 됐습니다.

 의논이 되고 그 나라에 신실한 분을 몇 분을 사신으로 발람에게 보냈습니다.

보내 가지고 '지금 우리 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백성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도무지 당해 낼 도리가 없으니까 와 가지고 그들을 저주를 하고 우리를 위해서  축복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고 그들을 다  패망케 할 것이다. 그렇게 해 주면 우리나라에 높은 자리를 자기에게 줄 것이고  또 많은 보화를 줘서 아주 부요하고 영광스럽게 해 주겠다.' 하는 그런 조건부로  발람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발람이 그 온 사람을 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줄 아니까 그런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아니한 일이니까 돌려보내야 될 터인데 보내지  안하고 '오늘 밤에 여게 자거라. 그러면 혹 하나님 앞에 의논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가라고 하면 가겠다. 그러나 당신이 가라고 하지 안하면 내가  가지를 못한다.' 그렇게 하고 하루밤 재웠습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는 것을 금했습니다. '네가 그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는 그런 것은 불가하니까 가지 말아라' 그래서 그 사람들만 보내고  발람은 안 갔습니다.

 가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고서 오지 안하려고 합디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주  않은 귀객들과 고객들과 아주 대신들을 더 많이 보내 가지고 교섭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들이 당신에게 어떤 후대라도 할 터이니까 와 가지고 좀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그렇게 재청을 왔습니다.

 그때에 발람이 한번 들었으면 될 건데 또 그들을 하루밤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니까 하루밤 여기 누워 자라. 하나님이  가라 하면 내가 갈 것이고 가지 말라 하면 내가 안 가겠다.' 하고서 하루밤을  지냈는데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발람 선지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어째 왔느냐?  '이리 이리 해서 왔습디다.' '그러면 네가 가라. 가되 가서 내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대로 해야 되지 내가 네게 말하는 대로 하지 안하면 너에게 큰 화가 있을  터이니까 가라.' 발람이 그때에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또 하나님의 천사가 가는 것을 막았고 또 나귀를 말하게 해  가지고서 발람의 가는 길을 불가타고 막았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자신이 만만한  사람입니다. '뭐 내가 암만 간다 할지라도 거게서, 하나님이 가라 했고 거게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만 하고 내 맘대로만 하지만 안하면 되지 뭐 까짓 거  문제될 게 뭐 있겠는가?' 하고서 갔습니다.

 가니까 모압왕이 맞이하고 미디안의 모든 장로들이 다 맞이 해서 아주 반갑게  맞이를 했습니다. 그때 발람이 말하기를 '나를 위해서 제단을 일곱을 쌓고  제물을 준비해라.' 준비해 놓고 나니까 발람이 발락에게 축복하지 안하고  이스라엘에게 도리어 축복을 하고 발락에게는 도리어 저주를 했습니다.

 ○○씨! 요새 시험에 들었구만, 조는 것 보니까. 그까짓 시험도 못 이기면 뭐  생명도 내놓는데 무슨 문제라서 하고 있어? 그런 것 못 이기면 안 돼, 시험에  들면.

 그러니까 이 모압왕 발락이 분을 내서 '자기를 여게 오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우리를 축복하라고 청했는데 정반대의 행위를 하니 어떻게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대접을 하느냐?' '그러면 또 이제 어데 높으고 좋은 산이 없느냐?  또 다른 산으로 가서 여게서 나를 위하여 제단을 일곱을 쌓고 제물을 마련해라.'  또 마련했습니다.

 또 거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을 저주하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때에 그 왕은 심히 대노했지마는 발람 그  사람은 능숙하고 담대한 사람인데 또 말하기를 '그러면 이제 세번째 어데  하나님께 제사드릴 만한 그런 산이 없느냐?' 또 그들이 좋은 높은 산을 택해  가지고 올라가서 '여게서 제단 일곱을 쌓아라.' 제단 일곱을 쌓으면 이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우리를 축복하리라 생각을 하고서 쌓았는데 마지막도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모압 나라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분노해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은 기록돼 있지 않지마는 우리가  추론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세 번이나 저거를 저주하고 저주하기를  원하는 상대방을 축복했으니까 얼마나 분개했겠습니까?' 분개한 것과 마지막에  보면 '이제는 발람 너는 너거집으로 가거라' 하면서 거게서 죽이지 안하고  살려서 돌려보낸 걸 보면 그간에 숨은 무슨 비밀의 행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발람은 발람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 발락왕은 '이제는 이스라엘은 달리는 패망을  시킬 수가 없으니 하나님과 그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것 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다. 이것이 제일 좋은 방편이라는 모략을 들었으니 우리가 그대로 하자.' 하는  그런 이제는 모략을 쓰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 모략은 여러군데 비추어 봐서  발람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고 다 우리가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이 모압왕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만 먹고 아주 간략한  식사로 이래 지내는데 고기를 잡아 가지고서 아주 구수한 냄새를 피우고 또  제사를 드리고 이러면서 아주 걸판지게 지금 잔치를 이래 하면서 그들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서서히 이렇게 교제하게 됐습니다.

 그들이 와서 음식 대접을 받고 가까이 친하는 그중에 그만 차차 차차 그들의  무서운 그 궤휼에 빠져 가지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그  모압 여인들과 서로 친밀해지게 됐습니다. 친밀해진 그것이 또 세월이 가니까  차차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범죄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그들하고 친밀해지고 나니까 그들이 섬긴 그 제물도 먹고 또  그 신에게 같이 절도 하고 이래 가지고 그만 한테 뒤타는 그런 일이 됐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노하셔 가지고 염병을 그들에게 들게 했습니다.

 그러면 염병들게 된 그 염병은 꼭 그런 죄를 범한 사람들만 든 게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에 지금 염병이 이렇게 유행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루 동안에  이만삼천 명이 죽고, 그때에 이만사천 명이 죽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천 명은  며칠이 걸려 가지고 죽었는지 몰라도 마지막에는 이만삼천 명이 하루에  죽었으니까 하루 이만삼천 명, 그다음에는 한 또 사만 명, 그다음에는 또 십만  명 자꾸 이래 불어 나갈 터이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도 남기지 안하고 전멸을  하나님이 시키시려고 분노를 하시고 염병으로 죽이려고 이렇게 시작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이러니까 이스라엘 온 백성들에게는 곡성이 진동합니다. 뭐 염병으로  안 죽은 집이 없고 안 죽은 동리가 없고 이러니까 온 이스라엘에 곡성이  진동하고 날이 갈수록 이렇게 뭉텅 뭉텅 사람이 염병으로 죽게 되니까  이스라엘이 말할 수 없는 그런 참 슬픔과 고통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럴 때에 지금 그 곡을 하고 있고 한쪽머리는 염병으로 고통을 하고 있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 하나가 미디안 여인 하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진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습니다. 보고 아론의 그 손자 비느하스라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분개해서  창을 들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 뒤를 따르다가 저희들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장막에 들어간 후에 뒤를 따라 들어가 가지고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창으로 한꺼번에 배를 꿰서 창을 꼽아서 죽였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여게 보니까, 민수기 25장 8절에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장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자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사천  명이었더라' 참 상당한 많은 숫자입니다. 이만사천 명이니까.

 10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아론의 손자입니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내가 미워하는 것과 같은 꼭 그런 미움을 가지고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면 비느하스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그 범죄를 미워하신 그 극심히 분노하시고 미워하시는 그 미움과  같은 그런 미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노를 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노를 풀고  염병으로 멸망받는 그 재앙을 그치게 했습니다.

 12절에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누구에게?  비느하스에게. 비느하스가 내가 극심히 미워하는 것을 비느하스가 미워하여 그  남자와 여자를 한꺼번에 창으로 찔러서 위에서 내리찔러 배가 다 뚫혀서 대번  직사하도록 그렇게 한 그 분개, 내가 분개한 그 분개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그렇게 꿰뚫은 비느하스가 그 심정과 행동으로서 내가 노가 풀리고 내게  위로가 됐다.

 그런고로 '그에게 평화의 언약을 내가 주리니 그 후손에게 영영한 제사장의  직분의 언약이라' 영영히 제사장 직분을 비느하스의 그 후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 미워하는 미움을  가지고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게  됐습니다.

 여게서 발람이 발락 왕에게 끌려간 데에는 그때는 왕권이니까 왕이 뭐 사람  죽이는 그런 것은 조금도 서슴지 안하고 또 암만 죽여봤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발람을 청한 것이 그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가 매여 있고  또 미디안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있는데 그 여러 열국이 다  지금 망하느냐 흥하느냐 그런 문제를 가지고 모두 연맹 회의를 해 가지고 발람을  청했는데 발람이 그 자리에서 세 번이나 그들을 저주하고 그들이 원하는 그  이스라엘에 저주는 하지 안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이스라엘을 축복한 그것은 한번  한번 할 때에 발람은 생명을 내놨던 것입니다. 생명 안 내놓고는 그 일을 못  합니다.

 그 지금 그들이 뭐 사람을 얼마든지 살해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을 가졌고 그런  중대한 문제인데 '자, 네가 여게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겠나 안 하겠나? 우리를  축복하겠나 안 하겠나?' 하는 그것이 생명을 걸어놓고 하는 그 아주 발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굉장한 지금 다몰린 어려움입니다. 그래도 발람이 세 번이나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을 저주한 그것은 이거는 사람의 힘이 아니고 초자연의  능력입니다. 뻐뜩 보면 '야, 발람은 참 충성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그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과연 한 사람이라.' 이렇게 발람에  대해서 위대한 것을 사람들이 말하기 쉽지마는 발람은 마지막에 이스라엘 칼에  죽었습니다.

 여게서 뭣을 우리에게 보이는고 하니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멸 하려고 해또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그 발람을 시켜서 저주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니까 저주하면  저주가 됩니다. 이러나 그 저주를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이 없는 한, 죄가 없는 한 어떤 방편과 어떤 묘책으로 어텅게  다급한 일을 만든다 할지라도 그들이 다 죽었으면 죽고 멸망했으뎐 멸망했지  범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저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한 것은 죄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저주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시를 지은 데 보면  '의로운 백성을 어떻게 저주를 하며 의로운 백성을 어떻게 망하게 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을 표시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게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죄라고 하면 예수님이 대속한 그 죄 이에는 다른 죄가 없습니다. 대속한 죄라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가 하나요, 인간이 자율 주관 자주 자기 주관대로 행동한  그 죄, 또 하나님을 배반한 죄 그 세 가지 죄 외에는 우리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전체는 그 세 가지에게 다 매여 있는 죄입니다.

 이러니까 이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는 이걸 해결지워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홍같고 진홍같은 붉은 죄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죄에  머물러 섰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죄에 멈추고 섰으면  망합니다. 그래서 시편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범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죄인 줄 알고 자꾸 뿍뿍 죄를 짓는 그것이 고범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죄악이 범해졌을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섰지 말고 즉시  주님의 피공로에 고해서 사죄를 받을 것이요, 주님의 공로에 구해서 칭의를 입을  것이요, 주님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과 화친한 그 입장에 빨리 옮겨 설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될 때는 내게 대해서 소수나 다수나, 약자나  강자나, 어떤 높고 높은 술책이나 고둥 방편이나 어떤 것으로 와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죄가 없는 데는 멸하지 못합니다. 해 하지 못합니다. 해하려고 하면  그것이 변하여서 축복이 되지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다몰려서 꼼짝도 못하게 된 그런 형편에서도 이스라엘을 해칠라 하는 그  모든 운동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했지 이스라엘을 해한 일은 하나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은 죄 가운데 섰으면 우리를 유익되게 하려고  하는 어떤 운동 어떤 세력이라도 결과적으로는 망치는 일이 되도록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뭐 일시에 형통하고 잘됐으니까 잘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죄 가운데 있으면 해하려고 하는 자도 해가 되고 유익되게  하려는 것도 해가 되고 전부는 하나님이 결과적으로 전멸이 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스라엘이 죄를 다 속죄 제물로 죄가 있을 때에는 즉시 사유함을 받고 죄  없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있을 때에는 그들을 아무리 해할라 해도 해하지 못했고  해하려는 것이 도리어 유익과 축복이 되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해서 맺은 계약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계약이요 법칙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우리는 거기서 제일 먼저 '그 적이  누구냐? 거게 모사가 누구냐? 그 세력이 어떠하냐?' 하는 그것도 심사하는 것이  거게 관련된 일이지마는 그런 것은 다 지엽이요 안 해도 좋습니다.

 할 일이 뭣이냐? 원수가 많든지 적든지, 강하든지 약하든지 할 것 없이, 나를  뭐 이렇게 묘술로 어떻게 하든지 그런 것도 상관없습니다. 이십세기의 이 뭐  원자 시대에 원자의 해니 무엇이니 해도 원자거나 뭐 수소탄이거나 뭐  중성자탄이라던가 그런거나 어떤 과학의 어떤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는 것은,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런 무서운  이 세력에게 해받지 않겠느냐? 멸망받지 않겠느냐?' 자기가 더 조심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화를 방비하는 데 쓰기 위해서 화의 도구와 기구가 강하냐 약하느냐  많으냐 적으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찾을 일이지, 그걸 우리가 아는  것이 앎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앎으로 회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그 안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회개 외에는 그걸 앎으로써 다른  방편으로 무슨 방어하는 대책을 꾸몄으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람은 죄 외에는 멸망시킬 자가  없다. 죄가 없을 때에 하나님이 다 방어하시고 안보의 책임을 지시고 축복하시고  죄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도 할 수 없다.

 그런고로 죄가 있으면 즉시 주의 피공로에 고해서 어서 깨끗해지고 그 죄를  미워해서 그 죄와 원수가 되고 대적이 돼서 돌아서라. 돌아서서 하나님과 한편이  되고 죄와 원수가 되는 그 입장을 빨리 취해라. 그 입장만 취해 가지고 있으면  모든 피조물이 너를 해한다 할지라도 그거는 결과적으로 너에게 축복이 되고  만다.

 이 문제를 해결짓지 안하면 모든 것이 다 너를 유익되게 하고 이거야 철통같이  너에게 유익되고 좋고 참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라고 한 그것도 변하여서 너를  망치는 해가 되도록 그렇게 역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의 전지의 실력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범죄했을 때에 회개시키는 것 외에는  방지가 없습니다. 범죄하면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은 자꾸 쳐서 망칠 수밖에  없어. 자꾸 쳐서 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는 데는 쳐서 망치는 그것  외에는 하나님이 하지를 못하십니다.

 이러니까 염병을 들려 가지고서 하루 동안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고 그때에  합해서 이만사천 명이 죽었으니까 그다음에 하루 더 연장되면 이만삼천 명이  되련지 사만 명이 되련지 모릅니다. 거게 말씀하시기를 이 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전멸하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다른 것을 가지고는 그 염병을 뭐, 염병을 위생으로 하고 뭐  전염성을 방어하는 것으로 막고 뭐 그런 과학자들이 거게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오만 수단 방법을 다 부렸지마는 그것은 점점 염병으로  더 번성케 하는 그것뿐이지 방어는 안 됩니다. 오늘도 이렇게 눈이 좀 긴  것뿐이지 그때는 단박 된 일이지마는 지금은 사람들이 이렇게 땅위에 있는 모든  병의 재앙에 대해서는 재앙을 막느라고 의학이 자꾸 발달돼서 병원이 자꾸 많이  중설됩니다. 그러나 병원이 증설돼도 병원은 점점 모자람니다. 과학은 발달돼도  병은 점점 심해가고 있습니다.

 또 전쟁으로 죽으니까 전쟁을 방어한다고 세계 평화로 뭐 군비축소니  평화조약이니 별별 일들을 꾸미고 야단을 지기지마는 점점 사람을 멸망시키고  위협하는 그 살해의 모든 무기들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나 꼭  같소.

 그때도 이스라엘이 염병 들었을 때에 그것을 뭐 위생한다고 방이 한다고  예방한다고 암만 해 봐야 그거 헛일입니다. 고장은 어데 났느냐? 고장은  하나님과 인간들과 그 사이에 고장이 났습니다. 그러면 고장은 났는데 무슨  고장이냐? 고장은 이스라엘이 범죄한 그 고장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그 배에 풍랑이 일어 가지고서 온 선객들이 다 죽을 지경에 당한  그 원인은 하나님의 백성 요나의 범죄 그 한 건이 원인입니다.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고통이오. 그 해결은 요나를 묶어서 바다에 던져버리니까 그만 물결은  잔잔하고 그 배는 다시스에 순풍으로 잘 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염병으로 진멸하게 될 때에 그때에 사람들은 어만 걸 가지고서  치료법을, 어만 것을 가지고서 예방법을, 방어법을 이렇게 삼았지마는 성경에는  그 염병을 방어한 사람은 비느하스의 그 질투심,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들이 원수들에게 미혹받아 가지고서 음행죄를 범하는 그 죄를 하나님이  미워하심같이, 그 현장에 얼마나 평범했든지, 얼마나 평범했든지 그렇게  한쪽머리는 지금 염병으로 앓아서 죽는다고 울고 닳고 뭐 이렇게 곡성이  진동한데도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인 하나 아주 잘난 척하고 철컥철컥  데리고 이스라엘 진중으로 척 들어오는 것을 볼 때에 다른 사람들은 다 보고서  예사로 보는 자도 있을 것이고, '저 또 저런 짓을 하러 또 온다' 이래 보는 자도  있었겠는데 비느하스는 그때 하나님이 미워하심같은 그런 미움을 가지고서 당장  창을 들고서 그뒤를 따랐습니다. 따라 가지고서 그 장막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들어가고 난 다음에 저희들이 둘이 있는 걸 보고서 당장에 한 창으로 찌르니까  남자의 등어리에서부터 여자의 등까지 찔러서 당장 즉사를 시켜서 이럴 때에  하나님이,  그 말을 몇 번 했어.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의 이 질투를 가지고서 이 죄악을  찔렀다. 저가 나의 질투심을 가지고서 내 노를 풀었다. 그 질투심으로 인해서  내가 노를 풀고 이스라엘에게 염병을 그쳤다. 그가 내 질투심 같은 질투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속량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 내가 평화의 축복을 주겠고  대대토록 제사장의 그 축복을 비느하스의 자손에게 주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게서, 하나님은 지공 지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그 죄는 하나님이 멸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들이 범죄의 멸망받는 것을  하나님으로서도 죄의 댓가를 치르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에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악이 있을 때에는 참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 는 것은 그 죄악이 그것이 도수가 있어쓰 그 도수가 차면  하나님은 멈출 수가 없으시고 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도수가 자꾸 차 을라가는, 그 도수가 차 올라가는 도수가 차기 전에 회개해야 될  터인데 도수가 차 올라가는 그 면을 보고서 안타까운 하나님의 심정이 천 년이  하루같이 그만 뻐뜩뻐뜩 지내서 자꾸 도수가 찬다 그말이오. 천 년이 하루같이  빨리 가는 것은 그 도수에 차는 멸망하는 자를 볼 때에 기가 차는 그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죄악을 멸하지 아니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죄악으로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이 음으로, 양으로, 인간으로 직접으로 감동으로,  꿈으로, 또 하나님의 종들의 음성으로,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그 멸망이  오기 전에 거게서 사유함을 받고 그 재앙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벗어나게  하려고 온갖 방편을 다 하나님이 노력하시고 또 공간적으로도 아차아차 하는  그런 것을 자기로서 본인이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모든 면으로도 역사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그 죄를 회개치 안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멸하고 의를  숭상하고 이러기 때문에 사랑이지 죄를 숭상한다고 하면 그 하나님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은 죄인이 회개하고 의인이 될 그 소망을  가지고서 죄인이 회개할 그것을 소망하고 소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죄를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죄를 사랑하면 독생자가 범죄로 십자가 못박혀 죽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그 미움을 우리가 가지는  이것이 주님의 노를 푸는 데에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자기가 어떤 죄악이라도  그 죄악을 자기가 범한 것을 죄로 하나님의 재앙으로 멸할 것을 생각하고 그  죄를 하나님에게 고해서 사유함 받는 것 좋고 그러면 재앙은 그쳐집니다. 재앙은  그쳐집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진노받을 것을 두려워서, 멸망받을 걸  두려워서, 그로 말미암아 어떤 징계를 주련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서 그 죄를  주님에게 고해서 사유받는 그 사유로서 하나님의 재앙은 멈춥니다. 재앙은  멈춥니다. 멈추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은 안 옵니다.

 멈추고, 그 죄악을 자기가 과거에 어떻게 범했다 할지라도 무슨 죄악이든지 그  죄악을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 미워하시는 그 미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그  질투심을 자기가 가지고 행동 할 때에 하나님은 그것으로써 다 노가 다 풀리고  위로가 되고 그애게 하나님께서는 평화와 모든 대대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받을 때에 그때에 다른  방편은 없고 죄를 해결하는 그 방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또 죄를  해결할 때에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요 질투심, 그 죄를  미워하는 그 질투심.

 내가 아무리 과거에는 무엇을 돈을 사랑했든지, 권세를 사랑했든지 무슨 명예를  사랑했든지, 행락을 사랑했든지, 어떤 무슨 정욕의 사랑을 가졌든지 과거에 그걸  사랑해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그 죄의 값이 멸망인 것을 깨닫고 그 멸망이  오기 전에 빨리 손 써서 사유함 받으면 멸망은 중단합니다. 멸망은 중단합니다.

중단하지마는 하나님의 노는 안 풀립니다. 하나님의 멸망은 지금 중지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노는 풀리지 안해.

 하나님의 노는 어데서 풀리느냐? 하나님이 그 죄악을 미워하신 하나님의  질투심을, 자기가 범한 죄라도 자기가 범한 그 죄에 질투심을 가져야 된다  말이오. 질투심.

 자기가 만일 명예나 그런 것 가지고서 그런 범죄했으면 명예욕 하는 그  명예욕을 미워하는 그게 있어야 되겠고, 물질욕을 미워하는 그게 있어야 되겠고,  정욕이면 정욕을 미워하는 그게 있어야 되겠고 안일욕이면 안일욕을 미워하는  그게 있어야 되겠고, 그 미워하는 질투심에서 하나님의 노는 풀어졌고 하나님의  축복은 왔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하나님은 공펑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악이 있으면  멸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니할 수 없는데 다만 죄악이 있다고 대번에  하나님이 멸하시지 안하시고 그 한도에 관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가나안 백성을 그 죄악으로 멸하려고 하셨지마는 이스라엘은  지금 들어갈 준비가 다 됐는데 아직까지 가나안을 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두는  것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아직까지 차지를 안했기 때문에 좀  기다려라' 그렇게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악의 그릇이 차기까지 하나님의 그 멸망이 멈추어 있는 것이지  차면 시간을 연장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멸망의 관영이  이르기 전에 우리에게 돌이키도록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또 여게서 한 가지만 더 할 것은 이스라엘에 음행이 그렇게 이스라엘 전부가 다  음행했습니까? 음행한 것 아닙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이렇게 했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이를 때에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또 서부교회는 또 서부교회라는 한  단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의 그의, 비느하스의 그 한 사람의  의의 혜택을 온 이스라엘이 다 입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그 범죄의 재앙을 온  이스라엘이 범죄하지 안한 사람까지도 다 전염돼서 전멸되는 그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에 말씀하시기를 '한 쓴뿌리가 많은 사람을 더럽힐까  네가 두려워해라' '한 쓴뿌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멸망할까 두려워하라'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서로, '뭐 그 사람만 멸망하지 범죄했으면 그 사람만  멸망하지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31장, 민수기  31장 이하에 보면 하나님에서 '내 원수를 내가 갚겠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해 가지고서 이렇게 멸망시켰으니 이스라엘 범죄케 한 그 원수를 내가  갚겠다. 그거는 이스라앨의 원수요 나의 원수다. 내 원수를 내가 갚겠다.'  갚겠는데 모압왕이나 잡아서 죽였으면 될 터인데, 모압인들이나 죽이면 될  터인데 미디안에 있는 그 모든 열방의 열국 전체 왕은 다 죽였습니다. 왕은 다  죽이고 성경에 보면 거게 있는 남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몰살시키라 했다  말이요, 다 죽이라 했어. 그들이 뭐 죄를 지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그 범죄케 한 것은 발락이 그렇게  했지마는 그에 관련되고 동참된 그 모든 나라들의 남자가 다 전멸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여게서, 우리는 이 범죄와 의에 대해서 공동체적인 그런 하나님의  상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범죄해서 '어짜든지 뭐 나만 범죄 안 했으면 그만이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이 다 음행죄 지어서 죽은 것 아닙니다. 몇 사람이 범죄했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병을 보내 가지고서 염병으로 하루 동안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으니까 그 전날에는 하루 한 사람씩 죽었는지 두 사람  죽었는지 설설 이래 죽어 나오다가서 마지막에 그때는 하루 동안 이만 삼 천  명이 죽었는데 그게 날짜로 더 진행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전멸이라고 거기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범죄에 대해서 우리는 공동체의 그 보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는 서로서로, 우리가 사는 길은 죄를 벗어나는 길이요 또 우리가  존영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은 의입니다. 한 사람 비느하스의 그 의로 인해서  이스라셀 전부가 속량되고 전부가 복을 받았습니다. 재앙을 다 면하고.

 이러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로 수많은 사람이 구원 얻는 이것이 기독교의 이  근본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전인류가 죽었고 한 사람의 의로 전인류가  구원받게 되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은 죄 없는 데는 멸할 수 없다.

죄가 없는 자는 멸하지 못한다. 죄가 있으면 위하는 것도 다 결과적으로 해가  되고 죄가 없으면 해할라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유익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죄' 하나 가지고 우리는 모든 재앙과 멸망을 당하는 이 하나뿐입니다. 이 법칙  하나뿐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이거 하나뿐입니다. 이 하나만이 우리의 법칙인  것을 알고, 우리의 축복은 '의' 하나 가지고서 하나님의 축복받는 요것도 한  가지 법칙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공동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역사에 교회가 벌써 근 육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역사의 교회가  있지마는 그 교회는 성경에 한 몸이라 했습니다. 공간적으로 어떤 지역에 세계  어떤 지금 현실의 교회도 다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교회는 죄에 대해서  형벌받는 것도 공동체로 받고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도 공동체로  받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이렇게 복수가 단수되는 이 공동체, 이 하나를 언제든지 하나로 삼은  것이 우리입니다. 많은 다수가, 많은 다수가 자기 하나된 것을 가리켜서 우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관계를  가져야 그게 효력이 나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에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로 우리 아버지라 할 때에, 우리 아버지는  물론 거게 예수님이 거게 참여했지마는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 죄를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이랬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말세가 돼 가지고서 이 교파는 저 교파를 욕하고 저 교파는 이  교파를 욕하고 하는 이런 이 모순 속에 있는 이것도 큰 미혹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전체 단합해 가지고 하나돼야 되겠다. 뭐 콩이나 팥이나 진리나  이단이다 다 하나돼야 되겠다.' 그거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과 화평과, 화평과 거룩, 하나님을 중심하고 진리의 방편으로,  하나님을 중심하고 진리의 법칙으로 하나돼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혼자 있어도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법칙대로의 사람이  됐으면 어떻게 많은 사람이라도 결국은 하나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 지금 팔월집회를 갈 건데 가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은혜 받지 못하는 자 없도록 다 같이 은혜를 받도록 위해서 기도하고  거게 가 가지고, 거게 가 가지고 이것 뭐 녹 끼고 모든 더러운 것 그때 겨우 가  가지고서 깨닫다가 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게서 미리부터 기도해 가지고 우리가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죄악을 다 청산해서 깨끗한 사람 옥토와 같은 사람이 돼 가지고 그때  가 가지고는 하나님 능력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때 가 가지고는 참 완전히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때 가 가지고 거게서 겨우 삼사 일 지내고 나면 이 세상만 가득 찼던 인간이  하나님 말씀이 한 마디씩 가끔 가다 조금씩 들어오는 그 형편에 있다가 돌아와  버리면 뭣 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죄는 저만 망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전체가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전체가, 이 죄는 그 사람이 범했지마는 나도 같이, 같이  멸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전체가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피차에 죄되는 것은  어짜든지 기도하고 또 거게서 권면할 수 있는 사람이면 권면하고, 또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면 가르치고 타이를 사람은 타이르고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가 죄를  벗어나는 덩어리가 되면 재앙은 벗어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그 외에 뭐 돈벌이가 없고 그 외에 우리가  피난을 구하는 길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죄악의 그릇이 차기 전에-압니다. '나는 벌써 돈으로 인해서 맷정을 쓴다. 나는  권세로 인해서 맷정을 쓴다. 나는 행락으로 인해서 맷정을 쓴다. 나는 이거  고집으로 인해서 맷정을 쓴다. 나는 못된 성질로 인해서 맷정을 쓴다.' 압니다.

그게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빨리빨리 그런 것을 다  제거하고 자유 있는 사람, 아무 거리낌 없이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빨리 우리가 정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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