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생활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26일 새벽(토)

 

본문 :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고, 우리 교회는 너무 경직과 경로심이 혼돈돼 있습니다. 경직이라 말은 벼슬 직(職)자, 교회에도 벼슬이 있고 직책이라 말입니다. 또 이 사회도 직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직이나 사회직을 다 우리가 그것을 그만치 대우를 해야 그것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목사, 장로, 전도사, 권사, 또 집사, 권찰, 이래 반사 이런 분들의, 그게 다 성직인데 말하자면 대우를 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언제 그때에 피난 왔을 때에 임시 정부가 여기 도청에 와서 있었는데 그때 한 부선 목사님하고 저하고 같이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도청 울타리에다가 빨래를 걸어 놓은 걸 보고, 그때 뭐 피난 때니까 아무 질서 없는 때입니다. 걸어 놓은 걸 보고 깜짝 놀라면서 '우리나라의 제일 어른이 여기 계시는 곳인데 어디 이 울타리에다가 이 옷을 이래 걸어 그랬을까?' 해서 그만 깜짝 아주 뭐 보통 그거 말하는 게 아니라 깜짝 놀랍디다. 그분들은 그렇게 경직심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번 대통령이 되면 그 한계까지는 그이에게 법적 전권을 주고 이렇게 해 나가기 때문에 그 나라가 그래도 뭐라 해도 실수가 적은데 우리나라는 아예 대통령이 되면 야당은 저거 야당 하는 일이 대통령이 잘못 가는 일을 그것을 바로 잡는 게 야당 일인 줄을 모르고 야당은 무조건 여당하는 일을 반대하는 그게 야당의 할 일인 줄 그렇게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 사상 정신이 이걸 완전히 세뇌해 버려야 됩니다. 이거 완전히.

그런데, O대통령이 좀 잘하고 했는데 지금 O대통령 때는 또 조금 물렁합니다.

이러니까 O대통령 같은 사람이 한 삼사 대 이렇게 계속해야 이 나라가 바로 되지 그전에는 바로 되지 않습니다. 아주, 대국 사이에 있어 가지고 못된 그 야심, 야심이라 하는 그것이 뿌리 깊이 박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 인간성을 완전히 고쳐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이거 안 됩니다. 그것이 자기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미워하기를, 야당이 여당의 삐뚤어진 일을 그걸 말할 때는 아주 가치 있고 참 존재 가치를 이제 행한다 해서 존대를 합니다. 그러나 공연히 트집 잡고 여당 나가는 데 찍탈 잡는 그게 야당이라는 그거는 아직까지 국회의원될 자격도 없고 그거는 아무것도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만일 대통령돼 놓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면 알아요. 저거는 무조건 여당 하는 일을 반동하는 이 반동심에서 나온 것인가, 또 뭘 헐고 제가 지금 야욕을 채워 볼라고 어떻게 좀 제 이름을 높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라고 하는 것인가, 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인가 환하게 표가 난다 말이오.

인간들이 다 무식하고, 우리나라가 야만이라. 아주 미개인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저 못된 거, 야심, 질투심, 시기심, 훼방심 이런 것만 자라 가지고 앞서 가지고 있지 참된 건설적인 인격성은 아주 유약하다, 어리고 약해요. 그 모양으로 우리 교회는 그런 점에 대해서 많이 주의를 해야 됩니다.

그 먼저 그때에 거창 집회 때도, 다른 데 장로님이 와 가지고, 저거 아이를 자꾸 때리고 이래 막 그 집회 때에, 남의 아이 아니고 제 자식이지만 이렇게 때리고 야단을 지기니까 장로님이 있다가 보다 보다 안 되니까 '여보시오. 그 어린 게 뭘 압니까? 좀, 좀 달개시이소. 달개서 그렇게 좀 비위를 맞춰 달개 주이소.' 그거 얼마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말이요, 그 말이.

이런데 그만 대번에, 그 어째 알았던고 알아서, 네가 뭐인데 남의 일 간섭하느냐고, 네가 장로면 장로지, 마구 해대더래요. 그만 그분이 그만 기합을 했어. 세상에 이 총공회 산하는 보니까 말씀은 좋아서 참 마음에 있는데 이거 이 교인들 버릇을 보니까 이거는 무법 천지요 안하 무인이요 아주 저 잘난 재미로 사는 것이니까 세상 중에도 가장 세상인 이 진영이니까 아예 소망을 가지지 않는다. 그만 그 사람들이 와 은혜 못 받고 그만 그래 버렸어.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 수상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삼간에 불청이면 추후통곡하라' 세 번 간청을 해 가지고 안 듣거들랑은 뒤에 따라가며 울어라 이랬습니다. 나쁜 걸 보고, 수상 나쁘게 하는 것은 그만 냅두라 그 말 아니고 손 위 사람이 나쁜 일 할 때에는 그것을 고치도록 간청을 해 가지고 간청을 해도 안 고치면 뒤에 따라가서는 울어라. 하기는 하되 자기 동등에서 잘못된 걸 말하는 것과 자기 밑에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된 걸 말하는 것과 위에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돼서 말하는 것이 다르다 그 말이오.

위에는 간절히 청하고 안 되면 뒤에 따라가며 울지 그렇게 위에를 무시하는 그런 것으로 잘못했다고 이렇게 뭐 명령적으로 이렇게 말을 해 가지고 위를 상우면 그게 뭐이냐? 뿌리가 상하기 때문에 위의 줄기 그까짓 것 암만 좋아 봤자 다 썩어 버리고 말지 안 됩니다. 버릇이 없다. 한말로 말해 상놈이라 그 말이오.

서부교회 교인들은 상놈이라. 예수 잘 믿는다 하는 것들은 다 상놈이야.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것들은 다 상놈이고, 예수 못 믿는 그거는 예수는 못 믿지만 인간성은 있다 그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은 가장 인간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성이 최고의 인간성이라. 하나님의 신성같은 인간성이 있어야 되지 인간성만 가지고도 안 돼. 그렇게 높아야 되는 것인데 버르징이 없는 그게 예수 잘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다른 데 교인들은 그 목사에 말할라면 참 그런 사람들 말한 거와같이 목사님에게 이거 간청을 하고 위해서 많이 기도, 말하지 못하고 기도하고 기도해 가지고 안 되면 나중에 그 신고함에다가 간청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그렇게도 말하고, 또 이렇게 뭐 어떻게 말해야 되는 것인데 이거는 아무 목사 나쁜 것도 없는 것이 저거가 틀길 것이 둘만 서이만 모이면 앉아서 목사 험담하고, 목사 뭐 이렇고 저렇고 험담에 험담한 거게 대해서 상당한 값이 가기 때문에 목사는 그래, 백 목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할 것아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저주받을 일을 한 것을 저주받는다 했는데도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지 뭐 하나님의 아브라함입니까? 하나님의 것 아브라함이 되겠습니까? 꺼꾸로라. 그런 게 아니라 말이오.

아브라함이 옳고 바르게만 하면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저주가 그리 갈 것이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또 축복도 그리 갈 거라 말이오. 옳고 바르게 할라그만 생각하지 뭐 그런 데 대해서 적대시하는 그런 그 야비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벌써 그런 것 벌써 초월했습니다. 그런 것 벌써 지나가 뛰어 넘었어. 하나님의 심판을 보기 때문에.

이러니까, 목사도 그렇게 하니 그게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 눈으로 보면 알 거라 말이오. 그 보응이 가는 걸 보는데 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것도 또 몰라. '저 사람이 안 할 말하는데 저거 보자.' 고 뒤가 형통인가 뭐 백 목사가 들어 그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서 형통치 않도록 깨는 걸 본다 말이오. 그거 눈이 어두워 그것도 몰라, 그만. 남을 훼방하고 삣고 깎고 하는 그런 데 도취가 돼 가지고 그런 것도 모른다 그 말이오.

뭐 권찰들 가운데도 그렇고, 목사들 가운데도 그렇고, 또 권사들 가운데도 그렇고, 집사들 가운데도 그렇고, 이렇게, 제일 내가 보기에 깨끗하기는 권사들이.

제일 깨끗해요. 구원은 권사들이, 아직까지는 지금 서부교회는 권사들이 신앙이 목사보다 휠씬 위에 있습니다. 그런 줄 알아야 돼요. 뭐 하나님이 남자 여자가 뭐 상관이 있습니까? 우선은 여기 자꾸 이제 동양은 또 남자가 높으다 해 남존 여비로 이래 가지고 하지만, 또 서양은 여존 남비로 또 이래 하고 있는 꺼꾸로 된 데도 있고, 그러나 서양도 옳게 하는 데는 거기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 똑 성경대로 그와같이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렇지 '뭐 제가 장로면 장로지 뭐 아이 울린다고, 집회 와 가지고 아이 때리고 울린다고 그거는 걸 이라니까 '왜 남을 간섭해? 장로면 장로지.' 그만 대번 네까짓 거라 해. '네까짓 게 장로면 장로지' 그러며 그 아이에게 분이 나 가지고 그 분을 장로에게도 그라니까 장로에게도 그렇게 분을 푸는 여인이니까 그 여인이 아무리 제 자식이지만 무슨 교훈을 바로 할 교훈이 있겠는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주관대로 자기 감정대로 하니까 그 아이 지금 큰 지옥을 만나고 있다 말이오.

자녀에게 노엽게 하지 말라 그 말은, 자녀가 암만 비촌하고 평가해도 나중에 정신 차려 보니까 제가 잘못했지 부모가 저한테 한 것은 잘못한 게 없다 요렇게 평가적으로 살라 그 말이오. 그게 성경이라. 버릇이 없어. 그게 제일 못 마땅하다요. 모두 다.

또 다른 데는 또 그래 치우쳤어. 장로라면 앞에 떡 이래 의자 앉혀 놓고 이래 놓으니까 떡 이래 놓으니까 이거는 아무것도 아닌 게 장로라고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장로의 대우만 받을라고 아라니까 장로는 실은 자기는 모든 교인들의 종노릇하는 것이 장로요. 종노릇하는 것이오. 또 교인들은 장로를 하나님 대리자로 존대하는 것이오.

그러면 장로는 교인들의 종노릇으로 교인들을 막 이래 그러고, 또 교인들은 장로를 장로 목사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고 이렇게 존대하고 다 섬기기는 섬기는데 장로가 교인 섬기는 것과 교인이 장로 섬기는 것이 다르다 그 말이오.

장로가 교인 섬기는 것은 교인들의 발걸레가 되고 교인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섬기는 종노릇을 하듯이 이래 섬기도록 이렇게 하고, 또 교인들은 장로를 하나님처럼 이렇게 섬기는 것이 그게 바로 되는 것이라 말이오.

이거 배우기를 어째 배운지 몰라. 배웠는데 실행이 없기 때문에 귀만 높아 가지고 이거, 아마 가 보면 서부교회 교인들은 전부 당나귀 귀 모양으로 귀만 커다랗고 이거 행위는, 사람 모양은 안 가지고 있을 거라. 그거 그라면 안 돼요.

좀 실행을 해야 되는데 실행을 안 해. 실행을 안 하니까 복도 못 받는 거라.

지난밤의 말씀에 그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인간 말로 안 되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저렇게 할라 하는 것은 사람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있는 그런 방언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하는 가운데에 들을라고 애를 쓰면.

성신의 감화로써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 내용이 깨달아질까 해서 그와같이 말하는 건데 거게 따라오는 사람들이 없어. 얼마나 어려운 설교인지 모릅니다. 기도하고 기도해서 깊이 영감에 들어가야 알지 그리 안 하면, 들여가지 안하면 모를 다 설교라 그 말이오. 어려운 설교라 그 말이오.

그래서, 좀 조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이고 이거 안 됐다, 서부교회 장로 노릇은 못 하겠다, 서부교회 여기 있다가는, 나는 서부교회 여기 있다가는 똥이 되겠고 짓밟히겠고 영 이거는 뭐 사람도 안 되겠고 뭐 이리 이랬으니까 이거 안 되겠다, 이거 좀 이거 아무래도 교회 옮겨야 되겠다.'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젊은 사람들이 너무 버르징이 없는 그걸로 해 가지고.

만일 조사라 할지라도 나이 많은 분은, 나이 많은 분으로 대우해야 됩니다. 그런 말이 있어. '행랑은 막여치라' 보통 이 사람으로서는 나이 많은 것을, 나이를 세어 가지고, 치라 말은 이 치(齒)자 나이 치(齒)자라. 소 이빨 보고 나이를 알지 않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나이가 많으면 나이 많은 대우를 해 줘야 돼.

그런데, 나이는 한 다섯 살만 높으면 반드시 자기 형으로 대우를 하라 그 말이오.

행동이 나빠도, 행동은 나빠도 연령적으로 말하면 그 말 있지 않습니까? 오뉴월 볕은 하루 볕이 무섭다고. 하루 앞에 나도 무섭다 하는 그 말인데 그렇게 오 년이 거석하면 존대를 해 줘야 되지, 나이가 뭐 칠십이나 육십이나 나이가 스물이나 '나이 많으면 제 나이 많지? 나이 많으면 제 나이 많지 하는 그놈의 새끼는 뭐 상놈이고 그런 놈은 아주 못쓸 놈이라 말이오. 어떤 놈이라도 말이오.

왜? 그거는 사람이라 할 게 아니라 그런 놈이라 해야 말이 격이 딱 맞다 그 말이오. '나이 많으면 제 나이 많지, 뭐. 내 나이 많나?' 그놈은 이 사회에서 없어야 될 놈이라 말이오. 그렇게 선후도 모르고 상하도 모르고 그러면 그 나라는 마구잡이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것 한 인간이 있으면 그거 썩는다 말이오. 그 인간이 하나 있으면 그 가정에 있으면 그 가정이 썩을 것이고, 그 사회에 있으면 그 사회가 썩을 것이고 그 직장에 그런 인간이 하나 있으면 그 직장이 썩을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 거는 다 도태시켜야 되는데 죽이지도 못하고 냅두지만 그거 죽여야 될 사람이라 그 말이오.

그만치 이거, 기독교는, 기독교는 윤리적이요, 사회적이요, 도덕적이요 또 이것은 가장 이 세상 나라에도 애국적이요, 애민족적이요 이런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것보다 낮이 하고 그걸 하나님보다 높이기 때문에 그걸 치는 것이지 그게 하나님 다음으로 그거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되지, 정서가 아주 철두철미하고 정연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경로도 해야 되고, 우리나라에서 참 O대통령 때부터 경로하는 것을 많이 힘을 썼고 또, O대통령 영부인 O여사가 이 자선 사업, 구제 사업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아주 미덕을 끼치고 갔습니다. 그것이 아주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모두 환영을 하고 그때도 뭐 회망 있다고 보는 거는 말은 안 해도 '그 나라에 경로를 하고 있다, 또 인자심을 가지고 있다, 어짜든지 이웃돕기로 이렇게 모두 다 서로 협동심을 가지고 있다.' 이게 실상은 아직까지 안 돼 있지만 말만 가도 그 사람들이 그걸 보고 말을 한 마디 해도 우리는 헛보도 '우리나라 잘 되게 하자' 그렇게 말하지 안하고 말하기를 '어짜든지 세계 모든 나라에 필요 있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는 힘을 쓰자.' 그거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말이오. 이런 말들을 이래 가지고, 말쟁이라. 우리나라 사람 말은 지금 뭐 세계에 말 제일 잘해요. 말이라도 그래 하니까 모든 나라들이 다 이렇게 대우를 하고 이래 알아준다 말이오.

불우 이웃 돕기라. 보니, 테레비도 보니까 불우의 이웃을 돕기 위해서 뭐 이렇게 성금들이 다 모두 이렇게 나오고 이래 하니까 '그 나라는 참 우리가 본받을 만 하고 그 나라가 이렇게 하는 것 보니까 복받을 터이니까 우리나라에서 그 나라에 자본을 투자할 만하다' 이런 게 볼 수 없는 그 이면에서 그런 게 아주 이 끌어들이는 데 대해서 큰 아주 좋은 방편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교회에서 그만 이거 너무 버릇없어 안 됐어요. 이러니까 꼭 노인 대우, 오 년 더 되거든 형 대우를 하십시오. 십 년 더 되거든 부오 대우를 하십시오.

진리는 진리대로 지키지만 그렇게 인간적인 대우는 그렇게 존대를 하라 그 말이오. 안 믿는 사람들은 연장 이배 즉 부사지라 했지만 그게 아니고 그만 십 년이면, 십 년만 높이 있으면 위에 부모와 같은 그런 대우를 하라 그 말이오.

그래도 좋아.

그러고, 저 양산동 기도실에는 가 가지고 참 모두 가는 사람마다 은혜를 받아요.

그 모두 가 가지고 병도 많이 낫고 회개도 많이 하고 참 이랬는데, 지난밤에 말한 거와같이 그런데 자꾸 기도하러 가면 갔다 온 표가 나야 이 자꾸 복음 운동이 되는 것이지 기도하러 갔다가, 자꾸 가니까 가정에 살림살이를 모른다, 기도하러 돌아다니니까 그만 남편이 불평을 해 가지고 이놈의 집구석 깨지겠다 하고 그만 가정이 불화가 일어난다, 또 자녀들에게 대해서 옷도 갈아 입힐 것도 안 입히고 이래 놓으니까 그만 파괴가 된다 이래 되면 이거는 기도하러 간 게 아니라 마귀 접촉했다 그 말이오. 그거 마귀 접촉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접촉했으면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옳은 걸 다 시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것은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될 수 있는, 뛰어날 수 있는 그런 모든 생활을 함으로 뛰어난다 그 말이오.

그런 행위를 함으로 뛰어나. 그런 행위를 함으로 뛰어나는데 그런 행위하는 것이 어떨 때는 아주 모순돼서 이거는 세상, 모든 인간 지식 통계를 봐서는 맞지 않는다 하는 그럴 때가 있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인도가 너무 고 차원적이라 너무 차원 높은 데서 인도하고 이제까지 자연에 한 번도 이 세상에 없는 그런 방편 높은 방편을 가지고 인도하니까 인간들이 이해를 못해서 모순되는 그것이지 하나님의 인도가 틀린 게 있어서 틀려서, '틀렸으나 나 인도하는 대로 해라. 그라면 내가 복을 주겠다.' 그라면 하나님도 복 주시기 위해서는 그 방편을 틀린 것도 쓴다고 하면 우리가 방편으로 틀린 방편 쓴 것을 당신이 어떻게 정죄할 것이냐 말이오. 정죄 못 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 그 방편도 하나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유치해서 아직까지 이해를 못 해 그런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꼭 옳은 방편으로 인도하셔 가지고 옳은 인도를 받아서 할 때에 한 그 일이 옳은 것을 자꾸 찾아가는 그런 일이 돼 가지고 그렇다 그 말이오.

요셉이도 형제들에게 옳은 말 하다가서 주목을 받아 가지고 아주 모든 사람에게 총공격을 받게 되는 고런 것이 뭐이냐 하면 그렇게 하는 그것이 그런 인격을 가지고 그렇게 모든 자기가 어떻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에 옳은 길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라.

요셉이 걸어간 그 길이 총리대신되는 고 걸음에, 예를 들어서 여기서 가는데 이거 가다가 갑자기 들어다 세운 게 아니야. 갑자기 들어다 세운 게 아니고 고 요셉이가 한 순서 한 순서 걸어간 그것이 총리대신 가는 걸음을, 노정을 딱 정해 놨는데 고 노정을 한 자욱 한 자욱 걸어가 가지고 도달된 것이지 요셉이가 이렇다 저렇다 아무나 따나 걸어갔는데 네가 나 시키는 대로 잘 걸어갔으니까 이거 준다 하는 준 게 아니라. 고게 요셉이가 총리대신 자리까지 걸어가는, 공간 걸음으로 말하면 요게서 요 한 자욱 두 자욱 걸어간 것이 고게 가 가지고 도달되도록 돼 가지고 그런 거라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한 현실 현실을 주셔 가지고 고 현실에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그것은 현실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 주실 수 있는 고 축복을 찾아가는 그 노정이라 그 말이요, 우리에게. 그 현실 현실 주는 것은 이해 못 할 현실이라도 하나님의 이 기적과 축복, 영적 육적의 축복을 찾아가는 그 노정이라 길이라 말이요, 길. 노정 그 순서이기 때문에 하나 하나를 밟아서 갈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야 되지 그만 인도 따라 안 가면 탈선됐기 때문에 삐뚤어져 갔으니까 그만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어떤 사람은 삐뚤어지게 가 가지고 돌아설 줄도 모르고 삐뚤어진 그걸 가지고 자꾸 갑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자기 목적을 두고 기도하러 가 가지고 그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왜? 목적은 틀린지 아닌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러 갈 때는 모든 것 다 집어던지는 게 기도요. 모든 것 다 자기 주관 다 집어던져 버리고 성경보고 재독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바로 인도하는 그 인도부터 받아야 다 이래 하는 사람이 기도하러 가 가지고 조금 기도하니까 내가 이 헛된 사욕을 내가 가지고 주장했구나, 내 사욕 주장 이것이 이루어졌더라면 큰일 날뻔 했다 하고 주님 앞에 '주님, 내가 이제까지 기도한 이것을 들어 주지 안하심을 감사합니다. 만일 들어 줬으면 내가 망할 터인데 들어 주지 안하심을 감사합니다.

만일 들어 줬으면 내가' 망할 터인데 들어 주지 안하심을 감사합니다. 이게 삐뚤어진 걸 알았기 때문에 포기합니다. 이게 내가 과거에 기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혹 이루어질까 염려가 돼 하는 것이니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요런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성경을 보든지 재독을 듣든지 이렇게 해 가지고 다 포기하고 거게 따라, 그 말씀에 따라서 기도하라 말이오. 말씀에 따라서 사람이 돼요. 그러면 옳게 가는 사람이 되어지지만 재독도 안 듣고 성경도 안 보고 자꾸 기도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뭣이 점점 강해지게 되겠습니까? 뭣이 강해지게 되지요? 뭣만 커지요? 뭣만 커지겠소? 큰 소리로 해 봐, 자기 주관만 자꾸 강해진다 말이오. 자기 주관만 강해져. 큰일 나요.

그러기 때문에, 목사님도 그걸 생각합니다. 설교를 이 교인들이 모두 설교를 재독을 하고 이래 해서 이래 나오고 있는데 내가 만일 성경을 보지 안하고 자꾸 기도만 하다 보면 내가 만일 주관주의로 만일 돌아간다고 하면 이 설교를 재독 듣는 사람은 전부 교인이 다 주관주의로 돌아갈 것 아닌가? 그러기 때문에, 내가 자꾸 성경을 보고 성경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내 자체가 내 주관적이 아니고 객관적이요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에게 피동적인 하나님에게 피동이라 하면서 피동이라 하는 것도 자기 감정 피동이 되면 나중에 주관주의 되기 쉽다 그 말이오. 주관주의 돼지면 불건전한 신비주의 돼요.

우리에게 뭐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그것보다도 '더 확실한' 뭐이 있다 했습니까? 확실한 예언이 있다 이랬어. 문서 계시로 해 준 이 확실한 예언이 있기 때문에 확실한 이 문서 계시인 이 예언을 자꾸 읽고 새김질하면서 우리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힘쓰라. 예수님을 샛별로 한 데도 있지만 여기는 그게 아니라.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힘을 쓰라 했는데 샛별은 뭘 말하는 겁니까? 샛별은 뭘 말한 거라 했지요? 영감, 샛별은 영감, 내 주관으로서 성경보고 깨닫고 읽고 하다가 보면 내 주관의 수평선이 있어. 내 주관이라는 수평선 한정이 있어요. 내 주관이하는 수평선이 있는데 내 주관이라는 수평선 절정에 도달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객관성이 와. 객관성, 이제 객관 역사가 나를 깨닫게 하고, 나를 기억나게 하고, 나로 감동되게 하고, 나로 소원하게 하고 평가되게 하고, 또 할 용기를 더, 내 주관 초월한, 주관에 객관 능력이 와 가지고 할 용기를 내고 이란 그때, 주관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가서 주관 절정에 종착이 딱 도달하면 고게서부터 객관 역사의 시발이 된다 그 말이오. 고거 아십시오. 객관 역사의 발족이 돼.

오늘 아침에 내가 OO교회하고 거게 대해서 교학실장하고 말했는데 그 무슨 예배로 할꼬 이라니까 나는 이런 말 저런 말했는데 교학실장이 있다가 발족 예배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말이 잘됐어. 발족 예배. 그 화요일날 발족 예배 보기로 했어. 그 OO교회하고 OO교회하고, 그래서 그 두 교회는 합하는데 이름이 OO교회 이름을 먼저 따서 O, 또 OO교회 이름을 따서 OO교회라 해 가지고 이래 당분간 얼마 나가 가지고 나중에 좋은 이름이 있으면 갈든지 그 이름이 좋으면 또 그대로 하든지 그렇게 해서 보기로, 발족 예배라 그렇게 했습니다. 어짜든지 인제 누가 말해도 좋은 거를 말하면 따라가야 돼요. 나쁘든지 좋든지 제 주장하는 하는 그 자는 망할라 하는 거라.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을 간단하게 설교를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로마서 1장 17절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을 말했습니다. 네, 거게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 모든 사람들이 다 인간만으로서는 의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고, 여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이 의인은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의인된 의인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예택하셔 가지고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니까 의인은 자기가 의인인 줄 아는 의인도 있고 모르는 의인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본 대속을 입은 것은 그 객관 역사이기 때문에 본인이 안 후에 입은 게 아니요, 알기 전에 벌써 나기도 전에 찬조도 되기 전에 하사님의 예택에서 벌써 입기로 예택돼 있었고 예정돼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딱 베푸신 그때에 벌써 예택된 사람들은 다 대속의 이 하나님의 의를 입어 가지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됐는데 이 의인은, 우리는 그라면 의인을 자기 모르게 하나님 편에서 순전히 의인된 자가 자기가 의인된 것을 아는 것은 언제 아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신앙이 차차차차 자라서 이 대속의 이 큰 역사를 자기가 깨닫고 난 다음에 대속을 믿을 때에 그 사람은 의인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의인된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는 여게서 지금 대속의 공로를 알든지 모르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의인이 됐습니다. 의인입니다.

의인인데, 이 의인인 것을 속으로만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이걸 껍데기로 발표를 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왜 안 돼? 행위는 죄인 생활하면서 의인이라고 하니까 이 복음이 오히려 조롱받을 것이고 하나님에게 욕이 돌아가고 복음을 가루어지게 된다 그 말이오. 이러나 실은 의인이라 그 말이오. 의인인데 의인이 의인 생활을 하지 안하고 행동은 죄인 생활하기 때문에 의인이라는 말을 말을 못 한다 그 말이오.

의인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입을 쥐박아요. 네가 이런 행세하면서 의인이란 말이냐? 실은 의인은 의인입니다. 틀림없는 의인이오, 의인은 의인인데, 이거는 변할 수 없는 의인은 의인인데 행위를 죄인 행위를 하기 때문에 의인이라는 이걸 발표를 하지 못해요.

그러나, 우리 자신들은 의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이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는, 들리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소리내 기도할 때도, 기도할 때도 옆에 사람이 듣는지 모르니까, 낮말은 뭐 새가 물어가고 밤말은 쥐가 물어간다 했으니까 자기 혼자라도 나는 의인이다, 의인이다 이라다 보면 옆에 사람이 듣고 저놈 미치괭이 소리하는 것이 저거 순 살인 강도노릇하는 놈이 의인이라고 저래 한다 욕할터이니까 남 듣지 못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말이요 의인이라는 소리를 하루 천 번도 만 번도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하고 난 다음에는 고 뒷받침해서 '나는 흉측한 참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이 죄인 중에 죄인 더러운 죄인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나는 의인됐다. 대속의 공로로 의인됐다. 나는 의인이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의인됐다. 나는 흉측한 죄인이다.' 이것을 자꾸 되풀이를 하도록 하십시오.

내가 의인된 것은 하나님의 의를 내가 입어서 의인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뭐이 하나님의 의인가?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이거 아직도 이런 데 대해서는 이 정의가 바로 하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옳다 제일 찬성하는 이 의를 예수님이 이것을 완전히 설정했기 때문에 의의 주인이 예수님이시요 의를 예수님이 만드셨소. 이러기 때문에 의의 주인이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이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이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으심으로써 의를 이루셨고, 또 부활하심으로써 이 의를 가지고 의의 노릇을, 의의 생활을, 의의 영광을, 의무를.

책임을 다 누리도록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의인인데 의인 생활은 뭐이 의인 생활인가? 의인 생활은 성경대로 사는 것이 의인 생활입니다. 의인 생활은 성경대로 사는 것. 그러면 성경대로 살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성경에는 두 가지를 간단하게 말해 놨습니다. 뭐이냐 하면 성경에 이걸랑 하지 말아라. 또 이것은 해라. 하지 말라, 하라 하는 이 두 가지를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의인 사는 생애 법칙입니다. 의인이 사는 생애 법칙이오. 생애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의인이라. 의인이니까 나는 의인이 살아야 된다. 나는 의인이니까 의인 생활해야 된다. 의인이니까 의인으로 산다는 그 '으로' 하는 고걸, 떼버리고, 나는 의인이니 의인 생활해야 된다 나는 의인이니 의인이 살아야 된다, 의인 생활해야 된다.

의인 생활해야 된다, 의인 생활 법칙으로 살아야 된다. 의인 생활 법칙이 뭐인가? 신구약 성경은 의인 생활 법칙이다.

신구약 성경은 의인 생활 법칙이라면 그 법칙의 내용은 뭐이냐?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니까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에 하지 말라는 일을 내가 안할 때에 의인 생활 내가, 내 생활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다. 하라는 것을 할 때에는 내가 의인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정상 생활하는 것이다. 내가 의인인데 하지 말라는 것 할 때에는 나는 의인이 의인 생활, 정상 생활, 제 생활하지 안 하니까 이거는 미치괭이 생활이다. 이거는 곧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악령 악성 악습의 생활이 됐다. 또 하라는 거 안 하면 그러하다.

이러니까, 자꾸 속으로, 말을 내면 안 돼요. 내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의인이다.' 그 말 옳게 했어. 옳게 했지만 다른 사람 듣는데 해 놓으니까 욕을 얻어 먹는다 말이오. 듣는데 하니까, '이거 저러며 자기가 의인이라 하네.' 그 의인이라는 그 말은 의인 생활하면서 의인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사람들은 과거를 보기 때문에 이 시간부터 내가 의인 생활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미치팽이 소리라 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다른 사람 알게는 말하지 말아요.

소리는 내서 다른 사람 듣게는 못하지만 속으로 나는 의인이라는 것 하루 백 번 해! 나는 의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의를 입어 의인이다, 의인이니 내 생활의 법칙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내 생애 법칙이기 때문에 이 말씀 법칙대로 살아야 내 생활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의인 생활하는 것이다, 나는 의인이니 의인 생활해야 된다, 자기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나는 의인 생활해야 된다. 여게는 의인은 이거 하지 말라 했는데 '나는 안 해야 된다, 나는 의인이 안 하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니, 의인이니까 의인으로서 안 해야 그게 내 생활이라 그 말이오. 안 해야 내가 정상의 사람이지, 그거 의인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만 의인이 미치팽이가 됐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나는 의인이니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것이 내 생애 법칙이다. 나는 의인이니 성경에 하라는 것은 내가 고대로 하는 것이 내 의인 생활이다. 내가 의인 생활할라고 나는 의인 생활할라고, 왜? 의인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봐요.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의인 됐어요. 기본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늘나라가 제것이 됐지만 이 건설적으로는, 영광적으로는, 존귀적으로는, 행위적으로는 우리가 의인이 되지 못했으면 하늘나라 가 가지고 하늘나라에 기본적으로는 의인으로서 대우를 받지만 건설적으로나 행동적으로서는 의인 대우를 받지 못해. 의인 실력이 없으니까. 이 세상에 하지 안했기 때문에 의인 실력이 없어. 의인 실력이 없으니까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의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의인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하나님 대리자로 통치하는 것인데 이 통치하는 실력이 없으니까 가서 하늘나라 가 가지고 팔짱끼고 이래 있어야 돼.

아무것도 할 일 없고. 이 세상에서 이거, 자꾸 의인노릇을 안 했으니까 의인 생활 안 했으니까 의인 생활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하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가니까 '미안하지만 좀 비껴 주십시오.' 거게 의인들이 지금 막 분주하게 지금 일하고 있는데 저는 의인노릇하는 것을 의인 생활하는 것은 하나도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늘나라 가서 그저 장생 불사요. 영원히 안 죽고 살고 영생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이렇지만 아무 할 일 없어.

그러니까, 항상 팔짱끼고 여기 가 뻐끔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미안하지만 조금 비껴 주십시오.' 일을 도우면 막 같이 하고 좋지만 이거 아무 무용지물이라. 쓸모 없는 거라. 떡 와 섰으니까 '미안하지만 조금 비껴 주십시오.' 여게 가도 비껴 달라, 저게 가도 비껴 달라, 거기는 뭐, 하늘나라는 분주히 일하는 나라라.

하늘나라는 분주히 일해. 번개같이 일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나라에 쓸모가 없으니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아무 무용지물로 그저 밥이나 먹고 이거 살기나 영생하지. 그러니까 그 나라에 가서 뭐, 이 세상은 그라면 살이 찌겠는데 어짤란지 모르지만 그래도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랬어.

이러니까, 나는 의인이라는 걸 여러분들이 하루 천 번이라도 다져.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니 내 생활 내가 한다, 의인은 어떻게 사느냐?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안 하는 게 의인이다, 하나님이 하라는 거는 하는 게 의인이다.' 자꾸 의인인 것을 자기가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이것을 믿고 나는 의인이니 신구약 성경 말씀에 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안 하는 것이 내 생활이요 하라는 것 하는 것이 내 생활이니까 이제 내 생활 내가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소? 의인이면 벌써 의인이면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위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우편에 의인이 가서 앉았는데 이제 이 의인이면 곧 우편에 앉은 신인양성일위의 그 인성의 우편에 앉습니다. 인성의 우편에 앉으니까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같이 이긴 자는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말씀했다 그 말이오. 의인이기 때문에 의인이면 만물을 통치하는 거라. 통치할 권리가 있어. 만물을 통치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의인인 것을 깨닫고 이제 의인으로 살라고 할 때에는 피조물이 복종하지 항거할 것 없어. 항거하는 것같이 보이나 내가 피조물을, 피조물이 이렇게 복종하도록 되는 그 의인으로 살기 때문에 피조물이 항거하지를 못해요.

그런데, 지난밤에 재독하는 것 들었는가 몰라도 내가 들었는데 보니까 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는데 구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다이나마이트의 구원이고, 하나는 비유로 남포 구멍을 뚫는 구원이고 그렇게 보니까 비유를 해 놨습디다.

그 남포 구멍 뚫는 구원은 무슨 구원이냐? 그 구원을 묻는데 보니까 대답을 하나도 못 하더구먼. 재독을 들어, 재독을 들으라 말이요, 재독을. 여러분들이 아직 그 뒤에 할라 하면 머리가 허해야 됩니다. 지금 그런 열심 가지고는 머리가 허얘도 안 돼요. 하나님이 알려 주는 걸 알지 못해, 머리가 허해져도. 더 애를 써야 되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인데 구원은 두 가지라 했는데 뒤에 쾅 터지는 폭발성 있는 그런 구원도 있고, 또 그 구원을 지금 준비하는 준비 구원도 있고, 그런데 폭발 구원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다니엘이 온 파사 사람이 다 보도록 '아이쿠' 세계가 다 보도록 '아이쿠' 깜짝 놀래게 이렇게 됐다 말이오.

그거는 나중에 폭발 구원이라. 폭발 구원.

폭발 구원은 어데서 나왔느냐 하면 평소 구원 준비 구원에서 나왔다 말이오.

준비 구원. 준비 구원에서 나왔는데 준비 구원은 뭐이라요, 준비 구원은? 준비 구원은 뭣이 준비 구원이지? 예? 준비 구원은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거는 안 하는 그게 준비 구원이랍니다. 이게. 맞았어, 이 대답이 맞았어? 엉터리야? 맞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손놓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백 점이야 백 점. 그게 구원이라.

우리 구원은 두 가지인데 구원이 뭐이냐? 꼭 그렇게 다니엘 모양으로 뭣이 폭탄이 되고 또 그리 아니면 자기가 무슨 돈이 부자가 되고 직장이 나서고 무슨 그런 게 나서는 그게 구원이 아니라, 구원은 두 가지 성질의 구원이 있는데 폭탄 구원이 있고, '그 사람이 자꾸 그라더니 만 부자가 됐다, 그 사람이 그라더니만 공부가 그만 일 등이 됐다.' 그런 거'는 다 폭탄이라 그 말이오. 폭탄, 그런데, 그걸 준비하는 평범 구원은 뭐이냐 하면 인간의 힘으로서는 성경 말씀에 하라는 것을 다 할 수 없고 하지 말라는 걸 안 할 수 없는데 인간이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하라는 말씀은 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고 이렇게 할라고 애를 쓰니까 하라는 말씀은 하게 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게 되고 하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 힘이 아니고 초자연의 객관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일을 하게 하기 때문에 이것이 구원이라 그거요.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된다. 암만 물어야 모르니까 뭐 이렇게 가르쳐도 그 자리에서 물어도 모르는데 무슨 구원을 이루겠소? 이러니까 여러분들은 성경도 읽고 재독을 많이 들으라 말이오. 재독을 많이 들어요. 이래서, 나중에 여기 실행을 하게 되면 재독을 많이 듣는 사람과 안 듣는 사람이 그만 나중에 천지의 차이가 있어. 하나는 망하고 하나는 흥해집니다. 그렇게 차이가 나져.

이러니까, 구원이 뭐이냐? 내가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말라는 걸 안 했으면 '주여 큰 구원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게 큰 구원이라. 그게 다이나마이트 구원은 아니지만 큰 구원이라 그 말이오. '감사합니다.' 또 이 시간에 자기가 요거는 하나님의 뜻인데 요대로 뜻대로 해야 되겠는데 할라고 애를 쓰는데 고거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됐다 말이오. 그러면 '허 내가 힘을 써 가지고 내가 했다' 그러면 네가 스스로 섰다하기 때문에 교만해서 망하고 만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 시간 내가 이렇게 이걸 안 할라고 애를 썼는데 주님이 안 하게 해 주셨으니 안 하게 해서 감사합니다.' 안 하게 하는 구원을 주셨다 말이오.

또 해야 될 것을 할라고 애를 쓰니까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구원을 주셨다 말이오.

하루 종일 거짓말 안 할라고 했는데 거짓말 안 했으니까 그날밤에 '주님 이여, 나에게 이 큰 구원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거짓말 안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실수 안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무슨 일을 할라고 했는데 그 일을 달성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오늘은 언행심사에 실수 안 할라고 애를 썼는데, 실수 안 할라고 애를 썼는데 실수 안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구원이라 말이오.

이 구원이라 하는 건 평소 구원 과도기 구원이 있는 것인데 등불을 켜는 그것이 뭐이냐? 등에 기름을 준비한, 기름 준비한 그게 구원이요, 기름 준비가 그게 은혜라 말이오. 기름 준비가 은혜요. 나중에 마지막에 불 들고 신랑 맞이한 그게 폭탄 구원이라 그 말이오. 마지막에 결말 구원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나는 의인이라.' 의인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몇천 번 다짐해요.

나는 의인이라, 나는 의인이라, 자꾸 나는 의인이라, 의인이라. 그래서 자꾸 나는 의인이라, 의인이라 의인 다짐을 자꾸 해요. 이 머리 같은 것도 자꾸 변동 좀 하지 말아요. 너무 오늘은, 이 아이들 수학 여행 갔는데 어떤 아이는 가 가지고, 그 수학 여행 가 가지고 웃을 뭐 한 열 댓 번 갈아 입더래. 또 초저녁에 잘라 할 때는 또 요 옷 또 입고 나오고, 또 자다가는 또 조 옷 입고 나오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또 요 웃 입고 자꾸 그렇게 자꾸 옷을 자꾸 갈아 입더래요. 그러니까 그게 옷자랑하는 인간이라. '너는 야야 똑똑히 말할라면 너는 사람은 없고 너는 옷이다. 붉흔 옷 됐고 푸른 옷 됐고 검은 옷 됐고 횐 옷 됐고 너는 옷이지 너를 너인 줄 모르고 아무라도 옷밖에 모르겠다 옷의 사람이다.

그거 모양으로 이거 좀 태도도 좀 하는 걸 좀 봐요. 이 권사님들 이거 이래 하고 이 파마하지마 이라니까 늙은 사람들이 호소가 얼마나 온 줄 압니까, 나한테? 이 자꾸 이 머리도 없지 이러니까 비녀는 이래 찔러도 빠져 쌓지 이러니까 좀 찌지도록 해 달라고 막 그렇게 하는 것 그리 내가 못 하게 했어. 왜? 찌져도 좋아요. 처음에 여기 파마 나왔을 때에 어떤 목사님이 파마 나온 그거는 다 강단에 세우지 말라고 이래서 나는 반대했었어. 그 시대를 따라서 가는 건데 지대에 앞서지도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중간 가야 그 다른 사람에게 이색 되지 안하지 그거 너무 시대에 떨어져도 안 된다 이라면서도 이 권사님들은 지금 다 그래 가지고 있어.

왜 그러냐? 사람들이 그 모든 다른 사람들이 태도를 보고 있는데 그 태도 보이는 것이 심히 두렵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저 다른 사람이 볼 때에 그저 수수하게 변하지 안 하는 사람으로서 그래 보여서.

내가 그때 여기 저 O장로님 저 먼저 보니까 요 머리를 어찌 얄궂게 이랬는데 그날 좀 머리를 얄궂게 했어. 내가 그 말을 강단에서 할라 하다가 말았어. '장로님 머리 이상합니다.? 이랬는데 그 뒤에 보니까 안 그렇더구만, 보니까. 보니까 머리를 어째 얄궂게 이래 가지고 그 머리가 요 태도 조 태도 하지말고 좀 변하지 않는 것. 사람이라는 것은 금방 보면 얼굴이 요랬다 조랬다 자꾸 이거 이렇게 그거 하는 그거 못 써요. 얼굴은 언제든지 일반적인 얼굴로 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 지위가 밑에 있을 때는 요래도 조래도 좋지만 차차차차 많은 사람이 보고 있으면 그 하나 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이오. 요 여러분들, 요라면 어때요? (주: 넥타이를 삐 뜨립) 이라면 어때요? 괜찮아요? 다른 사람이 설교를 못 들어. 그래 부득이 이거 또 거울은 없지만 요래 요래 해 가지고 또 이게 쪽 정상이 되면 다른 사람 본다 말이오.

그래, 그와 마찬차지라. 그 사람이 요래 버리면 다른 사람이. '이래 졌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그전에는 요랬는데 요래 됐다' 두 가지 사람 봐, 또 한 사람이 있다 보니까 또 요래 버렸으면 또 저 사람은 있다가, 요래 요래 요래 세 가지 사람이라.' 또 그 다음에 또 보니까 또 요래 요래 사람이라,' 자꾸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소개해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좋은 면도 있지만 '저 사람은 활동성이 있고 저 사람은 자꾸 개량돼 나가는 사람이라 이렇게 보기도 있지만 보수성도 좋아요. '저 사람은 꾸준하다.' 꾸준한 인내성도 가치가 있고, 또 자꾸 이리 개량성으로 자꾸 고쳐서 개량해 나가는 그 개량성도 가치가 있어요.

인내성도 있으며 보수성이 있으면서 개량성을 가져야 되지 보수성 없는 개량성은 그거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라.

그래서, 어짜든지 나는 의인이라는 것을 자꾸 생각해. 의인이라, 의인이라.

의인이라도 의인이라 소리를 못 합니다. 우리는 의인입니까 의인 아닙니까? 틀림없는 의인입니까 의인 아닙니까? 의인으로 아는 사람 손듭시다. 네, 우리는 의인입니다. 의인. 의인인데 이 소리를 말 못 해요. 이 소리를 말 못 해요. 말 못 하는데 인제 의인을 말로 애야 됩니까 의인 생활로 보여야 됩니까? 의인 생활로 보여야 돼요. 의인 생활로 보여야 돼.

의인 생활인데, 그 의인은 어떤 의인가? 하나님의 의야. 하나님의 의는 뭣이 하나님의 의입니까? 하나님의 의는 세 가지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께서 제일 고통스럽고 두통스러운 세 가지 하나님이 근심하고 노여워하시는 것을 해결한 것이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세 가지 이룬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 노여워한 거는 뭐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피조물 대표자가 돼 가지고 있는 자가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 하나. 둘째로는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속해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제가 자존자처럼 자주자로 사는, 피조물 주장으로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노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는 하나님 배반하고 사탄에게로 돌아갔다 말이오. 다른 신을 따라 섬긴다 말이오. 요것이 하나님의 노.

요 세 가지 하나님의 노인데, 이 세 가지 노를 하나님이 푸신 것이 신인양성일위가 이 세 가지 노를 풀었습니다. 이 세 가지 노를 어떻게 풀었느냐? 이 세 가지 노는 이게 벌써 죄가 됐기 때문에 이 푸는 것은 형밖에는 푸는 것 없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형으로 죽으신 것은 이 세 가지 하나님의 노를 죄를 대형으로 이것을 사죄한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의 중에 하나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전지자로서 입법하신 완전한 그 입법, 지성 지공의 그 입법한 입법의 요구를 완성했어. 완료했어. 입법의 요구를 만족케했어. 하나님이 입법한 이 율법을 완전히 완수했어. 완전히 행해 버렸어. 완전히 다 행한 그것이 예수님의 대행이라 말이오. 대행의 의라 말이오.

화친의 의는 이 모든 마귀를 다 쫓아서 원수로 배반해 버리고 하나님하고 화친한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에 여호와의 신이 뭐입니까? 여호와의 신이 뭐이요? 여호와의 신이 뭐이요? 아버지의 영이 뭐입니까? 아버지의 영이 뭐이요. 여호와의 영이 뭐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뭐입니까? 그게 성령이라 말이요, 여호와의 영이 성령이요, 아버지의 영이 성령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요, 하나님하고 화친한 것은 성령하고 나하고 한덩어리 돼 가지고, 성령은 내 속에 지배를 하고 나는 그분에 따라 움직이고, 이러니까 성령은 내 안에 와 가지고 주인으로 계시고 나는 그 집이 됐을 때에 성전이라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화친을 이루어서 이 세 가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일을 이룬 것이 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서이를 푼 것이 하나님의 의요, 세 가지 푼 것은 뭐입니까? 사죄, 대형으로 사죄요, 세 가지 원하신 것은 대형의 의와 대행의 의와 대화친의 의 이 세 가지 의라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이 여섯 가지는 못 할 게, 여섯 가지면 모자라는 것이 있습니까? 이 여섯 가지는 영원히 완성한 거라. 영원히 완성한 거.

하나님이 제일 근심 걱정한 것이 뭐이냐? 그것은 말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보는 대로는 그래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창조하시기 전에 목적을 정했으니 그 목적은 뭐이냐? 그 목적 정하신 것은 이 하나님의 의를 목적으로 정한 거라. 목적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 근심하는 것 이것 다 해결짓고 하나님이 원하신 것 세 가지가 되는 요 자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어.

이러니까, 그때는 존재하지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지으면 이 사고가 뭐이냐, 이것을 지어 놓으면 위험성이 뭐이냐, 지어 놓으면 완전성이 뭐이냐?' 위험성 완전성을 생각해서 위험성 완전성에 대비로서 이 위험성 완전성을 완전히 해결해서 하나님의 그 소원대로의 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게 하나님의 목적이라. 목적은 하나님의 의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걸 자꾸 새겨요. 새겨서, 기도하러 가며 새기고 일하면서도 새기고 자꾸 새겨서 '나는 하나님의 의로 의인된 내다' 이러나 의인을 의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도 말도 못 합니다. 자랑도 못 하요. 이러니까 이 의인은 내가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랑 못 하니까 이 의인이 의인 생활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되겠다 말이오. 보여 주는 이거는 의인 생활을 얼마든지 보여 줄수록 세상이 칭찬하고 좋아 하지만 의인이라는 이름을 말하면 탈이 납니다. 왜? 우리가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의인인 걸 알아야 된다 말이오.

나는 의인인데 의인이라는 말도 못 하는 것은 내가 의인이면서 내가 미지괭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한다. 이러니까 내가 의인이라는 이름을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의인 생활을 내가 보일라면 얼마든지 보일 수 있어.

이러니까, 이제 턱 닥쳤을 때, 여게는 이 아느냐? 여게 다른 사람이 돈을 주며 거짓말하라 할 때에, 거짓말하라 할 때에 내가 이 거짓말은 성경에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의인은 이때는 거짓말 안 하는 게 의인이다. 이제 돈을 줘도 내가 의인을 파느냐, 내가 의인을 파느냐 돈을 가지느냐? 사는 의인이니 나는 이거 거짓말 못 한다, 거짓말 안 한다, 거짓말 안 한다 이러면 나는 의인 생활했다 말이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가 가지고 아합 왕이 지금 잡아 죽일라고 찾고 돌아다니는데 거기 가 가지고 아합 왕에게 네가 이런 말을 가서 해라 그라면 아합 왕이 '이놈 잘 만났다.' 당장 사형시킬터이니까 사형받으러 가라 하는 말이라 말이오. 사형받으러 가라 하는 말이지만 하나님께서 네가 아합 왕에게 가 가지고 이런 말을 해라 이렇게 했다 말이오. 해라 이라는데 거기 가면 잡아 죽일라고 지금 막 사람을 내세워 가지고 찾고 돌아다니는데 그 앞에 가 가지고 가서 말을 하라고 하니 이 말은 죽으러 가라는 것 아닙니까? 이렇지만 하나님이 하라 하기 때문에 이제 이거는 의인 생활이라 의인 내가 이 할 말을 하는 것이 이거 의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의인 자기 생활을 이제 의인을 버리지 않고, 의인을 이거 죽이지 않기 위해서, 의인을 없애지 않기 위해서 의인 생활할라고 증거를 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의인이라는 것을 자꾸 깊이 느끼고 느껴서 의인된 자기인 것을 알고, 자기가 의인이니 나는 의인으로 산다는 요것을 자꾸 새기고 새겨서, 의인 생활은 몇 가지입니까? 의인 생활이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이 여섯 가지 그랬는데 의인된 것이 여섯 가지를 해결 지워서 의인이 됐지요.

그런데, 이 의인 생활은 몇 가지 하는 것이 의인 생활이요? 두 가지. 하라는 거 하지 말라는 거 두 가지라. 이래 가지고 의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하루, 의인은 뭐이요? 의인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의인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는 사람이요, 영생하는 사람이요, 모든 피조물을 영원히 통치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충만으로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하는 것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아버지 우편에 앉습니다. 의인은 예수님의 우편에 앉습니다. 의인입니다. 의인인데 의인이 의인 생활한 것 만치 의인이 됐고 의인 생활하지 못한 것은 의인이나 의인되지 못하고 죄인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다음에 부활할 때는 의인된 것만치 의인으로 부활합니다. 그러니까 의인 생활한 것만치 의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 온 사람도 이거 올 터인데 지금 이거 봐. 모인 사람이 몇 안 돼. 저 보니까 뒤에 엊저녁에, 저기 다 비었어. 저기 보인 사람늘 다 죽었어. 저기 있는 사람 다 죽었는가? 안 오거들랑은 재독이라도 자꾸 들어야 되지,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라 물질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모든 말씀으로 살면 떡은 저절로 생겨져요.

이런데, 이 새벽 기도 안 나오니 이 장로님들 새벽 기도 안 나오니까 그거 뭐요? 나는 장로인데 이래 새벽 기도 안 나오고도 예수 믿는다 그거 그것이 그러면 나중에 주님 올 때 야, 너 장로노릇 잘했다. 너는 교인들에게 '장로도 새벽 기도 안 나오고도 장로한다. 새벽 기도 안 나오는 게 장로다' 그거 좋은 본 보였다.

칭찬받을 건가? 이러니까 멀어서 못 나오고 그럴 수도 혹 있지요. 멀어서 못 나올 때도 있고 또 사정에 못 나올 때도 있지만 자기 생활은 새벽 기도 나오는 것이 자기 생활인 줄 알고 죽자껏 노력을 해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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