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


선지자선교회 1988년 2월 5일 금새

 

본문 : 창 3:1-19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류의 첫 죄악이 이간죄입니다. 이간죄를 짓고 돌아다니는 자와 또 이간죄에  피동되어서 이간을 당한 자 이 둘이 있으니 이간죄를 행한자는 하나님의 대적이  돼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싸우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자체가 모든 저주 중에 뛰어난 저주를 받았고 또 그이  자체로서는 완전히 저주받은 변형과 그 타락을 받았습니다.

 배암은 서서 다니는 건데 배로 다니게 됐고 또 그는 모든들 있는 짐승들 중에  제일 매력 있고 아주 출입 못 할 데 없이 출입하는 그런 환영을 받던 것들인데  이 이간 붙인 죄를 범한 후로 그는 모든 피조물에게 미움을 받게 됐습니다.

미움을 받게 됐고 아름다운 그 모든 모양이 다 모든 피조물이 다 놀라고  징그러워하는 그런 저주를 받게 됐고 그 후로는 늘 어두운 데 다니고 숨어  다닙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 계시로 보여 주는 것인데 뱀은 밤으로 다니고,  낮으로 다니는 것도 혹 있지마는 배암은 밤으로 다니고 또 그 만물이 없는  엉큼한 그런 곳으로 다니게 되고 또 그 식물은 이제는 평생 흙을 먹고 살도록  그렇게 됐습니다.

 다른 것은 다 흙을 가지고 한번 재요리해서 흙이 흙보다 좀 나은것으로 이렇게  변화되고 또 그게 또 변화되고 이렇게 일차 가공 이차 가공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점점 귀하게 만들어 가지고서 식물을 삼는 것인데 배암은 제일 천한  식물을 먹게 됐습니다. 흙이 변해서 채소가 되고 또 이 식물들이 되고 식물이  변해서 또 그게 고급 식물이 되고 이렇게 자꾸 돼지는데,  그러면, 자체도 저주받았고 또 모든 대우도 저주받았고 다른 것에게 대우도  저주받았고 저의 활동도 저주받았고 또 저의 모든 식물도 저주받았고 또 자기가  그 여인과 한덩어리 되는 그 일을 해서 여인과 하나되고, 하나님과 하나됐던 그  하나는 깨어지고 여인과 뱀이 하나 됐습니다.

 뱀이 하나됐으니까 저는 그 여인을 뱀이 얻었습니다. 여인을 배암이 얻어서  배암의 것을 일시에 만든 것 같았지마는 그 후에는 하나님이 여인과 원수가 되게  했고 그 자손 대대가 원수되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왜 이간 처세술 범죄를 하느냐 이간을 붙여서 이간  처세술 범죄를 하느냐? 그것은 다른 사람을 제것을 만들기 위해서 이간을 붙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다른 것과 공연히 잘 지내는 사이를 벌어뜨리는 것은, 이간으로써  벌어뜨리는 것은 그 벌어뜨림으로 다른 것과 하나된 그 덩어리가 벌어져서  자기와 하나가 되어서 자기와 친근하고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이간을  붙이는 것입니다.

 이간을 붙이는 방법은 다른 이가 그와 더불어 서로 화평하고 사이좋게 있으면  그것을 그 사이를 벌어뜨리기 위해서 '그이가 너한테 이렇게 해하더라' 공연히  거짓말 해 가지고,  '참으로 하나님이 너거에게 너무 과하게 한다. 나쁘게 한다.' 그렇게 안 한  것을 하나님이 사람들에 나쁘게 한다 이래 가지고 '참으로 그렇게 참혹하게 할  수 있느냐?' '참으로 하나님이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하시더냐' 이것은 '참으로'  하는 요것이 배암이 쓰는 술책인데,  자기 말로써 공연히 자기에게 나쁘게 하지 안하는 사람을 '그 사람이 너한테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라. 저렇게 말하더라. 이렇게 행동하더라. 또 그와같이  하는 것은 그거는 네게 대해서는 아주 너를 해하는 행동이 아니냐?' 자꾸 이렇게  말해 가지고 사람과 그 사람을, 저 사람과 그 사람을 사이를 벌어뜨리게  함으로써 그 사람과 자기가 친근해지도록, 저는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해  가지고서 친근해지도록 요렇게 하는 말을 해 가지고 할 때에 고렇게 '참으로  모든 동산에 있는 과실을 먹지 말라하시더냐'  이럴 때에 만일 해와가 말하기를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임의로-하나님 말씀에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다. 임의로 먹으라고 하셨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뭐 중앙이란 말 하지 안했어 -하나님 말씀한 데에 가감하면  안 돼요. 하나님 말씀에 보태도 안되고 감해도 안 되고 꼭 고대로, 왜?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가 우주보다도 크고 모든 피조물 뭐 천상천하의 피조물  전부보다도 하나님 말씀 획 하나가 큽니다.

 획 하나 크다 말은 하나님 말씀은 진리기 때문에 진리에 어떤 소량이라도, 적은  양이라도 모든 피조물보다 큰 것입니다.

 '이것은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라면 마귀란  놈이 하나님하고 해와하고 이간을 불일라고 하다가 이간이 효력이 있었습니까  이간의 효력을 보지 못했습니까? 이간의 효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간의 효력을 보지 못했으면, 그 다음에 이간의 효력을 보면 유혹받아 가지고  그만 이간을 받은 자가 돼 버렸지마는 고 하나님말씀에 대해서 진실하고 가감  없이 고대로 정확하게 대답을 했더라면 배암은 해와를 하나님과 이간 붙이지  못했고 해와는 이간 붙임을 받지 안했기 때문에 배암을 이긴 것이 되었으니  하나님과는 더 가까워졌을 것이고 배암은 거기에서 해와에게 졌고 그렇게 그는  거기에서 쫓겨나게 됐을 것입니다.

 왜? 동산을 해와에게 다스릴 권세를 줬고 지킬 권세를 줬기 때문에 거기에  통치받아서 물러가라 하는 물리침을 받았고 또 쫓겨남을 받았을터인데 그 해와가  배암의 유혹에 이간 붙이는 고 유혹에, 이간 붙이는 고 꾀움에 해를 받아서  배암의 이간에 피동돼서, 배암이 이간 붙이는 그 이간에 독을 먹어서 이간에  피해를 받게 된 고 증거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이간을 붙이니까 하나님과 이간이 됐소. 하나님과 멀어져버렸어.

하나님과 그렇게 딱 들어붙어서 하나님 한 분만 좋아하고 한 분만이 참되고  온전한 줄 알고 이렇게 했었는데 하나님과 멀어지게 됐습니다. 멀어진 증거가  뭐인가?  2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그러면 먹을 권리가 이 해와에게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먹을 수 있으나' 요 말에도 벌써 배암 들어가서 배암의 성질이  들어갔습니다.

 성질이 들어가서' '동산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으나' 위에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네가 임의로 먹되' 이란 것은 임의로 먹되 하는 것은 자유가 없는  걸 말합니다. 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한 것은 동산 나무의 실과를 네가  임의로 먹되 하는 것은 먹을 권리가 아담 해와에게 있는 것을 말합니까? 먹을  권리를 허락해서 허락을 해 준 것을 말합니까? 어떻습니까? 먹되 했으니까  허락해 준 것입니까 저거가 먹을 권세가 있습니까? 허락을 받았습니다. '먹 되'  하는 것은 네가 먹을 수 없는데 먹을 권리를 준다 그 말이오. '먹 되' 권리를  받았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여자가 그 다음에 배암 만나고 난 다음에는  변해졌습니다. 변해져서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먹을 수 있으나' 하니까 위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이 동산에 있는  모든 각종 실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뱀에게 지금 여인이 말하는 것과 차이가  뭐 있습니까?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가 있지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그러면 저거가 먹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말 아닙니까?  '먹을 수 있으나' 위에는 보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종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되' '임의로 먹되' 하는 것은 조건부가 붙어 버리기 때문에 저거 자유가  아니고 그걸 허락해 준 것을 그 안에 표시가 됐다 말이오. '먹 되' 밑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하는 것은 제게 권리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요 해와가 대답을 할 때에 바로 대답할라면 위에 말한 대로 2장 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요래 말해야 될 거라 말이오. '먹 되'  이단이 창세기에서 제일 많이 나왔고 둘째로는 요한계시록에서 두번째 많이  나왔습니다. 창세기에서 요 한 마디는 참 그거는 그 안에 깊이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넓기 때문에 고 한 마디에 완전히 백 팔십도로 변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창세기에 있는 창세기 1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있는  말씀 가지고서 거의 이단을 만들어 내놨습니다.

 여기에 ○○○씨가 이단자 된 것. ○○○씨가 이단자 된 것 그 이단자된 것은  다 창세기 3장에서 된 것입니다. 요게 대해서 말을 바로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서  전부 이단자가 다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요게 빠진 것 있습니다. '각종  나무의 실과' 요 '각'을 뺏다 말이오. 이거 여러분들이 느껴지지 안할 거라.

'각종' 그거야 빼나 안 빼나 뭐 나무 실과라고 말했으면 됐지 그렇게 큰 중요한  게 뭐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 한 마디라도 더하고 감하고 하면은 거기에서 일이  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한 단어 번역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데에서 인류가  망하고 흥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성경 번역을 바로 할라고 애를 쓰고 이 단어  하나 잘못되면 큰 일이 납니다.

 이래서, 요새는 원어 학자들, 원어 학자들이 원어를 가지고서 원어 모르는  사람들은 막 훌터 쓸어서 얼마든지 유혹을 시키고 멸망을 시키게 됩니다. 원어에  이렇다 하고서 이렇게 말하는데 실은 원어 가지고는 그들이 지식 자랑하는  것이지 원어 가지고는 그렇게 정확하지를 못합니다.

 원어에는 사람의 영이나 하나님의 영이나 그 말이 같은 말입니다. 사람의  영이라는 말과 하나님 영이라는 영이라는 말이 같소, 같고 다르지 안하고 또  한국말도 사람의 영 하나님의 영 하는 것이 같은 말이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러나 그 성경을 전체를 다 읽으면서 '이거는 하나님 영을 말한 것이다.

이거는 사람 영을 말한 것이다.' 거기에서 참 성신의 감동으로 깨달아서 바로  알아서 이거는 하나님의 영이라 이거는 사람의 영이라 이렇게 구별하지 그렇지  않으면 그걸 구별을 바로 못 한다 말이오.

 이런데, 그걸 가지고서 아주 그 원어에는 모든 것이 똑똑하게 다 구별 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꾸 그걸 근거하기 때문에, 원본을 번역한 것을, 원본과  같이 베껴 쓴 것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요새는 그걸 또 인쇄를  해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지마는. 원본은 한 권뿐입니다. 한 권뿐인데 획 하나도  가감을 못 하고 획 하나도 그거는 천지보다 중량이 무겁다 하는 고 말한 것은  원본 성경을 말합니다.

 원본 성경과 원어 성경과 다릅니다. 원어 성경은 말만 그 원본 성경 말과 같은  말로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혤라어로 같은 말로 했지만 그것은 다 원어  성경입니다. 원어 성경이라면은 지금 박아낸 것도 천년 전에 베껴 낸 것도 다  원어 성경이고, 또 원본 성경은 한 권뿐인데 원본 성경을 고대로 베껴낸 고것을  가리켜서 베낄 사(寫)자, 사본성경 이라, 또 번역한 것을 번역 사본 성경이라,  그러면, 원본 성경을 베껴서 사본 성경이 됐고 사본 성경 그것을 많이 이제  기계로 가지고 이와같이 발달이 돼서 많이 박아낸 그런 것을 가리켜서 원어  성경, 번역 성경이라. 원어 성경, 번역 성경보다 사본성경이 앞에 있었고 사본  성경보다 원본 성경이 앞에 있었는데 '원본 성경은 몇 권입니까? 한 권뿐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온 원어를 배우지 안했기 때문에 원어 배운 사람들에게, 그  원어 배운 사람들, 원어 아는 사람들의 지시에 기합을 당하기 쉽다 말이오. 전부  기합을 다 당해 나와.

 '원어는 이렇다' 이래 말하는데 실은 원어에는, 원어로 말하면, 구약원어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다 이천 사오백 년, 오륙백 년 전, 칠팔백년 전, 또, 삼천  몇백 년 전 그때에 말이기 때문에 그때 말은 아주 옛날 고전어입니다. 아주 옛날  말입니다.

 옛날 말이기 때문에 옛날 말 한 마디를 가지고 그 다음에 그 말을 그것  가지고는 불편해 안 됐으니까 그 말을 자꾸 이렇게 다시 더 편리하도록 증가하고  증가해서 지금은 한 단어가 몇십 단어로는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몇십 단어로  다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단어는 이런 것 저런 것 다 세밀히 되지마는  그때 단어는,  예를 들면은 '문' 하면은 문을 열라 말도 '문' 문을 닫으라 말도 '문' 문을  반쯤 열라 말도 '문' 문을 뽈끈 잠그라 말도 '문' 전부 문입니다. 문 한  마디뿐이라. 문 한 마디인데 문 한 마디는 수십 가지를 '문' 하는 것 한 마디  가지고 다 하기 때문에 불편해. 그러면 그때 옛날 고전어는 그런 것입니다.

 그 말과 지금은 '문' 하면 문을 닫아라, 열어라, 조금 닫아라, 또 매닫아라,  활짝 열어라, 또 뺄쫌하게 열어라, 또 문에 대해서 뭐를 문을 고아라, 또  잠그라, 그 문에 대한 게 많지마는 옛날에는 '문' 하는 고 하나뿐이라 말이오.

 이 새들이 지금 말하는 거 '짹' 하면 그거 뿐이고 이런데 그거 가지고 다  저거들이 이제 거기에서 짐작해서 알아 가지고서 이래 듣는 것처럼 그런 것이  옛날 고전어요 성경의 원어기 때문에 원어가 그렇게 '미개한 어이기 때문에  원어에 정확지는 못해.

 그러기 때문에, 그 원어를 보고서 하나님께서 참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이런 말  저런 말로 번역을 해 가지고서 내라고 했는데 그 원어를 보고서 번역을 할 때에  그 번역하는 사람에게 성신에 충만하면 그 번역이 그 근본 뜻에, 원어에  가까운게 아니고, 근본 듯에 가깝고 믿음이 없었으면 근본 뜻에 완전히  탈선되구로 그래도 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 원어로 말하면 비유컨대 이 예배당과 같기 때문에 '예배당' 하지마는  '예배당' 하지마는 '예배당 이층' 이래 말하지마는 예배당 이층은 저 구석도  예배당 이층, 저 구석도 예배당 이층, 가운데도 예배당 이층 전부 예배당 이층  아닙니까? 예배당 이층인데 예배당 이층에는 '예배당 이층' 하면은 '예배당  이층에 내가 그 물건을 놨다. 가져 오너라.' 그러면 예배당 이층이면 여기 놨다  말이요 저게 놨다 말이요, 여기에 놨다 말이요 저게 놨다 말이요 어데 놨다  말이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시계를 예배당 이층에 뒀으니까 가져 오너라 이라면은  시계가 예배당 이층 어데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여기에도 있을 수 있고 저게도  있을 수 있고 어데 놨는지? 여기에 놓은 것도 예배당 이층이라 할 수 있고 저게  놓은 것도 예배당 이층이라 할 수 있고 저게 갖다 놓은 것도 예배당 이층이라 할  수 있고 가운데 놓은 것도 예배당 이층이라 할 수 있고 강단에 놔도 예배당  이층이라 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배당 이층' 하면은 그렇게 범위가  넓어서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고 저렇게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번역이 마귀가 번역하면 번역하는 것이 백 팔십 도로 다르게 그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 원어를 가지고서 말하는 원어에 기합을 당하지 말아요.

기합을 당하지 말고 그저 원어에는 정확하고 뭣을 말해 놨는데 된 줄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게 그런 게 아니고 원어는 아주 옛날 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배' 하면은 사람 배도 배, 타고 다니는 것도 배, 먹는 것도 배.

배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은 고걸 좀 더 구별해 가지고서 그저  사람 타는 배. 또 배는 무슨 그 이름을 해 가지고 무슨 함이라든지 이렇게  붙이고 또 그거는 과일 배를 이렇게 그렇게 말하지마는, 이래 해석해 놨지만  '배' 하는 말만 가지고는 그 '배' 써놨으면 그'거는 한 마디에 무슨 배를 말한지  모른다 그 말이요.

 원어라는 거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미개어요 아주 미개어요  고전어기 때문에 그 고전어 그것만 가지고는 아주 바른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겨우 이렇게 이루어 놓은 그걸 가지고서 자꾸  그것만이 정확하다고 이렇게 자랑하는 사람은 고것도 배암의 요 성질을 가지고서  고거 사람을 유혹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그래 물었어. '그러면 원어에는 뭐라고 말했노?' 그러니까 원어를 많이 아는  사람들이 우리 성경 말씀을 보고서 이 깨달아 말하는 것을 원어 학자들이 그걸  잘 몰라.

 그러면, 왜 이 사람들이 이걸 모르고 여기 확신을 못 가지고 이래가지고 있는  고 해서 내가 알아 봤어. 원어에는 어떻게 돼 가지고 있나? 사람의 영이니  하나님의 영이니, 또 말이 옛날 고전어기 때문에 이렇게 그걸 이런 말로도 돼  가지고 있고 저런 말로도 돼 가지고 이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뭣인지 구별하지를  못해.

 이러니까, 원어에 보면 이걸로 말해야 될 건가 저걸로 말해야 될 건가? 원어  학자를 파고 들어가 보면 성경을 모릅니다. 다만 성경을 전부, 신구약 성경을  많이 읽고 깊이 연구하고 성경 그 자체를 많이 읽고 많이 연구하고 또 자기가  실행해 본 사람이라야 비로소 성경에 대한 바른 뜻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원어 가지고 사람들이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원어는 구약을  히브리어라는 말이고 신약은 헬라어라는 말인데 신약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천 한  구백여 년 전, 모두 천 구백 척 년 전에 말로 가지고서 이 신약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천 구백여 년 전 말이니까 그 말이 얼마나 고전어며 얼마나  미개어며 얼마나 발달되지 안한, 그 말이겠는가 말이지, 이러기 때문에. 그 말  가지고는 잘 몰라요.

 그러니까, 성경을 아래 위로 자꾸 많이 읽고서 그라면 성경을 많이 읽으면  거기에 대해서 이것은 뭣을 가르친 거다 뜻을 알게 되고, 또 거기에서 자기가  실행을 해 보면 이건 뭘 말한 것이라 알게 되기 때문에 성경은 많이 읽고,  읽어서 전 성경을 알고, 또 그 성경대로 자기가 실험을 해보고 실지로 행해 보고  이건 가운데서 성경에 이 도리를 밝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전 이거는  성경, 다른 학자들이 말하는 것만 자꾸인 읽지,  신학자 쳐 놓고는 성경을 한 번도, 일 독도 안 한 그런 신학 박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 ○○○목사님이 미국 가서 나한테 편지 온 거는 그랬는데,  뭐라고 편지가 왔느냐? 여기에 오니까 신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공부하는 그것이 신학이라 하니까 이 사람들이 모두 다 온 학교도 웃고 학생들도  다 웃고 그거 참 그게 아니라고서, 그게 아니라고.

 신학은 신학이라는 학이 있는데 그 신학이라는 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신학이라  하는 것은 저 사람은 이렇게 말했고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고, 열 명이 말한 그  열 명이 말한 신학을 알면 그만치 유식하고 유력하고 또 이십 명이 아는 신학을  알면 더 유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그것을 아는 그게  신학이지 하나님 신(神)자 배울 학(學)자, 이라니까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공부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라든지 그게 신학이 아니다.

조롱을 하고 웃고 모두 비웃더래요. 그렇게 변질이 돼 버렸어.

 변질이 됐는데, '그라면 이거 성경 공부하는 것 아니면 성경은 그라면 여기에서  많이 읽지 않습니까?' 물으니까, '성경 그라면 얼마나 읽어 봤습니까?' 이라니까  성경은 자기가 공부하는 것만 뜨문뜨문 몇 군데 읽어 봤지 성경은 한번도 내리  일 독 해 본 일이 없대요. 성경 신구약 일 독 한 신학자가 말지를 못해. 신학  박사 중에는 성경 일 독 한신학자가 많지를 못해.

 이러니까, 그 신학은 신학이라는 학, 과학은 과학이라는 학, 이거, 또 뭐  논리학은 논리학이라는 학, 수사학은 수사학이라는 학 이 모두 그런 모든 학과  같이 이것도 하나의 신학이라는 학문이지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공부하는 그런 학이 아니라 그러며  웃더랍니다.

 웃는데, 그때 그런데 그 ○목사가 그랬지마는 거기에 얼마 있고 지나가는  가운데에 지금은 그분도 그때와 같은 깨끗함이 그것이 없어졌어요. 왜? 유식하기  때문에. 이 많은 것을 듣고 이라니까 그때 그렇게 말한 것 아마 그 본인도 그때  내가 그런 무식한 말을 했다 그때 그런 유치한 말을 했다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실은 그러나 유치한 말이 아니고 고게 참 진짜라 말이오. 고게  진짜. 고게서 변동되어 나가지를 안해야 돼요.

 지금 그분이 어떤지는 모르지마는 아마 그때 말할 때에 그걸 지금 오히려 그때  유치한 소리 했다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를 거야. 그래 내가 요번에 언제 요번에  오면 한번 내가 기억이 나면 물어볼 거라. '○목사님 그때 나한테 편지를  이리이리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래 한번 내가 기억만  나면 내가 물어볼 거야.

 물어보면, 그분도 그때 하던 생각이 그것이 그때 유치했다고 생각할는지 그게  진짜로 생각할는지, 이렇게 자꾸 변해 나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길바닥에 뿌린 씨가 요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길바닥에  뿌린 씨가 많은 사람의 그 지식에게 다져지고 다져져서 강퍅해졌다 하는 요렇게  깨닫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하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석에서 잘 찾아  보지를 모두 못 해요.

 이러니까, 성경을 바로 아는 연구하는 방법 중에 성경 연구하는 방법 중에 제일  연구법이 뭐이라고 했습니까? 제일 좋은 연구법이 뭐라 했어요? 학습 세례  문답에 다 하지 안했어요? 거기에 뭐라고 했어요! 학습 받은 사람들 다 알 것  아니라? 여기 ○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에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고게서  자기가 바로 깨달을 수가 있지, 성경을 읽고 그대로 실행하는 데에서 바로  깨달을 수가 있지 다른 방법이 없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여기 학습 세례 문답할 때에 그 모두 공부해 가지고 답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게 쉬운 게 아니라. 그런 소리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그거는 틀렸다고  이렇게는 못 해도 모두 비웃을 것이라.'  책상 위에서, 어릴 때부터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서 아무리 이렇게 공부한다  해도 그거 가지고는 성경을 모릅니다. 꼭 성경은 실행을 해야 압니다.

 그러면, 사무엘은 어떻게 거기에서 성전 안에서 그랬노? 사무엘은 성전 안에서  그는 말씀을 들은 대로, 하나님 말씀 들은 대로 꼭 실행을 했습니다. 실행하니,  실행하고 실행 안 한 말씀이 하나도 없이 전부 실행하는 가운데서 그가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깨달음이 정확 했었어 뭐 시간이 많이 갔는데 이거 참, 여러분들이  많이 읽어 보십시오.

 이래서, 고만 여자가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요것도 '참으로' 하는 데에  '참으로' 하는 요 배암 말에 해와가 그 유혹을 받았다는 증거가 뭐입니까?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먹을 수 있으나' '임의로 먹되' '먹되'하는 것과  '먹을 수 있으나'하는 것과 이 말이 아주 천지의 차이 있는 것을 여기에서  깨달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먼저 어떤 중국  신학자가 한 뭣을 책을 가지고서 그때 우리 교역자회에서 그걸 모두 다 읽으라고  내가 그랬어. 그걸 내가 역부로 읽으라고,  읽어 가지고서 그것을 판단을 하라, 읽어 가지고 요 속에 내용의 뜻을 파악을  하라 이라니까 이 대학 졸업맡은 사람들, 모두 학사 학위받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깨닫는 것이 둔하고 근방에 가지도 안했어. 그 깨닫는 데에는 ○○  목사 깨달음이 제일 나았어. '○○ 목사 깨달음이 제일 낫다. 너희 봐라. 어째  이러냐?' 말을 해 주면 알아.

 우리가 이러기 때문에 사람 말을 듣는 것이, 사람 말의 껍데기가 분류할라 하면  열 껍데기도 더 됩니다. 껍데기만 듣는 사람, 껍데기 속속껍데기 듣는 사람,'  속속껍데기 듣는 사람, 마지막에 속에 속에 알맹이 듣는 사람, 그렇기 해문에  듣는 것이 다르다 그 말이오. 듣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상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제가 그 사람된 걸, 제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말에 나타내지 안하고 속으로는  마귀지만 걸어머리로는 아주 천사처럼 이렇게 말을 할라고 해도 자기 말에서 그  자기라는 사람이 나오지 안하지 않습니다. 다 나옵니다. 또 자기 행동을  감쪽같이 그 행동을 아닌 것으로서, 나는 동으로 갈 자가 서로 갈 듯이 아무리  이렇게 말하면 안 나온 것 같지마는, 사람의 말에는 안 나온 것 갈지마는,  아니야. 그 속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나오고 어떤 계획이라는 것도  나오고 어떤 목적이라는 것도 나오고 그것이 다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우리가 정확히 배워 가지고 하는 데에는 이  세상에서,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사람을 지도할라고 하면은, 참 지도자가 될라고  하면은 양쪽 말을 듣고 지도를 해야 됩니까 한쪽 말을듣고 지도해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양쪽 말을 듣고 지도해야 됩니까 한쪽 말 듣고 지도해야 됩니까?  양쪽 말 듣고 지도해야 된다는 사람은 껍데기 사람이라. 한쪽 말 듣고 지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한쪽 말. 듣다니? 제가 잘했다고, 제가 잘했다고 이 사람을 자꾸  이사람 말만 듣고도 그 사람 잘못한 것을 그것을 발견을 해야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을 줄 아는 이걸 사람이 알면은 그만 유혹을 안  받는데,  이러니까 거짓말은, 보십시오. 이 해와가 저를 죽일라 하는, 저를 죽이고  망칠라고 온 이 배암은 당장에 친해지고 저를 영원히 책임지고 살리시는  하나님은 당장에 배암의 말 한 마디에 착 배반하고 멸시하지 안했소?  이러니까, 멸시한 증거가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시한 증거가  어데 나타납니까? 말에 대해서 좀 뭘 아는 상바른데 ○○○장로님, 배암의 말에  이 해와가 하나님을 그만 무시해 버린,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화된 변질된 것이 뭘 보아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변질된 것이, 하나님과  변질된 것 이. ○○○ 장로님은 말귀를 잘 알아 듣는나고 내가 알고 있는데,  말귀를 잘 알아 듣는다 말은 고 말에 대해서 각도, 모새기, 말 모때기를 잘  알아 듣는다. 말 요 모태기 조 모태기 그 말에, 둥글둥글한 말이라 이래 그런 게  아니라 말의 속에 요 모때기 조 모때기, 요 구석 조 구석, 요 구멍 조 구멍 말  한 마디 속에도 구멍도 여러 구멍이 있고 모때기도 여러 모때기가 있고 또 면도  그래 있기 때문에 말의 각도를 안다 말은 말에 대해서 고게 모때기 안다 그  말인데 모때기 안다 말은 구멍도 알고 높은 것 낮은 것 다 그걸 안다 말이오.

말을 알아들을 줄 안다는 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자꾸 이래 배우니까 이 사람들이 이거, 말은 여기 설교  듣고 나서 다른 데 가서 설교는 들으면은 그것은 누워 자다가 설교 듣고 나서  다른 데 가서 설교는 들으면은 그것은 누워 자다가 들어도 들을 수 있다 하는데  여기서는 벌써 내가 여기 삽십 칠 년째인데 삼십 칠 년을 가르쳐도 항상 말하면  몰라. 그게 끝이 한없이, 그래가지고 그런 걸로 자꾸 사람이 이와같이 지금  그러기 때문에 딱 말을 듣고 난 다음에 같이 교역자회 말할 때도 저 사람 말하는  것 보고, 말하면은 '그거는 우리 이 총공회를 아끼는 말이다. 총공회를 허는  말이다. 조거는 총공회 대적이다. 총공회를 지금 꺾어 버릴라고서 하고 있는  것이다.' 고것을 한자리 앉아서도 요래 듣는 사람 조래 듣는 사람 고것을 진상을  속에 고것을 하나님이 보신 대로, 하나님이 고 사람 말듣고 고 사람을 비판하고  평가한 대로 고대로 정확히 하는 고 사람이면, 고 정확히 하는 고 사람이 신앙이  높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도 암만 기도해 봐야 그 기도가, 기도를 하기를 잘하든지  못하든지 기도하면은 효력은 있는 것은 무슨 효력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기도하면 잘못하든지 잘하든지 기도하기만 하면은 기도의 효력은 있기는  있다했는데 그 효력 있는 효력은 무슨 효력이라고 했습니까? 뭐? 한번 일어서서  해 봐. 왜? 다른 사람', 한번 고함을 한번 질러 봐. 일어서서 고함을 한번 질러,  저리 보고. 향! 향수 향! 기도를 향이라 했다 말이오.

 향은 어데 필요합니까? 향이 그것이 영양에 필요합니까? 그것이 내몸을 따시게  하는 데 필요합니까, 어데 필요합니까? 악취를 제하는 데에만 필요합니다.'  악취를 제하는 데만 필요해.

 그런데, 기도를 향이라 하는 것은 기도함으로 그 사람이 자꾸 죄짓는 그것이  적어진다 그 말이오. 암만 나쁜 기도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그 사람이 죄지을  그런 연구는 못 한다 그 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 기도는 달라요.

 하나님을 향해도 하나님이 선한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에,  '악을 줘 살인하게 해 주옵소서. 살인하게 해 주옵소서.' 이 소리는 못 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선한 줄 알고 기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슨 기도하더라도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줄 수는 없지마는 자기가 향은 된다 그 말이오. 자기에게  더러운 것이 자꾸 풍기는, 악취를 풍기는, 더러운 악과 독을 풍기는 그거는 되지  못한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나, 실지로 하나님 앞에 구해서  하나님이 들어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응답 기도는 못 한다  말이오. 응답 기도하는 사람은 고 이치를 알고 이치를 따져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이치를 따져서.

 요렇고 요렇고 요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이거는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성경에 딱 맞춰서 이렇고 이렇고 이렇지 않습니까? 이런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성경을 따져 가지고서 성경대로 요러니까 요렇게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하는 고거는 하나님이 변동 못 해. 하나님이  어기지 못합니다. 못 어겨요.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기도할 때에, 이스라엘을 마구 전멸하고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겠다, 출애굽기 32장에 그렇게 하니까 모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여 만일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들을 이렇게 이렇게 구윈한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 섬기게 한다고서 인도하지 안했습니까? 하나님이 말해 놓은 게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인도하셔서 하나님 섬기구로 한다고 해 놓고 여기 와서  조금 잘못했다고 고만 그걸 전멸을 시켜 버리면은 하나님 마음이야 개운할지  모르지마는 모든 세계 인류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꾀우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하나님을 보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겠습니까?' 이라니까 하나님이  입이 딱 막혔다 말이오. 그래 할 수 없어서 '네 말 듣고 내가 그만마음을  돌이키겠다'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도 꼭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이치에 딱 맞은 대로  고대로 해 가지고 옳은데 서 가지고서 옳은 것을 기도해야 되지, 그래 과부의  기도라고 그 잘못 깨달으면 과부가 기도하는 그 기도, 과부의 원한을 갚아 줬다.

과부가 법관에게 기도하는 것이 그게 이치에 맞은 기도입니다.

 왜? 법관은 그 지방을 통치할 책임을 지고 있고 시비를 갈라 줄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이 법관이라. 이 법관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관 직책 가진 자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런 억울한 일이 있으니까 이일을 밝혀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이거는 법관이 안 밝혀 줄 수 없어. 고게 법대로의 기도요,  법대로의 기도. 정확한 기도요 사리에 맞은 기도라. 그러기 때문에 그 법관이  무례한 법관이지만 안 들어 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제일 고게 중요한 것이 열심을 가지고 하는 것, 열심하는 거는  껍데기고 속에 알맹이는 꼭 말할 자에게 말하고 말할 것을 말하고 정확 무오한  것을 하는, 진리가 고 기도 속에 알맹이고 열심이라는 거는 그 껍데기 내나 옷과  같고 살과 같은 것이고 뼉다구는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런데, 여러분들이 여기 보면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요게서 벌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누리했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정확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했다 말이오. '각종 나무의 실과를 먹되' 했는데 고거 그만 변해져  버렸어.

 고라고 난 다음에 '중앙에 있는' 요 '중앙에 있는' 요것도 또 보탰다 그  말이오. '중앙에 있는' 하나님은 '중앙에 있는' 말 안 했거든. 이랬는데 제가 또  보탰다 말이오.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만 말씀을 또 인제 더 보태서 이제 그만 하나님 말씀세  대해서 털끝만치도 정확 무오한 이 하나님으로 섬기지 안하고 그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 말씀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벌써  어누리하고 가감하고 이렇게 막 혼돈시키는 이 일했다, 하나님 완전히 무시했다  말이오.

 요라니까 '죽을까 하노라' '정녕 죽으리라' 이랬는데 '죽을까 하노라' 요게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요 정확합니까? '정녕 죽으리라'하는 이거는 '정녕  죽는다' 말은 절대 죽는다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런데 죽을까 하노라'  이라니까,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 뱀이 처음에 해와에게 말한 것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과 어떻습니까? 벌써 뱀이 해와의 입으로 나온 그 고백을 보니까 약을  먹어서 약이 취했다 말이오, 뱀의 약을 먹고, 유혹의 약을, 이간 붙이는 이간의  약을 먹고 벌써 이간에 약발을 받았다 말이오. 이간의 약발을 받았어.

 이라니까, 고다음에 말하기를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눈이 밝아' '눈이 밝아' 하는데 이 눈이 밝는다는 말이  거짓말입니까 눈이 밝아집니까? 눈 안 밝아질 걸 밝아진다 합니까? 눈이 참말로  밝아집니까? 눈이 밝아집니까? 저 보로꾸 장사 집사님 성이 뭐이지? 자, '너희  눈이 밝아' 이말이, 눈이 밝아진다 말이 이게 안 될 것을 한 말입니까 참으로  눈이 밝아질 것을 말합니까? 눈이 밝아질 것을 말했어. 눈이 밝아질 것을. 고  다음에 왜? 7절에 보니까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그들의 눈이 밝아' 눈이  밝아졌다 말이오. 이 밝아지는 것은 그러면 어떤 눈이 밝아졌습니까? 어떤 눈이  밝아졌소? 어떤 눈이 밝아졌지요?  요것도, 요 눈이 밝아진 것은 하나님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는  눈, 또 하나님의 주권을 보는 눈,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보는 눈, 하나님의  심판을 보는 눈,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사를 보는 눈이 딱 감아졌고 무슨 눈이  밝아졌느냐 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된다.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고 자기 힘으로 뭘 해야  된다. 자기는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해야 되지 자기가 자기 일을 해야 되고 또  자기는 자기가 행복되게 해야 되고 자기는 자기가 보호해야 되고, 그러면 자기  힘을 보는 눈이 밝아졌소.

 자기의 능력을 보는 눈이 밝아졌소, 자기의 불행을 보는 눈이 밝아졌소, 자기를  보는 눈이 밝아졌어. 자기가 자기를 보는 눈이 밝아졌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눈은 어두워져 버리고 자기가 자기의 그 벗은 것을 보는 눈, 자기의  벗은 것을 보는 눈, 또 자기 힘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가지고서 입어야  된다는 그걸 보는 눈,  그러면 자기가-요거 어려워요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되는 눈이 밝아졌고  자기를 책임지실 하나님이 자기를 책임지시는 고 책임지심을 보는 눈, 하나님이  자기를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 요거는  보는 눈이 어두워져 버렸어 이러니까 이제 제가 제 책임지다 보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필요없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되고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할 수 있고 자기가 자기를 보호할 수 있고 자기가 자기를 위할  수 있고 하는 고 눈이 뜨여졌으니까, 고 눈이 뜨여졌으니 하나님 필요가  차차차차 적어집니까 많습니까? 하나님이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필요 없어,  누가 필요해, 자기에게는 누가 제일 필요합니까? 자기에게 누가 필요 하요?  하나님이 필요합니까? 자기가 필요합니까? 자기가 필요해. 요 눈이 밝아졌다  말이오.

 그런데, 배암 요놈은 고 해와의 심리를 작전해 가지고 심리를 이용해가지고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된다' 눈이 밝아진다 하니까, 어리석은 아직까지  유치한 고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서' 요렇게 말하면서 해와의 지식 정도로서는  요렇게 받아 가지고 요렇게 깨닫고 요런 사람이 될 것이라' 하는 고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 심리의 정도를 알아서 이용을 해 가지고서 고렇게 작전을 했더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그럴 때 '눈 밝아? 밝으면 좋지.' 또 하나님같이 돼.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된다 하니까 하나님같이 되면 커집니까 작아집니까,  하나님같이 되면? 네가 요걸 먹을 때에는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된다,  하나님같이 된다 하니까 그러면 아담이 높아집니까 낮아집니까? 아담이  높아지지요, 커지지요. 커지는데 그러면 하나님같이 된다 하니까 고게 무슨  말입니까? 선악을 아는 게 하나님같이 된다.

 하나님은 선악을 어떻게 아시느냐 하면은 하나님은 하나님 가까이 하면 선  하나님 멀리 하면 악, 하나님 좋아하면 선 하나님 싫어하면 악, 하나님에게  복종하면 선 하나님에게 거역하면 악 이렇게 하나님은 선악을 규정합니다.

알겠습니까? 선악을 이렇게 규정하요.

 규정하는데,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이 선악을 규정하는 거와같이 그 선악을  규정하고, 선악을 견해하고, 선악을 정의하고, 선악 정의가, 선악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 가까이 하면 선 멀리하면 악, 당신 좋아하면 선 당신  싫어하면 악, 당신에게 따르면 선 당신에게 거절하면 악 이랬는데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으로 선악에 대해서 이렇게 규정을 짓는데,  자, 사람이 선악에 대해서 이렇게 규정지어서 자기에게 가까이 하면 선,  멀리하면 악, 자기를 따르면 선, 자기를 배반하면 악, 자기를 좋아하면 선,  자기를 싫어하면 악, 이 사람이 그렇게 선악을 판정을 해 놨으니 그게 망하는  길입니까 사는 길입니까? 망하는 길이요 사는 길이요? 요것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듣고 아는 그거는 쉬운데 듣고도 알면 장하요. 듣고도  모르면 안 돼.

 선악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된다 하니까 고만 이 배암한테 꼬이기를 '네 눈  밝아진다' 요게서 꼬여졌고 또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

하나님같이 선악을 안다. 선악을 규정지우기를 하나님이 선악을 이렇다 말한  거와같이 인간이 선악을 그렇게 판단하면은 인간이 죽습니까? 망합니까?  왜? 하나님은 당신, 가까이 하면 선 멀리하면 악, 당신 좋아하면 선 당신  싫어하면 악 이라는데 왜 사람은 나 가까이 하면 선 나 멀리하면 악, 나  좋아하면 선 나 싫어하면 악 그렇게 하면 뭐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왜 못  합니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집사 뒤에, 어째 그래요? 그 묘한 말  했는데, 어째 할 수 없어?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을 중심해서 이와같이 지금  선악을 결정 지우는데 왜 사람은 자기를 중심해서 그 선악을 결정 못 지웁니까?  저 ○집사, 왜 하나님은 선악을 그렇게 규정지울 수 있는데 왜 사람은 그렇게  규정지을 수가 없느냐 말이요, 정의를 할 수 없느냐 말이요? 저 ○○씨, ○○  씨인가 나는 뭐 이름을 잘 몰라요. 나는 하나님 말씀 외에는 나는 기억할라고  생각지 안해. 그러니까 우리 교회 근 십 년 된 집사도 나는 성을 다르게  부릅니다. 혹 다르게 부르면 실례가 아닌가? 아, 실혜는 또 모를 수도 있지  그거야 뭐 큰 거 아니라. 하나님 말씀 모르면 큰일 나.

 자, 어찌 그렇게 지울 수 없어? 말해 봐. 피동돼야 되겠다? 못 배웠구나. 우리  저 ○집사, 참 어렵다. ○○○, 고거야,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그분은  참이기 때문에 참을 멀리 하면 악 참을 가까이하면 선! 참을 좋아하면 선 참을  싫어하면 악, 하나님 자체가 완전이요 참이요 진리시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제 중심으로 살라고 이와같이  하고 있지마는 거짓된 인간을 중심으로 하면은 전체가 거짓되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어.

 김일성이는 김일성이 중심하라 하거든. 김일성이 중심하기 때문에 김일성이가  완전자라면 그는 중심하면 잘되지마는 그가 만물보다 거짓되기 때문에 중심하면  망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래 눈 밝은 것 이것도 자꾸 깨달아서 여러분들이 이제 자꾸 읽고  명상하고 고대로 실행해 사는 데에서 깨닫지 살지 안하면 깨달아지지를 못해요.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여기 반사 선생님들 지금 주일학교 학생들을 인도하는 데에 새로 한층  더 높은 구원 방편을 말씀했는데 높은 구원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뻐뜩 한번 들어 봐요. 주일학교 반사들 아니라도 알아야 돼. 그 방편이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새로 한번 들어 봐. 세 가지, 이 셋입니다. 셋. 셋이라요.

 마음속에서 길러야 되고, 하나님하고 둘이 협동해서 길러야 돼. 협동하는 거는  뭐이냐?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하고 협동해서 길러야 되고, 또 셋째로는 그를 잘  관리해야 돼. 잘 관리해야 돼.

 관리하는 것은, 관리하는 건 어떤 게 관리하는 것이요? 관리하는 것은 양을  관리하면 양하고 양 밖에 공기하고 조화를 맞추는 것이요 양밖에 사료하고  조화를 맞추는 것이요 양 밖에 풀하고 조화를 맞추는 것이요 양하고 거처하는  환경과 주위하고 맞추는 것이라. 양 자체와 그밖에 있는 관련된 데는 그와  조화를 바로 맞추는 것이 그것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관리 중에, 양과 양 아닌 양 밖에 것과 관리하는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뭐이라 했지? ○○○, 뭐이라 했지? 관리 중에 제일 중요한 관리가 뭐이라 했지?  ○○, 하나님과 관계? ○○○, 그거야 둘째 건데. 셋째  것은 자기 밖에 그  동무들 또 이웃 사람들 그거 또 저거 부모들 이게 다 이웃 아니요? 그 관계를  조화를 바로 맞도록 해야 되는데 제일 중한 것은 자기와 학생과 두 관계가  조화가 바로 맞아야 됩니다. 자기가 그 학생에게 하나님으로 보여야 되고 진리로  보여야 되고 자기 자체가 그 학생에게 가장 본이 될 수 있는, 모본이 될 수  있는, 날 보고 믿으라할 만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자체가 그 학생에게 온전한  사람으로 상대해 주는 것이 그것이 관리 중에 제일 관리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735 이단-여호와의 증인/ 로마서 8장 5절-11절/ 870525월새 선지자 2015.12.16
734 이단에 대해서/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840928금새 선지자 2015.12.16
733 이김을 주시는/ 고린도전서 15장 56절-58절/ 791102금새 선지자 2015.12.16
732 이계명-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30830화새 선지자 2015.12.16
731 이계명/ 출애굽기 20장 6절/ 89011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730 이간죄/ 창세기 3장 1절-19절/ 880205금야 선지자 2015.12.16
729 이간의 의미/ 창세기 3장 1절-7절/ 880206토새 선지자 2015.12.16
» 이간/ 창세기 3장1절-19절/ 880205금새 선지자 2015.12.16
727 이간/ 창세기 3장 1절-7절/ 880204목새 선지자 2015.12.16
726 이차 방편을 써보자/ 누가복음 5장 5절-11절/ 860905금새 선지자 2015.12.16
725 이 시대에 주신 복음의 증표 4가지/ 누가복음 13장 22절-30절/ 880314양성원개강 선지자 2015.12.16
724 이 세상 지혜를 미련케 하심/ 고린도전서 1장 18절-25절/ 880921수새 선지자 2015.12.16
723 이 복음의 가치/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60325화새 선지자 2015.12.16
722 의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자/ 이사야 26장 3절/ 86103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721 의인의 행위/ 마태복음 25장 34절-41절/ 820314주후 선지자 2015.12.16
720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시편 1장 6절/ 880820토새 선지자 2015.12.16
719 의인의 간구/ 야고보서 5장 16절/ 790731화새 선지자 2015.12.16
718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860420주새 선지자 2015.12.16
7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860416수야 선지자 2015.12.16
716 의인생활/ 로마서 1장 17절/ 860426토새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