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을 주시는

 

1979. 11. 2. 금새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56절 - 58절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사람이 죽고 망하는 것이 죽고 망하는 것이 어떤 인간으로나 또 어떤 피조물의  권세로나 되는 것 같으면 그걸 대항해서 그보다 강하면 그것을 면할 수가 있는데  사람이 죽고 망하는 것은 그 원인이 삐뚤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삐뚤어져서  삐뚤어진 값으로 망하는 것이요. 죽는 것이요.

 이러니까 삐뚤어졌으면 삐뚤어진 그 값이 있어야 되고 또 삐뚤어져 망하는  그것은 그 진리인데 그 어떻게 달리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인간이 망하는  것은 삐뚤어져 망한다 삐뚤어져서 죽는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벌써 세상 모든 지식은 온전치 못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온전타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지식을 가진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삐뚤어지면 망한다  이것을 기억해서 안 삐뚤어지도록 해야 되지. 삐뚤어진 것을 제가 수단으로  무엇으로 덮고 가리면 그 삐뚤어진 것이 그것이 고쳐지겠습니까? 그걸 고쳐야  되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그러면 삐뚤어졌으면 어디 삐뚤어졌단 말인가?  공산주의에 거슬려서 삐뚤어졌단 말인가? 민주주의에 삐뚤어졌단 말인가? 어떤  강한 세력에게 그 주장에게 철학에게 철학에게 뭐 불교니 이종교의 모든 그  이종교의 법칙에 삐뚤어진 건가 그게 아닙니다.

 어디 삐뚤어졌는고 하니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졌어. 하나님의 법은  지성법입니다. 가장 평가적인 법이란 말입니다. 지성법 이란 말은 가장 평가적인  법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비교하고 아무리 따지고 아무리 서로 비교하고 탐하고  이렇게 따져도 그 이상 좋은 법이 없고 그 이상 바르고 곧고 깨끗한 법이 없고  완전한 법이 없는 그 면을 가리켜서 지성이라 그 이상이 없이 구별하고  구별해서도 구별해서 최고의 법이라 하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인간들이 하는 말이 다 이 법에 다 정죄를 받습니다. 이  법이 너는 이 면이 틀렸다 저 면이 틀렸다 이종교가 다 이 법 앞에 다 정죄를  받습니다. 모든 인간의 지식이 이 법 앞에 정죄를 받기 때문에 그 형편을  가리켜서 666이라 했고 하나님의 수를 7수라 했습니다.

 지성 지성법에 어그러졌기 때문에 이 법 이상이 없소. 이 법보다 권위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천하에 있는 법이 다 달라 들어 가지고 이것은 안 되겠습니다.

옹호를 하고 그 대변을 한다 할지라도 이 법 위에 더 평가하여지고 더 옳고  참되기 때문에 모든 법

이 이 법 앞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고 이 법 앞에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가장 평가적이요 가장 비교적이요 가장 비판적으로써 그 이상이 없는 이  지성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이 법에 어긋나서 사망하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도  탈출할 법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구출할 법이 없소. 지성법이기 때문에.

 또 이 법은 지공법입니다. 지공법이란 말은 이 법에 활동성을 말하는데 이 법에  활동성을 말하는데 이 법은 창조주와 수많은 종류의 그 피조물 어느 존재에게도  이 법은 다 공평 돼. 이 법은 다 정당해. 어느 한 존재에게도 억울함이 없고  치우침이 없고 전부가 공평 되었소.

 이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 창조주와 피조물 모든 존재가 하나도 이 법에  대해서는 내게는 억울하다 어느 것에게는 후하고 내게는 박하다 어디로 치우쳤다  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지공법입니다. 그러기에 이 법에 거슬리면 모든 존재가  다 대적하요. 이 법에 거슬리면 모든 존재에게 다 거슬리는 것이요 이 법에  거슬리면 가장 옳고 바르고 참된 최고의 그 권위를 가진 이 평가적으로  비판적으로 최고의 위치를 가진 이 법에 거슬려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할 도리가  없소. 그 외에 수많은 법이 있지마는 이것은 그저 몇 사람이 모여 가지고 저거만  표준해서 낸 것들이요, 또 어느 정도의 조그마한 그 지역이 그 지역만 보고 아  종류적으로도 몇 종류만, 공간적으로도 적은 그 어느 모퉁이, 비교적으로도 만  개가 있으면 한 서너 가지만 비교해 보아서 수많은 걸 비교하지 못했고,  이러니까 그까짓 법이야 뭐 인간이 어둡고 좁아서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 제대로가 이기 옳다 이래 가지고 하지마는 그 밖의 수많은  존재들이 있는데 여기에 전부 공평을 때리면 모든 법을 그것은‘내게 불만하다.

그것 내게 억울하다.’억울하다고 말하는 존재가 없는 법이 없소.

 이런데 이제 하나님의 법은 강제의 윤리가 아니고 자유적으로 모든 존재가‘그  법은 내게는 억울하다. 그것은 잘못되었다.’이렇게 송사할 것이 없는 지공의  법이요, 아무리 비교하고 평가하고 해도 이 이상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이 없는  지성의 법입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이 지공과 지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은 그 연구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보면 다 정죄할 수 있는 것들이요, 다 거기  치우친 것들이요, 전체가 모든 그 거기 있는 지체 그것이 제 왕국을 만들어  가지고 제 욕심을 위주로 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지 하나도 자기 아닌 타를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뭐 가치로 여길 것이 없고 그저 세상에 있는 이종교,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것은 아는 것이 아주 좁고 허무하지 않소. 이러나  세상에 있는 법이라 하는 것은 나도 정죄를 당할 수 없소. 하나님 내비두고 그  피조물 그거로 본다 해도‘너는 이것은 공평되지 않다.’ 공평되지 않다는 점을  들어내서 정죄 할 수가 있고,‘이것을 봐라.’평가하면‘이것은 이만 못하지 않나.

이만 못하지 않나. 이만 못하지 않나.’ 하는 것을 들어서 정죄할 수 있다 그거요.

 이것도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구 해 보면 이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다른  존재들의 그 주장하는 법에 공평성과 또 그 평가성 구별성 이것을 연구하면 남의  일은 냉정하기 때문에 잘 압니다. 남의 일은 냉정하기 때문에 잘 알아요.

 자기 아닌 타의 것을 냉정스럽게 연구해 가지고 연구해 놓고 자기를 한번  들어내 봅니다. 자기를 그 저울에 한번 들어 얹어 보요. 자기를 그 먹줄로 한번  땡겨 보요. 땡겨 보면 자기에 생각이라든지, 주장이라든지, 욕심이라든지,  사상이라는 것이 이것이 정죄 정죄 우 정죄, 삐뚤어지고 삐뚤어지고 얼마나  삐뚤어지고, 얼마나 치우쳤고, 얼마나 좁고, 얼마나 소규모고, 얼마나 편벽 된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자기가 자기를 정죄하게 됩니다.

 이러면 그것이 무엇에 설 것이라고 그것을 들 수가 없소. 설 것이라고 그것을  주장하고 쓸 수가 없소. 이러니까 아는 자는 이것을 다 자기가 정죄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소.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를 심판해서 하나님의 그 공심판은 주의 구속으로 면했지마는  사심판은 지금 우리가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 사심판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심판해서 정죄 할 것 정죄 하고 수정할 것 수정해도,   바울은 이렇게 수정해서 수정할 것이 없는데 이만하면 안심이다 하고 수정할  것이 없기 때문에 탄식을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 지능으로 수정할 것이 없기  때문에 탄식을 했소. 왜? 자기는 아는 범위가 좁지마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지성 지공법을 가지신 이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검사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몰라서 못 고치는 거기에 대해서 탄식을 하고 머리가 ( ) 이렇게 지성법과  지공법에 삐뚤어져서 망하고 죽게 되었으니,   이 사망은 이 사망은 누가 주는 사망입니까? 이 사망은 누가 주는 사망입니까?  이 사망은 지성법과 지공법에 삐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주신 사망입니다.

사망이요. 그러면 하나님만 주시는 사망입니까? 피조물이 주는 사망입니다.

피조물이 그렇지 않소?   우리가 집 한 채를 지을려고 해도 집 짓는 주인은 제 욕심대로 지으려 합니다.

제 욕심대로 지으려고 그만 이웃 집 경계고 뭐이고 할 것 없이 벽을 딱 들여  붙여서 지으려고 이러지마는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안 된다’옆에 그 사람이  있다가‘왜 내 땅을 침범하느냐?’이러니까 주먹을 가지고 와서 싸워대니 이제  그 사람이 고발한다 그거요. 고발하면 사람 주먹 보다 센 이제 그 관청에서 나와  가지고‘봐라 네가 남의 땅을 침범했으니 이거는 네가 잘못되지 않았느냐? 이것  뚫어 드려라.’그게 사망이라 그 말이오. 그 침범했던 것이 자연히 거기서 쫓겨  나와야 될 것 아니겠소.

 요새는 이제 그것보다 더 합니다. 땅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햇빛 가지고  사는데 햇빛이 안 들어오니까‘이것 안 된다.’시비를 해 가지고 그 시비가  성공이 되어서 이웃끼리 아주 그림자를 안 줄 수는 없지마는 그 햇빛을 가루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는 햇빛이 비치도록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 전에 짓던  것보다도 훨씬 집을 작게 짓게 되었다 그 말이오.

 그게 다 뭔가 하면 그게 다 공평에서 나온 것이라 공평에서.

이런데 우리가 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이 지성 지공, 지성법은 하나님에게만  관련되지마는 지공법이라 하는 거 이것은 모든 존재에게 다 관련이 다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사망을 하나님이 주실 뿐 아니라 피조물 중에 그것은 내게  거슬리기 때문에 안돼. 나를 침략하기 때문에 안된다. 내게 해를 주기 때문에  안된다. 나도 나 라는 당당한 존재의 그 존재성이 있고 존재의 권위가 있는데 왜  나를 침범합니까? 왜 나를 침범하는 걸 이것 다 하나님 놔 두십니까? 안된다  그거요. 그것은 (죽어야 되지) 그것은 없어져야 되지 없어지는 것이 망하는  것이요 죽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랬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우리 주” 우리  주란 말은 우리 주란 말은 우리를 책임졌단 말이요.

 (○○○목사님 안 보이네. 그게 틀렸어. 그 미국 바람만 들면 일 년도 안 돼서  그래 변해지는 거 보면 몇 해 있어도 안 변해지는 사람은 굉장히 가치 있어. 그  양심이 없어. 다른 사람 다 오는데 뭐 저만 뭐 뭐이 나은고. 그러면 이제  무너져요. 미끄러져요.

 그 동안에 못 배웠으니까 그만침 떨어졌는데 사실은. 그만침 무능해졌는데  아직까지도 사람이 완전히 회복이 안 됐어 내가 보기에는. 회복이 안됐는데 뭐  무슨 핑계로 그러는고. 그 교학실에 전화 해 오늘 아침에 가서. 내가 말해  건방졌다 한다고서.

 제가 뭐인데 그 동안에 거석 했으니까 안 일이지. 미국에 가 돌아다니며 이리  돌아다니며 뭐 바람치는 소리를 누가 모를 것이 ( ) 다 모르는가. 제 밑구멍  심사를 ( ) 제가 저 아는 거 보다 내가 더 알고 있는데. 교만하면 망합니다.

 ○○○ 목사님도 오늘 아침 보니까 와 있는데 그 창원 간 그것도 뭐 그거  때문에 가려면 의논도 하고 하지 ( ) ○○○목사님 여기 며칠 참석 안 했습니까?  새벽기도 한 번 안 했소. 한번 못했지. 그것도 교만이라 뭐이 잘났는데 뭐이  됐는데 되기를. 틀렸어 틀려. 그걸 고쳐야 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우리 주라 말은 우리를 책임지신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지성과 지공법에 이탈돼 가지고 사망하는 것인데 이 사망에서 우리를  책임지시고 구원 할려는 이분이 천하 인류가 다 달라 들어서 책임져도 헛일,  피조물 전부가 다 뭉쳐 가지고 나를 구출할라 해도 헛일, 다만 자존하시고  창조하시고 주재가 되시고 지공 지성에 완전 영원 불변의 이분이 이제 이 일을  책임지신 것을 느끼면 우리 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할 때에“우리 주”주님이라는 이 주님에 대해서 깨달으면  주님이 이 주님을 자기가 모시고 주님이 자기에게 있게 된 일이 뭐 온 천하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어떤 세력이라도 거기에 제재 받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이만하면 이기고 풍성함을 가지고 마음에 만족함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이 큰 세력입니다. 큰 배경입니다.

 “우리 주 예수” 이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신 것은 지성법과  지공법을 해결 지운 것이요. 지성법,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당신의 마음은 두 군데 밖에는 간 일이 없소. 당신의 마음은 두  군데 밖에는 간 일이 없소. 당신의 영도 두 군데 밖에는 간 데가 없소. 당신의  몸의 세포도 신경도 두 군데 밖에는 간 데가 없소 두 군데.

 어데? 하나는 지성에 갔어. 위로 지성에 하나님의 그 지성법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전부는 다 지성법에 가서 그 지성법에서 아무리 구별하고 구별해도  하나님 다음의 위치, 그 지성법을 능가한 지성법 위 하나님 우편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는 지공법 모든 피조물이나 하나님이나 그는 어떤 면이 모자란다고 할 것이  없는 이 지공법에 만족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과 지성법과 지공법과 모든 피조물 이  전부에게 만족을 일으킨 하나라도 불만이 없는 만족을 일으킨 대속 입니다.

사죄도 그러하고 칭의도 그러하고 화평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속죄 제물로 번제물로 번제물은 우리에게 칭의를 주신 것입니다. 화목  제물로 예수님이 되셔서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하는  이 율법에 만족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로마인서 8장에 율법에 만족을 이루셨다고 하는 것이 이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그리스도로 말미암아”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도성하시기 전 하나님의 성호인데 그리스도가 우리 구속을 시작해 가지고 예수의  구속을 일으켰고 예수의 구속을 일으켜 놓은 그 다음을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구속이 다시 인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구속이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나왔소. 예수님의 구속이  그리스도의 구속에게 인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무도 몰랐는데 신정 국가에서 장립 시킬 때에 선지자 장립을  시키면 기름을 부어서 장립을 시키고, 제사장 장립을 시킬 때에 장립을 시키면  기름을 부어서 장립을 시키고, 왕의 장립을 시킬 때에 기름을 부어서 장립을 시켜.

기름 부음은 제사장, 선지자, 왕 이 세 가지 신정 국가인 그 행정에서 이렇게  했는데,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이라는 뜻인데 곧 이 세 가지로 인간의 말로 할 수  없으니까 그 형식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장립 시킬 때에 기름 붓는 것으로써  그 형식 계시로 나타내 가지고 이 문서 계시의 뜻을 우리에게 짐작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리스도의 역사는 도덕면에 완전, 지능면에 완전, 이  완전이지마는 그 완전이 위로는 하나님께 연결되고 옆과 밑으로는 모든  피조물에게 연결되는 그 도덕 완전입니다.

 제사장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도 아니요. 그때는 소규모로써 신정  국가의 이스라엘 백성을 예를 들면 한 손에 쥐고 하나님을 한 손에 잡고  이래가지고 중간에 중보 역할로 이 도덕의 사랑에 이 면을 해결 지우는 것이  제사장 위치입니다.

 선지자 위치도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쥐고 거머줬고 한 손으로는 사람을 잡고  하나님의 그 지혜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이 중보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왕의 직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에 통치를 받아 사람을 통치하는 그 사이에 끼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인데 전부 이것이 모든 존재와  관련이 다 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는 것이 왕이었지마는 신약에  와서는 보면 만물 가운데 충만케 한다는 하늘의 것과 땅에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의 것과 전체가 다 내게서 다 전부 통치입니다.

 하나님과 전 존재와의 그 중보 위치에서 통치, 그 의무와 책임을 갖게 되고, 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에 지혜 지식에 모든 모자라는 것을 다 책임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그 하나님의 완전한 본질과 본성 그 피조물과 다른 그것을  비치하는 그 중보의 위치를 책임진 이것이 그 그리스도의 직인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완전하시고 이러니까 이  하나님이 이 세 가지 직책을 우리로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  하시려고 나신 이 분이기 때문에 우리 주는 일차적으로 하늘에서 영원 전에  목적을 정하셨고, 다음에는 예수님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대속을 하시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셔 가지고 책임을 져서 보증인이라,  보증자라. 이 일에 책임을 지시고, 또 이 진리가 책임지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이  넓고 깊고 크고 길고 심히 윤곽적이며 심히 세부적이라 하나도 빠짐이 없는,

 이러기에 이것을 달리 말할 수 없어 광대하다는 말을 그저 그 말이 될런지 안  될런지 모르나 광대하다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서  고쳐 나가지만 그 어디까지 뻗쳐나가는지 우리는 측량 못할 만치 이렇게 넓은  범위에 이렇게 되신 역사이기 때문에 광대하신 구원 뜻에 광대한 구원 역사라  이런 말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여기 우리란 말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여기 우리는 예수님이 다  포함되었습니다. 여기 우리라는 데에는 하나님이 책임져서 그게 두셨고 우리는  거기에 책임지여진 당신의 것이 되어서 요 합해서 우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이 중보자 까지를 포함해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우리에게 이김을 주셨다 이김을 주셨다, 주신 것이면 벌써  과거사인데 주실려 하면 미래사인데 이김을 주시는 하는 것은 이미 이김을  주셨고 영원히 이김을 계속해 주시는 것을 대해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분이 아니면 이김을 주었단 말은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사망의 해를 면하게 했단 말이요. 다른 말로 말하면 이김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과 또 그 다음에 둘인데 뭐지요?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과 이것은 법이고 실상의 것이 둘 있는데 뭐입니까? 녜, 하나님과  피조물입니다.

 이제 이김을 주시는 이 넷에 대해서 해결을 주셨고 영원히 해결을 주실 이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제는 여기 하나님이라는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사랑하는 형제들아”“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그 말이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전부를 다 주시기로 계약되어 있고 다 받을 수 있는  이 위치를 이 권세를 받은 형제들이라 그 말이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견고하단 말은 여기에서 삐뚤어지지 말라  말입니다. 요 지성과 지공에 딱 맞혀 놓았고 본체로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딱  맞혀 놓았기 때문에 요 조그만 삐뚤어지면 그만이라 안돼. 여게 삐뚤어지지  않도록 해라. 삐뚤어지지 않도록 해라.

 견고하라 말은 하나님 떠나고 저 혼자 뭐 결심을 하고 결심하고 뭐 어짜고 하라  하는 그 말 아니요. 여기에 삐뚤어지지 않는, 여게 이탈되지 않도록, 여기에  떨어지지 않도록, 여기에 삐뚤어지지 않도록, 여기 금이 가지 안하도록 해라 그  말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거기에 삐뚤어진 한 삐뚤어져 가지고 하는 행동은  전부 이거는 방탕입니다. 흔들린 것이요 다 흔들렸다 말은 정체가 없단 말입니다.

아무 책임자가 없단 말이요.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주의 일이 뭐이냐?  요게 주의 일입니다. 거기에 많아 가지고 거기에 있는 것이 발산되는 중보 역할,  어떤 중보 역할, 제사장, 선지자, 왕 중간에 서 가지고 창조주와 피조물에 중간에  서가지고 역사하는 그것이 주의 일입니다. 그게 우리 구원 이루는 일이요, 그것이  자기 성화 되는 일이요.

 우리의 성화 일은 뭐이냐?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의 자격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 시간이 다 가서 내일 아침에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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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860420주새 선지자 2015.12.16
7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860416수야 선지자 2015.12.16
716 의인생활/ 로마서 1장 17절/ 860426토새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