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되어 복받으려면

 

1987. 1. 9. 새벽 (금)

 

본문:갈라디아서 2장 16절∼21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저 앉는데 언제든지 앞에 와서 앉는 것이 더 좋고 또 앞에서 차례로 앉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으로 보면 여반은 인제 길이 들어서 각단지게 앉아 나가는데 남반은 요 줄만 저 끝에까지 앉고 여기는 비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자유성이 강하고, 자유성이 강한 그게 완패입니다. 그게 낡아져 그렇고 더러워져 그렇고 패해져 그런 것입니다.

이 안에 들어오기는 싫고 저는 가에서 앉았어야 그만 딱 마치면 제 자유로 이 줄이 비었으니까 이래도 나갈 수 있다 하는 그런 약빠른 것만 생각하니까 그놈이 내나 옛사람 그놈인데 그놈을 예배 시간에도 죽이지 못하고 고거 주장대로 다 하는 그것이 무슨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죽여야 구원이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말은 그러면 자기가 이 구원에 죽는다 말이오. 죽지 안하면 안 돼. 자기가 죽어야 예수로 살지요. 어짜든지 믿는 일에 대해서는 그 믿는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로마인서 12장 1절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하는 말씀은 자기는 살아 있지마는, 제물이 어데 산 제물이 어데 있습니까? 제물은 다 산 짐승을 잡아서 죽여서 제단 위에 올려 놔야 제물이 되는 것이지.

살아 있으나, 산 제물,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완전히 죽어버리고 예수님으로 사는 이 일이 기어코라도 돼야 됩니다.

되지 안하면 항상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이름만 다르지 불교 믿는 사람이나 뭐 다른 이종교 믿는 거나 꼭 같습니다.

여게 갈라디아서를 많이 읽어 보라고 늘 말하는 것은 갈라디아서에서 제일 중하게 다룬 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는 그 행위 가지고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하는 그것을 제일 강하게 주장을 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멸망을 받는 것은 뭣 때문에 멸망을 받느냐? 죄 때문에 멸망받고, 또 악령 때문에 멸망받고, 또 사망의 권세 때문에 멸망받고, 또 하나님의 이 모든 율법이,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법이라면 법이요 복음이라면 복음인데, 율법이 정죄를 해서 멸망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으므로 멸망을 받고, 또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영감대로 살지 못함으로, 연결되지 못함으로 영감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함으로 진리로 살지 못하는 요 일곱 가지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멸망받는 거는 그렇다고 당장 죽는 거는 아니지마는 요 일곱 가지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축복도 받지 못하고, 은혜도 받지 못하고, 이 능력도 받지 못하고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할 때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뭣이 있는고 하니,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사이에 어떤 것이 가운데 놓여 있는고 하니 하나님의 지공법 심판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심판 문제가 해결이 돼야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멸망을 받지 안하지 멸망할 만한 그런 원죄, 본죄, 하나님 배반,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와 합작, 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이런 것으로 사는 이 전부 전체가 멸망받을 것만 가득히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뭐 빠진 것 없이 멸망받을 것 가득히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해결을 지워야 하나님이 복을 줄 수 있지 어떻게 멸망 뭉텅이에다가 하나님이 복을 주며, 죄 뭉텅이에다가 복을 주며, 또 마귀하고 합작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복을 주며, 또 사망의 종이 되었는데 어떻게 복을 주겠는가? 복을 못 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렇게 가로막혔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줄라 해도 은혜 줄 수 없고 또 하나님이 도와 주실라 해도, 도와 주실 능력이 얼마든지 있지마는 도와 주실라 해도 도와 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지공법을 범하고 있지, 하나님 배반하고 있지, 마귀하고 합작되어 있지, 또 죄를 범한 원죄와 본죄가 그대로 죄가 있지, 또 정죄받아서 벌써 사망 아래에 있지, 악령 아래에 있지, 언제든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고 있지 이러니까 여게다가 하나님이 도울 수도 없고 하나님이 복을 줄 수도 없고, 이게 뚜렷이 이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밤낮으로 우리를 송사한다” 그 말은, “마귀가 우리를 송사하는 송사자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해 놓은 것은 마귀란 놈이 자꾸 이 일곱 가지를 가지고 우리를 송사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지공법을 범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데, 나와 하나가 돼 가지고 있는데, 이걸 구원할라면 나도 구원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와 나와 하나돼 가지고 있는데, 나와 꼭 같은 자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서 이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나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까?’ 마귀란 놈이 항상 송사합니다.

또 ‘이는 죄를 그대로 짊어지고 있고 원죄와 본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사망의 정죄를 받고 있는 자가 아닙니까? 내나 제 욕심대로 살고 제 주장대로 사는 악으로 사는 자가 아닙니까?’ 자꾸 이렇게 송사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공평된 하나님인데 하후하박을 할 수가 없는 하나님인데 누구는 후하게 대접하고 누구는 악하게 대접할 수가 없고 꼭 공평되게 일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일곱 가지의 이 죄가 마귀와 꼭 같이 돼 가지고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구원하고 마귀는 그렇게 정죄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우리 구원하고 마귀 구원하고 마귀 정죄하면 우리도 정죄해야 되겠고 꼭 이렇게 된,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하시고 구원하시고 또 하나님의 그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와 동행을 할라고 하면 문제가 뭐이 돼야 되느냐 하면은 우리들이 흠과 점이 없는 의로운 자가 돼야 됩니다. 의로운 자가 안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갈라디아서는 이 중요한 것을 다룬 간단하나마 아주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성경이기 때문에 이 갈라디아서는 일반 사람들은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교리사라’ 그렇게 말하고 또 `이 성경은 자유를 주는 자유의 율법이라. 이는 생명을 주는 생명의 법이라.’ 이렇게 아주 보배롭게 이렇게 가치 있게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갈라디아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온갖 것을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받아야 되고, 축복을 받아야 되고, 도움을 받아야 되고, 보호를 받아야 되고 뭐 전부 하나님에게 받는 것만 가지고 우리가 모든 일이 성공이 되지 제 힘으로 하나도 되지 않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우리는 받아야 될 사람들이요 하나님은 주고 싶어서 못 견디는 하나님이십니다. 독생자를 죽는 데 내어주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고 또 우리는 받아야 하고 이렇게 되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도 주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계명 지키다가 불 가운데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불 내음새도 나지 않도록 그렇게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할 능력이 있지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이 일곱 가지에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데 죄를 어떻게 도우며, 마귀하고 합작돼 있는 걸 어떻게 도우며, 하나님을 원수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도울 수가 있으며, 그가 벌써 사망의 정죄를 받고 있는 자를 어떻게 도울 수가 있는가? 도울 수가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도우시지 죄는 돕지 못한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알아아 됩니다.

다른 성경들은 대개 말하면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람을. “이러기 때문에 죄인이라, 이렇기 때문에 죄인이라, 이렇기 때문에 죄인이라.” 모든 죄인이라는 것을 자꾸 이렇게 가르쳐서 ‘우리를 율법 안에 가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정죄를 하는데 “네가 이리 이렇기 때문에 죄가 있지 않느냐? 이래 죄가 있지 않느냐?” 죄를 다 말하는데 그러면 이렇게 죄가 있는 자는 하나님은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하나님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멸망시키는 것이 본질이요, 본성이지 죄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돕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과 원수된 자를 자꾸 돕고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가 있는 자에게는 멸망시키고 죄없는 의로운 자는 하나님이 얼마든지 도우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시고자 하는 대로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과 도움을 입지 안하면 안 되는데, 또 하나님도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뭐 물이 해하지 못하고, 불도 해하지 못하고, 사자도 해하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세력도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지켜 보호하시고 이렇게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든지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뭐 무한히 줄 수 있는 무한한 것을 다 가지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계시는데 다만 주지 못하는 이유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가 죄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멸망을 자꾸 세월이 갈수록 받지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것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자기 힘으로써 뭐 이것 저것 살라고 해 봤자 인간 힘이 그까짓 거 얼마나 됩니까? 경제면이라도 말이요, 물질면이라도 제 힘 가지고 물질 해결지울라고 해 봐야 일생 동안 죽자껏 해 봐야 빌딩 한 채도 못 삽니다.

○집사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열심히 일했지? 열심히 일했는데 재물 얼마나 모아 놨지? 자기 집이 있어? 자기 집 하나 샀어? 얼마짜리? 천오백만 원짜리, 천오백만 원짜리 하나 샀다 말이오. 그래도 그거 놀랍구만. 그것도 말이요, 천오백만 원짜리, 아마 지금 나이가 약 사십 안 돼 가나? 서른일곱? 서른일곱이면 사십에 서이 모자라네. 그런데 제법 벌어서 천오백만 원짜리. 자, 그러면 많이 벌어 봤자 그저 뭐 몇천만 원, 일억짜리 그런 것밖에는 못 합니다. 그 알뜰히 해서 그렇지요.

그런데, 자기 힘으로 뭐 할라고 경제면도 해 봐야 몇천억도 못 가지고 뭐 찍해야 땅으로 말하면은, 집이 몇 평짜리요? 대지가 몇 평이라? 열세 평. 열세 평.

이제까지 죽자껏 벌어야 열세 평. 그래 경제면으로든지, 지위면으로든지, 권세면으로든지 사람이 자기 힘으로 뭣을 다 할라고 이래 애를 쓰는데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 봤자 참 굼벵이가 걸어가는 것같이 성공이 그래 걸어가지 그까짓 거 볼 것 없고 그것마저 또 어찌되느냐? 그렇게 성공해 놓은 그거마저 어찌 됩니까? 그거마저 마지막으로 멸망입니다.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멸망이라.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계에 뭐 갑부가 되고 무슨 큰 나라를 다 점령을 하고 정권을 잡고 이렇게 했다고 할지라도 예수 밖에 것 그거 다 마지막에는 다 뺏기고 내놓고 하나도 제것 없어.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 힘으로 뭣을 해 가지고 경제면이나, 자기의 지위면이나, 실력면이나, 권세면이나, 환난을 다 벗어버리는 면이나, 모든 것이 행복된 면이나, 좋은 것을 건설하는 것이나, 나쁜 것을 던져버려 치료를 받는 것이나 이런 일을 제 힘으로 할라고 하는 사람은 골이 암만 빠지게 해 봤자 내나 멸망 가운데서, 팥이 참 뭐 삶겨져도 솥 안에 있다 해. 솥 안에 팥이 솥 밖에 어찌 나가요? 그 가운데서 그라다가 말지.

이거 모양으로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 힘으로 뭘 할라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참 자기 목적한 대로 성공을 못 합니다. 울어도 못 하고 힘써도 못 하고 아무래도 못 합니다. 참고 견뎌도 못 하고 열심히 해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마지막에는 다 원통히 후회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성공하는 길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이 밀접한 관계를 딱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모든 것 다 되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축복 받으면 얼마나 부자가 된다고 성경에 말해 놨습니까? 얼마나? 세계 모든 민족 위에? 그것뿐이라?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니라” 영계와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주고 싶어서, 주고 싶어서 하나님은 항상 근심 걱정, 우리는 받아야 될 이 거지기 때문에 항상 비틀거리고 있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네가 네 힘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네 힘으로 암만 살라고 해 봤자, 암만 해 봐도 하나님의 율법은 한없는 율법이 되기 때문에 네 힘으로 암만 할라고 해 봤자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항상 네딴에는 행한 것이 살펴보면 죄고, 살펴보면 죄고 전부이 멸망하는 자살 행위, 자멸하는 행위 외에는 인간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이외에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공짜배기로 받는 것은 이런 모두 다 영생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을 다 받는 하나님의 후사로 부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금생에도 많고 내세도 많고 영원에도 많고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자기 지식이 어리니까 필요한 것이 요만치 있지마는 지식이 좀 더 많아지면 또 필요한 게 이만치 있어. 지식이 더 넓어지면 더 필요한 게 더 많습니다. 더 많습니다. 지식이 커 갈수록이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 더 많고 또 지식이 자라갈수록이 치료받을 것이 더 많습니다. 또 치료 받아야 될 멸망이 있는 게 더 많애. 멸망이 더 많애.

그러면 자꾸 사람이 살아갈수록이 지식이 늘어갈수록이 멸망이 더 커지고 또 필요한 건 더 많아지고 이러니까 사람이 살아갈수록이 자꾸 고민 번민 고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린아이들 얼굴은 보면은 다 쪽 펴여 가지고 얼굴이 빤빤하지마는 나이가 한 오십 세 이상, 한 사십 세 이상 된 사람은 마구 얼굴이 전부 막 쭈그러져 가지고, 늙어서 쭈그러진 게 아니라 그 살이 많이 있어도 막 얽혀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그 마음에 찌푸려, 속에 번민 고통 항상 불안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 가죽 껍데기로 피부에 나타나 가지고 그런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철때기가 없는 제일 그 젖먹는 어린아이는 평안하게 살고 또 나이가 많아갈수록이, 젖먹이 그놈보다도, 그놈보다는 다섯 살만 먹어도 그것이 벌써 피부에 고통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있소. 다섯 살 먹는 놈보다 열 살 먹는 놈은 그 고통이 더 많다는 것이 피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피부라는 건 속에 있는 것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되는가? 그것은 저거 지식이 자꾸 자라가니까 자기에게 해결 못 하는 문제가 많아지고, 치료받을 문제가 많아지고, 필요한 것이 많은데 필요한 것도 소원대로 안 되고, 치료 받는 것도 소원대로 안 되고, 모두 벗을라 하는 것도 안 되고 자꾸 난제만 자꾸 하나씩 둘씩 더 발견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

이러니까 사람들이 소견들고 난 다음에는 생활한 다음에는 잘 시간도 없고 놀 시간도 없이 밤낮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그저 마음에 이런 구상 저런 구상에서 항상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가 마지막에 멸망을 받고야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놀 사이가 없어. 한 스물 살 먹는 그런 거는 마음먹고 놀 수가 있지마는 나이가 많아갈수록이 놀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갈수록이 세월이 잘 지나갑니다. 나이가 많아갈수록이 세월이 잘 지나가고 젊을 때는 세월이 더뎌요.

자, 제일 세월이 더딜 때가 언제인지 알아? 세월이 잘 지나가지 안하고 세월이 잘 지나가지 않을 때가 그 아마 어릴 때 한 일학년이나 될 때는 그렇지마는 자꾸 올라갈수록이 세월이 빠릅니다. 빠른 것은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이 문제 할라 하니까 바쁘다 그 말이오. 암만 그래 봤자 다 사망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 그 말은 삐뚤어진 거는 다 사망이라, 뭐. “삐뚤어진 건 사망이라” 그런데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 공짜배기로 받는 거는 이거 전부 영생이라. 공짜배기로 받는 것은 전부 풍성해서 무한하고, 공짜배기는 무한하고 풍성하고 또 삐뚤어진 거는 죄라.

그러니까 사람은 삐뚤어진 걸 하든지 은혜 받든지 그뿐이라. 삐뚤어진 거는 뭐이 삐뚤어진 건가? 자기 힘으로 자기가 살라고 하는 것은 전부 삐뚤어진 것만 만들기 때문에 이건 멸망밖에 못 만들어.

은혜는 뭐이냐? 하나님 앞에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은 다 은혜라. 은혜인데, 하나님께서도 공짜배기로 아낌없이 막 다 줄라 하고 우리는 그건 참 주시면 좋겠는데 이런데 사람들이 공짜배기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죽자껏 해 봐야 삐뚤어진 것밖에 없기 때문에 자살 행위밖에는 안 돼.

그러면, 자살 행위밖에는 안 되는 그 삐뚤어진 것을 해 가지고 멸망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 앞에 이 해결받지 못한 일곱 가지 무서운 삐뚤어진 거, 자꾸 하루 살면 그놈만 더 많애지고 이틀 살면 그놈만 많아지고 자꾸 많아지는 사람이고, 또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인가?○○○조사님, 어떤 사람이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이지요? 은혜로 받는 사람 그거야 은혜 해석이지. 은혜로 받는 거는 공짜배기로 받는 것이지. 은혜로 받는 거는 공짜배기로 받는 것인데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은 어떻게 그 공짜배기로 받을까? 공짜배기로 받는 사람이 그 사람이 참 부자요 그 사람이 거석한데, 공짜배기로 받기를 다, 멸망은 다 싫어하고 공짜배기를 받기를 다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공짜배기로 받아 가지고 모든 면이 무한히 부요하고, 무한히 평안하고, 무한히 강하고, 무한히 능력 있고, 무한한 보호를 입고, 무한한 행복과, 생명도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자 하는 이 소원을, 이 소원, 은혜로 줘.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주는 거는 그렇츰 좋은 것 주십니다.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건 그렇게 좋은 걸 주십니다. 자기 힘으로 죽자껏 할라 해 봤자 안 되는 사람은 그거는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은 죽자껏 해도 자살 행위밖에 안 돼.

멸망밖에는 안 돼. 공짜배기 받는 사람은 그렇게 부자가 되고.

그러니까 자, 공짜배기 받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공짜배기 받기는 다 받고 싶어. 공짜배기 받고 싶은 사람. 하나님이 또 공짜배기를 주려고 주고 싶어서 애가 닳습니다. 하나님은 주고 싶어 못 견디고 우리는 받고 싶어서 못 견디는데 왜 못 받고 못 주느냐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공짜배기로 받을라고 하면은 은혜로 받을라 하면은 어째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공짜배기를 주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모든 것 다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하는 이유는 뭣 때문에 주지 못하십니까? 주지 못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멸망을 시킬 수밖에 없는,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그 안팎이 전부 다 멸망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멸망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으니 멸망 덩어리를 하나님이 멸망을 시킬 수밖에 없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피해 있다고. 알겠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있을 수 없고 피하는 게 제일 수라. 왜? 안 피하면 당장 멸망시켜야 되기 때문에 피해야 되겠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께 공짜배기 은혜를 받을라면 하나님하고 친밀해져야 될 터인데 이 멸망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은 암만 ‘아버지’ 암만 ‘주여 주여’ 해도 하나님은 피해야 되지 가까이 할 수 없어. 가까이 하면 멸망시킬 수밖에. 멸망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멸망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멸망 외에는 주시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피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이 모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멸망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뭐이 돼야 되느냐? 의의 뭉텅이가 되면은 하나님이 막 주십니다. 의의 뭉텅이가 되면 우리에게 막 주시요.

또 우리는, 우리가 모든 그 원수 그런 걸 우리가 벗고 싶으면 이 멸망 뭉텅이만 벗어버리고 내가 의의 뭉텅이로 변화만 돼 버리면 즉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멸망시킬 그런 건 싹 일시에 제거 다 해 버려. 일시에 다 제거해 버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얼마든지 주십니다.

이런데, 이러니까 우리는 요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면으로 흠과 점이 없는 의롭게 되는 이거 외에는 딴게 없다 말이오. 의롭게 되는 이 의만 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구덩이 가운데서도 불 내음새도 나지 않게 구원 받은 그거는 뭐이냐? 불이 멸하지 못해. 어찌 멸하지 못하느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어떻게 불이 멸하지 못했습니까? 못한 이유가 뭐겠소? 멸하지 못한 그 이유를 우리가 배우면 우리도 모든 불행의 세력들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를 해하는 세력들이 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어떻게 해서 그 으례히 불에 태워 죽여버리는 건데 해치는 그 불이 해하지 못했는가? 뭐 때문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해하지 못했는가? 다니엘을 뭣 때문에 사자구덩이에, 사자가 옆에 있으면서도 다니엘을 잡아먹지를 못했는가? 뭣 때문에입니까? 뭣 때문에요?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믿음이라 그렇게 말해.

믿음이 뭐 하는 건데? 믿음이 의입니다. 믿음으로 의를 받았습니다. 믿음이 그런 게 아니고 믿음으로 의를 받았어. 의롭기 때문에 그거 된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은 뭐 얼마든지 주실 수가, 불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자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나 우리가 의롭게 되지 안하면은, 의는 뭘로 되는데? 믿음으로 되는데. 이제 믿음으로 되는 이 의를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니라” 알겠습니까? 이것이 인제 큰 능력인데 사람들이 이걸 참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갈라디아 2장 16절을 가서 자꾸 읽어서, 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디아서는 요긴한 성경이면서 이 갈라디아서에 대한 그 진리를 사람들이 잘 알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자꾸 갈라디아서를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읽어 가지고 외우고 그렇게 좀 연구하라 자꾸 그렇게 내가 하고 있는 건데 서서히 이래 조그매씩 조그매씩 가르치고 있는데 갈라디아서를 많이 읽으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이 성경을 저 성경이 해석해 주고 저 성경을 이 성경이 해석해 주기 때문에 성경을 다 많이 읽으면 해석은 저절로 되고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지 그 조그만한 한 토막을 읽어 가지고 자꾸 하면은 도리어 자기가 잘못 해석하면은, 베드로서에 뭐라 했어? 모든 예언을 잘못 해석하면은 멸망받는다고 하지 안했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성경 공부 열심히 해요. 저 연경실, 요새도 성경 입학하는 사람 많이 있어요? 요새 있어? 많이 있어? 하루 평균 얼마나 있어? 요새 한 오십 명 가까이 있어, 했으니까. 그러면 입학한 사람이 얼마나 돼요, 지난 주일 이후에? 지난 주일 이후에 입학한 사람. 입학한 사람. 오백 명? 사백 명 된 지 오래 안 됐는데 그후에 무슨 오백 명? 하루 오십 명이면 내가 수요일날 아침에 물으니까 사백 명 된다 했는데 그라면 수요일 날 입학했지 또 목요일 날 입학했지 이틀이면 하루 오십 명씩, 오십 명씩이니까 그 계산 맞았어. 그래 그래. 됐어. 똑똑하다. 어짜든지 많이 입학을 시켜요.

어제도 내가 ○○○장로님, ○○○ 장로 왔어요? 예. 어제도 ‘주일학생들 산에 데리고 가 가지고 좀 이 성경 공부 시켜 주고 하면 됩니까?’ 그래 된다 했는데 방학 때 뭐, 자꾸 방식을 한 방식만 쓸 게 아니라 이 방식도 저 방식도 죄되지 않는 방식 이 방식 저 방식 어쨌든지 방학 동안에 학생들을 주님의 사람을 만들어서 의로운 자만 만들어 놓으면 뭐 그까짓 공부가 뭐이요? 안 해도 하나님이 인간의 두뇌를 만든 하나님이신데 지혜와 총명이 있으면은 오만 거 다 됩니다. 그거 자꾸 자기 힘으로 뭐 할라고 말고 하나님 은혜로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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