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부스러기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5일 새벽(수) 

 

본문 : 요한복음 6장 10절∼1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6장 25절-27절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우리가 너무 듣기 어려운 하나님의 진수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 나갈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사람들이  듣고자 하고 또 알고자 해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냐, 내가 어떻게 하면 기독자로서 참 가장 복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크다는 것을 우리가 다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마음이 완패해  졌습니다.

 석가모니라든지 다른 뭐 공자라든지 노자라든지 이런 분들, 그런 분들이 인생이  어떻게 걸어가야 되느냐 하는 그 걸어갈 길을 찾아서 그렇게 헤맸지만 그 길을  찾지를 못해서 다 탈선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우리에게 이 올바른 길이 우리에게 생겨졌고 또 이 길을 알게 됐고 또 이  길을 뭐 누구든지 택자라면 못 걸어갈 게 아니라 다 걸어갈 수 있는 또 그런  모든 방편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대해서 우리 마음이 너무 강퍅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여기서 다른 사람에게 좀 부탁을 할라 하다가 나온 것은  그것입니다. 12절에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오천여 명을 먹였으니까 그까짓 거 뭐 부스러기 하나씩 그런 그까짓  거야 그게 뭐 그만 업수이 보고 그것은 의례히 털털 털어서 그만 그거는 버릴  터인데 주님이 그것을 버린 조각이 없이 다 주워라 거두라 하는 이것을 뭣  때문에 이렇게 말씀 하셨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 하나님에게 속한 것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그 은혜의 종류라고 하면 이런 것이든지 저런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주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라고 하면 그 은혜가 작은 은혜나 큰 은혜나  그 은혜 베푸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베푸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은혜  베푼 은혜 그것을 예수께서 열두 바구니 됐다고 떡 쪼가리 그까짓 것을 귀중히  여겨서 자꾸 그걸 주워라고 하는 그런 것 아닌 것입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드신 그 주님이 또 오병이어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먹었는데 뭐 떡 쪼가리  그것을 귀해서 그렇게 주우라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했고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떡 쪼가리를 멸시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떡 쪼가리를 부스러기라도 그렇게 천대하지 말아라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그것을 주신 아버지를 존중히 여기는 대우가  되고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관련된 그 관련점인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와 같이 귀중히 취급했던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별별 은혜를 다 받았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교역자로 말하면 보면 그게 뭐 순 아무것도 아닌 개망나니 같은 것이 예수님  믿어 가지고 예수님의 권능으로. 자기가 아마 목회자 되는 사람은 다 그랬었을  것입니다. 권능으로 참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 가지고 크게 역사하는 그런  역사를 안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증거하는 증거의  능력도 봤을 뿐 아니라 어느, 뭐 어느 부흥사 못지않는 그런 증거의 때도 자기가  경험을 했을 것이고 또 성경 깨달은 것도 자기가 성경보고 이럴 때에 참 어떤 대  성경학자가 깨닫지 못한 그런 것을 자기가 깨달은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데, 자기가 믿고 난 다음에 이거는 뭐 대부홍사가 되기까지,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제 말을 듣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회개를 하고 하는 이런 일들을  봐도 이것을 외식자가 돼 가지고. 그러니까, '아, 내가 이래 하니 모든 사람들이  듣고 감동 받는다' 감동 받는 그것만 제가 보고 '아, 내가 감동받게 했으니 나를  모두 다 저 사람들이 위대하게 보고 나를 따를 것이다' 또 거기서 언제 뭐 제  모가치 제 영광 챙기고 이러니 이래 가지고 한 번 두 번 해도 예사롭게 생각해  가지고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안하고 '뭐 설교해 가지고 한 사람 두 사람  감동되고 회개시키는 그것쯤이야' 그까짓 것 아주 천하게. 어떤 사람은 제  호주머니에 든 것 돈 만 원짜리 하나만치도 여기지 안하는 자 있습니다. 또 어떤  자는 그것을 자기에게 있는 자기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 있습니다. '아이구,  하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나를 붙들고 이래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그 은혜에 대해서, 그 은혜에 대해서 그 은혜를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그  은혜를 왜 소중히 여기느냐? 떡 그 열 두 바구니 주워 가지고 그거 뭐  했겠습니까? 그거 뭐 먹어 봤자 그렇고 암만 주워도, 거기는 잔디이니까 아무리  주워 봤자 티도 있을 것이고 이렇지만 그게 뭐이냐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존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베푸신 그 은혜에 대해서 은혜  베푸신 그 하나님이, 이거는 제가 보이는 무슨 장관이나 대통령이나 무슨 자랑해  쌓는 것 보면, 파출소 소장이 자기에게 어떻게 되고 뭐 소장 그런 사람이 자기를  좀 돌봐서 그 사람이 자기에게 좀 친근한 그런 것은 또 자랑하고, 그래 안 하면  어떤 사장하고 어떤 인물하고 어떤 경관하고 어떤 공무원하고 그런 사람들하고  이래 거석한 것은 그것은 뭐 털끝만한 것도 자랑을 할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래서, 저 촌에 가서 보면 장관 집안 아닌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국회의원 집안  하나도 아닌 사람 없소. 이거 그만 떡 만나면 아무 아저씨 아무 형님 뭐 이래  가지고, '아저씨라니? 누구 말이냐?' '아, 아무것이 지금 국회 의원으로 있는, 우리  아저씨입니다. 어쨌든지 그런 것 잘 팔고 그거는 잘 잊어버리지 안하고 말만하면  썩 나옵니다.

 이러나, 오늘 우리가 만유의 대주재 창조주 하나님, 주권자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 전능자이신 이분이 와 가지고 내게 베푼 이거는 그까짓 거 뭐 아주  똥같이 여깁니다. 아주 천해, 그까짓 거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천하게 여기는  요것이 저주받을 것입니다. 요거 오늘 아침에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그 은혜,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그분을 우리가 모르고 그분이 내게  은혜 베푸신 은혜를 이 것을 아주 천하게 여깁니다. 가치 없이 여기는. 이래  가지고 그렇게 고래 여기면 하나님이 저를 도구로 써 가지고 다른 사람은  구원할지라도 제 구원은 하나도 되지 못 합니다.

 거기 있는 아마 제자들이나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다 그랬을 것입니다. 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나머지기 부스러기 그래 모을라 하니까, 뭐 지저분한  부스러기라 하는 그것이 오천 명이 주웠으니까 열두 바구니 된 것이지. 뭐  콩알만한 것도 콩 반 쪼가리만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또 쌀내끼 만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다 '아 이것을 주워야 된다'  하는 그런 생각 가진 사람은 거기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았는데  그저 쌀내끼 같이 이렇게 부스러기 흐른 그것을 '아 이것을 주워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 그 말이오. 그것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은혜는 작든지 크든지 그  은혜보다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크십니다. '어떻게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내게 와 역사하시고 나를 붙들고 역사했습니까?' 그것을  찾아서 '이렇게 내게 역사하신 주님을 내가 잊어버리고 멸시를 했습니다. 주님이  내게 베푸신 그 은혜를 멸시한 것은 막바로 주님을 멸시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부스러기도 남구지 안한 것은 그 은혜를 소중히 여겼고 이렇게 은혜 베푸신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소중히 여겼는데 나는 그게 없었습니다' 하는 이것을 오늘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 앞에 대면할 수 있는 그게 될 것입니다. 요거 꼭  명심해서 들어야 됩니다. 보스래기 주우라는 그거 뭐이냐?

 또 그라고 하나 더 말할 것은 26절에 보면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그보다 조금 나은 것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은 그 떡 먹은 것  그게 위대한 일 아니고 큰일 아닙니까?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인 그거 대단히 참 큰 일입니다. 그것은 큰일인 줄 알지만 그 일을  나타낸 것은 그것이 뭣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그것은 그 표적이 나타내고  있는 그것은 볼 줄 몰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이는 역사 이것은 보이는 역사 중에 부스러기도 주님은  그것을 버리지 말고 소중히 여기라고 했는데. 또 보이는 역사 그것은 귀중히  여기지만 보이는 그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는데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고 주님이 모든 것도 하시는 것인데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알리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데 우리는 보이는 것  그것도 무시하는 아주 강퍅한 자가 되든지, 또 보이는 것은 그것은 귀중히  여기지만 보이는 것이 나타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우리가 관심 없이 거기  대해서 무시하는 이런 죄를 우리가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나 다 진리는 하나요. 부스러기를 줍는 거와 같은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이 은혜 역사에 자기에게 무슨 기도를 조그만한 그 어떤 병 나은 그런  기도를 들었다 할지라도 병 나은 그것만 보지 '아, 이 병 낫는 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낫게 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요. 자격이 있어. 벌써 병 나은  거 그거 '아, 이 병 나았다' 단순히 그래 하지 안하고 거기서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그 목적을 정하신 거기서부터 주욱 내려오는. 그 운동에서 그  나사렛까지 내려 오신 그거와 십자가의 대속과 또 우리를 완전한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만드실려고 우리를 중생케 해 가지고 한 이거, 이 은혜의 그 근원을 이래.

어떻게 큰 것을 언제든지 근원을 한목에 이래 들고 이와 같이 지극히 크시고 이  광대하시고 지극히 큰 능력이 와가지고 역사를 했다, 이러니까, 그분들이  사도들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앉은뱅이 나은 그것도 귀중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은 이걸 자꾸 말하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시기 위해 함이냐? 말해 주는, 이걸  말하는 것은 저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다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서 예정했다, 창조했다, 모든 것을 보존했다, 섭리했다, 도성인신해서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셨다, 이렇게 우주에 이 운동이 이 우주에 가득 찼어. 이  우주에 이 운동이 가득 찼고 모든 순서가 이 운동에 관련되지 않은, 이 운동을  위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는 그 모든 이 큰 것을 생각하니까 병 나은 그거는  하나 표적으로 보는 것이지 그것이 큰 것이 아니고, 어떤 능력이 어떤 운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이 큰 것을 한목 보는 눈, 그 눈이 있는 그것이 다릅니다.

그것이 성령의 충만한 표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깨달아 들어가는  이게 있어야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갈 터인데, 보이는 거 그것만 보고 마는 것도  주님이 책망했습니다. '네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보이는 그것을 인해서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으로 비교도 할 수 없는 측량 못할 보이지 않는 그것을  네가 잡아라, 그것을 찾으라 그 말입니다. 썩는 양식을 네가 상대하지만 말고  썩는 양식 그걸 인해서 썩지 않는 양식 그것을 내가 상대해라. 그러면, 반드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보이는 거 들리는 거 자기에게 접촉되는 거 자기에게  닥쳐지는 거, 뭐이든지 자기에게 뭐 자기 눈으로 보는 것도 있겠고 귀로 보는  것도 있겠고 또 자기 신경으로 이와 같이 보는 것도 있고 이러니까 어쨌든지  자기에게 접한 것입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접해서 안 그것입니다. 그것만으로써,  그것만으로 네가 상대하지 말아라, 거기 있지 말아라.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그것이 표시하고 있는 그 실상인 속의 그것.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네가 찾는 자가  되라 하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범사에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 한 마디 이래 했으면  그 사람이 나한테 나를 칭찬하니까 '아, 좋다' 우쭐거리고 올라가는 그 자도 미친  자입니다. 미친 자요. 칭찬하면 '이게 뭐 때문이냐? 이거 속에 뭐이 있느냐? 이게  속에 뭐이 있느냐? 그거 속에 귀신도 들었고 자기 아주 그만 감옥도 들었고  죽이는 사형도 들었고 별게 다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보이는 것으로. 들려지는  것으로, 접촉하는 것으로써 그것이 지금 무엇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의 알맹이가  무어냐 이것을 미루어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기독교의 신앙 걸음은  걷지를 못합니다. 이 기독교는 그렇게 껍데기 도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다윗도 자기에게 무슨 욕 한 마디가 왔을 때에 다른 사람이 있다가  그때 왕이니까 '저놈을 당장 죽이오리까' 하니까 다윗이 말하기를 '아니다. 죽이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시지 안하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안하면 그 사람이 그런 걸 하지 안한다. 이러니까,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떻게 껍데기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속단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못한다.' 금지했습니다. 그 사람 그 다윗도,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그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그 보이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보이는 것 그 이면에  뭐이 있는가 그 이면에 있는 그걸 잡고 상대했기 때문에 그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참 합당한 사람이라 그렇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오늘 아침에 한 말씀을 둘을 연관시키면 '아, 내가  성경을 볼 수 있다. 이 성경은 그렇게 모든 이종교가들이 그렇게 노력을 하고  힘을 쓰고 절제를 하고 또 선천 후천적으로 그렇게 모두 다 겸비한 아주. 아주  구비한 그런 사람들도 성경을 못 봤는데 내가 성경을 보다니' 이것이, 성경을  보니 '내가 성경을 이걸 봐서 인간 모든 도리를 알게 되다니' 이것을 '뭐 성경은  성경 다 보는 성경 그까짓 거, 아주 값 헐한 성경은 한 천 원만 주면 사는데' 천  원 가치로 이래 보지 이 성경을 자기가 자기 손에 들어와서 성경을 보게 된 데  대해서 자기가 놀라면서 깨달은 것은 천층 만층입니다. 그것이, 그것이 요다음에  부활할 때에 부활의 영광이. 형체는 같으나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하늘에 있는  형체도 있으니 형체마다 영광이 다르다, 권능도 다르다 한 거와 마찬가지로 '아.

하나님이 내게 성경을 주셔서 이 인간 도리인 성경 말씀을 내가 보다니' 거기에  대해서 그 가치성의 느끼는 것이 천층 만층입니다.

 또 자기에게 자기가 성경을 보니까 언제는 깜깜해서 깨닫지 못하는데 어떨 때는  그 성경이 확 깨달아집니다. 그러면, 깨달을 때는 네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깨달아지지 안할 때는 네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그 깨닫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자기도 볼 수 있고 또 자기를 보는 것으로만 거기서 끝날 게 아니라 '아 내가,  내가 이럴 때에는 성경이 내가 깨달아지지 안했다. 이럴 때에는 성경이  깨달아지더라. 아, 성경이 깨달아지더라' 그것도 표적을 보는 사람입니다. 표적을  보는 사람인데 그 보다 더 '아 성경이 깨달아질 때는 뭐이냐? 깨달아질 때는 그게  뭐이냐? 그게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게 오셔 가지고 깨닫게 하셨다. 아, 하나님이  내게 오셔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셨다. 또 깜깜 어두울 때는 하나님이 나와  멀어지고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없는 내가 혼자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하지 안하면 마귀하고 나하고 같이 있는 자이다'  이래서,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그것을 자꾸 찾아 들어가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공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둡기 때문에. 보이는  껍데기 이걸 가지고는 고걸로 그쳤다는 것이 아니라 고걸 가지고 자꾸 보이지  얻는 것을 자꾸 찾아 들어가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니까 여기 따라서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그것을 자꾸  찾아 들어가는 요게 있어야 될 터인데 보이는 것으로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들어가는 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떡 먹고  배부른 거 그거 보이는 거 그것으로 이랬지 떡 먹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 속에 알맹이 그것을 너희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그 알맹이 그게  뭐이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니까 그게 뭐이냐? 고 깊이 자꾸 들어가면, 깊이  자꾸 들어가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하나님이 내게 와서 역사하시는 것,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믿으니까 내게 대해서 좋은 거 나쁜 거 이런 거 무엇이든지 하나 있으면 그것을  나쁜 것도 그것으로 나쁘다 할 것이 아니라 나쁜 그것이 자꾸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해서 온 것이니 내게 그 속에 알맹이는 어떤 것이 있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좋은 것도 그런 걸 자기가 다 발견 할 수 있고, 이러기 때문에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찾아 들어가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한층 찾아 들어간 사람 있고 한층 들어가서 끝나는 사람 있고 한층  들어가 가지고도 거기서 그것으로 인해서 또 그 안에 알맹이 있는 또 두 층을  찾아 들어가고 또 두 층에서 세 층 찾아 들어가고 세 층에서 네 층 찾아  들어가고 자꾸 찾아 들어가면 얼마든지 찾아 들어가서 유한한 자가 무한한 자로  찾아 들어가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등산하는데 산 만당에 올라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올라가서 십 미터 올라가니까 십 미터 올라간 사람은 그것 밖에 안  보입니다. 백 미터 올라간 사람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 사람은 보고  있습니다. 백 미터 올라가지 안하고 제가 백 미터 올라간 사람이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지만 천 미터를 올라가 가지고 '아,  저기 무슨 산이 보인다 무슨 산이 보인다 뭐이 보인다 아무 읍이 보인다 아무  시내가 보인다' 해도 그 사람은 무슨 소린가 제게는 하나도 안 보인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자꾸 올라가니까 되는 그거 뭐냐? 그것이 뭐이냐? 찾아 들어가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표적적으로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의 아주 무지  무능하고 강퍅한 우리로 하여금 접할 수 있도록 거기에서 접해 가지고 차차 차차  이제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면을 차차 차차 접해 가지고 온전함을 이루어 가도록,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도 그것입니다. 사람되어 오신  것도 그것이오. 모두 다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신구약 성경 말씀하신  이것이 다가 아니라. 이 말씀을 가리켜 울타리라 내가 그랬어, 울타리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울타리라 하는 걸 내가 수십 년 전부터 내가 많이 말했어. 신구약  성경은 이거는 중매쟁이라. 신구약 성경이 뭐 중매하는가? 신구약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중매하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거 자꾸 파고 들어가야 될 터인데 파고 들어가지 안하고 보이는 것  가지고 사람들이 우쭐하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난 다음에  모든 사람이 임금 삼을라 하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거 아시고. 임금  삼을라 하니까 떡 그래 가지고, 뭐 임금 삼을라 하니까 '그래? 뭐 또 그것뿐  아니지. 뭐 더 큰 능력도 할 수가 있지' 이렇게 가증스럽게 외식으로 그렇게  껍데기로 날뛰지 안하고 피해서, 저 산으로 피해서 도망했습니다.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은혜 역사가 있으면 은혜 역사 그것 가지고는 그거 은혜  있으면 그만 교인들은 간교한 것이오. 교인들은 간교한 것이오. 또 어린것이오.

아주 유치하고 간교합니다. 조금 은혜 있으면 그만 막 야단을 지기는데 그럴 때에  좋다 싶어서, 세월났다. 다른 사람이 이라니까 내가 우쭐 하이 올라가야 되겠다  하는 그 사람은 그 다음엔 멸망입니다. 예수님의 하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표본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럴 때에 어떻게 했나 모든 사람이 암만 이래 치켜들  때 어떻게 했나 예수님은 그것 듣지 않을려고 산으로 도망가서 아버지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 가진 그것을 지금 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여기에 자꾸 찾아들어 가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이요, 그게 산을 올라가는 거와 같고 그것이 완전함에 완전에 점점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시켜 놓고 교역자들 설교를 시켜 놓고 희망이 있다 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는 그것을 인제. 다른 사람 모른다 그 말은  어린 교인들은 어린 교역자들은 모르지만 저는 안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들어가는 고것이 있으면 '아, 네가  생수의 샘을 팔 줄을 안다. 네가 팔 줄 아니까. 팔 줄 알았으니 네가 판 것이 뭐  조금 파 가지고 물이 쩔쩔쩔 나온 그것 가지고는 아무 쓸데는 폭은 안 닿지만  네가 팔 줄 알고 파보니까 생수가 나온다는 걸 네가 알았으니 고 식으로 자꾸  파고만 들어가면 나중에 가서는 콸꽐 나오면 그게 날 수 있다' 하는 그것으로써  희망을 삼긴 등용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저 ○○교회 ○조사님 있는데, ○○○집사님 사위 ○조사님. 여기 그때  와서 배울라고 와 가지고 노동하고 했는데 설교 시켰습니다. 설교를 시키니까 뭐  설교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 아니나 고 사람이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  파고 들어가는 것 고게 뭐 하나 있어. 고게 있기 때문에 내가 고걸 내가 들어서  말했어. 오래 돼서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고걸 들어 말하면서 네가 요게 있으니  앞으로 희망이 있다. 네가 이것을, 이것을 요 식을 버리지 말고 자꾸 파고  들어가면 된다. 너희들이. 네가 그걸 자꾸 파면 생수가 나오고 네가 옹달샘  생수의 샘을 네가 팔 수가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요거 희망이 있다'  등용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와 가지고 설교하는데 보니까 막 웅풍을 떨고 이래 가지고 마구  이래 떠들고 제가 벌써 설교하는 것이 저 나타내기 위해서 설교를 하고 또 자기  위엄을 보이려고 설교를 하고 이와 같이 하는 그 사람보고 내가 처음에 대번  목회 나갈 때 딱 붙들고 말하기를 '네가 못 쓰겠다. 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느냐? 그래 하느냐?' 그렇게 말한 사람 그때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설교 듣고  여기 있는 사람 다. 그때 교인이 많이 있다 말이오. 그랬을 때에 다른 사람들은  뭐 때문에 그래 하는고 이랬지만 그 사람의 끝끝내 열매가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더러운 것도 나타난 더러운 것에서  더러운 것에서 점점 더 파고 들어가면 그것보다 더 더러운 것 그것보다 더  더러운 것 자꾸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들어가 거기서 나중에 더러운 것을  찾아 들어가 가지고도 결국은 누구 만나느냐 하면 주님 만납니다. 좋은 것 찾아  들어가 가지고도 주님 만납니다.

 이래서,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그 속을 자꾸 찾아 들어가는 이게 있어야  될 터인데 그러면, 자기가 무슨 은혜 받아 가지고 이렇게, 어떤 사람이 만일  부흥사로 갑니다. 가서 한 군데 집회 인도해 가지고 은혜를 끼쳤습니다. 은혜  끼치면 은혜 끼치고 나서 '아. 나도 지금 부흥사가 됐다.' 이러니까, '나도  부흥사가 됐다. 에헴' 하고 이라는 사람 있고, 부흥사가 되고도 '나 같은 죄인이  부흥사가 되다니?' 부흥사를 시켜 주신 것과 자기의 과거에 어떻다는 것과 그것을  생각하고,  그러면, 이것이 어디 붙어 있느냐?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니  점점 거기서 찾아 들어가면 하나님 만나게 들어가니까 그라는 가운데 자기는  보스래기와 같은 자가 돼져 버리고 나중에는 자기가 죽은 자와 같이 돼져서 자꾸  들어가다 보니까 자기는 아무 짝도 쓰지 못할 몹쓸 인간이 되어지는데, 제가  보기에는 못쓸 인간이 돼지는데 다른 사람은 보면 자꾸 이렇게 높여 줍니다.

기독교는 제가 볼 때에 보기에는 자꾸 파고 늘어가면 제가 보기에는 점점 작은  자. 못쓸 자, 괴수 중에 죄인 괴수, 아주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아이 같은 이렇게  작은 자가 자꾸 되는데. 자기가 볼 때 작은 자가 돼 갈수록 모든 사람이 볼 때  자꾸 높여 주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부스러기를 버리지 말아라. 여기 다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저를 하나님의 오른손 같이 붙들었고 하나님의 뭐 참  눈동자와 같이 이렇게 썼는데 이렇게 등용된 것을 예사롭게 여기고 천하게  여기고 이걸 크게 여기지 못하고 이 은혜를 예사로 여겨서, 집어던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버렸다 그 말이오. 찾아요, 도로!  따라 합시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거 있으면 됩니다. 주님이 변했습니까? 주님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변하니까.

자. 내가 변한 데에 주님이 오시면 어찌 됩니까? 내가 변한 데에 주님이 오시면  내가 존귀해집니까 내가 멸망이 됩니까? 내가 변해서 검어졌는데, 내가 변해서  캄캄해졌는데 빛되신 주님이 오면 캄캄해진 내가 멸망이 됩니까 내가  좋아집니까? 내가 캄캄하게 어두움이 됐는데 빛이신 주님이 오시면 내가 절단  납니까 내가 구원이 됩니까? 절단 난다 말이오. 그러기에 주님이 피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어짜든지 과거에 내가 어떻게 됐을때 주님이 어떻게 하셨느냐 그때  어쨌느냐. ○○○목사님이 여기 있는데. ○○○목사님이 지금 개척 교회 하지만.

개척 교회 하는데 내가 볼 때 아직까지 개척 교회 안 됩니다. 해도 그 교회 안  됩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과거에 ○○교회에 처음에 목회자로 들어갔을 때에  그때 사람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라면 빨리 개척 교회 빨리 성공됩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뭐 주먹 가지고 암만 억세게 그까짓 거 하나님이 빠싹 깨 버립니다. 깨  버리면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안 돼! 그리 돌아가요. 그러고, ○○○목사님도  지금 옛날로 돌아가 버려요. 옛날 주님이 붙들어 썼을 때 그때 '나 같은 게.

주님이 나를 등용해서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다니?' 하는 그때 사람으로 돌아가면  즉시 돼.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떨 때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썼던가?  그러면, 내가 여기 알기로 뭐 ○○○목사같이 성대 좋은 사람 없습니다. 또 배짱  있습니다. 배짱 좋은 것이오. 그런데, 그때 내가 ○○교회의 교인들을 들어서 내가  물어 봤는데 그때는 성자라. 그게 그렇게 소아지가 더럽고 그 소아지가 개망나니  같았었는데 거기 가 가지고는 성자라. 교인들이 이래도 저래도 다 참고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감화를 받았어. '우리 조사님이야' 조사님 성내는 꼴 못봤고 혈기  내는 꼴 못 봤고 안 참는 걸 못 봤고, 이러니까, 그러니 그때 ○○교회를 살린  것은 ○○○목사가 살려 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부흥시키기는 ○조사가  부흥을 시켰습니다. 그걸 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걸 보고  '저것도 희망이 있다. 하면 된다.'  ○○○목사는 아마 진리를 지금 알고 있는 거는 뭐 우리 진영에 둘째 가라 하면  싫다 할 것이오. 그래 놓으니까 그게 탈이라 이래 가지고 뭐 가면 어디든지 가면  선생님 노릇 할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안 돼.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셨으니까 옛날로 돌아가요. 옛날로 돌아가. 겸손만 가지면 돼. 그라고,  ○○○목사도 절대 부흥 안 됩니다. 그 교만 그걸 그 껍데기 말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참으로 파고 들어가서 겸손해지십시오.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들어가십시오. 그래야 되지, 그래야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그래 안 하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 할 수가 없어. 와 놓으면 전멸이 될 터이니까 하나님이 올 수  있는가? 깜깜 어두움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래 하면 다 됐어.

 여기 뭐꼬? ○○○조사님이 ○○교회 가 가지고 성공했습니다. ○○교회서  대성공했어. 성공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그러니까 저 ○○교회로 보냈는데,  ○○이 가지고 내가 좀 기쁜 소식이 있는 것은 자기 부인이 왔어. 부인이 와  가지고 자기 남편이 그란다고 어쩌든지 무슨 운동 하러왔느냐 하면 우리는  ○○교회 같은 교회는 있을 수가 었고 저분 보니까 모두 교인들도 설교도 나보다  다 잘하고 믿음도 다 장성하고 나는 거기 가면 병아리 같은 다 모두 큰 닭 같은  그런 모두 위치에 있는데 내가 거기 도무지 감당을 못 하니까 딴 데로 옮겨  달라는 그런 운동하러 왔어. 어디든지 시골 교회 조그만한 교회 가 가지고 그래  있으면 좋겠다고 옮겨달라 하는 그걸 진정, 껍데기로 그라는 게 아니라 뭐 도무지  되고 힘이 들어 안 된다고 그란다 해. 고것이 힘이오. 그것만 버리지 안 하면  '너거가 지금 같은 고 상태로 있으면 교회가 부흥된다' 보니까 '교회가 부흥이  됐어. 장년반은 뭐 둘인가 셋인가 내렸지만 주일 학교는 많이 올라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지금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주는 거, 말해 주는 거, '아, 대중 앞에서 날 이래 가지고 우사시킨다'  그라면 귀신 소리요, 그거는. 이러니까, 누가 그런 말 해 주요 해 주기는? 안 해  주니까 또 하나님께서 하게 할 때에 해야 되지 언제든지 평소에 그 말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듣고 요 말을 듣고 꼭 요 교훈을 자기를 살리는  교훈으로 받으면 즉시 일어섭니다. 일어서 걸어 가. 일어서면 돼. 뭐 다른 사람이  죄인이라 하는 문제가 뭐이요? 회개해서 성화된 그게 문제지. 성화된 것만 가져갈  테니까 천하에 제일되는 죄 제일 악한 죄인 돼도 성화만 제일되는 성화 가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이 교훈들이 다 그런 분들에게, 다 해당되지만 그런  분들에게 더욱 더 중요하게 해당이 됩니다. 은혜의 뿌스러기도 버리지 마라, 그  은혜가 뿌스러기니까 하고 뿌스러기를 보지말고 그게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스러기 버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내게 은혜 온 것  적은 은혜라도 그 은혜 끼친 이는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이 내게 은혜 끼쳤기  때문에 그 은혜 끼친 주님이 끼친 은혜 그 주님을 자꾸 주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서 그렇게 하라, 또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그걸 자꾸  찾아가라. 내가 보이는 면에 전부 타락이 돼지면 보이는 면에 타락되는 그  타락보다도 그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나와의 어찌 됐으며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이 얼마나 험악한가 그것을 좀 미루어 생각하는 그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이거 자꾸 이래 숨겨 두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것을 왜. 하나님이  하신 것을 왜 부끄러워합니까? 대통령이 제게 와 가지고 무슨 일을 했다 해도  대통령이 제게 와 가지고 조그만한 일, 저거 집에 와 가지고 무슨 쌀 한 되를  줬다든지 그래 아니면 저거 집에 와 가지고 손을 한번 이래 만져줘도 '아이구.

대통령이 내 손을 만졌다. 우리 집에 찾아왔더라. 우리집에 방문했더라' 이렇게  자랑할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자랑할 줄 모르느냐 그 말이오,  어떤 사람 허리 아픈 게 나았다 이래. 나았거들랑 써내라 이랬더만 안 써냈다  해. ○○○선생 어디 갔노? 써냈나? 써냈대요.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어릴적부터  냉중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어 왔습니다. 6월 2일이면 지난 주일 아닙니까? 6월  2일 주일 오전 예배 때 냉증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히 치료됨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그래 보니 치료된 걸 자기가 그 후에 자기가 보고 알았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래 써냈어. 이거 하나님이 하신 것 아닙니까? 이게 냉증 뭐 이게 나은  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만유의 대주재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지금 나를  사랑하셔서 여게 지금 착수하셔 가지고 나를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에  자기의 당신의 자녀로서 착수하셔 가지고 이렇게 하신다, 그분이 내게 와 가지고  나를 착수하신 것은 내게 전능자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진 것 아닙니까? 내게  책임졌다, 내 죄를 사함 받았다, 너는 이제 과거는 과거로 다 사함 받았기 때문에  이제 다시 죄를 범하지 마라. 네 죄가 깨끗하게 되었다. 이거 뭐 해석하면 날아갈  수 있고 기가 막히는 일이라 말이지. 이런데 이걸 왜 부끄러워합니까? 왜 이걸  가룹니까?  그러니까, 인제 얼마나 들어 왔는지, 지난 주일에, 늘 기도하지 안하지만 지난  주일에 기도하고 나은 사람 내놔라 이랬는데 낸 사람 이거 나오고 또 얼마나 그  다음에 많이 나왔는지 나는 조사는 안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많이 나았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그걸 증거하는 거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요 번에 육백여명의 병을 낫았으니까 낫아주셨으니 이거  얼마나 놀랠 일입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요걸. 확신을  가져서 그러면 이 표적 이게 뭐입니까? 표적 이것은 만유의 대주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그것이 속에 알맹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말하지  안했소? 보이는 것, 뭐 여기 대통령 온다 공산주의 온다 저것도 나 위해 있다.

모든 보이는 모든 존재는 나 위해 있다, 모든 순서는 내 구원 위해 있다 이것을  믿을 때에 그 모든 능력이 다 자기 구원을 위해서 위하는 것이 됩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돼요. 이렇게 큰일이 우리에게 있는데 왜 우리가 믿음을  가지지 않습니까? 뭣 때문에 내가 예수 믿게 됐으며 또 내가 뭣 때문에 이  진영에서 이 교훈을 받게 되었으며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서 등용이 됐는 이  이걸 도무지 얼마나 지극히 크다 하는 것을 자기가 망각하고 업수이 여기는 이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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