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자격13가지-현재의 가치

 

1988. 12. 28. 밤.

 

본문: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광고부터 먼저 합니다. 부장 선생님들은 소속 반사 선생님을 심방하시기  바랍니다. 또 공과를 외우고 실천해서 경험과 체험의 지식을 얻어 가지고  가르치도록 힘씁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잃지 마시고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계속 나오도록 힘씁시다. 서로 서로 새벽에 전화로  깨워서, 교환실에서는 하루 아침에 깨우는 사람이 뭐 상당히 많다고 하는데 누가  말하기를 이백 명인가 삼백 명 된다 하는데 그렇게 참 깨우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서로 서로 깨워서 그저 하나님 말씀을 들어 말씀이 그 속에 있어야  살지 우리는 말씀이 없으면 그만 썩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집사 추천 투표가 있습니다. 접사 투표가 있습니다. 이렇게  투표해서 선정되면 당회에서 심사해 가지고 집사로 세웁니다. 기도 많이 하시고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투표지를 나눠 드릴 터이니까 자기 아는 대로 남반 열  명 여반 열 명만 기록하시면 됩니다. 혹 자기 아는 분이 없을 때에는 기록 안  하고 백지로 넣어도 됩니다. 또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많아도 자기가 보기에 집사  될 만한 자격은 하나밖에 없다 싶을 때는 하나만 투표해도 됩니다.

 그래서 집사될 그 자격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합니다. 첫째는 전도를 해서 한  사람이고 두 사람이고 자기가 전도해서 자기에게 속한 믿음의 식구가 있어야  됩니다. 예수 믿는다 해도 아직까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믿는 사람을 내지  못한 그런 사람은 집사 자격이 없습니다.

 또 둘째로는 주일을 잘 지켜야 합니다. 셋째로는 십일조를 계속해야 합니다.

네번째는 신덕이 있어야 합니다. 신덕이라 말은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저 사람은  믿는다 하는 그런 덕이 있어야 되지 예수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욕 돌리게  되면 안 됩니다.

 또 다섯째로는 교회를 봉사 잘해야 됩니다.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또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또 일곱째로는 다노모시,  계를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또 여덟째로는 여수 거래가 깨끗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돈 주고 받는 것을  흐리게 해서 복음을 가리우는 그런 사람은 그런 일을 다 청산하고 난 뒤에 집사  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작년엔가 재작년에는 집사된 사람들이  스스로, 나는 무엇을 청산을 못 해서 금년에는 집사를 사표냅니다. 앞으로 그걸  청산을 하고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 가운데서 열심히 자기의 모든 흠점을  청산을 하고 깨끗한 그 자신을 만들어 가지고 집사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아홉째로는 우상을 섬기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뭐 손 비비는 거 그런 거  다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거 안 됩니다. 또 열째로는 교회나 이웃에나  사회에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은 안 됩니다.

 또 열한째로 가정에 무슨 불미스러운 그런 문제가 있어도 안 됩니다. 집사가  되면 욕 얻어먹기 때문에 뭐 가정에 뚜렷한 그런 불미스러운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청산되고 난 다음에 집사되는 것이 좋습니다.

 열두째로 십계명을 지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그런 노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열셋째로는 스물여덟 살 이상 되는 남녀로 결혼하고 안 하고 상관없습니다.

스물여덟 살 이상 되는 사람이면 다 집사로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표지를  드릴 터이니까 자기 아는 대로 남반 열 명 여반 열 명만 기록해 내면 됩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이십 명 이상은 기록을 못 합니다. 또 아는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도 두 사람도 좋습니다. 또 자기 마음에 아는 사람은 많지마는 집사될 만한  그런 자격이 없다고 볼 때는 한 사람도 그렇게 추천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지자선교회 13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또 그러고 17절에는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와 총명에 대해서  잠깐 증거 하겠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조금 다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다 알기는 아는 것인데,  지혜도 아는 그 기능을 말하고 지식도 아는 기능을 가리켜서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런데 지식과 지혜가 다른 것은 지식은 과거에 대한 것을 아는 것과  또 현재에 대한 것을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과거 현재를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를 알면서 과거 현재를 참 고로 삼아 가지고  자기의 미래를 아는 것을 가리켜서 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지혜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현재 행동하는 그  행동이 어데서 나오는고 하니 지혜에서 나옵니다. 지혜대로 사람들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에서 현재의 행동이 나오고 현재의 행동이 나왔으면 그것이  즉시 과거로 돌아가 버립니다. 과거가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지혜는 미래를  아는 것이 지혜인데 현재 행동이라 하는 것은 자기대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고,  어떻게 하면 손해 가고, 어떻게 하면 유익될 것인가, 무슨 뭐 물질면이나 또  자기의 활동면이나 자기 명예면이나 자기 가정이나 자기 그 영광면이나 덕면이나  또 모든 평안의 면이나 모든 면에 대해서 미래에 관한 것을 아는 것을 가리켜서  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현재에 그 사람이 어떤 생활하든지 생활하게 되는데 그러면  현재의 생활은 어데서 나오는가? 현재의 생활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지혜에서 현재의 생활이 나오게 됩니다. 지혜 가진 대로 현재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그 행동은 지혜에서 나오고 현재의 행동은 조금 있으면 그만  지나가 버려서 과거가 되고 맙니다. 과거가 되고 지나가 버리고 마나 사람의 그  모든 흥망성쇠 또 희로애락 뮈 이런 모든 일은 다 자기가 현재의 행동 그것이  행동 한 번 했으면 그것은 자기가 떼버릴 수 없습니다. 벌써 자기가 행동했으면  그 행동은 자기와 하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행동한 대로 그대로 공정된 보응이 자기에게 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미래의 원인이 되는 '앞으로 어떤 그 미래가 닥쳐 올 건가?' 하는  미래라는 것은 자기가 현재 행동한 그 값으로 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사람들은  현재의 결과인 미래의 행복이 오면 좋아하지마는 불행이 오면 다 싫어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싫어해도 이미 자기가 현재에서 불행이 올 수 있는 원인을 심어  놨기 때문에 그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것을 변동을 못합니다.

 이래서 불행한 미래가 닥쳐오면 사람들은 다 불쾌히 여기기는 여기나 그 미래의  원인이 되는 현재에 조심을 하려 하는 사람들은 많지를 못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현재에 그것은 자기의 미래를 결정 지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현재의 하나 하나에 언행심사의 그 행동이라 하는 것을 조심해서 '내가 이  행동하면 앞으로 이런 미래를 만날 것이고 저런 행동하면 내가 저런 미래를 만날  것이라' 하는 그 미래를 생각하면서 미래에 오는 불행을 현재에 방어하고 또  미래에 자기에게 오기 어려운 그런 행복을 자기가 현재에서 잘 준비해서 그  행복이 자기에게 오도록 그렇게 합니다.

이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의 현재의 행동을 그것을 상관없이 버릴 수가  없습니다.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행동은 이렇게 내가 하지마는, 행동은 이렇게  하지마는 내가 이것은 하나의 가면적으로 이렇게 한 일시에 수단 방법으로  이렇게 언행심사의 행동을 하는 것이지 이런 형편이 아닐 때에는 이런 것은 다  버리고 내가 좋은 언행심사의 행동을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일단 언행심사에 이 현실에서 행동하면 그 행동은 그것은  지나가 버려서 그 보응으로 미래의 모든 사건들로 행불행으로 자기에게 오지마는  그 행동한 그것은 바로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동과 자기와 다르게 생각해서 '아무리 내가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이거 나쁜 줄 알고 이런 형편에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행동은 이래  해도 그까짓 거 필요 없을 때는 내버려 버리면 상관없지.' 하지마는 나쁜 행동이나  좋은 행동이나 행동하면 한 그대로의 자기가 됩니다. 행동함으로 되어지는 자기를  이것을 떼버리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재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공부하는 데에서 우리 사람들이 뭐 몇십  년을 살든지 백 년을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라  그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시간은 현재라. 그러면 현재만 흠없이 잘한다고 하면  그는 현재라는 수레바퀴로 돌아가는 거와 마찬가지기 때문에 현재만 잘못이 없이  행동한다고 하면 뭐 백 년 살아도 그 사람의 행동은 다 흠없는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는 미래로 두고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또 지나간 것은  잘못된 것을 후회하고 이래 하지마는 현재라는 그 현재에다가 사람들은 그렇게  전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아니합니다.

미래의 것은 소원하는 것으로 다 된 줄로 알고 또 지나간 과거 것은 잘못됐다고  그만 눈물 흘리면서 후회하면 다 된 줄 알지마는 후회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것을 아무리 소원한다고 소원으로 가지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미래에 대한 소원이나 또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나 그것은 전부  그 현재에서 만 그것을 어떻게 조화를 맞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라는 것은 지나간 후회를 그것을 현재의 거름으로, 거름과 같이  이렇게 삼을 수가 있고 또 미래에 소원하는 그런 것을 현재의 움싹과 같이  그렇게 삼아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실패는 어데  있는가? 현재에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떠한 성공이라 할지라도 그 성공은 다 그 사람의 현재라  하는 현재에 그 성공이 다 들어 있다. 또 모든 실패도 현재라는 현재에 들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 이 현재라는 이 현재를 아주  내 생애의 전부라고 평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이 현재라 하는 것을 참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해서, 사람이 살  때에 '내 모든 성패 흥망성쇠 희로애락 이 모든 생사 이런 것은 다 현재에 매여  있다, 현재에 다 달려 있다.' 이렇게 귀중한 것을 생각하고 자기의 일생에 현재라  하는 데에 전부가 들어 있다 하는 것을 깨달아서 뭐 현재에다가 가치를 둬서,  시간 중에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 현재를 높이 평가하고 자기의 전 생애의 가치를  현재에다 두는 그것이 참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면 별로 그  사람이 불행을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이 현재를 무시하고 예사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어떠한  선천 후천에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벌판이라 곧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현재라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데, 현재라 하는 현재는  중요하니까 현재를 잘 살면 행복스럽고 현재를 잘못 살면 참 불행스러운데 이  현재를 어떻게 내가 노력하느냐? 이 현재에 무슨 언행심사로 내가 이 희로애락  흥망성쇠 이것을 현재에서 건설하느냐 하는 이 중요성을 가지고 현재를 아주  중요하게 다뤄야 되는데,  그러면 현재라는 것이 이렇츰 중요해서 자기의, 뭐 백 살을 살든지 구십 팔십을  살든지 그 사람의 생애는 전부 현재에 다 달렸습니다. 그러면 현재를 잘못 살면  헛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재에 가치가 있는 줄 알고 이 현재를 중요하게 이렇게 다룬다  할지라도, 아무리 현재를 잘 살고 현재를 후회 없이 살고 참 현재는 모든 미래의  그 행복된 원인이 되어서 현재에 산 그것이 미래의 모든 성공의 원인이 되고,  행복의 원인이 되고, 평강의 원인이 되고, 영광의 원인이 되고, 모든 생명의  원인이 되고, 이렇게 자기가 살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말이요, 원한다 할지라도 그  현재는 어데서 나오느냐 하면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혜에 나오기 때문에  지혜를 자기가 단속하고 지혜를 잘 심사해서 정리하지 않으면 헛일인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대개 보면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만 인간은 짐승 한가지요. 그저 어데든지 그만 한 군데 붙으면, 예를  들면 변소간에 다니는, 시골에 가보면 변소간에 다니는 쥐는 항상 그놈은  변소간입니다. 그 뭐 주인들 집에 뭐 곡식 창고가 있어도 그것도 모르고 변소간에  다니는 거는 항상 변소간에 다니요. 또 저 하수구에 다니는 놈은 항상 하수구에  다닙니다. 꼭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만 여게 매였으면 여게 저게 매였으면  저게. 어떤 사람은 일생을 학문에 매여 가지고 호만 그거면 다인 줄 알고  그러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또 무슨 예술에 매여 가지고 그만 그것이면 다인 줄  알고 그러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다스리는 무슨 행정에 매여 가지고, 또 명예에 매여 가지고  모든 오락에 매여 가지고, 뭐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매여서 그만 매여 놓으면  거게서 벗어날 줄을 모르고 그만 멸망 길을 그래도 만족하고 자꾸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게서 깨어서. 내 미래는 지금 현재에 매였다. 그러면 내가 현재의 어떤  현재면 어떤 미래가 오겠느냐?' 미래와 현재가 연관되어서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뵈고 닥쳐올 미래는 현재의 결과가 된다 하는 이것을 요 둘만, 연관시켜서  생각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어떤 데 한 군데 붙들려 매이지는 아니합니다. 한  군데 붙들려 매이지는 아니 합니다.

또 거게서 하나 더 생각해서, 현재는 지혜에서 나온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지혜를  이것을 잘 선택해서 참 좋은 지혜, 원만한 지혜 좋은 지혜를 내가 가지면 좋은  현실이 나오겠고 좋은 현실이 나오면 조만간에 아주 행복스러운 미래의 그  보응의 결과가 닥쳐오겠다.' 이렇게 이런 것을 조금 시야를 넓혀서 일단만 볼 게  아니라 이단 삼단 이렇게 좀 발넓혀서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그런 시험에 들지를  아니랍니다.

이래서 우리 인류 시조가 그만 배암이 들어오고 나니까 다 잊어버려 버리고  선악과만 눈에 보였습니다. 그 선악과만 보이니까 선악과 그것이 볼수록 좋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탐스러워서, 그렇게 해로운 선악과지마는 배암의 유혹을 받고  나니까 그렇게 해로운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사람들에게 마귀가 들어 놓으면 자기는 뭐 대가리를  싸매고 '나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면 된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나는 또 일류 학위를 가지면 된다.' 또 학위 가지고 나면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지금 지위를 차지하면 된다.' 뭐 이렇게 해 가지고 거기다가 일생을 바치는 그런  사람들 않으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게 다가 아니고 그런데 백의 일도 안  되고 뭐 천의 일도 안 되는 그런 것을 잡고는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고 일생을  바쳐서 허송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빠진 게 없이 다 골고루 가르쳐 주시니까 이 성경에서  자기 시야를 넓히고 또 자기의 지혜를 차차 구비시켜서 한 함정에 빠져서 일생을  몰두 몰사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됩니다.

이래서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 있는 자가 누구뇨" 그 지혜라 하는 것을 이제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혜는 크게 말하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지혜고 하나는 하늘에 속한 지혜고 지혜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뭐 땅에 속한 지혜로 말해도 그걸 분류하면 천도만도 넘다고 할 수 있지마는  크게 분류하면 땅에 속한 지혜 하늘에 속한 지혜, 땅에 속한 지혜는 악령과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요, 또 하늘에 속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이 지혜는 온전한 지혜요 이 지혜는 참  자기의 온전한 현재를 탄생시킬 수 있는, 현재를 발생시킬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모든 시간 중에 현실이라는 이 시간 이 기회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데 이 현재를 중요한 이 현재를 가치 있게 내가 활용한다는 것은  내 생애를 가치 있게 앞으로 보응 받는다는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현재를 가치 있게 후회 없는 생애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데에는 이 옳은 지혜를 가져야 되겠다. 옳은 지혜. 하늘에서 내려오는  위에서 오는 지혜.

 여게 15절에 보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이래. 이런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니요 세상적이요" "세상적이요" 안 믿는 사람의  지혜와 같은 지혜라 말입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자기 욕심대로의  지혜라 그말이오. 세상대로의 지혜도 그것도 다 소용 없고 자기 망치는 거고 또  자기 각양 욕심 뭐 돈 욕심이나 명예 욕심이나 지위 욕심이나 어떤 욕심이든지  그 욕심대로의 지혜도 그것도 다 헛일이오.

 "마귀적이니" 또 마귀가 주는 이 마귀적이라. '마귀적인 지혜니 이런 지혜는 다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로부터 나는 지혜와 또 땅에 속한,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이런 지혜, 이 두 가지 지혜를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 그러면 위에서 난  지혜는 어떠며 또 땅에 속한 지혜는 어떤가 그것을 우리가 이 성경에서 배워  가지고 지혜를 구별해서, 그 지혜는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나오는 그 지혜를 잘 구별해 가지고 땅에 속한 지혜는 그거는 버려야 되겠습니다.

하늘에 속한, 나오는 지혜를 그것을 우리가 가지면 됩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그러면 하늘에서 나온 지혜는 그  지혜는 어떤가? 그 지에는,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위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뭐를 가지고 또 심사를 해야 되느냐  하면 그 지혜는. 미래에 대한 아는 것이 지혜인데 그 지혜는 먼저 선합니다.

선하다 말은 하나님 중심이라 말입니다.

 먼저 그 지혜는 자꾸 자기 중심도 아니고, 물질 중심도 아니고, 명예 중심도  아니고, 뭐 자기 생명이 사는 중심도 아니고, 죽을지라도 그저 하나님 중심이니까  죽어도 하나님 중심이면 하고 천만금이 와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면 안 합니다.

 그래서 네가 미래를 생각할 때에 미래를 생각하는 그것이 지혜의 행동인데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지혜의 행동인데 미래를 생각할 때 네가 하나님께서 주는  그 지혜로 살면 너는 성공하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그 지혜를  가지면 너는 두말 할 것 없이 멸망하고 마니까 그 지혜와 지혜를 두 종류니까  구별해라.

 그러면 하늘에서 나오는 지혜는 어떤 지혜냐? 먼저 그 지혜가 하나님 중심인 그  지혜다. 하늘에서 나오는 건 하나님 중심인 그 지혜다. 또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 지혜는 가지면 온유하게 된다. 온유한다 말은 따실 온(溫)자  누그러울 유(柔)자인데 그러면 사람이 따뜻하고 누글누글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내가 가지게 되면 그 마음이 한없이  든든해진다.

 뭐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고 또 멋이 염려스러운 게 없고 마치 든든하기를  자기가 참 여행을 가는 데에 돈이 여비가 아무것도 없어서 지금 이거 여비 없이  나서니까 이거 무전여행을 하려 하니 기가 차는데 이러다가 어데서 누가 돈을  줘서 넉넉히 갔다 올 만한 여비를 나를 줘서 호주머니에 넣어 놓으면 마음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이상하게도 하늘에서 내려온 그 지혜를 내가 자꾸 그 지혜로 내  지혜를 삼았을 때에는 우리 속에 하나는 증거가 뭐이냐 하면 하나님 중심이,  어쩐지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획할 때에 '하나님 중심 아니면 실패다'  자꾸' 하나님의 중심인 그 일이 나에게 자꾸 그것이 강조되어지고 그것이 내게  자꾸 깨달아지고 주장이 되어지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꾸 마음이  든든해지고 온유해집니다. 만일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뭘 계획할 때에 조급하고  뭐 이러면 그게 벌써 하늘에 속한 지혜가 아니고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하나님 중심의 마음이 되어지고 또 둘째로는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마음이 든든해져요. 마음이 뭐 아무리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저  일은 뭐 천인 만인이 뭐 방해하고 안 되니까 안 된다 해도 도무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지혜를 찾아 가지고 그 지혜대로 할 때에는 아무리 대적이 많고 또 뭐  일에 대해서 어떻게 애로가 있고 굴곡이 있다 해도 그런 게 없고 마음에  든든해집니다. 마음이 평안해져요. 우리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만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든든해지고 그 다음에는 성결, 여게 17절에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성결" 자꾸 마음에 깨끗한 것을 가치로 삼아서 깨끗한 걸 원해서, 뭘  이래 뭘 계획을 해도 내외간에 계획이라도 그 남편이 뭘 이래 하는 데도 보면  그만 성결이 없으면 하늘의 지혜를 받은 그 아내는 불쾌해서 못 견딥니다. 아무리  그러면 당장에 이거는 뭐 성공될 거라 아무리 보여져도 거게 성결이 없으면  마음에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해서 도무지 찬성할 수가 없는 성결을 원하는 그건  지혜가 나올 때에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그 지혜입니다.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그거 또 성결할 뿐만 아니라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모든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서, 내가 좋으나 나쁘나 이걸 생각하는  것보다도 내가 이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 좋겠나 나쁘겠나? 모든 사람에게  어떠겠노?  자기 혼자 개인의 사욕보다도 모든 사람의 이 공욕이라는, 모든 사람의 공리,  모든 사람의 공리라는 이것이 생각이 되어져서 사람들은 다 자기만 알고 남을  모르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나 자기나 그것이 꼭 하나같이 이렇게 공평되게  이렇게 마음이 나올 때에 그것이 위로부터 나온 그 지혜가 내게 와서 그런  것입니다. "화평하고"  또 "관용하고" 그러면 상대방에게 대해서 뭣이 이해가 자꾸 넉넉히 됩니다.

이해가 넉넉히 되어져서 그 뭐 마음에 조부랍지 아니하고 그 넉넉히 이해를  하고도 거게 평안하고 남음이 있고 자꾸 뭐 이해가 나온다 말이오.

 옆에 사람이 누가 그 이렇다 해도 '그것도 아마 그렇고 그런 거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마 대단히 답답하고 어려움이나 또 그 사람이  어떤 욕심으로 인해서 잠깐 어두워져서 시험에 들었다.' 그 다른 사람에게 대한  옳고 바른 그 생명의 길을 지도해 줄 만치 관용하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생겨집니다. "관용하고"  "양순하며" 사람이 양심대로 옮고 바른 거 자꾸 그것이 자꾸 강조됩니다. 이러면  옳으나 이러면 바르나? 잘못하면 우리가 이걸 생각지 않으면 그만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그만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어째 이러면 내게  유익하겠나 어찌 되겠노? 이라면 이 세상적으로 손해가 뭐 되나 성공이 되나?'  그러면 자꾸 세상적입니다. 이렇게 자꾸 사람이 좁아진다 그거요,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그러면 자꾸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불쌍한 그 마음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자꾸 동정하는 그 마음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부부간에도 이 위로 나온 지혜를 받은 그 아내하고 또 땅에 속한 지혜를  받은 남편하고 둘이 무슨 가정 일을 이렇게 뭐 계획을 하든지 이러면 그만  남편이 땅의 것을 가졌으면 아내에게 대해서 원 수같이 생각합니다. 저따위로  저래가지고 무슨 네 입에 밥이 들어갈 것이며 또 무슨 일이 될 것이냐? 이러고  꼭 자기 지혜대로 해야 되는데 틀렸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남편이 그런 위의  지혜를 가졌으면 아내 하는 것이 그게 참 답답하고 이래서 하려 하면 아내가 또  그 잘못된다고 그렇게 뭐 박지기를 긁고 야단을 지깁니다.

 이래도 위로 하늘에 속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온유해집니다. 암만 그래도 그게  이해가 되어지고, 이해가 되어지고 또 관용이 되어지고 또 동정이 되어지고  긍휼히 여겨지고 이래서 이래 놓으니까 거게 마귀란 놈이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이래 가지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그러면 하나님 중심의 일이 자꾸, 하나님  중심의 위주의 생각과 계획이 자꾸 나와서 나중에 그러다 보니 전체가 하나님  중심 위주만 되니까 하나님만 위했지 자기 위하지 않고 그만 하나님만 생각하는  그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만 위하고 생각하는 그 일이 됐는데 그 일이 지나가고 보니까 하나님  위하는 게 그게 전부 저를 위한 게 되고 말았어. 그러기 때문에 인생은 하나님  위한 그것이 다 자기 위함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놨습니다. 자기  위하는 것은 전부 자기를 해치는 게 되도록 만들어 놓고. 이러기 때문에 이 참  하늘에 있는 지혜와 땅에 있는 지혜 이 지혜를 잘 구별해 가지고 이 지혜를  선별할 줄 모르면 참 고통스러운 사람이오.

 그러기 때문에 믿음 있는 가족과 믿음 없는 가족이 한데 살면 믿음 있는 가족은  믿음 없는 가족이 이렇게 뭐 좀 방해하고 핍박하고 괴로운 줄 알아도 그 사람은  괴롭지 않소. 믿음 있는 사람은 절대 괴롭지 않소. 믿음 없는 가족이 이제 믿음  있는 가족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참 믿음이라는 게  보배요.

 그래서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이러니까 이리 저리  치우침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뭐 어떤 사람 하는 일은 그 사람 그만 물질로  치우치고, 감정으로 치우치고, 또 오기로 치우치고, 또 시기로 치우치고, 분개로  치우치고, 그만 이리 저리 자꾸 치우쳐 가지고 실패를 하는데 이제 이 사람은  치우치지를 안해.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그러니까 뭐이든지 뭐 광명 정대하게 이래 하지 똑  대낮에 거석한 거 모양으로 이렇지 엉큼하게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다 펴놓고,  암만 펴놓고 해도 '이러면 누가 이 비밀을 알고 어떻게 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개해 놓고 해도 누구든지 다 하도록 다 해 줘도  자기에게 되어지는 것이지 누가 도둑 맞을까 숨어 하고 은밀하고 그럴 일이 없다  말이오.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러니까  우리의 생애는 너도 나도 모두 다 좋고, 좋기는 다 좋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이것이 우리 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 가는 길은 아무도 방해할 수도  없고,  이거 참 요게 입각해 살면 한없이 평안하고 기쁜데 사람들이 여게 입각하지  못하고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이 지혜를 가지고 사니까 자기가 한없는  벌써 지옥 생활이요 하는 일도 지옥이요 또 모두 사람으로 원수가 되지 만물로  원수되지 하나님과 원수되지 그러니까 저만 골고 녹는 생활입니다.

 이래서 위해서 내려온 지혜 이것을 우리가 여게서 잘 집에 가서 읽어보고,  그러면 하늘에 내려온 지혜는 어떤 건가 그것을 잘 익혀 가지고 현재에, 지혜는  미래를 아는 거라. 자기 미래를 계획할 때에 미래를 계획하는 내 생각 그게  지혜요. 내 마음 그게 지혜요. 내 계획이 지혜요.

 지혜인데 그것을 그 지혜를 심사할 때에 성경에서 '땅에 속한 지혜 하늘에 속한  지혜 두 지혜가 있으니까 하늘에 속한 지혜는 어떻다. 땅에 속한 지혜 어떻다.

요거 하늘에 속한 지혜의 정의를 딱 내놓고 땅에 속한 지혜의 정의를 딱 요래 내  가지고, 그 지혜와 지혜로 구별하지 못하면 자기가 아무리 뭐 애를 써 봤자  소용없고 절제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고 여게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 있는 자가 있느냐? 이 총명을 말했는데  총명도 하늘에 속한 총명과 땅에 속한 총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총명이나 땅에 속한 총명이나 그 같은 건데 그러면 하늘에 속한 지혜와는 하늘에  속한 총명과 같이 하고 땅에 속한 지혜는 땅에 속한 총명과 같이 합니다.

그러면 그 총명이라, 총명이라 말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인고 하니, 지혜라 말은  어떤 것을 아는 것을 지혜라 했지요? 미래를 아는 게 지혜라 했는데 총명이라  하는 것은 미래만 아는 게 아니오. 미래도 알고 과거도 알고 현재도 알고, 또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또 피조물도 알고 창조주도 알고, 금생도 알고 내세도  알고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아는 그 지식을 가리켜서 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총명이 하늘에 속한 총명을 가지면 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도 바로 알고 남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또 원수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친구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또 금생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내세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또 피조물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창조주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이런데 이  총명이 땅에 속한 총명이 있으니까, 총명이 땅에 속한 총명은 그것도 내나  정욕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인데 이 총명이 땅에 속한 총명이 돼 놓으면 그  사람은 전 생활이 다 새카맣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뭐  공맹의 도덕을 공부해서 도덕가라 하든지 또 어떤 이종교의 종교가라 하든지  할지라도 그 사람의 총명은 전부가 다 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어두운 고로 그  사람의 모든 생애가 다 어두워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희로애락과 전체가 다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 예를 든다면 만일 어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세계에서 아주 그  사람이 참 칭송을 받는 그런 어떤 위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하늘에 속한  총명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보는, 다시 말하면 만물관이라 말이요, 그  사람이 금생 내세관 모든 존재관 모든 만물관 그 만물관이 하늘에서 주는  만물관을 가지면 그 사람은 위에 있는 위에서 내려온 총명을 가진 사람이고 땅에  속한 총명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닌 이 피조물에서 생겨 나온 이 모든  만물관을 가지기 때문에 그 만물관이 잘못 가졌으니까 만물에 대한 모든 대책이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지혜와 총명? 이것이 우리의 흥망성쇠를 다 좌우한다고 할 수 있을  만치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을 이것을 우리가 아주 주의를 해서 잘  심사해 가지고 이 두 종류 중에 옳은 거 위에 것 하늘의 것을 취해야 된다는  여게다가 관심을 가지고 이 면을 좀 더듬어서 찾아보려 하는 사람이면 굉장한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모두 다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뿐이지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 없는데, 이걸로만 가지고 지금 자기 지혜와 총명의 전세를 삼고 이러니까  만물관이 다 그대로지 미래관이 다 인간적이지 이래 놓으니까 위에 속한 그  지혜와 총명과 정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 성공이나 행복이나 그런  것이 을 수가 없는 것이고 맺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밤에 가서 이 말씀을 보면서 잘 기록해서 빼 보십시오.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 지혜와 총명은 각각 다르기는 다르지마는  하나입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와 총명은 함께 움직이고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은 함께  움직이고, 그러면 하늘에 속한 지혜를 받았으면 그 총명도 따라 오고 땅에 속한  지혜를 가졌으면 땅에 속한 총명이 오게 됩니다.

 이래서 총명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보는 만물관이라 그렇게 볼 수 있어.

만물관 모든 존재관이라. 존재라면 창조주가 존재하고 피조물이 존재하고 이러면  모든 존재인데 모든 존재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 또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해서 바로 보는 것 이것이 총명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그 총명이 있는데 그 보는 관은 세상이 주는 만물관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물관이 있기 때문에 이 만물관이 바로 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옳은  생애가 있을 수가 없나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가서, 자주 안 하는 말씀인데 총명이 무엇이라는  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총명이라는 것은, 총명이 뭐이오? 총명은 땅에 속한  총명도 인간 총명이 있고 하늘에 속한 총명도 있는데 총명이라 말은 다른 말로  환원해서 말하면 만물관이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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