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는 비유

 

1985. 12. 15 주일오후

 

본문: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시편 2편 1절∼6절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바울이 이 집 짓는 비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의 일부분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터를 닦아 두었는데 이 터는 곧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 홀로 계시면서 영계의 것과 이 물질계의 것을 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시고, 당신의 그 본질과 본성과 그 속성을 따라서 피조물들을 지으셨고, 또  피조물들의 모든 생존의 그 법칙을 당신의 그 형상대로 법칙을 정하셨습니다.

그런고로, 당신의 그 모든 면에서 우리가 그분은 근본이시요 그분은 또  원형이시요 우리는 그분과 같이 닮고 그분을 본받아서 그분과 같이 된 것은 다  영생이 됩니다. 그러나 그분과 다 반대되는 것, 모두 그분과의 위배되는 것 그런  것은 다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이 법칙을  두셨는데 먼저 하늘나라에서 이 법칙을 위반한 존재가 생겨져서 그것이  하늘나라에 처음에 그 어두움을 발생했고, 거기에, 모든 어지러움을  시발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쫓아내서 그 하늘나라와 이  물질계와 그 사이에 위치를 잡고 제한된 그 범위 안에서 머물고 있다가 이것이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에 들어와서 이 우주 안에 모든 물질계의 주인공으로  물질계에 있어서는 창조주의 대리로서 대리 주인격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인류의 시조입니다. 그래서 지으실 때에 땅을 정복하고 주관하게 하신다는  것은 땅만이 아니고 이 우주 물질계 모든 것은 사람들이 주관하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렇게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랬는데 영계에서 타락한 그 천사가  거게서 쫓겨 내려와 가지고 공중에 권세 잡았다 이랬습니다. 공중에서 제한된  위치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 제한된 그 위치는 하나님의 이 생명과 옳은, 밝고  옳은 것 깨끗한 것, 이 빛이 흑암 중에 그들은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에 보면은 흑암 중에 유리하는 별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라다가  인류의 시조 아담을 하나님이 지으시고 모든 물질계 피조물의 하나님의 대리  주권자로 모든 것을 정복하며 다스리게 했는데 이것을 이 악령이 시기해 가지고  에덴 동산에 들어와서 그 아담 해와를 유혹시켜 가지고 범죄케 했던 것입니다.

이 천사가 하늘에서 범죄한 것도 하나님 주권하에서 또 하나님의 그 통치의  법대로 하나님을 중심하고 위주해서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거게서 반해  가지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반역한 행위를 하다가 쫓겨 나온 그 악령이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배암의 형상을 입고 배암을 이용해 가지고 들어와서 먼저  연약한 해와를 유혹시키고 그 다음에 아담까지 미혹을 시켜서 하나님과 그  관계를 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유혹시킨 것은 네가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  중심 위주로만 있으면서 하나님에게만 피동하여 그렇게 살 것이 아니라. 너에게는  네가 네 중심으로 네 위주로 네가 그에게만 피동되지 안하고 능동으로 살게 되면  너도 하나님 같이 될 줄을 저가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를 이런 것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유혹을 시켰습니다. 그 말은 참말이나 해와가 아직까지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미혹이 된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그 말은 참말입니다. 하나님만이 당신이 주권자로서 자기 중심  위주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완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고 아담  해와는, 그는 전지 전능자도 아니요 유한한 자요 완전 자존자가 아닌데, 자존자가  자존 완전자의 그 위치에서 사는 그자가 아니면서 그자와 같이 살라고 하는 네가  그자와같이 살아라. 그 영원 자존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분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고 바른 것인데 너는 이렇게 선악과를  먹으면 이와같이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같이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같이 되는데, 하나님같이 됐습니다 된 거는 뭐이 됐느냐 하면은  하나님도 당신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모든 선악을 규정 지웠습니다. 당신에게  틀리면 다 악이요. 당신과 맞으면 다 선이요, 당신에게로 귀속되면, 당신에게  속하면 영생이요 당신을 떠나면 사망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하셨는데 해와가 그런  위치를 제가 취해 가지고 저도 그렇게 된다고 하니까 배암에게 꼬여서, 그러면  제가 하나님 되겠다 해서 그렇게 그 위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그의 비판도 평가도, 경영도, 행동도 자존 완전자가 아니면서 자존 완전자가 사는  방편을 취하고 그 위치를 취해 가지고서 그 행동하니까 그 모든 것은 자존  완전자에게 다 대적이 되고 배치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우주는 처음에는 인류가 그 모든 것을 대리로 주권하고 또 그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이렇게 있었지마는 그만 이렇게 사탄에게 아담 해와가  패전했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그 실권을 사탄이 뺏들게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공의의 하나님인데 아담 해와가 범죄했기 때문에, 배암에게 끌려서  범죄했기 때문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범죄에 속한 것이 되어져서 범죄는  마귀가 주인이요 마귀는 범죄의 머리가 돼 있기 때문에 이 우주의 통치자는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다 악령이 주권을 가지고 왕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하는 것은 세상 주권자가  오겠는데 내게는 상관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에 주권을  받았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서 거게서 수권해 가지고, 권세를 얻어서 수권해  가지고 주권한 자인데 수권했으면 수권 범위 내에서 활동해야 될 것인데 수권  범위를 넘어서 월권한 행동을 하는 데에서 사람들이 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원죄는 뭐이 원죄인고 하니 원죄는 피조물이  피조물 제 중심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원죄요 그것이 사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됐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멸망받는 것을 멸망대로 두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래서 하나님께서 구출을 하려고 구출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어 구출하려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발동이오.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시니까 또 죄를 지었으니 죄의 값은 사망인데, 사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기 때문에 부득이 사망도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서 죄의 값으로  사망도 하고 또 인간도 구원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사람되셔  가지고서 대신 대형으로 모든 사망의 벌을 받고 당신이 다시. 자체는 범죄하지  안하고 사망의 벌만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범죄의 형은 받아 버렸으나 당신  자체에게는 아무 범죄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는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게  돼 가지고 우리에게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우리를 다시  거듭나게 해 가지고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가지고 새롭게 본  지위를 되찾은 것입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이 실패한 것을 하나님이 도성  인신으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제이 아담으로서 하나님의  대리의 이 주권의 위치를 다시 복구해 가지고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시편 2편에, 하나님의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업신여긴다  이랬는데「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을 대신 위임 통치자, 대신  위임 주권자,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주권입니다. 하나님에게 주권이 아니고, 이  주권도 하나님에게 수권의 그 주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에 소속하고  하나님이 이와같이 주권을 주셨으나 그분에게 주권을 받은 그 수권 범위와 법칙  내에서만 하지 그것을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시 대리자를 세워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도록  하실려고 신인 양성 일위로 땅 위에 오셨는데 오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형, 대행,  대화친 이 완전 해결의 공로를 이루시고 난 다음에 그때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의 모든 권세를 부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이제는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으니 너희들이  지금 내가 이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하겠으매 모든 나라와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친 이 도리를 가르쳐서 지키게 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같이 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으로서 이 마귀에게 모든 권세를 뺏겨서 마귀가 세상 임금이  됐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이 사탄으로 더불어 요새 아이들 말로 말하면 도전을 해  가지고 이 사탄을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사탄은, 다시금 첫째 아담에게 대해서  행하듯이 예수님을 어짜든지 하나님의 그 법칙에 위반되는 그 행위를 하게  하려고 온갖 것으로 뭐 달래고 또 꾀우고 또 위협하고 협박하고 고난도 주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만 우리의 죄, 하나님을 배반한 죄, 또  하나님께 순종치 안한 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자율대로 산 죄 이 세 가지  죄의 형을 예수님이 받으셔서 그 형만 받았지, 아무리 해도 형만 받지 하나님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거역하거나 범하지 안하고 죽기까지 순종으로 이렇게 했기  때문에 범죄케 하려는 마귀는 첫째 아담은 범죄케 해 가지고 제가 승리하고  사람은 졌지마는 둘째 아담은 범죄케 아무리 해도 범죄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 그분에게 주권을 두고서 그분에게 피동되는 이 피동이 끝까지  하나도 흠이 없이 완전 피동만 했기 대문에 범죄케 하려는 사탄은 패전을 해  버렸고 예수님께서는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의 중보자는, 첫째 아담은 중보자 되지  안한 것이 이제 둘째 아담으로서 중보자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영계의 것이나 물질계의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앞으로 통치하실  분이 곧 주님이시요. 또 그 모든 것을 선악간에 모든 행동한 것을 심사해  가지고서 조사해서 심판하실 분이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사람됨을 인해서  심판하는 권세를 오직 그리스도가 가지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창조주가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온갖 그 주권하시고 모든 것을 다 보존하시고 모든 것에 대해서 직접 친히  섭리하시고 경영하시고 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하시는 이 일을 첫째  아담에게는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것이 그만 시험 단계에 들어가 가지고 패전을  해 버리고 뺏겨 버렸습니다. 둘째 아담은 이제 이것을 완성을 해서 승리해  가지고서 완전히 창조주의 이 대리의 이 지위와 권세를 완전히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 지위와 권세를 가진 것은 예수님의 그 신성이 가진 것은 신성은 그리  안 해도 가진 것입니다. 가졌는데 이 신성은 가진 것을 인성에게 이양시켜 줘야  되는데 이양시켜 줄라고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을 정하시고 그대로 이거 이양을  받아서 하나님 대리노릇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통치도 하고 시은도 하고 모든  운영도 하고 그 관리도 하고 이렇게 하는 그 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목적인데 이 목적을 정해 가지고 처음에는 실패를 해서 이제 두번째  아담으로 성공을 했는데 두번째 아담으로 성공한 신인 양성 일위이신 그 신성은  이라기 전에도 모든 주권자요 한 분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신데 그  하나님은 천상 천하에 이 피조물을 창조주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셨지마는 이 피조물들에게 이 상속을 줘 가지고, 피조물들에게 유업으로 주신다  이랬습니다. 피조물들에게 상속을 줘 가지고 피조물로서 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할  수 있는 이 자를 만드실라고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셨는데 첫째 아담으로서는  실패하고 둘째 아담이 이제 이 일에 성공을 해서 모든 피조물을, 피조물 중에  있는 피조물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관리하게 되는 이 일을 성취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는 그 말은 우편이라 말은 승리라는  말이요, 승리라 말. 승리자의 위치에 앉아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았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그 말은 무엇을 가르치는 말인고 하니 모든 전 자체도  그러하고 전 행동도 하나님, 하나님으로 인해서 모든 일이 되어지지 하나님으로  인하지 안하고 독립이나 뭐 자립이나 그런 것으로서는 하지 않는 그런 것을  표시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물질계 우주의 것만 아니고 영계의 것도 다  통치하십니다. 영계 것도 예수님이 다 통치하시도록, 예수님 하면 신성만이  예수님이 아니고 신성과 인성과 신인 양성 일위가 될 때부터 예수님이십니다.

일위가 될 때부터 예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속하는 요거 좀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류를 대속하는, 인류를 대속하는 것은 인류  대속만이 아닙니다. 인류를 대속하는 것은 인류 대속만이 아니고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타락한 천사는 이 대속이라는 말을 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타락하지 안한 것들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우리는 또 타락해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릅니다. 다른데  예수님의 대속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칙을 정해 준 그  법칙을 어긴 그것이 죄인데 범죄한 거게서 사죄와 이 칭의와 화친을 주는  이것만이 대속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법, 하나님의 영원한  것 그 영원한 것을 다 우리에게 주는 그것이 구속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속이라는 말은 처음에 범죄한 것을 전제로 두고 거게서부터 시발돼서 말하는  것이고 구속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죄 안 한 천사들한테도 천군 천사들도 구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속하는 것은 그것은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도 그것이  현재에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은혜의 한계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그 한계 밖에  영원히 유한한 한계에서 자꾸 은혜를 받아 나가는 그 은혜를 주는 것을 가리켜서  구속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는 보면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 말은 이것 믿음도 항상 있고 사랑도  항상 있고 소망도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걸 가리켜서 사랑이라 그라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일도 억언만  년이 아니라 영원히 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일은 계속되고 있고, 또  소망이라는 말은 이미 얻어 가진 것은 소망이 아니고 미래로 얻어 가질 것을  가리켜서 소망이라고 말하고, 또 믿음이라는 것은 앞으로 얻어 가질 것을 내가  소망인데 얻어 가질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순종 방편을 통해서 우리가  얻어 가지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그 말은 무궁세계의 그 나라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시은자로서 은혜를  베풀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야 되고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셔야  되고 우리는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또 받아 가지고 또 받아 충만하고 또 받고 또  받고 영원히 받는 일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타락했다가 속량 받은 우리들과 그 비중을  성경에 말해서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은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들의  영원한 통치를 받고, 또 영원히 이용을 당하고, 옹호를 해서 하나의 수종하는 그  종과 같은 그런 위치에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6장에도 보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도 다 우리가 심판하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스린다 하는 것을 고렇게  명문해서 해놨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은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있는 그 천군들은, 천군 천사들은 영의 요소만 있습니다. 영의  요소만 있어서 영물만 되어 가지고 있고, 사람은 영의 요소도 있고 물질의 요소도  있어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양서 동물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그 영육을 가진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창조하실 때에 지극히 작은 요런 피조물  하나라도 고 피조물에게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지혜와 하나님의 그 십 이  속성의 요소가 다 들어가 가지고 그대로 만들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그만한 곤충 한 마리도 보면 곤충 거게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그  지능, 하나님의 본성 그대로의 곤충 한 마리도 만들어져 가지고 있고, 식물  하나도 만들어져 가지고 있고, 고 형상대로 만들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형으로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모형으로 만든 것 중에 제일 하나님에게 가까운  모형은 어떤 것이냐? 가까운 모형 그것은 사람이 가까운 모형이요, 천군 천사는  하나님의 그 영계에서 역사하는 고 면에 모형은 되어 있으나 물질계 역사하는 데  모형은 안 되어 있는데 사람은 영계의 모형과 물질계의 모형을 다 겸해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서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그 신성은  나타나지 안했으나 하나님의그 신성은, 본체와 그 신성은 모든 지음을 받은 만물  가운데에 나타나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이 피조물에게는 그 피조물이 생겨지기를 그분의 지능으로  생겨졌고 그분의 본질과 본성대로 생겨졌습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분 외에 무엇을 하나님께서 무엇을  만들어 가지고서 이래 할 게 없습니다. 그분 자체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존하신  자체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분 자체가 만든 것도 전부 자체대로 만든 것뿐입니다.

자체대로 만든 것뿐인데 자체대로 만든 그것이 또 앞으로 어떻게 생육하고  번식하며 어떻게 보존되느냐 그것도 하나님의 그 자체대로 고대로의, 고대로의 그  모든 지능이 와 가지고서 모든 것을 존재케 만드실 뿐만 아니라 지음을 받은  그것들이 또 그분의 내나 본체와 그분의 속성과 그분의 모든 지능, 그분  그대로의, 그대로의 조직과 그대로의 제도와 그대로의 그 모든 법리 그것, 그대로  이제 모든 것이 따라서 살도록 그렇게 한 것이 피조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피조물이 지음 받은 것처럼 지음 받은 것이 또  보존되고 유지되고 성장되고 하는 것도 내나 그 법대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한 것입니다.

‘모든 열방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한다’ 이 절대자가 자존하셔  가지고서 이분의 본능, 본질, 본성 대로 이런 것들을 지었고, 또 지은 것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고 영원히 보존되는데 살고 보존되는 그 방법이 또  그분의 본질 본성, 그 형상 그대로의 이치대로 살아야 되는데 그 이치가 있어  가지고서 그 이치대로 모든 것이 생육하고 번식하고 성장되고 영생하고 이렇게  하도록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인데 거게 하나님이 한  가지 법을 딴걸 낸 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크게 말해서 선이라 악이라  말하면 선악이 있어 가지고서, 하나님은 당신은 선하시기 때문에 모든 선에 속해  가지고 선으로만 영생하도록 했는데 요 선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서 이 선에  배치되는 그 한 법칙을 내셔 가지고서 이 배치되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에  배치되는 이것이 어떻게 배치가 되느냐, 어떻게 반대가 되느냐, 어떻게  반역하느냐 어떻게 그 이질적으로 이질, 다를 이(異)자, 바탕 질(質)자, 이질(異質),  어떤 이질적으로 된 이런 것은, 이분과 이질적으로 된 것은 결과를 보자. 그  결과를 보면은 이질된 것은, 그것은 요렇게 이질된 것은 요렇게 사망하고 조렇게  이질된 것은 조렇게 사망해서 이제 자꾸 죽고 망하고 멸해지는 길을 하나 내셨고  또 하나님과 일치되는 길을 하나 내 가지고서 일치되는 길로서 그 결과의 천국을  하나님께서, 보라 일치된 것은 이렇게 되었다 하고 또 배치되는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배치되는 것은 이렇게 되었다 하는 이 모든 것이 이것이, 낮은  단계에서는 하나님 당신의 주관대로. 본질 본성대로 그분의 완전성대로 되는 이런  것을 만드시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에 배치되는  것들을 만들어 가지고서 이 배치된 이것으로 인해서 그분과 일치되는 것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있고, 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형은 꼭  같지마는 그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모든 이 만물도, 모든 이런 식물들도  이것도 꼭 같은 식물인데 꼭 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는 이 식물을 위해서, 이  식물을 영원히 새롭게 하기 위해서, 영원히 이것을 보존하고 이것도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완전 식물을 위해서, 이 불완전한 식물을 만들어 가지고  불완전한 식물이 완전한 식물을 위하고 완전한 식물에 위반되는 그것이 멸망의  식물이라 하는 것을 이것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고 여게 대한 법칙이  있기를 그 법칙이 어떤 법칙이냐 하면은 여기 그런 말했습니다. 3절에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맨 것을 끊고」 하는 것은 이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다  소속해 있는데,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그분에게 속하여 있는데 그분에게  속한 그것을 끊을라고 애를 쓴다 그말이오. 누가 끊을라고 애를 쓰는가? 그것은  모든 열방과 민족들이 그걸 끊을라고 애를 쓰고, 또 땅 위에 있는 모든 세상  군왕들이, 세상에 있는 자유자, 자주자, 주관자, 자기 주장대로 사는 모든  군왕들이 그 결박을 벗어날라고 애를 쓴다.

그러면 그 소속의 줄기를 끊고, 하나님이 그 법칙으로 얽어 놓기를 마치, 이런  데는 뮐로 가지고서 말할까요? 여기 어떤 사람들 보면 밥그릇을 이거 실로 짜  가지고서, 실로 짜가지고 쪽쪽 얽어 가지고서 그거 뭐라 합니까? 주머니, 그 짠  주머니, 말이오. 실로 짠 주머니, 실로 짠 주머니 그것을 실로 요리조리 싸서 딱  결박해 놓지 안했습니까? 결박한 것. 우리 시골에서는 그걸 표현할라 하면은  노망태, 노망태같이 해 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노망태라 말은 돗자리,  돗자리를 짤 때에 그 심을 넣을라고서 지금은 나일론 실로 막 이래 하지마는  그때는 삼을 가지고서 이래 비벼 가지고서 그 날을 만들고 그 목골을 가지고  이래 찔러서 이래 가지고 이래 자리를 만든 게 돗자리입니다. 그러면 심으로 하는  고것을 가리켜서 노라 이래 노, 놋줄이라. 노라 이라는데 그 놋뭉텅이는 뭐이냐  하면은 놋뭉텅이는 그 놋줄을 가지고, 놋줄을 가지고서 조그만하게 요래 가지고  자꾸 얽습니다. 자꾸 돌돌 감으며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이만치 커집니다.

이만하게 커지면은 그것이 이 놋줄로 가지고서 몇 번이나 얽었습니까? 한 백 번  얽혔습니까, 백 번 얽혔습니까? 천 번도 더 얽혔어. 천 번도 더 얽혔어. 이 똑  놋뭉텅이 모양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피조물을 총총 들이 얽어 가지고서  이렇게 당신의 법칙에 어긋나지 못하게 총총 얽어 넣고 요 법 안에 있는 것은  살고 요 법만 나가면 다 죽도록 하는 것이 그 우리에게 여러 번 보였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하나님이 결박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결박 주머니 그거, 결박  주머니가 방주라 하는 그 결박인데 그 결박에 벗어나간 것은 다 죽어요. 그  밖에는 다 죽었고 이 결박 안에만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 결박이 뭐이냐 하면 지금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이 교회는 뭘로 된 것이 교회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와 또 성령과  진리 이 셋이 머리가 되고, 이 셋이 머리가 되고, 이제 그게 속한 모든 인간들이  이 셋과 같이 연결이 돼 가지고 피와 연결되고 성령과 연결되고 진리완 연결된  이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이래서 인간이 인간을  초월한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와 이렇게 결합돼 가지고서 다시 살아난  것이 그것이 중생이오 중생된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서, 피조물과 창조주이지마는  하나님과 함께 동하고 정하는, 양성 신성 인성 양성이 동행하는, 양성이 일행하는,  양성이 합해 가지고 일행하는 것, 예수님은 신인 양성 일위이고 우리는 양성  일행입니다. 동행, 일행,

이래 되는 것이 교회인데, 이렇게 해서 그 결박 안에 있는 것은 그것은 다 영생이  되고 그 결박을 벗어난 것은 다 멸망을 받는 것인데 「열방이 분노하며」 그들이  공연히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반대해 가지고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한다는 말은 인간들이 하나님이 이렇게 딱  정해 놓은 이 모든 궤도가 있고 조직이 있고 질서가 있고 법칙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있는데 거게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제 그걸 벗어날라고 자꾸  애를 쓴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모든 경영은 헛경영이라 말이오.

「허사를 경영하고 세상 군왕들이」 세상에 권력가들, 권력가들은 이제 정권 잡은  자만 권력가가 아니라 제가 제 주장대로,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제 취미대로, 제 생각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것은 다 군왕이라  그말이오. 그거는 다 왕입니다.

이래서,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서로 꾀한다 말은,  관원들이라 말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서로 꾀를 냈다 말이오. 하나님의 법칙은 진리인데 그 진리대로  하지 안하고 진리를 떠난, 인간의 그 인본의 모든 꾀 그것이 사술이요 그게  복술이요 인간의 자율이라 말이오.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여호와라 말은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은 계약대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영원한 선자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 기름을 부어 가지고 장립시킨 자가 있다.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러면 부음 받은 자가 누굽니까? 여러분 누구라고 이거 지금 해석을  합니까? 누구입니까? 예? 누구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기름 부음  받았다 말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 됐고 우리의 선지가 됐고, 우리의 왕이 됐다  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이렇게 창조주가 그걸 지을 때에 딱 소속을 시켜 놨는데 그 소속을 제가 끊고,  자존자처럼, 제가 스스로 있는 자처럼, 독존자처럼 그렇게 제가 하려고, 그 맨  것을 끊자, 거게서 벗어나자.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하도다」 하나님께서 이 법칙으로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딱 얽어서 얽어 놓은 것은 그 법칙에 튀어 나가면 영원한 사망인데  법칙에 튀어 나가면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에 사망하지 못하라고 이렇게, 말하자면  그 안보, 안보의 결박이요, 안보의 결박인데, 그 안보의 결박을 그걸 벗어나자고  이렇게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벗어 나겠다고 떠들어 쌓아니까, 떠들어 쌓아니까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하, 참 네가 벗어날 줄을  알고 벗어날라 하느냐? 어리석은 자야.’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십니다. 인간들이  이 절대자가 계시는데 이걸 떠나서 제가 제맘대로 이렇게 저렇게 할라 하는 것을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저들이 놀랠 만한 말을 하는데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록한 시온에 세웠다 하시도다」 이제 마지막에 모든 것을 승리하시고, 시온의  거룩한 산이라 말은 그 완전 성결을 가리켜 말했는데, 완전 성결, 평가적으로  제일 높으고, 평가적으로 제일 높으고 비판적으로 제일 옳고 이제 성결적으로  모든 면으로 제일 완전한 하나님 다음으로 완전자가 된 이를 세웠기 때문에 그때  세웠다 할 때 그들이 다 놀래서 꺼꾸러지는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오전에도 말했지마는 하나님 한 분이 자존하고  계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지음 받았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지음을 받았는데 이 지음 받은 것은 지음만 받을 뿐만 아니라 또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우리가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만일 우리에게 은혜를 끊으면은 아마 한 십 분도 못  있습니다. 숨을 안 쉬고 십 분을 못 견디요. 십 분을 못 견디는데 그만 숨 안  쉬면 죽는다 그거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양육돼 가지고 있고 또 그분의  법칙이 있어서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이래 있는데 그분의 법칙이  있으니, 그분에게 지음 받고 그분에게 보호받고 그분에게 이제 양육받으면서  그분의 법칙을 옳다 인정하고 그분의 법칙에 따라서 하면은 영생이 되고, 고건 다  영생입니다. 영생이 되고 그분의 법칙을 무시하고 어기는 것은 그것이 죄라. 죄가  뭐이냐? 죄라 하는 것은 왕을 범한 게 죄 아니오. 이 성경에 죄라하는 것은 왕을  범한 것도 죄가 아니요, 국법을 범한 것도 죄 아니요, 이 죄라 하는 정의는 어데  있느냐 하면은 이 창조주, 조물주 이분의 주권 법칙에 위반된 것이 다 죄입니다.

위반된 것, 그 법칙에 위반됐을 때에 온 나라가 다, 온 인류가 그건 좋다,  찬성이라, 의라 해도 그는 정죄입니다. 또 이분의 법칙에 일치가 됐을 때에  천하에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죄라 해도 이는 의입니다. 절대 이걸 정죄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이렇게 살도록 돼 가지고 있는데 거게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통치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법칙을 주어서, 정치면으로,  정치면으로 법칙 준 것을 가리켜서 뮈라고 했느냐 하면은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왕의 직책을,  왕의 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왕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를 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존하신 주재자, 완전자, 단일신의 한  분이신 하나님 이분의 모든 그 정치하는 고 정치는 단일 정치요, 그걸 가지고  모든 피조물이 받아 가지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통일 정치라 했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 말은 그 단일 정치에 다 따라서 거게  움직여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통일정치라 말했는데 앞으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통일 정치 거기에 지금 내가 거기에 통치를 받고 거게 통치를 받고 또  내가 통치 받은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 가지고 모든 존재들이 여게 통치  받아서, 그러면 우리가 지금 자꾸 왕권을 마련하는 것은 뭐이 왕권 마련하는 거냐  하면은 그분의 통치에 내가 통치받고 그 통치로 가지고서 한 사람을 통치받도록  했으면 내가 그만치 왕권이 넓어졌고 백 명을 했으면 백 명이 넓어졌고 이래  가지고 우리는 왕권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왕권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 선지권을 마련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은 그분이 모든 것을 피조물에게  주시되 그냥 생명도 주고 부자도 주고 돈도 주고 예를 들면 건강도 주는데  그분이 주시는 것은 뭘로 주시느냐 하면은 돈 줄 때는 돈으로 주시고 그  실상으로 주시는 게 아니고 그분은 없는 가운데서 말씀으로 모든 걸 창조했기  때문에 말씀으로 주십니다 그 말씀으로 주실 때에 그 말씀을 어떤 사람이 받아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돈 되는 말씀을 전해 줬을 때에 그 사람이 그  말씀대로 행하면 돈이 돼 버립니다. 행하면 돈이 됩니다. 행하면 권세가 됩니다.

행하면 모든 영광이 돼 버립니다. 행하면 또 승리가 됩니다. 이런데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실라고 할 때에 말씀으로 주시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게 진리인데 그 진리를 주실 때 그것을 사람들에게 운반을 해다가 다른  사람에게 줬을 때 그 사람 그걸 받아 가지고 고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실상을 만들어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인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실상이 만들어진다 하는 걸 가리켜서 믿음의 모든 소망하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것을 환하게 자기가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것은 믿음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당신이 주권을 가지시고 줄 때에 당신에게 직속이 있고 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에게 직속이 있고, 피조물로서, 피조물로서 이 자존하신  하나님에게 직속이 있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위는 셋이요 본체는  하나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 조직 신학에는 본체가 셋이라, 본체가 하나라 이것  때문에 많은 신강이 있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 한  분뿐이시요, 한 분뿐이시요, 한 분뿐이신데 한 분인 이 하나님은 한 본체만  있습니다. 한 본체 안에는 몇 격위가 있느냐? 성부, 성자 성령 세 격위가  있습니다. 삼위가 있습니다. 삼위가 있는데, 그 삼위가 있는데 삼위는 또 성부는  성부의 본체가 있고 성자는 성자의 본체가 있고 성령은 성령의 본체가 있고 이  본체가 각각 또 따로 있습니다 본체가 있는데, 그러면 성부의 본체와 한 분  하나님으로 한 분으로 있을 때 한 분의 본체가 있으니 이 한 분의 본체와 이  성부의 본체가 다 같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요, 또 성자의 본체도 하나요, 또  성령의 본체도 하나요, 성부의 본체 속에 성자 성령의 본체가 그 속에 들었고, 또  성자의 본체 속에 성부와 성령의 본체가 그 안에 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  유한한 인간들이 그러면 요거와 같은 것이가, 저거와 같은 것이가 이렇게  말하지마는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요런 거냐 조런 거냐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가리켜서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극 신비에 속한 것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 일 때문에 그래서 제가 전화를  해 가지고서, 이쪽에서 거게 대해서 전화를 해 가지고서 장시간 전화를 해  가지고서 거게 대한 것을 좀 말을 해서 다 시켰습니다. 왜? 고거 잘 모르면 공부  할 때 그때 혹 잘못될까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그 신학교가 미국에서 지식으로서는 앞섰다고 볼  수 있는 그런 신학교입니다. 그 신학에서 장로교는 모두 웨스트민스터 신도 요리  문답, 웨스트민스터 신도 교리와 그 요리 문답을 모두 신조와 교리로 삼아  가지고서 믿습니다. 그래 장로 장립할 때도 그 신조와 요리 문답을 믿느냐 이렇게  말하면 믿는다 하고 이렇게 확인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게서는  요리 문답 그 제육문에는 무슨 문이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 한 분의 그 머리 속에  몇 개체가 있었느냐? 세 개체가 있었다. 세 개체가 있었는데 세 개체는 뭐이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다, 그렇게 답을 해서 그렇게 기록해 놨어.

그것도 내나 바로 알고 말한 것인데 그 한 하나님의 머리라 말은 하나님의 그  신격, 신격을 우리말로 하니까 이 머리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머리라, 그  신격 속에는 몇 격위가, 세 격위가 있으니 성부, 성자 성령의 그 격위가 있는데,  그러니까, 성부의 본체가 있고 성자의 본체가 있는데 이제 서로 좀 다른 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한 분이 자존하시는데 한 분 하나님은 한 본체가 있었다.

‘한 본체가 있었다’ 요것만 아는 사람은 한 본체가 있었는데, 성부의 본체도 있고,  성자의 본체도 있고 성령의 본체도 있으면 그거 틀렸다 이래 가지고 서로 신강을  해 그거 틀린 게 아니고 이들은 하나님 한 분의 본체 속에는 이 세 본체가  있는데 세 본체는 각각 세 본체가 있는데 이 세 본체 각각마다 또 하나님의 한  분의 본체가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게 인제 신비한 것인데 그것은 신앙이  자라면 넉넉히 이해가 되지마는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그 믿음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이해를 잘 못합니다. 심령이 어두워서. 그래서 그런데 대해서는 벌로  생각하면 탈선되기 쉽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처음에는 모든 걸 혼자 직영했습니다. 혼자 직영을  하셔. 혼자 직영을 하고 계시다가 이제는 여게서 당신의 대리자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당신과 같은 자를, 완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고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고 이래 가지고서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꼭 모형, 하나님의 전능의  모형이니까 전능입니다 전능 이 본체는 아니지마는, 창조주는 아니지마는.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이 창조주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꼭 같습니다. 행동도 꼭 같고  지능도 실력도 꼭 같습니다. 이렇게 됩니다. 되는데 다만 뮈이 틀리느냐? 그분은  언제든지 창조주요 우리는 언제든지 피조물로 요것만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요, 이게 기독자의 구원이기 때문에 이거는 딴거 가지고 안 됩니다. 믿는  것 가지고 되지 딴거 가지고 될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하나님 한 분이 계시고, 한 분이 계시는데 피조물로서 한 분 하나님에게  직속자가 있으니까, 직속자가 하나 있고, 또 직속자에게 속해 가지고서 이제 되어  있는 자가 있으니까 직속자에게 속했으면 자존하신 하나님과는 직속입니까  간속입니까? 직속입니까 간접입니까? 녜? 직접이요 간접이요? 예? 직접이요  간접이요? 예? 이거 무슨 말인지, 이걸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는다면은 이  도를 깨닫는 데는 천리 만리 멉니다. 자꾸 육덩어리로 세상만 가지고 사니까 속에  빛이 들어갑니까? 하나님에게 직속이 돼 가지고 그 모든 것을 받으신 분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받았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자들은 모든 이 신구약 성경에 속한 모든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를 가리켜서 뭐라고 비유했느냐? 하면은 우리는 몸이라, 몸이라,  예수님은 머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피조물로서는 예수님이 직속된 그 주권자인데 피주권자라. 그러면  자존자 하나님 외에는 이 예수님이 제일 주권자입니다. 예수님이 주권자이신데  아버지 우편에 계셨다 말은 신성은 항상 거기 계셨지마는 예수님의 이 신성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이 인성이라는 피조물이 신성과 일위가 돼  가지고 이 인성이 신성의 위치에 올라가게 된 것이 이것이 도성 인신의 이  신비한 비밀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피조물로 할 수 없는 인간 구원의 사랑을  베푸셔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일차 수권자요, 직속으로서 수권자요, 또 그 다음에는  교회는 이차 수권자요, 또 그 밖에 모든 횡적으로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간접, 간간접, 그러면 일차 간접 이차 간접 그래 밖에 할 수 없어. 이차 간접,  십차 간접, 백차 간접, 천차 간접 이렇게 간접 간접으로 다 권세를 받아 가지고서  이래 있기 때문에 로마인서 13장에 1절에 말하기를 권세는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지 안한 권세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해. 전부 거게서 다 받은 권세라 말이오.

그러면, 그 권세나 이 받은 권세가 전부 다 그 범위가 다 있습니다. 범위가  있어서 ‘너는 요 범위 내에서 네가 요렇게 주권을 가져라. 또 너는 요 면만  주권을 가져라.’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주권 가진 면이 각각 다르고 범위가 달라.

범위가 요만한 범위 있는 것도 있고, 요만한 범위 차지한 것도 있고 이렇게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임금이 와 가지고서 뒤에 모두 회계를 할 때에 한  므나를 만든 사람은 한 고을을 주고 열 므나를 만든 사람은 열 고을을 준다 하는  그것은 무궁세계에 그 사람의 이제 수권의 범위, 또 수권에 소속의 그 부분, 각도  그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자유도 범위가 있고, 권위도 범위가 있고, 또 그  모든 것이 관할도 범위가 있고 우리도 구역 제도가 있어 가지고 이 식구는 이  구역장이 관할하지 다른 사람은 관리 못 해요. 이거 모양으로 하늘나라도 다 그런  조직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런데, 거게서 자기가 얼마든지 꼭 같은 것을 할 줄 알아도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범위를 마련한다, 하늘나라의 범위를 마련한다. 지위를 마련한다  그것을 가리켜서 고린도후서 5장에 말하기를 ‘내가 지금 탄식하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뭐라 했습니까? ‘덧입기 위해서' 하늘에서 오는 처소라 말은 자기가  하늘나라에 가서 살 곳을 말합니다. 살 곳이라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자기가  어떤 범위 내에서 자유하며 어떤 범위 내에서 그 권세를 가지며 어떤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의 것을 이제 통치할 수가 있느냐? 통치할 수가 있느나? 그러면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나 그것은 위에 자존하신 그분에게 이 직접으로 간접으로  자꾸 계통으로 흘러내려와 가지고서 나에게 왔기 때문에 여게서 비록 자기가  수권한 것이나 그분에게 수권 범위 내에서 수권의 법칙대로 해야 되지 수권의  범위를 떠나서 수권의 법칙을 떠나면 다 멸망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대로 해 가지고서 되는 것인데 인간들이 이걸 모르고 자꾸  자율대로 주관대로 이래 가지고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너희들이 왜 허사를 경영하느냐? 이 땅에  있는 권세자들이 그거 제가 뭐 할 줄 알고 하나님이 결박을 끊고 그 모든 맨  것을 다 끊어 버리자 하는도다. 자존자가 아니면서 자존자인 줄 아는 그것이  망령이요 그것이 패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잘 알아요. 요 하나만 알아도 이 권세면을 요것만  알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있으면 아,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권세를  가졌나 안 가졌나, 이 자리에 내가 권세를 가졌다. 내가 권세를 가졌으면 이  권세는 누구에게 받은 것이냐? 하나님께 받았는데 이 권세를 하나님에게 직접  받았느냐? 하나님께서 간접으로 간접으로 나는 지금 대통령에게, 이 동장에게 이  동의 서기에게 받아 가지고 나는 반장 권위를 받았다. 반장 귄위를 받았으면 반장  권위를 받은 것도 이 세상 나라로 말하면 계통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이 보이는 상전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상전이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이 계통이  있기 때문에 그 계통적으로 그것을 생각해 가지고 그 계통과 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계통이 다 같은데 요 계통대로 여게서 보이지 않는 이 모든 계통을 자기가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 믿음 생활하는 것이오.

고 계통과 보이는 계통과 다른데 보이는 계통은 보이는 계통 그 줄기로 나갈려고  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은밀한 가운데서 계시는 그분의 계통을 따라서 이래  할라 하니까 계통과 계통이 싸움이 있는데 그 보이지 않는 그분의 계통에 맞도록  하려고 하니까 그분의 계통에 맞을 때에는 보이는 계통이 나에게 명령해도 그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해야 되고, 보이는 계통에 내가  이제까지 매일 꼭 순종해서 절대 순종으로 이래 살았지마는 갑자기 그 보이는  계통에 보이지 않는 계통의 그 명령과 정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걸 해라’  하면은 `못 합니다' 그 느부갓네살 왕에게 ‘못 합니다’ 이거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분의 계통을 따라서 하기 때문에 먼저 구할  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나라를 구하라 그 말은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의 통치와 모든 조직과 이 모든 결박같이 되어 있는 모든 세포가 다  나열되어서 이와같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알고 거게 속해서 살라고 내가  애를 쓰는 것이 그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걸 구하면 그것만 구해 살라고 살면 하나님의 축복이 와 가지고 모두  형통하지마는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보이는 계통 이까짓 거는 다 없어질  것들인데 이것만 생각해서 여게만 따라서 살기 때문에 이 둘에서 ‘네가 여게  따르느냐 제게 따르느냐 보자’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계통에 속해서  보이지 않는 계통과 보이는 계통이 일치될 때에는 내가 행동하고 나는 보이는  계통에 순종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보이지 않는 계통에 속하는 것이 보이는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뿐인데 이제 이 보이지 않는 계통을 버리고  보이는 계통에만 속해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계통을 배반한 것이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요 그것이 그것들을 섬기는 것이요 그게 우상 만든  것이라.‘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거 다는 멸할라 하면은, 그거 증거하기 위해서 두는 건데  다 멸하며 안 돼요. 다 멸하면 안 되니까 백에 하나나 천에 하나 탁! 깨 버린다  탁! 깨 버려. 깨 버리니까 ‘아이구 저거 왜 깨졌노?’ `살펴봐라. 보이지 않는  계통을 배반했지 안했느냐?’ 이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이러기 때문에 성 에  말하기를 입곱 머리 가운데 하나만 상하게 했습니다. 하나 상했다가도 그것도 또  퍼뜩 나았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 법칙을 어겨서 상하는 그걸 보고 아이구  상한다 그거 알고, 알았으면 ‘알았나?’ `알았습니다’ 그러면 또 그거 냅두면  멸당하니 안 돼. 그것 또 회복시켜야 돼. 회복시켜야 또 우리가 이용하지. 이러기  때문에 상한 일곱 머리 가운데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잠깐 회복되는 걸 보고, 어떤  사람은 상하는 것 보고 삽니다. 상하는 것 보고 살고, 어떤 사람은 상하다가  회복된 거 보고 ‘뭐 회복됐네. 뭐 그거 가지고 그러노?’ 이러고 회복된 것 보고  사는 자는 멸망할 자요 상하는 것 보고 조심해서 상하지 않도록 사는 자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전체가 마구 이렇게, 이렇게 노망태 얽듯이 이래 탁 얽혀 가지고서  물샐틈 없이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 성경을 들여다 보지도 안합니까 항상 마귀  꾀우는 것, 속이는 것 그놈에게밖에는 복종을 못 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권세 하나만 해도, 그러면 우리가 만일 남편이 아내에 권세 있다  하면은 무슨 면에 권세가 있습니까? 그거는 하나님께서 부부라는 제도를 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권세입니다. 직접. 남자가 여인의 머리됨은 직접  받은 권세라. 직접 받은 권세인데, 그러면 그 권세가 무슨 권세인가? 그 권세는  어떤 권세인가? 그 권세를 내가 권세를 받을 때 그 수권 범위가 어떤 범위인가  알면 돼요. 그 밑에 해석을 해 보면은 그 범워 그 권세는 무슨 권세냐? 그것은  네가 그 여인보다, 하나님과 그 여인과 그 사이에 네가 중보자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중보자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에게,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동하면 네가 동하고, 그라고 나면 동할 때 네 아내는 네게 따라서  동하고, 요렇게 네가 중보자의 권세, 그 아내보다도 앞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권세 하나님 앞에서 먼저 성화를 받아야 되는 권세, 먼저 회개를 해야 되는 권세,  이제 그런 면으로 권세지, 그런 면으로 권세인데 이거 타락되고 난 다음에는 그런  권세가 아니라. 그런 권세가 아니고 여자를 제 마음대로 종으로 잡아 제 마음대로  그런 권세, 이건 전부 다 마귀가 준 것이지 다 이거 수권 범위를 넘어서 다  월권하는 행동이라 그말이오.

모든 것이 권세 하나만 따져서 이 권세가 어데서부터 났으며 이 권세의 범위는  어느 정도이며 이 권세를 줄 때는 무엇을 하라고 이 권세에서는 책임을 뭘  맡겼는가? 반드시 권세에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고, 의무와 책임에는 반드시  그 다음에 심판이 있는 것이고 이런 것이니까 이것을 어떻게 하나 이거 하나만  우리가 살펴봐도 갈 길이 환하고 보여지고, 환하게 보여져서 요 법칙에 딱  들어맞으면 천지가 변해도 상관이 없어.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요 법칙에 딱  맞는 자는 해하지 못 해요. 해할라 하면 그분을 유익하게만 했지 해하는 게 절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절대 생명의 길이요, 절대 완전의 길이요, 전능의  길이요, 전지의 길이오, 만능의 길이요, 완전의 길이요, 완전 승리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오, 영생의 길인데 이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이 길을 다 잊어버리고  이렇게 다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헛일하다가 다 실패를 하고 만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본 것은 뭐이냐  하면은 사람들이 여게 건축을 하는데 건축을 하되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말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를 받았고 칭의를 받았고 화친을 받았고,  세 가지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 대속을 터로 삼아 가지고, 이 대속을 근거해서  자기의 지식도 건설하고 자기의 지능도 건설하고 자기의 인격도 건설하고 자체도  건설하고 소유도 건설하고 지위도 건설하고 영광도 존귀도 건설하고, 바울이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기 위해서 한다 이랬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는다 그 말은 꼭 옷같이 보이지마는 옷이 아니오. 덧입는다 말은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내가, 처소, 그 처소는 아, 이 사람은 모든 동회에  동직원들을 다 이렇게 다 통솔하고 그 위에 동장으로 있다. 또 그 밑에 그  동민들을 다 통솔하고서 다 책임을 지고서, 책임은 다는 아니지마는 어느  부부적으로 진 부부은 졌다 그말이오. 또 이래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이 자,  반장의, 반장의 위치와 처소가 있고, 동장의 처소가 있고 구청장의 처소가 있고,  시장의 처소가 있고 그거 자기의 위치가 있지 않습니까? 하늘에 무궁세계의  자기가 머물 수 있는 자기 위치를 마련할려고, 하늘에서 오는 그 위치를  마련할려고 이제 죽도록 충성하고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배설물 똥 오줌과  같이 다 이렇게 다 그것을 버렸다 말하는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에 자기를 건축하되 어떤 사람은, 건축하는데 금으로 은으로  보석으로 건축하는 사람이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건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풀과 나무와 짚으 다 타는 것 아닙니까? 금과 은과 보석은 불타지 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공력을 시험할 때 불로 시험한다. 불로 시험해 가지고서 그  공력이 불타지 안하고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그게 불타면 다 해를 받는다.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거와 같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자기  공력은 다 불타 버리지마는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얻었으니  하늘나라는 가지는 가지마는 공력은 다 불타 버렸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얻는 거와 같다. 불 가운데 구원 얻으면  좋아요 그게 나쁘겠어요? 뭘, 뭘 표시한 것입니까? 불 가운데 구원 얻는다는 거는  그 나쁜 것 표시했습니까 좋은 걸로 표시했습니까? 나쁜 걸로 표시하지  안했습니까? 이런데, 그 불은 뭐이냐? 불은 다른 데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모든 만물을  불사르기 위해서 다 쌓아뒀는데 불은 무슨 불이냐 하나님의 말씀의 불로 사른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말씀의 불 그러면 여게 불로 태운다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말씀은 이게 다는 아니지마는  우리로서 알아야 될 것, 우리로서 알아야 될,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피조물을 다  이렇게 밧줄로 결박하듯이 보호의, 이 안보의 이 모든 밧줄로 총총 얽어놨기  때문에 얽어놨으니까 이 얽어놓은 게 뭐이냐?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 밖에 나가면 다 죽는 것인고 요 안에만 사는 것이니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심사를 할 때에 그 사람의 하루 하루의 산 언행 심사 그것이 여기  심사하니까 이제, 그 불에 타지 않는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이제 불에 타는 것은 정죄 받은 거, 말씀이, ‘이거 네 틀렸다 틀렸다’  이라면은 여게 틀렸으면 다 이것은 검사해 가지고 그 공력이 다 불타 버리고  마는 것이니까 자기, 자기 위신을 건설하려고, 권세를, 지위를 건설하려고, 명예를  건설하려고 실력을 건설하려고, 자기의 쾌락을 건설하려고, 자기의 기쁨을  건설하려고, 자기의 평강을 건설하려고 뭐 모두 다 만들라고 있지 안해요? 만들지  안해요? 만드는데 이 만드는 것이 하나도 불타지 안하고 영원히 있으면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존귀하겠습니까? 아, 만들어 놓은 게 다 보니까 그만  실패입니다. 다 실패. 만들어 놓은 것이 그때 검사할 때에 다 실패가 되면은 그  얼마나 기가 차겠습니까? 내가 오전에 여전도회에서도 말했지마는 어떤 사람 보니까 결혼 실패해서 그러면  자살한다고 쌓아. 자살한다고 쌓는데 그 자살한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몰라서  요만한 범위 내에서 그게 다인 줄 알고 자살할라 했는데 자살한다는 그 사람을  딱 데리고 앉아서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 성경대로 이렇게 말해서 ‘인간을 보면은  이렇고 호호 양양한 무한한 영원의 범위가 있는데 조그만한 구석의 것 요 일시  잠깐 지나가고 마는 한 일부분에 속한 고것이 전부가 아닌데, 고게 전부가 아닌데  네가 고게 전부인 줄 알고 네가 절망 낙망하니까, 고게 고럼으로써 무한한, 또  광대한 세계를 차지할 수가 있고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러냐?’ 이라면, 눈이 떡 떨어지고 난 다음에 그렇게 말합니다. 아, 낮은 자는 이제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비참한 자인 줄 알았는데 높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예수  믿고 보니까 아, 이까짓 게 다가 아니라, 예수 안에 한없이 높은 것이 있으니까  이 높은 걸 떡 잡고 보니까 이제 높아진 걸로 자랑하고, 또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이 예수 밖에 이런 걸 가지고 막 제가 이래 커지고 제가 얼마 돈이 많다. 뭐  권세가 많다 이랬는데 알고 보니까 그까짓 게 뿌스래기도 아니고 눈꼽재기도  아니라 말이오. 아니니까, 이런 걸 보니까 아이구, 이거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폭  낮아지고 예수로 인해 폭 낮아지고 난 다음에 이제 내가 참 사실 실상을 보고  나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아주 낮은 자로구나’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높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이것이 예수 믿고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아, 결혼 실패, 찍해야 잘 살아 봤자 사십 년 오십 년 더 살겠소? 그거 찍해야 밥  잘 먹고 좀 재미있게 잘 살아도 그렇다 말이오. 이것은 실패했다고 자살하려고  하면서 우리의 일생 생활이라 하는 것이 영원에 완전 실패로서 비참이 되느냐  영원한 성공이 되느냐, 이 인생의 영원을 마련하는 여게 대해서 내가 실패냐 내가  성공이냐, 하나님께서는 털끝만한 것도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 계약한  이 계약 가지고 심판을 해요.

이 계약 가지고 심사하는데 이 계약 가지고 심사할 때에 이 계약에 위반된 거는  다 불탈 터인데 이 계약 이것을 알아야 여게 맞출 터인데, 이 세상일로서 야, 돈  버는 이게 이렇단다 네가 의사가 돼야 돈 벌 터인데 의사 하는 이치가 이렇단다  의사하는 이 이치의 의서를 공부하려고 막 머리를 싸 잡아매고 병이 나도록 까지  이렇게 해 가지고 뭐 외우고 야단을 지기면서, 이것도 잘못 모르면 사람 죽이면  돈벌이 못 하고 감옥에 갇혀요. 그거 중요하지요. 해 봤자 그거는 찍해야 몇십  년이나 필요하겠습니까? 자, 보통 의사가 될라면 한 삼십 세나 돼야 될 터이니까  삼십 세 돼 가지고서 제가 많이 해 봤자, 칠십 세 더 못할 것이오. 칠십 세 되면  눈이 어둡고 해서 못 한다 그말이오. 손이 뻘뻘 떨려 쌓아서.

한 사십 년 필요한 그것도 알라고 애를 쓰면서, 그 실패할까, 돈벌이 못 할까  애를 쓰면서 영원무궁을 지금 바로 알고 준비할 수 있는 영원 무궁이 기록이  돼어 있는 왜 이것을 왜 무시합니까? 왜 우리가 무시합니까 이거? 왜  무시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까 정신이 없는 사람입니까? 자,  이것을, 영원한 준비를 생각지 안하고 일시에 하룻밤 준비는 크게 여기면서  영원한 준비를 무시하는 이것이 우리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요 없는  사람들이요? 이렇게 한다면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삽니까 있는 사람으로 삽니까?

여러분들, 산 믿음으로 삽시다. 우리 현실에 현실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명령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요한 1서 2장 27절에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준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직접 명령하시는 그명령은 전능의 명령이요, 전지의 명령이요, 만왕의 왕의  명령이요, 만주의 주의 명령이요, 주권자의 명령이요. 그 명령에 따라서 그 명령과  나와 일치가 됐을 때는 내가 전지 전능자요 완전자요 영원한 자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내가 그런 게 아니라 그분과 직접 연결돼 가지고 그분과 나하고  동행하니까, 그분과 나하고 같이 역사하니까, 그분의 일을 그분이 나하고 같이  하시니까 내 역사가 전지의 역사요 전능의 역사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역사가  아닙니까? 이게 털끝만치라도 변함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갈 때에 그 다리오 왕을 보고서 비꼬았고  조롱하면서 그 아주 어린 아이같이 취급했고 천하의 대왕인 느부갓네살 왕을  보고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하 참, 왕이여 암만 그래 쌓아도 나는 거게  듣지 안하고 절하지 안 할 줄 아십시오.’ 그만 말할 것도 없다 해.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뭐 대답할 것도 없지마는 이제 내가 아예 절 안 할 터이니 그런 줄  아십시오.’ 얼마나 유치하게 봤으며 얼마나, 그뭐 사람이 교만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왕의 뜻이, 지극히 크신 분의 뜻을 가지고 이런데, 그 뜻은 이런데 그 뜻을  어길라고 지음 받은 그 쪼그만한 존제가, 쪼끄만한 손톱만한 그 지역에 권세  잡았다고 제가 떠들어 쌓아니까 하도 참 비우습고 참 우습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가련스럽게 보지를 안했습니까? 우리가 이런 믿음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전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만주의 주가 될 수 있습니다. 왜? 내 현실에 내게 이분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만 하지 안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언제든지 동행하지 합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당신이 내 현실에 이렇게  하자 할 때에 그분하고 예 하고서 따라서 그분하고 동행하는 것은 그게 전능의  행위가 아니고 뭐입니까? 그 행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기적과 축복이 반드시  나타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 행위가 안 돼서, 비슷하지마는 사이비해서 아니라서 헛일되는 것 많고  고 뜻에 딱 들어맞은 데에는 반드시 기적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그뭐 한 삼 년  하면 그거 한 십분지 일이나 뭐 그 뜻에 맞도록 하지 나머지기는 맞도록 하지를  못해요. 이래도 하루 십분지 일쯤, 하루 자기 생활에 십분지 일쯤 했다고 해서  기적과 축복이 떡 나타나면, 나타나고 난 다음에 뭐라 합니까? 나타나고 난  다음에는 ‘내가 머리를 싸 잡아매서 글을 읽고 내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렇지,  내가 시험에 합격 했다.’ ‘야야 네 공부는 지혜와 총명 누가 줬으며 누가 하라  했어? 네가 볼 때는 네가 한 거 같지만 하나님이 널 하게 하셔서 네 모든 걸  하나님이 다 줬어. 너는 아무것도 없어. 네게 생명도, 건강도, 기능도, 건강도,  기회도, 환경도, 주위도 다 내가 만들어 줬어.’ 이러나 제가 한 듯이 해 가지고서 제 실력으로 됐다 하기 때문에, 해 놓고  하나님이 해 주시니까 영광은 제가 딱 먹어서 ‘네 힘으로 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반드시 넘어진다 말이오. 제가 했다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뭐 하나님이 해 주시면 제가 했다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해 줘야  되겠소 안 해야 줘야 되겠소? 어떻습니까? 해 줘야 되겠소? 해 주면 그 자는  점점 교만해 가지고 나중에는 제가 하나님될라 할 터이니까 안해 줘야 되지, 안  해 줄 수 없어. 이래 가지고 우리가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어긴 게  아니라 우리가 어겨 가지고서 스스로 믿지 못하는 자를 자꾸 만들고 말았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쨌든지 우리가 사는 길은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되 그렇게 껍데기로 믿지 말고 바로 배워 가지고 바로 믿어서 우리도 잘되고,  아, 다니엘처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요셉처럼 이렇게 우리 하나가 잘  믿으면 모든 것이 천명 만명이 다 따라서 살아나는 것인데 우리가 이 길을 믿지  안하고 자꾸 자기 자율대로 하기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각오를 합시다.

노망태와 같이 얽을 결박이 있습니다. 이거 벗어나면 죽습니다. 어짤라고  벗어나요?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짤라고 벗어납니까? 이 말씀만이  방주입니다 이 말씀만이 안보의, 안보의 이 결박이요, 이 안보의 결박을 왜  벗어나 가지고 죽을라고 자꾸 하고 있습니까?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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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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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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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31 쪽발과 새김질/ 레튀기 11장 1절-8절/ 1983. 9.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630 쪽발과 새김질/ 레위기 11장 1절-8절/ 1983. 9. 1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629 징계-책망-사랑/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7. 7. 28.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628 징계와 회개/ 시편 1장 1절-3절/ 1983. 6. 8.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627 징계받기 전에 회개하라/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1. 8. 26.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6 징계를 보는 눈동자/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 1986. 7. 30.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625 징계 받을 때/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3. 9. 7.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4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7절/ 1980. 6. 25.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3 집회참석/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1989. 4.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22 집회준비-옥토밭을 준비하라/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8. 4.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621 집회준비- 예수님의 것/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1983. 8. 1.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620 집회준비/ 이사야 49장 8절/ 1984. 6. 1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9 집회준비/ 마태복음 13장 1절-10절/ 1985. 4. 1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8 집회준비/ 마태복음 25장 10절-12절/ 1986. 4. 1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7 집회설교 복습/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1985. 9.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616 집회를 위한 기도/ 시편 1장 1절-3절/ 1983. 8.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615 집회 준비 4가지/ 누가복음 14장 28절-30절/ 1988. 7. 2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 집짓는 비유 /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1985. 12.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613 집사투표/ 디모데전서 3장 1절-7절/ 1985. 12. 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2 집사자격13가지-현재의 가치/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1988. 12. 28. 수저녁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