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설교 복습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29일 주전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 서부 교회서는 지난 삼일 예배 때부터 지난밤까지 계속해서 천국 잔치가  있었습니다. 아주 이번에 은혜를 우리가 많이 받았습니다. 이랬는데, 이 집회에  참석을 못 한 식구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짧은 시간에 다  전달은 못 하지만 간추려서 여러분들과 다 같이 이 은혜를 나눌려고. 일곱 차례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곱 차례 은혜받은 것을 여러분들에게  간추려서 재독을 함으로 참석 못한 분들도 다 이 은혜에 동참해서 이번 집회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온 식구가 다 받아서 하나님의 만족을 이루어  드리는 그런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일곱 차례 설교해 주셨는데 그 설교해  주신 말씀을 간추려서 재독을 하려고 합니다. 잘 듣고 그라면 참석을 못 한  분들도 다 같이 은혜 받는 그런 결과를 맺을 수가 있겠습니다.

 첫날 밤에 (저 안으로 들어오이소, 저 안으로. 지금 아마 오늘은 추석이니까  집에서 붙들려 쌓아서 그래 빠져 나올라고 하면 시간이 걸려서 늦게 올 터인데,  저 안내원들, 저 안으로 안내 하이소, 안으로. 저 안으로 가시이소. 뒤에 오는  사람들은 앉을 데 없으면 어짭니까? 오늘 추석이 돼 놔서 다른 날은 다 못  나와도 또 오늘 나옴으로써 오늘 교회가 잔뜩 비좁을지 모릅니다. 저 안에서부터  나와요. 안내원들, 저 밖에서 자꾸 안으로 안 내해야 되지 떡 섰으면 어짜는고?  이 안으로 오이소. 이 안에 잘 들립니다. 가운데 그 통로로 이 안에 들어와요.

저 안에. 안에서부터 꼭꼭 채워요.

 첫날 밤에 바울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도 아주 건전하고 독실했습니다. 또 믿는  동역자들에게 대해서도 그 신앙이 아주 독실하고 진실한 것을 이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옥중에 그런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을 한 것을 이번에 우리가 들었습니다. 또 안 믿는 모든  이방인들과 또 모든 불신 사회와 또 국가. 심지어 만물 모든 존재에 대해서 참  흠 없는 신앙생활을 한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환난을  많이 겪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그 환난을 겪었으나 한 번도 낙망하거나 또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고 또 슬퍼하거나 외로워하는 그런 일이 없는 참 원만하고  구비한 신앙 걸음 걸은 것을 우리에게 첫날 밤에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 사도 바울이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된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간단하게 증거할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동역자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모든 세상 불신 사회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또 만물에 대해서, 이런 저런 온갖 환난에 대해서 한 번도 그는  신앙이 요동되지 안했습니다. 변하지 안했습니다. 마지막 감옥에서 순교의 사형  판결을 받고 난 다음에도 그의 대한 그의 열심이나 기쁨이나 충성이나 모든 면이  아주 원만했던 것을 이번에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원만한 신앙을 가진 그  신앙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제가 듣는 가운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의 그 원만한 신앙은 다른 데서 생겨진 것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저 어디서든지. 실행하는 일을 하니까, 실행을 해 보니 하나님을 믿을 만하고  그분을 참 든든히 손 잡고 영원 여생을 살 만한 분이라 는 것이 점점  깨달아졌습니다. 한 번도 바울 혼자 날뛰도록 둬 두지 아니 하시고 언제든지  함께 계셔서 고난도 컸지만 고난보다 그 위로는 더 큰 것을 그가 느꼈습니다.

이래서, 디모데후서 4장 7절 이하에 보면 '항상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계셨다 또  사자의 이빨에서 나를 건지셨다' 하는 것을 이번에 그 목사님이 강하게 증거를  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 말씀하신 산벼락갇은 그펀 어려운 일도. 이런 일이야 어떻게  내가 감당하겠는가 하고 낙망하고 만일 순종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았더라면, 순종 안 해 보면 점점. 했더라면 큰일났다 했더라면 큰일났다 하는,  순종했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이렇게 점점 낙망하는 사람과 불순종의 사람이 될  터인데 순종해 보니까 자기 혼자 하는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고 주님이 항상  자기와 함께 하셔 자기 곁에 서셔 가지고 자기보다 더 힘쓰시고 앞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시고, 이러니까, 이거 뭐 주님에게 순종하는 걸음은 그저, 그런 경험과  체험을 하기 전에는 자기가 뭐 주님을 닮느라고 그 말씀을 지키느라고 힘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겪어 보니까 주님이 자기에게 넘치는 동행과 위로와 그  모든 구비한 간섭을 해 주시니 누워서 놀기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보기만 어렵지 그 일을 정말 당해 가지고 지내 놓고 보면 놀고 나왔어.

자기는 하나님의, 주님의 품 안에 안겨서 호강하고 지내 나왔지 애로가 하나도  없는 그런 것을 점점 깨닫고 보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도달해서 마지막  끝까지 주님의 말씀이라면 조그만한 뭐. 털끝만한 것도 놓치지 안 하고 그대로  복종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끝까지 계속해서 점점 주님과 정이 붙어서  주님을 사랑하는 샤랑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을 첫날 밤에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목요일날 아침에는 다윗의 세 가지 기이한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기이한 것은.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인데. 목동이가, 부모도 형제도 다 멸시 천대하는 버림받은  목동이가 일국의 대왕이 됐으니까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까? 이랬는데 참  하나님의 큰 은혜와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은 결과를 맺어야 될 터인데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할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로 더불어 강간한 그 죄도  크지만 우리야를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애매하게 그 생명을 끊은 그런 잔인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가 가 가지고 얘기를 할 때에 그것을 그저 웃으면서 지내 보낼  수 있고 또 호령치고 지내 보낼 수도 있습니다. 왜? 그 시대에 일국의 왕이라고  하면 아내가 삼천 명이나 됩니다. 삼천 궁녀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뭐 버린 자들도 많고 이래 가지고 삼천 궁녀를 가지는 그 지위가  왕인데 일개 자기 밑에 있는 여인 하나를 취했다 그 해 가지고 무슨 큰 죄라고  안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자기 정치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 공연히  안 일으켜도 될 그런 전쟁을 일으켜 가지고 여러 수백만도 죽이는데 뭐 한 사람  죽여 봤자 그거 뭐 큰 것이 뭐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히틀러가 공연히 거짓말해 가지고. 세계를 한번 통일해 보겠다 하는 야욕을  가지고 공연히 거짓말로 그들이 '우리를, 앞으로 우리가 견디지 못하는 고독으로  몰려 가지고 절단날 거다. 그러기 때문에 전쟁을 해저 미리 미리 자꾸 선수를  써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때에 굉장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안 그런  정치가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6.25도 이북에서는 김일성이가 분명히 그가  야욕을 이루기 위해 가지고 6.25를 일으켰지만 '남한에서 이 전쟁을 해 가지고  급하게 이렇게 바로 맹렬한 공격으로 들어오니까 우리는 방비하지 안할 수가  없다' 이렇게 거짓말 해 가지고 6. 25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뭐  정치가 쳐 놓고 안 그런 정치가가 사실은 없습니다. 자기 정치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가지고 억울한 생명들을 얼마든지 많이 죽이는 그런 정치가가  대부분입니다. 그 가운데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카터 같은 사람은 그런 일 안  하려고 애를 썼었습니다.

 그런데. 일국의 대왕으로서 우리야 한 사람을 그거 뭐 억울하게 제 야욕을  위해서 죽였다고 해 가지고 그렇게 뭐 큰 게 있겠습니까? 이러나 다윗은 시펀  6편에 보면 밤마다 통곡으로 침상을 띄웠다고 했고, 그 요를 적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신이 수척해서 아주 피골이 상접해서 모를 만치 그렇게 뜨겁게  회개를 해서 자기가 모태에서 난 거부더 자기 과거를 미루어 가지고 그는 참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그런 뜨거운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시편 43편에  보면, 43편 4절에 하나님은 나의 극락이라, 하나님으로 그렇게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신앙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실 때에,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은혜 입어서 잘되면 교만해지고 범죄하고 범죄하면 또 망합니다.

망할 때에 그 회개의 도수가 높으면 그 망한 데서 구출됨도 높았고, 망함에서  회개하지 안하고 망령을 부리면 그 뒤는 마지막에 자살로 끝을 맺고 마는 것이  그것이 역사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줬습니다. 사울 왕은 범죄하고 회개하지  안하고 그 직위나 안 뺏길라고 망령을 부리다가, 회개 할 줄 모르고 망령  부리다가 마지막에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뜨거운 회개로써  주님은 자기의 영원하고 유일한 극한 즐거움이 된다, 극락이 된다 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성공은 회개에 있습니다. 다윗의 성공은 회개에 있었습니다.

바울 성공은 더 좋습니다. 바울 성공은 충성에서. 충성하고 보니까 또 그분은 참  믿을 만하고 또 충성하고 보니까 참 바라볼 만하고 또 충성하고 보니까 맡길만  하고 이래서, '내가 의탁하는 자를 아나니 그가 그때까지 나를 지켜 줄 것을  확실히 안다' 이랬습니다. 그는 전부 신앙 경험 체험에서 그렇게 자라갔고  다윗은 회개에서 이렇게 참 비참한 데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받으면 좋지만 은혜받아서 성공하고 높아지면 교만해  가지고 범죄해서 비참하게 망하는 멸망 가운데에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라 하는  것을 이 다윗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걸 말씀해 줬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이런 가운데에서 회개를 그분이 뜨겁게 했기 때문에 그 범죄 하기 전보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내게 합당한 다윗이라' 이렇게 하시고, 그뿐만 아니라 그 자손  솔로몬까지 '솔로몬 너는 내가 축복 할 수 없지만 너거 아버지 때문에 내가 너를  네 당대에는 축복을 해 주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의  회개를 단단히 기억 합시다.

 다음에 목요일날 밤에는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분은 예수관이 틀렸습니다. 예수관이 틀린 것은, 예수님은 죽은  가운데서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몇 번이나 말씀을 했는데 무덤에 찾아가  가지고 가니까 광채 있는 사람들이 무덤 옆에 있고 한 것을 보고 주님의 시체를  찾으러 가니까 '시체가 여기 없다' 이러니까 '없으면 너거들이 어디로 도적해  놓고 없다 하지 않느냐' 해서 그 시체를,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서 야단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한 데 대해서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완전히 예수관이 틀렸습니다. 또 그 뒤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 가지고  '마리아야 네가 누구를 찾느냐? 왜 울면서 누구를 찾고 있느냐?' 이럴 때에  주님이 그렇게 물으니까 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우리 주님의 시체를  도적했거든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하면서 그렇게 울면서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예수관이  아주 틀린 분입니다. 예수관이 아주 틀렸습니다. 예수관이 틀렸는데 이상하게도  마리아는 열 한 제자들보다 마리아가 주님을 먼저 만났습니다. 그래서 요번에 이  목사님이 '마리아는 사도들의 사도다' 그렇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거 큰 말  해 줬습니다. '사도들의 사도다' 사도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제있 선구자가 되는  사도들인데 마리아는 사도들 중에, 사도들의 사도다 십이 사도는 우리의 사도요  사도들의 사도는 마리아다 그렇게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관도 틀렸고 예수를 안다는 것이 영 삐뚤어지게 알았는데  어떻게 해서 마리아가 사도들의 사도가 될 만치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고 제일 먼저 예수님을 이 세상에다가 증거하는 그런 제일 선봉자가 됐던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찾아볼 때에.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믿기 전에 일곱 사귀가 들려 가지고 그는 미치괭이가 됐던 그런 여인인데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 마리아는 주님이 자기에게  은혜 베푸신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감사 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받은 바의 은혜를 묵살하지 안하고 받은 바의 은혜를 또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이 사은 생활을 놓지 안하고  계속하는 거기서 차차차차 주님에게 정이 붙었습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은혜  베푸신 그 은혜를 또 생각하니까 감사하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감사해서 그만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붙어 가지고 그 사랑이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새기고  새기고 보니 너무 감사하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감사해서 차차차차 그 사은하는  데에서 주님에게 정이 붙고 주님에게 사랑이 붙어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견디지를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난 다음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 감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붙었는데,  사랑이 붙어서. 주님을 자기의 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사랑에 못  견뎌서 주님이 죽으니까 죽은 시체라도 보고 싶고 자꾸 이래 가지고 이래 갔지  예수관에 대해서는 영 틀렸습니다. 틀렸으나 마침내 주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사랑이 결국은 마리아의 모든 무지를 다 깨트렸고 주님을 제일로 먼저 만났고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전파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마리아야, 네가 나를 만지지 말고 가서, 너희들의 모두 같이 하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하라' 그렇게 해서 그  제자들이 아무도 몰랐을 때에 마리아가 먼저 알았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베풀어 주신 바의 은혜 이 은혜를 자꾸  생각하면 주님을 높이게 됩니다. 주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을  다 묵살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지, 그러기 때문에, 사데 교회가 죽은 것은 뭐이냐  하면 어떻게 받은 것을 네가 생각하라 이랬는데 받은 것을 다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구 집회서나 장생골 집회에서 영의 병이나  마음병이나 몸의 병이나 자기의 모든 깨달은 바의 그 은혜를 받은 것을 그때 다  감격했는데 그때에 감격한 그대로의 사람으로. 주님에게 감사하고 주님에게  소망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에게 갈급한 그 심령이 후퇴하지 안하고 그대로  계속됐으면 벌써 여기서 불이 일어났고 큰 야단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은혜를  저버렸다 그 말이오. 마리아는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안하고 계속하니까 자꾸 주님  외에는 사모할 이가 없고, 주님 외에는 믿을 이가 없고, 주님 외에는 든든할  이가 없고. 주님 외에는 의지 할 이가 없고 참 주님 외에는 지도받을 이가 없고,  주님 외에는 아무도 참 믿을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바라볼 만하고 자신을 맡길  만하고 그런 든 든한 분이 없어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점점 뜨거워지고  보니까 예수님에게 대한 그 모든 무식한 그 무식을 다 깨트리고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이치를 잘 몰라도 주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그 은혜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참 주님 외에는  사모할 이가 없습니다. 따져 보면 주님 외에는 사모할 이가 없고 주님 외에는  믿을 이가 없습니다. 왜?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게 목숨도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 믿지 못 하겠지. 또 그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요다음 시간에는 또 그게 변해진다 말이오  전지자가 아니요 전능자가 아니요 영생자가 아니요 완전자가 아니니 누구를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모든 세상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과거에 믿었던 거는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으니 좋다고 해도 잠시 후면 그 아름다움이 다 없어지고, 뭐  세계를 흔들 만한 영웅이라 해도 좀 있으면 그만 시체 되고 맙니다. 뭘  믿겠습니까? 뭘 의지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자꾸 주님만을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주님 사랑하는 사랑이 뜨거워졌고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그 사랑은 모든 무지를  꿰뚫고, 모든 무지를 돌파하고 주님을 제일호로 만나는 그런 신앙 된 것을  요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금요일날 아침에는 야곱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요 아버지도 형도 속인 자요 또 장자의 축복을 도둑한 자입니다.

이랬는데 그것을, 왜 야곱이 그렇게 됐느냐? 야곱은. 요번에 말씀했는데, 야곱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 하나님 없이는 못 살고 하나님을 제일로  소망하고 그저,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 뺏기지 안 하려고,  하나님 뺏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 뺏기지 안하고 하나님 은혜 뺏기지  안하려고 그것 때문에. 그만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는 사지를 못 써. 세상에서도 그 사람이 뭐 예의도 있고 체면도 있고 어북  서로 이면 경위도 알지만 돈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 돈이 닥쳐 놓으면 예의고  체면이고 뭐 인륜이고 뭐이면 경위고 없이 뭐 환장을 해서. 환장을 해 가지고,  그만 돈이라면 환장되는 것처럼 야곱은 하나님이면 환장된 사람이라는 것을  요번에 말씀해 줬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환장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환장,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뭐 어짤 줄을 몰라.

 이러니까, 벌써 어머니가 항상 하나님에게 가까운 줄 알고 아버지도 가까운 줄  아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까운 그 하나님, 자기가 만일 놀러 나갔다가는  놀러 나갔다가는 그 하나님에게 대해서 손해볼까 혹은 자기 없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로 갈까 이래 야곱은 어머니의 치마 꼬리에서 산 암남자라  말했습니다. 요번에 말씀하시기를 목사님이 야곱은 어머니의 치마꼬리에서 산  암남자다 아주 거짓말쟁이요 참 못난 납자이친 엉큼한 남자라에서는 아주 훌륭한  그는 영웅이요 용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거짓말한 것이나 속인  것이나, 거짓말한 것이나 사지를 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마구 환장을 한  것같이 그렇게 널뛰고, 밧단 아람으로 갈 때에 광야에서 거기서 외롭게 쫓겨  가는데, 외롭게 쫓겨갈 때에 그때 그만 뭐 가면서 부모 떨어지기 싫고. 얼마나  모르는 데로 갈라 하면 혼자 외로운 걸음을 길도 모르는데 쫓겨가면  거석하겠습니까? 그럴 때 그 형에서에게 '아, 형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거  내가 주겠습니다.' 하면 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을 인해서는 뭐 쫓겨  가는 거 아니라 죽는 거도 좋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그 걸음도 개의치 안하고  가 가지고, 또 가다가도 생각하기를 주님만 생각하다 보니까 꿈에 현몽해 가지고  야곱으로 더불어 거석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둔 그 소망을 인해서 이런 실수 저런 실수  이런 거짓말 저런 거짓말 했지만 주님이 주님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에게 소망이  있어서 그 소망 때문에 정신 못 차리고 이런 언행 심사에 실수한 그것을 주님이  어떻게 볼까,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언행 심사에  실수한 그 야곱을 주님이 보실 때에 '이놈 못쓸 놈' 이렇겠습니까? 주님이  어떨까요? 주님의 마음은 그에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나 때문에 죄 지었고 나 때문에 거짓말했고 나 때문에 환장질  했고 나 때문에 네가 집에 쫓겨 나갔고 나 때문에 외로워지니' 어떻게 주님이  그를 사랑치 안하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은 투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주님에게 소망하는 그 소망이 그의 모든 실수도 이루게 했고 용기도 내게  했고 열심도 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는 참 하나님에게 소망하는 그 소망이 들어서 그의 모든 잘  잘못을 다 저지르게 됐습니다. 그는 열정있는 사람입니다. 열심있는 사람이오.

격투적 기도를 했다 그랬습니다. 격투적 기도를 했어. 격투적인 기도를 했는데,  격투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격투적인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이 왜 끝까지 안 주고  말았던가? 안 주고 말았는데 마지막에는 환도뼈를 치고 난 다음에 줬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도 가졌고 열심도 가졌지만 '네가 가면 너거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에서가 너를 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가라 했는데.

해하지 못한다 했는데 '사백 명을 거느리고 와 가지고 나를 죽일라고 합니다.'  하며 마지막에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는 그거 때문에 그렇게 고통하다가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자기가 깨져 버립니다. 자기가 바사졌다 했습니다. 자기가  바사짐으로써 야곱은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게 소망으로 모든 행사가 이루어졌고. 그가 열심이 있었으나  환도뼈가 위골된 것은 하나님이 안심하고 가라는데 '안 됩니다. 날 축복해  주옵소서' 하는 믿지 않는, 자기의 주관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은 그놈 때문에  고생은 당했고 얍복 강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야곱에게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그 생활에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소망의 그 큰  위대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금요일날 밤에는 도마와 베드로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부활했다' '난 못 믿는다. 옆구리의 창자국과 못자국을  봐야 내가 믿지 그래 안 하면 못 믿는다' 예수님을 못 믿는다고 다 다른  제자들은 뭐 죽느니 뭐이니 다 뭐. 뭐 갈급했지만 도마는 '뭐 안 죽는다  쌓더니만 죽었는데 뭐 무슨 가치있노?' '아. 죽었다가 부활했다' '부활이 뭐꼬?  나는 안 믿는다. 내 손가락으로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 보고야 내가 믿지 그래  안 하면 안 믿는다' 배반했습니다. 베드로도 다 배반하고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이렇게 배반한 도마 배반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함으로 적절하게, 도마에게는 도마에게는, 그 도마를 살려서, 도마를 살려서  구출하는 데는 그가 손가락으로 만지지 않고는 못 믿는다고 하니까 그 도마를  구원하는 데에는 당신이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여야 되기 때문에 다시 나타나셔  가지고 도마에게 '아나.' 손가락을 내밀어서 내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 보고  네가 믿음 없는 자 되지 말고 믿는 자 되어져라' 주님은 그렇게 배신 배은  망덕하는 자라도 그에게 배신하는 그 배신하는 그 죄악을 어떻게 하든지 그걸  뽑고 그래 가지고 도마를 마지막에 순교자를 만들었습니다. 순교자를.

 주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도마는 그런 사람이지만 주님은  거기에 대해서 왜 네가 나를 믿지 안했느냐 책망하지 안하시고 목사님이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하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도마를 '내 못자국과 창자국을 네가 만져 봐라' 그에게 만지도록 보이면서  의심을 풀어 주고, '네가 이제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돼라' 해서, 그렇게 의심되고 문제되는 그 점을 주님이 그렇게 다 도말하고  순교자를 만든 그 주님이 오늘 밤에 여기 찾아왔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그가 디베랴 바다에서 주님을 배반하고 이제 고기 잡으러 갔었는데 그  베드로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다른 말 해 주지 안하고 베드로에게  제일 장점. 베드로가 다 신앙을 팔아서 못 쓰게 됐지만 베드로에게 제일 좋은  장점을 예수님이 잡았습니다. 잡고 '요나의 아들 시몬아' 하는 것은 그는 옛사람  되어 옛사람으로 돌아갔다는 말인데,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옛날 베드로에게 있었던 그것을 주님이  보시고 그 산 부분, 고산부분 그 생기 있는 부분, 그 생기 있는 부분을 주님이  들어 가지고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럴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세 번이나 그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소생시키고 소생시키고 소생시켜 가지고 마지막에는 '네가 원치  아니하는 죽음을 하리라' 말씀하시고 '나를 따르라' 하셔 가지고 그 베드로를  소생시켜서 십자가에 꺼꾸로 못 박히게 한, 이렇게 길러 주신 이 주님이 금번에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우리가 뭐 도마보다 더 하겠습니까? 우리가 도마보다 더  하겠습니까? 도마보다 더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지 않습니까? 도마를  주님께서 순교자를 만드셨고, 베드로는 다 버리고 그만 다 떠나지 안했습니까?  암만 따라다녀 봤자 아무 소용 없다 하면서 나는 고기 잡으러 갈란다 하면서  가버렸다 그 말이오. 제 갈 길 갔소. 우리는 그때도 아무리 이 일 저 일 한다  해도 주님을 배반하고 가지는 않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도마를 그에게 장점을,  그에게 장점을 살려서, 장점으로부터 장점을 살려 가지고 모든 약점을 다 치료해  가지고 순교자를 만드신 주님이 신 것을 우리에게 또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주님을 믿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어떻게  이르렀을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소생시켜서 주를 위해서 목숨도 바칠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그 욕망 가지고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이 사실을  믿고 우리가 어디까지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다 회개하고 주님을 소망하고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이 도마와 베드로를 순교자 만든 이 주님의  사랑이 우리도 반드시 순교자를 만들어 주실 것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소망해야만 할 것입니다.

 토요일날 아침에는 사무엘상 1장 9절로 20절까지의 한나와 사무엘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한나는 참 눈물을 그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아이도 낳지 못 하고 그렇게 되니까 얼마나  기막히겠습니까? 그 한나는 그저 성전에 가서도 울고 어디 가든지 울지 안할 수  없는 그런 비관의 역경을 가졌습니다. 비관의 역경을 가진 비관으로 말미암아  나는 마음이 슬픈 자입니다. 나는 마음이 슬프고 나는 근심있는 자입니다. 내가  언제 포도주나 그런 것을 내가 먹고 그렇게 호화로이 나는 그럴 자가 아니고  나는 근심 속에 쌓여 있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그렇게 비참  하고 고독한 가운데다가 몰아넣어 가지고 이제는 한나가 땅 위에 아무것도  소망이 없어. 아무것도 소망이 없어. 땅 위에 아무것도 소망이 없고 그저 항상  주님의 성전에 와 가지고 주님 바라보면서 우는 것뿐이라.

 그렇게 한나의 호화로운 세상 모든 길을 다 끊어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울부짖는 그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이스라엘 그 멸망을 구출할 수  있는 사무엘을 그에게 잉태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다 전폭이  기울어지는, 아. 주위가 이리와 같으니까 양 제가 뭐 목자에게 안 갈래야 안 갈  수 어찌 있겠습니까? 전부 주위가 다 그렇게 사나웁고 아무 데도 정 붙일 데가  없고 아무 데도 뜻을 붙일 데가 아무 데도 없는데, 주님에게 외에는 딴데는  마음이 기울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에게 집중되도록 해 가지고  사무엘을 잉태케 했으더까 잉태된 사무엘도 세상을 몰랐습니다. 아예 엘리  제사장에게 갈 때부터 그는 낮에도 법궤 앞에 밤에도 법궤 앞에. 딴데 출입할 줄  몰랐어. 한나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 한나의 그 심정 속에 잉태된 그  사무엘을 아무 외계와 세상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사무엘은 참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흠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도 엘리야도 아브라함도 다 흠이 있지만 사무엘은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분이 사사가 되었을  때에는 그 사사직이 끝날 때까지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없었어. 거기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고독을 만나는 것은 그거는, 분명히 주님이 그  고독을 만나게 하는 것은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해.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짐으로 그 가까워짐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 할 일이 있다 말이오.

큰 역사 할 일이 있어. 고독에서 세상 줄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데에서 하나님이 쓸 수 있는, 하실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큰 축복이 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하는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이 오거들랑은, 어려움이 오거든 '아, 이는  주님이 나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가져서 당신만 바라보게 하는, 이 모든 것을  끊고 당신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럴 때에 좋은 기회 인 줄 알고  당신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당신만 바라보는 내 심정이 되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극히 큰 역사를 이루게 된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소망하면서  한나의 신앙과 사무엘의 신앙을 배울 것을 가르쳐 말씀했습니다.

 또 토요일날 밤에는 세 가지 탄식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물의 탄식은  여러분들이 많이 들었었기 때문에 별 이상 한 말로 듣지 안해 다른 교회는 가면  만물의 탄식 말하면 잘 모릅니다. 만물의 탄식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새롭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다음에 두 번째 탄식은 중생된 영들의 탄식입니다. 중생된 영들의 탄식입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 말은  성령님으로 첫 결실이라 말이오. 첫 결실은, 우리의 육은 결실 못 했습니다.

영만은 성과를 이루었다 말이오, 영만은. 중생된 영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는  탄식은 무슨 탄식이냐? 이 몸이. 이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서 이  썩어질 심신의 기능이 이제 영생되도록, 법적으로 심판적으로 계약적으로는  살았지만, 예수의 대속으로써, 공로로 살았지만 이걸 현실에서 버려 버리면 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기 때문에,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는 것은 무슨 탄식이냐?  우리 현실 현실에 서 심신의 기능을 영생으로 완전히 결정지우지 못하고 둘째  사망으로 자꾸 심신의 기능을 죽이고 있으니까 이게 지금 중생된 영들의  탄식입니다.

 세째 탄식은 성령의 탄식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탄식은 이거는 참 묘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이 말입니다. 우리 마음을 늘 조사하고 계시는 분이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의 생각을 아시다니? 성령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도를  위해서 성령님이 간구하는 것을 주님이 아신다 그 말이오. 우리 마음 안에서  성령이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걸 주님이 알고 있어요.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알고 계셔 이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성령님이 와 가지고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 대신해서 기도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말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계신다 말이오. 우리  속에 성령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와 가지고  우리 속에서 와서 기도하고 계시는 데 요거는. 왜 이 하나 본문을 읽느냐 하면  이것은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우리가 구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서 다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기도하고 계시니까 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믿고 안심하고 가는  이걸 지금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피를 흘리셨을 뿐만  아니라 또 죽으실 뿐 아니라 또 부활하셨고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고 또 성령님이 우리 위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확실합니다. 확실한데 우리가 이 구원을 믿지 않기 때문에 경거망동을  하고 엉뚱한 짓을 해 가지고 우리 구원이 절단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이 기도했으니까,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기도한  것이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털끝만치도 이루어지지 않지 않습니다. 다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기도한 거는 다 이루어지는데 우리가 전부 부인해 가지고  버리기 때문에 안 된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 위해서 구원해  주신 우리 구원은 우리만 망령 부리지 안하면 다 됩니다. 우리만 망령 부리지  안하고, 우리가 뭐 죽음이 와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요동치 안하고 나가기만 나가면 우리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이번에 주신 은혜를 여러분들이 새김질 하고, 언제든지 받은 바의  은혜를 우리가 잊어버리지 안해야 됩니다. 자꾸 그 마리아는 은혜를 감사했어.

은혜를 감사하다 보니까 뭐 맺어졌습니까? 주님 사랑이 맺어졌어. 모두 다  이번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병 나은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가 수술하다 죽을란지  안 죽을란지. 뭐 또 할 돈도 없지 뭐 어찌 될지 모르는데 주님이 낫아 주신  그것을 자꾸 생각하면,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고, 생각하면 자꾸 주님을 감사할  마음이 나오고 주님이 또 참 가까이 되고 정이 들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자꾸  이렇게 받은 바의 은혜를 자꾸 감사 하게 되면 주님의 사랑이 자기와 연결이  됩니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뭐 나를 도와준 것을 그거 '하.

그분이 나를 이렇게 도와 줬네. 하, 감사하네' 자꾸 그라다 보면 그 사람의  사람이 돼 버리고 마는 거라.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사은이 없기 때문에 망합니다. 사은 없으면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은이 없으면 망합니다. 일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사은 없는 사랑은  망한다, 오계명은 인간에게 대한 사은 없는 사람은 망한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고. 오늘 밤에 또, 이번에 집회 때에 설교한 말씀을 재독을 두 번 들었는데  또 세째 설교를 오늘 밤에 재독을 할 것입니다. 일곱시부터 재독 할 터이니까  세째 설교 네째 설교 두 설교를 오늘 재독을 할지 하나 할지 시간 봐서 그럴  터이니까 다 참여해 가지고 어쩌든지 이번에 은혜받지 못 한 분들은 또 그때  참여해 가지고 은혜를 받도록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오늘은 ○○○○교회 가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고. 내일 새벽에는 또 ○○중고등학교, 학교인지 교회인지  몰라도, ○○교회가 있는지 ○○교회 가 가지고 내일 새벽은 증거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그러면, 위해서 늘 기도하시고 다 같이 한 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바울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다윗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마리아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야곱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도마와 베드로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한나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는가, 세 가지 탄식을  생각하면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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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징계와 회개/ 시편 1장 1절-3절/ 1983. 6. 8.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627 징계받기 전에 회개하라/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1. 8. 26.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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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7절/ 1980. 6. 25.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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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집회준비-옥토밭을 준비하라/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8. 4.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621 집회준비- 예수님의 것/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1983. 8. 1.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620 집회준비/ 이사야 49장 8절/ 1984. 6. 1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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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설교 복습/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1985. 9.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616 집회를 위한 기도/ 시편 1장 1절-3절/ 1983. 8.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615 집회 준비 4가지/ 누가복음 14장 28절-30절/ 1988. 7. 2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4 집짓는 비유 /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1985. 12.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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