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보는 눈동자

 

1986. 7. 30. 수새벽

 

본문:예레미야애가 2장 18절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새찬송 347.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이 죄라는 것을 잘못하면 이 인식이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기 쉽습니다. 이 죄라는 말이나 삐뚤어졌다는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죄 하면 그만 일반 사람들이 죄라고 생각하는 그로만 치우쳐 버려서 죄에 대한 그 범위가 좁아지기 쉽습니다. ‘죄뿐이니’ 이러니까 죄니까 일반 세상이 말하기를 죄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만을 죄라고 이렇게 생각을 해서 죄의 범위가 너무 좁아지기 쉽습니다. 그래 가지고 죄는 뭐 마구 먹고 마시면서도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또 죄 구덩이 속에 빠져 가지고 있으면서도 죄라는 걸 인식 못 하고 죄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죄를 인식 못 하는 그런 사람되기 쉽습니다.

죄 하면은 다 이 세상에서 무슨, 누가 봐도 그건 죄라고 생각하고 하는 그런 것만을 죄라고 이래 생각하는 죄의 범위를 그렇게 좁혀서 보는 사람 많고 또 죄에 대한 인식을 삐뚤어진 것이 죄라 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범위가 좁지 안하고 넓습니다. 넓고 세밀합니다.

이러니까 ‘나 행한 것 죄뿐이니’ 나 행한 것 삐뚤어진 것뿐이다, 그러면 이렇게 죄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는 것 잘 생각하기는 한 건데 그만 범위나 너무 넓어 놓으니까 그만 삐뚤어진 것 그게 바로 심판받는 죄인데 ‘삐뚤어진 그것이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길 것이 없다’ 사람들이 그만 그렇게 생각해서 ‘뭐 삐뚤어진 거야 천도 만도 넘은데’ 그만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삐뚤어진 데 대한 관심을 그렇게 가지지 않고 예사롭게 지내는 그만 그런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죄는 삐뚤어진 게 죄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그만 치우쳐 가지고서 헛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죄라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거는 참 수치스럽고 나쁜 것이고 뭐 죄인이라 하면 사람들이 자타가 다 못쓸 것으로 그렇게 여기는 죄에 대한 그 악의 성질 악의 양 그걸 중하게 여기지마는 삐뚤어진 거라 하면 그만 그것을 그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자극을 강하게 가지지를 않는 그런 폐단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라는 것을 그 죄라는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삐뚤어진 것이라 하는 그 이름을 같이 붙여야 되겠고 또 삐뚤어진 것이라면 바로 삐뚤어진 것이 바로 죄라 이렇게 이름을 같이 붙여서 죄와 삐뚤어진 것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죄 하면은 크게 여기고 그것은 참 못쓸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삐뚤어진 거라 하면 뭐 삐뚤어진 거는 예사롭게 여기는, 뭐 삐뚤어진 게 사람이 얼마나 많지 않느냐, 뭐? 야, 그거 삐뚤어졌다 하면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극되이 듣지 안하고 너 죄지었다 하면은 이렇게 좀 자극이 강하게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죄라 말은 곧 삐뚤어졌다 말입니다. 그 삐뚤어졌다는 데 대해서는 그만 뭐 너무 거게 대해서는 하도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 심리가 너무 그만 많은 자극을 받아서 마비가 돼서 거기 대해서는 오히려 감각 없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가 됐습니다, 삐뚤어졌다 하는 말에 대해서는. 또 죄라 하는 데 대한 말은 너무 흉하게 자극 있게 그래 듣고. 이래서 여게 삐뚤어졌는데 죄라 말은 곧 삐뚤어졌다는 말이요 죄라 말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졌는데 죄라는 것은, 죄로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죄 하면은 그것은 세상 법칙과 제도에 삐뚤어졌다 그런 말이고 믿는 사람들이 죄 하면은 하나님의 제도와 법칙 이 신구약 성경에 계시해 놓은 이 지식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삐뚤어졌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 성경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왜 다르냐 하면은 세상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 국법, 사회법, 윤리, 도덕, 이 모든 경제법, 상법, 자연법 이런 데에 대해서 삐뚤어진 걸 가리켜서 죄라 이렇게 말하고 성경이 죄라고 말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낸 그 모든 제도와 법칙과 주의와 사상과 교훈과 약속과 예언과 명령 의무 책임 본분 거기에 삐뚤어졌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죄라고 그렇게 합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오늘 아침에는 제가 나오다가 이 전도지를 아무래도 다시 새롭게 해야 되겠다 해서 제가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이 인사 전도지가 이거 아주 잘됐는데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주님의 진노와 주님의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 하는 이 예레미야 2장 18절에 있는 뜻을 요약한 것인데 아무래도 이걸 좀 새롭게 가져야 되겠다 해서 이 찬송을 택했습니다.

‘주 예수께 비옵기는 혹 물로나’ 하는 것은 ‘혹 물로' 하는 것은 물은 성경 말씀을 말하고 ‘혹 물로나’ 혹 성경 말씀으로나 또 `혹 불로나' 혹 불로나는 혹 그 영감으로나 날 깨끗게 하옵소서. ‘물 가지고 혹 씻든지’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나를 자꾸 새롭게 하시든지 ‘불 가지고 사르든지’ 영감을 가지고 내 속에 그 삐뚤어진 것을 사뤄 주시든지 ‘내 안과 밖을 다 닦으나 내 속의 죄 멸하소서’ 하는 이 찬송 오늘 아침에 택한 것입니다.

‘내 어둔 눈 밝히시면 참 기쁘고 고마우나’ 내 어둔 눈 밝힌다 말은 마음의 눈이 어두우니까 이 삐뚤어진 걸 잘 모릅니다. 먼저 전 ○○○ ○○금식 기도원이라는 데가 있다는데 나는 가 보지는 안 해도 말을 들었습니다. 거게서 집회한 테이프를 ○○○목사님이 두 장인가 석 장인가 보냈는데 그거 내가 그거 한번 들어 봐, 들어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 갱신이라는 그 제목을 가지고서 강의를 해 달라 이래 연락이 와서 이 갱신에대해서 생각했더라 하는데.

‘내 어둔 눈 밝히시면’ 내 심령의 눈을 밝히시면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더 원하옴은 정결한 맘 주옵소서’ ‘정결한 맘 주옵소서' 이것은 마음은 눈은 이런 것 저런 걸 뭘 생각해서 찾는 것이고 그게 마음 눈이고, 이런 걸 저런 걸 생각해 가지고서 발견하는 그게 마음의 눈이겠고 정결한 마음은 마음 자체가 정결한 것이 정결한 것이기 때문에 정결한 마음이면 밝기도 하기는 하지마는서도 그래도 이 찬송을 짓다 보니까 아주 잘 지었습니다.

‘그보다도 원하옴은 정결한 맘 주옵소서’ 깨끗한 맘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은 어떤 것이 정결한 마음인가? 정결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간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정결한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인간의 마음은 이런 마음을 가지라 그렇게 마음의 표준을 성경에다 기록했는데 성경에 기록해 놓은 그 마음의 표준대로의 그 마음이 정결한 마음입니다. ‘정결한 맘 주옵소서’ 또 3절에, ‘맘 정결한 그 속에서 신령한 것 비치오니’ 맘 정결한 그 속에 신령한 것 비쳐오니, 신령한 것 비쳐온다 말은 뭘 말하는고 하니 영감이 비춰 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영감이 비칠 때 비추어 옵니다.

거울이지마는서도 거울에 먼지가 많이 앉으면 뭐 다른 것이 비추어 오지 안합니다. 거울에 사람 오면 사람이 거기 비치고 물건 오면 물건이 비치는 것은 거울에 그 비추어져서 반사되는 것인데 우리 마음이 깨끗하면 영감이 와서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면 비추어 준 그것이 이제 이 세상에게 발휘됩니다.

뭘 비추어 주는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다 비추어 주면 하나님의 깨끗이 비추어지면 내 마음이 깨끗을 이 세상에게 반사시키고 또 거룩이 비추어지면 거룩을 반사시키고 진실을 비추면 진실이 반사되고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정결한 맘 주옵소서’ 그 다음에 4절 마지막절에,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죄 지을 생각 다 버렸으나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자랑치는 못하리라' 아주 이것은 찬송을 잘 지었습니다. 찬송들이 교리와 신조에 맞지 않는 찬송들이 많은데 이 찬송은 잘 지었습니다.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자랑치는 못한다 자랑이라는 말은 뭣을 가리켜서 말하는 건고 하니 이만하면 됐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랑은 광고 아닙니까? 봐라, 이게 좋다 이 광고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자기 행위를 이만하면 됐다 이제 자기의 좋은 점을 자랑하는 것인데 마음이 정결하면은 자랑할 것이 없다. 이거는 완료됐다 이거는 완료됐다 완료됐다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완료됐다 할 것이 하나도 없어.

사람들이 요새 우리가 가라앉는 것이 뭣 때문에 가라앉는고? 자꾸 납 모양으로.

물에 납은 넣으면 그만 가라앉아 버립니다. 가라앉는다 말 아요? 물 속에 가라앉는 거. 물에다가 돌은 집어 넣으면 가라앉지 않습니까? 쇠는 집어 넣으면 더 잘 가라앉지 않소? 인제 우리 마음이 자꾸 세상에 가라앉아 버렸다 말이오.

뜨지 안하고서. 그거는 뭐이냐? 참 그 사람들이 좋은 말을 가렸어요. 갱신이라.

다시 새로워져야 되겠다 하는데 새로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래.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말도 있어요. 날마다 새로워진다 하는 말씀도 있고 또 회개라는 말씀도 있는데 회개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 지내간 것, 이제 이 시간 뭘 하고 나니까 지나가지 안했소? 뭘 하고 나면 지나간 것은 뭐 오랬든지 얼마 안 지났든지 다 그거는 다 그거는 과거라 말이오. 과거에 대한 그 잘못된 것을 발견한 것이 후회입니다.‘이거 잘못됐다’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이 그 후회라 하는 거게다가 한 자를 따 가지고서 회라고 붙이고, 후회할 회자니까. 회라 붙이고, 또 개라는 것은 내가 앞으로 이렇게 고쳐 보겠다 이라는데 앞으로 고칠라 하면 앞이 언제인가? 현재 이 시간 지금 앞으로 행할 것은 앞이라 미래에 속했다 말이오. 그러면 현재와 미래 여게서 고치는 것을 가리켜서 회개라 그렇게 말합니다. 찬송하고, 우리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이 인사로 이걸 전하자 이랬습니다. 왜? 인사로 전하자 너도 나도 두말 할 것 없이 지금 이렇게, 그 회개해야 되지 지금 징계 없는 사람 없고 또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 없는데 모두 다 마비가 돼 가지고 우리가 거게 대해서 아무런 참 새로와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떤 그것을 전하니까 어떤 목사님이 이걸 보고서 아주 골을 내더라고서. 뭐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뭐 회개하라고 이래 한다고 골을 내더라고. 그 전한 사람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교회서는 믿는 사람끼리 주일학생이 목사님 보고서 이걸 전하고 목사님이 주일학교 학생 보고 전하고 전부 이것 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을 만나면 이 말부터 먼저 해야 되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하자 해 가지고서 그래 이걸 박은 것입니다.’ 이 설명을 한참 하니까 있다가 아이구 그러냐고서 그라면 참 그거 우리가 다 받아야 되겠고 그렇겠다고서 이라면서 그래 잘됐다고 이렇게 하면서 기뻐하더라고.

모르면 말이지, 그런 것도 보고 알면은 좋고 그만 그런 말 들으면 뭐 변명할 것 없이 참 달게 받아져야 될 터인데 그렇게 이의가 단다는 것이 벌써 회개 생활에서 좀 많이 떠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자, 이 찬송 한번 합시다.

새찬송 347 합동 409 통일 332.

기도합시다.

평생 처음 만나는 날, 한번으로써 다시 만나지 못할 이 날을 주께서 준비의 날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첫시간 주님을 사모하게 하시고 첫걸음이 주님의 이 교훈을 향하여 걷게 하시고 이 시간 주님이 정해 주신 자리에 앉아 주님의 온갖 은혜를 받고 모든 면을 주님 앞에 새롭게 해 주심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이는 말씀하신 대로 인간의 심신의 힘, 지식의 힘, 세상 아무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다만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음을 주께서 말씀하였사온즉 이대로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새롭게 하사 우리 심령이 밝아져서 주의 음성과 주의 인도를 볼 수 있고 주님의 무한하시고 영영하시고 지극히 크신 약속의 이 소망을 똑똑히 바라보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는 주님의 인도인 이 현실 인도를 놓치지 안하고 따라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님이 친히 오셔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요 말씀을 우리가 전도지에 박았었습니다.

「처녀 시온의 성곽아」 그말은, 이 처녀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들을 가리켜서 처녀라고 말한 것입니다. 처녀라는 큰 뜻은 교회는 하나님을 상대로 하나님만을 배우자로 삼아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또 교회의 모든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다 책임지시기 때문에 말합니다. 또 아무것도 없는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제것 삼는 것을 가리켜서 처녀라고 이렇게 신랑 신부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신의 이 남녀로서 신랑 신부의 이 결혼이라는 이것은 이것이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인 이 관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하나의 형식 계시로서 이 제도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만들어 주신 것인데 사람들이 타락하고 나니까, 그만 점점 타락하고 보니까 아주 못써지게 돼 버렸습니다. 타락하고 나니까 이거 부부라 하는 이 제도라 하는 것이 아주 이게 전부 그만, 물론 수성을 하나님이 타락 후에 허락하였지마는서도 그 전부 신령한 부부의 이치라는 것과 제도라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순전히 육적으로만 됐기 때문에 이 교회와 하나님 관계 그것을 모릅니다.

처녀 시온이라 말은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는 이 성도들아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는 이 성도들아, 그런데 그만 이라면 남자 여자 결혼하면 그만 들짱 뭐 성생활하는 그것만 생각하는 그게 전부가 다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인데 그런 거는 없습니다. 그런 거는 전혀 없소. 없고 인격적 교제, 또 그 권위적 교제, 또 사상적 교제, 행위적 교제 이런 면만 이제 하는 것입니다.

혹 하나님이 교회의 남편이고 신부라 하면 처음 나온 사람들은 ‘이거 잘못하면 우리 마누라 뺏기겠다.’ 네가 너거 마누라를 좋아하는 그따위 그 성질의 종류의 것들은 하나님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 오지도 못해. 그까짓 거 오지도 못하게 해. 네가 너거 마누라 보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하는 그런 그 더러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근방에 오지도 못하게 해. 그런 거는 염려하지 마라, 그거는.

그러니까, 너도 하나님이 너거 남편, 너거 마누라도 하나님이 너거 남편, 너거 아들 딸 손자 손녀도 하나님이 남편, 손녀 손자는 하나님의 신부. 그만하면 세상 제도와 다르다는 거 알 수 있지 않느냐? 누가 손녀 손자도 그분을 남편으로, 아내도 남편도 남편으로, 남편 남편이 어찌 되겠나? 이런데, 이러니까 그만 너무 세상이 더러워져 놔서 호세아 성경은 설교를 못 합니다. 평생 가야 그런 소리를 듣지를 못하요. 설교를 못 해 줘. 왜? 육덩이로 돌아가기 때문에.

「처녀 시온의 성곽아」 하나님의 교회야, 성곽이라면 성, 그 모든 성에 주변 그게 성곽 아닙니까?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왜? 눈물 흘려 하라 했는데 우리 여게는 회개의 눈물이라고 그걸 그 뜻을 새겨서 회개 눈물이라고 썼습니다. 눈물 그냥 흘리는 거 아니라 회개의 눈물이라.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리라 그말입니다.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눈동자로 쉬지 말라 그말은 주님의 징계를 보는, 주님이 너거 잘못됐다. 잘못됐으면 반드시 잘못된 값이 있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벌과 징계가 다릅니다. 벌은, 벌은 소망을 가지지 안하고 망치기 위해서 벌을 주는 거고 또 징계라는 것은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소망을 가지고 보다 좀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난 주는 것을 가리켜서 징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회개의 눈물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잘못됐다. 요 잘못됐다. 요래 할 걸.’ 이제 한 그것은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어떤 일이라도.

저는 하루 전도했으면 하루 종일 심방하고 전도했는데 하루 종일 심방하고 전도했으니까 뭐 내야 오늘은 가치 있는 일 했다 이럴 건데 하루 종일 심방하고 전도하고 난 다음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라,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오늘 전도한 걸 생각해 보니까 고거 참 요면이 잘못됐다. 요면이 잘못됐다.’ 잘못된 면이 생각난다 말이오. 잘못된 면이 생각나.

잘못된 면이 생각나고, 또 뭐이냐? ‘요렇게 할 걸’ 또 어제 한 것보다 보다 좀 잘할 수 있는 고것이 자기에게 생각날 때에, ‘요 조금 요게 잘못됐다’ 잘못된 것이 발견되고, 또 요보다 더 잘할 것이 발견되고 요게 없으면, 회개가 없으면 사람은 끝장난 것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그 사람은 성장이 없고 향상도 없고 전진도 없고 그 사람은 그만 끝나 버렸어. 그거는 그만 송장이라. 회개가 없으면 송장입니다.

회개라 하는 것은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하루 종일, 사경회 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강론을 하고서, 강론하고 쭉 되서 그만 퍼들어졌습니다.

퍼들어졌으면, 퍼들어졌으면, ‘오늘이야 하나님 말씀만 증거했고 설교만 했기 때문에 오늘이야 잘못된 게 뭐 있겠느냐?’ 하면은 벌써 그 강사는 죽었소.

강사는 죽었어. 아무리 육덩이 힘은 있어도 죽었다 그거요.

왜? 오늘 설교한 데 대해서 ‘이렇게 할 걸 잘못됐다. 요게 잘못됐다.’ 오늘 종일 설교한 데 대해서 잘못된 고 면을 찾은 그것이 있고, 그러면 잘못됐으면 어쩌라 말이야? 그만 낙심하라 말이요? ‘요렇게 할 걸.’ 또 보다 좀 잘할 수 있는 그것을 발견했다 말이오. 이제 모든 현재에서 과거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고거보다 좀 더 잘할 고것을 발견되는 이것이, 자, 이것이 이제 없으면 좋습니까 있으면 좋습니까? 이것이 많이 있어야 좋습니까 적게 있어야 좋습니까? 이것이 강해야 좋습니까 약해야 좋습니까? 그냥 마음이 좀 고통스러운 정도가 좋겠습니까 여게 대해서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이 참 강처럼 흘려져야 좋겠습니까? 이게 참 회개 눈물을 강처럼 흘리는 사람이면 이보다 더 복있는 사람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어떤 일이라도 해 놓은 과거에 대해서는 참 눈물을 흘릴 만치 원통하고, 원통하고 그거뿐이면 뭐입니까? 그거뿐이면 죽습니다. 원통하고, 그러면 원통하면 어짜라 말인고?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할 걸’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할 걸 하는 앞으로 그렇게, 했으면 되는 건데 하는 앞으로 요렇게 고쳐서 하고 싶은 그것이 참 마음 아플 게 아니라 눈물이 흘릴 만치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앞으로 하고 싶다는 그것이 있으면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또,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마라. 보니까 자기에게 무슨 일이든지 주님이 축복하시면 막 형통 형통 형통인데, 형통한 것도 보니까 그 형통한 것이 백점짜리 형통이 안 되고 형통이 오십점짜리 형통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나에게 백점짜리 형통을 주실라고 했는데 내가 뭐뭐 뭐뭐 때문에 오십점짜리 형통밖에 못 받았으니 오십점짜리는 징계를 받았다. 오십점 그것은 감소를 받았다 말이요, 감소를 받았어. 그 백점을 다 받지 못하고. 이제 이것을 보는 심령의 눈이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거는 뭐 곧 멸망에, 죽을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징계가 이런 거 저런 거, 외나 징계라 하는 것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이냐? 그 단위, 거게는 하나님 앞에 잘못됐다는 데 대해서 고난을 당하는, 잘못됨이 없으니까 고난이 없고 또 자기가 잘한 것이 없으면 상도 없고, 상도 없고 벌도 없는 그 자리가 우리가 시발하는 단위입니다. 시발하는 단위.

상도 없고 벌도 없고 요랬는데 거게서 조금 잘못하면 벌이 조금 옵니다. 그 벌을 가리켜서 이제 징계라 말합니다, 징계. 징계. 징계가 조금 있고 조금 잘하니까 거게 상급이 조금 있고, 상급이 조금 있고, 이런데 이제 좀 더 잘하니까 상급이 더 많아지고 조금 더 잘못하니까 징계가 더 많아지고 이제 징계는 아래로 자꾸 커 내려가고 이제 상급은 위로 커 올라갑니다.

커 올라가는데, 요걸 보는 눈동자가 없으면 자기에게 뭐 상을 백을 받아야 될 터인데 하나 받아 놓고 난 다음에는 그만 벌써 자랑하느라고, 하나 받아 놓고 난 다음에 자랑하고,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고 나는 하나 받았다고서 이래 뭐 자랑하느라고 언제 그 다음 것을 생각지 안해.

하나 받아 놓고 난 다음에 ‘하, 내가 백을 받아야 될 터인데 이 구십구 못 받았으니 기가 찬다.’ 또 구십구를 받아 놓고 난 다음에는 또 ‘지금 내가 백을 받을 수 있는데 구십구밖에 받지 못했다.’ 요런 사람이 있고 자기가 징계를 하나 받고 난 다음에 ‘아이구, 내가 징계를 하나 받았다. 내가 이거 안 받을 수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징계를 백을 받고도 뜸뜸하이 예사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도 좀 그런 사람 닮아라.’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지금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매를 맞을 만한 그런 현재에 행동을 하면서도 배가 쑥 나오고 몸이 뛴뛴하게 살이 쪄 가지고 이렇게 하고 이래 다니는데 너는 너무 울기만 울고 뭐뭐 단식이면 위주가, 금식이면 위주가? 삐삐 말라 가지고 그래 가지고서 뭐 그래 가지고 금식만 하면 되는 줄 아나? 금식만 잘하면 밥 안 먹으면 되는 것 같으면 송장이 제일이다.’ 내가 야단을 쳤어. ‘너는 또 그리 치우쳐서 탈이야. 어찌됐든간에 이 몸뚱이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몸이 건강해져야 되지 간강 안 하면 안 돼.’ 자, 죽은 송장이 구원 이룰 수 있소 없소? 사람이 아무리 죄를 안 짓는다 해도 송장만치 죄를 안 지을 수 있어요 없어요? 송장만치 죄를 안 지을 수 있어 없어? 없어. 송장이 죄 안 짓지. 그러나 그것은 의도 하나도 없거든. 그러니까 송장이 좋은 게 아니라. 인제 의도 하고 죄도 지어도 어짜든지 그거 뭐 살아서 움직여야 뭐이든지 일이 된다 그거요.

이런데, 회개라는 것은 자기에게 삐뚤어진 거, 바울이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소유도 버렸습니다. 결혼도 안 했습니다. 자기 몸뚱이도 항상 내놓고 삽니다.

생명도 내놓고 삽니다. 이렇게 살고 평생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그 사랑으로 이렇게 살고, 바울이 있다가서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에 대해서는 이제 할 만치 했다.’ 그리 되면은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 사랑에 대해서 아직까지 내가 사랑치 못해서 고칠 거 사랑에 대해서 사랑치 못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러면 발견 못 한 면은 발견 못 했지만 ‘요렇게 사랑할 걸,’ 앞으로 더 사랑할 수 있는 그걸 발견하고, 사랑에 미비된 점을 발견하고 구비할 수 있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둘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만일 바울이 그 둘을 못 가졌다고 하면은 바울은 그 사랑면에는 이제 끝이 맺혔으니까 거게 대해서는 죽은 사람과 같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과 같애. 죽은 사람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요게 있어야 된다 그거요.

회개, 그 과거에 대해서 잘못됐다는 걸 후회하는 그게 자꾸, 후회한 게, 암만 부흥사가 설교를 해도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오늘은 설교 할 만치 했다’ 했으면 저는 썩었습니다. 저는 썩었어. 그만 그것으로 끝이라. 그 다음에는 또 실족할 수밖에 없어.

설교하고 나서 보니까 ‘그거 참, 내가 이렇게 이렇게 증거해야 되는데 이거 잘못됐다.’ 자기 잘못된 것 고거 발견하고 ‘요렇게 설교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걸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시간에 그 설교 또 합니다. 이라면 그 설교 한 설교 가지고서 뭐 백 번을 해도 또 그 설교에 대해서 잘못된 거 또 고쳐서 또 새롭게 또 잘할 거 발견해 가지고 또 새로 하고 이라면은 한 설교 백 번하면은 그 설교가 같은 설교요 딴 설교입니까? 딴 설교요 같은 설교요? 같은 설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딴 설교라. 자꾸 갱신이거든. 자꾸 새로와졌다 말이오. 새것, 새것.

이라니까, 자기가 설교를 하고 그 설교를, 어떤 목사가 평생 그 교회에서 그 설교만 장 하니까 교인들이 그만 배척을 해서 인제 사면을 했다 말이오. 사면을 하고서 이제 가게 됐는데 갈 때, 가게 됐으니 이제 설교 한번 갈 때니까 설교 잘해 주겠지 싶어, 설교에 내나 그 설교 하더래. 그분은 자꾸 회개하니까. 그거 또 교인들이 회개를 안 하니까 자꾸 회개시키기 위해서 그라는 거라.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는 어짜든지, 내가 무슨 일 아무리 잘한 무슨 일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천막 치러 어제 갔다 왔는데 천막 치고 난 다음에도 갔다 와서 ‘내가 오늘 천막 치러 갔는데 뭘 요렇게 할 걸, 누구에게 요렇게 할 걸, 그 사람이 말하는데 내가 대답을 요래 해 줄 걸, 그때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할 걸, 얼굴을 어떻게 할 걸, 눈초리를 어떻게 할 걸, 입술을 어떻게 놀릴 걸, 또 천막 치는 데도 고게 대해서 요렇게 쓸 걸,’ 자꾸 잘못된 점이 발견되고 앞으로 고거 다 고칠 점이 발견된 사람은 그 사람은 발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향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뭐 가정데 대해서나 목회에 대해서나 그거 없으면 죽었어.

아무짝도 못쓸 사람이라. 그 사람이 못쓸 사람 희망 없는 사람 송장이라.

그런고로, 회개에 대한 그것이, 회개에 마음 있어야 되겠고, 회개에 마음보다도 간절하면 눈물 나오지 않습니까? 회개의 눈물 있어야 되겠고 우리에게 이제 징계, 징계를 보는 눈동자, 징계를 보는 눈동자가 있을 뿐 아니라 징계 보는 눈동자 그 반면에는 뭐 보는 눈동자가 있어야 됩니까? 징계 보는 눈동자가 있어야 되고 징계 보는 눈동자 반대로는 무슨 눈동자가 있어아 되는가 고것만 알면 내가 그만 설교 그치지. 상을 보는, 팔십점은 됐다마는.

상을 보는 요것보다도 이제 하나님이 주신 상에 대해서, 뭐이야? 상에 대해서, 상에 대해서 제감된 걸 본다 말이오. 상에 대한 제감된 거, 상에 대한 제감된 그걸 보는 이 눈이 있어야 돼.

우리 눈은 요 징계만 볼 게 아니라, 징계는 밑으로 내려가면서 잘못된 거 보는 건데, 그런데 징계라 말은 그 양쪽을 포함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이만한 상을 받을 것인데 요만밖에 못 받았다.’ 자기에게 주시는 상급이 얼마가 삭감된 고것을 보고, 삭감된 것 보고 또 자기에게 잘못됐다고 징계되는 것 보고 요 양면을 봐야 돼요, 양면.

상에 대한 삭감 보고 또 잘못됐다고 매 맞는 그 매 맞는 거 보고 요거 두 가지를 보는 눈동자가 우리에게 늘 있어야 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 아침에 내가 안 나왔더니마는 오늘 아침에 봐. 하루 아침에 안 나오니까 그만 새벽기도 나온 사람이 푹 줄어 버렸어. 이거는 백 목사 믿는 거야, 백 목사.

하나님 믿는 게 아니고.

자, 백 목사 믿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어? 모두 거짓말쟁이. 백 목사 믿지 말아. 백 목사 이게 또 마귀 놀음 할란지도 몰라. 사람인데 어짭니까? 사람은 믿을 거 못 돼. 하나님 믿어요. 하나님만, 주님만,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새벽기도 나와요.

주님 대접으로. 꼭 말씀 듣는 것도 좋지만 설교 들을라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대접하러, 주님 대접하는 것으로써 내가 첫날 첫시간 내가 주님 앞에 가 가지고서 머리 숙여서 경배하고 모든 하루 종일 할 일을 주님하고 의논하고 내가 또 어려운 일 있으면 부탁하고 또 모르는 거 있으면 묻고 주님하고 의논해야 되겠다.

이거 첫날 첫시간, 이거 첫날로 맞이했소 지금 두번째 맞이하요? 처음으로 맞이하는 거 아니요? 처음으로 맞이하는데 또 인제 뒤에 다시 맞이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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