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받기 전에 회개하라


선지자선교회 1981년 8월 26일 수야

 

본문 : 사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19절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즐겨  순종하면 땅에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거역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이 즐겨 순종하는 순종에는 첫째로 이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순종인  것입니다.

즐겨 순종은 억지로 순종하는 것과 또 이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지마는 할  수 없어 이와 같이 되니 따라가는 그런 순종도 다 즐겨 순종이 아닙니다. 즐겨  순종은 이 사실을 인정하되 이렇게 된 이 법칙을 자기가 만족히 여기고  다행스럽게 여겨 하나님의 이 선포한 법칙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일 이런  법칙을 환영하고 좋아하는 그런 것을 표시해서 즐겨 순종이라 이랬습니다.

즐겨 순종하는 데에는 첫째가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잘 사는 것은 신자는 신자대로 불신자는  불신자대로 죄가 없는 연고라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죄가 없을 때에 그  행동 자체가 잘되는 그런 행동이 될 뿐만 아니라. 배후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책임지시고 잘 해주시기 때문에 잘되는 것입니다. 신  불신자가 다 그러합니다. 혹은 일시에 잘되는 그것이 그 다음에 크게 멸망을 받는  그런 원인이 되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잘되는 것은 그대로의 신자와는 다르지마는 불신자 그대로 죄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보다도 구속함을 받는 믿는 사람들이 금생이나 내세나 영이나  육이나 잘되는 것은 죄가 없고 의로워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첫째로 의심없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사람이 잘되는 것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옳고  바르게 참되게 삶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도 잘되고 내세에도 잘되고 영도 잘되고  육도 잘된다는 이것을 말로는 하지마는 실상은 사람들이 인정하지를 않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영육의 영육간의 잘되는 것. 금생과 내세에 잘되는  것은 그 뭐 종류를 말하려고 하면 그 종류가 심히 많겠습니다.

그 종류가 많으나 어쨌든 잘되는 것은 죄가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의로워야  된다. 의로운 그 값은 영육과 금생과 내세가 잘된다. 의로우면 잘된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의로우면 영원한 소망은 없지마는 임시 세상에서라도 잘된다. 그것을  우리가 확실히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일시보고서 아 그 사람은 죄가 있어도 잘된다. 의로워도 잘못된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보기를 좁게 봐 그렇지 이대나 삼대나 계속해서 보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또 하루 이틀 일시 잘되는 그런 너무 조브랍게 보기 때문에 이 진리가 맞지  않는다 그렇게 보이지기 쉽지. 그 넓게 보면 다 맞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잘될라면 죄가 없고 의로워야 합니다. 더우기 믿는 사람은 더 그러합니다. 그만  믿는 사람들이 죄 없으면 실패는 없다. 멸망은 없다. 잘 살라면 의로워야 잘된다.

금생에도 의로워야 잘된다. 내세에도 의로워야 잘된다. 가정도 의로워야 잘된다.

사업도 의로워야 잘된다. 아무리 수단이 능하고 기술이 좋고 실력이 있고 자본이  구비하다고 해도 의가 없으면 그는 망한다.

요것을 우리가 확실히 인정을 하고 잡는 것이 이것이 첫째로 즐겨 순종하면 하는  이 순종에 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계산되다가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출세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또 신앙적으로나 모든 면  금생 내세 육신 영 자기 자기의 속한 이웃 자기 가족 자기 교회 자기 이웃  어쨌든지 잘되는 밑천은 의가 있어야 된다. 의가 있어야 잘된다. 의가 없으면  망한다. 의가 있으면 그것이 속히 잘되는 일이 되지 안하면 좀 더디 될 때에는  잘되는 그 일이 더 힘차게 잘되게 된다.

이런 농사를 지보면 씨가 씨앗이 조금 깊이 묻힌 것은 싹이 더디 올라옵니다.

더디 올라오나 그게 올라 올 때에는 아주 굵게 올라오고 뒤에 충실해집니다. 또  씨앗이 얕게 묻힌 것은 나기는 일찍 나지마는 약하고 가늘게 나고 얕게  묻혔으니까 그 지기를 많이 빨지 못하니 그 종자는 같은 종자지마는 결실까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좀 깊이 묻혔으면 뚫고 올라오는 시간이 있으니까 더디 나오지마는  든든히 땅속에 깊이 묻혔기 때문에 나기만 하면 무성하게 자랍니다. 얕게  묻혔으니까 뚫고 올라오기가 쉬우니까 나기는 빨리 나지마는 빨리 나는 그  반면에 흙이 얕으니까 얕게 묻혔으니까 그것이 나도 힘있게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당일 성공이 있고 그 성공하려면 그래도 일년 걸려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있고 십 년 걸려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있고 한 이삼십 년 걸려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있으면 시간이 많이 걸려져서 성공하는 것일수록 가치가 있고 또  힘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의로우면 잘됩니다. 의로우면 잘 되는 것은 의로우면 그  사람 하는 행동에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지 의로운 그 행동을 하는 가운데에 그  사람 자체가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하니까 그것이 저 망할 짓을 하지 안하고  생각도 바르지, 비판도 바르지, 정신도 바르지, 소원도 바르지, 행동도 바르지  이러니까 사람이 발라져, 행동이 발라져 또 하나님이 거기에 축복을 하셔.

이러니까 혹 의를 해도 그것이 당장에 효과가 안 나는 수는 있습니다. 의를 해도  당장에 효과가 안 나는 그런 일이 있지마는 안 나면 더디 효력이 나면 그 효력은  크게 날것입니다.

반드시 이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의심 없이 굳게 잡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저 잘되는 원인은 의다. 의 외에는 잘되는 길이 없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의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의고 가정이 잘되는 것도 의고 자기의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 의다.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잘되는 것도 그것도 다 의다.

어짜든지 금생과 내세 영육에 잘되는 것의 방편은 의뿐이다. 의가 없는 그 사업이  당장에 망하지 안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문제지 당장에 망하지 안하면 지체해  가지고 망하면 그 망하는 소리가 큽니다. 크게 망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아야 되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뭐 그렇고 안 믿는 사람 안 그런 것 안 믿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잘사는 방편은 의를 행하는 것뿐이다. 사업을 잘되게 할라거든 그  사업 운영에 경영에 모두다 의롭게 해라. 네가 사업이 잘 될라거든 그 사업에  경영도 의롭게 하고 또 모든 관리도 의롭게 하고 모든 인사 취급도 의롭게 하고  계산도 의롭게 하고 어쨌든지 의가 있는 사업은 망칠자가 없다. 의가 있는 가정은  망칠자가 없다. 의가 있는 그 사람을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의는 하나님이  보장하시기 때문에 피조물중에 어떻게 제일 강한 자라도 의는 멸하지 못한다. 왜?  의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은 확고한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사업을  하든지 품팔이를 하든지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든지 자가기 공부를 하든지 출세를  하든지 무슨 그 계획을 한다 할지라도 잘 될라거든 의를 숭상해야 된다. 잘  될라면 의를 갖추어야 된다. 의를 가꾸지 안하면 안된다. 요걸 놓지 맙시다.

이것을 놓는 데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공연히 기름을 뺍니다. 공연히 골탕을  지먹습니다. 골탕을 지먹기를 하루 이틀도 아까운데 일년 이태 십년 이십년  어떤자는 일생, 너무 비참하고 너무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의가 없는 자리에  절대로 성공이 없습니다. 의가 없는 자리에 평강이 없습니다. 의가 없는 자리에  행복이 없습니다.

"네가 즐겨 순종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으리라" 하는 이 말씀은 네가  이제까지 저질러 논 이것이 참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털끝만치도  희망이 없는 그런 깊은 속에 네가 빠져있고 큰 재를 네가 저질러놨다 할지라도  이 선포하신 하나님을 믿고 내가 지금부터 의를 숭상하고 의 아닌 것은 내가  접하지 않겠다. 의 아닌 것은 내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의만을 상관하고 의만을  나는 숭상하겠다. 요것만 잡고 네가 의를 행하라. 반드시 조석히 아름다운 소산이  되겠고, 좋은 짐승도 아름다운 소산이 되겠고, 좋은 자손도 아름다운 소산이  되겠고, 좋은 명예도 아름다운 소산이 되겠고, 좋은 깨끗한 권세 이런 것도 다  아름다운 소산이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겨나는 것 어떤 것이 이 세상에서 생겨나는 아름다운 그 소산을  "아름다운 소산을 네가 취득하게 되리라" 약속했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에 우리를  넘어트릴려고 하는 악령은 백방의 그 궤휼을 가지고 유혹을 가지고 우리를  노린다 할지라도 이 한 가지로서 그 모든 망을 다 물리칠 수 있소? 그 모든 망을  다 물리칩니다. 그물 쳐논데 고기나 새가 걸리면 제가 벗어 날라고 하는 그  바람에 똘똘 뭉치지 딱 부딪혀 가만있으면, 가만있으면 저절로 뚝 털어집니다.

해방돼요. 인간이 자기의 수단 방법을 가지고 무엇을 하면 되리라고 하는  거기에서 자꾸 자기를 읽어 가지고 멸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굳게 잡읍시다. 내가 의를 숭상하면 의가 자라는 것만치 반드시  이 땅위에 좋은 생산을 좋은 소산을 좋은 소생을 명예든지 권세든지 자손이든지  평강이든지 쾌락이든지 돈이든지 사업이든지 미든지 무엇이든지 이 땅에서 나는  모든 소산 심지어 믿는 사람도 우리 신앙에 건설구원은 전부 이 땅에서 나옵니다.

건설구원은 모두 이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요. 건설구원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에 "보화를 만난 자가 있는 걸 다 팔아 가지고 밭을 산 거와  같다." 밭은 세상입니다. 세상에 우리의 보화가 들었습니다. 우리의 무한한  영광스러운 구원이 이 세상 속에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다 좋은  구원도 이 땅위에서 나타나는 소산이요. 참 자기가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성자 성녀도 이 땅에의 소산입니다. 이 땅에서 성자 성녀가 나오지 이 땅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죽었으면 소용없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네가 먹으리라" 의를 숭상하면 네가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그것이 의인데, 옳게 바르게 참되게  진실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의인데, 하나님의 법도가 말하기를 네가 마음은 이래  써라. 그대로 성질은 이래 써라. 생각은 이래 가져라. 네가 욕심은 이런 욕심  버리고 이런 욕심 가져라. 인간에 대해서는 이래라. 물질에 대해서는 이래라. 일에  대해서 사리 판단은 이래 해라. 가치 평가는 이래 해라. 네가 길을 택할 때에는  이런 길을 택해라. 이런 길은 네가 택하지 말고 떠나라. 이 모든 면으로 말씀하신  이대로 하는 것이 이것이 의를 숭상하는 것입니다.

의가 숭상되면 땅에서 모든 좋은 소산, 성자라는 소산도 의를 숭상하는 그 열매로  네가 얻고, 성녀가 되는 성녀라는 그 소산도 의를 숭상하는 데에서, 네가 위대한  신앙가가 되는 그 신앙도 의를 숭상하는 데에서, 네가 대 부흥가가 되는 데에도  의를 숭상하는 데에서, 네가 아주 위대한 믿음의 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이 믿음의  가정들이 되는 이것도 의를 숭상하는 데에서 모두가 다 의를 숭상하는 데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자기가 받게된다.

"아름다운 소산을 네가 먹을 것이라." 먹을 것이라. 이 땅위에 자기의 하는 일이  위대하면 그일 그것이 자기의 먹을 열매지요. "심은 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먹으리라 말이요. 심은 대로 먹으리라. "행한대로 갚음을 받을리라." 하는 그게 그  말씀인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에누리를 하지말고 그렇지마는 하는 이런 아주  나쁜 습성을 버리고 이것을 확고 부동한 마치 불에 들어가면 타 죽고 불에서  나오면 산다 하는 이런 지식과 같이 이 땅위에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든  좋은 것은 다 의를 숭상하는 그 결과로 온다. 영원무궁세계도 그러하다.

요것을 견고히 잡고 "거역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칼에 삼키우리라"  하는 이 말씀은 전쟁으로 멸망 받는다. 화로 멸망 받는다. 재앙으로 멸망 받는다.

모든 이런 소란, 저런 소동, 이런 분쟁, 이런 환란, 저런 파동 이제 이 모든  이런것 가지고 네가 멸망받는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칼에 삼키우리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있으면 당장에는 그것이 멸망 안돼도 죄가 있으면 반드시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 댓가는 사망입니다. 죄의 댓가는 망하는 것과 죽는 것 그  외에는 없습니다. 어리석게 우리들의 지식이 죄를 지어도 그 죄가 당장에 죄 값이  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죄 값이 없지 않습니다.

죄 지은 죄 값이 없으면 그는 하나님이 범죄하는 일이 됩니다. 의도 하나님이  혼자 그것을 책임졌고 죄에 대한 처리도 하나님이 혼자 책임을 졌습니다. 의와  죄는 하나님이 혼자 책임지시고 처리하시는 일입니다. 아무도 간섭 못합니다.

그러기에 죄의 값은 그것을 하나님이 공평되게 처리를 하시기 때문에 죄의 값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값이 없는 죄가 없습니다. 크고 작고 남이 알고 모르고 직접  간접 간간접 수많은 죄의 종류가 있지마는 죄의 댓가는 반드시 사망입니다. 죄를  범하고 사망이 오지 아니하리라 생각하는 그것도 전부 불신의 행위입니다.

의를 마련하고 의의 댓가가 없을까 의심하는 그것도 다 불신의 행위입니다.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의의 값은 다 영육과 금생 내세에 좋은 것들이요. 죄의  값은 다 망하고 죽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사람이 예수님이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죄값을 받지 않는다 그말은 맞습니다. 맞지마는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죄를 지어도 죄값은 없습니다. 죄값과 꼭같은 징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죄값은 그 죄값으로 망하는 것이고 죄를 지었으니, 징계받는 것은 형벌은  받지마는 소망을 두고서 그 형벌이 온다는 것입니다. 값은 똑같습니다. 죄를 짓고  죄값으로 법정에 가 가지고 그 죄값으로 매를 맞는 것이나, 자기 부모에게  잘못하고 매를 맞는 것이나 부모의 매 때리는 것은 죄의 벌로 주지 아니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징계라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죄벌을 줬다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가 사랑으로 징계를 했다  했습니다.

징계라 말이나 벌이나 말만 다르지 아프기는 같습니다. 상하기는 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벌이 있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있으니 상하기는 꼭같습니다. 죄의 댓가는 믿는 사람에게는 사망과  꼭같은 징계요.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사업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자기 개인에게서든지 그저 자기만  아는 것이든지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이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자기에게  죄가 있을때에 이 죄의 값은 있다. 이 값이 더디 나오면 죄의 값이 더디 나오면  더 크게 나옵니다. 죄의 값이 더디 나오면 더 크게 나오고, 죄의 값이 빨리  나오면은 가볍게 나옵니다.

죄의 값이 더디 나오고 빨리 그 죄의 값이 나오고 하는 그 시간문제가 있는데,  빨리 나오는 것은 죄의 값이 좀 경하고, 오래 있다가 더디 나오는 것은 죄의 값이  무겁고 큽니다. 죄의 값은 조금도 그것이 없지 않습니다. 죄의 값으로 사망을  주는 것인데 아프기는 똑같이 아픈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어떤 면에든지 자기가 아는대로 내가 여기에 대해서 이런 죄를  범한게 있다. 그렇게 자기가 알면 그 죄의 값이 조만간에 나온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 모르면 모른다고 해 가지고 안나오는게 아니고 나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즐겨 순종하면 하는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요.

믿는 사람이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죄의 댓가가 있다. 그 죄의 댓가가 있는데  멸망시키는 벌로 주지 아니하고, 회개하라고 징계로 주시는데 징계로 맞는 매나  벌로 맞는 매나 상하고 아프기는 꼭같습니다. 다만 희망이 다르다는 것 뿐이지.

그러니까 오늘 밤에 이 말씀에서 첫째 둘째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의의 의의  값은 잘된다. 믿는 사람이 어떤 면으로서든지 잘되는 것은 반드시 의가 있어야  잘되지 의 없이는 잘되는 일이 없다. 의의 열매가 잘되는 것이지 의없이 잘되는  것이 온다고 하면 왔으면 그것은 자기에게 큰 화근이다 왔으면 화근입니다.

조만간에 그것은 그로 인해서 자기는 큰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의 값은  잘되는 것이다. 죄의 값은 반드시 믿는 사람들에게는 징계가 있다. 죄의 값은  반드시 징계가 있다. 그것이 의의 값이든지 죄의 값이 빨리 나타나고 더디  나타나는 그게 차이 있는데 빨리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좀 경하게 약하게  나타나고, 더디 나타나는 것은 강하게 무겁게 나타나는 것 그것만 차이 있다.

의의 댓가가 없지 않고 죄의 댓가가 없지 않다. 왜? 의와 죄는 하나님이 단독이  책임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맡기지 안했습니다. 나라에서 다스리는 것은 그  인간들끼리 약속한 그 약속을 토대로 삼아 가지고서 약속을 거의 다 그들이  인간이 인간끼리 서로 다스리지마는 하나님 앞에 죄 되는 이것은 인간이  다스리지 못합니다.

인간이 백 번 다스려도 만 번 다스려도 그것을 없앴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들이 개인끼리나 사회에 대해서나 나라에 대해서나 교회에  대해서나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가정에 대해서 의롭게 하고 또 죄를 범한 이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혼자 책임지시고 의에 대한 댓가에 행복을 주시고 죄에 대한  댓가에 그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맡았기 때문에 이것은 털끝만치도 그 삐뚤어짐이 없습니다.

무슨 계산 착오라든지 혹 모르고 빠진 것이 있으리라 그런 생각가지면 안됩니다.

이는 뭐 하나 빠지지도 안하고 틀리지도 안하고 또 계산이 잘못되지도 안 합니다.

그러기에 요 두 가지를 우리가 굳게 잡을 것. 그런데 그 위에 한 가지 말씀을  해놨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죄라면 모두다 전부 삐뚤어진 것인데, 하나님께  대해서 삐뚤어진 것 인간에 대해서 삐뚤어지고 또 가정에 대해서 부부에 대해서  형제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사물에 대해서 모두다 삐뚤어진 것  다 죄인데, 이 죄와 의에 대해서 요 두 가지를 우리가 요동치 않고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이 말씀이 그 사람에게 해당이 됩니다. 이 지식이 확고하지 안한  사람은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어진다" 하는 이 말씀이 그에게는 아주 업신여기는 말로 들려질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 어떤 법정에서 정죄함을 받아 이것은 참 이 죄값으로 자기가  그 댓가의 형을 받게 된 것이 확고한 것을 자기가 알고 난 다음에는 그형에서  풀리 나온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참 감사한 일로 느끼지마는 그걸 모르는  자에게라야 나오면 의레히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그걸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라야 대속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두 가지 말한 이것을 어짜든지 우리 머리에 배도록해야  되겠고 정신에 배도록 해야되겠고 우리 지식에 배도록 해서 밤에나 낮에나  언제든지 죄에 값은 징계라. 죄의 값은 틀림없이 징계 있다. 죄의 값은 징계가  있다. 죄의 댓가는 징계가 있다.

의의 값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잘된다. 자기가 무슨 일을 경영할 때에 의롭게  하면서 어떤 멸망할 일이 아주 위에서 산더미같이 덮어도 자기가 살펴서 죄가  없고 의로울 때에 그때에 덮으면 덮을수록 유명하게 덮은 산태를 집어 던지고  솟아 오를 수 있다는 요런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가 죄를 범해서  묻어 놓고 일시 잘되니까 다행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아무리 일시 없어도 아무리 어떻게 어떻게 해서 시간이  지나가고 무엇이 어떻게 해서 덮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크게 소리치고 반드시  크게 소리치고 이것이 큰 징계로 큰 징계로 들어난다 하는 이것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사실은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인정 안하면 자기만 속는 것이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런 자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이사야 1장 18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못됨이 있다 할지라도" 그 잘못된 심판의 댓가는 예수님이 대행했기  때문에 그 댓가는 우리가 받지 안하지마는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우리가  잘못된 게 있으면 잘못된 그 댓가는 세상에서 받든지 내세에 가 받는지 받습니다.

없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거기에 대한 댓가인 징계를 받아서 그 사람이 그 징계를 받음으로  인하여 깨끗이 회개를 하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그것이 수치되지  않습니다. 이 수치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징계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징계 받은 것으로서 무궁한 나라에 가서 나타날 수치는 면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을때에 제가 그것을 고쳤으면 그것이 수치가 없고  영광으로 들어납니다.

우리가 여러면으로 바울같은 그런 분이 괴수 죄인이라고 이렇게 자기를 자꾸  찾을때에 이래됐는데 우리가 눈이 어두어서 자기 죄가 보이지 안해서 죄가 없지  우리 죄가 없습니다. 그것은 죄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죄는 하나 밖에는  안보인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죄가 많지마는 죄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밖에 안보인다. 하나보이는 고것을 보이는데 고것을 고치지 안하면  죄로 느껴서 고치지 안하면 그 다음에는 죄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것을  죄로 느껴서 사유함을 받아 고치면 고 다음에 또 나옵니다. 고치면 자꾸  튀어나옵니다.

이러니까 바울이 자꾸 나오는 걸 보고서 나는 죄인중에 죄인 괴수 죄인다. 그렇게  말한 것은 그분이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도록 죄라고 느끼진 것은 고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연해서 튀어나온 것이지 자기가 죄로 인정할 것을 고치지 안하면 고게  딱 막혀가지고 그다음 죄는 보이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안보이면 안보인다고  자기가 안보이지 하나님께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에게 죄가 있으면 그 죄는 이 세상에서 당장에 징계로 나오지  안하면 시간이 좀 더디서라도 징계로 나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로 당장 나오면 그 징계가 경한 징계로 나오고 그 징계가 당장 나오지  안하고 시일을 걸쳐서 오래후에 나오게 되면  큰 징계로 나오게 됩니다. 상하는  걸로 나오면 상하는 것이 더 크게 상하는 것으로 또 상하는 것은 몸이 상하는 것,  재산이 상하는 것, 가정이 상하는 것, 자기의 명예가 상하는 것, 위신이 상하는  것, 권위가 상하는 것, 실력이 상하는 것, 자기의 모든 기반이 상하는 것, 모든  소유가 상하는 것 뭐 상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징계로 반드시 나옵니다.

나오는데 그것이 더디 나오면 크게 나오고 즉시 잘못을 저질은 그 즉시로 나오면  그 댓가가 적게 나옵니다. 나오는데,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를  그사람이 범하든지 그 죄의 댓가는 주님이 다 담당을 하셨기 때문에 심판적  댓가는 없으나 그 죄를 하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지마는 그 죄를 미워하고 그  죄와 이별을 하고 그 죄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 주님이 대속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속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징계로 나오는데  징계로 나올 때에 제가 징계를 받았으니까 내가 잘못한 값인 징계를 받았으니까  이제는 이것으로서 끝났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징계는 벌이 아닙니다.

징계는 벌이 아니요.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하는 채찍이라 그 말이오. 고치게  하는 채찍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을 깨달아 그 채찍을 인해서 잘못한 것을 깨달아  고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목적이 달성이 됐습니다. 목적이 달성이 됐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 사람은 그 징계를 받은 효력을 자기는 봤습니다.

그 효력이 뭐입니까? 그 효력이 그 죄를 범한 그 사람이 그 징계를 인해서 그 죄  범한 그것을 완전히 돌이켜서 변화가 되어서 죄지은 그 사람이 없어지고 죄지은  그 사람과 반대되는 그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화가 됐으니까 성화된 이것이 무궁세계에 가면 자기가 회개를 하지 안했으면  무궁세계 가 가지고 그것이 수치가 됩니다. 수치가 되는 것은 자기가 그것을  범하고만 범하는 사람으로만 왔고 범하고 거기에 대한 그 모든 요소들이 다  죽어버리고 왔기 때문에 병신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회개했으면 그것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이 영광이 들어나고 또 성령과 진리와 피의 이 대속하신 공로가 들어나고  이래서 그것이 도리어 영광이 될지언정 수치가 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자기가 어떤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때에 그때에 돌이켜서 범죄하던 고 사람이 완전히 돌이켜 그 범죄한 사람을  미워하고 범죄한 사람은 그것을 다 십자가 못밖아 죽여버리고 이제는 범죄하지  아니할 그 사람으로 성화를 받아가지고 가면 하늘나라에 수치가 되지 아니하고  도리어 영광이 됩니다. 그것이 영광이 되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이 아주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기 전에 모든  사람이 아는 대로 참 모든 면으로 몹쓸 사람인데 그 사람이 믿고 난 다음에 그  몹쓸 모든 면을 회개해서 참 놀랄만침 변화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과거에 그렇던 그것이 그에게 수치가 되지 안하고 그렇던  사람인데 저렇게 변화됐다 해서 그 사람에게도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예수교 이 복음에도 영광이 됩니다. 예수 믿는 복음은 참 그런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됐으니 믿어야 될거라. 참 하나님의 능력이 커 이 영광이  되어집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궁세계에 그것이 영광이 되고 수치가 되지를 아니합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 것은 징계보다 좋은 것이 있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징계가 나타나기 전에 자기가 죄라고 깨달아질 때에  어떻게 하든지 징계 받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채찍질해서 단식을 하든지,  산기도를 가든지,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뭐 어떻게 노력을 하든지 성경을 거기에  대해서 거기에 대한 지식을 앎으로 자기가 고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자식을  더 많이 깊이 알아서 성경 보니까 성경에 이렇게 이 죄에 대해서는 이 간사에  대해서는 이간 붙이는 죄에서는 거짓말 죄에서는 이렇게 값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성경을 보고 깨닫든지 어쨌든지 자기가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것을  회개를 하면 그것도 두 가지 유익이 됩니다.

다시는 그 사람이 그것으로서 징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수치가 되지 아니하고 그 영광이 됩니다. 징계 받고 회개한 사람이나 징계  안받고 스스로 회개한 사람이나 그 영광이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징계 받고 회개를 하는 것과 징계 받지 안하고 회개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느냐? 우리가 징계를 받으면 일정한 재료를 우리가  타고났는데 시간도 한정 있는 시간을 타고났고 건강도 한정 있는 시간을 한정  있는 건강을 타고났고 모든 그 요소 전체가 다 한정이 있는 자본을 타고  나왔는데 이 자본을 징계 받는데 징계로서 많이 소비해 버렸으니까 자기가  그것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징계 받는 그 징계에 소비될 그 자료를 소비하지 안하고 이것을 구원의 자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그 성경에 말하기를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했습니다.

징계 받고 또 받고 징계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징계를 받거든 그 "징계를 경하게  여기지 말라" 한 번 받으면 다시 두 번 받지 말아라. 그 징계를 받고 회개하는  자와 징계를 받지 안하고 회개하는 자가 다른 것은 받지 않고 회개하는 자는  징계받아서 소모될 그 요소가 소모되지 안하고 구원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그만침 유익하고 징계를 받고 그 재료를 소모해도 자기가 성화를 되어서  무궁세계를 수치를 이 땅위에서 면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징계를 받아도 회개를 하지 안하는 사람은 그 징계 받는  걸로서 그 댓가가 끝나는 것 아니고 수치가 끝나는 것 아닙니다. 징계를 받아도  회개 안한 것은 무궁세계의 수치가 그 징계 받음으로 인해서 그에게 수치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 처음에 가르친 두 가지를 확고한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셋째로는 우리가 그 징계 죄의 값은 믿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그 값이  있는데 벌이 아니고 징계로 주는데 조만 간에 징계로 나온다. 징계가 오기 전에  회개하면 징계도 없고 무궁세계의 수치도 없고 그게 나타나 알기는 안다. 모르는  기 아니라. 다 알기는 알지마는 그것이 수치가 되지 안하고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주께 영광돌리고 다 그게 영광이 되어진다. 왜? 그 나라에 가면 전부 고치고 온  사람뿐이기 때문에 아 이 사람도 이런 병이 들었다가 고치고 왔구나. 이 병들어  가지고 매 맞고 고쳤구나. 이 사람 매도 안 맞고 고쳤구나.

이러니까 고친 게 문제고 고치지 안한 것이 문제지 그 고친 것이 고치기 전에  어떻다 하는 그것이 문제되지 안하고 고치지 안한 그것은 고치지 안 했기 때문에  아무리 하늘나라 가도 그 수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둘을 알고 셋째로  똑똑히 알 것은 반드시 죄의 값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징계가 있다. 징계 없는  수가 없다. 징계가 있을 때에 돌이켜 회개를 해서 완전히 사람이 변화가 되면 고  징계로서 댓가는 끝나버립니다. 무궁세계 그 수치가 없다. 오히려 무궁세계  영광이 된다.

그러나 징계만 받고 회개치 안하고 성화되지 안하면 무궁세계 수치는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징계를 받기 전에 자기가 볼 때에 이것은 징계 받을 일이다 하면  징계가 오기전에 회개하면 징계 안옵니다. 회개하면 징계도 안오고 무궁세계에  그것이 영광으로 나타나지 수치로 나타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털끝만한 죄라도 범한것이 나타나지 않지 않습니다. 나타나나 그것이  영원한 수치로 나타나는 한길이 있고 그것이 무궁세계에 영광으로 나타난  영광으로 바꿔져 나타나는 한길이 있는 이 두 길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네가 어떤 책을 보니까 그 여인이 창기인데 아주 창기 중에도 참 몹쓸 창기라.

창기 중에도 참 더러운 창기라. 창기인데, 그 사람이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도  원청 미인이 되어 놓으니까 자꾸 남자들이 침범해서 깨끗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  소산수에다가 낮을 씻어서 얼층이가 되어 가지고 그 다음 부텀은 다시는  더럽히지 안하고 자기가 깨끗하게 지냈다 그 말이오.

지냈으면 지냈는데, 내가 말을 듣고 책을 보고 읽을때도 그렇고 그때 사람들도  그럴것이고 하늘나라 가면 그 사람이 그 창기때의 그 수치가 수치되지 안하고  창기기 때문에 그다음에 소산수로 낮씻고 회개한 그것이 그에게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에게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존대를 받는 것이  되어지지 과거에 그 창기 노릇이 그에게 수치가 되지를 아니할 것이라 그 말이오.

꼭 요와 같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오늘 밤에 자기만 아는 무슨 그 경제적인 죄나 권력을 가지면  권력적인 죄나 또 인인관계의 죄나, 무슨 상하관계의 죄나, 부부관계의 죄나,  친구관계의 죄나, 주객관계의 죄나 뭐 어떤 죄든지 자기 마음에 이것은 죄다.

이것은 아무래도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일이다. 생각나는 게 있으면 우리가  징계받기전에 회개하는게 좋고 그걸 때를 놓쳤으면 징계가 올때에는 징계올  때에는 그때는 어짜든지 끝맺음을 맺어야되지 징계를 맞고도 회개치 안하면 그는  참 그만 다시없습니다. 그 영원한 수치로 바꾸어지고 맙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죄의 값도 의의 값도 없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책임자입니다. 없지  않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참 가죽을 덮어놓고 있어. 그렇지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 많은데 친구끼리도 부부끼리도 형제끼리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 많은데 이런  것 무궁세계에 고대로 나타날 것인데, 이 수치를 오늘에 무궁세계의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오늘인 것이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신관과 구관이 불을  다 꺼주십시오. 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단단히 기도하고 작정을  하고 그래 떠납시다. 여기에서 작정하고 떠나는 그것이 먼저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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