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책망-사랑

 

1987. 7. 28. 새벽 <화>

 

본문: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우리는 책망과 칭찬 이 두 가지가 사람과의 관계에 그 모든 형태입니다. 칭찬에는, 칭찬도 잘 들으면 유익할 수 있습니다.

칭찬을 들을 때에 자기에게는 털끝만한 의도 없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칭찬받을 수 있는 그런 모든 언행심사를 하도록 해 주신 주님 앞에 온전히 영광과 감사를 돌릴 때에 그 사람은 그것도 손해가 되지 않고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제가 한 것인 양을 다소라도 생각하면 하는 것만치 자기에게는 화가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실은 저나 다른 사람이나 꼭 같이 전적 부패했고 또 모든 실족만 한 자입니다. 실족만 할 자인데 주님이 긍휼히 여겨서 그렇게 승리케 하셨고 의를 행하게 하셨기 때문에 자기는 주님의 돕는 은혜가 아니면 완전히 실족자요 실패자인 이것을 알고 주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그것을 깨달을 때에 그 사람은 겸손과 감사와 기쁨이 있겠고 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나는 주님이 이렇게 은혜를 주셨는데 저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했으니 미안합니다.’ 꼭 같이 아무것도 없는 배고픈 자가 저는 음식을 받아서 배불리 먹고 그는 하나도 먹지 못하고 있으면 먹은 자가 조롱하고 ‘나는 먹었는데 너는 못 먹었지?’ 하고 멸시하고 조롱할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양심을 쓰면은 미안하고 ‘나만 먹어 미안하다, 이거.’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얻어서라도 줄라고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이렇게, 칭찬에 대해서도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도리를 밝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서 이 모든 죄악을 벗고 나니까 그 심령이 밝아질 때에 ‘면류관 손에 들고 주님을 기다린다’ “면류관을 손에 들고” 또 면류관을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발 앞에 주님의 발 앞에 면류관을 던졌다” 이래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면류관을 던진 것은 ‘이 면류관은 순전히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완전히 주님이 만드신 것인데’ 세상에서 자기가 그 면류관 만든 것처럼 이렇게 하고 지내는 그런 것이 다 후회가 되고 회개가 되니까 그 면류관을 갖다 드릴 수가 없고, 왜? 너무 주님과 자기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두려워서 갖다 드리지 못하고, 거기서 던졌다는 것은 먼 데서 그거 자기가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면류관만 그리 보내는 그 형태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깨닫고 하면 칭찬도 유익이 될 수 있고 어릴 때는 책망이 유익이 됩니다. 책망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니까 책망을 받아서 나는 지금 고치는 시기요 치료받는 시기기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에 의사가 ‘너는 이런 이런 병이 있으니까 요렇게 치료하면 된다’ 하는 것을 바른 진찰을 해서 병을 바로 발견해서 알려 줄 때에 그 환자는 일차적으로 기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이 병에는 이리 이리 치료하면 된다’ 이렇게 해 줄 때에 소망을 가지고 기쁨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달게 치료받을 것이고 빨리 건강을 되찾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고치는 세상이요 또 무궁세계는 고쳐진 그것을 가지고 영생하는 나라기 때문에 고치는 것은 세상에서 고치지 안하면 못 고칩니다.

이러니까 고치는 세상인 것인 것을 알고, 또 고쳐진 것은 가지고 영생하는 것인 것을 알고, 자기는 고침을 받아야 될 사람인 것을 깨닫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게 있는 잘못을 듣는 그 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자기는 분명히 환자는 환자인데 이 병이 무슨 병인지 몰라서 고민하는 그 환자가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바른 의사를 만나 가지고 병을 지적받을 때에 그가 기쁜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은 고칠 세상이라는 것과 또 자기에게는 고쳐야 할 병이 있는 것은 무슨 병인지 어째 고칠지는 모르나 자기가 영감의 생활 못 하고, 진리 생활 못 하고, 참사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이대로 가면 하늘나라에서는 병은 다 추려내고 그때 가기 때문에 건강된 것만 가니까 뭐 병 뽑아 내 버리고 나니까 나중에 그저 숨만 붙었지 아무 작용할 실력은 없습니다. 이제 그럴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땅위에서 책망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망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책망받는 사람은 자기에게 고쳐야 될 모르는 그 악한 병이 들어서 참사람으로 살게 못하는 죄병이 들어 가지고 있다는 그것을 자기가 알고 근심하는 사람과 또 세상은 그런 것을 치료받는 세상인 것과 치료받아서 건강된 것만 영생으로 하늘나라 가 산다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책망받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책망이라 말은 ‘너는 요게 나쁘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모르던 그 죄악을ㅡ인간병 말이오ㅡ인간병을 지적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치료받는 것보다 먼저 자기에게 오는 그 기쁨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은 책망받기를 기뻐하고 이 단계를 넘어간 사람, 책망받기를 기뻐하는 이 정도를 넘어간 사람은 칭찬도 상관이 없습니다.

칭찬도 상관이 없는 것은 순전히 주님께서 대속으로 고쳐서 그래 된 것이지 제가 스스로 된 것이나 자기에게 있는 것이 하나도 아니기 때문에 칭찬받을수록이 더 하나님께 대해서는 감사하게 되고, 또 자기에게 대해서는 행복된 것을 기뻐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다 같은 나인데 주님은 내게 대해서는 주님이 이런 은혜를 베풀어 줘서 내가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이렇게 됐고,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은혜를 주시면 나와같이 될 터인데 받지 못했으니, 나만 받았으니 그 사람 보기에 미안하다. 그 사람이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동정의 마음으로써, 사람 보기에는 교만할 게 아니라 미안하고, 또 자기에게 대해서는 그렇게 은혜 받았으니 이제 조심해서 이렇게 큰 힘 들여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기를 고쳐 주셨으니 더 겸손히 충성이 나오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감사가 나오게 되고 이러면은 그 기쁨으로 소망 가지고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써 일계단에 어릴 때에는 책망을 하시고 장성하면 칭찬도 하십니다. 칭찬해서 그 사람에게 손해갈 사람을 칭찬하지 안하고 또 책망해서 손해갈 사람에게 책망하지를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책망도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이요 칭찬도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아주 이런 깨달음에 좀 양심을 써서 나아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책망도 없습니다. 이래서 성전 밭마당이라 했는데, 성전 밭마당이 있고 밭마당 안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거는 하나님이 간섭하는 사람이고 그 밖에 것은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뭐 죄를 지어도 그대로 두고, 그러면 제가 죄를 짓고 잘못하면 잘못한 것의 자연 보응으로, 자연 보응으로 이렇게 차차 차차 자기에게 보응이 와 가지고 여러가지가 망하고 이렇게 쇠해지고 이래지지마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책망을 기뻐하고 징계를 기뻐할 수 있는 요 단계로 자라간 사람 요 사람은 하나님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즉시 징계합니다.

이래서, 아침에 깨끗이 회개하고 낮에 생활하는 가운데에서 실수했으면 그만 그 날 징계하니까 또 하나님 앞에 자복하지 않을 수가 없고 이러니까 시편 73편에, 나는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기 마음을 깨끗게 하나 또 하나님 앞에 낮에는 징계받고, 쪼그매만 잘못하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시는 그 방편이 그 순서가 단계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처음은 자기가 책망받지 않는 그런 징계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가련하게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옮겨서 ‘하나님이여, 나를 타락한 가운데 두지 마시고 나를 징계하셔라도’ “사랑하는 자에게는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여기에는 없는데 “몇 번이든지 징계한다” 그런 말이 거기 쓰였는데 여게는 빠졌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이랬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징계 없는 데 대해서 마음에 기막히게 생각하는 그것이 있으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옵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옵니다.

이래서 히브리서 12장에는 보면은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아들이 아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아들이 아니라”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벌써 탈선 행위를 많이 하고 이렇게 나가 있는 것은 그거 책망해 봤자 매 때려 봤자 상하기나 상하지 아무 효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없습니다.

징계가 없으면은 설설, 마치 식물이 가물어서 물이 없으면 차차 차차 시들고 시들어 가지고 죽는 것처럼 그래 가지고 육체가 망합니다. 심신이 망하고 경제도 망하고 세상도 망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아주 속성으로 되지 안하고 아주 그렇게 서서히 만성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의 징계가 없어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 받기를 우리는 간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징계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하는 일을 안 되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뭐이냐?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노니” 이랬어.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은 잘못된 걸 책망하면은 말로 해서 ‘네가 이거 잘못됐다’ 이렇게 책망을 하지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할라 하면은 당신이 직접 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우리가 죽습니다. 어제 아침에 그걸 많이 말했는데, 직접 말하면 죽는 것이 우리는 어두움이요 하나님은 빛이신데 빛이 오면 어두움은 그만 녹아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빛되신 하나님이 어두움에 속한 우리들을 이렇게 성화시킬라고 할 때에 직접 대하지 안하고 간접으로 대하고, 그 안에 중보를 하나 두고 대하고, 또 중보를 하나 둬 가지고 대하다가 그 너무 세서, 하나님의 빛이 너무 세서 상할 때에는 간간접으로 대합니다.

간접으로 대하시고 간간접으로 대하시고ㅡ혹 그걸 못 알아들을까 싶어서ㅡ직접 대한다 말은 이 마이크를 내가 손으로 직접 대했습니다. 요게 직접 대하는 것이고, 간접으로 대하는 것은 내가 손으로 대하지 안하고 이 다른 걸 하나 대 가지고 이래 대하는 것이 간접으로 대하는 것이라, 간접으로 대하는 것. 그러면 직접 대하는 게 아니고. 또 간간접으로 대하는 것은 여게다 딴걸 하나 대 가지고 자꾸 이라면은 여기 직접 대하는 것과 대하는 것이 대하는 그 마찰 도수가 약해진다 말이오. 알아듣겠어요? 우리가 그 끓는냄비, 냄비에 뭣이 끓을 때에 그걸 끓으니까 뜨겁다 말이오. 그걸 손으로 직접 들면 그 뜨거운 열이 자기에게 직접 오기 때문에 그 자극을 많이 받아. 이래 데일 수도 있고. 이러니까 부득이 그걸 이 무슨 수건이나 이런 베쪼가리를 가지고 한벌 이래 딱 싸 가지고 들면 될 수 있고, 되게 뜨거운 것은 한벌 싸 가지고 들면 안 돼. 안 되니까 그거는 또 여러벌을 싸 가지고 들어야 된다 말이오.

여러벌을 싸 가지고 들어도 안 될 것은 부득이 거게다가 물을 적셔 가지고 이와같이 오면은 그것이 저 오는 열도는 식히고 이리는 열도를 막고 이라기 때문에 간간접, 간간간간접. 이러니까 그 열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 살이 상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라 그말이오.

그래서 하나님은 빛이신데 우리에게 어두움이 있는고로 그 빛이 어두움에 오면은 즉사되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사람 말하듯이 말로써 책망하면은 직접 아닙니까? 책망하면은 우리가 죽어요.

그러기 때문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할 때에 모세와 대할 때에는 직접 말을 했습니까 어쨌습니까? ○○○권사님, 직접 말했소 어쨌소?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할 때 어떻게 말했습니까? 직접 말했소? 아니, 빽빽한 구름을 가운데 접해 놓고 구름 속에서 구름을 접해 놓고 간접으로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그러나 모세는 그랬지마는 아론은 간접으로 말하는 거게 들어갔다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산 중턱 위에서 이제 그거 들었다 그말이오.

그만치 거리를 두었다 그 말이오.

또 이스라엘은 산 중턱에서 듣지 아니하고 이 산 발치에서 그 들었다 말이요, 발치에서 들었어.

발치에서 들었는데 일반 동물들은 또 어떻게 했소? 동물들은 발치 인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오는데 거기만 와도 직사하게 되기 때문에 경계해 놓고 그 경계 밖에, 경계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 말이오.

이래서 그 층어리 있는 것을, 이스라엘은 산 발치에서 하나님이 경계해 놓은 그 안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 또 짐승들은 또 그 밖에 또 더 밖에서 들어오면, 밖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거처하면 안 된다. 그 밖에 있어야 된다. 이렇게 해서 간간접으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우리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로 책망을 하면은 직접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책망하실 때에 말로 이렇게 음성으로 책망하시지 아니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징계한다는 것은 자기 하던 일이 이렇게 방해되어지도록 이래 한다 말이요, 방해되어지도록.

그러면 어제 아침에 그걸 많이 말했는데, 내가 그 사람하고 단단히 약속을 해서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밤에 그 마음이 삐뚤어져 가지고 그 사람하고 나하고 하나가 안 되고 서로 의논한 것이 결렬이 돼 버립니다. 안 됩니다. 결렬이 됩니다.

결렬되면은 ‘그 사람은 신용 없다. 약속 없다.’ 우리는 그 사람을 맞붙어 가지고 재비할라고 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 말이요, 깨달을 때는. 이 인간의 마음을 주권하시는 하나님, 주님이 마음도 주권하시고, 생각도 주권하시고, 활동도 주권하시고, 생명도 주권하시고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마음 저런 마음 가질 때에 ‘이 마음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이 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 돌려 가지고 나하고 대하도록 한다’ 하는 요걸 깨닫고 자꾸 거게서 ‘그게 뭣이 들어서 주님이 섭섭해서 이와같이 하는가?’ 이걸 찾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하는 일에는 별로이 불통하는 일이 없다 그 말이오.

또 자기는 일을 할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내가 그런 말 들었어. 장생골서 일을 하는데 이렇게 뭐 여러가지 지변이 있지마는 이상하게도 꼭 비가 안 올 때는 안 오고 올 때는 오고 이래서 꼭 그뭐 자기네들 공사하는 사람들 마음같이 된다고, 마음과 같이 돼서 그 공사를 다 했다고 그런 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하기를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준다 그 말은 비 하나만 아니라. 비 하나로 그렇게 말씀한 것은 비 하나만 말한 게 아니라, 비는 인간이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주는 게 아니겠소? 이러니까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신다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모든 것을 역사하셔 가지고 자기에게 더위가 필요할 때는 더위를 주시고, 시원이 필요할 때는 시원하게 해 주시고, 물이 필요할 때는 물을 주시고, 또 말라야 필요할 때는 마르게 해 주시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전부 필요하도록 이 자연 동원도, 이 자연을 동원을 시키는 것도 이 동원시키는 것이 전부 그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자꾸 동원시키는 이것이 축복이라 그 말이오. “때를 따라 비를 내려서 너희들의 모든 밭에 곡식이 풍성하게 한다” “기한 전에 포도가 떨어지게 한다” 이게 다 주님 혼자 작용이라 그 말이오.

이게 다 징계입니다. 기한 전에 포도가 떨어지는 것이 징계요. 그러면 모든, 그거 하나로 말해 가지고 모든 거 알려 주는 거라 말이오. 우리가 모든 일을 하는 데에 그 일이 미완성에서 실패하는 그것이 기한 전에 다 그 포도가 떨어지고 과실이 떨어지는,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게 한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말이오.

그게 다 징계라.

그러니까 모든 것이 미완성이 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징계요, 또 이제 “너희에게 기한전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모든 일이 다 완성한 결과를 보도록 하지 자기 한, 시작하는 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했고 시작한 그 일이 다 완성 결과를 보고야 말지 그 미완성으로 되는 일이 없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뭐이든지 한다 하면 그 일이 한다 해서 흐지부지하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가 보니까 자꾸 그게 흥하고 흥해 가지고 기어코라도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이 그뭐 한다.’ `그 시시한 사람 그거 뭣이 되겠나?' 겪어본 사람은 ‘아니, 그 사람이 내가 말해 가지고 안 되는 걸 못 봤다. 다 보면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기지마는 마지막에는 그대로 완전한 결실을 맺고야 만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하는 그 말씀이라 그 말이오.

이래서 그런 것이 다 징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내게 음성으로 징계하지 안하고, 모세에게도 음성으로 하실 때에 그 때에 구름 가운데에서 그렇게 했고, 또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한 것이 ‘네가 소돔 고모라 성에 네 조카 롯이 있는데 지금 내가 유황 불비를 내린다’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말씀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말한 것같이 이래 보여지지마는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 직접 한 것이 아니고 누가 했습니까? 누가 말했소, ○? 나중에 보니까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안했어요? 처음에 말할 때는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자꾸 이래 말해 놨지마는 나중에 가 보면은 그게 천사라 그 말이오. 천사로 나타나지 안했소? 그러니까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했지 직접 말하지 안했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한 그건 전부 나중에 뒤에 살펴보면은 다 천사를 통해서 말하고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로 나타나 가지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내게 무슨 일이든지 원치 않는 일, 지장되는 일, 모두 불리한 일, 내게 해가 되는 일, 그런 일이 있으면, 예를 들어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자기하고 약혼한 여인과 다른 사람이 동침한다” 이렇게 말했어.

그거 하나로써, 다 동침해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부부가 이거 하나가 돼 가지고 무슨 일을 해 나가고 이래야 될 터인데 ‘동상이몽이라’ 한 침대에 누웠지마는 생각은 다르다. 그게 뭐이냐? 그게 다 하나님의 징계요 그거 하나님이 방해하시는 일이라 그 말이오.

또 자기는 이 목회를 하면은 이 모든 교인들이 자기 목회자 자기와 하나가 돼야 될 터인데 뜻이 하나가 돼 가지 안하고 자꾸 이렇게 반대하는 자도 있고 자꾸 이런 자들이 생겨진다 그거요. 생겨지면 그걸 하나님의 징계인 것을 알아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 징계인 것을 알아서, 그러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적으로 뭐 삼고 이렇게 어찌 한다는 것보다도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 징계를 주느냐? 이 징계를 주시는 원인이 무엇이냐?’ 이걸 찾아 가지고 원인만 고쳐버려지면 그 징계는 저절로 없어지는 것인데 그래서 고치지 안하고 자꾸 엉뚱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자꾸 이라면 원수가 되어지고 자꾸 안 된다 그거요.

징계인데, 징계 그게 뭐이냐 하면 사람으로 말하면 직접 책망을 말로 할 터인데 이렇게 하면은 우리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간접으로 통해서 모든 환경과 주위와 형편과 사정 그 모든 현실을 자기를 가지고 징계하는 일을 한다 그거요.

그렇게 하는 그것을 그 위에 보니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또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슨 일에 방해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이것은 ‘네가 그랬지?’ 이 피조물끼리 대해 가지고 그렇게 할 게 아니라 피조물은 권리가 없어.

피조물을 하나님이 그걸 주권해서 죄짓는 것도 하나님이 죄짓게 만들고 이러니까 복있는 자는 복된 생활 하도록 하고 복없는 자는 자꾸 죄만 짓고 가룟 유다같이 그와같이 하도록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 가룟 유다가 멸망할 생활한 것이 그것이 털끝만한 것도 제가 주권으로 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런 자 만들어 그런 자로 불행스럽게 살게 하는 것이요 또 베드로가 그렇게 행복되게 산 그것이 하나님이 행복되게 살게 해 산 것이지 없다 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기 때문에 그분에게 잘못 보이면 헛일이라.

이렇게 자기에게 징계가 오면은, 징계가 오면은 우리가 깨닫기를 뭐라고 깨달아야 됩니까? 징계가 올 때에, 자기의 하는 모든 생활에 대해서 인간적인 징계가 온다든지, 사물적인 징계가 온다든지, 또 자연적인 징계가 온다든지 징계가 올 때에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깨달아야 됩니까, 저 ○? 하나님이 자기를? 초절이라, 초절. 초절 말고 그 위의 것이 뭐이라? 그 위의 것이 뭐이지? 책망, 그래.

책망이야, 책망.

자기에게 징계가 오면은 ‘아이구, 이거 주님의 책망이 왔다.’ 이걸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모든 징계되는 것을, 뭣이든지, 징계라 말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이고 징계가 사랑이 없이 할 때는 그건 뭐입니까? 징계를 사랑 없이 할 때에는 그거 뭐이라 하지요? 저주라고도 하고 벌이라 합니다, 벌.

벌이나 징계나 같소. 같은데 그 속에 사랑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건설적으로 할 때에는 징계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없이 미움을 가지고 건설이 아니고 파괴적으로 오는 것을 가리켜서 벌이라 한다 말이오. 벌과 징계가 같애요. 이해가 돼요? 벌과 징계가 같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똑똑히 알아야 돼. 모르고 믿으면 소용 없어.

모든 징계가 올 때에는 ‘이것은 주님의 책망이시다. 주님의 책망이시다.’ 알고, 또 ‘주님의 책망이다' 이렇게 깨닫고 난 다음에 그 위에 깨달을 거는 뭐입니까? 그 위에 깨달을 거는 뭐이요? 회개? 회개? 그러면 징계가 오면은, 징계가 오면은 모든 일이 방해되면은 ‘이놈, 네가 나를 그랬다. 뭐이 어떻다.’ 이 피조물끼리 시비하는 그거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그 주권은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조그만한 개별 개별 세포 세포까지 당신이 주권해서 섭리하시는데 그 닥친 것을 주님이 자기에게 하는 것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피조물이 그와같이 주권으로 하는 것처럼 그에게 책망을 돌리고 원수를 삼는 그것이 믿음이 없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모든 징계가 올 때에는, 자기가 무슨 방해가 올 때에는 ‘이게 징계라. 징계라.’ 지금 우리 한국에는 이거 뭐 수재가 와 가지고 굉장합니다. 테레비들 보십시오.

이럴 때는 테레비 볼 필요가 있어. 그래 가지고 많이 오는데 아주 뭐 수재에 대해서 이거 돈을 몇 억을 내놓은 사람도 있고 뭐 십억 낸 사람도 있대요. 십억 내놓은 사람도 있고 뭐 어떻게 하는 사람도 있고 자꾸 모두 이래 쌓고 옷도 내고 이래 쌓는데 그거 좋은 일입니다.

그것보다, 그것보다 모든 사람에게 ‘이거는 하나님의 진노다. 하나님의 징계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십억 주는 거보다도 낫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가치를 평가를 이래 해야 돼요.

‘이거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렇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런 것이니까, 쓸데 없는 지내친 비가 오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요, 또 쓸데 없는 너무 볕이 많은 것도 진노요, 이디오피아라는 그 나라에는 어제 아레 신문 보니까 아주 혹서가 돼서 칠백이 그만 죽어버렸어. 더위에 못 견뎌서 죽은 게 칠백 명이라.

거기는 볕이 많아서 사람이 죽는데 여기는 또 볕이 없어 또 사람이 죽는다 그거요.

그러면 그런 것을 ‘이거 배고프니까 밥 줘라 뭐 줘라’ 하는 그것보다도, 그거 십억을 내고 백억을 내는 것보다도 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진노다. 지내친 더위도 진노요, 지내친 가물음도 진노요, 지내친 물 많은 것도 진노요, 지나치게 햇빛이 없는 것도 진노다. 이거는 하나님의 징계다.’ 그게 더 가치 있소. ‘하나님의 징계다.’ 징계라면 ‘무엇 때문에 이래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고?’ 그것을 찾아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징계 주셨다’ 그것을 찾아 가지고 사람들에게 말해 주면은 그것이 뭐 모든 것 주고, 암만 안 줘도 삽니다. 그런 것보다 더 귀하다 그 말이오.

그것보다 더 귀한 거는 뭐입니까? 그것보다 더 귀한 거는 뭐이요? ‘너거 이 행실하면은 하나님의 진노 받는다. 하나님의 재앙 받는다.’ 그렇게 예고해 주는 것이 더 사랑이요 가치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또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거는 뭐입니까? 미리 단속해서 ‘아예 이런 일에는 네가 가담하지 말고 이런 행동 하지 말아라’ 미리 교훈해 가지고 그런 데에 탈선 행위를 하지 안하도록 그렇게 교훈하는 것이 그것이 더 큰 사랑이라.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너 이 일 하면은 천재 만난다. 너거 나라가 이짓 하면은 하나님의 재앙 받는다.’ 이 말을 한 것을 시시하게 여겼다가 재앙이 왔습니다. 재앙이 오면은 ‘밥 줘라 옷 줘라 뭐 건져줘라 뭐 어째 줘라’ 하는 그것보다 ‘참, 이라면 하나님의 진노 온다. 하나님의 재앙이 온다. 재앙이 온다고 그래 하지 말라고 하던 그게 여기 모든 수재민을 다 구원하는 그런 모든 것보다 그게 더 큰 말이요 더 감사한 일인데 그걸 감사하지 못했다.’ 요걸 깨닫지 안하면은 멸망할 짐승입니다. 또 멸망해. 얼마든지 멸망에 멸망으로 마지막에는 뭐 징계 몇 번 받고 나면 없어요. 그 사람이 있습니까, 남아 있습니까, 다 망해버리고 말지.

우리 나라에서도 이거, 자, 하나님이 좋아하셔서 풍년 주시지, 풍년은 사람 마음으로 되는 줄 압니까? 하나님이 풍년을 주셨는데 계속 풍년을 줬어. 이라니까 우리 주일학교 반사 가운데에 여기 와 있을 거라. 그 사람 지금 와 있어? ○○○조사님? 천막 치러 갔나? 안 갔으면 와 안 왔노? 왜 여기 안 왔어? 풍년 드는데 내가 말하기를 이 전 정권이 박 정권 때부터, 전 정권이 시작하고 나서 또 박 정권 시작 할 때도 계속 풍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증거다. 누구든지 정권자가 나오고 난 다음에 그 뒤에 풍년이 오거들랑은 하나님이 그저 그래도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하는 걸 너희들이 알아라. 또 흉년이 들면 ‘야, 이게 정치가 이거 잘못된 정치가 들어섰다. 이거 정치가 뭘 잘못하는가보다.’ 이것을 알아라.

이라니까, ‘그때는 뭐 뭣이 박 정권 때는 어째 가지고 흉년 풍년이 정확히 모두 다 표시가 됐지마는 지금은 무슨 법이라? 무슨 법을 개정을 해 놔서 그뭐 암만 흉년이 들어도 풍년이라고 말하고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

그래 내가 꽥 고함을 질렀어. 등신아, 신문 그까짓 걸 보고 아는 줄 아나? 풍년 들고 흉년 들었다 하는 것은 저절로 사람들 귀에 들어와 가지고 다 알게 된다. 전 정권 시작하고 난 다음에 흉년 든 일이 없다. 또 박 정권 때도 흉년 든 일이 없었다.

‘요새는 과학이’ 과학 가지고도 과학이 있는데도 소용 없어. 하나님은, 풍년 흉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으로 철통같이 해 놔도 흉년이 들 수가 있어. 과학이 소용 있는가? 독일 나라가 전세계를 전부 밀라고 삼십 년 동안 풍조를 통계를 내 가지고 ‘요때 뿌리면 우리는 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는다’ 하고 독와사를 뿌렸는데 꺼꾸로 와 가지고, 삼십 년 만에 처음 바람이 꺼꾸로 불어 가지고 저거만 바짝 망하고 말았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님이 뭐 둔하고 하나님은 기계인 줄 알아요.

자, 풍년 주지, 또 전쟁 없구로 안보해서 그것이 그렇츰 와서 먹어버릴라고 애를 쓰고 이북이 그렇게 사자같이 이래 쌓았지마는 전쟁 없었지, 또 뭐 신앙 자유 줬지. 신앙 자유 해도 그 신앙 자유가 뭐 그 이 정권 때보다도 자유가 더 있습니다. 지금 예수 믿는 데 누가 마음대로 믿을 수 있지 예수 믿는 데 방해하는 데가 어디 있어. 신앙 자유 줬지.

또 넷째로 하나 남았는데 하나 뭐이요, ○○○선생? 넷째로 하나 남았는데 뭐이야, 정치를 볼 때에는? 그래 경제. 배부르지.

이만해도, 풍년 주지, 안보해 전쟁 없지, 신앙에 자유 줘 구원 잘 이루지, 넷째로 배부르게 했지. 이만하면 됐지 뭣 때문에 야단을 지기느냐 그 말이요, 지기기를? 인제 직선제가 좋은지 간선제가 좋은지 그거는 요다음에 보면 알 것입니다.

제가 말하기를 뭐라 했어요? 직선제는 민도가 낮아야 돼요 높아야 돼요? 민도가 낮아야 돼요 높아야 돼요? 자기 혼자의 투표권 그것을 돈에 매수 당하지 안할 사람이라야 되고, 거짓말에 유혹받지 안할 사람이라야 되고, 자기의 육체의 생명과 그 투표권 한 점과 꼭 동등이기 때문에 ‘요거 잘못하면 모가지 달아난다.

죽는다.’ 요렇게 알아서 ‘다른 거는 팔아먹을지라도 이 대통령 이거 선정하는 투표권은 내가 팔지 않는다’ 하는 그럴 수 있는 그 민도가 높은 사람이라야 직선제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간선제를 내는 것은 민도가 낮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자꾸 이래 매수만 당하고 이라니까 그래도 자기 투표권 하나가 이 정권을 이리 하고 저리 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권 잘못되면 우리 나라 망하고 내 생명이 끊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이 투표 한 장은 내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에게 매수 안 당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인물들만 촐촐 추려서 지방에서 촐촐 가려 그래 추려서 좀 중등 이상 인물, 그 모두 다 이래 개명되어 있는 이런 조금 고차원의 이 위치에 있는 그런 사람들만 뽑아 가지고 이거 이 정권자를 선택해야 되겠다 하는 그게 간선제라 말이오. 알겠어요? 이러니까 인제 좋은지 나쁜지 요번에 보면은 돈에 매수를 당하면 벌써 직선제가 망하는 거라. 돈에 매수당하면 돈 많은 사람이 정권 잡지 잘난 사람이 정권 잡을 수 있소? 돈에 매수당하는 것도 그것도 가짜, 감언이설로 거짓말 잘 하니까 거게 매수당하는 것도 가짜, 아무데도 매수당하지 안하고 ‘보자, 누가 이 백성을 바로 정치할 만한 실력을 가진 자이며’ 첫째 실력 봐야 되고, 둘째로는 사욕을 가지고 하지 안하고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진정코 민족과 국가를 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둘째, 실력 보고, 그 중심이 사욕이냐 우리 민족욕이냐 국가욕이나 그것을 봐야 되고, 또 이 국가욕도 그것을 ‘우리 나라 잘 살게’ 그것도 사욕이라. 소련은 저거만 그래 하는데 그거 암만 해야 망해. 이북도 저거만 하는데. ‘우리만 잘살 게 아니라 세계가 잘살 게 하는 한국이 돼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가 잘살 게 할 수 있는 한국이 돼야 되지 세계야 어찌 됐든지 우리 나라만 잘 살자 하면은 그것도 망한다 그 말이오.

그런 넓은 견해에서 볼 때에 미국 같은 나라는 그 복 받을 수 있는 나라라.

‘우리 나라만 잘돼 안 된다. 세계가 잘살도록 해야 되지 그래 안 된다.’ 말로라도, 말이라도 전 정권 나서고 난 다음에 ‘우리 나라는’ 항상 발표하기를 ‘우리 나라는 세계 행복에 이바지하는 나라가 돼야 된다. 얼마든지 모든 세계에 유익을 끼쳐 주는 나라가 돼야 된다.’ 항상 말이라도 그 말 하는 것이 벌써 그면에 눈이 띄여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뭣 때문에 야단을 지기고 이래 가지고 이래 해. 그래 안 해도 뭐 할 수가 있는데. 그런데 아예 정권자 어떻다 할 때 볼 때에 ‘저 사람은 자기 정권에 야욕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나 내가 정권을 못 잡아도 이 민족에 행복을 위해서 해야 된다 이걸 가지고 나왔느냐?’ 그것만 보면 안다 말이오.

우리 나라는 이거 뭐 대학생이 제일이고 고등학생이 제일이고 저거가 제일이오.

뭐 제일이라? 인간이 오십에 지천명이라 말이 있어. 사람은 나이가 쉰 살은 먹어야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말이 있어. 저거가 뭘 알아? 우리 집에도 다 아는데, 우리 집의 자식 남의 자식 다 그 자식이 그 자식이지 뭐 별 자식이라? 우리 집 자식 내가 벌써 나이가 뭐 서른 살 마흔 살 돼도 아직까지 철때기가 없어. 철때기가 없어 벌로 끓는 국에 멋모르고 벌로 덤벼드는 택이라.

하나님한테 재앙을 받을 것인지 뭐인지 이것도 모르고 막 날뛰고 있는 거라.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모든 일이 형통치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형통인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같이 시절을 따라서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무릇” 뭐라 했어? 무릇? 무릇 뭐라 했어? 그것도 몰라? 무릇 뭐이라 했어?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하지 안했어,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하지 안했소. 이러니까 그뭐 형통치 않는 것이 그게 다 거석이라.

우리 진영의 목회자들도 아무리 제까짓 게 날뛰고 수단 방법을 부려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안 해 주면 안 돼. 이러니까 그런 것이 자꾸 징계라. 자꾸 이거 뭐 안 되고 교회가 안 되고 분쟁만 나 쌓고 하면 이게 징계라.

징계니까 ‘어라 이거 하나님이 나한테 징계하는 것이니’ 모든 자기의 형통이 아닌 불통을 하나님의 징계로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징계로 알아야 되겠고 징계는 또 뭘로 알아야 됩니까? 징계는 또 뭘로 알아야 돼? 책망으로 알아야 되고, 또 책망은 뭘로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 뭐 주권 가진 하나님이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징계하는 것이니까 그것만 고쳐버리면, 사랑하는 부모가 아들 애끼지마는 종아리 때리는 것은 그것만 고치면 그만 확 돼 버린다 말이오. 그거 고치기를 원하니까 고치면 얼마나 빨리 그걸 치료해 주고 축복해 주시겠소? 이러니까 모든 일에 마찰과 불통을, 내가 진리대로 할라 할 때에 방해되는 그것은 달리도 생각할 수 있어. 내가 진리대로 할라고 할 때에 방해하는 것은 더 진리를 힘있게 해 가지고 하라 하는 그거라. 더 진리를 힘있게 하면은 그게 통과돼 버려.

병아리가 속에서 나올라고 하니까 껍데기가 못 나오구로 야단하는 그거, 못 나오구로 하는 것은 병아리 죽으라는 말이 아니라. 쑥 나오면 죽어버리요. 못 나오구로 하다가 이게 또 힘을 얻어 가지고 양분을 다 먹고 나니까 막 애를 쓰면은 톡 튀어나와. 보면 껍데기에 세모잽이로 톡 구멍이 뚫혀져요, 속에서 밀어 내서. 톡 뚫어져.

그럴 때 속에서 막 삐악거리며 이놈이 애를 씁니다. 애를 쓸 때 ‘아이구 이거 고생스럽겠다. 이거 까 줘야 되겠다.’ 내가 까 줘 봤어. 까 주니까 그만 끄트머리 궁둥이에 아직까지 먹을 피가 다 들어가지 안하고 피가 묻었어. 그 나와야 못 살아요.

이래 놓으면 이놈이 이래 가지고 되게 이레 애써 놓으면 나중에 가서 그 껍데기가 둘로 요렇게 딱 갈라져. 딱 갈라져. 요래 가지고, 병아리 나올 때 보면 요래 가지고 딱 갈래져 요 둘이 딱 요래 포개지고 병아리는 그 사이에서 있어.

이게 다 나올 자력으로 튀어나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돼.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를 행할라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그 방해되는 걸 다 극복하고 통과할 수 있는 그거라야 그 의를 낮은 계단에서 하다가 높은 의 자리에 와 가지고 자유하고 살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만물이 다 이거 자연계시라.

이러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계라’ 징계인 것을 깨닫고, 징계가 뭐인데? 하나님이 ‘이놈 잘못했다’ 책망하는 것이라. 징계는 책망하는 것이라. 책망이면 나를 망치는 것이가? 사랑함으로 “무릇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한다” 사랑하심으로 한다 요거 깨달으면 그만 되는 거라.

그러니까 하, 사랑하심으로 하니까 마음에 기뻐 뭣 나오요? 뭣이 퉁 와서 매까리가 하나 왔는데 원수 손에 들린 것과 아버지와 어머니 손에 들린 것이 달라요 같애요? 채찍이 왔는데 어머니와 아버지 손에 들린 것과 원수의 손에 들린 거와 같애요 달라요? 원수의 손에 들린 거는 나를 망칠라고 하는 것이고 해할라고 하는 것이지마는 아버지 어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나를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다 그거요. 알겠어요? 이러니 요걸 깨달아야 돼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낙망하지 말고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치라.

그라면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뭐 뭐라더라? ‘감정’ 뭐이지?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 굳게 서서’ 어? ‘믿음으로’ 뭐라 했노? 그라면 그만 되는 거라. 그 찬송 한번 할까요? 몇 장이라? 72장 자, 한번 하지. 좋아? 아따 조매만 하자, 많다 너무. 3절까지만 한번 하고 말지요.

자, 시작.

믿음으로 사는 자는 모든 일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되어지니 염려 말고 믿고 살자 믿으라 믿으라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백절불굴 믿고 살면 승리다 승리다 믿는 자는 항상 승리

눈에 뵈는 모든 사실 어떠하게 낙심돼도 믿음으로 극복하면 결국에는 성공한다 믿으라 믿으라 감정 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백절불굴 믿고 살면 승리다 승리다 믿는 자는 항상 승리 <여기서 종치심>

아주 이 찬송 누가 지었지? 그분도 순교했어요.

오늘은 모두 천막치러 갔습니다. 그 위해서 또 기도해요.

○○○씨 안 보이네요, ○○○권사님? ○○○권사님? 거게 가지는 안했지? 너무 또 용쓰다가서 또 드러누웠구만. 그렇게 너무 용을 쓰면 병이 나, 지나치게 하면.

천막치러 간다고 가지는 못하니까 앉아 자꾸 그래 쌓으면 안 돼. 너무 지나치게 하면, 의를 지나치게 하면 어때요? 기한 전에 죽어. 지나치면 다 죄가 돼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천막 치는 데 거기 안 가야 됩니다. 뭐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거기 가 가지고 견디겠소? 제 집회 갈, 은혜받을 그 준비나 해야 되지.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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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계-책망-사랑/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7. 7. 28.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628 징계와 회개/ 시편 1장 1절-3절/ 1983. 6. 8.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627 징계받기 전에 회개하라/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1. 8. 26.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6 징계를 보는 눈동자/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 1986. 7. 30.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625 징계 받을 때/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3. 9. 7.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4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7절/ 1980. 6. 25.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623 집회참석/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1989. 4.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22 집회준비-옥토밭을 준비하라/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8. 4.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621 집회준비- 예수님의 것/ 베드로전서 5장 6절-11절/ 1983. 8. 1.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620 집회준비/ 이사야 49장 8절/ 1984. 6. 1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9 집회준비/ 마태복음 13장 1절-10절/ 1985. 4. 1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8 집회준비/ 마태복음 25장 10절-12절/ 1986. 4. 1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7 집회설교 복습/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1985. 9.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616 집회를 위한 기도/ 시편 1장 1절-3절/ 1983. 8.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615 집회 준비 4가지/ 누가복음 14장 28절-30절/ 1988. 7. 2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4 집짓는 비유 /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1985. 12.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613 집사투표/ 디모데전서 3장 1절-7절/ 1985. 12. 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612 집사자격13가지-현재의 가치/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1988. 12. 28. 수저녁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