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1980. 5. 9. 금야

 

본문 : 고린도전서 4장 1절-5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람이라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살면  그것으로서 끝난다고 하면 그렇게 큰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 사람이  금생뿐이라고 하면 그것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이랬건 저랬건  죽음으로 끝이 나 버리고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별 문제는 아니지마는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끝이 없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금생에  살다가 죽는 것으로서 끝나지 아니하고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또 어떤 생활을 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하는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되어서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판단하는 사람들이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하는 그것으로서 끝이 난다고 해도 참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간단합니다.

사람은 그런 것 아닙니다. 죽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잘했다 못했다 판단을 받으면 인정을 받으면 나쁘다 인정을 받든지 좋다  인정받든지 인정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고 하면 또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임시 임시를 보고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왜 영원이 있기  때문에 죽어도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되살아 납니다. 사람의 행위를 하는 그  행위가 이 세상에서 잘못됐으면 잘못된 값을 받고 바로 되면 또 바른 값을 받고  또 혹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일도 있고 부정하게 유익을 보는 일도 인생 살이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그것으로 끝난다면 참 문제는 아니지마는 사람의  행위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이의 행함에 대해서도 상당한 값이 죽기 전에 있는  일이 많고 또 죽기 전에 자기가 받지 안하면 자기 자손이 대를 이어서 그 값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행위는 영원히 영원히 그것의 값을 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잘못된 것을  한번 잘못된 값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값을 십년이고  백년이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억만년이고 영원히 그 값을 받습니다. 바로된 일도  그러합니다. 바로된 일에 그 일에 칭찬이나 영광이나 대우나 있는 것이 한번  있고 마는 기 아니고 열번 백번 있고 마는 기 아니고 영원히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하나님 외에 모든 피조물 중에는 가장 큰 희망을 가진 복된  존재라 할 수 있고 또 모든 존재 가운데에 가장 가련한 것이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보다도 천하고 곤충보다도 천하고 짐승보다도 천하고 무생물 보다도  천한 모든 만물 가운데에 가장 천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요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존귀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참 인생을 생각하면 잘못 생각하면 참 소름이 끼치고 지긋지긋합니다. 왜 인생의  행위라는 것이 천년으로 만년으로 억만년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거기 대한  수치도 천년 만년 억만년 영원토록 거기 대한 영광도 거기 대한 댓가도  영원합니다. 영원한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오늘보다  내일이 못하고 내일보다 모래가 더 못하고 금년보다 내년이 더 못하고 이렇게  못하는 것이 무한히 영원히 점점 못해져 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원한 사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영생이라고 하시는 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래가 낫는 나은  그것이 점점 앞날이 좋아지고 좋아지고 영광스러워지는 이것이 영원히 더하고  더하고 더해져가는 이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 같이 자기의 영원을 다 절단낸 것이 인생인데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속하셔 가지고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잘못된 모든 댓가를  유한한 우리 사람들이 택한 사람들의 잘못된 것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지마는  유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잘못도 형벌도 유한한 것인데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받으셔서 우리를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지공법에서는 해결을 지워서  공심판에는 해결을 지었습니다.

해결을 지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늘나라로 다  옮겨주 겨서 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늘나라는 다 갑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그 댓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마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댓가를 받습니다. 지옥에서는 잘못된 댓가를 받고 하늘나라에서는 잘못된  것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 댓가 있는 지옥에서는 하늘나라로  옮기워졌지마는 자기가 세상에서 어느만큼 옳은 행위를 했든지 그대로 영원한  댓가를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5절 하반절에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칭찬이 있으리라 그런고로 우리  사람들이 사람을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우리들이지마는 우리의 한 생활 한 생활이 그것이 내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있어 버린다고 그것 끝나는 것 아닙니다. 영원히 그것이 벌 받는  것은 제거됐지마는 우리가 능히 예수님의 그 대속을 기념하면 칭찬과 상을 받을  터인데 그 대속을 다 저 버렸기 때문에 상을 받지 뭇한 칭찬 받지 못한 그것이  그 나라에서는 수치입니다. 그것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우리는 말이나 행실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그것을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저 아무나따나 해놓고 다른 사람 잊어 버리고 자기 잊어 버리고 세월 지나가면  다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자신도 잊어  버리고 다른 사람도 잊어 버리고 자기 잊어버리고 세워 지나가면 다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자신도 잊어 버리고 다른  사람도 잊어 버리지마는 그 나라에 가서는 잊어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망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거울 속으로 보는 거와 같이 희미하지마는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대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그날에는 다 나타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어떻게 해서라도 끝이 없다는 것 다른 만물들은 대개는 끝이  있습니다. 타 버리면 그만이요 죽어 버리면 그만이요 썩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끝이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또 자기의 행위를 영원히 자기가  받아야 됩니다. 영원히 받고 영원히 먹어야 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밤에 봉독한 이 말씀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그리고)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대로 은혜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 대로 살 때에 다른 방편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사는 그 방편은 충성할 것 뿐이니라  했습니다.

충성할 것뿐이니라는 말씀은 힘 있는 대로 남김 없고 남기지 말고 자기 전심  전력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뿐이니라 이 방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완전하신 분 앞에서는 그것이  참 때묻은 옷과 같이 허무합니다. 그러기에 하니님께서 우리의 생활에 대해서  네가 어느 정도 옳다 어느 정도 깨끗하다 어느정도 견고하다 그것을 보지  아니하시고 그저 우리에게 힘 있는 대로 남김 없이 다하는 다했느냐 다해서  살았느냐  십분지 구를 드려 살았느냐 십분지 오를 드려 살았느냐 실력이 많든지  적든지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분량의 것인데 자기가 받아 가진 데로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자기 가진 거 다 했느냐 몇분지 얼마를 했느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고 그 다음에  말에는 지극히 작은데 불의한 자는 큰 데도 불의하다. 인간의 의라는 의는  인간의 의는 충성을 가리켜서 인간의 의로 정했습니다. 그것의 행위가 어느 정도  온전타 불의타 하는 그것이 아니고 다만 자기에게 있는 그 힘을 마음이나 힘이나  뜻이나 목숨이나 그것을 어느 정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라고 애를  써서 살았느냐. 이것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한 일이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에 비해서 못난 사람이 일년 내내  해봤자 잘난 사람이 하루 한 것만치도 그 성과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지 않고 잘난 사람도 제가 잘난 기 아니라 하나님께서 잘나게 했고  못난 사람도 하나님이 못나게 했기 때문에 잘나고 못난 것은 하나님이 많이 주고  적기 준 거라 금 닷냥 주고 두냥 두고 한냥 주고 한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이 주셔서 많이 가졌지 제가 잘나서 많이 가진 것 아니니까 많이  가졌든지 작게 가졌든지 자기 가진 것을 어느 정도 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려고 노력을 했느냐 닷냥쭝 맡은 종이 자기가 넉냥쭝만 만들고 말았으면  쫓기납니다.

닷냥중 맡은 종도 닷냥중을 남겼을 때에 주인이 칭찬하고 영접했습니다. 두냥중  맡은 사람이야 아무리 해봤자 두냥중 밖에는 못 남겼으니까 닷냥중 (남긴)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이 반만 남겨도 두냥중반 남겼을 터인데 그 사람은 넉냥중을  남겨도 불의한 종이라고 쫓겨나지마는 두냥중 남긴 종은 착하고 충성되다고  칭찬하여 영접하는 것으로 성경에 표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세상으로 끝나는 기 아니고 영원히 있기 때문에  자기의 열매는 자기가 먹습니다. 자기 행위는 자기가 먹습니다. 영원히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살 것은 그저 잘났든지 못났든지 힘이 많든지 적든지  있는 대로 다할 것 있는 대로 다해서 살 것 힘 다해서 마음 다해서 뜻 다해서  성의 다해서 다해서 살 것 이것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사람 보기에는 아주 못난 것 같은 그런 사람인데 하늘나라에 가서 칭찬  받을 사람도 있고 아주 위대한 일을 했는데 하늘나라 가서 보니까 게을한  종이라고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갚음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실력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의 어느 정도  몇분지 일이나 십분지 십이나 십분지 구나 혹은 백분지 구십구나 백분지 일이나  자기 있는 것에 그것에 몇분지 얼마를 바쳐서 다해서 살았으며 그것을 다해서  살았느냐 하는 이것 가지고서 평가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행동한 그 결과 나타난 그 보이는 결과  그걸 가지고서 판단을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 것 다 했느냐 하는 그것 가지고 판단합니다. 이러니까 참 잘난  사람이 불행스럽고 못난 사람이 행복스럽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실력 있는 사람은 놀면 해도 해놓은 것이 무능한 자의 있는 힘 다해서 해  놓은 것보다 나타난 열매가 더 많으니까 저는 큰 줄 알았는데 이러니까 실력  없는 그 사람과 저와 보고서 결과 보고 저는 안심하고 마음에 기쁘고 게을하고  만족하고 교만할 터이요. 아주 무능한 사람은 죽자껀 해도 다른 사람 얼마한  것만치도 실력 있는 사람 얼마한 것만치도 못했으니까 항상 못했다 못났다  허무하다 이러니까 죽자껀 하고도 교만하지를 못할 것이고 죽자껀 하고도  부족감을 느낄 터이니까 그 사람이 교만해서 게을하지를 못할 것이고 해놓고도  부족감을 느끼니까 요것이 천국에 딱 맞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가난한 자에게 믿음으로  부요케 해 가지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믿음을 더해 줬다는 그 말씀은 자기가 실력이 모지랄수록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에 몇분지 얼마를 네가 드려서 살았느냐 하는 그 계산법에서 볼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는 그 인정이 더 크게 되는 것을 기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절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판단이라 말은 이렇다 저렇다  결정지우는 것을 말합니다. 너거가 결정지우는 것 너거가 이거는 됐다 이거는  잘했다 이거는 위대하다 모든 사람들이 잘못됐다 잘됐다 잘못됐다 하는 것은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그것을 참고로 삼아서 자기가 그 면에 대해서 더 살피  보는데나 쓰지마는

사람들이 됐다 인정하는 그것은 사도 바울은 아주 매우 작은 것으로 여겼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야 참 잘했다 하는 그것도 마음에 안심이 안되고 아주  그것도 사소한 일이라고 또 자기가 자기도 판단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 마음에 이기야말로 참 잘됐다 바로 됐다 그것도 도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에 가책될 것이 하나도 없이 잘못된 것 없이 그렇게  해도 그것도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무엇이든지 이만하면 이것은 됐다 이기야 됐다 네가 무엇이든지 됐다고 생각지  말아라 모든 사람이 그게야 잘됐다 그래도 그거 인정하지 말아라 사람들 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다고 그것으로 안심하지 말아라 네 마음에 가책없을만치  잘했다고 그것으로도 인정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다 그야 잘됐다고  인정해도 그것 가지고 네가 안심하지 말아라 네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을만치  잘됐다고 그것도 인정하지 말아라

왜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심판자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인간이  모르는 비밀을 다 드러내고 인간이 모르는 흠을 다 드러내고 인간이 모르는  결점을 다 드러내고 인간이 모르는 굽은 것을 다 드러내고 더러운 걸 다  드러내고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우리가 바울같은 사람도 자기  양심에 가책될 것이 하나도 없이 다 해결 지웠지마는 자기 양심으로 보는 몇십배  몇백배 되는 몇천배라고 할 수 없는 그 하나님께서 모든 감추어 있는 것 제가  자기가 숨겨서 인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아니한 흠점 또 다른 사람도 자기도  어두워서 몰라서 드러나지 안한 그 모든 흠점 이것을 주님이 오시면 다  드러내십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도 다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다 드러내고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다 드러내고 자기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다  드러내고 흠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 다 드러내는데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드려내는데 이러기에 자기 양심이 자기를 판단할 때에 아무 가책할  것이 없지마는 자기 눈은 자기 양심은 당달 봉사눈만침 그만침 어름어름하고  하나님의 눈을 눈 밝은 사람같이 비유컨덴  이러기에 자기 양심이 암만 살피고 살펴서 한다 할진대도 자기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이 보시는 그 흠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이고 고치지 못하고  지금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과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우리는 마음이야 뭐 이래 마음을 먹었든지 저래  마음은 먹었든지 마음 먹은 그게야 자기도 마음 먹어 놓고 조그매만 지나면 그만  그게 다 자기 마음에도 없어져 버리고 사르라져 버리고 또 자기 마음 먹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야 알리도 없는 것이고 말을 했다 할지라도 시간만  지나가서 안했다 하면 그만인데 행동한 것은 행동을 해놨기 때문에 흔적이  있으니까 그거는 잡아떼지 못하고 또 그거는 그렇게 속히 없어지지 안하지마는  말해놓은 그게야 금방 말했지마는 글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 그런 것은 다 즉시 보이지 안하고 없어지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는 남은 흔적이 없으니까 그것을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서에 보면은 사람들의 말한 것 한 마디도 빠짐없이 다  심판 앞에서 조사가 된다 했습니다. 말한 것 그것이 다 조사가 된다고 말씀했고  여기에는 보니까 마음에 뜻을 나타내시리라 내시리니 그 마음 먹은 것 자기가  마음 먹은 것 이것도 자기는 오면 가면서 퍼득 그런 마음을 가질려고도 안했는데  퍼득 지나가면서 썩득 들어온 마음이라도 마음에 한번 움직인 것 이것도 자기는  잊어 버렸든지 말았든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주님께서 낱낱이 드러내서 요 값을  꼭꼭 치른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말은 마음보다 더하지 않습니까 행동은 더하지 않습니까. 이러기에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이 있으리라 하늘나라는  그게 없으니까 그건 예수님이 다 대속 했으니까 칭찬이 있으리라 칭찬이  있으리라 옆에 사람 칭찬 받는데 자기 칭찬 안 받으면 그게 수치지요 하늘나라는  책망받는 벌 받는 수치가 아니고 다른 사람은 상 받는데 저는 상 못 받으니까  수치지 다른 사람은 칭찬 받는데 저는 칭찬 못 받으니까 수치지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이 세상 살이는 나그네 생활인데  이거는 간단하게 지나가지마는 이 간단하게 지나간다고 끝나는기 아니고 우리의  간단한 이 생활은 이것을 영원히 씹고 씹고 영원히 새기고 새기고 영원히 이것을  드러내고 드러내고 이것이 영원히 들추어납니다.

우리의 마음 한번 먹은 것 생각 한번 한 것 말 한번 한 것 우리의 일체  언행심사에 이것이 이것으로 끝나는 기 아니라 이 시간 잘했든지 못했든지 그만  끝나는 그게 아니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영원히 그게 드러납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어떤 부분이라고 이만하면 됐다 하고서 안심할 수 없고 죽는 날까지 있는  힘 다해서 힘 남구지 말고 있는 힘 다해서 잘못된 것 찾아서 고치고 바로 하지  못한 것 바로 하고 그저 죽는 날까지 힘 쓰는 것 외에는 기독자들이 할 일이  없다 천하 인간이 다 의인이라 해도 안심하지 말아라 그것 가지고 안된다 자기  마음에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다고 해도 그것을 의지해서 안심하지 마라 죽는  날까지 찾고 죽는 날까지 힘다해서 잘못을 찾고 힘 다해서 잘못을 고치고 힘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 보도록 노력하고 전심 전력 다 기울이는 이 한 방법  밖에는 없다

인생은 영원하고 언행심사 행위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영원히 씹어 먹고 있다  영원히 그것이 울구고 울구고 그것이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거듭거듭 그것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니 참 인생이 이리도 저리도 못하는 큰 밧 줄에 매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자에게 매 있씁니다. 만물은 일시 그것으로 끝나는 시간이 있소  인생은 끝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잘됐다면 참 존영하고 고귀한 것이 되고 잘못됐다면 그는 참  불쌍하고 가련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불쌍하고 가련한 그 형벌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에서 면해 나왔지마는 하늘나라에서 그 나라는 칭찬 받는 나라요  상을 받는 나라인데 그 나라에 가 가지고서 칭찬 없고 상 없으면 그것이 그  나라의 수치입니다. 그 나라의 가난이요 그 나라의 수치요. 그 나라의  고통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저 단순히 생각지 맙시다. 아무나따나 뭐  이 맘 퍼득 먹어도 그만 나 안 보이고 나 잊어 버리고 다른 이 잊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지 맙시다. 한번 마음을 먹었다면 그 마음이 영원히  갑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앨 수가 없습니다. 바로 한 것도 없앨 수  없고 잘못한 것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언행심사는 일시로 끝나는 기 아니고 죽음으로 끝나는기 아니고  부활로 끝나는 기 아니고 영원히 영원히 그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해 아래에서  벌거벗은 기 나타 벌거벗은 거와 같이 환하게 나타난다 했습니다. 어두움에  감추었던 것을 그분이 다 드러내고 마음에 뜻을 그분이 다 나타내서  심판하십니다. 심판하고 나서 그만 그 끝나 버리면 그만이요 사형을 받든지 뭐  벌을 받든지 끝나면 그만인데 이렇다 저렇다 판결 지워서 이거는 이렇다 저렇다  자타를 환하게 알도록 그걸 드러내놓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잘한 것의 칭찬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잘한 것을 하지  못해서 잘못된 그것의 벌은 없지마는 잘못된 것의 칭찬 없는 그 부끄러움은  영원히 계속 됩니다.

그러기에 어린 양의 피에 자기 두루마기를 씻는 자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이런  뗄래야 뗄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문제가 우리에게 있었는데  예수님이 대속해서 사망의 벌의 문제는 해결을 지웠지마는 우리는 칭찬과 상만  있는 그 나라에 우리가 가도록 됐는데 다른 사람은 그 나라에 칭찬 받고 상을  받는데 나는 칭찬 받고 상 받을 것이 없으니까 그것이 수치요 그게 벌입니다.

하늘나라 벌은 칭찬 없는 것이 하늘나라의 벌이요 하늘나라의 벌은 상 없는 것이  하늘나라의 벌입니다. 벌받는 사람들만 가서 모여 있는데 작은 벌 받는데 큰 벌  받는 그것도 더 수치가 되겠지마는 벌 받는 것이 없는 나라에 가 가지고서 상과  칭찬만 받는 나라에서 상과 칭찬이 없으면 그 벌이 더 뜨겁고 더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을  가져야 되지 가져놓고 저 잊어 버렸다고 하나님과 만물 잊어 버리니까 그때 다  심판해서 다 들추어내서 이제 심판을 통과하고 나면 모두가 다 봅니다. 모두가  다 압니다. 심판까지는 어두움에 감추어 있는 것도 있고 자기가 감추어 놓은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있고 자기가 모르는 것도 있지마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자기가 모르는 것도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도  전부이 다 들쳐내서 또 마음에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한 그것도 다 그대로  들추어 나 가지고 그것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이 미래를 가진 우리들입니다.

참 고질병이라 하더니마는 참 이런 고통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고 벗을래야 벗을 수 없고 죽어도 안되고 도망쳐도 안되고 인생이라는 것은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없어질 수 있는 그 길이  제일 행복이겠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라면  없어질 수 있는 그 길이 있다면 그만 없어져 버리면 없어져 버리면 좋겠는데  없어지지 못합니다.

어떤 친구가 저한테 얘기하면서 나는 얼마동안 지내다가 자가용 비행기 가지고  태평양 위에 가다가 그대로 바닷 속에 들어가서 끝마치고 말란다 그 사람 믿는  사람이 아니요 야 그래서 끝날 진대야 너도 그래 나도 그라겠다 뭐 때문에  칙칙한 뒤를 남겨둘 필요가 뭐 있겠나 인생이 끝이 날 수 있다면 만물 가운데  행복스럽겠는데 끝이 못난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 중에 가장 불행스러운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게는 끝이 없다  언행심사에 잘못된 그것이 한번 벌 맞고 욕 얻어 먹고 끝나는 기 아니다 영원히  신물이 나게 천년 만년 억만년 그것이 계속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네가 아무리  자살을 해도 그걸로 해결 안된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다 그렇게 가련한 것이 인생인 동시에 인생이 예수 안에서 옳게 살면 옳게  산 그것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남아 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영생의 행위라고 영생의 마음이라고 영생의 뜻이라고 영생의  생각이라고 영생의 행위라고 영생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인생의 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고 없앨래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만일  없어지는 길이 있고 예수 믿어 상 받는 길이 있다면 저는 없어지는 그 길을  택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너무 어렵고 너무 징그럽다 그 말이요. 어짤 수가  없어 죽고 또 죽고 또 죽어도 면하질 못해. 인간은 끝이 없습니다.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불택자의 행위는 그 행위를 영원히 영원히 그것이 나비고 나비고  씹히고 씹히고 되풀이 하고 되풀이하고 하기를 영원히 합니다. 하나님 복수 참  복수도 무한입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 있는 것을 어느 정도 해서 했는가 의라야  가는데 의라야 가는데 성경에는 다해야 되는데 두냥중 받은 자는 꼭 두냥중  남겼어야 되는데 한냥중 반 가지고 안되는데 닷냥중 받았으면 꼭 닷냥중을  남겨야지 넉냥중 반도 안됩니다. 넉냥중도 안되요. 이것이 다 충성이라  말입니다. 충성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는 합격이 안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있는 힘 다 기울이서 마음을 단속한 때가 얼마나 있었는지 있는  것 다 기울려서 마음을 조절하고 단속한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있는 힘 다  기울여서 말을 단속하고 조정한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있는 힘 다 기울려서  행위를 조정하고 다짐하고 단속한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이것만 이 영원한  나라에 우리에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하늘나라 하나님의 칭찬이 되지 그 외에  딴 것은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말 한마디도 결 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생각 한번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고 한번  드러납니까 아니요 한번 드러나기 시작해 가지고 그것이 영원히 드러나  있습니다. 영원히 드러나 있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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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충성되고 참된 증인/ 요한계시록 1장 4절-5절/ 1989. 4. 26.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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