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1984. 10. 10. 수새

 

본문: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하는 말은 사건으로 말하면 평소 평상시에 하는 그것이  과도기 비상시 절정 그럴 때에도 그대로 한다 그 말입니다. 평상시에 그 사람이  방종한 사람이면 그 사람은 아주 비상시 과도기 절정의 때에도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무슨 권리가 있는 줄 알고 이래 살지마는 자기 행동한  그것으로써 자기는 자꾸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이야 하고 버리면 그만이지' 하지마는 말을 말(馬)로 말하면 고삐와  같다고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자기가 본의 아닌 말을. 본의 아닌 선한 말을  했으면, 자기는 뉘를 속이기 위해서 뭐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본의 아닌 선한  말을 했으면 그 선한 말이 자기가 선한 사람으로 되어져 가는 데에 그것이 끄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본의 아닌 악한 말을 했으니까 '이럴 때는 내가  방편적으로 쓰지마는 이것은 몹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들 안하겠다. 내가 지금은 방편적으로 이 못쓸 말을 한다.' 이렇게 해도,  자기는 고의가 아닌 방편적으로 그렇게 자기가 알고 했다 할지라도 못쓸 말을  했으면 벌써 그만치 자기는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몹쓸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그대로의 자기는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모로 한 그것이 차차 실상이 되어져 가고 또 표현할 수 없는  미약한 자기 마음의 행한 것이 차차 그 실상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크나 작으나 자기의 언행 심사의 움직여 진 거는.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성품이나 행동이나 그런 거 움직여졌으면 움직여진  대로는 반드시 자기라는 사람이 그대로 돼 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라서  자기가 마음에나 외부의 행동에나 그것을 하고 버릴 것인 줄 알고 못쓸 것인 줄  알면서도 취미적으로나 또 자기는 무슨 자기의 주관의 무슨 방편적으로나 이렇게  자기의 언행 심사를 벌로 그렇게 사용하기 쉬운데 그것은 사용했으면 떼 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벌써 자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그만치 자기는  노력해야 그것이 뽑혀 나가게 되고 우리는 의로운 것은 하나 의롭다고 모든 것이  의로워지지를 아니 하나 더러운 것은 하나 더러우면 모든 것이 더러워집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마태복음 23장에도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해 놨고 또 학개서 2장에도 말씀을 해 놨습니다.

 '지극히 작은 데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거기 지극히라는  말을 안 썼지마는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고  이렇게 그 속의 뜻은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문리상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일에 조심하는 자는 지극히 큰일에도  조심할 수 있다, 또 사소한 평상시에 조심하는 자는 과도기 비상시도 그 사람은  조심 할 수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충성이라 말은 이는 자기를 피로 구속하신 주님에게 대해서 하는  것을 가리켜서 충성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작은 일에  믿음을 지키면 지극히 큰 믿음도 지킬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작은 믿음을 지킨다 말은 평소, 또 사소한 일, 평범한 일 그것을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려고 애를 쓰면, 그것은 뭐 자기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려고 하는  그 마음 가지기가 방종하기 때문에 고만 어렵고, 어려운 것은 무슨 대항이  있어서 어려운 게 아니고 제가 방종하기 때문에, 사소하게 여기기 때문에  잊어버리기 쉽다 말이지, 잊어버리기가 쉽다 말이지 힘들어서 못 한다 말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지극히 큰 믿음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소한 일에, 평소의 일에 주님에게 피동되어 하려고 '보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되고 또 주님이 동하는 대로  내가 따라서 동하고 정하는 대로 따라서 내가 정하여 주님은 능동이 되시고 나는  전혀 내게는 능동이 없는 언제든지 주님의 피동으로만 살겠다.'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고 믿음이 지극히 작은 믿음을 만들어 가지고 마지막에는 온 천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뜻인 줄 확실히 알고도 그때는 두려워서.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 아까워서 하나님의 뜻인 줄 분명히 알고도 순종치 못하는 그런  지극히 큰 믿음도 그 사람은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을 만드는 것도, 믿음을 만든다 말은 순종을 만든다  말인데, 피동을 만든다 말인데, 믿음을 만드는 것도 지극히 작은 거기에서  만들어야 만들어지지. 지극히 큰 것만 욕심내고 작은 거는 무시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허영의 사람이요 허욕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그런  자에게 이용을 당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면. 하나님을 우리가 대해서 기도하든지  상대할 때에는 하나님은 크시기도 지극히 크셔서 제일 크신 분이시지마는 또  하나님은 지극히 사소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지극히 뭐 사소한 일,  그렇츰 사소한 일은, 모든 사람은 그까짓 거 다 예사로 여기고 버리지마는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어디까지 작은 것이라도 당신은 어디까지 큰 것과 꼭 같이  취급하십니다. 그런 분은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거기에서 믿음을 만들라고 해야 지극히 큰 믿음이  만들어지지 그렇지 안하면 딴 데 만들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기 때문에  결과를 중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동기를 중하게 여기십니다. 세상법은 모든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동기야 어떻게 됐든지 그 결과 된 걸 보고서  이렇게 판정하는 것은 세상 법이요. 하나님께서는 나타난 그 결과보다도 처음에  그 동기가 어찌 됐느냐 하는 것을 보십니다. 동기가 나빴는데도 하나님이 강권을  행해 가지고서 환경을 이래 만들어 가지고서 의롭게 되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기 그것이 죄입니다. 자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게 없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없는 자로 취급하십니다. 그런고로, 결과만 보고서 살 것이 아니고  우리는 동기도 봐야 되고, 동기만 보고 살 것이 아니고 결과도 보고 이렇게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만드는 것도 지극히 작은 일, 평소 평상시에, 평상시에  믿음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소한 일에 믿음을 만들어야 됩니다. 아무 거침이  없는 자기 혼자로서의 믿음을 만들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믿음을  만들어야 이제 대의 믿음을 만들 수 있지 대내 믿음을 만들지 못 하는 사람은  대외 믿음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자기 사소한 일에 믿음을 써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 믿음을 써먹어야 되지  사소한 일, 거기에 믿음을 써먹지 안하면 '뭐 이까짓 거야, 이거야 뭐  하나님에게 피동되거나 말거나 그런 거 찾을 게 뭐 있는가, 이 지저분한 이런  일에 와서?' 그렇게 지극히 작은 데에 믿음을 쓰지 안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과  모든 소유를 다 바쳐야 믿음을 자기가 쓸 수 있는 그런 때에 믿음을 쓰지  못합니다. 평상시 사소한 때에 믿음을 써먹은 사람은 지극히 큰 어떤  절정에서라도 믿음을 쓸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그러합니다. 평소 사소한 일  거기에서 '자, 내가 이렇게 말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이렇게 하면 주님이  섭섭해 하시겠느냐? 어떻게, 내가 이 말을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섭섭하시겠느냐? 이 행동을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섭섭하시겠느냐?'  자기가 평상시의, 평소의 사소한 거기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을 주님이  대접 받지 평소에 그런 건 사소히 여기면서, 내나 평소의 사소한 그 일이나  하나님 앞에는 크고 작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성경에는 큰 일 작은 일을 말한 것은 우리에게 대해서  우리로서는 크고 작은 일이 있지 하나님에게는 크고 작은 일이 없습니다.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당신은 꼭 같이 보시고 꼭 같이 힘들여 하시고 또 꼭 같이  다 할 수 있습니다. 큰일도 할 수 있고 작은 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작은 일에서는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을 예사롭게 하면서 큰 일 될  때에는 그때는 뭘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외식. 그거는 외식이  되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외식자와 대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에서, 또 하나님을  위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에서 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사람이지,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나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는 그런 것은 하나님이  뚜렷이 나타나서 눈이 환하게 딱 대면하면은 뭐 하나님을 위하는 척 하고서  하나님 없는데 가 가지고는 하나님 얼마든지 욕을 하고 훼방하는 자와 같다 그  말이오.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은 환하게 다  나타납니다. 자기가 털끝만치도 나타나지 안할 수가 없고 다 나타나고, 또  주님은 더군다나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에서 위합시다. 평상시에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겠고 또 사소한 일 평소의 그 일에서 주님을 위하는  일이 됐어야 되는데, 자기는, 지극히 작은 데의 그때의 그 사람이 지극히 큰  데의 그 사람이요, 지극히 작은 데에 무심하는 사람은 지극히 큰 데도 저는 '아,  큰 데는 내가 아주 정성을 다 했다.' 아니오. 저는, 지극히 작은 데에서 무심한  사람은 지극히 큰 데서 성심을 가질 수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하는 것도 그러하고,  또 사람 구원도 그러합니다. 사람 구원도 굵닥한 큰일에서 사람 구원 하는 일  하고 사소한 일에 '이것이 사람에게 구원이 되나 안 되나' 이것을 생각하면서,  사소한 거기에서 사람의 구원이 되나 안 되나 따져서 사람의 구원이 되도록,  다른 사람의 구원이 되도록 이렇게 하려고 하는 그 사람은. 지극히 큰 구원,  사람들에게 지극히 큰 구원, 무슨 몇 천 몇 만 명의 구원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는 그런 것이 지극히 작은 구원의, 남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하는 그 사람이 그 때에 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그분과 하나의 단합이 됐기 때문에 그분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서만 일하지, 지난번에 ○○○ 목사님이  목사 시취 설교를 할 때에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아주 하는  행위가 참 에베소 교회는 구비했습니다. 뭐 하나만 해도, 그 하나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 믿음 좋다' 그 교회에서 그 사람이 그 아홉 가지 가운데에  하나만 해도 믿음 좋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책망을 했습니다.

네게서 교회를 없애 버리겠다, 촛대를 옮기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게 뭐이냐? 보면 단지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지 안한 그것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않는 고 마음 쓰는, 마음  쓰는 거기에 다 있고 자기의 정신은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지 안한  일은 암만 해야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일곱 교회 가운데에 첫째 위에 둔 것은  뭐 시대적으로가 그런 게 아니고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에베소  교회에 첫째 위를 정해 준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교회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하면서 '내가 하면 되고 내가 안 하면  안 된다. 이거는 내가 했다.' 제가 해야 될 줄 알고, 제가 해야 일이 되는 줄  알고 하는 자는 암만 해 봤자 주님에게 적이요 옛사람 노릇이요 복음의 원수의  노릇이지 하나님의 일은 아닙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내가 주님의  하시는 일에 내가 방해를 안 해야지. 내가 주님의 하시는 일에 내가 방해하지  안하고 당신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안해야지. 평생 당신의 하시는 일에  방해하지 아니하고,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나를 붙들고서 일을 하시려고 하는데  내가 주님의 하시는 일을, 일은 주님이 하시는데 내가 방해하지 안하고 당신이  들면 들리고 놓으면 놓이고 당신이 말하라면 말하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이렇게 책망하라면 책망하고 칭찬하라면 칭찬하고 그 하는 대로 이렇게  그분에게 피동되어서 이래야 될 건데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방해하는 일 많다.' 평생 방해하는 자기라는 면을 찾아서 방해하지 안하려고  애쓰는 그 사람이 주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고. 주님만이 하실 수 있지 자기는  할 수 없다는 이것을 중심으로 실상, 말쟁이 모양으로 말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가증스럽게 봅니다. 우리도 봅니다. 우리도 볼 수 있는데 어찌  하나님이 못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참으로 주님만이 할 수 있는 이 사실을 알고  그렇게 하는 그것이 다 믿음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다고 성경에 말씀해 놨기  때문에 말씀한 교훈대로 그대로 자기가 생각하고 알고 지키고 하는 그것도 내나  믿음이라 말이오.

 우리는 지식도 믿음의 지식이어야 되겠고. 행동도 믿음의 행동이어야 되겠고,  모든 마음도 믿음의 마음이라야 되겠습니다. 믿음의 마음이라 말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따라가는 그것이 믿음의 지식이요 하나님이 지도 하는 대로  자기는 따라서 움직이는 그게 믿음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구원도 우리는 평소 사소한 거기에서 사람 구원이 돼지는  것이지 뭐 큰 데서는 안 됩니다. 큰 데는 벌써 사람들도 다 그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저 사람은 저거 큰 일이기 때문에 저기서는 아마 전심전력을  기울일거다' 할 것이기 때문에 별스럽게 보지를 안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저런  일에는 뭐' 평소에 사소한 일에 거기에서 사람 구원을 볼 때에 '아, 저거는 저  사람이 무슨 거기에 대해서 정성을 쓰고 무슨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 명예  영광이나 무슨 그런데 거석한 것 아니고 그 사람 그걸 보니까 참으로 날  구원하려는 것을,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을. 그 사람 이 참으로 구원할라 하는  그것이 본능적으로 나오더라.' 사소한 일에 덕이 크게 되지, 사소한 일에 큰  덕의 광채가 나타나지 그렇게 무슨 모든 사람이 다 주목하고 주시하고 보고 있는  그런 일에서 덕이 나타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구원도 평소 사소한 일에서 우리는 해야 되고, 또 주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희생해야 됩니다. 지극히 작은  데서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 충성, 희생의 충성도 지극히 작은 데서 되고.

구원의 충성도 지극히 작은 데서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도 지극히  작은 데서 되고, 주님을 위하는 충성도 지극히 작은 데서 되고. 믿음을 만드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만들고. 믿음을 믿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쓰지, 모두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말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부랑한 그런 부랑 지기는 그런 일을  죽었으면 죽었지 그걸 그라면 혀를 빼 버려야 됩니다. 자기가 그걸 참말로 '내가  이런 더러운, 내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망칠 말한 요걸 내가 혀를 잘라 버려야  되겠다.' 그 혀를 깨물어서 그 혀에 참 병이 들 만치 그렇게 되든지 그래 안  하면 벙어리가 되든지 이렇게 돼야 되는 것이지 예사롭게 여겨 가지고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행동이나 태도나 마음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그런  것을 지극히 작은 것을 조심합시다. 지극히 작은 것을 조심해서, 지극히 작은  그것 가지고서 충성해야 됩니다. 충성이라 하는 것은 나를 피로 구속하신 주를  위한 것만이 충성입니다. 뭐 다른 거 위하는 것은 죽어도 그 충성 말하는 게  아니고 물론 나라에도 충성 있고 상전에도 충성 있고 여러가지 뭐 충성면이  있지마는 여기에 충성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구속 받은 자가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그 충성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까 한 말로 말하면 여러가지  말하나 그저 주를 위함이요 주님의 복음을 위함이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이요 다 이런 것이니까,  이것이 다 좋은 줄 알지마는, 우리는 좋은 줄 알면서도 지극히 작은 것을  멸시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거기에서 주님 다 멸시해서 주님과 다 대적이 돼  버리고 원수가 되고 난 다음에 나중에 큰 데서 말하는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가리켜서 간교한 자라고 생각을 할 것이요 주님이 그 사람을 이제 주님을 당신을  놀리는 사람이라고, 만홀히 여기는 업수이 여기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충성에서 지극히 큰 충성을, 충성의 실력을  이루어 나가고, 자기 구원도 그러합니다. 자기 구원도 지극히 작은 데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나무도 보면 뭐 지극히 큰 데서는 그것은 아무 영향 없습니다.

나무를 딱 심어 놓고 보면 '아, 요 나무가 지금 이제 여기에서 생기가  돌아온다.' 할 때에, '생기가 돌아온다. 이제는 생기가 돌아온다.' 할 때에 고걸  뽑아 보면 큰 뿌리는 고대로 있는데 아주 머리카락 같은고 뿌리가 끄트머리는  뿌리가, 뿌리가 돼 있지마는 저 끝에는 물같이 돼 있습니다. 물같이 하얗게,  아무리 붉은 뿌리도 끝은 희게 똑 물같이 돼 있습니다. 고거는 거머쥐고 뭉케면  다 뭉케져 버려요. 고 아주 세밀한 말단의 가는 거기에서 그것이 양분을 빨아  당겨 가지고서 위에 되지는 것이지 위의 큰 줄기 그거는, 그는 새끼를 낳는  것뿐이지 아무 양분 받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덕도 사소한 일에서 덕이 나오고 또 기쁘시게 하는 일도 위하는  일도 또 권위 있는 일도 모두가 다 지극히 작은 데서 그것이 만들어져 나오지 큰  데서는 만들어져 나오지 안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외식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우리는 꼭, '지극히 자은 데 충성 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불의하다'고 지극히가 거기에 따라  가지고 있습니다. 안해도, 안해도 문리상 고거는 그래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일에 주를 위하는 그 사람이 지극히 큰일에 주를  위할 수가 있고, 지극히 작은 데 승리하는 사람이 지극히 큰 승리를 할 수가  있지,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지극히 큰 거 한다면 우리는 바라보지도 못할  것인데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데서 지극히 큰 것을 만들 수 있다  하니까 이보다 더 우리에게 쉬운 일이 뭐 있겠습니까? 핑계 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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