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준비

 

1984. 3. 5. 월새벽

 

본문: 다니엘 6장 10절-13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 하나님께 감사 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 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선지자선교회  다니엘이 기도하는데 특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있는 그 문을 향해 가지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다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필 예루살렘을 향한 그  문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지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가? 그것은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수도가 서울이 그들의 서울이 예루살렘인데  예루살렘이 전부 다 훼파되고 참 뭐 역사에 없는 비참한 그런 전멸을 받았습니다.

아주 잔인한 그런 멸망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람의 고기를 서로 먹는 이런,  자녀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잔인하고 참 무서운 그런 그 환난을 만나  가지고 다 죽고 남은 사람 얼마는 예루살렘으로 포로되어 온 그 포로 중에 한  사람인 다니엘 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지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안 했지마는  그때는 하나님의 선지가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 법칙에  순종하는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으로 똑똑하고 잘나고 또 울이 있고 건강한  그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 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를 안했습니다. 또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이렇게 해야 된다는 그런  주장을 아주 마음에 싫어하고 그저 속으로 미워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라면  고만 똘똘 몰아서 그 사람을 정죄를 하고 또 억울하게 매장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선지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그런 밑에 남아 있는 두 나라를 가리켜서  그때, 이제는 위에 이스라엘은 다 절단 나 버렸고 두 지파를 가리켜서 유다라  이랬는데 그렇게 타락을 해 가지고 이 연방에 있는 세상 나라들의 강대국과 손을  잡아 가지고 그 강대국에 연맹하고 또 구원을 받는, 서로 협조하는 그런 것이  마땅한 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 모든 주권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게 무엇을 의논하고 구하고 하는  그런 일을 아주 못 하게 했습니다. 이래서. 뭐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그것을  드러내고 못 하게 반대로 이래는 안 하지마는 그런 사람이면 멸시를 하고 천대를  하고, 이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거기에 손을 잡아 가지고 세상 권세를 가지고  날뛰고 쓰는 그런 사람은 아주 존귀히 여기고 참 위대하게 보고 이렇게 높이  평가하고, 이라니까 차차 차차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그만  성글어지고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나아가는 그런 일만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예언하시면서 '너희들이 이렇게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에게로 돌아가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역사에 없는 그런 비참을  당하게 된다. 심지어 너희의 자녀의 고기를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그런 비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 예언을 선지자를 통해서 한번 두번 하지를 안했습니다.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선지자마다 다 배척을 당해서 공연히 이런 죄가  있다 저런 죄가 있다 애매하게 몰아붙여 가지고서 고만 모든 백성들이 그런  사람은 하나의 정신병자같이 그렇게 밀어 붙여 버리고, 저희들이 날뛰어서 국교에  아주 외교를 해 가지고 다른 강대국과 국교를 맺는 대사라면 크게 평가해 주고,  전부 차차 차차 인본화되고 또 세상화되고 물질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팔백 몇 년인가. 주전 팔백 몇 년인가 돼서 포로돼 갔습니다.

 그때 그 비참한 것을 다니엘이 생각하고, 자기 선조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하고 하나님 대신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안하고 세상 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에게 의논하는 기도는 하지 안하고  세상과 손잡고 하는 그런 일을 힘썼습니다. 그래서, 차차 차차 인간화되어졌고  세상화되어졌고 물질화되어지는 그것을 인해서 다니엘은 그때에 나이가 많은  때가 아니고 아주 청소년 때인데 그런 비참한 그 환난을 당해서 자기 종족이 다  전멸하다시피 전멸되고 몇 사람포로 되어 가는 중에 다니엘이 한 사람으로서  포로되어 갔습니다. 그것을 늘 잊지 안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노엽게 함으로 멸망을  받았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한 죄로 멸망 받았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 아니한  죄로 멸망받았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아니한 죄로 멸망받았다 하나님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회개하지 안하다가 멸망받았다, 하나님 대신으로 세상과 인간  물질 그런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는 이 죄값으로 멸망받았다 하는 것을 그가  너무 마음 아피 생각하고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늘 그가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면서,  자기 선조들의 패역하고 타락한 그 망령된 죄를 대신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유해 달라고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하면서 '이제 저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선조들의 죄를 다 고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런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하나님에게 구하고 의논하고 그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죽인다면 죽는 것도 좋고 사는 것도 좋고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를 삼아 가지고서 살겠습니다.' 하는 이 회개와 소원을 늘  하나님에게 아뢰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1장 2장에 거기에 내리 기록 돼 있는, 다니엘이 그 학원에 선택을 입어서  공부할 때에 음식 맡은 환관장이 그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라 해도 먹지 안하고  그런 음식 먹은 그것도 예루살렘이 어떻게 하다가 멸망 받았다 하는 그것을 보지  못하면 그 다니엘이 뭣 때문에 그렇게 했는고 모르지마는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연결해서 보면 다니엘이 얼마나 마음아파 회개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참 자복을 하고 원통하고 후회가 됐던 사람이라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학원에 공부할 때도 왕이 왕의 식품을 먹여서 영양을 아주 특수한  영양을 그 학생들에게 보급을 해서 학생들이 영양에 풍부함을 가지고 자기네들이  맡은 그 학과를 다 감당하도록 그렇게 하려고 이 특별한 그 특령을 내려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거는 다 과학적입니다. 영양이 채워져야 머리를 많이 쓸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많이 쓸 수가 없는 그거는 필연한 일인데, 다니엘은  그걸 먹지 안하고 나는 채소만 하면 족하다 하는 그 말할 때에 그 환관장이  '그러면, 자기네들 얼굴이 수척하면 만일 그것이 띄이면 우리가 다 사형을 받을  터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 며칠 동안 시험해 보라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그 음식의 영양이라는 이것은 자연인데, 자연인데 자연도  그들이 사용하지 안하려고 한 그만침 한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아니한  그것이 원통해서 조그만치라도 하나님 외에 딴 것을 뭐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런  일을 아니하려고 한 것이요, 또 그 모든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면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것이라면? 뭐 아무것도  필요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어떤 것이라도 좋다는  그런 아주 뜨거운 그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렇지마는서도 조그마치라도 자기는 살아 있지마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으로 죽어야 마땅할 자인데, 그때 뭐 죽었어야  할 자요. 그때 죽을 자인데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났으니 산 것은 그때 죽은 자가  지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 있으니까 이것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남은 여생이  있을 것이지 자기네들이 무슨 살아 있는 자들로 그렇게 생각하지를 안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하나님에게  감사하였더라' 이 감사가 다니엘이 무슨 감사였을까? 이 분명히 한 달 동안 다른  데에 기도하는 자는 다 사자굴에 넣어서 사형을 시킨다는 왕의 도장이 찍힌,  어인이 찍힌 그 조서를 보고 난 다음에 감사했기 때문에 그 조서로 인한 감사는  감사인데 그 조서로 인해서 무슨 감사일까? 이것은 다니엘이 이제까지  기도하면서 마음 가운데 소원하고 있던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 소원이 뭐인데? 어떤 어려운 경우, 자기가 어떤 어려움 어떤 강한  세력, 또 자기의 모든 것이 다 절단나고 생명이 절단나고 하는 어떤 경우 어떤  처지에 이를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한  그것을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제일  두려워하고 높이는 이 일을 지금 우리 선조들이 하지 못해서 이 죄값으로  이랬는데 우리가 그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니 용서해 주시고, 우리들에게 그런  일이 있으면 이제 하나님의 노를 풀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 보겠다. 이제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죽고, 주님을 믿으므로 죽고, 주님께 순종함으로  죽는 이 생활을 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의 노를 풀겠다 하는 그 소원을  하다가 이런 기회를 만나게 되니까, 하나님의, 그 선조들이 끼친 하나님의 노를  풀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나게 되니까 심히 기뻐하고 감사했고, 또 하나님의  노를 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다소나마, 그 수 많은 백성 가운데에 다니엘 자기  한 사람만이라도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온 것을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즐거워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자기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안하고 의지하지 안하고 순종하지  안하고 그를 두려워하지 안하고 그 하나님 버리고 다른 것들을 하나님같이  그렇게 바라보고 의지하고 의논하고 순종한 그 죄를 깊이 마음 아파 늘 계속해서  회개하고 마음에 채여서 늘 고민을 가졌기 때문에 이 다니엘이. 다니엘을  죽일라고 다른 총리들과 모든 대작들이, 큰 벼슬 하는 대작들이 모여 가지고  의논할 때에 말하기를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의지해 가지고서 계명에 어기지  안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아니하면 죄가 되도록 그런 것을 잘  만들어 연구해 가지고 그런 방편으로나 다니엘을 정죄할까 다른 것으로서는 흠을  잡을 수 가 없다 한 것을 보면, 다니엘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 흠점이 없는  사람으로 산 것이 자기 선조들이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된 그것을 마음에 원통한  포부를 가지고서 밤낮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뭐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지 못한 것을 원통해서 선조들에게까지  자기가 노를 풀라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라고 그는 날마다 각오하고  기도하는 그 사람으로서의 생활하니까 그 이의 생애에 흠점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기도 끝에 이것이 발각돼 가지고 다리오 왕이 그걸 후회를  하면서 데려다 놓고 말하지마는 그 너무 마음 속에 깊이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소원하고 회개한 것이 뿌리가 깊이 깊이 내려서 그 깊은 속에 계속됐기 때문에  벌써 그 이의 소원과 그 이의 사상과 그 이의 그 신상은 요동치를 안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말하는 그런 것이 뭐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  지었는데 보니까 '파도야 외쳐라 대해는 잠잔다' 파도 네가 아무리 막 우르르  하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야단을 지겨도 큰바다 그 밑에는 잔잔하게 뭐 물결이  치는가 안 치는가 그 층에는 고요한 밤중같이 대해는 잠잔다 아무리 뭐라고 말해  봐라 뭐라고 핍박하고 뭐라고 몰아 쳐 봐라 몰아쳐도 신앙의 사람들의 마음은  요동치 않는다 하는 것을 표시한 그런 시를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은 이런, 속에, 마음에 회개하는 마음과 또 하나님의 노를  풀고자 하는 그 소원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 소원의 마음과 또  하나님에게 늘 계속 간구하는 그 기도가 그이의 생애였기 때문에 다니엘에게  다리오 왕이 말하는 그 사정이 어려웠지마는 그 사정이 그에게는 뭐 별로이  어려울 것이 없었고. 또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는 그런 것은 그에게 기쁨이요  즐거움이었지 아무 어려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제도 말했지마는 앞으로 지금 어떤 일이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뭐 그런 일이 이 신문이나 방송이나 이런 것 들어 보면 오늘 당장 그런 일이 올  것같이 보여지고, 또 방송 들어 보면 이제 튼튼하게 아무 그런 일이 없을 것같이  보여지고 이렇게 자꾸 변해지는 것은 뭐이냐? 그것이 문제가 돼 가지고 있기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 다른 나라 일본 나라의 방송을 듣는다든지 이런  것을 보면 그런데서는 좀 가리움 없이 그렇게 방송이 바로 나옵니다. 어디든지  방송 그거는 사람들이 찍해야 보고 듣고 하는 그 껍데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상대 할 것이 없어 그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거나 참고할 일이지. 우리는 그보다도 그 실상을 우리가 들어서라도 대략 알고  또 모든 게 제 형편을 알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 남북문제는 어떻게 되나 하는  것을 그런 것을 생각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적화 남침 통일이라는 남침이, 그런 일이 있든지 없든지 그런  일이 있어도 요동치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모든  정권이 다 있는 것을 알고 그분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그분에게 기도하고 또  그분을 의지하지 안하고 세상이나 인간이나 그런 것을 의지하고 그런 피를  바라보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런 것은,  앞으로 전쟁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준비 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부끄러움이 없이 설 것입니다.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그저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전부 바라보는 것은 땅에 있는 것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은 땅에  있는 것 의지하고, 의논하는 것은 땅에 있는 것 의논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땅에  있는 것 두려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땅에 있는 것 좋아하고 이라면 하나님 배반  아닙니까? 그저 껍데기로 주일이 나와 가지고 들렁 와서 지킨다고 해도 속에 그  인격의 모든 그 전부는 다 세상으로 기울어졌고 인간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그런 시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알기에 승리한 사람이  되겠고, 그런 시험이 없으면 하나님만 보시기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이런 신앙으로 준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와 하픽, 역사에 보면 종교와 종교를 가지고서 되는 일들 이 많이  있습니다. 이란이라는 데도 거기도 보면 항상 종교, 기독교와 종교 기독교와  이방교, 또 저 아라비아 그 모든 데도 다 종교전입니다 이런데 우리 남북에 여기  와서는 무엇을 대결하고 있느냐 하면 세계의 촛점이라고 볼 수 있는 아주 촛점,  양쪽이 들어붙은 촛점이라고 볼 수 있는. 원인어라고 볼 수 있는 이 남북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세계의 관계의 촛점이라고, 국제 촛점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환난의 촛점인데, 여기에는 하필 무신론과 또 유물주의와 우리 남한과 대결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신론 유물주의가 저렇게 해 가지고서 대결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결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마는서도  민주주의도, 민주주의도 인본주의입니다. 여러분들, 민주주의도 하나님을 인정한다  하지마는서도, 우리나라의 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그것을  고치라고 자꾸 그거 유치하고 안 됐다 하나님이. 안 됐다 그걸 고칠라고 애를  쓰고 이랬는데 이제 고쳐졌소 안 고쳐졌소? 나는 이거 미안하지마는 예? 안  고쳐졌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것을 인민들이 보호하사,  사람들이 보호해 가지고만 인간들 우리 힘으로 산다 하는 그걸로 고칠라고  하지만 고쳐지지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하나 볼 때에 이남도 역연  무신론 국가요, 이남도 물론 유물주의 국가요, 이러니까, 그들은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내걸어 놓은 무신론 국가요 또 물질이 제일이라는 선포해 놓은  유물주의 국가요, 우리 이남에서는 무신론을 주장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신에  대해서 그렇게 인정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요. 또 이  민주주의라 말은 하나님 중심주의란 말이 아니고 인류중심주의라는 그 말입니다.

민주주의라 말은 민주주의를 기독교 사상으로 이렇게 보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라  말은 인간을 주인으로 삼아 가지고서 인간들의 모든 주장대로 그대로 해 나가자  하는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백성들을 주로 삼아서 하는 민주주의 또  유물주의라고, 물질이 제일이다 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사람이 제일이요 그다음에  물질이라 이래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그 위에 빠져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기독교에 대해서 이렇게 탄압을 해서 기독교 이 박멸하는. 기독교  박멸하는 이런 일은 하지 못하지마는서도, 기독교가 그래도 좀 수가 많고 이래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마는서도 뭐 기독교를 박멸하자고 하는 그런  사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저 믿는 사람들도 차차 차차 거기에 감염돼  가지고서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좀 부끄러워하고 인간들이 이렇게 단합해 가지고  우리가 일심 단결해 가지고서 국력을 강화해야 된다 이 말은 아주 씩씩하고 참  아주 애국자요 그는 지성인이 하는 말이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어쩌고 한다  하면 좀 삐쭉 삐쭉하면서 비웃는 그런 나라가 돼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도  교회를 핍박하고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무슨 공산주의 아니지마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보면 거의가 다 공산주의입니다. 그 사상을 다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 말이오. 기독교들 아주 적극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 이러니까, 왜  하필 이 무신론주의 유물주의 이 두 사상이 지금 우리 남한에 대적이 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이것은 좀 깨달을 사람은 깨달을 수 있어서. 이거는 우리 남한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이북에 있는 이 공산주의 이북은 남한이라는 이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이북이라는 나라는 기독교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이오. 그들은 기독교를 대적합니다.

 6·25때도 제가 보니까 그들이 오면 제일 기독교를, 자기네들이 사상에 기독교를  제일 세밀히 조사합니다. 조사해 가지고 기독교를 대상으로 삼아서 이래 하고 이  정치가들 뭐 이런 또 경관들 이런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별로이 그렇게 대적하지  안했습니다. 만나면 자수하면 그만이라 이런데. 이제 아주 순경 이런 사람들을  욕을 하면서 대적하는 사람들은 그 욕을 뭐라고 했지 순경을 알고 있어?  ○집사님 알고 있어? 순경들을 뭐라고 하지 그 사람들이 발견하면? 아 여기 뭐  있라 뭐 있다. 아 내가 그거 오래 가니 잊어버렸어. 예? 다 그만 잊어버렸구만.

그것은 패전병들 남아서 공비, 공비들이 순경과는 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방위대  또 이 공비가 그들의 적이 됐기 때문에 그랬지 공산주의는 뭐 그런 사람들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또 이거 정치가도 아주 머리를 변화시킬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면 적대시하지 나머지기는 고만 형편 따라서 자꾸 변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적대시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래 남북이 이래 돼 가지고 있는 이것이 하필 무신론주의가  하는 것은, 유신론주의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를 적으로 하고 유물주의니까  기독교는 신본주의니까 이걸 대적을 해 가지고서, 이북은 전부 우리 기독교  대적이라 요렇게 보는 것이 그것이 눈을 뜨고 바로 보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나라는 당하지 안했지마는서도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어떻게  멸망을 시켰으며 정복을 했는가 그런 것을 우리가 내가 당하지 안해도  연상적으로 생각을 하고 또 역사에 있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자 지금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지금  하나님이 그때 하나님이요 그때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느 정도 의지하지  안했을 때 노여워했는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 바라봤을 때에 당신이 기뻐했는가?  그러면,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나 세상하고 짝 짓는 것이나 그런 것을 어느  정도면 하나님의 노가 됐고 어느 정도면 하나님의 기쁨이 됐던가? 벌써 그  정도는 지나갔습니다. 그 정도는 얼마나 많이 지나갔습니다. 그 정도가 많이  지나갔습니다. 지금,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에 대해서 노하고 계시는, 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우리가  보는 것이 바로 정견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그렇게 보는 것은 그  자는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보는 것입니다. 뭐 기독교 운동이 막 일어납니다.

그저 무슨 회 무슨 회 기독교 운동이 많이 나고 교회가 많이 일어나지마는 그  교회가 실상 주님의 피운동인지 자기 기업체인지, 전부 기업체라. 이래 가지고서  예배당 오면 돈 받고 개척 교회 해 가지고서 얼마 교인들 이래 모아 가지고서,  셋방 얻어서 개척 교회 모아 가지고서 교인 몇 모아 가지고서 열심히 연보하라고  막 강조해 가지고서 셋방이나 하나 얻고 교인 몇 되면 요것을 살모시 팝니다. 그  교역자가, 목사가 파요. 목사가 돈 얼마 주면은 '이것 내가 넘겨 줄 터이니까 얼마  달라.' 그래 돈을 받고서 팔아 가지고서 그때는 돈을 받으니까 자기 주머니에  돈이 는다 말이오. 이 돈 가지고 또 새로 개척 교회 해 가지고서 개척 교회 해  가지고서 또 얼마 되면 돈받고, 더 많이 받고 하고 그래 가지고서 몇 억이니 이래  자기의 재물을 모으니까 이거 하나의 기업체에 교회가 세상이 볼 때 기업체라고,  이거는 종교가 아니고 기업체라 그렇게 할 만침 세상이 돼 가지고 가니까 이  뭡니까?  또 그리고, 이런 복음 운동 무슨 복음 운동 한다 해도 '아 무슨 연합회 다 무슨  연합회다.' 그걸 뿌리를 파 들어가 보면, 파고 들어가 보면 찍해야 한 너댓 사람이  모여 가지고서, 무슨 연합회라 하니까 무슨 많은 것인가 싶어서 좀 돈도 보내  주고 이래 했는데 가보면 몇 사람이 앉아 가지고서 전화 놓을 돈도 없어 딴 데  가서 방을 빌려 가지고 거기다가 임시 무슨 무슨 회 연합회니 본관이니 이래  가지고서 하고 있는데 그게 전부 자기 유명해질라고 자기 사다리입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우뚝 올라설라고 자기 모두 사다리 만드는 거라. 이것 전부 기독교  복음 운동이라 하는 것이 전부 사다리 운동이라 말이오. 사다리 만드는 사다리  운동. 자기 그것 밟아 디뎌 올라서 가지고 높여서 '내가 이렇게 높습니다'. 하는  이 사다리 운동이 많고, 또 전부 인간을 모아 가지고서 단합하라는 인간 단합  운동, 이래 가지고 다 그런 운동이라.

 3·1운동에, 3·1운동에, 기독교에서는 3·1운동을 다 기독자들이 교회가 불타고  이랬기 때문에 3·1운동은 그것을 참 아주 똑똑한 기독자들이 그렇게 했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기독교에서는 아주 이렇게 존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입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 운동이요 애국 운동으로 참 이렇게 존대하고  따라야 할 운동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 운동은 아닙니다. 왜  기독교가 그렇게 됐더냐? 왜정 말년에 기독교가 순수한 기독교도 있는 동시에  기독교가 정치 운동을 가지고서 정치 운동을 가지고서 모든 정치에 정치  운동하는 사람, 애국자들, 모두 이렇게 그런 독립 운동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가시고서 교회를 그 독립 운동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거기에서  혼잡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혼잡한 것을 그대로 두지 안하고 똑 갈라  가지고서 '기독교는 정치와 분리 돼 있다. 세상과 분리돼 있는 것이 기독교이다.'  '내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 나라 같으면 그들 이 다 옹호해  가지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게 할 것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는 무슨 나라냐? 내 나라는 진리에 나라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도, 3·1운동때도 그때에 교회가 그와 같이 된 것을 우리는 그냥  교회가 이렇게 애국이요 독립 운동이요 또 건국 운동에 이렇게 공로자라 그런  말은 우리가 부끄러운 소리입니다. 기독교가 독립 운동에도 이 해방 운동에도  이와같이 큰 공로자라, 기독교는 그런 공로가 아니고 없어지지 안하는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이 기독교지, 땅의 나라를 세워서 하늘나라인지 땅의 나라인지  혼합시키는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애국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이게 다 참된 순진한 기독교가 아니라 그말이오. 민족 운동과 애국 운동으로서는  우리가 기념하고 따라가고 그 정신을 이을 만하나 순수한 복음 운동은 아닙니다.

이러나, 이 말을 지금 하면 용납지를 안하려고 지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참 신앙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을 보면 어떻게 세밀히 구별하는지, 저는 구약  성경을 볼 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시기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시기의 하나님.' 아, 하나님은 시기하기를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같이 둘이 걸어가다가 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어떤 남자를 이래  좀 봐도 이래 남자를 쳐다 볼 때에 남자가 병신이든지 얄궂으면 아무 말이 없고  남자를 쳐다보는데 남자가 얼굴이 매꿈하면 그날 밤에 와서 싸웁니다. '오늘 와  그 사람 보고, 와 그 사람을 보고 네가 봤노? 인물이 좋으니까 인물에 네가 혹  했지? 인물에 반했지?', 그날 밤에 싸우게 된다 말이오 그게 사랑이오. 또, 어떤  남자를 보고 인사를 합니다. 인사하면 싸워. '아, 그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우리  선생님이기 때문에 인사를 했습니다.' 이라니까, '선생님이라 인사했어? 학생으로  다닐 때 그때 연애했구나' 이래 가지고 싸운다 말이오. 그렇게 참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의 정조에 대해서 시기하는 거와 마찬 가지로 하나님은 그  이상 시기하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성경에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기의 하나님, 질투의 하나님이요, 시기라니? 당신만을 바라봐야 할  것을 당신 외에 딴 것을 바라볼 때는 굉장히 시기합니다. 당신만을 두려워할 것을  당신만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딴 것을 두려워한 것을 아주 굉장히 시기하십니다.

그러나 요새 이 세상적으로 인간들이 자꾸 마귀란 놈이 들어서 음탕하게  음란하게 이래 가지고서 남녀 이거 혼합을 시키는 이 일을 하는 것은 기독자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이 신앙 정조를 이것을 혼탁시키기 위한 악령의  수단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도 물드는 줄 모르게 슬슬 감염돼 가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에, 뭐 자기 외에 그 아내가 무슨 얘기라도 남자의 무슨 좋은 얘기를 하면  그만 그 남편이 뿔이 납니다. 그만. 시기가 난다 그말이오.

 여자가 남자한테 잘한 여자 그런 여자를 얘기를 하면 입이 뻥긋하이 벌어지고  이런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또 그것이 옳다 그말이오.

그렇게 그 시기가 사람들도 그렇게 있는 것이 정상이요 그거 옳은 거라. 하나님은  일부 일녀로 이렇게 해 놓은 그것이 내나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게 옳다  그말이오. 이 세상에서 언제 방송 들어 보니까 '어떻습니까?' '아, 우리 남편은  좋은 점이 뭐이냐? 아무리 남반들하고 이래 사귀고 뭐 이래 해도 거기에 대해서  아주 옳은 깨달음을 갖고 관대한 마음을 가져서 뭐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아무  거기에 대해서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 그게 자꾸 혼탁시키는 말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뭐 지금같이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래 배반하지 아니해. 아주 지금의 십분지 일도  배반하지 안했소 십분지 일도 배반하지 안하고, 다른 나라에 보내가지고서 '아,  우리나라가 지금 약하니까, 약하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이래도 분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바벨론 나라에서 히스기야 왕에게 왔을 때에 히스기야  왕에게 아, 당신들은 참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렇게  돼지고 어쩌고 하면서 그것 때문에 지금 마음에 화친을 하려고 겁이 나 가지고  왔는데, 떡 오니까 히스기야 왕이 있다가서 '네, 우리나라를 볼랍니까?' 군기를,  군기 창고를 보이면서 '우리나라는 군기가 이렇츰 구비해 가지고 있습니다.' 또  금을 보이면서 '우리나라는 이만큼 금이 있습니다.' 군대를 보이면서 '우리나라도  군대가 이렇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하지 안하고 그것을 보이고 말을 했다  그말이오. 이라니까 하나님이, 당신은 자랑하지 안하고 앗수르 군대 십 팔만 오천  명을 죽였을 그때인데 하나님은 자랑하지 안하고 그런 것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시기했다 말이오. 대번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서 '네가 이렇게 그들에게  보여 준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바벨론으로 다 뺏겨가도록 내가 만들겠다. 또  너거 모든 민족들을 다 포로가 돼 가지고서 다 죽고 포로되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그대로 응하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시기하시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시기하시는 하나님인데 오늘은 그 도수가 얼마나 넘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넘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우연한 일이라고 하는게 아니고, 제가 기도회를 시작하자  하는 그런 것도 그저 기도하지 하는 그런게 아니고 내 속에서는 그런 것 저런  것이 자꾸 꿈틀거려지고 마음에 자꾸 견디지를 못해 가지고서 그런 일들을, 그저  기도회라도 시작해 가지고 기도를 하자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일을 많이 생각 했어. 그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기도 하는 것, 어떤  사람은 오면, 와 가지고서 '주여 뭐뭐뭐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달라고만 실컷 해놓고 고만 달아나 버립니다. 그게  아니고, 우리는 기도할 때에 내가 과거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했으며. 현재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가 그 닥치면 닥칠때 그때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좀  생각을 하면서 거기에 대한 대비적인. 그러니까, 독침도 좀, 공산주의의 독침도  많이 만나 보고 아무도 없는 홀로 있는 감방에도 들어가 보고 또 잡아다가  꺼꾸로 달아 매이기도 해 보고, 자꾸, 그때 당할 것이니까, 당할지 모르니까  당하지 안할지라도 당해 보고,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을 당해 보면서 '거기에서  그럴 때 어쩔까?' 그런 일을 지금 미리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닥치면 어쩔  것입니까? 미리 생각할 때 지긋지긋한, 미리 생각할 때에 지긋지긋한 미리 생각할  때에 '이제 주를 위해서 그런 일 하면 한번, 주를 위해서 한번 참 주를 한번  사랑하여 한번 사랑해 보자. 그때 참 주를 한번 위해 보자. 주님을 정말로 믿는  것을 주님 앞에 한번 보여 보자'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뜨거운 각오가 있는  사람이라야 그런 일이 올 때에 그 시험을 당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지 그런 것  없으면 기쁘게 여기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 세상 일 이런 것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만 가득 차 가지고 그런 거는 꿈에도 생각하지 안하고 있다가 그런 일 닥쳐  가지고 이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미리부터 다 그렇게 그렇게  기도하고 생각하고 각오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승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기록은 안 하지마는서도 아마 교회 쳐 놓고 박해 많은 교회로서  ○○ 교회 만침 박해 많은 교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 교회에 있는 소식을  ○○○ 목사님의 형 ○○○ 목사님이라고 장로교 총회 신학교 교장. 이사장이요  교장인데 그 사람이 그때 거창 집회를 한 번 왔소 온 것 기억합니까? 한번  왔는데 그 사람이 어데서 ○○ 교회 일부의 얘기를 들었어. 설교하다가 ○○ 교회  말을 하면서 몇 사람의 얘기를 듭디다. 그 사람의 드는 것을 그걸, 얘기를 들면서  뭐 감격해서 참 이런 신앙이 한국에 있다고 이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듭디다, 그때 그 사람의 말한 그 몇 배 그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남편이, 예수 믿는다고 천장에다가 남편이 힘이 있어요 불끈 묶어 가지고  천장에다가 고리 해 가지고 거기다가 끼어서 꺼꾸로 달아 놓고, 꺼꾸로 다는 것만  해도 기가 찰 것 아니오? 꺼꾸로 달아 놓고 윤디를 불에 구워 가지고 지져서  얼마나 지졌던지 옆에 사람이 노랑내가 나 가지고 아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까 노랑내가 나도 또 하나님이 그렇게 맡게 했겠지요. 노랑내가 나서 이  무슨 불 안 나나 해서 가 보니까 꺼꾸로 달아 놓고 그래서 그래 옆에서 고함을  질러 가지고 사람을 동원시켜 가지고 그래 끌어 내렸소 그 사람, 그 여인이, 박해  당한 여인이 이름이 ○○○이라는 여인입니다. 그 자녀들이 여기 부산 와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거 아마, 그래도 그때에 믿음이 없었어. 그 아들 하나는  ○○에 있는데 잘 믿어요 잘 믿는데 ○○○의 신앙을 바로 받았으면 이 부산  왔으면 이 서부 교회 안 오고는 못 견딜 것입니다. 그렇게 불에 지져진 사람도  있고, 또 예수 믿는다고 톱을 가지고서 다 리 끊어서 이 다리가 뼈는 끊기지  안했는데 살은 다 끊겼소 그 사람이름은 내가 잊어버렸어. ○가인데. 그리고 늘  그 남편들은 나한테 와 가지고서 자 아내 차지하라고. '아내 차지하시오. 아내를  차지하시오' 이라면서 와 가지고 조아대면서 그저 만나면 하루 종일 졸라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6·25 때는 그 사람들은 그런 박해는, 인민군 박해는 상관이  없어. 하나님이 그 자손들을 다 믿게 했고 여기 ○○○씨 와 있지만 ○○○씨도  참 그런 박해를 아주 많이 당했습니다. 아마 한 몇 달 동안, 몇 달 동안 나물만  먹고 살았지요? 그 남편이 딱 팔아 다 없애 버리고 일본 가 가지고서 아무것도  안 주고 이래서, 일본으로 가 버려. 일본으로 데리고 갈라고. 암만 가자 해도 안  가고 그래 가지고 박해를 당하면서 나물만 뜯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이랬는데  그때 우리는 밥을 먹고 지냈는데 예배당에 가자고 와요 가자고 오면 '아, 좀 식사  좀 하이소' 아, 잘 먹었다 하고서 뭐 어림도 없어. 그래도 그걸 몰랐어요  몰랐는데, 그 뒤에 와서 밥을 먹으라 하니까 밥을 자시어. 그때사 비로소 양식이  생겨 가지고, 밥을 집에서 먹고 올 때는 와 가지고 먹어도 밥을 못 먹었을 때에는  아, 밥을 먹었다 하고서 밥을 입에 대지를 안했어. 참 그때에 ○○ 교회는 아주  깨끗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주 깨끗한 교회였소 아주 정결하고  깨끗한 교회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 교회에 6·25때도 계속 하루 세 번씩 종치고 예배본 교회가  ○○ 교회, ○○교회, ○○교회 셋 교회뿐이었습니다. 거창 군내에서. 그라다가  그분들이 나중에 후퇴하면서, 후퇴해 가지고서 밤에 와서 이 ○○ 교회. 이놈들이  종을 쳐 가지고서 우리가 패전했으니까 이 놈들 없애자고 밤에 와 가지고  예배당을 불살라서 예배당 확 불 다 타 버렸습니다. 예배당이 불탔다고 저한테  기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당 받았고, 또 하나 더 지어 바치라. 한번  가마.' 한번 가 가지고서 밤새껏 앉아서 신앙 얘기하고 또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그만 네 시가 다 됐어. 예배 볼 때가 다 돼가.

이래서 '아이구, 연보한다 하는게 연보도 안 하고, 연보하자.' 연보를 한 아마 한  삼십분 동안 했는지. 이제 처음에 온 대로 하고서 나중에 그 액수를 정해 놓고 그  액수가 넘어 간 액수는 연보를 안 받는다하고 이랬더마는서도 한 이십분 동안  기록하니까 그 연보 다 되고 남은 것, 뭐 시골에 돈이 있습니까? 논바친 남은  바친 것은 전부 물리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때 그 돈만 해도 남았습니다.

예배당 짓고 이랬는데 그 예배당은 또 인제 좁아서 지금 헐고 새로 지었다  하는데 얼마나 어떻게 됐는지 내가 안 가 봤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참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도행전에 말했습니다.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할지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하, 그거, 기독교 고난의 종교인가?  아니오. 고난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가 옛사람을 부인 하려고 하면 자연히 고난,  성경대로 살라고 하면. 이 죄악의 세력이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하면 마찰이 없을 수 없다 그말이오. 마찰이 있는 그 마찰에 지면은 세상  사람되고 안지고 올라가면 하늘나라의 사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박해라 하는 것은 필연적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참 좋은 기회를 만났습니다. 나는 이거 여러분들 보기에  인제 고만 나이가 많았으니까, 살대로 다 살았으니까 좀 좋겠다 싶으지마는서도  나이가 많아서 순교당하는 것보다 젊은 사람 순교당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내야  인제 뭐 만일 일 년 더 살 걸 순교 당했으면 예를 들면 말이오. 언제든지 수명이  끝나야 순교당하는 것이지 수명 끝나기 전에는 안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보기에 일 년이 더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사람 보기에 그렇다 말이오. 그  뭐 더 살 것을 순교해서 덜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거는 성경에 말해  놨소 늙은 사람이 순교당하는 것보다 젊은 사람이 순교당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님과 아들은 평상 소원이 그거래요 '주님이 서른 세  살 자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나도 서른 세 살 더는 안 살겠다.' 늘 그걸  평소에 기도 하더래요 기도하고 사람들한테 그런 말 하고 이랬는데, 아주 독실한  조사입니다. 주 정 뭐이요? 이름 고만 말 안 하니까 이름을 잊어버렸어. 주 정  뭐입니까. 주 기철 목사님의 큰 아들. 이랬는데, 서른 세 살 먹을 때에 인민군에게  포로 돼 가지고서 납치돼서 가 버렸습니다. 납치돼 가지고 갔는데 아마 순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참 좋은 때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사는 것은 삶이 반 쪼가리요  죽음이 반 쪼가리입니다. 삶이 반 쪼가리요 죽음이 반 쪼가리입니다. 삶을 전부  다 사는 요 가치와 죽음을 잘 죽는 가치와 가치가 중량이 꼭 같습니다. 같은데.

살기는 주를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살지마는서도 자살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이  죽음이라 하는 것은 폐물되고 마는 것 아닙니까? 폐물되고 마는데 폐물되고 마는  이 죽음을 주를 위해 죽는 이 순교로 죽는 이것은 일생 동안 순생 생활한 그만한  중량의 구원을 단시간에 마련 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오면 우리가 순교를 당한다면 그 폐물된 죽음을  일생 산 것 만한 그런 보배로운 가치로 폐물 이용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도 미리 자꾸 생각하고 해석해 보고 생각하고 해석해서 '옳다. 이게 옳다.'  수지 계산을 똑똑히 알고 확정을 지우고 소원하고 소원해도 그때 흔들리기  쉬운데 여기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이 그래 닥쳐 놓으면 뭣 됩니까? 그런고로,  깨어 기도로 준비합시다.

 그리고 요번 성찬을 맞이하는 이거 우연이라고 생각지 말고 어쩌든지 성찬에  금번에 깨끗하게, 그 더러운 죄 다 회개하고, 물질에 대한 것 더러운 죄, 또 모든  자기. 자기주장 옛사람 그놈 다 죽여 버리고, 자기 위주, 자기중심, 자기 주관,  자기 꾀 자기 생각하는 나 나하는 고놈을 다 죽여서 바꾸고, 이 모든 이  유물주의로 땅에 있는 그런 것만 의지하고 세상 것만 의지하고, 암만 결혼 상담  시간에 결혼 상담을 하려고 해도 전부 유물이라. '하나님이 어떠노?' 그 사람이  하나님이 얼마인가 하나님을 평가하지 안하고 전부 물질 평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전부 유물주의요 기독교 무신론주의라 말이오. 이러니까, 큰  무신론주의에게 작은 무신론주의가 종되는 것이 필연한 것이고 큰 유물주의에  작은 유물주의가 종되는 것 새끼되는 것은 필연한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들에게 삼켜지는 것이 하나님의 마땅한 보응으로 볼 거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자들 위해서 하나님이 여기 뭐 두는 것 아닙니다. 진실한 성도들 위해서 둬  두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든지 우리가 이번 성찬에 깨끗이 준비해 가지고서.

더우기 우리 교회도 나는 모르겠습니다. 모르나, 뭐 다 알아. 할 만침. 모두 다,  어제도 내가 음탕한 더러운 소리를 내가 들었어. 내가 말해 만날 말해도 뭐라고  뭐라고 하서 '연애하지 말아라' 이라니까 연애하지 말라 한다고서 그 뭐 어데  그렇게 연애를 잘 합니까? 내가 이렇게, 이랬는데, 또 더러운 그런 소리를 들었소  들었는데, 어쩌든지 우리도 물드는 줄 모르게 물듭니다.

 이러니까, 이런 면을 저런 면을 깨끗이 합시다. 아주 이성 면에 남녀 이성 면에  그 더러운 걸 회개해야 됩니다. 깨끗이 회개하고 이번에 회개해서 참 예수님의  피와 살과 내 피와 살이 연결이 돼서 예수님의 피와 살이 어떻게 승리한 것같이  내 피와 살도 승리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이 어떻게 산 것같이 나도 그렇게 살아.

예수님의 피와 살이, 권능이 있는 것같이 내 피와 살도 권능있는 그 피와 살로서  이와 같이. 그 피는 생명을 말한 것입니다. 살은, 우리의 생명과 이 모든 심신이  예수님의 심신에 연결되어 가지고서 예수님의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하고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도 깨끗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피와 우리와 화합이 되는 이 화합식이라 말이오. 화합식이요 연결식입니다. 연결,  성찬은 연결식이오.

 그런고로. 깨끗이 준비해 가지고서 이번에 이로 인해서 우리 서부 교회는 바짝  새로워지고 깨끗해지고 아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뭐 영육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깨끗해집시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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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피와 성령과 진리로 심방/ 고린도전서 15장 57절-58절/ 1984. 10. 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31
58 피와 살을 생각하여 능력받자/ 요한복음 6장 41절-51절/ 1986. 11. 18. 화새벽 선지자 2015.12.31
57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88. 12. 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6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79. 9.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55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19절/ 1979년. 9.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4 피와 살을 기념/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79. 9. 25. 화새벽 선지자 2015.12.31
53 피와 살/ 누가복음 22장 19절/ 1979. 9. 24.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52 피와 살/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85. 2. 2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1 피와 말씀 보수의 힘-양심/ 요한계시록 12장 10절-11절/ 1983. 6. 18. 토새벽 선지자 2015.12.31
50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사도행전 10장 43절-48절/ 1985. 2. 22.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49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갈라디아서 5장 16절-18절/ 1985. 1. 2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8 피동신앙-객관신앙/ 누가복음 17장 5절-6절/ 1985. 12.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 피난준비/ 다니엘 6장 10절-13절/ 1984. 3. 5.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46 피난법-회개/ 마태복음 24장 27절-28절/ 1983. 10.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5 피난과 구원의 방편/ 마태복음 24장 25절-28절/ 1983. 11. 18. 금저녁 선지자 2015.12.31
44 피난 준비는 거룩과 경건/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8. 10. 30.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43 피곤하여 낙심하지 말것/ 갈라디아서 6장 7절-10절/ 1984. 7. 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2 피,성령,진리로 사는 생활/ 디모데후서 4장 15절-18절/ 1983. 10. 27. 목새벽 선지자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