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말씀 보수의 힘-양심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18일 토새

 

본문 : 계12:10-11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이 설정해 놓은 공로대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 에는 첫째로  주님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일에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다  바쳐서 일차적으로 승리를 하셨습니다. 이 승리로 베풀어 놓은 그 구원은 우리  것이 되었는데 그 구원을 택한 각자들이 다 실상으로 받아 가지는 그 일은  그리스도의 영이 이 일을 맡아서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의 영이요 아버지의 영이요 성령이신데 다만 일을 하실  때에 그 위로 나타나기를 삼위로 나타났습니다. 한 하나님 이십니다. 별다른 뭐  오묘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말은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제사장 선지자 왕을 신정국가에서  이렇게 한 그로써 그 뜻을 우리가 알지 다른데서는 찾아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요새 늘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는 그 거룩을 많이 말했는데 거룩을  해석할 때에 그 해석이 이해가 잘 안 될 것입니다. 거룩은 심히 팡범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거룩을 말해서 '거룩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면 아주 무슨 흠없는,  점없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각 종교마다 각  사상마다 거룩이라는 용어를 쓰지 안하는 곳이 없고 또 다 이 거룩은 같은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선하고 아주 선한 것보다도 더 깨끗하고, 더 깨끗한 것보다 더 깨끗한 온전함을  말하는 젓으로 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데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이라는 뜻이  거게 중심입니다. 구별해서 온전함에 도달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구별해서 일보를 바로 걸어가고 또 구별해서 이보를, 둘째  발자국을 바로 걸어가서 구별로 그에게 자라기까지, 절대자이신 자존자에게 완전  소속이 되기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거룩으로만 걸어갑니다. 딴걸로는  걸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일반 신학자들이 해석하는 것이나 신앙계에서 해석하는 모든 그 해석과  좀 배치가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거게 대한 모든 서 적들을 열람 안 했기  때문에 공통성이 있는지 공통성이 없는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깨달은 대로는 옳고 바르게 참되게 깨달 았다고 그렇게 생각은 가집니다.

 그러나 가 봐야 알지 절대성은 붙이지 안하고 제 깨달은 것을 지금 중거합니다.

 첫째 일보가 뭐이냐? '자존자가 계시고 그 다음에 모든 것은 피조물들이다,  하는 이 구별이 제일 첫째 구별입니다. 일보에서 세상 모든 지식은 다 사형을 다  받았습니다. 다 머리가 없습니다. 대가리 끊긴 몸뚱이처럼 존재에 대한 관찰인데  존재관이 다 틀렸습니다.

 존재관이 제일 일보요, 존재관에서 '우리 주님은 자존하신 분이요 오든 것은  그분으로 인해서 있다' 하는 이것이 모든 구별 중에 첫 구별입니다.

 이러니까 제가 공부를 뭐 어테까지 하든지,-그거 왜 한 사람 나가는데 자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밖에 딱, 옆에 너른 자리를 내비두고서 꽉 버투고 좀 서로  양보해 그럴 건데. 그래 가지고는 천국은 감감합니다. 기본구원은 얻어도  성화구원은 감감해요. 뭐 어떻게 강퍅하고 완패한지? 암만 봐도 주님의 재림이나  뭐 멸망밖에, 매밖에 올 게 없어. 암만 죽는 사람을 살릴라고 말해도 그 강퍅을  부리고 완패를 부리고 있으니까 그저 하나님의 징계밖에는 약이 없어.

 죽는 데 이르러서는 안 될 것이고,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안 될 것이고  회개하면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징계도 하나님이 주셔서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 거룩한 행실, 공부를 하면서도 제가 '모든 존재에는 자존자와 또  피조물이 있다. 원인 없는 분은 그분 한 분뿐이요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

원인은 그분이 원인이다.' 이것을 제가 꽉 배서 이 지식이 자기를 딱 주관하고  있으면서 그 다음에 존재에 대해서 뭐 새터러기는 무엇이 있고, 잔디에는 무엇이  있고, 또 나무 잎파리에는 줄기가 어떻게 생기고, 세포가 어떻게 있고 한 그런  걸 연구하지, 그까짓 거는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고, 그것 없을 때는 병 없었고  그게 있음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더 노고를 주는 것뿐입니다.

 이자들에게 그냥 냅두면 안 될 터이니까 자꾸 병을 더 딴게 해서 연구 또  연구해서 그 연구에 연구가 죽음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뿐이지 거게서 생명으로  옮겨져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생명 이하요. 그러니까 어떤 무신론자가  강의를 하든지 어떤 과학자가 강의를 해도 먼저 '이것은 다 원인 있는 것들인데  자존자 우리 주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하는 그것이 자기의 기존  지식에, 선입적 관념에 강하게 있으면 그것의 오묘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더 존대가 돼지지 주님 버리고 그리 가지를 안합니다  요새 보면 탐심 중에는 자식을 공부를 시킬라고 하는 그 공부의 탐심 또 제가  공부할라 하는 공부의 탐심은 죄 아닌 줄 아는데 그 탐심이나, 남의 것  도둑질하는 탐심이나, 남의 아내나 남의 남편을 욕심내서 도둑질하는 그  탐심이나, 뭐 그것 얻기 위해서 서로 맞서면 죽이고 하는 그것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다른 것인 줄 압니까? 그것은 무슨 의로운 것인 줄 압니까? 아니오.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이 지식 탐심을 가지고 마구 사람을 전멸을 시키고  있습니다, 전멸을. 탐심은 뭐이 탐심이냐? 그것을 마땅히 하나님이 소원하도록  가지도록 욕심을 내도록 하는, 하나님이 욕심 내게 한 것은 성령의 소욕이요,  그건 안 하면 죄가 됩니다. 공부도 하나님이 '네가 해라' 하는 그 공부는 안  하면 죄가 됩니다. 그러나 탐심은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는 것을 제 욕심에서  하면 탐심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 아닌 것은 물질이든지  뭐이든지 그것이 탐심이오.

 탐심을 버리라. 그런 것들이 많고 적은 데에 네 행불행이 있는 것 아니다. 탐심  그것이 언제까지 너를 삼킬 줄 아느냐? 네 생명을 부르는 그 시간까지 그놈이  너를 붙들고 네 구원을 절단낸다. 절단내다가 구원 이룰 남은 시간이 없을  그때는 해방 준다. 그때는 해방주니까 그놈에게 해방당하니 네가 정신차려서  '이제 구원 이루어 보자' 했지마는 즉시 그 시간에 부르니까 가야 되는데 뭐이  되느냐?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일차적으로 주님이 생명을 내놓고, 생명은 최고 것 인데 최종  것인데. 이걸 내놔 가지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아버지를 바라봄으로 그의 계명  지키는 일에 전부 다 투자한 이것으로써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야 해방시킬 수 있는, 사망의 원인되는 그 죄가 아버지를  무시하고, 사랑하는 대신에 무시하고 또 그를 의지하고 바 라보는 대신에 저를  자기를 스스로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에게 복 종하는 반대로 제 자율대로  주관대로 산 것으로 죽었기 때문에 주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는 데에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그를 전적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과 그에게 복종하는  이것으로만 대속의 방편이 되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요사이 늘 말하고 벌써 우리 서부교회는 이 년 전부터 기도 시작할  때에 거기 대해서 말해 나왔습니다. 요즘에는 조금 뜸한데 아무래도 우리가 다시  기도를 시작해야 되겠고 회개를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말한 대로 여게 대해서 준비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알 것이오.

그에게 섞인 재것이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 또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  또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이것이 자기에게 이 루어진 자는 환난이 오든지  말든지 거게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이  준비가 되지 못해 가지고 멸망 가운데 그대로 머물고 있는 그것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

 제가 요새 그런 데 대해 설교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 아닙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 아니오. 이거는 당면한 문제를 예언하고 있는 것인 것을 알아야  한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눈을, 마음의 눈을 밝혀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는 간구를 늘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육십오 권을 총괄해 가지고 결론해  놓은 것인데 그 전체를 전면적을 자기가 관찰 하는 이 전체 관찰이 없으면  계시록 해석은 못 합니다. 왜? 그거는 국부적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해서 나타난 것, 은밀한 것, 상관없이  거리 먼 것, 그 모든 것을, 전체를 볼 때에'하나님의 동향이 어떠하냐?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계획하고 어떻게 섭리하고 계시느 냐?' 하는 이것을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기 이 시대를 구별하는, 시대에 대해서 거룩을 가지는 것은 이것을  구별해야 그 시대에 대해서 거룩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라 잘못 알면 잘못 예언해서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명을  당할 것이고 또 없는 것을 더 가해서 과대하게 증거하면 성경에 기록한 그  형으로 더 과대케 할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 성도의 걸음은 거룩입니다.

거룩은 자꾸 구별해 가지고 옳은 데에 도 달한 것이라 말이오.

 존재에 대해서는 구별하다가 '창조주가 있다. 모든 거는 피조물이다.' 이러면  존재에 대해서는 거룩한 행위, 거룩한 사상, 거룩한 지식이 됐습니다. 제가  아무리 뭐 천하 걸 다 알아봤자 지으신 분 모르고 무엇이 이건 이렇다 저렇다  암만 해 봤자 지으신 분과 그것과의 관련에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데 그것  모르면 사망이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전부 세상 지식이 배암의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인데, 배암의  지식 죽이는 지식. 그러면 그 지식은 궁극적으로 그 지식의 주인은 누군가? 그  지식은 궁극적으로는 누가 내놓은 지식입니까? 궁극적으로 주님이 내놓은  지식입니다.

 주님이 마귀를 시켜서 이렇게 했는데 마귀 저는 제 욕심 가지고 제 소원 이루기  위해서 했지마는 하나님은 마귀가 일으켜 놓은 수많은 모든 지식, 천하 인간을  다 통솔하는 높으고 넓고 오묘하고 깊은 지식이 지식은 아무도, 이 지식은  죽이는 지식인데 이 지식에 삼키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로로 대속함을 입어 어떻게 된 자가 이 지식을 이용해 먹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한 자가 이용해 먹을 수 있지요? 이것은 다 주님의 피조물  세계 내에 있는 자는 다 삼키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면서 피조물을 초월한,  만물 위에 있는 교회, 하나님과 연결이 바로 되어 이런 것올 탁월한 다른 아주  고차원의 것이 되는 그 신앙으로 할 때에는 마귀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마귀가 이용물이 되기 때문에, 마귀의 지식을 능가한 초월한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분과 연결돼서 피동하는 요 믿음의 모든 행위는 마귀가 제 욕심을  위해서 인간들을 멸망시키는 그 모든 지식을 내놓은 그 지식을 다 이용해서  밥으로 먹습니다. 다 이용해서 밥으로 먹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귀에게 허락해 줘서 마귀 그놈은 제 본 질이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 놔서 하나님과 이간이 되도록 하는 지식, 하나님  배반하도록 하는 지식, 하나님 대신 무엇을 보게 하는 지식, 인간의 총명과  지혜를 다 삼키는 지식을 만들어 놨는데, 전부 인간은 다 죽는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귀속되게 하는 요 귀속함을 받아 가지고 법적으로는  받았지마는 실질적으로 받아 가지고 언행심사를 하는 그 모든 것은 그절 능가한,  그걸 지배한, 마귀에게 그것을 허락해서 그보다 아주 완전한 차원에 있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이용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세상 지식을 지배할 자가 없습니다. 그것을 이용할  자가 없습니다. 그걸 좋게 이용해서 밥으로 양식으로 먹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먼저 믿음에 있나 없나 믿음을 가지고 세상 지식을 보면  밥이 되고 믿음 없이 세상 지식을 대하면 그것에게 삼켜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가 이 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할 수 있는 탁월한  그 위치가 섯도의 위치인데 그 위치를 가지면 이것이 양식이 되어지고 그 위치를  가지지 못하면 다 삼키워지도록 하기 위 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해 놓고 다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고 믿음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것만이 이런  것들을 다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양식이 되어지는 그런  결과를 맺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그저 짧은 시간에 여러분들이 또 가면 언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니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래 말하는데, 이렇게 주님이 일차적으로 승리할  때 이렇게 승리해 가지고 우리에게 입혀 주신 이 공로를 내가 영원히 입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은 현실인데 이 현실에 이기는 방편이 뭐이냐? 주님이 이기신  그 방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주님이 이기신 그 방편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안 벗을 수 있고, 안 뺏길 수  있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그렇게  했는데 성도들도 이래 가지고 마귀를 완전히 이겼다 그말이오. 예수님이 이겨서  마귀에게는 예수님이 부리는 신이 돼 버렸습니다. 됐으나 아직까지도 성도들은  마귀를 부리는 마귀의 주인공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여게 보니까 성도들이, 여기 예수님의 피를 말했습니다.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예수님의 구속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구속과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자기의 증거하는 말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말씀이라고 했으면 알기가  쉬울 건데 말이라고 해 놨는데 이거는 자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을 자기가 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는 말만 해라 했는데 그말이  곧 성경 말씀이라 그말이오.

 이런고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이 말씀과 예수님의 피공로를 자기가  믿고 순종하는 요것으로만 생명 내놓을 수가 있지 그것 아니면 못 내놓는  것입니다. 내가 요새도 여러 사람을 내가 접촉해 가지고 '너는 일을 하는데 네가  불타지 아니할 것으로 네가 일하지 않는다. 또 너는 신앙 생활을 해도 불타지  아니할 것으로 네가 신앙 생활하지 않는다. 내나 이름만 달랐지 세상 것 가지고  네가 일하고 다 한꺼번에 불타고 말,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한다. 모래 위에 지은 집 곧 모래같이 수많은 인간들이 토대가 돼 가지고  그것 토대 위에서 건설한다. 네가 보면 내나 안 믿을 때 있던 그 도덕성, 그  사회성, 그 윤리성, 그 정치성, 그 통솔성, 그 포섭성, 그 웅변성, 모든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그 설복성 이런 것 가지고서 일하니까 아주 효력도 많고,  많은 것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네가 영감과 진리에 붙들려서,  뭣에게 붙들린 게 아니라 영감과 진리에게 붙들리고 그 영감과 진리가 너를  주장새서 그에게 피동되는 힘으로 네가 하는 일이 없다. 네 구역이 부흥이지마는  그게 다 쭉정이다. 네가 신앙을 잘하지마는 쭉정이다. 목회를 하는 교역자들도  전부 이것 가지고서 지금 하고 있지 영감에게 붙들리고 영감이 주는 힘, 진리가  주는 힘, 이 힘 가지고 하는 자들이 드물다.' 이것을 내가 여러 사람에게 말을  해 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결론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의 신앙은 우리 주관에는 양심이요  객관에는 영감인데 객관인 그 영감을 우리 주관인 양심이 받아 가지고, 이래서  '죽기까지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신앙을 지켜 모두 이겼더라' 이기니까 마귀  이놈이 쫓겨났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양이 차야 마귀가 쫓겨나지 일차적으로 공중에서는 주님이  이기시고 난 다음에 쫓겨났지마는 땅에는 아직까지 있는데 우리가 이기면 이게  쫓겨나 버립니다. 제 위치를 잡지 못하요. 이러니까 우리 우주에 쫓겨나면 그는  지옥밖에는 갈 데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 하나 전투해 가지고 영계와 이 우주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과 상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 했는데  점령한 그것이 내나 무궁세계의 자기의 활무대요 자기의 점령지입니다.

 이런데 다 이렇게 예수님의 피, 주님이 입혀 주신 사죄를 벗지 아니하고,  칭의를 벗지 안하고, 화친을 벗지 안하고, 사죄 받은 자로 칭의 받은 자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이 된 자로 이대로 살려고 하니까 있는 것 다 내놓고  마지막으로 생명을 줘도 안 내 준다.생명은 줄지라도 나는 이것은 주지 안한다.'  그것이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싸운 자입니다.

 또 이렇게 구속하시고 유일의 법칙이 되시는, 이 구속을 입고 벗지 안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고 법칙이 되는 주의 이 계명의 말씀을 내가 생명을 줄지라도  내어 주지 안한다 함으로써, 마지막에 생명을 다하 기까지 함으로 그들을 다  이겨 가지고 그들이 다 쫓겨나가 버리고, '참소하는 자가' 우리를 미혹시키고  우리를 와서 살살 꾀우고, 우리를 살살 꾀우고 난 다음에 또 주님 앞에 가  가지고는 '이자가 이리 이리 해서 지금 범죄했습니다. 이건 주께 속하지  안했습니다.' 그게 참소인데 여기 보면 교인들도 마귀 형상을 가지고서 그  참소해서 눈 앞에 와 가지고 알랑알랑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줄 알아. '그래'  이래 말 안 해도 그 말로 인해서 그 사람을 측량합니다. 말을 할 때에 이 사람은  나타난 말로 인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측량할 수 있고 말과 마음과 행동을  겸해서 측량하면 그 사람의 사람이 된 사람됨이 어떻다 하는 것을 측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관에는 양심인데'생명을 애끼지 아니하고  어린양의 피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그 때문에'생명을 애끼지 아니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다 마귀를 쫓아냈고 이제 우주를 점령을 한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하고 난 다음에 공중에 권세잡은 자가 공중을 뺏기고 쫓겨났습니다.

이제는 성도가 승리함으로써 지구상에 있는 이 모든 우주에까지 그가 다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 다 우리가 주님의 피를 인하여 하나님의 교훈이요, 예언이요,  약속이요, 권면인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자기의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애낌없이, 그것은 원수에게 빼앗길지라도 원수가 그 것은 가져갈지라도 이것만  놓지 안하면 그것은 다 완전한 것으로 성화되고 영생의 것으로 변화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손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다해서 싸워서 이기고 싶은  마음은 성도들이 다 가졌습니다.

 다 가졌는데 어떻게 해서 그게 안 되느냐? 안 되는 이유는 객관의 은혜가  모자라 그런 게 아니라 자기의 주관의 고장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주관의 고장이라니? 자기가 이 승리는 마지막에 자기의 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이것을, 우리의 인격 요 소이면서 순전히 제  삼자와 같이 자기에게 털끝만치도 제재를 받지 안하고 자기에게 대해서 냉정되고  공정되게 판정하는 양심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랑을, 지혜를, 능력을,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하는 것이 자기 양심에 확실히 인정이 될 때에, 인정이  될 때에 그것이 영감이 협조해서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오.

 그러기에 모두 다 어떻게 생명을 내놓고 이렇게 담대히 이길 수 있느냐 하는 그  담력이 어데서 나오느냐? 양심에서 나옵니다. 그 평강이 어데 나오느냐?  양심에서 나옵니다. 그때에 양심이 인정하는 거기에서 담력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기쁨도 나오고, 즐거움도 나오고 용기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말하면 자기 주관이, 자기 주관에, 중생된 영은 내놓고 우리  심신에 대해서 자기 주관에 최고의 절정, 최고 절정에 제일 최고 결의, 최고의  판정 그것을 양심이 하고 있는데 양심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이것이 껍데기로 제가 아무리 해 봤자 양심 판정이 인정 안 해 줘. '너는 믿지  않는다.' 이제 자기 양심 판정이 틀림없이 믿는다는 믿는 그것이 양심이 인정을  하고 양심이 증거해 줄 때에 양심 밑에 속한 모든 마음들은 평강을 가지고  담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때 환난을 이긴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맡기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것 가지고  이깁니다. 그것 아니고 뭐 제가 결심이나 작정이나 의지나 무슨 세상과 같은  그런 마구 생명 내놓은 결사적인 그런 것이나 그것 가지고 안 됩니다.

 왜? 세상에 결사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생명 내놓는 것은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생명을 내놓지 안할 수 없고 안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 죽음을 행하면서  그 일을 하지마는 거게서 살 길 있으면 다 살아나옵니다. 우리는 살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죽는 길은 좁은 길이요 하필 살 길이 많은데 이리 가지 뭐  할라고 이리 갈 게 뭐 있느냐 하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믿으며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의지하고 어떻게 그에게 소속해서 그와 같이 밀접히 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이것을 우리 속 양심이 인정을 할 때에 인정하는 거게서부터  담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평강이 나오고. 그게 아니면 안 됩니다.

 자기가 아무리 뭣으로 가지고서 그렇다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냉정스럽게 우리 주관 안에서 내 요소이면서 내게 대해서 냉정스럽게 공평되게  판단하는 그 요소를 가리켜서 양심이라 빛이라, 우리에게 있는 빛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때에 스톡 박사가 미국에 있는 칼빈신학교의 윤리 교수라든가  왔는데 그때 한국에 온 중에는 제일 인기를 크게 끌었습니다. 그분이 해석하는  데는 양심을 인적 요소로 보지 안하고서 하나님과 인간 그 사이에 하나님의  심부름꾼의 요소로 그렇게 봤습디다. 아주 많이 연구했어.

 연구한 것은, 왜? 인적 요소이지마는 자기에게 대해서 사를 부리지 안하고  자기에게 대해서 냉정하고 아무 상관 없는 것과 같이 그렇게 냉정스럽게 공평을  가지고 역할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는 자연의 라 이요 그젓이 양심 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양심이 인정하는 인정에서 그 인정에서 안심이 되고 평안이  오고, 옵니다.

 사람들이 환난을 만날 때에 내가 그때에 참 나를 구속하신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 주를 위해서 죽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기쁘고 뭐 즐겁겠소?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라고 섞인 것 없이 주님만 위해 죽는 것이라고 할 때는  사람들이 용기가 납니다. 아무라도 용기가 납니다. 그러나 거게 '네가 죽되 뭣뭣  때문에 죽는다' 하는 그런 것이 있으면 그때에 떨립니다.

 마귀는 예수님도 '이 세상 나라를 점령하려 하기 때문에 너를 십자가 못박아  죽인다' 이렇게 거짓말로 덮어 씌워 가지고 말했지마는 주님은 그러거나  저러거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대로 나가시니까  승리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유혹한다고 해도 '네가 그런 게 핑계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나를 주 믿는 사람으로 주님 때문에 내가 구속을 벗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내가 지금이라도 벗어놓으면 네가 그와 같이 할  터인데' 하는 그런 것으로 판정을 지워서 그 유혹을 물리쳐야 하고,  그때에 주님만 위하는 것이라 하면 용기가 나옵니다. 이 평소에도 아무라도  보면 그 사람이 '이게 주를 위함인지, 내 욕심을 위함인지, 무엇을 위함인지?'  판정이 안 날 때는 힘이 안 나다가 그 옆에 사람에게 타일러 줌을 받든지 제가  깨달음을 받든지 해 가지고 성경의 성구를 딱 보고 '아! 이게 주를 위함이다' 할  때는 약한 사람도 용기있게 싸워 나갑니다. 내나 그게 그겁니다.

 이러기에 우리 양심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그에게 수종하는  요것이 양심이 저를 인정할 때에 담력이 나오고 평안합니 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환난에 피와 말씀을 인하여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싸우는 그  충성과 담력이 어데서 나오느냐? 양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양심이 인정할 때에 그게 나옵니다. 양심이 '이는 틀림없다? 할 때 우리에게는  그게 나옵니다. 그게 뭐이냐? 양심이 인정하는 거기에 도달했을 때에 그게  되었을 때는 성령이 책임지고 거게는 연결이 돼.

 그러므로 지금 말하는 것이 예언이기 때문에 예언으로 들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 양성원에 마구 물었어. 물으니까 다 몰라. 몇은 말했다가 물으면 알까 해서  묻다가 다른 사람 바꾸라고 이렇게 하고서 이래 했는데 그 물어봐야 알런지  모르지요. 아무리 말하지만 아주 귀넘어 듣습니다.

 우리에게는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이거 여러분들 눈에 한국에 복음 운동을  이렇게 곳곳마다 섰다 하면 교회 섰다 하는 이것이 그속에 알맹이 주인공은  누군가 하는 것을 그것을 좀 살펴보면 거게서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이렇게 복음 운동이라고 짜다라 떠들고 이러는데 그 속에 있는 그것이  뭐인가 살펴보면, 제가 요새 그것을 보니까 크리스챤 신문에 뭐 한국 어린이  교육 선교회든가 뭐 세계 어건이 교육 선교회인가 뭐인가 그게 있다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를 좀 와서 중거해 달라고 이렇게 청한 그런 신문이 크리스챤 신문에  나왔는데 그것을 내가 보고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뭐인지,  이것이 뭐인지 어떤 것인지?  거게 내가 강의하는 모든 강사 진영을 볼 때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의  사람들이 없고 모두 신출내기고 이런 사람들인데 이것도 또 뭐 인지? 이러다가  결론짓는 것은 '이거나 저거나 주일학교를 바로 인도되는 것은 이거다' 하는  이것을 증거해 주는 것은 뭣이든지 불교에라도 가 가지고 증거해 줄 수 있다.

불교에도 가 가지고 중거하는 것은, 우리가 증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첫째로 아동 심리 그 비위를 맞출라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뜻을 맞출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비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일학교가 돼야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면 그까짓 숫자가 많으면 뭐냐?  첫째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비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아동  심리를 위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주로 하는 것  그것이 중거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아마 대개 현재에 주일학교의 전체에 대립이 되는 그 사상일 것입니다.

그것 쉬운 것 아니오. 왜? 세상이 문화가 돼 갈수록 세상은 자꾸 아동 심리를  기이하게 이래 가지고 거게다가 시청각을 덧붙여 가지고 이렇게 해서 하고  나가는데 미련하고 어리석게 케케묵은 것과 같은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의 그  성품이 어떠하며, 그분의 심리가 어떠하며, 그분의 비위가 어떠한고? 그분의  기뻐하는 것 이것을 찾아서 위주로 하는 되든지 안 되든지 말이라도 이렇게 하는  이것이 회귀한 것입니다.

 둘째는 모두 다 아동들의 정도에 따라서 동화를 만들고 성경을 이 렇게 저렇게  아이들 듣기 좋도록 이해하기 좋도록 한다고 해 가지고서 성경을 마구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안하고 이 거짓말을 주 넣어 가지고 동화를 해서 아이들을  기쁘게 만드는 동화 설교를 하고 있는데 동화 설교의 반대되는, 동화 설교나 뭐  연극이나 회극이나 또 뭐 무 용이나 미술이나 무슨 뭐이나 뭐이나 이런 것은  하나도 쓰지 안하고 아동 예배 드릴 때도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친다 하는  이것도 현재 없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하나는 그저 세상을 바탕으로 삼아서 세상 국민학교 학년을 이걸  기본으로 삼아 가지고서 국민학교 일학년 가는 거는 전부 일학년으로 다 모으고  이학년은 이학년으로 다 모으니까 아무리 그걸 하나 구원할라고 애를 써서  아동을 데리고 왔어도 가만히 자빠져 노는 이 아주 게을하고 못된 반사, 그  반사가 또 그게 세상 것 능한 것이, 여러분들이 세상 지식을 원하는 그것이 마귀  지식을 원하는 것이니까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수단 있고 언변 있고 그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게 있을수록 하나님의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권위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세상 학벌이나  문벌이나 무슨 선천 후천의 자격 훌륭한 사람들이 없고 모 두가 다 못났는데  그걸 들어서 하나님께서 모든 잘난 것들 그 선천 후천의 구비한 것들을 다  다스리고 지배하도록 그렇게 한다 성경에 말해 놓지 안했소?  이러니까 이게 자꾸 세상이 발달돼 나갈수록 인간 연구만 해 가지고 인간  심리에는 기이한 심리들이 다 들어서고 벌써 우리나라에 시청각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안했는데 시청각 그 교훈이라 하는 것을 가지고 거기다 가해 가지고  인간을 뭐 놀래게 합니다, 아이들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하나님 말씀만  가르친다는 것, 또 이 국민학교를 기본해 가지고 '국민학교가 그러니까 거기  따라가자'우리는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세상 학문을  배우는 데는 그 제도를 따라가지마는 교회 예수 믿는 것을 그 제도 따라갈 것이  뭐 있습니까?  이런데 그 제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가 구원하고자 하는 불타는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서 한 아이라도 구원할라 하면 그걸 인도하는 데는 힘이 많이  들었는데, 그것 참 제가 낳은 것인데, 제 새끼인데, 이걸 저에게 맡기면 제가  알뜰히 기르지마는 힘들억 구원해 가지고 이 고아원 원장같은 이런 반사에게  갖다 맡겨 놓으니까 그까짓 거 힘 안 들어도 우 왔다가 하는 것 거게 애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구출해 놓은 자기에게 소속된 그 반사에게, 아직 까지  어리니까 남녀 공학으로, 그에게 소속을 시키자. '그것이 뭘 아는가? 일학년은  일학년 대로.' 내가 어떤 교회 가 보니까 일학년 교실이라도 따로 딱 지었어.

OOO교회 가니까 '여게는 주일학교 일학년 교실입니다' 따로 딱 지어 가지고  가르치고, 철저하게 야나지게 했지마는 그게 실은 성령 부인이오. 성령  부인입니다.

 장년반은 국민학교도 한글도 모르는 사람과 최고의 학자와 한 자리 놓고서  가르칠 때에 나중에 문답해 보면은 일자무식이 답을 더 잘하고 더 깨닫고 신앙  생활은 그 사람이 더 잘하고 이 세상 지식 많은 사람은 그 지식으로 다 삼켜져  버리고 마는데.

 찍해야 이것이 많이 차이 있어봤자 육 년 차이밖에 더 있소? 육 년 배우고 안  배운 그 차이밖에 더 있소? 저거는 몇십 년 차이 있는 것도 한테 놓고  가르치는데. 이것이 마귀에게 눈이 어두워 그렇다 말이오.

 이러니까 통반으로 제가 인도하는 것을 제 인도하는 반사에게 붙 이니까 제  새끼니까 제가 인도할 때에 힘들었으니까 이걸 놓지 안하고 어쩌든지 그걸 기를  만치 애써 기르니까 자라는데 이걸 그만 세상 본을 떠서'이거는 국민학교이기  때문에 그걸 기본으로 해 가지고 그리 붙 이자' 하는 이 시작부터가 세상이고,  하나님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고, 아동 심리 저거 힘으로 다 한다는  그거라. 이것을 하지, 이게 다른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에게 뭐 오늘 주일은 이 반사 선생님들 애썼으니까 이 김 장로가  한 턱 낸다, 또 다음 주일은 이 장로가 낸다. 장로들은 돈벌어 죽자껏 벌어  가지고 한턱씩 내면'아이구, 장로님 오늘 잘 먹 었습니다.' 그것이 장로 노릇  하는 것인 줄 알고 이렇게 해서 하는데 대접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대접을 하니까 그 사람들도 가다가 시험에 들었을 때는 치료가 안 돼. 왜?  '네가 왜 이렇게 안 하느냐? 다시 힘을 내서 해라.'해도 그게 병이 들어 가지고  치료가 안 됩니다. 치료가 안 돼.

 안 되면 밥을 더 줘야 되겠소. 대접을 더 요리를 더 값비싼 걸 줘야 되갰소. 더  큰 선물을 해 줘야 되겠소. 이러니까 슬그머니 돌아오는 그것이 마귀로  세상으로"멸망으로 된 것이지 그게 뭣으로 된 것입니까?  이게 병들어 놓으면'내가 뭐, 예물 여기 있습니다. 내가 그것 다 사  드리겠습니다. 내가 그것 보고 내가 다녔습니까? 내가 이런 모욕을 내가 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 대접 보고 뭐 밥 얻어먹고 요리 얻어먹으러  다녔습니까?' 치료가 안 돼. 안 되지만 그것 다 안 하고'너거가 주님이 너한테  했으니까 주님에게 사랑을 은혜를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님이 너한테 했으니 너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되고 주님이 또 이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살았  으니까 네가 형제를 사랑하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 이것으로써 대접 하나도 안  하고 이것으로만 하는 자는 치료가 잘 돼.

 나중에 병들어 드러누워 시험에 들었을 때 '너 애, 너 뭣 보고 했지? 명예 보고  했어? 돈 보고 했어? 누구 친절이나 인간의 사랑 보고 했어? 뭣 보고 했어? 주님  보고하지 안했어? 주님이 변하더냐? 네 구원이 변해졌느냐? 하늘나라가  변해졌느냐? 네가 주님과 하늘 나라의 소망만 바라보고서 네가 부족하지마는  죽도록 하고도 주님 바라보니까 또 무익한 종이라, 생명을 다 바치기 전에는  빚진 자로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래 했는데 네가 왜 변해져? 네가 썩었지 다른  것이 썩었느냐?' '잘못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게 되기 때문에 요 네  가지를 말합니다.

 요 네 가지는 세상 주일학교와 정 다른 것이오. 정반대입니다. 거기 없습니다.

이게 쉽게 나오는 줄 압니까? 쉽게 나오는 것 아니요, 이게. 그렇게 알고 나면  쉽지만 쉬운 것 아니라 그말이오. 그대로 해 보십시오. 이런데 오늘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말씀해 주는 것을 다 예사로 여기고'이까짓 거는 뭐 성경에서 나온다'  나는 무식을 자랑합니다. '국민학교 오학년밖에는 안 했다.' '그까짓 것에서 뭣  나오겠노? 그 무식해서. 무식해서.' 내가 무식해도 세계 학자들이 적어 놓은  글을 써도 보면 뼈다귀 없는 것, 또 대통에 물 쏟듯이 바로 갔기 때문에 요리  조리 해서 마디가 없어서 박력이 없는 것, 변증이 없어. 요래 삐끄러진 건  요게서 마귀가 나을 것이기 때문에 그 변쯩하는 파수꾼 하나 세워놓고 요래 해서  요래 조래 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면 알지.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아무래도 개인 준비를 하든지 전체  준비를 하든지 어쨌든지 우리는 자기 있는 걸 다 내놔서 피와 말씀을 보수하는  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 사람이 되는 데는 그 힘이 양심에서 나옵니다.

양심에서 나온다 말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속한 그것이 양심이  증거를 해 주는 거게서 나온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을 사랑하는 여게서  힘이 나옵니다. 여게서 힘이 나오고 거게 대해서 바로 됐느냐 운전을 바로 해서  조절을 바로 하고 그것을 바로 법칙을 바로 하는 것은 이제 성경 말씀이오. 성경  말씀은 거게다 연결시키는 연결 중매 역할을 하고 또 연결된 이것이 모든  세상에게 반포될 때에 그 방꾄을 바로 하도록 하는 것이지 진리가 우리에게 근본  아닙니다. 하나님이 근본이요 그 다음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역사는 같이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만하지 말고 어쩌든지 회개해야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제일 분개하는 것은 번연히 그 말로 인해서 죽는데 그 행 동으로 죽는데 제  물질을 인해서 제 욕심을 인해서 제 무엇이든지 제 욕심을 인해서 번연히 그  사람에게 믿음에 손해가는 줄 알아도 그것을 고치지 안하고 그것을 구출하지  안하고 요렇게 하는 거게 대한 복수가 큽니다. 복수가 큽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심판받을 때는 전부 저 위하는, 말하기를 유다 서에는  e경건이 아넌 젓을 다 심판한다" 그렇게 말했어, 경건이 아닌 것을. 경건 아닌  게 뭐 입니까? 경건 아닌 것은 피조물 위하는 것이지. 그게 악이지 악의 해석  악의 정의도 그게 쉬운 것 아니오. 그렇게 천권 만권 책을 읽는다고 그게 나오는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아주 멸시해. 선지자가 고향에 있어서는 대접받지 못한다는 그게  자기에게 가까이 있으면 멸시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지 앉는다 그말이오. 암만 예언을 말해도 인정하지 안해. 인정하지 안하고  제게 듣기 싫은 소리만 하니까 자꾸 미움만 자꾸 커져.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아주 외식이오. 아주 외식입니다. 전부 껍데기요 무슨 힘으로 하는지  자기를 시험해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에 이 모든 신앙의 담력과 능력이 용기가 나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되는데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나오는 그 것이 내 양심이  인정을 할 때에 거게서 나옵니다. 양심을 통해서 나 옵니다. 양심이 나를 인정할  때에.

 그러니까 제가 강제로 하고 싶다고 해 가지고 그것 되는 것 아니라. 인정도  뭐이냐?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꼭꼭 지키겠다는 그까짓 거 가지고는 안 돼. 이제  하나님이신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그분을 성경이 말한 대로 자존자신 분,  지존하신 분, 목적을 정하신 분, 예정하신 분, 창조하신 분 모든 걸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주권적 개별 섭리까지 하시는 이분으로 아는 그것이 양심에, 양심에,  양심에 인정이 될 만치 양심에 가책 없이 양심이 '나는 확실히 이래 믿는다' 할  때에 거게서 나옵니다.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다만 조절해서 바로 잡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오. 진리는 길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를 해서 이 전체가 구원 얻으면 좋고 그렇지 안하면  개교회 개가정이라도 개인이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라도 구원을 얻어야 됩니다.

뭐 미국 가면 줘을 줄 아요? 아니오. 미국이 먼저 절단날런지 모릅니다. 왜? 볼  때는 미국이 더 타락했습니다. 더 타락이 됐어. 안 믿는 사람들은 상관하지를  안해.

 일본은, 일본에 있는 교회는 타락하지 안했어. 일본에 있는 교회는 제일, 아마  나라적으로 교회는 일본에 있는 교회가 타락이 제일 덜 됐다 그렇게 저는  봅니다.

 왜? 거게는 조총련이라는 공산주의 운동이 자유로 이렇게 있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딱 점을 쳐서 지하 운동하고 납니다. 요 자리는 딱 선을 그어놓고  '자, 요만차 점령하자.' 하면은 그 안에는 말 없이 지하 운동으로서 '저  상점에는 물건을 사지 마라. 물건을 사면 너는 골로 간다. 사지 마라.'  이래 가지고서 그러니까 그것이 조총련에 감염돼 들어오든지, 외식이라도  포용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납니다. 이래 가지고 점령 점령으로  요렇게 철통같이 해서 점령해 나가기 때문에 교회가 그것 보고 떠날 수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지킬라 하니까 밤낮 생명 내놓고 있는 것이 일본에 있는  교회입니다.

 억지로 그래 가지고서, 일본 교회가 제일 비빔밥 교회인데 지금은 깨지  안하고는 못 되기 때문에 공산주의 때문에 제일 바로 직접 마찰을 날마다 하고  있는 것이 일본에 있는 교회요. 미국은 그런 게 없습니다. 영국도 그런 게 없어.

평안해 가지고서 지금 참 아주 낙관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북이 남한을 이래 가지고 있는 이것보다도 이제 소련이 미국을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이 더 큽니다. 뭐 한국 먹는 이런 거는 지금 생각도 안 하요.

포프라는 사람은 '원수 없는 평화를 이루겠다'그러니까 모든 백성들이 다 원수는  다 멸해지고 저거만 살게 한다 하니까 뭐 두말 할 것 없이 전부 다 포프에 다  그리 집중됐습니다. 처음에 선언한 것이 그 사람이 그 선언이오. 이러니까  미국에도 하나님께서 회개 안하면 안 된다는 아마 그걸 이제 얼마 안 가서 보일  것이오.

 그러므로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회개를 재촉하고 믿음을 재촉하는  것이니까 이때는 지금 이걸 해야 되지 뭐, 실은 교회 부흥은 뒤로 두고 이 일을  하면은, 이 일을 하면은 당신이 '여게는 내 피로 구속한 자를 보내면 되겠다  싶으면 당신이 보내. 사람 모으는 거기다 주력하지 말고 어쩌든지 지금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상대하고 있나?' 그분을 알아서 그분을  찾아야 돼. 그분을 찾아 가지고 그분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면 교회는 될 대로 될  것입니다.

 참 무서운 일 많습니다. 요 부근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교회는 백오십  명으로부터 삼백 명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게 성경적이고 올바른 교회다.' 하는  이 물이 나와 가지고, 먼저 전국에 평신도들의 통계를 맞췻는데 그 통계에 뭐  육십프로라 하던가 얼마가 '교회는 오백 명 이상되면 안 된다. 그 이하라야 된다  하는 것을 온 교인들이 다 원하고 있다.' 아버지가 보내면 오백 명이고 오천  명이고 제가 뭐 제가 한정을 정할 것이요? 그것도 건방진 일이고 또 어떻게  한다는 그것도, 그거는 주께 맡겨놓고 우리 할 일은. 바로 증거할 것, 바로  증거할 것, 회개해야 됩니다.

 먼저 내가 그 세 가지를 말했는데 죄악이 관영해 가는데 회개가 교회에 없다는  것 그게 하나고, 하나는 모두 다 그런 거는 생각지 안하고 저거 행락에 급급해서  지상 천국을, 지상 저희들의 행락 달성을 더 할라 하는 이 모든 평화로만 가지고  있어. '하나님이 하나님이 계시니까 무슨 일 있노? 아무 일 없다.? 이래 가지고  교인들이고 뭐이고 어쩌든지 그런 것은 하나님의 진노는 보지 안하고'이 세상에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올라가고 영광스럽고 더 평안해지고 더 잘 먹을까?' 하는  전부 이 세상 사람들 구멍가게나 정권 잡을라 하는 것이나 꼭 같습니다.

 이러니까 이 둘이 멸망할, 하나님의 몽둥이를 맞을 원인 중에 둘이 돼 가지고  있고,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뭣한다고, 서울에 그 모두 올라가, 가치가 올라 그런  것 아니오. 전부 인재도 서울로 다 모이지, 재물도 다 모이지, 기술도 다  모이지, 능력도 다 모이지 전부 다 서울로 집합해 있어.

 그 서울에 벌써 사람들의 재물로 말하면 한 왈구 할이 몰려 가지고 있어.

인재로 말하면 칠팔 할이 모여 가지고 있어. 그것만 없애버리면 뭐 문제 하는  것은 뭐 문제거리는 다, 나라에 지저분하게 나라에 골 치거리는 다  없애버립니다. 공산주의도 오면은 그런 건 다 없앨라 합니다. 놀고 어쩌든지  저만 좋아하도록 할라고 자꾸 이래 하는 자기 위주로 행락으로 말썽만 일으키고  하는 그런 것은 공산주의가 오면 다 숙청거리요.

 이제 권세는 제일 세력은 잡고 있다 그말이오. 이는 다 그 자리에 다 모였으니  이것도 하나의 징조 중에 징조입니다. 바로 총 앞에 꽝 거리면 다 그럴 것, 꽝  거리면 거게서 뭐 쏘아도 이래 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서울인데 여기서 쏘면  이것 너머, 여게 이것인데 이 너머, 이 너머 그만 다 직접 직사로 이까지  옵니다. 자꾸 여기 떨어지면 여기 건너가는 건 다 죽을 터이니까 여기 끊길 것  아닙니까? 이래 끊겨 나고 이것이 포위될 것이다 하는 것을 미국에 있는 세계 이  전쟁에 대한 연구하는 권위 있는 박사가 그렇게 발표를 했데요.

 '한국에 지금 이거 모든 계획은 틀렸다.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계획은 그 계획이  틀렸다. 이러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빨리 서울에서 뒤로 후퇴를 해  가지고, 작전상 후퇴를 해서 직접 단번 사격에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후퇴를 해  가지고서 분산돼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때는 일곱 도시니 여덟 도시니  분산된다 하다가 그만 박 대통령 죽고 난 다음에 뭐 지금은 올림픽이고 다  이러니까 문제 없다 평안하기만 줘 아하는 것이니까 염려가 된다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어찌됐든지 우리가 국방하는 것은 믿음과 회개 외에는  다른 것 없습니다. 믿음과 회개를 가지고 우리가 기도에 발동하는 그것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뭐 전도보다도 이게 급합니다. 이걸 외쳐야 되고,  교인들 뭐라 해서 그저 안 되면, 하다가 실괘하면 자기 생명 내놓고 개인이라도  승리할 수 있는 이것이라도 만들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뭐 죄악이 어떻게 관영한지? 사람을 꾀워서 요래 요래 가지고 달 래서 내가  어제도 어떤 중간반 반사 하나 놓고서 야단을 쳤습니다. 너 반사 하지 마라  그따위 행세 할라거든.' 어데 세상에 쓰던 그런 더러운 버르징이를 하고  있느냐고서 내가 야단을 쳤습니다. 사람에게 양식을 줄라고 하지 안하고  몽둥이로 뚜드리는, 그 사람의 신앙과 하늘의 소망을 절단내는 이 행실을  수단이요 능력인 줄 알고 하고 있다 그거요.

 깨야 됩니다. 지금은 위급한 때입니다. 그저 자기 양심이 과연 하나님을 성경이  말한 그대로의 그런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 주님의 크심을 양심이  증거할 만치 믿느냐? 안 믿어. 그의 법칙이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을  못 한다는 이 권위를 인정하느냐? 자기 양심이 인정을 안 하면 그때 양심이  속에서 말해. 너는 인정 안 한다. 안 한다. 안 한다.' 할 때에 자기는 무엇으로  잡을 도리가 없어. 자기 양심이 자기를 인정해 줘야 돼. 양심은 우리에게  매수당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라고 내게 매수당하지 안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연의 라으로 사람 속에 양심을 주신 것입니다. 인적 요소지 마는  인적편이 아니오. 사람편이 아니라. 공평을 주장하는 것이 양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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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갈라디아서 5장 16절-18절/ 1985. 1. 2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8 피동신앙-객관신앙/ 누가복음 17장 5절-6절/ 1985. 12.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47 피난준비/ 다니엘 6장 10절-13절/ 1984. 3. 5.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46 피난법-회개/ 마태복음 24장 27절-28절/ 1983. 10.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5 피난과 구원의 방편/ 마태복음 24장 25절-28절/ 1983. 11. 18. 금저녁 선지자 2015.12.31
44 피난 준비는 거룩과 경건/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8. 10. 30.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43 피곤하여 낙심하지 말것/ 갈라디아서 6장 7절-10절/ 1984. 7. 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2 피,성령,진리로 사는 생활/ 디모데후서 4장 15절-18절/ 1983. 10. 27. 목새벽 선지자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