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살을 기념


선지자선교회 1979년 9월 25일 화새

 

본문 : 요한복음 6: 53-5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오늘 아침에 기도하는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서 더 낮아질레야 더  가난해질레야 더 자를 넣으면 알아 듣기가 쉬운데 낮아질레야 낮아질 수 없는  낮아진 가난해 질레야 가난해 질 수 없는 하는 그 뜻은 그런 뜻이 포함되었는데  듣는 사람이 가난해 질 수 없다 이러면 그 더 가난해 질 수 없는 그 위치는  위치인데 더 자만 하난 더 넣으면 다른 사람이 듣는 사람이 더 확신을 하지요.

기도를 바로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영을 가지고 있고 또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그  마음을 나타내고 마음은 영을 나타냅니다. 몸보다 마음이 굉장히 빠르고 힘있는  것이고 또 마음보다 영은 무한히 빠르고 힘있는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마음은 영을 나타내고 몸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떤지를 그 몸의 모든 지체와 피조물이 다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쉬지않는 마음의 활동이 있습니다. 몸은 움직이는 것이 둔하고  늦어도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빠르고 또 쉬지않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연상에서 연상으로 이것 생각하면 그 다음에  또 어어서 이어서 다른 것을 생각하는 그런 연상 연상에서 굉장히 빠른 활동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조심한다. 그 말은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이  마음을 좀 조절한다 그 말입니다. 조절한다 그 말이요. 더 깊은 의미에서는 이  마음을 영이 지배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일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자기 마음은 자기가 점령할 수 있는 강한 성을 점령하는  것보다 힘든다.

이래서 이 마음은 아주 붙들어 잘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순간도 쉬지않고 이 생각 저 생각 자꾸 연상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공상이라 소용없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는데 인간은 공상에서 공상으로  또 망상에서 망령된 망상에서 망상으로 허상에서 허상으로 이렇게 자꾸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워 잘 때는 누워 가지고 다른 무엇을 하나  생각하면 대게는 그 날밤에 잠을 못잡니다. 자꾸 그만 그 생각에서 생각으로  자꾸 이렇게 연상되어 나가기 때문에 사람의 이 마음이라는 이것이 아주  연상하고 연상하고 망상하는 것 허상 이런 것 하는데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몸은 그 마음이 가는 데를 따라 가게 됩니다. 마음 없어도 마음이  가는 데를 따라가게 되요 마음이 마음을 가진 그대로 말을 하게 되고 또 말한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아주 활동력이 재빠르고 부지런한  것인데 이 마음을 어디다가 쓸 것이며 이 마음을 마음에게 무엇을 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이 마음에 일거리를 맡겨 주어야 되지 이  마음이라는 것은 쉬지않고 놀지않는 것입니다. 쉬지않고 놀지않고 이렇게 해요  혹 어떤 사람은 가다가는 그 마음이 그만 이것이 그 아주 아둔해져서 게으르고  둔해져 아둔해져 가지고 이 마음이 아무 생각없이 꿍하고 있는 사람은 밥맛 있고  살찌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런 생활을 몇 해 만하면 얼굴을 보면 압니다. 그만  바보같이 꿍한 그런 사람 있지만 대게는 이 마음이 쉬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이 마음이 돈을 사모하고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또 어떤  쾌락이나 또 학문이나 무슨 기술이나 예술이나 어떤 사람이나 감정이나  섭섭함이나 분함이나 또 재미있는 일이나 뭐 별별 생각에서 생각으로 번져나가는  그것을 일생동안 해도 끝이 없을 만큼 그렇게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마음을 여간 단속하는 사람은 이 마음이 제 좋아하는 대로  제대로 안 돌아 다닐레야 안돌아 다닐 수가 없는 이런 방탕으로 자기 일생을  망치고 맙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이 마음을 한 군데다가 집중을 시켜서 돈을  한 번 빌어보자 여기에 집중시킨 사람 또 공부를 한 번 해보자. 여기에다 집중을  시킨 사람 또 내가 어떤 기술을 또 내가 한 번 출세를 한 번 권세를 이렇게 그  마음을 전부를 거기에다 기울인 사람은 그 면으로는 실력이 있게 됩니다. 대개는  이렇게 자기 마음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가지고 이렇게 실력있는 사람이라. 모두  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리 자기 마음을 집중을 시키고  거기다가 그것만을 전공으로 하는 그것만을 하는 사람을 그 면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전공하는 그것만을 하는 그 전심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그 전심이 되었다  할지라도 다 사망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하는 데에 마음을 다 기울인  그것을 가리켜서 전심이라 그것을 온전 전자가 아니고 전문가라는 전문  전자입니다. 이제 그렇게 기울인다고 해도 그것은 성공을 하지만 그것도 다  사망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 어떤 사람은 내가 도덕가가 되어야 되겠다.

어떤 사람은 내가 도덕가가 되어야 되겠다 내가 한 번 절제에 사람이 되어  보아야 되겠다 뭐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나는 의지를 길러서 의지의 사람이  되어봐야 겠다 난 종교 창설자가 되어야 되겠다. 별별 것이 다 우리의 마음의  사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무리 사모해서 도덕가가 되겠다고  해도 그것도 사망이요 자기가 의인이 되겠다고 하는 그것도 사망이요 또 자기가  절제가가 되겠다는 그것도 사망이요 실은 조금 사망아래에서 조금 깨끗하고 조금  더 덜 깨끗하는 것 조금 더럽고 덜 더러운 것뿐이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자기 마음을 어디다가 기우려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연구해야 되느냐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하신 피와 살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선 안됩니다. 이것만을 생각하는 예수님의 피와 살 예수님이  피와 살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흘리시고 찢어지셨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와 살을 찢기 까지는 어디서 출발을 했으며 어떤 노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도달했는가 하는 여기에다가 일생동안 온 마음을 다 기울려 이것만을 참  전공으로 하는 이런 사람이 복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구속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사모하고 하는 여기서만 사람이라는  것은 옳은 것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깨끗해 질 수 있어 여기서만  자기가 깨끗해질 수 있고 여기서만 이미 옳은 그것이 새로워 질 수 있어 옳은  것도 때묻고 옳은 것도 파묻힙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여인이 은전을 잃어  버렸는데 그것을 쓸고 뜰을 쓸고 이러다가 은전을 찾았다 했는데 그 비유인데  우리가 아무리 옳은 생각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생각도 때가 묻고 또 이  세상에게 파묻힙니다. 이런 염려 저런 생각에게 파묻힙니다. 이 파묻힌 것을  이것을 파내는 방편이 무엇이며 때 묻은 것을 닦아서 깨끗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이 구속을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생각하는 데서만 자기에게 작든지 크든지 옳은 것이 새로워지고 자기가  깨끗해지고 또 자기에게 모든 옳은 것이 힘을 얻고 옳은 힘을 얻는다 말이요.

옳은 것, 바른 것, 깨끗한 것, 참의 것 이것 모두 다 옳은 데에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심판에 무난히 담대히 통과 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것들이  깨끗해지기도 하고 새로워지고 하고 또 모든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도  하고 잘못된 관계를 이것을 깨끗이 씻을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이 구속의 피와 살을 말하는 것은 그것으로 끝을 마치는  것입니다. 피와 살은 십자가 상에서 끝을 마칩니다. 대속으로 끝을 마친 것인데  이 끝 마친 것을 말하는 것은 끝을 말하는 것은 으례히 거기 시작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발로부터 중간 계속되는 그 중간(도중) 또 마지막 결말 이것을  다 연상하고 포함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인간이 주님의 구속을 사모하는 여기서만  참 깨끗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만 자기가 새로워질 수 있어 더러운 때 묻은  것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만 옳은 정신, 옳은 마음, 옳은 생각 또 옳은 욕심, 좋은 욕심, 경영도  방편도 전체갈여기에 똘똘 뭉쳤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소원해야 되느냐 하는  소원도 또 그것을 경영하는 그 경영도 그 방편도 또 실지로 이루는 힘도 전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라는 이 공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라는 이 공로  여기서만 나옵니다. 딱 떼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린양의 보좌에서 어린 양의 보좌에서 그 생수가 흘러 나오는데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수가 흘러 나오는데 그 생수가 일천척을 흐르니까 더  많아지고 또 일천척을 흐르니까 더 많아지고 충만해진다는 것은 하나의 모형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사모하는 이 사모 여기서만 예수님의 대속을 사모하는  사모 여기서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또 자기에게서 공간적으로 하나에게 번져  나갈수록 퍼져 나갈수록 길게 갈수록 오래 갈수록 점점 좋아지고 가치 있어지고  실력 있어지고 온전해지고 부강해지는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이로 인해서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아이구 내가 이 일해야 되겠다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내가 이것을  쓰야 되겠다.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이것을 버려야 되겠다.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농사를 지어야 되겠구나.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내가 취직을 해야  되겠다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내가 이 사무를 봐야 되겠구나 피와 살을  사모하다가 내가 이 일에 충성을 해야 되겠다 전체가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  발언된 그것이라야 그것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깨끗하고 좋고 온전하지 그 외에  다른 구멍에서는 옳은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지 않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옳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쉴틈없이 주님의 이 피와 살을  기념하라 주님이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그 부요 내어  놓으시고 거기에서 낮아지신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을 기념하라.

이미 생각하는 여기서만 인간은 깨끗해질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고 참 옳은  힘이 나올 수 있고 또 옳은 실력으로 자라갈 수가 있어 하나님과 모든 존재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이 씩씩한 상태를 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 외에 딴 길은 없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버릴 수 없는 생각 버릴 수 없는  사모 버릴 수 없는 욕심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선악과 입니다.

자기를 망치고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피는 참된 음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은 예수님의 피와  살만이 인간을 새롭게 깨끗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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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피와 살을 생각하여 능력받자/ 요한복음 6장 41절-51절/ 1986. 11. 18. 화새벽 선지자 2015.12.31
57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88. 12. 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6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79. 9.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55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19절/ 1979년. 9.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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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피와 살/ 누가복음 22장 19절/ 1979. 9. 24.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52 피와 살/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85. 2. 2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1 피와 말씀 보수의 힘-양심/ 요한계시록 12장 10절-11절/ 1983. 6. 18. 토새벽 선지자 2015.12.31
50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사도행전 10장 43절-48절/ 1985. 2. 22.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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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피동신앙-객관신앙/ 누가복음 17장 5절-6절/ 1985. 12.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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