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선지자선교회 1986년 5월 18일 주일오전

 

본문 : 로마서 8장 18절∼39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에누리하는 못된 버릇을 아주 뽑아 죽여 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죽이기 전에는 자기 구원은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이 우주와 영계보다 큽니다. 우주와 영계는 하나님의 이 한 말씀으로 없어질 수도 있고 없는 가운데서 생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이 다 합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절수도 가감이나 변동을 시키지 못합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영생이요, 또 영원 멸망입니다.

이러기에, 자기 자신의 영육의 모든 것이 망하고 흥하는 그것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 말씀 한 말씀을 잘못 알고 잘못 믿고 행하면 이것이 더 크다는 이 사실을 인정치 아니하는 패역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 우주가 망하고 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한 말씀이 잘못 되고 바로 된 것이 더 중량이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누리해서 성경 말씀을 이렇게 알아도 되고 저렇게 알아도 되고, 또 이래 믿어도 되고 저래 믿어도 되고 이렇게, 정확성과 삐뚤어짐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가치로 여겨서 놀래거나 떠는 일이 없습니다. 요것이 패역 중에는 가장 큰 패역입니다. 이 패역을 완전히 우리가 고쳐야 되지 고치기 전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나 같은 생활하다가 그저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만 영원한 부끄러운 구원을 얻어서 하늘나라에 비참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깨닫고 저렇게 깨닫고 하는 것은 잘못 깨달았으면 저와 다른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행동이고 바로 깨달은 것이면 자기와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이 큰 생명 역사인 것을 알아야 할 터인데 그저 뭐 예사롭게 세상에 아무 무책임한 많은 말들과 같이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저렇게 말할 수도 있고 이런 말도 저런 말도 있다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이것으로 인간들이 다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번에 마지막 시간에 신명기 28장을 읽고, 우리가 복받는다 하는 복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간단하게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하시는, 곧 기름 부음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행하는 것이 복된 이유는 첫째가 이 세상에는 삐뚤어진 갈래길이 뭐 억억만도 넘게 이렇게 삐뚤어져 있는 세상인데 하나만 되는 올바른 길을 걷게 되는 이것이 첫째 축복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기름 부음 받은, 중생시킨 성령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르는 것이 복된 이유 중에 첫째가, 수많은 삐뚤어진 길이 억 억만도 넘은데 하나만 되는 올바른 길을 자기가 찾아 걷게 된 이것이 첫째 축복입니다.

또, 둘째 축복은 이렇게 걸으면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만왕의 왕이신 이분의 뜻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것이 둘째 축복입니다. 이분의 의사에 딱 들어맞습니다.

세째 축복은 하나님의 지으신 것은 영계와 물질계에 수없이 많은데 수없이 많은 모든 피조물과 자기의 행위가 대립되지 안하고 딱 들어맞는 그 걸음입니다.

또, 이렇게 영감대로 걸어가는 이 걸음은 네째로는 자기 자체의 본질과 본성에 딱 들어맞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서로 이질에서 모든 분쟁과 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이렇게 바른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도 우리를 찬성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복 주기를 원합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한 피조물도 컹쩡하게 여기지 안하고 이분에게 모든 것을 주어 달라고 그렇게 찬성을 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우리를 찬성하고, 좀 있으면 이제 뭐 국회의원이니 대통령이니 모두 투표한다 하면 야단을 칠 터인데 그럴 때에 표 한 표를 얻올라고 애를 쓰는 그 표는 얻으면 자기가 당선돼서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이라니까 그 표 한 표 얻을라고 애를 쓰는 그와 비슷한 종류로서,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이분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지고 모든 것을 맡겼으면 좋겠다' 모든 피조물이 찬성하는 이 찬성을 받게 되고 또 대주재이신 조물주 이분이 또 그에게 모든 것을 상속시켜 주시기를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이 걸음을 걸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하나님께서 다 예수님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축복된 것을 대구에서 마지막 시간에 증거했습니다.

이랬는데 거기서 세째가 되는, 이 기름 부음의 인도를 따라서 살면 모든 피조물들이 다 자기와 의사가 딱 들어맞고 모두 본질과 본성에 딱 들어맞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다 찬성하고 환영한다 하는 고 세째 문제에 대해서 혹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저 아무나따나 붙여서 그렇게 말쟁이 말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마귀의 유혹을 받는 자가 있을까 해서 거게 대해서 오늘 오전에는 증거를 할려고 이 본문을 봉독한 것입니다.

세째의 축복은 천상 천하의 모든 만물들이 다 환영하고 찬동하고 협동한다, 서로 도와서 협동 협조를 한다 하는 이 사실을 그저 아무나따나 말로 주 끌어대서 그렇게 한 말인가 그렇게 제일, 믿음 없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고 마귀가 공연한 말이라 이렇게 유혹시키기 쉽기 때문에 삼호를 들어서 오전에 성경대로 증거를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증거할 때에 성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요 성경에 대해서 해석이 요리 되면 죽고 요리 되면 살고 하는 이 생사화복이 이 성경 깨달음에 근거되어 있는 이 중한 중대성을 아는 사람들 같으면 그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힘도 나고 재미도 나고 조심도 되고 이렇게 하겠지만 전부 거짓돼 가지고 에누리하고 진실이 없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뭐 틀려봤자 괜찮고 맞아봤자 별것 없고 또 거짓말 해 봤자 별것 없고 이래 가지고 둥글둥글 하면서 굴러서 지옥 가지 다 심신의 기능들이 지옥으로 다 떨어지고 마는 것이 오늘 교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18절부터 봉독했는데 그 해석을 시간 많이 걸려서 그래는 못 하겠고 간단하게 하니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서 깨닫도록 하십시요.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비교할 수가 없다' 하는 그 말씀을 해 놨습니다. 지금 받는 고난이라 말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이 복음대로 살라고 하면 여러 가지 마찰의 그 투쟁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마찰의 투쟁이 있는 이것과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에 그때에 영광과 존귀에 비교를 할 때에 비교할 수가 없다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인고 하니, 세상에는 타락한 천사가 변질됐고 또 이 천사에게 미혹받은 인간들이 다 변질됐습니다. 그러면, 이 피조물 가운데는 변질된 것들이 둘입니다. 다른 것은 변질되지 안했습니다. 변질된 것들이 둘인데 마귀가 세상을 제 나라를 삼고 있고 또 변질된 인간들이 세상 권세를 잡고 이렇게 있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옳게 살라고 하니 자연히 그런 자들과 이질적인 것이요 또 정반대의 걸음을 걷기 때문에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령과 악령의 사람들은 이 사망을 향하여서 아래로 쏟아 내려가고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생명 받아서 위로 향하여 올라가니까 거게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가리켜서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에서 변질된 인간과 변질된 악령과 마찰되는 그 마찰을 보고 네가 불행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마찰된, 이 삐뚤어진 악령과 인간과 마찰되는 그것이 삐뚤어진 그것들과 너는 하나되어 있지 안하고 삐뚤어진 그것들과 반대되어 있는 것이니 올바른 것과는 하나되어 있고 삐뚤어진 거와 반대되어 있는 것이니까 삐뚤어짐으로 말미암아 마찰의 고난이 있는 그 고난과 올바로 되었음으로 올바른 나라에 가 가지고 영광과 존귀에 얻을 것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요거 들어 깨달아집니까? 요 이상 해석할 수가 없어요. 요만하면 다 해석 다 됐어요. 이것도 평생 예수 믿으면서 이 성구를 외어도, 천 번 만번 외어도 여게 대한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제 고난은 왜 그러냐? 내가 옳기 때문에 고난입니다. 내가 옳기 때문에 고난이니, 옳은데 왜 고난인가? 세상이 악령과 모든 악령의 인간들과 이렇게 삐뚤어져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옳기 때문에 삐뚤어진 세상과 마찰이 되어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니 내가 삐뚤어짐으로 고난 있는 게 아니고 옳음으로 삐뚤어진 것들에게 고난 받으니까 앞으로 옳은 것들만 있는 그 세계에 가 가지고 영광과 존귀는 얼마나 크겠느냐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무조건 어려움이라고 불행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내가 삐뚤어져서 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냐 내가 옳아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냐 요것을 평가하십시오. 내가 삐뚤어져서 어려움당하면 그거는 죽어야 됩니다.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바르기 때문에 삐뚤어진 것들에게 어려움을 당하면 나를 어렵게 하는 삐뚤어진 것들은 조만간에 망할 것들이요 삐뚤어진 것들에게 대립이 되고 마찰이 된 나의 옳은 것은 영생이 되어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보고 다행스럽게 여기고 또 기뻐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 세상과 마찰된다고 마찰을 피할라고 하지말고 마찰을 당할 때에 내가 삐뚤어져서 옳은 것들에게 마찰을 당하느냐? 그라면 나는 망랍니다.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마찰당하는 것은 삐뚤어진 것들에게 마찰을 당하고 있어, 내가 옳기 때문에 삐뚤어진 것들에게 마찰당하고 있으니까 이는 조만간에 승리하고 영광 있을 것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라 그말입니다.

요 말씀을 해 놓고 19절에, 여러분들이 한 절수라도 알도록 하십시요. 한 절이라도 알아야, 알면 뭐 성령이 몇 절 안 되는데 한 절씩 한 절씩 알아 나가면 나중에 가서 한 십분의 일쯤만 바로 알면 십분의 구는 저절로 다 알게 됩니다.

성경을 배워 가지고 어떻게 다 압니까? 자기가 고치면 성경은 저절로 다 알아지게 되고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9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그러면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피조물이라면 천군 천사도 피조물이요 마귀도 피조물이요, 모든 이 식물들도 동물들도 곤충들도 이 별도 달도 바다도 모두 햇빛도 모두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외에 것은 전부 피조물입니다. 그러면 이 피조물,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는" 우리가 만물관을 바로 가져야 되는데, 만물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되는데 만물관을 바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신구약 성경뿐입니다. 땅 위에 이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전부 만물관이 다 삐뚤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이종교는 만물관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 행위가 삐뚤어졌고 하나님에게 다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피조물들이 뭣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러면 지금 지네라는 벌거지가 뭘 기다리고 있는가? 똥 구덩이에 구더기가 뭘 기다리고 있는가? 뱀이 뭘 기다리고 있는가? 저 초목이 뭘 기다리고 있는가? 바윗돌이 뭘 기다리고 있는가? 태양과 저 모든 공중의 별들과 우주가 뭣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고대라 말은 기다릴 대(待)자요 고통할 고(苦)자인데 고대, 고대한다는 고대한다는 말은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것은' 피조물들이 지금 심히 고생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거 뭐, 근심 걱정 고통을 가지고 피조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통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거. 피조물들이 왜 고통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가? 뭘 기다리고 있는가? 지금 돌도 근심이 가득 찼고 저 흙도 근심이 가득 찼고 이 모든 만물들이 다 근심이 가득 차 가지고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하나님께서 영원 전, 창세 전에 예택하시고, 예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의를 입혀서 의인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를 만든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이랍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현재라는 요 현실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인해서 별과 달이 멸망을 받을 수도 있고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잘못 삶으로써 우주가 망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바로 삶으로써 우주가 구원을 얻습니다. 요 본문대로 여러분들이 꼭 요걸 믿어서 나가 보면 깨달을 터인데 그 깨닫지 못하는 거 헛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 고대하고 있다.

그 다음에,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땅을 파니까 땅이 파여지고 쇠로 가지고 기계를 만들어서 뭐 중기를 만드니까 중기가 만들어지고 비행기를 만드니까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이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들이 쓰고자 하는 대로 쓰고 잡아 훌치는 대로 훌치고 이렇게 저거 마음대로 피조물들을 이래 지금 이용을 하고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그 피조물 저 쇠뭉텅이는 말을 못 하고 의사가 없는 줄 알아도 의사가 없지 않습니다. 저 공기가 아무 의사 없는 줄 알아도 공기가 의사 없는 거 아닙니다. 공기도 사람만치 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쇠뭉텅이도 사람만치 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중기를 부리는 그 사람들을 그 쇠 뭉텅이가 새려 주면 다 직사를 할 것입니다. 모두다 만물들도 다 세력을 가졌고 자기 주장이 있고 자기의 모든 의사가 있고 비판과 평가가 있는 것이 모든 피조물들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허무한 데' 허무하다는 말은 거짓부리라 말이오. 허무하다는 말은 헛된 거, 굴복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거 아무것도 가치 없는 것이, 가치 없는 인간이, 가치 없는 물건이, 가치 없는 것들을 가리켜서 허무하다 그말입니다.

허무한 것들에게, 가치 없는 것들에게, 그러면 가치 없고 실력 없고 실속 없고 아무 소용없는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그것들이 쓸라 하면 쓰는 대로 밥을 내가 뚝 떠 넣으니까 입에 쑥 들어갑니다. 지끈지끈 씹어서 넘어 삼키니까 밥이 넘어갑니다. 이 밥이 허무한 것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 밥이 입에 들어가서 밥이 당장 속에 들어가 가지고 독을 확 피워서 대번 즉사하구로, 만들지만, 그 밥이 즉사하구로 만들지만 `안 된다. 네가 그 허무한 것들이 입에 떠 넣어도 뜨여 들어가거라. 또 썩히거든 썩어라.' 이라니까 이 지금 피조물들이 용욕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능력 있고 실력 있어 그렇지' 어리석소.

여러분들이 여기 파리 한 마리 그거는 쉬운 줄 알아도, 아니오. 파리보다 적은, 아주 지금 말할 수 없는 뭐 제일 작은, 아마 의학자들은 다 알 것입니다.

바이러스균이라고 하는 작아서 우리 눈에는 한 백 마리나 뭉치면 보일런지 천 마리나 뭉치면 보일런지 그렇츰 작은 것이지만 사람을 직살을 시킵니다. 사람을 직살을 시키요. 그렇츰 작은 것들도 그 능력있고 실력있는데 호랑이를 사람들이 치면 치고 물을 마시면 마시고 물을 때리면 갈라지고 이렇게 마음대로, `모든 만물들이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요거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 만물관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모든 만물이 허무한 것들에게' 허무한 것은 뭐이 허무하냐?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로써 하나님의 의로 된 의인이 아닌 것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의인이 아닌 것은 허무한 것이요, 의가 아니고 진리가 아닌 것은 허무하요 영감이 아닌 것은 허무한 것이요, 완전이 아닌 것은 허무한 것인데 이 완전한 것들에게, 완전한 것들에게 이 피조물이 굴복을 하고 싶고 완전치 못한 거, 불완전한 거, 거짓부리 모든 사망에 속한 거 이런 모든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굴복하기가 싫지만 이런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그 모든 피조물들의 뜻이 아닙니다.

이 피조물들을 우리가, 앞으로 만물 심판이 있는데 만물 심판 그것을 성경에 기록해 놨지만 사람들은 심령이 어두워서 만물 심판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만 말하지 만물 심판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것도 만물 심판 중에 하나입니다. 왜 그들이 공연히 있습니까? 절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밥을 썩썩 먹어서 다 썩혀서 내 버렸지만 밥이라는 그 요소 그 물질 하나도 없어지지 안했습니다. 썩어서 똥이 되고 없으면 썩었으면 없어진 줄 압니까? 없어지지 안했습니다. 무궁한 지옥에서 호소되고 항거하고 송사하고 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 심판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만물을 제 욕심대로 쓰고 저는 아주 권리 있고 만물은 제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인 줄 알지만 모든 피조물들이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이랬어. 저희들의 소원이 아니라 저희들이 굴복하기 싫지만 굴복합니다. 마구, 조금만 거석하면, 속에 예를 들면 무슨 조그마한 균 하나 들어가서 대번 즉사도 시킵니다. 직살도 시키요. 예를 들어서 어떤 풀 한 포기에 오줌을 찔찔 싸 버리면 풀 한 포기가 독을 내 가지고 대번 즉사하구로 할 수 있지만, 직살 말이오. 대번 직살 죽음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리 못 한다.

가만히 있거라.' 이래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여게 날아다니는 모든 균이나 이 먼지 하나도, 먼지 하나 그까짓 게 힘없는 줄 알아도 먼지 그게 들어서 당장에 우리를 직살을 시킬 수도 있고 봉사를 만들 수도 있고 병신 만들 수 있지만 그 먼지에게 `그리 못 한다.' 그런, `지금 이 인간들에게 너거는, 아무리 허무하지만 인간들에게 어느 기간 동안은 네가 굴복해라' 하기 때문에 굴복하는 것이지 자기 뜻이 아니라 그말이오.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창조하신 이분이 `너는, 암만 악인이라도 암만 악인, 당장 하나님이 대번에 지옥에 보내서 죽이고 갈아 버려야 될 것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그게 먹거들랑 먹혀라. 입거들랑은 입혀라. 입거들랑은 그 몸에 입혀 가지고 돌아다녀라. 사용하거든 사용을 당해라.' 이 만물의 호소를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이 창조주가 `어느 기간 동안 굴복하라' 이라기 때문에 굴복을 하는데, 지금은 굴복하지만 만물을, 밥을 먹어 썩었으면 없어지는 줄 압니까? 아니요. 그것이 원소로 돌아갔소. 그대로 있어.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는데 그것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야 인간들이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이용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만물 심판에 가면 그것이 다 호소해서 `너는 내게 대해서 불법을 행했고 내게 대해서 네가 악행을 했고 내게 대해서 나를 해만 끼쳤기 때문에 나를 해끼친 이 배상을 해 내라.' 하니까 지옥에는 거기 가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배상해 주는 그것으로서 영원한 그 고통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그 허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피조물들이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죄 짓는 데도 이용당합니다.

음행하는 자의 밑구멍에서 요이불이, 요이불들이 대 가지고 거게 받치고 있는 거, 받치고 있지만 마지막에 그 요이불들이 `나를 너거가 이용해 가지고 너희들이 어떻게 했노? 네 마음대로 이용해 가지고' 만물의 심판과 보응이 있을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후란시스라는 사람은 자기가 풀 한 포기를 자기가 필요없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필요 없이 풀 한 포기를 침해를 하고 난 다음에 그 풀 한 포기에게 하루 종일 앉아서 사과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쓰라고 주셔서 그 법도대로 쓰는 것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내가 공연히 필요 없이 너에게 가해를 했다' 해 가지고 가해한 것을 해결을 받을라고 하루 종일 울면서 사과하고 있는 그 것이 그이의 전기에 기록된 것을 봤습니다.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절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들이 바라는 것은' 이거 세계가 열려질 건데, 이 보는 세계가 아니고 세계가 눈이 뜨여질 것인데 이 둔탁해서, 미련하고 악해서 돈만 알고 무슨 음식만 알지 도무지 사상이 없어. 철학이 없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철학이 없는 인간은 짐승입니다.

철학이 없는 인간은 짐승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철학이라 말은 이 세상 사람들이 쓰는 철학이라는 그런 말과 조금 다릅니다. 철학이 없는 것은 짐승이오.

멸망할 짐승이라 그말은 뭐이냐 하면 현재 나타난 것을 인해서, 나타난 것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의 배경에 원인과 미래의,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관련된 수많은 것들을 궁구해 가지고 `아, 이것이 어디서 왔으며 목적이 무엇이며 내가 여게 대해서 가해를 했나 여게 대해서 침략을 했나 여기에 대해서 혜택을 입혔나?' 모든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궁구하는 그 궁구성, 그 추구성, 추상성, 연구성 그것을 가리켜서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저 보이는 것으로 막 하는 거, 이러기 때문에 사람 중에 제일 천한 것은 눈에 보이는 그 현실대로만 하고 만 그거는 짐승만도 못 합니다. 그자는 천해요.

그자는 천해지고 망해지고 이용당하는 종질밖에는 못 하는 것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모든 피조물들이 바라는 것은 뭐 바라느냐?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피조물은 그와같이 밟으면 밟히고 태우면 태이고 하니까 그대로 되는 줄 알아도, 뭐 피조물, 비니루 만들고 싶으면 비니루 만들고, 장판 만들고 싶으면 장판 만들고 불에 태우고자 하면 태워지고 또 먹고 싶으면 씹어 먹고 제 마음대로 이와 같이, `얼마든지 당해라. 이 피조물들아 인간 중의 불법한 허무한 것들에게 얼마든지 이용을 당해라. 앞으로 영원한 복수의 날이 있다. 얼마든지 `이용당하라.' 이렇게,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지 자기 뜻이 아니라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썩어짐의'는 뭐입니까? 허무한 것들에게 종노릇한 데서, 허무한 것들에게 종노릇하는 여게서, 내나 그것이 떠들어 쌓아 봤자 썩을 거 망할 거 죽을 거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탈 거, 허무한 것들이라 말이오.

`썩어질 것들에게 종노릇하는 여기에서 해방되어' 성경에 보십시요.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거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말은 의인들이라 말입니다. 의인은 뭐이 의인입니까? 의인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고 노여워하시는 세 가지를 대형으로 완전히 해결 지운 사죄를 받은 자들이 의인이요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이행한 칭의를 받은 자들이 의인이요 마귀를 완전히 배반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받아서 하나님과 상호 내주 할 수 있는 이것이 의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의인된 자들입니다. 의인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요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이며 요 뜻이 뭐이겠느냐 그말이오. 이것도 여러 수십 년 성경을 연구해도 박사들이 모르고 지금 막 넘어가는 이런 것이니까 뭣이 뭐, 모르니까, 모르는 자이니까 암만 말해 봤자 그만이고 그만이고, 거짓말 해도 그만 참말 해도 그만, 옳고 바른 것도 모르지, 틀린 것도 삐뚤어진 것도 모르지, 이거 참 답답한 일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영광의 자유에 이른다 말은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영광이 있겠습니까, 영광이라는 하는 자기에게 있겠습니까,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있습니까 다른 이가 영광되다고 영광을 돌럼니까? 영광은 제가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이 자기에게 영광을 입혀 주는 것입니까 어떻습니까? 영광은 제가 `나는 영광 있다. 나는 영광있다. 영광있다.' 제 자신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이 `이는 참 영광스럽다. 이는 참 존귀하다. 이는 참 옳고 바르고 참되다.' 이렇게 마구 칭찬하고 환영하고 존대하고 이렇게 위하는 그게 영광입니까 자체가 자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제 삼자에게 영광 있는, 제 삼자가 영광스럽게 해 주는 것입니까 자체가 자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자체가 자체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이 자체를 영광스럽게 이렇게 해 주고 영광을 돌리고 영광스럽게 봐 주고, 영광스럽게 칭찬해 주고, 영광스럽게 이렇게 존대해 주고, 영광스럽게 환영해 주고, 영광스럽게 찬양해 주는, 제 삼자들이, 자기 아닌 삼자들이 자체를 영광스럽게 해 준다고, 영광은 제 삼자들에게서 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예, 잘 배웠습니다. 요거 똑똑히 가지십시오. 영광 해석도 주석을 가 찾아보면 영과 해석도 옳은 주석이 별로 없어, 다 헛된 소리, `영광' 이 세상 말로 했어. 영광은 이게 영광입니다. 영광스러운 거는 이게 영광이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생활, 하나님의 자녀들의 그 모든 언행심사의 행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그 생활 그 생활은 뭐인데? 모든 피조물이 보고 `하, 감사합니다.' 하늘의 것도 감사하고 땅의 것도 감사하고 뱀도 감사하고 지네도 감사하고 구더기도 감사하고, 하늘도 감사하고 바다도 감사하고 공기도 감사하고 햇빛도 감사하고 모두가 감사하는 이 생활,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생애, 이렇게 옳고 바르고 가치있고 평가적으로 암만 해 봐도 흠이 없고 비판적으로 암만 해도 흠이 없고 아무리 심사해 봐도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그 행위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자유라는 것은 나만 자유 있으면 자유 있는 거 아닙니다. 나만 자유 있으면 나는 자유 있지만 저것이 있다가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 `나 좋으면 좋지' 내 자유하니까 저게서 말하기를 '네게는 자유가 있어도 내게는 방해가 돼 안 되겠다.' 또 이러니까 거게 또 맞추니까, 그걸 맞춰서 그러면 거기 맞도록 이래 해서 조화를 맞도록 해 놨습니다. 해 놨는데, 또 이래 할라 하니까 저게 있다가서 `아, 너거는 좋아도 내게는 안 됐다.' 이것이 자유 없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것인데, 영광의 자유라 말은 모든 존재들이 다 보고 `좋다. 너도 좋으나 나도 좋다. 벌거지도 좋으나 나도 좋다. 이제 바이러스 병균도 좋으나 나도 좋다.' 모든 존재들이 다 좋아하는, 모든 존재들이 다 자유하는, 모두 다 좋아하고, 자유라 하는 거는 소원 성취되는 게 자유 아닙니까? 자유라 하는 것은 소원 성취되는 것이 자유 아니요? 모든 존재들이 `내게도 소원 성취가 됐다. 내 소원도 딱 들어맞다 내 소원에도 딱 들어맞다.' 모든 존재들이 자체에 소원 성취가 되어서 소원에 딱 들어 맞다고 하는 영광의 자유, 영광,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스러운 이 생애 이 모든 존재들에게 자유가 되는 이 생애, `이 생애 여기에 협동되고 여기에 피동되고 여기에 굴복당하고 이들과 하나되기를 원한다. 허무한 것들에게 지금 굴복하는 이것은 원치 안하는 것이다, 이거는.' 저희들의 뜻이 아니고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굴복하는 것이지 모든 피조물들이 지금 소원하고 있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보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이 영광과 덕으로 불렀다' 이랬습니다. 우리를 불러서 구원한 구원은 영광의 구원이요 덕의 구원입니다.

그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시는 이 구원은 모든 존재들이 마구 칭찬하면서 `하, 감사하다 기쁘다.' 모든 존재들이 다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이 좋아하는, `영광과 덕으로 불렀다' 모든 존재들이 `이라면 좋겠느냐?' 삐쭉하게 삐꾸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덕이니까. 이라면, `그만 말까?' `아이고, 안 됩니다.' 모든 존재들이 다 저에게 덕이 된다 덕이 된다 해서 안 하면 안 된다고 모든 존재들이 영광을 돌리고 모든 존재들에게 덕이 되는 이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은 이 구원이요, 이것 이.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영감이 인도하시는 대로 걷는 걸음은 이 걸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원하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걸음입니다. 우리의 걷는 이 걸음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피조물들에게 자유가 되는 걸음이요 모든 피조물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영광을 돌리는 이런 걸음이 우리의 걸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의 걸음이 뭐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될 것입니다.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탄식하는 것은 이 세상이 이러니까 어서 망하고 어서 불타 버리고 이 세상이, 어서 불타 버리고 이거 무엇인가를 새로운 개조되기를 피조물들이 지금 고대하고 있습니다.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함께 탄식하고 고통하고 하는 것을 아나니, 왜 고통해? 허무한 것들에 굴복을 해서 이 허무한 것들이 저거 마음대로 막 잡아 부리고 먹고 깨고 불에 녹히고 만들고 저거 하고 싶은 하는 대로 막 합니다. 이러니까 피조물들이, 다 피조물들이 어짜든지 지금, `오냐, 마음대로 해 봐라, 뭐, 너거가 구워 먹든지 만들든지 갈라트리든지 깨든지 너거 마음대로 해라.' `어짜든지 실컷 저거 마음대로 하도록 굴복해라. 앞으로 영원한 세계가 있다. 영원한 세계에 보응의 심판이 있다, 해라,' 이러니까 이 만물들이 지금 심히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거 왜 탄식해? 인간들이 알지도 못하고, 변질된 것이 몇 가지 있습니까? 변질된 것은 둘이요. 변질된 천사가 마귀된 거, 마귀가 변질된 것이요 인생이 변질되고, 변질된 건 둘뿐인 것입니다. 다른 거는 다 변질되지 안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피조물들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 모든 피조물들이 지금 고통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어서어서 어서어서 만물 회복이 되기를, 어서어서 만물 회복이 되기를, 어서어서, 만물 심판이 되면 마구 발언을 해 재낄 것입니다. 만물 심판이 되면 발언을 해서 `이놈아 과학자 네가 나를 어떻게 했지? 어떻게 구워 먹고 어떻게 지져 먹고 네가 볶아 먹고 어떻게, 어떻게 했지? 네가 그래 가지고 네가 네 마음대로 했지? 이제 배상해 내.' 허, 무궁세계에서 그 배상 청구를 할 때에 이제, 자유한 배상 청구 할 때에 그 세계가 참 구경할 만합니다.

여러분들. 만물이 탄식하면서, 탄식하는 것은 전도서 1장에도 보면 만물의 피곤한 것을 말할 수 없다 했습니다. 이게 와 가지고는 또 이래 쓰고 저게 와 저래 쓰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제 마음대로 쓰고 하지만 저 망하고 심판받을 것만 마철합니다. 이거 알고 살아야 됩니다. 뭣이 안다고? 뭐 에이 비이만 알면 돼? 이 이간 뱀의 지식 그까짓 거 암만 해 놔 봤자 소용없어. 하나님의 지식을 알아야 되지.

"만물이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23절에 "이뿐 아니라" 만물 탄식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우리면 택한 자들 아닙니까?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성령에 처음 익었다니? `성령의 처음 익있다' 익었다 말은 결실했다 말 아닙니까? 성령으로 처음 결실이 뭐입니까? 성령으로 처음 결실이라 말은 결이라 말 완성이라 말 아닙니까? 성령으로 처음 완성된 것이 뭐입니까? 성령으로 처음 완성된 것이 뭣이지요? 그라면 알 수 있지 않소? 그런 거는 해석하기 쉬워. 성령으로 처음 완성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이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입니다. 성령으로 제일 일차적으로 완성된 것이 인생들에게는 중생입니다.

"우리까지도" 중생된 영들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뭐 때문에 탄식해?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양자 될 것이라 말은, 양자라 말은 자기 요소로 생겨나지 안한 그 새끼인데 자기 요소로 되어 난 새끼와 같은 대우를 해서 모든 상속을 해 주는 것이 양자입니다. 양자는 자기의 정충으로 된 자식도 아니요 자기 아내의 피로 된 자식도 아니요 자기 부부에게서 나지 안한 자식이요 딴데서 난 자식인데 이것을 데려다가서 자기 자식이라는 이름을 줘 놓고 자기네들에게 있는 모든 소유를 상속시켜 주는 그 상속권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양자라고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된 자가 아닌데도, 이거 순전히 피조물의 요소로 됐는데 피조물의 요소로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이렇게 정해 놓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상속시켜 주는 이 상속권 받는 것을 가리켜서 양자라 말합니다.

이것도 참 울만 하요. OOO대통령의 양자라 해도 경주 시내가 떨었는데, 오늘도 무슨 세계 제일 큰 대국의 정권자의 양자가 됐다 하면 세계에서 뭐 유명해서 그 양자가 온다 하면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환영식을 할 것이고 굉장할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요. 한없는, 만유의 대 주재,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지옥까지 다 내 소유로써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이런 상속권을 가진 것이 기독자이건만 본인도 몰라. 본인도 모르기 때문에 이 영광을 누리지 못해. 다른 사람도 몰라. 하나님을 모르니 우리도 몰라. 우리 자신들도 모르는 그런 거 있어. 세상은 하나님도 모르고 우리를 모르지만 자신은 알아야 될 것 아니요? 자신은 하나님의 양자 된 걸 알아야 될 거 아니요? 하나님의 양자 된 것을 알면 땅 위에 것을 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뭐 부러워하고 탐할 게 뭐 있어? 조만간에 내 것인데.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영은 양자가 됐는데, 영은 양자가 됐는데 양자 안 된 게 있어. 양자 될 것이 있어.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이라 말은 육을 가리켜서 말했는데 육은 마음과 고기덩어리 합해서 육인데, 우리 심신이 아직까지 하나님의 양자가 안 됐습니다. 우리 심신이 하나님의 양자가 안 됐어.

우리 심신은 언제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가? 현실을 통해서 고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양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마귀 뜻대로 살면 둘째 사망으로 멸망을 받고 하는 것이니까 이 중생된 영들도 지금 우리의 몸의 기능 이것이 구속받아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탄식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도 탄식하지 우리 영도 탄식하지 만물도 탄식하지, 성령도 고대하지 우리 영도 고대하지 만물도 고대하지, 이렇게 바싹 바삭 바싹하는, 참 칼끄터리와 같은, 털끝만한 것도 무심한 것이 없고 무책임한 것이 없고 보응이 없는 것이 없고 다 심판을 앞두고 이렇게 칼날 같은 이런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천지를 모르기 때문에 벌로 제 욕심대로 마음대로 언행심사를 하고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러니까 우리 앞에 소망을 두고 우리가 지금 이 노력을 해야 되니까 우리는 참아서 이 소망을 달성해 가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 오전에는 대구에서 집회할 때에 우리의 축복이 첫째는, 수많은 갈래길이 있는데 그 갈래길 가운데에 삐뚤어지지 않는 옳은 길은, 자기가 걸을 옳은 길은 한 길뿐인데, 천 길 만 길, 갈래길이 있는데 자기가 걸을 옳은 길은 한 길뿐인데 한 길 뿐인 그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하는 것을 일호를 말했습니다. 이 옳은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이래도 이 가치를 몰라. 돈이나 알지. 돈이나 몇십억 몇백억 하면 알지 돈 몇억억이면 뭐입니까? 세계를, 없어질 세계 정권을 잡았으면 어짭니까? 오늘 끝날지 모르는데 그 무슨 가치 있습니까? 이런데 이 현실에 수많은 갈래길 있는 데에서 옳은 길을 찾아간다는 이것을 아무리 외쳤지만 듣는 사람이 없어. `어, 그런가 보다' 외우기나 외우지 옳은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 현실에서 영감 인도를 받는 길이다.

이 길은 둘째로서는, 이 조물주에 배치되지 안하고 조물주와 하나가 되는, 조물주 뜻에 딱 들어맞는, 조물주와 일치되는 길이다.

그 다음에 뭐입니까? 세째? 만물, 모든 피조물과 일치되는 길이다. 요걸 말했지만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세째 축복인 축복을 가리켜서 만물이 이렇게 돼 있다는 걸 성경을 가지고, `만물이면 그까짓 거 만물이, 만물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까? 무슨 구더기가 말할 수 있어? 뭐 지금 쇠뭉텅이가 무슨 말할 줄 알아?' 쇠뭉텅이가 너를 송사해서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집어 넣어서 태우고 말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만물 심판인 것입니다.

넷째로는, 자기 자체와 맞아. 우리가 지음 받을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는 그 걸음은 내 자체에 딱 들어맞기 때문에, 맞으니까, 내 마음에도 맞고 정신에 맞고 성질에도 맞고 고기덩어리에도 맞고 세포에도 맞기 때문에, 맞을 때에 가장 기쁩니다.

인생이 영감 인도 받지 않는 길은 천천 금은을 받아도 반드시 그 사람에게는 큰 고민과 고통이 있습니다. 인생이 고민과 고통 없는, 안팎이 만족한, 아무 구름이 끼이지 안한 만족한 걸음을 걷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영감의 사람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온 세계. 정권을 잡았어도 자기 본질과 본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는 뭐인가 불안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자기 본질과 본성에 맞으니까 이것이 한없는 행복이요 모든 피조물에 다 맞아 피조물이 환영하니까 한없는 행복이요 조물주에 맞으니까 한없는 행복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올바른 길을 걸으니까 한없는 행복이고, 이러니까 피조물은 어짭니까? 피조물은 뭐라 하요? 피조물 투표할 때 `누구에게 복 줄까?' 할 때 피조물은 어짭니까? `이분에게 주십시오' 피조물의 찬성 투표가 옵니다. 피조물의 찬성의 투표가 오고 하나님도 이 자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평가해 주시는 이것이 다섯째에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들어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어 깨달아야 되지. 이거 뭐 할라고 이런 설교하는지 몰라요. 그저, 이러나, 여러분들 뱃속에 배어 가지고 있는 그걸 나는 소망합니다. 뱃속에 배어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설교를 듣고 변화되어서 그것이 참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또 이제 어린것들이 이것들이 이거 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의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이런데 소망 가지지 박사한테는 소망이 하나도 없어.

모든 박사들 뭐 암만 세계 지식을 다 가지고 있다 해도 속에는 악이 가득 차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죄가 자기를 주장하고 있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죄가 주관하고 있어서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확, 자기 뜻에 하나 거리끼면 확, 자기 주장에 거리끼면, 자기에게 거슬리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게 뭐이냐? 하나님께서 거슬려야 되지 네게 거슬려서 다 싫어하는 것이니까 그게 뭐이냐? 그게 원죄라.

그게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니까 그자는 지옥 가야 되지 뭐 갈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 얻습니다. 깨닫고 바로 믿어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1 핍박을 두려워 말 것/ 마태복음 10장 24절-39절/ 1983. 7. 13. 수새벽 선지자 2015.12.31
»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로마서 8장 18절-39절/ 1986. 5.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59 피와 성령과 진리로 심방/ 고린도전서 15장 57절-58절/ 1984. 10. 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31
58 피와 살을 생각하여 능력받자/ 요한복음 6장 41절-51절/ 1986. 11. 18. 화새벽 선지자 2015.12.31
57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88. 12. 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6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20절/ 1979. 9.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55 피와 살을 기념/ 누가복음 22장 14절-19절/ 1979년. 9.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4 피와 살을 기념/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79. 9. 25. 화새벽 선지자 2015.12.31
53 피와 살/ 누가복음 22장 19절/ 1979. 9. 24.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52 피와 살/ 요한복음 6장 53절-57절/ 1985. 2. 24.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1 피와 말씀 보수의 힘-양심/ 요한계시록 12장 10절-11절/ 1983. 6. 18. 토새벽 선지자 2015.12.31
50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사도행전 10장 43절-48절/ 1985. 2. 22.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49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갈라디아서 5장 16절-18절/ 1985. 1. 2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8 피동신앙-객관신앙/ 누가복음 17장 5절-6절/ 1985. 12. 6. 금새벽 선지자 2015.12.31
47 피난준비/ 다니엘 6장 10절-13절/ 1984. 3. 5. 월새벽 선지자 2015.12.31
46 피난법-회개/ 마태복음 24장 27절-28절/ 1983. 10.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5 피난과 구원의 방편/ 마태복음 24장 25절-28절/ 1983. 11. 18. 금저녁 선지자 2015.12.31
44 피난 준비는 거룩과 경건/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8. 10. 30.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1
43 피곤하여 낙심하지 말것/ 갈라디아서 6장 7절-10절/ 1984. 7. 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1
42 피,성령,진리로 사는 생활/ 디모데후서 4장 15절-18절/ 1983. 10. 27. 목새벽 선지자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