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한 이리에서 구출되는 방법

 

1988. 5. 5. 오전집회

 

본문 : 사도행전 20장 25절-35절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지금 약속된 예배 시간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몇가지 질문  들어온 데 대해서 잠깐 좀 제 아는 대로 답을 하겠습니다. 천주교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교역자 이동한 지 후 삼 년 내에 정 붙기 전에 이동한다 그렇게  한답니다. 나는 이거 처음 들은 말인데. 이것도 좋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아예  삼 년 넘어가면 그만 교인들과 정이 들어 가지고서 아이들 말로 불미스러운  운동이 일어나니까 삼년 안에 인간 정 들기 전에 이동을 하자 그렇게 한답니다.

 또 들으니까 뭐 감리교인가 어떤 데도 그렇다 하는데 그거 내가 똑똑히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나는 똑똑히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한대로 합니다.

 하기는 세상에서도 부정이 많을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자리는 그 자리에 삼 년  이상을 두지 안하고 매년 바꾸는 갑습디다. 그건 아마 공통된 인간 지혜  같습니다. 왜? 거기에 정이 붙으면 사정되는 고런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통계로 봐서도 교회가 참 잘 되는 것은 삼 년이 아니라  평생 죽는 날까지 그 교회 있어야 그 교회가 목회가 정말 잘되는 그런 목회도  있고, 삼년 이상돼서 교회를 제 사람 만들어 가자고 끌고 가는 그런 교회도  있고, 삼 년 이상 되면 그만 허리끈 풀어 놓고 놀고 ‘뭐 아이 낳은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속담에 말과 같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놀아서 폐단되는 일도 많고.

 또, 정년퇴직을 안 하고 두면 나이 많은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하고서 늙은이  물빡 세우듯이 되지도 안한 거를 뻑뻑 세워 가지고서 폐단이 있기 때문에 정년  퇴직하는 일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이 우리 공회에 정년퇴직 없는 것을 비난해서 ‘사람이 나이가  많으면 어린 아이 된다고 육십이 되면 벌써 모든 정신이나 모든 총명이  감퇴되는데 칠십이고 팔십이고 되기까지 되어지니까 그거는 인제 갓난 어린  아이와 같이 모든 지능이 그렇게 다 퇴보돼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 그렇게  비난한다 말을 제가 문서로 봤습니다. 그건 사람 나름이지요.

 교만한 말일지는 몰라도 기억해서 필요한 것을 기억하는 건 나는 지금 일흔  아홉 살인데 아마 내가 여러분들보다도 좀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우리 교회 교인들은 꼭 기억할 것은 뒤에 물으면 나만치 모릅니다.

기억하면 저 죽고 필요 없는 그런 거는 많이 알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인간은 늙지마는 하나님은 안 늙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은  그 육체는 늙으나 속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성경이 말했는데 그것도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틀립니까?  ‘앞으로 목사님 사후에’ 이건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자꾸 죽는 것만 말하는데  이렇게 말할수록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장수해서 내가 여러분들보다 제일 오래  살아서 말이요, 예수님 재림 때에 여러분들을 앞세우고 내가 뒤에 갈란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목사님 사후에 목회 제도 이상적인 제도에 대해서 목사님의 견해를  언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것은 한 마디로 말합니다. 지금이나 사후나 꼭  같으니 우리의 목회의 제도는 출발을 성경에서 하고 마지막에 결말을,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내가 살았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든지 성경으로서 출발해  가지고 성경에 떨어졌으면 성경으로 다시 들어붙어서 성경과 동행하는 그런 목회  제도를 우리가 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목사님의 목회관을 전국적으로 원화한 제도에 관해 피력해 주십시오’ 또  이런 거석이 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뭐 널리는 할란지 안 할갈지  그거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내가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기독교는 민주주의라 하는데 대해서, 그  독재주의라 하는 것은 일반 그 문화에서 이해 못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좀 신주주의라 이렇게 바꾸었으면 좋겠다 그런 또 신앙 동지 한 분이 와서 말을  했습니다.

 녜, 하나님을 주로 하는 신주주의도 좋습니다. 신주주의나 독재주의나 같은  말인데 독재주의는 전투성을 가지고 있고 신주주의는 전투성을 가지지  안했습니다. 신주주의는 하나님을 주로 삼아 딿는다는 말이고 독재주의라 말은,  세상은 모두 민주주의라고 하는 인간의 다수 가결을 따라서 가는것이 세상이요,  그러기 때문에 온 세상은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칼빈도 민주주의자라  하는 것이 벌써 다 공통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성경에 대해서 좀 유식한  분들은 다 기독교는 민주주의라하지 독재주의라고는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저만은 독재주의라는 말을 기어코 써야 됩니다. 내가 그 말을 무식해도 몰라  그런 게 아니고 알기 때문에 씁니다.

 가서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연구할 때에, 그때 그분이 히틀러를 들어서 히틀러가  독재주의인데 그런 게 독재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민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독재주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데,  히틀러는 독재주의 하다가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독재주의로 성공한  분입니다. 히틀러는 부분의 독재주의를 했고 그리스도는 전면적으로 독재주의를  했습니다. 히틀러는 일시적 독재주의를 했고 그리스도는 영원한 독재주의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독재는 자유의 독재입니다. 자유로 요만침 가지라. 요거  더 못 가지요. 요만침 가지라요 더 못 가집니다.

 자유도 당신의 독재요 흥망도 당신의 독재요 범죄도 당신의 독재요 심판도  당신의 독재요 의인도 당신의 독재요 죄인도 당신의 독재입니다. 안 들려? 큰일  났네. 그러면 이건 요긴하니까 한 번 더 하겠습니다. 독재주의는 독일 그 히틀러  그 사람이 독재주의인데 그 독재주의는 자기주장에 반대되는 것은 다 억압하고  살해하고 자기 하나의 주의를 성립시킨 그 예를 들면은,  ‘히틀러 한 정치 그것이 독재주의지 하나님은 독재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고 이렇게 다 자유를 가지도록 했다.’ 히틀러는 저만  자유했지 다른 사람은 자유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히틀러 독재는 일면  독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줘 놓고 심판을 해서 망치는 독재입니다. 꼭 죄를  지어서 망하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 놓고 죄를 지으면 멸망시킵니다. 지옥 가도록  만들어 놓고 지옥 가는 자를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합니다. 천국 갈 자를 천국 갈  자로 만들어서 천국 가도록 해 놓고 천국에서 영원한 영생을 하게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독재는 전면 독재라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래서, 히틀러는 자기 그 의사에 반대되는 것을 즉시즉시 처단해 나갔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얼마든지 하도록해 놓고 하나님이  심판에서 다 이것을 다 간추려서 당신의 독재 사상그대로 심판하고 영원한 인과  보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양면 전면 독재라 말은 자기주장을 따르면 좋고 안 따르면  마다 했는데 이분은 당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도록 해 놓고 또 그걸 벌을 합니다. 당신의 주장을 땅도록 해 놓고 따른 자에게 상을줍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재는 먼지 하나도 남지 안하고 머리털하나만치도 남지  안하고 전전 전전 독재 독재 독재 전독재 전독재전독재입니다. 영원한 독재요  완전 독재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인간에게 자유성을 줬는데 자유성을 줘 놓고 하나님의 당신의 독재법에  위반되면 자유 줘 놓고 왜 그러느냐 하지 못하게 심판해서 다유황불  구렁텅이로’다 몰아넣습니다 그분보다 더 독재가 어 데 있겠소?이라니까, 조금  넓게 생각해서, 그분은 당신의 의사에 반대되는 것을즉시 즉시 하지 안하고서  많이 키워 가지고 당신의 법도대로 심판을 해서 모든 것을 판정합니다.

 당신의 뜻에 위반되는 것을 심판해서 판정하면 그만하면 됐을 터인데 하나님은  그만하면 알면적 일방적 독제일 건데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어기도록 해 놓고  어긴 자를 또 판정해서 심판해서 멸합니다. 이러니까양면 독재라 전면 독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저 OOO장로님 법인인데 이해돼요? 우리 여기 집회에 우리 한국에 최고의 법인  저 서울대학 법학 대학원 원장님이 계시는데 그 어른은 그 견해가 어떤지 내가  안 물어봐서 모르겠어. 만일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데도 틀렸다 반대하면  그분도 틀렸습니다. 천하 인간이 다독재주의라 하는 것을 틀렸다고 하면 천하  사람이 다 반대해도 심판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독재주의자요.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독재주의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주었으나 자유 이거  가지고서 줬으니까 자유하라는 것이 아니고 자유 줘 놓고 당신의 독재법에  범하면 자유를 줘 놓고 형벌을 줍니다.

 거기에 자유는 무슨 자유냐? 유한한 자유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인데 그 자유는  하나님의 독재법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 독재법에 너 자유성을  주니까 네가 자유성을 가지고서 이 독재에 복종하면서 살고 어기면 죽는다  그렇게 이 심판할 재료를 잡기 위해서 인간에게 유한한 자유를 준 것입니다.

 자유 준 것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서 제맘대로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유 준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제맘대로 하라고 자유를 줘 놓고 또  당신 법 어긴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심판해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택한 자의 것도 당신이 또 독재로 내 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이 대속 안에 들지 안한 것은 전부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아 넣습니다.

 하나님의 독재주의는 큽니다. 세밀합니다. 이 독재는 물샐틈이 없습니다.

이래도 사람들은 아직까지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가서 깊이 연구를 해 보시고  제가 생각하는 대로는 하나님은 독재주의다 하는 이것을 굳게 잡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 긍정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하면 대단히 위험한 미래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분은 절대 독재주의자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는 게 좋고 그분에게  속하는 게 좋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좋고 인간에게 제맘대로 하는 자유  줬다고 독재 잊어버리고 이제 자유 가지고서 벌로 날뛰다가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갈 것만 마련하게 됩니다.

 세상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 문화의 모든 것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으니까,거기에 있는 그 단어들 일반 공통하는 그 단어들을 사용하는게 좋지  않느냐 이라는데 일반 공통하는 데에는 이렇게 쓸 단어가 없습니다.

 히틀러를 독재주의라고 쓰는 그 단어는 있지마는 하나님을 독재주의라고 쓰는  단어는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나는 나만 만들어 씁니다. 이해가 돼요? 저 O장로  어째?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라, 눈이 까부리하게 쳐다보는 거 보니까. 이해  되나요?  그래, 우리가 한목 다 아는 것 아니고 차차차차 알아서 깨달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라면 지금 본문에,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라’ 이것을 아침에 증거 했습니다.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말은 그의 생사 화복, 흥망 성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잘못된 책임질 것이  하나도 없고 책임 완료를 했다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뭐인가?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칼날이 들어와도 꺼리지 않고, 곤경이 들어와도 꺼리지 않고,  활살이 들어와도 꺼리지 않고, 감옥이 들어와도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말씀하신 이것이 곧 그 피에 깨끗하다 모든 상대에게  자기 의무와 본분을 다 심판에 대해서 다 했고 건설에 대해서 파괴에 대해서  멸망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다 전달할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다 하는  그런말입니다.

 그래서, 벌써 들으니까 어떤 교회서는 그 목사가 이라면 큰일났다고 지금  반대를 하지 목사의 위신을 이래 대중 앞에 막 폭락을 시켜 놨으니 이제 목회를  어찌 하나 또 이렇게 한다고 하지 또 교회들은 그 오늘 아침에 말씀은 참 옳은  말씀이다. 옳은 말씀인데 이거는 온 전국 교회가다 알도록 했으면 좋겠다 하는  분들도 있고 또 목사님 사모님 오늘 아침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참 옳은  말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데 모두 자기 좋도록만 해석을 해 가지고서 이래  하니까 거기에서 내가 오해 받을 것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말은 안 하면 하나님 앞에 매맞을 말만 했기 때문에 매는 면했습니다. 잘못된  말을 했다고 후회되지 않습니다.

 교역자들이 이렇게 위신을 떨어뜨려 놨으니 목회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은  분명히 그거는 그 교역자가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말한 것은  어짜든지 목사 잘못한 것을 자꾸 들어서 말했으니까, 잘못한 것 없애자고 말했지  잘한 것 없애자고 말한 것 아닙니다. 잘못한것을 없애자고 말했으니까 목사들은  오늘 아침에 위신이 떨어지는 게아니라 위신이 굉장히 폭등됐습니다.

 왜 폭등됐습니까? 세상에 목사든지 뭐이든지 삐뚤어진 거는 마구 깨뜨려 놨으니  옳은 것은 높이는 것이요 삐뚤어진 거는 깨뜨렸으니까 자, 목사가 강단에서 그  교회 가 가지고서 주장하고 소원하는 것이 뭐입니까, 주장하고 소원하는 것이  뭐입니까? 주장하고 소원하는 것이 뭐이지요? OOO목사님 한번 대답해 봐요.

그러면 목사 일 잘하도록 해줬네? 목사 소원 성취했구만. 이런데 소원  성취했는데 목사가 또 원망한다 말이오. 목사 소원 성취했지.

 틀린 거는 목사도 여지 없이 깨뜨리고 이라니까 그게 깬 상처를 가지고 다녀요.

‘봐라. 목사도 이렇게 삐뚤어지니까 몽둥이 맞아서 깨어졌는데 하물며 너희들이  삐뚤어진 것 어째? 나 모양으로 깨지기전에 삐뚤어진 것 다 고치라. 안 깨질라면  옳은 것만 가지라.’ 자, 그라면 교회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때요? 그런 목사면 그 자기의 몽둥이 맞은 것, 잘못된 것, 깨진  것 그런 걸 잘못된 걸 깨졌다고 자꾸 온 교인들에게 나는 이렇게 잘못해 가지고  이렇게 매를 맞아 깨졌다 이렇게 책망을 받았다는 그말을 하는 목사면  여러분들이 모실랍니까 배척할랍니까? 모실 사람들, 모시고 싶은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따 야 이거. 전부 다 드네, 이러니까 목사 세월이 났는데 자꾸  목사를 해친다 하고 있어. 해치는게 아니라. 재미 있습니다.

 28절 이제는. 28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조심해라, 자기 위하고. 양떼라 말은 자기에게 소속한 모든 교인들 위해서  조심해라.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성령이 저들 가운데’ 모든 양떼.가운데. 모든 교회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감독자를 삼고’ 그것들을 잘 보살펴서  감독하도록, 관할하도록, 다스리도록 이렇게 세운 것은 이것은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니 보조 반사로부터 반사, 부장, 권찰,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전부를 총칭해서 여기에 감독자로 세웠다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이 감독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교회에 은사 교권에  반사, 보조반사, 또 권찰, 지권찰, 집사, 뭐 권사. 장로 이렇게 세운 것은 이.

은사 위치, 은사 위치라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그런  기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은사 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또 거기에서 은혜를 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기본  교권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만들어 쓰기를  그렇게 씁니다.

 일반 은혜를 받는 교인을 가리켜서 기본 교권이라, 또 은혜를 베푸는 이를  가리켜서 은사 교권이라는데 그 말이 은사 교권과 기본 교권의 말이 쓰고는  있지마는 합당하지는 않습니다.

 기본 교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교인이 있고야 모든 성직자들이 있다. 모든  성직자들이 평신도에서 생겨난 것이다 하는 그런 뜻과 또 평신도가 그 교회에  제일 근본적인 본체요 주격체다 하는 그런 연유에서 그렇게 그런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래서, 28절에 ‘너희는’ 이 너희는 하는 말은 누구를 말한니까? 교인을  말합니까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까? 똑똑히 봐요. 저 학생들, 늦게  와도 한 마디만 잘 들으면 살아요. ‘너희는’ 했는데 너희는 교인들을 말합니까  거기에 은혜 베푸는 기관이 되어 있는 보조반사나 반사나 부장이나 권찰이나  집사나 권사나 장로나 목사나 이’런분들을 가리켜서 ‘너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말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그러면 이렇게 성직을  맡은 사람, 반사직이나 보조 반사직을 맡은 사람 그 사람은 무엇을 하라  했습니까? 삼가라 이랬습니다. 삼가라. 조심해라.

 반사되면 조심해야 될 터인데 반사되면 반사라고 우쭐거리고 장로되면 장로라고  우쭐거리고 집사면, 권사면, 권 찰이면, 목사면, 전도사면 이거 됐다고서  우쭐거릴 줄만 아니까 성경과 다릅니다. 성경에는 우쭐거리라는 소리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OOO전도사님, 전도사로 세운 것은 하나님이 어짜라고 세웠어요? 어짜라고  세웠어요? 하나님의 일 하라고? 봐, 저 뒤퉁이같이. 저 뒤통이 목사, 뒤퉁이  목사. 그거 백 목사가 꼭 코를 깨네, 어찌 그리 잘 보고 말하는고? 그 이상하지?  하나님의 일 잘하라고 그래 세웠답니다.

 자, 그러면 교인한테 한번 물어 볼까요? 자, 조사님이나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권찰님이나 이래 세운 것은 어짜라고 세웠어요? 봐, 여기에는 다  아는데, 삼가라고.

 ‘삼가라’ ‘삼가라’ 은사 교권을 자기가 가졌으면 일호가 삼가는 것입니다.

삼가라 말은 조심하는 것이요, 조심하는 것.

 조심하는 것인데 그러면 어데다가 대고 조심을 합니까? 돈에 대해서 조심합니까  지식에 대해서 조심을 합니까 어데 대해서 조심을 한다고 해 놨습니까? 그  본문을 ‘요. 자기와 자기에게 하나님이 붙여 주신 양떼를 위해서 삼가라  했습니다. 양떼를 위해서 삼가라,  이 성경을 떠나 가지고서 장로되면 장로 권세나 부릴라고 하고 목사되면 목사  권세나 부릴라고 하고 목사가 어데 부임하면 여기에 가서는 도적질을 좀 해 먹을  만치 좀 깊으단하게 창고가 커단하나 안 하나 이것만 살핍니다. 그 교회  경제력이 어떤가? 또 누구 주머니가 크노 작으노 그거 살핍니다. 연보는 누가  제일 많이 하지? 자꾸 후벼 가지고서 연보 많이 하고 적게 하는 사람 그것만  살핍니다. 돈을 살피요. 여기에는 자기와 양떼를 위해서 살피라 아랬습니다.

자기와 양떼를 위해서 살피라. 그 직책이 무엇이건데 살펴야 될까? 그 직책을 그  밑에 가리켜서 ‘성령이 저들 가운데’ 그 양무리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감독자를 삼고’  은사 위치에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집사든지 권찰이든지 보조 반사든지 반사로  세움을 받은 것은 누가 세웠다고 했습니까? 성령이 세웠어. 성령이 위에 목사나  장로나 그 당회에서 혹은 교인들이 세웠는데 세운 것은 사람이 세웠으나 실은  성령님이 그들을 세우셨다 요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시기를 서기관, 성경 가르치는 사람들,  바리새 교인들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위치에 세워 놨기 때문에  너희들은 저희의 행동은 어쨌든지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워서 그대로 실행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움을 받은 사람, 세움을 받은 사람은 첫째는 조심해야  되는데, 뭣을 위해서 조심해? 자기 위해서, 양무리 위해서 조심해야 돼. 또 무슨  직으로 조심해야 돼? 감독직으로 조심해야 돼. 그 모든 것들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 내게 책임이 있다 그말이오. 감독자가 잘못했으면 잘못된 것은 감독자 다  그 댓가를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형벌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교회의 성직자는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야 되고 온  교인들도 알아서 어쨌든지 교회로 인정하는 그 교회에 성직자로 세웠으면 실상은  마귀가 세웠다 할지라도 본인은,  ‘우리 교회 장로님은 성령님이 세워 놓으셨다’ 또 ‘나는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런 줄 알고 저를 감독자로 세운 줄 알고 삼가  조심하면 손해갈 것 하나도 없습니다.

 감독자로 세운 것은 누구 감독 하라고요? 누구 감독하라고? 몇을 감독하라고,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몇을 감독하라고? 내가 하도 이름 들어서 아는데’ 저  OOO교회 저 교수는 박사는 손가락 안 드네. 몰라요? 그래 들어야지 들어야지 워.

박사라도 여기에 와서는 학생이야.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됐는지 하나님의 그 스피카가 됐는지 하나님이 쓰니까  나는 쓰여지는 것이지마는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와 양무리를 감독하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하는 것을 자기도  알아야 되겠고 교인들도 알아야 되겠고, 세움을 받은 자기는 다른 사람만 감독할  것이 아니라 첫째로 자기를 감독해서 다른 사람을 능히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네 눈에 들보를 빼고 자세히 보고’ 남의 눈에 티를 빼라’ 하는 요  법칙대로 자기에 대해서 삼가 강독을 해서 누구의 것을 감독을 해도 ‘남  감독하지 말고 네나 감독해라’ 하는 그런 빈축을 받지 아니하도록 자기를  감독해서 양무리의 본이 되는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무리를 위하여 삼가라’ 조심해라.

어떤 조심? ‘성령이 저들 가운데’ ‘저들 가운데’ 양무리 가운데, 모든 교회  가운데,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감독자로 삼았기 때문에 이  감독노릇을 잘못할까 해서 삼가는 것입니다. 감독이라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이 감독인데 조성할 때에 잘못됨이 없이 감독을 하는 그 시작을 해 가지고  마지막에 검사 맡을때에 하나도 흠점이 없는 완전 제품으로, 우량품으로 그렇게  납품이 되어지도록 하는 그 일을 책임진 자가 감독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이 감독으로 세운 자신은 조심할 것은 자기가 맡은 그 모든  양무리에게 대해서 또 양무리의 표본이 될 자기에게 대해서 건설이 잘못될까  이렇게 건설면에서 감독해 가지고서 흠점이 없이 건설이 되도록, 이 건설된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검사 앞에 나가야 되니까, 하나님의 검사 앞에 납품이 되는  것이니까 그 검사에 흠점이 없도록 그렇게 책임지고 하는 것이 감독이라.

 이래서, 너희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이것을 우리가  성경대로 깨닫고 알고 가르치고 전하고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알고 행치  안했으면 알고 행치 안했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는 정죄와 벌이 있습니다. 알고  행하지 못했으면 자기가 죽기 전에 어서 자복하고 그다음 기회가 올 때에는 잘  할 수 있도록 회개를 해야 해니다.

 감독한 것이 검사에 우량품으로 납품이 됐을 때에는 자기는 ‘잘됐다’ 하면  오만한 자가 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걸 붙들고 이렇게 상품(上品)으로  납품이 되도록 하셨으니 참 감사합니다’ 자기의 미비점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방해했던 것을 낱낱이 생각해 가지고서 그것을 자복을 하고 바로 된 것은  감사하면서 요 다음에도 요와같이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잘못된 것은 사과해서  용서를 받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한 사건 한 사건 하루 하루를 자기의 감독  직책을 하나님 앞에서 검사 받아서 다 매일매일 검인을 마쳐서 완료를 해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꼭 저녁으로는 자기는 일찍 자야 되는데 이 일찍 잘라고 오만 거  저만 거 할라 하니까 이것저것 정리 다 해서 이제 오늘 저녁에 일찍 자야 되겠다  했는데 그날 저녁 일찍 잘라고 하고 보니까 이 종일한 거 감독으로 세운 이 감독  직책이 바로 됐나 안 됐나 그것을 지금 검사를 안 했기 때문에 또 그거 하나  하나 들먹여 가면서 이제 자기가 한번 조사해 가지고서 조사를 해야 이제 납품이  되어지고 납품 되기전에 조사해 가지고 잘못된 것 있으면 ‘주님이여, 이 면이  잘못됐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다시 수정을 받아야 되고 용서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이러니까 뭐 이라고 저라고 할라 하니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 이것이  일반 신앙생활하는 기독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삼가고’ 하나님이 지금 그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지금  기합을 줍니다. 하나님이 기합을 주요. 하나님이 기합을 주시요.

 무슨 기합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친다 말은  다스릴 치(治)자, 다스리게 하셨느니라, 관리하게 하셨느니라.

 주님의 피라 말은 주님이 도성인신 하시고 사활로 우리를 대속한 이렇게 참  지극히 큰 사랑과 댓가로 이렇게 믿는 사람을 만들어 세워 놓은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조심없이,  ‘이 사람의 구원이 어찌 되느냐?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을 때어찌 되느냐?  오늘도, 오늘은 내일의 원인이요 내일은 모레의 원인이요 어제는 오늘의 원인이  되는데 미래의 원인되는 이것을 잘못되면 미래는 다 박살되고 마는 것이니까 이  중대한 시점에 있으니까 미래의 원인되는 오늘 이것이 잘됐나 못됐나, 내가 감독  일을 잘했나 못했나, 여기에 대해서 내가 조심을 햇나 안 했나?’ 이것일랑  살피지 아니하고,  누구를, 누구를 꾀우고 누구를 비행기를 태이고 누구를 달콤한 마취제를 먹여  가지고서 돈을 홀켜낼까, 잘 대접하는 일을 하게 할까. 내 편이 돼 가지고서  내가 잘 가든지 못 가든지 나를 협동하고 옹호하는내 인성을 만들까? 돌로 쌓는  성도 있지마는 사람으로 쌓는 성을 가리켜서 인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으면 그거는 내 인성이라.

 여기에만 꿈을 꾸니 외나 총 감독자, 하늘과 땅의 것을 심사하는 총권을가지신  그분 앞에 검사가 어찌 되느냐 하는 이면 생각지 안하고 그런데만 급급하고 재  세상살이에 이런 모 저 모에만 급즙하게 이렇게 있는것 이,  자, 그대로 있으라고 협동하면 좋아요 오늘 아침에 모양으로 마구. 나쁜 말로  말하면 욕이고 옳은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진노의 사랑의 책망을 하신 것이지요.

 그러면, 그게 싫어요 좋아요? OOO목사,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몽둥이를  맞아도 좋아? 책망을 받아도 좋아? 저 목사 영 아주 그만 가서 대우 받을세.

 오늘 이래 가지고 이 말 듣고 가 가지고서 가서 ‘뭐 백 목사 말이면 다야?  그래. 양떼들 모아 놓고 목회자 위신을 그렇게 떨어뜨린 것이 옳애? 엔간히 좋고  꼬셨겠구만. 아무 집사는 그러니까 마음이 시원하지? 자, 이렇게 하면  위험합니다. 위험하요. 위험해. 왜 위험해? 잘못 깨달았기 때문에 위험하지.

 자, 그것이 목사 권위를 세워 주는 것이요 떨어뜨린 것이요? 목사 권위를  세우는 것입니까 떨어뜨리는 것입니까? 자, 여기 남반에, 세우는 것인 줄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참 잘 깨달았습니다. 세우는 것이지?  삐뚤어진 것은 박살을 내고 옳은 것은 치켜 들으면 그것이 목사 하는일이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그것이 목사 권위를 세우는 것이지. 뼈뚤어진 것도  그대로 옳은 것도 그대로 도매금으로 넘기는 그것이 목사 권위를 박살내는  것이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다스리게, 하셨느니라.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어떤 것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인가? 다스리는 것을 그  다음에 말합니다. 다스리는 걸 그 다음에 말해요.

 조심해라. 삼가라, 성령이 너희에게 맡겼다. 네가 지금 그 양무리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흥망 성쇠를 네가 감독하고 있다. 양무리가 잘 만들어지나 못  만들어지나. 양무리가 하나님 앞에 합격으로 상품이 되느냐 못쓸 폐물이 되느냐  하는 것을 만드는 일을 네가 조심해서 해라. 감독자로 너를 세웠다.

 이랬는데, 29절에 말씀했습니다. 이제 만들고 조심하는 일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말합니다. 어떤 면을 삼가고 조심하고 감독을 해야될 건가?  29절에 ‘내가 떠난 후에’ 누가 떠난 후에를 말합니까? 여기에는 사도바울이  떠난 후를 말하는데 오늘 우리로 말하면 목회자가 떠난 후에 하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떠난 후에. 교역자가 바꾸어진 후에 그말이오. 떠난 후에, 떠나면 뒤에  다른 교역자 안 옵니까? 떠난 후에 하는 말은 새 교역자가 올 때에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이라.

 내가 아침에 말 들으니까 우리 OO교회에서 어떤 분이 저 아레 나한테 왔어 와  가지고서 ‘우리 O목사님을 꼭 보내 줘야 됩니다’ 이래서  ‘이 교역자회 때에 다 모든 것이 결정이 될 것입니다’ 꼭 보내 주이소 꼭  보내 주이소 이렇게 말해서 ‘그거는 이 교역자회 의논해 가지고서, 나도  보낼라고 애를 쓰기는 쓰겠는데 그거 또 하나님이 안 보내면 어짭니까?’ 이라고  서로 그저 웃고 말았는데 오늘 아침에 말 들으니까 O목사 안 보내 준다고 마구  뻐꿔서 그만 가방을 들고 저 굴다리 밖으로 도망질을 치더랍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자, 백 목사가 그 소리 들으면 백 목사가  섭섭하겠소 기쁘겠소? 섭섭하겠습니까 기쁘겠습니까? 자. 섭섭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또 기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모르는 거라.

모르는 모양이라.

 나는 기뻐요. 나는 기뻐.자기가 은혜 받은 목사 이 땅 위에 피조물로서  자기에게 제일 보배로운 것은 목사인데, 저거 신앙 지도하는 목사인데, 자기  생명보다 귀해. 왜? 옳은 신앙 지도 받지 못한 생명이 있으면 하루 산 것만치  심판만 많이 만들지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더 귀한데, 제가 은혜받고 졸졸 지도받아서 구원 잘 이루어가는데 그  목사를 안 보내 줄라 하니까 부애가 날 게 아니라 화가 나서 도망을 칠 게  아니라 막 백 목사한테 와서 ‘왜 그랍니까?’ 이래 퍼부을수 있는 그런 울분한  그런 열정 있는 목회자의 정말의 가치를 알고 있는 그런 교인들이 되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뭐, 바뀌거나 말거나 오거나 말거나 목사 저는 저고 나는 내지 뭐 그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안해야 됩니다. 그분은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을 갈라는 사람이라, 좋은 사람이라.’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이 바울이 떠난 후에, 목회자가 떠난 후에,  백 목사가 떠난 후에,  나는 서부교회에서 좋은 거 하나는 봤어요. 내가 죽고 나면 어찌 될건가  상상이야 하지요. 내가 죽고 나면 이 교회가 어찌 되겠나, 어찌되겠나, 저  사람들이 어찌 되겠나, 무엇이 일어 나겠나, 어짜겠나 그것을 짐작이야 하고  있지마는 실상은 몰라요.

 이런데, 내가 82년 때 병들어서 곧 죽는다 산다 할 때에 그때에 내가병들고  있으니까 교인 저거들끼리 저거 목사 저거는 살았어도 곧 죽을 터이니까 하고서  영 장난을 쳐 재끼는데 마귀 그놈이 와 가지고 마구 흘렁하는데 그때 마귀노릇  안 하는 장로가 없고 목사가 없어.

 내가 그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서부교회에 될 일을 죽기 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한번 보도록 해 주셨다’ 내가 그런 말을 많은 사람 대중 앞에서  말했습니다. 여러 차래 말했어.

 지금도, 너무 억울한 소리인지는 몰라도 ‘어라 냅둬라. 좀 한번 좀박아대면  싶으지마는 나이가 뭐 칠십 구세니까 뭐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이제 죽도록  기다리자.’ 하는 그런 분들도 있고 또 어서 죽으면 싶은 분도 있고, 이거는  지나친 말인지 몰라도 그럴 수 있다 그거요. 자꾸 죽어야 된다고 자꾸 이래 많은  사람이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소원을 들으시는 동시에 또 사람의 소원을  꺼꾸로 정 반항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경험한 대로는 내가 요것 됐으면  좋겠다 싶으면 꼭 그거 안 돼요. 정반대로 옵니다. 하나님은 꼭 내가 말한 대로  반대로 한다 그절 내가 보고서 또 흥미 있게 생각해요.

 내가 우리 집에서도 보면 아내가 저래 할라 하면. 아내가 저래 할라 하면  ‘그거 틀렸어’ 무조건 틀렸어 해 놓고 지금 연구를 합니다. 그거보다 더 좋은  것을 연구해 가지고서 ‘이게 이거하고 그거 둘 중 어느 것이 낫아? 그게 낫아  이게 나아?’ 나은 게 낫다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또 집사들도, ‘목사님 하는 것 이래야 됩니다’ 이래야 됩니다 하면  ‘예, 그렇습니까?’ 하고서 따라가지 않고 ‘이래야 됩니다’ 그라면 그만 억센  사람에게는 그랍니다. ‘안 돼’ 이말부터 선포해 놓습니다. ‘안돼’ 좀  부드럽고 겸손한 분에게는 ‘좀 생각해 봅시다’ 이랍니다.‘안 돼’해 놓은  데는 그거 꺾어야 되기 때문에 ‘안 돼’ 해 놓소.

 ‘안 돼’ 하는 데는 백점짜리 하는 사람에게 내가 그 소리 못 합니다. 이거는  제가 암만 해 봤자 칠십점이나 팔십점 그뭐 육십점 구십점하지 그 이상을 못할  것이다 알기 때문에 ‘안 돼’ 이래 놓고, ‘안 돼’ 이래 놓고는 막 밤잠을 안  자고 자꾸 연구를 하요. ‘보자, 저게 몇십 점짜리? 저거는 구십점짜리다. 야,  이래 하기는 했다. 그거보다 더 나은 거는 없나, 더 좋은 거는 없나?’ 그거보다  더 좋은 거 연구 못하면 그만 거기 밟혀야 됩니다. 그만 밟혀야 돼. 거기에  복종해야 될 것 아닙니까?  애를 쓰고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야, 그거와 이거와 생각해 봐라.’  그거 하는 것보다도 백점짜리 좋은 게 있거든. 그때 떡 능청스럽게 떡 가지고서  ‘왜 그거 안 된다 합니까? 뭐 어째야 된다 말입니까?’ ‘어째야 되긴 뭐  어째야 돼? 그래 가지고 되는가?’ 이라면 ‘그라면 어짭니까?’ ‘생각해 봐.

이래 해 보지.’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게 낫거든. ‘아이 목사님 그게  낫습니다.’ 이렇게 자존심도 살려서’‘, 꺾기게 돼요. 안 꺾이는데 이치 없이  안 꺾일라 하면 뒤에 그만 꺾이는 게 아니라 죽어 버립니다.

 OOO권사님 됐소? 집사님? 이 총공회, 딴 데 떠났으면 벌써 권사벌써 받을 건데.

권사 일찍 받고 싶거든 저 딴 데로 가요. 딴 데 가면 일찍 권사 받지. 내가 지금  말이오. 이런 지혜 가지면 좋아요 안 좋아요?  그래, ‘내가 떠난 후에’ 떠난 후에, 또 새로 목회자가 부임한 후에, 떠난  후에 부임한 후에 또 목회자가 목회를 할 때에 조심할 것은 자기구원과 자기가  책임진 양무리의 구원을 위해서 삼가라, 조심해라. 내가 돈받지 않는 이  감독자가 돼 가지고서 영원을 감독하는 책임자가 되었으니까 얼마나 무거운가 이  감독을 잘하도록 해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흉악한 이리가’  ‘흉악한 이리가’. 알아 들리요? 저 알아 들려? ‘흉악한 이리가’ 알아들어?  안 들려?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이리가 사람입니까 짐승입니까? 사람을 말합니다.

‘이리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양을 삼켜서 제 양을 만들라고 제것을 만들라고,  하나님의 신부를 제 신부를 만들라고, 하나님의 애인을 제 애인을 삼을라고,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산 양을 제 양을 만들라고, 제 사람을 만들라고.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도록 하나님에게 중매하는 것이 목사인데, 예수님에게  중매하는 것이 목사고 진리의 사람 만드는 것이 목사고 성신의 사람 만드는 게  목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의 것을 만드는 것이 목사인데, 자, 이것을 제 사람  제가 만들면 그 뭐입니까? 이리, 이리. 양을 잡아 먹었다 그말이요, 양을 잡아  먹었다 그거요.

 양 잡아 먹는 목사를 알아야 되지, 양 잡아 먹는 목사를 알아야 제가 감독  직책을 하는 것이지, 양 잡아 먹는 목사, ‘삼가’ 는 뭐를 삼가요? 뭣을  삼가요? 뭐 삼가요? 자,장로님들 뭘 삼가하요? 장로님들 뭘 삼가해야 돼요?  장로님들이 감독자인데, 저게 OOO교회 장로님 뭘 삼가해야 돼요? 그 이리가  오는가 삼가야 되지, 이리가 오는가 삼가야 돼. 삼가해야 돼요.

 거기에 목사님은 OO목사님이지요? OOO목사님은 양 잡아 먹는 이리 노릇은 이제  여생에는 한 번도 안 하겠지? 안 해요? 틀렸어, 틀려. 틀렸어. 언제 할란지  몰라요, 언제 할란지 몰라요.

 이러기 때문에, 딱 삼가 조심해 딱 보고 있다가서 ‘목사님 이번 일은 이리가  하는 일입니다’ 이라면 ‘이 장로가 목사 시키는 대로 따라 올 일이지 뭐해?’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그거는 양 잡아 먹는 이리 하는 일  아닙니까?’ 그게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 세워 놓은 아름다운 감독이요,  조심하는, 삼가하는 감독이요, 귀한 하나님이 뺀 일군입니다.

 이러니 하, OOO목사님 또 나를 위신 떨어 뜨린다는데, 자, 서부교회 장로님  누가 있나? 서부교회 장로님 누가 안 보이네? 서부교회 백목사는 이리 노릇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까 안합니까?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 이러니까  할란가 안 할란가 자세히 살펴야 되지. 할란가안 할란가 자세히 살펴야 됩니다.

 이러니까, 나를 하나 끼워 넣었으니까 OOO목사님 마음이 푸근할거라. 나만 안  끼워 놓으면 자기 훼방하는 줄 알 건데, 그거 훼방이 아니라 목사를 치료하는  것이요 목사를 살리는 것이요 목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실수 없는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어짜든지 진리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과 대속의 공로의 사람,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갈급한 사람, 세상과  땅의 것에 소망두는 것을 뿌숴서 하늘나라에 소망두는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  목사인데,  이 목사는 자꾸 하늘의 것을 땅의 걸로 바꿉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땅 위에  있는 세상 지식과 바꿉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인정을 인간에게 인정받는  인정으로 자꾸 이렇게 바꾸어갑니다. 그게 이리라. 그게 이리. 아시겠습니까?  암만 여기에서 안다고 해도 참 목사들 심판 무섭습니다. 양떼는 이거 순진해요.

아무리 제가 똑똑하다고 해도 목사와 장로와는 다릅니다. 장로는 눈이 어둡고 그  시야가 좁아요. 목사보다 좁아요.

 이러기 때문에, 이 양떼들은 뭐 목사가 거짓말을 한 달 두고 거짓말해도 그만  무조건 복종이고 무조건 인정입니다. 못씁니다. 요거 꼭알아요.

 ‘떠난 후에’ ‘그전 목사는 안 그렇더니마는 새로 들어온 목사는이렇다. 우리  목사님이 내내 안 그렇더니마는처도 갑자기 몇 달 동안에 변해졌다.’  오늘 아침에 저 OO교회 집사님이 와서 자복을 해요. 그련데, 그 집사님은 나는  장로님에게 참 좋은 일군들이 많이 들어 왔다고서 그 집사님 자랑을 많이 해서  내가 보니까 처음 보지만 반가왔는데 그 하는말이 뭐이냐 하면 ‘십일조를  회계가 늘 그라다가 그만 십일조 들어오는 대로 바로 교역자에게 갖다 주는 일을  내가 했는데 꾸중은.공연히 목사님을 듣겠습니다’ 그래 내가 ‘그래요? 그렇게  한 일 있습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했다고. ‘그라면 그거 잘못됐습니다’  ‘그뭐, 목사님이 가져 오라 한 게 아니라 내가 그래 갖다 드렸으니까 잘못은  내게 있지 목사님에게 있는 것 아닙니다.’ 그래 자기가 그거 두터써요.

 그라면, 예수님의 대속의 종이기 때문에 그거는 좋은 마음인데, 그래 내가  말했어. ‘그래요? 그거 참 아무 가져오라 소리 안 했는데 집사님이 갖다  드렸으니까 그거는 집사님이 잘못이로구만요.’ 내가 이렇게 말해야 되겠소?.

 그래 내가 있다가서 ‘가져 가도 안 받으면 되지.’ 가져 가도 안 받으면  되지.’ ‘이라는 게 아닙니다. 이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했으니까 그분이 집사님에게 내가 다 말은 안 했지마는 집사님의 감독자이기  때문에 그 감독이 그렇게 잘했으면 되는 건데 못했으니까 책임은 그분에게  있습니다 내가 그라고 웃고 그래 돌려 보냈습니다.

 이말은 왜 하느냐 하면 잘 나가다가도 사람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귀신이  들어오면 귀신이 됩니다. 가룟 유다가 일등 제자요. 학벌도 좋았고 문벌도  좋았고 그이의 사교도 넓고 아주 민활하고 예민한 사람이요 신실한 사람이요,  그러기 때문에 회계를 맡겼지. 그라기 때문에 회계를맡겼어.

 이랬는데, ‘나를 잡아 줄 자가 옆에 있다’ ‘누굽니까 누굽니까?’ ‘이  쟁반에 나와 같이 음식 먹는 자가 그자다’ 하니까 그말 한 마디에 그만 밖으로  싹 나갔는데 그때 사탄이 그 속에 쏙 들어갔다 이랬어. 사탄 그놈은 우리 속에  들어을 때에 그런 형편 처지를 살피고 있다가 그만 뭣이든지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 마음을 통해 가지고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우리에게 나쁜 마음 먹은 그것은 마귀의 거처할 처소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쁜  마음만 가지고 나쁜, 생각만 가지고 나쁜 욕심이나 뜻이나 가지면 즉시 마귀는  그 자리 들어와 가지고서 주인공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도 못  쫓아내요. 우리가 암만 기도해도 안 돼요.

 왜? ‘내 집에 내가 들어왔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내 집에 나를 들어온내 집에  있는 걸 나를 쫓아낼라 하노?’ 월권이라 말이오. ‘내 집에 내가 들어왔는데’  그러면 마귀는 거처하는 저거 집이 어디라요? 마귀가 거처하는 저거 집은  어디입니까? 마귀가 거처하는 저거 집은 죄라.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남에게 충동을 안 받아야 됩니다.

 피동을 안 받아야 됩니다. 시대의 풍조, 사회 풍조, 친척의 소근거리는 말 그런  데에게 조심해서 피동을 안 받도록 해야 됩니다.

 원수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원수가 집안 식구라고 했어. 누구든지 자기를  마귀의 집을 만들도록, 마귀가 자기 속에 들어을 수 있도록 다리놔 주는  중매쟁이는 집안 식구입니다. 집안 식구요. 누구 집이라도 다 그래. 그런 줄  알고 조심해야 되지 이거는 뭐 내 가족이기 때문에, 내 형제기 때문에, 내  부부기 때문에, 그라는 통세 마귀란 놈이 판판이 수입을 봅니다. 승리를 하고.

 자, 마누라 통해서 유혹 들어온 것은 그것은 원수를 통해서 유혹 들어온 것과  해독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OOO선생. 해독이 달라. 원수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거기에 조심이 딿지마는 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통해서 들어오는 거는 안심하고  방종하니까 그 속에 와서 해를 얼마든지 칩니다. 이해가 돼요?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양떼를 아끼지 안해. 양떼를 아끼지 안하는 게 어떤 게 양뗴를  아끼지 않는 것인가? 그 다음에 보면 있어.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여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 내가 아노라’ 그러면,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삼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삼키는 것, 양떼를  삼키는 것,  나 모양으로 오늘 양떼를 막 꾸중을 하고 욕하는 것일까?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삼키는 것은 어떤 것이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삼키는 것입니까? 뭣이요?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좋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일어날줄 내가 아노라’  양떼를 아끼지 않는 것이 인정으로써든지 돈으로써든지 음식으로써든지  친절로써든지 봉사로써든지 뭐 자기의 직장을 구해 준 뭐이든지 어쩌든지  통틀어서 여러분들은 요렇게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진리에서 영감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서 거기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자기와 가깝게 만들든지, 자기  사상과 가깝게 만들든지, 자기 처세술과 가깝게 만들든지. 자기의 형편, 사정,  자기의 사상, 어떤 것에게 가깝게 만들든지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과  멀어지게 만드는 그자가 양떼를 아끼지 안하는 자요. 양떼를 삼키는 자요 양떼를  죽이는 자라.

 이래 가지고 요새는 뭐 교회들이 그냥은 안 되니까 교회 연보하라고 돈 모으면  그래 가지고서 ‘자, 오늘은 요번에는 설악산을 갑시다. 요번에는 금강산을  갑시다. 요새는 어데를 갑시다. 뭘로 갑시다.’ 이렇게 끌고 다니니까 막 좋아서  못 견딥니다.

 나도 계롱산 속리산 한번 교인들 데리고 한번 가 봤어요. 아주 조심해서 간다고  가 봤습니다. 거기에 온 것은 계롱산에는 모든 미신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까  어떤 미신이 있는가 해서 그거 보러 갔고, 그날 나서서 속리산 간 것은 속리산은  이름이 좋아서, 세속을 떠난 산이라 이래서 하도 세속이 더럽고서 진절머리 나서  그 세속을 떠났다는 이름을 속리라 이렇게 하기 때문에 산이 어째 생겼는데  그런고 해서 한번 가봤어요.

 한번 가 봤는데 갈 새는 멋지게 갔어요. 그 제직들 다 데리고 이제, 내가  늙으니까 제적들도 거의 늙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모두 등산 모자 딱딱 사고  등산 뭐 배낭이가? 등산 배낭인가 뭐인가 그거 짊어지고 다 또 등산화 딱 신겨  가지고 이래 가지고 모두 등산복을 입혀 가지고서 이래 떡 갔었는데, 가  가지고서 속리산에 갈 때도 떡 함부래 ‘호령에 따라서 해야 된다’ 이라고서 떡  가면서 ‘한 둘’ 이라고서 ‘바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라니까 마구 그  속리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쪽 보면서 야, 보니까 그럴 듯 하거든. 좇아가서  얼굴 가 봅니다. ‘아이구 할머니다. 아이구 할머니다.’ 다 할머니들인데  멋지게 그래 가지고서 그 속리산에 한번 유명하게 그렇게 한번 돌아왔습니다. 저  산에도 가고 이래 가지고서.

 안 잊어 버릴라고 애를 썼는데 갈 때보다 돌아올 때는 뭐 달라진것 있어요.

달라진 것. 뭐이겠지요, 달라진 게 뭐이겠지요? 주님과 관계가 달라졌어.

하늘나라 소망이 달라졌어. 하야, 이게 참 속화로구나. 속리산에 왔다가서  속화됐다. 그라면서,  참 얼마나 그런 일인데 자꾸 이래 끌고 다니지, 교역자들이 기도실에 가서 만나  놓으면 뭐 어느 교회는 어데 관광갔고 어데 갔고 뭐이 좋고 좋고 어떻게  상식적으로 그런 말만 자꾸 하지, 또 돈 착취한 것만 말하지, 또 교인들을  강제로 강압해 가지고 하는 것만 말하지 이런 뭐나쁜 것만 자꾸 말하니까 이제  기도실에 가면 사람들이 세상과 멀어지고 주님과 가까와지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자꾸 세속화 되어지기 때문에 그런 기도원은 조금 있으면 하나님이 없애  버립니다. 반드시 없앱니다.

 이래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로 하는 사람이 일어날 줄 내가 아노라’  말해 놓지 안했소?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상우는 것은,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상우는 것은 몇 가지 행동이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상우는 것은 영 가지 행동이라 했습니까, 자, 손가락으로? 둘이면 뭣뭐이지? 둘  뭐이요? 이리가 양떼를 아끼지 안하고 잡아 먹는 건데 뭐이야? 뭣하는 것이? 몇  가지 하는 것이? 왜 손가락을 안 들고, 몇 가지? 자, 손가락 들어 봐요, 몇  가지? 둘 뭣뭐? 허위 말, 녜, 그것은 지엽적이고 한 말로 말해서 세 가지입니다.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영감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대속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세상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양떼를 삼키는 이리입니다. 요거 정의를 이래 내요. 그것을 하지말고 다른  지엽적으로 말하다 보면 나중에 복잡해서 실패하게 됩니다.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좋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 아느니라’ 그러면 어그러진 말,  어그러진 말은 한 말로 말하면 어떤 말이 어그러진 말입니까? 뭣 장사하는 말도  있고 공부하는 말도 있고 출세하는 말도었고 오만 말이 다 있는데 나를 하나님과  가깝게 만들지 안하고 저와 가깝도록 만드는 그것이 바로 어그러진 말 하는  것이요 그것이 이리요 그것이 절도요 강도요 원수요 도적이라, 여러분 요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왜 인정의 인간들이 됩니까? 인정을 붙여서 뭐 좋아서 물고 빨면 어짤 것이요,  그래? 마구 정신을 못 차려서, 물론 교역자에게 눈이라도 빼 줄 만치 그렇게  갈급하고 존대합니다. 성경에 말했어.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 복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렇지 마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진리와 멀어지고 그리스도의 대속과 멀어지는  그 일을 하는 그 교역자로 더불어 그렇게 다정해지고 친절해진다면 그거는  뭐입니까? 정신차려야 돼요, 정신 차려서.

 그래, 여러분들이 깊은 뜻은 말해도 모를 것이고 그저 껍데기로 그 사람 말을  들으니까 어짠지 하나님의 나라와는 좀 거리가 멀어진다. 그 사람 만나니까  재미도 없고 밉상은 밉상인데 그 사람 만나고 보니까 어짠지 만나기 전보다도  자꾸 만나고 보니까 하늘나라가 좀 가까와진다,진리가 좀 가까와진다.’ (그때  알아 듣는 척 하고서 자꾸 이란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진리와 멀어지고 하늘나라 소망과 멀어지고 그 사람과는  정이 딱 붙어서 가까와집니다. 못 땔 만치 점점 정이 듭니다. 그 정이 마귀가  주는 정입니까 성령이 주는 정입니까? 성경에 정을 죽이라고 했습니까 살리라고  했습니까? 죽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련해도 진리와 영감과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외면이요. 아무리  문체 좋은 찬란한 정서를 말해도 외면이오.

 그거 보면 압니다. ‘이 사람을 만나고 나니까 어짠지 하늘나라가 보인다’  ‘이 사람 만나고 나니까 예수 믿는 거는 다 어디로 가 버리고 이 세상이  보인다’ 그걸 봐서 여러분들이 이리냐 목자이냐, 그것이 절도냐 강도냐, 그것이  나를 제게 붙일라고 지금 애를 쓰고 있는 것이냐 나를 하나님과 이 진리에  붙일라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냐 그만하면 환하게 다 압니다. 환하게 다 압니다.

핑계 못 해요. 여러분들 핑계 못해요. 저, 오늘 학생들 많이 왔는데 학생들 핑계  못 해요. 저 학생들 좀 깨달아져요? 학생들 깨달아져? 그래, 여기에 똑똑히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서도’ 그러면 교회가 교역자가 바꿔질 때에, 이 시대가 바꿔질  때에, 딴데서 들어오는 이리가 있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애연의 암초라’  사랑의 쟌치 속에 숨은 암초라 한 그 암초가 있습니다. 그 믿는 자기 교회  속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 하는 말입니다.

 뭣이가?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가지고 자기 사람 만들라고 자꾸 요렇게  꾀쓰고 저렇게 꾀쓰고 요렇게 간교하고 저렇게 간교하고 요렇게 쏙살거리고  저렇게 쏙살거리는 그런 쏙살거리는 일들을 하는 그런 자가 있다. 그것을 네가  삼가라. 그거 조심해 봐라. 그것을 지켜봐라.

 잘 감독해라. 주님 앞에 납품될 때에 이는 참 상품이다, 이는 아무짝도 못쓸  것이다, 가져가라,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져 버리라. 하는 이런 결과의 날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라.

 너거 가운데서도 제 사랑 만들라고, 딴 데서 들어와 가지고도 제 사람  만들라고, 점점 하나님 말씀을 흐리게 만듭니다. 점점 진리를 흐리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배우고 난 다음에라도 나가면이리는 딱 꼽고  있습니다.

 뭐? 조 말 하나를 들어 가지고서 요렇게 말하면 ‘봐라, 네가 거기에서 설교  들은 것은 다 이런 이런 설교기 때문에 틀렸다’ 하나를 틀렸다고 잡아 가지고서  그것으로 모든 교훈이 틀렸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이속에 집어 넣어 놓은 진리도  손가락으로 넣어 가지고 끌어내서 왝거리고 게워내도록 끌어내도록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마귀는 지금 딱 술책을 딱 꾸며 가지고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딱 그것을  노리고 있고 그 방편까지 가다리고 있습니다.

 ‘저 말씀은 됐다. 저 말씀을 들고 시작하면 되겠다.’ 마귀란 놈도 가만히  있다가 ‘오, 저 말 한 마디 할 때에, 저 말 한 마디 할 때에 저 사람 좀  섭섭하겠다. 내가 얼른 가서―너 공격한다. 바로 너 인신 공격이다. 너 인신  공격이다. 너한데 하는 말이다.’ 그놈이 얼른 저리 건너가 가지고서 ‘그래  그럴 수가 어디 있는가?’ 서넛이만 건너가며 요리 조리하면 당장 귀신 자식이  되고 맙니다. 그래 가지고 무슨 구원 이룰 것이요, 이루기를?  뭐 욕을 하든지 어짜든지 우리의 평가는, 내게 대해서 욕을 하든지 뭐라  하든지, 저 O집사. 내게 대해서 욕을 하든지 뭘 하든지 뭘로만 판단해야 됩니까?  몇 가지로만 판단해야 됩니까? 몇 가지로? 세 가지로만 판단해.

 욕을 하고 주먹으로 쥐박으면서라도 진리에게로 가까이 가는 진리를 말해 주면  달게 받아야 돼. 요새 뭐 요리 집에 한턱 먹이고 또 집사를 그만 만들어 주고  높은 벼슬을 만들어 주고 아무리 달콤하게 해도 진리와 나와 멀어지게 하면  그거는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진리는 욕하면서 진리를 전해준다고 진리를 안 받을 것이고 웃으면서  아주 돈을 끼워서 준다고서 진리 아닌 거짓부리를 받아 들일 것입니까? 어째요?  이것을 판단을 해야 돼.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이것은 돌아가는  이치라. 돌아가는 이치라.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옳은 것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는 옳은 것을 까뭉케는 것이 오고 옳은  행동을 하고 난 다음에 옳은 행동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시험들이 오고  하는 것이 그것이 필연한 일이라. 밤도 필요하고 낮도 필요해요.

 밤에도 안 죽고 낮에도 안 죽어야 그 식물이 성장해 가지고 결실을 맺지 밤에만  잘 자라고 낮에는 그만 말라 죽는다면 그 식물이 결실을 가질 수 있습니까? 못  가져. 그와 꼭 같아요.

 그게 밤이나 낮이나 주님이 만들었어요. 우리에게 들을 때도 있고 시험될 때도  있고 미혹될 때도 있어. 그게 다 주님이 혼자 하신 일이야. 이라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서 각오를 해. ‘보자. 내가 하나님 말씀을 배웠는데 이  말씀을 점점 더 똑똑히 기억해라, 더 단단히 알아라, 그 말씀이 확실하니까  그대로 지켜 행하라, 이렇게 나에게 이 말씀을 더 내게 강하게 해 주는 것도  있고 이것을 흐리게 해서 없애는 것도 있으니까 보자, 우리 목사님은 보자.’  요게 있어야 돼, 여러분들도. 알겠습니까? 요게 있어야 돼.

 고게 있으니까 고걸 알면 또 그 목사가 민첩하게 하지. 시작은 아주 이번에  받은 말씀을 잘 기억하고 단단히 지키도록 하라고 이렇게 강조해 놓고  뒷구멍으로 뺍니다. 그래 놓고 뒤에 살며시 교훈을 뒤비셔 놔 버려. 나도 하도  그런 걸 많이 속아 놨기 때문에 지금 내가 알고 있습니다. 가서 집회하고 나면  그 집회할 때에는 그 목사가 아주 은혜 받았다고 이렇게 하고 그만 저는 평생  목회해도 교인들이 그렇게 달라붙지 안하는데 그만 뭐 한 사오 일 집회하고 갈라  하니까 울고 불고 그만 야단이 나고. 자꾸 이래 놓으니까 마귀란 놈이 시기  마귀가 딱 들어간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은혜 받고 난 다음에 딱 기억합니다. 하, 참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서. 이라고 난 다음에 살짝 뒤비트려서 ‘요거는 요게 아니라 요거라’  이래 가지고서 강사를 높이 나무가지에 들어 올려 놓고서 올라가고 난 뒤에 짤짤  흔들어 톡 터져 떨어지구로 그렇게 만드는 그렇게 교훈을 뒤비 놓은 것,  그러니까, 내가 언제, 여기에 그 형님이 와 있어. O장로님, OO교회 O장로님  여기 계셔요. OO교회 O장로님 동생 OOO목사님이 하도 집회해 달라 해서 그곳에  가서 집회를 내가 여러번 했는데 언제든지 딱 집회하고 나서 보면 그 교훈을  화딱 뒤비트려서 그 교훈을 이용해 가지고 저만 올라가고 그 교훈은 박살을 내고  실상은 제가 고 이용을 하고 그렇게 해.

 그래서 내가 ‘암만 이거 해야 뭐 헛일 아닙니까?’ ‘왜 그러십니까?’  조사님이요, 그때. 나는 집사고. ‘조사님 여기 이래 해 봐야 또 조사님이 뒤에  훼딱 뒤비트리면 헛일일 터인데 내가 여기에서 뭐 설교할 것이 뭐 있습니까?’  이라면 웃으며 ‘안 그랬습니다. 안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늘 그랬는데 뭐  요번에 안 뒤비트릴까니?’ 그래 가지고 그분이 목회를 실패를 했습니다. 인제  하늘나라 가지는 갔지마는.

 여기에도 그래요. 여러분들이 그를 알고 가요, 알고. 이래 놓으니까 지금이  교역자들한테는 지금 내가 팍 미움을 많이 당하지마는’ 교역자들도 ‘아, 나도  여기에서 백 목사님이 인기가 있고 내게 인기가 없으니까 시기심이 난다.’  슬며시 시기 귀신이 들어가 놓으면은, 귀신은 시기 귀신이나 미움 귀신이나 뭐  거짓말 귀신이나 꼭 한 놈이오. 한덩어리라. 시기 귀신 하나 들어가 놓으면 못  들어갈 귀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들어가요.

 이러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 교훈 받은 것을 가서 북돋아서 좋은 결실이 맺도록  하겠다 하는, 그 결심을 가지고 하면 자기도 축복을 받을 것이고 성공할 것이고  거기에서 고거 있지 안하고 벌써 알아. 요게서 그래요. ‘저 말씀은  저만치만하고 말았으면 좋겠다 그만치 하면 그 다음에는 내가 가서 말해 주면  되겠는데 저거 다 하니까 그만 교인들이 다 알고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기분 나쁜사람 있어.

 어떤 사람은 그것도 저것도 없이 뭐 그라거나 뭐라거나 냅둬 버리고 뭐라  하든지 아예 관심도 안 가지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그거 다 죽은 행동이요,  그거 다 버려야 돼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 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이리가 오고 또 자기들 중에서도 이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가  일어 나는데 딴 데서 들어온 이리도 있고 양의 껍질 입은자기와 동 교인이요  동지자요 이렇게 같이 장로됐고 같이 성직 가졌고 같은 반사고 이런 자가 양의  껍질을 입고 속에는 이리가 돼 가지고서 나오는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이  있을 터이니까 삼가 조심해라. 감독을 해라. 그런 것이 있는가 살피라. 양을  아끼지 안하고 마구 들이 삼킨다. 사람을 제 사람 만든다. 이만하면 알 건데,  그런데, 그런 데에서 구출하는 방법이 뭐이냐? 구출하는 방법을 그 가운데  내놨습니다. 구출하는 방법이 뭐이요? 그런 중에 구출하는 방법이 뭐입니까?  여기에 31절에 ‘그러므로’ 이런 이리가 오고 이런 난리가 날 것 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정신 차려서 ‘내가 삼 년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거기에서 피난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거기에서 피난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여기에서 가르쳐 주신  말씀, 또 자기 교회에 신실한 목자가 돼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던  그 교훈, 그 말씀을 생각하는 것 외에 거기에서 구출되는 길이 없습니다.

 ‘이 교훈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 교훈을 생각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낮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기억하라 말은 과거’ 그것을’ 자기가 다시  생각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판단해 보라. 과거에 교훈받은 것과 이제 이 양의  껍질 입고, 이리가 양의 껍질 입고 나타난 이것과 또 딴 데서 들어온 이리  그것을 잘 살펴서 그것에게 삼키워지지 아니하는 방법은 이제까지 옳은 교훈받은  그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삼 년이나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 어떻게 기억할까요? 자꾸  외울까요? 어떻게 기억해야 됩니까? 외울까요?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러면 성구를 자꾸 외울까요? 교훈받은 말씀과 그 교훈과  이들이 하는 행동을 대조해 보십시오, 대조해 보십시오. 어짜든지 성경 대조할  시간을 못 두게 합니다. 막 귀신들이 들어서 무당들 굿치면 뚱땅뚱땅뚱땅 해  가지고 탁 지글지글지글하면서 막 뭐하며 정신 없게 하는 것 모양으로 기도할  여가도 없고 성경 볼 여가도 없이 막 끌고 돌아 다닙니다. 정신 못 차려.

 이러니까, ‘밤낮 훈계하던 이 말씀을 기억하라’ 이걸 기억하는 것 외에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씀 가지고 대조를 해 봐요. 그 말한게 옳은지  그른지. ‘기억하라’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 바울이 이 교인들을 누구에게 부탁했습니까?’ 주와 및 말씀께  부탁했습니다. 주와 및 말씀께 부탁했어,

 시간이 벌써 열 두시가 다 돼 가는데 오전에는 이제 어떻게 우리가 조심하고  주의하고 이리가 어떤 모양으로 들어오고 우리 안에 있는 둥지 같은 껍데기를  쓰고 있는 속에는 이리가 되어 있는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는 어떤 것이다 하는  것을 오전에 말했고 우리가 어떻게 조심하며 어떻게 피난하며 어떻게 구원 얻을  그런 길이 있느냐 하는것을 여러 모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오후에는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그러면 이 모든 철없는 양떼, 흉측한 이리  떼가 가득히 차고 있는데 이제 그들에게 삼키워지지 안하는 그런 방편을  말씀했습니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그게 뭐인가? 주님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이며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래서, 이리를 많이 본 사람은 이리에게 속지 않습니다. 이리를 많이 본  사람은 이리에게 속지 안하요. 또 이리에게 피난을 많이 해 본 사람은 이리를  둬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리를 많이 본 사람도 못 본사람도 있고  이리에게서 피난을 많이 해 본 사람도 있고 못 해 본 사람도 있습니다.

 이리가 어데 있습니까? 이리가 그래 많이 있어야? 이리가 어데 있어? 저, 우리  무슨 장로님이지, 아따 나는 이 뭐 잘 기억 못 해요. 우리 무슨 저 OOO교회 무슨  장로님이지? O장로님. 이리를 많이 봐야 이리를 많이 보지, 뭐. 이리를 많이  보고 이리를 많이 겪어 보고  이리에게서 피난을 많이 받아본 사람들은 연단이 돼서 이리에게 상하지  않습니다. 이리를 만날 수가 있어야지? 이리를 만날라면 어디로 가야돼요? 자,  이리를 만날라면 어디로 가야 돼요? 자, 저 뒤에, 이리 만날라면 어디로 가야  돼요?  이리는 자기 현실을 살펴보면 그 전체가 이리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전  주위 환경 전체는 이리라. 그걸 이리인 줄 알고 산사람은 그만 이리를 환하게  보면 알아. 그렇게 알고 산 사람은 ‘저게 이리라, 저게 이리다, 저게 이리다.

저 이리가 지금 입을 벌리고 있다. 저 이리가 지금 삼킬라 하고 있다.’ 환하게  알고 거기에서 피난받아 본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배우는 것은 사람병 고치는 것. 고기 덩어리병 고치는  것, 사람병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의 모든 지식, 사상, 성품, 욕심,  생애, 행동, 언행 심사 그거 고치는 것이 사람병 고치는 것이고 팔다리 아픈 것  고치는 것은 고기덩어리병 고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기에서 사람병 고치는  거는 하나님 말씀 듣고 ‘오, 나도 조래 하겠다. 나도 조래 하겠다. 이제부터는  조래 한다. 죽어도, 조래하겠다. 가난해도 조래하겠다.’ 작정하면 사람병이  고쳐집니다. 이런 사람은 고기덩어리의 병은 고친다는 것은 문제할 것도 없어,  저절로 고쳐 버려, 저절로 고쳐져. 믿습니까! 저 뒤에, 믿습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숨어 있는 비밀의 보이지 않는 악령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  보이는 것들을 주관하고 있는 모든 이면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 지혜로 가지게  하시고 승리의 방편으로 가지게 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말씀을 삼가 듣고 요대로 확정지어 요대로의 사상과 행위와 사람이  되어지고자 하는 요것을 확정하는 자는 이것으로서 사람병을 벌써 치료 착수  되었고 치료되어 있는 중에 있사오니 이 일에 전심전력 기울여서 확신을 가지고  하는 자마다 몸의 병도 무슨 병이든지 다 낫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이여 이 시간 사람병과 고기덩어리의 병을 완전히 치료하여 주님의 영광의  찬미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실족할 때에 더 큰 증세가 발하고 다시 회개할  때에 치료해 주시고 이렇게 하시기를 길이길이 참고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께서 이루어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환하게 보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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