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선지자선교회 1983년 12월 5일 월새

 

본문 : 계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는 이름이라 말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를 말합니다. 생명책에 네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흐리지 않겠다 까뭉케지 않겠다 하는, 생명책에는 네가 기록 되어 있다 살았다는  이름은 법적으로 심신이 구원얻은 걸 말하는데 구속받은 택한 자들은 다  법적으로는 그 심신의 구원이 되어 가지고 있는 그것을 가르쳐서 살았다는  이름이라, 그러면 이름에 지내지 못함이요 법적 구원이기 때문에, 법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실상을 따라가는 것이지 실상이 법을 따라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법으로는 네가 산 것으로서, 대속으로 산 것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마는 네가 현실 현실 만났을 때마다 전부 다 그때에 죽이고 죽이고  해서 이름만 네가 가졌지 네가 죽어 있다 그 말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법적으로는 살아 있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산 자로 인정됐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산 자로 인정됐지마는 네가 법적으로 살아 있는 그것을 실상으로 살아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순종 가지고 실상을 이룰 터인데 실상을 네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너는 살았다 하는 그런 이름으로  되어 있지마는 실상은 네가 죽어 있다 하는 말입니다.

 '죽은자로다 너는 일깨워' 깨어서, 다시 회개해서, 일깨워, 자던 자가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이제 네가 남은 것도 전부, 이제 까지 다  죽었고 또 남아 있는것도 다 지금 죽어가고 있으니까 너는 그저 시간 만 만나면  현실만 만나면 착착 죽여 버리니까 현실에서 하나도 살리지는 못 하고 현실은 다  죽이니, 네가 과거에 대해서도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도 하고 원통히  여기기도 하고 또 미래에 대해서 말씀을 지키겠다고, 미래에 대해서 지키겠다고  결심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지마는 현실만 탁 닥쳐 버리면, 네가 그만 말씀을  저버리고 죽이는 행위를 하니까 현실만 마귀가 도적하면 나머지기야 뭐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적으로 자기가 어떤 눈물 흘리면서 후회를 하고 미래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지금 그치겠다고 그렇게 결심을 해도 현실 빼앗기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내 하나님 앞에  내가 내게 관련된 그 하나님 앞에, 네가 네 하나님 앞에, 다른 이는 다른 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여러 분이 아니지마는 그는, 너는, 내 하나님 앞에는  지금 내가 심판을 만들고 있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 이시지마는  하나님은 내게 대해서는 어떠한 하나님인지 내가 하나님을 지금 어떻게 판계를  가졌는지 진노의 하나님인지 심판의 하나님인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인지  내게 대해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인지 나를 진노하시는 하나님인지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 행위 그것이 현실에서  법적으로 살아난 것을 실상으로 영원한 영생으로 살리는 것인데 그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건설구원 이라는 것이 귀중합니다. 기본구원이  귀중하지마는 기본구원 얻은 자의 영광은 건설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된 것이지마는 이 자유성을 허락해 주신 유한한  자유나마 그 자유의 범위 내에서는 우리가 능동적이고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보수적이요 복수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 온전함이라야 구원에 도달한다는  것 요걸 기억해서, 뭐,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을 치라고 왕으로 세워놓으셨는데  사울 왕은 평소에 생각하기를 그저 한 반이나 하든지 그리 안하면 한 십분지  구나 하든지 하면은 이만하면 이 이상 더 만점이 없다 이렇게 평소에 자기가  거룩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언제든지 자기 주관대로 어지간하면 됐다 이렇게  하는 그런 정도기 때문에 아말렉 족속을 칠 때에 짐승도 좋은 것 몇 마리는,  종자 좋은 것 몇 마리는 남겨 놓고 또 사람도, 사람 제일 잘난 사람 아각은 하나  남겨 놓고 이래 놓고도, 이제 내가 이만침 모두다 다른 것을 토벌했으니까 아마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면서 제 명예비를, 승리비를 떡 하나 세워 놓고,  지금 하나님께서는 진노하고 계시는데 사무엘이 가니까 떡 말하기를, '내 주여  나로 인해서 당신의 하나님에게 복을 받으시옵소서', '너 때문에 복을 받을 게  뭐인데 복을 받으라 하느냐' '내가 하나님 시키는 것을 다 행하기 때문에 이제  나를 세운 데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 그 당신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무엘이 기가 차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네가 만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지 안하고 에누리 해서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버려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이러니까 사울 왕은 그때야 가슴이 척  널쪄 가지고서 이라면서도, 뭐 그래도 그렇게 뭐 그럴게 있나 꼭 사무엘  말이라야 다 그대로 정확하겠느냐 이라고 그렇게 달라붙지를 안하고 그랬습니다.

그때에 그만 아 자기가 회개를 하면서, 내가 요렇고 요렇고 요래 해서  요랬으니까 자복을 했으면 될 터인데 그때부터 이제 속에 옛사람이 나와  가지고서 변명합니다. 네, 다 그대로 순종했고 짐승 몇 마리 있는 이거는  하나님께 제사 드릴라고 그와같이 내뒀고 그러니까, 그러면 또 아각은 뭐 할라고  내뒀느냐? 그래 답을 못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때라도 회개하면 되는데  회개하지 안하기 때문에 사울 왕은 그렇게 저주 받아 가지고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뭐 온전하다는 할  수 없지마는 우리 양심에 가책 없는 정도는 되어야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이 나를 책망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내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 설 터이니까 나는 전면적을 모르고 언제든지 일방적인  지식이 내게 많기 때문에 나 보기에는 요면으로서는 온전하지마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깨끗지 못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심판 앞에 가 가지고서  하나님이 됐다고 통과시키기 전까지는 항상 번민이요 고통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행위 구원이 건설구원이요 성화 구원인데 성화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양심의 가책될 것이 없는 그 행위로서만 성화가 되는 것이지 그 정도  이하로 가지고는 안 되는데 우리가 표준을 삼기를 자기 마음대로 그저 십분지  일만 해도 어떤 사람은 이만 했으면 하나님 앞에 합격이 안 되겠느냐 또 십분지  오만, 어짜면 십분지 구만, 십분지 십이, 자기 양심의 비판으로서는 십분지 십이  다 온전해져야 이 성화구원 행위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 구원의 그 정도의 표준을 우리가  여기에서 정해야 되겠습니다. '온전치 못하였노너 그러므로 네가' 그러면 시기는  현실로 확정을 지워야 되겠고 다른 데에서는 성화구원이 못 되기 때문에  시기로서는 현실에서만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확정을 해야 되겠고 또 그 정도로  말하면 자기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는 정도의 그 행위라야 성화구원 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우리가 확정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이거 받았다 말은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걸  말합니다.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것, 우리가 영감도 직접 받았고 또 깨달음도  직접 받았습니다. 또 능력도 직접 받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을 내가 경험한 것도 직접 받았고 또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지켜 주시나 안지켜 주시나? 말씀대로 하면 되나 안되나? 하는 것을  자기가 직접 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된다는 것을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 건 다  하나님에게 직접 받았습니다. 받은 것은 하나님에게 직접 받은 걸 말하고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것은 이것은 사람에게 성경 말씀을 해석해 설교를 들은  것 또 성경을 자기가 읽은 것, 광범위로 말하떤 성경 말씀도 사람에게 들은  것입니다.

 성경 기자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 시켜 성경을 기록한 것인데  기록할 때에 정확 무오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 기록에 대해 가지고서  여러가지 논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축자적 영감이라 하나님께서 한 획 한  획을 하나님이 성경기자를 붙드시고 했기 때문에 한 획도 틀린 게 없다 그렇게  축자적 영감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감화적 영감이라 감동을 받아 가지고서  사람이 그렇게 썼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기적  영감이라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 의사를 다 주기는 줬지마는 전능하신 능력이  하나도 착오가 없도록 그렇게 정확 무오하게 기록하셨다 이래서 영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평이 있지마는 유기적 영감이 정확합니다. 유기적 영감이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어떻게 들었는지' 들었는지 그거는 성경 말씀도 성경 기자들에게  들은것이요 또 설교하는 것도 그런 것이요. 이러니까 하나님에게 직접 우리가  받은 게 있고 또 성경 말씀을 우리가 읽어서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을 읽고 성경 말씀으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직접 받고 또 직접 받으므로 성경  말씀 깨닫는 것이 더 확고해지고 이렇게 이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영감과 진리  이는 둘이 떨어질 수 없어서 영감과 진리는 마치 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영감과 진리는 하나되어 가지고서 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그러면 받은 것은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은 과거에 받은 것을 시간은 지나갔지마는 서도  그때를, 과거를 추억하면서, 아! 주님이 내 기도도 들으시더라 우리가 체험이  있다 말이요. 주님이 내 기도도 들으시더라 아무 때 그때 기도하니까 들으시더라  그러면 그때 들으신 분이 지금도 안 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들으시더라 아,  내가 과거에 어떤 이런 낭패가 당해 가지고 있었는데 주님이 그때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대로 있으니까 마련한 일 같았지마는 주님이 그 일을 잘  해결해 주시더라 자기가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다 이거요. 그러니까 그것은  생각하면 됩니다. 아, 과거에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셨고 내가 해보니까  이렇더라 이러니까 오늘도 그러하시고 장래도 다 그러하실 주님이 아닌가 이래서  생각하고 하면은 자기에게 생자해서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과거에  주님이 내 기도 들어 주신 것을 자기가 체험했으니까 내 기도 들으시더라  그러니까 오늘도 들으실 것을 믿고 주님에게 기도하면 됩니다.

 이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지키어 회개하는 것은 들은  것은 지키면 됩니다. 하나님에게 들은 것은 지키면 되니까 '지키어 회개하라'  지켜서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고 하라는 것은 그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고 하라는 것을 하면은 그라면 그것이 회개가 됩니다.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네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도적같이 이른다 하는 것은 네 현실 현실마다 내가 찾아가고 현실  현실마다 나는, 인자가 네게 무한한 것을 주기 위해서 찾아갔는데 그 때 네가  나를 배반하기 때문에 너는 현실 현실이 다 도적맞는 현실이 되고 만다 그  말입니다.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느 시에 네게  임할런지 알지 못하리라' 이 부분이 살아나고 저 부분이 살아날 터인데 어느  부분이 어느 때에 살아날지 모른다 네 마음이 기능이 살아나는 현실도 있고 몸의  기능이 살아나는 현실도 있고 네 마음의 의지가 살아나는 현실도 있고 네 마음의  욕심이 고쳐져서 살아나는 현실도 있으니까 네게는 수많은 심신의 그 부분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 부분적 요소의, 이요소는, 이요소는 어느 때 살릴런지  저 요소는 어느 때에 살릴런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요소를 살릴라고  갔는데 하나님의 인자됨을 다, 그에게 부요함을 넘겨 주기위해서 갔는데 그때  그만 네가 나를 저버리기 때문에 다 도적맞고 만다 전부 영원한 자기의 기능이  될, 영계에 가 가지고서 타고 다닐, 타고 다닐 자기의 좋은 자가용 승용차,  영계에 가 가지고 타고 다닐 좋은 비행기, 또 이 우주에서 타고 다닐 좋은  비행기, 좋은 차, 좋은 배, 타고 다닐 승구 이것이 뭐이냐 하면 물질계에서는  몸의 기능을 가지고서, 몸의 기능을 이용해 가지고 모든 걸 살게 되고  영계에서는 마음의 기능을 가지고 하고 있는 것인데 영계 가 보니까 마음의  기능이 다 죽어 있으니까 그 사람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지만 활동력은 전연히  없습니다. 활동력은 전연히 없어. 또 이 우주도 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기는  있는 것이지마는 기능이 있어야 뭐, 암만, 다른 사람은 다 물에 척척 건너가는데  타고 갈 배가 있어야 건너가지? 공중에 다른 사람은 다 훌훌 날고 다니는데  자기는 뭐 비행기가 있어야 날라다니지, 다른 사람은 다 달아나는데 자기가 차가  있어야 달아나지요.

 비유컨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기능은 영계의 우리의 유일한 도구요 또  몸의 기능은 우리의 물질계의 유일한 도구인데 살기는 살았지마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사람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지마는 죽은 것 한가지라.

 어떤 사람이 미국 가 가지고 갔다 오더니마는 말하기를, 아 거기에 가니까 영  그만 죽은 송장이라 자, 눈도 멀었지, 귀도 멀었지, 귀도 그만 완전히 귀도 먹어  버렸지, 입도 벙어리가 됐지 발도 딱 매여 가지고 아무데도 못하지, 이거는  운전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른 사람 운전해 주는 사람이 없답니다. 귀해서.

차는 쌨지마는 운전하지 못하니까 차가 있어야 소용이 없지, 아무리 소리가  나오지마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귀머거리지, 아무리 써 놓고 이리 가면  됩니다. 저리 가면 됩니다. 아무리 지시판에 써 놨지마는 눈으로 봐야 모르니까  소용이 없다 이거요. 또 사람 한테 물어 볼라 해도 아무 뭐 말을 못하니까  벙어리라. 이래서, 아이구, 그놈의 곳에 가니까 나는 완전히 병신이 되는데 내가  갈 필요가 없다 그라면서 왔습디다 그 안 좋습디다 거기 가니까 뭐 봉사되고  귀머거리 되고 벙어리 되고 아주 앉은뱅이 되고 되는데 뭐 좋을     게 뭐  있어야지. 우리나라가 좋아서 그래 왔다고서. 그런 말 들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준비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해서 하늘  나라는 가면은, 너, 하늘 나라 가면은 뭐 제 마음대로 하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또 누구의 명령 순종하라 하는 것 하나도 없어. 한 분 유일하신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그분 한 분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아 그 순종을  세상에서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그 나라에 가서 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세상에서 안 해본 것은 그 나라에 가서 할 수가 없으니까 이거는  꼼짝없는 병신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했지마는 병신이라 그게요.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적같이 이르리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의 의지를 살리는 것도 의지가 사는 그것도 어느 시간에 의지가  살런지 모릅니다. 우리 현실은 의지가 살아나는 때도 있고 자기 마음의 기능이  살아나는 때도 있고 욕심이 살아나는 때도 있고 소원이 살아나는 때도 있고  비판이 살아나는 때도 있고 평가가 살아나는 때 있는데 그 모두 각각 살아나는  시기가 다른데 그 시기에 살리러 가니까 딱 배반해 버려서 그만 살아야 될  자기의 기능을 완전히 도적맞고 만다 말이요. 마귀라는 놈은 자꾸 꼬웁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만 꼬임 받으면 그만 뺏기고 맙니다.

 이번에 거창 집회에서 인가 악령의 감화가 오면 천하에 자기와 자기 자손  대대내 제일 큰 원수, 제일 큰 원수가, 제일 큰 해독이 그게 뭐이냐?  선악과입니다. 인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죽음이요 망하는 것인데 망하는  그것이 내나 선악과 속에 들었더라 그게요 그렇게 해독이지마는 배암의 유혹을  보니까 천하에 그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천하에 제일 좋은 것. 천하에 제일  좋아서 그거 없으면 죽겠다 이랬지마는 먹고 보고 취하고 보니까 그렇게 해롭다  이거요.

 그러니까, 마귀가 오면은, 마귀의 감화를 받으떤 그렇게 정 반대로 견해가  됩니다. 마귀의 감화가 오면은 정 반대로 해석이 되고 성령이 오시면 마귀의 정  반대로 정확한 해석이 되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 이놈의 감화만 받으면  헛일입니다.

 그때 ○○○장로님이 저 ○○○기도원을 거석하고 지금 ○○신문이라고 나오는  것이 ○○○파에서 지금 나오고 있는데 그때 성령이라고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이제 모두 다 배암이니 뭐이니 동물로 비유해 가지고서 그런 잡탱이 우리 마음  밖에 돌아다니며 들어 갈라고 요리 들어가 요 틈으로 들어갈라 그 조 틈으로  들어갈라고 뭐 들어갈라고 애를 쓰는데 그 안에 빛이, 성신의 빛이 환하게  비춰가지고 있으니까 이놈이 들어갈라 하다 보니까 환하니까 도망치고 환하니까  도망치고 환하니까 도망치고 이래 가지고서 성신의 빛 외에는, 마귀를  배암으로도 독사로도 귀신으로도 뭐 염소로도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비유해서  성경에 있는 것 들어 가지고 이래 했는데 들어 갈라고 하지만 빛이 있으니까 못  들어가고 빛이 그만 없어지니까 그게 막 들어 가지고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와 같다 이래서 사람의 심령이라 이래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것은 아주 연구를 잘해서 잘 묘사를 해서  표시한 것입니다.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간에 네게 임할런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그런 가운데에서도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에 누구 때문에 죄 지었다 누구  때문에 죄 지었다 하는 그런 소리를 우리는 예사롭게 하고 또 사실 그렇기는  그렇지마는 다른 사람 때문에 죄 지었으니까, 죄짓게 하는 사람 있다고 죄를  짓는다고 하면은 그것은 실력없는 자이기 때문에 언제 죽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에, 아 나는 누구 때문에 죄를 범했습니다.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죄를 범했습니다. 이런 핑계를 할 때에는 사데 교회에 흰옷 입은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흰옷 입은 사람이 나와서 사데 교회는 전체가 다 이렇게  다 부패해졌는데 이 사람들은 다 흰옷 입고 그 속에서도 더럽히지 안하고 자기의  옷을 더럽히지 안하고 깨끗하게 지냈다 하는 그 사람이 나오면은 그 사람은  자기와 같은 형편에서 천인 만인이 더러워져도 자기는 더럽지 안하고 그대로  지켰는데 뭐 누구 때문에 그렇다는 그것 가지고 심판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망하지 아니하여야 된다. 원망하딴 심판을  받으리라' 하는 것은 원망할 만한 것이 있지요. 주위 환경에 원망하는 것이  있지마는 원망할 만한 그것 때문에 네가 범죄했다고 심판 면하지 못하니까  원망할 만한 그런 것이 있어도 어떻게 원망할 만한 어떤 것이 있어도 너만은  검어지지 안하고 너만은 더러워지지 안하고 희어져야 심판을 면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흰옷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은 다 하나님의 법에 합당하고 영감에  합당한 자이기 때문에, '합당한 자인 연고라'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는 자는 어떤 자가 이기는  자입니까? 요 이기는 자는 어떤 자가 이기는 자지요? 어떤 자가 이기는  자입니까? 회개한다고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본문대로 좀, 본문에 천하에 둬도  쓴 것을 다 둘 곳이 없는 그런 많은 가운데서 간추려서 우리에게 써 주신 것이기  때문에 본문대로 한번 말해 보시이소. 받은 것을 어떻게 하고? 받은 것은  생각하고, 또? 또? 들은 것은 지켜 회개하고, 요거라 말이요.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켜 회개하는 요것이 이기는 자입니다. 그렇게 하는 그  일을 네가 계속해야 된다 계속하지 못하고 가다가 져 버리면 암만 싸움에  중간까지 승리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결승이 날 때에 그때 져 버리면 그만이요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이기는 자는 끝까지 그 일을 계속해서 어떤  미혹에도 들지 안하고 어떤 환경에도 그로 인해서 그것을 빼앗기지 안 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흰옷을  입을 것이요' 하는 것은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공로를 입으면 성령도 저의 것이요 진리도 저의 것이요 하늘  나라도 저의 것이요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도 저의 아버지요. 이렇지마는 그만  이 공로 벗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공로 벗어 버리면 내나 죄인이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합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이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있으면 하나님도  나의 아버지시요 성령도 나의 보증이시요 진리도 나의 보증자요 주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이와같이 되지마는 피공로만 버려 버리면 우리는 그만 죄인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흰옷을 입을 것이요' 주님의 공로를 입고 벗지 안할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안하고' 생명책에서 흐리지 안한다는  말은 무슨 말씀이지요? 생명책에서 흐리지 안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다 살아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이는 다 산 자라 공심판에서 산 자라 이렇게 인정이 됐기  때문에 공심판은 면했습니다. 면했지마는 이제 공심판은 면해서 산 자로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가지고 있지마는 뒤에 우리가 무슨 심판을 받습니까? 녜,  그리스도의 사심판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을 때에 그때 보니까  생명책에 기록은 됐지만 다 기록이 됐다가 다 흐려 버렸습니다. 기록은 됐으나  흐려 버렸어. 기록은 됐는데 흐린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두 번 죽음이라 그  말이요. 생명책에 기록이 됐는데 흐려 버렸으니까 두번 죽음이라. 그게 둘째  죽음이라. 그것이 뭐이냐 현실에서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그거요.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아버지 앞과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시인하리라'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십니까? 아버지는  자존 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주권자시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그  아버지 아닙니까? 그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 아버지 앞에서 주님이 시인한다 그  말은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 말은 아버지가 그를 아노라 할 것이요, 아노라 할  것이요, 아노라 할 것이라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바꾸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는 안다 이거는 내가 책임진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인데  하나님이 책임진다 하신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책임질 수 있는  네가 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질 수 있는 네가 된다 그때 이렇게 이  전지 전능의 주권의 주재의 창조주의 이 하나님을 네가 모시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는 것은 내가 내 자체가 인정할 수 있는 그 인정할 수 있는 자격에  따라서 하나님이 피동적으로 나를 인정하시지 내게 인정할 만한 것이 없는데  인정하는 것 아니라 그 말이요.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높으시기 때문에 자기가 인정 받을 만한, 인정을 받을 만한, 인정을 받을 만한  그 수동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인정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그 말은 네가 인정 받을 수 있는 그런 자가 된다 그 말입니다. 또  천사들 앞에서도 천사들에게 인정함을 받아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된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때에 천사가 와 가지고서 '하나님이  그 사자를 보내서' 말했습니다. 사자 보냈다 말은 천사입니다.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가지고서 사자의 입을 막아 봉해서 상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천사가 와 가지고서 다니엘을 도와서 역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역사를 받을 수 있는 다니엘이 됐기 때문에 이제 역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하나님 앞과 그 사자들 앞에서 내가 시인하리라' 그  말은 시인한다 말은 시인을 받을 수 있는 네가 되리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네가 되리라 이러면 자체 변화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이기는  자는 자체 변화가 된다요 일만 계속 하면 네 자체가 변화된다 그 말입니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있는 자는 요  귀라 하는 것은 육신의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양심을 가르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양심으로야 듣지 양심이 없으면 듣지를  못합니다. 귀는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들으라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교회들이라 하는 것은  교회 하나도 안 빠졌습니다. 교회 전부입니다. 택함을 얻고 중생된 자는 다  요렇게 다 이길 수 있고 또 하나님과 천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주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 왜? 성령이 계시고 진리가 계시고 주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셋 보증이 있기 때문에 다 가 능하다 가능하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는 것을 항상 사모하고  노력해서 이룹시다. 앞으로 어떤 시대가 와서, 지금 준비 안하는 사람들은 뭐  기도할 때에 기도에 힘쓰지 안하고 현실 만났을 때에 하나 하나 토막 토막을  보스라기, 보스라기 전쟁을 이기느니라고 수고하고 지루하게 피곤하게 그렇게  하는 그런 고생을 안 당하는 사람은 나중에 안 당할 줄 압니까 안 당하지  않습니다. 안 당하지 않는 것은 마지막에, 슬기 없는 다섯 처녀 보니까 그때  당황해서 급하게 날뛰니까 더 됐고 더 고생 당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그래도 자기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할 때야 얼마나 답답해서  부인했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계명을 어길 때야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악령의 이 모든 죄악의 불법에게 끌려 다니면서 이리 저리  복종을 할 때에 얼마나 고통을 당하겠습니까? 나 고통 다 당합니다. 고통을 안  당하면 무궁 세계 가 가지고서 불편을 당해도 당하지 안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큰 고통을 작은 보스라기 피곤한 것으로 다 이겨낼 수가  있고 또 우리는 무궁 세계에 불편하고 천대하는 것을 이 세상에 조그만 한 짧은  천대 짧은 고생에서 다 이겨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무엇이 되어지는 그런 걸 바라 지  말고 사소한 그런 데만, 세상에 어찌 됐든지 주와 함께 가난하고 주와 함께 고난  당하고 주와 함께 이제 조롱받고 주와 함께 죽음 당하고 주님과 같은 권능의  부활을 얻을 것을 우리가 소망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는, 오늘은 보니까, 지난밤에는 보니까 ○씨네들이, ○씨네들이 다 그만  동맹을 했는지 다 죽었는지 주일학교에서 보니까 하나도 새벽 기도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씨네 가문은 다 안 나왔소. ○씨네 가문은 다 안 나왔고  ○씨네 가문에게 소속한 부분들도 다 안 왔소. 이래서 무슨 동맹이 있는가  싶어서 내가 전화를 하니까, '아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나가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나온 사람이, 다 나왔는지 몰라도 ○씨가  보이데 보니까.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아, 자기가 활동하면 되는 것인데  공연히, 아이구 나 피곤해서, 하니까 내비두고, 인정은 죽입니다. 인정은 죽이는  것, 자 따라합시다. 인정은 죽이는 것이다. 인정은 살아의 독이다. 나를 죽이는  독이라, 인정, 그러기 때문에, 인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말했소. 쿨쿨  자는데 깨울라 하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래도 깨워야 되요. 깨워서  어짜든지 말씀을 들어야 살지 안 들으면 못 삽니다. 그래 인정은 죽이는 것이라.

인정이 벌써 주관하고 있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주관해야 되지.

 지금까지 기도에 등록된 사람은 벌써 사천 백 사십 이 명이 등록이 됐고  저녁으로 여기 와서 기도하는 사람만이가 팔백 삼십 일 명이고 자기 처소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여기 등록한 사람들은 다 하리라 생각하는데 등록만 하고 또  잊어 버릴 수 있어, 잊어 버리면 그걸 고쳐야 돼, 잊어 버리거든 어제 잊어  버렸으면 어제 삼십분 기도 안하고 잊어 버렸으니 오늘은 한 시간 기도해야  되겠다.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단. 자기는 손으로 일하면서도 할 수 있어요  손으로 일하면서도 눈뜨고 손으로 일하면서도 기도 할 수가 있어. 첫째 기도도  외울 수도, 첫째 기도의 첫째 제목을 외우면서 기도할 수도 있고 둘째 기도도 할  수가 있고 셋째 것도 할 수 있고 일곱째 것도 할 수 있고 여덟째 것 다섯 가지도  할 수가 있고 이래 길을 걸어 가면서도 하고 눈 뜨고도 다 할 수 가 있어요.

이러니까 마음만 있으면 이 삼십분이라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진압 태산'이라 아 티끌모아 태산됐다고 그것이 뒤에 모든  사람이 떨어서 죽을 지경이라 유명한 ○○○그런 분들도 이제 참 의지가 강하고  참 똑똑한 분입니다. 학교를 여덟인가 얼마를 세우지 안했소? 중고등 학교, 이런  걸 모두, 국민학교 까지, 이랬는 데도 그분도 그만 평소에 이걸 몰랐다 말이요.

예사로 지냈다가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너 네가 유명 한 목사고 지금  대가리 목사인데 네가 저 송도 바다에 가 가지고서 천조 대신 이름으로 세례  줄래 안줄래? 꼼짝 못하고, 예, 주겠습니다. 천조 대신 이름으로 가 가지고서  모두 세례를 주니까 목사가 그 꼬라지니까 기가 찰 것 아닙니까? 그렇지마는  두려워서 안 하고는 못 견딘다 그 말이요. 그런데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상관없이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쁘고  즐거움으로 담대히 항거해도 그 사람에게 말을 못해서 또 자유로 활동하면서  신사 참배 안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요. 그게 다 평소에 보스라기 수고를 모아  가지고 보스러기 십자가, 그것이 보스라기 십자가, 조그만한 보스라기,  보스라기, 보스락 말이요. 콩가루 같은 그 가루 십자가, 가루 십자가가 모아  가지고 뒤에 커다란 금 십자가가 되어 가지고 아무리 장사라도 질수 없는 그런  큰 십자가 금 십자가도 만들 수가 있어. 진압 태산으로  이러니까 우리가 오늘에 기도하는 이 수고가 될지라도 이 노력을 끊지 맙시다.

회개를 끊지 말고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끊지 말고 계속해야 됩니다.

이것은 큰 힘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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