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관

 

1989. 1. 2. 월새.

 

본문: 약 3:13-18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사람에게 육체도 여러 지체의 기관들이 있습니다. 마음은 그 기관들과 지체의 그  수가 더 많습니다. 몸에 여러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가,지체와 지체가 서로  연결되고 연합해서 배치되지 않고 모순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서 움직입니다. 그럴  때에 그 몸은 건강하고, 몸에 어느 지체. 하나라도 통일이 되지 아니하고 서로  모순되면 그 몸은 고장났습니다.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조만간에 그 몸은 다  절단납니다.

 마음은 신령한 것이라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에도 수많은  요소와 지체가 있고, 몸에도 수많은 요소와 지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을  여게 가리켜서 지혜와 총명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미래에 속한 것을 바로 알든지 잘못 알든지 미래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혜라 그렇게 말하고, 총명이라는  것은 미래나 과거나 현재나 뭐 모든 존재나 자기 나름대로는 모든 그 전부를 다  생각하고 알고 느끼고 하는 전부에 대한 그 빛을 가리켜서 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지혜와 총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고 하니 자기 현재라는 이  현재의 움직임은 전부 지혜와 총명이 주장을 합니다. 사람들은 현재 움직일 때에  그래도 미래적으로 자기에게 유익되게 움직이려고 합니다. 좋게 움직이려고  합니다. 또 현재 움직임은 모든 면을 골고루 자기대로는 생각할 대로 다 생각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되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뭐 욕심 그런 것도 있지마는 그거는 거게 그 수준에  따라가지를 못하고 그 밑에 층에 있는 것이고, 지혜와 총명이 자기 현재의 생활은  다 주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의 행동은 지혜와 총명의  소산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와 총명이 현재의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을 하게 하는데 현재의 이  언행심사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은 자기의 미래를 이  현재의 행동이 낳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미래는 현재의 행동의 새끼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는 자기의 미래를 조성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가 바로 돼야 미래가 바로 되지 현재가 잘못됐는데 미래가  바로 되리라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현재는 미래를 만들어  낸다 할 수 있고, 또 현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조성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현재라는, 것은 과거도 잘 만들고 현재도 잘 만들고  미래도 잘 만듭니다.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했는데 그것을 그 후에 베드로가 닭이 울 때마다 늘 그는 그 일을  통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러니까 그가 그 현재라는 현재에서 과거에 잘못된  것을 통회함으로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판 것은 그것은 참 자기에게  아주 자멸하는 큰 행동을 했는데, 그것을 현재에서 잘 개조하고 조성해 가지고  베드로의 일생 동안에 자기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닭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그것이 큰 도움을 주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잘못된, 아주 과거에  잘못된 것이 현재에서 그것을 잘 유리하게 조성해서 그에게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재의 언행심사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자기의 미래를 바로 조성하고,  또 현재를 바로 조성하고 과거를 잘 바로 조성하는 현실이라, 그러기 때문에  현실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중요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은 현재의 행동에 달렸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만치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뭐 명천 년 몇만 년 뭐 영원 무궁토록 살아난다 할지라도  세상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이 현재라는 것이 있는데, 현재라는 그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의 수레바퀴로, 바퀴로, 현실이라는, 요새는 뭐  타이야라, 자동차 타이야 하면 잘 알건데. 이 현실이라는 타이야로 천 년이 만  년이고 굴러서 내나 그 타이어 가지고 갑니다.

 그러면 그 한 발통 가지고 몇만 리를 달려도 항상 그 발통이 도굴도굴 그게 장  굴러 가지고 이렇게 가는 것처럼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은 그 현실 가지고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억만 년이고 영원 무궁이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이것을 잘 만들어서 이 현실을 잘 이용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영원을 잘 이용해서 잘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이거 아주 중요합니다. 이 현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이것을 자기에게 참  복되도록 잘 조성을 해서 만들어 조성하는 것입니다.

 또 이 자기의 현실에 이 언행심사의 행동은 모든 피조물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창조주와 바른 관계를 맺고, 이래서 이 현재라는 이 현재에서 뭐 자기의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존재적으로 모든 피조물 창조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 전부와 자기와의 관계는 현재에서 다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다  만들지 현재 외에는 그런 것들과 관계를 잘못 만들어지는 것도 없고 잘  만들어지는 것도 없고, 자기의 현재로서 모든 존재와 다 관계를 다 맺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데 이 현재가 중요한데, 이 현재는 아주 자기를 망치는 그 현재로 현실로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아주 행복되게 하는 현실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행복된 현실로 자기가 이용해서 행복된 것을  조성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를 망치는, 자기뿐 아니라 자기로 말미암아 비롯해서  모든 전체를 다 망칠 수 있는 그런 현실로, 현실을 사용해서 조성하게 되느냐?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가 그 현실을 잘못 사용해서 그 자손들이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그 현실을 바로 사용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 모든 것이 다 달렸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현실을 잘못 사용하면 망하는 것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을 참 바로 사용해야  됩니다. 바로 사용해야 되는데,  그러면 현실은 무엇이 주관하고 있는가? 현실은 주관하고 있기를 지혜와 총명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혜와 총명을 잘못된 것을 나쁜 지혜와  총명을 자기가 가졌으면 그의 현실은 잘못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혜와 총명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총명이 중요한데 크게 말하면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있고 땅에  속한 지혜가 있으니 위에서 내려온 지혜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자혜와  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 위하여 기도할 때도 '이 사람에게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거 밑에 해석을 해서 기도하지 안해도 지혜와 총명  달라는 것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 사람이 현재라는 그 현실이라 하는 것을  잘못 이용함이 없이 바로 이용하도록 해 주옵소서.' 바로 이용하도록 해 달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사람의 과거를 현재에서 그거 아주,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판 그 무서운 과거를 그 현재에서 아주 복되게 그것을 다시 개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재라 하는 것은 과거에 잘된 것 잘못된 것 그 모든 것을  바로 이용할 수 있고, 미래의 자기가 이런 것 저런 것 어떤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미래에 잘되고 잘못된 것을 현재에서 그것을 다 요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과거 미래라는 그 모든 생각이나 모든 전부는 다 현재라는 그런  조그만한 바늘 구멍같은 현재라는 구멍으로 다 빠져 나갑니다. 이래서 과거가  여러 수천 발 되는 실라끈같이 돼 있고, 또 미래가 여려 수천 발 되는 실라끈같이  있을지라도 그거는 현재라는 바늘귀로 다 꿰어 가지고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가는 이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가 제일 중요한데, 이 현재는 아주 자기에게 복될 수도 있고  불행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를 바로 운영하는 거기에서 흥망성쇠는 다  있습니다. 생사화복은 다 있습니다.

 이러나 사람들은, 현재가 이렇게 뿌리깊게 과거 자기가 수십 년 동안 잘못된  것을 현재에서 해결을 지울 수가 있고, 또 과거에 수십 년 동안 잘한 것을  현재에서 박살을 낼 수가 있고 자기가, 또 미래에 어떤 망할 모든 잘못된 그  미래의 예산과 경영을 이 현재에서 그것을 바로 잡을 수도 있고, 또 미래에 좋은  꿈을 꾸고 아주 아름다운 그런 계획이나 설계를 했던 그것을 현재바서 박살을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현재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현재의 뿌리가 이렇츰 깊고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만 그거는 생각지 않고 현재만 생각하고 날뛰기 때문에 다 자기 발을  자기가 쫗고 자기가 자기를 찔러서 자살하는 그런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여게 보면 그전에 우리 동리에서는 추석에나 놀 때 되면 상모 돌리는데, 상모.

상모 이거 위에 상모 이래 돌리기를 하는데 상모 돌리는 데, 참 열두 발 상모라고  있어요. 끄내끼가 열두 발이나 돼. 요 지금 요새 상모 돌리는 것은 찍해야 한 일  메타, 한 서너 자 되는 거 요래 가지고 뱅뱅뱅뱅 요래 돌리지마는 이제 그 열두  발 상모라 하는 거는 끄내끼가 열두 발이니까 이놈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래서 보면 열두 발 그 돌리는 사람은 보면, 쓰고 돌리는데 이게 그래 처음에  안에 한 바퀴 돌고 밖에 돌고, 밖에 돌고 이래 가지고 이래 칭칭해서 꼭 큰  이렇게 아주 큰 방석같이 이래 돌아가는데 그것이 그 하나도 걸리지 않고 그래  돌아갑니다. 이래 돌아가는데 그것을 그래 열두 발 상모를 돌리면서 이게 저  끄트머리가 열두 발이니까 거게까지 돌아가도록 하려 하면 이걸 어떻게 돌려야  그걸 계산해 가지고 이래 돌려야 되는 것이지, 그 바로 고것만, 짤막한 고것만  생각하고 뱅뱅 하면 나중에 창창창 감겨 가지고 다 헛일돼. 창창 감겨 가지고  헛일된다 말이오.

 열두 발 상모를 돌리려고 하면 그것을 돌리면서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돌려야  되고, 어느 정도 목고개를 요리 조리 흔들어서 이래야 되느냐 이래 가지전, 다  말아 놓은 것이돼 설설설 풀려 가지고 나중에 가 돌아가는 것 보면 이 열두 발  되는 것이 하나도 거게 꼬꾸러지지 않고 그것이 걸리지 않고 뱅뱅뱅뱅 자꾸 이래  열두 발 상모를, 그래 가지고 뭐 돌린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십 분 돌리려면 십  분 돌리고. 뭐 한 시간 돌리려면 한 시간 돌리고 이래 돌린다 말이오.

 그거는 돌리는 것은, 돌리면서 자기의 마음이 그 대목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저  끄트머리 열두 발 끄트머리 거게까지 마음이 가 가지고 거게까지를 꼬꾸러지지  않고 겹치지 않고 그게 맺히지 않도록 거게까지 마음을 가고 힘이 가야 이게  되어진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요 현실이라 하는 것은 뭐 열두 발 상모가 아니라 이거는  아주 참 끝이 없는 상모와 마찬가지라. 이러니까 거게 까지를 생각하고 요 현실  생활을 해야 되는데, 그만 현실만 생각하고 데데데데 그만 이래 해 버리는  사람들은 전부 나중에 자기의 미래나 과거나 모든 것을 자기가 들어서 전부 망쳐  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이라는 꼬리는 심히 길다. 이 현실이라는 꼬리는  앞으로는 영원한, 영원히 길다. 영원히 길다. 또 우리의 과거라는 꼬리는 내가  나고 난 다음에, 다윗은 자기 모태까지를 생각 하면서 거게까지를 다 생각하면서  맞추어 가지고 정리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내게 합당한 사람이라' 하고,  그분이 범죄하기 전보다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현재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총명이 그걸 만들어 내고 또  지혜가 만들어 내고, 지식이라 하는 전 총명 속에 다 들었습니다. 만들어 내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되는데, 지혜와 총명은 이것은 성령의 지혜와  총명이 있고 땅에 속한 지혜와 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와 총명이, 지혜라  하는 것은 자기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지혜요. 지혜는 미래관이라, 총명은  전체관이라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인데, 지혜는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 총명,  하늘에 속한 것이 있고, 마귀가 주는 악령의 지혜와 총명이 있기 때문에 이 지혜  총명 이거 잘못 사용하면 그만 망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을 이것을 선택을 잘해서 아주 좋은 지혜와 총명을  찾아야 되는데,  그러면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어떻게 해서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가질 것인가?  그것만 간단하게 말합니다. 성령의 지혜와 총명은 여게 말씀하기를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선행함으로' 선행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행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앞으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내게 좋아질까?' 또 어떤 사람은  이 지혜를 미래만 생각하지 과거는 생각지 않습니다. 과거는 생각지 않는 그거는  지혜가 아니오. 어리석음이라.

 그러면 자기가 무엇을 경영할 때는 내가 앞으로 뭘 해야 될까?, 뭘 해야 될까?  조그만한 장사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앞으로 무슨 장사를 해야 내가 수입을 볼까?  이것을 생각하는 거와 동시에 내가 과거에 어떻게 해 가지고 어떨 때는 수입을  봤고 어떨 때는 손해를 봤다. 이 과거를 자기가 생각하는 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거나 꼭 같은, 그 저울을, 작대기 저울 할 때에 한가운데를 딱 매 가지고 요래 딱  들면 고것이 작대기가 평평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조금 잘못 매면 긴 데로  무거워서 기울어져 버려. 한가운데 딱 맬 때 그거 반듯이 선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요 현실은 우리는 과거 미래의 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나 꼭 그걸 같이 이렇게 가치로  중요하게 생각을 가져야 그것이 치우치지 않고 실패를 안 되지, 사람들은 대개  보면 과거는 다 버려 버리고 미래만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뭐, 그 사람을  가리켜서 영웅이라, 영웅이라. 우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미래는 생각지 않고 과거만 생각해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그만  교만한 사람 되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자기가 그만 열등아가 돼 가지고 아주  자기가 스스로 낙망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교만한 사람이 되고 그만 이렇게 돼  버리고 만다 말이오. 자기의 과거에 잘된 그것만 생각하면 과거에 잘했더라도  그거 다 없어지고 만 데도 항상 과거 잘한 것 그것만 생각하는 그것은 교만한  자가 됩니다.

 이래서 동네방에 가 가지고 사람들이 지금 모았는데 거지들만 쭉 모아 가지고  등짐 장사 모았으니까 거지만 모았는데 모아 놓으면 저희끼리 밤새도록 이야기  한다는 것이 전부 '내가 몇 살 먹어서 나도 부자 한번 돼 봤다. 횡재 한번  되어져봤다.' 전부 과거에 성공한 것만 쭉 이야기하는, 성공한 거 얘기하는 그  사람들은 전부 등짐장사입니다. 전부가 빌어먹는 놈들이오. 또 어떤 자들은  과거에 자기의 잘못된 그것만 자꾸 생각하는 사람은 그사람은 그만 아무짝도  못쓸 낙망자고 아주 낙오자고 그만 전부 무능한 자로서 또 실패를 당합니다.

 이러니까 과거도 골고루 다 생각하고 미래도 골고루 다 생각하고, 현재도  생각하고 이래서 모든 것을 다 총명이라, 모든 것을, 밝을 총(總) 자 밝을  명(明)자, 모든 면을 아는 것인데 모든 면을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도 있고 잘못  아는 것 있기 때문에 바로 알면 성공이요 잘못 알면 망한다 말이오.

 우리가 말할 때 '저 사람은 과거를 모르고 지금', 제 과거를 모르고 말하고 날뛸  때, 제 과거를 모르고 날뛰 때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깔보고 우습게 보고  조롱을 합니다. 또 자기의 미래를 잘못 알고 날뛰면 그 사람 불쌍하게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래도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우리가 되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오. 성령의 지혜와 총명인지 마귀의 지혜와 총명인지?  마귀의 지혜와 총명도 있고 성령의 지혜와 총명도 있으니까 성령의 지혜와  총명과 마귀의 지혜와 총명을 우리가 첫째로 뭘로 가지고 구별할 건가? 선행으로  구별할 수 있어.

 자기가 그러면 지금 무엇을 생각하려고,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 현재에  어떻게 하나 하는 그런 걸 비판하고 평가하려고 이렇게 할 때에 그때에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이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마귀로부터 온  것이냐 이것을 구별해야 되겠는데, 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을 이걸 내가 사용하면  나는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사용하면 이건 내가 성공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조사해 봐야 되겠다.

 조사해 볼 때에 여거 성경에 말하기를 일호로 네가 선행으로 조사해 봐라.

선행으로 조사 해 봐라. 네가 지금 모든 것을 과거나 현재나 비판할 때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그것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획 하는지, 네가  생각하는 것이나 네게 있는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모든 이성이나 이 모든 그것이 하나님 중심이냐 아니냐 그것을  생각을 하고, 첫째 일호로 말이지. 하나님 중심.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벌써 그거 마귀의 지혜와 총명이기 때문에,  이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노하시겠나? 이러면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겠나  저주를 받겠나? 이러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겠나 안 도와 주시겠나? 자기가  무슨 생각이든지, 그러면 지혜와 총명은 생각을 통해 나오는데,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할 때에 그 생각이 성신의 명철한 지혜와 총명의 생각인지, 마귀의 이 흉측한  궤휼과 간교의 사욕의 생각인지 그것을 우리가 바로 비판하지 않으면 전체는  망하고 맙니다.

 이러니까 자기에게 생각이 나오거든 그 생각이 지금 자기를 흥하게 할 생각인지  망칠 생각인지 그 생각을 비판할 때에 일호로 뭘로 비판하라고 했습니까? 일호로  비판을 뭘로 하라 했습니까? 선행으로. 선행이라 말은 하나님 중심의 행동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생각이 나올 때는 그 생각이 하나님 중심의 생각이면  그것이 좋은 겁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생각이면 그 생각대로 하면  자기는 성공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사람들이 왜 못 하느냐? 하나님 중심의 생각대로 하면  자기에게 손해가 가기 때문에 그걸 못 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하려고 하면 그것이 자기에게 거리끼고 자기에게 손해되기 때문에 그래 안 한다  말이오. 또 자기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 안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 중심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 하나님이 찬성하실 거, 하나님이 동행해 주실 거,  하나님이 도와 주실 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거 이게 다 하나님 중심의 것이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 중심의 것인지 아닌지 그걸 가지고 네가 모든 네  생각이나 네게 있는, 지혜와 총명이 생각이라는 구멍으로 나옵니다. 지혜와 총명이  생각이라는 구멍으로 나와 가지고서 그것이 현실을 주관한다 말이오. 자기의  현재의 언행심사의 행동을 주관한다 그말이오. 하는데 그 지혜와 총명 그게  생각으로 나오니까 생각을 조사하는 것이, 생각이 지혜와 총명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생각이 자기 지혜대로 자기 총명대로 지금 생각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해가  돼요? 생각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걸 심사를 해야지 이 지혜와 총명, 이 생각이 좋은 것이나, 만  가지 승패가 다 생각에 나오는 것인데 생각이 좋은 것인데 이 생각을 조사할  때에 이 생각을 조사할 때 일호로 뭘로 가지고 조사를 하라 했습니까? 선행. 선행  이것으로 조사해요. 이거 얼마나, 천하 인간들이 이 성경 아니면 이거 모릅니다.

선행으로 조사를 해요.

 내가 지금 내 생각 이것이 하나님 중심 생각이면 쓸모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잘 사용을 하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생각이면 아예 망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 아닌 생각으로서 이대로 하면 자기가 당장 부자가 되고, 당장에  권세를 얻고, 당장에 승리를 하고, 당장에 형통하고 자기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고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마귀가 준 지혜와 총명이기 때문에 망치는 거라  그말이오. 선행이면 돼요. 선행으로 심사하고,  그 다음에는 뭘로 심사를 하라 했습니까?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 온유함으로. 그러면 두번쌔 심사는 온유함이라. 온유라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자기 마음이 푸근하고, 아무 조급이 없고, 염려가 없고, 뭐  걱정이 없고 이는 마치 사람이 반석 위에 서서 자기, 이거 내가 섰는 자리가 내가  이거 빠지겠나, 이거 떨어지겠나, 이게 어떻게 되겠나. 자기 섰는 자리가 위험한  자리도 있고 자기 섰는 자리가 땅 위에 섰으면 섰는 자리가 든든하지마는  그것보다도 자기가 널떡한 큰 반써 위에 섰으면 더 든든하다 그말이오.

 이와 같이 마찬가지로 온유하다 말은 자기가 생각해서 하려는 것이 그래 하고  나면 보면, 그래 하려고 해 보면 아주 그게 만고에 걱정 없고 염려 없고 조급할  것 없고 아주 마음에 든든한 그런 든든이 있으면 그것이 성신의 지혜와 총명이  시키는 것이라 말이오. 이거 염려가 돼서 '봐라, 이라면 누가 어떻게 하면 어쩌  되겠노? 누가 방해하면 어찌 되겠노? 뭐이 되겠노?' 이 걱정이 되는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라. 올바른 길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길은 그 길은 외모가 뭐이냐 하면 온유합니다. 아주 포근하고  든든합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중심으로 심사하고 그 다음에는 그  생각이 아주 반석같은 든든한 생각이 아니면 그게 마귀가 주는 생각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생각은 온유합니다. 든든 해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으로 나타내라 그 말은 지혜라  하는 건 미래관이기 때문에 자기가 앞으로 요렇게 뭐 할려 하는 그게 '요러면 안  되겠다 조러면 안 되겠다, 요게 방해하면 안 되겠다 조게 방해하면 안 되겠다,  요게 협조 안 하면 안되겠다 조게 협조 안 하면 안되겠다, 요게 없으면 안 되겠다  조게 없으면 안 되겠다.' 그런 것이 아니라 말이오.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지  그게 원만한 완전한 게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주시는 그거대로 하면 그것은 뭐 뭣이 방해해도 상관 없고, 뭣이 협력  안 해도 상관 없고, 뭣이 없어도 상관 없고, 그것은 아무런 위험성이나 염려성이  하나도 없고 완전성뿐인 그 온유한, 미래를, 지혜의 온유함으로 미래를  경영하는데, 그것이 온유하고 든든해서, 이렇게 할 때에 방해물이 있으면  어쩌되느냐? '방해물이 있을수록 좋다. 대적이 있을수록이 좋다.' 그런 마음은  가지지는 못하지요. 방해 있을수록 좋다. 왜? 방해하면 방해하는 그게 박살이  나지지 방해한다고 방해당할 일이 아니라 말이오. 이렇게 든든한 이런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데 이 길을 가지 않는 것은 왜 그러냐? 자기 속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이놈이 들어 가지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은 평안하고 든든한 길이 없습니다. 평안하고 든든한 길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는 인간적인 조화가 들어야 되고 또 인간적으로도 그걸 자기가  수고해 가지고 이렇게 뭘 하려고 하다 보니까 거게서 발동도 생겨지고, 조화도  부려야 되고, 조급도 생겨야 되고, 염려도 생겨지고. 다 생겨진다 말이오.

 이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하는 그 생각에는 하나님 중심이 바로 됐다고,  하나님 중심이 바로 됐다고 하면 그 일은 온유하고 든든해서, 그러면 협조가  없으면 어짤라고? 협조가 없을수록 좋습니다. 방해가 될수록 좋습니다. 그런  마음은 못 가지지요. 왜? 방해하면 방해 그게 깨질 터이니까 그 저 잘되고 남 안  될라 하는 그것도 아니라. 그거 뭐 어떤 것이 있어도 아무 상관 없이 마음이  온유하고 든든하게 되는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지혜와 총명이라.

 또 셋째로는 뭐이냐? 셋째로는 저만 좋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이  다 좋은 거라. 이러기 때문에 화평함이 생겨지요. 온유하고 화평하고 이래저,  자기만 좋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좋을 일이기 때문에, 저희가 몰라 그렇지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다 감사하고 환영할 수 있는 그 길이고, 모든 피조물들도  다 좋아할 수 있는 이 길이 우리가 갈 길이요, 이게 자유의 길이라 하는 건데 이  자유의 길이라 하는 것은 자기만 자유하는 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다 그도  저희 소원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다 자유가 돼지는 이것이 우리가  걸어갈 이 생명의 길이라 그 말이오.

 그러고 마귀가 주는 이 지혜와 총명은 어떤 것이냐? 마귀가 주는 지혜와 총명은  첫째 거게 시기가 나옵니다. 시기가 나오요. 거게 시기 나오는 그것이 마귀에게서  오는 지비와 총명입니다. 모든 것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다 시기와 다툼이 있다. 그러면 배암의 지혜와 총명이 움직이는 데에는  반드시 시기와 다툼이 있고, 악이 있고 이러니까 미움이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가 있고, 다툼이 있고, 요란함이 있고, 분주함이 있고, 복잡함이 생기져 이것은  벌써 바른 길이 아니고 마귀가 주는 지혜와 총명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걸로 자꾸 하니까 사람들이 조급해서 그만 이 마귀의 지혜 총명을  가지면 그 사람이, 우리가 모두 다 마귀의 지혜와 총명에 다 침노를 받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반들반들하게 쭈그름살이 안 잡히는데, 나이가 많으면 막 쭈그름살이  잡혀지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 자꾸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얼굴도  쭈그름살이 잡히고, 우리 생활도 쭈그름살이 잡히고, 우리 행복도 쭈그름살 전부  흠과 점과 주름잡힘을 자꾸 만든다 그거요. 이래서, 앞으로 계속하겠습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자기가 생각을 바로 해야 되지 생각을 바로 못 하면  헛일입니다. 그러면 자, 생각을 바로 하는 데는 첫째 어떤 생각하면 그 생각이  바른 생각 됩니까? 저 OO교회서 온 사람? 하나님 중심 생각이 아니면 헛일이라.

그러기에 우리 생각은 어짜든지 하나님 중심 생각 해야 됩니다. 하나님 중심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좋아하는 피조물 생각, 하나님  생각하고 피조물 생각하고, 그러면 자기는 하나님과 피조물을 좋게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도 '야 너 없으면 나 못 살겠다.' 모든 피조물을 좋게 하니까 모든 피조물도'  '너 없으면 나 못 살겠다.' 이러니까 이것이 얼마나 평강이요 영광이오? 그러니까  온유해진다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교회 주변 청소, OOO 집사님 손 들어 봐요. 녜. OOO 집사님 직분을 차려 놔서  이거 월요일날 아침에는 꼭 새벽기도 안 빠지는구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은 하면 복이 되는 거라. 덕이 되도록 그래 하십시오. 또 바로 지금 권찰회  모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 외우는 것과 실행하는 이것을 어쩌든지 다른 것 다 모두,  공과 외우고 실행하면 거게서 자기가 경험과 체험에서 지식이 나와요. 그걸  가지고 자기도 살고 또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면 그들에게 젖이 돼서 잘 영양이  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어쨌든지 총무든지, 부장 선생님들이든지,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보조반사 선생님들이든지 다 모두 자기에게 소속,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 준 그 사람들을 어데서 길러요? 여게 이 처녀 한번 말해 봐.

어디서 기르지? 어디서 길러? 자기에게 붙여 준 그 제자들을 어데서 그걸 기를  건고? 알기는 아는데 그거는 상식으로 아는 것이지 오늘 아침에 은혜를 못 받아.

조는데 뭐 은혜 받아? 자기 마음 속에서 길러야 돼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 준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서 기르지 않으면 딴 데서는 기르는 길이 없습니다.

 지금 권촬회 모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권찰회 하지 말고 그만 '제직 투표한  것을 이것을 선별하자' 하니까 뭐 '권찰회 좀 해야 된다' 하고 이라는데 몇시부터  이것을 해야 됩니까? OOO 조사? 열시? 그러면 열시부터 그것을 해야 될 터인데  이제 아무래도 그런 것 하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보다도 젊은 사람들이 잘해요.

 이러니까 주일학교 반사들 누구든지 나와서 좀 몇백 명 돼야 잠깐 해요. 잠깐 해  버리면 되는데, 주일학교 반사들 가운데에서 스무 살 이상되는 그런 사람들 시간  있는 대로 다 나와요. 그러고 여기 교회에 정식 직원되는 사람들은 다 나와서  하고, 또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와 가지고 좀 거기 좀 감시를 해서 잘 지도를  하도록 그렇게 하고 그래 가지고, 그전에 며칠 걸렸지? 그 정리하는 데까지 얼마  걸려? 삼 일 걸 린대요. 정리까지 하는데. 삼 일 걸리는데, 삼 일 걸리는데 꼭  지금 내 생각에는 요거 한 세 시간 내에 요걸 전부 싹 다 못 하나 이래 생각이  되는데 그래 지금 한번 해 볼 생각이 있는데 모르겠어. 많이 나와요. 나와서 한  서너 시간 걸려서 싹 다 하도록. 뭐이든지 지금 고성능 시대가 돼 놔서  느리느리거리면 다 떼여 버리고 말아요. 빨리빨리 해야 되지. 그래도 빨리 해도  마귀로 움직이면 다 자기 처박혀서 자살하고 말아. 그래 다 나와서 같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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