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소망과 목표

 

1983. 5. 8. 주일오후

 

본문 : 베드로후서 2장 22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생활을 두고 이 세상을 따라서 어떤 고귀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불쌍하고 가련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뭐 유식한 분도, 또 큰  권력자도, 재벌가도, 능한 예술가도, 또 누구보다 쾌락을 가진 자도 일생 동안  그런 것에 머물러 가지고 자기 이 소욕이 이루어짐을 인해서 기뻐하고, 또 이  소욕이 어루어지지 못하면 고민하고, 또 이 소욕을 이루기 위해서 불철주야하고  분발한 그들이 순전히 자기가 자기를 속여서 자기가 자기를 망쳤다는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또 우리는 우리의 근원이 원천이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무한의 근원을 우리가 가졌고 또 지 극히 큰 소망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다 참된 기독자들이 구원 이루는  일을 위해서 대비되어 있고 다 기다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또 그것이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용 안 당할래야 안 당할 수 없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그를 죽인다  해도 저는 이용을 당했습니다. 믿음 가진 자에게는 이용을 당하지 아니할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또 믿음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전적 그에게만 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가운데 들어 있는 자신인 것을 기독자들이 알면 참된 평강을 누리지마는  자기 미혹의 욕심으로 인하여 어두워졌고 하나 둘 범죄로 인해서 어두워졌고,  미련해졌고, 강퍅해져서 소경같이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산 것은 내비두고  죽은 것 좋아하고, 향상하는 것은 내비두고 타락하는 것을 좋아하고, 존영과  환영은 버려두고 영원히 원망 불평 총공격 받을 그런 것만 자꾸 좋아서 취하는  것이 그것이 순전히 악령에게 꾀여 가지고 우리가 미혹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생활이 아닌 생활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다 불쌍하고 가련하고  다 비참하다는 그걸 우리가 절실히 느껴야 됩니다.

 오전에도 설교했는데 다시 또 말합니다. 이번에 대구에 가 가지고 열한 시간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에 세 군데만 배웠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에 대해서, 또  시편 1편에 대해서, 씨뿌리는 비유는 배웠지만 거기에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씨뿌리는 비유를 확실히 파악한 사람은 제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월도 받은 바 한정이 있습니다. 무한정의 세월이 아니오. 또 우리의  정력도 한정돼 있습니다. 뭐 얼마든지 허비하고 낭비해도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신 바 이 자연은총의 이 세상 것을 하나도 허비하지 안하고 다  들여서 이루어야 이 영광스러운 구원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악이라는 정의를 몇 번이나  말했지마는 악의 정의를 믿지 않습니다. 사나우면 악인 줄 알고, 또 저거들의  인류 법칙에 위반되면 악인 줄 알고, 저거 사상 법칙에 위반되면 악인 줄  알지마는 그게 성경이 말한 악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악은 자존자 주재자 이분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피조물들은  살아야 금생과 내세에 다 행복되게 살 수 있는 것인데 이분을 중심하지 안하고,  지음을 받은 제가, 단 이,삼 분간도 주님의 것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제가, 강한  세력의 악령의 침해 속에 있는 제가 뭐 잘났다고 자기 중심으로 합니까? 그게 다  악입니다.

 그렇기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세상은 전부 자기 중심으로  멸망으로 폭포수같이 아래로 홀러 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이니 네가 역류하기가,  거슬려 역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가다 보면 일 년 이태 일생을 그 물결에 휩쓸려서 지옥으로 향하여  떠내려가고도 거기에서 멈추어 설 줄 모르고 역류할 줄을 모르는 것이  인생들인데 네가 얼마나 촌음을 두고 '요 시간에는 어찌 됐느냐?' 하는 그 시간  계산을 네가 얼마나 정확하게 해야 네가 거기에서 끌려 들어가지 안하고 살 수  있는데,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평생 해도 모자라는 돈 벌 연습 썩을 연습 하지 말고 경건 연습합시다.

경건 연습이라 말은 하나님 섬기는 연습이라 말이오. 그것 참 미친 소리  같습니다.

 돈벌이 하는 연습, 지위와 권세와 명예가 올라가는 연습, 연습을 해서 숙달이  되면 당장에 현상이 나오고 효력이 나오는데 그런 거는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잘 섬길까 하는 이 연습은 하는 데마다 마찰과 박해가 있는데 그래  봤자 아무 상도 하나도 없는 것, 그 연습 하면 더 종의 종이 됩니다. 경건  연습을 하면 과거에는 배짱 내던 자가 그 연습을 자꾸 하니까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제 욕심은 하나도 차리지 못해. 주님의 소욕에 걸릴 때에 거슬려지지  제게 거슬릴 때에는 뭐 손해가도 죽어도 좋다 하고서 이와같이 종이 되어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지는 이것이 경건이니까 경건 연습을 하는 것을 뉘가 높이  평가하지 안하지마는 여기에 인류의 가치는 달렸습니다.

 왜? 종말은 그분이 딱 잡고 그분에게 필요 있고 상관 있는 것만 두고  나머지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조금 상관 있는 것은 그만치 후대, 많이  상관 있는 것은 그만치 후후대, 이것이 천하 인간이 반대해도 털끝만치도 가감이  없습니다. 뭐 인간들이 데모를 한다고, 세상 정권자가 데모하면 놀라지 하나님이  데모하는 것을 놀랄 줄 압니까? 노아 홍수로 싹 쓸어버렸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경건을 연습할 것이고 경건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하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연습한다 말은 한번 하니까 '아, 좀 잘못됐다 또  한번 하자.' 하고 나서 또 잘못된 점을 생각하고 또 새로 한번 잘 되기 위해서,  이미 한 것이 부족하니까 새로 잘하기 위해서 거듭거듭 하는 것이 연습입니다.

 그런고로 경건을 연습하는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또 '뭐 나는 돈이  모자라니까 좀 돈을 더 가져야 되겠다. 권세가 모자라니까 한층 더 올라가야  되겠다. 뭐 세상에 있는 것이 부족하니까 한 가지 더 구 입해서 번창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하나 그것 다 인간을 망치는 폐 단들입니다.

 미국 나라는 복받은 나라인데 그 나라가 육체에 필요한 것을 자꾸 육체를 따라  연구하니까 하루 종일 일해도 자기가 필요한 것을 충분히 갖추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어릴 때부터 죽는 날까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만족히 충분히  편리하게, 그것이 소위 문화 생활이라 합니다.

 해도 해도 모자라 세상에 대해서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고 가난하고 갈급해서  마련 마련, 연구 연구, 신발명 신발명 말해 봤자 도매금으로 '다 멸망!' 이것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성경에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있다'  의에 주린 자가 의에 배고픈 자가 복이 있다. '그는 배부름을 얻으리라' 참으로  절대자이신 그분의, 그분과 연결되는 것은 그분이 명령하는 데 순종하는  것으로만 연결되는 길이 있지 딴 길 없는데 여기에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그분과 연결되는 이 일에 갈급과 부족과 더 원만과 풍부를 노리는 그 사람들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만족을 얻는다 하는 말입니다. 배부르다 말이  영원히 만족을 얻는다 그말이오.

 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욕심을 죽이려고 날마다 애를 쓰고 하는데  어떤 자는 자기를 멸망케 하는 유혹의 그 욕심을 달성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게  되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게 된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러나 정말로 산 사람 잘난 사람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사욕을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소욕을 이루고 자기의 사욕을 죽이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가 그것도 미혹이오. 그 사욕 그것이 달성돼 봤자 마지막의 결말은  사망입니다. 또 그런 것은 하나님이 다 우리에게 있을 것을 안다 했어. '이런 것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아라. 너희 천부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했어.

 성경은 분명히 물질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 했습니다. 왜?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적절하게 다 해 주시니까 하나님이 해 주시는 현실  속에서 주님과 자기와의 원수되지 안하도록 주님과 화합되는 그의 명령에 따라서  복종하는 그것만 너 할 일이지 딴것은 네가 하지도 못하고 공연히, 천하  인간들이 자기 현실을 좋게 만드려고 애를 썼지마는 좋게 만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있다고 말하면 그 사람 미친 사람이오.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런 생각을 다 버리고 돌아서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세상을 목표로 두고 가던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은총을  목표로 두고 가는 우리로 돌아서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회개할 그 소망의 목표를 어데 둘 것인가? 우리가 회개를 하면  어데까지 회개하며 어떤 소망을 가지고 회개할 것인가? 세상은 잠깐이오. 우리의  영주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좋든지 나쁘든지 영원히 머물 곳은 죽음 너머 새로  부활해 가지고 심판을 통과해서 만나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제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변동하고 싶어도 변동하지 못하고 그대로 거기에서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어떤 자는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어떤 자는 영광 없는 미안스럽고 부끄러운  자리에서, 어떤 자는 존영과 환영을 받는 자리에서, 어떤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얼마든지 원하는 바를 다 줄 수 있는 혜택을  입히는 시은자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그 나라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 주님은 이것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땅 아래 있는 것, 그거는 우리  알아듣게 말한 것입니다. 천국과 세상과 지옥을 말합니다. '거기 있는 전부가 다  주님에게는 찬양을 하고 주라 시인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했습니다.

비록 멸망을 받았지마는 그 지당한 멸망을 받았지 주님에게 대해서는 감격해서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같이 이런 위치에  앉아서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맺으며, 전인류와의 어떤 관계를 맺으며, 모든  피조물과의 어떤 관계를 가지고 지금 영생하고 있는 이 위치를 내가 얻은 것처럼  이기는 자는 너희들도 이 위치에 내가 같이 앉게 하여 주겠다' 거짓말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우 리가 회개하는 자의 이 소망에 대해서도  에누리하면 안 됩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나와의 참 흠과 점과 티가 없는 이런 온전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도 지금입니다.

 또 내가 나기 전에 수천 년 전에 세상에 왔다가 간 사람이나 내 뒤에 올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에게 연연관계가 있는데,  연대적으로 연대적으로 연속 연속적인 이렇게 관련있는 것인데 모든 인류에  대해서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나 티가 없는 이런 관계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지금입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이렇습니다. 지금입니다.

 또 많은 그 사건들, 많은 그 모든 만물들 그와의 올바른 관계, 지금은 만물을  내가 불에 태워도 그만이고 썩어도 그만이고, 써도 그만이지마는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이 절대 그것을 자유하지 못하지마는 하나님께서 구속의 기간이  차기까지는 복종케 하기 때문에 복종케 하는 자로 말미암아 복종하지, 복종케  하는 자가 아니면 물 한방울도 복종 안 합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대단히 똑똑하고 위엄이 있는 사람이지마는 물 한방울도 제가  호통쳐야 저에게 복종 안 합니다. 다시는 상관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모든 것과의 올바른 이 관계라는 것, 참 우리가 어떤  사람은, 불법한 사람은 법을 어기고도 안심하고 그게 장기인 줄 알지마는  세상에서도 법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 떨려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똑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이 법칙은 이게 자유법인데 모든 존재들에게 자유법인데 전부  가지기를 원하는 법인데 이 법을 지켜서 했으면 모든 존재들이 다 찬성하고  환영하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의가 없습니다, 나는 찬성하고 환영합니다.'  하지마는 이 법을 어긴 것은 만물이 송사합니다.

 이러니까 위로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 모든 사물에 대해서 오늘이 부끄럽지 않게  되는 이런 관계를 가지는 관계를 마련하는 지금이니까 이것은 딴것 가지고 안  되고 회개로만 됩니다.

 회개는 어떤 게 회개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것이 그걸 틔우는 것이  회개입니다. 인류와 나와의 가로막힌 것을 틔우는 것이 회개입니다. 모든 사물로  나와 가로막힌 것을 틔우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회개하는 욕망의 목표를 위에다 두고 다른 사람이야  비웃든지 말든지, 어떤 사람은 대가리를 싸짜매고 '세상의 지식에 제일 머리가  되겠다' 하지마는 그 사람은 견해가 그것이 보배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과 인류와 만물과 영원 무궁토록 거리끼고 막힐 것이 없이 그것 틔우는  것이 가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또 그것을 전부 전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람이 복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복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회개의 소망을 회개의 목표를 여기에다 두고, 또 그러면  우리가 회개하는 그 회개의 그 목표는 기준 목표는 어디다 둘건가? 그것은 선지  사도들이 다 회개했는데 그 모양으로 그분 따라서 그분을 표본해서 표본해  가지고 따라갈 것이 아니고 우리가 회개해 가지고 어데까지를 도달하기로 회개의  목표로 정한 것, 어데까지를 목표로 정해 놓고 우리가 회개할 건가?  우리는 지극히 큰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온전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거룩함과 같이 거룩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만으로는 안 되지마는 아버지의 성령으로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구별하고 구별해서 조그마치라도 이 비판이나  평가가 잘못되지 않도록, 십 원짜리는 섭 원짜리만치, 백 원짜리는 백  원짜리만치, 자기대로는 하나님이 정평 정가하심같이 모든 것을 구별해서 바로  평가해서 비판해 가지려 하는 우리가 요걸 원하면, 원하면 원하는 자에게 그의  소원을 이루도록 책임을 지신 이가 하나님 이시요. 진리시요. 거기에서 부족한  흠점을 즉시즉시 이것을 다 제거해 도말하는 것이 주님의 피요. 넉넉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할 목표는 아버지의 온전하심, 아버지의 거룩 하심,  주님의 깨끗하심 여기에를 목표를 하고 회개를 하면 날마다 오만한 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 보니 또 틀렸고 보니 틀렸고 해서 회개에 대해서 가난과 갈급이 있을  것입니다. 피곤치 안할 것입니다. 회개에 갈망이지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생명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한다 했습니다.

 생명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한다 말은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께로 자꾸  인도해서 연결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해나 뜨거운  기운이 상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 목표를 두고서 합시다. 인생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제가 회개라는 것을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하는 회개가 제게 자유 있다 하는 그게 교만한 자입니다.

 회개에는 첫째로 생명이 있어야 됩니다. 제 생명이 오늘밤에 어찌 될지  모릅니다. 인간의 종말 시간을 누가 압니까? 젊음이 그게 확정 됩니까? 아니오.

건강이 확정됩니까? 그것 아니오. 건강하고 젊어도 이 시간이 마지막 시간인지  모른다 그말이오. 인생의 종말 시간을 인 생에게 모르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자는 넘어지고 꺾어지고 다 영원히 멸망을 받도록 하고 겸손한  자에게는 자꾸 알려서 회개하도록 한 것입니다. 생명에 아무 주권이나 자유가  없는 자가 무슨 회개를 제 맘대로 한다 말입니까?  또 회개는 강한 악령을 제어해야 됩니다. 악령을 제어하는 것은 주 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으니까 제어할 권리는 있지마는 제어하는 데는 성신과 진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신의 감화받고 진리를 깨달아서 사탄을  '물러가라!' 하면 그놈은 물러가야 됩니다. 죄는 우리에게 권리 없습니다.

사망도 물러가라 하면 물러가야 됩니다. 죄도 물러가라 하면 물러가야 됩니다.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지 못했다고 성경에 말했어. '죄가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사탄이 너희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사망이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이는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그가 예수님에게도 왕노릇 했지마는,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에게 왕노릇 했지마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제는 이겼기 때문에 마귀가 굴복합니다.

 그런고로 회개를 제가 주권하고 있는 줄로 그렇게 망령을 부리지 말고 회개를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해야 됩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이 우리의 소망의 목표를  달성하고 우리가 회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첫째로  주님의 십자가의 피가 있습니다. 이것은 해석할라 하면 시간이 많으니까 다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오.

 그저 가려고 하면 사람이 걸음을 걸으려 하면 암만 발을 깨끗하게 씻어도 또  더러워지고 더 러워지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걸으려 하면 또 실수돼서 죄와  허물이 있으면 주님의 피에 고해서 또 새로 출발하고, 우리가 순종 순종하다  봐도 또 제 맘대로 제 자율대로 한 것 있으면 주님의 칭의에 고해사 다  해결받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일이 있은 것도 이제 주님의 대속의 화목  제물을 의지해서 다시 화친으로 해결받고 이제 주님의 피가 있기 바문에 우리는  극단에 이를 때에 우리에게 해결 못 할 일이 없는 공로가 있습니다.

 또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회개하고자 하는 자에게 도와서  능치 못함이 없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책임지고 와 있습니다.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 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또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서 우주를 창조한 이 권위 있는 진리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보증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하지도 말고, 낙망하지도 말고, 그저 허영과 허욕에서  공연히 날뛰지 말고, 죽을 송장이 송장떼 자랑하는 것처럼 세상에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서 자랑하고 이것 가지고 다른 사람에 충격 줘서 사람을 부럽게 하는  그것이 친구를 뚜드려 팬 악인입니다.

 다른 사람이 부러워해도 '여기에 매이니까 신앙 생활에 자유가 없어 참 얼마나  항상 실수하는 것 실수하는 것밖에 없어. 어짜든지 믿음에 굳게 서서 위엣 것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달리고 날마다 깨끗하게 거룩하게 온전하게 이 일을  전공으로, 전문으로, 전부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어.'  그 중이 말하듯이 '나는 참 길을 잘 못 들었어. 나는 헛된 밧줄에 매여서 내가  자유하지 못해.'  이 자리가 나쁜 게 아니지마는 내가 여기서 자유하지 못한다면 내 위치가  아니라. 내가 그 위치에서 얼마든지 계명 지킬 수 있는 그게 내 직장이요 내  위치지 제가 계명 지킬 수 없는 그 자리는 제 위치가 아니라. 제 직장이 아니고  제 지위가 아니고. 너무 겉올라가서 남의 것을 도적절했기 때문에 예수를 팔고  진리를 팔아야 감당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나는 참 자유 없는 사람이라.'  이러니까 그들에게 바로 가르쳐서 헛된 영화를 가지고서 공연히 그들로 하여금  격분하지 않도록 그렇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서 '나는 이 자리에서 계명  지키지 못하고 양심 지키지 못하고 구원 이루는 일을 이루지 못하니 고민이라.'  부러워서 구경하러 갔던 사람이 그 고민하는 것 보고 '나는 신앙 지키는 데  만족하는 것이 과연 행복이로구나. 그분은 열 길 위에 올라가서 그리 고민하는데  나는 다섯 길을 내려오니까 넉넉하고, 나는 한 자를 내 분수에 올라가니까  괴로운데 한 자 더 내려오니까 평안하고 자유하고 언제든지 자유해서 암만  자유해도 내 위에 있는 사람도 내가 자유해도 그래도 좋다 있으라 하고 내 밑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자유할 수 있는 것을 행복스럽게 느끼는 그 사람이 뭐냐?  때를 따라서 형제에게 양식을 나눠 주는 사람입니다. 이치를 알고 삽시다,  이치를 알고.

 그런고로 우리가 개와 도야지와 같이 수성처럼, 이성 없는 수성처럼 회개했던  것을 다시 돌아가서 개가 토했던 것 먹는 것처럼 도야지가 씻었다가 더럽히는  것처럼 그래 하지 말고 한번 후회한 것은 못을 박고, 그게 만일 되돌아가면  자기가 죽는 줄 알고 죽자껏 힘을 써서 회개를 놓지 말고 회개한 것을 착착 재  놓고 뺏기지 맙시다.

 이것을 뺏기지 안하면 자기는 자기 속에 샛별이 떠오를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고, 역사하면 썩은 것 가지고도 맛이 있어서 사람이 못  견디는데 썩지 안할 성한 것 가지고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망할 것 가지고도  사람이 좋아서 못 견뎠는데 영생을 가지고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기독자는  한없이 줬지마는 너무 고차원이어서 자기에게 너무 거리 멀기 때문에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뭣 세상에 좋은 것 뭐 있습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회개를 하고, 이번에 대구에 가 가지고서 집회할 때에  아브라함과 롯에 대해서 여러 시간을 계속했습니다. 간추려서 한 말로 말하면  사람이 첫째는 자체 성공이 있고, 자체 성공. 그다음에는 많은 인간을 얻는 인류  성공이 있고, 그다음에는 소유 성공입니다. 자기 자체 성공을 해서 자체가  하나님과 인류와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부끄럽지 않는 영광 있는 자기, 미안치  않는 자기, '뭐 부끄러워? 뻔뻔하게 배짱내면 되지.' 그래도 모든 존재에게  피해를 끼친 그것이 그때 나타날 때는 뻔뻔하지를 못합니다 그때는 세상과 같이  어두운 세상이 아니오.

 이러니까 자기 자체를 성공하는 자체를 성화시키는 데에는 간단하게, 우리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자기 현실에서 거기에서 하나님 높이겠느냐 나  높이겠느냐? 누구를 높이겠느냐? 반드시 이것이 비 중이 되고 이것이 이제  비판이 되어지는데 거기에서 나보다, 실은 내입니다. 인류라 해도 내요. 내가  있는 인류입니다.

 정절 부인이 남편을 위해서 같이 죽은 열녀 비문을 세운 사람도 속은 저요. 내  남편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알겠습니까? 모두 다 내요. 내 민족이기 때문에  내인데.

 나를 비어 나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모셔 높이는, 하나님 좋게 하는,  하나님을 높이는 요것이 자기를 성화시키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다른 법칙은  없습니다. 유일한 법칙이오.

 하나님을 높이니까, 자기가 들어서 방해하는데, 자기가 들어서 방해하는데  방해하는 자기를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을 높이니까 하나님과 자기와 접선되니까  그분은 빛이시요, 그분은 생명이시요, 그분은 온전이시요, 완전이시요,  거룩이시오. 이러니까 자신은 거기에 감염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어 필연적으로 자체가 성화됩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지 자기부터 앞세워서 자기 생각하고 저 좋도록 하면  헤헤 웃고 제게 나쁘게 하면 싫어하는 그것이 순전히 원죄입니다.

 선악을 정의하는 것이 저를 중심해 가지고 저 좋아하면 헤헤 웃고 저 제게  해치면 나쁘다 하는 그것이 원죄니 그것으로 인간이 망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처세술로 생각하고 그것으로 가지고서 자기의 장기로 생각하는 그거는 어리석은  자요 불쌍하고 가련한 자요.

 그런고로 어데서든지, 사건에서나 회의에서나 또 무슨 물질에서나 어 데서든지  거기에서 하나님 찾아서 하나님 좋게, 하나님 좋게 대접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걸  따라서 하면 그 전체는 다 잘됩니다 그분이 지은 것이니까 그분이 주면 누가  반대하겠소?  인간만 타락챘고 마귀만 타락했지 만물은 하나님의 지은 그 본질 본성 그대로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그자에게 모든 피조물은 복종하려고  고대하고 기다리고 있어. 천사들도 복종하려고 기다립니다 마귀 타락한 인간들만  반박합니다. 그까짓 게 무슨 가치 있습니까?  그리고 인류를 얻는 데에는, 인류를 얻는 데에는 이래 하나 저래 하나 시비가  있을 때에 인간 비위 맞추고 인간 얻기 위해서 인간 의사로 하나님 의사를  양보하고, 그리 안 하면 양쪽에 반반이 가르자 하면서 타협주의로 나가는 그런  사람은 인간을 다 뺏겼습니다. 롯은 모든 사람 다 뺏겼고, 자기 부하 모든 사람  다 뺏겼고, 자기 마누라도 뺏겼고, 마누라도 뺏겼기 때문에 말 안 듣지. 그렇게  다급한 유황불비 온다고 가자 해도 '저놈의 영감탕구' 하고 어쨌든간에 '영감  말만 듣고 그럴 게 아니라 한번 돌아보자' 하다가 멸망받았지.

 딸들도 잊어버렸어. 딸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 인정하고 존경했 다면 그런  과오가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자기조차 잊어버렸어. 자기조차 잊어버리지 안했습니까? 그 사람이  무궁세계 가도 부끄러울 일이지 뭐 영광 될 게 뭐 있습니까? 그것 우리가 다 볼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인간 비위를 맞춰서 나가는 자마다 인간에 대해서 완전 실패가 된다  하는 것을 믿음의 조상 롯에게서 보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롯. 멸망받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럴 때에 많은 사람들의 의사가 있지마는 그 의사 따르지 안하고  깊이 묻혀 있는 주님의 의사를 찾아 가지고 그 의사대로 실행을 하고 이러니까  임시는 사람을 잃는 것 같았지마는 천하 만민이 다 아브라함 품에 가 안깁니다.

천하 만민이 무궁세계 가서 아브라함 품 아브라함의 슬하에 다 속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람 얻는 비결이 어떤가? 자기 성화되는 비결이 어떠한가?  자기 소유를 풍성케 하는 비결이 어떠한가?  롯은 현실을 당했을 때에 눈으로 보이는 좋은 조건, 만물보다 거짓된 깜깜한 제  이성 판단 욕심 판단을 가지고 좋은 것 취해서 보이는 조건, 자기 생각 판단  자기 판단의 조건, 좋은 조건 취해서 갔고, 아브라함은 그것이야 어찌됐든지  하나님에게 축복받으면 되지, 아무리 좋은 걸 다 차지해도 하나님의 축복 못  받으면 그만이다. 축복 위주로 간 그것이 아브라함의 영과 육의 소유의  성공입니다.

 그저 자꾸 흘러 떠내려 보내지 말고, 오늘  장로님이 시편 1편을 읽었는데 그  말씀을 읽을 때에 참 좋았는데 이제 그것을 말할려면 시간이 지나가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는 첫째 회개합시다.

 회개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고, 회개의 목표를 보고서 달리고, 회개에 돕는  은혜가 셋이 있으니 넉넉합니다. 그 능력이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공한 능력입니다. 너희 안에 역사하는 그 능력이 너거들의 생각과  너거들의 소원을 넘치게, 거기 지나치게, 거기 넘치게, 그보다 더 풍성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핑계 못 합니다. 우리가 뭐 거지가 돼도 넉넉합니다. 사형장에서도  넉넉합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족하다는 것을 알았어. 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사지에서도 넉넉하고, 빈궁에서도 넉넉하고, 천인 만인의 원수의 우겨싼  폭발 속에서도 넉넉하고, 깊은 죄 가운데 빠져서도 거기서 이제 회개하면  솟아나서 넉넉합니다.

 그런고로 회개는 기독교에만 있지 딴데는 있는 젓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못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는 공연히 지식만 가지고 하지 말고 하나씩 실상으로 회개합시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면 못씁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뭐 남북 전쟁이니 하는 그런 것 문제 없습니다. 남북 전쟁은 우리 모든 동족을  위해서 어린 신앙을 위해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터겼으면 좋겠습니다.

터졌으면 좋아요. 왜? 터져야 기독자들이 한번, 한번 언덕을 떠나서 한번  뛰어보지. 한번 날아보지.

 그런 것은 우리가 벌써 다 해결되고 초월된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가  아니고 우리의 회개의 소망, 회개의 목표 이것을 굳게 잡아서, 회개하게 하는  지극히 큰 능력, 지극히 큰 공로, 지극히 큰 능력의 이 진리, 얼마든지 힘입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후히 주시고 욕하지 않습니다. 달라 할수록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은 그분에게 달라 하는 것이 대접하는 것이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분의 것을 주는 대로 받는 것이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표준과 다릅니다.

 작정합시다. 공연히 머뭇머뭇거리지 말고, 그까짓 거 암만 해 봤자 별것  없습니다. 이러니까 어느 직장 어느 위치 어느 사업이든지 거기에서 자기가 믿음  지키는 장소인 줄 알고 거기에서 죄로 더불어 싸우고, 사 망으로 더불어 싸우고,  마귀로 더불어 싸우고,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하나님의 뜻만 이루면 그것이  뭐이냐? 밭 산 것입니다. 세상을 샀어. 세상을 점령했어.

 그럴라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애낌없이 내놔야 그것을 점령할 수 있지 그리  안 하면 점령 못 합니다. 그렇게 쉬운 것인 줄 압니까? 그리 쉬운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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