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수준, 부자 청년

 

1983. 4. 23. 토새

 

본문 : 마19:16-22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지난밤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고 또 계속 며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는 교인들이 없고 듣는 교역자가 없습니다. 지난밤에도 이 말씀으로  인해서 안 들으니까 장시간을 끌었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자기가 그 병을 하나 고침으로, 그 병 하나 고침으로 그  사람에게는 만사가 해결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존귀 한 사람, 다 인기 참  집중이라 할 만큼 주목의 대상이 됐고, 또 주님도 그 사람을 과거와 달리 자기  보기에는 떨어졌지마는 주님은 늘 그 사람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사람과 같이  이렇게 동행하는 그런 일을 하셨고, 또 그 사람도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주님을  위하는 사람이 됐고 또 주님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사람이 됐고, 주님과  나누어질 수 없는 그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면 대외 관계가 이렇게 됐고 또 자신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 어서  어려움이 하나도 없고 참 기쁘고 즐겁고 존영한 사람이 됐습니다. 객관에 대해서  주관에 대해서 모든 것이 다 완전 해결입니다.

 삼십팔 년된 병자가 그 병 나음으로 완전한 해결이 됐는데, 지난밤에나 저  지난번에도 이 말씀을 했는데, 지금은 자기가 그 병 낫는 것 만 위해서 늘  설교를 했었는데 지금은 병 낫는 것보다도 자기가 고침을 받아야 할 그 병이  무엇인가, 이 삼십팔 년 병자는 그 병을 알고 그 병을 고침 받았는데, 우리는,  지난밤에 말씀한 것도 삼십팔 년 된 병자는 이 병 하나에게 모든 불행이 다  기인되었고 이 병 하나 고침으로 모든 인간 성공이 다 거기에 기인되어서  해결됐으니 내게는 그 병이 무슨 병인가, 내게는 그 병이 무슨 병인가 하는  그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것을 안 알아 듣는다 그 말이오.

 제가 알기에도 만일 말을 해 주려고 하면 다는 내가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아는  대로는 그점이 있습니다. 그점이 있는 그점을 고쳐야 될 건데 그점을 자기는  고치려고 하지 않고 가장 사랑하고 있고 장기로 알고 이렇게 있어서, 참 자기만  낭파될 게 아니라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도 낭파를 시키는데 그것을 제삼자가  말해 주면 효력은 없고 오히려 적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사람을 잃어버린 것도  그것을 말해서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것을 말해 주지  않으려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늘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또 말하게 됩니다.

 사울이 그때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일 잘 믿는 사람입니다. 사울왕 만 같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든 면이 제일 구비하고 참 왕으로 세우기에 가장 구비하고  적절하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그때 인정을 받았는데 그분을 멸망시킨 그 병이  있지마는 그는 그걸 발견하지 못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이 뒤에  결과적으로는 악화되어서 결과적으로는 그를 멸망시키는 그 결과가 맺어졌지  유익을 가져오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을 사무엘 선지가 가서 말을 해도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않고 자꾸 이래 변명만 해서 나갔지 자기를 멸망시킬 그 원인인  병을 그는 고치려고 애를 쓰지를 아니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그런 분도 자기가 그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이러므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그분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것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자기 바울에게 있는, 바울을 절단낼 그 병을 바울 자신이  몰랐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게  떠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탄의 가시가 와 가지고 그의 머리를 들 수 없고 낯을  들지 못하도록 그와 관련된 모든 환경을 일으켜 가지고 한없는 능욕과 수치와  도무지 그 모든 면에 박해를 그들에게 주는 그 사탄의 작용이 그에게 역사하는  그것을 떠나기를 원했습니다.

 세 번이나 간구하니까 주님께서 '내가 네게 준 은혜가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이루어지는데 네가 약하지 아니하고 강해서 나를 떠나서 네가 다  실패하고 너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도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네가 너를 자부하지  못하게 그와 같이 한 것이니까 네게는 적절한 은혜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실  때에 그때에 깨닫고 그는 돌아섰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것을 떠나기를 원했지마는 그것을 떠나기를 원하는 것보다 그  사탄의 가시가 네게 계속되어 있기를 내가 원한다. 왜? 그것은 내가 계속 약한  자로, 계속 다른 사람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할 그런 죄인으로, 잘난 척 하려 해야  할 수 없는 그런 자로, 내가 약한 자로 수치스러운 자로 그렇게 되어 있는  그것을 오히려 나는 기뻐한다.

 왜 기뻐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고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다. 과거에 나는 이것이 떠나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것 떠나면  하나님 은혜는 그 다음으로 절로 떠날 수밖에 없는 내인데, 나는 그것을  떠나기를 원했지마는 이제 깨닫고 보니까 그것이 떠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모든  사람이 나를 자꾸 높여 가지고 나를 자고한 사람 만들어서, 내가 자고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 떠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것이 내게  있기를 원하고 지금 있는 걸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일생 동안 싸워 나가야 할 것, 일생 동안 자기는  자기에게 있는 그 단점, 하나님과 당장 원수되게 되고 멀 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역사할 수 없고, 그 능력이 끊어질 수 있는, 끊어지게 하는 그  자기에게 대한 성전 휘장, 자기에게 대한 가로막고 있는 문, '문을 열라 내가  들어가겠다' 하는 그 문, 그 문을 사도 바울은 발견하고 그 문으로 인해서 죽는  날까지 계속 그는 노력했습니다.

 노력한 것은, 사탄의 가시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원한다는 그것은, 그것이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데 있는 것을 원한다는 것은 그것이 떠나면 자기에게는,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는 그 병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그 병을 원하는 것  아니지마는 사탄 떠나면 이제 그 병이, 그 병이 사탄에게 떠나면 그 병이  자기에게 발병될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죽는 날까지 애를 썼던 것입니다.

 다윗도 자기는 자기에게 큰 낭파를 지울 그런 병을 자기는 몰랐습니다.

몰랐다가 그 병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병을 발견 시켜서  발견하고 난 다음에 자기는 자기를 알고 그 후부터는 다윗은 그 면을 자기는  일생동안 힘쓰면서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 전 보다 그 후가 참으로 하나님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이 말씀에서도, 이 칭년이 자기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이 선한 일을 물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어떻게 해서 내게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 뿐이시니라 그 말씀이, 그  사람은 자기는 선한 사람이요 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오. 또 '네가 그러면 무슨, 영생을 얻으려고 하면 네가  계명들을 지키라' 쭉 계명을 말할 때에 '내가 이것은 다 지켰습니다.'  '지켰습니다.' 그 사람은 다 지킨 줄 알았는데, 실은 네 이웃 사랑을 네 몸같이  하라는 이 말씀이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이 그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가 계명 지킬 것인데,  왜? 계명 지킨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뭐이 부족합니까? 말하니까 네가  온전하고저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아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믿어라. 그리고 와야, 그리고 나야 나와 결람할 수  있고, 나와 동행할 수 있고, 나를 따를 수 있고, 나를 믿을 수가 있지, 그것이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와서 나를 믿어라 그  말이오. 나를 따라라 나를 믿어라 하는 말씀인데 그 말씀하니까 그 청년이 그만  근심하면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자기는 '이제 완전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자 신만만하게  말했는테, 자기가 모르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그 휘장 그것을 그만큼 주님에게 말해도, 모르고 문답을 해도  모르고 그러니까 주님의 빛이 거기에 안 간다 말이오. 빛이 안 가고, 깨달으면,  삭개오는 빛이 가니까 그만 벌써 턱 말할 때에 두 마디하는 것이 다 주님 앞에  만족입니다. 제가 깨달을 걸 깨닫고 알 걸 알았습니다.

 이렇지만 이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라 하고 이웃 사랑을 네 몸 같이 하라 하는  이 계명을 지켰으니까 제가 벌써, 믿는 사람이 있는 대로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는 그게 아닙니다. 줘야 될 사람도 있고 안 줘야 될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다 줘 버리면 믿는 사람 다 주면 마귀들 좋아해서 죄만 짓도록 할  것입니까? 줄 자가 따로 있다 말이오. 줘야 할 사람들이 따로 있어.

 저도 두 번 준 일이 있습니다. 그거 내가 안 줬으면 내가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합니다. 제일 처음에 안 믿을 때에 믿으면서 있는 것 전 부 다 줘 버렸고,  그때 상당히 재산이 많았습니다. 부자라고, 시골서는 부자라고 할 만한 재산인데  다 줘 버렸소. 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저에게 있는 것, 안 믿는 사람들이 뭐  그때 부자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아 이 사람아 자네는 소 코 꾼더기만 빼도  추럭으로 세 추럭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느냐?' 그만큼 소문이 날 만큼  육축도 많았습니다. 이랬는데 그것을 다 팔아서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교역자로 유급의 교역자로 나섰습니다.

 그러면 다 팔아 없애라 말이 아니고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그 말이오.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이걸 제해야 되고, 저 사람에게는 저게  막아 놓고 있기 때문에 제해야 되는 것인데, 자기와 주님과 그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그것이 누가복음 l5장에 양 잃은 비유, 또 드라크마 잃은 비유를 해석을  암만 해도 일반적 해석이, 인본의 해석이 그걸 주장을 하고 모두 주석들도 다  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 해석을 암만 해도, 인본의 해석이라야 사람들이  듣지 고 해석을 정말 바른 해석을 하는 것은 듣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의인 아흔 아홉 사람은 제쳐 두고 그 죄인 하나를, 잃어버린 한 양을,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집어 던져 두고 예수 안 믿는 사람 예수 믿게  하는데 주력한다 말입니까? 그거 아니오. 고 한 양, 한 죄 거기에 주님의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노력도 소원도 막 기 울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그거 해결되니까 주님이 기뻐했어요. 모든 것도 기뻐했어요.

 고 죄가 무슨 죄이냐? 고 죄가 믿는 사람이나 택한 사람이나 자기의 현실에서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고것을 안 틔우면 주님과 멀어져 있고  잃어버린 양이 되어 있고 주님과 하나될 수 없는 고 죄악 그것이라는 그것을  얼마든지 역설했습니다. 역설했지마는 그게 지금도 성경 보면 그리 삐뚤어져  나갔지 이리 나가지를 아니합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해라. 사랑하는 자에게는 몇 번이든지 징계한다.' 그러면  그거 버려뒀다 말입니까? 고것을,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단일  죄악이라.

 그 청년이 하나님의 계명 다 지켰지마는 주님과 자기와 멀어져 있고, 자기는  주님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악화만 끼쳤지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 고 있는, 자기에게 사망을  주고 있는 그 무서운 죄악이라 하는 것은 엉뚱하게 따로 있는데 자기는 그것을  모르고 자꾸 벌써 자기 자랑하려고 자기는 흠 없는 사람으로 선한 사람으로  이렇게 지금 자인하고 '뭐 또 부족한 것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만큼 그리 된  자기에게 그 게 있다 그 말이오. 우리 각자에게 그게 있다 말이오. 그 죄악, 그  죄악을 가리켜서 잃어버런 한 양입니다. 그 사람은 고것 때문에 지금 주님과  결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뭐 전 이스라엘에서 제일, 선출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보기에  사울과 같은 의인이 없다. 사울과 같은 의인이 없으니까 사울을 택해서 왕을  세워라' 했으니까 제일 의인이 아닙니까? 의인이지마는 그 사람과 하나님과 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그것을 자기가 발견하지 못해서 그 점을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결과적으로는 왕위를 가진 그것이 가진 것만큼 자기는  불행스러워졌고 자기는 망쳐졌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큰 손해를 봤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청년이 이와 같이 된 것.

 라오디게아 교회에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 그러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씀은 너는 나와 함께 해서 네게 맡은 바의 사명  책임 다 완수할 수 있다 그말이오. 거기에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양식이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네가 요 문만 열면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 할 것이고, 또 나는 네가 요 문만 열면 너로 통해서  네게 대한 내 뜻을 완성할 수 있다.' 그 완성 아닙니까? 그 문을 두드리라, 문  열라는 그 문이 뭐이냐? 내게 대해서는 그 문이 뭐이냐?  바울에 대해서는 그 문을 마지막에야 발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l2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세 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도하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기도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탄의 가시를  네게 줬다' 그 말은 사탄의 침노, 사탄이 와 가지고 뭐 사도 바울 어쩌든지 그만  인격을까 뭉개고 그만 권위를 떨어트리고 수치를 당해서 머리를 들래야 들 수가  없고 큰 소리 해야 큰 소리 할 수 없는, 바짝 낮추어서 깨져 가지고 그렇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만들기 때문에 자기가 그것이 안 됐고 괴로워서 기도했더라  그말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자기가 남아 있어서 자기 깨지기 싫은 것인데,  자기가 있는 것만큼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는데,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걸  오히려 자랑하고 '있기를 원한다.' 왜? 그것은 주님의 그 능력의 은혜가 내게  머물고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있기를 원한다 말했습니다.

 바울이 그러면 그 죄악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게 당장에 해결되느냐?  해결되는 휘장도 있습니다. 발견하면 당장에 해결되어서 딱 해 결해 버리면 그  다음에 그게 없어지고 이제 하나님과 결합되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그것은 초기요.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또 장벽이 있고 또 장벽이 있고  마지막에 자기에게 그 장벽을 만났는데, 그 장벽이 무너지지 않으니 항상 그  장벽을 두고 평생 죽는 날까지 애쓰는 그 장벽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신앙으로 최고의 사람입니다. 최고의 사람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어린 신앙이든지 무엇이든지 자기대로 자기 수준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주님의 은총이 거기에 역사하지 못 하게 하고, 또 주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렇게 주님과 모든 면에 가로 막고 있는  그게 있나 그말이오. 가로막고 있는 것. 그러니까 그걸 찾기 전에는 다 헛점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거 찾기 전에는, 일학년도 그거 찾기 전에는 안 되고  이학년도 그거 찾기 전에는 안 되고 고걸 찾아서 고걸 고칠 때에 주님과 결합이  됩니다.

 그러면 결합됐으면 그게 다 됩니까? 주님과 결합된 것도 비유컨대 백분지 일  결합된 사람도 있고 백분지 구십구가 결합된 사람도 있고 결합이  천층만층입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주님과 자기의 떨어져 가지고 있는 그것은 맞은 그게  있으니까 그게 틔워져야 결합되지 그게 틔워지지 아니하면 결합 안 됩니다. 암만  자기가 애를 쓰고 해도 자기에게 하나님의 자기대로 하나님의 영감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에게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고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러면 자기 정도에서는, 내가,  일학년은 일학년 성적으로서 잘하면 됐지 뭐 일학년이 무슨 대학생 되겠습니까?  일학년으로서는 일학년으로서 그 사람이 우등이라 이학년이 이학년으로서  우등이라 각각 다르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도 자기 수준이 있다 그 말이오. 자기 수준이  있는데, 각각 자기 수준에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그것이 있는데  가로막고 있는 고것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거 발견하는 것이 문제요.

 삼십팔년된 그 병자는 그거 하나 고치니까 당장 해결이 됐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거 하나 고치면 해결되는 고게 우리에게 있는데 그걸 발견을 못 한다  말이오.

 그걸 발견 못하고 이 부자 청년이 '내게 또 뭐 부족한 것 있습니까?' 오히려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때 주님이 그 사람에게, '왜  선한 일을 어떻게 나한테 묻느냐? 네가 부족함이 없는 선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선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선하신 분은 한분이시니라. 자꾸 반성할 수 있도록  말해 주셨다 그 말이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렇게 내가 어릴 때부터 이 모든 계명은, 다 지켜  나왔습니다. 이랬지마는 자기와 주님 사이에 가로막고 있고 또 앞으로 가로막을  것, 현재 가로막고 있는 것, 이것을 자기는 발견을 못했다 그 말이오.

 발견을 못해서 다른 것 가지고 날뛰니까 헛점을 누렸어. 그래서 그 점을  발견하려고 주님이 살살 인도하셔 가지고 마지막에 딱 거기 대해서 모든 것 다  준비 다 하고 구비 다 해놓고 거기다 고걸 고치려고 딱 침을 놓으려 하니까  도망쳐 버렸다 그 말이오. 침을 놓으려 하니까 그만 도망쳐 버렸어. 그거 고쳐  주려 하니까 그만 도망쳐 버렸소. 이제 그러면, '내가 그래 하겠습니다.' 했으면  되는데 그만 고침 받지 안하려고 도망을 쳤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자기의 수준에  자기에게 현재 찾아오시고 자기와 관련되고 자기로서는 주님을 그 정도 만나면,  가까이 하면 그 면을 만나면 되겠다는 그 주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 각자들에게 있으니 그거 방해하는 것 고치면 가까와지고 가까와지고 나면  그 다음에 또 있을 것이오.

 만일 그게 자기에게 마지막 최종적이라고 하면 바울과 같이 자기는 평생 고칠  수 없는 것이니 그 병의 고통으로써 그 댓가를 내는 것이 그것이 자기라고 하는  것을 자기가 느꼈습니다. 자기가 그만큼 약하 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삭되지 못해서 난 아이와 같다고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연약성을 발견한 것이오.

 지난 밤에도 제가 재독하는 걸 들어 봤는데, 주일을 하나 지키는 고것도  지켜보면 제가 얼마나 약하다는 것도, 얼마나 미혹을 잘 받는다 하는 것도,  얼마나 환경의 원수가 많다는 것도 자기가 발견을 하지마는 그걸 못 하기  때문에, 지켜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연약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알 수 있소. '아 나는 이것이다. 평생 나는 이것이 나에게  가로막히는 것이다' 하는 것은 어느 순서를 지낸 것이냐?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양심에 자책되는 것이,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사람에게 이제 그 발견한 그것은 평생 그 사람이 그것 가지고 씨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무엇인가 그 평생 죽는 날까지 그 병으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고통하는 그 고통이 없으면 자기가 자고해 가지고 절단날 그런 바울 같은  최종적인 그런 것을 발견한 그런 정도에 이른 사람은 압니다. '나는 이것이라  이것이라. 이거 외에 없느냐?'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는 사람이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에게 고치고 고쳐야 될 그런 것이 있으면서 고치지 않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이 청년에게 주님이 '네가 이것을 지키라' 하니까  근심하고 가버렸습니다. 그것을 지금 다른 사람이 말해 줘도 그거 싫어합니다.

 내가 어떤 장로님이 한번 가 가지고 말하기를 '장로님, 장로님은 주님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참 장로님이 도덕에  대해서도 흠이 없고 남한테 언행심사에 실 수하는 일 없고 철두철미한 어른인데  하나님과 가로막고 있는 그게 무엇인가 압니까?' 이러니까 웃으면서 '그  무엇입니까?' '제가 말해 주면 고치렵니까?' '아 고쳐야 안 되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말 하니까 말하기를 '참, 나는 그것은 죽음보다 더 힘드요.

죽었으면 죽었지 거기 걸리는 것은 내가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자백했습니다. 그게 바로 그것이오. 그게 자기의, 장로님에게는 그게 뭐이냐?  그분은 자존심이라. 자존심.

 자기는 자존심 때문에 주님 높이지 못 한다. 주님 높일 때에는 반드시 자기  자존이냐 주님이냐, 자기가 탁 깨치고 똥이 돼 버리고 딱 깨져 버리고 이래야  주님이 높아질 수 있는데, 그럴 때 되면 '내가 주를 위해서 낮아질 수는 없다  하는 그것 때문에 안 됩니다. 그걸 고쳐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분이 그 고백을  합디다. '나는 참 죽음보다 그게 어렵습니다. 죽는 일을 할지라도 내가 자존심  이걸 꺾고는 내가 견디지를 못합니다.' 하는 고 말을 자복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때 한 번 만나고 난 다음부터 그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각자에게 이게 있으니까 주님과 나 사이에 많은 죄가 있지마는  많은 죄가 다 가로막는 게 아니라 죽는 데 이르는 죄도 있고, 이제 그냥  거리껴서 지저분하게 거리끼는 죄도 있는데,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고 수준에서 가로막고 있는 고 죄가 회개가 되면 그. 수준에 있는 죄악은 다른  죄악은 제대로 마구 빠져 버립니다. 고 뿌리가 뽑혔으니까, 뿌리가 뽑히니까  다른 것은 절로 말라 버려.

 아무리 위에 줄기가 뭐 있다 하더라도 뿌리가 끊어져 버렸는데 그 나무가  삽니까? 죽어 버리지. 이러니까 고것만 끊어 버리면 다른 것이 해결된다. 그러면  그 수준에서는 완전히 해결돼 버려. 또 그 다음 한층 올라가면 고 수준에 가  가지고 주님과 자기와 가로막고 있는 그 거 있으니까 고것만 발견해서 고것만  끊어 버리면 된다 그말이오.

 내가 그 말을 했는데 내가 본인에게 말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말 안 했는지 몰라도 둘러서 내가 말한 적 있습니다. 양성원에서  O목사님이 강의할 때에 그때 내가 가 가지고 말한 말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깨달았는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직접 말하기가 안 됐기 때문에,  말하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깨달을 만큼 주위 환경을 들어서 이렇게  말을 하고 내가 그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었는지.

 내가 거기 대해서 '앞으로 너희들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래 가지고  그것으로써 시험에 들리라' 하는 말을 하면서 O조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O조사가  다른 것 아니고 한학자인데, 그분이 차차 차차 바꾸어져 가지고 나중에,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힘을 주는 그 힘은 진리가 주는 힘이요 영감이 주는 힘인데 그  힘은 버려 두고 이제 한문 한학이 자기에게 주는 그 힘만 자꾸 늘어 가지고  마지막에는 가만히 보니까 설교할 때에 한문으로 한 문자를 쓰고 난 다음에는  주먹을 때리고, 문자를 쓰니까 주먹 때리는 것이 뭐이냐 하면 '내가 이런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런 한학을 가지고 있는데 너희들이 이걸 아느냐' 하는 한학  자랑이요, 유교 자랑이오, 유교 자랑이지 주님 자랑이 아니고 그거는 복음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래 내가 보니까 그 입에서 머리카락이 자꾸 버글 버글 나오기 때문에 그  뭐인고 싶어서 본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뒤에 가 보니까, 설교 들어 보니까 그런  것 같애. 그런 것을 지금 노리고 있는 자가 있다 그 말을 했다 말이오. 그 말  본인이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어. 제가 그 다음부터는 그런 걸 써 먹소. '내가  이래야 좀 유식한 사람이 될 건데 무슨 유식한 소리를 해 가지고 내가 좀 '아,  그 사람 유식 하다 하면 그게 다 자기 자랑이지 주님 자랑이 아니다. 그 말이오.

그런 무서운 그것을 있지마는 그걸 본인들이 모른다 그것요.

 이러니까 어쨌든 자기 수준에서, 이 수준에 있는 사람이 이 수준에 있는 사람  이 수준에 있는 사람 자꾸 올라갑니다. 이 수준에서는 자기와 주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악은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걸 알아야 돼. 요거 잃어버린  양이오. 요거 잃어버린 양인데 요걸 회개하면 주님은 한 양을 찾았습니다.

 이러니까 요거 하나 요것을 발견해서 요것만 싹 빼 버리면 고 수준에 잇는  죄악은 저절로 다 소멸돼 버려. 그게 들어서 뿌리가 돼 가지고 그렇지 그것만  없으면 다른 죄는 다 소멸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있는 이것 마지막에  최고라고 하면 최고 이것은 죽는 날까지 힘을 써도 모자라고 고쳐도 또 모자라고  힘써도 모자라고 하는 그걸 자기 가 알 것이라 그말이오. 거기에다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도 그게 안 되는 것을 그걸 알게 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제 사탄의 찌르는 가시 그것을, 자기가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찌르는 가시가 와야 될 병이 하나 들어 있는데 그 병이  완치가 안 되니까 완치 안 되는 데에는 사탄의 가시가 있어도 있어야 주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지, 사탄의 가시가 없으면 주님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사탄의 가시가 좋은 게 아니라 자기에게 병 그것이 발병되고 주님과 원수되게  하는 그것보다는 사탄의 가시가 있으면서 그 병이 발병되지 못하도록 자꾸 주사  놓은 것이 이게 낫다 그 말이오. 주사 놓는 그게 아픈 게 좋은 게 아니지 마는  그 병이 발병돼 가지고 죽는 것보다 낫다 그 말이오.

 바울이 떠나기를 원치 않고 있기를 원하는 그게 그것입니다. 왜? 그런 것을  자기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위안제을 마시 고 있을 것이 아니고  다 압니다.

 이번에 센트루이스에 지금 갈 사람이 없어서 이거 지금 여기에 저 기에 자꾸  구하고 있는데, 모두 지금 OOO 목사님이 저기 왔는데 이번에 장립을 했는데,  왔는데 내가 나중에 한 번 만나 보려고 합니다.

 또 우리 진영에 아주 유력한 실력가 있습니다. 모든 면이 유력한 실력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OOO 목사님입니다. OOO 목사님 인데 O O O 목사님을  다른 사람이 다 그래 쌓는데 나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요번에도 다른 사람들이  추천했소. 모두 다 총공회에서 추천했소. 실력 있습니다.

 그분 밖에는 갈 사람 없다 하는데 내가 추천하지 아니한 그 이유가 뭐이냐?  하면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게 있다 그 말이오. 그게 있는데  그것을 발견해 그놈을 평생 원수로 삼아 가지고 싸우지 아니하면 거기 가 봤자  이년 동안 있으면서 교회의 그 교세는 가라앉고 맙니다. 믿음들은 떨어지고  맙니다. 어디 가도 그것 고치기 전에는 O목사님이 목회하는 아무데 가도 그  교회에 절대로 부홍은 안 됩니다. 얼마나 모든 게 좋습니까? 아주 부자 청년  같소. 모든 것을 구비해 놨소. '뭐 부족함이 있습니까?' 할 만큼 당당한데 그게  있는데 고것을 뽑기 어렵다 그말입니다. 여러분들 다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 수준에 주님과 자기와의 이렇게 화친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고거 있으니까 고놈 뽑지 아니하면 죽는 날까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 짓다가  맙니다. 고걸 뽑아야 주님과 자기와 결합이 돼 버려요.

 주님과 자기와 결합이 되고, 결합이 되면 그 수준의 것은 무슨 죄악이 있든지  그것은 다 해결돼 버립니다. 왜? 그것은 범해지지 않습니다. 범해지지 않아.

주님 만나면 그 수준에는 가면 그 죄는 범해지지 않아. 그러니까 고걸 회개해야  되지 그것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나머지기 가지고 이래 쌓는 그것은 다  헛말입니다.

 참 믿는 사람이 기도할 때에 이렇게, 물론 이래 기도하다가 기가 차서 뭐  고함도 지르고 이래 하지마는 실은 모든 사람이 듣는테 말을 하면서 이래 떠들어  기도하고 있는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로써 실은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  기도하는 것 보니까 참 믿음 좋은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아주 훌륭한  기도를 한다' 할 수 있는 그런 자기 영광스러운 것이지 정말로 자기가 깨야 되고  회개해야 될 그것은 그렇게 나오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오늘 아침에 또 그러하고, 계속해서 대구 집회에 가기 전에  각각 자기에게 가로막고 있는 그 성전 휘장이 무엇인지 그것 고치기 전에는  헛일입니다. 뭐 목사들도 다 그거 다 고쳐야 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거 고치지  아니하면 안 될, 고친 목사가 한 사람도 없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여북하면 총공회에서 한 일을 말하기를 '총공회에서 한 일이 666이다. 666의 일  하고 있다.' 그걸 모르면 절단입니다.

 이러니까, 겸손히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애를 씁시다. 발견하고, 발견하면  바로 거기가 주님이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이 총 소원을 거기에  기울이고 있는 것이요, 주님이 또 총 근심이 거기에 돼 가지고 있는 것이요, 그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이 모든 것보다 기 뻐하시는 기쁨이 될 수 있는 그게  중점입니다. 고 중점.

 이러니까 주님이 총력을 기울여서 자기를 고쳐 주려고 애쓰는 점이니까, 자기  힘으로는 고치지 못하지마는 주님이 고쳐 주려고 총력을 기울여서 애를 쓰시니  그것을 깨닫고, 자기도 요것을 고쳐야 되겠다 하는 것을 깨닫고, 주님이 고쳐  주시기를 바래서 고쳐 주시기를 받는, 고쳐 주신, 공으로 고쳐 주시는 그것을  자기가 공으로 받지마는 받는 데에 자기의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받게 된다 그  말이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을 가 전해라 하는 그 말을 받을 때에 사십  주야를 굶어서 물도 음식도 먹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사십 주야를 굶으니까 그게  쉽겠습니까? 힘이 든다 말이오. 모세는 그렇게 힘이 들어도 모세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찍해야 그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 받은 것뿐이라. 전하는 것뿐이라.

은혜로 받지 않았습니까? 뭐 댓가를 주고 그 계명을 받았습니까? 아니오.

 이런고로, 우리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라 하는 그것을 똑똑히 깨닫 고 굳게  잡지 아니하면 그 복음이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복음이 지나가고 만다  그거요.

 내가 어제 말 들었는데, 다른 교회에서 우리 서부 교회에 시찰하러 와 가지고  많은 사람, 큰 교회에서 여기 와서 갔는데, 큰 교회가 왔다 가 가지고 어떤 한  교회는 가서 보고를, 회의를 모아 놓고 보고를 하는데 그 좀 이상한 것 하나  있기는 있더라. 그 반사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을  내 가지고 빵 하나도 대접 안하고 아무것도 그게 없는데 그렇게 열심을 내서  하는지 참 그것은 아무래도 모르겠고 신기하고 놀랠 만한 그런 게 있더라.

그런데 그 일이 뭐인지 모르겠더라. 설교는 들으니까, 설교 듣고는 그 설교  듣고는 그리 열심이 날 리가 없는데 그 참 모르겠더라' 그분들이 와 가지고 내가  있을 때에 설교를 한 마디도 못 알아 듣는 것을 내가 봤다 말이오.

 내가 설교할 때에 한 마디를 못 알아 들어. 이제까지 땅의 복음 가지고 자꾸  이랬으니까 땅의 복음 가지고 기뻐하고, '부자된다 뭐 된다' 땅의 복음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땅의 것을 심어 가지고 하늘의 복음을,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그것을 말하니까 그들에게는   '저거 무슨 지금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가 그것 보면 힘이, 자기네 들이 힘이  줄어지지 일어날 리가 없다 그 말이오. 못 알아 들으면 소용없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듣고 깨달은 자는 복이 있다 했습니다.

 지금 암만 이 한 마리 양, 한 드라크마가 거기에 총 소원도, 노력도, 근심도,  걱정도, 이제 기쁨도 그거 하나 해결되어야 기쁨이 되어지는, 이렇게 전부를  기울이기 때문에 이것을 느끼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고것을 자기가 알고, 주님이  이렇게 하시니 자기도 자기에게 거기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주님 근심이  거게 총 집중된 것 처럼 자기 중심이 총 집중되고, 주님의 소원이 저기에 총  집중된것 처럼 자기 소원이 거게 총 집중이 되어지고, 주님의 노력이 거기 총  집중된 것처럼 자기도 총 노력이 거기 한 점 거기에 집중이 되어져서 고게 하나  되기를 원하다가 고거 하나가 되면 주님도 만족한 기쁨이 되고 자기도 만족한  기쁨이 될 수 있는 고 점을 발견하고 은혜로 주시는 고것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준비하는 그것이 돼야 됩니다.

 그게 신앙이오. 그게 신앙인데, 그것 없이 하는 것은 공연히 헛된 소리를 하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일이지 생명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준비를 하고, 안 되면 발견해 가지고 여기서 고침 못 받으면  집회 가서 고침 받아도 그것을 고침을 받아야 되지 그거 고침 안 받으면  헛일입니다. 각각 그거 있습니다. 그게 들어서 다 폐단이오 그게 들어서  목회하다가 나중에 늙으니까, 늙으니까 다 권위가 떨어지고 그만 모든 게 그리  되는 그게 뭐이냐? 육체의 힘이 쇠해지지 심령이 쇠해집니까?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영감은 자꾸 더해지고 무거운 짐이오. 무거운 짐은  지면 갈수록 자꾸 무거워지지 그 짐이 가벼워집니까? 자기에게 부담이 더  강해진다 그말이오.

 이게 신앙인데 나중에 그게 없으니까, 사도 요한 같은 이는 전설에 들으면,  그저 메어다가 강단에 갖다 놓으니까 겨우 말 한 마디 했는 데 큰 은혜 받았다  하니까 그 사람은 영으로 일했다 그말이요. 나는 영만으로 일하는 그 일이  빈약하기 때문에 육체의 힘이 약할 때에는 설교하는 것이 좀 힘이 약한  모양이라. 모르기는 모르겠어요. 내가 병들어서 간신히 와 가지고 간신히 말할  때에 그때에 모두 은혜는 받는 것 같아요. 영은 절대로 늙는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갈수록 자꾸 쇠퇴해집니다. 자꾸 쇠퇴해져  육체는 쇠해질 것 아닙니까? 지식도 육체의 지식이 있고 성령의 지식이 있고,  힘도 둘이 있고, 소원도 둘이 있고, 권위도 둘 있고, 기쁨도 둘 있고, 이 둘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느 것이냐 이것을 오늘에 고쳐 가질 수 있을 때 고쳐야  되지 그거 가지지 아니하고 육체가 되면 세상 사람이 다 좋아합니다.

 아무리 뭐 칼측이 크고 재산 많고 권위 있다고 해도 칼측보다 세상이 더  큽니다. 칼측보다 지성도 지식도 재산도 권위도 활동도 세상이 더 커요. 또  칼측, 칼측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떤 교파라면 그 교파보다 더 칼측이 더  커요. 또 그 교파보다 그가 더 커요. 세상 것으로 큰 것을 큰 것으로 보여지지  하나님으로 부요해지고 부흥해지는 것을 큰 걸로 보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정평 정가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이번에 고쳐야 될 그 점 발견해 고칩시다. 그 점 안 고쳐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아주 권위있고 모든 사람에게 인기 집중됩니다. 그래도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집은 크지마는 나중에 가서 다 타 버리고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자꾸. 주님이 내게 오면 달라져. 오면 달라지고 모든 것이  나로서는 다 더 만족 없으면 다 해결돼 버려. 주님이 내게 오면 나로서는 더  불만이나 불평 없이 있는 해결이 되는데 이제 주님이 안 오시면 그 일이 안 된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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