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제목-롯의 죄,십계명


선지자선교회 1983년  4월 7일 목새.

 

본문 : 요일 5:8-21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성령님은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이 대속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역사를 하실 때에 그 하나님을 성령이라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은 무엇이나 층하가 있는 것 아닙니다. 성부의  하시는 일이 따로 있고, 성자의 하시는 일이 따로 있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각각  따로 있어서 그 위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역사를 하실 때에는 성부라, 성자라,  성령이라 이렇게 우리에게 그 이름을 위를 따라서 나타내 주신 것뿐입니다. 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부르면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 위가 각각 다르나 주님 한 분을 상대하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상대한 것이 된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라' 그러면 증거한다 말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 주는  이가 셋이라 그말입니다. 알려 준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은  진리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로 나타내실 때에 그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들어 깨달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총을 우리가 본 셈이 됩니다. 본 것입니다. 깨닫고  자기가 내어 주지 않고 깨달은 바를 어떤 현실을 만나도 내어 주지 않고 가지고  보존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실상을 자기가 받아 가진 자가  됩니다.

 받아 가진 자가 된다는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우리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말씀을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도 우리가 우리의 육체의 소욕의 그 법칙대로  보배로운 것을 가지는 것, '내가 집을 하나 가졌다, 돈을 가졌다, 어떤 지위와 권세를  가졌다.' 하는 것 모양으로 내가 소유권자가 되고 하나님 모든 은혜가 내 소유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표시한 것은 우리의 인간을 따라서 알기 쉽게  표시한 것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에게 속할 수 없고 작은 자의 것이 될 수 없고 작은 것이 큰  자에게 속하고 큰 자의 것이 되는 것처럼 '성령을 받아라' 그말은 네가 성령의 것이  돼라 그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증거를 받아 이 증거를 깨달아 간직할 때에 하나님의 온갖  은혜에 속한 것이 되고 은혜의 것이 돼 버립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에게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이 자유를 권세를 재앗기고 하나님의 은혜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것이 되면 내 자유권 준 그 자유권이 내나 사망의  권세입니다. 그것이 죄의 권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자유 없고 그분의 것이 되어  그분에게만 주권이 있어 나는 그 주권에 속해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적의 것이 되면  이것은 사망의 요소가 하나도 없고 완전히 생명 요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은 그만 두고.

 그래서 이 성령의 은사와 '물이라' 하는 이 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뜻 곧 진리를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성령과 진리, 피는 예수님의  대속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성령은 우리에게 어떤 일 하시며, 진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며, 피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는가? 이 셋이 우리에게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그 은혜를 잠시도 끊쳐짐이 없이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든 시간은 이 은혜를 주시는 시간이요 받는 시간이요,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이 은혜를 주시는 장소요 받는 장소요, 우리가 만난 그 어떤 각종의  종류의 것,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질병이나 평안이나 무엇이든지 그 종류는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시는 데에 이용되는 이용물이요 또 은혜를  받는 데에 이용되는 이용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간을 한 시간 두 시간, 또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은 그 다음  시간이 오고 또 그 시간 지나고 나면 그 다음 시간이 오고 바꾸어 지나가는 이  시간, 또 바꾸어 지나가는 그 장소, 또 바꾸어 지나가는 그 모든 종별 그것을 우리가  그것만 보고 '이 장소는 좋다. 이 종류는 좋다. 이 시간은 좋다.' 그것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다 악령의 유혹을 받은 그 어두운 깨달음이요 생각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 세 가지 은혜를 성령의 은혜, 물의 은혜, 피의 은혜를  주시는 장소요 시간이요 종별입니다. 그것만 보고 좋다 나쁘다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외식하는 평가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좋고 나쁘고  행복스럽고 불행스러운 그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에게 닥쳐지는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의 소용을, 그 현실을 어떻게 내가  써야 할 것인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의 그 목적 그런 것을 다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종종 '너희들이 떡을 먹은 연고요  표적을 본 연고가 아니라' 그렇게들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일이 껍데기 현실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는데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고 움직인다 하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바로 깨달으면 우리에게 닥쳐지는 현실이라는 현실은 시간 장소  종별 그 세 가지를 합해서 자기의 현실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그 현실은 실은  하나님이 이 세 가지를 주시기 위한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세 가지를  자기가 얻는 데에는 이용 가치가 꼭 같은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꼭 같은 이용 가치가 있고, 꼭 같은 성과를 이룰 수가 있고,  꼭 같이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세상적으로 평가해서 어떤 현실  당하면 기뻐 즐거워하고 어떤 현실에서는 슬퍼하고 하는 그것은 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이 아니고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신의 생각은 전부 사망이라 그렇게 정평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현실이라는 현실을 만날 때에 현실은 세 가지가 합해서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요것은 기억하고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현실은 요 세 가지를  합한 것이 현실이라, 시간과 장소와 그 종별.

 사람, 어떤 현실에는 사람이 거게 종류 중에 하나 들었고, 어떨 때는 사건이  들었고, 어떨 때는 죽음이 들었고, 어떨 때는 마귀가 들었고, 마귀가 없는 게  없지마는, 들었고, 병이 들었고, 또 승리가 들었고, 실패가 들었고, 들었는데 그게  합해서 현실인데 우리는 현실 그것만 보고 세상 육신대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육신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세상 지식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감 도리대로 이 계시 도리대로 판단하고 평가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현실이라는 현실에는 세 가지를 하나님이 주신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다'  그말은 셋을 주신다 그말입니다. 선지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사나 현재사나  미래사에 대해서 하나님이 뜻하고 계시는 그것을 모를 때에 모르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선지 역사입니다. 미래사를 알려 주는 것만이 아니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 알려 주시는 그것을 말로 - 저 뒤에  들립니까? 저 뒤에? 좀 귀가 어두운 분이 거기 섰다가 나가기 때문에 안 들려  나가는가? - 증거라 그말은 알려 준다 하는 것인데 알려 준다 하는 이는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곧 하나님의 뜻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  그것이 막바로 권능도 되고 생명도 되고 온갖 보배도 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실 때에 '아나, 너는 돈 받아라.' 하며 돈  주시지 않습니다. '너는 권세 받아라' 하며 권세 주시지 않습니다. 돈을 줄 때도 말씀  주시고, 권세를 줄 때도 말씀 주시고, 생명 주실 때도 말씀 주시고, 주셔 가지고 그  말씀을 받아 가져보니 말씀이 돈이 됐습니다. 말씀이 권세가 됐습니다. 말씀이  생명이 됐습니다. 말씀이 성공이 됐습니다. 말씀이 피난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딴걸로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증거한다' 그말은 하나님이 주신다 그런 뜻이오. 그러면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고, 진리가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의 피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렇게 이 셋을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 그것을 몇 시간 말했는데 우리에게 이 피가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몇 가지를 하신다고 했지요? 어데서 해방시켰다 했어,  해방이? 하나님의? 녜, 하나님의 심판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을 이룬 그로 인함입니다. 또 하나는? 마귀에게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왕권 왕노릇을 못합니다. 또?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또?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이러니까 사망도 우리에게 왕노릇 못하고, 죄도 왕노릇  못하고, 마귀도 왕노릇 못하고, 하나님의 대심판도 우리에게 권세를 가지지  못합니다. 다만 악령과 죄와 사망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패잔병처럼 유혹은 줄 수  있고 우리를 침노는 하지마는 절대성이라는 그런 권세를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생명에 속한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거듭나게 한다 말은 다시 살아나게 하고  모든 산 소망을 가지게 했다. 영원 무궁토록 영생하는 영생에 속한,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은 영원한 모든 것, 변치 않는 모든 것, 완전한 모든 것을  우리가 받아 가지도록 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지난 저 지난 주일인가 부활에 대해서 증거했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십자가에 죽으심까지가 한 토막이고 또 부활로부터 영원 무궁까지가 한 토막으로서  주님의 사활로써 우리의 구속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예수님의 피를 언제든지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고 이 피를 자본으로 삼아야 됩니다. '네 가지 해방 받았다' 하는 걸  자본으로 삼고 그 다음에 이 영감 도리에 내가 순종을 하면 모든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성령과 물과 피의 이 증거 셋이 주는 것을 우리가 받으면 곧 죽은 것이  살아나는 이 은혜를 입게 되고, 또 살아난 것이 지극히 큰 영원한 능력으로  성장하는 이 성장을 받게 되고, 또 지극히 큰 능력에 보호를 입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현실에서 받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내가 들으니까 믿음의 그 보배성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인고 하니 자기 현실에 이 세 가지 증거를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세 가지 증거를 배반하는 것이 믿음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증거는  받을 때는 증거지마는 받아보면 부활이요 생명이요 능력이요 평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이런 형편에서는 이런 각도를 말씀하고  저런 각도를 말씀했으나 실은 성경은 꼭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전체가 이리 가도 저리 가도 들어가면 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면 그 깨달음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래 증거하는 것과 저래 증거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각각 다른 것은 그거는 거짓부리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요 현실에서 성령과 물 피, 피를 믿고 부활의 공로, 예수님의 피를  말한 것은 죽으시고 살으신 그 사활을 다 합해서 말 합니다. 예수라고 말할 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살으신 그 은혜를 다 가지신 분을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예수님의 사활과 또 성령의 감동의 이 진리 이 셋이 어느 시간이나, 어느  장소나, 어떤 사건에서나 우리에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연결시키고 있을 때에 그  연결을 영접하는 것이 믿음이요 그 연결을 무시하게 하는 그것이 다 믿음을 떠난  패역이요 거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그 현실에서든지 우리가 가질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질  것 중에 제일 보배로운 보배가 뭐입니까? 우리 현실에서 가질 보배가 무엇입니까?  무엇이지요? 가질 보배가 뭐입니까? 가져야 할 제일 보배? 뭐라고? 똑똑히 말해  봐요. 믿음입니다. 녜, 믿음이 보배요. 혹 어떤 사람은 믿음 아니고 앞으로 믿음에게  소용되는 그런 간간접의 것을 자기가 취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 다 탈선이요 헛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믿음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돈을 취했다 할지라도, 믿음을  지키는 데 대한 무슨 전도를 기도를 했다 할지라도 실은 헛총 놨습니다. 총을  헛총을 놨기 때문에 자기 수입은 없습니다. 그저 믿는 게 제일 보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든지 자기 믿음이 소생되면 대단히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흐려지면 자기는 실패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벌이  하다가 믿음에 손해보기 쉽고, 어떤 사람은 공부하다가 믿음에 손해보기 쉽고, 어떤  사람은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사업 하다가 믿음에 손해보기 쉬운데 그것은 다 성령을  육체로 바꾸어 패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접할 때도 믿음에 유익을 못 보면 손해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접해서 믿음에 유익을 보지 못하고 믿음에 손해가 되면 '이 사람은 나에게는  유익되지 못한 원수되는 사람이로구나'하는 것을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 말씀은 집안 식구가 원수라 말이 아니고 집안  식구가 자기에게 원수노릇 하기 쉽다 그말입니다. 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믿음에  손해보기 쉽다 그말입니다. 믿음에 손해보게 하는 것은 원수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직업을 하든지, 또 어데 가서 머물든지  '여게서는 믿음이 유익이 되나 믿음이 손해가 되나?'그것을 생각해서 믿음에 손해가  되면 믿음에 유익된 장소로 찾아가야 됩니다.

 왜 어느 장소나 믿음에 유익을 볼 수가 있지 않는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연약할 때에는 자기의 정도에 맞춘 그 현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리 저리 인도하는 것은 현실도 인도해 주십니다. 인도하시는 그 현실을 가지 않고  엉뚱한 현실을 가게 되면 거게서도 믿음 지키면 좋지마는 자기 분수에 지나치고  자기 정도에 지나치기 때문에 감당을 못하고 믿음을 못 지켜서 유익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현실 만날 때에 요 증거를 받는 것이 무엇이 증거를 받는  것인가? 그 현실에 예수님의 죽으시고 살으신 대속의 공로, 죽으심도 대속이요  살으심도 대속입니다. 이 대속의 공로와,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었을 때에 성령과  물의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속의 공로를 벗으면 안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라고 늘, 너희들이  내 안에 있으면 안에라 말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안에서라야 이것 저것 뭣  되어지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사활의 공로를 벗어버리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권리가 없어. 어데까지 자랐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왕 자기와 관련이 없으면 성경도 자기와 관계 없고  성령도 관세 없고 자기는 악령의 것이 당장 됩니다.

 그런고로 이 공로를 언제나 잊어버리지 말고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살으신 이 사활의 대신 속하신 이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영접하고 믿고 입고  있으면서 그 현실에 영감과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영감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만 있고 영감 없을 때는 있어도 영감 있고 진리 없을 때는 없습니다. 영감은  크고 진리는 작기 때문에 진리는 영감에 속했기 때문에 영감을 자기가 함께 한다고  하면 진리는 으례히 함께 했고, 영감을 대접했다면. 진리도 대접했고 또 영감에  속하게 됐다면 진리에 속한 것은 필연히 됩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했다고 해서  진리를 영접한다고 해서 영감이 영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감은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하나의 이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치는 자기의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그 이치는 받을 수 있지마는 영감은 생존하신 인격 존재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가 아니면 상대가 안 됩니다. 자기가 아니면 상대가 안 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는 그말은  영감을 영접할 수 있는 그걸 말합니다. 진리야 마음 다 안 하고도 마음을 여게 열  군데 쏟아놓고도 그 진리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생명 안 내놓고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마는 영감은 안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진리대로 행한다고 다 되는 것 아니라. 언제 내가 그 신학교 이름은  말 안 하는데 그 신학교에 뭐 교수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그때 신문에 냈는데  어떤 사람이 영감 말한 그것을 훼방해서 이래 말하면서 '진리면 다지 영감 감  말한다'고. 그런 무식한 소리하고 있습니다. 영감이면 다지마는 진리면 다 아닙니다.

영감이 크고, 영감은 하나님이시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제든지 하나지마는  하나님이 뜻인 껍데기는 자기가 행할 수 있어도 영감은 자기의 인격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또 성령과 진리의 이  주시는 증거를 자기가 입으면 거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예수님의  공로는 모든 밑천이요 자본이오. 예수님의 공로는 모든 자본을 만들어 놨고 실지로  이 터 위에 건설은 영감, 그때 그때 영감, 인도하시는 영감 도리대로 행하면 이 터  위에 건설되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이 터 위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는  터요. 누구든지 이 터 위에 집을 짓되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과 같다. 이 터는 다른 터가 없으니까 이 터 외에 다른 터는 아무도  닦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다른 터를 닦을 수 없는 이 터가 있는데 이 터에 세울 때에 다  조심 있게 세워라' 했는데 피는 우리에게 터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전부입니다.

 그러면 이 터 위에 우리가 건설해야 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든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든지 짓는 것이 있는데 그러면 현실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우리에게  있는데 이 공로를 사활의 공로를 입은 사람이 신앙 생활 하는 그것이 자기  건설이요, 또 영원 건설이요, 그것이 모든 존재와의 관계 건설입니다. 그러면 이  건설을 하는 데에 잘못하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과 같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 터 위에 건설되는 것이 셋인데 하나는 부활입니다. 하나는 부활이오. 그때에  영접하면 증거를 받으면 부활합니다. 또 뭣 합니까? 지극히 큰 능력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안보를 받습니다. 그러면 부활과 능력과 안보를 받는데 안보를  받는 것은 주님의 공로를 믿는 믿음, 그때 그때 영감 진리로 증거할 때 그 영감  진리에 복종하는 믿음, 총 합해서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이 우리의 자본이  되는 우리의 기초가 되는 이 기초를 입는 것도 믿음으로 입고, 공로를 베풀었지만  부인하면 소용이 없어. 부인하면 역사할 수가 없어. 믿음으로 이 기초의 모든 자본을  자기가 힘입을 수 있고 이 기초를 자기가 가질 수 있고 이 기초 위에 건설도  믿음으로 건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어떤 것 가지고도 믿음을 벗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현실에서라도 믿음 볏기면 자기는 손해입니다.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이 없다' 더 큰 수입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가지고 더 큰 수입이 없는 큰 수입하는 것은 첫째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 둘째로는 살아난 것이라면 지극히 큰 능력으로 장성해집니다. 또 장성해진 것이  하나님의 절대 안보 영원한 안보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 부활한다, 부활한다는 것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만 살아나.

기독교만 살아나는 것이 있지 다른 데는 생명의 부활이 없어요, 다 심판의 부활이  있어도. '어떻게 살아나는가?' 예수님의 공로의 밑천 때문에 살아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때문에 살아날 권세가 있습니다.

 왜? 사망이 왕노릇 하지 못하고, 죄가 왕노릇 하지 못하고, 또 마귀가 왕노릇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대심판이 심판할 권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현실에서 살아난다 그말은, 죽은 것이 살아난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절대자와 연결이 된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살아나는 것은 절대자와 연결되는  그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 지극히 큰 능력을 받게 된다 하는 그말은 절대자이신 지극히 제일 크신  자존자이신 그분의 능력에 내가 연결된다 그말입니다. 또 그분의 안보를 받는다  그말은 영원 자존자이신 그분의 불변 완전 영존에 속하게 된다, 영존의 것이 된다,  완전의 것이 된다, 불변의 것이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 중에 공통성, 우리  인간과 공통성 있는 속성이 있고 공통성 없는 속성이 있는데 공통성이 없는 그  속성이 앞으로는 그 속성에 합해서 그 속성적으로 되어져 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뿐만 아니라 지난밤에도 말하는 데 보니까 무엇이든지 살아납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현실에서는 살아나야 되고, 능력 얻어야 되고, 안보 얻어야 되고,  이 세 가지만 얻게 되면 모든 것은 해결입니다.

 살아나는 것, 능력 얻는 것, 안보 받는 것, 사업도 그러하고, 명예도 그러하고,  지위도 그러하고, 쾌락도 그러하고, 영광도 그러하고, 뭐 자기의 재물도 그러하고, 또  취미도 그러하고, 사랑도 그러하고, 모두가 다 살아나야 됩니다.

어제 아침에는 말할 때에, 모든 것이 살아날 수 있다. 첫째 아담에게서는 우리가  모든 죽은 것을 받았습니다. 모든 죽은 것을 받았어. 모든 죽은 것을 받았는데 죽은  것을 다 무시하는 것 아닙니다. 죽은 것을 받았는데 이 죽은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전부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부 살아나는 것이오.

 또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은 아무 능력 아무 실력 없는 것이지마는 이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책임지고 보호할 것 없지마는 그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보호를 입게 된다 그겁니다.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잘난 죽은 남편이 좋아요 잘난 산 남편이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죽은 송장 남편을 좋아해요 살아서 싱싱한 남편을 좋아해요? 왜  대답 안 해? 남반에는? 죽은 처자를 좋아해요 산 처자를 좋아해요? 산 처자를  좋아하지. 세상은 죽은 처자를 보고 좋다고 이래 하는데 우리는 죽은 처자를 살려  가지고 산 처자와 같이 살게 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 사람 저것은 암만 해도  죽은 것을 보고 좋다고 이래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살려 가지고 산 것을 보고  좋다하고 살 수가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그 살리는 것은 어뎁니까? 그것은 믿음으로만 살리는데 진리와 영감을,  예수님의 구속의 자본을 입고 이 사활의 공로를 자기가 믿음으로 입고, 믿음으로  입고 영감과 진리를 내가 영접하면 그만 살아나고, 능력도 받고, 보호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렇츰 좋은 걸 안 하는가? 지난밤에도 많이 말하는 걸  내가 들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해롭게 보이기 때문에 안하고 그것이 고생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안하고 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망해야 되고 고생을 받아야 되고 하는 것이냐? 고생을 받아야 되는 건  아니고 망해야 되는 건 아니고 손해를 봐야 되는 건 아닙니다.

 아닌데 그것은 사고가 어데서 생겼느냐? 지식을 바꾸지 못하고 지식이 내나 마귀란  놈이 꾀우는 그 지식으로 바꾸어 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 그 마귀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보면 감사하고 기뻐하고 큰, 가치가 작은 것을 가치 더  있게 만드는 것이요, 천한 것을 귀하게 만드는 것이요,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요, 봉사나 혜택이 하나에게 가던 것이 둘 셋 크게 번져 나가는  것이니까 그것이 성공이요 기쁘고 즐거움인데 마귀 지식을 가지고서 보면 그렇게,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지식의 착란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실상 그런 것 아닌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하여' 그말은 왜 좁아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그것은 끝이 없는 넓은 길이오. 또 험한 게 아니라 평안 길이오. 이런데 인간 너희  지식으로 보면 좁고 험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너희 지식으로는 좁고 험하게  보여지거든,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정반대로 생각해라 좁게 보이는 것은,  세상적으로 좁게 보이는 건 어떻게 봐야 됩니까? 넓다. 험하게 보이는 것은  평탄하다. 그리 봐야 된다 말이오. 마귀란 놈은 전부 꺼꾸로 지식을 해 놨기 때문에.

꺼꾸로 지식.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 문화는 이십세기를 이와 같이 지금 고개를 넘어서 굉장한  것 같지마는 전부를 보면 배암에서 나온 지식입니다. 배암에서 나온 지식이기  때문에 요것이 반거짓 말이오. 반거짓말. 물질에 물리에 대해서는 옳은 말인데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는 순전히 거짓말이오.

 이러니까 요것을 거짓말은 거짓말로 사용하고 또 참말은 참말로 사용해서 다  사용의 가치는 다 있습니다. 독약도 독약의 사용의 가치가 있고, 또 아주 좋은  과일도 과일의 사용의 가치가 다 있는데 그걸 적당하게 사용하고 또 적소에  사용하면 다 필요하지마는 잘못 사용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 잘못 사용 안하고 바로 사용한다면 이 세상에 마귀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것  다 우리가 이용해서 영양 볼 것들이오. 약방에 가 보십시오. 약방에 가면 '요것은  당장 먹으면, 이것 벌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도장 내십시오.' 주민등록 보고 약을  줍니다. '왜 그랍니까?' '이걸 먹으면 대번 직사합니다.' '그러면 이것 먹으면  직사하는데 먹는 데 안 쓰면 뭐하는 데 씁니까?' '이것은 먹으면 직사하는데 쥐 잡는  데 필요합니다. 이것만 먹으면 직사하는데 요것은 종기 난 데 바르는 데  필요합니다.' 그 적소에 사용해야 되는 것인데 이 마귀란 놈이 내놓은 이것을 이것은  다 전체로 말하면 마귀의 지식 이것은 반거짓말의 지식인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잘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만 지키면 오만 것 다  필요한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그런고로 살아나는 것이 믿음이요, 또 지극히 큰 능력을 받는 것이 믿음이요,  보호를 입는 것이 믿음이라. 그러면 믿음만 가지면 다 되는가? 안 돼. 밑천이 있어야  돼. 밑천이 무엇인데?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나 위해서 죽어 주셔야 되고 나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어야 되는 이런 공로를 가진 자라야 되지 공로 가지지 아니한  사람은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만일 그래 할라 하면은 '이놈, 어대 옆뿔때기를 돌아보고 있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패 댑니다. '나도 믿을랍니다.' '안 돼, 너는. 내가 네 왕이야.

나는 네게 전권을 가졌어. 하나님이 내게 맡기셨어. 내가 네게 왕이라.' 택한 자가  믿음 지키려 하면 헙박을 하며 '이놈, 믿음 지키면 어짠다.' '네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내 왕이냐?' '왕은 아니다.' '왕 아니면 네가 내게 왜 자유해?  나는 너 싫어. 가라.' 꼼짝 못하고 쫓겨갑니다. 사망도 그러하요. 사망도 왕노릇 못  해. 죄도 우리에게 왕노릇. 못 해.

 그러기 때문에 '죄가 너희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사망이 왕노릇 하지 못한다.

마귀가 왕노릇 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하는 그말은 마귀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데 우리에게는 왕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활로  인해서 왕노릇을 못 해.

 이러니까 우리 현실이라는 현실에는 전부 살아나는 현실이요, 지극히 큰 능력을  받는 현실이요, 절대자이신 안보를 받는 현실인데 이 현실이 이렇게 좋은 것을 받는  현실이 믿음 지키는 것인데 믿음 지키면 이 좋은 것을 받는데 왜 믿음을 사람들이  지켜서 이 좋은 것을 받지 못 하느냐? '믿음을 지키면 망하고 죽고 절단나게 된다'  그렇게 자꾸 꾀어대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누가 꾀어? 세상 지식이 꾀고, 인간의 선입적 관념이 꾀고, 기존 지식이 꾀고,  과거에 자기의 경험 체험의 지식이 꾀고 그것이 꾀어 가지고 다 망하게 만든다  그거요.

 '풍랑 만났을 때' 언제 한번 설교하데요. 그러면 그때에 마귀의 지식, 인간의 지식,  선입적 관념, 체험, 경험 그것이 그 제자들에게 전부 손해만 줬지 유익 준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익 준 것 어데 있었어? 물 위로 걸어가는 데에도 그놈이 들어서 물에 빠지게  됐더라 그거요. 또 잘 가는 것도 그놈이 들어서 풍랑이 일어서 못 가게 했지, 또  구주가 오시는 데도 그놈이 들어서 귀신이라고 또 그렇게 줬지, 그놈은 전체가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그놈하고 원수가 돼야 됩니다. 마귀하고는  원수가 돼야 돼요. '주여, 내가 마귀가 시키는 것은 원수가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놈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원망도 이놈이 나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놈을 영접하지 않겠습니다.' 낙망, 의심 무엇이든지 마귀 그놈이 주는 것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손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지 유익되게 하는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그런고로 참 보배로운 믿음은 지난밤에도 많이 설명했는데 또 오늘 아침에도  덧붙여 설명을 했는데 요 믿음은 보배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주고 바꿀 것이 없어.

믿음을 주고 생명도 바꿀 수가 없어. 믿음을 가져야 생명이 살아나고 생명이  보존되지 믿음을 팔아 가지고 생명을 사는 길은 없습니다. 믿음 팔면 사망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576 흥망성쇠는 복에 있다/ 말라기 3장 9절-12절/ 1984. 11. 21. 수새벽 선지자 2016.01.12
5575 흉악한 이리에서 구출되는 방법/ 사도행전 20장 25절-35절/ 1988. 5. 5. 오전집회 선지자 2016.01.12
5574 훼방/ 사무엘상 15장 1절-3절/ 1985. 3. 7.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73 회개할 때 눈이 열린다/ 요한계시록 1장 9절-17절/ 1985. 10. 11.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2
5572 회개할 것 4가지/ 벧전1장 3절-7절/ 1983. 6. 24. 금새벽 선지자 2016.01.12
5571 회개할 것 4가지/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1983. 6. 23.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70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5.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5569 회개하면 산다/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5. 10. 2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5568 회개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1. 8. 1.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5567 회개주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1987. 7.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66 회개제목-롯의 죄,십계명/ 이사야 1장 18절 -20절/ 1983. 5. 5.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65 회개제목-롯의 죄,십계명/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3. 5. 5. 목새집회 선지자 2016.01.12
» 회개제목-롯의 죄,십계명/ 요한일서 5장 8절-21절/ 1983. 4. 7.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63 회개의 중요성, 두 신앙, 길가밭/ 마태복음 13장 1절-9절/ 1983. 5. 5. 목전집회 선지자 2016.01.12
5562 회개의 수준, 부자 청년/ 마태복음 19장 16절-22절/ 1983. 4. 23.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5561 회개의 소망과 목표/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 5. 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5560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22. 목새벽 선지자 2016.01.12
5559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5558 회개의 방편과 종별/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5557 회개의 목표 표준/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1983. 5. 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