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1988. 4. 5. 화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일위로 계시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서기도 일찍 섰고 또 양적으로도 많은 양을 가진 교회며 또 위대한 모든 종들이  가서 수고한 아주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러기는 하지마는 그런 연고로 일곱 교회 가운데에 첫째 순위로 에베소 교회를  기록하신 것만은 아니고 에베소 교회의 문제가 제일 큰 문제요 중대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적으로 또 위험적으로 커서 첫째 순위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인 줄로 깨달아집니다.

 본문에 보니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하는 이분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이 복음 역사에 일꾼들을 가리켜서 일곱별이라 말씀하셨고 또  일곱 금촛대는 모든 복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일곱 금촛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크고 작은 복음의 사역자인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그 능동으로 일함이 아니고 자기의 어떤 실력으로가 아니고 승리하신 주님이  승리의 그 능력을 가지고 붙잡고 역사하기 때문에 이 복음은 거칠 것이 없이  아무것에게도 재재받지 안하고 그저 초인간적으로 또 비합리적으로 비과학적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초월해서 전파돼 나가고 있고 또 크나 작으나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것은 다 주님이 늘 관리하셔서 이렇게  자라가고 있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 모든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뭐  주일학교 반사들이든지, 오늘 믿은 사람이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곧 일곱별에 속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런 모든 복음  운동의 역사는 주님이 승리하신 그 능력, 승리케 하신 그 능력, 꼭 같은 영감의  능력으로 붙잡고 일하시기 때문에 그 이루어 나가고 또 많고 적은 한 두 사람의  그 전도를 받은 구원 이루는 사람이라도 그것은 낱낱이 주님이 다 관리하셔  가지고서 하신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일곱 교회에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그 교회의 현실과  주님과의 거리가 먼 데는 거리 먼 주님으로 그렇게 나타났고 또 동질일 때에는  동질의 주님으로 나타나서 역사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위에와 밑에를 보면 주님이 이렇게 모든 포교도 또 교회의  관리의 그 모든 역사도 다 사람 보기에는 사람들이 일하는 것 같고 또 사람  보기에는 양떼 그것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자라지고 보호를 받는 것같이 이렇게  보이지마는 실상은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이 모든 복음운동은 대속하신, 피 흘려 대속하신 주님이 친히  역사하셔서 이루시고 다만 사람 보기에 사람이 하는 것같이 나타나는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역사하시는 것뿐이지 인간의 그 단독으로나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 밑에 2절 이하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여덟 가지의 그 좋은 점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렇게 참 신앙생활 하느라고 온갖 각도로 어려움을 많이 쥐고 또 힘을  구비하게 이렇게 써서 참 칭찬할 만한 그런 아주 아름다운 행위를 한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 말씀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하는 이 주님이 칭찬하시고 책망하신 이것을 종합해서  보면 여기에서’ 우리가 주님이 이 에베소 교회를 제일 중요한 문제를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첫째로 말씀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하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사랑 그것을 말씀하니, 예수님을 오래  믿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연구하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는  그런 것은 처음 믿을 때이니까 의례히 심히 빈약하리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렇게 온갖 역사를 해서 대단히 위대한 일을 했고 또  교회들에 그 양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믿어서 큰 교회가 돼졌고 그 모든 면이  다 자라가고 구비하고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것이 있다 하는 이 책망할 것은 제일 처음 믿을때에 가졌던  사랑을 네가 버렸다 한 것이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믿고 난 다음에 그 힘쓰고 또  점점 은혜받아서 자라간 그 사랑을 말함이 아니고 제일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그 사랑을 말씀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은 땅위에도 여러 가지 사랑이 있지마는 사랑은 한 분만  가진 것이 사랑인데 주님 한 분 곧 자존하신 완전하신 하나님 한 분만 사랑을  가졌지 다른 것은 이 사랑을 가지지 못했고 또 땅 위에 있는 것은 다 변질된  사랑이 됐는데,  이 사랑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그 사랑의 본능들이 그  에미와 새끼 사이에 있고 새끼와 에미 사이에 있어 그들은 아무런 연구 없고  무슨 경험이나 그런 수련도 수양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그 본능의  사랑이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안심하고 기뻐하고 만족히  여기는 그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맹수라도 그 맹수의 새끼가 다른 모든 곳보다 맹수의 그 품안이 가장 만족하고  기뻐하고 평안해서 그 자리를 찾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뭐 그것이 힘이 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만족하고 평안하고 살지마는 포수가 총 한 방이면 그거 다  절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끼로서는 에미의 그 본능적인 그 사랑을 믿고, 알기 때문에 그는  만족을 하고 자는 것이고, 또 그 에미는 그 새끼 위해서 자신을 애끼지 안하고  돌보지 안하고 있을 것을 다해서 본능적으로 희생을 하고 희생을 하고도 항상  못다한 것같이 그렇게 희생의 능력을 가진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모든  만물들에게 주신 그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차차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도 이제 희박해지고 또 그것이 또 자체가 변질도 되고  이래 가지고서 얼마 시기를 지나고 나면은 아무런 그 인연을 가졌던 그런 것도  생각이 없을 만치 그렇게 서로 그만 소원하게 서로 성글게 되고 자꾸 멀어지게  되는 걸 우리가 봅니다.

 그러기에,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우리가 복음 받아서 처음 믿을때에,  ‘주님이 하나님이시요 이 크신 분이신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속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았고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는  이 복음을 처음에 받을 때에 그때에 우리가 무슨 이성으로 지성으로 그것을  감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이 복음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  소식을 듣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에게는 모든 근심도 다 물러가고 또 모든  욕망이나 불만이나 불평이나 그런 것도 다 물러갔고 또 그 모든 시비도 다  없어졌고 그저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복음을 들을 때에 어짠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신이 구속을  우리가 소문 들을 때에 이 소식을 전달 받았을 때에 우리는 그때에 모든  세상으로 말미암은 근심 걱정에 불안이 다 없어졌고 평안이 왔고 기쁨이 와서  뭐인 줄도 모르면서 기뻐서 즐거워서 우리가 만족을 하고 기뻐했고, 또 무슨  아무 뭐 철도 없으면서 무슨 교리나 신조에도 맞지 아니하는 전도를 해서 다른  사람도 이 소식을 알아야 되겠다 하는 그런 전도를 하고, 또 믿는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도 했고, 또 믿는다고 할  때에 뭐 이것도 저것도 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없어졌고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얼마든 지위하고 싶은 그런 사랑의 본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한 것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참 하나님의 사랑의 그 소식을 들을 때에 그때 우리에게‘기쁘고 평안하고  만족이 있었고’ 또 이 사랑으로 인해서 누구든지 보면 이 소식을 전해야 되겠고  또 그 사람이 아무 무상하게 사랑하였고 사랑하고 싶었고 또 위하고 싶고 그를  다 같이 전해서 이 구원을 그들에게 다 전달해서 가지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이  사랑의 본능적 그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 자신에게 그 사랑의 본능적인  평안과 기쁨과 만족이 있었고 또 이 사랑의 본능이 이웃을 향해서 본능적으로,  무슨 수양적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은 그런 것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이런데, 처음 사랑을 잊었다는 것은 이렇게 이 사랑에, 자기가 이성 판단이  아니고 이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무식하고 마치  짐승이 그 에미와 그 사이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양육 사랑 그 사랑을 하나님이  줄 때에 그들이 무슨 이는 나를 어데까지 사랑할 것이고 나를 어데까지 희생할  거라는 그게 아니고 그 하나님의 그 사랑이 그들에게 왔을 때에 맹수에게도  새끼는 사랑하는 그 에미를 의지해서, 아무 힘도 없는 것이지마는 의지해서  만족을 했고 평강을 누렸고,  또 그것도 무슨 결과나 무슨 아무 뭐 이성이나 지성이나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그 사랑의 본능으로 새끼를 위해서 희생한 그 희생의 능력  그 희생의 능력이 역사해 그런 건데 이게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러기에, 다른 데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에미와 새끼  사이에 그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의 사랑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들이 기뻐하고 즐거위하고 만족을 했던 것이고 또 이 사랑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그 능력에 우리가 피동돼서 그 능력으로 인해서 희생하고 싶은, 무슨  희생하는 가치가 있는 것도 무슨 수양도 그런 것도 아니고 본능적으로 희생을  하고 싶고 또 사랑하게 된 그럿것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무슨 수양으로 생겨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슨 욕망으로  인해서 우리가 만든 그 조작도 아니고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이 이  복음으로 왔을 때에 이 복음을 듣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만족과  평강이 그들에게 현저히 역사한 것을 우리가 다 체험했고,  또, 이 사랑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 줘서 어짠지 과거에는 참 아주  못쓸 사람이요 독사와 같은 그런 사람도 이 복음을 받았을 때에 완전히 변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하고 싶기를 마치 맹수가 하나님 주신 사랑을 인해서 그  본능적으로 새끼를 인해서 희생하고 싶은 그 희생이 우리에게 이웃을 향해서  있었고 그 새끼가 에미를 의지하고, 아무것도 힘 없는 것이지마는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그 이상 평안한 자리가 없고 만족해서 거기에서 보금자리 치고  뛰노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참 과거에 체험하지 못한 그런 기쁨과 평안과 안심을 가졌던 것을 우리가  경험했고,  또,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이웃을 위해서 무엇인가 참 끝이 없는 그런 사랑의  봉사의 그 희생이 하고 싶었던 그런 것을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것을 다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와서 하나님의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안심하고 기쁘고  즐겁고 만족한 거, 이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한  것 이것이 귀한 것이고 이것이 참 보배로운 것이고 산 것이지 이것이 아닌 모든  별별 욕망과 별별 충격과 별별 그 모든 지능을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이 에베소  교회에 여덟 가지, 그 다음에 한 가지까지 말하면 아홉 가지인데 이 아홉 가지의  이 귀중한 이런 어떤 그 귀중한 이런 일들 참 칭찬 받을 만한 이런 일들이  있었지마는 주님의 사랑의 그 능력에 피동돼서 그 능력으로 이렇게 하지 안한  이런 것은 다 그것은 죄는 아니지마는 그것은 주님에게 아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 그것을 옳은 것이지마는 내가 임하여 이것을 네가 다시 찾아서 가지지 안하면  이게 없을 때에, 이게 없어 졌을때에 너와 나와의 상관은 없고 구속에는 상관이  없고 또 이것이 없을때에 거기에는 빛도 없고 생명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는 완전히 빛과 생명은 다 없이 옮겨야 된다, 옮긴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것입니다.

 다만 그 사랑의 능력, 주님의 구속의 사랑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랑으로  인한 우리 그 주관적 본능적 그 평강과 기쁨과 즐거움 그것,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이라 그러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는 행복이요 다 생명에 속한 것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왔을 때에 그  사랑 우리가 영접해 가지고서 그 사랑으로 인한 우리 주관의 평강, 그 사랑으로  인한 모든 객관에 대한 봉사의 희생 이것이 생명에 속한 것이요 주님이 이거  하시려고서 이렇게 모든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전해 줘서 우리가 받았는데,  받고 나서 보니 하나님의 차차 성경 말씀을 한 장 두 장 보고 여기에 저게보다  보니까, 우리의 생활은 복잡해져서 우리 대외에 관계에 생활도 복잡하고 또 우리  대내적인 생활도 복잡해지고 이러니까 그것을 또 지켜서 간추려야 하겠다고 다  주님의 구속을 받았으니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모든 이웃에게 대해서 이 언행심사나 모든 사리 판단이나 가치 평가에  이런 일들을 자연히 우리가 살피지 안할 수가 없어서 살피고 이렇게 또 그것을  삐뚤어질 때에는 고쳐야 되겠고, 또 그것이 상했을 때는 또 치료를 해야 되겠고,  그것이 또 관리가 잘못 돼어서 그 마찰되고 할 때에는 그것을 또 수정을 해야  되겠고 이래 한 것이 이것이 다 에베소 교회가 이 생활한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 행위 이것이 안팎에, 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보니까 이 안팎에 이런  행위 저런 행위를 어짜든지 바로 해야 되겠고, 또 수고를 해야 되겠고 또,  마음대로 하지마는 또 참아야 되겠고, 뭐 참는 것이나 또 자기중심으로 날뛰는  그거는 또 내비 두면 안 되기 때문에 부득이 그 자기중심으로 날뛰는 그런 것을  또 제재를 해야 되겠고 그걸 또 수정을 해야 되겠고, 또 그라고는 또 뭐 마음에  거석하지마는 참고 견뎌야 되겠고, 모든 그 일꾼들 가운데서도 내비 둘 수 없는  것이 그라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되기 때문에 부득이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자를  그 시험해 가지고서 거짓된 것을 드러낸 이런 것이라든지 또 참. 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그런 일 한 것이 이것이 다 귀한  생활입니다.

 이 귀한 생활이지마는 이것을 이렇게 할라고 하다가 보니까 그만 주님의,  우리에게 주신 것이 주님이 대속하신 지극히 큰 사랑인데 이 사랑을 우리가 차차  차차 그만 생각함이 멀어졌고, 또 이 사랑병, 그 감격됨이 멀어졌고 그만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렇게 위해서 우리가 맡은 바의 사명을 가지고서 일을 하고  우리 공회의 일을 하고 또 우리가 그 모든 개교회 목회자의 일을 하고 또 자기  그 개교회를 다스리고 또 이 교회에 단체인 이 교단을 다스리고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그만 주님의 이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처음에 그 사랑의  능력만 우리가 입고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는 뭐 기쁨과 평안과 안심이 다  되었고, 또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고 희생하고 싶었던 마치  순진한 그 무지한 맹수 그 악어와 악어 새끼의 그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역사해서 있었던 그런 것이 우리에게 처음에는 있었는데 그만 이 일을  할라고 하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다 절단이 났습니다.

 절단이 나서, 그래서 우리는 일하다 보니까 그것만 가졌지 주님의 사랑의 그  능력의 혜택을 우리가 그만 이것 때문에 그 혜택을 잊어 버려서, 잊어버리고  내가 혜택을 자꾸 버리고 무시하고 관심 없이, 혜택을 자꾸 입어야 되는데 입지  안하고 해택을 내가 누려야 될 터인데 누리지 안하고 여기에 이라다 보니까  우리의 그 시선과 주력이 그만 어만데로 삐뚤어졌습니다.

 시선과 주력이 어만 데로 삐뚤어지고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내 행복도  생명적인 그 모든 행복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모든 이웃에 대한 그 희생의  능력도 이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희생의 그 본능으로써, 무슨  고의적이 아니고 그거는 본능으로써, 마치 목마를 때 물을 먹고 싶은 것과 같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싶고 봉사하고 싶었고 무엇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분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기쁘고 즐거웠던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이  능력을 우리가 이거하다 보니까 배반했다. 그래서 주님이 책망할 것이 있으니  처음 사랑을 너희가 버렸다.

 이러니까, 이 주님과 무한한 그 신비성 말할 수 없는 그 사랑의 능력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또 생명을  주어서 희생하고 있는 것을 다 주고서 희생하고 어떻게 뭐 훌륭한 말을 하고  훌륭한 구비한 지식을 가졌고 어떤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지극히 큰 비밀과 신비한 능력 이 능력은 이 사랑이 임할  때에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처지서라도 참 그는 말할 수없는 그 저주의 사형을  받는 그 사형에서도 이 사랑이 임할 때는 만족하고 평안했고 또 어떠한 원수라도  이 사랑이 임할 때는 이 사랑의 능력은 희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생명이  되는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왔었는데 그만 그 사랑을 하나님에서 하라는 이거 계명  지키고 법도를 지켜 사는 이거 하다 보니까 그 사랑이 우리에게 그만 잊어버려져  버렸고 그 사랑을 배척했습니다.

 사랑을 잊어버리니까 그라니까 하나님과 우리와 사이에는 이 사랑으로만 연결된  것인데 그 사랑을 우리가 그걸 생각지를 못하고 주님을 위한다는 그것이 이런 거  저건 거 하다가 보니까 그만 그리 됐습니다.

 이래서, 주를 위하여 간절한 것이 나를 삼켜서 멸하게 했다고 그 예언하신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 시선이 달라졌고 그만 향방이  달라져 가지고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 결국은 다 하나님을 심히  괴롭히는 그런 일이 되었다고 말씀한 거와같이 그렇게 우리들도 된 것을 여기에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 그러면’우리가  ‘회개하라’ 우리가 또 회개하면 이렇게 다시 복구될 수 있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생각하고 회개하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면 우리는 처음행위는  행위로 말하면 무슨 아무 아주 유약한 행위일 것이요 또 철없는 행위 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제일 귀하게 보는 행위가 철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일 강보에 싸여 있는 두더기에 싸인 그 아이의 행위가 제일 아름답고 제일  보기 좋고 나이가 많아갈수록 이 자꾸 흉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처음 행위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된 그것을 가지라.

 만일 그것을 돌이켜 가지지 안하면 내가 촛대를 옮기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재가 OOO 목사님이 그 팜프렛트 낸 것을 두번째 낸 팜프렛트를 제가 읽어볼 때에  거기에다가 그런 말이 쓰여 있습디다.

 ‘혹은 자신에 무슨 잘못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 총공회의 변질을 인함인지’  하는 그 말이 거기에 기록돼 있습디다. 이래서 자신에게 만일 잘못된 게 있으면  다른 교우들에게는 그런 아무런 영향이 끼치지 안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에게  단독이 자신에게만 거기에 대한 그 징책을 주셔 가지고서 입혀 달라고 그렇게  말했고, 또 공회의 변질로 인한 것이라면 자기로 통하지 말고 다른 교회로 통해  가지고서 그 일을 수정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그 기도한 그 기도의 한  토막을 기록한 것을 봤습니다.

 그 기도를 그 분도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그런 걸 주셨고 그제가 기도할  때에 늘 기도하는 한 동감의 그 기도를 한 것을 봤습니다. 그라고, 그래 제가 이  아무래도 공회가 무슨 변질이 됐는가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 공회는 변질됐다  이 공회가 변질됐다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 또 과거에 공회와 같은 그런  공회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라는 가운데에 저는 저대로는  발견했습니다. 꼭 내가 에베소 교회다. 에베소 교회서 이런 거 저건 거 할라고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그만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이 본능 하나님의 사랑의 그  능력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 본능이 그 능력에 감격하고 거기에 변화받아  가지고서 되어지는 아 역사가 없어졌으니 처음 사랑을 버린 이것이 곧 OOO  목사님이, 말하는 ‘공회의 변질이겠다’ 하는 것을 제가 발견을 하고 그래 여러  날 동안 그 본 이후로부터 늘 이 점을 대해서 기도를 하다가 주일날, 저 지난  주일, 어제 말고 아래 주일날 내가 아침에 O목사님에게 뭐 전화를 할라 해도  통화할 길이 없고 이째서 혹 거기에서나 앞으로 연락이 있을 수 있지 않겠나  해서 OOO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가지고서 약간의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은 다 하지는 안 했고 그저 만나거든 내가 말하더라고서 그렇게 좀 말  좀 하라고, 전해 달라고. 내가 그전에도 전화할라고 사택으로 기도원으로 그렇게  전화를 했지마는 전화가 통화가 안 돼서 못 했었습니다.

 그 OOO 목사님과는 통화를 했습니다. 통화를 했는데 그분도 ‘네, 목사님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서로 끝을 냈는데 그뭐 그저 막히지는 안  하리라 되겠지 그 뒤에 아무튼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이래서, 내가 OOO  목사님에게 부탁하기를 그 OOO 목사님도 하나님이 불들고 무엇을 하실라고서  하시기는 하시는데, 나도 나와봐도 그렇더라. 해 봐도 별것 없이, 또 개혁을 해  봐도 또 부패해지고 개혁해봐도 부패해지고 자꾸 그런 것이니까 아무래도 다  모든 사람들이 탑을 쌓을 때에 기초만 쌓고 그저 한 기초 위에 돌 한 두 덩이  놓다가서 그만 끝나고 어떤 사람은 한 중간쯤 가다가 끝나 버리고 탑을 쌓되  탑을 끝까지 쌓아서 준공한 사람들이 별로 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해 봐도 장 그런 것이니까 이미 우리가 이만치 터를 쌓아서  나왔으니까 이 위에다가, 이 터 위에다, 우리가 이미 이렇게 총공회라는 이건  터를 쌓아 놨으니까 이 위에 와 가지고서 동잇이를 해서 더 개혁해 가지고서  올라가게 되는 것이 그것이 아마 더 슬기로운 일이요 수익이 있고 주님을 더  기쁘시게 역사하는 일이 될 터이니까 그런 말 좀 전해 달라 하는 것을 내가  전화로 O 목사, 그 동생 O목사님에게 내가 전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우리는 뭐 이거 저거 온갖 방편 쓰지마는 그런 방편은 그저  의로운 행위도 할 수 있고 수고도 할 수 있고 참는 것도 할 수 있고 또  자기중심의 사람을 이것을 선별할 수도 있고 또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것을  그렇게 드러낼 수도 있고 또 참을 수도 있고 주의 이름을 위해서 고문과  고형에서 견딜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열심을 낼수도 있고 다 할 수 있지마는  주님의 그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랑의 능력이 와서 그 사랑의 능력에 우리가  피동되어서 얻어지는 그 평강 기쁨, 즐거움과 만족 또 그 사랑의 능력의  힘으로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그 일이 되는 이것을 우리가  갖지 못하고 다른 거 모든 것을 가진 것이 다 헛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이래서, 여기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니골라당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은  제가 직접은 죄를 짓지 안하고 역사해서 간간접으로 범죄되는 것을 그것을  말하니까 깊은 것을 말했습니다. 이래도 그것까지도 미워하는 그런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처음 사랑을 가진, 이 사랑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낙원에 살 수 있고, 아무리 이  세상이요 참 사막같은 그 무정한 그런이 세상이라도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 속에 살수가 있고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한다’  다만 이 모든 피조물과 연결돼 가지고 있는, 결국 모두 다 죽는 것이요 썩는  것인데 자존자 완전자로 더불어 연결된 이 연결의 그 생애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기에 결론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우리는 뭐 이거저거 온갖 방편 쓰지마는 그런 방편은 그저  의로운 행위도 할 수 있고 수고도 할 수 있고 참는 것도 모든 현실을 다 이것을  빛으로 물리치고 우리 자체에 행복을 가졌고 또 이 사랑의 능력으로서 우리는 이  생명의 능력인 이웃을 향해서 할 수 있는 자신을 다 녹일 수 있는 이런 생애를  가지는 것이 그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런 거 저런 거 하다 보니까 그런 것을 다  버리게 됐습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에는 그저 단순하고 이건 모든 물결이 세지  안하고 단순하고 잔잔해서 참 그때 생활이 항상 그리워서 나는 부산 와서  버렸다, 버렸다 하는 그 말 하는 것이 항상 그것입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에는 전국에 문둥이가 내 친구요 문둥이로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 지역에 문둥이가 지나갈 때는 나를 꼭 찾았지 안 찾지를  안했고 또 참 모든 금수까지도 기쁘고 즐거워서 제가 갈 때에 같이 모여 들어서  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했었었는데 그만 이 부산 와 가지고서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복잡한 이 세상을 만나다 보니까 고만 그런 참 생활이  없어졌는데 이래도 나는 그걸 ‘이거 어짜나 내가 자꾸 베려졌다 베려졌다  이와같이 지금 못쓰게 돼졌다’ 하는 그것을 탄식은 했지마는 이번에  OOO목사님의 그 팜프롓트 낸 데서 공회가 변질됐다 하는 그 말에서 제가 비로소  깨닫고 ‘내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었다, 이거 참 생명을 잃었다.’ 이래서  바로 에베소 교회가 내게 대한 이 교훈이다 하는 것을 가져서 제가 혼자 하나님  앞에 내가 몇 번 했습니다. 기도를.

 ‘OOO 목사님은 내게 대한 선지자요 내게 대한 스승입니다. 그로 인해서 내가  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이제 회개하게 됐습니다.’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 내가 몇 번 부르짖으면서 기도한 그런 것이 며칠전에 몇 날 동안 계속  했었습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입어야 되겠고 이 사랑을 우리가  잃지 말고 이 사랑을 우리가 자꾸 살아야 되겠어. 이 사랑을 찾고 이 사랑으로  인한 평강을 얻어야 이것이 가치 있고 이 사랑을 잡아 이 사랑의 능력에  힘입어서 자기도 모르게 희생되는 것도 그것이 가치 있지 이 사랑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릴 때는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지고 아무 다 사망뿐이지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 며칠 전에 제가 우리 교우들에게 기도할 것을 말했습니다. 세  가지를 기도하자 그렇게 세 가지 기도할 것을 작정을 하고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알고 믿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자랄 때에 우리에게는 참 한없는 평강과  기쁨과 만족한 세계에서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사랑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가졌을 때에 거기에만 참 낙원이 있고 거기에만 평강이 있고 또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와서 있을 때에 우리는 피곤치 않는 그런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다.

 참 뭐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이 그게 어떻게 약한 여인에게  남자들이 할 수 없는 강한 그 능력이 있는가? 그건 사랑의 능력으로서 되는  것이니 아무래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피곤치 않는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와야 되겠다, 또 그 사랑을 빌어야 되겠다, 그 사랑을 믿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것과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사람이 됨으로서 이 세상은 피곤치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세상이  되는 것,   예수님께서는 아마 영계도 있고 이 세상도 있고 다 있었지마는 그분이 제일  거처하기 좋고 제일 만족하고 좋은 곳은 이 세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분이  사랑을 가지고 계시니까.

 이 세상에서 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 이 세상에서 밖에는 당신이 만족할 자리가  없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는 그 만족할 곳이 없었으리라 그렇게 사랑의 본질에서  그분은 그렇게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이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낙원이 됐는데  우리는 이 사랑이 궁핍하기 때문에 이 참 세상은 괴로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해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이 기도와 또 하나는 이 사랑은  제가 경험하는 대로 이 사랑을 가지는 데에 파수를 잘못하면 이 사랑 속에 죄가  들어가면은 이 사랑은 변질돼서 결국은 불안 중에 불안, 고통 중에 고통 사망의  결과를 이루는 것인데 이 사랑을 변질시켜서 사망케 하는 변질시키는 이 죄를  우리가 방어해야 될 터이니 이 죄를 방어해 달라는 기도와 또 사랑은 의  속에서만 고요히 보존되고 자라갈 수 있기 때문에 이 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입혀 주실 것과 또 이 사랑이 능력 있게 역사하는 데는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에서만 이 사랑은 힘있게 역사할 수 있는 그 뿌럭지니까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하는 것이 요새 며칠 동안 늘 제가 증거 할 때  증거한 제목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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