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인 문화) 116. 1996

2014.08.20 13:19

선지자 조회 수:

1996-1

1996년 여름, 중국의 도서 시장에는 『중국인은 NO라고 말할 수 있다-탈냉전 시대의 정치와 정감적 선택』이라는 '정치 통속물'이 등장하여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여기에 이어 "중국인은 NO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인은 NO라고 말해야 한다"는 풍의 일련의 책들이 출판가를 휩쓸었다. 또한 극장가에서는 『교량(較量)』이라는 영화 한 편이 다시 전국을 휘몰아쳤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기록필름을 편집해서 만든, 애시당초 재미와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한 때 중국이 '무적' 미국에 정면으로 대항했음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UN군에 정면으로 대항했음을 확인하면서 말못할 놀라움과 위안을 느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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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대중가요 분야에서도 「대중국(大中國)」을 필두로 일련의 애국 가요가 중국인의 자신감과 호방함을 선전하고 있었고, 다년 간 침묵을 지켰던 군가창작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기업계 역시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에 신속히 반응했다. 모그룹이 새로운 발전전략의 하나로서 "산업보국과 민족창성을 임무로 삼는다"는 구호를 기업의 이념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놀랄 만한 시장 호소력을 얻었고, 이 이후 광고시장에 한바탕 민족주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화장품 시장에 돌연 "장성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 국산품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구호가 등장했고, 'Kodak(柯達)'과 'Fuji(富士)'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樂凱' 필름은 "적의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한다"는 '전쟁식 수사학'을 내걸고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북새통을 이루던 McDonald's 주변의 식당들은 "중국인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중국인의 민족의식을 자극하고 있었다.

1996-2

1996년 10월, 베이징대학(北京大學) 교정에서는 특이한 광고판촉 행사가 열렸다. 유명한 청바지 회사 Lee Cooper가 교정의 명소 '삼각지(三角地)'에 새빨간 천막을 치고 거대한 청바지 사진을 내걸었다. 이 사진의 윗면에는 유명인사들의 '영문' 사인이 빽빽이 적혀 있다. 사연인즉슨 베이징대학 학생증을 소지한 학생들에게 이 회사가 청바지를 1/5 가격으로, 심지어 그보다 더 싸게 판매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 전, 코카콜라 회사가 일년 내내 베이따(北大) 학생식당에서 무료로 코카콜라를 제공한 일이 있었다.)

자연히 천막 안팎에는 청바지를 사려는 인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 중 상당수의 손에는 '토플(托福)'과 GRE 시험 준비서가 들려 있었다. 관련 보도에 의하면, 이 판촉행사(물론 투매가 아니라 덤핑에 가까운)를 통해 2만 벌 정도의 청바지가 팔렸다고 하니, 구매자가 분명 베이따 학생이라면 '베이따는 Lee Cooper 라벨이 달린 푸른 청바지 바다로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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