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생동

[ 氣韻生動 ]

우리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고는 '살아서 움직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표현한 대상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표현할 대상'과 '표현된 대상'을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표현했을 때도 이런 말을 쓴다. 이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형사(形似)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예술은 형사보다는 대상 뒤에 숨어 있는 내용을 표현하길 요구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신사(神似)이다. 예술적 표현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 표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만, 대상의 외형에 담겨진 내재적인 정신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지자선교회
이렇듯 '형사'를 초월하여 '신사'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겼다. 서양과 달리 중국미학이 '신사(神似)'·'표현(表現)'·'사의(寫意)'에 중점을 두는 것도, 바로 형상을 초월한 '상외지상(象外之象)'·'미외지미(味外之味)'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의경(意境)'·'신사(神似)'·'사의(寫意)'·'초이상외(超以象外)' 등의 개념 역시 이것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우리는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작품에 대한 총체적 요구이며, 최고의 예술적 경지이다. 밖으로 드러난 형체와 색을 표현할 뿐 아니라 내재적인 정신적 기질과 성격적 특징을 중점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동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현실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작가와 대상은 그 어떤 것도 우주적 기와 통해 있다. 그 우주적 기와 교감하기 위해서는, 기교적이며 인격적인 수양과정을 통하여 대상의 세계를 관조해야 한다. 그러나 '기운생동'은 결코 우아하거나 화려한 화면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추악한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송(南宋) 공개(龔開, 1222-1304)의 〈중산출유도(中山出游圖)〉를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에는 외양이 험상궂고 추악한 종규(鍾馗)와 그를 추종하는 온갖 잡 귀신이 등장한다. 종규와 그 여동생이 작은 귀신들이 메는 가마에 타고 유람을 나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종규는 중국민간 전설에 등장하는데, 외모는 비록 추악하게 생겼지만 사악한 무리를 제거한다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화면 전체가 모두 검은빛으로, 종규가 긴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비단 모자를 썼을 뿐만 아니라, 종규의 여동생도 얼굴에 검은 분 화장을 했으며 잡귀신들 역시 온몸이 검다. 종규는 큰 눈을 부릅뜨고 얼굴 가득 검은 수염이 나 있으며, 잡귀신은 해골같이 뼈만 남아 있는 추루한 모습이다. 용필이 거칠면서도 화면을 형성하는 힘이 강렬하다.

거친 용필과 음침한 형상 속에 유머가 담겨 있다. 추악한 외형에 대한 표현은 풍자적 의미와 함께 추악미(醜惡美)의 표현이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대상의 음침하고 거친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외양 속에 숨어 있는 내재미를 표현하는 것은 기교와 화의(畵意)가 결합한 경지이며, 그것으로부터 외양의 한계를 초월한 내재적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기운생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기운생동'의 핵심은 '변화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氣)'의 세계는 상호 대립적인 음(陰)과 양(陽)의 변화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의 대립과 극복, 즉 양의성(兩儀性)을 터득하는 것이 '기운생동'을 이해하는 길이다. '기운생동'은 조화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예술적 대상을 우주공간의 끝없는 변화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낡은 형식이나 문화의 구속으로부터의 일탈과 파격이 '기운생동'의 미학을 조성한다. 예술가의 창조적 역량은 세속의 제도나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해방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초월하고 그 내면적 본질을 파악할 때, 예술적 생명력이 살아난다.

셋째, 기법과 정신의 통일이 '기운생동'의 경지를 만든다. 사혁이 말한 육법(六法)은 개별적 독립체가 아니라 유기적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손과 만나는 붓이나 종이, 그리고 표현되는 대상이 '기(氣)'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정신적 수양과 기법적 수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운생동'을 '전신(傳神)'의 결과라고 하여 '신(神)'부분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본래 기능과 영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넷째, '기운생동'은 '상외지상(象外之象)'·'언외지지(言外之旨)'의 미학이다. '기운생동'은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록 화려한 색채나 수려한 수사가 없어도 대상 속에 작가의 개성적 특징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운생동'은 수식과 기교의 외부적 장치 속에 들어 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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