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왕조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청(淸)과 중화민국(中華民國)

만주족은 여진족의 후예로 명나라 신종(神宗) 때 청 태조 누르하치가 후금(後金)을 건국하고 명나라를 파죽지세로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원(寧遠) 전투에서 누르하치는 부상을 입고 사망하게 된다. 그의 아들 청 태종 황태극(皇太極)은 군주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먼저 조선과 몽고를 제압한 후 더욱 적극적으로 명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1636년 황태극은 정식으로 황제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대청(大淸)이라고 하였다. 1642년 청나라는 산해관 밖의 모든 땅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청 세조가 즉위한 후 1644년 이자성의 반란군이 북경을 함락하였다.
선지자선교회
그 때 이자성에게 항복한 산해관의 수장인 오삼계(吳三桂)가 이자성의 부장에게 뺏긴 애첩을 찾고자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에 청나라는 오삼계를 앞세우고 뒤따라 중원땅으로 진격하여 이자성을 패퇴시키고 북경을 점거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또다시 이민족 왕조가 천하를 통치하게 되었고, 그후 1681년 강희(康熙)황제가 오삼계의 잔당을 소멸시키면서 중국의 통치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물론 청나라 초기에는 한족 애국지사들의 '반청복명(反淸復明)'1)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지만, 강희·옹정·건륭황제에 이르는 1백 년 동안은 청나라의 전성기였다. 청나라는 원나라의 한족억압정책의 실정을 거울삼아 회유와 억압을 적절히 구사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즉, 만주족의 습속인 변발과 의복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였지만, 한족 사대부들을 중용하고 한족의 문화 유산인 학술을 종합정리하는 한편 국가 재정과 제도를 충실히 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문화학술사업을 장려하자, 한족들의 저항도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 역대로 이민족과 한족의 부단한 융합이 결실을 맺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된 것이다.

건륭황제를 기점으로 청나라는 정치가 부패하면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뒤이어 재정곤란과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점차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다. 1796년 백련교(白蓮敎)의 난이 일어났다. 백련교는 원래 원나라를 반대하던 조직인데, 청나라 중기에 이르러 청나라에 반대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그후 1840년 청나라는 물론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인 중화사상의 몰락을 알리는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힘 한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영국에 패한 청나라는 남경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기화로 청나라는 미국·포르투갈·스페인·스웨덴·러시아 등 각국과도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다.

그 후 1850년 억압과 착취에 반항하는 홍수전(洪秀全)이 주도한 농민혁명운동인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일어났다. 1851년 홍수전은 태평천국을 세우고 스스로를 '천왕(天王)'이라고 칭하고 다음 해 남경을 점령하여 도읍으로 삼고 '천경(天京)'이라고 개칭하였다. 1856년 태평천국의 난으로 청나라가 통치력을 상실하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또다시 불평등 조약인 '북경조약'을 맺게 되었다. 1894년에는 중·일 갑오전쟁으로 일본과 '마관(馬關, 시모노세키)조약'이라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요동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과거의 중화사상을 버리고 다가오는 열강의 위협 속에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색을 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캉유웨이(康有爲)를 필두로 하는 유신파(維新派) 지식인들이 부국책의 일환으로 서구의 선진과학문명과 정치제도의 도입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변법유신운동(變法維新運動)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반대로 100일만에 실패로 돌아가게 되며, 이를 '백일유신(百日維新)'이라고 한다. 1900년 열강들을 물리치자는 애국애족운동인 의화단(義和團)운동이 일어났으나 결국 영국을 비롯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어 실패로 끝났다. 1911년 10월 10일, 쑨원(孫文)의 동맹회(同盟會)가 주도한 우창(武昌) 봉기가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해혁명(辛亥革命)이다. 쑨원이 중화민국을 건립하고 1912년 2월 12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퇴위함으로써 수천년간 지속되어 온 군주 전제주의 제도가 종말을 고하고 민주 공화정치 시대가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각주

  1. 1반청복명(反淸復明):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것으로 이민족의 통치에서 벗어나 한족의 왕조를 되찾자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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