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들의 다툼-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동주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 하기도 하는데, 동주의 전기를 춘추시대라 하고 동주의 후기를 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시대는 패자들이 당대 최고의 실력자이긴 했지만 주 왕실을 쓰러뜨려 천하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존왕(尊王)'의 기치를 내걸고 주나라 왕을 정신적인 지주로 인정하던 시대이고, 전국시대는 이러한 관념이 없어지고 오로지 힘과 힘으로 대결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말한다.
선지자선교회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다. '춘추(春秋)'시대는 공자가 지은 『춘추』가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 사이의 역사를 싣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져 천자의 위력이 없어지고 제후들이 강성해져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는 시기이다. 차례로 다섯 제후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한다. 춘추오패는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晉)나라 문공(文公), 초(楚)나라 장왕(莊王), 오(吳)나라 부차(夫差), 월(越)나라 구천(句踐)을 가리킨다. 그 중에서도 동남쪽의 오나라와 월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나온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전설에 따르면 오나라는 주 문왕의 큰아버지가 세운 나라라고 한다. 합려왕 때 오나라는 월나라의 현명한 군주인 윤상이 죽은 기회를 틈타 월나라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오왕 합려가 뜻밖에 화살에 중상을 입게 되고, 결국 태자 부차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부차는 이 유언을 잊지 않고 원수를 갚기 위해 땔나무에서 자면서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고 한다. 이런 소문을 들은 월왕 구천은 대부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제공격을 하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월왕 구천과 범려는 3년 동안 부차가 수레를 타고 나갈 때 말을 끌어다 주는 등 오왕 부차의 노복으로 일했다. 이렇게 순종하는 모습을 본 부차는 구천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그 날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식사할 때마다 쓴 쓸개를 맛보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구천은 농사일에 몸소 참가하여 생산을 장려하면서 국력회복에 힘써 마침내 오나라를 제압했다. '와신상담'이란 바로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이 땔나무에서 자고 쓸개를 맛보면서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에서 나온 것이다.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제후국 중 진(晉)이 세력이 약해져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열되는데, 이 세 나라는 기원전 403년에 주 왕실로부터 제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 때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기원전 403-기원전 221)라 한다. '전국(戰國)'시대란 명칭은 전한 말기 유향(劉向)이 기원전 453년부터 기원전 246년 사이의 역사를 정리한 『전국책』이란 책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국시대에 대표적인 제후국으로 진(秦), 위(魏), 조(趙), 한(韓), 제(齊), 초(楚), 연(燕) 일곱 나라가 있으니 이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한다. 이 칠웅 가운데 진나라는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에 힘쓰는데, 특히 법가 사상을 채택하여 법의 집행을 엄격히 시행하였다. 상앙은 백성들이 법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10금의 상금을 걸고 3장 길이의 나무기둥을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기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일에 10금의 상금을 준다는 공고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상앙은 50금의 상금을 걸고 다시 공고를 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시험삼아 나무 기둥을 옮겼는데 공고에 따라 상금을 주었다. 어느 날 태자가 법률을 위반하자 그는 태자의 후견인 공자건과 태자의 스승 공손가를 처벌했다. 그러나 후에 상앙은 자신이 만든 이런 법의 사슬에 걸려 자신도 죽게 된다. 이렇게 법가 사상을 채택하여 부국강병의 기반을 닦은 진나라는 차례로 한(韓)나라(기원전 230 멸망), 조(趙)나라(기원전 228 멸망), 위(魏)나라(기원전 225 멸망), 연(燕)나라(기원전 223년 멸망), 제(齊)나라(기원전 221 멸망)를 멸망시키고 통일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전국시대에는 각국을 왕래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펼친 사상가들도 많았지만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부상이 여불위(呂不韋)이다. 그는 어느 날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인질로 와 있던 진나라 소왕의 손자 자초를 만나게 된다.

자초는 소왕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의 가운데 아들로 순서로 본다면 도저히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태자가 죽게 되어 안국군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당시 안국군의 정부인인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이를 안 여불위는 자초의 사람됨을 보고 한편으로는 자초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훌륭한 빈객들을 사귀게 하고 한편으로는 화양부인의 언니를 통해 예물을 바치면서 자초를 태자로 삼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자초는 소왕과 아버지인 효문왕을 이어 진나라 왕(장양왕)이 되었다. 한편 부호였던 여불위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조나라 한단에서 미녀를 얻어 총애하고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자초가 그녀에게 반하여 여불위에게 그녀를 달라고 하였다. 이때 여불위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자초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쨌든 후에 그녀가 아들 정(政)을 낳으니 그가 바로 시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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