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기원의 과학적인 고찰

한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창힐조자설(倉頡造字說) 외에도 팔괘기원설(八卦起源說)·도화기원설(圖畵起源說)·결승설(結繩說)1)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학설들은 현대에 와서는 이미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었다. 왜냐하면 한자의 기원 고찰에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유물이 속속 출토되어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선교회
여태껏 가장 이른 시기의 한자로 인식된 갑골문은 기원전 약 1,384년 상나라 반경(盤庚)이 은허(殷墟)로 도읍을 옮긴 이후의 길흉을 점친 기록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갑골문의 개별자는 약 5,000자에 이르며, 상형·지사·회의뿐만 아니라 형성·가차도 발견되고, 또 어법이 구비된 문장으로 볼 때 상당히 성숙한 문자 체계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한자는 갑골문 이전에 오랜 시기 동안 발전과 변화를 거쳤으며 어딘가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한자 기원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출토 자료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의를 한자 기원 각도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한자의 기원을 고찰할 때 흔히 거론되는 자료는 중국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앙소(仰韶)문화의 유적지인 서안(西安)의 반파(半坡)와 임동(臨童)의 강채(姜寨)에서 출토된 도기에 새겨진 부호이다.

반파출토 도기에 새겨진 부호

반파출토 도기에 새겨진 부호

강채출토 도기에 새겨진 부호

강채출토 도기에 새겨진 부호

반파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기는 탄소 동위원소로 측정한 결과 약 6천 년 전에 제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만약 도기에 새겨진 부호가 문자2)라고 한다면 한자의 역사는 최소한 6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고문자 학자인 궈모뤄(郭沫若)는 반파 도문은 문자 성질을 띤 부호라고 단정하며 중국문자의 기원이거나 중국원시문자의 잔류라고 하였다. 그러나 반파 도문의 부호가 과연 문자의 구비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향후 더 연구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또 산동(山東) 거현(莒縣) 능양하(陵陽河)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문구(大汶口) 문화 후기에 제작된 도기에 새겨진 부호가 있다.

한자 기원의 과학적인 고찰 본문 이미지 1

대문구 문화는 산동성 주위에 형성된 신석기 문화의 하나이며, 이 도기의 부호는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연대는 약 4,500년 전의 것이다. 학자들은 도기에 새겨진 ①·②·③·④를 각각 '斤'(자귀)·'戉'(큰도끼, 銊의 상형자)·'炅'(빛나다)·'炅山' 등으로 고석하였다. 그 가운데 ③은 윗부분은 태양(日), 아랫부분은 불(火)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학설은 탕란(唐蘭)이 주장한 것이고, 위싱우(于省吾)는 '旦'(日+山)3)으로 고석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③이 '炅'이든 '旦'이든 관계없이 이 부호가 대문구 문화와 시간과 공간상으로 인접한 양저문화(良渚文化)의 기물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는 ③이 이미 부호의 범위를 벗어나 문자의 기능인 전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원시문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종합하면 3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갑골문은 이미 성숙한 단계의 한자임이 확실하고, 또 후대에 발견된 각종 기물에 새겨진 부호가 문자일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면 한자의 기원은 5천 년 혹은 6천 년 혹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4) 그러나 한자의 기원에 관한 결론은 더 많은 관련 유물이 출토되어 한자가 변화 발전한 궤적을 체계적으로 꿸 수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함이 마땅하다.

각주

  1. 1인류는 문자를 창제하기 이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과 사물을 기록하였다. 예를 들면 부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새끼에 매듭을 짓는 결승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원시적인 기사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이 문자의 전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