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화된 현대 한자-간화자

지금 우리가 한자를 배우는 목적은 첫째는 우리나라 옛 선조가 남긴 한적에 담긴 역사·학술·문화 등을 오늘에 되살리고 또 순우리말로 변환되지 않은 실생활에 사용되는 한자어의 함의를 인식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한자의 본 고장인 중국학을 연구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학의 첫걸음으로 한자를 학습할 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한자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사용하는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의 자체는 우리나라보다 간략한 간화자를 사용하고 있다.
선지자선교회
자체의 간략화는 문자 상호간의 변식력을 감소시키는 문제점이 있지만 서사의 편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한자 간화 사업은 한자의 복잡한 자체로 인한 문맹률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어 적지않은 세월을 거쳐 확립된 것이다. 문자는 만들어지는 순간 역사가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합하든 그렇지않든 그 정체를 부정할 수가 없고 반드시 실상을 파악하고 학습할 필요가 있다.

1935년 8월 중화민국 교육부는 쳰쉬안퉁(錢玄同)의 『簡體字譜』에서 324자를 취하여 「第一批簡體字表」를 공포하였다가 국민당 수뇌부의 반대로 1936년 2월 추진을 철회하고 말았다. 그후 공화국이 건립되고 나서 1955년 1월 「한자간화방안초안」을 만들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1956년 「한자간화방안」을 공포하였다. 다시 시험과정을 거치며 인쇄활자의 제작에 충분한 시간을 준 후 1964년 5월 「간화자총표」를 출판하였다. 1986년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다시 공포를 하였는데, 모두 2,235자가 실려있으며 2,260자의 번체자를 간화한 것이다. 여기서 간화자의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간화자총표」에서 사용한 한자의 간화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고체자를 채택한 것
→ 网(網), 气(氣), 云(雲), 从(從), 众(衆)
② 고대에 사용된 이체자를 채택한 것
→ 万(萬), 泪(淚), 迹(蹟), 礼(禮)
③ 초서체를 해서화한 것
→ 车(車), 兴(興), 当(當), 专(專), 乐(樂)
④ 부분 편방을 줄이거나 생략한 것
→ 标(標), 竞(競), 亏(虧)
⑤ 필획을 줄이거나 생략한 것
→ 奖(獎), 单(單), 冲(沖)
⑥ 글자의 일부분만을 남긴 것
→ 声(聲), 厂(蔽), 习(習), 乡(鄉)
⑦ 글자의 복잡한 부분을 간단한 부호로 바꾼 것
→ 难(難), 戏(戱), 鸡(鷄), 汉(漢), 岁(歲)
⑧ 복잡한 성부를 자음과 근사한 간단한 성부로 바꾼 것
→ 亿(億), 远(遠), 邮(郵), 拥(擁)
⑨ 동음자로 필획이 복잡한 글자를 대신한 것
→ 系(繁), 谷(穀), 几(幾), 后(後)
⑩ 형성의 원칙에 따라 간단한 필획으로 새로운 형성자를 만든 것
→ 肤(膚), 础(礎), 惊(驚)
⑪ 표음부호를 곁들인 새 글자로 만든 것
→ 毕(畢), 华(華), 窜(竄)
⑫ 회의의 원칙에 따라 간단한 필획으로 새로운 회의자를 만든 것
→ 尘(塵), 宝(寶), 灶(竈)

위에서 예로 든 번체자와 간화자를 비교해 보면 문자의 간화는 문자 사용의 편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역대 한자의 발전과 변화를 통해 보면 간화가 주된 추세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바로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간화자는 서사의 편리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지만 간화 규율이 정연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문자의 변별력의 저하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1986년에는 1977년 공포한 「第二次漢字簡化方案」에 수록된 853자의 간화자에 대해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국가 주도의 어문 정책에 편승하여 민간에서 과도로 간화된 자체 남용을 염려한 까닭이다. 예를 들면 冷藏車를 간화자로는 冷藏车로 쓰는데, 민간에서는 藏을 으로 과도하게 간화하여 冷车로 쓰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간화자의 사용과 인식에 반드시 주의할 현상을 몇 가지 소개하기로 한다.

① 간화자의 간화규율을 맹신하여 임의로 유추하는 경우 착오의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義'는 '义'로 간화되었는데, 따라서 '義'를 구성요소로 하는 '議'·'蟻'·'艤'·'儀' 등은 '议'·'蚁'·'舣'·'仪' 등으로 간화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규율이 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闌'이 '阑'으로 간화되었다고 하여 '闌'을 구성요소로 하는 모든 글자가 이 규율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讕'·'鑭' 등은 '谰'·'镧'으로 간화되었지만, '爛'·'欄' 등은 '烂'·'栏' 등으로 간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를 요하는 사항으로, 일부 글자에 해당되는 간화 규율을 모든 글자에 적용하는 경우 착오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② 필획과 쓰임새가 적은 동음자를 빌려 사용하는 간화자는 차용된 글자의 원래 뜻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前後'의 '後'는 현재 필획이 간단하고 음이 같은 '后'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後'(뒤)와 '后'(임금, 왕비)는 뜻이 서로 다르다. 이 외에도 谷(穀)·余(餘)·里(裏) 등의 관계가 이와 같다. 이런 경우 간화자로 출판된 전적에서 어느 뜻으로 쓰였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만약 간화자의 내원(來源)을 모르는 사람은 '后'가 무조건 '後'의 간화자인 것으로 인식하여, 원래 '后'(임금, 왕비)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에도 '後'(뒤)로 잘못 인식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고서에서 '前后'는 '前妻'를 뜻하는 경우가 있는데. 後의 간화자가 后인 까닭에 '前後'로 오인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③ 두 글자가 하나의 간화자로 쓰이는 경우에 원래 글자를 파악할 수 없는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鐘'(쇠북)과 '鍾'(술잔, 용량을 재는 기물)은 간화되어 똑같이 '钟'으로 쓴다. 따라서 이체자로 출판된 고서에서 '钟'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문자는 기본적으로 편의성과 변별성을 갖추어야 한다. 간화자는 그 가운데 편의성은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으나 반면에 문자의 고유 기능인 변별성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부언할 것은 간화자의 제정과 사용으로 인하여 한자문화권 각국의 한자자체가 더욱 괴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반드시 협의를 거쳐 해결 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