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문화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를 우주적 질서(文)의 발생과정(明) 혹은 우주적 질서(文)의 내면화과정(化)으로 이해할 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문화유형론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문명이나 문화라는 용어 자체에 내재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성격이다. 이 용어를 곰곰이 따져 보면, 문화사(문명사)의 전개과정에는 상반되고 모순된 두 힘(충동)이 서로 길항(拮抗)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연결하고자 하는 어떤 힘(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단절하고자 하는 어떤 힘(충동)이다.
선지자선교회
여기서 전자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분리될 수 없다는 연속성에의 믿음이요 조화에의 바람인 반면, 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의 품을 벗어나 독자적인 질서를 마련해가려는 인간들의 의도적 노력이요 일탈에의 충동이다. 그렇다면 모순적인 관계로 드러나는 이 양자는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것일까? 충족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 문화(문명)에 관한 문제의 어려움이 존재하고, 동시에 이 지점에서 문화(문명)를 둘러싼 인류의 본격적인 고민이 싹트게 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문화(문명)라는 문제에 내재된 이런 어려움과 고민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시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샤먼, 즉 무당을 의미하는 '巫'라는 글자였다. 이 글자에는 먼저 하늘의 지평과 땅의 지평이 드러나 있다. 이 양자의 관계는, 앞서 살펴본 바대로, 인간이 세운 수직적 지향에 의해 일원적·연속적·화해적 관계로 서 있다. 이러한 관계에 의해 하늘과 땅 사이에 마련된 수평 공간은 일종의 '놀이터(campus)'를 형성한다. 여기서 '놀이(爭)'하고 있는 인간은 자신들의 수직적 지향성을 '工', '王', '中' 계열의 글자에 기탁하면서 자신들이 발붙인 사람의 마을의 자리를 확증받기를 염원하는데, 이러한 염원은 현실역사의 지평에서 '史'라는, 보다 인간화된 질서로 구체화된다.1)

바로 이런 공간 속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맞서 있다. 여기서의 사람은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씨족이나 부족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국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수직적 관계가 일원적·연속적·화해적이었던 데에 반해, 이들 간의 수평적 관계는 대립적·적대적이다. 중국 문화사(문명사)는 그 출발점에서 두 사람의 이러한 맞섬을 조화와 화해의 방향으로 돌리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드러내었고, 공자(孔子)가 역설한 '仁'은 바로 이러한 열망의 산물이었다. 이 글자는 본래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고리타분한 윤리적 강령이 아니라 마주 서 있는 두 사람의 관계 일반을 의미했다.2) 그러던 것이 이후 문명사의 전개과정에서 점차 개념으로, 이데올로기로, 제도로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巫' 자에 내재되어 있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방향과 관계의 모순성은 문화사(문명사) 자체의 모순을 대변한다. 중국 문화사(문명사)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고대 중국인들의 노력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조화와 중용'은 문화사(문명사)에 내재된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고대 중국인들의 지혜였고, 동시에 이런 모순을 삶의 영역 속에서 소화해 낸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천의 구체적인 양상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이것을 엿보기 위해 우리는 잠시 눈을 『논어(論語)』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말하기를, '삼(參)아! 나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이치를 꿰뚫고 있구나!'라고 했더니 증자(曾子)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門人)들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물으니, 증자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뿐이구나!'라고 했다.(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夫子之道忠恕而已矣.)"(『論語·里仁』)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증자는 어떠한 사태를 두고 '忠恕'라 불렀던 것일까? '忠恕'란 어떠한 사태를 일컫는 말이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공자 자신의 말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다음에 제시되는 공자의 말에서 우리는 忠과 恕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충성'이나 '용서'라는 용례와는 다른 차원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忠을 알려면 반드시 中을 알아야 하고, 中을 알려면 반드시 恕를 알아야 하며, 恕를 알려면 반드시 바깥(外)을 알아야 하고, 바깥을 알려면 반드시 덕(德)을 알아야 한다.(知忠必知中, 知中必知恕, 知恕必知外, 知外必知德.)"

"안으로는 내면적 자질(心)에 대하여 모조리 생각해 내는 것(思畢)을 일러 中을 안다고 하고, 中으로써 실재(實)에 감응(應)하는 것을 일러 恕를 안다고 하며, 안으로는 실재에 감응·동화(內恕)하면서 밖으로는 미루어 아는 것(外度)을 일러 바깥(外)을 안다고 하며, 바깥과 안의 본질이 맞아떨어지는 것(參意)을 일러 德을 안다고 한다.(內思畢心曰知中, 中以應實曰知恕, 內恕外度曰知外, 外內參意曰知德.)"

여기서 "忠(empathy)을 알려면 반드시 中을 알아"야 한다고 할 때의 中자는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생명정신을 가리킨다. 이 때의 "中이란 천하의 (모든 인간의 행위들이 성장하는) 커다란 근본(中者天下之大本)"을 가리킨다. 이 中은 한편으로는 평형(equilibrium)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중심을 공유(concentricity)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용(中庸)』에서 "천지가 제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이 잘 자라게 된다.(天地位萬物育.)"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커다란 中에 의해 보편생명이 바른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中을 인간의 내면(心)에 온전한 형태로 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忠의 본래의 의미였던 것이다.

한편 恕자는 문자 그대로 如자와 心자로 구성된 것으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즉 천지가 만물을 낳는(生) 마음(心)을 있는 그대로(如如) 구현하는 것이 바로 恕의 의미이다. 고대 중국인의 사고방식에서는 마음속에 간직한 참된 심령과 밖으로 드러난 정신이 이원적으로 사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개별적 심령은 우주의 창조정신(生機) 속에 삽입되어 소아(小我)가 대아(大我)가 되고 이로써 대도(大道)와 합일되며 밖으로는 만물의 생명과 통하게 되어 상하와 천지가 그 흐름을 같이하는 세계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恕는 자아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주적 생의 의지(生意)와 합일되려는 고대 중국인들의 태도를 일컫는 말이었다.3)

지금까지 논의를 요약해 보면, 중국문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조건과 토대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이러한 조건과 토대 속에서 독특한 생리와 체질을 형성해 갔다. 우주론의 관점에서 중국문화는 하늘과 땅과 인간세계가 일원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 있다. 이러한 믿음이 문화발생학의 지평에서 '조화와 중용'을 원리로 하는 독특한 유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인간학의 차원에서 '忠恕'로 대변되는 독특한 실천적·윤리적 메카니즘에 의해 수렴되고 다시 확산되는 형태로 구조화되었다. 중국문화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 중의 하나인 '문사철(文史哲)'전통은 이들 층위의 유기적인 통합성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각주

  1. 1 '史'라는 글자의 본래 의미는 "중심을 움켜쥔다(持中)"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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