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0 09:06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를 우주적 질서(文)의 발생과정(明) 혹은 우주적 질서(文)의 내면화과정(化)으로 이해할 때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문화유형론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문명이나 문화라는 용어 자체에 내재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성격이다. 이 용어를 곰곰이 따져 보면, 문화사(문명사)의 전개과정에는 상반되고 모순된 두 힘(충동)이 서로 길항(拮抗)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연결하고자 하는 어떤 힘(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단절하고자 하는 어떤 힘(충동)이다.
"忠을 알려면 반드시 中을 알아야 하고, 中을 알려면 반드시 恕를 알아야 하며, 恕를 알려면 반드시 바깥(外)을 알아야 하고, 바깥을 알려면 반드시 덕(德)을 알아야 한다.(知忠必知中, 知中必知恕, 知恕必知外, 知外必知德.)"
"안으로는 내면적 자질(心)에 대하여 모조리 생각해 내는 것(思畢)을 일러 中을 안다고 하고, 中으로써 실재(實)에 감응(應)하는 것을 일러 恕를 안다고 하며, 안으로는 실재에 감응·동화(內恕)하면서 밖으로는 미루어 아는 것(外度)을 일러 바깥(外)을 안다고 하며, 바깥과 안의 본질이 맞아떨어지는 것(參意)을 일러 德을 안다고 한다.(內思畢心曰知中, 中以應實曰知恕, 內恕外度曰知外, 外內參意曰知德.)"
여기서 "忠(empathy)을 알려면 반드시 中을 알아"야 한다고 할 때의 中자는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생명정신을 가리킨다. 이 때의 "中이란 천하의 (모든 인간의 행위들이 성장하는) 커다란 근본(中者天下之大本)"을 가리킨다. 이 中은 한편으로는 평형(equilibrium)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중심을 공유(concentricity)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용(中庸)』에서 "천지가 제자리를 잡게 되고, 만물이 잘 자라게 된다.(天地位萬物育.)"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커다란 中에 의해 보편생명이 바른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中을 인간의 내면(心)에 온전한 형태로 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忠의 본래의 의미였던 것이다.
한편 恕자는 문자 그대로 如자와 心자로 구성된 것으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즉 천지가 만물을 낳는(生) 마음(心)을 있는 그대로(如如) 구현하는 것이 바로 恕의 의미이다. 고대 중국인의 사고방식에서는 마음속에 간직한 참된 심령과 밖으로 드러난 정신이 이원적으로 사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개별적 심령은 우주의 창조정신(生機) 속에 삽입되어 소아(小我)가 대아(大我)가 되고 이로써 대도(大道)와 합일되며 밖으로는 만물의 생명과 통하게 되어 상하와 천지가 그 흐름을 같이하는 세계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恕는 자아의 생명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주적 생의 의지(生意)와 합일되려는 고대 중국인들의 태도를 일컫는 말이었다.3)
지금까지 논의를 요약해 보면, 중국문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조건과 토대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이러한 조건과 토대 속에서 독특한 생리와 체질을 형성해 갔다. 우주론의 관점에서 중국문화는 하늘과 땅과 인간세계가 일원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 있다. 이러한 믿음이 문화발생학의 지평에서 '조화와 중용'을 원리로 하는 독특한 유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인간학의 차원에서 '忠恕'로 대변되는 독특한 실천적·윤리적 메카니즘에 의해 수렴되고 다시 확산되는 형태로 구조화되었다. 중국문화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 중의 하나인 '문사철(文史哲)'전통은 이들 층위의 유기적인 통합성으로부터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