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주해 제1권

2007.06.0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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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록 주해 제1권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25
게시일 : 2001/12/30 (일) PM 04:40:14  (수정 2006/02/19 (일) PM 07:48:34)    조회 : 126  


계시록(제1권) 1957년 1월 21일 작성,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

서문

(*이 기록은 백목사님이 직접 작성하신 계시록 주해 원본입니다. 여러 성경을 주석하고 그 기록을 보관하셨으나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은, 주석으로 기록한 본문을 다시 설교를 하거나 다시 살필 때마다 이전 기록된 부분과 비교할 수 없도록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동일한 설교를 반복한 적이 없고, 기록한 원고를 단순 반복한 때가 없었던 백목사님의 말씀 세계는 그 숨이 끝나고야 그 전진이 그쳐졌습니다.

따라서 목사님의 주석 또는 설교 준비 기록은 적지 않은 분량으로 남아 있지만, 대부분이 서부교회 오신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 초반까지 10년동안만 작성된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1960년대 이후 깊어지던 그의 깨달음은 더 이상 기록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 이전 기록들은 공개하거나 출간될 수 없는 어린 때의 것이 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로 순교시 까지, 교리연구에 참고하는 조건으로 직접 기록한 노트, 구술하며 받아 적게 했던 대필 노트, 조각난 메모 용지 등에 기록된 요약, 그 모든 기록을 받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후 이 모든 기록들을 즉시 출간하려 서둘렀으나, 개인이 할 범위가 아니었고 공회 기타 차원의 지원은 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붙어 있어 결국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실은 이 기록들의 수준은 백 목사님 마지막 10년에 해당하는 설교록과 비교할 때, '백영희 성경주석 서문' 또는 '백영희 성경주석 입문' 수준이라 판단되고, 1980년대 10년의 설교는 '백영희 성경주석의 본문내용'이었으니 그렇게 무리하게 출간을 서둘 필요를 못 느낀 것이 더 큰 원인이었습니다.

이미 설교록에서 성경 깨달음의 깊은 세계를 만나 보신 분이라면, 그리고 설교록에서 언급되지 않은 본문을 참고하는 정도라면, 이 기록들은 비록 그 내용이 지극히 적고 또 초보적 수준이라도 설교록에 없는 성경 본문을 접하는 윤곽과 방향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서 계속 공개를 해 나가려고 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가 과거로 갈수록 은혜가 있다고 하는 견해가 교역자들 세계에서는 절대 다수가 되어 있으나, 단언코 이를 반대하는 것이 이곳의 입장입니다. 과거 설교는 축절적 단절적 해석이 많았고, 그래서 본문을 파악하고 설교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손쉽고 또 이해도 간단했으나, 이는 그 훗날의 더 높은 세계를 향한 초보적 준비였음을 기억하고, 훗날의 설교가 더 은혜롭다고 느껴지는 데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 말씀의 세계가 가는 방향과 다르게 나갈 수밖에 없음을 주의할 일입니다.


*고어체, 약식 한자들이 많아 필요한 대목에는 원문과 다른 표기를 하였습니다.


계시록 주해

1.기록한 시 - 주후 68-96년경 (네로 황제 말년으로부터 도미니안 황제 치하 시)
저처(著處)- 에베소서(쪽) '밧모' 섬
저자(著者)- 사도 요한

2.목적 - 수난 성도에게 위로와 최후 필승을 예고하는 위로의 말씀
주의 - 해석에 대하여 본문1:1 지시라는 말씀이 표증한 대로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의 부분이 있는 것과 또 태도에 대하여 과장과 축소의 지나침을 주의해야 한다. 본서도 모든 성경의 권위와 범위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아니한 동등계시임을 명심하여야 하고 단정과 속단에 또 주의해야 한다. 지금의 해석에 이설들이 많다. 그것들을 정리하면 과거파, 역사학파, 미래파들이다.

또 어떤 해설은 전부를 도덕원리에 붙어 전부를 해설하고 또 어떤 이는 복음원리에 붙어 복음도리를 상징적 환상으로 된 것으로 해설한다. 그러나 복음 원리는 다른 성경에 문자적으로 간단명료하게 있으니 구태여 환상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없는 줄 안다. 그런고로 본서는 일반복음에 동등인 범위 내에서 과거 현재 미래적의 것이 교훈 혹은 경고 또 주의(注意) 인증 미래적으로 각 시대 역사적 사실로 될 각양의 일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고로 이면으로 치우치지 말고 다방면 다각도로 된 말씀이니 해석도 그러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혼잡이나 무질서는 아니다. 절대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 예언이다.

해설에 수많은 종류가 있으나 그가 다 각자의 다수들에게 인증을 받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본서에 해설에는 얼마나 겸손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어떤 이는 기록의 순서 그것이 역사적 순서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섯째 인을 뗄 때에 전개된 사실은 계시록 말의 사실과 동일한 사건이 되었다. 이것을 보아 이루어질 시간적 순서와 기록 순서와가 같이 아니한 것을 또 알 수 있다. 그런고로 본서 해석은 더욱이 영감과 기도와 겸손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3.본문 제1부
제1장

■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
2.계시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

1)예수
①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
②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 오신 하나님.
③영원 전에 하나님 백성 된 나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려 오신 내 하나님.

2)그리스도
①기름 부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장립 받으신 예수님
②택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과와 칭의를 영원히 담보하신 제사장
③택자의 무지와 온전한 지혜들 과거 현재 미래적으로 영원히 담보하신 선지자
④택자의 연약한 신명동(身歿) 전부를 책임지고 영원히 인도(지배)하시며 보호하심

3)계시
①계시의 종류
  A.특별계시: 신구약 66권 (이외에 종전 형식적 계시도 있음)
B.보통계시: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모든 마음의 구조(양심을        직접 악심은 마귀의 의탁)

②계시의 내용과 목적
A.하나님 자체와 인간의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
B.하나님은 영광을 위한 구원 완성과 유기자에 대한 멸망완성을 위함

4)예수의 계시
①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계시
②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 얻게 하신 계시

5)그리스도의 계시
①제사장 계시
A.예수님께서 택자의 제사장 되심을 알게 하고 또 제상장 역사를 이행되게 하시고  또 제사장으로 신망 의탁하게 하고 또 원죄의 깊은 근성을 알게 하며 죄인임을  자증케 하시고 죄인되게 하고 할 수 없는 죄인으로 그리스도인 제사장을 의지하            여 완전한 칭의를 얻게 하는 계시

②선지자 계시
A.예수님께서 택자의 유일의 선지자 되심을 알게 하고 또 선지자 행사가 이행되게  하고 또 선지자로 신망종임(信望從任)하게 하는 계시
B.택자로 자기 무지를 알아 부인케 하고 자기 지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위반됨을 알아 예수님으로 자기의 지혜로 만들기 위한 계시 (택자의 완성지혜를  총책임 진 그리스도니 그 지혜에 양단에 절정은 하나님 말씀 어김의 결과인 사망  과 순종인 생명과 하나님과 자기를 아는 지식은 생명이라는 학자(學資)로만 수업  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자 위해 당신 생명을 투자하심  으로 얻게 된 것이니 믿고 선생으로 삼기에 넉넉하고 무조건으로 수락할 것은 타  락 허용의 신비한 신애(神愛)를 당시에 누가 하였으리요 (고전 1:30, 3:18 참조)

③왕의 계시
A.택자의 적 *죄 마귀 모든 불행 사 /死/는 기타)이 많은 것과 자아의 무지와 무능  으로 독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고 또 되게 하고 여기에서 인솔과 또 보호  자를 갈망케 하고
B.예수님께서 택자의 유일의 지도자와 왕권적인 주권과 유일의 보호자이심을 알게  하고 이행이 되어지게 하여 신자로 전부의 피난처로 삼고 영원히 의종하게 하는            계시
④결론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공효(功 )가 택자에게 완전히 부가되어 그 리스도와 택자에 완전한 결합을 이루게 하는 계시

'이는' 이 계시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계시의 근본 주인공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데 신인양성인 그리스도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 반드시란 말은 예언적 필연성을 함축함인데 절대적 확연성을 가르친다.

'속히 될 일' 이는 기간이 짧다는 것과 그 일에 진도가 빠른 것을 의미하는 중에 후(後)자를 더욱 중심으로 함이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라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 받은 자로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사도나 차별별 없이 계시의 의무와 효과를 지행덕하게 하려고

'그 천사를' 그의 천사 곧 그리스도의 천사들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종들을 먼저 기록하고 그의 종 요한을 다음 기록함은 계시의 관계가 일반 순종하는 자와 일반인 것을 표시함이요 계시의 수전득자(受傳得者)다 종이라는 명목 하에만 가능하였다. 이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두 계시는 순종하는 자에게만 위하는 그리스도 계시적인 효과를 소유하게 되고 반면에 거역하는 자에게는 두 계시는 그에 대한 집중 사격적인 피해 입게 되는 원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지시하신 것이라' 원어는 에세바넷이니 상징으로 표시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런고로 본서는 문자적 해석과 상징해석을 요함이 구별되어 있다. 상징으로 된 이유는,

1.진주인 계시를 상징의 곡간에 간직함이요

2.가치를 알고자 간절한 겸손한 자에게는 여러 보여 알게 하고 더욱 깊이 인식되게 하고 교
만한 자에게는 들어도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함이요

3.이 예언을 해하려는 악도들에게 도실 당하지 않도록 간직하는 것이다.


■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 본 것을 다 증거하였나니라'

이는 같은 일을 3가지 순서로 이루신 그것을 세 가지 방식으로 표시한 것이다.
①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②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완성하신 그 실정을
③요한이 본 그대로 다 증거 한 것이다.
④이는 근본이 영원 전 하나님 의지에서 시발되었고, 선언한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역사세계에서 완성하셨고 이 일에 대한 효과를 택자에게 은혜로 소유시키기 위하여 사도 요한에게 일차 다 보이고 또 기록하여 성도에게 알린 것이니 이는 그 권위성 신실성이 완전 무결함을 밝히 보여 택자로 하여금 만홀히 여겨 스스로 속지 않게 하려 함이다.

■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3절 '이 예언의 말씀'  계1: - 22: 까지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①'읽는 자' 단수로 함에 대하여
A.당신은 성경의 희소(稀少)로 개독(個讀)을 못하고 공독(共讀)함으로 한 사람이 읽고 많은 사람이 들음이라 하고

B.강단에서 봉독함이니 단독적 성경연구보다 공독(共讀) 공청(共廳) 공구(共究)함이 원리임을 나타냄이라고 하고  

C.강단 독(讀)의 상청(象廳)은 하나 그보다 여기나 저기나 독자는 하나님을 말한다. 고로 여기 단수로 말함은 성경은 개개의 생명양식으로 어디에나 반드시 개인 개인이 가지고 날마다 양식으로 먹어야 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구경에서 상식적의 것으로 구원의 노정으로 생활의 법칙으로 ....... 모든 것이 간직된 보고로 ...... 새명의 양식으로 ..... 영과 생명으로 개인 개인이 먹어야 할 것을 말함이다.

②'듣는 자들과' 여기 특히 복수로 말함은 특히 공예배(共禮拜)와 공학(共學)을 가리켜 말함이니 곧 전통적인 교리를 후진들은 성경 다음에 권위를 두고 참고를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요, 일반적으로는 복음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고로 옳은 교리를 무시하는 자는 자기가 쓸 수 있는 건전한 터를 포기함과 같은 손해이다.

③'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성경을 수독(受讀)하는 자와 옳은 교리를 받은 자가 복되려니와 이 진리와 동행하여 행할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모시고 떠나지 않는 자가 복 있다 함이니 계 3:10과 마 7:24과 같다.

'때가 가까움이라'
①미구(未久)에 발생된 일과 주 재림과 천국의 때가 가까워 옴을 말함이요

②성도의 계시 구행(究行)으로 준비할 기간이 짧다는 말이요

③하나님의 신속한 은혜 역사를 받을 순서 순서가 임박하였으니 시간 시간마다 받아 새로워지고 부요해지라는 권면이다.

■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4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①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외에도 (골로세, 히에라폴리스, 막네시야, 드로아 등) 여러 교회들이 있었다.

②특별히 7수로 말함은 하나님의 완전수니 이는 또 거룩을 가르킴이다. 그런고로 이 일곱 교회는 지상에 예수님 승천으로부터 재림 때까지의 전 교회를 총칭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고로 이 계시는 지상에 있는 참 그리스도 교회에는 다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도 게시고 전에도 게시고 장차 오실 이' 이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성과 그 역사를 나타내는 성호이니 여호와라는 성호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곧 자존하시고 창조하시고 계약 이행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킴이니 모든 피조물에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전 건설과 보전과 치리를 홀로 주관하시는 성부(피조물의 총 현상은 성부 한 분으로 말미암은 과거도 미래도 동일)

'그 보좌 앞에'  일곱 영 성부 앞에 성령이라 함이니 특히 7수로 말함은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성령님임을 특징으로 하신 것이다. 완전이라 함은 전지 하신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성령, 거룩이라 함은 자체가 거룩할 뿐 모든 것을 구별하여 죄를 미워하시고 의를 사랑하며 모든 불의를 파하고 의와 성결을 건설하시는 구원 완성자이심을 나타내는 성호이다. (4대 完合 = 1.자(自)완전 2. 지(知)완전 3.능(能)완전 4.구원역(役)완전)

■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5절 '충성된 증인'  성자님을 말함이니
①성부의 맡기신 사명을 완전히 성취함이니

A.제사장직은 친히 보혈로
B.선지자직은 도성인신과 행동계시와 말씀계시로 3위의 하나님과 그 뜻을 밝히 증거하셨고
C.왕직은 외적으로는 죄악과 사망과 마귀를 격멸하여 보호하시고 내적 치리는 중생케 하며
    절대 순종자로 삼으심으로 충성되고

②자신으로 선지 사도로 친히 말씀으로 선지직을 완수하신 선지자 예수님

증인 ...... 1.마11:27, 자(子)외에 부지자(父知者)무(無)
  2.요18:37, 진리 증거 하려 왔노라
  3.요14:6, 나로 말미암지 않은
  4.요14:8, 아견(我見) 부견(父見)
  5.딤전6:13, 빌라도 증거
  參, 우리도 그리스도와 증인 역(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직(三職)을 그 방식대로 본받아 행하여야 함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첫 걸음을 걸으시고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모든 사람까지를 사망에서 구출하여 부활시키실 그 일을 위하여 사활 하심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이심을 가리킴이다.
(1.요14:19, 세상아불견여아견 (世上我不見 汝我見), 2.요6:40, 마지막 살려 영생케)

'땅에 임군들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왕직을 가르킴이니 지상과 영계에 최고 주권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권세자의 통치자도 되신 예수님이니 천년왕국시대만 아니고 현대에서부터 영원까지다. (마28:18 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①성부를 바로 알아 영육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바로 믿어 그에게만 소망하고
②또 성령을 바로 알아 그 앞에서 자기의 정체를 바로 가지며
③성자를 바로 알아
A.삼 성직과 부활과 보호에 소망을 바로 가진 자로
B.또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주로 해당된 택자에게만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평강이 임할 수 있는 고로 이를 기도한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요한이 그 중심에 소원하는 기도의 제목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 4-5에 기도에 대상을 찾아 볼 수 있다.
대상은, 1.성부, 성자, 성령   2.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3.자아

이 삼각(三角)을 대상으로 하고 이 대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관계를 점점 찾아 감사와 도고와 간구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도 이 지식에서 산출된 기도라야 한다. 그런고로 기도의 무응답은 여기에 부합되지 아니한 까닭이 많고 장기간에 기도에서 응답 있으면 하나님이 더디 들으심이 아니고 기도변화가 더디었던 관계일 수가 많다.

그런 고로 기도에는 이 삼각에 유의함이 속성(速成)을 가져온다. 이 삼각이 구비치 못하여 치우칠 때에는 직접 효과는 없다. 또 기도하는 자체로, ①심언합일(心言合一)로 ②언행합일(言行合一)로 하여야 하나니 전 인격과 전신이 합일된 그 초점에서 발생된 기도가 참 기도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자존케 하는 우상 또 이웃을 기도 받을 대상으로 우상으로 만들기도 쉽다.

기도의 요소
고난(苦難)
①믿음으로 회개 사59:2 너희 죄악이 하나님과 사이를 내었고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아니하게 함이니, 잠21:13, 가난한 자에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벧전3:7, 부부 화합하여야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리라  요일3:21-23, 자책할 것을 고치고 계명을 지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음  요15:7

②1.열심히, 눅22:43, 44 사자의 힘을 입어 한혈(땀과 피)의 주님 기도,
  창32:25-26, 야곱의 얍복강 기도  

2.믿음, 눅17:5 겨자씨, 막11:23-24 과거사로, 요나2:7 청허(聽許)를 확신

3.말조심, 전5:2, 함부로 급한 마음으로 말하지 말 것, 천우신(天佑神)이요
여재지(汝在地)니 말을 적게 하여라

4.겸손히, 마15:27, 가나안 여인, 개도
  마6:2, 은밀히 기도
  약4:3, 정욕적 기도를 피할 것
5.인내, 단6:13과 22, 다니엘의 최후까지의 기도
눅2:25-36-38, 시므온과 안나의 기도
왕상18:43-44, 갈멜산 엘리야의 기도


기도의 제목

1.성부은혜
創造恩惠 豫定恩惠 聖子恩惠 聖神恩惠 聖經恩惠 求 前始五恩 聖父께 五恩化하여 重人에게 나타나도록

2.성자의 은혜 2가지 대속
A.부패성이 묘 중에 매장된 자같이 전멸하여 주시기를
B.중생된 나로 그리스도와 같이 승리자 되도록 성자에게 구할 것

3.성신의 은혜
성부 성자 성경의 은혜를 완수하도록 감화 감동 인도하여 주시기를 성신에게 구할 것

4.회개의 평강 .....
마5:4 애통자, 사1:19 미산식(美産食)

수호의 평강 .....
요17:11 부명(父名) 보전, 눅21:18 두발 ..... 無傷
유24, 보호하사 거침없게 하시고 영광전무흠자로 즐거운 자로 세우실 것
눅22:31-32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나 주 기도하심으로 不落
롬8:37-39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 남음이 있음.
딤후4:17 바울의 동행자 에녹 노아 아브라함 皆 동행자고, 참 인격 대우했다. 우상
적 하나님을 버릴 것, 평소 동행 인격신으로 대접의 습관을 가지면 환란
시 믿어진다.
부활의 평강 .....
히11:35 더 좋은 부활 원(願) 악형 구차 불면(不免),
빌1:23 멸세 그리스도 동거 원(願)
고후5:8 담대히 소원은 몸 떠나 주 동거하는 것
빌4:4 옥중 만희(滿喜)
고후4:16-18 환란자 쇠(衰) 不落心하고 속사람 새로워지고 기뻐함

기도에 대한 주 권면
눅22:40-46 불입시(不入試) 위해 기도  
눅21:36 말세 제사(諸事) 피(避), 인자전립(前立)하도록 항상 경(警) 기도
눅11:13 성령 받기 위해 기도
행1:4-과 13, 성령의 권능 얻기 위한 기도
막9:29 축귀(逐鬼) 위해 기도
딤전4:5- 거룩 되기 위한 기도
마9:38- 일꾼 위한 기도
마6:3-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
계5:8= 기도를 향으로 (신부의 단장)

다니엘의 사자굴 출(出)이 3청년 화승(火勝)출이 엘리야의 승리가 바울의 로마 선교순교가 예수님의 3년 증거가 골고다 십자가 승리가 다 기도의 결과였던 것이다. 기도의 승리는 신앙의 승리요 기도 그것이 곧 신앙이다. 그것이 곧 은혜이다.




■ 1:5 하반절로 6절.

성도의 5대 구원

1.'우리를 사랑하사'
사랑은 속죄의 기본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 구원의 관심과 희생이 없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사랑의 발동이요 극치이다. 이 사랑은 정욕적 동류적 혈통적인 보수적인 것이 아니고 순 희생적의 것이니 평가적 사랑이다. 전기(前記) 3종에는 땅에 속한 것이니 하늘에서 온 사랑에 소속되지 못하면 사망의 열매를 맺고 그 존재 운명이 너무도 짧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사랑이 아니면 사모도 여수(與受)도 말아야 한다. 성도가 천국에 소망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도의 사랑이다. 곧 이 사랑은 생명을 심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의 의나 우리의 가련이나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무조건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이다. 그런 고로 생명을 자라게 함도 사랑이요 죽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첫째 아담 둘째 아담의 실례이다.)

2.'그 피로 우리를 해방하시고'
1)죄의 값은 사망이니 생명인 피라야 대가 지불이 되고
2)하나님의 계명 불순종에서 해방이니 순종으로만 대가 지불이 됨 (빌2:8 참조)
3)신인양성으로 신성이 소유한 인성이 죽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으로 그리스도의 한 피로
   모든 택자의 해방의 대가가 되고도 무한이 공로가 남아있음  
4)해방에는 각종이 있나니 무식 해방에 유식, 빈궁 해방에 부요, 무능병 포로 근심과 모든 불안 기타 여러 해방들 있다. 사람은 이것에 하나의 해방도 행복감할 뿐 아니라 교만도 하며 진력도 한다. 그러나 이 해방의 운명은 짧다. 그리스도 피의 해방은 사망 죄 마귀 자식 지옥 세상 무지 빈 무능 불안 부패의 자아 등에서 해방되어 새 창조의 것 곧 영원한 하늘에 것으로 해방 받나니 그 가치는 영원하며 무한하다. 그런 고로 여기 대한 감사도 노력도 지사로 충성하여야 한다.

3. 6절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1)'그 아버지 하나님' '그' 라고 함은 사랑하심과 해방이 그리스도와 아버지와 성령님의 협동으로 된 은혜인 것을 말함이다.
2)'위하여' 라 함은 구속의 본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이것이다. (엡1:6, 계2:3)
3)인생의 생업은 각이하나 생업의 생득적 요소는 각유하다. 이는 일반 은총으로 특수은혜의 소속에 것과 혹은 멸할 세상 것으로 교환하게 하신 것이다. 혹자는 땅에 것으로 혹자는 하늘에 영원한 것으로 교환하게 되나니 1.은 영원한 실패 2. 1은 영원한 성공이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함이라 함은 땅에서 모든 성공되는 교환의 생활을 하게 하시는 축복이란 말이다.

4.'나라와'
①하늘나라를 말함이니 이 나라는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백성은 해방받은 자들이다.
②하나님이 영이시니 성도들도 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부요와 조직과 정치 등에 충만하심과 동참하는 은혜를 받은 자이다. 다만 질은 같고 양은 다르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있다.
③왕과 국(國)과 민(民)의 운명은 하나이다. 그런 고로 하나가 복되면 모든 것이 복되다 세상나라는 흥패의 변동이 자주있는 고로 참혹한 일들을 본다. 패국의 왕후족(王侯族)은 그 나라가 변동될 때마다 비참하다. 이 나라의 행복도 투쟁하는데 여호와의 나라는 영원하며 변동이 없이 모든 왕민의 운명도 일정되면 불변한다. 얼마나 주력하여야 할 일인가? 이 나라를 참 아는 자마다 자기의 세상과 나라를 이 나라에 투자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5.'제사장으로 삼으심'
①제사장은 모든 무리의 대표 혹은 중보격으로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전무로 하는 성직이니 신정국가에는 최고영(榮)직이다. 웃시야 왕은 억지로 제사장 노릇하다가 벌수(罰受) 문동
대하 25:16-21
②이 제사장직은 천국에 예루살렘에서 되는 성직이니 그 임기는 영원하다.
③이 직분은 천상천하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와 그 사이에 선 중보격적인 제사장이니 만물로서 오는 모든 영광을 받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만물에게 빌어주는 고귀한 직분이다. 땅에 무엇으로 이 류에 빛체일 지위가 있는가? 이를 본 자 마다 세상적 지위의 하나에 재판도 받지 않는다. (엡1:23)
④제사장은 섬기는 일이니 섬기는 직분은 섬김을 받는 그의 가치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한 국민으로 대상을 받아 섬기는 직 대통령도 영광이라 할진대 그 섬기는 대상이 영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되신 그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될까? 그런 고로 참된 신자는 이 오대 축복외에 세상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이를 감당하기 위하여 날마다 노력하는 생활에 잠긴다.

6절하
'그의게......' 5대축복을 주신 하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하나님이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계속하기를 조력적인 기도가 아니다. 그는 불변이시니 그 영광과 능력이 있기를 원하는 기도가 아니고 불변적으로 역사하시는 그 영광오가 능력에 찬동 희환(喜歡)의 동의자 동역자 되기를 원하오니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이다. 그런 고로 이는 객관의 변화를 구함이 아니요 주관이 변화하여 객관에 추종자 되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원하노라 아멘' 함은 중언(重言) 함이니 원하고 원한다는 간절을 표하는 것이다.
'볼지어다'  일반 신자와 특별히 세상 미련을 끊지 못한 자에게 세상과 인생 최후의 광경을 다음에 보이면서 택한 자를 경고하기 위하여 보라하는 냉엄한 교훈이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하려 오시는 그리스도에게 대한 것이니 무지자는 심판에 대하여야  무감각이나 참 유지자는 지혜의 분량만치 심판에 대하여 심각한다. 인생 최후 심판을 계시하는 재세의 심판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시 보응이 없음은 심판주의 관대성을 보임이오 자지는 않는다. 막11:13- 비유같이 영접할 준비는 하건말건 심판을 지체하지 않는다.

7절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1.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권세로 충만한 그 분위기로 오시는 것을 의미함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1.유대인과 이방인, 신 불신자, 택 불택자 전부가 본다 함이요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1.당시 로마 병정들
2.고금에 불신자들
3.못박게 된 원인은 택자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함이나 여기는 원인을 말함이 아니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해적하는 자를 가리켜 찌른 자라고 한 것이다. 당시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고후16:22- 에 바울이 말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1.이상에 주의 재림을 본 자들의 당하는 형편을 말함이니 모든 사람이 재림의 주를 보고 회개할 수 없는 통회함을 가리킴이니 통회하는 이유는
A.모든 소망이 끊어짐이요
B.수고와 소유가 헛됨이요
C.범죄의 보응은 영원한 형벌을 맞이 하게 됨이요
D.가장 애곡됨은 과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예언과 준비에 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택한 자에게도 없지 아니하리라고 생각된다. 살전 5:2-3은 주재림시 생명으로부터 모든 소유를 도실당하는 것과 현 전 행위가 심판 받을 것을 말하고 마25;37과 44에 놀랜 일들은 의인이나 악인이 모두 재림의 주를 평상시에 예측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놀래는 것이다.
누가 주의 영광을 볼 그때에 느끼는 사실대로 오늘 경애할 자가 있을까?
그런고로 이 그리스도 관에 우리는 얼마든지 궁구하여도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고 정지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도 찬송도 영교도 영원히 존속할 것이나 3 위한 고난의 생활은 세상 뿐이다. 이 점에 유의하여 주님으로 말미암는 고난과 희생은 그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하리라 아멘'

1.이는 그러하리라 하는 말은 중첩으로 한 것이니 본절에 사건들에 확고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2.재림에 대해 각설이 많으니
A.마28:20을 근거하여 주님의 영으로 동거함이 재림이라고도 하고
B.성신강림이 (행2:1 이하) 재림이라고도 하고
C.개인별세로 주봉(主逢)을 재림이라고 하고
D.재림이 없다고 하는 자도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재림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
   나 이들은 다 성경적이 아니라 행1:9과 살전4:16과 벧후3:8-10과 유다14에 주님이 올라
   가심을 본대로 재림하실 것과 사도들 말년에도 재림이 미래에 있는 것으로 말하면서 이
   상 여러 설들은 잘못됨이 확실하다.

3.재림에 대한 시일은 인자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심에는 재림을 방종하지 말 것과 시간마다 주 맞이 할 준비로 시간으로 경성하여야 할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심을 보이는 성구이다. 이는 (성도의 구원준비에 긴장과 강권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실효과인 성화와 충성에도 크게 유익한 것을 마27:49에는 말했다.) 이 시일에 대한 경성이 주님의 모든 소유를 맡기움을 받는 자격으로 말했다. 그런 고로 재림을 의심케 하는 것을 우리의 신앙생활을 크게 손해케 하는 악령의 역사라고 하지 아니 할 수 없다.

8절 '알파와 오메가'  는 헬라어 시종 양 문자인데 하나님의 영원 불변성의 성호이다. 여기서 몇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약속이행에 불변이시오 고으이 심판에 불변이시오 그의 나라와 영광이 불변하시다.

1.'주 하나님이 갈아사대' 함은 그리스도에게는 그 나라가 영원히 불변함으로 큰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을 보여주어 본 요한은 그 나라가 불변인 고로 불행자의 영원불면을 보면서 자기의 입장을 한없이 행복되게 여기면서 내 주 하나님이 말하신다고 주라 말을 먼저 둔 것이다. 그 나라에 불변은 영원 불변하다는 것을 말하시고

2.'전능하신 자라'  하는 성호를 끝에도 말함은 영원 불변의 나라도 통치자가 전능하니 그 불변을 변개할 자 없는 것을 또 강하게 말하신다. 이는 택한 자로 정함이 없는 세상으로 인하여 영원불변한 나라를 손해보는 망령된 일을 엄금한 사람이니 그 나라에 후회가 전능하신 자에게 막힌 불가능한 장벽의 답답함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혜자에게는 불변하니 좋고 의심하였던 자에게는 불변하니 불행하다.

9-11 에는 그리스도의 나라이 임할 때에 필연적인 환란과 또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시기와 형편이 기록되어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오'

1.이 계시를 읽는 모든 택자는 요하노가 같은 입장이요 계시에 대한 애은(愛恩)도 의무도 같다 함이요
2.택함과 구속과 성신의 은혜도 질적으로 같이 받았다 함이요 부패성도 중생도 같다 함이니 이는 모든 형제에게 환란의 위로와 고난에 충성과 고독에 인내를 요한과 같이 하기를 권하는 것이다.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1.예수님의 나라가 임하면 임한 것만큼 환란이 일어나고 환란에는 목자되신 중보되신 하나님게서 모든 것을 은혜로 유익되게 하여 주실 줄 신망하고 그 법도 안에서 인내하는 것으로만 승리하는 것을 말함이다.

2.'예수의 환란' 이는 '엔' 예수의 환란이란 말이니 예수 안에 환란이란 말이다.
①예수 안에 환란은
   A.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 있는 환란
   B.하나님의 권능의 보호 안에 있는 환란
   C.구원 순서에 들어 있는 환란
②예수님을 쫓는 자는 면할 수 없고 반드시 받는 환란인 고로
③환란 봉시(逢時) 필봉(畢逢)예수님인 고로
④예수님을 신애하는 열매를 맺기 제일 좋은 환경과 경우가 환란 있는 때와 곳인 고로
⑤환란은
   A.환란은 지옥과 천국의 투쟁의 표현이니 이는 외부적 역사요
   B.중생자와 부패성의 투쟁이니 이는 내부적 역사이요
   C.성신의 역사와 악령의 미혹의 결과이다.
   D.전법은 대내전에서부터 대외전으로 승리하여야 한다.
     대내전
     ㉮심령에 구속의 감사와 소망의 기쁨과 신의(信依)의 평강으로 무장한 확신을 가지고
     ㉯불만과 낙망과 근심을 끌어오는 의심을 격멸하여야 한다.
     대외전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에서 주관하는 것과 공중에 악한 영과 기타 모든 불의를 하나
님의 계시 말씀으로 법전을 삼아 지적하고 자타와 강약자와 수친(讐親)을 구별하지
말고 대적으로 똑똑히 정하고 싸워야 한다.
        ㉠교훈적인 투쟁은 먼저 자기의 들보를 뽑고 후에 형제에게 있는 티를 뽑는 성질    로 하되 특히 자기와 동류이니 동정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증거적인 투쟁 하나님의 사신인 확신과 영혼을 구원코저하는 사랑을 가지고 승
   리와 효과는 하나님의 능력에 맡기고 시간은 세상으로만 제한하지 말 것 그런
   고로 옳은 증거자는 담대함을 반드시 가져야 하고 가지게 된다. 이것이 없는
   것은 증거자의 그 요소가 불충분한 연고이다.
        ㉢수절적(守節的)인 투쟁에는 주와 결합된 사랑과 이 환란으로 주를 사랑할 수 있
   는 기회와 주를 위함인 것과 말세의 대면(對面)과를 보면서 먼저 하나님을 두
   려워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순서를 밟고 세상을 잊어버리며 전 소망을 천
   국으로 옮기고 요15:18과 같이 주님과 나와 동사건(同事件)으로 주님 받으시는
   그 고난에 내가 참여하는 것으로 쉬는 곳이요 후궁(後宮)인 것을 확실히 발견
   하여 바울이 딤후4:17에서 주께 받은 강건을 먼저 받고 고문과 고행이 단기간
   에서 장기간 원(願)으로 여기서 순교로 여기서 독특한 고심(苦深)한 순교를 원
   하고 원하여야 한다. 이는 주를 사랑함으로 병난 자의 유일의 기쁨인 길인 연
   고다. 순간이라도 면고(免苦)에 생각은 대적(大敵)이다.

   E.환란에서 얻는 유익
     1.인간은 환란에서 믿음을 얻고 환란에서 겸손을 배우고 곤고에서 인내를 배워 사람
이 바로 된다. 시119:67 '곤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드니 이제는 주의 말
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하였고 시119:69-72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하 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직히리이다 저의 마음은 살쩌 지방같으나 나 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다 이로 인하여 내가 율 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금은보다 승하나이다 라고 하 였다 야고보는 1:2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게 여기라고 하였고 바울은 롬 8:18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다. 스펄 죤은 평안은 고난보다 더욱 시험거리 된다고 하였고 성 베르나르드는 주여 나에게 노하소서 하였고 잉나뒤우스는 검을 가까이 하라 천국이 가까워지나니라 고 하였고 인간은 양같아 평안하면 산거(散去)하고, 풍우같은 환란에는 신앙과 주의 품에 돌아 온다. 고난 중에 선을 사모도 선행연성(鍊成)도 발휘도 하게 된다. 또 신인(神人)에 게 동정을 받을 만한 가장없는 미가 생기고 전금(全金)같이 겸손하게 된다. 모진 바 람 낭떠러지에 핀꽃이 아름답고 시장에 황금에 융통이 없다. 모시인은 고진감래요 흥진비래라 하였고 리스킨은 평화는 우리의 운명의 산물도 원함에 있는 것도 아니 고 죄와 수치와 압제(押制)자와 부패케 하는 것을 정복함에서 온다고 하였으니 이 는 성경적이다. 또 성도는 환란의 결과로 기쁘고 하나님이 도우시니 또 평안하다. 루터는 웜스회의 참석에 갈 시, 무력 보호자 스팔라틴이 웜스는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 할 때 루터는 웜스에 많은 게와장과 같은 많은 마귀가 있어도 하나님이 도우 시니 들어가겠노라고 하였다. 그는 임종 시에 남긴 말은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아니 하였노라고 하였다.
환란은 성화와 천국상급에 가장 수입 많은 대목장날이다.

3.'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①그리스도의 나라는 성령과 진리의 나라이니 악령과 불의의 세상에 성화적 천국으로  -
   의행적(義行的) 천국으로 임할 시, 필생환란이요 우리는 인내로만 그 은총을 받게 되는
   고로 천국으로 인한 환란에 인내로 완성하는 그 승리 속에 동참하게 된 것을 만족히 여
   겨하는 말이다. 인내 이유, 신애(神愛) 확신 고(故)로, 자무지무능(自無知無能)고(故)로,
   책임진 주께 맡겼는 고로, 조성중인 고로, 순서와 완성은 천국에 있는 고로.


:9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밤모라는 섬에 있었드니'
1.'하나님의 말씀과'  중심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특히 구별한 것은 선지적 역사와 교사적 역사 곧 진리를 파수하여 성경관과 교리와 신조를 바로 세우고 속화와 이단을 용납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음과 라는 뜻이오

2.'예수의 증거를 인하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위계자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활을 나타내는 생활과 복음을 전파하는 그 일로 인하여라는 말이다.

3.'밤모라는 섬에 있었드니' 밤모는 에베소 서편 적은 섬인데 항해에 14시간 쯤 격한 곳으로 죄인들은 정배보내는 곳이었다. 정배보내는 곳이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만을 인하여 세상에서 정배 갈 정죄받음은 천국의인 세상국가에서 버림은 천국등용. 인간 배척의 고독은 천국환영과 주와 동거요 세로(世路)와 무대가 빼앗긴 것은 영통(靈通)과 천계(天界)의 무대로 바꾸어졌던 것이다. 이 얼마나 허무로 진(眞)에 나아감인가? 우리는 환란도 고독도 배척도 기쁨으로 맞이 할 것과 또 주로만 말미암은 입장인지 주의할 것이다.


10절
'주의날'  원어로 '헤체리아케 헤메라'니 여기만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지키는 주의 성일이다.

1.이는 구 이스라엘 안식일이 신 이스라엘에 와서 주일로 변개된 것이다.
2.창17:12 할례를 제8일로 신조(信組)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은 그때부터 주일을 내표한 계시말씀이다. 또 히4:7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날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닐넜으대'라는 말슴은 주님의 부활하신 주일로 변개될 것을 예언함이다. 안식일은 역사창조를 필한 안식일이요 주일을 특수구원을 완성하시고 영원 안식에 들어가는 날이다.
잉나듸우스는 안식일 지킬 것 아니고 주일 지킬 것이라고 하였고 베드로 복음이라는 경에는 주일이 밝아오매라고 하였고 바나바 경에는 주님 부활하신 제8일을 기뻐지켜야 된다고 고전16:2 주일에 연보를 하여 둘 것을 말했고 롬14:5 '혹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라고 한 것은 안식일을 주일로 확정하라는 말이다. 이유는 당시 유대 종교법에 안식일 닭모이도 줄 수 없는 엄령시대이니 이 날 저 날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 날에 대한 시비가 있는 것은 생명을 건 투쟁이니 이 엄법을 담대히 거부하여 논단할 만큼 주일도 변개된 것이 확실하였던 것이다.

'성령에 감동하여'  이는 원어로 '에게노맨, 에프뉴-마티'인데 그 뜻은 성령 안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관습적 상태가 아니고 일반적 입신도 아니고 성령의 충만 안에 있어 전 의식이 영감으로 명랑하고 새로워 성령의 큰 위력을 힘입어 영감화되었던 것이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내 뒤에서' 이는 자기가 임에 경험한 영감이나 체험한 일들이나 자기에게 주관화된 진리가 아니고 아직 자기로는 미달된 경험과 체험과 주관 (중생자의 주관)을 초월한 면에서 나타나는 영감을 말함이니 언제나 영감 만진(滿進)과 성화향상과 신앙장성에는 주관이 아닌 객관을 무조건으로 용인, 혹은 순종으로 되나니 이는 주관을 초월한 객관이기 때문에 주관을 객관에게 굴복을 시킬 때에 성립되고 객관은 주관화되고 그 일은 경험과 체험한 일이 된다. 그런 고로 본문 12-13에 '도리킬 때에' 새로운 주님과 자기와 교회를 발견하였다. 이는 지금 경험 못한 새 신종(信從)에서 새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였다.

'나팔소래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큰'은 3대건(大件: 1.만인지건/萬人知件/ 2.승리 3.실패)이니  
1.만인과 만물이 다 들어야 할 중요 경고임을 가르킴이요 2.경성하여 무장으로 준비하고 긴장한 사람에게는 구원과 승리요 3.불연자(不然者)에게는 실패와 후회되는 사건인 것을 상징한다.  

11절은 임에 요한이 본 것과 앞으로 볼 것을 기록한 것 곧 이 계시록을 7교회 곧 승천 후 재림시까지의 지상교회 전부에게 전하라는 말이다.

참고. 요한의 받은 영감의 형태
1.영감될 때에 자의(自意)를 잃은 가영감(假靈感)들이 많이 있다.
2.요한의 받은 영감은 영감이 주동세력은 되나 자의식을 정지하지는 아니하고, 오히려 올바로 감동하여 더욱 명랑케 하여 순종케 하신다. 사무엘도 영감 들릴 때 엘리에게 찾아가서 물어 본 일이 있고 바울이 3층천에 갔을 때에도 자의식이 긴밀하였던 것을 성경에 말했다. (고후12:2)
3.신비주의 중에는 2종이 있나니
①은 객관주의라고 하면서 순전한 주관주의니 자기의 소감(所感)되는 대로 깨달아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점점 탈세(脫世) 탈아(脫我)로 이상한 경험과 감각에 나아가려 함이니 이는 신령계를 찾아 가노라 하는 추상적 목표를 정하고 일분간에도 수백번 공상과 연상으로 맹주(盲走)하는 주의니 그의 결과는 자타의 비참이다.
②는 자아인 주관을 인증한다고 하면서 전혀 자아 부인의 신비주의니 전연 피동으로 자의식의 자주성을 잃고 신인화합의 묘경(妙境)에 들어가서 아주 취한 듯이 무아로 되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영감과는 다르다. 기독교 영감은 충만해갈수록 자의식이 명랑하고 강건하여진다. 그런 고로 하나님과 자기와 모든 피조물에 대한 관찰도 올바르고 거기 대한 의무도 충실하게 된다. 신비주의는 전혀 악령에게 끌여 자의식을 그 영에게 완전 정복을 당하여 유기적이 아니고 전혀 기계화되는 것이요 또 자부패(自腐敗)의 공상에게 끌려 탈주(脫走)함이다.
③자(自) 부인은 똑똑한 자아 주관이 성경적인 객관에게 절대복종을 가르킴이니 점차적으로 그리스도화된 똑똑한 자아 곧 신자(神子)의 실력가이다. 세기(世棄)는 재세성(在世性)을 천국생활인 신법대로 사는 것이니 세법대로 사는 자와 싸움이요 진리로 세상을 정복함이요 하나님 대적세에서 하나님 기뻐게 하는 생인데 제일 기쁘게 하는 절정향진(向進) 산이다. 목적은 세상을 천국화하려 함이 아니고 전 소망을 천상에 두어 세상물질과 행사로 천국 부와 영광을 저축하며 옮기는 것이다. 세상 소망생(生)을 하나님 법대로 함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저축 아니고 천국 저축 주의만 고로 물(物)은 천국으로 옮기고 행위는 천국 이해 주력하니 세상은 차 올바른 영감은 피동적과 능동적에 결과로 되고 혼자 대상(對象) 분주 조용 곧 무제한적으로 되고 신비주의는 전혀 능동적으로 시작하여 하나는 주관으로 하나는 객관으로 둘다 정당한 자의식을 잊어 버리게 된다. 이 신비주의는 금식 긴장 최면술 무흥(舞興) 등의 산물로 되는 것이 많다. 성령 안에 있는 자에게는 과도기 혹은 순간적 시험을 받는 일이 있다.
성 데레사는 입신 5, 6 시간 무감각으로 된다고 하고 산다싱은 입신하였다가 깰 때에 몸을 벌이 쏘아 부었으나 몰랐다고 맡은 예배 시간을 입신으로 지나 버렸다고 하는 것을 건전치 못한 신비주의라고 하나 이는 건전한 신비주의도 이럴 수 있다. 기독교는 신비와 진리의 부합이니 영감과 교리와 겸전하면 이는 건전한 신비주의 참된 기독교이다. 신령한 은혜가 없는 교리 뿐이라면 이는 참된 기독교는 아니다.
산다싱같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의식이 정지됨이 아니고 바울이 입신 시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함은 자의식이 영계 관찰에만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다싱은 연옥설을 말한 것이 성경적이 아니다.


요리(要理)
1-20절까지 구원의 길의 순서

1.5절하반-6 ...... 5대 은혜 1.애(愛)  2.해방   3.천부위생(爲生)   4.국(國)   5.제사장
이상 5대 은혜를 받고 이 은혜를 감당함에는 다음같은 주의와 순서가 있어야 한다.

2.7절-8절 은혜의 주님으로 못 맞이한 사람은 다음 순서 심판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고 그 관계는 영원하나니 전자는 영복 후자는 영화(永禍)

3.4-5절상반 성부의 은혜와 평강 성령의 은혜와 평강 성자의 은혜와 평강을 곧 3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나니 여기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소망하고 바로 관계를 가져야 한다.

4.1-3절 특별 계시와 보통 계시의 전응원을 받아야 하나니 받는 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한다. 갱언(更言)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팔린 자유없는 종으로 무조건 순종할 때에 양 계시는 그의 유익만 되게 한다. 신속히 이루는 각양 유익을 다 소유하게 된다.

5.9절 이상에 합한 생활을 하게 되면 환란과 버림과 고독과 궁핍을 가지게 된다.

6.여기에서 또 이상 생활의 계속(主日守:주일지킴) 할 때에 성령의 충만을 입었다. '뒤'에서 소리가 들였다.  .....  이는 아직 믿지 못한 깨닫지 못한 소망하지 못한 사랑하지 못한 각오하지 못한 실행하지 못한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 세계를 점령하라고 한걸음 전진(前進) 곧 향상에서 부르는 운동이다. 여기에 신종(信從)으로 나아갈 시 일층 자란다.

7.12-17절
①교회의 귀중성
②교회내 소유인 인자(人子)의 주는 기업
③교회 입(入)할 자격 성화 주시기 이해 제사장 예수님
④성화 입으려 할 시에 대적 다유(多有) 고로 왕권의 수호인 예수님
⑤교회 내 입(入)할 인격과 내적(內積)할 소유 전부는 거룩하여야 할 것으로 흰 머리털로
주는 나타나심
⑥이 준비에는 각양 난점 억울한 것 다유(多有) 고로 모든 비밀과 사정을 다 아시는 불꽃
같은 눈을 가진 주님으로  
⑦최강한 주님으로 경고하기 위해 주석 발로
⑧또 위로하기 이해 물소리 같은 음성으로
⑨은사교권(恩賜敎權)과 기본교권의 필승을 주시기 이해 옳은 손으로 잡으심
⑩절대 지공(至公)무사(無私)의 하나님으로 날선 검을 발하시는 예수님
⑪각 자기 반성케 하시는 햇빛같은 얼굴 가지신 예수님
⑫볼 때 기절이 될 만한 반성과 회개

이상의 순서를 통과할 때에 17-20까지 새 은혜를 받게 된다. 그 순서의 반복을 여러번하면 할수록 중생자의 신앙인격은 자라간다. 이 순서가 없이는 자라지 않는다.
⑬안수 축복
⑭담대주심 불변의 주로 위로 주심
⑮진리대로 일차 희생을 통과 후 완전한 것으로 신생 영존함에 확신을 더하심
?그리스도 인과 교회의 십자가의 비밀 곧 십자가로 완전 승리니 비결을 확실히 견해하게 하고

주해
12절 '알아보라고 도리킬 때에'
1.성신의 감화로 새로운 경고와 권면이 나타날 때에 청종하라고 새 지식 새 신앙 새 각오 새 실천에 길로 발족할 시에
2.나그네가 행진하여야 송구영신하고 등산객이 향상하여야 탈협진광(脫陜進廣)하며 등고와 신경함과 같이 기독교도 새길 새 세계에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극세극기(克世克己)와 그리스도와 천국을 영접하는 진보와 향상은 없는 것이니 기독교는 순종으로서 성공되는 것이다.

'일곱 금촉대를 보앗는대'
1.성신의 감화는 첫째로 교회의 귀중성을 보인다.   패
2.7수는 하나님의 완전과 거룩을 나타내는 것이니 지상에는 완전 무결한 것은 교회 뿐이요 또 지상에 모든 것은 교회와 교회 외에 것과 둘로만 구별되어 있다 함이니 하나는 영존하고 하나는 멸한다는 것이다. 교회만이 완전하니 사람도 모든 그의 소유도 교회 안으로 옮겨진 것만이 완전하고 영원하며 교회 외에 것은 있어도 없어질 것과 또 있다면 없는 것보다 더 불행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3.금은 보배로움과 장구성을 가리킴이니 인생의 참 보배와 영존에 소속한 것은 교회 뿐임을 보임이요
4.촉대는 세상을 불의의 어두움으로 간주하고 교회는 진리의 광명으로 간주함이니 교회의 지상의무를 가리킴이다. 그런 고로 만사물에 진상을 진리대로 들어내야 하고 모든 불의를 소멸해야 하나니 첫째로 하나님과 인생과 사탄과 죄악과 지옥과 성지(聖志)와 천국과 세상을 똑똑이 알려 주어야 하고 그 운동이 냉정하지 않고 사랑으로 뜨거워야 한다.
또 빛은 어두움보다 강하여 필승하나니 교회의 최후 승리를 기독자는 확신하고 일하여야 한다.


13절 '촉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1.촉대 사이는 지상 모든 교회를 주님이 총찰하시고 파수하시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전교회에게 보편적으로 임하시는 것을 가르침이요
2.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인 것과 또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설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받아서만 부요하여 질 것을 가리켜 인자 같은 이로 나타냈다.
3.인자같다 함은 순 인성만이 아니고 신인양성을 가진 그리스도니 사람같이 보이나 사람뿐만이 아니다.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시다.
4.인자로 나타남은 고후8:9 과 같이 근본 부요하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난하게 되사 그 부요로 택소자 (擇召者)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 특히 교회 사이에 인자로 나타나신 것은 지상 교회 생활이 끝나기 전 신종(信從)으로 이 부요를 완전히 기독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시려는 사랑의 예고이다. 기독자가 이 취리에 주력하지 않고 세상을 탐하는 것은 상술한 대로 기독자의 신종의 길을 걷지 아니함으로 성신의 지혜를 얻지 못한 까닭이니 근시와 소경같은 어두운 일들이다.


'발에 끄을니는 옷을 입고'

1.제사장직권을 가지시고교회 내에 상주하시는 그리스도시니 교회와 인자를 보이고 셋째로 나타나신 것은 온갖 소망을 보이고 그 소망을 내 것 삼는 구체적인 실천에 나아가는 순서를 나타내심이다.

2.완전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부요를 내가 소유하고 천국인 교회 내주의 영광을 누리고 사는 데는 그것들이 아무리 영광되고 부요할찌라도 자신이 못났으면 그것이 도로이 짐 아닌 짐 불행 아닌 불행이 될 것이다. 그런 고로 먼저 자신이 모든 것에 구비한 자격 곧 성화를 입어야 한다.

3.성화를 입는 데는 사활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안된다. 그리스도의 사활의 순종은 믿는 자에게 완전한 사죄와 칭의를 법적으로 제공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 성화적의 사죄 칭의도 완전히 성립 시키시는 능력이 있다. 그 방편은 범죄들 보혈을 힘입어 천부에게 고하여 부노(父怒)를 풀어드리고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입장에서 대속받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뜻대로의 생활하려고 노력할 때에 보혈과 성령과 말씀의 능력이 도우심으로 성화도 성결의 생활도 완성되는 것이다.

4.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나니라' 하심같이 육체적인 인격수양도 그 인격의 위대함도 사람들은 부러워하며 힘쓰나 광학다문(廣學多聞)을 힘씀) 이 사람은 유익이 적고 또 금생뿐이요 도로이 지옥의 형벌이 클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성화를 얻은 것은 금생과 내생에 이렇게 유익할 뿐 중대하니 얼마나 부러워하며 힘써야 할 것인가. 그 나라에 일들을 영원히 변동이 없으니 더욱 힘써야 한다.

5.칭의와 성화를 입은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제사장의 직권도 주신다.


'가슴에 금띄를 띄고'

1.넷째로 나타난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부요의 소망을 취하려고 성화입는 길을 걸으려 할 때에는 반드시 세상 불의의 세력과 마찰되는 일이 있고 또 초자연의 능력의 도우심이 아니면 걸을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고로 금띠를 띠신 것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함이다.

2.그리스도께서 왕으로 교회에 상주하심은
①전지 전능하신 권위로 지상 교회를 수호하시며 교회의 대적과 싸우시는 일을 하신다. 그런고로 성도는 담대하여야 한다. 교회 왕 되신 예수님은 1.사망의 권세와 2.사탄과 죄의 권세와 3.세상 모든 불의의 권세와 싸워 성도에게 영생과 영원한 성결을 보장하여 주신다. 그런고로 첫 아담과도 같지 아니하고 천사와도 달라서 영원히 타락도 없다. 또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권세도 주신다.
②교회를 다스리시며 지도하시나니 그의 명령하에서만 순종하여 명령에서 살고 명령에서 죽는 것이 교회의 생명이요 의무다. 또 그리스도인의 죄과를 세밀히 심판하신다.
③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일과 자(自)주장하는 일은 이 왕에 대한 역적이 된다. 나는 주님고 그 명령을 지키고 주님은 나를 지키신다.
④이상 일들을 위하여 교회 안에 상주하신다.

3.이 왕국(교회)은 세상에서 시작하여 영원히 존속한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영적이다.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이요 또 그에게만 통치를 받을 의무가 있다. 육은 세상나라에 영은 그리스도의 나라에라는 이분 국민론은 불가하다. 기독자는 영육이다. 그리스도의 피에 팔린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이니 세상 국민의 권위를 가질 권세가 없다. 다만 그 나라의 시민으로 그 왕의 명령 복종이 세상 국가 시민생활에 부합될 때가 있는 것 뿐이다. 그런고로 외견에는 세상국가 생활과 순종같으니 실은 그리스도 왕의 명종(命從)이요 또 그 나라 그 생활이다. '가이사에 것은 가이사의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게로' 라는 성구를 이용하여 육은 세상나라에 영은 그리스도에게라는 이분론은 불가하다. 기독자에게는 가이사의 것 곧 세상 국가의 것이 없다. 기독자의 영육과 그 생명이 다 그리스도의 피값에 팔린 바 되었으니 자기의 것이 아니다.


14절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1.예수 그리스도님 자체가 거룩하고 그리스도와 그 나라의 소속된 모든 것이 다 거룩하다는 것이다. 천국은 거룩이 그 성질 중 하나이다. 거룩은 구별함으로 성결하여진 것을 거룩이라 한다. 자체나 소지(所持)의 것이나 모두 거룩하여야 한다. 불성(不聖)한 것은 털끝만한 것도 용납하시지 않나니 거룩한 인격 거룩한 행위 거룩한 사물만이 천국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2.다섯째 순서로 보인 것은 모든 천국준비에 거룩을 그 성질로 삼아야 할 것 보인다.

3.거룩이라 하는 것은 구별함이요 의로워졌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거룩은 준비함에는 구별된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옛 것이 아니고 새로 지은 것, 고후5:17, 혈육의 사람과 중생인(人).....나는 중생인이다. 청음(廳音) 두 구별하고 보이는 일도 구별하라
(빌라도 예수 그리스도)
레11:3 쪽발과 새김질하는 짐승만 먹을 것, 사자굴 출(出)과 화출(火出)별세(別世)로 간주 노선 구별,
가견의 것과 불가견의 것을 구별할 것, 희락애락(喜樂哀樂)도 피상(彼象)에서 말고 깊이 영원의 것을 궁구하라. 금일 신학자는 별세시까지 사굴화중(獅窟火中)에 둔다.
①창조주와 피조물 ②신자와 불신자 ③세상과 천국 ④주님과 자기 ⑤계시말씀과 자율 ⑥성령의 생각과 육체의 생각 ⑦순종과 거역, 이 외에 것도 이와같이 모든 것의 구별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결이다.

4.눈같다 함은 그리스도와 소속한 모든 것이 재세에 구별됨으로 성결한 것을 말하고 양털 같다 함은 그리스도와 그 소속한 것들의 성결이 영원함인 영생을 상징한 것이다. (단7:9, 사1:18)

5.예화 --- 신앙생활의 총중량을 100프로 중 ①고집 9 ②야심 22 ③호예심(心) 18 ④종파자만심 14 ⑤자기지식자만 13 ⑥탐권심(貪權心) 11 ⑦진정열 15 ⑧애신심(愛神心) 4 ⑨애인심(愛人心) 3   계 백프로

6.복음의 구별
1)교권주의 --- 로마교는 구원을 교회에 의탁
2)복음주의 --- ①보편주의 --- 루터, 항론(抗論), 웨슬레파 등
1.루터파 --- 만인구원 불거부(不拒否)
2.항론파 --- 불전부(不全腐) - 만인구원 --- 협력 잔존(殘存) 능력
      주사(主死) 회복(回復) 은능(恩能)으로 완성
3.웨슬레/알미니안 --- 전부(全腐) --- 생득적(生得的) 구원요소 유(有)
      만인 은혈(恩血) 회복 증진
②특수주의
1.전택(前擇) ①택(擇) ②창조 ③타락 ④구속 ⑤구원적용 ⑥성화
2.후택(後擇) ①창조  ②타락 ③선택 ④구속 ⑤구원적용 ⑥성화
3.아미라드  ①창조   ②타락 ③구속준비 ④선택 ⑤적용 ⑥성화
4.수정한 아미라드 ①택자만 위한 혈(血)
정리: ①특별주의는 택(擇)에 둠
     ②만인구원설은 전도에 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전지성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리스도님의 지능이시다. 나타난 일과 비밀이 다 드러난다. 내 형편 사정 역,순경을 다 아시고 손해 피로 충성 진실 연약 환란 궁핍 다 아시고 의식주의 필요와 건강의 필요도 아시고 살리야 될 줄도 아시면서 사랑 아닌 것 같은 비합리 비과학적의 요구를 하시기도 권고도 또 독촉까지 하시기도 하신다. 무정하고 무자비 무지한 요구 같아서 오해와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은 고후8:9 나는 네가 요구하기도 전 모든 부요를 다 네게 준 긍휼을 가지고 너를 대하며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내외의 형편을 알고 없어서는 안될 순서와 또 장차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과거 현재도 그러하였고 미래도 그러하리니 선행하다가 피곤치 말고 역항으로 투쟁하라고 권면하시면서 위로 하시는 것을 보인다. 악인의 형통과 악령의 승리를 보고 부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지니 시90:5 저는 홍수처럼 쓸어가고 잠간 자는 것같으며 아침에 풀같다 라고 하였다.  시73:18-20, 골3:1 참조
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고 고후12:10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 강하니라 하였고 롬8:18 이제 고난과 장차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벧전1:6 시험을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하였다.

2.이중인격으로 주를 대함은 죄송할 뿐 크게 노엽게 함이며 악령과 만물 앞에 수치를 보임이며 또 주를 멸시하는 죄가 된다. 이중인격은 계3:16 미지근한 것과 또 심언(心言) 불동(不同) 언행 불동이 이중인격의 행사이다.
이중봉헌 이중의 교제 이중의 소망은 주를 만신과 만물에게 수치를 보임이 된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피택자의 왕이요 신랑이니 성도와 일신의 별유관계인 책임있는 고로 보좌에서 우리의 죄와 사망과 마귀 아래에 있는 것을 구경하는 정도가 아닌 고로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음부까지 내려가서 대속하셨음으로 우리들이 이중인격을 가졌을 때에 방임하실 수 없으니 우리의 이중인격 가진 것이 주께 크게 수치가 되는 것이다.
주는 구하라 믿으라 의지하고 바라보아라 하셨는데도 실지로 그 은혜를 소유하는 사람이 적다. 세계도 한국도 진정한 일인격인 사람이 요구된다 (렘5:1). 진정한 유일신을 신앙하는 이중 아닌 한 인격만 있어도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헬라 다이야지느스는 낮에 등불을 들고 대답하기를 사람이 안보여 찾아다닌다고 한 거와 같이 오늘도 주님은 그 앞에 이중 아닌 한 인물을 찾아서 갈급하실 것이다. 우리는 주 앞에 이중 인격 면제받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3.불꽃같은 눈 가지신 주 하나님인 고로 더욱 주의 할 것은 외식이다.
주관적으로 믿지 아니하면서 믿는 줄 아는 것 실력이 없으면서 실력 있는 줄 참 평안과 기쁨과 부요가 있는 줄로 바로 보지 못하면서 바로 보는 줄로 아는 이 모든 것은 외식이다.
외식은 피난처와 도피성과 능력이 되지 못한 것을 의지하면 바라는 것과 슯흠과 고난과 간난되지 못한 것으로 고심하는 것은 또 외식이다. 담대하지 못할 일에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못할 일에 두려워하고 순종하지 아니하여야 할 자에게 순종하며 허영과 허사를 경영하는 그 모든 것은 외식이다. 이것은 주께 대한 무식과 불신과 멸시와 욕을 돌리는 일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주께 가장 근심을 돌리는 일이 되나니 이유는 주와 나와는 일신의 관계를 가진 연고이다.
중생자의 회개생활도 자신성화도 선행을 일삼는 유일의 목적도 주를 기쁘시게 함에 있다. 만일 중심이 이것이 아니라면 또 그의 눈 앞에는 외식이 된다. 그런고로 전생활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족되고 또 그와 연결되어야만 한다.
예를들면 ①고난에는 주의 고난을 바라보면서 참고 ②그 사랑에 빚져 인류를 사랑하고 ③그 심장을 보면서 회개하고 ④그 영광을 보면서 세상을 투자 혹은 포기하는 생활들을 하여야 외식이 아니다.
전지전견의 눈 앞에서
①안심하고
②조심하고
③담대하고 용감하며
④삼가 살지니라

그런고로 우리 할 일
①원수를 두려워 말 것
②이중 인격을 버리고 표리같은 일인격을 가질 것
③범사를 믿어 드릴 것
④주님을 속였던 것 의심하고 순종하지 못했던 것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본업 삼지 못했던 것들을 날마다 회개할 것
⑤자타를 속이고 또 자타에게 속았던 것 회개할 것

결론: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살아계신 인격자로 내 생활에서 대우함이 유일의 신앙이며 대접이다. 성화도 승리도 여기에서 발원된다. 여섯째로 나타난 것은 신앙준비에 각양 역경을 명찰하사 위로하여 굳게 세우려 하시는 것이다.



15절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빗난 주석같고'

1.
초림하신 주와 정반대로 심판에 강엄(强嚴)하심을 상징함이니 초림의 때는 못 박힐 수 있는 사랑의 희생성과 자비의 연약성으로 오셨으나 재림 시는 심판주로 영광주로 전능하신 왕으로 오시나니 모든 원수가 밟히며 등한이 여겼던 사람들이 크게 원통히 여기고 진실한 성도들을 주를 보면서 부러워하게 된다.

2.
단련한 주석이라 함은 심판받는 자에게 대하여 인간이 만나는 모든 순서들을 하나 하나 경험하고 체험하여 승리하였기 때문에 정죄하며 심판하실 권세가 있고

3.
구원 얻은 성도에게는 인류의 모든 순서를 실지 체험적으로 승리하셨으니 그 앞에 불평을 가질 수 없고 하나 하나를 대속제물로 체각(體覺)하셨으니 낙망하지 말고 또 체휼하셨으니 용진하여야 할 것을 지시하시기 위하여 일곱째로 나타나셨다.

4.
이 상징계시된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려는 자에게 심판의 고난을 보여 경계하고 역경으로 불평한 자에게는 대속의 체험으로 겸손케 하시고 연약하고 겸손한 자에게 체휼하신 주로 동정하는 일을 위해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래 같으며'

1.
겔42:2를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이렇게 말하였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인 것을 나타내심이요

2.
그리스도를 멀리하는 자에게는 위험스럽게 보이며 실지로 멀리 할수록 멀리하는 피조물 자체에게는 도태 저주 사망이 되어지기를 들리는 많은 물소리 같고

3.
실지를 접촉할 때에는 물이니 먼저 정결하고 다음에 겸손하고 화평하며 만물에게 해갈과 세정의 성질을 가진 것처럼 우리 주님은 가까이 하는 자에게는 하면 할수록 상술함 같은 시은의 주님으로 대해 주신다.


6절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1.
오른 손은 힘있는 손 승리의 손 보호의 손, 일곱 별은 복음의 모든 사역자들을 말함이니 전능하신 주께서 복음의 일꾼들을 보호하시며 그를 통하여 승리의 역사를 하시는 것을 상징하여 확신과 위로를 주시는 것이다.

2.
특히 주의 장중에 잡히는 그 생활을 복음적 생활에만 국한한 것을 보임이니 복음적인 생활과 복음운동의 입장을 두려워 할 것이 없으며 또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일하는 중 더욱 주님이 나를 이용하여 일하시나니 승리의 능력은 주의 것이 오매 자아의 무능으로 낙망하지도 말고 일하여 놓은 후 스스로 한 듯이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3.
일곱 별인 7수는 하나님의 거룩과 온전을 의미함이니 종의 이름을 가진 모든 일꾼 중에 특히 구별하여 온전한 종을 잡고 일하신단 것이니 거짓된 것을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 입에서 좌우의 날선 검이 나오고'

1.
사람의 영혼의 병을 수술하는 검으로 곧 심혼골수 속에 잠재한 원죄와 본죄를 낱낱이 인식시켜 회개하는 법리의 능력과 모든 불의의 세력들을 끊는 거와 같이 지상에서 심판 하시는 공의롭고 엄하고 날카로움을 의미한다. 또 생명있는 자에게는 민활하게 돕는 역사와 죽은 자에게는 처단하는 힘을 말한다. 생명있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2.
좌우의 날센 검이라한 좌우는 이 말씀은 진리시매 지공무사(至公無事)한 성격을 상징함이니 누구나 이 말씀에 걸리면 끊기나니 시간적 여유를 두지 말고 즉시 옮겨 서야 한다. 살전5:2에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시고 계3:3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하신 말씀은 말씀을 거역하는 입장에 있는 자에게 끊는 시간이 의외에 이르나니 급속히 피하여야 한다.

3.
성도들이 애모하는 그리스도는 일절 사귀고 담화하는 말이다. 이 성격을 가진 말씀이니 의로운 자에게는 하나 하나가 위로와 도움을 주는 능력이 되고 불의한 자에게는 한마디 한마디가 끊는 칼이되나니 불의를 가진 자가 그 앞에 서지 못한다. 불의는 곧 진리를 대항함이요 불의에서 회개를 원하는 것은 노력하는 것이니 그것이 즉 의요 불의와 싸우는 것이다. 그런 고로 그리스도의 교제는 어떤 자에게는 유일의 낙이 되고 어떤 자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그 얼골은 해가 힘있게 빛이는 것같더라'

1.
승리하시는 본 지위와 하늘의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광의 광채가 빛나신 것을 의미한다. 막9:4에 보면 천국의 구원 얻은 성도들의 영광도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2.
요한은 그리스도의 각면 희생의 일생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 왔으나 그리스도의 지극하신 영광의 지위와 죄인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심과 인내하심과 겸손하신 생애를 하신 그 인격의 주님을 대할 때에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고 형제에게 대한 종전 행위와 자기 취급에 대한 과거를 들고 주님 얼굴 대할 때에 해를 바로 보지 못함같이 부끄럽고 죄송하여 바로 볼 수 없는 주의 사랑과 겸손과 인내의 그 주님을 상징한 것이다. 요한은 인인 상대의 눈을 돌려 주님과 자기와의 상대에서 그 얼굴을 감히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17절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업더저 죽은 자 같이 되매'

1.
요한은 종전 영감보다 일층 충만히 영감되었을 때에 새로운 신행(信行)으로 출발할 때에 영감 안(眼)이 열여 과거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주님으로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께 대한 새 지식과 자기에게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어 요한의 일생 최고적인 회개를 하였던 것이다. 종전에도 여러 성도는 이런 성질의 회개를 가졌다.
눅5:8 베드로의 엎더짐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발견한 회개요
눅22:62 베드로의 통곡으로 꺼꾸러짐은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과 자기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는 주님을 발견하여 의심과 피난한 죄를 반성함이요
행9:4 바울이 다메섹 노중에서 꺼꾸러짐은 예수님은 참 메시야요 부활 영생의 생명의 주요 참 하나님이심을 발견함이요,
요21:18-22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 마땅한 줄 알고 순교의 각오는 생명의 주를 발견한 연고다. 이와같이 성도는 그리스도를 연구하는 평생 학생으로 지나가야 하고 배우며 알 때에 그만큼 견손하며 충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 고로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2.반성과 회개의 태도이니
①하나님게 대하여 소극적으로 과거 신앙치 못함과 영화롭게 못함을 통회하고 적극으로 미래의 신종할 것과 영화롭게 할 절대적의 생활을 각오할 때에 무능한 것을 발견하였고
②자아에게 대하여 소극적으로 속인 것과 손해 보인 것과 또 속은 것을 통회하고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싹스) 속지 아니할 것과 속이지 않고 바로 지도할 것과 자기에게 참 유익하게만 하는 생활을 각오할 때에 자기의 무능한 것을 발견하여 주를 바라봄에 부족하였던 것을 깨닫고 엎드러졌던 것이다. 크게 자복과 회개와 감사와 소망과 즐거움에서 주님을 올바른 지위에 모시고 자기도 겸손히 올바른 지위에 두어 엎드러졌던 것이다. 이는 원수도 낙망도 의심도 아닌 소망 중에 주와 자기를 바로 안 것 뿐이다.
모든 승리는 주님과 자기를 바로 발견하여 높이고 낮아질 때에 주신다.
이유는 승리는 교만보다 중수가 가벼운 까닭이다. 승리하고 교만하면, 패전하고 겸손한 것만 못하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발이 되는 까닭이다.
1.  1.소극적으로 몸과 이성을 파수할 것 ---- 죄에게 주지말 것

2.적극적으로 몸과 이성을 열심히 사용할 것 ---- 의를 열심히 할 것

2.            3.  3.죄에 침입을 즉시 보혈에 고발하여 멸하고 ---- 고죄(告罪)교죄(敎罪)
   몸과 이성을 도로 찾을 것

3.
죽은 자같이 되었으니 죽지는 아니 하였으나 참 열매 맺는 회개의 심정의 표현이다. 요일1:9과 같이 죄는 고하면 즉시 사함을 받는다. 그러나 개(改)가 없는 회(悔)는 무익하다.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회개는 주와 자기에 대한 애착과 소망이 사선을 초월하여야 되고 또 주께 대한 원한과 자기에 대한 미움이 죽음에 맞을 보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에 미달한 회개는 자기의 부패성을 조장하고 남의 신앙심을 흐리게 하는 역효력을 낼 것 뿐이다. 회개에 주의할 것.

4.
회개에 주의할 것

①과거 현재의 죄를 통회할 때에 전적 실패와 전적 불의로 치우치는 낙망을 하지 말 것. 실패한 내 안에 승리의 주가 내주 하시나니 실패와 절망된 내가 주님의 승리를 소망 중에 감사의 조건을 잃지 말 것.

②과거 현재 미리에 있어 승리한 것과 승리할 것을 인하여 전적 승리자로 교만치 말고 여기서 실패 부분과 패전의 부분을 찾아 승리는 오직 주님 혼자, 나 혼자는 실패와 범죄자임을 발견할 때에 주의 승리는 그로 통하여 계속하고 이를 부인하여 부인할 때에 가견적인 실수까지 허락하사 승리의 선물을 거두고 그보다 나은 겸손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고로 통회시는 낙망의 미혹을 피할 것. 승리와 감사와 회개한 때에는 자아의 연약과 부패를 기억하여 유혹을 물리칠 것. 유강(柔强)을 동지(同持)하고 겸손 담대를 동지할 것. 범죄와 승의(勝義) 연약 권능들을 동지할 것.

엎드린 요한에게 위로와 은혜와 사명을 주심


'그가 올은 손을 내게 언고'

1.
요한은 최고 영감에 있었으나 주께서 오른 손을 내게 얹고 한 것을 보면 자의식이 명확하였다. 영감이라 하여 순(純) 자의식을 잃은 감동들은 악령의 미혹 혹은 부패한 감정 극열의 것 것이니 이는 주관의 것이다.

2.
승리의 능력과 보호의 능력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또 그 은혜를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시는 축복이다.


'두러워 말나'

1.
자과(自過)를 깨달아 엎어진 요한에게 두려워 말라 함은 벌써 그 허물을 사하시고 그 겸손을 높이 들어 올리는 말씀이며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죄를 찾아 겸손은 인간의 할 일이요 사죄 칭의와 위로와 높임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 신속하시다. 기독교는 일단 죄인 된 후 의인되고 낮아진 후 높아지고 두려워 떤 후 담대와 평강이 오나니 이것이라야 참되며 영원한 것이다. 주께 두려워 함은 담대로 바꾸어지고 두렵건대 피조물을 두려워 할 때에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레1:17에 말씀하였다.


'나는 처음이요 나종이니'

1.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침이요 모든 속성이 영원 전후에 동일 하시니 요한의 현재의 정체와 과거 불소(不召) 시의 정체와 아직도 요한의 미각(未覺)한 원죄성을 총찰하시니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신 주로 오늘보다 악한 과거에도 용서와 시은과 인내를 하신 내니 낙망이나 두려워 말라. 네가 나와 너를 이제 알았고 놀래나 나는 영원 전부터 이러한 주님으로 너를 사랑하셨은즉 네게 대하여 변함이 없나니 두려워도 여려도 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는 위로이다.

2.
의행이나 범행에 대하여 그 단시간으로만 간주하여 교만과 낙망에 처하지 말고 시간을 초월한 신앙으로 범죄의 감이 시간경과에 따라 해이하여도 신앙이 아니고 주아(主我)친밀이 선악행위에 따라 수학적 변동도 신앙이 아니다. 주는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시51:1 다잇은 범죄할 때에도 주의 긍휼과 많은 인자를 바라보았고 요나2:2 에도 요나는 범죄한 고기 배 속에서도 자기의 부르짖는 소원을 주께서 대답하셨고 또 들어셨나이다 라고 하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 고로 범죄할 때에 자기는 더욱 의심하고 미워하여 회개할 것.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는 의심치 말고 더욱 확신하고 소망 중에도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이요 성경이다.


18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노라'

1.
불사성(不死性)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을 말하는 뜻이다.

2.
불사성의 생명은 일차 죽고 난 다음에 부활한 생명이라야 한다.

3.위로 후 첫 선물적 교훈이 이 말씀이니 이는 요한 같은 성자로도 주 앞에 두려운 죄가 있게 된 것은 순교의 각오를 한 요한이지만은 그래도 죽는 것을 소금같이 녹아지는 것에 대한 인색으로 말미암았던 것이다. 그런 고로 주님은 '나는 곧 산자다' 하심은 남김없이 솔빡 녹아진 나는 이제 영원한 것으로 살고 가지게 되었다 하시는 것으로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하셨다. 이것이 위로 다음 첫째 가는 교훈이다. 성도는 항상 한번 녹아져야 영원히 내 것이 되고 주의 것이 되어 주와 나의 영광이 되는 이 한 사실은 매 사물에 대한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


'볼지어다'

1.
박력있는 선포요 인색한 성도들에게 크게 자랑하시는 선포이다. 뒤에 두고 보면 볼수록 세상에서 의를 희생이 영원히 영광되며 복되다는 미래적으로 영원히 전개 시켜 자랑하여 보이겠다 하여 재세 중 녹아지기 싫어하는 자에게 예고를 주시는 말씀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에 열쇠를 가젓노라'

1.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하신 이제는 고난인 십자가의 순간적 일생이 지나가고 부활의 새 세계를 맞은 큰 행복과 큰 승리의 기쁨을 맞이한 영원토록 다시는 고난이 없는 새 출발을 가리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요한과 성도에게 '이제는' 하는 때가 조속히 오나니 그때를 바라보면서 투쟁으로 권면이다.

2.
'세세토록 살아있어' 함은 영생을 말함이니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는 주와 같이 영생할 것을 보이고 주와 같이 희생한 모든 것은 없어질 세상 것으로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을 바꾸는 것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3.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젓다' 함은 사망은 영육의 죽음이요 음부는 지옥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셨고 지옥을 이기셨는 고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주님이 주권적으로 통치하시고 주를 바라보는 신자에게 사망과 음부에서 열쇠를 가졌다고 하셨다.

4.
성도는 주를 위해 생명을 내여 놓는다는 말이나 원수에게 준다는 말은 성경에 모순된다. dll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보혈에 팔린 것이니 주의 소유요, 또 생사의 주권이 주께 있으니 사람들의 생명은 주만이 자유하실 수 있고 성도의 생명은 더욱이 그러하다.



19절 '그런 고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
상술한 바와 같으니 네가 본 12절로 16절까지에 나타난 사실과 이제 있는 일곱교회의 실정과 장차 될 일 곧 재림 때까지의 지상 교회들이 당할 일 순.역경들을 기록하여 성도들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2.
그런 고로 기록하여 전하라 하는 것이니 그런 고로는 그리스도께서 솔빡 녹아지고 영원 완전한 것으로 다시 사시고 가지게 되었으니 이 구원을 얻는 비결인 본 것, 이제 있는 것 장차될 일 이것들을 기록하여 미리 알려라 하신 것이다.

3.
그런 고로가 아니면 기록하여 줄 필요가 없고 또 기록한 대로의 십자가의 길을 권할 필요도 없고 또 그런 고로를 모르면 기록하여 준 교훈을 받아 실행할 자도 없는 것이다. 또 그런고로를 믿고는 실행하지 아니할 자도 없는 것이다.  


20절 '내 올은 손의 일곱별의 비밀'

1.
주의 보호로만 존재할 수 있고 주의 힘으로만 일 할 수 있는 교회사역자들을 가리킴이니 여기는 몇가지 비밀이 있다.
①시91:9-10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 그에게 맡기고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지 않아야 원수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②고후12:10 약할 때에 강하여지고 계11:1-17 참조
③마16:25 목숨을 구원코저 하면 잃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고
④계2:9 환란과 궁핍이 실상은 부요되고
⑤계12:7-12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자를 기쁘고 16절 세상을 포기한 자 피해가 없고 6절 14절 광야가 피난처가 되는 일
⑥계14:13 주안에 죽은 자가 복이 있음

'일곱 금 촉대'

1.
비밀이란 말이 여기는 붙어 있지 아니하나 문맥 그대로 간접적인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고로 교회도 교회 사역자와 같이 상술한 대로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역자는 신자를 망라하여 복음 운동에 협력자를 총칭한다.



요리(要理)
신앙이 올라갈수록 승리의 방법
1.짐이 점중(漸重)하여짐
①시리판단 계획에자의성은 점점 부인하고, 점점 말씀대로 갈 것
②자기 능력 점점 부인하고 주님 권능을 점점 신망의(信望依)할 것, 맡길 것, 신의망(信依望)할 것 자행치 말 것

2.적(敵)점(漸)다(多)
①세상 포기하고 말씀 새김질 할 것. 점점 묵상 시간이 많아져야 사사물물을 말씀을 통하여서만 출납시킬 것. 제2 계명을 지킴이 필요함.
②파수가 세밀하여야 할 것. 천국소망으로만 주만 신의(信依) 간구할 것. 늘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


설교 1.
본문: 계1:5
제목: 하나님의 평강
서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나니 순서도 성질도 존재성도 모두 다 온전하여 영원한 것이다. 그 중에도 삼대 평강만 증거하려 한다.

본론
1.회개의 평강
회개의 평강은 사죄 칭의로 말미암음이니 이를 얻기 전에 죄에 대한 보응과 죄증(罪憎)악심의 불안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 순서가 있기 전에는 사죄의 평강을 인식할 수 없다. 미래에 소속인 보응과 제3자로 보아 죄가 밉게 되는 것은 이는 다 신앙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범죄로 어두어진 심안은 시간적으로는 현재, 공간적으로는 존재, 이성적으로는 주관에 메이고 이것들을 초월하지 못한다. 그런 고로 영광의 원인의 고(苦)보다 사(死)와 죄의 원인인 낙을 좋아 하는 것이 부패성의 관찰이다.
그런 고로 우리 마음은 이와 같이 믿음의 속성이 근본 빈약한 현실주의와 의심자인 줄 알고 취급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인생의 필사(必死)는 확인하는 것이나 사람들은 다 생(生)에서 살고 죽음이라는 것을 당하지 아니할 별개의 일같이 여겨지는 무신(無信)의 현실주의인 것이다. 누구나 갑자기 사경에 이르렀을 때에 생(生)을 위하여 사(死)의 무관계한 과거를 통회하면서 미래가 있으면 전부를 사(死)를 위하겠다고 병석에서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시 회복되어 기일(幾日:몇날)이라도 살 여망이 있을 때에는 다시 방향을 돌이켜 사 살 준비로 돌아 가는 것이다. 자타 공인하고 길이 체험한 명확한 일에서도 시공에 대한 초월적인 신앙이 없는 거와 같거던 하물며 받아 보지 않은 심판과 죄의 벌과 지옥에 형벌에 대한 고민이야 본 것도 아니요 현재 것도 아닌 것들이니 그 에누리가 얼마나 많은 것인가?  그런 고로 내가 나를 단속하여 죄에 보응에 대한 불안의 감(感)에는 기천배수(幾千倍數)를 하여야 정확한 중량이 나올 것이다. 그런 고로 신 불신자 간에 시공 속에 매이지 않고 이것들을 초월한 밝은 심령들은 갓난 아이의 울음에서 조문의 곡성을 발견하고 천장에 춤을 뱉고 낯을 피하는 것처럼 인류와 우주의 정의를 거스린 행위에는 그 직시 보응의 벌을 본능적으로 피하여야 할 감을 가지게 된다. 낯을 돌려 피할 공허가 있으나 이 보응은 피할 처지가 없는 고로 시인 다윗은 시139편 9절 새벽날개 곧 광선의 속도로도 피할 곳이 없다고 하였고 성신은 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으며 세상 모든 철인들도 이 고민에서 세상 것을 다 얻어도 위로와 평안이 되지 못하며 살아도 죽어도 만족지 못하여 늘 울고 늘 떨고 두려워 하며 인생으로 난 것이 만물보다 불행하다 하여 혹자는 죽음으로 해결될 줄 알고 레일, 깊은 물, 독약, 교수, 검 등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죄의 응보와 무자비한 맹수성 같은 사회와 국가보다 자아의 부패성의 깊은 자극에 눌렸으며, 이 지옥을 피할 곳이 없었던 결과이다.
죽음으로도 해결을 짓지 못하는 죄인 줄 아는 자는 염세 고행 지선 지상 쾌락주의 무아로 깊이 겸손히 낮아져 보았으나 헛되고 또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올라가도 헛되어 물아동체(物我同體) 이렇게 방황한 것은 인생들의 영혼이 죄악에서 발동인 것이다. 싼다씽은 여기에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하신 말씀 듣고 일사천리로 다시 세상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만 쫓았다. 실지로 죄는 사망으로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니 타지 아니하는 곳에서 죄보다 더 두려움이 없고 사죄의 칭의보다 더 평안이 없고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연결됨보다 더 담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 고로 인생의 참을 안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만이가 영원한 찬송의 제목이 된 것이다. 속죄 성결을 받은 영혼은 죽음도 삶도 다 평강뿐인 것이다.

2.수호의 평강
사지함을 받을수록 가리워진 벽이 열려지는 것처럼 심안은 밝아진다. 짧은 일생은 신속히 가기도 하나 너무도 적이 많아 지루한 감도 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벧후3:8 하루가 천년같이 난점이 있는 것을 말하셨고 마6:34 에는 한날의 괴로움이 족하다고 하셨고 다윗은 시3:1과 6에 여호와여 나를 치려 둘러선 원수가 천만이나 되나이다. 베드로는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이 우는 사자같다 하였고 바울은 롬7:21-24 자아에게 선악 동거의 부패의 적을 발견하였고 야고보는 약3:6 지옥 불이요 세계 같은 악이요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혀가 지체 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시90:3,5 인생을 진토로 홍수처럼 아침에 꽃같이 무가치하게 만드는 허무하게 하는 세상 이렇게 적이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막9:48 구더기도 죽지 않는 지옥 눅16:24 물한방울의 자유가 없는 형벌 계13:2 맹수 같은 정치가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정모혈로 난 인생은 누구나 다 이러한 적편에 쌓여 있다. 영원한 승패지로 울고 웃고 할 과제를 책임지고 온 인간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상해 감각이 없다. 신령한 이목을 가진 자마다 황금 건강 청춘 지식 미 인생 사회 국가 인간의 인정 도덕의 수호로는 피조물 어느 것의 수호로도 이 수 많은 적에서 구원할 권세가 없고 두 번 없는 이 전쟁을 승리로 통과케 할 수는 없는 고로 계5:4에 사도요한은 울었고 롬7:24 바울은 탄식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야 그 수호를 바라보고야 그 영혼이 평안히 쉬었던 것이다.
야고보는 4:8에 대적(大敵)을 모르는 군가(郡家)들에게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지어다.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심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 모든 위안이 헛되다 함이다. 무생물의 찌끼같이 세상이 우니 울고 웃으니 웃는 피동적인 인생은 생명도 주관도 호신도 없는 까닭인 것이다. 참 자기와 세상을 발견하고는 무엇으로도 불안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수호를 발견하고는 평강을 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음부와 사망은 피로 부패성은 성령으로 암흑은 말씀으로 패역은 사랑으로 원수는 모든 왕으로 소멸하여 영원히 인생을 수호하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시라. 이 수호를 확신하는 자에게는 악마도 세상도 감당치를 못한다.

3.부활의 평강
바울의 일생의 신앙길을 제3자가 볼 때에 전부가 역경과 비참이니 낙망과 비애와 공포와 분노와 조급으로 불평할 수 밖에 없고 배신하여야만 할 만한 기근과 고형의 길뿐이었으나 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무리들에게 권하였다.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회개의 평강에서 수호 평강을 입고 시공을 초월한 영안으로 부활의 천계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세상은 면류관의 공장으로만 보았고 사랑하는 자를 위한 선물 예비의 기간으로만 가졌던 것이다. 그런 고로 그는 투쟁이 없는 곳을 피하였고 맹수로 더불어 싸워 날마다 죽는 것이 그의 자랑이었다. 그런 고로 그는 말하기를 이 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부활이 있는 고로 가장 행복된 길이 된다는 말이다. 그는 빌1:20에 살던지 죽던지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는 단심으로 살았고 그의 최고의 소원은 23절에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더욱 원하였던 것이다. 고난은 영광으로 별세는 고향으로 죽음은 그리스도 면회로 ............... 이는 다 부활의 평강의 산물이니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열매이다.

결론
이상 3대 평강을 가진 자라야 모든 피조물들의 피해를 완전히 이길 수 있나니 금생과 내세의 극복하고 이용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의만 이루게 되나니라. 믿음으로 얻고 사모로 견고해지나니라.



설교2.

본문: 계1:5
제목: 죄

서론:
죄는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이 과녁을 명중하지 못한 뜻을 가진 것이다. 죄의 기원과 죄의 위치와 죄성질과 죄사함에 대하여 논하려 한다.

본론
1.죄의 기원
1)죄는 인간계에 들어오기 전에도 밖에 실존하였던 것이다. 이 죄가 마귀와 배암으로 통하여 인류시조 아담 해와에게 들어 온 것이니 이때부터 전 인류에게는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죄로 유(由:말미암)아 사망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으니

2)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에게 동산에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게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는 것으로 신인간 행위 계약을 삼았던 것이다.

이름을 선악과라 함은 과실의 선악을 독이 있음이 아니고 그 선악과 먹고 나니 먹는 것으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이 되어 순종으로 선에 속하고 거역으로 악에 속하여, 비로소 선악을 알게 되는 율법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아담 해와는 배암에게 유혹받어 선악과를 먹어 거역의 행위를 하였다. 이것이 전인류의 원죄이니 아담의 보통생육법으로 난 전 인류의 대표의 입장에서 계약하였고 또 범하는 고로 전인류가 범죄함이 되었던 것이다.

3)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함이 되고 죄가 되어 값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시는 의미인데 악마는 배암을 통하여 연약한 해와로부터 아담을 유혹했던 것이다. (여기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파수하여야 할 의무를 보인다.)

사람은 피조물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그 계획에 응종하여야만 할 것과 독립할 수 없는 피조물이 원인됨을 그 모든 이성의 성질에서 나타내며 그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히 그를 즐거워 할 것으로 지식하고 있는 존재이었다. 인간들의 이성은 하나님의 사상을 유추적으로 본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려 하시는 것을 자체가 실증하고 있으며, 또 하나님의 형식적 특별 계시를 청종하며 응답할 수 있었으며 상대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자로 핑개할 수 없다.

그런고로 창조주 대 피조물로 되어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한 것만이가 의무임을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의 결합에서 얻어지는 지식, 곧 하나님과 자기에 대한 관계를 자진 계약적으로 창조함을 받은 존재인 것을 핑개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사람은 특수 피조물로 자의식성을 가진 자유자로 의에도 죄에도 속하지 아니한 상태였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의식으로 그의 창조주께 계약적 순종을 하는지 아니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선악과로 신인계약을 세워 순종으로 영생 거역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롬5:12-19 이 실과는 선악 지식을 아는 시험목인 만치 구별되어야 하겠고 정당한 시험되기 위하여는 일정 불변의 것이어야 한다. 이때에 사탄은 해와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함은 ①사탄의 자기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등 지위와 가치에 두는 유혹이었고 ②하나님 말씀에 과장과 축소의 요동성을 붙여 확고 불변성을 훼손케 하였고 ③하나님으로 그의 창조물보다 더 위대하지 아니하심을 암시하였고 ④이렇게 부름은 하나님의 제정하심에 지혜로우심과 의로우심을 인간이 판단할 능이 있는 자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을 동등시하였고 자기는 중립으로 아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해와는 ①자율자로 자처하게 되었고 ②자기를 위하는 자주권자로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③독립할 자로 알아 독립적인 선포로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계약을 깨뜨리고 아담은 여기에 동참하였으며 전 인류는 또 여기에 동참하게 되어졌다. 이때부터 인간 이성 작용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자율에 기초했다. 이는 자기를 모든 것에 아는 것이 온전한 자인 줄로 인증자가 되어졌다. 이 도덕범으로 무한한 범죄를 끌어와 그 비례로 죄책을 걸머진 것이 전 인류에게 유산이 되었고 자율로 인하여 윤리적 부패로 각 이성에게 부패가 미쳤다. 역시 이것도 모든 인류에게 부패 유산이 되었던 것이다.

엡2:1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하는 전적 부패는 의종(依從)자가 독립 자율자로 배신자 된 것을 말함이다. 신모(神慕) 배반한 자모(自慕)인생은 각기 하나님 창조의 주위를 반역하는 소 주권적 우주가 되어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신인투쟁이 인인투쟁으로 물인투쟁으로 인간에게는 화평없는 저주와 멸망화되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 밝히 보이고 있다. 이기주의의 부딪히는 곳곳마다 투쟁은 끝이지 않는다. 위약후 인류통일은 파상되었고 지상권(至上權)을 다투는 하나님이 땅 위에는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를수록 지상에는 불화의 관영으로 예비의 지옥을 이루고 있다.

자연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죄에 대한 관심이 인간 속에서도 부절히 상충하기 시작하고 죄와 자율은 부절히 하나님께 대한 관심을 눌러 전적 범죄하는 데에 기울이게 하였다. 이도 자율이 왕권을 잡은 데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이다. 그런 고로 자연인은 부패 의지 사욕으로만 타락하여 하나님과 만물과 대립된 입장에서만 살게 되었음으로 가장 무능한 자보다 더 약한 자멸을 취하는 것이 되어졌다. 그런 고로 범죄의 순서는 ①창조주와 피조물에 혼돈 ②주권의 혼돈 ③지식에 완전자 혼돈 ④자위자로 ⑤자율자로 ⑥독립계획자로 ⑦위약범죄에 나아갔던 것이었다.


2.죄의 위치
1)죄는 실체가 전적 악이다. 죄는 한 명사(名詞)만이 아니고 실체로 실존한 것이니 ①죄의 종자 히12:15 ②죄는 장성하는 것 약1:15 ③죄는 투쟁력을 가진 것 롬7:23 ④죄는 정복력을 가진 것 롬7:9 ⑤지배력을 가진 자 롬6:16 ⑥사멸의 악을 가진 자 엡2:1

이와같이 피조물에게 대하여 해독의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것이 죄인데 사람은 이것을 만홀히 여기다가 회복(恢復)가 소용없는 피해를 입는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한 것만치 죄의 세력도 필연적으로 강하게 된다. 상술한 해와와 아담의 범죄는 사상과 행위의 논리적 순서이요 또 그가 고범한 죄이나 그 자신이 죄가 이렇게 강한 세력을 가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 말씀과 그 계약의 신실성에 권위를 불신하는 어두움에서 되어진 저주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이 계약 위반의 범죄가 되는 것은 확인하였던 것이나 위약으로 얻어지는 유익만 소유하고 위약된 죄는 멸시하여 버릴 자유가 있는 것으로만 알고 그가 영원히 자기의 왕이 될 것과 사망하게 할 권이 있는 것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런 고로 죄를 자용납하였고 후에는 죽었다.

이와같이 오늘도 사사물물에 하나님의 계약이 소속되지 아니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먹어라 먹지 말라 하시는 명령과 금지로 구별되어 있다. 사물을 대할 때에 하나님과 그 사물과 자기와의 삼각을 잃고 자기에게 대한 이해타산에 먼저 착념함과 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줄 알면서 그 죄는 경시하고 거기 대한 수입만 볼 줄 아는 것이 곧 아담이 걸은 자멸인 자율의 길인 것이다. 죄는 왕인 줄을 알아야 한다. 동산에는 구별된 선악과보다 허식(許食)의 일반 실과가 많을 뿐 그 품질이 못하지 아니하였다.

아담은 유혹되는 그 순간에는 선악과 이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꼭 이것이라야 하겠다 하는 사물은 미혹물이 되기 쉽다. 한 개 외에 더 취하지 못한 것과 순간적 먹음으로 영원한 화가 된 것과 또 먹기 전 욕망은 다 수포되었고 후회는 영원하였던 것을 수포(水泡) 되었고 후회는 영원하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식후 ①하나님을 애모심이 없어졌고 ②하나님을 피하였고 ③벗은 몸이 생각났고 ④무화과 잎사귀로 치마 만들어 입었고 ⑤하나님 앞에 숨었고 ⑥하나님을 두려워 하였고 ⑦핑게 하였고 ⑧원수가 생겼고 ⑨자유동산에서 쫓겨 났고 ⑩수고와 고생이 생겼고 ⑪죽었고 ⑫영원한 죽음 곧 둘째 죽음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도 범죄의 해독은 이상과 같은 순서로 온다. 이 죄의 위치는 ①내 속에 거하고 롬7:20 ②마음 속에서 자라고 (인격속에서 자라는 것) ③선이 있는 곳에 죄가 함께 있음 롬7:21 ④사망 안에서 왕노릇함 롬5:21 ⑤범죄자의 주인으로 롬5:6 ⑥죄의 삯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왕위를 가진 것이다. ⑦인간의 지, 정, 의. 기타 모든 이성 속에 내주하며 모든 활동과 함께 있다. ⑧전 인류와 가정 국가 형식 교회 기타 모든 단체 속에 있다.


3.죄의 성질과 행위
1)죄는 가속도로 장성하는 고로 숨기를 꾀하고 사망에 도달까지의 수입을 보려 한다. 성령은 죄를 즉시 폭로시켜 회개를 최촉하고 불응시는 고민 고체(苦體) 실패 수치 등으로 죄각(罪覺)하여 회개케 한다. 차제에 인간에 자율과 사욕을 이용하여 회개로 기인되는 손해 명예 훼손 환란 위명(危命)들을 보며 회개를 막게 하고 자기를 숨기는 피난처를 만든다. 성신은 탄식으로 다시 회개할 기회를 기다리신다. 숨은 죄는 음밀(陰密)히 하나님과 사이를 가루며 영혼을 누르는 일을 부절히 계속한다. 이 피해는 사람이 모르고 지나기 쉽다.

2)장기간 음역(陰役)하는 죄는 장성하여 그 영혼이 그 죄를 뜨겁게 적대시 못하게 하여 통감 (痛感)이 희미하게 하고 영혼을 기진하게 눌러 소극적으로 신앙심을 약하게 하고 어떤 위급한 시험이나 중대사가 있는 요긴한 때마다 숨었던 죄도 밝히 나타나 영혼을 위협하여 신앙 소망 기도 인내 같은 영혼의 중요 역사가 있을 때마다 죄의 관념을 통하여 의심 낙망공포 조급 등을 주어 실패케 한다. 성신은 이것을 기회로 하여 회개를 또 최촉하신다. 나타나 위협하던 죄는 또 종전 범죄 행위 청산으로 오는 각양 피해를 보이면서 염려로 회개의 마음을 누르고 또 일반 인간들의 죄악을 열거하여 보면서 죄의 연고가 아닌 헛된 감정으로 빈약한 것이니 그 감정을 회개 하라고 오히려 유혹하고 또 깊이 숨어 버려 감각에 오르지 않는다.

3)이렇게 숨은 죄악은 부절히 기생충같이 영혼이 발육을 해하다가 임종시 최후 기진 혼미할 때 이 죄는 나타나 최후로 위협한다. 회개하려하니 정신이 쇠약하였고 행위를 청산할라 하니 사람 상대 각단체 등의 상대이니 시속(時速)히 해결할 수 없고 운명은 긴급하여 평소에 가지지 못한 고민을 가지게 되어 인생 최후 결정적인 전쟁을 시래 혹은 손해케 한다. 성신은 여기서도 요일1:9 같이 고하라 사해 주시리라고 또 권고하신다.

이와같이 죄 그 자체의 능숙한 해독을 받지 아니하는 데는 자기와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미련을 끊어야 한다. 세상과 모든 소유와 향락과 생명을 빼앗기는 것보다 죄 아래 있는 것이 더욱 불행인 줄 알아야 하고 또 무죄한 자를 해할 권세가 없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런 고로 죄는 잘 숨으려는 것과 숨겨둘수록 장성하여 피해가 많은 것과 가면 갈수록 회개하기에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한다.

4.회개와 사죄에 대하여
1)기독교의 회개는 양심 개심이나 행위변천이 아니다. 자기를 향하여던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방향 전환이 기독교의 회개이다. 이것이 기본 회개이요, 일생 생활의 범죄 회개를 평생 회개라 한다. 회개에는 본죄의 회개와 원죄 회개가 있으니 본죄는 고하면 즉시 고하면 사함받고 개에 대하여 통회로 간절도 가질 것이요 원죄 회개는 그 죄악성을 지식하기에도 어렵고 회개하기에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는 죽음으로 완전근절되는 것이니 죽는 고통의 성질을 가져야 차차근절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컨대 ①국가와 사회 곧 남의 죄악은 거림자라고 하면 ②자타가 공인하게 자범죄는 잎사귀라 하겠고 ③숨어있는 자범죄는 줄기라 하겠고 ④자기가 모르는 죄악 곧 범죄 자료는 뿌리라 하겠고 ⑤자위 자율죄는 종자라 하겠다.

①의 전부의 해독이 ②의 하나만 못하고 ②의 전부가 ③의 하나만 못하고 차차 그대로 ④의 전부가 ⑤의 하나의 해독만 못하나 또 회개도 그림자나 잎사귀에서 머무는 것은 도리어 죄를 성왕케 함이요 그 뿌리와 종자에서 회개함이 지혜로운 일이며 유효하게 된다. 1, 2, 3은 본죄요 4, 5는 원죄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전토와 같아서 공허한 땅에는 잡초가 남 같이 아무리 1, 2, 3, 4, 5를 다 회개 하였을지라도 생명의 종자인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지 않게 하면 가리워 놓은 마음에는 더욱 죄마는 무성한다.

그런고로 성화의 생활은 ①기본 죄를 찿아 주께 고하는 데에서 ②죄와 투쟁으로 범하지 아니하는데 나아가고 ③이미 내주한 원죄를 찾아 근절하는 일에 착수하여 일생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 법전은 성경으로 하고 역사는 성신의 감동으로 하며 사죄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여 우리 이성은 여기에 붙들여 움직여야 한다.



설교3-1
본문: 계1:9
제목: 기독교는 투쟁의 종교

서론:
'예수의 환란'이라 함은 엔 예수의 환란이라 함이니 예수 안에 환란이란 말이다. 이는 예정적으로 필연적으로 효과적으로 있는 환란이란 말이다. 이 환란은 두 세력의 투쟁의 결과이니 범죄로 사망이 주권되어 있는 세상에 천래적인 생명 운동의 성령 역사가 임한 증거이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투쟁의 종교라고 한다. 투쟁이 좋은 것은 아니나 악의 세력이 있으니 투쟁이 없는 것보다 좋고 또 투쟁이 없으면 승리도 없는 것이다.

본론:
1.
대내전 롬7:18 이하를 보면 바울은 대내전에 얼마나 주력한 것이 보인다. 전적 부패한 인간에게 중생한 새 사람이 생긴 때부터 한 사람 속에는 두 세력으로 싸우게 된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사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사리나니' 라고 한 이 투쟁은 곧 내재의 투쟁이다. 전 신앙생활은 여기서 시발되나니 이는 제일선이며 일차전이다. 여기서 패전한 사람은 대외전은 적 곧 옛사람의 이용이요 적기독과 의심의 운동들이 된다.
그런고로 대내전에는 먼저 성령의 소욕이 주장되어 ①그리스도의 구속의 감사와 ②소망의 기쁨과 ③사랑의 보호의 평강으로 충만하여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며 권능에 맡기며 자유를 부인하고 계시 의종으로 영원한 승리를 소망하면서 인내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반대 원망과 낙망 의심과 근심의 불안들은 벌써 패전자로 적의 세력이 내주되어 왕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에 정의감은 전도 운동은 적의 전술중에도 교묘한 술책이니 진리로 시작한 것 같으나 그 결과는 악에 큰 열매가 맺어지는 것보다 알 수 있다. 교훈 포교 진리 투쟁할 것 없이 어느 것이나 다 심령 속에 감사 소망 담대 사랑으로 기쁨이 충만한 온유한 거기서 시발하지 아니한 것은 다 중생자의 적의 역사이다. 이런 은혜가 내주하지 않는 것은 죄중에 제일 큰 죄요 죄의 종자보다 의의 종자를 멸하는 격이 되는 죄가 되는 줄 알아야 한다. 이유는 한 말씀으로 지음 받은 것이 범죄한 것보다 삼위일체의 큰 은혜로 성립된 큰 구원을 등한이 하는 죄가 된다. (히2:3) 이것이 대내전의 패전이다. 성도들의 전 패전은 여기서 시작되며 또 결정되는 것이다. 세계가 은혜되게 성도의 빛난 승리도 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일선의 돌격전에 무장한 군병같이 신앙의 싸움은 찰라도 휴전은 없나니 다음과 같은 긴장은 상비하여야 한다. 감사에 넘친 충성의 각오와 소망의 부요와 그 사랑에 겸손을 가져 자기의 정체를 보면서 연약한 형제를 동정하며 최후 승리를 잡고 힘있게 나아가야 한다. 만일 형제에게도 이런 것이 없거든 순종하지도 말 뿐 아니라 도리어 포로된 영혼이니 불쌍 여겨야 한다.

2.
상술한 바는 대내전의 직접이요 또 하나님의 직접적의 승리이다. 여기서 패전자가 겸손히 반성과 회개가 없으면 간접의 패전과 하나님의 섭리가 알게 된다. 이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체같이 소속된 모든 사람과 모든 일들이 실패케 되고 또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거기에서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에게 소속된 의지하는 모든 것을 제하여 (사3:1-) 외식할래야 가릴 것도 없게 하시고 교만할래야 진공이 만(滿)을 자랑할래야 할 수 없는 것 같이 하여 이 불회개의 길을 막으신다. (호2:5-7) 그런 고로 한 사람의 승리로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창22:18, 렘5:1, 왕상11:12-17) 이 하나님의 비밀인 지극한 사랑과 공의를 모르면 모든 실패와 파멸의 원인이 자기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합왕이 엘리야에게 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함같이(왕상18:17) 어둡고 미련한 사람이 되기 쉽다. (창3:11-12)
그런고로 우리는 성문의지와 은밀의지를 법칙으로 삼아 직접과 간접의 실패를 겸손이 책임지고 외부의 수섭(修攝)에서 머물거나 낙망하지 말고, 대내전인 제1차전으로 돌아가 거기서 몇 번이던지 승리가 되기까지 중복하여야 한다.

3.
십자가의 도의 투쟁은 일반 세상견해와 다르다. 금세와 내세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망라한 것인 고로 다시 말하면 바꾸는 것이며 옮기는 것이다. 육신의 것이 줄어지면 성령의 것이 가하여지고 현실의 것이 멸하여지면 말세의 것이 부요하여진다.

불신기(不信期) 초신기(初信期) 그리스도 내재

웃음 울음 웃음
기쁨 근심 기쁨
영광 수치 영광
고주(高住) 낮아짐 고주
부요 빈궁 부요
권세 압젭 권세
평안 고통 평안
착취 빼앗김 다득(多得)
유익 손해 유익
칭찬 욕 칭찬
추락 배척 수호  
자유 옥 자유
영접 축출 영접
평화 불화 평화
연애 절연 연연
결혼 이혼 결혼
진학 정학 진학
사업 실업(失業) 사업
숙면 불면 영면
호의(好衣) 불의 백의
유식 무식 유식
성공 실패 성공
사랑 미움 사랑
존경 멸시 존대
건강 쇠약 장부
자미(滋味) 무자미 자미
의인 죄인 의인
양인 폐인 양인
산자 죽은자 산자

이상은 세상 것이 하늘의 것으로 유한한 것이 영원한 것으로 불의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의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이며 옮기워지는 것인데 하고(何故) 줄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섭섭히 여기는가. 이 사람은 그리스도 인이 아니고 옛사람 싹쓰의 주장이니 이 주장은 거부할 뿐만 아니라 아주 죽여야만 참 산다. 롬6:4 참조 ......





설교 3.

본문: 계1:9
제목: 화목의 2종

서론
화목은 단속과 연결이다. 이는 적을 전제로 한 투쟁의 운동이니 파수와 진격이다. 고로 적을 바로 발견함에서 바른 준비도 될 수 있다. 바로 되면 패전한다. 화목은 두 종류가 있나니 이 둘은 같은 이름을 가졌으면서 영원히 영원히 대적의 성질을 가졌다. 바로 구별 하지 못하면 불목을 내포한 외식화목을 구하는 자되기 쉽다. 기독교 화목은 하늘의 것이니객관의 것이요 불신자의 화목은 땅에 것이니 주관적의 것이다. 그런 고로 그리스도인의 것은 하늘에 것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성되고 불신자의 것은 인력으로도 된다.  

본론
1.세인의 화목
1)개인 가족 사회 민족 국가를 단위로 하여 또 이런 것들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니 그 적이 현저한 것이면서 습격이 당도한 입장인 고로 단합이 용이하고
2)지속(地屬) 내속(內屬) 주관속(屬) 부패성속(屬) 마속(魔屬) 죄속(屬) 타락속(屬) 인 고로 공중에 던진 돌이 올라가면은 힘을 입어야 되는 것이나 떨어지면 떨어지지 아니하기보다 쉬운 것이다. 이와같이 지속의 화목들은 스스로 되어질 뿐 불목보다 오히려 화목이 시운 것이다. 눅12:31에 예수님은 화목을 깨트려 분쟁을 일으키려 오셨다고 하셨다. 이성에 맞으니 잘 되고 죄가 죄 짓는 것이니 더욱 용이한 것이다. (긴장 결심 생존 경쟁들을 자료로 할 일들)

결론
이들의 목적은 이웃을 대적하기 위한 사람을 해키 위한 화목이니 있는 것 만치 패망한다. 인간의 일심단결은 바벨탑과 같고 고라의 단합과 같은 것이다. 기독자도 이런 류의 성질의 화목을 요구할 뿐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화목과 가치를 동등시한다. 그러나 이는 진리의 적이요 적기독에 소속이요 순교자들을 죽인 일을 역사적으로 책임진 단체들이다. 교회 내에도 거룩이 없는 화목은 당을 짓는 것이니 삼가여야 한다.

2.성도들의 화목
1)개인 가족 사회 국가 기타 세상 모든 것들 그것들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지 아니하고 볼 수 없는 죄와 악마와 세상과 싹쓰를 적으로 하는 신자인 고로 주장하는 화목의 법전은 성경이어야 한다. 성경은 과거 적대시하고 단결 화목하여 싸우려 했던 대상인 인류를 사랑하라 하였음으로 도리어 전(前) 화목들은 깨어지고 그리스도 내주의 화목이 새로이 건설되어야 한다. 그런 고로 일파일건(一破一建)에는 인간적인 불목이 보여진다. 이것을 불목이라 하여 사람들은 두려워 이것 깨기를 주저하고 쪼개는 자를 정죄하는 세상이다. 그런고로 지속(地屬)화목이 깨여지기 전에 천속(天屬) 화목의 필요를 깊이 깨eke고 하늘의 화목을 건설하면서 지속의 화목을 버려 건설과 파괴가 동시에 되어야 할 것을 주의할 것과 단번에 하지 말고 점차적으로 하여야 할 주의를 또 가져야 한다. 이는 화목이 없는 자로 위로 받으라 함이 아니요 화목의 진가와 가치와 여려운 정도를 알아 탑 쌓을 비용을 먼저 예산하라는 것이다.

2)천속의 화목은 영속 진리속 영생속 곧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니 인간 주관적이 아니고 객관의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모든 소속이 하늘의 것이요 목적도 규례도 하나님의 듯 이루기 위함이니 중생자와 성화된 자로만 화목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화목은 먼저 하나님에게 기도하여야 하고 도 착수의 순서는 회개로 시작하여 하나님 영광과 그 뜻을 목적으로 한 단합, 그것이 곧 이 화목이다. 여기는 인간 중심 곧 인본주의 이것들을 적으로 투쟁하는 힘이니 이 화목이 이루어지는 곳마다 인위적인 화목은 깨어지고 불목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런고로 심사하여 속지 않아야 한다.

3)외식 화목의 두가지 불행
①그리스도께서 끊기게 함인 것
그리스도를 중심한 대화목(大和睦)을 적으로 한 인간 중심의 소화목을 주장하여 용서하고 사랑함은 화목은 될지라도 그리스도의 적인 입장에서 우는 것이요, 유과자(有過者)를 인간이 해방하여 자유를 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속박과 형벌에 머물게 하는 일이 된다. 우리 사람들은 무지하고 연약하여 고의 아닌 간교와 유혹하는 일들이 많다.
불의를 보고 화목을 위하여 회개를 용서함은 자기 인격과 사랑과 정에 대하여 그에게 피해를 입지 아니하려하는 사욕 중심에서 되어지는 일이니 벌써 그 중심이 인본이요 그 재료가 희생의 반대의 수입이요 미움 아닌 미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불목 아닌 참 불목을 이루는 것이다. 불의를 볼 때에는 사랑으로 경책하여 회개를 이르게 진리에서 해방을 받게 하려야 한다. 여기에는 음밀한 희생도 있어야 하려니와 계11:10같은 미움을 받는 희생도 있어야 한다.

②성도에게서 끊기워지게 됨
이 화목은 피조물의 것 인간을 대적으로 한 단결 육신의 소욕주의 세상주의(主意)인 고로 무생명의 것이며 곧 죄악의 것이다. 그런고로 의에 적이 되며 또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된다. 그 결과는 고의적이 아닌 필연적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성도의 적이 되는 것이 곧 교회의 역사이다. 예 들면
1.가룟유다는 그리스도 자주(自主)를 팔았고 2.칼빈의 다섯 제자는 불란서 동행 친구에게 통정하여 잡혀 죽었고 3.스테반과 레소에는 제자 아레스테 고소로 죽임 당했고 4.중세대 교권주의  시대  △마리아 로마와 막달번폴라 산 매장 당했고 △다니엘 미쇠니니는 찬송한다고 혀를 빼서 죽였고 △다니엘 니벌리는 구적화약두파사(口積火藥頭破死) 마리아 모빈은 산 채로 살을 갈라 죽였고 불나시 유고 쉬암포스는 동역자 아이드 셀포 송사로 투옥되었고, 일정시 출옥 성도는 김길창목사 그 외 수인의 고소로 투옥되었고,
이상 모장로는 목사 수십인을 숨겨 준 것이 마지막은 내어 주었다. 이유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이해 그들과 합하여짐으로, 6.25 사변시도 공산주의에 배치되는 설교는 진리 파수하는 종들에게 뒤집어 싸우게 되었다. 패전자는 자기를 덮기 위해 더 악한 암흑 세상 되기를 원하고 승리자들의 정조가 꺽어지기를 고대하였다.
이런 때에 비록 자기는 범죄하였을지라도 승리자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함은 의인을 선지자를 대접함이니 그 상급에 동참하게 된다. (마10:41) 거룩없는 화목은 성도의 적이 되고 거룩있는 화목은 평소에는 자아를 부인하여 죽인 자가 할 수 있고 환란시는 육의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여야 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 내주의 화목은 큰 자본 곧 하늘의 것과 생명 투자로만 되는 것이니 세속화목과 차이가 천지같이 그리스도 속 화목이면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위대한 보화인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 가치를 동등시하는데서 자본 노력을 동질적으로 시작하는 고로 실패하는 일이 많다. 눅14:28-35
제 2 부  7 교회 (2장, 3장)

7교회의 의의

7수는 완전을 의미함이니 주님의 승천으로부터 재림때까지 지상 교회를 전칭하며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이 말하기를 7교회는 교회의 역사상 7시대를 대표한다고 하나 신임할 수 없다. 이 설은 다음과 같다.
1.사도시대 (주후 100년까지) 교회들은 성경과 교리는 보수하였으나 실행하는 사랑이 빈약하였던 것을 야고보서를 보아 알 수 있다. 고로 이 교회는 에베소교회에 대표된다. (계2:1-7)
2.니케야 회의 전 시대 교회 (주후 100-313년) 들은 순교가 0색이었는 고로 서머나 교회의 대표된다고 (계2:8-11)
3.국교시대의 교회(주후 313년-590년) 세상 세력에 의존하여 화상(畵像)예배, 성자 또 마리아 우상 예배에 접근하였는 고로 버가모 교회의 대표된다 하고 (계2:12-17)
4.로마 법황 전재 시대의 교회 (주후 800년-1517년)는 사업주의로 속화 성모 예배로 교리 타락, 우상숭배하였음으로 두아디라 교회로 대표된다 하고 (계2:18-29)
5.종교개혁 이후의 교회 (1600-1700년) 들은 개혁하였으나 후 타락으로 죽은 정통이라 하여 사데 교회의 대표된다고 (계3:1-5)
.빌라델비야 교회는 18세기로 20세기초까지의 교회라 하고 (계3:6-14)
7.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 교회 현대교회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7교회의 내용이 있었고 대동소이한 것뿐이다. 그런 고로 이 해석은 확신이 없다. 7교회는 신약 시대의 전 교회를 표시함이니 7교회의 내용을 연구함은 신약시대 전교회 내용을 연구함이 된다. 내용은 각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과 행사와 사상과 회개할 일들과 약속한 축복과 진노의 형벌들이다.

그런 고로 7교회를 연구함은 주님과 내 자신을 연구함이 되고 도 주아 관계와 내 상벌을 발견함이 되나니 성경 중에 간단하면서 중요한 부분이다. 연구할 때에 7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이 각이하니 각교회 사정에 적합하게 나타나셨으니 주님을 보면 그 내용을 보지 아니하여도 짐작할 만큼 명확하다. 또 그 약속에 소망이 그 교회 권고와 부합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고로 각 교회를 연구할 때에 주님과 내용과 상벌의 약속과의 3부분을 개별 연구와 종합연구를 겸할 때에 그 내용을 잘 알게 된다.

7교회의 기록 순서는 시대로 구별하는 것보다 도시의 대소 혹은 존재 선후의 의거하는 것보다 그 내용의 중대성과 또는 신앙생활의 실지 순서에 대한 차서라고 보여진다.


제2장

본장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계시이니
1.에베소 교회는 주인을 바꾸어야 하는 것을 말하고
2.서머나 교회는 4대관 9시간, 생명, 평안과 부요) 바꾼 것을 칭찬하였고
3.버가모 교히는 주권을 바꾸라는 교훈을 하였고
4.두아디라 교회는 소욕을 바꾸어 이단자 용납을 책망하였다.

1.에베소 교회
에베소는 소아세아 ①정치적 도시 ②상업 중심지 ③아데마 종교 중심지 ④동서양 문화의 교류 지점 ⑤기독교 중심지인 모교이다. ⑥바울이 3차 전도시 2, 3년 간 걸려 세움 ⑦4대 교역자 바울, 아볼로, 요한, 디모데.  요한 불니그라데 서한 중에 요한은 에베소에서 죽었다고 한다. ⑧3가지 전도 a.알렉산드리아 글레멘의 전설을 유세비오가 인용한 중에 요한이 한 청년을 에베소 감독에게 부탁했더니 후에 도수(盜首)로 돌아 갔다 함을 듣고 도굴에 찾아가서 회개 시켰다 한다. b.요한이 노쇠시 회당에서 다만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설교 하였다고 한다. c.폴리갑에게 들은 사람이 있다고 이레네오가 설(說)하기를 요한이 입욕시 이단자의 괴수 게렌드 있음을 보고 도옥(倒屋)을 염려하여 벗은 몸으로 뛰어 나왔다 한다.

에베소 교회를 순서 제1위에 둔 것은 기독교 교리 중 제1중대하고 신앙생활에 있어 제1순이 되는 문제인 연고이다. 이는 곧 사랑이니 생명이다.

1절
'오른손에 일곱별을 잡고'

1.'오른손'은 힘있는 손, 승리의 손
2.'일곱별'은 전 교회의 사역자들 가르침
3.'잡고' 이 복음 운동에 소속한 사역을 하는 그 시간 그 일, 그 사람에게 한하여서만 잡으시고 그를 통하여 하시나니 그 능력은 전혀 주님의 것이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구별하신다. 아무리 사역자라도 실(實)이요 명호(名號)가 아니니 외역(外役)에는 제외로 한다. 그런고로 교회 설립은 주님 능력만으로 된 것인데 다만 사역자를 통하여 설립하셨다는 것이다.

'일곱 금촉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갈아사대'
1.일곱 금 촉대는 1:12 해석 참조
2.교회 사이에 다니시는 이라 함은 교회 설립뿐만 아니고 기성교회의 총치리와 파수도 주님이 하여 모든 선악을 치리하심을 말한다. 특히 금촉대라 함은 이단 교회가 아닌 참교회만을 한계하는 것이다.
3.나타나신 주님을 보아 에베소 교회에는 주인에 대한 미 분명한 점이 있는 것이 들어난다.


2-3절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야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들어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일홈을 위하야 견대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 에베소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장점이 많은 것 같이 보인다. 그 행위가 부분적으로는 일곱 가지가 참 되었고 총합적인 행위가 아름다웠다. 오늘 교회에서는 그 한 부분의 옳은 일만 가졌을지라도 자타가 인증하며 자랑할 만하고 성직을 부끄럼 없이 가질 만도 한 미덕들이다. 그러나 놀랠 일은 이렇게 구비한 에베소 교회가 회개치 아니하면 촉대를 옮겨 망할 것을 말했으니 얼마나 두려우며 그 죄악을 얼마나 힘써 찾아야 할 것인가? 다음으로 에베소 교회의 옳은 행위를 보기로 하자.

'네 행위' 어떤 한 개의 덕행을 말함이 아니고 다음에 기록한 행위를 총괄적으로 말한 머리말이니 전반의 생활을 말함이다.

'수고' 교회를 위한 일반 봉사와 진리를 위한 충성과 고난과 복음을 위한 모든 고생이니 불의의 파괴와 의의 건설을 위한 일들이다.

'인내를 알고' 이는 단기간 고난을 견딤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각양 0란과 피곤과 수고를 꾸준히 극복하면서 의무를 감당한 일관의 신앙생활을 가리켜 인내라고 하는 것이니 3절의 기록한 인내와 다르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1.교회권징을 올바르게 하였다는 것
2.악은 인간본성의 악을 지(指:가리킴)함이니 곧 회개치 아니한 부패성들의 주장들이다.
3.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계획과 운동들 곧 범죄의 열매를 맺기 전 치리 혹은 권고로 제거하는 것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야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들어 낸 것과'
1.사도권은 직소정(直召定), 성경기록할 수 있는 권위, 교회 설립권
2.에베소 교회는 행20:29-30에 바울이 흉악한 이리가 거짓 복음으로 유혹할 것을 말했다. 경건한 모양과 구비한 종교 의식을 가지고 사도라 하며 또 사도 행사로 나타났으나 주께서 자칭 사도라 하는 위사(僞師)로 증거하였으니 위사인 데는 틀림없다.
3.마13:24-25 주인이 좋은 씨뿌린 후 원수가 모르게 가라지 뿌렸다고 비유하심같이 반드시 순(純)복음을 전한 후에 이단이 반드시 오는 줄을 알아야 한다.
4. 에베소교회는 이 이단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냈다. 이를 보아 이 교회는 진리 지식이 장성한 것이 보인다. 사도행전 20장 20절 이하에 보면 이 교회 이단의 특색은 ① 양을 아끼지 아니하고 ② 자기를 쫓게 하고(그리스도를 쫓게 하지 않음) ③ 진리에 어그러진 말을 함.

"네가 참고"
1. 시대 혹은 돌발된 환난들의 참을 것을 의미한다. 우연적으로 진리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환난, 곧 고문, 고형, 투옥, 각양 박해들의 인내를 말한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1. 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한 복음을 말함이니 건설적으로 복음운동을 위한 모든 애로(哀路)와 억울과 멸시와 기근, 적신(赤身), 위험등을 무릅쓰고 교회 건설과 건덕을 위하여 견딘 것을 말한다.

"게으르지 아니하는 것"
충성과 열심을 말함이니 일곱가지 미행(美行)중 하나인 동시에 이상 여섯가지의 총결론이다. 일곱가지 행위 전부를 일시적이 아니고 시종일관으로 열중한 것을 말한다.


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1. '그러나' 함은 일곱가지 미행은 긍정하여 주시면서 고치지 아니하면 죄가 있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칠행(七行)이 구비하니 오늘 교회 일반 상식으로 성자라고 할만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으면 촛대를 옮긴다 하셨으니 곧 생명(요한복음 1장 4절)을 빼았는다는 말이니 사망에 이르는 죄란 말이다. 이 죄는 얼마나 큰 죄일 것인가? 그러므로 누구나 상식하여야 할 바며 또 부절히 싸워야할 적인데도 이 죄악의 명사(名詞)조차 일정하지 아니하니 진실로 놀랠 일이다. 이 죄를 보기로 하자.

"처음 사랑을 버렸나니라"
1. 이 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회개할 방법 회개치 아니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5절에 명기하였다 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하였고 ②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였고 ③ 회개치 않으면 교회를 없애겠다고 하였다.
2. 처음 사랑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① 진리를 밝힘으로 처음 믿을 때에 교인끼리 서로 사랑하던 것을 교리 파수로 인하여 사랑이 식어졌다 하고
②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처음보다 식어졌다 하고
③ 성도끼리 사랑이 식어졌다 함도 아니요 그리스도을 사랑함이 식어졌다 함도 아니요 구속의 관계를 끊어 배교한 죄이니 곧 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랑하사 요일4:10에 말한 대로 대신 죽고 부활하사 화목 제물이 되신 그 사랑을 잊은 것이 아니고 사랑은 희생하여 준 것을 가르켜 말함이니 죽으심으로 자기 죽음을 대신 하여 주신 그 죽음을 버린 것과 처음 열매로 부활하사 자기를 중생으로 새 것 주신 것을 버린 것을 가르쳐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사랑은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사 사랑의 행사를 하신 그 대속 역사를 버린 것을 말함이니
① 고전 6:19-20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② 롬 14:8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③ 고후 5:15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신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함이니라" 함과 같다.
④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자기를 자기 것으로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살려함이요.
⑤ 처음 사랑을 찾음은
A.하나님께 대하여
㉠ 내 전부가 주의 것으로 (영육 생명 소유시)
㉡ 전부를 가지고 주만 위하여 살고
㉢ 앞으로도 주께만 얻고 또 얻고 그에게만 바치고 또 바치고 생활
B. 사람에게 대하여
㉠ 주가 그에게 대하듯 또 주의 것으로 그에게 대할 것.
㉡ 주를 위하여 사람을 대하며 주와 관계를 맺는 중매자로 대할 것.
㉢ 주의 것으로 주고 그 사람으로 또 주께 얻고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대하는 것이다.

3.평(評)과 주의(注意)
1.해석1. 인인상애기(人人相愛棄: 사람이 사람을 서로 사랑하는 것을 버림)는 아님이 분명하다. 이유는 7미행이 있으니 교회 사랑이 없을 수 없겠고
2.해석2. 신애기도 아님은 주명위하여 견뎠다 하였고 게으르지 아니하였으니 식어진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3.해석3. 가한 줄 안다.
주의할 것은 ① 내 전부를 주의 것으로 가지기를 원하오며 (몸, 이성, 생명, 소유기타)
② 주만 위하는 것이 되어지기를 바라오며
③ 내가 주께 얻고 또 얻고 주께만 얻는 자되기를 바라오며
④ 주의 것으로 주가 대해주듯 형제에게 대하는 사람되기를 바라오며
⑤ 주의 소관으로 주께 접붙이는 그 용무로 사람을 대하기를 바라오며
⑥ 내것은 썩었으니 주의 것으로 형제에게 주고 무진장의 주의 곡간에 열쇠를 그에게 주는 자되기를 바라옵니다라는 기도를 계속하여 처음 사랑을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참 생명이요 사랑이다. 특히 처음 사랑이라는 처음은 신앙할때에 교리적으로는 먼저가지나 후에 실천의 생활에서는 바라는 것을 가르켜서 말한다.
5절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옯기리라"
1. 빛은 생명있는 증거이니 빛을 옯긴다함은 생멍이 끊어졌다함이요.
2, 에베소 교회는 예언하신대로 회개치 아니하여 주후 1500년에 교회가 없어졌다 한다.
6절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는도다"
1. 동감됨을 기뻐하심이요.
2. 이 당은 이레네오는 7집사중의 하나라고 하나 성신 충만한 자가 타락할 이유가 없고 또 위사군이라하니 의연하고 또 3장 14절과 15절을 보아 세상 주의와 유물주의적인 위사당이 분명하다.
3. 이는 옳은 행위인데 7미행의 연기하지 아니하고 후에 별기함은 처음 사랑을 버린 자들로 세욕을 버릴 수 있고 세욕을 버린 자로도 처음 사랑을 버린 순수한 기독교같은 순전한 이단이 있을수 있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처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와 연결이요 생명이다.
7절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 사람에게 참 있어야 할 귀, 유익이 되는 귀, 가치가 있는 귀는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듣는 귀한 말이다. 이것을 들을줄 모르는 귀는 그 사람에게 있어 필요한 귀로는 없는 자와 같다는 것으로 귀의 가치를 평가하는 동시에 귀를 창조하신 목적을 밝히시는 것이며 사용의 유일의 법칙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기는 그에게"
1. 이것은 과거분사가 아니고 현재분사니 승리의 완필이 아니고 진행을 염두에 둔 말이다. 마 24:13 참조 신앙의 승리는 현세에 완성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별세시간까지 되어가는 일이다.
2. 이긴다 함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처음 행위를 하는 것을 가르쳐 말함이다. 다시 말하면 주인을 바꾸어 주의 것으로 주만 위하여 살고 주께만 소망을 가지는 자이니 자율이나 자행은 없나니 요동함이 없는 행위이다.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주어 먹게 하리라"
1. 내가 함은 주님이 직접이란 말이니 신실성과 친밀성을 가짐이요.
2.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은 영생하는 나라에서 먹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승리하였으니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 처음 사랑을 찾은 자에게는 승리자이니 생명과실을 먹을 수 있다. 이 생명과실은 실물이 있는 동시에 진리와 진리의 신의 은혜도 포함한다.
3. 하나님의 낙원은 천국을 말함이니 곧 자유와 영생의 세계, 하나님을 섬길 권세가 있는 세계이다.
4. 이 낙원과 생명과실은 재세에서도 처음 사랑을 가진 자는 얻고 먹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세계에서 진리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날마다 받아 영혼 윤택하게 자란다.
二. 서머나 교회
1. 서머나 교회는 에베소 북쪽 160리 거리에 있는 무역장이요 다신종교 성왕하고 당시 폴리갑이 감독으로 있다가 순교하니 때는 주후 168년이다. 순교시 68년간 한번도 나를 모른다 하신 적이 없으신 주님을 어찌 내가 배반하리요. 또 화형중에서 이 불은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간 화차라고 하였다. 이 교회는 경제적 궁핍과 유대인의 훼방이 심하여 특히 환난교회이며 순교교회이다.
2.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각이하다. 죄악이 있는 교회에는 의로우신 주님으로 나타나사 너와 나와 정반대의 사상과 행동을 가졌다는 책망으로 회개를 권하시고 바로된 교회는 다 핍박받는 교회들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교회에게는 교회가 핍박받는 그 원인과 같은 주님으로 나타나사 나도 재세할때에 이로 인하여 수난하였다. 너도 나와 동지동행인 연고로 수난하느냐? 하시는 주님은 사대관이 당신과 동일함으로 수난하는 이유를 말하여 위로와 또 소망을 주신다.
8절 ⑴ "처음이요 나중이요" 이는 주님의 영원성, 곧 시간의 영원함을 나타내심이다. 이는 주님의 시간만을 상대하지 않고 죽음 너머있는 영원한 시간을 상대하여 거기 맞추어 사는고롤 금생과 내생은 모순이면서 합치되는 (눅 16:25)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과 정반대되니 자연 충돌이 생겨진다. 세인들은 죽음이 편의 세월만을 자기의 것으로 거기에 유익하도록 살고 주님은 죽음너머 영원한 세월의 수입있는 생활을 하시니 그 교훈도 주장도 유대인에게는 거리낌이 되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며 또 대적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재세에 주 나는 박해 십자가로 일관하였다. 서머나 교회야 너도 시간관이 나와 동일한고로 박해받는 것을 내가 아노라 하신 위로의 주님으로 나타나셨다. 다음 삼대관도 이와같다.
⑵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이는 주님의 생명관을 말씀하심이니 재세 몸 이대로의 생명 곧 죽음 이편에 있는 생명을 상대하지 아니하시고 한번 죽고 다시 사는 죽음너머있는 그 생명 곧 상대하여 사신 생활을 소개하여 이편 생명은 유한하며 짧고 일사부활의 생명은 완전하며 영원함과 인생은 범죄로 다 사형에 달려 죽어가는 산자인 죽은 생명이니 이미 가진 생명은 아무래도 죽을 것과 또 죽기전 신앙으로 죽으면 영생이 있는 것과 그리스도께서는 죽지 않을 육의 생명이 택자에게 새생명 영생주기 위하여 죽음을 자취하여 대속하시고 부활하셨으니 신망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주님이신 것과 서머나 교회는 이 대속도리를 확신하여 생명관이 그리스도와 동일함으로 죽음 이편에 가진 죽을 생명은 상대치 아니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사는고로 세인과 생명이 정반대성을 가진고로 핍박받는 서머나 교회를 인정하시고 동지 동행자로 위로하시면서 또 부활하신 당신을 보여 소망을 굳게 하신다. 이상 두 장점 외에 귀한 두 장점을 다음에 말하셨다.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부요한 자라"
1. "내가 네"라는 두 인격의 위로는 간잡이나 뜸이 없는 동지 친밀을 의미함이니 서머나 교회는 주님이 심히 기뻐하셨다.
2.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부자라"함은 서머나 교회는 죽음 이편 환난과 궁핍을 상대하지 않고 죽음 저편의 영원한 환난과 궁핍을 상대로 하여 이를 면하기 위하여 재세의 환난과 궁핍의 도를 우연적으로 혹은 자고적으로 취하였고 평안과 부요도 죽음 이편의 것을 목적하지 않고 죽음너머 있는 부요와 평안을 위하여 재세의 것을 혹은 포기 또 투자하였으니 세인의 관찰에는 여세월이 없는 자로 곧 죽는 자로 환난과 궁핍들의 가난한 자로 보이나 전지하는 내가 보기에는 서머나 교회 너는 시간 생명 평안 부요에 대한 사대풍부의 영원 충만자라는 것이다.
3. 이상의 사대관은 성도의 제이 중대성을 가졌는고로 서머나 교회가 제 이차로 기록된 것이다. 이 사대관을 바꾸기 전에는 모든 수고의 공적이 원수의 곡간을 채워주는 것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악마는 이를 잘 안다. 사대관을 세상주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성도는 낚시에 걸린 고기와 같이 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칭 유대인이라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1. "자칭 유대인이라"함은 유대주의와 유대주의적인 신앙사상을 가진 자들을 가르쳐 말함인데 이는 자율적인 신앙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스스로 위로받는 무리들을 말함이다.
⑴ 유대주의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앙하지 않고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된 이것으로 구원의 근거로 삼으니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도는 거리끼는 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폴리갑 순교시에도 그들은 이방의 폭도들과 합작하였고 그 시체까지 기독신자에게 주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대인된 자세를 한 사이비한 하나님의 적이 되는 무리었다.
⑵ 금일 유대주의적인 신앙 사상을 가진 무리는 곧 자율대로 믿어 주인도 법도 이상의 사대관(시간, 생명, 환난, 궁핍)은 바꾸지 아니하고 세상주의로 살면서 형식적인 종교의식, 곧 가견적 교회에 출입함으로 그리스도인된줄 아는 자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사상적 자손은 못되고 혈통적 자손된 것 가지고 신앙 표준으로 약속된 그 후손에게 허락한 구원을 얻은줄로 아는 자와 같은 어리석고 사이비한 기독자로 실상은 적기독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폴리갑에 대한 유대주의자같은 행위들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하게 된다.
2.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이는 혈통주의 유대인이 신앙주의 유대인과 대적이 되고 은혜주의 곧 중생자주의 곧 천국주의로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와 법율주의 곧 육신주의인 세상주의가 대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도 목적도 판이한고로 모든 생활이 대적됨을 받는 것을 가르켜 훼방이라 하였고
"아노니"하심은 동지한 말이오. 인정하신다는 뜻이요. 그로 기인한 일은 책임지시겠다는 동정의 약속이시다.
3.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이는 사람보기에는 하나님의 백성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대적 마귀의 단체란 것이다.
10절 "네가 장차받은 고난을 두려워말라"
1. 현재에 환난중에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장차 고난이라 하심은 현재의 고난을 부인하심이 아니다. 9절에 네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면 장차 환난은 무엇인가?
⑴ 비상의 환란이 종종있는 것과
⑵ 벌써 미래의 환난이 예정된 것과
⑶ 그리스도인의 십자가 생활은 재세에 벗는 일이 없고 가면 갈수록 생명과 거룩이 높아지니 거슬이는 세대에서 고난의 십자가는 점점 더 중하여지는 원리를 말하여 긴장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2. "두려워 말라"함은
⑴ 성화를 위하여 애주의 선물이요
⑵ 환난이 크면 성화의 성장된 표요
⑶ 필승케 하시는 투쟁이 크니 승리도 상급도 크니 주를 의지하여 두려움보다 기뻐하여야 하는 것이다.
⑷ 두려워말라함은 믿으라는 말과 같다. 두려워함은 불신에서 온다.
"볼지어다"
1. 이는 선포와 경고와 보수를 보이면서 다음 말하시는 사건은 정확하니 어느 편을 취하든지 인생들아 자유로 하라 보응이 있나니라 하시는 심판성을 가지시고 엄히 경고하며 서머나 교회에게 일층 주의 깊은 인식을 주시는 사랑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동안 환란을 받으니라"
1. "마귀가 장차 너희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한다." 말은 같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칭 유대인을 가르쳐 말함이니 그들은 입에 사탄의 회로 조직된 단체요 또 택자라 할지라도 아직 실은 피소되지 못한 자들이라 하겠다. 그들은 주장하는 신은 곧 마귀요. 곧 사탄은 그들을 이용하여 성도를 눅 22:31같이 까부러는 시험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시험하고 하나님은 그를 이용하여 성도를 시련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별수 없나니 주인과 사대관을 바꾸지 못한 자는 마귀의 이용물로 진리, 곧 성도를 대적하는 불의와 적기독이 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자이다. 올바른 신앙이 아니니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수 없고 육신과 세상에 속한 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려하니 그리스도와 그 진리에 대한 충성의 각오가 가장 빛날 역경을 봉착할때마다 배신하여 고의적이 아닌 적기독의 역사를 하는 자가 되게 된다.
2. 몇 사람이라 함은 서머나 교인(곧 올바른 전 지상교인) 전부가 동일한 시험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특수 예정해놓은 자만이 받는다는 것이니 이는 귀한 선물이다. 약 1:2 참조
3.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이는 고대 서머나 교회가 투옥당한 일이 많았으나 여기에 한한 말만이 아니고 마귀의 각양 환난의 시험중에 그 종류의 대표로 한 투옥을 가르침인데 이 시험을 받을 예정자로 지상교회 전부에게 산재되어 있고 또 각종각양의 시험이 있으나 실은 그 깊은 의미에 있어 무형의 옥들인 것이다. 유형옥에 모든 활동은 구금되었으나 양심은 자유있는 것처럼 무형의 투옥도 각양신앙 활동에는 구금되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같은 영교의 한 ▶▶제1권 끝 2권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