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주해 제4권

2007.06.0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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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록 주해 제4권
선지자선교회
이름 : 반석     번호 : 28
게시일 : 2001/12/30 (일) PM 04:54:23  (수정 2006/02/19 (일) PM 09:33:04)    조회 : 126  

계시록(제4권) 1957년 1월 21일,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이 기록은 백목사님이 직접 작성하신 계시록 주해 원본입니다. 여러 성경을 주석하고 그 기록을 보관하셨으나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은, 주석으로 기록한 본문을 다시 설교를 하거나 다시 살필 때마다 이전 기록된 부분과 비교할 수 없도록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동일한 설교를 반복한 적이 없고, 기록한 원고를 단순 반복한 때가 없었던 백목사님의 말씀 세계는 그 숨이 끝나고야 그 전진이 그쳐졌습니다.

따라서 목사님의 주석 또는 설교 준비 기록은 적지않은 분량으로 남아 있지만, 대부분이 서부교회 오신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 초반까지 10년동안만 작성된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1960년대 이후 깊어지던 그의 깨달음은 더 이상 기록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 이전 기록들은 공개하거나 출간될 수 없는 어린 때의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초기 기록 때 베껴 적었던 분들이 있었으나 그 내용을 희소성의 가치로만 오용했고,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설교거리로 봉해버린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1987년 이후로 순교시까지, 교리연구에 참고하는 조건으로 직접 기록한 노트, 구술하며 받아적게 했던 대필 노트, 조각난 메모 용지 등에 기록된 요약, 그 모든 기록을 받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후 이 모든 기록들을 즉시 출간하려 서둘렀으나, 개인이 할 범위가 아니었고 공회 기타 차원의 지원은 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붙어 있어 결국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실은 이 기록들의 수준은 백목사님 마지막 10년에 해당하는 설교록과 비교할 때, '백영희 성경주석 서문' 또는 '백영희 성경주석 입문' 수준이라 판단되고, 1980년대 10년의 설교는 '백영희성경주석의 본문내용'이었으니 그렇게 무리하게 출간을 서둘 필요를 못 느낀 것이 더 큰 원인이었습니다.

이미 설교록에서 성경 깨달음의 깊은 세계를 만나 보신 분이라면, 그리고 설교록에서 언급되지 않은 본문을 참고하는 정도라면, 이 기록들은 비록 그 내용이 지극히 적고 또 초보적 수준이라도 설교록에 없는 성경 본문을 접하는 윤곽과 방향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서 계속 공개를 해 나가려고 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가 과거로 갈수록 은혜가 있다고 하는 견해가 교역자들 세계에서는 절대 다수가 되어 있으나, 단언코 이를 반대하는 것이 이곳의 입장입니다. 과거 설교는 축절적 단절적 해석이 많았고, 그래서 본문을 파악하고 설교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손쉽고 또 이해도 간단했으나, 이는 그 훗날의 더 높은 세계를 향한 초보적 준비였음을 기억하고, 훗날의 설교가 더 은혜롭다고 느껴지는 데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 말씀의 세계가 가는 방향과 다르게 나갈 수밖에 없음을 주의할 일입니다.


*고어체, 약식 한자들이 많아 필요한 대목에는 원문과 다른 표기를 하였습니다.

7:11-12

영광은 하나님에게만. 또 자기가 은혜를 입은 것보다 남이 은혜 입은 것을 자기가 높아진 것보다 남이 높아진 것을 자기가 영광 입은 것보다 남이 영광 입은 것을 더욱 기뻐하며 그 시은자에게 자기가 직접 얻은 것보다 더 기뻐하며 더욱 감사하며 더욱 찬송하는 나라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본장 9-10에서 찬송하는데 11절 천사들은 업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하면서 찬송했다. 남의 행복을 자기행복보다 남의 입장을 자기 입장보다 더욱 신중이 여기며 기뻐하니 그 나라에 국기는 사랑이다. (악2:4)

3.찬송제목은 일곱가지니 ①찬송 (하나님의 뜻의 온전하심과 동의자되였음을 스스로 즐겨 하면서 찬송함이오) ②영광과 (이 영광은 다음에 지혜와 능력이 딴 제목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아 그 사랑이 무궁하시며 완전하심에 사랑의 영광이오) ③지혜와 (모든 예정과 이행에 대한 완전과 지공하심과 또 생명 곧 사랑에 소속한 선하신 지혜를 칭함이오) ④감사와 (홀로 창조주와 시은자시오 모든 피조물은 그로만 존재하고 존속할 수 있으며 또 행복될 수 있음을 과거 현재 미래적으로 감사함이오) ⑤존귀와 (지존하신) ⑥능력과 (피조물의 지식이 도달 못할 무한의 힘) ⑦또 힘이 (모든 피조물이 인식할 수 있는 힘 피조물과의 상관된 힘 이것들이 천사의 찬송제목이었다.

특히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함은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됨을 말함이니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함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에게 일곱 찬송제목이 있기를 원함이 아니고 그 제목은 영항 불변적으로 있는 것인데 천사자체로 이 찬송을 영항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일종의 기도와 같은 것이면서 또 현재가 찬송하는 편에 서 있는 것을 한없이 행복되이 여기는 노래이다.

'아멘' 함은 원한다는 뜻이니 있을지어다 하는 말을 거듭 소원한 것이다.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배치(背馳)되는 것을 제일 불행과 저주로 알며 하나님과 한 편되고 동의되는 것을 지상의 영광으로 안다. 이것이 올바른 견해이다. 지상성도들도 이 견해를 가질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참 지혜있는 자가 된다. 이 찬송제목 중에든 일곱가지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리고 피조물 그 어느것에라도 돌리면 자타는 손해 본다. (행12:23)

13-14절
'장로중에 하나이 응답하야 내게 닐아대 이 흰옷 닙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대서 왓나뇨. 내가 갈아대 내 주여 당신이 알니이다 하니 그가 나다려 닐아대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씨서 희게하엿나니라'

1.장로가 묻는 것은 몰라서 물음이 아니고 요한에게 깊이 인식시켜야 할 문제인 고로 그에게 의문을 제출하여 요한이가 불가기수의 의문에 의문을 가하여 심각한 탐심(探心)을 소생시켜 깊은 인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뿐 아니라 이 흰옷입은 사람이 어데서 왔느냐는 그 처소는 우리들도알아야 될 것 중에도 심각히 알아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하면 흰옷 입은 자들의 온 곳이니 구속받은 성도들이 온 곳이다.

2.요한은 장로의 물음에 대한 반문으로 그 흰옷 입은 무리들이 어데서 왔느냐고 하여 쌍방은 동일한 문제에 집중되었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과 일반 신자들의 마음은 항상 구속받은 자가 어디서 머물다가 천국가느냐는 그 거주지에 머물러야 한다.

3.'그가 나다려 닐아대 이는 큰 환란에서 온 자들인데'  여기에 특히 '나에게' 말한다 하는 어구가 있다. 이는 장로가 가르치는 이 지식만은 개인이 가져야만 할 것이며 또 개인적으로 당면할 일인 것을 의미하고 큰 환란에서 온 자들인데 함은 환란에서 온 자게 대한 남은 구체적 설명이 있음을 보인다. 큰 환란은 해설이 다음과 같다.
1)천국에는 환란 격지 않은 자 한 사람도 없다.
2)성도의 천국노상에 만나는 환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발하여광야를 통과하고가나안을 정복한 것으로모형하셨다. 그런 고로 육신의 이스라엘은 신령한 이스라엘을 나타낸 상징계시이다. 육신으로이스라엘, 그들의 환란
①바로와 애급의 탈출같은 악마와 세상의 탈출 하기 위한 환란
②홍해같은 진역난 (進亦難), 퇴역난의 환란
③의식주의 환란 .....물은 흙보다 어려운 반석에서 남같이 모든 갈증은 보편법리와 피조물로 해결됨보다 비합리인 그리스도로 해결됨과 양식은 전혀 天來. 쓴물은 피하지 않고 가지든지 먹음으로 ....순종으로 당한 총고난은 순종으로만 해결된다. 거역으로 당한 고난도 순종으로 해결된다. 순종은 열쇠이다.
④뜨거워 견디기어려운 환란...기쁘고 좋아서 썩는 환란
⑤추워 견디기 어려운 환란 .... 위협. 압박. 빈곤. 무지 무능의 환란.
⑥인국(燐國)의 박해 환란 외식 교인의 박해
⑦화주(불기둥), 운주(구름기둥)의 인종하니 봉란하고 그들의 보호로 바른 길 걸었으며 또 생존하게 되었고 또 말씀 순종으로 모든 난제는 초자연적으로만 해결되었다.
⑧천국은 다 환란에서 왔다고하면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기독교인은 박해가 있을 수 없으니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공산국가에 있는 기독자가 광야 추운 박해라면 미국은 사막의 낮과 같은 너무 행복스러워서 부패한 환란이다. 그런고로 부패의 세력이 없는 곳은 없는 줄 알아야 한다.
⑨환란은 대외환란과 대내환란이 있으니
△대내환란은 각양으로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 각인은 다르니 심욕 정욕 물욕 음욕 명예욕 안일욕 혈기 시기 원망 불평 미움 의심 교만 낙망 기타의 모든 부패성으로 말미암은 심령 불안과 배은 범죄케 함이오
△대외환란은 가족 사회 국가 경제 모든 행사에방해 미혹 등의 위협과 간교와 미 괘락 등으로 배은 범죄케 하는 환란이다.    
△그러나 본장 15, 16에 하나님의 장막으로 덮으신다고 하심은 능력에 보호를 말하심이니 이는 외래의 환란을 막으시는 고로 내란이 없을 것을 보증하시는 말이다. 그런 고로 대외의 환란은 아무리 심할지라도 이해의 결정은 자기 안에서 되는 것이다. 만일 살해같은 환란이 올지라도 자기 안의 파수가 강하여 용납하지만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을 면류관과 보좌가 되고 허용하면 그의 종이 된다.
△자기 안에서도 대외 대내가 있나니 부패성이 아무리 각양으로 중생자를 박해할지라도 중생자가 이를 허용치 아니하고 방어하면 성화가 되고 허용이나 타협하면 성화는 중지되고 자라지 못한다. 특히 우리는 이 점에 있어 소망할 것은 우리는 무능하나 하나님께서 장막으로 덮어 자기 안과 자기 밖의 모든 대적을 막으시고 또 어린 양이 목자되어 내부 통솔을 보증하셨으니 범사에 낙망말고 소망 중에 힘써야 한다. 낙망은 의심케 하는 신이요 게을은 배은이다.
⑩내외 두 환란 중에 선(땅)에서 오는 환란과 악(바다)에서 오는 환란과 인간(각종나무)에서 오는 환란이 있다. 바람을 불지 말라 한 것은 이런 존재들을 계속 박해하도록 그들을 없애지 말고 더 두라는 것이다. 이 바람을 불지 말라하는 것을 환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정반대가 된다. 성도에게는 환란을 일으키도록 더 두고 그들의 환란은 중지하라는 것이다.
△내란  -  선에서 오는 것  -   하여야 할 줄 알면서 못하는 일의 고통
희생 계명지키는 것, 사랑 등
    악에서 오는 것  -   안해야 될 줄 알면서 하게 되는 일의 고통
신앙양심에 가책되는 모든 행사, 방종, 혈기, 탐심, 음욕
△외란 -  악에서 오는 것  -   불량자, 강도, 악도들,
악한 인간과 악한 사상, 악한 운동에서 오는 것
  선에서 오는 것  -   각 이종교 각 선한 단체, 이방 도덕의 유풍 권선징악의
운동들, 지방유전 풍속 전설 사회 국가 가정들에서 오는 것
△결론 이상의 각 환란은 하나님의 요구의 절정을 통과할 때에 인침을 받고 박해하던
자들은 물러간다. 그런 고로 여기에 기록한 환란은 말세 대환란만이 아니고 모든 환란을 포함한다.

4.'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나니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니 천국에 구원얻은 모든 성도의 의는 오직 어린 양의 보혈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의뿐이오. 또 그기 있는 성도들은 옷을 입은 것처럼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있는 것만이 천국에 옮겨질 수 있는 것과 그 피만 자랑하는 것과 그 피로만 전체 예복을 삼는 것을 상징함이다. 그런 고로 지상 성도는 보혈에 대한 연구와 올바른 관계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무로 하는 것이다. 보혈과 관련되지 않은 지식도 행위도 천국에는 무용이다.


15-16절
'그런 고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뎐에서 밤낫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우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모 떠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그런 고로' 라 함은 그리스도의 피에 씻어 희게 하였는고로 하는 말이니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내가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의 말씀을 벗어난 그 죄과의 벌에서와 그 죄에게 종된 부패성을 제거하며 해방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벌을 대신 받으시고 흰옷 입은 것처럼 죄와 형벌에서 해방시켜 의와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한다는 그 원인과 결과의 정점을 표시하는 것이다.

2.'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함은 배신의 죄벌에서 해방 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어 이루신 그 사랑과 그 공로를 기억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곧 배반치 아니하는 그 성결 생활을 여하한 형편에 이를지라도 그대로 파수하여 하나님 앞에 세워주신 인생의 참 지위를 그대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고로 본 성구는 지성한 존재 앞에서는 그 지위를 얻은 이유와 또 얻은 성도의 충성되히 지위 파수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이 지위를 파수할라 할 때에 환란이 오고 환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보혈과 관계의 진가(眞假)자 곧 참종과 종 아닌 것이 구별하게 된다.

3.'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시간을 말함이니 성전 안에서 섬긴다 함은 영적 이스라엘의 모형인 육신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전 곧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든 그 방법으로 섬김을 염두에 두고 상징하는 말이다. 그기는 세수통에서 씻고 등대에 불켜고 떡 상에 떡궤이고 (하나님의 식물이 되는 선행) 제단에 제물 사르고 법궤에 피 뿌리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그리스도의 피로만 해방받는 믿음) 것과 법궤를 모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선행을 말함인데 그 시간은 어느 특별한 시간이 있음이 아니고 항상 계속적인 생활을 가르쳐서 말함이다.

4.'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우에 장막을 치시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보좌 앞에 생활과 성전에서 섬기는 생활을 죄악과 모든 불의의 세력이 하늘까지 관영하여 있는 세상이나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로 외래적인 방해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수호하여 주실 약속의 말씀이다. 외래적이라 함은 몸 밖에서 오는 것과 중생된 자의 밖에 있는 자아의 부패성들을 의미한다.

5.'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 마르지도 아니하고' 이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 기갈하였든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니 광야같은 세상을 통과할 때에 영혼의 기갈 의에 기갈 선행의 기갈들이 심할 것을 말한다. 그들이 땅에서는 하나의 해결도 받지 못하고 다만 초자연의 능력으로만 해결받아 광야 40년을 의식주에 고난으로 어렵지는 아니하였다. 이와같이 인생의 영혼에 갈급은 자연의 법 혹은 자연물사(物事)로는 전혀 해결받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의 특수적인 천래의 은혜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도리와 또 0보좌 앞과 성전생활에 대한 만난의 애로가 있을지라도 애로(哀勞)가 있을지라도 그 심령과 의와 선으로 배불릴 수 있는 신앙양심만 언제나 만족하고 갈함이 없음을 상징함이다. 고가 낙이 되고 난(難)이 안(安)이되고 급(給)이 수(受)가 되고 구금이 자유되고 치욕이 영광이 되고 사가 생이 되는 기독교만이 가지는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6.'해나 아모 떠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도 이스라엘의 사막통과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낮에는 더워서 견대지 못하고 밤은 추워서 견대지 못하는대 낮은 구름으로 가루시고 밤은 불기동으로쪼여 냉서를 조절하여 이스라엘을 보호하심같이 존재의 각양 영의 박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조화시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하여 주시겠다는 보증이다. 인생의 영혼은 유한한 것이라 극도의 안락과 고난에는 해를 받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조정으로 해보지 아니할 것을 말함이니 성도의 재세 유일의 복의 길은 그리스도의 피에 팔린 자로 보좌 앞과 성전 생활이다.

7:17
'이는 보좌 가온대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1.'이는 보좌 가온대 게신 어린 양이 저희 목자가 되사'  

'이는' 이라는 어구는 16절에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떠거운 기운에 상우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에 소개하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으니

1)'보좌 가온대 게신'

이는 중보자를 가라침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특수하게 신인양성일위를 가지신 구주로 구주로 신성은 하나님과 하나되고 인성은 사람과 하나되여 둘이 하나되게 화합시키는 그 역사와 (하나님의 노와 택자의 죄를 담당하여 화합시키고 택자의 무지와 미련과 악을 하나님에게 고하여 고치시고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지혜를 인간에게 소유시키며 택자는 피창조무로가 애은자의 입장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은 창조주와 수은자의 입장을 회복시켜 화목하게 하시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택자의 대리자로 또 영원히 택자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대리자로 양성이면서 일위인 것 같이 하나님과 택자는 신인 둘이 이면서 생명도 나라도 영광도 뜻도 힘도 일도 하나되게 하는 역사를 맡으신 중보자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함이 되는 이유 중에 첫째로 중보자인 것을 상징하여 보좌 가온대 게신이라'[고 한 것이다. 주의할 것은 신인의 화합에서 언제나 하나님은 창조주와 시은자시오 지성하셔서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도 볼 수 없는 자시며 (딤후6:16, 요17:21) 우리는 언제나 피조물이며 수은자이며 죄인이 그리스도로만 구원 얻은 자인 구별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중보자로 신아(神我)완전화합과 신아 영원구별을 굳게 잡고 신비주의의 신아 혼합일체와 동등시하는 이단에 빠지지 않아야 되고, 신인구별에서 신인초절의 위기신학에 빠지지 않도록주의하여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에게 모든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 절정은 2합1성 (二合一成) 같이 하나님과 나와는 과근할 수 있는 소망이 우리에게는 있다.

2)'어린 양이 저의 목자가 되사' 함은 요1:29 절에 세례 요한이가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양'이라고 소개한 거와 같은 의미다. 이 어린 양은 '남의 죄과를 대신 담당하여 형벌 대수자로 하나님의 노를 대신 풀어 드리는 자로. 전부를 희생하실 사랑과 자비에 주를 말함이다.
세례요한이 말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택자를 사랑하사 임에 하늘에 모든 부요를 내어놓아 한 양같은 제물로 땅에 낮아져 오심과 또 앞으로 3년의 생활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과 이 모든 희생을 택자 위하야 하실 사랑과 긍휼의 구주 희생을 특질로 한 구주심을 감탄하여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 '어린양'이라고 사도요한이가 증거한 것은 세례 요한이가 미래사를 두고 그리스도를 증거한 그 사역들은 임에 다 성취된 후이다. 그러면 다시 또 그리스도께서 그런 역사를 하실 것인가? 또는 과거의 사역을 두고 선행사로 말함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한 편으로 치우치는 견해를 가지기 쉽다. 여기 어린 양이라고ㅗ 소개한 것은 과거의 사랑의 희생으로 설정하여 놓은 공로와 미래적으로 과거와 같은 그런 대속의 희생이 중복된다 함은 아니고 미래적으로도 과거와 같은 그런 사랑과 희생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주께서 목자가 되심을 말한다. 택자에게는 영원 타락과 영원 형벌과 영원 불의를 영원무지무능을 이미 다 대속하셨기 때문에 택자에게는 영원히 불리함이 없고 또 미래적으로는 그와 같은 중보자를 모셨으니 부족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목자는 양의 무지무능과 어리석음과 겁쟁이인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것까지 다 책임진 목자이니 의식주와 생사를 총 책임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고로 택자는 그리스도에게 순종을 특질로 하는 것이다.
3)'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영적 고갈이 없는 것을 가르침이니 어떠한 형편이나 그 영혼에게는 만족할 성신의 은사를 말한다.
4)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함은 영원한 안식세계에서 성도에게 위로와 기쁨이 있을 것을 의미함인데 영원한 나라에서 만 아니고 재세에서부터 그 일은 시작되여 천국에서 완성된다.


15절로 17절까지에 기록된 7가지의 행복

①장막으로 보호하심
②주리지 아니함
③목마르지 아니함
④열기의 상함이 없음
⑤그리스도가 그 목자가 되심
⑥생명수로 인도하심
⑦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심

이상에 7가지 행복은 다 순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인다. 하나님은 시종이 하나이신 척도이요 우리는 원시치 못하는 젊은 척도이니 범사에 곧은 것 같으나 긴 세월을 지나면 둥근 것도 될 수 있다. 그런고로 무조건으로 주의 명령 순종한 자는 그 길 자체가 모든 일에 성공이요 영광이요 실패나 수치나 후회가 없는 고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며 행복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순종의 길은 스스로 복을 취하는 길이요 스스로 화를 피하는 길이요 하나님이 보호를 하시는 길이다.
상술한 7가지 행복은 6째 인 땐 다음 7장에 기록된 사실인 고로 말세일로 사람들은 보기 쉽다. 우리는 이 행복은 복음의 원리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아벨시대부터 시작된 일이니 7장은 그 이루어지는 시기를 하나님의 구속운동이 시작한 아담 때로부터 영원한 하늘나라에까지를 포함한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눈물 씻어 주심은 세상에서도 있으나 그 약속의 중심은 천국에서다.


제5부 (8장 - 11장) 일곱 나팔(喇叭) 재앙

8장
이 8장도 주의할 것은 이루어지는 그 시기에 대하여서다. 최후인 7째 인 뗄 때에 이루어진 7나팔재앙인 고로 6째인 뗄 때에 되는 사건들이 다 지나간 후에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시 6: 에 첫째 인 뗄 때로부터 시작하여 6 인 뗄 때까지 될 사건과 7천사 7대접재앙과 다 한 사건들이다. 다만 그 나타내는 각면(角面)이  다른 것 뿐이고 한번 시작된 일은 주재림 하실 때까지 다 그대로 계속되는 일이면서 말세가 가까올수록 더욱 심하여지는 것 뿐이다. 그런 고로 그 모든 운동들이 시작하는 때는 각각 다르고 마치는 때는 같다. 또 역사적인 어느 한 사건을 지적한 것도 있기는 있다. 다만 그것은 시대를 보이는 징조에 특의(特意)를 가졌고 그것조차도 그와 유사한 일은 세계 어느 지방이나 있는 일이다. 특히 이 8장에 계시된 사건이 이루어진 시간은 주님 승천 이후로 재림 때까지 지상 복음 시대 전부를 망라하여 이루어질 일이오. 9: - 11: 까지도 그러하다. 한가지 여기에 기억할 것은 계시 18:5에 '그 죄는 하늘에 사모찼으며' 하는 말씀이있다. 이는 죄악이 점점 채워져 많아져 감을 말한다. 죄악이 관영하여가니 하나님의 진노도 점점 심하여 가고 진리에 대한 박해도 심하여가나니 복음 운동도 모든 재앙도 불의도 점점 자라가는 거와 같이 강하여지매 기독교도 반대되는 운동도 하나님의 재앙도 점점 강하여 최고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고로 개인과 나팔과 천사와 대접으로 시작되는 모든 일은 가면 갈수록 더 심하여지고 그대로 계속하지 않는 것과 재림하시기 전에 완료되는 사건은 하나도 없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주님이 재림 하시게 되는 그 시간은 지상에 전개된 사건이 최고로 복잡한 때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규정지우려 재림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주님의 심판을 대비하고 시시비비로 복잡하여가고 주 재림으로 모든 것이 귀정된다. 복잡한 분요는 정숙한 정돈을 준비함이요 강한 시비는 수치와 영광을 크게 하려는 준비이다. 그날을 모르고 덤비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은 일이다.

해석

1절-1절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날이 반시동안 즘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천사가 있어 일곱나팔을 밧앗더라'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날이 반시동안 고요' 한데 대하여 해설이 각각 다르다.
1)비톨라이너스는 성도들이 장차 누릴 영원한 안식의 징조라고 하였고
2)크레다너스는 이것이 장차 화벌의 두려움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3)오종덕씨와 박윤선씨 黑崎씨들도 반시동안 고요한 것은 앞으로 큰 환란을 암시한 것이라고 또 환란이 잠간 중지하여 죄인들에게 평안이 있는 기간이라고 하였다. 1)은 우리가 인증할 수 없고 2)와 3)은 우리가 채택할 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 일고할 것은 6째 인을 떼실 때의 재난과 7대접의 환란은 이 7나팔 환란만 못하지 아니한 대 환란이다. 그기 대해서는 반시동안 고요한 시기를 말한 것이 없다. 시기 시기마다 지방적으로 세계적으로 환란과 평안이 교대함이 없는 때는 없다. 언제나 주야와 같이 교대한다. 그런고로 환란을 기다리는 평안을 하필 여기만 있다고 할 수 없고 또 미래의 환란이 너무 두려워 기가막혀 침묵하고 있는 동안이라고 하는 설도 이와 같은 환란이 인과 대접에서도 있는데 여기만 기막혀 침묵할 리가 없고 또 기이한 사건이 전개될 것인 고로 침묵하고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라고 하는 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기이한 일이 7나팔 외에 다른 순서에도 이만 못하지 아니하는 기이한 일이 전개된다.  

특히 7째 인 뗄 때에 반시동안 고요한 것은 제1인으로 시작하여 6인까지도 말세지말까지의 사건을 다 전개하고 7째 인 뗄 때에 다시 전개되는 7나팔 사건은 6째 인 뗄 때에 전개된 그 사건 다음을 시기적 순서로 전개될 일이 아니고 다 같은 동시에 될 일을 7인과 7나팔의 때에 표시되는 것은 하 나건의 다른 각면을 표시한 것이라는 것으로 7인과 7나팔 사건의 관계가 순서적이 아니고 새로운 각면을 계시하는 새 순서임을 보이기 위하여 7인 떼고 난 후 반시 고요한 것은 종전에나 모든 역사가 일단 중지상태를 계시하여 전일 계속적이 아닌 새 순서 시작이 있을 것을 보인 것이다

계시11:15- 7째 나팔의 사건을 보면 지상 말세지말의 주 재림 시까지의 사건이었고 계시 14: 에 보면 7천사의 재앙도 7째천사의 순서가 최후 마지막 재앙이었고 7대접 재앙에도 7째 대접이 최후 마지막 재앙이었다. 그러나 7인 사건에는 보면 6째 인에 사건이 마지막 사건이었고 7째 인 사건은 7나팔과 성도의 기도에 대한 사건이니 이는 종말의 사건만이 아니고 기독교 초대부터 마지막까지 있을 총 사건이 포함되여 있음이 다른 종별(나팔, 천사, 대접 사건)들과 다르다. 그런고로 특히 여기 반시라 한 것은 계속적이 아닌 것, 곧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작부터 끝까지 일을 전개하기 위하여 종전 사건과 현재 시작하는 사건의 간격을 두어 새 사건임을 특히 나타내려 함이다. 여기서 계시록에 기록한 그 순서가 실지 사건 진행의 순서가 아닌 것을 보이는 것이다.

2.'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7나팔을 받앗더라'
7나팔은 7재앙을 전개 시키는 상징계시인대 나팔은 특히 각 환란을 통하여 택자를 경고하시려는 목적임을 암시함이오. 7 수는 7 나팔로 표시했으나 그 내용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대로의 그 순서에 속한 전부를 포함한 것이란 뜻이다.
여기에 대하여 특히 기억할 것은 이 일곱 나팔재앙을 책임맡은 7 천사가 다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곧 내 하나님 내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아버지의 신실한 사환인 것을 기억하여 소망 중에 긴장하고 담대하며 인내하여야 한다. (요20:17)

3-5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야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저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브터 하나님 앞으로 올나 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우의 불을 담아다가 따에 쏫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1.3-5절까지는 성도들의 기도적인 모든 생활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며 또 그 기도의 응답으로 땅 우에 하나님의 진노와 복음과 성령과 심판의 역사가 있을 것과 o 약한 기도생활이 영원히 복된 것을 보인다.

2.'다른 천사' 이 천사의 하는 일이 중보자의 행위와 같은 고로 그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보는 학자가 있다. 그러나 그의 하는 일은 중보적의 의미의 것이 아니고 단순이 사역적인 의미의 일이다.

3.'제단곁에 서서'  본절에 제단이라는 말과 금단이라는 말이 있다. 또 그저 단이라고 기록한 말도 본장 5절에 있다. 우리는 이 세가지 단을 잘 구별하여야 한다. 3절에 기록된 제단은 지상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지상에서 하나님에게 심신의 제물 사물의 제물인 기도와 행위 곧 신, 망, 애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것을 가라쳐서 제단이라고 하였다. 특히 여기에 '금'을 붙이지 아니한 것은 인생이 지상의 제단생활은 지루한 것 같으나 그 기간이 짧은 것을 말하고 또 다시 없을 제단생활인 것을 나타냄이다. 우리의 제단생활에는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와 성령의 지도와 천사의 수종이 언제나 함께 하는 제사이니 언제나 권위 있게 피곤치 않고 드려야 한다.

4.'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야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저 함이라' 하였으니 '금향로는' 지상 성도의 일체 거룩한 생애 곧 주의 뜻을 위한 주의 뜻대로의 사역 그것들이 하나님에게 분향같이 상달됨을 상징 하는 동시에 금향로라는 금을 붙인 것은 영원성을 가르쳐 말함이니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단기간의 분향되는 제단생활은 그 시 그 시와 혹은 그 사역을 마치는 별세시에 하나님에게 바치워지는 분향 같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예물을 드리는 그 역사가 중지됨이 아니고 한번 한 일이 영원히 생전에 한 일이 영원히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계속적 향제(香祭)가 되는 그 존귀성을 말함이다. 그런 고로 예를 들면 한번 한 참된 기도나 참된 선행이나 진실히 가진 심령은 한번 하였는대 그것이 하늘에서는 영원히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있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한번 주를 사랑하여 정사(情死)한 순교는 하늘에서 영원히 정사적 애주(愛主)의 경(境)이 계속하는 것이란 말이다.

'많은 향을 받앗으니' 많은 향은 무한한 향으로서 모든 악취를 제하고 미향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설정하신 보혈의 공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는 그 성결과 의가 무한하여 택한 ant 죄인을 의롭게 할 뿐 또 성결케 할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천사가 받았다 함은 천사가 그 공로로 구속받았다함이 아니고 성도의 일체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 향제같이 사달시키는 사역을 맡은 천사로 모든 성도의 생애를 그리스도의 공로의 능력을 허락받아 그 공로와 함께 하나님께 상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면 인간의 아무런 의를 다하는 생활일지라도 때 묻은 옷과 같고 부패한 음식 같아서 하나님 앞에는 상납 되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만물 중에 가장 더러워진 피투성이 같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공로와 연합할 때에 천상천하에 유일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야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저 함이라' 라고 한 것은
'이는'이라 함은 금향로에 많은 향을 받은 것을 말함인데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야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저 함이라'고 한 것은 어떤 성도의 기도던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지 아니하면 하나님에게 올라갈 아무런 힘이 없고 또 누구에 기도던지 그리스도의 피와만 합하면 하나니이 받으실 수 있도록 상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모든 성도라고 함은 선지나 사도나 물론대소하고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여서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기도들과' 한 기도는 무엇을 가르침일까? 이는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감사함과 또 그에게 소망을 두고 하는 일체의 신앙생활전부를 가르쳐서 기도라고 한다. 올바른 뜻으로 하였다고 하면 심지어 먹고 자고 깨는 것 말하는 것까지도 다 기도라야 하며 기도일 수 있는 것이다. 감사와 도고와 간구의 목적으로 한다면 그 소행은 전부가 다 기도인 거이다. 그런고로 기도 아닌 생활은 있다고 하면 그는 다 죽은 생활이요 또 진리대로의 기도가 되는 미덕의 생활일지라도 그리스도의 피와 합하지 않은 것이면 다 불사루워질 것들이다.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저' 하는 금단은 또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여야 할 일이다. 이 단은 계8:3과 5에 기록되어있는 제단 혹은 단과 판이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을 붙이지 않은 그 제단은 폐지 될 날이 있고 금단은 영항적인 제단임을 상징한 다 성도들에 땅위에서 한번 드린 제물이 하늘에서는 영원히 드리는 불변의 제단의 제물이 되는 것을 보인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땅에서 한번 쌓은 제단이 하늘에서는 영원히 계속 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올나' 간 것은 향연은 그리스도의 공로요 성도의 기도는 구속받은 자로 감사와 도고와 간구의 중심에서 한 모든 생애요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올나간다 함은 그리스도 인들이 그 계명대로 하는 모든 생애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언제던지 성결를 보장함과 하나님 앞에 희납(喜納)될 수 있는 권위를 말함이니 그리스도의 제사장권에 연결한 성도의 제사장권을 말함이요 천사의 손을 통하여 올라감은 천사는 그 받은 능력으로 그 일을 도는 수종의 역사를 말한다. 성도의 기도 중에 간구는 어떠한 성질의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이니 소극적으로는 죄와 및 천국의 공적을 청소하여 버리시는 일(마6:33, 눅18:7, 계6:10 참조) 과 예정하신대로 택자의 구속완성 곧 성화완성이 되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런 간구는 하나님에게 희납되고 또 능력있어 그 응답은 땅에 이루워지는 것을 다음5절에 기록하였다. 혹이 말하기를 반시동안 고요한 때에 기도한 것이 상달되어 쌓였다가 때가 되면 하늘에서 응답이 땅위에 내린다고 하는 해설들이 있다. 그도 일리는 그러하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는 평온한 때만이 아니고 환란 때에 기도로도 일하신다. 도리어 인간은 강퍅하여 평온한 때는 하나님에게 열납할 만한 참된 기도가 적고 환란 때에 회개한 겸손한 심령으로 실력있는 기도를 더할 수도 있다 (욘2:7, 행27:24참조). 환란 중에 하는 기도는 평온한 때에 응답된다. 반시 고요한 동안은 본장 1절 해석 1의 3)호 해석과 같다. 여기에서 기도는 사역 중에도 권위있는 사역이요 더욱 의인의 간구는 복음운동 중에도 힘있는 운동이니 기도 많이 한 자가 천국에 가면 일 많이 한 자로 나타날 것이다.

6.'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우에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쏫으매' 향연과 성도의 기도를 담아가지고 올라간 천사가 이제는 향로로 단 위에 불을 담아 땅에 쏟는 일을 말했다. 이는 성도의 기도 하나 하나가 여실히 응답되어 지상에 이루워질 것을 말한다. 심은 종자는 혹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인간과 맺은 약속은 변하는 일이 많으나 기도는 하나님과 맺는 약속이며 또 허락 받은 일이니 만치 신앙의 기도는 창세이후 년 월 일 시와 사시에 교대에 불변같이 신실히 이루워지나니 소망 중에 확신으로 성도들은 기도의 저축을 게을지말아야 한다. 특히 여기는 금향로라고 하지 않고 향로라고 하였고 단도 금단이라고 하지 않았고 거저 단이라고 하였다. 왜 금이란 말을 붙이지 아니하였을까?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일은 단번에 한 것이 하나님 앞에는 영원히 영광스럽게 하는 제물이 되나 그 응답이 지상에서 이루워지는 그 응답의 역사는 유한하여 한번 이루어지면 완료하여 마치는 것을 상징한다. 불을 내리는 제단도 불을 담아 쏟는 향로도 끝날 날이 있다. 그러나 기도를 올린 그 일은 단번인데 영항적으로 계속한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기도의 생활의 가치를 그 응답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와 이루는 것이니 크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보다 형언할 수 없는 무한에 가치가 또 그 안에 영항적의 것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더욱 보아야 한다. 향로와 연합한 기도와 기도적인 모든 생애는 참 존귀한 것이다. 세상은 부패한 것이며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울고가는 세상이 오나 성도에게 있어서는 말세에도 영원히 다시 있을 수 없는 영원 무한한 진주를 캐는 바다이며 보석과 정금을 얻는 광산이다. 광부의 피땀도 굶주린 노동도 영원히 빛날 때는 우리 앞에 있다. 이 광산에서 교대할 시간도 쫓겨날 시간도 언도받은 우리들이다. (단12:3, 계14:23)

7.'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는 성도의 기도의 응답이니 곧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구속운동을 천부에게 간구한 그대로 응답되어 지상에 이루워지는 4가지 역사를 상징함이다.
1)'뇌성'은 하나님의 진노의 모든 역사 환란 궁핍 기근 질병 기타 모든 재앙들을 말하고
2)'음성'은 자비적인 복음운동을 말한다. 언제나 복음은 각양 환란의 껍질을 입고 이루워지나니 환란을 앞세우고 복음이 뒤에 들어가는 일과 또 복음이 상함으로 일어나는 환란을 통하여 복음받은 자를 연단을 한다. 그런고로 복음과 환란은 상리(相離)할 수 없는 관계와 또 멸망자에게는 진노인 그 속에 구원 얻을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의 역사가 반드시 동존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피상에 머물지 말고 언제나 온온히 역사하는 그 자비에 포곤히 자라야 한다.
3)'번개와 지진' 번개는 생명의 역사니 택소(擇召)자의 심령을 충동시켜 변화를 일으키고 지진은 악령들 통한 죄악의 역사와 천사를 통한 재앙의 역사니 세상 모든 안영과 질서를 혼돈시켜 세상을 분요하게 하는 것이다. 참 세상은 재미있고 하나님의 하시는 솜씨는 기이하다.
세상을 흔들어 불택자에게 모든 행복을 깨고 택자의 마음을 흔들어 회개와 하늘 소망으로 옮겨 성화와 행복을 이루신다. 주 안에 있는 자가 어찌 근심할 것이며 어찌 기도에 게을리 할 것인가. 이는 다시 없는 전쟁이다.


6절 '닐곱 나팔 가진 닐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1.일곱 나팔을 불기를 예비한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일곱 순서로 땅위에 모든 환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고로 신불신자들이 다 이 환란은 불행으로 여기며 다 같이 공포와 낙망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단단이 기억할 것은 7나팔 불 때에 전개되는 모든 사건들을 천사가 일으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제일 천사가 나팔을 불지 아니한다고 하면 억 천만 년이라도 그 사건은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일의 주관자가 천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이 천사는 누구인가? 본장2절에 하나님을 시위한 천사라고 명기하여 있고 또 본장 1절과 2절 하반절을 보면 어린 양 되시 그리스도께서 7째 인을 떼시고 7천사에게 7나팔을 맡겼으며 그들은 받았다. 그런 고로 이 일의 총책임자와 목적이 어린 양과 구속에 있는 것이다. (죄로 인봉된 것을 그리스도 죽으심으로 개인 '開印' 되었으니) 그런 고로 이 모든 환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효과를 이루려 하심 뿐이다. 다시 말하면 택자  구원하려하심이 7대접 재앙의 중심인 것이다. 우리는 세인의 관찰같은 환란만 보지 말고 자모적인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고요히 광야 반석의 생수 같은 성령에 은혜로 무성하게 자랄 것 뿐이다. 여호수아 6: 에 이스라엘의 나팔 소래로 여리고는 멸하고 이스라엘은 승리함같이 이 나팔 사건으로도 이루어질 일은 택자 구원완성과 이방의 멸망 완성의 일이니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며 또 회개할 것이다.

7절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따에 솟아지 따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3분의 1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1.'피섞인 우박과 불' 여기 대한 해석이 각이(各異)하다.
1)여자(如字)적 우박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피섞인 우박은 종전에도 시18:13에 말했으나 상징이고 그런 일은 없었다.
2)혹설, 주후 395년에 로마 영토에 침입한 고트(Goths)의 약탈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間註:우리는 계시록 예언을 연구할 때에 5:1 에 안팎으로 쓴 책이라 하는 일에 늘 주의를 가져야 한다. 안팎으로 쓴 것은 볼 수 없는 역사와 볼 수 있는 역사 물질적인 역사 심령적인 역사와 또 신령한 역사들인 양면이 함께 동할 때도 있고 각 일면씩만 이루어질 때도 있다. 특히 여기 일곱 나팔 재앙 중에 1, 2, 3 나팔 재앙은 특히 신령한 이면을 상징한 것이면서 또 물질적인 역사도 상징으로 나타냈다. 그런 고로 이 셋은 문자 그대로의 해석과 또 물질적으로 나타날 일들을 상징으로 나타냈으니 그 면을 연구 하여야 하고 또 그기서 중지하지 말고 또 깊이 신령적인 역사를 상징한 것이니 이 상징계시를 신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고로 첫째 목적은 종교적인 영혼에 관계되는 예언이오 다음은 종교적인 이면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 징조로 외부적의 역사도 있다. 실례를 간단히 들면,

①첫째 나팔 이면은 과학으로 인하여 미혹되어 사람들의 심령이 죽을
것을 말하고 그 징조로는 피섞인 우박과 불, 곧 폭탄으로 보일 것을 상징하였고
②둘째 나팔은 그 첫째 목적인 이면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붙들어준 남은 선 (타락한 인생에게 남은 하나님의 형상) 그것까지 버리시사 악화됨으로 인간의 심령들이 희망없이 많이 죽을 것을 말함인대 외부는 인간들이 자랑하는 과학의 절정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떠한 것인지 미상(未詳)하나 과학에 소산인 폭탄같은 것을 바다에 던져 인간들이 그 직접적인 영향으로 많은 바다 생물들이 실제 죽는 것으로 시대의 징조를 보일 것을 또상징한다.
③셋째 나팔에는 근본 목적인 이 계시의 이면은 타락한 교역자로 말미암은 이단인데 외부로는 물질적으로 독을 가진 폭탄같은 것을 식수에 던져 사람을 죽일 잔인성으로 시대를 알리는 징조로 할 것을 예언함이다. 이것이 타락한 기독교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생각하기 쉽다. 이유는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다. 그런고로 교회가 부패함으로 전쟁보다 잔인한 과거 역사에 없던 상술한 방법을 보통으로 쓰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독일서 독가스 뿌린 일 외에는 그런 잔인한 일은 없다.

결론.
우리는 이 예언들에 대하여 징조를 보이는 외형적인 역사는 시기를 알리는 것 뿐이오 참 주의하여야 할 생사문제는 그 이면인 과학지상 인간의 극단의 부패 기독교 이단에 있다. 그것으로 마치고 중심 목적인 그 이면인 해석은 다음 2절에 밝히려 한다.

3)말세에 폭탄재앙이라고도한다.
4)여자(如字)적 해석이 아니고 출9:18-26을 보면 천국의 원수된 애급에게 천벌이 내렸다. 그러나 피에 대한 말이 여기에 없다. 피는 그 우박 재앙으로 인한 사상자들이 많은 것을 암시한다라고 박윤선씨는 말했다.
5)피섞인 우박과 불은 비로 여자적 일이 있다 할 지라도 이 해석은 여자적의 것은 아니오 상징적의 것이다. 이 상징예언은 시18:13, 사30:30, 겔13:11, 38:22 기타에도 많이 계시되어 있다. 이 계시의 성질은 육의 이스라엘과 애급 사이에 내리신 재앙의 뜻과 같다. 악한 애급을 치시고 선민을 구원하신 재앙 중에는 피와 우박이 있고 (출7:20, 9:25) 왕상18:38-40 절에는 엘리야의 제단에 내린 불이 이스라엘은 구원함이 되고 하나님의 대적 바알선지들에게는 멸망이 되어진 불이었다. 이와같이 여기 피 우박 불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인데 그 목적은 택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대적 곧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무신론, 기독교유물주의, 또 기독교인본주의인 적기독을 멸하시는 것이다.
①피 재앙은 애급인들이 살생하는 그 세력으로 선민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주의, 곧 살생을 장기로 하는 그들에게 살생인 피로 만족시켜 살생의 피인 자기들 주의에 취하여 죽게 한 재앙이요
②우박은 애굽 농산물의 풍부로 장기를 삼아 교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선민을 해한 대적들의 풍부인 농작물을 쳐 그들을 멸하는 것이니 이는 농산물의 풍부를 자랑하는 그들의 장기가 그들을 멸하게 한 재앙이요
③불은 아합 왕 시대에 신본으로 선택한 객관인 계시의종(依從)의 종교가 아니고 주관인 이종교 우상과 바알 선지의 인본에도 그것을 장기로 삼아 하나님을 무시하며 대적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해한 그들이 주장한 저이들의 장기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멸하게 한 불이다.
④결론과 평과 주해
이런고로 이상의 피, 우박, 불의 3재앙은 다 자기들의 장기가 자기들을 죽게 하였고 또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배경인 그 장기가 신벌(神罰)을 끌어오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고로 본장 7절 3가지 상징계시는 땅에 있는 인간들로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는 자기들의 장기 그것이 자기들을 자멸케 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3가지 장기는 역사적으로 왕상18: 과 출7: 으로 9: 까지에 나타난 그대로

a.무자비한 살생적인 투쟁주의, 권력주의 (피)
b.생산의 부요한 물질주의 곧 물질만능주의 (우박)
c.인간의 주관 곧 지식제일주의 (불)

이 3가지 주의가 합하여 하나된 세력은 과학만능주의다. 모든 과학은 인지(人智)와 물질과 살생(단편은 보면 구생같으나 실상은 살생의 과를 맺는다. 원자탄도 전기도 전화도 심지어 치료약품까지도 그것이 최후 결산은 살생의 협조자가 되고야 만다.) 이 3가지 종합한 것이다. 이것으로 말세에는 인간들이 장기로 삼아 심령이 완고해지고 배경을 삼아 하나님을 멸시하며 전 인간을 인본주의 유물주의 물욕주의화 시키고 또 인생을 멸하는 것도 이것으로서 자멸, 혹은 멸망을 초래케 한다. 그런고로 이 3가지 상징은 배신(背神)하는 과학들을 가르침이다.

2.'솟아지매' 이는 하늘에서 솟아졌으니 상술한 해석, 과학은 상술한 대로의 그 요소 3가지가 다 당에서 이루어진 일이요 또 땅에 소속한 것들이니 해석이 틀린다고 보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애급에 내린 재앙도 땅에서 이루어졌으나 실상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다. q마로의 강퍅한 마음도 하나님께서 그를 강퍅하게 하신 악을 조장한 것은 아니나, 실상은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주지 아니하시고 마귀에게 내여 주었을 때에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인류에게 죄악을 제일 먼저 끌어들인 마귀가 하늘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담을 이 3가지 주의로 마귀가 되게 하였고 마4: 에 예수님도 마귀가 이 주의로 유혹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눅10:18에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주님은 보셨고, 계9:1 에도 적기독을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상징했다. 이 과학주의로 인간을 멸하게 하는 그 감화는 성신의 감화는 아니오 악마의 감화이다. 그런고로 여기 솟아진 재앙 그 3가지는 인간이 배신하고 인본물본인 과학을 쫓는 고로 그 길을 막지 아니하시고 얼마든지 그 길로 달아나게 방임하여 두는 것이니 실상은 천벌이오 또 하늘에서 내려온 악령의 역사이다.

3.'따의 3분의 1이 타서 사위고'
인간도덕들이 과학이 발달할수록 부패하여 질 것을 말함인데 특히 3분의 1만 탔다함은 이 과학주의는 최후에는 인간도덕을 전멸, 전부패 하게 할 것인데 하나님의 긍휼로 택자를 위하여 3분지 2의 비례가 되는 정도로 도덕부패를 중지시키는 것을 말함이다. 이 과학의 최후는 도덕 전멸의 살인으로만 화하게 된다. 하나님을 멸시케 하는 그 주의가 어떻게 망하지 아니할 것인가? 이는 과학자체를 말함이 아니오 인간이 배신(背神)하면서 과학만능을 말한 그 과학을 말함이다.

4.'수목 3분의 1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여기 대한 해설은 각이하다.
1)여자적으로 뇌재로 인하여 수목의 피해를 가르친다고 하고
2)어떤 학자는 이것들이 장래의 천벌에 참여할 사람들까지 상징한다고 한다. 땅은 죄인들의 거처 수목은 권세있는 자요 푸른 풀은 평민을 가르친 것이라고 한다. (사40:7, 8:9-13, 렘7:20, 단 4:20-22)
3)혹설은 박재(雹災)는 전쟁의 상징으로서 주후 395년 로마 영토에 침입한 고트의 약탈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4)상술한 1)은 믿을 수 없고 2)는 그럴 듯도 하나 3)은 또 용납하기 어렵다. 7절에 초목과 9절에 바다에 생명 있는 것들과 11절에 사람과 12절에 달과 별은 다 사람들을 상징한 것인데 각각 다르게 말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과 생활과 입장이 다름에 따라 각이하게 상징된 것과 또 여기 소멸과 죽음은 육의 생명보다도 영의 생명을 중심으로 하고 육의 생명까지 그기 소속한 것으로 하는 여기에 주의를 가져야 한다. 눅9:60 절과 엡2:1절에는 영혼 죽은 자를 산 자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아예 죽은 자로 취급하였다. 그런 고로 본장 7절 초목이 소멸함은 인간의 영육의 죽음을 말함인데 죽은 풀도 또 탈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영적으로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날 희망조차 없게 그 영혼들이 아주 과학을 인하여 멸한 것가 (배신 '背神', 가증, 참람된 심령으로 화한 것) 따라서 육체까지도 전쟁으로참혹하게 죽어질 것들을 가르침이다. 특히 인간을 각양으로 표시하였는데 여기는 초목으로 표시한 것은 과목과 같이 그 성질이 순수한 것과 또 이웃을 해하지 아니하는 그런 생활방식을 말함이니, 곧 착취나 권력이나 상업이나 그런 성품과 방식을 가지지 아니한 자, 인간적으로 도덕과 양심을 주장하는 자, 그런 자들을 상징함이니 과학주장자는 다 이런 것들을 대(坮)로 삼으며 주장을 하여 가장 선인 체 하는 자들이 과학으로 인하여 배신(背神)하여 멸망 받을 것을 말한다. 과학, 자연의 법칙, 문화 진보로 따라 배신하여 죽는 자를 가르침이니 이 재앙에는 가장 양심적으로 산다는 순수한 자들이 많이 죽는 재앙들이다. (과학발달에 따라 예술, 기술, 기계의 힘으로 공업, 농업으로 부요하여 배신하는 자는 초목같이 가장 순수한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이며 또 사는 줄 아는 자들이다. 과학은 가장 이른 자들을 많이 죽인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을 인간들은 죄인 줄 모르나 각양 자기의 부요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죄이다. 성경은 죄중에 배신의 죄를 제일 크게 보신다)

8-9절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흔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 가온대 생명가진 피조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개여지더라'

1.이 재앙도 첫째로는 본장 2절에 하나님을 시위한 우리 편에 선 천사인 것을 기억하여야 하고 또 이 재앙들이 계시록 전편에 기록되었으나 그 기록된 각양의 재앙이 한 두 성구에 시작과 마침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문자적으로 보고 두려워하고 그 이면에 넘치는 위로가 있는 그 면을 발견하여 차라리 이 계시록은 택자에게 있어서는 두려움보다 위로의 책이라고 보아야 옳고 또 단 1, 2, 3 절로 표시한 일시견에는 두려운 것을 느끼나 실제로 그 일은 장기간을 늘여서 실시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심리는 시대 순응성이 있는 연약자인 고로 실제로 그 두려움 가온대 있으면 서도, 수중 고기가 물이 보이지 않음같이 이 재난들을  보는 눈이 어두워지는 그것이 큰 폐단들이다. 이 나팔 재앙들이 벌써 여섯째까지는 다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재앙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이 많다. 우리는 이 재앙이 내 환경을 두루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불붓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함에 있어 해석은 각이하다.
1)문자적 해석가들은 주후 1570년에 밧모섬에 있는 '에게' 바다에 대화산이 터져 20리 주위의 해수는 피 빛 같이 흙 빛이 된 일이 있었다고 하고 1707년에는 그 바다에 큰 암석이솟아 물이 독기를 뛴 까닭에 바다에 있는 모든 고기들이 죽었다고 한다. 또 베스비아스 다바에 1111년에 화산이 떨어져 바다가 피같이 된 일이 있었다고 이것들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2)혹설은 주후 412-450년에 훈스 족의 침략으로 인해서 도탄 중에 빠진 로마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해설을 받아드리기 어렵다. 이유는 땅 위에 물체변동들이 있는 수가 있으나 계시록의 목표가 그런 자연계의 흉조를 예언하려함이 아니니 문자적 해석, 화산투입을 인증할 수 없고 또 로마에 훈스족 사건 이후 오늘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것으로 단언하지 못한다.

3)불 붓는 큰 산과 같은 것은 천국 운수로서 천벌 받는 것이니 천벌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물론 큰 범위에서 보아 이 일은 다 천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상징은 실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4)여기 불 붓는 큰 산같은 것이라 함은 계시 자체가 화산이 아닌 것을 말한다. 불 붓는 것은 하늘에 빛이 아닌 땅에 빛 곧 인간들의 타락한 종교심 곧 부패한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인간 빛이라고 양심이라고ㅗ 도덕심이라고 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주장이나 사상을 상징함이오. 큰 산은 바다보다 높이 솟은 것이니 어떤 도덕주의나 각 이종교 사상을 인간계에서는 도덕적으로 탁월하여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외에 인간이 세상에 빛이라고 할 만한 인간적으로 높은 도덕이나 사상이나 종교나 율법이나 미신들을 말한다. 참 빛이 없을 때에는 이것들이 세상 안녕질서를 유지하는 것 같이 하고 있다. 이 불붓는 산이 바다에 던지우매 함은 그 불 붓는 산이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바다에 삼키워진 것을 말한다. 바다는 무엇을 상징한 것일까? 바다는 세상 중에도 산보다 낮은 땅, 땅보다 낮은 바다니 세상에 악을 토대로 삼아 일어나는 운동들을 상징함이니 악을 계획하는 국가 운동과 사회운동들이다. 3분의 1이 피가 된다 함은 전체가 피 될 것이로되 하나님의 막으심으로 택자를 위하여 3분의 2를 남겨둔다 함이니 하나님의 구속의 자비성을 상징함이고 피는 살해성을 말함이다. 그런고로 본절은 말세가 되어갈수록 하나님의 도를 가로막고 인간의 숭배 대상이 되어 있는 그 자체인 불 붓는 산과 그를 숭배하는 인간들에게 내리시는 천벌이니, 다시 말하면 인간이 계시종교를 신의망(信依望) 아니하고 인간 도덕과 율법과 종교를 인간 안녕질서와 선을 능히 보수할 수 있는 줄로ㅗ 알아 주장하며 신의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셔서 이들을 쳐 이것들이 부패하여 바다같은 죄악 운동에게 매수 당하고 굴복 당하고 보니 바다가 변하여 피 됨 같이 세상 악 운동은 변하여 살인의 전공으로 화하게 됨을 상징함이다. 말세가 되어갈수록 악에 동참말고 살인 운동에 동참치 않는 것이 제일 큰 죄로 정죄될 것이다. 성도들이 여기서 받을 교훈이 무엇인가? 화산과 바다가 합하여 피를 이루웠으니 세상은 인간의 선 전부, 악 전부는 합하여 살인 운동 하나만 되어질 세상이니 이 운동에 유혹받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 본 절 계시의 목적이다.


3.'바다 가온대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함은 바다는 상술한 대로 악의 운동이오 그 가운데 있는 생명가진 피조물들은 그 운동에 동참한 인간들을 말한다. 여기는 사람들을 초목으로 상징함보다 생명 가진 것으로 상징함은 그들보다 남을 해하는 악성이 있는 그 인성들을 표현함이고 사람이라 하지 아니한 것은 성경은 영혼이 죽은 인간을 짐승같이 표시한 데가 많다. 그와 같이 여기는 이성없는 짐승같은 자들이 많이 죽을 것이니 다시 말하면 죽은 자들이 많이 죽을 것이란 말이다. 여기에 택자는 주의할 것은 그러한 전란으로 인하여 육신 죽는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그런 고로 여기 죽는다는 것은 불택자의 수를 말함이오 다만 택자들은 이 죄, 피 운동에 동참하는 일을 피하여야 한다. 동참하면 택자의 영혼이 죽는 것은 아니로되 어두워져 성화의 시대를 악화의 시기로 손해보게 된다. 유혹 받은 자는 악화되나 이 피운동으로 싸우려하는 그기에 승리자에게는 가속도의 성화가 이루어진다. 그런 고로 배신하고 세상 것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사망이 되고 택자로서 주관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성화를 빼앗기고 주께 신종하는 자에게는 장성한 성화와 순교의 영광을 주기 위함이라
특히 여기 3분의 1이라 말이 있다. 이는 3분의 3이 다 같으나 2는 특별이 남겨두는 것은 신 불신자 중에 하나님께서 유기자와 선택자가 있는 그 점을 특히 표시 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최고의 승리를 가진 기독자도 주의 보호에 겸손이 감사하고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가져 두려워할 것이다.
4. '배들의 3분의 1이 깨여지더라' 이는 죄악 운동들의 배경하는 모든 힘과 그들의 소유와 그들의 호신의 것들과 모든 연구와 준비들이 일시에 저이들이 주장한 그 운동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멸망할 것을 가르침이라 하나님 떠난 생활은 스스로 자멸의 운동이다. 하나님을 중심치 않는 모든 불의의 세력들과 운동들은 이 배로 보는 눈이 있어야 이 성구를 보는 눈이 있는 자이다.


10-11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날에서 떠러저 강들의 3분의 1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일홈은 쑥이라 불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야 많은 사람이 죽더라'

1. 언제나 나팔부는 천사는 하나님 시위하는 천사인 줄 기억하고 나타나는 재앙을 우리는 마지하여야 한다.
2.'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이것은 속화교회 곧 타락한 교회의 인도자를 말함이니, 각양 이단자를 말한다.
1)이명직목사는 혜성(彗星)인가 혹 혜성에서 떠러진 운석이니라 하였으나 이 해석은 본서에 목적과 합하지 않는 해석이다.
2)혹은 이단자 아리우스 펠나기우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단자를 총칭함이오 상술한 인물만을 지적함이 아니다. 특히 주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단자는 많아질 것(마24:3-5,11)을 가르침이다.
3)이단자인 줄은 공통적으로 알고 있으나 그 어떠한 이단인가가 문제이다. 물론 이단은 다 여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상징하기를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라고 하였으니 횃불은 인간이 든 불이니 하나님의 계시 말씀의 진리가 아니고 인간의 주관에서 빚어낸 자율주의, 합리주의, 자연주의, 곧 인본주의의 교리와 성령의 내적 증거가 아닌 주관주의, 불건전한 모든 신비주의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계시 말씀과 영감을 두 지주로 균형을 바로 잡지 못한 것도 이 이단자에 포함된다.
특히 횃불같이 탄다고 함과 큰 별이라고 하는 것은 이단자의 끄는 인기와 활동의 큼을 가르쳐 말한다. 말세가 가까올수록 딤후4:3-4에 말한대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도리켜 허탄한 이야기를 쫏처리라' 하심같이 사람들은 책망보다 칭찬을 좋아하고 단점보다 장점으로 재세영광 누리기를 좋아하며 안되는 위엄성을 방비하는 교훈보다 된다는 말만을 듣기 좋아하고 벌은 듣기 싫어하고 상만 듯기 좋아하는 기초를 무시하는 공중누각격의 외식적인 허영주의화 될 인심들을 인하여 참된 하나님의 도는 가리워지고 인본적인 이 거짓 도가 땅위에 크게 흥황할 것을 상징함이다. 교권으로 신비로 신신학으로 기독교 도덕주의 사회주의 정치주의 기독교유물주의 기독교 허위(虛慰)주의 기독교신기주의 기타 모든 이단들은 말세에 안일주의자와 자애와 세속주의자들인 기독교를 삼키는 사자같은 마귀들이다. 참된 십자가의 도인은 이런 것들이 삼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삼키면 그가 탄다. 참된 신자는 풍설, 지진설, 화설(p.35),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왕상19:11-12)  
말세 교역자들은 양보다 질에 주시해야되고 교우들은 듣기 싫은 말을 새김질하여 꿀을 얻어야 할 것이다. 호리에 틀린 교리는 시대를 정복한 성공을 다 도적하고 그 뜻에 배치되는 충열은 아깝게도 하나님의 일대적이 된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빛의 역사와 큰 사역자가 좋은 것이로되 항상 위험성 있는 입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진리는 일시에 빛나지 아니하는 것과 하나님은 은밀히 적은 자와 일하시는 하나님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세상에 들어나는 빛이 좋으나 그보다 하나님과 깊은 연결이 더 좋고 이름난 일군도 좋거니와 그보다 시대가 모르는 은밀한 세계에서 미래의 큰일에 여호와와 함께하는 것이 더욱 좋다. (악2:14, 참조) 예를 들면 애급 총리대신이 되기 전까지의 요셉과 선민의 해방운동으로 바로 앞에 서기 전까지의 모세 양 이스라엘(영육의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명망이 있기 전에 죽은 아브라함, 기름부음 받기 전 다윗, 장기를 손에 잡은 부르심을 입기 전의 엘리사 그들의 입장이 행복되다. 우리는 언제나 뿌리가 깊고 드러난 면이 적은 실력있는 그 자리를 그리워하며 가져야 할 것이다. 본절은 이런 세계를 빼앗긴 허영주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같이 바다수면에 나타난 거품같이 자기도 모르게 피동으로 향방없이 굴러갈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상하지 않으며 깊은 속 물에는 풍랑이 흔들지 못한다. 아 - 겸손과 진실을 가지신 그리스도와 그 선진들의 인격세상 풍랑을 비웃었다. 아 - 얼마나 미운가, 우리의 외식과 절(切)명예심

3.'하날에서 떠러져 강들의 3분의 1 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하늘에서 떨어진다 함은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타락하였으며 이단인 인본주의의 인도와 인간주관인 인간의 말로 모든 이단화된 것들을 가르침이요. 강물과 샘물은 인간의 영혼을 참 소생시킬 수 있는 생수인 성경말씀과 성신감화를 말함이니 3분의 1에 떨어졌다 함은 3분의 1에 성경말씀을 혼돈케 또 거짓 해석 틀린 번역성경 말씀의 가 감, 곧 성경의 권위성과 완전성과 순정성을 깨트리는 일과 또 성영감화에 주관으로 타락하는 신비주의와 또 악령감화 등이 투입되는 것들을 말함이다. 3분지3이 다 이단화시킬 만한 말세 인간의 부패성과 악령의 역사가 심할 것이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하여 3분지 1이 상하였으니 전체적으로서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니고 온전한 것이 3분지 1은 깨여지고 3분지 2만 온전타는 말이다. 그런고로 이 계시는 말세에 거짓된 번역성경과 거짓된 사본과 거짓된 영감들이 많을 것을 가르침이다. 여기에 3분지 1을 멸하고 3분지를 둔 수자는 그 양을 말한 수자가 아니다. 특별히 여기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긍휼하심을 상징한 것인데 3분지 2는 하나님의 긍휼이오 3분지 1은 하나님의 진노이니, 진노보다 긍휼의 역사가 큼을 말할 뿐이오 성경과 영감의 옳은 부분이 많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세에는 그 양적으로는 눅18:8에 말함같이 참 믿음으로된 순정성을 가진 번역성경들과 올바른 영감들은 극히 희소할 것을 가르쳐 말함이다. 이 점에 얼마나 주의하여야 할 것을 보인다.

4.'이 별 일홈은 쑥이라 물들의 3분의 1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야 많은 사람이 죽더라'  별 이름을 쑥이라고 함은 타락한 지도자의 그 사상을 쓴 것으로 표시한 것인데 히12:15 절에 쓴 뿌리라는 말이 있으니 이는 거짓선지(僞先知)의 사상을 가르쳐 말함이다. 모세는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였으나 위선지는 단물을 쓰게 만든다. 물은 10절에 해석한 대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인데 이 말씀을 위선지들이 혼잡시키고 이단화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많이 죽일 것을 가르친다. 특히 이 셋째 나팔에는 사람을 바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믿는다는 사람을 상징한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이 별들의 결과로 많이 이단에 빠져 그 영혼들이 멸망하되 여기는 그 수효를 말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죽더라 하였으니 택한 자 외에 영혼은 다 죽고 택자들로서도 그 미혹에 빠지기 쉬운 무서운 재앙인 것을 말한다. 어떤 학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고 또 요세보 사기에 보면 예루살렘 멸망 전 1년이나 상공에 불칼 같은 유리하는 별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별은 유다서 13절에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말한 그대로 위선지자들을 가르쳐 말한다. 올바른 교리라야 올바른 신앙과 생활이 맺힐 수 있는 것인데 말세에는 교파초월주의를 도리어 높은 것으로 여기는 일까지 있게 될 것이다. 교파는 교리의 외형이다. 그런고로 교파초월은 교리초월이라는 말이니 성경 깨달음은 아무래도 관계없다는 방종주의든지 그렇지 않으면 종전 모든 교리보다 가장 성경적인 높은 교리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만인의 만주장을 다 혼합시키려는 주의이든지 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는 하나이오 이단이 많은 땅 위에서 해석 방종주의와 혼합주의는 우리가 용납할 수 없고 또 제일 높고 성경적인 교리라면 그 교리자체를 체계있게 선포할 것이오. 종전 교리들의 비(非)를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도 아니하고 교파초월주의라는 그 한 주장으로 큰 소리를 하는 것은 초월이면 그 어구 자체가 초월 된 것으로 생각되여 어리석은 신자를 미혹시켜 끌려는 비신앙양심적의 본질을 가진 것이 될 것이다. 또 여하튼 그 자체가 어떤 주장으로 가든지 그것이 교리가 되며 또 교파가 될 것이다. 말세의 유혹은 안일성과 육욕성과 허영성 등의 진실치 못한 심령들을 끌어 멸망에 떨어트리는 운동들이다. 그런고로 일찍 성신은 계시 17:14절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라고 예언하셨다.  


12절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3분의 1과 달 3분의 1과 별들의 3분의 1이 침을 받아 그 3분의 1이 어두워지니 낮 3분의 1은 빗쵬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본 절을 문자대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문자대로 그런 일들도 자주 있을 수 있다. 아주 빛이 가리워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시대시대의 한 징조는 될지언정 본 계시록의 목적과 우리들의 영혼을 위하여 계시해 주신 것은 아니다. 계시록에 있으리라고 한 재앙들은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질 그런 것들이 아니고 시작하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3분의 1이라고 표현한 수자의 뜻은 현재는 3분지 1이나 3분지 2가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형편인데 하나님이 막고 계시는 것을 보이는 일이니 말세가 되어갈수록 한번 시작한 재앙은 점점 더하여 갈 것을 보이는 것이다. 만일 문자적으로 된다고 하면 일월성신(日月星辰)의 3분의 1이 수적으로나 면적적으로나 자체의 빛에 정도적으로 3분의 1이 제감되어야 하겠고 또 주님 재림 때는 암흑천지가 디어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일시 일식 월식 성식의 운무작용이나 이것들의 위치변동의 관계로 일시 일어났다가 회복되는 그런 것들을 말함이 아니다. 그런 고로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이다. 사13:10 절을 보면 바벨론이 메데로 망할 것을 별이 빛을 잃을 것으로 상징한 일들이 있다. 본문도 교회에 대한 것을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다. 출10:21-22절에 보면 애급이 빛을 미워하고 죄를 좋아하는 고로 그 벌로서 흑암재앙을 내림같이 여기도 사람들이 진리를 미워하고 불의를 좋아 하는 그 범죄성을 만족하도록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는 셈이니 진리를 가루는 그 역사를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강퍅한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얼마케 강퍅하여지도록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시고 버려둠과 같이 인간들이 불의를 좋아 하기 때문에 불의로 진리를 가리우는 것을 용납하여 두심을 말한다. 그런고로 여기 해는 그리스도시니 곧 계시 말씀과 영감으로 나타나신 진리와 진리의 신을 말하고 달은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교회를 말하고 별은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각 신자들을 가리켜 말한다. 혹이 생각하기를 달과 별이 각이하니 교회와 성도는 하나이매 적당치 아니한 해설이라고 하기 쉽다. 교회는 천하교회의 통일성을 가르쳐 하나로 보아 하나님의 빛을 땅 위에 반사하는 그 책임진 원리를 말하고 별로 상징한 것은 신자의 확신과 생활을 가지게 하는 그리스도와 말씀과 영감은 개적의 생명으로 영으로 모셔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고로 신앙은 독립적이여야 한다. 3분의 1이 침을 받아 3분의 1이 어두워지고 비취임도 3분의 1이 감하여진다 함은 성경과 영감과 교회와 개인적으로 그 빛되신 참된 진리와 참된 영감이 점점 가리워질 것을 말함이니 이단 도리와 잘못된 번역성경과 거짓 신의 감화와 사이비한 거짓 교회와 신자 아닌 교인의 수가 많아 질 것을 상징함이라.
'밤도 그러하다' 함은 곧 밤이 많아진다는 말이니 거짓이 많아질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깨달을 것은 이 나팔은 예수님께서 인봉 떼사 나타나게 하신 일이오. 또 받은 천사가 하나님을 시위한 천사이니 구속운동을 위하여 넷째 나팔 재앙도 있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거짓이 나타남으로 참이 발견되고 모든 이단과 이단신자 곧 교회가 부패하여 갈수록 참된 도리와 진실된 신자의 투쟁할 마찰들은 많아지게 된다. 종전 기독교 역사에도 이단과 각 외식자들의 노력 세력이 강하여질 때에 순교자들이 많이 났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빛은 들어남같이 이런 이단들이 심하여 갈수록 택자에게 있어서는 더욱 투쟁이 심하여지고 또 투쟁이 심하여지니 진리 연구와 영능의 간구가 심하여지게 됨으로 진리와 영감적의 강한 실력있는 성도가 되어지고 그 생활은 핍박 중에 있으니 자연 경건에 나아가게 된다. 그런 고로 이 운동들은 단12:10절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청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헤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는 운동들이다. 여기에 3분의 1로 표현한 것은 이단보다 진리의 교회가 많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첫째는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보다 긍휼의 역사를 더욱 크게 하시는 것과  둘째는 앞으로 3분지 2의 암흑이 올 것 곧 가면 갈수록 이단들이 심하여 갈 것을 말한다. 그 이면에는 진리와 영감도 점점 택한 자들에게 충만하여 갈 것을 암시한다.  본장 1재앙은 과학의 유혹, 2재앙은 도덕부패의 유혹, 3재앙은 이단의 유혹, 4재앙은 교회부패의 유혹들이다. 이는 내부적이오 그 외형은 24항 7절 해석 초두에 기록된 대로 외부적으로는 직접 간접으로 살인의 운동들이 땅위에 관영하여짐을 초래하게 한다.

13절 '내가 또 보고 드르니 공중에 날나가는독슈리가 큰 소래로 닐아대 따에 거하는 자들의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래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1.이 독수리를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을 하는 이도 있고, 생명운동들이 앞으로 화 있을 것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잘 모르겠으나 앞으로 가면 갈수록 땅위에 신불신자의 앞 길이 얼마나 어려워지며 험하여지며 위태하여질 것을 예고하여 긴장을 준비시키는 것과 어느 한 평안한 때가 있으리라고 꿈꾸는 방종을 경고시키는 것만은 사실이다. 독자들은 가면 갈수록 땅위에 종교적으로 이단의 세력과 정치적으로 살해의 환란과 도덕적으로 부패한 잔인이 심하여 갈 것을 각오하고 진리와 영감에 확신과 충만을 가져야 할 것을 최촉하는 독수리의 소리인 것은 틀림없다. 화, 화, 화를 중복하는 것은 성도들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그기서 그 모든 것들이 가면 갈수록 화에서 화를 거듭거듭 초래케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인 것을 깨달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화와 하나같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화인 줄을 모르면 이 독수리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없는 사람이다.
설교
一.본문: 계8:4-5
二.제목: 하나님의 하시는 일
三.서론.
일의 가치는 그것의 진가(眞假)에 있고 성공의 여하는 그 능력에 있다. 먼저 선택에 힘을 쓰고 계획을 바로 하며 능력을 가져야 한다.
1.선택
①일은 크게 나누면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이나 둘 다 피조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일은 미래주의면서 현재주의오 천국표준이면서 세상을 또 정복하는 것이며 영의 일이면서 육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②악령의 일은 현실주의면서 미래와 현재를 망하게 하는 것이며 또 세상주의면서 세상과 천국을 빼앗기게 하는 것이며 육을 표준하는 일이나 실은 그 영을 망하게 하려 하는 일이다.
③우리들은 일의 선택에 먼저 하나님의 일인 천국과 영혼주의인 미래를 중요시하는 편을 택하여야 성공의 출발과 방향이 바로 된다.

2.그 계획과 방법에는 수 많은 길이 있다.
①먼저 사욕과 자율을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성공의 일대적이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원수이다. 이것들로 더불어 싸우는 자의 일을 하나님은 도우신다. 그것을 버림이 하나님의 계획과 그 방법을 구하는 유일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②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은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다'라고 사55:8에 말씀하심 같이 광대 영원하시며 마5:18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그대로의 계획이오 방법이다. 그 계획과 그 방법을 취하는 자는 성공을 전능하신 자로 보증을 세우고 있는 것이니 성공한 후보다 못하지 않다. 이유는 성공된 그 일의 가치보다 현재 보증하신 하나님이 더 크시기 때문이다. 신앙가들은 일에 성공 후보다 그 계획과 그 방법을 취한 그때를 성공한 거와 같이 여긴다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 계획과 방법을 취하는 그 시간이 곧 준공한 시간이다. 그런고로 지혜자들은 성공을 힘씀보다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을 취하기를 힘쓴다.
③그 계획은 성문의지인 성경 말씀과 은밀의지인 성령감화이오. 그 방법은 명령과 (성부명령) 순종이다. (성자와 성신의 순종한 하나님이면서) 우리도 이 계획과 이 방법을 가져야 성공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이 일하여 주시는 복 있는 자가 된다. 진실히 고요히 타율로 순종을 일삼으며 불식(不息)의 유유로 일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앞서지도 뒤떨어지지도 말아야 한다. 진리는 우주를 발등상 삼을 권이 있으나 아직 주권을 자랑치 않고 하나님은 우주를 움직이나 적은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는 은밀히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정복한 실력 가진 예수님은 가장 무능하고 억울한 십자가의 강도의 외부를 가지셨으며 오는 줄 모르게 봄을 겨울로 교대를 시키신다. 욕진부달(欲進不達)이란 말과 같이 속성하면 속히 망한다. 하나님은 존재도 은밀하시고 행사도 은밀하시다 떠드는 것은 실력 없는 증거오. 실력은 훼방을 감내할 수 있다. 나타나기를 좋아하는 떠드는 폐단도 피하여야 할 뿐. 은둔 혹은 심령주의인 정막 중에 있는 떠드는 폐단도 피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그 본성이 유유하시다. 또 은밀이 계신다. 하나님이 일해 주심을 바라는 자마다 당신의 유유하신 진리에 동행하고 보이는 성공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3.하나님의 일하시는 능력
①강한 바로의 세력을 모세 앞에 굴복을 시켰고 바벨론 왕은 7년 짐승살이를 하였고 벨사살 왕위를 하루동안에 파기 왕의 손에 옮겼고 일차 대전에 30년 풍조를 통계 맞추어 뿌린 독가스에 처음인 역풍이 불어 독일 군대를 전멸시켰고 1946. 8. 17. 옥중 성도들을 사형하려 한 일본나라를 8월 15일에 패전케 하시고 17에 출감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②제2차대전 때에는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을 돌파함으로 영국군이 급속 퇴각키 위하여 단겔크만에 모여 있었다. 그때에 독일공군이 폭격하여 왔으나 때마침 심한 안개가 끼여 실패하고 영국은 무난히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에 독일이 지중해만 수중에 넣는다면 그것은 영국의 목을 자르는 거와 같은 것이다. 이 지중해는 영국의 생명선이 되는 것으로서 군사상 요지이다. 그때에 독일은 지중해의 심장부인 말타섬을 폭격하였어야만 되었을 터인데 하지 못하였다. 알고보니 말타 섬의 수비사령광인 다비장군은 기도의 용사인 신앙가로서 매일 부하에게 전도하며 기도로서 파수하기 때문이었다. 전설에 영국은 4일 간 전국이 단식기도하고 이 전쟁은 아주 승리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그 능력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구함으로 그 능력이 와서 일하실 때에는 방식이 각이하다. 무능한 것같에도 시종일관으로 그 능력의지하며 순종하면 승리는 온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살게 하는 그 방식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우면서 참 그 솜씨가 능하심을 보인다.

③하나님의 일하시는 능력은 말씀과 영감으로 인간에게 접속되고 모든 피조물 영물이나 물체나 이용도 이 두 존재(말씀과 영감)를 통하여 적용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능력을 기도 외에 끌어오는 방법은 말씀과 영감과 동행하는 데에서 있다.

4. 결론
①일의 선택은 하나님의 일을 내 일로 택하고
②계획과 방법은 하나님의 것을 쓰고
③능력은 기도와 말씀과 영감 순종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할 것
④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며 인간의 지혜 있는 일이다. 일에 기간은 순간같이 짧으나 하나님 앞에 받을 칭찬과 성공의 영광은 영원함을 가르쳐 금향로 금단이라고 8:3절에 상징하였다.


제 9 장

본장에 나팔 불 때에 내린 재앙에 대한 말씀이며 앞에 8장의 계속이다.

1.다섯째 나팔 재앙은 세상의 빛을 어둡게 만드는 마귀 사자의 운동의 출현이다. (9:1-11) 그때에 택함 받지 못한 의식(儀式)하는 신자들이 많이 배교할 것이며 그 밖에 모든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이 부패해 질 것이다. (살후2:3-7)
2.여섯째 나팔 재양(9:12-21) 큰 재앙을 상징한 듯 하니 이 전쟁 뒤에도 땅 위에 평안이 없고 (9:20-21) 최후의 적기독이 나타나게 된다. (계13:) 이 최후의 적기독이 세상을 가장 어지럽게 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 (계19:11-21)

해석

1절: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날에서 따에 떠러진 별 하나이 잇는대 뎌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1.이 떨어진 별은 마귀나 마귀의 사자를 상징함이니 에덴동산 배암과 가룟 유다같이 마귀에게 이용되는 사람과 마귀를 포함한 것이다. (눅10:18) 크레다느스는 말하기를 이것은 사탄과 사탄의 타락한 사실과 암흑 세계에 사는 저놈의 권세를 가르친다고 하였고 스캇트는 이것이 주후 7세기 초엽에 일어난 사람 모하멧트 혹은 그의 운동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구절들이 계시하는 사탄의 운동은 각 이단을 말함인데 특별히 인간의 각양무제한적인 정욕을 가르친 것이다. 떨어졌다 함은 권위 있는 지위, 혹은 사람들이 신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자로 갑자기 타락하고 변동되어 유혹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놈의 수단과 방법에 삼키워지기 쉬울만한 신위(信威)를 가지고 와서 일하기 때문에 아무나 유혹받기 쉬운 점을 가르쳐 말한다.
2.'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 함은 무저갱을 열 권세를 얻었다 함이니 이 '무저갱은 무저갱과 같은 인간의 욕심이 무한함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제재시켜 주시지 아니하시면 자기의 욕심을 벗어날 자도 아무도 없고 또 그 욕심을 제재할 자도 아무도 없다.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 함은 인간의 각양욕심을 제재하시지 아니하시고 자유로 얼마든지 품도록 버려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활동하고 자유로 활동 못하는 것을 보인다.

2절: '뎌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같은 연기가 올나 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어지며'

1.'저가 무저갱을 연' 것은 끝이 없이 빠져 타락케 하는 인간의 사욕의 부패성을 하나님이 허락하여 악마가 이르니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무저갱인 욕심을 악마가 일으키니 함이다. ①물욕의 무저갱 ②지욕의 무저객 ③권욕의 무저갱 ④지위욕과 ⑤영광욕 ⑥안일욕 ⑦향락욕 ⑧식욕 ⑨음욕 ⑩명예욕 ⑪자애(自愛)의 교만욕 등의 무저갱을 하나님은 막아 붙들었던 손을 떼시고 마귀에게 내여주어사욕을 일삼고 주의 뜻을 늘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사욕을 만족히 따라 가게 버려 두시는 주의 진노이다. (사6:10 참조)

2.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어짐
①무저갱의 연기가 큰 풀무연기 같다 함은 인간의 무저갱적인 각양 욕심 곧 부패성으로 인한 모든 생각과 계획과 행위인 죄악들을 가르쳐 말한다. 소돔, 고모라 혹이 멸망할 때에 옹기점 연기 같다고 말하였고 애급의 이스라엘 고통을 풀무에 연기같은 고통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인간의 각양욕심으로 나오는 죄악 (롬2:10-18, 갈5:19-21, 딤후3:2-5, 계18: 참조) 들이 진리를 가루는 역사를 표현하려는 의미도 있고 그 깊은 이면에는 상술한 애급 고통과 소돔 멸망의 연기를 연상하면서 사욕을 쫓는 그 행위의 결과로 오는 백성으로서 (以民) 당한 애급 고통과 아주 멸한 소돔의 고통을 초래할 뿐 시공을 초월한 눈으로 관찰할 때에, 사욕을 쫓는 그 행위가 현재 멸망으로 고통으로 불 타고 있는 비참한 형편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시자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는 현견(現見)만 하는 근시자이기 때문에 행복과 생명을 찾는 일인 줄 알고 날 뛰는 참혹한 행위임을 상징함이다. 주님은 이를 가르쳐 마24:37-39 에 멸망할 그 날 까지 깨닫지 못하고 사욕의 생활을 계속하다가 망할 것을 말했다. 독자는 내게 무저갱인 사갱(死坑)이 있는 것과 그기서 나오는 사욕은 그 자체가 소돔을 멸망시킨 연기와 같이 자아를 망케 할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이 무저갱은 범죄한 천사가 구금되어 있는 곳이니 죄악과 사망과 형벌과 유혹의 근거지이니 인간의 부패성과 사욕과 자율은 이 근거지와 상통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저갱이라고 상징한 것이다. 그런 고로 인간은 마귀와 같은 사상과 행위와 멸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임을 나타냄이다.
②'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어진' 것은 상징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해와 공기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계시 말씀과 영감을 상징함이다. 생명있는 존쟂들은 해와 공기로 말미암은 것을 먹고 입지 아니하면 자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것처럼, 산자의 영혼과 인격과 생활은 계시 말씀과 영감을 옷입듯 입고 식물같이 먹지 아니하면 자라지도 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 연기가 해와 공기를 가리워 어둡게 하였으니 공기와 해를 받지 못하는 모든 생물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인간의 각양 사욕의 세력은 인생이 자기를 살리고 행복되게 하려는 것인 줄 알고 협동하고 영접하고 순종하나, 주와 나 사이를 가루어 식물에 햇빛과 공기를 가루는 것과 같이 죽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사욕과 자유는 무저갱같이 죄악과 이단을 빚어내어 진리와 햇빛을 가리운다. 한 사람의 피운 연기는 많은 식물에 볕을 가루어 많은 이웃에게 행복을 가리울 뿐 아니라 그 생명까지 멸하게 하는 해독을 끼친다. 이런 입장에 서면 그 욕심이 무한하니 욕망에 대한 노력도 무한 같이 되고 그 피곤도 무한같이 된다. 그러나 햇빛 없는 식물이 자랄래야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 그리스도와 그 진리와 영감에서 끊어져서 우무런 행복도 성공도 쾌락도 참생명을 보지도 잡지도 못한다. 그런 고로 이런 사람들은 안될수록 객관인 하나님 편에서 오는 줄이 끊어진 줄 모르고 제 욕심과 노력과 지혜가 부족함인 줄 알고 더욱 햇빛은 더 막히고 막힐수록 욕망한 것은 멀어진다. 그런 고로, 사욕의 구멍이 열린 자는 욕심에서 자율에서 진력에서 불만과 불평에서 기진하여 죽는 것이다. 이 무저갱을 열림 받은 자는 얼마나 행복되랴. 이 계시를 본 자마다 나와 이웃을 망하게 할 자가 누구뇨, 무저갱같은 모든 사욕과 자율이니 먼저 이 원수를 제하여 햇빛과 공기같은 진리와 영감의 따뜻한 호흡을 구하여야 하겠고, 다음은 내 무저갱을 굳게 잠겨주시기를 술람미여인이 아가서 2: 적은 여우를 잡아달났고 사랑하는 자에게 부탁한 것처럼 우리 주님에게 부절히 간구하여야 하며 이 무저갱 막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3절 '또 황충이 연기 가온대로 브터 따우에 나오매 뎌희가 따에 잇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밧앗더라'

1.여기 대한 해석은 각이하다. ①황충이를 악한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②모하멧트의 군대장교 예제드가 행군 시에 명하기를 수목이나 곡초를 해하지 말라고 하고 당시 침략한 지방은 기독교 부패한 지방이라고 하여 그들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③문자대로 해석하여 출10:1- 같은 재앙으로 보는 이도 있고 ④악령 혹은 군대의 역사라고 해설하는 이도 있다.
2.본절은 문자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고 상징적 해석을 가져야 할 것을 4절에 기록한 대로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는 성구에서 밝히 들어내고 있다. 황충이는 연기 가운데서 나온 것이니 인간의 무저갱같은 부패성과 사욕에서 나오는 연기같은 모든 죄악의 사상과 계획과 행위에서 나온 황충이니 이 황충이는 연기보다 수명이 길고, 또 생명체를 가진 것이며 또 독자 독립 독행 독생 하는 것이며 자기는 보기에 아름다우나 남이 볼 때에는 가장 흉한 버러지며 그 모든 털에는 독이 있다. 그러나 그 생명도 실상은 짧고 인간의 발로 문지르면 즉시 죽는 일종의 약한 벌래다. 이것은 상징적 계시니 황충이는 무저갱과 같은 배신(背神)의 부패성과 사욕에서 체계있게 강하게 능동적인 세력을 가진 것으로 진화 장성한 사욕 혹은 죄악 등을 가르침이니 무신론으로의 과학주의나 어떤 사상이나 논설이나 철학이나 종교나 도덕이나 지식이나 인생관이나 물욕이나 각 정욕이나 명예욕이나 권세욕 등을 가르침이니 종류와 성질은 햇빛을 가루는 연기와 같은 것을 말함인데 연기와 황충이로 구별하여 상징함은 연기 같은 정도의 것은 시간이 지나든지 또는 환란 바람이 불면 일소되나 황충이 같은 정도의 모든 이단과 부패성과 사욕은 시간이나 환란이 제감하지 못하고 강약만 다르지 연기로 상징하거와 같은 종류니 일면으로는 진리를 가루고 일면으로는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하는 자를 해하는 양면 해독을 가진 죄악과 이단자를 말함이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연기 피우는 사람을 취미있게 여기고 설교시에도 황충이를 잎으로 내는 자도 있고 또 황충이가 나오면 대 환영을 하는 말세가 되어진다. 에배시에도 황충이가 용납되거든 하물며 평소 생활에야 얼마나 심할 것인가? 애급이 농산물의 부요로 교만하고 배신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황충이의 재앙으로 저들의 농산물을 멸하신 것처럼, 인간이 배신 자행으로 교만해진 것을 황충이 같은 배신 자행의 행위를 강하게 버려두어 그로 인하여 자멸하게 버려 두시는 재앙을 말함이다.

3.'따에 잇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엇다' 함은 전갈은 쏘면 붓지는 아니하지만 사흘동안 아프다고 한다. 이것은 상술한 대로의 황충이 같은 체계 있고 강한 부패성과 사욕으로 된 그 세력들이 사람들의 영육을 해하되 외부로 나타난 변동인 살해는 없으나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면으로 주는 해독을 말한다. 불택자에게는 그 육체에 대하여 택자에게는 그 영혼에 대하여서 말한다.

4절 '뎌희게 닐아사대 따의 풀이나 푸른것이나 각종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니마에 하나님의 인 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1.'따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하는 계시에 대하여 해설은 각이하다.
①혹설에는 모하멧트의 군대에 속한 장교 예제드 행군시에 수목이나 곡초는 해하지 말나고 명령하고 타락한 기독교인만 상하게 했던 그의 한 말이라고 하여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이가 있고
②흑기(黑崎)씨는 초목을 상우지 말라 함은 황충이가 문자대로의 황충이 아닌 표시와 또 사탄에게 삼킨 영혼이 죄악으로 상하기를 황충에게 초목이 상하듯 함을 가르친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 두 해석은 이연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③본절에 계시된 초목은 계시 7:1절과 8:7절에 기록한 초목들과 다르다. 그기는 사람들을 상징한 계시요, 여기는 문자대로의 땅과 초목이다. 본 어구를 기록한 목적은 그 자체가 계시이면서 황충이와 전갈이 글자 대로의 것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된 계시인 것을 밝히 나타내면서 또 심하고 전갈같이 강한 황충이는 초목의 뿌리 외에는 다 삼겨 해한다. 이와같이 3절에 해설한 대로의 황충의 해독은 인생의 뿌리가 될 수 있는 법적 칭의와 기본중생은 해할 수 없으나 성화와 선행의 요소는 하나님의 특별 보호가 아니면 (수인,受印, 안하면) 상하게 할 수 있는 해독을 상징하기 위하여 황에게 삼키지는 초목을 문자 그대로 내 세운 것이다. 불택자는 뿌리까지 뽑힌 초목과 같은 셈이니 그는 전체가 삼키워진다. 그런고로 본 구절의 초목은 문자대로면서 황충과 그 해독을 상징으로 계시된 그 둘을 밝히 들어내는 해설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임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2.'오직 니마에 하나님의 인 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오직 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는 인 맞은 자와 인 맞지 아니한 자의 구별을 강하게 경계하는 것이다. '니마에 하나님의 인 맛지 아니한 사람'이라 함은 계7:3절 대로 하나님의 종이 아니란 말이오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하나님의 보호의 책임 안에 들지 아니하였다 말이오 하나님의 간섭 밖에 있다는 것이니 그 원인은 하나님의 종이 아닌 까닭이란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함은 입과 지식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신망한다 하나 롬6:4절대로 자기는 죽어 장사지낸 자로 고전 6:19절과 20절에 기록된 대로의 값으로 산 주의 것으로 롬14:8절에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주의 것으로 고후 5:15절에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빌2:5-8절에 명한대로 죽기까지 순종하라는 구속 도리의 계약의 말씀대로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으로 순종하여야 될 주의 피에 팔린 종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로 여기는 신앙사상을 가지고 그대로 살기를 진력하며 살지 못하였을 때에는 큰 죄로 깊이 회개하는 신앙 사상을 가지지 아니한 자를 가르쳐 '이마' (사상적)에 인 맞지 아니한 자라 함이다. 이런 고로 이 인은 요사이 유언(流言)으로 성신의 인이라고 하는 그 말과도 비슷한 말이다. 성신은 행5:32 절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고 주시나니 불순종자에게는 성신을 거두시고 또 계3:10 절과 같이 주의 인내의 말씀을 평소에 지킨 자를 환란 때에 또 하나님이 지키시나니 평소에 인내의 말씀을 불수자(不守者=지키지 않은 자)는 시험의 때도 하나님이 불수(不守)하신다. 그런고로 성신과 말슴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아니고는 황충의 해를 피할 자 하나도 없다. 그런 고로 누구든지 인을 맞아야 승리자로 세상을 통과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인은 평안한 때 준비하였다가 환란때에 인 맞고 환란에이긴 자라야 황충이의 해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환란은 무서워할 줄 아나 황충이의 환란인 사욕과 자율인 자기는 무서워할 줄 모른다.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최후에 승리요 자기를 복종하는 것이 최대의 수입이다. 신앙은 계단적으로 점장(漸長)하는 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수인(收印=도장을 받을)할 준비도 환란에 수인도 수인후 극기도 일차 뿐만이 아니니 중복 중복 중복 몇 번이드닞 하나님이 순서와 기회를 주시는 대로 준비하여 얻고 얻어 가지고 살고 또 준비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고로 황충이는 인간 자기에게서 나온 것인데 자기를 필히 5절에 말한 대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게 버려 두시는 것은 택자로 하여금 황충이 나오는 구멍을 막고 타율 순종인 인 준비와 인 맞는대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이다.


제5차 자료
5-6절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갓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1.다섯 달 동안에 대하여 어떤 이는 해석하기를 계시록이 기록된 하루는 1년으로 셈하여 150년을 상징한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스칼트는 이 연수가 바로 모하멧트교 군대의 침략연수라 하였다. 모하멧트는 612년에 출세 하였는데 150년 후에 최고조에 달하여 쇠퇴하였다고 하여 이들의 침략의 박해를 말한다고 하였고 또 말세지말에 일어날 이단과 배교의 기간이라고 하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그런 일이 있다 할찌라도 어떤 그 한 사건과 그 한 시기로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상징으로된 계시니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다섯달은 일년에 비하여 짧은 한 토막이며 황충이가 초목을 상우는 기간이다. 이 다섯 달을 들어서 말한 것은 황충이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의 기간, 곧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기간을 가르침이오. 그 나머지의 때에는 인 맞지 아니한 자의 고통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무저갱인 자율과 사욕인 부패성에서 나오는 어떤 체계 있는 죄악주장의 세력에게 평소에도 상해 당하는 일이 있으나 그보다도 그 죄악의 역사가 점점 쌓여 심한 고통의 절정기가 있음을 가르쳐서 다섯달 동안이라 한 것이다.

2.'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 갓더라' 전갈은 사람을 쏘면
붓지도 않고 제 색으로 아프기만 하나니 황충의 해독으로인 맞지 아니한 사람이 해독을 받을 때에 외부보다 이면의 고통이 더욱 심한 것을 말함이니 물질고통보다 인격의 손해, 그보다 몸의 고통, 또 이보다 심령 고통이 심함이니 세상적 손해보다 내세적 손해가 더욱 심한 것을 의미함이다. 그런고로 보이는 데 보다 보이지 않는 데서 더 심하고 현재보다 미래적으로 해가 더 큰 것을 말한다.

3.'죽기를 구하여도 엇지 못하고 죽고 십흐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한 것은 그 고통이 심한 정도를 표현함이니 ①죽을 힘을 다하여 그 형편을 면하려 하여도 면치 못함이오 ②죽음보다 그 고통이 심하며 ③죽어 면하려 하여도 면하여지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지옥에 고통과 그 정도는 다르나 성질은 그와 같은 성질을 말한다. 그 고통의 중심은 후(?)회의 고통과 면하려 하는 고통들이다. 이유는 무저갱은 인간의 모든 부패성의 무한한 것 같은 것을 표현함이니 그 무저갱의 근거는 범죄한 천사가 갇힌 곳이니 곧 죄악의 근거지요 사망과 고통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그기서 나온 사자, 황충이의 해독이기 때문이다. '죽기를 구하여도 죽음이 피하리로다' 함은 지옥적인 고통을 상징함이다.  

7절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야 예비한 말들갓고 그 머리에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썻으며 그 얼골은 사람의 얼골갓고'

1.황충이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야 예비한 말들갓고' 이는 황충이의 그 모양을 말함이 아니고 상징으로 그의 성질과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요엘서2:4에도 황충이 군마같이 생겼다고하였고 독일에서는 군마에 강한 것을 황충이 군마라는 말을 한다. 이는 황충이인 그 사상과 주의와 계획과 목적의 역사 곧 자율과 사용적의 것 이것을 인생들은 어리섞어 큰 승리나 있을 줄 알고 결사적으로 달리면서 또 자신만만하게 용진하여 그 누구가 붙잡을 수 없을 만큼 권면도 경계도 소용없이 달리는 패역성과 완고성을 말한다. 사람이 이 황충에게 종이 되면 그 사상도 전마같이 강하고 그 육체도 전마같이 윤기 있게 살찌는 법이다. 그런고로 그 방향을 도무지 돌이킬 수 없이 달리는 사욕과 자율의 행위를 말한다.

2.'그 머리에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썻으며'  
'그 머리에' 함은 그 행위를 가진 그의 마음에 곧 그의 머리에 그의 정신에 그의 생각에 하는 것이오.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함은 비슷한 것이라 함은 그것과 같이 보이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말이니 면류관  곧 승리, 승리같이 보이나 승리가 아니라 말이오. 승리할 것 같으나 승리 못할 것이라 말이다. 그러나 자타가 보기에는 금면류관 같으니 인생의 영원한 승리 인생의 최귀의 승리같이 보여 확신과 용진을 가지는 어리석음과 또 일시적 승리와 세상적 승리가 있음을 보고 영원성과 존귀성이 참 있는 줄 아는 어리석음을 상징함이오. 세상적의 성공을 일편단심으로 욕망하는 자의 모든 사상은 황충이의 해독을 받은 자이다. 죄수가 용시를 쓰고 면류관 쓴 듯이 날뛰면 광인 외에는 다 그를 광인으로 볼 것이다. 이와같이 성공 비슷환 세상 것 가지고 인생의 성공같이 여기는 사람은 이와같다.

3.'그 얼골은 사람의 얼골갓고' 이는 인형(人形)은 가졌으나 자율과 사욕을 달성키 위하여 도덕예의, 체면을 가리워 천륜과 인륜을 불고(不顧)하는 야수와 맹수성의 행위를 가진 것과 참 지혜 곧 참 사람이 가질 지혜 같이 그 하는 것이 보이나 실상은 자멸하는 어리석은 주의요 사람을 망케 하는 악마의 지혜 곧 궤휼인 것을 상징함이다.


8절 '또 여자의 머리 털 같은 머리 털이 있고 그 니는 사자의 니 같으며'

1.'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함은 여인은 머리를 자기의 영광으로 삼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 그것을 가리고기도하라고 고전 11:5-6 하였다) 그런 고로 이 여인의 머리털같은 머리가 있다고 한 것은 인간의 영광같은 영광이라 함이니 인생의 참 영광이 아닌 데도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자는 이것을 영광으로 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계획한 학위 지위 혹은 금만(金滿) 결혼, 등의 목적 당성만 되면 무엇 무엇으로 무슨 영광, 무슨 영광, 마음에 가득이 품고 이런 허망 중에서 죽어도 이 성공만은 하여야 하겠다고 (不顧), 건강 생명 인륜 천륜 하고 꿈꾸는 인 맞지 아니한 자의 가련한 우욕(愚慾)을 상징 함이다.

2.'그 니는 사자의 니 같으며'  인 맞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대계획과 절대적인 주권의 능력적 섭리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황충이의 그 행위가 인류의 제일 같이 그 계획대로 그 목적만 이루어지면 모든 인간의 모든 소원을 다 주머니 안에 질 것 같이 만반의 모든 것을 성공할 것 같이 여김을 상징함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만 되면 연속적으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승리와 성공할 순서가 그 심령 속에 한시간에도 몇 십번이나 연상에 연상을 가하는 허영의 꿈을 꾸는 복잡한 심령과 말과 행위를 말함이다.  그러나 실상은 인생의 참 적을 멸하여 행복을 취하는 그런 능력은 되지 못하고 이 항충이 주의는 자타의 영혼을 사자같이 삼키는 일이다. 이를 비유하여 마13:7 절에는 가시떨기로 비유하여 씨가 섭취할 양분을 가시가 취하여 결실 못함같이 하나님의 진리가 심령 속에 박히나 황충이의 세력같은 세상욕망에게 심령이 빼앗기고 자라지 못할 것을 말했다.

9절 '또 철 흉갑 같은 흉갑이 잇고 그 날개들의 소래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녀 드러가는 소래 갓흐며'

1.'철흉갑같은 흉갑이 있고' 이는 자율과 사욕으로 말미암은 것, 황충이로상징한 그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면이나 경계를 강하게 방비하고 응종치 아니하는 강퍅성을 말한다. 이러한 주의를 가진 심령에는 진리 화살을 강하게 막으며 성신없는 자가 볼 때에 영구히 패하지 아니할 것같이 든든히 보이는 것을 상징하고

2.'그 날개들의 소래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녀 들러가는 소래 같으니' 황충이 주의가 나는 것과 같은 속도로 속성과 같이 보이는 것과 대승리를 이룰 것 같이 보이지는 것과 자신만만한 선포와 역사의 위대함을 상징함이다. 특히 '소래같으며' 함은 실존보다도 더욱 허무한 것을 상징함이다. 황충이의 운동은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자들이 볼 때에는 7절로 9절까지에 7가지 영광과 능력이 가장 존귀하고 위대하게 보여 안하무인 격으로 날뛰나 본문에 일곱가지를 다 '갓다' '비슷하다' 하였으니 실상은 하나도 참 되지도 유익되지도 아니할 뿐 5-6, 10-11 절의 해독만을 초래케 하여 죽어 싶어도 죽지 못하는 지옥적 형벌과 고통을 재세에서 받는 것뿐이다. 그런 고로 사람은 각양사욕과 자율과 정욕과 용출하는 것을 싸워야 한다. (딤전5:9-10, 약1:14 참조)

10절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잇서 그 꼬리에는 다섯달동안 사람들의 해하는 권세가 잇더라'

1.'전갈과 같은 꼬리' 이는 황충이 주의의 미혹을 말함이니 진실성이 없고 시종이 다르며 사이비한 윤리와 방법으로서 그 해독은 전갈(5절 해석참조)이 쏘는 것과 같이 외부의 육체를 해함보다 그 속에 있는 영혼을 화살로 쏘는 것 같이 해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 달 동안을 해한다 하였으니 5절 해설을 참조하려니와 일년을 인생의 일생으로 본다면 다섯달 동안은 그의 반이나 되는 수이니 유시(幼時)와 노시(老時)와 병시(病時) 숙시(宿時)를 제외한 총 시간에 해당될 수 있으니 인생의 진취의 총기간을 해한다는 것을 상징함 같이도 보인다. 특히 7절로 10절까지의 각양으로 그 모형을 상징함에 있어 황충의 전(前)은 위엄스럽고 후는 약한 꼬리로 되어 쏘는 해독이 있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기억할 큰 뜻 하나는 황충이 주의가 육체적으로는 큰 행복과 성공을 주는 듯한 그런 능력을 가진 듯이 보이고 영적으로는 유혹으로 부절(不絶)의 영혼을 쏘는 해독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11절 '저의게 님군이 잇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일홈은 아바돈이오 헬나 음으로 일홈은 아불누온이더라'

1.본절은 무저갱과 연기와 황충이가 어디 소속하였으며 무엇에 지배를 받아 움직이는가를 밝히는 것이니 ①저희를 총지배하는 임금은 무저갱의 사자니 타락한 사탄이라는 말이다. ②그 직명은 히브리 음으로 아바돈이오 헬라 음으로 아불누온이니 둘다 멸망시키는 자라는 뜻을 가졌다. 그런 고로 자율과 각양 부팻헝의 사욕 (각 이단도 포함됨)은 천사의 갇힌 무저갱과 상통되는 것이며 그기서 나온 연기와 황충의 운동이니 이는 두 말할 것 없이 멸망시키는
무저갱 사자에게 붙들여 멸망하여가는 행위이다. 이는 인생의 전갈을 삼킬 수 있는 해독을 가진 자이다.

1-11까지의 결론
①영혼 해독은 교회 부패에서
②교회 부패는 각 이단과 거짓 선지자에서
③거짓 선지자와 이단은 무저갱인 인간의 사욕 (하나님의 욕심이 아닌 것)과 자율에서
④인간과 사욕과 자율은 무저갱에 사자 사탄에게서
⑤사탄은 저가 갇히워 있는 곳이며 또 거주지인 무저갱에서 (유6, 계9:11, 20:1-3)
⑥무저갱을 버리고 탈출하고 인봉하고 극복하여야 한다. 만일 이를 용납하면 어두어지고 삼켜진다. 그 영혼이 죽는 형태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된다. 말세가 되어갈수록 이것이 점점 심하여 질 것을 가르쳐 다섯째 나팔에 시작된 것이다. 넷 날에도 없는 바는 아니나 말세에 익심할 것을 가르친다.


12절 '첫제 화는 지나갓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들이 니르리로다'

1.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이 무저갱으로부터 나오는 연기와 황충의 해를 받는 어리석은 자율과 사욕의 행위는 자애(自愛)같으면서 자멸인 해독, 곧 신의(神意)순종과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생애를 배반함이 얼마나 자기에게 활가 된 것을 보이면서 이 후에는 그런 생애를 가지는 것이 지나간 화보다 더 큰 두 화가 기다리고 있으니, 계시의종(啓示依從)과 하나님 영광 중심의 생활을 떠난 자율과 끝없는 사욕자의 자멸하는 속는 불행을 예고하여 인 맞은 자로 하여금 감사와 위로를 더하게 하고 인 맞지 못한 자에게 회개를 최촉 (催促)하는 예고이다. 8:13절에 세 화를 말하고 9:1-11 사이에 첫째 화가 임하였고 또 11절에는 둘째 셋째 화가 올 것을 미리 예고함이니 이는 8:13절과 본절에 말하여 첫째 화의 00의 예고를 한 것은 화가 더 큼이오, 택자로 하여금 더욱 준비하여야 할 것을 경고하심이다. 그런 고로 여기는 모든 환란의 승리의 준비는 환란이 오기 전 예비로만 할 수 있는 것을 예고한다.


13-14절, '여섯제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드르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가진 여섯제 천사의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하매'

1.'여섯제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드리니' 여섯째 나팔 불 때에 나타날 사건은 어마어마한 위엄성을 가진 전쟁인 고로 먼저 그리스도와 천부의 사자 곧 시위하고 있는 천사가 이 사건 전개할 나팔을 불 것을 기억하고 확신, 담대로 이 대 미혹인 전쟁을 상대하여야 한다. 또 다음 성구에서도 이 점을 깊이 인식을 시키고 있다.

2.'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도 다음 재앙과 환란이 누구의 명령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무엇을 하기 위한 운동인가를 확실이 알려 성도로 하여금 기도 중에 예비하고 긴장하여 담대히 인승(忍勝)하여야 할 것을 경고함이다.
금단은 계8:5절에 기록한 단과 다르고 8:3절에 기록한 금단과 동일한 것이니,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①은 성도들이 드린 제사 곧 그리스도의 피를 참 힘 입고 기념하여 올린 기도 (계6:10, 순교의 행위와 12:11, 결사투쟁의 행위와 8:3, 기도 등은 다 기도의 제사이다)를 하나님이 영원히 기뻐하시는 제물로 받으시고 그 신원을 응답하여주시는 기도의 응답이요 ②는 다음 환란의 사건을 통하여 금단에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요구하시며 또 제사가 있을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네 뿔에서 나는 음성은 그리스도의 구속운동이란 말이다. '4' 수는 땅에 수니 전 세계 각 민족을 망라하는 말이요, '뿔'은 제단에 뿔이니 피를 뿌려 사죄 구원하는 제사를 드리는 제단 뿔이다. '뿔'은 히이다. 그런 고로 그리스도의 피를 제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권세주어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의 구원능력을 가르침이니 여기서 나온 '한 음성'이라 함은 오직 하나만 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운동에서라 하는 말이니 다음 전개될 환란이 다른 무엇에서 호리라도 기인됨이 아니고 순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도의 기도 응답인 구원운동에서만 오는 것을 밝히는 게시이다. 이유는 확신과 견고한 소망으로 준비와 긴장과 인승(忍勝)을 부탁하는 자비이다.

3.'나팔가진 여섯제 천사의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여기 대하여는 해설이 각이하다.
①이 결박한 네 천사를 선한 천사로 보아 유브라데 근경 국가를 일으켜 천하의 3분의 1의 인구를 죽일 권을 얻었으나 천정(天定)의 시일이 되기까지는 구속 하에 있음을 의미 한다고하고
②이 결박된 천사는 악한 천사들로 해석하고 이 악한 천사들이 (범죄한 천사) 유브라데 지대에 네 나라를 일으켜 침략주의를 쓰게 하여 많은 사람 죽일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곧 이 나라는 터키가 11세기에 건립한 4개의 슐탄 국가인데 주후 1282년에 로마의 영토를 약탈하기 시작하여 1672년까지 그리했다. 그 기간의 도합이 391년이니 15절 연 월 일시란 기간에 맞는다고 하여 연은 360일 월은 30일 일은 1일인데 도합 391일인 바 일수를 연수로 보는 것이 계시록의 방식이라 하여 이 계산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술의 ①②의 해석을 받아 들이기 어렵다. 이유는 ①은 결박된 천사를 선한 천사로 해석했으니 그러하고 ②는 그 연수 계산에 대하여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하니 또 그러하다. 그 연월일시로 말하면 그 재앙의 기간 아니고 그 시일의 위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라고 하는 관사는 연만 아니고 그 연, 또 그 달, 그 날, 그 시라는 말이다.
③이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다음과 같은 네 조약이 해약됨을 말함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①국제연맹, ②부전(不戰)조약, ③평화조약, ④군비축소가 해약된 것이라고 한다. 이연도 하다.
④이 유브라데 강은 문자대로 팔레스틴 동편에 있는 그 강을 말한 것인지 미상하나 본절도 문자대로 해석하지 말고 상징적 해석을 가져야 한다. 계16:12절에는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 다고 하였다. 이 유브라데 강은 고래로 신민(神民)국경에 있어 외적을 방비함에 크게 도움되는 큰 강이다. 계16: 에 이 강물이 마름으로 동방에서 침략의 적이 많을 것을 말함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위하여 택자와 불택자의 사이에 방비하시는 역사로 이방들의 침략을 많이 제재주고 있었던 것을 말일에는 해제하여 얼마든지 땅에 환란이 일어날 것을 상징함 같이 9:14절에 기록된 유브라데 강도 그런 의미이다.
결박된 네 천사는 사탄을 말함이니 계16:12-16절까지에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킨 더러운 영, 귀신의 영, 곧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을 이용한 자와 같은 자이다. 이들의 목적은 언제나 범죄와 분쟁과 살해케 하여 망하게 하는 일들이다.

(6차자료: )
이것들의 욕망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일까지의 그 어느 기간은 구속하에 재제시켜 이루지 못하게 한 것을 가르쳐 결박된 천사라고 함이다. (마24:22), 하필 이 천사를 유브라데 강에 결박하였다 함은 지상에 인간을 악화시켜 전쟁으로 전멸케 할 마귀 그놈의 욕망을 어느 정도 구속시켜 어느 시일이 오기까지의 동안은 전쟁을 억제 감소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여 그 구원에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한 까닭임을 계시함이다. 다시 말하면 유브라데에 결박시켰다 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적을 막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박 했다 함이오 보호 그기에 결박했다 함이다. 그런 고로 이 기간은 성도들이 신앙을 준비할 기간인 구원을 얻을 기간이다.
그 이면에 깊이 큰 뜻 하나가 내표되어 있으니 사나운 광구(狂狗)나 맹수를 비끌어 매었다가 놓으면 그 상해가 얼마나 클 것이며 먼저 가깝게 있는 주위가 더 심할 것은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같이 유브라데에 매인 맹수가 놓이면 먼저 팔레스틴 이스라엘의 피해가 심할 것이다. 이와같이 말세에 오늘까지 선민을 위하여 결박했던 사탄의 그 욕망의 그 세력이 먼저 성도에게 집중사격할 것을 암시한다. 그런고로 벧전1:5 에 예언하신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심같이 그 능력을 완전히 힘입을 수 있는 그 보호를 힘입을 수 있는 기름준비를 하여야 할 것을 예고하심이다. 이는 사탄의 발악도 인간의 부패도 인간의 지능인 모든 과학도 점점 최고절정에 도달하여 가는 것이니 또 택자들의 신앙도 성신의 역사도 최고절정에 점점 성장하여 가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을 경고시킨 계시다. 인간의 부패성과 사탄은 살해 잔인을 일삼고 과학은 원자와 수소탄을 발명하였으니성도는 누구나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리를 버리고 신앙절정인 순교를 각오할 뿐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중에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는 실력을 가져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예언은 최후 말세에 이루어질 예언이면서 교회적으로는 지방과 각 시대적으로 이른 성질에 일이 있고 또 개인적으로는 그 개인에게 있어 이런 성질의 일이 자주있게 된다. 그런 고로 예언은 단순이 일, 이차로 국한하면 정당한 견해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진리행위이니 양과 시기가 다를 뿐이오 그 질적으로는 지상에 없는 날은 없다. 구원역사가 완필 되어야 없게 된다. 그런 고로 택자는 개적으로 다 이런 환란을 통과하여 성화와 선행을 완성된다. 그러나 본장의 놓인 천사전쟁은 원리는 상시에 있는 것이나 계시한 이 중심 사건은 여섯째 나팔 곧 말세지말에 일어날 시한 전쟁을 말함이다.


15절, '네 천사가 놓엿으니 그들은 그 연 월 일 시에 느르러 사람의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1.'네 천사가 놓엿으니' 이는 타락한 천사로 인간들을 각양 유혹으로 살육상쟁케 하여 땅에 인구 3분의 1을 죽게할 사탄이 이제까지 시행하지 못하던 구속에서 놓였다 말이다. 천년왕국시대에도 그놈이 갇혔을 때에는 평화의 왕국이다가 그놈이 놓이매 곡과 마곡의 대전으로 화해졌다. 이놈의 하는 일은 언제나 이런 일들이 다 진리 싸움 외에 분쟁은 이유막론하고 마귀역사이다.

2.'그들은 그 연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그 연월일시는 죽이는 기간을 가르침이 아니고 시일의 위치를 가르친다.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라는 말이다. 이는 3분의 1을 죽이는 그 시간이 어느 연, 어느 월, 어는 일, 어느 시간에 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죽는 시간까지 정하여 있음을 첫째로 나타내는 것이며 몇 해, 몇 백년이 걸리어 죽일지라도 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년 그 달 그 날 그 시에 죽는다는 말이다. 이 고정에 것을 인생들이 모르는 것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알고 보면 죄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물며 택자의 생명이리오.

3.'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것은 수자적으로 3분의 1을 말함보다 나타내고자하는 그뜻은,
①3분지 3이 다 죽을 것이로되 결박한 천사를 놓는 중에도 또 하나님의 자비는 구인(久忍)은 진노의 배나 크심을 계시함이오.
②사람들이 놀랄만큼 아마겟돈 전쟁 전에 많은 인구가 전사할 것을 말한다. 이는 말세에 세계대전들이 일어나 최후 전멸적인 마지막 대전 (계18: 전쟁) 전까지 여러번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수효를 가르친 것이다. 전사자의 수는 문자대로 수자적의 3분의 1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헤아릴 수 없는 큰 수효가 죽을 것을 말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 죽음은 8:에 있는 죽음과 다르다. 그기에는 육의 죽음도 포함된 것이나 영의 죽음을 중심한 것이오 본절은 육의 죽음을 중심한 것이다.


16절 '마병대의 수는 2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엇노라'

1.'말'은 운동을 가르치고 '기병'은 그 운동의 주동자들이니 이는 이 운동의 정신을 특히 가르침인데 그 근거는 결박된 네 천사니 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라들 마음 속에 역사하는 악령들이요 그 감화를 받은 사상들이다. (막5:13, 계16:13-14, 왕상 22:22, 참조) 이 전쟁에 출전한 사람은 기병이 아니고 그 말들 속에 포함되었다. 기병은 그 운동을 타고 있는 악령이니 곧 그들의 전쟁하는 정신이다. 그 수를 특히 2만만이라고 한 것은 2억이니 그 수효의 많은 것을 말함이다. 이 수는 마귀의 수도 되고 군대의 수도 되고 병기의 수도 되고 그 사상의 계획이라 조직의 수효도 된다. 이 수는 세계전 인구의 10분지 1이 군대 되었다는 수효이니 그 전쟁이 얼마나 크며 당시 악령의 유혹이 얼마나 심할 것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 한 가지 주의를 가질 것은 이 대전의 그 수효가 어느 그 연월일시인 단번에 있으리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아마겟돈 전쟁이 생기고 전쟁 중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인 즉 이 점에 있어 2만만의 대군이 출동하기 전에는 주 재림을 후로 한 아마겟돈 전쟁도 또 아마겟돈 전쟁을 후에 둔 본절 (계19:16) 2만만의 대전도 시작되지 아니하였으니 주 재림이 더디다 하여 방종을 일으키는 이단들에게 유혹받기 쉽다. 이 2만만 대군은 수자적인 수자보다 다수를 의미하고 또 마병대는 실상은 악령의 그 수효를 중심으로 하는 말이다. 물론 실지의 출군의 수도 그 만큼 되리라고 생각은 되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단번에 된다고 명문함이 없고 15절에 그 연월일시라고 했으니 말세 세계적전쟁으로 일어나는 몇 번을 포함하여 함인지 우리는 단정하기 어렵다. 어느 전쟁부터 어느 전쟁까지를 내포함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런 고로 말세에 큰 전쟁들이 자주 일어나면 곧 그것이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본 절의 2만만의 전쟁인 줄 알아야 한다. 이 전쟁을 미래로 보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으나 오늘은 (1957년 2월 記) 벌써 이 전쟁은 시작한지 얼마 지나 전쟁 중에 있는 현재이다. 이것이 어디까지 마칠는지 미상하나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아마겟돈으로 봄이 지당하다. 아마겟돈 전쟁은 그 기간이 짧은 것을 계18:8 절에 하루동안이라고 하였으니 그 전쟁을 보고 신앙준비하려고 하는 자는 벌써 마귀의 시험에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을 휴전같이 생각하나 실상은 전쟁 중에 있는 오늘이다. 2만만의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이 연발되리라고 생각된다.


17절 '이같이 이상한 가온대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 빛 흉갑이 잇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갓고 그 잎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이상한 가온대' 환상 가운데라 말이다. 그런 고로 이 아래 말은 글자대로 읽을 것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볼 것이다.
2.'그말들' 은 문자대로가 아니고 상징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스칼트는 토이기 침략군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예언이 그것으로 성취종완(終完)을 본 것이 아니다. 이는 16절 해석과 같이 말은 말세에 2만만의 전쟁의 운동을 상징함이니 그 운동은 여러 국왕들과 군인들로 이루어짐이요 '그 탄자들'은 이 전쟁을 일으키는 사상과 그것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는 사탄을 총합한 것인데 곧 그 전쟁의 통일된 정신을 말함이다. 다음에 그 모양과 그 행동을 불빛 자주빛 유황빛 흉갑이 있고 사자 머리같고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온다고 상징한 것은 이 사탄의 발작으로만 된 만만 전쟁의 정신과 계획과 용력이 이와같다는 것이다. 모양과 행위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①'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다고 함은 이 세가지의 방비력의 든듣하고 자신 있는 정신을 가진 것이니 말세에 2만만 운동의 전쟁은 각각 상대반이 이러한 절대적인 자신있는 방비력을 가진 줄 알기 때문에 그 싸움은 더욱 맹렬해진다. 여기에 세가지 흉갑을 빛(색)이라 하였으니 이는 찬란한 것을 의미한다. 외부로 색색의 흉갑이니 눈에 잘 띄이고 선전은 강하나 실상은 힘이 허무한 것을 의미한다. 이 흉갑은 철도 그 어떤 강한 것도 아니요 다만 색만 세가지 색으로 보였다고 하였는데 그 흉갑은 화공이 그림 그리듯이 빛만 되어 있는 것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이유는 빛이 있을 때에는 물론 그 실물이 있고야 있는 것이니 본 흉갑을 빛 뿐이라는 해설이 이연치 않다고 하기 쉽다. 그러나 초두에 불빛이라고 하였다. 실체가 있고 색이 있는 것이라고 하면 불이 어떻게 흉갑이 될 것인가? 그런 고로 이로서 그 흉갑이 불과 유황과 자주로 된 것도 아니라 말이오. 다른 어던 물건으로 된 것도 아니라 말이오 다만 색으로 되어 있는 흉갑이니 얼핏보면 강하고 찬란하나 실력은 없음을 의미하고 그 실상을 모르는 대적들과 모르는 자기의 소속자들을 속일 것 뿐인 흉갑이다.

이는 본장 9절에 '철흉갑'같다 말과 같다. 그도 얼핏보면 철흉갑으로 보이나 실상은 아니라 말이다. 흉갑은 원수의 화살을 막아 자기를 보호하는 것인데 이것이 강하면 원수에게 불리하고 이것이 약하면 원수에게 유리하다. 이들의 원수는 누구며 이들의 대적은 누구인가, 이는 2만만 군대의 대적이 어떤 군대로 되어 있음도 아니다. 또 이 군대 이들은 양편 군대의 합수도 아니다. 죽은 자, 사람의 3분의 1인 그들도 아니다. 그들은 2 만만 군대가 전쟁하는 가운데 죽은 자를 말함이니 2만만 군대, 자체에 죽은 자도 포함하고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들의 죽은 수도 포함한 것이다. 그런 고로 특히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람 보기에는 쌍방이 각각 있어 둘이 싸우는 것같이 보이나 성경은 여러나라가 여러 패가 되어 여러 군대서 전쟁을 할지라도 그것을 동수, 동파요, 한편으로 본다. 또 세상 국가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대적같이 보나 그것도 하나로 본다. 이유는 그것들의 왕이 하나다. (왕은 사탄)
그런고로 그 대적은 다음과 같다. 세상 국가의 대적은 천국운동이요 세상 총 전쟁의 대적은 천국 십자가 군대들이다. 기독자들도 세상 국가를 총 대적으로 보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개적으로는 국민의 의무를 다 할 것이나 세상 국가 운동과 천국 국가 운동은 원리적으로 대적이 되어 있는 것 알아야 한다. 타협하면 둘 다 망한다. 국가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복음 운동에 이용을 시키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 국가가 천국과 천국 운동의 한패는 아니다. 하나인 줄 알면 또 실패는 온다. 예를 들면 애급이 선민 대우와 하나님 존경을 이스라엘 같이 하였으나 그들이 이스라엘은 아니다. 때가 되매 적으로ㅗ 나타났다. 언제나 선민과 애급인은 구별되어 있다. 이는 오늘에 천국운동과 세상운동들을 상징한 모형이다. 비록 영미국가가 기독교 종교국으로 되어 있다 할찌라도 그기 세상 국가와 천국 운동과는 구별하여 대적으로 삼지 아니하면 로마 교회같이 부패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기독교와 하나로 아나 큰 오해이다. 공산주의 국가나 실상은 꼭같은 적으로 보아야 한다. 공산주의는 외부적이오 민주주의는 내부적인 것만 차이있다. 그런 고로 개인적으로 국가의무를 한다고 하여 국가와 교회를 혼합시키고 합치할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천국의 군병이며 또 시민으로서 왕되신 하나님께서 다만 세상 국가를 그의 무대로 주었고 파수할 직장으로 주었고 전투지로 준 것 뿐이다. 그런고로 세상 국가에게 순종함이 아니고 그 국내 어느 정치기관에 들어 있든지 그 기독자의 국적도 천국이요 그의 왕도 하나님이요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요 명령하신 이도 하나님이요 자기가 일학 순종하는 전부도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에 합치한 일은 국가에서 명할 때에 그가 하나님의 사환인 줄 알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순종하고 이 시간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배치되는 것을 명할 때는 거역하여야 한다. 이것이 천국의 군인이요 시민인 증거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2만만의 전쟁이 외부에는 국가끼리의 전쟁같이 보이나 실상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매 그기 소속한 성도들과 싸우는 전쟁이다. 계17:13-14에 말세의 전쟁들이 다 이러하다고 명문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모든 역사가 전쟁으로 성도들의 신앙 사상과 정조를 격멸하려는 목적이며 또 허락하신 하나님은 신앙 진가(眞假)와 연단을 위하여 하시는 일이다. 그런 고로 여기에 흉갑이 강한 것 같으나 실상은 종이며 그림 그려 붙인 것과 같이 약하니 그들의 대적인 우리들에게는 유리한 것과 그들의 방비가 강하다고 보아 놀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흉갑은 2만만의 말과 병대의 흉갑이 아니고 결박된 넷 천사가 일으킨 2만만 전쟁의 그 사상과 정신 준비한 모든 세력들, 그들의 총체의 방비력을 가르쳐 말함이다. 그런 고로 그 방비력이 강하여 기독교도 그 세력을 뚫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이 보여진다. 실상 허무하니 공포와 비겁 버리고 용진하여야 할 것을 가르친다.

'불빛' 이라 함은 광명성을 가르침이니 2만만의 전쟁, 그 자체의 동기와 목적과 방법이 선하다고 주장함이니 아니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전쟁이요 또 방어전이요 화목과 평화와 구원을 위한 소위 성전이라고 명칭을 붙여 평민과 군졸들을 유혹시켜 지도자들의 야욕을 채우면서 정의니 공의니 공평의 보응이니 하여 신의 원조까지를 말하여 필승과 불패의 확신으로 방패를 삼는 것이니 성전이라는 것으로 흉갑을 삼는다는 것이다.
'자주빛' 은 영광있는 자의 의복을 가르침인데 이 전쟁은 정의와 자비와 동족과 인류를 위한 전쟁이니 싸우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의의 피의 움직임이니 하여 양심가진 자는 용전케 하고 또 허영주의자와 교만자는 그 계급 계급의 그 지위의 명예욕으로 결사적인 용기를 가지게 하여 두 영예심으로 흉갑을 삼는 것을 상징하고
'유황빛' 이는 폭격 포탄 사격 기타 모든 전약품(戰藥品)들을 가르침이니 (원자탄, 수소탄 기타 신 발명) 이런 것들의 힘을 의지하여 이것이 있으니 적의 침략이나 피해의 염려가 없는 안심과 담대를 주어 용진케 함으로 그것을 흉갑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부가 다 악령의 속임에서 나온 것이다. 성전도 방어전도 없는 것이다. 전쟁은 다 죄의 값이요 죄의 결과이다. 혹이 하나님이 선민들에게 전쟁을 명했으니 그도 죄냐고 하는 반문이 있겠다. 그기는 확실이 성경이 대답한다. 가인과 아벨의 싸움도 범죄한 이후의 사건이요 또 쌍방의 가인은 침략했으나 아벨은 대전하지 않했다.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내 백성이라고 하시고 과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를 착수하셨을 때에 강퍅한 바로와 애급을 대적으로 하여 싸웠으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싸우시기도 굴복도 살해도 하셨지 선민이 직접 살해하는 일들을 하지 아니하였고 또 아무런 부족함도 없었다. 그러나 출14:1-4에 '여호와 갈아사대 바알스본 마즌편 바다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강팍한 바로가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야 영광을 얻으리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즉후 출 14:10절에 그들이 추격할 때에 선민은 공포에 떨었으나 13절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이 서서 여호와께서 오날날 너희를 위하야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오날 본 애급인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바다 우으로 내여밀매' 27-28절에 '여호와께서 애급인들을 바다 가온대 업허시니'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엿더라' 애급의 열 재앙도 애급병의 홍해 멸도 모세가 애급인을 직접 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호와의 말씀대로 피조물들을 명할 때에 그 물건들이 그들을 멸하였던 것이다. 이는 타락 전 인간의 주장권을 가진 것과 같은 것이요 그 후 출32:7-에 금 우상을 만든 후로부터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하시고 출애급 이후 처음으로 살해의 행사를 선민들이 직접하게 되었으니 출32:27-28에 이 죄값으로 자기 민족을 3천명 가량 사형하였던 것이다. 그후 33:3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시고 이 범죄 이후부터 직접 대적을 살육하는 전쟁을 안하면 안되는 지위에 떨어졌던 것이다. 그후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함락을 시켜 주었으나 그 안에 성민들의 살육은 직접하게 되고 여호수아 7장에 아간이 범죄한 이후에는 아이 성민들에게 36인 쯤 피살을 처음으로 당하고 패전을 하여 도망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보아 전쟁을 명하신 것이 죄가 아니라 전쟁의 기인은 틀림없는 죄이며 패전 승전 일무피살 무전승리(기도 혹은 만물에게 명할 시 적멸)들의 차이는 다 죄의 차이인 것을 성경과 역사가 증거한다. 더욱이 오늘은 계9:17절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성전과 방어전은 주장하지 아니하는 편은 하나도 없고 또 참 성전과 방어전은 하나도 없다. 시간과 지경의 한계를 넓히고 좁히는 데에서 각자의 사욕의 주관해석은 다 성전 방어전을 말하나 하나님 보시기와 실상은 침략이요 악전이다.

정의의 피니 애민족의 정신이니 구원이니 하여 청년들의 아름다운 피를 충격시키는 것과 비참한 살풍경만 초래할 뿐이요 다 불의를 일으킬 것 뿐이요 구원도 정의도 세우는 결과는 맺지를 못하고 소악을 대악으로 소불의를 대불의로 소불공평을 대불공평으로 만들며 예비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이는 정의와 구원과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객들의 연구와 노력은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계18:5) 불의와 불평의 죄악은 하늘에 사무치게까지 되었다. 성경이 말한 대로 이 세상은 죄악으로 종말은 망하고 말 것을 말했다. 그런 고로 인생으로서 할 수 있는 정의라면 애민족이라면 복음주의로 불의와 죄악을 인하여 내가 죽고 원수를 사랑하며 죽기까지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그 생애를 힘 입고 본 받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아무리 신발명의 전쟁 무기와 각양 약품이 있다 할지라도 전쟁은 자멸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승리가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권고하심에 있다. 일차대전 독까지를 뿌린 독일 군들이 죽은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 고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들의 가치를 한 빛 (色)과 같이 생각한다. 이 모든 전쟁은 다 죄값인 것을 본장 20절과 21절에 명확히 말했다.

3.'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이는 상징적이니 말은 무력과 혹은 기동을 가르침이니 이 2만만 전쟁의 무자비와 강한 정복력을 가르침이다.

4.'그 잎(입)에 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것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야 될 것을 본문이 요구한다. 입에서 불을 토할 군마는 없는 것이니 이 운동이 포격 폭격(불), 뇌성(연기), 사격(유황)들의 맹렬한 전술을 말한다.


18절 '이제 재앙 곧 저희 잎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야 사람 3분의 1이 죽임을 당하니라'

1.이 세 재앙이 입에서 나온다 함은 2만만 전쟁이 운동이 폭행하는 것을 말함이니 맹렬한 폭격 포격 뇌격 사격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말함이다. 특히 이 죽음은 육까지의 죽음이요 3분지 1이라 함은 하나님께 이 재앙을 통하여 죽이시는 역사 보다 긍휼로 구원하시는 역사가 크심을 가르침이요. 17-18 에 이 말과 탄 자의 형태와 행동을 무서운 것으로 표시된 것은 19절에 나타내기 위한 준비의 말씀이다. 말세 전쟁에 대하여 이방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 해독에서만 멈추면 16-18 까지만 보는 사람이요 본 게시를 기록한 근본목적인 19절에 대한 해독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16-18절의 해독은 참 신자를 해할 능이 적고, 19절 해독이 참 신자를 해할 수 있는 것이다.

19절 '이 말들의 힘은 그 잎과 그 꼬리에 잇으니 그 꼬리는 배암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잇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1.'이 말들의 힘은 그 잎과 그 꼬리에 잇으니' 말세 2만만 전쟁이 운동의 해독은 입과 꼬리에 있다 함이니 입의 해독은 외부에 나타나는 무력 폭력적 살해를 말하고 꼬리의 해독은 이면적이어서 사람의 지혜로 살해적인 해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영을 죽이는 이단적 유혹을 말함이다.

2.'그 꼬리는 배암같고' 함은 인류조상 아담을 가장 행복된 도리를 말하며 심히 위하는 듯한 말로 아담의 영육을 멸망케 한 사탄을 가르쳐 그놈이 이 전쟁에 이면적 영살의 운동을 하고 있음을 상징함이니 말세 전쟁에는 특히 그 목적이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연단과 하나님의 종의 진가를 구별하려는 것과 세상적 관계와 소망을 천국의 것으로 옮기시기 위함이요, 사명을 받아 역사하는 타락한 천사 사탄은 사람들의 영혼을 범죄로 죽이려 함이다. 그 방법을 가르쳐 배암의 꼬리의 힘과 해한다고 하였다. 그 방법이 배암의 꼬리 같다고 했으니 배암 꼬리는 무슨 촉감을 가졌을 때에는 1분 간에 수백번 동요한다. 이와같이 전쟁을 일으키는 사탄의 근본 목적은 외부에 육적 살해로 위협을 주어 육의 생명의 애착심을 강하게 하고 죽기를 두려워 육의 생명을 구원할 길을 찾아 전 신경을 집중케 한 후 하나님의 게명을 어기면 살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을 봉착케 하여 저의 편 사람들을 배암 꼬리 같이 얼마든지 자주 살려 줄 것 같이 유혹시켜 범죄함으로 그 영혼을 죽게 하는 영살의 해독을 말한다. 그런 고로 말세 신자는 전쟁에 대한 육신 죽음의 공포보다 그 공포로 인하여 영혼이 죽는 말씀 어기는 그 행위를 하게 하는 그 군법으로 인하여 범죄함에 총 주의를 집중하여야 한다. 전쟁관에 대하여는 교역자나 적년(適年) 군인이나 이 유혹을 반대함에는 다 직접적 박해가 있기 때문에 이 빛을 피차에 잃기 쉽다.

3.'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이는 두 가지 뜻을 가지나니 머리의 윤기는 저들의 유혹하는 말에 화목같고 영광같이 보여지는 거소가 머리털의 수효가 많은 것 같이 그 유혹의 종류와 해독의 수가 많은 것을 상징함이다.

4.본절의 배암의 꼬리의 해석을 2만만 전쟁의 그 전술과 참모라 하고 요동하는 배암 꼬리는 그들의 술책이 잠깐 승리같이 보이나 곧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고 도 혹설은 이단의 역사라고도 한다. l 해석들도 채택할 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여기 중심은 상술한 1, 2, 3, 의 해석과 같다.

20-21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듯거나 단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은동과 목석의 우상의게 절하고 또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 하더라'

1.'이 재앙에 죽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들'을 스캇트는 이것이 터키의 침략에서 잔존한 로마의 인민을 가르친다고 하나 이 예언이 그것으로 성취의 결망을 지은 것은 아니다. 말세의 종말까지 남아있는 전 인류를 가르쳐 말함이다. 남은 자는 육의 생명만 남은 불택자와 영육의 생명이 남은 회개 도중에 있는 택자를 말함이다.

2.'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이도 상징이니 손으로 하는 일만이 아니고 심신의 행위 전부를 가르쳐 손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하여 전 생활을 회개치 아니함을 가르침이다. 본 성구에서 2만만의 재앙의 원인을 밝혀 회개치 아니한 죄의 까닭과 또 앞으로 남은 아마겟돈 전쟁도 회개치 아니하는 그 죄악으로 원인이 되는 것을 보인다. 본절은 지상의 전 `환란과 모든 재앙은 불회개의 원인인 것과 또 택자의 성화를 유일의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게시함이다. 회개치 아니하는 죄악은 다음과 같다.

3.'오히려' 함은 회개를 위하여 각양 재앙으로 징계를 받으나 말세가 되어갈수록 사회나 교히는 더 부패하여 가며 죄악은 더 관영하여 갈 징조를 보임이다. 다음 죄악이 지상에 제감되어 지상 천국이나 사회에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기독교 사회주의 도덕주의 정치주의 들의 사이비한 이단들을 비격하는 말씀이다. 단12:10절 대로 악한 자는 점점 악으로 성결한 자는 점점 성으로 예언된 것을 기억하여 낙망이나 혼합이나 타협을 말세가 되어갈수록 삼가야 한다.

4.'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듯거나 단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은동과 목석의 우상의게 절하고'  이것은 해석이 둘이 있으니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이다. 문자적 해석은 외형이요 상징적 해석은 내부이다.
①문자적 해석, 박윤선목사님은 여러 귀신은 모세의 10계명 중 이것은 일계명으로 사계명까지의 하나님을 대한 계명이라고 하였다. 이연하다.
②상징적 해석, '여러 귀신'을 섬김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으로 된 지혜와 지식과 성령 감화들 외에 인간들이 용납하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감각들의 용납을 상징함이니 곧 계시 9장 19절 배암의 꼬리의 힘과 해라고 상징한 것들이다. 이것이 다 귀신 곧 사탄의 전술인 유혹이다. 말세에 모든 재앙은 이것을 첫째로 하여 벌하는 것과 또 택자의 속에서 뽑으려 하심이다. 그런 고로 독자는 말씀과 영감이 아닌 것은 다 귀신의 행사인 줄 알아야 한다.

(제7차 자료)

'또는 보거나 듯거나 단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은동과 목석의 우상의게 절하고'  함은 계 9: 16 -18 까지의 2만만 전쟁의 그 세력에게 굴하고 또 그 세력에게 구원을 소망하여 아부하며 구하는 행위를 가르침인데 그와 같은 행위를 회개하라고 이 전쟁 재앙을 하나님께서는 베푸신 것인데 무지한 사람들은 그럴수록 오히려 그것들의 세력에게 생사와 화복이 주권되는 줄 알고 굴복하며 간구하는 죄악성을 말함이다. 그의 능력을 가르쳐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의지와 주권적 능력에 (무생물인 물건이 사람의 손에서만 이용될 수 있는 것처럼) 피동되고 능동적인 힘은 목석같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인데 이것들을 두려워 굴복하며 또 아부하며 또 삶을 구하는 가증된 죄악을 조물주께서 미워하심과 그 어리석음을 상징으로 보이는 것이다.
2만만의 전쟁에 소속한 선전과 그 무력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용하시는 대로 보고 듣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그 가치를 평하신 것이다.
금은 인간이 그 가치 평가할 때에 귀하게 보는 것의 세력을 말하고 은동목석은 차차로 그 가치를 적게 보아 목석우상은 제일 가치 적은 우상이라 함이니 이것들의 세력이 사람들을 끌고 굴복시키고 숭배를 받고 지배하는 세력이 하나님보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강한 것을 말함이니 예를 들면 적은 문제로 계명 어긴 자를 목석우상섬긴 자로 큰 문제로 계명을 범한 자는 금우상 섬긴 자로 또 대통령 지위 같은 지위 때문에 범죄한 자는 금 우상 섬긴 자로 보겠다. 물질에 대하여도 그와같다. 금우상 섬기는 자가 목석우상자를 조롱하기를 나는 섬길 만한 가치 있는 우상이지만 네 우상은 아무 섬길 만한 가치가 없는데 섬긴다고 조롱하는 자와 같다. 그런 고로 성도들은 물론 물행(物行)인 우상을 보기도 하고 섬기지도 아니하여야 하려니와 그보다 복음 운동 외에 모든 지상 국가 운동은 목석같이 추호의 능동의 힘도 없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에 피동되는 것과 그 허락에서만 움직임을 알아야 하겠고 또 그 세력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굴복이나 의지 하는 것은 한 개의 우상에게 절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현실 국가 곧 인간 사회의 세워놓은 제도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고 그 본질을 말함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때에는 하나님의 역사로 알고 주께 하듯 하여야 하고 만일 하나님의 계명에 어기는 그 역사는 인생 구원에도 피해에도 한 개의 목석같이 아무런 능동에 힘이 없는 존재로 상대하여야 한다. 그 전부가 합해도 터럭만한 복이나 구원을 줄 수 없는 것이 큰 돌 무더기의 무능함과 같고 또 내가 계명을 어기지 아니할 때에 추호의 해도 주지 못하기를 태산같은 돌무더기가 있을지라도 내가 그 돌로 나를 치거나 걸어 넘어지거나 그가 구르는데 내가 치이거나 하지 아니하면 추호의 해도 주지 못하는 존재인 줄 알고 그 세력 평가를 바로 하여야 한다.

5.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회개치 아니하더라' 함은 2만만의 전쟁이 20절과 21절에 있는 죄악으로 기인됨을 밝히는 것과 또 회개치 아니하니 그 위에 다시금 이런 재난이 이를 것을 예고함이다. 본절은 대인 계명을 대표하여 나타낸 것이다.

'살인'
살인도 살인이오,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오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인륜에 대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은 살인에 포함되는 것을 명시하기 위하여 제5계명은 살인에 포함시키고 언급하지 아니한 것이다. 예수님은 살인에 대한 해석을 마5:22 절에 노하는 것과 멸시하는 것과 희망없이 보는 것을 살인에 소속한 것으로 말씀하셨다. 이것도 물론이어니와 형제에게 복음을 가루는 것은 영적 살인의 죄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고로 복음에 거리끼는 모든 불신앙과 부덕의 행위는 이 죄에 소속한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한다. 깊은 의미에서는 사랑치 아니함과 예수님께서 내게 대하듯 내가 이웃에게 대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살인에 소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복술'
복술은 제9계 거짓 증거를 포함한 것이니 성신의 감화와 성경 진리에 배치되는 모든 말고 계획과 공작들은 다 복술이다. 모든 이종교와 성경에 배치되는 모든 문학과 사상 정치 그 전부는 복술에 소속한 것이다. 복술은 곧 속임이니 고의적의 것도 있고 무지로 말미암은 것도 있고 무능으로 불원하면서 되어지는 것도 있다.

'음행'
이는 7계를 말함이니 이는 도덕범이면서 또 종교범까지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범하는 까닭이다. 또 영적으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멀어지거나 혹 배반하는 것은 영적 음행이다. 영육적으로 이 지ㅗ악을 이기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유일의 방법이다.

'도적질'
이는 8계와 10계를 겸한 죄악이니 공의성과 정당성을 넘어서 취하는 것과 탐하는 것은 다 도적에 속한 것이다. 신령한 의미에서는 보편은혜와 특수은혜를 주만 위하여 사용치 아니하면 다 이 죄에 속하는 일이 된다.

20-21절에 죄악을 기록하신 목적은 말세의 영육의 환란인 모든 재앙은 이 죄악들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또 이 죄를 평소 곧 사전(死前)에 회개한 자마다 피해치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한 자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한다.


제 10 장

계10:2-11:13절까지는 한 내용을 가진 것이다. 계10:1-11절까지는 신구약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계11:1-13까지는 성경대로 성취되는 것에 대한 양태를 계시함이다. 그런고로 순서에 대하여 기록 순서와 실시 순서가 다른 고로 혼돈되기 쉽다.
계9:13 절에 둘째 화가 되는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이루어질 환란이 계9:21 까지 끝나고 그다음 순서가 되는 셋째 화는 계11:14 절로부터 연속된다. 그런 고로 계9:21절과 계11:14절은 실시적 순서요 계9:21절 다음 있는 것은 기록적 순서뿐이다. 기록 순서와 실시 순서를 동일로만 보면 안된다. 바꾸어 질 때도 종종 있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계10:1-11:13 절까지는 신약시대에 총기간을 망라하여 관계되는 복음과 그 실시의 강령을 말한 것이다.
계10장 1-11 절까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과 이행의 권위성을 예고하여 이 계약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또 전하여야 할 급선무를 말하고 11:1-13 절 상반까지는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할 때에 속화교회와 또 저들의 행위와 증거자의 당할 환란과 이어서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신다.

해석

1절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나려 오는대 그 머리 우에 무지개가 잇고 그 얼골은 해같고 그 발은 불기동 같으며'

1.이 천사의 모습이 예수님과 비슷한 고로 그르스도 자신이라고 하나 크레다느스는 이것을 고급천사라고 하였다. 우리는 둘째 해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천사인데 그 모습이 중대한 것과 또 그 사명이 중대한 것 만큼 그리스도의 직접 대리자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르스도께서 동재(同在)하시면서 천사를 통하여 비의적(秘儀的)으로 나타나심이다. 출3:2절과 4절과 같은 형편이다.

2.'힘센 다른 천사' 맡은 사명이 중대한 것만큼 그에게 부여된 책임과 지위와 권위가 큼을 말함이니 이는 곧 그가 가지고 온 그 사명 (약속성취의 소식)이 권위 있음은 그 사건 자체가 힘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3.'구름을 닙고 하늘에서 나려오는대'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의 보호를 입고 적은 책을 가지고 왔는데 그 책을 주신이와 사명을 맡기신 그 권원이 지존하신 이라 함이니 절대적 의지와 절대적 능력으로 보내여 땅 위에 가지고 온 것이라는 중대 사건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상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임을 중복 예고하는 것이다.

4.'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잇고' 이 무지개는 계4:3 절에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있는 그 무지개를 가르친 것인 고로 4:3 절에는 관사가 없고 10:1절 무지개에는 관사가 있으니 그 무지개로 번역됨이 옳다. 이 무지개를 자연계에 무지개로 또는 천사의 영광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무지개는 하나님의 계약을 상징함이니 천사의 머리 위에 위치를 차지하고 땅과 바다는 천사의 발 아래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상징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존귀성과 권위성은 모든 피조물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함이다. 과연 계시 말씀의 본 지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천사도 인생도 영물들도 만물도 말씀이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요, 이 말씀은 말씀이 말씀하신 말씀이니 모든 피조물을 창조할 수 있는 권위있는 말씀, 곧 약속이다.

5.'그 얼골은 해 같고' 이는 자체의 성결과 모든 사물의 정체와 그 실상이 하나도 비밀없이 드러나는 조명성을 말함이니 이는 천사 그 자체가 성결함으로 빛나는 앞면을 가졌다 함이 아니고 등 안에 불을 켜면 그 빛으로 인하여 빛 없는 등까지 빛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천사가 가지고 온 하나님의 계약책 그 권위는 우주에 모든 비밀을 폭로하며 세밀이 인과 심판을 총 시행할 절대적인 법과 현명(顯明)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 소식을 전하러 온 천사에게까지 그 빛이 발사함을 상징함이다. 그런 고로 천사의 얼골이 해같이 조명됨은 그의 사명인 약속의 말씀의 그 자체의 광명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소개하는 셈이다. 누구나 이 계약의 말씀을 대할 때에 이런 조명성을 깨달아그 날에 폭로될 모든 부끄러운 일을 오늘에 보혈에 고하여 도말 받는 자가 복이 있고 세밀하면 세밀할수록 복있고 이 사실을 부인하면 하는 것만치 날마다 저축하는 수취는 그날에 전신을 누르게 될 것이다.

6.'그 발은 불기동 같으며' 크레다느스는 말하기를 이 구절은 천사의 위대와 영광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의 지위와 사명의 위대성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는 심판의 위용성을 상징한 것이다. 이연하다. 본 구절도 천사의 얼굴을 해석함과 같으니 천사 자체가 탈 것들을 태워버리는 불기둥과 같이 모든 불의를 심판하여 버릴 권력이 받아 있을 수도 있으나 이 구절은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그 중심과 목적을 하나님의 계약인 말씀에 둔다. 그런 고로 천사가 가지고 온 하나님의 계약인 작은 책에 기록된 말씀에 권위는 탈 것들은 무엇이든지 불기둥에 접하면 다 타짐과 같이 영원히 불멸할 수 있는 진리적의 것 외에 것은 다시 말하면 이 약속에 존재하리라. 또는 온전하다고 인증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심판받아 멸망하기를 소멸됨 같이 되어질 절대성의 그 능력이 그 사건을 가지고 온 천사에게 반사되어 발사됨을 가르쳐 말함이다. 반사 받은 것에 태우는 세력이 불기둥이거든 원사(原射)인 말씀 자체의 심판 곧 계약자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오늘에 이 말씀에서 심판받아 타고 타지 아니할 신앙생활로 건설한 자가 금은보석으로 집을 지은 자이다.

2절 '그 손에 펴 놓인 적은 책을 들고 그 옳은 발은 바다를 밟고 오니발은 따를 밟고'

1.'그 손에 펴놓인 적은 책을 들고' 여기 대하여 계5:1절에 나타난 심판책을 환상으로 나타내여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어떤 학자는 이것은 앞으로 11: 이하의 예언을 가르친 것이라고 하여 요한에게 예언하여야 할 사명을 인식하게 하려는 까닭으로 환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아니다. 본장 7절과 9절로 11절에 선지자가 전한 복으과 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하였으니 복음은 신구약 전부요 선지서는 특히 구약을 말함이다. 또 9절과 10절에 먹어라 소화시키면 쓰리라 하였으니 주 재림시와 별세시까지 성도들이 먹고 행하여야 할 양식은 계11: 이하의 말씀만이 아니고 신구약 전부를 먹어야 하며 또 11절에 예언하여야 된다고 하신 예언은 하필 계시록이나 혹은 계시록11: 이하의 것만 예언할 것이 아니라 창1: 으로 계시록 끝장까지에 모든 예언된 말씀 곧 이 복음에 말씀 믿어도 모르는 자에게 또 예언하여야 되겠고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더욱 끝날까지 예언하여야 한다. 그런 고로 2절에 천사가 가진 책은 신구약 합부가 분명하다.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본10장은 중심되는 점이 하나님의 약속에 권위성과 이행의 절대성과 그 가치가 모든 피조물보다 존귀함을 계시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은 것만치 천사의 손에 작은 책은 신구약 성경인 것이 분명하다. '펴놓인' 책이라 함은 신구약에 계시된 전 약속은 하나도 인봉되어 있거나 제거할 부분이 있거나 현재에 필요없는 한 성구라도ㅗ 있거나 하지 않고 전부는 명백하고 또 획 하나도 무용됨이 없이 전부가 현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누구든지 다 볼 수 있으며 또 보고 이행하여야 할 중대성을 보임이요.

'작은 책을 들'었다 함은 두가지 뜻을 가졌으니 재세의 모든 피조물을 상징한 바다와 땅은 발 아래 있고 이는 천사가 들었으니 재세의 모든 피조물보다 이 신구약 성경은 존귀하고 또 '작은 책'이라 함은 특히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을 작게 보는 간단한 책으로 사람들이 멸시하나 그 권위는 심히 큰 것을 보여 인간이 적게 보는 그 죄를 책망하며 경고시키기 위하여 '작은 책'의 환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기는 작으나 이 책에 대한 경고의 음성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10:7) 고 하나님과 만물을 두고 6절에 맹세까지 하였다.

2.'그 올흔 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따를 밟고 바다와 따는 전 세계를 가르침인데 그 중에 있는 모든 피조물도 택한 성도 외에는 다 여기 포함된다. 이는 외부적이요, 그 이면은 바다는 죄악을 가리키고 땅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한 인본적 모든 선을 가르침이니 이는 천사가 땅위에 있는 모든 죄악과 인간적인 모든 선, 그런 것들을 발아래 밟고 있는 그 권위가 이 작은 책을 가졌기 때문에 이 권위는 그 사명의 권세임을 말하여 작은 책을 가지고 온 사명이 얼마나 크며 그 작은 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또 거듭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는 오늘도 이 천사의 손에 있는 작은 책을 받아 가지고 먹고 소화하는 자, 곧 이 책대로의 주장을 잡은 자는 현재에도 바다와 땅을 밟고 그 위에 설 수 있는 것을 보이며 또 내가 먹고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갖다 먹어라고 땅과 바다인 전 세계와 모든 죄악의 세력과 인본적인 각 선의 세력을 발에 밟고 권위 있게 서서 사자의 부르짖음 같이 서서 예언하여야 한다.

4절 '사자의 부르지즈는 것 같이 큰 소래로 웨치니 웨칠 때 닐곱 우레가 그 소래를 발하더라 닐곱 우레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랴고 하다가 곧 드르니 하날에서 소래나서 말하기를 닐곱 우레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나 하더라'

1. '사자의 부르지즈는 것같이 큰 소래로 외치니'  '부르짓는'다는 말은 원어 '뮈라타이'라고 하는데 사자의 부르지즘에 대하여 보통으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벧전 5:8) 스웨테는 말하되 이 말 뜻은 그 음성의 양이 심히 클 뿐 아니라 그 언사가 매우 간절하여 듣는 자들의 주의와 경외를 일으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는 그 소리의 내용은 본장 6-11까지의 사건이니 이 소식을 가지고 온 천사가 이와같이 힘에 지나치도록 간절히 외치며 전달하는 것은 그 내용이 중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 천사에게 이 소식을 맡기신 주님의 그 심정과 간곡한 특이한 부탁이 있었던 것을 그 천사는 전달함에 표시된 것이다. 피로 사신 택소자(擇召者)에게 있어 얼마나 위급하고 긴급한 소식이니만치 주님은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심정같은 심정으로 이 천사를 특명으로 보내신 것을 그대로 나타냈다. 한 말로 말하면 그 전달된 소식은 약속 이행에 불변이요, 급성될 예언이니 택자는 누구나 속히 먹고 소화하고 또 급하게 전하여야 할 것이다.

2.'외칠 때에 7 우레가 그 소래를 발하더라' 7 우뢰소리는 천사가 사자같이 하나님의 약속 말씀의 권위를 전할 때에 하늘에서 그 응답으로 나는 소리인데 심판성을 가진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표시이다. 우뢰라는 말이 신구약에 40번 기록되어 있는 중 하나님께서 특이한 사건을 나타낼 때에 우뢰같은 같은 소리로 표시된 일도 있고 (요12:29) 대개는 하나님의 진노를 표시한 일들이다. 원어대로 바로 직역하면 '7 우뢰들이 각각 제 소리대로 말하더라' 라고 하여야 한다. 이 우뢰소리는 요한만 듣고 기록 하지는 말라고 4절에 하였으니 그 이유는 약속 말씀에 대하여 얼마나 두려워 인생들이 떨어야 할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고로 그것을 기록하지 말고 그대로 시행만 하신 표시이다. 한 우뢰 소리만 발한대도 그 사건이 중요하며 땅에는 큰 변동이 생겨졌으니 7 우뢰의 그 내용들을 표시하면 사람들은 너무 기절할 것이기 때문에 은은히 숨겨두시는 것이다. 다만 여호오 하나님을 두려워하심은 그 신앙의 장성에 따라 성화에따라 영안이 열려지는 정도대로 여호와에게 대한 경건의 정도는 높아져 간다. 모세는 시90:11절에 '누가 주를 두려워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니잇가' 라고 하였다. 이는 인생이 아무리 하나님을 두려워 기절하였다 할지라도 그 두려우심을 다 안 자도 두려워 할 대로 두려워한 자도 없다는 간증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지혜이다. 재세에 두려워한 것은 말세에 주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받는 것으로 보응되고 재세에 두려워 하지 못한 부분은 그날에 두려움과 후회로 보응된다. (창22:12절과 16-17, 잠9:10, 시51:17, 시2:11-12 참조) 이 요한은 남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7 우뢰의 비밀을 알았으니 그이의 심령은 남이 가지지 못하는 뜨거움을 가졌을 것이다. 오늘도 인간의 방언으로 다 표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지 곧 계시 말씀 속에 감추어 있어 영감된 요한처럼 여호와의 경외와 이 복음 사건의 중대성을 영감으로 소유하여 타인에게 표시 못할 엄밀한 그 뜨거움을 가져 식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3.'7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랴고 하다가 곧 드르니 하날에서 소래 나서 말하기를 7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나 하더라'  본절 해석은 상술한 2.의 해석과 같다. 시29:4-9 참조.  ▶▶제4권 끝 5권으로 계속

4.첨부

천사가 사자같이 부르짖는 간절한 소리로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까지 하면서 복음대로 다 이루리라 하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응답이니 우리들은 그 답의 내용이 비록 기록되지 아니하였으나 넉넉히 추론할 수는 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인 듯 하다. 우뢰 소리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당신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위약자에게 대한 진노와 그 벌의 무서움을 말했고 또 약속 준행자의 보상의 영광이 크심을 말한 듯 하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 평생 여호와의 두려우심과 그 인자하심의 상에 대하여 연구에 연구를 가하여야 하겠다. 평생 깨달아도 하늘에 가면 가지지 못한 두려움과 확신하지 못한 소망의 후회가 있을 것을 기억하고 힘써 이 두 가지 사실을 찾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방언으로는 도무지 표시할 수 없는 그 양을 많이 가져야 한다.
어떤 이는 우뢰는 하나님의 권위와 진노요 7은 하나님의 완전 수요 소리는 힘이라고 해석하고 인간이 다 알면 기절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고로 그의 신앙에 따라 영감으로 알리기 위하여 인봉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해석도 이연한 점도 있다. 감추었는 고로 진노의 벌과 준행자의 상에 대하여 감추어진 양이 많을 뿐, 이 일곱 우뢰를 기록하지 못하게 한 것은 본장의 중심 목적이 진노의 심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대로 이루어지시는 것을 예고하여 확인과 확신을 주려 함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경고와 구원적 역사가 중심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함이 중심 목적이 아닌 것을 보임이다. 어떤 학자는 본장의 중심 목적을 심판으로 해석한다. 본 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 구원과 심판 양면을 가진 것인데 본장은 진노와 심판에 속함보다 자비의 경고와 구원의 목적이 본 장의 중심 뜻이다. 심판으로 보면 큰 뜻이 바꾸어지는 셈이 된다. 예를 들면 9: 16: 18: 등은 심판의 선언장이라 하겠다. 본장은 그와는 반대이다.